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리스도를 알아가다

목차

제5장 반드시 하나님의 도성육신 방면의 진리를 인식해야 한다

4 패괴된 인류는 도성‘육신’인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

(하나님 말씀 한 편 전체 발췌)

패괴된 인류는 도성‘육신’인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된 까닭은, 그의 역사하는 대상이 사탄에게 패괴된 육체에 속한 사람이지 사탄의 영이 아니고 육체에 속하지 않는 어떠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사람의 육체가 패괴되었기 때문에, 그가 육체에 속한 사람을 그의 역사 대상으로 한 것이다. 더욱이 사람은 패괴된 대상이기 때문에, 그가 어느 단계의 구원 사역을 하든지 모두 사람을 선용(選用)하여 그의 유일한 역사 대상으로 한 것이다. 사람은 속된 인간이고 혈기에 속하지만 하나님은 또한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이 사역을 하는 데는 더 좋은 역사 효과에 달하도록 사람과 같은 속성을 가진 육신이 되어 사역을 할 필요가 있다. 바로 사람은 육체에 속하고 또한 죄를 이기는 능력과 육체에서 벗어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역을 하는 것도 반드시 육신이 되어 역사해야 한다. 비록 하나님 도성육신(道成肉身)의 실질ㆍ신분은 사람의 실질ㆍ신분과 크게 다르지만 그의 외모로부터 보면 사람과 같은 것이다. 그에게 정상 사람의 외모가 있고 정상 인성의 생활이 있는데, 사람이 보기에는 그와 정상 사람과의 다른 점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단지 이 정상적인 외모와 정상적인 인성만으로도 충분히 그의 정상 인성에서 하는 신성의 사역을 할 수 있다. 그의 육신은 그가 정상 인성에서 사역하는 데에 유리하고 그가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는 데에 유리하다. 그의 정상 인성은 그가 사람들 가운데서 구원 사역을 하는 데에 더욱 유리하다. 비록 그의 정상 인성이 사람들 가운데서 적지 않은 풍파를 일으키지만 이런 풍파는 그가 역사하는 정상 효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어쨌든, 그의 정상 육신의 역사는 사람을 놓고 말하면 그래도 크나큰 유익한 점이 있는 것이다. 비록 다수의 사람들이 그의 정상 인성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하더라도 그의 역사는 여전히 효과에 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효과는 정상 인성에 의하여 달하는 것인데, 이것은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 그가 육신 중에서 역사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얻게 한 것은 사람이 그의 정상 인성에 대하여 갖고 있는 관념의 십 배, 몇십 배를 훨씬 초과한다. 그러나 이런 관념은 최종에 이르러 그가 한 사역에 의해 모두 파묻힐 것이다. 사역이 달한 효과 즉 그에 대한 사람의 인식은 그에 대한 관념의 수량을 훨씬 초과한다. 그의 육신 중의 사역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고 짐작할 수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육신은 어느 한 육체에 속한 사람과도 같은 육신이 아니며, 외각은 서로 같아도 실질은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육신으로 인하여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 많고 많은 관념이 생기게 되었지만 그의 육신은 사람으로 하여금 많고 많은 인식을 얻게 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그의 육신은 그와 비슷한 외각이 있는 어떠한 사람도 정복할 수 있다. 그가 하나의 사람만이 아니라 사람의 외각을 가진 하나님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완전히 측량할 수 없고 어느 한 사람도 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만질 수 없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애대하고 환영하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단지 사람이 볼 수 없는 영이라면, 사람은 하나님을 믿기에 너무 쉬울 것이며, 사람은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고, 사람 자신의 마음이 기쁘고 통쾌하도록 제멋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형상을 하나 선택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충당할 수 있다. 이리하여, 사람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자기의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고 가장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은 스스로 그 자신만이 ‘하나님’께 가장 충성하고 가장 경건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다른 사람을 모두 이방 개이고 모두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가히 말해서, 막연과 도리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모두 이렇게 추구하는데, 대동소이(大同小異)하여 별로 큰 차이가 없고 다만 각인의 상상 중의 하나님의 형상이 각기 다를 뿐, 그 실질은 다 같은 것이다.

사람은 모두 아무런 근심 걱정도 없이 마음대로 하나님을 믿는데, 어떻게 믿기를 원하면 어떻게 믿는다. 이것은 ‘인권 자유’이며, 아무도 간섭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 믿는 것은 모두 자기의 하나님이지 다른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고, 사람의 사유 재산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거의 다 이러한 사유 재산을 가지고 있다. 이 재산은 비록 사람이 보기에는 상당히 보배롭지만 하나님이 보기에는 오히려 가장 비천하고 무가치한 것들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이 사유 재산이 바로 하나님과 서로 대립되는 가장 뚜렷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바로 하나님 도성육신이 역사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이 만질 수도 있고 볼 수도 있는 형상이 있는 육신이 되었는데, 형상이 없는 영이 아니라 사람이 접촉할 수도 있고 볼 수도 있는 하나의 육신이다. 그러나 사람이 믿는 하나님은 대다수가 모두 형상이 없으면서도 자유 형상이 있는 비육신인 하나님이다. 이리하여, 도성육신인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는 대다수 사람들의 원수로 되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된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적수로 되었다. 사람에게 관념이 있는 것은 사람의 사유로 인한 것이 아니고 사람의 패역으로 인한 것도 아니라 사람의 이 사유 재산으로 인한 것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이 재산으로 인하여 목숨을 잃었다. 사람이 믿는,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는 막연한 하나님이 사람의 목숨을 상실하게 한 것이다.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아니고 더욱이 하늘 위의 하나님도 아니라 사람 자신이 상상한 ‘하나님’이 자기의 목숨을 상실하게 한 것이다.