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주장: 당신들이 전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이 참도가 맞다면 어째서 목회자와 신부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가?

2020.06.16

반박: 많은 크리스천이 목회자들은 성경을 열심히 읽었고 하나님에 대해 잘 알 테니,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이 참도라면 그들이 먼저 사역에 대해 알아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그들이 지금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알아보거나 받아들이지 않으니, 이는 그 사역이 참도가 아님을 증명한다고 여깁니다. 우리는 목사나 신부들이 받아들였는지 여부를 가지고 그 사역이 참도가 맞는지 확인하려고 하는데, 이것이 문제를 보는 객관적인 태도일까요? 우리 모두 알다시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참도였습니다. 이는 우리가 의심없이 진심으로 믿고 있는 바입니다. 하지만 과거 예수님이 유대에서 사역할 당시, 종교계 지도자들이었던 대제사장, 장로, 서기관들 역시 성경을 열심히 읽고, 교회에서 성경에 대해 강론해 주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 알았었나요? 그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받아들였었나요? 예수님의 사역이 참도라고 인정했나요? 그들은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았을뿐더러,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을 극력 방해했습니다. 설마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예수님의 사역이 참도가 아니라고 결론 내릴 건가요? 종교계 지도자들이 받아들였는지 여부를 가지고 참도인지 판단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사실, 참도인지 아닌지는 절대로 목회자들이나 신부들이 동의했나, 인정했나, 받아들였나를 기준으로 삼을 수 없고, 그 어떤 영적 위인이나 유명인의 판단을 근거로 삼을 수도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 자신의 사역인지를 근거로 판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반드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낼 수 있고, 사람에게 진리와 길과 생명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패괴함에서 벗어나 정상 인성을 지닌 생명 성품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구원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지 못하고,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지 못하며, 패괴함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지 못한다면, 설령 목회자들이나 신부들이 인정하는 도라고 해도 참도라고 증명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참도인지 아닌지는 마땅히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 맞는지를 가지고 판단해야지, 종교계의 지도자들이 받아들였는지의 여부를 가지고 판단하려 해선 안 됩니다.

참도와 거짓 도를 판단하는 것과 관련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참도를 구하는 데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그 도에 성령 역사가 있는지, 그 말씀에 진리의 선포가 있는지, 누구를 증거하였는지, 너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참도와 거짓 도를 분별하려면 몇 가지 방면의 상식이 필요하다. 가장 기본적인 상식은 성령의 역사가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본질은 사실 하나님의 영을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믿는 이유도 그 육신이 하나님 영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즉, 그렇게 믿는 것은 역시 영을 믿는 것이다. 영과 육신이 서로 구별되긴 하지만, 그 육신은 영에서 비롯된 것이고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믿는 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고유한 본질이다. 그러므로 참도를 구별하려면 성령의 역사가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다. 그다음으로는 그 도에 진리가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진리란 정상적인 인성이 지닌 생명 성품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태초에 사람을 만들 때 사람에게 요구한 것, 즉 모든 정상적인 인성(이성, 식견, 지혜, 사람됨의 상식)을 말한다. 다시 말해, 그 도를 통해 사람이 정상적인 인성 생활로 들어갈 수 있는지, 그리고 그가 말씀한 진리가 정상적인 인성의 실제에 따라 요구한 것인지, 그 진리가 현실적이고 실제적인지, 가장 시기적절한 것인지를 살펴봐야 한다. 진리가 있다면, 사람을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체험으로 이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갈수록 사람은 정상이 되고, 사람의 인성과 이성이 온전해지며, 사람의 육체적 생활과 영 생활이 질서를 갖추고, 사람의 희로애락이 정상이 된다. 이것들이 두 번째로 살펴봐야 할 내용 중 한 가지다. 