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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반드시 하나님의 성육신 방면의 진리를 인식해야 한다

5 두 차례의 성육신으로 성육신의 의의를 완전케 하였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

『성육신의 의의는 평범한 정상 사람이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인성에서 신성의 사역을 하는 것으로 사탄을 패배시키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 된 것은 하나님의 영이 육신이 된 것인데, 바로 하나님이 육신이 된 것이다. 육신이 하는 사역은 바로 영이 하는 사역이다. 영이 하는 사역은 육신에 실제화되어 육신을 통해 발표된다. 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 외에는 아무도 성육신 하나님의 직분을 대신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오직 말씀으로 된 하나님 육신의 이 정상 인성만이 신성의 역사를 발표할 수 있고, 그를 제외한 사람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다. 만약 하나님이 첫 번째로 왔을 때, 29세 이전에 정상 인성이 없고, 태어나자마자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말할 줄 알자마자 하늘의 말을 하며, 태어나자마자 천하의 일을 통찰하고, 사람의 마음속 생각과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을 다 알아낸다면, 그런 사람은 정상인이라고 할 수 없고, 그런 육신은 육신이라고 할 수 없다. 그리스도가 그런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성육신된 의의와 실질은 없게 된다. 그에게 정상 인성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가 ‘말씀’이 ‘육신’ 된 것임을 증명하고, 그에게 정상인의 성장 과정이 있는 것은 그의 육신이 정상임을 더욱 증명한다. 게다가 그의 역사로 그가 ‘하나님의 말씀’이고, 또한 ‘하나님의 영’이 ‘육신’ 되었음을 충분히 실증할 수 있다. 사역의 필요로 하나님은 육신이 되었다. 다시 말해, 이번 사역은 반드시 육신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정상 인성에서 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 되고’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나는’ 전제이다. 이것은 두 차례 말씀이 육신 된 내막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일부러 사람에게 자신의 육신을 알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성육신 하나님의 육신과 사람의 육체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분별시키기 위한 것도 아니며, 사람에게 분별력을 훈련시키기 위한 것도 아니고, 일부러 성육신 하나님의 육신을 경배하게 하여 그것으로 크게 영광받으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런 것은 다 하나님이 성육신된 원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사람을 정죄하거나 일부러 사람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고, 혹은 일부러 사람을 괴롭히기 위한 것도 아니다. 이런 것은 다 하나님의 원뜻이 아니다. 그가 매번 성육신하는 것은 모두 불가피한 사역인데, 그의 더 큰 사역과 더 큰 경영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지, 사람이 상상한 것처럼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땅에 온 것은 모두 사역에 필요한 것이고, 모두 필수적인 것이며, 일부러 땅에서 돌아다니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인데, 그런 것이 아니라면 굳이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이렇게 큰 위험을 무릅쓰면서 이 사역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다 부득이한 것이고, 다 특별한 의의가 있는 것이다. 단지 사람에게 보여 주고 사람의 시야를 넓혀 주기 위한 것뿐이라면, 그는 절대로 쉽사리 인간 세상에 오지 않을 것이다. 그가 땅에 온 것은 그의 경영을 위한 것이고, 그의 더 큰 사역을 위한 것이고, 사람을 더 많이 얻기 위한 것이며, 와서 시대를 대표하고 와서 사탄을 패배시키는 것인데, 그것도 육신을 입고 사탄을 패배시키는 것이며, 더욱이 전 인류의 삶을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것은 다 그의 경영에 관련되고, 전 우주의 사역에 관련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육신된 것이 사람에게 그의 육신을 알게 하고 시야를 넓혀 주기 위한 것뿐이라면, 그는 왜 각국을 다니며 일주하지 않겠느냐? 그것은 아주 쉬운 일이 아니겠느냐?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적합한 정착지를 택하여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시작하였다. 이 육신만으로도 상당히 의의가 있는데, 그는 시대 전체를 대표하고, 또 시대 전체의 사역을 전개하며, 그는 옛 시대를 끝마치는 분이자 새 시대를 전개하는 분이다.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경영에 관련되는 큰일이고, 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하는 한 단계 사역의 의의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3)>에서 발췌

 

『사람이 하나님의 모든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은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사람이 간구하여 하늘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 아니다. 사람은 모두 혈기에 속하고, 하나님의 영을 볼 수도 없고 더욱이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에 사람이 접촉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이다. 그래야만 사람이 모든 도와 진리를 깨닫게 되고, 모든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된다. 두 번째 말씀으로 된 육신은 사람의 죄를 제거하기에 충분하고, 완전히 정결케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두 번째 말씀으로 된 육신은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모든 사역을 끝마치고, 하나님이 성육신된 의의를 온전케 하였다. 이로부터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사역이 전부 끝나게 되었다. 그는 두 번째로 성육신된 후에 또다시 세 번째로 성육신되는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모든 경영이 이미 끝났고, 마지막 때의 성육신이 이미 그가 택한 사람을 완전히 얻었고, 마지막 때의 사람이 다 각기 부류대로 되었기에, 그는 또다시 구원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고, 육신으로 되돌아와 역사하지도 않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육신의 심오한 비밀 (4)>에서 발췌