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육신에 온 까닭은 전적으로 패괴된 사람의 필요로 인한 것인데, 사람의 필요이지 하나님의 필요가 아니다. 이 모든 대가와 고통은 다 인류를 위한 것이지, 하나님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는 득실과 보수(報酬)라는 말이 없다. 그가 얻는 것은 후에 수확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원래부터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가 인류를 위하여 한 전부와 치른 모든 대가는 그가 더 많은 보수를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단지 인류를 위한 것뿐이다. 육신 중에서 역사하는 데는 비록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운 많은 곤란이 있지만 최종에 육신이 역사하여 달하는 효과는 그래도 영이 직접 역사하는 효과를 훨씬 초과한다. 육신이 역사하는 데는 비록 상당히 많은 애로가 있고 영과 같은 위대한 신분이 있을 수 없고 영과 같은 비범한 행사도 있을 수 없고 더욱이 영과 같은 권세도 있을 수 없지만 눈에 띄지 않는 이 육신의 역사 실질은 영이 직접 역사하는 실질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이 육신 자체를 놓고 말하자면 모든 사람의 필요이다. 구원받는 사람에 대하여 말하면 영의 사용 가치는 육신의 사용 가치보다 훨씬 못하다. 영의 역사는 전 우주에 보급되고 산천 호수에 파급될 수 있으나, 육신의 역사는 그와 접촉하는 각 사람과 더욱 효과적으로 관련될 수 있고, 또한 형상이 있는 육신은 더욱 사람의 이해와 신임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더욱 깊게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실제 행사에 대한 인상을 더욱 깊게 할 수 있다. 영의 역사는 신비 막측하여 범속한 사람이 예측하기 어렵고 보아내기 더욱 어려우며, 다만 근거없이 상상할 뿐이다. 육신의 역사는 정상적이고 실제적이며 또한 풍부한 지혜가 있으며, 범속한 사람이 직접 목도할 수 있는 사실이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이 역사하는 지혜를 직접 깨달을 수 있어, 완전히 풍부한 상상을 펼칠 필요는 없다. 이것은 육신의 하나님이 역사하는 정확성과 실제적 가치이다. 영은 다만 사람들이 보지도 못하고 상상하기도 어려운 얼마간의 일을 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영의 깨우침, 영의 감동, 영의 인도이다. 하지만 대뇌 사유가 있는 사람에 대하여 말하자면, 영의 이런 역사는 사람에게 명확한 뜻을 줄 수 없고, 다만 하나의 감동이나 대체적으로 비슷한 뜻만 줄 수 있을 뿐 언어로 지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육신에서의 역사는 이와 크게 다르다. 육신이 역사하는 데는 정확한 말씀의 인도가 있고 명확한 뜻이 있고 명확한 요구 목표도 있으므로, 사람이 모색할 필요도 없고 상상할 필요도 없으며 더욱이 추측할 필요도 없다. 이것은 육신이 역사하는 명확성인데, 영의 역사와 크게 다르다. 영의 역사는 다만 일부 유한한 범위에만 적응될 수 있을 뿐, 육신의 역사를 대체할 수 없다. 육신이 역사하여 사람에게 요구하는 정확한 목표와 사람이 인식을 얻는 실제 가치는 영이 역사하는 정확성과 실제적 가치를 훨씬 초과한다. 패괴된 사람에 대하여 말하면, 오직 정확한 말씀, 명확한 추구 목표, 볼 수 있고 더듬을 수 있는 역사만이 가장 가치 있는 역사이다. 오직 현실의 역사와 적절한 인도만이 사람의 비위에 맞을 수 있고, 오직 실제적 역사만이 사람을 패괴되고 타락된 성정에서 구원해낼 수 있다. 이런 것은 오직 도성육신인 하나님만이 달할 수 있고, 오직 도성육신인 하나님만이 사람을 패괴되고 타락된 옛 성정에서 구원해낼 수 있다. 영은 비록 하나님의 고유한 실질이지만 이러한 사역은 오직 육신에 의해야만 할 수 있다. 단지 영으로 하여금 단독으로 역사하게 한다면 역사 효과에 달할 수 없다. 이것은 환히 밝혀져있는 사실이다. 비록 이 육신으로 인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원수로 되었을지라도 이 육신이 그의 사역을 다 끝마칠 때에는 그와 적대되던 그 사람들이 더는 그의 원수가 아니라 오히려 그의 증인이 되는데, 그에게 정복된 증인이 되고 그와 합하고 그와 갈라지기 아쉬워하는 증인이 된다. 그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에 대한 육신이 하는 사역의 중요성을 알게 할 것이다. 사람은 사람의 생존 의의에 대한 이 육신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은 사람의 생명이 자라남에 대한 이 육신의 실제 가치도 알게 될 것이고 더욱이 이 육신이 상상외로 사람이 떠나기 어려운 생명 샘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이 비록 그의 신분ㆍ지위와 크게 다르고 그의 실제 신분과 사람이 보기에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듯하지만 하나님의 고유한 형상을 지니지 않고 하나님의 고유한 신분이 없는 이 육신은 하나님의 영이 직접 할 수 없는 사역을 해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도성육신의 고유한 의의와 가치인데, 이 의의와 가치가 바로 사람이 받아들일 수도 없고 시인할 수도 없는 것이다. 비록 사람이 모두 하나님의 영에 대하여 우러러보는 태도를 취하고 하나님의 육신에 대하여 내려다보는 태도를 취하더라도 사람이 어떻게 보든 어떻게 여기든 육신의 실제 의의와 실제 가치는 영의 실제 의의와 실제 가치를 훨씬 초과한다. 물론 이것은 다만 패괴된 인류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진리를 찾고 구하며 하나님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각 사람에 대하여 말하면, 영의 역사는 사람에게 감동이나 묵시만 줄 뿐이며, 기묘막측하고 상상하기 어려운 신기(神奇)한 감만 줄 뿐이며, 위대하고 비범하고 사람이 모두 앙모하면서도 달하지 못하고 닿지 못하는 느낌만 줄 뿐이다. 사람과 하나님의 영은 아득히 멀리 서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마치 매우 멀리 떨어져있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서로 같을 수 없는 듯하고, 마치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간격이 있는 듯하다. 사실상 이것은 다만 영이 사람에게 주는 착각일 뿐이다. 이 착각은 다만 영과 사람이 동류가 아니기 때문이고, 영과 사람이 영원히 한 세계에서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이며, 또 영은 사람이 구비해야 할 어떠한 것도 구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에 대하여 말하면 영은 사람의 필요가 아니다. 왜냐하면 영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사역을 직접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육신의 역사는 사람에게 실제적인 추구 목표를 주고, 사람에게 명확한 말씀을 주며, 사람에게 ‘실제’ ‘정상’적인 감각을 주고, 사람에게 ‘비미’하고 ‘평범’한 감각을 준다. 사람이 비록 두렵게 느끼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래도 상당히 접촉하기 쉬운 것이다. 사람이 그의 얼굴을 볼 수 있고 그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므로 아득히 멀리 서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이 육신이 사람에게 주는 감각은 가까운 것이지 아득히 먼 것이 아니며, 난측한 것이 아니라 볼 수 있고 접촉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육신은 사람과 동일한 세계에 있기 때문이다.