다른 하나는 사람이 갈수록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는지, 그리고 그런 사역과 진리의 체험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와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를 갈수록 가깝게 하는지를 봐야 한다. 이것으로 참도인지의 여부를 가늠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그 도가 초자연적이 아닌 현실적인 것인지,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이 몇 가지를 갖춘다면 그 도가 참도인지 확신할 수 있다. … 하나님은 반복되는 사역, 비현실적인 사역은 하지 않는다. 또한 사람에게 파격적인 요구도 하지 않고, 사람의 이성 범위를 벗어나는 사역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사람의 정상적인 이성의 범위 내에 있고, 정상 인성의 이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사람의 정상적 필요에 따라 사역한다. 성령의 사역이라면 사람은 물론 인성도 갈수록 정상이 되고, 사탄에 의해 패괴된 사람의 성품과 사람의 본질에 대해 갈수록 인식이 생기고, 갈수록 진리를 사모하게 된다. 다시 말해, 사람의 생명은 갈수록 더 성장하고, 사람의 패괴 성품은 갈수록 더 변화된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는 본래의 뜻이다. 만일 그 도가 사람의 본질적인 것을 드러내지 못하고, 사람의 성품도 변화시키지 못하며, 더욱이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사람이 하나님을 진실로 알게 하지 못하며, 심지어 인성이 점점 나빠지고 이성도 점점 비정상이 되게 한다면, 그것은 참도가 아니라 악령의 역사거나 낡은 도일 것이다. 어쨌든 성령의 현실 역사는 아니다.』

사실이 이렇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6천년 경륜의 비밀을 드러내시고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인도 아래,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알고,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 전능함과 주재, 공의와 거룩함, 위대함과 존귀함, 신실함, 그리고 아름다움과 선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길 원하게 되고 하나님과 점점 더 가까운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동시에 자신의 패괴된 본질에 대해 더 잘 깨닫고, 진리를 더욱 갈망하게 됩니다. 진리에 진입함에 따라, 우리의 생명 성품은 점차 변화하고, 우리가 살아내는 인성은 점점 정상이 됩니다. 십수 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는 중국 대륙에서 나날이 번성하였고, 그 영광스러운 기세를 가지고 전 우주를 향해 뻗어 나갔습니다. 이는 현재 여러 종파의 황량한 모습과 분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이 모든 사실이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는 성령의 사역이 있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는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참도임을 충분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목회자들과 신부들은 어째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걸까요? 사실, 그들이 참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과거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저버리고 그분의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유와 완전히 같습니다. 그럼 다음 내용에서 과거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오늘날 목회자들이나 신부들이 참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 이유, 과거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성경의 글귀를 고수하며 하나님을 자신의 관념과 상상 속에 규정지어 놓았는데, 바로 이것이 그들이 하나님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주요 원인입니다. 그들은 성경의 글귀만을 중요시했고, 성경 속 메시야의 도래와 관련한 예언을 보고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는데 막상 하나님의 실제 사역은 그들이 상상한 내용과 맞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관념과 상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신의 관념과 상상을 고수하며 그리스도를 극력 부인하고 참도를 대적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이 밝히신 바와 같습니다. 『너희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대적한 근본 원인을 알고 싶으냐? 바리새인의 본질을 알고 싶으냐? 그들은 메시야에 대한 환상으로 가득했을 뿐만 아니라 메시야가 오리라는 것만 믿었을 뿐 생명 진리는 추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그들은 여전히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 이는 그들이 생명의 도를 알지 못하고, 진리의 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리석고 완고하고 무지한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겠느냐? 메시야를 볼 수 있겠느냐?』 우리 모두 알다시피, 과거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모두 성경을 열심히 읽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언서에 다음과 같이 예언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

