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찾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잘못된 주장: 예수님은 영의 방식으로 재림하시지, 성육신의 방식으로 재림하시지 않는다

50

반박: ‘예수님은 영의 방식으로 재림하시지, 성육신의 방식으로 재림하시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주장이 성립될까요? 사실 온통 더러움에 속한 인류는 영을 ‘온다’ ‘오지 않다’라는 개념으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형상이 없고 사람이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영은 우주 만유에 가득 차 계십니다. 영이 얼마나 크시냐 하면, 전체 우주 만유에 가득할 정도로 크시고, 얼마나 작으시냐 하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을 정도로 작으십니다. 영이 얼마나 많으시냐 하면, 진심으로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 마음속에 있을 정도로 많으시고, 얼마나 적냐고 하면, 영은 오직 한 분뿐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하나이니 …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4~6),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그러니,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가까이한다면, 성령은 본디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에게는 ‘온다’ ‘오지 않다’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말하자면, 예수님은 ‘인자’이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당연히 형상이 있어 우리가 볼 수도, 만질 수도 있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어째서 성육신이라는 방식으로 오셨는지에 대해 함께 성경 구절을 보도록 합시다. 누가복음 21장 8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며 때가 가까왔다 하겠으나 저희를 좇지 말라” 누가복음 17장 24절부터 25절 말씀입니다.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 다음은 계시록 11장 15절 말씀입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여기에 ‘그리스도’와 ‘인자’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대체 ‘그리스도’와 ‘인자’란 무엇일까요? 누군가는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사울, 다윗, 사무엘, 엘리야, 그리고 수많은 대제사장, 선지자들도 모두 기름 부음을 받았고, 그들 역시 ‘인자’라고 불립니다. 하지만 어째서 그들은 그리스도라 불릴 수 없는 걸까요? 그들에게는 오직 정상 인성만이 있을 뿐 완전한 신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님은 모두 하나님 자신인데, 어째서 예수님은 ‘그리스도’, ‘인자’라 하고 여호와 하나님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 걸까요? 여호와 하나님은 영으로, 그분께는 오직 완전한 신성만 있고, 정상 인성이라는 면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 불릴 수 있는 이유는 그분은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자 여인의 몸을 빌려 태어나신 존재로, 그분께는 정상 인성과 함께 완전한 신성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측면이 결합되어야 비로소 ‘그리스도’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성육신한 하나님을 부르는 고유한 명칭입니다. 성경 속 예언을 보면 돌아오실 예수님을 ‘그리스도’, ‘인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그분께서 성육신의 방식으로 오신다는 걸 말합니다. 만약 영이나 영체의 방식으로 오신다면 그렇게 호칭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복음 17장 24절부터 25절에는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성육신으로 오실 거라는 사실을 가리키지 않습니까? 만약 영이나 영체라면 고난을 받으실 수 있을까요? 사람에게 버린 바 되실 수 있을까요? 성경에는 또한 말세에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나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라 나와 있습니다. 모두 알다시피, 거짓 그리스도는 분명 사람일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정말 성육신이 아니라 영체로 오시는 거라면 거짓 그리스도가 그분을 따라 할 수 있겠습니까? 사칭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을 미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예수님께서 말세에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실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그분은 성육신으로 돌아오실 것임을 크리스천들에게 암시하고 계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왜 이 점을 생각하지 못할까요? 사람들이 이 점을 생각하지 못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규정지어 놓고 구하길 원치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하면 찾을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에겐 복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사람이 구하지 않고 심령이 가난하지 않으며 의에 주리고 목마르지 않았는데 어떻게 주님의 깨우침과 인도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째서 또다시 육신을 입으시려는 걸까요? 이 부분과 관련한 진리를 깨달으려면, 우선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이 점을 알고 나면, 하나님께서 어째서 또 다시 육신을 입으시려는 건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율법시대, 여호와 하나님께선 모세를 빌려 율법을 반포해 지키게 하셨고, 율법을 어긴 자는 필히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을 겁니다. 