육신 중에 살고 있는 각 사람에 대하여 말하면, 성정 변화를 추구하는 데는 마땅히 추구 목표가 있어야 하며,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는 데는 마땅히 하나님의 실제 행사를 보아야 하고 하나님의 실제 모습을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만이 달할 수 있고, 또한 정상적이고 실제적인 육신만이 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 된 필요성이며, 모든 패괴된 인류의 필요이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도록 요구하려면 사람 마음속의 그런 막연하고 초자연한 하나님의 형상들을 제거해야 하며, 사람에게 패괴 성정을 벗어버리도록 요구하려면 반드시 먼저 이런 패괴 성정을 인식하게 해야 한다. 만일 사람 마음속의 막연한 하나님의 형상을 제거하는 데에 달하기 위하여 다만 사람이 이 사역을 한다면, 있어야 할 효과에 달하지 못한다. 사람 마음속의 막연한 하나님의 형상은 언어로써 들춰내고 떨쳐버려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이렇게 한다면 결국에 가서는 사람에게 깊이 뿌리박힌 것을 여전히 제거할 수 없다. 오직 실제의 하나님으로써, 하나님의 고유한 형상으로써 사람의 막연하고 초자연한 이런 것들을 대체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차츰차츰 인식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이래야만 원래의 효과에 달할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이 이전에 추구한 하나님이 막연하고 초자연하다는 것을 인식하는데, 이 효과에 달하는 것은 영의 직접적인 인솔이 아니고 더욱이 어느 한 사람의 가르침도 아니라 도성육신인 하나님으로 인한 연고이다. 바로 도성육신인 하나님의 정상ㆍ실제와 사람의 상상 중의 막연하고 초자연한 하나님이 서로 대립되기 때문에,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정식으로 역사할 때는 사람의 관념을 다 드러낸다. 도성육신인 하나님의 안받침에 의해서야 사람의 원래 관념을 다 드러내게 되었다. 만일 도성육신인 하나님의 대조가 없으면 사람의 관념을 드러내지 못한다. 즉 실제적인 안받침이 없으면 막연한 것을 드러내지 못한다. 이 사역은 어느 한 사람도 언어로써 대체할 수 없는 것이고, 역시 어느 한 사람도 언어로써 분명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자기의 사역을 할 수 있으며, 어느 한 사람도 대체할 수 없다. 사람의 언어가 얼마나 풍부하든지 하나님의 실제ㆍ정상을 밝히 말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이 친히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여 그의 형상과 그의 소시를 사람들에게 전부 공포하는 수밖에 없다. 이래야, 사람이 더 실제적으로 그를 알 수 있고 더 분명하게 그를 볼 수 있다. 이 효과는 육체에 속한 어느 한 사람도 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이 역사 효과도 역시 하나님의 영이 달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패괴된 사람을 구원하여 사탄의 권세에서 이탈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역은 하나님의 영이 직접 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사역이다. 이 육신은 사람이자 하나님이고, 정상 인성이 있는 사람이자 완전한 신성이 있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비록 이 육신은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 또한 영과 크게 다르더라도, 사람을 구원하는 이는 여전히 도성육신인 하나님 자신이고, 영이자 육신이다. 어떻게 칭하든지 간에, 어쨌든 하나님 자신이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과 육신은 갈라놓을 수 없고, 육신이 한 사역이자 하나님의 영이 한 사역이며, 다만 영의 신분으로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신분으로 역사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영이 직접 해야 할 사역은 말씀이 육신 될 필요가 없고, 육신이 해야 할 사역은 영이 직접 할 수 없으며, 다만 말씀이 육신 된 방식으로써 역사할 뿐이다. 이것은 모두 사역의 필요이고 패괴된 인류의 필요이다. 3단계 역사 중에서 오직 한 단계 역사만 영이 직접 한 것이며, 그 외의 두 단계 역사는 모두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한 것이지 영이 직접 한 것은 아니다. 영이 한 율법의 사역은 사람의 패괴 성정을 변화시키는 데에 관련되지 않고,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데에도 관련되지 않는다. 육신이 한 은혜시대와 국도시대의 사역은 모두 사람의 패괴 성정과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에 관련된다. 육신이 한 사역은 모두 구원 사역 중에서 중요하고 관건적인 사역이다. 그러므로 패괴된 인류는 도성육신인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고, 도성육신인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가 더욱 필요하다. 인류는 도성육신인 하나님의 목양ㆍ부축ㆍ부어줌ㆍ양육ㆍ심판ㆍ형벌이 필요하고, 도성육신인 하나님의 더 많은 은혜와 더 큰 구속이 필요하다. 오직 육신 중의 하나님만이 사람의 지심인(知心人)이 될 수 있고 사람의 목자가 될 수 있고 사람의 수시로의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것은 모두 오늘이나 이전에 말씀이 육신 된 필요성이다.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되었으나 사람은 또한 하나님이 창조한 최고의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다. 구원할 대상은 사람이지 사탄이 아니다. 구원하는 것은 사람의 육체이고 사람의 영혼이지 마귀가 아니다. 사탄은 하나님이 훼멸시킬 대상이고, 사람은 하나님이 구원할 대상이다. 그러나 사람의 육체가 사탄에게 패괴되었으므로, 반드시 먼저 사람의 육체를 구원해야 한다. 사람의 육체는 가장 심하게 패괴되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으로 되었으며, 심지어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한다. 패괴된 육체는 그야말로 매우 완고하여, 육체의 패괴 성정은 대처하기 가장 어려운 것이고 변화시키기 가장 어려운 것이다. 사탄이 사람의 육체에 와서 방해하고, 사람의 육체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파괴한다. 그리하여 사람도 곧 사탄으로 되었고 하나님의 원수로 되었다. 사람을 구원하려면 먼저 사람을 정복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하나님도 약한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고 육신 중에 와서 그가 하려는 사역을 하고 사탄과 싸움을 전개하는데, 목적은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고 그를 거역한 사탄을 패배시키고 훼멸시키기 위한 것이다. 사람을 정복하는 사역에 의하여 사탄을 패배시키고 동시에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는데, 이것은 쌍방이 다 좋게 하는 사역이다. 그가 육신 중에서 역사하고 육신 중에서 말씀하고 육신 중에서 모든 사역을 담당하는 것은 바로 사람과 더 잘 접촉하고 사람을 더 잘 정복하기 위해서이다. 최후 한차례 도성육신은 말세에 하는 사역을 모두 육신 중에서 끝마치고, 모든 사람을 각기 종류대로 하여 그의 전체 경영을 끝마치고 그의 육신 중에서의 모든 사역도 끝마친다. 땅에서의 모든 사역을 끝마친 후이면 그가 철저히 이기게 된다. 