그들은 예언의 문자적 의미에만 근거해 메시야의 도래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메시야는 오셔서 정권을 잡으실 것이고, 분명 다윗처럼 그들의 왕이 되실 것이며, 그들을 이끌어 로마 정부를 전복하고 백성들을 로마인의 압제와 박해 가운데 구해 내실 거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메시야는 오셔서 그들의 왕이 되실 테니, 분명 왕궁에서 태어나실 것이고, 외모가 비범하고 재능이 출중할 것이라고 상상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들의 관념 및 상상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왕궁이 아닌 말구유에서 태어나셨고, 고관대작의 저택이 아닌 평범하기 그지없는 가난한 목수의 집에서 생활하셨습니다. 비범하지 않고 평범한 외모는 다른 사람과 아무 차이가 없었습니다. 특히나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의 관념과 달랐던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예수님은 그들의 상상처럼 왕이 되어 그들을 이끌어 로마 정부를 전복시키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대신 그분은 포용하고 인내하며,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그들의 상상은 조금도 맞는 부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리 말해도 예수님이 그들이 기다려 온 메시야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성경의 글귀만을 믿었고, 자신이 머릿속으로 상상한 하나님만을 믿었습니다. 성경의 글귀에 위배되고 그들의 상상 속 하나님과 맞지 않는 하나님의 새 사역을 그들은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종교계 지도자들이 상상해 온 메시야와 부합하는 부분이 조금도 없으셨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이 기다려 온 메시야가 아니라고 결론지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예수님을 대적하고 정죄했으며 참도를 비방했습니다. 결국 ‘예수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칭하고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라는 이유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는 크나큰 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다시 오늘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목회자들이나 신부들을 봅시다. 그들은 과거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과 꼭 닮아 있지 않습니까? 그들 역시 성경 속 예언의 문자적 의미만을 고수하며 하나님을 자신의 관념과 상상 가운데 규정지어 놓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 속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계 1:7)이란 구절을 보고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온갖 상상을 했습니다. 주님께선 분명 하늘의 흰 구름을 타고 공개적으로 내려오실 것이고, 주님이 오시면 분명 큰 이상(異象)이 나타나고 큰 이적이 보일 것이며, 다시 오신 주님께선 분명 자신들을 천국으로 데려가셔서 주님과 함께 아름다운 복을 누리게 하실 거라고 상상합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래는 그들의 관념들을 완전히 산산조각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들의 상상처럼 하늘의 흰 구름을 타고 공개적으로 나타나시는 대신, 육신을 입으시고 은밀히 강림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선 그들의 상상처럼 우주를 뒤흔들고 하늘 끝까지 소리가 울려 퍼지도록 사역하시는 대신, 자신을 낮추고 조용히 감추셨으며 말씀을 선포하실 뿐 이적을 보이진 않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또한 그들을 천국으로 데리고 가 하나님과 함께 아름다운 복을 누리게 하지 않으시고, 대신 심판과 형벌의 말씀을 선포하여 사람의 패괴와 패역을 밝히시고 사람의 생명 성품을 변화시키셨습니다. 이렇게, 목회자들이나 신부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이 그들의 관념 및 상상과 조금도 맞지 않다는 이유로 2천 년 전 예수님을 정죄하고 대적했던 종교계 지도자들처럼 말세에 사역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정죄하고 대적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사탄의 미혹과 사역이라 규정한 그들은 한사코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힘껏 대적하면서 사방의 교회문을 걸어 닫고 자신들이 데리고 있는 신도들이 참도를 받아들이는 걸 막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도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을뿐더러 남들이 구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고 바쁘게 뛰어다니며 악행을 저지르는 이유는 성경의 글귀에서 하나님 말세 사역의 근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고, 또 말세 하나님의 재림이 그들의 관념 및 상상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세 그리스도를 마구 정죄하고 모독하는 것입니다. 이는 순전히 그들이 하나님을 자신의 관념과 상상 속에 규정지어 놨기 때문에 초래된 결과입니다.

