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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반드시 하나님의 성육신 방면의 진리를 인식해야 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

『첫 번째 성육신은 죄에서 사람을 속량했다. 예수의 육신으로 사람을 속량해 온 것이다. 즉, 사람을 십자가에서 구해 낸 것이다. 하지만 사람 안에는 사탄의 패괴 성품이 계속 존재했다. 두 번째 성육신은 더 이상 속죄 제물이 되지 않고, 죄에서 속량받은 사람들을 철저히 구원한다.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이 죄에서 벗어나 완전히 정결케 되고, 성품이 변화됨으로써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한다. 그래야만 사람이 완전히 성결해지는 것이다. 율법시대가 끝나고 은혜시대가 시작되면서 하나님은 구원 사역을 시작했다. 말세에 하나님은 인류의 패역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사역을 하여 인류를 완전히 얻고 정결케 한 뒤에야 구원 사역을 끝내고 안식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3단계 사역 중 두 차례만 성육신으로 친히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한다. 3단계 사역 중 한 단계는 사람의 생활을 이끌어 주는 사역이고, 나머지 두 단계는 구원하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해야만 사람과 함께 생활할 수 있고 인간 세상의 고통을 체험할 수 있으며 정상적인 육신으로 살 수 있다. 그래야만 창조된 사람에게 필요한 실제적인 도를 공급할 수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인해 온전히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이지 사람이 하늘에 간구하여 직접 얻은 것이 아니다. 사람은 모두 육에 속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을 볼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의 영에 접근할 수 없다. 그러기에 사람은 하나님이 입은 육신밖에는 접할 수 없다. 이 육신을 통해야만 사람은 모든 진리와 도를 깨닫고 모든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두 번째 성육신은 사람의 죄를 충분히 벗겨 버릴 수 있고 사람을 완전히 정결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두 번째 성육신으로 하나님이 육신으로 하는 모든 사역을 끝내고 하나님이 성육신한 의의를 완전케 하였다. 이로써 하나님이 육신으로 하는 사역이 전부 끝나게 되었다. 그는 두 번째의 성육신 후에 또다시 세 번째로 성육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의 모든 경영이 끝났으며, 말세의 성육신을 통해 이미 택한 사람들을 완전히 얻었고, 마지막 때의 사람들이 모두 각기 부류대로 나뉘었기 때문이다. 그는 더 이상 구원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고, 육신으로 되돌아와 사역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말씀ㆍ성육신의 비밀 4> 중에서

『예수가 사역할 때, 사람들은 예수에 대해 막연하고 모호하게만 알고 있었다. 줄곧 그를 다윗의 자손으로 여기고, 대선지자이자 사람의 죄를 속량하는 인자한 주님이라고 했다. 어떤 이들은 믿음으로 그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나았고, 소경도 앞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죽은 자도 부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 안에 깊이 뿌리박힌 사탄의 패괴 성품을 발견하지 못했고, 그것을 어떻게 벗어 버려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사람은 많은 은혜를 받았다. 육체의 평안과 즐거움, 한 사람이 주를 믿으면 온 가족이 복을 받고, 병이 낫게 되는 것과 같은 많은 은혜를 받은 것이다. 그 외에도 선행을 하고 경건한 겉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신자라고 불릴 자격이 있고 그런 신자만이 죽어서 하늘나라에 갈 수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구원을 얻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생전에 생명의 도를 전혀 알지 못했고, 그저 죄를 짓고 자복하기만을 반복할 뿐 성품이 변화되는 길은 없었다. 은혜시대의 사람들은 그런 상태였다. 사람이 완전히 구원을 얻었느냐?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그 단계 사역이 끝난 후에 또 심판과 형벌의 사역이 있게 되었다. 이 단계에는 말씀을 통해 사람을 정결케 하고 사람에게 실행할 길을 준다. 이 단계에서도 귀신을 쫓아낸다면 아무런 성과도, 의미도 없을 것이다. 사람이 죄성을 벗어 버리지 못하고 그저 죄 사함을 받은 기초에만 머물러 있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속죄 제물로 인해 이미 죄 사함을 받았다. 십자가 사역이 끝났고 하나님이 사탄을 이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 안에는 패괴 성품이 아직 존재하며 사람이 여전히 죄를 짓고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류를 얻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번 사역은 말씀으로 사람의 패괴 성품을 들추어내어 적합한 길을 따라 실행하게 하는 것이다. 이 단계 사역은 이전 단계의 사역보다 더 큰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성과도 더 크다. 지금은 말씀으로 직접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해 사람의 성품을 완전히 새롭게 하는 더 철저한 사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성육신으로 하나님이 성육신한 의의를 완전케 하였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경륜을 확실히 완성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말씀ㆍ성육신의 비밀 4> 중에서

