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리스도를 알아가다

목차

제6장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구비해야 할 몇 가지 구별

4 참 도와 거짓 도,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어떻게 분별하는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참 도를 찾고 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무엇인가? 그것은 도대체 성령 사역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아야 하고, 이런 말씀에 진리의 발표가 있는가 없는가를 보아야 하며, 누구를 증거한 것이고 너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수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참 도와 거짓 도를 분별함에 있어서는 몇 방면의 상식을 구비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상식은 바로 성령의 역사가 있는가 없는가를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하나님의 실질을 믿는 것은 사실 하나님의 영을 믿는 것이고, 설사 말씀으로 된 육신을 믿는다 해도 이 육신이 하나님 영의 화신이기 때문이고, 즉 이렇게 믿는 것도 여전히 영을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과 육신은 비록 구별이 있지만 이 육신은 영으로부터 온 것이고 말씀으로 된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믿는 것도 여전히 하나님의 고유한 실질이다. 그러므로 참 도인가 아닌가를 구별하는 데는 우선 성령 사역이 있는가를 보아야 하고, 그다음으로는 이 도에 진리가 있는가 없는가를 보는 것이다. 진리란 바로 정상 인성의 생명 성정이고 역시 하나님이 시초에 사람을 만들 때 사람에게 요구한 것이며, 즉 모든 정상 인성(인성 이지, 견식, 지혜, 사람됨의 상식을 포괄함)이다. 즉 이 도가 사람을 정상적인 인성 생활로 이끌어들어갈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보는 것이고, 그의 말씀한 진리가 정상 인성의 실제에 따라 요구한 것인가 아닌가를 보는 것이고, 이 진리가 현실적인 것인가 아닌가, 실제적인 것인가 아닌가, 가장 적시적인 것인가 아닌가를 보는 것이다. 만일 진리가 있다면 사람을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경력으로 이끌어들어갈 수 있고, 또한 사람이 갈수록 정상적이 되며, 사람의 인성 이지(理智)가 갈수록 완전해지고, 사람의 육체 생활과 영적 생활이 갈수록 법칙이 있게 되며, 사람의 희로애락이 갈수록 정상적이 된다. 이것은 그다음의 한 조목이다. 그리고 또 한 조목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더욱더 인식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고, 이러한 역사와 진리를 경력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불러일으켜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를 갈수록 가까워지게 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참 도인가 아닌가를 가늠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바로 이 도가 현실적인 것인가 아닌가, 비초자연한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고, 사람의 생명 공급으로 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이 몇 조목을 구비하면 이 도가 참 도인가 아닌가를 단정할 수 있다. ……성령의 사역이라면 사람은 더욱더 정상적이 되고 또한 인성이 더욱더 정상적이 되며, 사람은 사탄의 패괴 성정에 대하여, 사람의 본질에 대하여 더욱더 인식이 있게 되고 진리에 대하여 더욱더 간절히 사모하게 된다. 즉 사람의 생명이 더욱더 진보가 있을 수 있고 사람의 패괴 성정이 더욱더 변화가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의 생명으로 된 원뜻이다. 만일 이 도가 사람의 본질의 것을 폭로해낼 수 없고, 사람의 성정을 변화시킬 수도 없고, 더욱이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올 수 없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하여 진실한 인식이 있게 할 수 없고, 심지어 인성이 갈수록 낮아지게 하고, 이지가 갈수록 비정상이 되게 한다면, 이 도는 참 도가 아니라 혹시 악령의 역사일 것이고 혹시 낡은 도일 것이다. 어쨌든 성령의 현실 역사는 아니다. 너희들은 이렇게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었어도, 참 도와 거짓 도를 분별하는 원칙과 참 도를 찾고 구하는 이런 원칙에 대하여 전혀 모른다. 심지어 다수의 사람들은 이 일에 대하여 듣지도 묻지도 않고 다만 무리를 따르고 맞장구를 치는데, 이를 어찌 참 도를 찾고 구하는 사람이라 하겠는가? 이러한 사람이 또 어찌 참 도를 찾을 수 있겠는가? 네가 관건적인 몇 가지를 장악하게 되면, 어찌하든 너는 미혹 당할 정도까지는 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한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이 만족해하는 사람이다≫에서 발췌