두 번째 이유, 과거의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고집스럽게 기존의 것을 고수하였습니다. 그들은 성령 사역의 원칙과 방향에 대해 알지 못했고, 하나님의 사역을 구약 율법 속에 규정지어 놓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대적한 근본 원인을 알고 싶으냐? … 그들이 예수를 대적한 이유는 성령 역사의 방향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역에는 항상 새로운 진전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사역이 생기면 그에 따라 시대에 뒤처진 낡은 사역이 있게 마련이다. 이 낡은 사역과 새로운 사역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며 한 단계씩 이어진다. … 하나님의 사역은 언제나 새롭기에 규례를 만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 다른 수준의 변화와 새로움을 낳는다. …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방법은 이와 크게 다르다. 사람은 낡고 익숙한 규례와 제도를 고수할 뿐만 아니라, 낡으면 낡을수록 더 좋아한다. 아무리 두드려도 꿈적하지 않는 돌처럼 어리석은 사람의 머리로 어찌 이해하기 힘든, 하나님의 그 많은 새 사역과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사람은 모두 낡아 빠지고 움직이지 못하는 백발이 성성한 하나님을 좋아할 뿐, 새로운 하나님은 싫어한다. 이렇게 하나님과 사람의 서로 다른 ‘취향’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다. …』 하나님의 말씀에서 보다시피,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대적했던 이유는 기존의 것만 고수하고, 성령 사역의 방향에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역은 끊임없이 앞을 향해 발전하며 변화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고, 하나님은 늘 새로운 사역을 행하시고 기사를 행하시며 사람이 상상하지 못하는 일을 행하신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역을 성경 속에, 율법 아래 규정지어 놓았습니다. 예수님이 성경에서 벗어나 율법대로 행하지 않자, 그들은 예수님을 정죄하기 시작했고,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다 결국 ‘성경을 어기고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바리새인 중에 혹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요 9:16),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요 19:6~7) 이는 유대 바리새인들의 참 비극적인 사건이 아닙니까? 똑같이, 오늘날의 목회자들과 신부들 역시 과거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처럼 기존의 것만 고수하며 성령 사역의 원칙과 방향에 대해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역은 끊임없이 앞을 향해 발전해 가며 늘 새롭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고정불변한 것으로, 하나님은 새롭게 바뀐 사역을 하실 수 없으며, 사람이 상상치 못한 사역을 하실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선 반드시 사람의 상상과 관념에 맞춰 사역을 하셔야 하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행하셔야지 절대 성경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성경 안에, 은혜시대 안에 규정지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돌아오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이 성경과 맞지 않고, 그들의 관념과 상상과도 맞지 않자, 그들은 있는 힘껏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대적하고 정죄하였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사교’와 ‘이단’이라 규정하였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또 다른 주요 원인입니다.

세 번째로, 과거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의 교만하고 거만하며,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본성이 바로 그들이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또 다른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들은 스스로가 성경과 율법에 대해 잘 안다고 자신했습니다. 거기다 백성들이 그들의 말을 믿고 따르자 그들의 본성은 점점 더 교만하고 거만해졌습니다. 그러면서 더욱 자신의 생각을 고집스레 지키고, 자신을 믿으며 심지어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믿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육안으로 본 예수님은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지 예언 속의 메시야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교만하고 거만한 본성이 봇물 터지듯 흘러나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비록 그들은 메시야가 오실 것을 알고 있었고, 예수님이 이적과 기사를 드러내시는 것을 직접 보고, 큰 능력과 지혜가 있는 예수님 말씀을 직접 들었지만, 자기를 낮춰 구하고 겸허히 알아볼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습니다. 교만하고 거만한 본성은 그들이 자신의 관념과 상상만을 믿도록, 그 관념과 맞지 않는 하나님의 새 사역은 그 무엇도 믿지 않도록 부추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은 메시야가 아니라고 한 마디로 딱 잘라 단정해 버리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예수님의 약점을 잡으려 하고 예수님을 멋대로 정죄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메시야를 기다렸으면서도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메시야를 대적하고 저버린 역사에 길이 남는 죄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대로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그 바리새인들의 본질은 완고하고, 교만하며, 진리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데 있어 그들의 원칙은 ‘당신이 전하는 도가 아무리 대단하고, 당신의 권병이 아무리 크다 해도, 메시야로 불리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너무나 황당하고 엉터리 같은 관점 아니냐?』 