『첫 번째로 성육신한 하나님은 성육신의 사역을 다 끝내지 못했다. 그는 육신이 해야 할 첫 단계의 사역만 마쳤을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육신의 사역을 끝내기 위해 다시 한번 육신으로 돌아와서 육신의 모든 정상적인 모습과 실제를 살아 냈다. 즉, 하나님의 도를 가장 정상적이고 평범한 육신으로 나타냄으로써 육신으로 끝내지 못한 사역을 완성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두 번째로 입은 육신은 첫 번째의 육신과 본질 면에서 같지만, 더 실제적이고 정상적이다. 이로 인해 두 번째의 성육신이 받아야 할 고난은 첫 번째 때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고난은 육신의 직분으로 인해 생긴 것이지, 패괴된 인간이 받아야 할 고난과는 다르다. 또한, 그 고난은 육신이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것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가장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육신으로 직분을 이행해야 하기에 그 육신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 육신이 정상적이고 실제적일수록 직분을 이행할 때 겪는 고난은 더 커진다. 하나님의 사역은 지극히 평범한 육신에서 발현되므로 초자연적인 모습이 조금도 없다. 육신이 평범한 데다가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까지 담당해야 하기 때문에 그가 겪는 고난은 초자연적인 면을 가진 육신이 겪는 고난보다 훨씬 더 크다. 그 고난은 모두 육신이 실제적이고 정상적이기 때문에 겪는 것이다. 두 번의 성육신이 직분을 이행하면서 겪는 고난을 통해 성육신의 본질을 알 수 있다. 정상적인 육신이 사역을 담당할수록 겪는 고난이 더 크고, 실제적인 육신이 사역을 담당할수록 사람의 관념은 더욱 심해지며, 감당해야 할 위험도 커진다. 그러나 실제적인 육신일수록, 그리고 정상인의 완전한 이성과 요구를 지닌 육신일수록 하나님이 육신으로 행하는 사역을 더 잘 담당할 수 있다. 예수는 육신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육신으로 속죄 제물이 되었다. 즉, 정상 인성을 지닌 육신으로 사탄을 물리치고 사람을 십자가에서 완전히 구원한 것이다. 두 번째의 성육신은 완전한 육신으로 정복 사역을 하며, 사탄을 물리친다. 완전히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육신만이 완전한 정복 사역을 할 수 있고, 강력하게 증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을 정복하는 것은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의 실제적인 면과 정상적인 면을 통해 이루는 성과이지, 초자연적인 이적과 계시를 통해 이루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번에 성육신한 하나님이 이행해야 하는 직분은 말씀을 하는 것이다. 말씀을 통해 사람을 정복하고, 온전케 하는 것이다. 즉, 영이 육신으로 실체화하여 행하는 사역이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며, 육신의 기본 사역 또한 말씀 선포이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 사람을 완전히 정복하고, 드러내며, 온전케 하고, 도태시키는 목적을 이룰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육신으로 하는 사역은 정복 사역의 과정에서 철저히 완전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첫 번째의 속죄 사역은 성육신의 초기 사역에 불과했다. 정복 사역을 하는 육신이야말로 성육신의 모든 사역을 보완할 수 있다. 성별을 봐도 하나는 남자, 하나는 여자로 성육신의 의의가 완전해졌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관념을 없애기 위해 하나님은 남자가 될 수도 있고, 여자가 될 수도 있지만 성육신 하나님의 본질에는 성별의 구분이 없다. 그가 남자를 만들고 여자도 만들었으나 그에게는 성별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단계 사역에서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지 않는 이유는 말씀을 통해 성과를 얻는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서이며, 또 다른 이유는 이번 성육신의 사역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사람을 정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번에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본능은 말씀하고 사람을 정복하는 것이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가 정상 인성으로 하는 사역은 이적을 보이거나 병을 고치거나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보기에 두 번째의 성육신은 첫 번째의 성육신보다 훨씬 정상적으로 보인다. 