 

『첫 번째로 성육신된 하나님은 결코 성육신의 사역을 다 하지 않았다. 단지 육신이 해야 할 1단계 사역만 끝냈을 뿐이다. 그러므로 성육신의 사역을 다 하기 위해 하나님은 두 번째로 육신에 돌아와 육신의 모든 정상과 실제를 다 살아낸다. 즉, 하나님의 도를 가장 정상적이고 평범한 육신에서 나타내어 육신이 다 하지 못한 사역을 완성하는 것이다. 두 번째 성육신은 첫 번째 성육신의 실질과 같은 면이 있지만, 첫 번째 성육신보다 더 실제적이고 더 정상적이다. 그래서 두 번째 성육신이 받는 고난은 첫 번째 성육신이 받은 고난보다 훨씬 크다. 그러나 그런 고난은 육신의 직분으로 인해 있게 된 것이지 패괴된 사람이 받아야 할 고난과는 같지 않다. 그 고난도 역시 육신의 정상과 실제로 인해 있게 된 것이다. 가장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육신에서 직분을 하기 때문에 육신은 분명 많은 고난을 받게 된다. 육신이 정상적이고 실제적일수록 직분을 할 때 받는 고난은 더 크다. 하나님이 극히 평범한 육신에서 사역할 때에는 초자연적인 것이 전혀 없다. 육신이 정상인 데다가 또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그가 받는 고난은 초자연적인 육신이 받는 고난보다 훨씬 큰 것이다. 그 고난은 다 육신의 실제와 정상으로 인해 있게 된 것이다. 두 차례 성육신되어 직분을 하면서 받은 고난을 통해 성육신의 실질을 알 수 있다. 정상적인 육신일수록 사역을 담당하면서 받는 고난이 더 크고, 실제적인 육신이 사역을 담당할수록 사람의 관념이 더 깊어지고 감당해야 할 위험도 더 크다. 그러나 실제적인 육신일수록 정상 사람의 완전한 이지가 있고, 정상 사람의 필요가 있는 육신일수록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사역을 더 잘 담당할 수 있다. 예수는 육신으로 십자가에 못 박혔고, 육신으로 속죄제가 되었다. 즉, 정상 인성이 있는 육신으로 사탄을 패배시키고, 사람을 십자가에서 완전히 구해 냈다. 두 번째의 성육신은 완전한 육신으로 정복 사역을 하고, 완전한 육신으로 사탄을 패배시킨다. 오직 육신이 완전히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육신이라야 완전한 정복 사역을 할 수 있고, 힘 있는 증거를 해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정복하는 것은 육신에 있는 하나님의 실제와 정상으로 말미암아 효과에 도달하는 것이지 초자연적인 이적과 계시로 정복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에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이 하는 직분은 단지 말씀을 하는 것이다. 말씀으로 사람을 정복하고, 사람을 온전케 한다. 즉, 영이 육신에 실제화된 사역은 바로 말씀을 하는 것이고 육신의 본직 사역은 바로 말씀을 하는 것인데, 이것으로 사람을 완전히 정복하고, 드러내고, 온전케 하고, 도태시키는 목적을 이룬다. 그래서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사역은 정복 사역을 하는 과정에서 철저히 완전케 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첫 번째의 구속 사역은 단지 성육신이 하는 시작 사역이었고, 정복 사역을 하는 육신이 비로소 성육신의 사역을 전부 보충하게 되었다. 성별에서 한 분은 남성이고 한 분은 여성이므로 말씀이 육신 된 의의를 완전케 하였다.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관념이 조금도 없게 되었는데, 즉 하나님은 남성이 될 수도 있고, 여성이 될 수도 있으며, 성육신 하나님의 실질은 성별의 구분이 없다. 그는 남자도 만들었고, 여자도 만들었으며, 그에게 있어서는 성별의 구분이 없다. 이 단계 사역에서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지 않는 것은 말씀으로 효과에 도달하는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다. 다른 원인은 이번에 말씀이 육신 된 사역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사람을 정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번에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의 본능은 말씀하고 사람을 정복하는 것이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다. 그가 정상 인성에서 하는 사역은 표적을 나타내거나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보기에 두 번째 말씀으로 된 육신이 첫 번째의 육신보다 훨씬 정상적이고, 또 하나님이 성육신된 것은 틀림없지만 이번의 성육신은 예수의 성육신과 같지 않다고 여긴다. 비록 말씀이 육신 되었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예수에게 정상 인성이 있고 보통 인성이 있었지만, 그에게는 또 많은 표적과 기사가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의 성육신에게서는 사람의 육안으로 표적이나 기사는 볼 수 없다. 사람에게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내 준다든가, 바다 위를 걷는다든가, 40일 금식한다든가 … 그는 예수가 한 것과 같은 그런 사역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육신의 실질이 예수와 달라서가 아니라 그의 직분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사역을 허물거나 방해하지 않는다. 실제적인 말씀으로 정복하는 이상, 표적으로 사람을 굴복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이 단계는 성육신의 사역을 완전케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네가 본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은 아주 완전한 육신이어서 초자연적인 것은 조금도 없다. 다른 사람에게 질병이 있으면 그에게도 역시 질병이 있고, 다른 사람이 먹고 입으면 그도 역시 먹고 입으므로 아주 완전한 육신이다. 가령 이번에 말씀이 육신 되어 또 초자연적인 표적과 기사를 행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며 누구에게 죽으라고 했을 때 즉시 쓰러진다면 어떻게 정복 사역을 하겠는가? 또 어떻게 이방의 사역을 확장하겠는가? 사람에게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내 주는 것은 은혜시대의 사역이고 구속 사역의 시작 사역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십자가에서 구한 이상 더는 병 고치고 귀신 쫓는 사역은 하지 않는다. 