육신 중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이 인류를 철저히 정복하고 인류를 철저히 얻게 되면, 이것은 하나님의 모든 경영이 끝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육신에서의 사역이 끝나면, 사탄을 철저히 패배시키고 하나님이 이미 이겼으므로, 사탄은 사람의 몸에서 더 이상 패괴시킬 기회가 없게 된다. 첫 번째 도성육신의 역사는 구원이고 사람의 죄를 사하는 것이며, 현재는 정복하여 사람을 철저히 얻는 것이다. 이래서, 사탄은 더 이상 할 방법이 없게 되고 철저히 실패하게 되며, 하나님도 완전히 이기게 된다. 이것은 육신이 하는 사역이자 하나님 자신이 하는 사역이다. 3단계 사역의 시작 사역은 하나님의 영이 직접 한 것이지 육신이 한 사역이 아니다. 3단계 사역의 마무리 사역은 바로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하는 것이지 영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니다. 중간 한 단계 구속의 사역도 역시 육신 중에서의 하나님이 한 사역이다. 전체 경영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사역은 사람을 구원해내어 사탄의 권세에서 이탈시키는 것이다. 관건적인 사역은 패괴된 사람을 철저히 정복하여 정복된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에게 원래 있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회복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정상 사람의 생활에 달할 수 있게 하는 것인데, 즉 정상적인 피조물의 생활이 있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관건적인 사역이고 경영 사역의 핵심이다. 이 3단계 구원 사역 중에서 제1단계 율법의 사역은 경영 사역의 핵심과 차이가 많은데, 구원 사역의 겉면만 조금 있을 뿐,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원해내는 사역에 착수하지는 않았다. 제1단계 사역을 영이 직접 한 까닭은 바로 율법 아래의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것만 알고 더 많은 진리가 없기 때문이며, 율법시대의 사역이 사람의 성정 변화에 거의 관련되지 않고 더욱이 어떻게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원해내는가 하는 사역에도 관계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패괴 성정에 관련되지 않는 극히 간단한 그 단계 사역을 완성하였다. 그 단계 사역은 경영의 핵심과 그다지 큰 관계가 없고 정식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과도 그다지 큰 관련이 없으므로,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되어 친히 역사할 필요도 없었다. 영이 하는 사역은 은연 중에 내포하고 난측하며,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간담이 서늘케 하여 접근하기 쉽지 않게 하므로, 직접 구원의 사역을 하는 데에 적응되지 않고 직접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데에 적응되지 않는다.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것은 그래도 영의 사역을 사람과 가까이하는 다른 한가지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즉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것은 하나님이 하나의 보통 정상인 사람이 되어 사역을 하는 것이다. 이러면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되어 영의 사역을 대체해야 한다. 이 역사 방식은 사람에 대하여 말하자면 더없이 적합한 것이다. 이 3단계 역사 중에서 두 단계 역사는 육신이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두 단계 역사는 또 경영 사역의 관건적 부분이어서, 두 차례 도성육신은 서로 보충하고 서로 완벽하게 하는 것이며, 제1단계 도성육신은 제2단계를 위하여 기초를 닦은 것이다. 가히 말해서, 두 차례 도성육신은 일체(一體)로 된 것이지 저촉되는 것이 아니다. 이 두 단계 사역을 도성육신의 신분으로 역사한 까닭은, 이 두 단계 사역이 전체 경영 사역에 대하여 실로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거의 말할 수 있다, 두 차례 도성육신의 역사가 없다면, 전체 경영 사역은 정체될 것이고,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도 황당무계한 말이다. 사역이 중요한가의 여부는 인류의 필요에 근거하고 인류의 타락된 실정에 근거하고 사탄의 패역과 사역을 방해하는 경중(輕重) 정도에 근거하여 말한 것이다. 그러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정확한 대상은 사역자의 역사 성질에 근거하고 사역의 중요성에 근거하여 비로소 확정한 것이다. 사역의 중요한 정도에 관하여 말하면, 도대체 역사의 방식을 어떻게 취하는가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직접 역사하겠는가, 도성육신으로 역사하겠는가, 아니면 사람으로써 역사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 3자 가운데서 맨 먼저 도태한 것은 ‘사람으로써 역사’하는 방식이다. 그 외는 사역의 성질에 근거하고 또한 영과 육신이 역사하는 성질에 근거하여, 최종에는 그래도 육신이 역사하는 것이 영이 직접 역사하는 것보다 사람에게 더욱 유익한 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사역하는 데에 더 많은 우위를 차지한다는 것을 확정하였다. 이것은 당시에 영이 역사하겠는가 아니면 육신이 역사하겠는가를 확정하는 하나님의 생각이었다. 매 단계 사역을 하는 데는 모두 의의가 있을뿐더러 근거가 있는 것이지, 근거없이 상상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대로 마구 하는 것도 아니며, 모두 일정한 지혜가 그 속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는 모든 사역의 내막이다. 특히 도성육신이 사람들 가운데서 친히 역사하는 이렇게 중대한 사역은 더욱 그의 계획이 그 속에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와 그의 모든 소시는 그가 사역하는 일거일동, 하나의 마음과 하나의 생각 가운데서 표현된다고 한다. 이것은 더 구체적이고 더 계통적인 하나님의 소시이다. 이런 미세한 마음과 생각은 모두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고 역시 사람이 믿기 어려운 것이며 더욱이 사람이 인식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람이 사역을 하는 데는 모두 대체적인 원칙이 있는데, 사람에게 있어서 이것은 이미 상당히 만족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에 비하면 그야말로 차이가 너무나 큰 것이다. 하나님의 행사가 비록 위대하고 그의 역사 규모도 매우 방대하지만 이런 역사의 배후에는 오히려 아주 많은 미세하고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운 정밀한 계획과 배치가 포함되어 있다. 그가 매 단계 사역을 하는 데는 원칙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인류의 언어로 분명히 말하기 어려운 많고 많은 것들이 있는데, 이것은 바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영의 역사든지 도성육신의 역사든지, 모두 그의 역사 계획이 있는 것이다. 그는 근거없이 역사하지 않고 의의 없는 사역도 하지 않는다. 영이 직접 역사하는 데는 그의 목적이 있고, 사람이 되어(즉 그의 외각을 바꾸어) 역사하는 데는 더욱 그의 의의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어찌 그의 신분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겠는가? 그가 어찌 마음대로 사람들에게 얕잡아 보이고 핍박받는 사람으로 될 수 있겠는가?