또한,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나, 이번 성육신은 예수의 성육신과는 다르다. 똑같이 하나님의 성육신이기는 하나 완전히 같지는 않다. 예수는 정상적이고 평범한 인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수많은 이적과 기사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이번 성육신에게서는 사람의 병을 고쳐 준다거나 귀신을 쫓는다거나 물 위를 걷는다거나 40일 동안 금식하는 등의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그 어떤 이적과 기사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예수가 했던 것과 같은 사역을 하지 않는다. 이는 그가 입은 육신의 본질이 예수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직분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자신의 사역을 망가뜨리지도, 방해하지도 않는다. 실제의 말씀으로 정복하면 이적으로 사람을 탄복시킬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이 단계는 성육신의 사역을 완전케 하기 위한 사역이라고 한다.』

―<말씀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어째서 예수의 그 단계 사역은 성육신의 의의를 완전케 하지 못했다고 하겠느냐? 말씀이 완전히 육신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가 하는 사역은 하나님이 육신으로 하는 사역 중 일부일 뿐이다. 그는 구속 사역만 했을 뿐, 사람을 완전히 얻는 사역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세에 또다시 성육신한 것이다. 이번 사역도 평범한 육신으로 하고,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 한다. 그에게는 비범한 인성이 전혀 없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완전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신분을 가진 사람으로 사역하고, 완전한 사람으로 사역하며, 완전한 육신으로 사역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비범한 면이 조금도 없는 육신이자, 하늘의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그는 표적을 나타내지도, 이적을 행하지도 않으며, 예배당에서 종교의 실상을 폭로하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두 번째 성육신이 하는 사역은 첫 번째 성육신이 한 사역과 완전히 다르며, 심지어는 똑같은 점이 하나도 없고, 첫 단계의 사역을 이번 단계에서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사역은 첫 번째에 한 사역과 다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근원이 다르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들의 근원이 하나인지에 대한 판단은 육신이 하는 사역의 성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육신의 외형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3단계의 사역에는 총 두 번 성육신하였는데, 이 두 번의 성육신 사역은 모두 시대를 여는 것이며 새 사역을 하는 것이다. 두 번의 성육신은 서로 보완 관계에 있다. 사람의 육안으로는 이 두 육신의 근원이 하나라는 것을 알아볼 수 없다. 물론, 이는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일이고, 사람의 사유로는 생각도 하지 못하는 경지이다. 그들의 사역은 하나의 영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그 본질은 처음부터 하나다. 두 번의 성육신의 근원이 하나인지를 알아보려면 육신의 출생 연대나 출생지, 혹은 육신의 다른 조건들을 볼 것이 아니라 육신이 나타낸 신성 사역을 봐야 한다. 두 번째로 성육신한 하나님은 예수가 행한 사역을 조금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역할 때마다 이전의 방법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로운 길을 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두 번째로 성육신한 이유는 첫 번째 육신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긴 인상을 더 깊게 하거나 공고히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첫 번째 육신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긴 형상을 보완하고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에 깊이를 더하기 위한 것이고,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모든 규례를 깨며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잘못된 형상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행한 어느 한 단계의 사역만 보고서는 하나님을 완벽하게 알 수 없다. 