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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구비해야 할 몇 가지 분별

7 겉면의 좋은 행위와 성정 변화와의 구별.

관련된 하나님 말씀:

『성정 변화란 무엇을 말할까? 너는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받고 각종 고난과 연단을 겪어 사람 안에 있는 사탄 독소가 정결케 되면, 이것을 성정 변화라고 한다. …하나님 집에서 말하는 성정 변화란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여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음으로 인해 마침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자신의 본성을 인식하고, 사람이 너무 깊이 패괴되었음을 인식하며, 사람의 그릇됨과 궤사함, 사람의 빈궁함과 가련함을 인식하게 되는 것인데, 결국에는 사람의 본성 실질을 인식하여 자신을 완전히 부인하고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며, 범사에 진리를 실행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고, 성정이 변화된 사람이다.』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에서 발췌

 

『성정 변화란 주로 너의 본성 방면의 변화를 가리킨다. 본성의 것들은 겉면의 행실에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본성의 것들은 사람 삶의 가치, 삶의 의의, 인생의 가치관에 직접 관련되고, 영혼 깊은 곳의 것들과 관련되며, 사람의 실질과 관련된다. 만약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사람의 이런 방면에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사람이 완전히 진리에 진입하여 사람의 가치관, 생존관, 인생관에 다 변화가 일어나고, 일을 보는 관점이 하나님과 일치하고,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충성할 수 있어야만 성정이 변화된 것이라고 한다. 겉으로 공을 좀 들일 수 있다든가, 고생을 좀 할 수 있다든가, 상면의 사역안배를 시행할 수 있다든가, 너에게 어디에 가라고 하면 거기로 간다든가 하는 것은 행위상에서 조금 달라진 것일 뿐, 성정 변화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너는 아마 많은 길을 뛰어다닐 수도, 많은 고난을 받을 수도, 큰 굴욕을 참을 수도 있을지 모르고, 하나님과 아주 가깝고 성령도 너에게 사역을 좀 한다고 느낄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너에게 너의 관념에 맞지 않는 일을 하라고 요구할 때에는 네가 여전히 순복하지 못할 수 있고, 여전히 이유를 따질 수도 있고, 여전히 거역하고 대적할 수도 있으며, 더욱 심한 경우에는 하나님을 비난하고 하나님께 항의할 수도 있다. 이러면 문제가 심각하다! 그것은 네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본성이 원래 그대로여서 조금도 변화가 없음을 증명한다.』