율법시대 후기, 사람의 죄악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점차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어갔습니다. 다리를 절거나 눈이 멀었거나 병이 든 가축들을 제물이랍시고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에 올리기도 하며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일들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어떤 자는 하늘에서 내리는 불에 타 죽기도 하고, 어떤 자는 돌에 맞아 죽기도 했습니다. 만약 이런 상황이 계속되었다면 사람들은 모두 율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하나님께 죽임을 당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만드셨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배경하에 하나님께서는 패괴된 인류의 필요에 따라 직접 육신을 입고 땅으로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을 위한 속죄 제물이 되심으로써 사람을 죄 가운데 구속해 내셨습니다. 이로써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은 더 이상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죄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왜 영이 직접 사역하지 않으시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구속 사역을 하셨던 걸까요? 이는 바로 구속 사역은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써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역을 하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형상이 없고,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기에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실 수 없고, 사람을 위해 피를 흘리실 수 없으며, 당연히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되실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형상이 있는 육신을 입으셔야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사람을 위해 보혈을 흘려 사람을 죄 가운데에서 구속해 내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람은 죄 사함을 받아 사망에서 떠나고 하나님의 축복 가운에 살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패괴된 인류의 필요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역에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여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을 죄 가운데서 구속해 내셨고, 그로 인해 사람의 죄는 사해졌지만, 여전히 사람 내면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죄성 때문에 사람은 아직도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늘 죄를 짓고 뉘우치길 반복하는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도록 내버려 둔다면, 인류는 점점 더 타락해 결국 사탄에게 먹혀 버리고 말 것입니다. 인류를 철저히 구원하여 사탄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또다시 말씀으로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선포한 진리로 사람의 죄성을 제거해 완전히 정결해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인류를 구원하는 모든 사역을 끝맺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말세에 이루려 하시는 사역입니다. 여러분, 말세에 하나님의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나님께서 직접 하실까요, 아니면 사람을 통해 하실까요? 먼저 말세 사역이란 게 사람을 통해 할 수 있는 건지 살펴봅시다. 방금 말세 사역은 말씀으로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이며,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진리를 통해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신다고 했습니다. 사람에겐 진리가 전혀 없고, 진리를 선포할 수도 없음을 우린 잘 알고 있습니다. 진리는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으로, 오직 성육신하신 하나님만이 선포하실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십니다. 그러니 사람은 말세의 말씀 사역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탄에 의해 심각하게 패괴되고 더럽혀져, 거룩함과 공의로운 성품이라곤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심판할 자격이 없고, 사람을 정결케 하는 사역은 더더욱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람을 통해 심판과 정결의 사역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설령 사람이 한다 해도 사탄이 참소할 테고 사람들은 수긍하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말세의 사역은 시대를 열고 시대를 끝내는 사역입니다. 시대를 열고 시대를 끝내는 사역은 모두 하나님 자신이 직접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이자 끝으로, 사역을 펼치시고, 사역을 끝내십니다. 사역을 계획하시고, 사역을 경영하시며, 또한 사역을 이루십니다. 그러니 말세의 사역은 그 누구도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직접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사역하신다고 하니, 그렇다면 비교를 한번 해봅시다. 말세 사역을 하나님의 영이 직접 하시는 것과 성육신하여 하시는 것 중, 어느 편이 더 패괴된 인류에게 도움이 될까요?