일부만 알 수 있을 뿐, 완전히는 불가능하다. 하나님이 그의 모든 성품을 다 나타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깨닫는 능력에 한계가 있기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사람의 언어로는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표현할 수 없을진대, 단 한 단계의 사역으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밝힐 수 있겠느냐? 육신의 사역은 정상 인성에 가려져 있기에 사람은 신성의 말씀을 통해 그를 알 수 있을 뿐, 육신의 외형을 보고서는 그를 알 수 없다. 육신을 입고 온 그는 서로 다른 사역을 통해 사람에게 그의 사역이 단계마다 다르다는 점을 알게 한다. 그래야 육신을 통해 하는 그의 사역을 사람들이 일정 범위에 국한하지 않고 전면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말씀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예수가 한 단계 사역을 했지만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신다’는 본질적 의미만 이루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진리가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의 영은 육신과 함께하므로 둘은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즉, 육신을 입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과 함께하므로 성육신한 예수가 하나님의 첫 번째 성육신이라는 증거가 더 뚜렷해지는 것이다. 이번 단계의 사역은 ‘말씀이 육신 되었다’는 말의 함의를 이룬 것이다. 또한,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는 말의 의미와 더 깊게 맞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말까지도 확신하게 만든다. 즉, 천지창조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으며, 그의 말씀은 그와 함께하였으므로 양자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마지막 시대에는 그의 말씀의 위력과 권병을 한층 더 명확하게 드러내어 그의 모든 말씀을 보게 한다. 즉, 그의 모든 말씀을 듣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시대에 하는 사역이다. 너는 이런 것을 밝히 알아야 한다. 육신을 어떻게 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육신과 말씀, 육신과 길의 관계를 어떻게 알아야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마땅히 해야 할 간증이자 모든 이가 알아야 할 것이다. 이는 두 번째로 성육신하여 하는 사역이자 마지막 성육신이다. 즉, 말씀이 육신 된 의의를 완전케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육신에서 하는 모든 사역을 철저하게 하여 선포하고, 하나님이 육신에 있는 시대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말씀ㆍ실행 4> 중에서

『성육신 하나님이 이 단계에서 고난을 받거나 직분을 이행하는 것은 모두 성육신의 의의를 완전케 하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이번 성육신이 마지막 성육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육신은 두 번까지일 뿐, 세 번째는 없다. 하나님은 처음에 남자로, 두 번째는 여자로 성육신하여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 육신의 형상을 완전케 하였다. 게다가 두 번의 성육신 사역으로 육신에서 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끝냈다. 첫 번째 성육신이 정상 인성을 지니고 있었던 이유는 성육신의 의의를 완전케 하기 위해서였다. 두 번째 성육신도 정상 인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 의의는 첫 번째와 다르다. 첫 번째보다 훨씬 깊은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사역의 의의 또한 더 깊어졌다. 하나님이 두 번째로 성육신한 이유는 성육신의 의의를 완전케 하기 위함이다. 이 단계의 사역을 철저히 끝내면 성육신의 전체 의의, 즉 하나님이 육신으로 하는 사역이 철저히 끝나므로 더는 육신이 해야 할 사역이 없다. 다시 말해, 앞으로 하나님은 다시는 육신으로 와서 사역하지 않을 것이다.』

―<말씀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하나님 말씀 전편 발췌)

두 번의 성육신으로 성육신의 의의가 완전해지다