만일 말세에 예수와 똑같은 ‘하나님’이 와서 사람에게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내 주며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다면, 그런 ‘하나님’은 비록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과 같을지라도, 사람들이 모두 쉽게 받아들일지라도, 그 실질은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 아니라 악령이 입은 육신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역사하는 원칙은 한 번 하고 나면 영원히 중복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번째 성육신이 하는 사역은 첫 번째 성육신이 한 사역과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말세에 하나님은 정복 사역을 평범하고 정상적인 육신에 실제화하였다. 그는 사람에게 병을 고쳐 주지 않고,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지도 않으며, 다만 육신에서 말씀하고 사람을 정복할 뿐이다. 이런 육신이야말로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이고, 이런 육신이라야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사역을 완전케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예수의 그 단계 역사에서는 왜 말씀이 육신 된 의의를 완전케 하지 않았다고 하겠는가? 바로 말씀이 전부 육신이 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한 사역은 단지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사역의 일부분이다. 그는 구속 사역만 했을 뿐, 사람을 완전히 얻는 사역은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세에 두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된 것이다. 이 단계 사역도 평범한 육신에서 하는 것이고, 극히 정상적인 사람이 하는 것인데, 그에게는 비범한 인성이 조금도 없다. 즉, 하나님이 완전한 사람으로 된 것인데, 하나님의 신분이 있는 사람이 역사하고, 완전한 사람이 역사하며, 완전한 육신이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조금도 비범하지 않은 육신이고, 하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표적을 나타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적도 행하지 않고, 더욱이 큰 회당에서 종교의 내막을 폭로하지도 않는다. 사람이 보기에, 두 번째 성육신이 하는 사역은 첫 번째 성육신이 한 사역과 완전히 다르며, 심지어 그들 둘은 같은 면이 조금도 없으므로 첫 번째에 행한 사역을 이번에는 전혀 볼 수 없다. 두 번째에 하는 사역은 첫 번째에 한 사역과 다르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근원이 하나가 아니라고 증명할 수는 없다. 그들의 근원이 하나인지의 여부는 육신이 하는 사역의 성질에 근거하여 결정하는 것이지 육신의 외형에 근거해 정하는 것이 아니다. 3단계 사역에서 모두 두 차례 말씀이 육신 되었고, 또한 두 차례 말씀이 육신 되어 한 사역은 모두 시대를 전개하고 새로운 사역을 하는 것이다. 두 차례의 성육신은 서로 보완하는 것이다. 사람의 육안으로는 두 육신이 하나의 근원임을 전혀 알아낼 수 없다. 물론, 이는 사람의 육안이나 사유로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실질은 본래부터 하나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한 사역의 근원은 본래 하나의 영이기 때문이다. 두 차례 성육신의 근원이 하나인지의 여부는 육신의 출생 연대나 출생지 또는 육신의 기타 조건에 근거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육신이 발표한 신성의 사역에 근거해 결정하는 것이다. 두 번째 성육신의 사역에서는 예수가 한 사역을 조금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매 차례 역사하는 것은 순서에 따라 규정대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따로 길을 개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말씀으로 된 육신은 사람 마음속에 있는 첫 번째 육신의 인상을 깊게 하거나 확고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 마음속에 있는 첫 번째 육신의 형상을 보충하고 완전(원문: 完善)하게 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을 깊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사람 마음속에 있는 모든 규례를 타파하기 위한 것이고, 사람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그릇된 형상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하나님 자신이 한 어느 단계 사역만으로도 하나님에 대해 완전하게 알 수 없는데, 일부분만 인식할 수 있을 뿐 완전하지는 않다. 비록 그는 자신의 모든 성품을 발표하였지만 사람의 터득 능력이 유한하여 그에 대한 사람의 인식은 여전히 완전하지 못하다. 사람의 말로는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다 밝히 말할 수 없는데, 하물며 한 단계 역사만으로 어찌 하나님을 다 밝히 말할 수 있겠는가? 육신의 사역은 정상 인성에 가려져 있기에 사람은 다만 그의 신성의 발표에서 그를 알 수 있을 뿐, 그의 육신의 외형에서는 그를 알 수 없다. 그는 육신으로 와서 서로 다른 역사를 통해 사람에게 그의 역사가 단계마다 모두 같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게 한다. 그래야만 육신에서 하는 그의 사역을 전면적으로 인식할 수 있어 한 범위 내에 규정하지 않게 된다. 비록 두 차례의 성육신이 한 사역은 서로 같지 않지만, 육신의 실질은 같고 사역의 근원은 같다. 다만 두 차례의 성육신은 서로 다른 두 단계의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일 뿐이고, 게다가 두 시대에 나타났을 뿐이다. 어쨌든,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의 실질은 같고 그들의 근원은 같다. 이것은 그 어떤 사람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실질>에서 발췌

