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리스도를 알아가다

목차

제5장 반드시 하나님의 도성육신 방면의 진리를 인식해야 한다

3 도성육신의 역사와 영의 역사는 어떤 구별이 있는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육신 중에서 역사하는 데는 비록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운 많은 곤란이 있지만 최종에 육신이 역사하여 달하는 효과는 그래도 영이 직접 역사하는 효과를 훨씬 초과한다. 육신이 역사하는 데는 비록 상당히 많은 애로가 있고 영과 같은 위대한 신분이 있을 수 없고 영과 같은 비범한 행사도 있을 수 없고 더욱이 영과 같은 권세도 있을 수 없지만 눈에 띄지 않는 이 육신의 역사 실질은 영이 직접 역사하는 실질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이 육신 자체를 놓고 말하자면 모든 사람의 필요이다. 구원받는 사람에 대하여 말하면 영의 사용 가치는 육신의 사용 가치보다 훨씬 못하다. 영의 역사는 전 우주에 보급되고 산천 호수에 파급될 수 있으나, 육신의 역사는 그와 접촉하는 각 사람과 더욱 효과적으로 관련될 수 있고, 또한 형상이 있는 육신은 더욱 사람의 이해와 신임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더욱 깊게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실제 행사에 대한 인상을 더욱 깊게 할 수 있다. 영의 역사는 신비 막측하여 범속한 사람이 예측하기 어렵고 보아내기 더욱 어려우며, 다만 근거없이 상상할 뿐이다. 육신의 역사는 정상적이고 실제적이며 또한 풍부한 지혜가 있으며, 범속한 사람이 직접 목도할 수 있는 사실이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이 역사하는 지혜를 직접 깨달을 수 있어, 완전히 풍부한 상상을 펼칠 필요는 없다. 이것은 육신의 하나님이 역사하는 정확성과 실제적 가치이다. 영은 다만 사람들이 보지도 못하고 상상하기도 어려운 얼마간의 일을 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영의 깨우침, 영의 감동, 영의 인도이다. 하지만 대뇌 사유가 있는 사람에 대하여 말하자면, 영의 이런 역사는 사람에게 명확한 뜻을 줄 수 없고, 다만 하나의 감동이나 대체적으로 비슷한 뜻만 줄 수 있을 뿐 언어로 지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육신에서의 역사는 이와 크게 다르다. 육신이 역사하는 데는 정확한 말씀의 인도가 있고 명확한 뜻이 있고 명확한 요구 목표도 있으므로, 사람이 모색할 필요도 없고 상상할 필요도 없으며 더욱이 추측할 필요도 없다. 이것은 육신이 역사하는 명확성인데, 영의 역사와 크게 다르다. 영의 역사는 다만 일부 유한한 범위에만 적응될 수 있을 뿐, 육신의 역사를 대체할 수 없다. 육신이 역사하여 사람에게 요구하는 정확한 목표와 사람이 인식을 얻는 실제 가치는 영이 역사하는 정확성과 실제적 가치를 훨씬 초과한다. 패괴된 사람에 대하여 말하면, 오직 정확한 말씀, 명확한 추구 목표, 볼 수 있고 더듬을 수 있는 역사만이 가장 가치 있는 역사이다. 오직 현실의 역사와 적절한 인도만이 사람의 비위에 맞을 수 있고, 오직 실제적 역사만이 사람을 패괴되고 타락된 성정에서 구원해낼 수 있다. 이런 것은 오직 도성육신인 하나님만이 달할 수 있고, 오직 도성육신인 하나님만이 사람을 패괴되고 타락된 옛 성정에서 구원해낼 수 있다. 영은 비록 하나님의 고유한 실질이지만 이러한 사역은 오직 육신에 의해야만 할 수 있다. 단지 영으로 하여금 단독으로 역사하게 한다면 역사 효과에 달할 수 없다. 이것은 환히 밝혀져있는 사실이다. 비록 이 육신으로 인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원수로 되었을지라도 이 육신이 그의 사역을 다 끝마칠 때에는 그와 적대되던 그 사람들이 더는 그의 원수가 아니라 오히려 그의 증인이 되는데, 그에게 정복된 증인이 되고 그와 합하고 그와 갈라지기 아쉬워하는 증인이 된다. 그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에 대한 육신이 하는 사역의 중요성을 알게 할 것이다. 사람은 사람의 생존 의의에 대한 이 육신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은 사람의 생명이 자라남에 대한 이 육신의 실제 가치도 알게 될 것이고 더욱이 이 육신이 상상외로 사람이 떠나기 어려운 생명 샘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된 육신이 비록 그의 신분ㆍ지위와 크게 다르고 그의 실제 신분과 사람이 보기에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듯하지만 하나님의 고유한 형상을 지니지 않고 하나님의 고유한 신분이 없는 이 육신은 하나님의 영이 직접 할 수 없는 사역을 해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도성육신의 고유한 의의와 가치인데, 이 의의와 가치가 바로 사람이 받아들일 수도 없고 시인할 수도 없는 것이다. 