<좌담 기록ㆍ성정 변화에 대해 있어야 할 인식>에서 발췌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이 너에게 착한 사람, 단정하고 예의 바른 사람, 법을 준수하는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거나, 사고할 줄 모르고 생각이 없는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전에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성정이 변화되는 것은 아주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여겼다. 겉으로 사람다운 모습이 좀 있다든가, 교양이 있다든가, 인내할 수 있다든가, 겉으로 경건하다든가, 겉으로 사랑이 있다든가, 남을 도와줄 수 있다든가, 베풀기를 좋아한다든가 하는 것인데, 총괄적으로 말하면 사람의 관념과 상상으로 생각하는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세상의 어떤 사람이 “돈이 많으면 가난한 사람들이나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베풀라”고 한 말과 같다. 모든 사람의 관점에는 이런 관념이 존재하고 이런 것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것도 한 방면의 독소이다. 이전에 사람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아무도 이 방면의 문제를 분명하게 교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하나님을 믿는 일이 낯설었다. 태어나 살면서도 이런 일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네가 기독교를 몇 년 믿는다고 이런 일을 깨달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이전에 하나님이 이 일에 관해 친히 분명하게 말씀하지 않았고, 친히 이 방면의 사역을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단지 겉면의 행위가 좀 바뀌고, 겉면의 사상이 좀 바뀌고, 겉면의 행실이 좀 바뀌는 것이라고 여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것은 고생을 많이 하고, 맛있는 것도 먹지 않고, 좋은 옷도 입지 않는 것이라고 여긴다. 마치 이전의 서양 천주교의 한 수녀와 같다(천주교도 종교이다. 사실 그녀들에게는 역시 신앙이다). 그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일생 동안 고난을 많이 받고 맛있는 것도 적게 먹고 좋은 것도 적게 누리며, 돈이 있을 경우 가난한 사람들이나 구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며, 또는 선한 일을 많이 하고 남에게 많이 베풀고 남을 많이 도와주면 된다고 여겼다. 자신은 일생 동안 고생하고 맛있는 것도 먹지 않고 좋은 것도 입지 않았는데, 임종시에는 몸에 2달러밖에 안 되는 의복만 입고 있었다. 하루 생활비는 아마 몇 달러도 안 되었을 것이다. 그녀의 이러한 행적은 아마 전 세계의 일반 뉴스나 주요 뉴스에서 보도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설명하느냐?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인류 마음속의 착한 사람이고 선한 사람이며, 종교계에서 사람들이 여기는 선을 행하는 사람이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며, 변화가 있는 사람이고 참으로 신앙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도 아마 예외가 아닐 것이다. 너희도 하나님을 믿고 신앙이 있다고 하면 틀림없이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여길 것이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일까? 남을 때리지 않고, 욕하지 않고, 상스러운 말을 하지 않고, 나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들이 볼 때 하나님을 믿는 모습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려고 많은 말씀을 하였고, 많은 사역을 하였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 되라고 하는 걸까? 진리로 사상을 주도(主導)하고 진리를 삶의 좌우명으로 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너를 목석 같은 사람처럼 생각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더욱이 식물인간처럼 성질이 없고 정상적인 희로애락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도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며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수 있고 하나님이 혐오하는 것을 혐오하고 내버릴 수 있는 그런 정상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들이 성정 변화란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였다고 말한다. 너희들은 행위에서, 겉면의 행실에서, 성질에서, 성격에서 자신을 규제할 뿐이다. 그렇게 하면 성정이 변화될 수 없다. 하나님이 “너희는 자신을 규제해야 하고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 되며 아무렇게나 희로애락을 표현해서는 안 되고 마구 성질부리거나 천성적인 것을 드러내서는 안 되며 제멋대로 옷을 사거나 제멋대로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한 적이 있느냐?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했느냐? 하나님이 설사 어떤 부분을 언급하였다고 해도 주요한 것이 아니고 성정이 변화되게 하는 주요 방면의 진리도 아니다. 하나님은 다만 사람의 패괴 실질에 대해 많이 언급했을 따름이다. 어떻게 사람의 패괴 실질을 인식해야 할지, 사람이 어떻게 해야 성정이 변화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참으로 사람의 패괴 실질을 인식할 수 있고 그런 패괴 성정에서 나와 하나님의 요구대로 하여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해 말했다. 그럼, 너희가 이런 문제를 깨달은 후에도 여전히 이런 겉면의 행실에 관심을 두겠느냐? 여전히 겉면의 이런 일에 매달리겠느냐? 그러므로 네가 성정 변화란 무엇인지를 모르면 영원히 성정 변화의 실질을 파악할 수가 없고 영원히 성정이 변화될 수 없다. 특히 종교에서 넘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상 관념이 종교 의식과 종교의 사상 관점에서 아직 완전히 바뀌지는 않았고, 아직도 영적인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고 있으며, 아직도 경건한 사람, 인내심이 있는 사람, 타고난 착한 사람, 선행과 기부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고 있는데, 이러면 크게 틀린 것이다! 네가 만약 이런 사람이 되기를 추구한다면, 너는 영원히 하나님께 칭찬받지 못할 것이다…』