 

『예수가 한 단계 사역을 한 것은 단지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신다.”라는 실질을 응하게 한 것으로, 하나님의 진리가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의 영이 육신과 함께하므로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말씀으로 된 육신이 하나님의 영과 함께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말씀이 육신 된 예수가 하나님의 첫 번째 성육신임을 더욱 증명할 수 있다. 이번 단계 역사는 바로 “말씀이 육신 되었다”라는 이 말에 내포된 뜻을 응하게 하였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에 내포된 뜻을 더욱 깊게 하였으며, 또한 너에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이 말씀까지도 확신하게 한다. 다시 말해, 창세부터 하나님께 말씀이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하였으니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시대에는 그의 말씀의 위력과 권병(역주: 권세)을 더욱더 나타내어 사람에게 그의 모든 도를 보게 하는데, 곧 그의 모든 말씀을 듣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 시대에 하는 사역이다. …이것은 두 번째 성육신의 사역인데, 마지막 한 번의 성육신으로 말씀이 육신 된 의의를 완전케 하고,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모든 사역을 전부 다 철저히 하고 발표하여 하나님이 육신에 있는 시대를 끝마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실행 (4)>에서 발췌

 

『육신의 하나님은 이미 그 자신의 전체 경영 사역을 90% 완성하였다. 이 육신은 그의 모든 사역을 더 좋은 발단으로 이끌어 들어갔고, 이 육신은 그의 모든 사역을 다 총결 짓고 다 공포하였으며, 게다가 마지막으로 철저히 보완하기까지 하였다. 그리하여 다시는 ‘성육신 하나님’이 제4단계의 사역을 할 리가 없고, 다시는 하나님이 세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되는 이 기묘한 사역이 있을 리도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하나님의 말씀 한 편 전체 발췌)