비록 사람이 모두 하나님의 영에 대하여 우러러보는 태도를 취하고 하나님의 육신에 대하여 내려다보는 태도를 취하더라도 사람이 어떻게 보든 어떻게 여기든 육신의 실제 의의와 실제 가치는 영의 실제 의의와 실제 가치를 훨씬 초과한다. 물론 이것은 다만 패괴된 인류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진리를 찾고 구하며 하나님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각 사람에 대하여 말하면, 영의 역사는 사람에게 감동이나 묵시만 줄 뿐이며, 기묘막측하고 상상하기 어려운 신기(神奇)한 감만 줄 뿐이며, 위대하고 비범하고 사람이 모두 앙모하면서도 달하지 못하고 닿지 못하는 느낌만 줄 뿐이다. 사람과 하나님의 영은 아득히 멀리 서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마치 매우 멀리 떨어져있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서로 같을 수 없는 듯하고, 마치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간격이 있는 듯하다. 사실상 이것은 다만 영이 사람에게 주는 착각일 뿐이다. 이 착각은 다만 영과 사람이 동류가 아니기 때문이고, 영과 사람이 영원히 한 세계에서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이며, 또 영은 사람이 구비해야 할 어떠한 것도 구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에 대하여 말하면 영은 사람의 필요가 아니다. 왜냐하면 영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사역을 직접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육신의 역사는 사람에게 실제적인 추구 목표를 주고, 사람에게 명확한 말씀을 주며, 사람에게 ‘실제’ ‘정상’적인 감각을 주고, 사람에게 ‘비미’하고 ‘평범’한 감각을 준다. 사람이 비록 두렵게 느끼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래도 상당히 접촉하기 쉬운 것이다. 사람이 그의 얼굴을 볼 수 있고 그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므로 아득히 멀리 서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이 육신이 사람에게 주는 감각은 가까운 것이지 아득히 먼 것이 아니며, 난측한 것이 아니라 볼 수 있고 접촉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육신은 사람과 동일한 세계에 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도성‘육신’인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직접 영의 방식으로써, 영의 신분으로써 구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영은 사람이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접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영의 각도로써 직접 사람을 구원한다면 사람은 그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으며, 만일 하나님이 입은 하나의 피조된 사람의 외각이 아니라면 사람은 이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여호와의 구름을 접근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사람은 전혀 그를 접근할 수 없으며, 오직 그가 피조된 사람으로 되어야만, 즉 그가 그의 ‘도’를 그가 되려는 육신 중에 담아야만 이 ‘도’를 친히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의 몸에 만들 수 있으며, 사람이 직접 그의 도를 들을 수 있고 그의 도를 볼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그의 도를 얻을 수 있으며, 이것으로써 사람이 완전히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되지 않았다면, 무릇 혈기에 속하는 사람은 아무도 이 지극히 큰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없고 또한 어느 한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한다면, 사람은 모두 격살 당할 것이고, 또는 사람이 하나님을 접촉할 수 없음으로 인하여 사탄에게 철저히 노략될 것이다. 