<좌담 기록ㆍ성정 변화란 무엇인지와 성정 변화의 길>에서 발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모두 행위를 특별히 중요시하기에 행위상에서는 달라진 것이 있다. 하나님을 믿은 후 남과 다투지 않는다든지, 남과 싸우지 않고 남을 욕하지도 않는다든지,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는다든지, 공공단체의 물건은 못 하나도, 널빤지 한 조각도 부당하게 챙기지 않는다든지, 심지어 손해를 보고 억울함을 당해도 소송하지 않는데, 확실히 행위상에서는 모두 어느 정도 달라진 것이 있다. 하나님을 믿은 후 참 *도를 받아들이게 되어 아주 좋다고 생각하고, 그 밖에 또 성령 역사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어 아주 열정적이고 심지어 뭐든지 다 포기할 수 있고 뭐든지 다 행할 수 있다. 그러나 나중에, 3년, 5년, 10년, 30년을 믿은 후에 사람의 생명 성정이 변화되지 못하고, 옛 병이 또 재발하고, 본래보다 더욱 교만자대하게 되고, 권력과 이익을 다투고, 교회의 돈을 탐하고, 제 욕심만 차리고, 누리기를 좋아하고, 지위를 탐하기 시작한 탓에 하나님 집의 기생충이 되어 버렸다. 특히 그 ‘인솔자’들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다. 이런 사실은 무엇을 설명하느냐? 행위의 변화만으로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일 사람의 생명 성정이 변화되지 못한다면 조만간에 흉한 몰골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행위의 변화는 열심에서 나온 데다가 그 당시에 성령 역사도 좀 있었으므로 사람이 열심을 내고 잠시 호의를 베푸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이 하는 말과 같다. “좋은 일을 한 번 하기는 쉽지만 평생 하기는 쉽지 않다.” 한평생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사람이 해내지 못한다. 사람의 행위는 다 생명의 지배를 받는다. 생명이 어떠한 것이면 행위도 그러한 것이다. 자연적으로 유로(역주: 흘러나옴)되는 것이라야 생명을 대표하고 본성을 대표하며, 위장한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하나님이 역사하여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사람의 좋은 행위를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킴으로 사람을 환골탈태하게 하여 새사람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며 시련하고 연단하는 것은 다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켜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충성하며, 정상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역사하는 취지이다. 사람에게 좋은 행위가 있는 것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과는 다르고, 그리스도와 합하는 것과는 더욱 다르다. 행위상에서 달라진 것은 모두 도리에 근거해 열심으로 해낸 것이지,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진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며 성령의 인도에 근거한 것은 더욱 아니다. 설사 어떤 때에 성령의 지배를 좀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의 생명에서 유로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좋은 행위가 있다고 해서 꼭 진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 열심이 있으면 그저 도리에 근거해 규례만 지킬 뿐이다. 진리가 없는 사람은 실질적인 문제에 관련되면 해결하지 못한다. 도리는 진리를 대체하지 못한다.… 어떤 새 신자들은 하나님을 믿은 후 세속을 벗어났다고 여긴다. 이방인들과 만나면 할 말도 없고, 친척이나 친구들과 드물게 왕래하여 이방인들이 “이 사람이 정말 달라졌구나.”라고 말하니, 그는 ‘내 성정이 정말 변화되었나 봐, 이방인들도 다 내가 달라졌다고 하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의 성정이 정말 변화되었을까? 변화되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겉면의 변화일 뿐이다. 생명을 놓고 말하면, 전혀 변화가 없고 아직도 옛 본성이 그대로 내면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어떤 때는 사람에게 성령 역사가 있어 열심을 내고, 겉면이 달라져 좋은 일을 하는데, 그것은 성정이 변화된 것과는 다르다. 너에게 진리가 없으면 일을 보는 관점은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고, 심지어 이방인처럼 너의 가치관과 인생관에도 여전히 변화가 없으며, 최소한 갖추어야 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마저도 없다. 그러면 성정 변화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좌담 기록ㆍ겉면의 달라짐과 성정 변화와의 구별>에서 발췌

 