두 차례의 성육신으로성육신의 의의를 완전케 하였다

하나님이 하는 각 단계 사역에는 다 실제적인 의의가 있다. 당시에 예수는 남성으로 왔고, 이번에는 여성으로 왔다. 여기에서 너는 하나님이 남자를 만들고 여자를 만든 것은 모두 그의 사역을 위한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는 성별의 구분이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영은 임의로 육신을 입을 수 있는데, 그 육신은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다. 성별이 남자든 여자든 일단 말씀으로 된 그의 육신이기만 하면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다. 가령 예수가 여성의 신분으로 나타났다면, 다시 말해 당시에 남자아이가 아닌 여자아이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그 단계의 사역을 완성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면, 지금 이 단계의 사역은 남성으로 바꾸어 해야 하는데, 여전히 사역을 완성할 수 있다. 어느 단계에 한 것이든 다 의의가 있고, 두 단계 사역은 중복되지도 않고 모순되지도 않는다. 당시에 예수가 역사할 때 독생자라고 칭했는데, ‘자(子)’라면 남성을 말한다. 이 단계에서는 왜 독생자라고 하지 않는가? 그것은 사역의 필요에 따라 예수와 다른 성별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에게는 성별의 구분이 없다. 그는 하고 싶은 대로 한다. 그는 사역을 할 때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고 아주 자유롭게 한다. 하지만 어느 단계든 다 실제적인 의의가 있다. 하나님은 두 번 성육신하였는데, 말세가 마지막 한 번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행사를 나타내려고 온 것이다. 가령 이 단계에서 말씀이 육신 되어 친히 역사하여 사람에게 직접 보게 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관념으로 영원히 하나님은 오직 남성이지 여성은 아니라고 여길 것이다. 그전에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은 남성일 수밖에 없고, 여성은 하나님으로 칭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사람은 다 남자를 여자의 권병(역주: 권세)으로 여겨 남자만이 권병을 담당해야지 여자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였고, 또한 남자를 여자의 머리라고 하면서 여자는 남자에게 순복해야지 남자를 넘어서면 안 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전에 남자를 여자의 머리라고 한 것은 뱀에게 유혹된 아담과 하와를 놓고 말한 것이지, 여호와가 태초에 만든 남자와 여자를 놓고 말한 것이 아니다. 물론 여자는 반드시 자신의 남편에게 순복해야 하고 자신의 남편을 사랑해야 하며, 남편은 반드시 식구를 먹여 살릴 줄 알아야 했다. 이것은 인류가 땅에서 생활할 때 반드시 준수해야 할 여호와가 정해 준 율례와 법도이다. 여호와는 여자에게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였다. 이렇게 말씀한 것은 다만 인류(즉, 남자와 여자)가 여호와의 권세 아래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인류가 질서 정연하게 생활하며, 일상적인 규칙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남자와 여자가 각각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두 적당히 규정하였다. 이것은 땅에서 생활하는 모든 피조물에게 말씀한 것일 뿐, 하나님의 성육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나님이 어찌 피조물과 같을 수 있겠는가? 그가 말씀한 것은 단지 피조된 인류에게 한 것으로, 피조된 인류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남자와 여자에게 규정해 준 것이다. 여호와는 태초에 인류를 남성과 여성, 두 부류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그의 성육신도 남성과 여성에 따라 구분하였다. 그는 아담과 하와에게 한 말씀에 근거하여 자신의 사역을 정한 것이 아니다. 그가 두 차례 성육신한 것은 완전히 태초에 그가 인류를 만들 때의 생각에 근거해 정한 것이다. 바로 패괴되지 않은 남성과 여성을 근거로 그의 두 차례 성육신의 사역을 완성하는 것이다. 사람이 만약 여호와가 당시에 ‘뱀에게 유혹된 하와와 아담’에게 한 말씀을 하나님이 성육신한 사역에 적용한다면 예수도 당연히 ‘연모해야 할 아내를 연모’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을 여전히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다면 그가 자신의 사역을 완성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여성으로 성육신한 것이 잘못된 것이라면 하나님이 여자를 만든 것도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여성으로 성육신한 것을 사람이 여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여긴다면, 예수는 아내를 얻지도 않았고 자기 아내를 연모하는 일도 없었는데, 사람의 말대로라면 예수와 오늘의 성육신은 마찬가지로 잘못이 아닌가? 네가 여호와가 하와에게 한 말씀으로 오늘 하나님이 성육신한 이 사실을 판단한 이상, 너는 여호와가 아담에게 한 말씀으로 은혜시대에 성육신한 주 예수를 판단해야 한다. 이것은 모두 같은 일이 아닌가? 네가 주 예수를 뱀에게 유혹되지 않은 남성으로 판단한 이상, 오늘 성육신한 이 사실을 뱀에게 유혹된 여성을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불공정한 것이다! 네가 이렇게 판단한다면, 너에게 이지가 없음을 증명한다. 여호와가 두 차례 말씀으로 된 육신의 성별은 뱀에게 유혹되지 않은 남성과 여성에 연결되는 것이고, 뱀에게 유혹되지 않은 남성과 여성에 따라 두 차례로 성육신한 것이다. 