첫 번째 도성육신은 사람을 죄에서 속량해내었고 예수의 육신에 의하여 사람을 속량해내었는데, 바로 사람을 십자가 위에서 구원한 것이다. 하지만 사탄의 패괴 성정은 여전히 사람 안에 존재한다. 두 번째 도성육신은 더는 속죄제로 되지 않고, 죄에서 속량해낸 그 사람들을 철저히 구원해내고, 죄 사함을 받은 그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이탈할 수 있게 하고, 완전한 정결함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성정 변화에 달하여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이탈할 수 있게 하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한다. 이래야 사람이 완전히 거룩하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도성육신의 비밀 (4)≫에서 발췌

『만일 하나님의 영이 직접 사람에게 말씀한다면, 사람은 모두 ‘음성’ 앞에 순복하게 되고, 말씀하여 드러낼 필요없이 사람은 모두 엎드러지게 된다. 마치 바울이 다메섹의 길에서 빛 중에 엎드러진 것과 같다. 만일 하나님이 여전히 그렇게 한다면, 사람은 말씀의 심판에 의해 자기의 패괴를 인식하고 구원을 받는 목적에 영원히 달할 수 없다. 오직 도성육신만이 말씀을 친히 각 사람의 귀에 전할 수 있어 귀 있는 그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그의 말씀을 듣게 하고 모두 그의 말씀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이래야만 말씀이 달한 효과이다. 영이 나타나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실제적이고도 비범한 사역에 의해야만 사람의 깊은 곳에 다년간 숨었던 그런 옛 성정을 완전히 폭로해낼 수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인식하게 하고 변화가 있을 수 있게 하는 데에 달한다. 이런 것은 모두 도성육신의 실제적인 사역이다. 실제적으로 말씀하고 실제적으로 심판한 후에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는 효과에 달한다. 이것이야말로 도성육신의 권세이고 도성육신의 의의이다. 바로 도성육신의 권세를 나타내고 말씀이 가져온 사역 효과를 드러내며 영이 육신에 왔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말씀하여 사람을 심판하는 방식에 의해 그의 권세를 나타낸다. 육신은 비록 보통이고 정상 인성의 외각이지만 말씀이 달한 효과에 의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그에게 권세가 가득함을 보게 하고 그가 하나님의 자신임을 보게 하며 그의 말씀이 바로 하나님 자신의 발표임을 보게 한다. 이것으로써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하나님의 자신이고 또한 도성육신인 하나님 자신이어서 누구도 범할 수 없고 아무도 그의 말씀의 심판을 초과할 수 없고 어떠한 흑암 세력도 그의 권세를 초과할 수 없다는 것을 보게 한다. 사람이 그에게 순복하는 것은 모두 그의 ‘도’가 된 육신으로 인한 것이며, 모두 그의 권세로 인한 것이고 그의 말씀의 심판으로 인한 것이다. 말씀으로 된 육신이 가져온 사역은 곧 그가 가지고 있는 권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도성육신의 비밀 (4)≫에서 발췌

『심판하는 것은 패괴된 사람이고 육체에 속한 사람이지 직접 사탄의 영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심판 사역은 영계에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가운데서 진행하는 것이다. 사람 육체의 패괴를 심판하는 사역을 오직 육신 중의 하나님만이 하기에 가장 적합하고 오직 육신 중의 하나님만이 하기에 가장 자격이 있다. 만일 하나님의 영이 직접 심판한다면 각 방면을 다 돌볼 수 없고 또한 사람이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영은 사람과 대면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점만으로도 즉시 효과를 보는 데에 달할 수 없고 더욱이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불가촉범의 성품을 환히 보게 할 수도 없다. 