『무릇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은 모두 성령의 함께함과 징계가 있으며, 성령의 흐름 속에 있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모두 사탄의 주관 아래에 있으므로 아예 성령의 역사가 없다.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새 사역을 받아들인 사람이다. 그들은 바로 하나님의 새 사역에 협력하는 사람들이다. 이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 만일 협력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이 시기에 요구한 진리를 실행할 수 없다면 징계를 받고, 심각하면 성령께 저버림받는다.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인 사람인 이상, 성령의 흐름 속에서 살면서 성령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는다. 진리를 실행하려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깨우침이 있으며, 진리를 실행하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징계가 있고 심지어 징벌이 임한다. 어떠한 사람이든지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의 이름의 연고로 인하여 그의 새 사역을 받아들인 각 사람에 대하여 책임을 질 것이다. 그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기꺼이 그의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은 그의 축복을 받으며, 그를 거역하고 그의 말씀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그의 징벌을 받는다. ……그러나 새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라면 다르다. 그들은 모두 성령의 흐름 밖에 있는 사람들이니, 그 무슨 성령의 징계거나 책망이라고는 아예 말할 나위도 없다. 이 사람들은 온종일 육체 속에서 살고 있고 두뇌 속에서 살고 있다. 그들이 행하는 것은 자기의 두뇌에 의하여 분석하고 연구해낸 도리이지, 성령의 새로운 사역 중의 요구가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과 협력한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전혀 하나님의 함께함이 없고, 더욱이 그 무슨 축복이나 보호라고는 말할 수도 없다. 그들의 언행은 다수가 모두 이전의 성령 역사 중의 요구를 지키는 것이고, 진리가 아니라 도리이다. 그러나 이런 도리와 규례로는 그들의 집합이 다만 종교이지 선민이 아니고 또는 하나님의 역사 대상이 아니라고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그들 가운데의 모든 사람들의 집합을 종교의 집대성이라고 칭할 수 있을 뿐 교회라고는 칭할 수 없다. 이 사실은 변할 수 없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실행≫에서 발췌

『무엇 때문에 교당에 있는 그 사람들이 실행하는 것을 낡았다고 말하는가? 바로 그들이 실행하는 것이 현재의 사역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은혜시대에 그들이 실행한 것은 옳기도 하였지만 시대의 전이와 사역의 변천에 따라 그들의 실행도 차츰차츰 시대에 뒤떨어졌고, 새로운 사역과 새로운 빛에 의하여 멀리 뒤떨어지게 되었다. 성령의 사역은 원래 기초에서 또 몇 단계나 심화되었는데, 그들은 여전히 원래 상태에 정류되어 원모양 그대로 있고 여전히 낡은 행실과 낡은 빛을 지키고 있다. 하나님의 사역은 3년이나 5년 내에도 아주 큰 변화가 있을 것인데, 더더구나 2천년 동안의 시간에는 더 큰 변화가 있지 않겠는가? 사람에게 새로운 빛이 없고 새로운 실행이 없는 것은 사람이 성령의 역사를 따르지 못한 것이고 사람의 실수이다. 본래 성령 역사가 있던 사람들이 현재에도 여전히 낡은 행실을 지킨다 하여 새 사역의 존재를 부인할 수는 없다. 성령의 사역은 언제나 앞으로 발전하고 있다. 무릇 성령의 흐름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점차적으로 심화되고 변화되어야지, 한 지경에만 정지되어 있지 말아야 한다. 오직 성령 사역을 인식하지 못한 그 사람들만이 원래 사역에 정지되어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오직 그 패역한 사람들만이 성령의 역사를 얻을 수 없다. 사람의 실행이 만일 성령의 새로운 역사를 따르지 못한다면, 사람의 실행은 꼭 현시의 사역과 어긋난 실행일 것이며, 이런 실행은 꼭 현시의 사역과도 서로 엇나갈 것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이와 같은 사람들은 전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없고 더욱이 최후에 하나님의 간증을 굳게 서는 사람으로 될 수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전체 경영 사역도 이런 한 무리 사람들 몸에서 끝마칠 수 없다. 이전에 여호와의 율법을 지킨 그 사람들, 이전에 십자가를 위하여 고통받은 그 사람들이 만일 마지막 때의 이 단계 사역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들이 한 모든 것은 다 헛수고이고 다 쓸데없는 것이다. ……사람이 만약 어느 정도에 정지되어 있다면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과 새로운 빛에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하나님의 경영 계획이 불변하다고는 증명할 수 없다. 성령의 흐름 밖에 있는 그 사람들이 늘 그들의 것이 옳다고 여기는데, 사실은 그들 몸에서의 하나님의 사역이 벌써 정지되어 그들 몸에는 성령 사역이 전혀 없다. 하나님의 사역은 벌써 다른 한 무리 사람들의 몸에 옮겨졌는데, 그는 이 사람들 몸에서 그의 새로운 사역을 이루려 한다. 종교 안에 있는 그 사람들이 그의 새 사역을 받아들일 수 없고 이전의 옛 사역만 지키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사람들을 저버리고 그의 새로운 역사를 그의 새 사역을 받아들이는 그 사람들 몸에서 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그의 새로운 사역에 협력하는 사람들이다. 오직 이렇게 해야만 그의 경영을 성취할 수 있다. 하나님의 경영은 줄곧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사람의 실행도 부단히 제고되며 하나님은 언제나 역사하고 있고 사람에게도 늘 필요가 있으므로, 양자가 모두 절정에 달하게 되었다. 하나님과 사람이 완전히 결합될 수 있는 이것이 바로 큰일을 이룩한 하나의 표현이고 전체 경영의 최종 결과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실행≫에서 발췌