먼저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사무엘하 6장 6절부터 7절에는 이런 일이 기록돼 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바알레유다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오는 도중, 소들이 뛰자 웃사가 손을 들어 궤를 붙들었다가 하나님의 영께 죽임을 당합니다. 웃사는 어째서 하나님께 죽임을 당한 걸까요? 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구약 성경 속 ‘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인데, 어떻게 더러운 인간이 손으로 그 궤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웃사는 좋은 의도로 한 행동이었지만 하나님을 거슬렀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또,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예를 하나 더 들어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8장 3절부터 11절에는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이 예수님 앞에 끌려와 처분을 기다리는 내용이 나옵니다. 당시 예수님께선 그 여인의 죄를 정죄하지 않으셨을뿐더러 그녀의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여인에게 회개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만약 당시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역을 하셨다면 율법에 따라 이 여인은 돌에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성육신이란 방식으로 사역하셨기 때문에 여인은 구원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두 가지 예를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율법시대, 하나님께서는 영의 방식으로 사역하셨는데, 영은 사람의 더러운 존재를 용납하지 않으시고, 사람이 그분을 거스르는 것도 용납하지 않으셨기에, 거스르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은혜시대 하나님께서 성육신이란 방식으로 사역을 하시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그분은 사람의 실제 상태와 처한 상황에 따라 각각 다르게 사람을 대했습니다. 즉, 성육신 하나님은 사람의 연약함을 헤아려 사람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패괴된 인류에겐 성육신 하나님이 사역하시는 것이 하나님 영이 직접 사역하시는 것보다 더 나았습니다. 말세 사람들의 상태를 보면,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역하시는 것과 성육신 하나님이 사역하시는 것 중 어느 편이 패괴된 인류에게 더 나을까요? 모두 다 알다시피, 오늘날 사람들의 죄악은 이미 율법시대 후기 사람들의 죄악을 넘어섰고, 소돔성 사람들의 죄악을 넘어섰으며, 음란함과 사악함, 하나님을 거역함이 이미 절정에 달했습니다. 예수님 이름 아래 있는 형제자매들이라 해도 죄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비록 예수님의 보혈로 속량되었지만 여전히 죄성이 내면에 뿌리박혀 있기 때문에 아직도 낮에는 죄를 짓고 밤에는 뉘우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는 겸손하고 인내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남과 암투를 벌이고, 질투하고 다투며, 사람을 속입니다. 많은 형제자매가 소극적이고 연약해졌습니다. 믿음과 사랑은 차갑게 식었고 죄가 만연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습니다. 어떤 자는 재물을 탐하고, 어떤 형제자매들은 이방인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삽니다. 단지 이방인에겐 없는 성경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이는 모두가 다 목도하고 있는 사실 아닙니까? 하나님의 영은 사람의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으시고 사람에게 있는 더러움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이렇게 패괴돼 있는데, 만약 하나님께서 영으로서 직접 말세의 심판과 정결 사역을 하신다면, 사람은 일찌감치 멸망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지 않나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패괴된 인류의 필요에 따라, 사탄에게 패괴된 수준에 따라, 또 한 차례 성육신의 방식으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사역하십니다. 성육신의 방식으로 사역하셔야만 사람의 연약함을 헤아려 사람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며, 사람이 온전한 구원을 받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지 않으면 육에 속한 사람은 그 누구도 이 지극히 큰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고, 아무도 구원받지 못한다.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한다면, 사람은 모두 죽게 되거나, 아니면 하나님과 접촉할 수가 없어 사탄에게 철저히 사로잡힐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다시 성육신의 사역을 잇는 두 번째 계획을 시작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사탄의 손에서 구원한 사람을 온전케 하고 얻는 것이다. …』, 『사람은 사탄에 의해 패괴되었고, 또 하나님이 창조한 최고의 피조물이므로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다. 구원할 대상은 사람이지 사탄이 아니며, 구원하는 것은 사람의 육체와 영혼이지 마귀가 아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멸할 대상이고, 사람은 하나님이 구원할 대상이다. 하지만 사람의 육체가 사탄에 의해 패괴되었으므로 반드시 먼저 사람의 육체를 구원해야 한다. 사람의 육체는 가장 심하게 패괴되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되었으며, 심지어는 공개적으로 대적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기에 이르렀다. 패괴된 육체는 아주 완고하고, 육체의 패괴 성품은 다루기도 변화시키기도 가장 어렵다. 사탄은 사람의 육체를 찾아와 방해하며, 사람의 육체를 이용해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망친다. 