너는 예수의 남성을 뱀에게 유혹된 후의 아담의 남성으로 여기지 말라. 예수와 아담은 성질이 다른 두 남성으로, 전혀 관련이 없다. 설마 예수가 남성이라고 하여 모든 여자의 머리이고 모든 남자의 머리는 아니라고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는 (남자와 여자를 포함한) 모든 유대인의 왕이 아닌가? 그는 하나님 자신이고, 여자의 머리일 뿐만 아니라 남자의 머리이기도 하며, 모든 피조물의 주님이자 모든 피조물의 머리인데, 네가 어찌 예수의 남성을 여자의 머리의 상징이라고만 정하겠는가? 이것은 모독이 아닌가? 예수는 패괴되지 않은 남성이다. 그는 하나님이고 그리스도이고 주인데, 그가 어찌 패괴된 후의 아담의 남성일 수 있겠는가? 예수는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인데, 네가 어찌 그를 아담의 남성을 갖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하나님의 사역이 다 잘못된 것이 아닌가? 여호와가 유혹된 아담의 남성을 예수 안에 더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의 성육신은 예수와 다른 성별이면서도 성질이 같은 성육신의 다른 한 차례 역사가 아닌가? 네가 또 여자가 먼저 뱀의 유혹을 받았기에 하나님 성육신은 여성일 수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가? 네가 또 여자는 가장 더러운 존재이고, 인류가 패괴된 기원이어서 하나님은 여성으로 성육신할 수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네가 또 감히 “여자는 영원히 남자에게 순복해야 하고, 영원히 하나님을 나타낼 수 없고, 직접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라고 할 수 있겠는가? 네가 이전에는 깨닫지 못하였지만 지금에 와서까지 하나님의 사역을, 특히 하나님의 성육신을 모독할 수 있겠는가? 네가 꿰뚫어 보지 못하였다면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겠다. 너의 무지몽매함이 드러나지 않고 너의 그 추한 몰골이 드러나지 않도록 말이다. 너는 네가 뭐든 다 안다고 여기지 말라. 내가 너에게 알려 주겠다. 지금 네가 본 것과 체험한 것으로는 아직 내 경영 계획의 천분의 일도 깨닫지 못하였다. 그런데 네가 거만할 것이 뭐가 있는가? 너에게 조금밖에 없는 그 재능과 인식은 너무나 부족하여 예수의 역사에 1초도 이용할 수 없다! 너의 체험이 고작 얼마나 되는가? 네가 본 것에다 네가 평생 들은 것과 너 자신의 상상을 합쳐도 내가 잠깐 동안 한 사역보다 적다! 그러므로 너는 트집 잡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네가 아무리 교만할지라도 개미보다 못한 피조물에 불과하다! 네 배 속에 있는 모든 것은 개미 배 속에 든 것보다도 많지 않다! 너는 자신에게 체험이 많고 관록이 있다고 하여 손을 휘두르며 큰소리칠 수 있다고 여기지 말라. 너에게 체험이 많고 관록이 있게 된 것은 내가 한 말 때문이 아닌가? 너는 너 자신이 부지런히 일해 바꿔 온 것이라고 여기는가? 오늘 내가 성육신하여 너에게 보여 주었기에 그렇게 많은 풍부한 구상이 있게 되었고, 그에 따라 관념이 가득하게 된 것이다. 만일 내가 성육신하지 않았다면, 너의 재능이 출중할지라도 그렇게 많은 구상이 없었을 것이다. 너의 관념은 바로 여기에서 온 것이 아닌가? 예수가 처음 성육신하지 않았다면, 네가 성육신에 대한 일을 알기나 하겠는가? 너에게 첫 번째 성육신을 알게 해 주었더니, 감히 방자하게 두 번째 성육신을 가늠하는 것이 아닌가? 너는 순복하고 따르는 사람이 되지 않고 또 무엇을 연구하는가? 네가 이 흐름에 들어와 성육신한 하나님 앞에 왔는데, 너로 연구하게 하겠는가? 네가 너의 가족사를 연구하는 것은 괜찮지만 하나님의 ‘가족사’를 연구한다면, 오늘의 하나님이 너로 그렇게 연구하게 하겠는가? 너는 눈먼 것이 아닌가? 너는 스스로 수치를 자초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예수의 그 단계 사역만 하고 말세에 이 단계를 보충하여 완전하게 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관념으로 영원히 오직 예수만이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여긴다. 즉, 하나님은 아들이 하나뿐이기에 나중에 또 다른 이름으로 오면 하나님의 독생자가 아니고, 더욱이 하나님 자신도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은 관념으로 속죄제가 되는 분이라면 하나님의 독생자이고, 하나님을 위해 정권을 담당하는 분, 온 인류를 구속하는 분이라면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생각한다. 또 어떤 사람은 남성으로 오기만 하면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할 수 있다고 여긴다. 즉, 하나님을 대표한다고 여긴다. 심지어 또 어떤 사람은 예수를 여호와의 아들, 그의 독생자라고 한다. 이것은 사람의 크나큰 관념이 아닌가? 마지막 시대에 이 단계 사역을 하러 오지 않는다면 온 인류는 하나님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 남자는 스스로 여자보다 높다고 여기고, 여자는 영원히 머리도 들지 못하게 되는데, 그때가 되면 여성은 아무도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항상 하나님을 남자라고 여기고, 또한 하나님이 항상 여자를 혐오하기에 여자를 구원하지도 않는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여호와가 만든, 또 마찬가지로 패괴된 모든 여자는 영원히 구원받을 기회가 없지 않겠는가? 그러면 여호와가 여자, 즉 하와를 만든 것도 역시 의의 없는 일이 되지 않겠는가? 그럼 여자는 영원히 멸망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말세의 이 단계 사역은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여자만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전 인류를 위한 사역이지 여자만 위한 것이 아니다. 만일 사람이 이렇게 여긴다면 더욱 어리석은 것이다!