사람의 교통 참고:

『참 도는 사람을 구원할 수 있고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인정받아 진정한 귀숙의 길에 들어서게 할 수 있습니다. 이야말로 참 도입니다. 만약 누가 스스로 참 도를 믿고 있다고 여기면서도 오히려 이 효과에 달하지 못하고 이 목적에 달하지 못한다면, 가히 말해서 그것은 거짓 도이지 참 도가 아닙니다. 일부 사람들이 말합니다. “무엇이 긍정적 사물이고 무엇이 부정적 사물인지 어떻게 분별하나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분별합니다. 무릇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 하나님이 사람에게 구비하라고 요구하신 것, 하나님이 사람에게 시키기 좋아하시는 것은 다 긍정적 사물입니다. 무릇 사람더러 저버리고 배반하라고 한 것과 무릇 하나님이 정죄한 것이라면 부정적 사물입니다.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두 방면의 사물을 가늠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진짜와 가짜를 검증하는 시금석이자 유일한 표준입니다. 어떤 도가 참 도이고 어떤 도가 거짓 도인지 어떻게 가늠합니까? 어떤 도가 당신에게 진정한 인생을 가져오고 어떤 도가 당신에게 광명을 보여주고 어떤 도가 당신을 사탄의 패괴와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고 하나님의 칭찬과 축복을 받게 할 수 있으면 그 도가 바로 참 도입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옳습니까? 하나님의 심판 형벌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왔습니까? 패괴된 인류가 구원에 이르는 데에 구비해야 할 모든 진리를 가져오고 인생의 정도를 가져와 우리로 하여금 인생의 광명을 보게 하였으며, 우리에게 하나님이 창세 이래 예정해놓으신 크나큰 구원의 은혜와 진정한 구원의 은혜를 가져와 우리로 하여금 사탄에게 패괴되고 사탄에게 속한 인류로부터 진실로 하나님의 정결함을 받고 진리를 구비하고 인성이 있는 진정한 인류로 되게 하였습니다. 이는 완전히 하나님의 심판 형벌에 의한 것이고 즉 하나님의 말세 역사가 이룬 효과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심판 형벌이 없다면, 우리는 진리를 얻을 수 없고 우리의 패괴도 해결될 수 없으며, 우리는 영원히 인생의 광명을 볼 수도 없고, 영원히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받은 모든 복은 다 하나님의 심판 형벌을 경력하고 순복한 것에 의하여 달한 효과입니다.