그렇게 해서 사람도 사탄이 되고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다. 사람을 구원하려면 먼저 사람을 정복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도 가만히 있지 않고 육신으로 와서 그가 하려는 사역을 하고 사탄과 싸운다. 그 목적은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며 그를 거역한 사탄을 물리치고 멸하는 것이다. 사람을 정복하는 사역으로 사탄을 물리치는 한편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는 것은 일거양득의 사역이다.』, 『성육신한 하나님이 육신으로 온 이유는 전적으로 패괴된 사람의 필요 때문이다. 이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며, 이 모든 대가와 고통은 인류를 위한 것이지 하나님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신 이유는 순전히 패괴된 인류의 필요 때문임을 충분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구속을 통해 죄 사함을 받긴 했지만 미처 제거되지 않은 사람의 죄성은 아직도 육체에 뿌리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겐 죄를 이겨 내고 육체에서 벗어날 능력이 없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사탄에게 패괴되었기 때문에 사탄은 사람의 육체를 이용해 하나님의 사역을 교란하고 파괴합니다. 그렇게 사람 역시 사탄처럼,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버립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영으로 직접 사역하신다면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모두 더러움과 패괴 때문에 하나님께 죽임을 당해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또 한 차례 성육신하신 것은 순전히 우리 패괴된 인류의 필요 때문이지, 하나님이 필요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여 사역하시는 것이 영으로 직접 사역하시는 것보다 더 인류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론 다시 하나님께서 하시는 사역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셔야 했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말세에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심판 사역을 하시려고 합니다. 즉,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두루마리를 펼쳐 일곱 개의 인을 푸시고, 봉해져 있던 일곱 우뢰를 열어 소리를 발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모든 진리와 숨겨져 있던 6천 년의 비밀을 공개하시고, 사람들의 내밀한 속사정을 모두 밝혀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선포한 진리로 사람을 심판하고, 밝히고, 공급하시며 사람에게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알려주십니다. 사람은 이를 통해 자신에 대해 진정한 인식을 가지게 되고 생명 성품에 변화가 생겨 결국에는 정결케 됩니다. 하지만 만약 말씀의 심판 사역을 하나님의 영이 직접 하셨다면 마땅히 맺었어야 할 결실을 맺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 이렇게 말하는 걸까요? 다음 성경 구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8절부터 29절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우뢰가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이들은 천사가 저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잘 보십시오. 여기 분명 하늘에 소리가 나서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라고 하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곁에 서서 듣던 무리는 ‘우뢰가 울었다’라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저에게 말하였다’라고 했던 걸까요? 옆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잘못 들은 것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의 사역과 말씀이 사람에게 비범하고, 신비롭고 알 수 없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헤아리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사역은 다릅니다. 그분은 정확한 말씀으로 사람을 인도하고 명확한 추구 목표를 알려주실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이리저리 헤매고 추측할 필요 없이, 어떻게 실천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할 수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에는 베드로가 예수님께 질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 이 예시에서 볼 수 있듯, 성육신 하나님께서 사역하시는 기간,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를 땐 성육신한 하나님께서 실천해야 할 길을 명확히 알려주셨습니다. 사람은 이리저리 헤매고 추측할 필요 없이, 바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면 됩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바는 매우 명확하고 분명합니다. 이는 영의 사역이 맺을 수 있는 결실을 훨씬 웃도는 것으로, 성육신 하나님께서 말씀의 심판 사역을 하시는 것이 영이 직접 사역하시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습니다. 말세에 성육신하신 하나님께선 사람들과 왕래하며 교제하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역하셨을 경우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은 직접 하나님의 영과 교제할 수 없기 때문에 그분을 이해하고 알기 어렵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8절에서 19절 말씀처럼 말입니다.