하나님의 각 단계 사역에는 실질적인 의의가 있다. 당시 예수가 왔을 때는 남성으로 왔었지만 이번에는 여성으로 왔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자신의 사역을 위해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으며, 하나님께는 성별의 구분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영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육신을 취할 수 있고, 그 육신은 하나님을 대표한다. 남자든 여자든,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라면 모두 하나님을 대표한다는 말이다. 설령 예수가 여자의 몸으로 왔더라도, 즉 당시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남자아이가 아닌 여자아이였어도 그는 똑같이 자신의 사역을 완성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의 사역은 남자가 하게 됐겠지만, 마찬가지로 사역을 완성할 것이다. 사역은 어느 단계든 모두 의의가 있으며, 두 단계의 사역은 중복되지도, 서로 모순되지도 않는다. 예수가 사역할 당시에는 독생자라고 불렸다. 독생자의 ‘자(子)’란 바로 남자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왜 독생자라고 하지 않겠느냐? 사역의 필요에 따라 예수와 성별이 달라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는 성별의 구분이 없다. 그는 자신이 뜻한 대로 할 수 있으며,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아주 자유롭게 사역을 한다. 그럼에도 모든 단계에 다 실질적인 의의가 있다. 하나님은 두 번 성육신했는데, 말세가 마지막이 될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자신의 모든 행사를 보여 주기 위해 왔다. 이번 단계에서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직접 사역하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이 영원히 여자가 아닌 남자일 것이라는 관념을 가질 것이다. 이전까지 사람들은 하나님은 남자여야만 하고, 여자는 하나님으로 불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여자에 대한 권병이 있으며, 그 권병은 남자만 담당할 수 있고 여자는 안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기에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해야지 남자 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의 머리라는 말은 뱀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과 하와에게 해당하는 것이지, 여호와가 처음에 만들었던 남자와 여자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여자는 마땅히 자기 남편을 따르고 사모해야 하며, 남편은 가족을 부양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반드시 지켜야 할 여호와의 율례이자 법도였다. 여호와는 여자에게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라고 말씀했다. 이 말씀을 한 것은 인류(남자와 여자)가 여호와의 권세 아래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고, 상규를 지키며 질서 있게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여호와가 남자와 여자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적절한 규칙을 만들어 주었는데, 이는 땅에서 생활하는 모든 피조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입은 육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나님이 어찌 피조물과 같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된 인류에게만 국한되는 것으로, 인류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성별에 따른 규칙을 만든 것이다. 여호와는 태초에 사람을 만들면서 남자와 여자, 두 부류로 나누었다. 그 때문에 그가 입은 육신 또한 남자와 여자로 구분됐을 뿐이지, 아담과 하와에게 한 말씀으로 자신의 사역을 규정한 것은 아니다. 그의 두 차례 성육신 또한 태초에 사람을 만들 때의 생각대로 결정되었다. 즉, 패괴되지 않은 남자와 여자를 통해 두 번의 성육신 사역을 완성하는 것이다. 만약 여호와가 당시에 뱀의 유혹에 넘어간 하와와 아담에게 한 말씀을 성육신 하나님의 사역에 적용한다면, 예수 또한 마땅히 사모해야 할 아내를 사모해야 하지 않았겠느냐? 그렇다면 하나님이 하나님이겠느냐? 또한 그렇다면, 그가 자신의 사역을 완성할 수 있었겠느냐? 하나님이 여자의 몸으로 성육신한 것이 잘못이라면, 여자를 만든 것부터가 크나큰 잘못 아니겠느냐? 또한, 하나님이 여자의 몸으로 성육신한 것이 잘못이라면, 아내를 맞이하지도, 사모하지도 않은 예수 또한 사람의 말대로 오늘날의 성육신과 마찬가지로 잘못을 저지른 것 아니겠느냐? 여호와가 하와에게 한 말씀으로 오늘날 하나님이 성육신한 일을 평가한다면, 은혜시대에 성육신한 주 예수에게도 여호와가 아담에게 한 말씀을 들이대야 하지 않겠느냐? 예수를 뱀에게 유혹당한 적 없는 남자로 본다면, 오늘날 성육신한 하나님을 뱀의 유혹에 넘어간 여자로 보면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불공평하다! 그런 평가는 너에게 이성이 없음을 뜻한다. 여호와가 두 차례 입은 육신의 성별은 뱀에게 유혹당한 적 없는 남자와 여자와 연결되는 것이다. 즉, 뱀의 유혹을 받지 않은 남자와 여자로 두 번 성육신한 것이다. 예수를 뱀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과 같은 남자라고 생각하지 말라. ‘예수’와 ‘아담’은 전혀 다른 성질의 남자로, 둘 사이에는 아무 관계도 없다. 예수가 남자라고 해서 그는 모든 여자의 머리일 뿐, 모든 남자의 머리는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그는 모든 유대인(남녀를 막론하고)의 왕이 아니더냐? 그는 하나님 자신이다. 그는 여자의 머리일 뿐만 아니라 남자의 머리이며,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자 머리이다. 