…………

어떤 사람들이 말합니다. “어! 만약 참 도라면 들어오는 사람이 왜 이리 적은가? 참 도라면 믿는 사람도 많아야 되지 않는가? 전 인류가 다 와서 믿어야 되지 않는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일을 꿰뚫어보지 못합니다. 온 인류가 어느 정도까지 패괴되어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갈수록 적어졌고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은 갈수록 많아졌습니다. 사람은 어떤 신앙을 받아들이든지 간에 무엇보다 먼저 이익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는데, 이러면 무릇 참 도를 믿는 사람은 확실히 적고 무릇 거짓 도를 믿고 은혜와 좋은 점이 있는 도를 믿는 사람은 확실히 많다는 것이 결정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당신은 이 문제의 실질을 꿰뚫어보게 됩니다. 우리가 믿는 도는 사람에게 병을 고쳐주지도 않고, 사람으로 하여금 떡으로 배부르게 하지도 않으며, 사람에게 은혜를 받게 하지도 않고, 귀신 들린 자로 하여금 고침받게 하지도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믿는 도에 별도로 한가지 더한다면━어떤 재난이 닥쳐도 죽지 않는다면,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와서 믿을 것입니다. 현재는 이런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무릇 전능한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사람이면, 너희들이 죽지 않는다는 것을 보증한다.”는 말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할 때 당신은 감히 함부로 말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죽지 않을 수 있나요?”라고 물으면, “그건 잘 몰라요.”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면 제가 그분을 믿어도 쓸데없지요.” 사람들이 또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뭘 얻을 수 있나요?”라고 물으면, “진리를 얻을 수 있지요.” “진리를 얻어서 뭐하나요?” “살아남을 수 있지요.” “누가 봤어요? 누가 보증할 수 있어요? 뭐가 진리를 얻는 건가요?” “모르겠는데요.” “저는 믿을 수 없어요.”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 적기 때문에,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간증하며 복음을 전할 때는 힘듭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인 후, 우리는 믿으면 믿을수록 참되고 믿으면 믿을수록 힘이 넘치는 것을 느끼는데,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이것은 진리를 깨닫고 달한 효과입니다. 진리를 깨달을수록 더욱 참 도이고 하나님의 역사임을 느끼게 되며, 진리를 깨달을수록 더욱 “야, 하나님이 이렇게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은 너무나 실제적이구나, 진리를 깨달으면 정말로 구원받을 수 있고, 정말로 성정 변화에 달할 수 있고, 정말로 진정한 인류가 될 수 있고, 정말로 정상 인성의 진정한 인생을 살아낼 수 있으니까, 이 도가 의의 있는 것이구나.” 그는 진리를 얻는 것은 이익을 얻는 것보다, 병이 고침받고 떡으로 배불리는 것보다 더 의의 있고 더 가치 있고 더 소중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몇 년 동안 믿은 사람에게 어떤 은혜를 주어도 그것을 소중하게 느끼지 않습니다. 그는 진리를 얻는 이것이 소중하다고 느낍니다. 이러면 참 도를 본 것입니다. 그럼 보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 중 밖으로 달아난 자가 있습니까? 설령 진리를 추구하지 않을지라도 도를 몇 년 동안 들어보면, 그가 물러나고 싶겠습니까? 아무도 물러나려 하지 않습니다. 왜 물러나려 하지 않습니까? 그는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 도이다. 내가 최대한 힘을 내고 본분을 잘하기만 하면, 아마 살아남게 할 것이고 죽지 않는 결말을 얻게 할 것이다. 죽지 않는 것이 너무나 소중하다.’ 지금은 사람들이 죽지 않음에 달하는 데에 도대체 어떤 표준이 있는지를 모르는데, 일단 이 죽지 않는다는 표준을 알게 된다면, 다 믿을 것이고 더욱 힘이 넘칠 것입니다.』