『교계의 많은 사람들은 평생 적지 않은 고난을 받았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키거나 십자가를 졌으며, 심지어 죽기 전까지도 고난을 받고 인내하였다! 어떤 자는 죽는 날 아침까지도 금식하였고, 평생 동안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고 좋은 옷을 입지 않았으며, 고난받는 것만 중요시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쳐 복종하게 할 수 있었고, 육체를 배반할 수 있었다. 그들이 고생하는 정신은 칭찬할 만하지만 그들의 사상과 관념, 그들의 정신 면모, 더 나아가 그들의 옛 성정이 전혀 다루어지지 않아 자신에 대한 참된 인식은 없었다. 그들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전통적인 막연한 하나님의 형상이었다.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으려는 심지는 그들의 열심과 그들의 인성 안에 있는 착한 성격으로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은 비록 하나님을 믿었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고, 하나님의 뜻도 몰랐으며, 그저 하나님을 위해 사역만 하고 하나님을 위해 고난만 받았을 뿐, 분별을 전혀 중요시하지 않았다. 또한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있는지도 중요시하지 않았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알 수 있을지는 더욱 몰랐다. 그들이 섬긴 하나님은 결코 하나님의 고유한 형상을 지닌 하나님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해 낸, 다른 사람에게 들었거나 글에서 찾아낸 전설 속의 하나님이다. 그들은 자신의 그 풍부한 상상과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았고,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을 담당하였다. 그들이 섬긴 정확도는 너무 낮아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있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들이 어떻게 기꺼이 고난을 받았든지, 그들에게 원래 있었던 그 섬김의 관점과 그들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에는 도무지 변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연단과 온전케 함을 거치지 않았고 또 아무도 진리로 그들을 이끌지 않았기 때문이며, 설사 그들이 믿는 분이 구주 예수라고 할지라도 그들은 지금까지 구주를 본 적이 없었고 전설과 풍문만 들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섬김은 두 눈을 감고 자기 나름대로 섬긴 것에 불과하다. 마치 소경이 자기 아버지를 모시는 것과 같다. 그런 섬김이 마지막에 또 무슨 성과를 얻을 수 있겠느냐? 누가 또 인정할 수 있겠느냐? 그들의 섬김은 시종일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모두가 인위적인 교훈을 받아들였고, 자신의 천연적인 것과 자신의 취향에 따라 섬겼는데 무슨 상을 받을 수 있겠느냐? 예수를 본 베드로조차도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있는지 모르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즉 나이가 들었을 때에야 인식하게 되었는데, 하물며 어떤 훈계도, 어떤 책망도 받지 않았고 인도자도 없었던 그 소경들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느냐? 오늘 너희의 많은 섬김에도 소경의 섬김과 같은 것이 허다하지 않으냐? 심판을 받아들이지 않고,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변화가 없는 사람들은 모두 완전히 정복되지 않은 사람들이 아니냐? 이런 사람이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너의 사상, 인생에 대한 인식과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 새로운 변화가 없고 또한 진실한 수확도 전혀 없다면, 너의 섬김에는 영원히 아무 성과도 없게 된다! 너에게 이상(異象)이 없고 하나님 사역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없으면, 너는 정복된 사람이 아니다. 그러면 네가 따르는 것은 고난받고 금식하는 그 사람들처럼 아무런 가치도 없다! 그들이 한 것은 아무런 간증도 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섬김을 헛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한평생 고난받기도 하였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으며, 항상 인내하고 사랑을 베풀고 십자가를 지고, 세상 사람에게 훼방과 버림을 받으면서 어떤 고난이든 다 받았다. 그들은 비록 마지막까지 순복하기는 하였지만 정복되지 않았기에 정복된 간증이 없다. 고난은 적지 않게 받았지만 내면에는 하나님에 대해 아무런 인식도 없다. 그들에게 있는 그런 옛 사상, 옛 관념, 종교적인 행실, 인위적인 인식, 사람의 생각은 모두 훈계를 받지 않았으므로 내면에는 새로운 인식이 전혀 없었고, 하나님에 대한 진실하고 정확한 인식이 전혀 없었으며, 하나님의 뜻을 잘못 이해하였다. 이것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자신의 몸을 쳐 복종시키고 인내하며 고난받는 것만 알 뿐, 옳고 그름도 모르고 더욱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면, 그렇게 실행하여 어떻게 변화가 있을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3)>에서 발췌

 