육신에서 하는 사역이 가장 의의 있다는 이것은 사역에 근거하여 말한 것이다. 최종에 사역을 끝마치는 이는 도성육신인 하나님이지 영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또 하나님이 어느 때 땅에 와서 사람에게 나타나 친히 전 인류를 심판하고 하나하나 고비를 넘게 할지도 모르니, 누구도 빠지려 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이러한 생각이 있는 사람은 이 단계 도성육신의 사역에 대하여 인식이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는 것은 하나하나 심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하나 고비를 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심판 사역이라고 하지 않는다. 모든 인류의 패괴는 다 같지 않은가? 사람의 실질은 다 같지 않은가? 심판하는 것은 인류가 패괴된 실질이고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킨 실질인데, 사람의 모든 죄얼을 심판하는 것이지 사람 몸의 사소한 결함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다. 심판의 사역은 대표성이 있다. 전적으로 어느 한 사람을 위하여 하는 사역이 아니라 일부분 사람들을 심판하는 것에 의하여 전 인류를 심판하는 사역을 대표하는 것이다. 육신이 하는 사역은 일부분 사람들 몸에 친히 역사하는 것에 의하여 전 인류의 사역을 대표하며, 그 후에 또 차츰차츰 확장한다. 심판 사역도 역시 이러하다. 어느 한 종류의 사람 또는 어느 한 부분 사람들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의 불의 즉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등등을 심판하는 것이다. 심판하는 것은 인류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실질이다. 이 심판의 사역이 바로 말세의 정복 사역이다. 사람이 본 도성육신인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은 바로 이전의 사람 관념 속의 말세의 희고 큰 보좌 앞의 심판 사역이다. 현재에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 곧 희고 큰 보좌 앞의 심판이다. 오늘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바로 말세에 전 인류를 심판하는 하나님이다. 이 육신과 육신의 역사ㆍ말씀ㆍ모든 성품이 그의 전부이다. 비록 육신이 하는 사역 범위는 유한한 것이고 직접 전 우주에 미치는 것이 아니지만 심판 사역의 실질은 모두 직접 전 인류를 심판하는 것이지 중국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몇 사람만을 위하여 심판의 사역을 전개하는 것도 아니다. 육신의 하나님이 역사하는 기간에, 비록 역사 범위는 전 우주에 미칠 수 없지만 그가 하는 것은 전 우주를 대표하는 사역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의 육신의 역사 범위의 사역을 끝마친 후 즉시 이 사역을 전 우주 각지에 확장하는데, 마치 예수가 부활 승천한 후 복음을 전 우주 각지에 확장한 것과 같다. 영의 역사든지 아니면 육신의 역사든지 다 유한한 범위에서 역사하지만 전 우주를 대표한다. 말세의 사역은 도성육신의 신분으로 나타나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 육신의 하나님이 바로 희고 큰 보좌 앞에서 사람을 심판하는 하나님이다. 그가 영이든 아니면 육신이든, 어쨌든 심판 사역을 하는 이는 바로 말세에 인류를 심판하려는 하나님이다. 이것은 그의 역사에 근거하여 정한 것이지, 외모거나 기타 몇 방면에 근거하여 확정한 것이 아니다. 비록 사람이 이 논법에 대하여 관념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전 인류를 심판하고 정복하는 이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떻게 평가하든지 사실은 어쨌든 사실이다. 누구도 “사역은 하나님이 한 것이지만 육신은 하나님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은 그릇된 논법이다. 왜냐하면 이 사역은 육신의 하나님 이외의 사람이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역을 이미 다 끝낸 이상, 이 사역 후에는 하나님이 두 번째로 사람을 심판하는 사역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도성육신이 이미 전체 경영의 사역을 전부 마무리하였으니, 제4단계 역사가 더는 있을 리가 없다. 심판하는 것은 패괴된 사람이고 육체에 속한 사람이지 직접 사탄의 영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심판 사역은 영계에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가운데서 진행하는 것이다. 사람 육체의 패괴를 심판하는 사역을 오직 육신 중의 하나님만이 하기에 가장 적합하고 오직 육신 중의 하나님만이 하기에 가장 자격이 있다. 만일 하나님의 영이 직접 심판한다면 각 방면을 다 돌볼 수 없고 또한 사람이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영은 사람과 대면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점만으로도 즉시 효과를 보는 데에 달할 수 없고 더욱이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불가촉범의 성품을 환히 보게 할 수도 없다. 오직 육신 중에서의 하나님이 인류의 패괴를 심판해야만 사탄을 철저히 패배시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상 인성이 있는 사람이지만 육신 중에서의 하나님은 사람의 불의를 직접 심판할 수 있다. 이것은 그의 본래부터 거룩한 표징이자 뭇사람과 다른 표징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능히 사람을 심판할 자격이 있고 조건이 있다. 그에게 진리가 있고 공의가 있기 때문에 사람을 심판할 수 있다. 진리가 없고 공의가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심판할 자격이 없다. 만일 하나님의 영이 이 사역을 한다면 사탄을 전승하는 것이 아니다. 영은 본래부터 속된 인간보다 높고 크며, 하나님의 영은 본래부터 거룩하며, 본래부터 육체보다 낫다. 영이 직접 이 사역을 하면 사람의 모든 패역을 심판할 수 없고 사람의 모든 불의를 드러낼 수도 없다. 왜냐하면 심판 사역은 역시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관념에 의하여 하는 것이고, 사람은 영에 대하여 본래부터 관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은 사람의 불의를 더 잘 드러낼 수 없고, 더욱이 사람의 불의를 투철하게 드러낼 수도 없다. 도성육신인 하나님은 그를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의 원수이다. 그에 대한 사람의 관념과 대적을 심판하는 것에 의하여 인류의 패역을 모두 드러냈는데, 육신이 하는 사역은 영이 하는 사역보다 달하는 효과가 더욱 뚜렷하다. 그러므로 전 인류를 심판하는 것은 영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이다. 육신 중의 하나님은 사람이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으며, 육신 중의 하나님은 사람을 철저히 정복할 수 있다. 사람은 육신 중의 하나님에 대하여 대적하던 데로부터 순복하는 데에 이르고, 핍박하던 데로부터 받아들이는 데에 이르며, 관념이 있던 데로부터 인식하는 데에 이르고, 저버리던 데로부터 사랑하는 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도성육신인 하나님의 역사 효과이다. 사람은 모두 그의 심판을 받아들이는 것에 의하여 비로소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고, 모두 그의 입에서의 말씀에 의하여 비로소 그를 차츰차츰 알게 되며, 모두 대적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정복되고, 모두 그의 형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그의 생명 공급도 얻게 된다. 이 모든 사역은 육신 중의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지 하나님이 영의 신분으로 하는 사역이 아니다. 하나님 도성육신이 하는 사역은 가장 큰 사역이고 가장 심오한 사역이다. 3단계 역사의 관건은 바로 이 두 단계 도성육신의 사역에 있다. 도성육신이 역사하는 데는 가로막음이 너무나 많다. 왜냐하면 사람이 심히 패괴되었고, 특히 말세에 이 사람들 몸에 하는 사역은 상당히 곤란하며, 외부 환경이 열악하고 각종 사람의 소질도 상당히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역이 끝날 때에 가서는 그래도 있어야 할 효과에 달하게 되고, 또한 조금도 차이가 없다. 이것은 육신이 역사한 효과인데, 이 효과는 영이 역사하는 것보다 더욱 설득력이 있다. 3단계 역사의 종지(終止)는 육신 중에서 끝마치고 또한 반드시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끝마쳐야 한다. 가장 중요하고 가장 관건적인 사역은 모두 육신에서 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구원하는 것도 반드시 육신이 와서 친히 해야 한다. 비록 인류가 모두 육신의 하나님을 마치 사람과 무관한 것처럼 느낄지라도, 사실상 이 육신은 전 인류의 운명에 관계되고 전 인류의 생존에 관계된다.