오직 육신 중에서의 하나님이 인류의 패괴를 심판해야만 사탄을 철저히 패배시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상 인성이 있는 사람이지만 육신 중에서의 하나님은 사람의 불의를 직접 심판할 수 있다. 이것은 그의 본래부터 거룩한 표징이자 뭇사람과 다른 표징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능히 사람을 심판할 자격이 있고 조건이 있다. 그에게 진리가 있고 공의가 있기 때문에 사람을 심판할 수 있다. 진리가 없고 공의가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심판할 자격이 없다. 만일 하나님의 영이 이 사역을 한다면 사탄을 전승하는 것이 아니다. 영은 본래부터 속된 인간보다 높고 크며, 하나님의 영은 본래부터 거룩하며, 본래부터 육체보다 낫다. 영이 직접 이 사역을 하면 사람의 모든 패역을 심판할 수 없고 사람의 모든 불의를 드러낼 수도 없다. 왜냐하면 심판 사역은 역시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관념에 의하여 하는 것이고, 사람은 영에 대하여 본래부터 관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은 사람의 불의를 더 잘 드러낼 수 없고, 더욱이 사람의 불의를 투철하게 드러낼 수도 없다. 도성육신인 하나님은 그를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의 원수이다. 그에 대한 사람의 관념과 대적을 심판하는 것에 의하여 인류의 패역을 모두 드러냈는데, 육신이 하는 사역은 영이 하는 사역보다 달하는 효과가 더욱 뚜렷하다. 그러므로 전 인류를 심판하는 것은 영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이다. 육신 중의 하나님은 사람이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으며, 육신 중의 하나님은 사람을 철저히 정복할 수 있다. 사람은 육신 중의 하나님에 대하여 대적하던 데로부터 순복하는 데에 이르고, 핍박하던 데로부터 받아들이는 데에 이르며, 관념이 있던 데로부터 인식하는 데에 이르고, 저버리던 데로부터 사랑하는 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도성육신인 하나님의 역사 효과이다. 사람은 모두 그의 심판을 받아들이는 것에 의하여 비로소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고, 모두 그의 입에서의 말씀에 의하여 비로소 그를 차츰차츰 알게 되며, 모두 대적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정복되고, 모두 그의 형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그의 생명 공급도 얻게 된다. 이 모든 사역은 육신 중의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지 하나님이 영의 신분으로 하는 사역이 아니다. 하나님 도성육신이 하는 사역은 가장 큰 사역이고 가장 심오한 사역이다. 3단계 역사의 관건은 바로 이 두 단계 도성육신의 사역에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도성‘육신’인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

『……영이 역사하고 말씀이 육신 되지 않고 영이 직접 천둥 치며 말씀한다면 사람이 모두 그와 접촉할 수 없는데, 사람이 그의 성품을 인식할 수 있겠는가? 단지 영이 역사한다면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할 수 없다. 오직 도성육신에 의하여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나고 그의 모든 성품을 육신에 의하여 발표해내야만 사람이 직접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실제로 사람들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고 형상이 있기에 사람이 모두 실제적으로 그의 성품을 접촉하고 그의 소유소시를 접촉한다. 이래야만 사람이 진실로 그를 알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3)≫에서 발췌