지금 하는 사역은 은혜시대의 사역이 앞으로 진행되어 온 것이고, 또한 전체 6천년 경영 계획 사역이 앞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 비록 은혜시대는 끝났지만 하나님의 사역은 더욱 앞으로 나아가며 깊어졌다. 왜 이 단계 사역을 은혜시대와 율법시대의 기초에서 하는 것이라고 거듭 말하겠는가? 말하자면, 오늘의 사역은 은혜시대 사역의 계속이자 율법시대 사역보다 높아진 것이다. 3단계 사역은 모두 밀접히 연결되어 고리에 고리가 맞물려 있는 것이다. 왜 또 이 단계 사역을 예수의 그 단계 사역의 기초에서 한 것이라고 말하겠는가? 예수의 그 단계 역사의 기초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 단계에 또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고, 또 앞 단계의 구속 사역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의의가 없다. 그러므로 사역이 철저히 끝난 것이 아니라 시대가 앞으로 나아간 것이고, 이전의 사역보다 더 높아진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단계 사역은 율법시대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자 예수가 한 사역의 반석 위에 세워진 것으로, 한 단계 한 단계 세워진 것이지 이 단계 사역이 따로 시작된 것은 아니다. 3단계 사역을 종합해야 6천년 경영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단계 사역은 은혜시대 사역의 기초에서 하는 것이다. 이 두 단계 사역이 관계가 없다면, 이 단계에 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는가? 왜 사람의 죄를 담당하지 않는가? 성령으로 잉태되지도 않고,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의 죄를 담당하지도 않고 직접 사람을 형벌하는데, 만일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 사람을 형벌하는 사역을 하거나 또 현재에 와서 성령으로 잉태되지도 않는다면 사람을 형벌할 자격이 없겠지만, 나는 예수와 하나이기 때문에 직접 사람을 형벌하고 심판하는 것이다. 이 단계 사역은 모두 이전 단계 사역의 기초에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역이어야 사람을 조금씩 구원할 수 있다. 예수와 나는 하나의 영에서 왔다. 비록 육신은 관계가 없지만 영은 하나이다. 역사한 내용이 다르고 담당한 사역도 다르지만 실질은 같다. 육신이 취한 형상이 다른 것은 시대가 같지 않음으로 인해, 사역의 필요로 인해 다른 것이다. 직분이 다르므로 가져온 사역도 다르고 사람에게 나타낸 성품도 다르다. 그러므로 사람이 오늘 본 것과 터득한 것은 이전과 다른데, 이것은 모두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있게 된 것이다. 비록 그들 육신의 성별은 전혀 다르고 형상도 다르며, 같은 가문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더욱이 동일한 시기에 태어난 것도 아니지만, 그들의 영은 하나이다. 비록 그들의 육신은 어떤 혈통 관계나 육체 관계도 없지만, 이런 것으로는 그들이 서로 다른 두 시기의 하나님의 성육신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들은 전혀 같은 혈통이 아니고 인류의 공통된 언어도 없다(한 사람은 유대어를 하는 남성이고, 한 사람은 중국어만 하는 여성이다). 이런 것으로 인해 그들은 서로 다른 국가에 분포되어 서로 다른 시기에 각자가 해야 할 사역을 하는 것이다. 비록 그들은 하나의 영, 즉 같은 실질을 갖고 있을지라도 그들 육신의 외형은 비슷한 데가 전혀 없으며, 단지 같은 인성이 있을 뿐, 육신의 생김새나 출생은 전혀 다르다. 이런 것은 각자의 사역에 영향을 주지 않고, 사람이 그들을 인식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쨌든 하나의 영이기에 아무도 그들을 떼어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혈연관계는 없지만, 그들의 영이 그들의 온 몸과 마음을 지배하여 서로 다른 시기에 각기 다른 사역을 담당하게 하였으며, 게다가 그들의 육신도 전혀 같은 혈통이 아니다. 여호와의 영이 예수의 영의 아버지가 아니듯이, 또한 예수의 영이 전혀 여호와의 영의 아들이 아니듯이, 그들은 하나의 영이다. 마치 오늘날 성육신한 하나님과 예수가 혈통은 서로 연결되지 않았으나 그들은 본래 하나인 것과 같다. 이것은 바로 그들의 영이 원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는 긍휼, 자비의 사역과 공의로운 심판의 사역도 하고, 사람을 형벌하는 사역과 저주하는 사역도 하며, 최종에는 또 세상을 멸하고 악인을 징벌하는 사역도 한다. 이것은 모두 그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하나님의 전능이 아닌가? 그는 사람에게 율법을 반포할 뿐만 아니라 계명을 반포하였고, 또한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을 인도하여 땅에서 생활하게 하고 성전을 건축하고 제단을 쌓게 하였으며, 모든 이스라엘 사람을 다 그의 권세 아래에 장악하였다. 그의 권병으로 말미암아 그는 이스라엘 사람과 땅에서 2천 년 동안 생활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감히 거역하지 못하였으며, 모두 여호와를 경외하였고 계명을 준수하였다. 그것은 모두 그의 권병과 그의 전능으로 인해 한 사역이다. 은혜시대에 예수는 타락된 전 인류(이스라엘 사람만이 아님)를 구속하러 왔다. 그가 사람들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었으므로 사람들이 본 은혜시대의 예수는 자비가 충만하였고 항상 사람을 사랑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이 죄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예수는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었는데, 십자가에 달리면서까지 사람을 죄에서 철저히 구속하였다. 그 시기에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즉, 속죄제가 된 것인데, 사람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의 죄를 영원히 용서해 준 것이다. 그에게는 긍휼과 자비가 있었고, 또한 인내와 사랑도 있었다. 예수를 따랐던 은혜시대의 사람은 모두 매사에 인내와 사랑이 있었고, 덮어놓고 고난을 받았으며, 다른 사람이 때리고 욕하고 돌로 쳐도 반항하지 않았다. 마지막의 이 단계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마치 예수와 여호와의 영은 비록 하나이지만 하는 사역이 똑같지 않은 것과 같다. 여호와의 역사는 시대를 끝마치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이끄는 것이고 인류가 땅에서 사는 삶을 전개하는 것이지만, 오늘날은 이방 중에서 깊이 패괴된 인류를 정복하는 것이다. 또한 지금은 중국 족속만 이끄는 것이 아니라 전 우주를 이끄는 것이다. 네가 보기엔 지금 중국에서만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국외에서도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왜 외국 사람들이 계속 참 도를 찾는가? 그것은 영이 역사하기 시작하였고, 또한 지금 말씀하는 것은 전 우주의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미 공사의 절반을 진행한 것이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영은 이처럼 큰 공사를 하였는데, 각기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사역을 하였으며, 또한 서로 다른 국가에서 역사하였다. 각 시대마다 사람은 그의 서로 다른 성품을 보게 되는데, 물론 이것은 모두 그가 한 서로 다른 사역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다. 그는 자비와 긍휼이 충만한 하나님이며, 사람의 속죄제이고 사람의 목자이다. 하지만 그는 또 사람에게 심판이고, 형벌이고, 저주이다. 그는 사람을 땅에서 2천 년 동안 생활하도록 인도하였고, 또 패괴된 인류를 죄에서 구속해 내었다. 오늘에 와서 그는 다시 자신을 알지도 못하는 인류를 그의 권세 아래로 정복하여 모두 그에게 완전히 순복하게 한다. 최종에 전 우주의 사람 안에 있는 부정한 것들과 불의한 것들을 다 남김없이 불살라 사람에게 그는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고, 지혜롭고 기묘한 하나님이며, 또 거룩한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더욱이 사람을 심판하는 하나님임을 보게 한다. 그는 전 인류의 악한 자에게는 불사름, 심판, 징벌이고, 온전케 되는 사람에게는 환난, 연단, 시련, 그리고 위안, 돌봄, 말씀 공급, 훈계, 책망이며, 도태되는 사람에게는 징벌이자 보응이다. 네가 말해 보아라. 하나님은 전능하지 않은가? 그는 어떤 사역이든 다 할 수 있다. 너의 상상대로 그가 단지 십자가에 못 박힐 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하나님을 너무나 낮게 보았다!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온 인류를 구속하기만 하면 일이 끝난 것인가? 그러면 네가 그를 따라 천당에 가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생명수를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 그렇게 간단하겠는가? 말해 보아라. 네가 한 게 무엇이 있는가? 너에게 예수의 생명이 있는가? 너는 확실히 그에게 구속되었지만 십자가에 못 박힌 일은 예수 자신이 한 사역이다. 너는 사람으로서 어떤 책임을 다하였는가? 네가 오직 겉면의 경건만 있고 오히려 그의 도를 깨닫지 못했다면, 그를 선명하게 나타내는 것이겠는가? 네가 하나님의 생명을 얻지 못하고 그의 공의로운 성품의 전부를 보지 못했다면, 너는 생명이 있는 사람이라 불릴 수 없고 천국으로 들어갈 자격이 없다.