≪설교 교통 (6)ㆍ하나님 역사에 순복함에 있어서 진입해야 할 4가지 가장 기본적인 공과≫에서 발췌

『만약 온 종교계의 적대시함과 반대를 받지 않는다면 참 도가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무릇 참 도라면 다수 사람들의 반대, 심지어 세상의 반대까지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금방 나와서 전도하며 역사하실 때 온 유대교가 다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무릇 하나님이 새 사역을 하시기 시작할 때는 패괴된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이게 하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고 사람의 관념을 반격하고, 사람이 터득 능력이 없는 데다가 직접 영계를 꿰뚫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성령 역사가 아니라면 사람은 모두 참 도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역사가 종교계의 반대도 없고 세상의 반대와 적대시함도 없다면, 이 하나님 역사가 거짓임을 증명합니다. 인류가 무엇 때문에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까? 첫째, 사람은 육체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에 속합니다. 물질적인 것은 직접 영계를 꿰뚫을 수 없습니다. “직접 영계를 꿰뚫을 수 없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바로 당신이 영과 영계의 활동과 각종 영의 활동을 볼 수 없고 당신이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고 무엇을 말씀하시는지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영계에 있어서는 바로 소경입니다. 물질 세계에서 눈만 감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눈을 뜨면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물질 세계입니다. 사람 몸에 어떤 영이 와서 어떤 일을 하는지 당신은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와서 무엇을 하시고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당신은 볼 수 있습니까? 볼 수 없습니다. 가끔씩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인쇄된 것을 볼 수 있어도, 그 말씀을 하나님이 언제 말씀하시고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당신은 여전히 모릅니다. 음성을 들을 수 있어도 음성의 내원을 모르고, 하나님 말씀이 종이에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어도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사람은 직접 영계를 꿰뚫을 수 없고 하나님 말씀의 근원을 더듬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을 필요로 하고 성령의 역사를 필요로 해야만 효과에 달할 수 있습니다. 둘째, 인류가 너무 심히 패괴되어, 안에는 각종 사탄 독소와 각종 지식이 가득찼습니다. 사람이 각종 사탄의 철학과 지식으로써 모든 것을 가늠하면 영원토록 무엇이 진리인지 가늠할 수도 없습니다. 만약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이 없다면 사람은 진리를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패괴된 인류의 본능을 놓고 말하면 직접 영계를 꿰뚫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탄의 철학과 지식이 가득한 데다가 진리를 분별할 줄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참 도가 핍박받을 수밖에 없고 참 도가 사람에게 저버림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사탄의 철학과 지식을 쉽게 받아들입니까? 첫째,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고 사람의 육체 이익에 부합되며 사람의 육체에 유리합니다. 그가 여기기를, ‘내가 이런 지식을 가지면 내게 유리하고, 내가 이런 지식을 가지면 승진할 수 있고, 내가 이런 지식을 가지면 형통할 수 있고, 내가 이런 지식을 가지면 일을 성사시킬 수 있고, 내게 이런 지식이 있으면 사람들이 나를 우러러본다.’ 보십시오, 사람에게 유리하면 사람의 관념에 부합되는 것입니다. ……패악한 인류가 이 지경까지 패괴되어 그 자체가 직접 영계를 꿰뚫을 수도 없는데, 그러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가 오자 인류의 저버림과 반대와 정죄를 받았는데, 이것은 정상 현상이 아닙니까? 만약 하나님의 역사가 와서 세상과 인류의 정죄ㆍ반대를 받지 않는다면, 진리가 아님을 증명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다 사람의 관념에 부합된다면, 사람이 정죄할 리가 있겠습니까? 대적할 리가 있겠습니까?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복음전도에 관한 상면(上面)의 교통 설교≫에서 발췌

『성령 역사가 있는 교회야말로 하나님의 교회이고,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함이 있어야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성령 역사가 있는 교회는 하나님이 인정하시지만 성령 역사가 없는 교회는 하나님이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 선민은 이것을 꿰뚫어보아야 합니다.

…………

참된 교회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인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사람들의 집합입니다. 이래야 교회라고 칭할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예정 선택하시고 성령 역사가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야만이 교회입니다.』

≪총집 (2)ㆍ각지 교회에 나타난 혼란 문제를 어떻게 대하고 해결하는가≫에서 발췌

『교회는 바로 하나님이 예정 선택하신 참된 사람들로 구성된 것이고, 교회는 바로 진리를 좋아하고 진리를 추구하고 성령 역사가 있는 모든 사람들로 구성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한데 모여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교회 생활을 지내고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며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는데, 이야말로 교회입니다. 만약 한 무리 어중이떠중이들이 있고 모두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진리를 좋아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성령 역사가 없으며 종교 의식적으로 기도도 하고 하나님 말씀도 읽는 것이라면, 이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성령 역사가 없는 교회라면 교회가 아니라 종교 장소인데, 종교 의식을 행하는 사람들이지, 진실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

교회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교회이지 절대로 악인들의 교회가 아닙니다. 악인은 교회에 속하지 않습니다. 만약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진리를 조금도 실행하지 않는 한 무리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인다면, 이것은 교회입니까 아닙니까? 그러면 이것은 무엇입니까? 종교 장소이고 또는 오합지중이라고 합니다. 한 교회로서는 반드시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함께 조합되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하나님을 경배하고 본분을 하고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면서 성령 역사를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야말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한 교회를 가늠하는 데는 첫째로 이 무리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봐야 하고, 둘째로 그들에게 성령 역사가 있는가 없는가를 봐야 합니다. 교회에 성령 역사가 없으면 교회가 아니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함께 조합된 것이 아니면 교회가 아닙니다. 만약 한 교회에 진실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전혀 성령 역사가 없습니다. 그럼 어느 한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기 원하는데, 이런 교회를 고수하고 있다면 이 사람이 구원받겠습니까?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빨리 어중이떠중이들을 떠나 교회를 찾아야 합니다. 만약 이 교회에 서너댓 명의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30명 내지 50명의 사람들이 다 어중이떠중이들이라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는 이 서너댓 명의 사람이 함께 모여야 합니다. 이 서너댓 명의 사람이 함께 모여도 역시 교회인데, 인원수가 가장 적은 교회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순결합니다.』