『육신 중에서 역사하는 최대의 장점은 그를 따르는 그 사람들에게 정확한 말씀을 남길 수 있고 정확한 부탁을 남길 수 있고 인류에 대한 그의 정확한 뜻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그 후에 그를 따르던 사람이 비로소 그의 육신 중에서의 모든 사역과 전 인류에 대한 그의 뜻을 이 도를 받아들이는 각 사람에게 더 정확하고 더 실제적으로 전해줄 수 있다. 육신 중의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해서야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하고 함께 생활하는 사실을 참으로 실현하게 되었으며, 사람이 모두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하나님이 친히 한 말씀을 듣는 이 소망을 실현하게 되었다. 도성육신인 하나님은 ‘여호와의 뒷모습만 인류에게 나타내던’ 시대를 끝마쳤고 인류가 막연한 하나님을 신앙하던 시대도 끝마쳤다. 특히 최후 한차례 도성육신인 하나님의 역사가 전 인류를 모두 더 현실적이고 더 실제적이고 더 아름다운 시대로 이끌어들어간 것이다. 율법ㆍ규례의 시대를 끝마쳤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실제적이고 정상적인 하나님을, 공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을, 경영 계획 사역을 펼치고 인류의 비밀과 귀숙(歸宿)을 전시하는 하나님을, 인류를 창조하고 경영 사역을 끝마치는 하나님을, 몇천 년이나 숨은 하나님을 인류에게 공개하여, 막연한 시대를 철저히 끝마치고 전 인류가 하나님의 얼굴을 찾고 구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시대를 끝마치고 전 인류가 사탄을 섬기던 시대를 끝마치고 전 인류를 하나의 참신한 시대로 완전히 이끌어들어간 것이다. 이런 사역은 모두 육신 중의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을 대체하여 역사한 성과이다. 하나님이 육신 중에서 역사해야, 그를 따르는 사람이 다시는 있을 듯 말 듯한 그런 것들을 찾고 구하지 않고 모색하지 않게 되며, 다시는 막연한 하나님의 뜻을 추측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이 육신 중에서 한 사역을 확장할 때, 그를 따르던 그 사람들은 그의 육신 중에서 하였던 사역을 다 각종ㆍ각파에 전할 것이고, 그의 모든 말씀을 전 인류의 귀에 전할 것이다. 무릇 그의 복음을 받는 사람이 듣는 것은 모두 그의 역사한 사실일 것이며, 사람이 직접 목도하고 직접 들은 것이고 사실이지 뜬소문이 아니다. 이런 사실은 모두 그가 사역을 확장하는 증거이자 사역을 확장하는 방법이다. 만일 사실의 존재가 없다면 그의 복음이 각방(各方) 각국에 널리 전파될 수 없다. 사실이 없고 다만 사람의 상상뿐이라면 영원히 전 우주를 정복하는 사역을 할 수 없다. 영은 사람이 접촉하지 못하고 사람이 보지 못한다. 영의 역사는 사람에게 더 많은 증거와 역사의 사실을 남겨둘 수 없으므로,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참모습을 볼 수 없으며, 영원히 막연하고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을 신앙할 것이고, 영원히 하나님의 모습을 보지도 못할 것이고, 영원히 하나님이 친히 한 말씀을 듣지도 못할 것이다. 사람이 상상한 것은 어쨌든 텅 빈 것이어서,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대체할 수 없다. 하나님의 고유한 성품과 그 자신의 역사는 사람이 맡아 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 되어 사람들 가운데 와서 친히 역사해야만 하늘 위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의 역사를 땅에 가져올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나타난 것이고, 사람이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본래 모습을 인식하는 가장 이상(理想)적인 방식이며,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달할 수 없는 것이다. 사역을 현재 이 정도까지 하여 이미 가장 좋은 효과에 달하였으며, 이 정도까지 한 것은 이미 사배공취(事倍功就)인 것이다. 육신 중의 하나님은 그 자신의 사역을 이미 그의 전체 경영 사역의 90%를 완성하였다. 이 육신은 그의 모든 사역을 하나의 더 좋은 발단으로 이끌어들어갔고, 이 육신은 그의 모든 사역을 다 총결하고 또한 다 공포하였으며, 게다가 최후 한차례의 철저한 보충까지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다시는 ‘도성육신인 하나님’이 제4단계의 사역을 할 리가 없고, 다시는 하나님이 세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되는 이 기묘한 사역이 있을 리도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패괴된 인류는 도성‘육신’인 하나님의 구원이 더욱 필요하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