오늘날, 각 종교계의 목회자들과 신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은사와 자질이 있고, 성경을 외울 수 있으며,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으스대는 바람에 성품이 교만하고 거만해져 자신이 누구보다 높고 강한 존재이며 그 누구보다 아는 것이 많다고 자신합니다. 자신의 깨달음이 가장 순수하고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해 남들도 모두 자기 말을 따라야 한다고 믿으며, 자신의 관념과 상상을 진리로 여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새 사역을 마주했을 때, 그들은 자신을 낮춰 구하고 겸허히 알아보는 대신 망령된 말들을 내뱉으며 하나님 사역을 마음대로 판단하고 규정지었습니다. ‘흰 구름을 타고 오시는 분이 아니면 거짓 그리스도다.‘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성경에서 벗어난 것이면 옳지 않고, 하나님의 사역이 아니다.’라는 그들의 주장은 과거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며 했던 말들과 판에 박힌 듯 똑같지 않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경외의 마음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사역이 그들의 관념과 맞지 않으면 옳지 않다고 여겨 있는 힘껏 부인하고, 대적하고, 핍박하며, 버립니다. 그들에게선 겸손이나 경외심, 구하고자 하는 마음은 조금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아무리 권병과 능력이 있고, 그 안에 진리가 가득하다 해도, 그들은 성령이 역사할 기회는 조금도 주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대수롭지 않다는 듯 콧방귀를 뀌고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고집스레 자신의 관념과 상상에 기대 하나님의 사역을 대적하고 정죄할 겁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그들은 하나님의 깨우침을 받지 못해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이 참도임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신 여전히 변함없이 사역을 정죄하고, 대적하고, 교란하고, 훼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만하고, 거만하며, 고집스럽고, 진리를 구하지 않는 본성 때문에 적 그리스도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네 번째 이유, 과거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특히나 지위와, 지위에서 비롯되는 특혜를 누리길 좋아했습니다. 어떻게든 지위를 손에 넣으려는 그들의 야심이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모두 유대교의 지도자들로 매우 높은 지위와 명망을 지니고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앙망과 숭배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아첨과 아부, 옹위와 비호에 익숙해져 당연한 듯 누리고 있었는데, 지위를 향한 그들의 욕망은 너무나 견고해 깨트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누가복음 20장 46절의 말씀처럼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좋아하는” 그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더더욱 숭배하고 자신에게 복종하고 고분고분하게 굴기를, 심지어 자신을 신처럼 대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시자 오랜 기간 굳건했던 그들의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 밖에서 율법과는 다른 새로운 사역을 하셨습니다. 성령의 역사 덕분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자, 이는 지위를 끔찍이도 아끼는 종교계 관리들의 극심한 두려움을 샀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을 떠나 예수님을 믿게 되면 오랜 기간 지켜온 자신들의 지위를 잃게 될까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의 명성이 점점 더 커지면서 그들 수하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도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을 미워하고 적대시하게 된 종교계 관리들은 위태로워진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예수님의 사역을 대적하고 정죄하며 부인했을 뿐 아니라 예수님에게 살의까지 품었습니다. 이는 성경에 분명히 기록돼 있습니다.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가로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 이 날부터는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요 11:47~53) 여기에서 우리는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지위를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고, 지위를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죽이는 죄도 서슴지 않고 저질렀음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인자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이후 그들은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셨단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회개할 생각이 없었고, 오히려 백성들이 이 소식을 알고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되어 자신들의 지위와 밥그릇을 잃게 될까 불안해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지위를 지키기 위해, 군병을 매수해 유언비어를 퍼뜨리게 만들어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덮으려 했습니다(마태복음 28장 참조). 여기서 볼 수 있듯, 종교계 지도자들의 마음은 일찌감치 명예와 이익, 지위로 가득 차 있었던 탓에, 그들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예수님의 사역을 비방한 역사의 죄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고, 어떻게든 대적하고 정죄하고 교란하며 훼손하려는 오늘날 종교계 목회자들과 신부들의 심리 상태와 본성 및 본질은 과거 예수님의 사역을 대적했던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의 본성 및 본질과 완전히 닮아 있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목회자들과 신부들은 교회에서 매우 높은 지위와 명망을 가지고 있고, 사람들의 아첨과 옹호, 존경을 여러 해 누려왔습니다. 