하나님이 어느 단계 사역을 하든지 모두 전 인류를 위한 것이며, 그가 하는 사역은 모두 전 인류를 향한 것이다. 설사 육신 중에서의 역사일지라도 전 인류를 향한 것이다. 그는 온 인류의 하나님이고 모든 피조물과 비피조물의 하나님이다. 육신 중에서의 역사는 비록 유한한 범위에서이고 역사하는 대상도 역시 유한한 것이지만 그가 매번 말씀이 육신 되어 역사할 때 선택한 역사 대상은 모두 극히 대표성이 있는 것이다. 한 무리 ‘단순하고 평범’한 사람들을 선택하여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 중에서 역사할 그의 대표로 할 수 있는 한 무리를 선택하여 그의 역사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이 한 무리 사람들은 그의 육신 중에서의 역사 범위가 유한한 것으로 인하여 선택된 사람들이고, 오로지 말씀으로 된 육신을 위하여 예비된 사람들이며, 역시 그의 육신 중에서의 역사를 위하여 특선된 사람들이다. 역사 대상을 선택하는 데에도 역시 원칙이 있는 것이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역사의 대상은 육신 중의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반드시 유익한 점이 있어야 하고, 전 인류를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유대인이 전 인류를 대표하여 예수가 친히 한 구속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중국 사람이 전 인류를 대표하여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친히 하는 정복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유대인이 전 인류를 대표한 것은 근거가 있는 것이고 중국 사람이 전 인류를 대표하여 하나님이 친히 하는 정복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도 역시 근거가 있는 것이며, 유대인 가운데서 구속의 사역을 하면 구속의 의의를 최고로 나타낼 수 있었고 중국 사람 가운데서 정복의 사역을 하면 정복 사역의 철저함과 성공을 최고로 나타낼 수 있다. 육신 중에서 역사하고 말씀하는 것이 보기에는 다만 소부분 사람에 비추어 하는 것 같으나, 사실은 이 소부분 사람들 가운데서 전 우주의 사역을 하고 전 인류를 향하여 말씀하는 것이다. 그의 육신 중에서의 사역이 끝난 후에, 그를 따르던 그 사람들이 곧 그들 가운데서의 하나님의 사역을 확장하기 시작한다. 육신 중에서 역사하는 최대의 장점은 그를 따르는 그 사람들에게 정확한 말씀을 남길 수 있고 정확한 부탁을 남길 수 있고 인류에 대한 그의 정확한 뜻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그 후에 그를 따르던 사람이 비로소 그의 육신 중에서의 모든 사역과 전 인류에 대한 그의 뜻을 이 도를 받아들이는 각 사람에게 더 정확하고 더 실제적으로 전해줄 수 있다. 육신 중의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해서야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하고 함께 생활하는 사실을 참으로 실현하게 되었으며, 사람이 모두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하나님이 친히 한 말씀을 듣는 이 소망을 실현하게 되었다. 도성육신인 하나님은 ‘여호와의 뒷모습만 인류에게 나타내던’ 시대를 끝마쳤고 인류가 막연한 하나님을 신앙하던 시대도 끝마쳤다. 특히 최후 한차례 도성육신인 하나님의 역사가 전 인류를 모두 더 현실적이고 더 실제적이고 더 아름다운 시대로 이끌어들어간 것이다. 율법ㆍ규례의 시대를 끝마쳤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실제적이고 정상적인 하나님을, 공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을, 경영 계획 사역을 펼치고 인류의 비밀과 귀숙(歸宿)을 전시하는 하나님을, 인류를 창조하고 경영 사역을 끝마치는 하나님을, 몇천 년이나 숨은 하나님을 인류에게 공개하여, 막연한 시대를 철저히 끝마치고 전 인류가 하나님의 얼굴을 찾고 구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시대를 끝마치고 전 인류가 사탄을 섬기던 시대를 끝마치고 전 인류를 하나의 참신한 시대로 완전히 이끌어들어간 것이다. 이런 사역은 모두 육신 중의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을 대체하여 역사한 성과이다. 하나님이 육신 중에서 역사해야, 그를 따르는 사람이 다시는 있을 듯 말 듯한 그런 것들을 찾고 구하지 않고 모색하지 않게 되며, 다시는 막연한 하나님의 뜻을 추측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이 육신 중에서 한 사역을 확장할 때, 그를 따르던 그 사람들은 그의 육신 중에서 하였던 사역을 다 각종ㆍ각파에 전할 것이고, 그의 모든 말씀을 전 인류의 귀에 전할 것이다. 무릇 그의 복음을 받는 사람이 듣는 것은 모두 그의 역사한 사실일 것이며, 사람이 직접 목도하고 직접 들은 것이고 사실이지 뜬소문이 아니다. 이런 사실은 모두 그가 사역을 확장하는 증거이자 사역을 확장하는 방법이다. 만일 사실의 존재가 없다면 그의 복음이 각방(各方) 각국에 널리 전파될 수 없다. 사실이 없고 다만 사람의 상상뿐이라면 영원히 전 우주를 정복하는 사역을 할 수 없다. 영은 사람이 접촉하지 못하고 사람이 보지 못한다. 영의 역사는 사람에게 더 많은 증거와 역사의 사실을 남겨둘 수 없으므로,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참모습을 볼 수 없으며, 영원히 막연하고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을 신앙할 것이고, 영원히 하나님의 모습을 보지도 못할 것이고, 영원히 하나님이 친히 한 말씀을 듣지도 못할 것이다. 사람이 상상한 것은 어쨌든 텅 빈 것이어서,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대체할 수 없다. 하나님의 고유한 성품과 그 자신의 역사는 사람이 맡아 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되어 사람들 가운데 와서 친히 역사해야만 하늘 위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의 역사를 땅에 가져올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나타난 것이고, 사람이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인식하는 가장 이상(理想)적인 방식이며,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달할 수 없는 것이다. 사역을 현재 이 정도까지 하여 이미 가장 좋은 효과에 달하였으며, 이 정도까지 한 것은 이미 사배공취(事倍功就)인 것이다. 육신 중의 하나님은 그 자신의 사역을 이미 그의 전체 경영 사역의 90%를 완성하였다. 이 육신은 그의 모든 사역을 하나의 더 좋은 발단으로 이끌어들어갔고, 이 육신은 그의 모든 사역을 다 총결하고 또한 다 공포하였으며, 게다가 최후 한차례의 철저한 보충까지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다시는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제4단계의 사역을 할 리가 없고, 다시는 하나님이 세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되는 이 기묘한 사역이 있을 리도 없다.