너는 어째서 예수의 성별을 여자의 머리라는 상징으로 규정하느냐? 그것은 모독이 아니겠느냐? 예수는 패괴되지 않은 남자이며, 그는 하나님이자 그리스도이며 주님이다. 그가 어떻게 패괴된 아담과 같은 남성성을 가질 수 있겠느냐? 예수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취한 육신이다. 네가 그를 어찌 아담의 남성성이 있는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느냐?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역도 모두 잘못된 것 아니겠느냐? 여호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의 남성성을 예수에게 더했을 리 있겠느냐? 오늘날의 성육신은 예수와 성별은 다르나 성질은 똑같은 성육신으로 또 다른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냐? 그럼에도 너는 여자가 먼저 뱀에게 속아 넘어갔으니 하나님은 여자의 몸으로 성육신하면 안 된다고 단언할 수 있느냐? 여자는 가장 더러운 존재이자, 인류의 패괴를 초래한 기원이니 하나님이 여자로 성육신할 리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느냐? 또한 “여자는 언제까지나 남자에게 순종해야 하며, 영원히 하나님을 나타낼 수 없고, 직접 하나님을 대변할 수도 없다.”고 장담할 수 있느냐? 여태까지는 몰랐다지만, 지금에 와서도 하나님의 사역을, 나아가 하나님이 입은 육신을 모독하겠느냐? 잘 모른다면 함부로 말하지 말라. 그래야 너의 어리석음과 무지함, 추태를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 네가 뭐든 안다고 생각하지 말라. 네게 알려 주겠다. 지금까지 네가 보고 체험한 것으로는 내 경륜의 천분의 일조차 깨닫지 못한다. 그런데도 너는 뭐가 그리 잘났느냐? 네가 가진 보잘것없는 재능과 앎은 예수가 행하는 사역에 1초도 이용될 수 없다! 너의 체험이 얼마나 되느냐? 여태까지 네가 본 것에 네가 평생 듣고 상상한 것을 더해도 내 한순간의 사역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흠잡을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겠다. 아무리 교만하게 굴어도 너는 개미만도 못한 피조물에 불과하다! 네 배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은 개미 배 속에 들어 있는 것보다도 적다! 네가 경험이 많고 관록이 있다고 해서 함부로 지껄여도 된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 그 경험과 관록 또한 다 내가 한 말에서 비롯된 것 아니더냐? 설마 그게 너의 성실과 근면의 대가라 생각하고 있느냐? 너는 오늘날 나의 성육신을 보았기에 그렇게 풍부한 상상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관념으로 가득 차게 된 것이다. 내가 성육신하지 않았더라면, 너의 재능이 아무리 뛰어날지라도 지금처럼 그렇게 많은 상상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네 관념 또한 그로 인해 생긴 것 아니더냐? 만약 예수의 첫 번째 성육신이 없었다면, 성육신에 대해 네가 알기나 했겠느냐! 첫 번째 성육신을 알게 됐다고 그렇게 방자하게 두 번째 성육신을 평가하는 것 아니더냐? 순종하며 따르는 사람이 되지는 못할망정, 또 무엇을 따지는 것이냐? 네가 이 흐름에 들어와 성육신 하나님 앞에 온 이상 네가 연구하는 것을 그가 용납하겠느냐? 네 집안의 가족사를 따져 보는 것은 상관이 없겠지만, 네가 지금 하나님의 ‘가족사’를 따져 보고자 한다면, 오늘날의 하나님이 그것을 용납하겠느냐? 너는 눈이 먼 것이 아니냐? 화를 자초하는 것이 아니냐?

만약 말세의 사역으로 보완하지 않고 예수가 행한 그 단계의 사역으로 끝낸다면 사람은 영원히 예수만이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관념에 사로잡힐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뿐이기에, 나중에 다른 이름으로 임한 이는 하나님의 독생자가 아니고, 하나님 자신은 더더욱 아니라고 할 것이다. 사람들은 관념적으로, 속죄 제물이 된 분, 하나님을 위해 정사를 메고 전 인류를 속량한 분이라면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남성으로 온 분이라면 하나님의 독생자라 칭할 수 있고 하나님을 대표한다고 여기며, 심지어 어떤 이는 예수를 여호와의 아들이자 그의 독생자라고 한다. 이것이 사람에게 크게 자리 잡은 관념이 아니냐? 만약 마지막 시대에 이러한 사역을 하지 않았다면, 전 인류는 하나님에 대해 선입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남자는 자신이 여자보다 높다고 생각할 것이고, 여자는 영원히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자는 구원받을 사람이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사람이 늘 하나님은 남자이며, 언제나 여자를 미워하고, 여자를 구원할 리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똑같이 여호와에게 지음 받고 또 패괴된 존재인데 여자만 영원히 구원받을 기회가 없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여호와가 여자를, 즉 하와를 만든 것부터가 의미 없는 일이 되지 않겠느냐? 또한 여자는 영영 멸망하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말세의 이 사역은 여자만이 아닌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여자만 구원하기 위해 여자의 몸으로 성육신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더더욱 어리석은 자이다!