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당시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뻐하긴커녕 놀라서 벌벌 떨었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하나님 영이 발하시는 음성은 우뢰와 같아서 사람은 직접 하나님의 영과 교제할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하니, 영의 사역이 어떻게 결실을 맺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성육신하신 하나님만이 사람과 교제할 수 있으시고, 또 사람은 그제야 하나님의 양육과 목양, 붙드심을 받을 수 있으며,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인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세의 말씀 심판 사역은 성육신하신 하나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영의 사역과 말씀이 맺을 수 있는 결실은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이 맺을 수 있는 결실에 훨씬 못 미치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할 때 직접 영의 방식과 영의 신분으로 구원하지 않는다. 그의 영은 사람이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고 또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영으로 직접 사람을 구원한다면 사람은 그의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한다. 하나님이 창조된 사람의 외형을 입지 않으면 사람은 이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 아무도 여호와의 구름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던 것처럼 사람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창조된 사람이 되어야만, 즉 그의 ‘도’를 그가 입으려는 육신에 채워야만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그 ‘도’를 직접 적용할 수 있다. 그래야만 사람이 직접 그의 도를 듣고 볼 수 있으며 나아가 그의 도를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사람은 비로소 완전히 구원받게 된다.』, 『성육신하지 않은 하나님은 사람이 볼 수도 없고 접촉할 수도 없는 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은 육에 속한 피조물이다. 사람과 하나님의 세계는 서로 다르며, 그 성질 또한 달라서 하나님의 영과 육에 속한 사람은 전혀 맞는 구석이 없고, ‘수교’가 아예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사람이 영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피조물이 되어 그의 원래의 사역을 하는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곳에 오를 수도 있고 창조된 사람으로 자신을 낮추어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며 사람과 함께 생활할 수도 있지만, 사람은 지극히 높이 올라 영이 될 수 없을뿐더러 지극히 낮추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역해야 한다.』 『육신의 사역은 그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에게 더 효과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게다가 형상이 있는 육신은 사람의 이해와 신뢰를 더 잘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에 깊이를 더하고, 하나님의 실제 행사에 대해 더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영의 사역은 매우 신비로워서 평범한 사람은 예측하기 어렵고, 눈으로 보기는 더욱 어려우며, 그저 터무니없이 상상할 뿐이다. 반면 육신의 사역은 정상적이고 실제적일뿐더러 풍부한 지혜가 있으며, 평범한 사람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사실이다. 모두가 하나님이 사역하는 지혜를 직접 깨달을 수 있어 풍부한 상상을 펼칠 필요는 없다. 이것이 육신으로 하는 하나님 사역의 정확성이자 실제적인 가치이다. 영은 단지 사람이 보지도 못하고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만 할 수 있다. 영의 깨우침, 영의 감동, 영의 인도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영의 이러한 사역들은 사고력을 가진 사람에게 명확한 뜻을 알려 줄 수 없고, 말로 분명하게 가리켜 줄 수 없으며, 그저 감동이나 대략적으로 비슷한 뜻만 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육신으로 하는 사역은 이와 전혀 다르다. 육신으로 사역하면 정확한 말씀의 인도, 명확한 뜻, 그리고 명확한 요구와 목표가 있으므로 사람이 모색할 필요도 없고 상상할 필요도 없으며 더욱이 추측할 필요도 없다. 이것이 육신으로 하는 사역의 명확성으로, 영의 사역과는 크게 다르다. 영의 사역은 일부 제한적인 범위에만 적합할 뿐, 육신의 사역을 대신할 수 없다. 육신이 사역하면서 사람에게 요구하는 정확한 목표와 사람이 얻는 인식의 실제 가치는 영의 사역이 지니는 정확성이나 실제 가치를 크게 뛰어넘는다. 패괴된 사람에게는 정확한 말씀과 명확한 추구 목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사역만이 가장 가치 있는 사역이다. 현실적으로 사역하고 제때 인도해야만 사람의 기호에 맞출 수 있고, 실제적으로 사역해야만 사람을 패괴되고 타락한 성품에서 구원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오직 성육신 하나님만이 할 수 있다. 성육신 하나님만이 사람을 패괴되고 타락한 옛 성품에서 구원할 수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만약 하나님께서 말세 말씀의 심판 사역을 영의 방식으로 직접 하시면 마땅히 맺어야 할 결실을 맺을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은 만질 수도, 볼 수도 없고, 형체가 없어 측량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게 큰 두려움을 느끼고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어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영은 말세에 직접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기 적합하시지 않으며, 직접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기에도 적합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영의 방식이 아닌 성육신의 방식으로 사역하시는 것은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인 것입니다.