육신 중에서의 매 단계 역사는 그의 전체 시대의 사역을 대표하는 것이지, 사람과 마찬가지로 어느 한 시기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의 최후 한차례 도성육신의 사역이 끝남은 결코 그의 사역이 전부 다 진행되었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육신에서 한 그의 사역은 전체 시대를 대표하는 것이지 그가 육신에서 역사하는 이 기간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며, 다만 그의 전체 시대의 사역을 그가 육신에 있는 기간에 다 한 다음 각방(各方)에 확장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그의 직분을 다 한 다음, 그는 그의 이후의 사역을 그를 따르는 사람에게 부탁한다. 이래야 그의 전체 시대의 사역이 연속될 수 있다. 사역이 전 우주 각지에 확장될 때에야 도성육신의 전체 시대의 사역이 완전히 끝났다고 할 수 있다. 도성육신이 하는 사역은 새 시대를 전개하는 사역이며, 그의 사역을 잇는 사람은 그에게 쓰임받는 사람이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모두 육신의 하나님의 직분 내의 사역이니, 결코 이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만일 하나님 도성육신이 역사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낡은 시대를 끝마칠 수 없고 새로운 시대도 가져올 수 없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얼마간의 본분 내의 사역 즉 사람이 할 수 있는 사역일 뿐, 하나님을 대표하여 사역할 수 없다. 오직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완성해야지, 이 밖에 누구도 그의 사역을 대체할 수 없다. 물론 내가 한 말은 모두 도성육신의 사역에 비추어 말한 것이다. 이번의 도성육신이 먼저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 한 단계 사역을 한 다음, 또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 더 많은 사역을 하는데, 이런 사역의 목적은 바로 사람을 정복하기 위한 것이다. 한 방면은 도성육신이 본래부터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 데다가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는 그의 더 많은 사역을 더하니, 그에 대한 사람의 견해는 더욱 일반적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그에 대하여 관념이 가득 쌓인 이 사람들 가운데서 정복의 사역을 한다. 사람이 그를 어떻게 대하든지, 그가 직분을 다 한 후에는 모든 사람이 그래도 다 그의 권세 아래에 굽히게 된다. 이 역사 사실은 중국 사람 가운데서 표현될 뿐만 아니라 전 인류가 정복되는 경과도 모두 이러할 것임을 대표한다. 이 사람들의 몸에서 달한 효과는 즉 전 인류의 몸에서 달할 효과의 예표이다. 심지어 그의 이후의 역사 효과는 이 사람들 몸에서 한 역사 효과를 더욱 초과할 것이다. 육신 중의 하나님의 역사는 기세 드높은 것이 아니고 연무가 감도는 격도 아니라 아주 실제적이다. 하나면 하나, 둘이면 둘, 어떤 사람에게도 감추지 않고 어떤 사람도 기만하지 않는다. 사람이 본 것은 모두 조금도 거짓이 없는 것이고, 사람이 얻은 것도 모두 실제적인 인식과 진리이다. 사역이 끝날 때에 사람은 그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이 있게 되고, 또한 진심으로 추구하는 그 사람들은 모두 관념이 없게 된다. 이것은 중국 사람 몸에서의 그의 역사 효과일 뿐만 아니라 전 인류를 정복하는 그의 역사 효과도 대표한다. 왜냐하면 이 육신, 이 육신의 역사, 이 육신의 모든 것은 전 인류의 정복 사역에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의 사역에 유리하고 앞으로도 그의 사역에 유리하다. 이 육신이 전 인류를 정복하는 것이고 역시 전 인류를 얻는 것이다. 그의 역사는 전 인류가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을 아는 가장 좋은 역사이다. 사람이 하는 사역은 다만 유한한 범위를 대표한다. 하나님이 사역을 하는 데는 어느 한 사람에게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향해 말씀하는 것이고 그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을 향해 말씀하는 것이다. 결국을 선포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결국을 선포하는 것이지, 어느 한 사람의 결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어느 한 사람도 차별 대우 하지 않고 또한 어느 한 사람과도 불쾌히 지내지 않는다. 그는 전 인류에 대하여 역사하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이번의 도성육신은 이미 전 인류를 각기 종류대로 하였고 이미 전 인류를 심판하였고 전 인류를 위하여 적합한 귀숙을 안배하였다고 한다. 비록 하나님이 중국에서만 사역을 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그는 이미 전 우주의 사역을 다 해결하였다. 그는 전 인류의 사역이 다 확장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 단계 한 단계 말씀할 수 없고 한 단계 한 단계 안배할 수 없다. 그러면 너무 늦지 않겠는가? 현재는 이후의 사역을 충분히 앞당겨 완성할 수 있다. 역사하는 이는 육신 중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는 무한한 범위의 사역을 유한한 범위에서 한 다음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을 다하게 한다. 이것은 그의 역사하는 원칙이다. 그는 사람과 한 시기만 함께 생활할 뿐, 전체 시대의 사역이 다 끝날 때까지 사람을 동반할 수는 없다. 바로 그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는 미리 이후의 사역을 다 예언해놓고 이후에 이 말씀대로 전 인류를 각기 종류대로 한다. 그의 말씀대로 전 인류는 그의 한 단계 한 단계의 역사에 진입하는데, 누구도 벗어나지 못하고 이것에 따라 실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후에는 말씀이 시대를 인도하는 것이지 영이 시대를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육신 중에서 할 사역은 반드시 육신에서 해야 한다. 만약 하나님의 영이 직접 한다면 효과에 달할 수 없다. 설사 하였다 하더라도 별로 큰 의의가 없고 최종에 가서도 설득력이 없다. 