지금 하는 사역은 은혜시대 사역이 앞으로 나아간 것이자, 전체 6천년 경륜이 앞으로 발전한 것이다. 은혜시대는 끝났으나, 하나님의 사역은 앞으로 나아가며 깊이를 더해 가고 있다. 이 단계의 사역을 은혜시대와 율법시대의 기초에서 하는 것이라고 거듭 말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오늘날의 사역은 은혜시대 사역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율법시대 사역의 발전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이 세 단계의 사역은 고리에 고리가 맞물리듯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번 단계 사역을 예수가 행한 사역의 기초에서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또 무엇이겠느냐? 예수의 사역을 기초로 하지 않는다면 이번 단계에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앞 단계의 구속 사역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 의미 없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사역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 시대가 발전한 것이며, 이에 따라 사역 또한 예전보다 더 발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단계의 사역은 율법시대의 기초 위에, 그리고 예수가 이룬 사역의 반석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렇게 한 단계씩 세워진 것이지, 따로 새롭게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세 단계의 사역을 종합해야 비로소 6천년 경륜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이 단계의 사역은 은혜시대 사역을 기초로 하는 것이다. 이 두 사역에 연관성이 없다면, 어째서 이 단계 사역에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겠느냐? 어째서 사람의 죄를 담당하지 않고 곧바로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겠느냐?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사역을 하거나 이번에도 성령으로 잉태되어 온 것이 아니라면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할 자격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예수와 하나이기에 친히 사람을 형벌하고 심판하는 것이다. 이 단계의 사역은 전부 앞 단계 사역의 기초에서 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을 한 걸음씩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와 나는 같은 영에서 왔다. 육신은 서로 관련이 없지만 영은 하나이며, 사역의 내용과 담당하는 사역이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서로 다른 모습의 육신을 취한 이유는 시대가 다르고, 사역의 필요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나와 예수는 직분이 다르기에 가져온 사역도 다르고, 사람에게 보여 주는 성품 역시 다르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람이 보고 깨닫는 것 역시 예전과 다르다. 이는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생긴 차이이다. 두 육신은 성별도, 모습도 다르고, 같은 가문도 아니며, 같은 시기에 태어난 것은 더더욱 아니지만, 영은 하나이다. 둘의 육신은 어떤 혈연관계도, 육적인 관계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서로 다른 시기에 입은 육신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둘은 같은 혈통도 아니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도 않는다(한 사람은 유대어를 쓰는 남자이고, 한 사람은 중국어를 쓰는 여자임). 이 때문에 둘은 서로 다른 시기, 서로 다른 나라에서 각자 해야 할 사역을 하는 것이다. 둘이 같은 영을 지니고 있고, 그 본질 또한 같다고 하나, 육신의 겉모습은 닮은 부분이 전혀 없다. 똑같이 인성을 지녔으나, 육신의 생김새나 출생은 서로 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각자의 사역이나 그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그들은 결국 하나의 영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그들을 분리시킬 수 없다. 둘 사이에 혈연관계가 없다고 해도, 그들의 영은 그들의 전 존재를 지배하여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사역을 담당하게 했다. 게다가 그들의 육신은 같은 혈통이 아니다. 여호와의 영이 예수의 영의 아버지가 아니고, 예수의 영 또한 여호와 영의 아들이 아니며, 그들은 결국 한 영인 것처럼 말이다. 또한 오늘날 성육신한 하나님은 예수와 마찬가지로 어떤 혈연관계도 없다. 그러나 둘의 근원은 하나이다. 이는 둘의 영이 원래부터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는 긍휼과 자비를 베푸는 사역을 할 수 있으며, 공의로운 심판의 사역도, 사람을 형벌하거나 저주하는 사역도 할 수 있으며, 마지막에는 세상을 멸하고 악인을 징벌하는 사역 또한 할 수 있다. 이것은 모두 그 자신이 직접 하는 것 아니더냐? 하나님의 전능이 아니더냐? 그는 사람에게 율법과 계명을 반포했을뿐더러, 당시 이스라엘인들이 땅에서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고, 그들을 이끌어 성전과 제단을 쌓게 했으며, 모든 이스라엘인들을 자신의 권세 아래에 두었다. 그의 권병으로 인해 그와 이스라엘인들은 땅에서 2천 년 동안 살아갈 수 있었다. 이스라엘인들은 감히 여호와를 거역하지 못했고, 그를 경외하며 계명을 지켰다. 이는 모두 그의 권병과 전능으로 행한 사역이었다. 은혜시대에 이르러 예수가 와서 타락한 전 인류(이스라엘인에 국한되지 않음)를 속량하였다. 그는 사람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었다. 사람의 눈에 비친 은혜시대의 예수는 자비로 가득했으며, 늘 사랑으로 사람을 대했다. 그는 사람을 죄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하기 위해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죄에서 인류를 완전히 속량하기까지 인류의 죄를 용서해 주었다. 