그들은 높은 자리에 앉아 손을 휘두르며 큰소리치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들은 일찍부터 자신들은 하나님 믿는 자들의 우두머리로, 사람들의 아첨과 옹호와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비록 남들 앞에서는 늘 자신은 사람들의 종이고, 하나님을 대신해 양떼를 돌보는 자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일찍부터 하나님 자리에 앉아 신도들을 자신의 손 아래 독점한 채 사람들을 자신이 권병을 행할 수 있게 해 주고 지위에서 비롯되는 혜택을 누리게 해 주는 도구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친히 인간 세상에 오셔서 그분의 양떼를 부르고 인도하시자, 양떼의 우두머리로 있는 게 익숙해진 종교계 지도자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 아래 굴복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직접 인도하고 목양하실 수 있게 고분고분 양들을 내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있는 힘껏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고, 하나님의 양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 사역의 힘찬 기세는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양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많은 자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의 재림임을 알아보고 그분께로 돌아왔습니다. 이는 지위를 탐하는 종교계 지도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새 사역이 자신들 수중에 있는 신도들을 매료시키고 따르게 했고 그들이 오랫동안 지켜온 지위, 그리고 사람들의 옹호와 추대를 잃게 될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지위와 ‘철밥통’을 지키기 위해, ‘양떼를 보호하고 진리를 수호한다’는 기치를 내건 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회문을 걸어 닫고 양떼를 꽁꽁 묶어 놨습니다. 또한, 온갖 유언비어를 퍼뜨려 하나님의 사역을 비방하고 정죄하며 하나님의 재림을 대적했습니다. 지위를 향한 야심과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본성으로 인해 그들은 참도를 받아들일 수 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선 일찌감치 그들을 버리셨습니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께서 공개적으로 나타나셔서 지옥의 징벌을 내리시기만을 기다릴 뿐입니다. 이는 그들이 줄곧 명예와 이익, 지위를 좇고, 지위가 주는 혜택들을 탐했기 때문에 초래된 비극적인 결말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내용에서 볼 수 있듯, 목회자들과 신부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결코 그분의 사역이 참도가 아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성경의 글귀를 고집하며 하나님을 성경 안에, 자신의 관념과 상상 속에 규정지어 놨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것만 고수하는 그들이 성령 사역의 방향에 대해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의 과거 사역 가운데 규정지어 놨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교만하고 거만하며 진리에 순종하지 않는 본성으로 인해 자신을 고집스레 지키고 하나님을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지위를 향한 그들의 강렬한 욕망으로 인해 지위를 지키고자 죽음도 불사하고 하나님의 재림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여러 이유들로 인해, 그들은 참도를 부인하고 참하나님을 버립니다. 그러면서 명실상부한 지금 시대 바리새인 역을 맡아 하나님을 다시금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즉, 하나님을 정죄합니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비록 오늘날 각 종교계의 목회자들과 신부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있는 힘껏 대적하고, 정죄하고, 교란하며, 훼손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사역은 이들이 거부하고, 교란하고, 훼손한다고 해서 저지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갈망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 아래로 돌아왔습니다. 이는 대세의 흐름입니다. 세찬 파도처럼 힘차게 불어닥치는 하나님의 사역을 막을 수 있는 적대 세력은 없습니다. 오늘날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은 이미 중국 대륙 전체에 전해졌고 이제는 전 우주를 향해 확산되고 있습니다. 바로 과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확산된 것처럼 말입니다. 비록 당시의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한사코 예수님을 대적하고 정죄하며 예수님을 유대인 사이에서 배제시켜 버리기도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변함없이 우주와 땅끝까지 전해져 하나님 구원을 갈망하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참하나님의 사역은 그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고, 그 어떤 적대 세력도 파괴할 수 없음을 볼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님, 더는 목회자들과 신부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이 참도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는 말도 안 되고 터무니없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맞는지 판단하려면 절대로 지도자가 받아들였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삼아선 안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계획과 뜻에 따라 사역을 행하시지, 결코 그 어떤 영적 위인의 상상 및 관념에 따라 행하시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여전히 지도자들이 받아들였는지 여부를 가지고 참도인지 아닌지 판단하길 고집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참도를 찾지 못하고, 참하나님의 현현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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