≪설교 교통 (7)ㆍ최후 시기에 교회에 대한 진정한 함의를 깨닫는 것과 교회 사역의 5가지 원칙에 따라 사역하는 것은 매우 관건적이다≫에서 발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오히려 큰 교당을 숭배하고 종교 목사를 미신하는데, 결국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믿어도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실제에 진입하지 못하였습니다. 종교 도리와 종교 의식과 행실만 좀 얻었을 뿐 진정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생명 성정에 조금도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 종교 지도자들과 목사들이 한평생 하나님을 믿고 한평생 설교해도 진정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심지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없으며 여전히 당초의 바리새인들처럼 지위와 밥줄 때문에 극력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참 도를 정죄하며 하나님의 선민을 농락하고 통제하는 것도 이상할 것 없습니다. 그들이 겉으로 하나님의 양떼를 아주 소중히 여기고 잘 보살피는 체하는 까닭은 완전히 그들의 밥줄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마치 상점에서 고객을 왕으로 대하는 것이 이윤을 남기고 큰돈을 벌기 위한 것과 같습니다. 종교계의 모든 행위는 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표현이고 다 종교 의식이니, 조금의 진리 실제도 없고 성령 역사는 더욱 보이지 않습니다. 보다시피, 종교계에서 경배하는 것은 참 하나님이 아니라 상상 속의 막연한 하나님이며, 전하고 가르치는 것은 종교 도리와 성경의 글귀 지식이고 조금도 성령의 깨우침과 빛비춤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종교계는 아예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갈 수 없고 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로 이끌어들어갈 수 없으며 더욱이 사람을 진리 실제로 이끌어들어가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받게 할 수도 없습니다. 종교계의 지도자들과 목사들은 하나님 역사를 경력하는 중에 성령께 온전케 되어 양성해낸 것이 아니라 신학교를 졸업하고 증서를 취득해 종교계의 지도자와 목사로 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성령의 역사와 인증이 전혀 없고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인식이 조금도 없으며 입만 벌리면 신학 지식과 이론뿐이고 실제 경력을 털끝만치도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전혀 하나님께 쓰임받을 자격이 없는데, 어찌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신학교를 졸업했다고 오만 자대하게 행세하고 극력 성경 지식을 자랑하며 세상에 자기 혼자밖에 없는 것처럼 여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정죄와 혐오를 받고 성령 역사를 잃었는데, 이것은 조금도 의심할 바 없습니다. 종교계가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의 철천지원수로 될 수 있었는지, 정말 사람으로 하여금 깊이 반성케 합니다. 은혜시대에는 유대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이것은 무엇을 설명합니까? 말세 국도시대에는 종교계가 연합하여 극력 하나님의 말세 역사를 대적하고 논단하며, 말세에 말씀이 육신 된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저버릴 뿐만 아니라 각종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도성육신인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를 공격하고 훼방하고 모독하며, 예수님의 재림과 말세의 그리스도를 이미 십자가에 또다시 못 박았습니다. 이것은 종교계가 이미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는 사탄 세력으로 타락되었음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습니다. 종교계는 절대로 하나님이 주권 잡은 것이 아니고 더욱이 진리가 주권 잡은 것도 아니라 완전히 패괴된 인류가 주권 잡은 것이고 더욱이 적그리스도가 주권 잡은 것입니다.

사탄에게 속한 악마와 적그리스도가 주권 잡고 통제하는 이러한 종교 장소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그저 종교 도리만 깨달을 수밖에 없고 종교 의식과 규례를 지킬 줄만 알 뿐, 영원토록 진리를 깨달을 수 없고 영원토록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할 수 없으며 절대로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절대적입니다. 왜냐하면 종교 장소에는 전혀 성령 역사가 없고 하나님이 증오하고 혐오하고 정죄하고 저주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종교를 인정하신 적이 없고 더욱이 종교를 칭찬하신 적도 없습니다. 예수님 시대부터 종교계는 하나님께 정죄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으려면 반드시 성령 역사가 있는 곳을 찾아야 합니다. 성령 역사가 있는 곳이야말로 진정한 교회이고, 진정한 교회 안에 있어야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 역사의 발자취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방식입니다.』

≪총집 (1)ㆍ참으로 진리를 깨달으면 어떤 효과에 달할 수 있는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