하나님은 영일 뿐만 아니라 육신이 될 수도 있고, 또한 영광의 몸이기도 하다. 비록 너희는 예수를 보지 못하였지만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 즉 유대인은 보았다. 그가 처음에는 육신이었지만, 십자가에 못 박힌 후에는 영광의 몸이 되었다. 그는 만유를 포함한 영이므로 곳곳에서 역사한다. 그는 여호와일 수도 있고, 예수일 수도 있고, 또 메시아일 수도 있으며, 최종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될 수도 있다. 그는 공의, 심판, 형벌이고, 저주, 진노이며, 또한 긍휼, 자비이다. 그가 한 사역이면 그를 대표할 수 있다. 네가 말해 보아라. 오늘날,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하나님인가? 너는 명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너는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하나님인지, 저도 명확하게 말할 수 없어요.”라고 할 수밖에 없다. 너는 하나님이 구속 사역을 하였다고 하여 하나님을 영원히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라고 규정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을 단지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라고 감히 단정할 수 있는가? 그가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라면 왜 말세에 또 시대를 끝마치려고 하겠는가? 왜 또 그렇게 많은 재앙을 내리려고 하겠는가? 너의 생각대로, 그가 사람을 끝까지, 또 마지막 시대까지 긍휼히 여기고 사랑한다면, 왜 또 하늘로부터 재앙을 내리려고 하겠는가? 그가 사람을 자기 몸같이, 또 자신의 독생자같이 사랑한다면, 왜 하늘로부터 온역을 내리고 우박을 내리려고 하겠는가? 왜 사람에게 기근과 온역이 닥치게 하는가? 왜 이런 재난과 화가 닥치게 하겠는가?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하나님인지, 너희는 아무도 섣불리 말하지 못하고, 또한 아무도 명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너는 그가 확실히 영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너는 그가 바로 예수의 육신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너는 그가 바로 영원히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는 하나님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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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도(道):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목표가 있는 길,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진리를 가리킴.

②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

③이지(理智): 옳고 그름이나 이해관계를 분별하고 자기 행위를 자제하는 능력.

④선입견을 가지게 된다: 직역하면 “어두운 그림자를 한층 드리우게 된다”.

이전 말씀:패괴된 인류는 말씀이 ‘육신’ 된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하나님 말씀 한 편 전체 발췌)

다음 말씀: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을 어떻게 분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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