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과 교제하고 왕래하기 더 좋고 사람의 현실적인 부족함과 결핍에 근거해 실제적으로 공급해 줄 수 있습니다.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에게 정확한 말씀과 명확한 목표를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동시에 사람의 체험에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바로잡아 줄 수 있고, 하나님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하며,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없앨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이 영이 직접 사역하시는 것보다 말세 말씀의 심판 사역에 더 유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말세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심판 사역은 사람을 정복하고 구원하는 사역이자, 사람을 각기 부류대로 나눠 상선벌악(賞善罰惡)을 하시는 사역입니다. 이 사역은 오직 사람의 패역과 대적을 철저히 드러내야만 진실을 포착해 선과 악을 분별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야 심판 사역이 마땅히 맺어야 할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영의 방식으로 사역하시는 것과 성육신의 방식으로 사역하시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사람을 잘 드러낼 수 있을까요? 마태복음 13장 54절부터 57절 말씀을 봅시다. “…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이 구절들에서 볼 수 있다시피,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메시야였음을 알지 못했고, 하나님께서 이미 육신을 입고 사람들 가운데 살고 계시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각자의 생각과 행위를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지혜와 그분이 행하시는 기적을 기이하게 여겼고, 예수님에게 많은 관념을 품으며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선 외모도 특별한 부분이 없으셨고, 평범한 사람처럼 입고, 먹고, 지내고, 행동하신 데다, 사람이 생각하는 ‘부모’와 ‘형제자매’도 있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입으셨던 육신이 이토록 정상적이고 실제적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관념과 상상, 패역함과 대적을 낱낱이 드러내실 수 있었습니다. 당시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역하셨다면 사람은 그 영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으니 마음대로 추측하고 상상했을 것입니다. 이런 사역은 사람의 관념에 맞기에 유대인은 자신의 패역함과 대적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었기 때문에, 유대인의 관념과 대적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관념을 고수하고 끝까지 대적하던 사람들은 예수님께 정죄당했고, 예수님께 순종하고 따랐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오직 성육신 하나님만이 사람의 패역함과 대적, 관념과 상상을 충분히 드러내실 수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말세에 영의 방식으로 오셔서 심판 사역을 하신다고 해 봅시다. 영은 크고 높으며 존귀하고 권병을 가진 존재로 사람의 생각에 부합합니다. 그런데 누가 감히 패역함을 드러내고 하나님께 대적하려 들겠습니까? 그러면 선과 악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심판 사역은 또 어떻게 결실을 맺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께서 영의 방식으로 오셔서 사역하시면 사람의 관념, 패역함과 대적을 드러내실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직접 땅으로 오셔서 평범하고 정상적인 육신을 입어야 사람 내면에 존재하는 관념, 패역함과 대적을 모두 드러내고 이것으로 사람을 심판하고 징벌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사람을 진심으로 감복시킬 수 있고, 이를 순종하고 받아들인 사람들은 구원을 받으며, 거역하고 대적했던 사람들은 징벌을 받게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말세에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지 않으신다면 사람은 자신이 가장 충성스럽고, 가장 하나님을 사랑하며 가장 하나님께 상 받기 합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성육신 하나님은 정상적이고 실제적이며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기 때문에 비로소 사람의 패역함과 대적을 모두 드러내실 수 있고, 하나님께선 이를 가지고 진실을 포착해 선과 악을 분별해 내어 결국 사람을 각기 부류대로 나누고 상선벌악을 하는 목적을 이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사역의 지혜이자 하나님의 공의로움입니다. 그래서, 오직 성육신 하나님이 직접 사역하셔야 사람을 더 철저하고 온전히 드러내실 수 있는 것이고, 그래야 사람을 정복하는 목적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사역을 하시는 것이 영이 사역하시는 것보다 더 말세의 심판 사역에 도움이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육신 하나님을 통해 부각해야만 사람이 원래 가지고 있던 관념이 모두 드러난다. 성육신 하나님과 대조를 이루지 않는다면 사람의 관념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너는 사람의 패괴 성품과 패역, 대적은 그리스도를 만날 때 드러날 뿐만 아니라, 그때 드러나는 패역과 대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적나라하다는 사실을 아느냐? 그리스도가 인자이며 정상 인성을 지닌 인자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불경스레 대하고, 하나님이 육신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패역이 남김없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의 임함으로 인류의 패역이 모두 파헤쳐졌고, 그리스도의 임함으로 인류의 본성이 다 부각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맹수를 굴 밖으로 유인하는’ 것이다.』, 『심판 사역도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관념을 통해 행하는 것인데, 사람은 본래 영에 대해 관념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영이 사람의 불의를 더 잘 드러낼 수는 없고, 더욱이 사람의 불의를 확실히 들추어낼 수도 없다. 