『종교적인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자매님, 요즘 정형이 어떠세요?” “저는 하나님께 빚졌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다른 한 사람은 “저도 하나님께 빚졌고 저도 하나님을 만족게 하지 못해요.”라고 말하는데, 단지 이 몇 마디 말과 몇 글자로 그들 마음 깊은 곳의 더러운 것들을 표현해 냈다. 바로 이러한 말은 사람을 가장 혐오케 하고 또한 극도로 반감을 갖게 한다. 이 사람들의 본성은 모두 하나님과 적대되는 것이다. 실제를 중요시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있는 그대로 교통하고, 마음을 털어놓고 교통하며, 거짓된 과정이 전혀 없고, 형식적인 인사가 없으며, 입에 발린 말을 하지 않고, 모두 직설적이고 그 어떤 세속적인 규칙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겉으로만 하기 좋아하고, 심지어 *이지는 조금도 없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이 노래하기만 하면 춤추기 시작하는데, 밥이 다 타는 것도 모른다. 그런 사람은 경건하지 않고 존귀하지 않으며 너무나 경망스럽다. 그것은 다 실제가 없는 표현이다! 어떤 사람들은 함께 영적인 생명의 일을 교통할 때 비록 입으로는 하나님께 빚졌다고 말하지 않지만 마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있다. 네가 하나님께 빚졌다고 느껴지는 것은 다른 사람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너는 하나님께 빚진 것이지 사람에게 빚진 것이 아니다. 네가 늘 다른 사람과 그런 말을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너는 실제에 진입하기를 중요시해야지 겉면의 열정과 겉면의 표현을 중요시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겉면의 좋은 행위는 무엇을 대표하는가? 육체를 대표한다. 겉면의 방식이 아무리 좋아도 생명을 대표하지 못하며, 기껏해야 사람의 성정만 대표할 뿐이다. 사람의 겉면의 방식으로는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지 못한다. 네가 언제나 하나님께 빚졌다는 말만 하면서 다른 사람의 생명에 공급하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하는데, 너는 자신이 그렇게 하면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것이라고 여기는가? 너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영적인 것이라고 여기는데, 사실 그것은 모두 터무니없는 것이다! 너는 네가 좋아하는 것이나 원하는 것이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라고 여기는데, 너의 애호가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겠는가? 사람의 성격이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겠는가? 너의 애호는 하나님이 혐오하는 것이고, 너의 습관은 다 하나님이 증오하고 버리는 것이다. 네가 빚졌다고 느껴지면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해야지, 다른 사람에게 말할 필요가 없다. 네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지 않고 늘 사람 앞에서 너 자신을 드러내는데, 그것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겠는가? 네가 늘 겉으로만 행한다면 그것은 네가 가장 허황된 사람임을 뜻한다. 겉면의 좋은 행위만 있고 실제가 없는 사람은 어떤 사람에 속하는가? 외식하는 바리새인에 속하고 종교 인사에 속한다! 만일 너희가 겉면의 방식을 벗어 버리지 않고 변화될 수 없다면 너희가 외식하는 성분은 갈수록 많아진다. 외식하는 성분이 많아질수록 더욱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는데, 최종에 그런 사람은 반드시 도태되고야 말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믿는 것은 종교 의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를 중요시해야 하는 것이다>에서 발췌

 

『아마 네가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어떤 사람에게도 악담을 한 적이 없고, 한 번도 나쁜 일을 한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네가 그리스도와 접촉하면서 솔직한 말을 하지 못하고, 착실하게 일하지 못하며,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온 말씀에 순복하지 못한다면, 나는 너를 세상에서 가장 음험하고 악랄한 사람이라고 한다. 네가 너의 친척과 친구, 너의 아내(남편)와 아들딸과 부모에게는 아주 우호적이면서도 아주 충성하며, 지금까지 그 누구의 덕도 보지 않았을지라도, 네가 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와 화목하게 지낼 수 없다면, 설령 네가 너의 모든 것으로 이웃을 구제하거나 너의 부모와 가족을 살뜰하게 보살펴 주었다고 해도 나는 너를 악인이라고 할 것인데, 그것도 궤계가 많은 악인이라고 할 것이다. 너는 네가 사람과 합한다고 해서 그것을 그리스도와 합한 것이라고 여기지 말고, 네가 좋은 일을 좀 했다고 해서 그것을 그리스도와 합한 것이라고 여기지 말라. 너는 선심을 쓰는 교묘한 방법으로 하늘이 베풀어 주는 복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기는가? 너는 네가 한 좋은 일로 너의 순복을 대체할 수 있다고 여기는가? 너희 각 사람은 모두 훈계와 책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정상 인성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면서도 말끝마다 하나님께 순복한다고 말한다. 너희의 그런 신앙은 마땅한 보응을 받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그리스도와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사람의 교통 참고:

『진리가 없는 사람은 인성으로 살아낸 그 좋은 것을 진리와 동등하게 논합니다. 인성으로 살아낸 그 좋은 것을 당신은 다 진리에 부합된다고 감히 보증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그것이 다 긍정적 사물이라고 감히 보증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사람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이 서로 같은 것입니까? 같지 않습니다. 종종 사람의 사랑은 사탄의 사랑이고, 감정적인 사랑이며, 자기 뜻에서 나오고 이익에서 나온 사랑입니다. 간단히 예를 하나 들어 봅시다. 어떤 사람의 본성이 마귀이면 그는 마귀를 사랑합니다. 그럼 말해 보세요. 그의 이 사랑이 어떤 사랑입니까?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마귀를 사랑하면, 사탄의 사랑이 아닙니까? 사탄의 사랑은 진리와 서로 어긋나는 것이고, 진리와 적대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소유소시(所有所是)와 하나님의 사랑과 배치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사랑이 있다 해서 착한 사람이라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의 사랑에 진리가 없고 부정적 사물을 사랑한다면, 이 사랑이 바로 사탄의 사랑입니다. 그럼 사람의 어떤 좋은 점은 진리를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까? 어떤 사람들의 좋은 점은 바로 진리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보기에 착한 사람과 비교적 남들이 탄복하고 찬성하는 사람은 꼭 하나님 뜻에 부합될 수는 없고 아마 부정적 인물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옳습니까? 그러므로 패괴된 인류가 사람들이 보기에 착한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다 사탄에게 속하고, 다 사탄 성정이 있는 사람에 속하며, 다 패괴된 인류에 속하고, 다 하나님과 적대되는 것에 속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를 좀 들어 봅시다.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종교의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까? 그들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어떤 속셈이었습니까? 그들은 자신의 속마음이 틀렸다고 여겼습니까? 그들은 그래도 하나님께 충성하고 있는 것이라 여겼고, 그래도 하나님의 역사를 수호하는 것이라 여겼으며, 그래도 간증을 굳게 서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들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고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당신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종교계에서 하나님 말세의 역사를 정죄하고 그리스도를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그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도 하나님 역사를 수호하고 있는 것이고 하나님께 충성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과 적대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들이야말로 하나님께 가장 잘 충성하는 자들이라고 여깁니다. 그들이 이런 생각이 아닙니까? 그럼 여러분이 말해 보세요. 그들이 이렇게 하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패괴된 인류가 보기에 그들이 한 것이 다 옳고 다 좋은 것 같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확실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원수인데, 이 문제를 당신은 어떻게 해석하겠습니까? 사람의 좋은 점은 사람이 하나님 뜻에 부합된다는 것을 뜻합니까? 사람이 의에 속한다는 것을 뜻합니까? 사람이 하나님과 합한다는 것을 뜻합니까? 그러므로 사람이 진리가 없으면 하나님 뜻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진리가 없으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럼 사람의 좋은 점이 긍정적 사물입니까, 아니면 부정적 사물입니까? 사람의 좋은 점은 다수가 모두 부정적 사물입니다. 왜냐하면 불순물이 너무 많고 사탄의 독소가 섞여 진리의 성분이 조금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속마음’이 좋을 때에 한 일도 꼭 진리를 실행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 아마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것이고 명목장담(明目張膽)하게 하나님과 적대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일은 온 종교계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배반하여 그리스도를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은 사실에서 완전히 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소위 살아냄이든, 소위 옳게 하고 좋게 행한 일이든 꼭 진리에 부합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행실은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행악하는 것이고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위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지금 분명히 파악하였습니까? 사람의 상상에 의거한 것이 아무리 좋아도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실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실제가 있는 것입니다.』

<설교 교통 (6)ㆍ하나님 말씀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실제가 있는 것이다”에 관한 설교 교통>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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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②이지(理智): 옳고 그름이나 이해관계를 분별하고 자기 행위를 자제하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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