그 시기의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즉, 그는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되고 사람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영원히 사람의 죄를 용서해 준 것이다. 그는 긍휼과 자비를 지니고 있었고, 인내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해 주었다. 이에 예수를 따른 은혜시대의 사람들은 범사에 인내와 사랑을 강조하고, 계속 고난을 받으며, 다른 이가 욕하고 때리고 돌로 쳐도 반항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마지막 단계는 다르다. 이는 예수와 여호와의 영이 하나지만, 행한 사역은 완전히 똑같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여호와의 사역은 시대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이끄는 것이었다. 인류의 땅에서의 생활을 펼쳤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한없이 패괴된 이방의 인류를 정복하고, 중국의 족속만이 아닌, 전 우주를 이끄는 사역을 한다. 너는 지금 중국에서 하는 사역만 보고 있겠지만, 사실 이 사역은 중국 밖에서도 확장되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이 왜 계속 참도를 찾겠느냐? 영이 일을 시작했고, 지금 하는 말은 전 우주의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이미 반은 진행된 것이다. 하나님의 영은 창세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큰일을 해 왔으며,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사역을 하고, 서로 다른 나라에서 사역을 했다. 각 시대의 사람들이 모두 그의 서로 다른 성품을 볼 수 있었는데, 물론 그것은 그가 하는 서로 다른 사역을 통해 나타난 것이다. 그는 자비와 긍휼이 넘치는 하나님이고, 사람의 속죄 제물이자 목자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사람에게 심판이자 형벌이며, 저주이기도 하다. 그는 사람이 땅에서 살 수 있도록 2천 년 동안 이끌기도 했으며, 죄에서 패괴된 인류를 속량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 그는 그를 알지 못하는 인류를 그의 권세 아래 정복하고 완전히 순종하게 한다. 최종적으로 그는 전 우주의 사람들 속에 있는 불결하고 불의한 것들을 깨끗이 불사를 것이며, 그것을 통해 사람에게 그가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자, 지혜롭고 기묘하며 거룩한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사람을 심판하는 하나님이라는 것도 보여 줄 것이다. 악한 자들을 대상으로 그는 불사르고 심판하며 징벌할 것이다. 반대로 그는 온전케 될 사람들에게는 환난과 연단, 시련을 주면서도 위로해 주고 붙들어 주며 말씀으로 공급하고 책망하고 훈계할 것이다. 그리고 도태될 사람들에게는 징벌을 내리며 그에 따른 보응을 할 것이다. 하나님은 전능하지 않더냐? 그는 어떤 사역이든 할 수 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면, 너는 하나님을 한참이나 과소평가한 것이다! 그가 십자가에 달려 전 인류를 속량했다고 모든 것이 끝났겠느냐? 이제 너는 그와 함께 하늘나라에 가서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고 생명수 강의 물을 마실 것이라는 등등의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간단하겠느냐? 네가 한 것이 무엇이더냐? 너에게 예수의 생명이 있느냐? 너는 그에 의해 속량되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힌 일은 예수 자신의 사역이었다. 너는 사람으로서 어떤 책임을 다했느냐? 너는 겉으로만 경건해 보일 뿐, 그의 도를 깨닫지 못했다. 그것이 그를 나타내는 것이더냐? 하나님의 생명을 얻지 못했고, 그의 공의로운 성품의 전부를 보지 못했다면, 너는 생명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으며, 천국의 문에 들어갈 자격 또한 없다.

하나님은 영이지만, 육신을 취할 수도 있다. 또한, 그는 영광의 몸이기도 하다. 너희는 예수를 보지 못했지만 당시 이스라엘인들, 즉 유대인들은 보았다. 처음에 그는 육신을 취하고 있었지만, 십자가에 못 박힌 후에는 다시 영광의 몸이 되었다. 그는 만유를 포함하는 영이며, 곳곳에서 사역할 수 있다. 그는 여호와일 수도 있고, 예수일 수도 있으며, 메시야일 수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전능한 하나님이 될 수도 있다. 그는 공의이자 심판과 형벌이며, 저주이자 진노와 긍휼과 자비이다. 그가 하는 모든 사역은 그를 대변한다. 오늘날,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냐고 물으면 너는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너는 그저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라며 제대로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이 구속 사역을 했다고 해서 그를 영원히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라고 규정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일 뿐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겠느냐? 그가 정말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일 뿐이라면 어째서 말세에 또 시대를 끝내려고 하겠느냐? 또한, 왜 그렇게 많은 재난을 내리겠느냐? 네 생각대로 그가 언제까지나, 마지막 시대까지도 사람을 긍휼과 자비로 대한다면 어째서 재난을 내리려고 하겠느냐? 그가 사람을 자기 자신처럼, 또 자신의 독생자처럼 사랑한다면, 어째서 하늘에서 전염병과 우박을 내리려고 하겠느냐? 왜 사람을 기근과 전염병으로 치겠느냐? 어째서 사람에게 그러한 재난이 임하게 하겠느냐?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 너희는 감히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며, 아무도 확실히 말하지 못한다. 너는 그가 확실히 영이라고 단언할 수 있느냐? 너는 그가 예수의 육신이라고 장담할 수 있느냐? 그가 영원히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는 하나님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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