성육신 하나님은 그를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의 원수이다. 그는 그에 대한 사람의 관념과 대적을 심판함으로써 인류의 패역을 모두 들추어낸다. 육신이 하는 사역은 영이 하는 사역보다 더 뚜렷한 성과를 낸다. 그러므로 인류 전체를 심판하는 사역은 영이 직접 하지 않고 성육신 하나님이 하는 것이다.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은 사람이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으며, 사람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다. 사람은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에 대해 대적하다가 순종하고, 핍박하다가 받아들이고, 관념을 갖고 있다가 알게 되고, 저버리다가 사랑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 성과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두 번째 성육신을 언짢게 생각한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심판 사역을 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이 행하는 사역이 흔히 사람의 예측을 크게 벗어나고 사람의 머리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을 말해 둔다. 사람은 땅에 있는 구더기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은 온 우주에 충만한 지고지상한 분이고, … 하나님의 생각으로 지휘하는 각 단계의 사역은 모두 하나님 지혜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과 겨루려고 하는데, 그러면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이 어느 쪽일지는 내가 말해 주지 않아도 뻔한 사실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또 한 차례 성육신하신 이유는 패괴된 인류의 필요 때문이고, 말세 말씀의 심판 사역의 필요 때문이며, 성육신을 하셔야 사람의 패역함과 대적을 드러내어 상선벌악의 목적을 이루실 수 있기 때문임을 알려 주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율법 아래 사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속죄 제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성육신하지 않으셨다면 사람은 율법 아래 죽고 말았을 겁니다. 그리고 말세에 속량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철저히 정결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또 한 차례 성육신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그저 죄를 짓고 뉘우치길 반복하는 상태로 살며 영원히 정결케 되지 못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오직 성육신 하나님께서 심판 사역을 하셔야 사람에게 명확한 추구 목표를 가져다주실 수 있고, 그래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헤아리게 되어 패괴된 인류가 철저히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성육신 하나님의 실제적 사역만이 사람의 패역함과 패괴와 대적을 드러낼 수 있고, 사람이 성육신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진리 앞에 엎드리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시는 것은 말세의 패괴된 인류에겐 너무나도 필요한 일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여전히 하나님께선 또다시 성육신하실 리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다시 육신을 입으신 게 사람의 관념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이 크나큰 구원을 거부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세에 성육신하신 것은 인류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일로, 사람의 앞날과 운명을 결정짓는 큰일입니다. 왜냐하면 말세 그리스도는 사람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해 주는 대문이시자, 새 시대로 안내하는 인도자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인류에게 진리와 길과 생명을 가져다주시고, 전 인류를 구원하시며,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갈등을 풀어주시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시며, 하나님과 사람의 생각을 이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돌아오실 구주를 뵙길 간절히 바라고 있지 않습니까? 자신의 관념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진리를 받아들인다면, 성육신한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사람들이 오랜 기간 간절히 기다려온 구주 예수님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과거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직접 받아들일 수 있었던 베드로와 요한을 부러워했습니다. 오늘날, 말세에 태어난 형제자매 여러분도 그들처럼 행운아들이지 않습니까? 복을 받아 하나님의 두 번째 성육신의 구원을 받고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의 풍성한 공급을 누리며 하나님나라의 훈련을 받을 수 있다니, 정말이지 가장 복받은 세대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첫 번째 성육신만을 믿고 하나님의 두 번째 성육신을 받아들이기 거부한다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기회를 잃게 되고 그렇게 자신의 일생을 끝내버리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고 싶으십니까?

관련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