모든 피조물은 조물주가 하는 사역이 도대체 의의가 있는지, 하는 사역이 도대체 무엇을 대표하는지, 하는 사역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다 알고 싶어하며,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 도대체 권세가 가득한지, 지혜가 가득한지를 알고 싶어하고, 그가 하는 사역이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의의 있는 사역인지를 알고 싶어한다. 그가 사역을 하는 것은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이고 사탄을 패배시키기 위해서이며 역시 그가 만물 중에서 그 자신의 증거를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그가 하는 사역은 꼭 상당히 의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의 육체는 사탄에게 패괴된 것이며, 육체는 가장 심하게 속임을 받았고, 육체는 심히 피해를 입은 대상이다. 하나님이 친히 육신에서 역사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구원의 대상이 육체에 속한 사람이고 또한 사탄도 사람의 육체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사탄과의 싸움이 사실은 사람을 정복하는 사역이지만 사람은 동시에 또 구원받을 대상이다. 이래서 말씀이 육신 되어 역사하는 것이 너무나 필요하다. 사탄이 사람의 육체를 패괴시켜 사람도 곧 사탄의 화신으로 되고 하나님이 패배시킬 대상으로 되었다. 이리하여, 사탄과 싸우고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은 모두 땅에 있다.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이 되어 사탄과 싸워야 하는데, 이것은 가장 현실적인 사역이다. 그가 육신 중에서 역사하는 것은 사실 역시 육신 중에서 사탄과 싸우는 것이며, 육신 중에서 역사하는 것은 그의 영계에서의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는 그의 영계에서의 사역을 전부 땅에 실제화하였다. 정복하는 것은 그를 거역하는 사람이고, 패배시키는 것은 그를 적대시하는 사탄의 화신이며(물론 역시 사람이다), 최종에 가서 구원을 받는 것도 역시 사람이다. 이리하여, 사탄과 실제적인 싸움을 하여 그를 거역한 그와 같은 외각이 있는 사람을 정복할 수 있도록, 사탄에게 피해를 입은, 그와 같은 외각이 있는 사람을 구원할 수 있도록, 그가 하나의 피조물의 외각을 가진 사람으로 되는 것이 더욱 필요하였다. 그의 원수는 사람이고 정복할 대상은 사람이며 구원할 대상도 역시 피조된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반드시 사람으로 되어야 하였다. 이러면 그의 사역은 매우 편리하게 되고, 사탄을 패배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류를 정복할 수도 있고 더욱이 인류를 구원할 수도 있다. ‘육신’은 비록 정상적이고 실제적이지만 평범한 육신이 아니고 인성만 있는 육신이 아니라 인성도 있고 신성도 있는 육신이다. 이것은 그와 사람과의 다른 점이며, 이것은 하나님 신분의 표징이다. 이러한 육신이라야 그의 하려는 사역을 할 수 있고, 육신의 하나님 직분을 다할 수 있으며, 사람들 가운데서의 그의 사역을 철저히 완성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 가운데서의 그의 사역은 영원히 일편 공백일 것이고 영원히 하나의 빈틈일 것이다. 설사 하나님이 사탄의 영과 싸울 수 있고 또한 이긴다 하더라도, 패괴된 사람의 옛 성정은 영원히 해결되지 못하고, 그를 거역하고 대적하는 사람은 영원히 그의 권세 아래에 진실로 복종할 수 없다. 즉 그가 영원히 인류를 정복할 수 없고 영원히 전 인류를 얻을 수 없다. 땅의 사역이 해결되지 않으면 그의 경영은 끝날 수 없으며, 전 인류는 안식에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이 안식에 들어갈 수 없으면, 이러한 경영 사역은 영원히 결과가 없을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도 따라서 소실될 것이다. 비록 그의 육신은 권세를 지니지 않았지만 그가 한 사역은 효과에 달하였다. 이것은 그의 사역의 필연적인 추세이다. 그가 권세를 지니고 있든 권세를 지니고 있지 않든,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할 수 있기만 하면 하나님 자신이다. 육신이 얼마나 정상이고 보통이든지 간에 그가 해야 할 사역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육신은 하나님이지 사람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육신이 사람이 하지 못하는 사역을 할 수 있는 까닭은 바로 그의 내부 실질이 어느 한 사람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신분이 어느 한 사람과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 육신이 인류에 대하여 아주 중요한 까닭은 그는 사람이고 더욱이 하나님이기 때문이며, 그는 평범한 육신 중의 사람이 하지 못하는 사역을 할 수 있기 때문이며, 그는 그와 함께 땅에서 생활하는 패괴된 사람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이지만 도성육신인 하나님은 인류에 대하여 말하자면 가치가 있는 어느 한 사람보다도 더욱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의 영이 하지 못하는 사역을 할 수 있으며, 그가 하나님의 영보다 더욱 하나님 자신의 증거를 할 수 있으며, 그가 하나님의 영보다 더욱 철저하게 인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육신이 비록 보통이고 정상이지만 그의 인류에 대한 공헌과 인류 생존에 대한 의의를 말하자면 아주 보배로운 것이다. 이 육신의 실제 가치와 의의는 어느 한 사람도 짐작할 수 없는 것이다. 육신이 비록 직접 사탄을 멸할 수 없지만 그는 역사하는 방식으로써 인류를 정복하고 사탄을 패배시켜 철저히 그의 권세 아래에 굴복시킬 수 있다. 바로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되었기 때문에 그는 사탄을 패배시킬 수 있고 인류를 구원할 수도 있다. 그는 사탄을 직접 멸하지 않고 말씀이 육신 되어 역사하면서 사탄에게 패괴된 인류를 정복한다. 이러면 피조물 가운데서 그 자신의 증거를 더 잘 할 수 있고 또한 패괴된 사람을 더 잘 구원할 수 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이 사탄을 패배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탄을 멸하는 것보다 더욱 증거가 있고 더욱 설득력이 있다. 육신 중의 하나님은 사람이 조물주를 아는 데에 더 유리하고, 피조물 가운데서 그의 증거를 더 잘 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