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정직한 사람이 되는 작은 체험
3월 말의 어느 날, 리더는 예배 시간에 어떤 형제가 경찰에 잡혀 고문을 받다가 가장 약해진 순간 어쩔 수 없이 형제자매 두 명을 팔았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그 형제는 매우 후회하고 자책했으며, 하나님의 심판과 폭로의 말씀을 통해 자신이 실패한 근본적인 원인을 깨닫고 참된 회개를 했다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하면서 리더는 우리에게 그 형제의 체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과연 참된 간증이라 볼 수 있는지 각자의 생각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긴장해 추측했습니다. ‘왜 이런 주제로 이야기하라고 하는 거지? 누가 문제를 보는 통찰력이 있는지 보려는 것인가? 그 형제는 순간의 연약함으로 형제자매를 팔아먹는 과오를 저질렀지만, 나중에 자기 자신에 대해 진정으로 알게 되었고, 참된 회개를 했다고 했으니 그것도 좋은 간증에 해당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확신이 없어서 먼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했습니다. 괜히 먼저 말했다가 잘못 말하거나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하면 제가 너무 부족해 보일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형제자매들은 한 명씩 자기 생각을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자매의 관점이 저와 비슷했고 저도 속으로 그 자매의 의견에 동의했습니다. 근데 바로 뒤에 또 다른 자매는 그 형제가 이미 하나님을 배반한 유다가 되었으니 그것은 간증이 될 수 없으며, 하나님을 증거하는 효과를 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몇몇 형제자매들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런 체험은 참된 간증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여러 명이 같은 의견을 조리 있게 말하니 저도 무엇이 맞는지 헷갈렸습니다. 그때 리더는 이런 체험이 참된 간증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습니다. 몇몇 형제자매들이 손을 들었지만 저는 확신이 서지 않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속으로 ‘손을 잘못 들면 안 돼. 괜히 잘못 들면 내 자질이 굉장히 부족해 보이고 통찰력이 없어 보이지 않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리더는 손을 들지 않은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순간 ‘큰일 났네. 손을 들지 않은 사람들이 틀렸나 보다. 그러지 않으면 리더가 이렇게 물어볼 리가 없잖아?’라는 생각에 저는 얼른 손을 들었습니다. 심장이 쿵쾅거렸고 과연 손을 든 것이 맞는지 헷갈렸습니다. ‘난 그것도 간증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확신은 없어. 나는 왜 충분히 생각해 보지도 않고 손을 들었지?’ 사실 처음에는 그냥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려고 했습니다. 다들 자기 생각을 발표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차분하게 생각해 봤습니다. 이야기 속 형제는 참된 회개를 했으니 간증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저는 손을 잘못 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의 진짜 생각을 다시 말하고 싶었지만, 확실하게 뭐가 맞는지 몰라서 ‘내가 정답을 말하면 몰라도 틀리면 리더가 나를 어떻게 볼까? 체험에 깊이가 없고 자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자질이 부족해 보이면 육성 가치가 없다고 할 텐데. 그러면 앞으로 하나님 집에서 나는 지위도 미래도 보장받을 수 없어. 그리고 여기 형제자매들도 많은데, 틀리기라도 하면 내 체면도 말이 아닐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한참 고민하며 몇 번이나 말하려고 했지만, 결국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에 리더는 이러한 사례도 참된 간증으로 성립된다고 했습니다. 또한 이렇게 연약해 하나님을 배반했다가 심판과 형벌을 겪고 참된 회개를 한 체험은 좋은 간증이라며, 이는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믿는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신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많은 형제자매에게 동기부여가 된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은 사람이 어느 정도로 패괴되었는지 아시기에 진심으로 회개하고 뉘우치며 하나님께 돌아온다면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며, 이런 간증은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하고, 사탄에게는 수치를 주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리더는 우리에게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가늠하지 않으니 깨달음이 순수하지 못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각자의 견해를 말해 보라고 했을 때, 이 체험에 문제가 있다고 추측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넘겨짚으며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것은 매우 간사하고 약아빠진 행동이라고 말했습니다. 리더는 또 차분하게 어떤 일이든 자기 생각과 관점이 있어야 하며, 옳고 그름을 떠나 최대한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사람됨의 기본이라고 교제했습니다. ‘사람됨의 기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정말 괴로웠습니다. 리더의 말이 맞았습니다. 설령 틀리더라도 솔직한 말을 하는 것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보다 나았습니다. 최소한 자기 생각과 입장을 가져야 하며, 그런 모습이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솔직하게 말하지 않은 제가 미웠습니다. 제 생각을 말하면 되는 짧은 십여 분 동안 저는 간사하게 행동했습니다. 진리를 행하지 않고 사람됨의 기본을 버렸습니다. 그것은 말 한마디를 잘못하거나 일 한 가지를 잘못한 것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실패한 것이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묵상하며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사람으로서 처신할 때는 바른길을 걸어야지, 그릇된 길을 가서는 안 된다. 무엇이 그릇된 길이겠느냐? 하나님을 믿으면서 늘 옹졸하게 굴고, 수작을 부리며 잔머리를 굴리는 것이다. 또 자신의 패괴와 결함, 단점, 자질이 부족한 문제 등을 숨기고 늘 사탄의 철학으로 일을 처리하며, 겉으로 보이는 일에서 하나님과 리더에게 아첨을 하면서 진리를 실행하지 않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지도 않는 것이다. 늘 눈치를 보면서 ‘최근 내 모습이 어떨까? 모두 내 편을 들어 줄까? 내가 한 좋은 일들을 하나님은 알고 계실까? 알고 계신다면 나를 칭찬해 주실까? 나는 하나님 마음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 가치가 있을까?’라고 한다. 그 뜻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복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늘 이러한 것들만 생각하니 그릇된 길 아니겠느냐? 이는 전부 바른길이 아니다. 그럼 바른길이란 무엇이겠느냐?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여 진리를 얻고 성품 변화를 이루는 것, 이것이 바로 바른길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하나님은 사람됨과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반드시 올바른 길을 가고, 진리를 추구하고 실행하는 것을 중시하라고 경고하시며 일깨워 주셨습니다. 또한, 올바른 일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늘 자신의 부족함을 가릴 생각과 자신을 더 돋보이게 할 생각만 하고, 어떻게든 리더에게 잘 보이려고 하며, 교회에서 자신의 지위가 어느 정도 되는지 걱정하고, 리더와 하나님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를 신경 쓰는 것은 사악하고 비뚠 길을 걷는 것이라 했습니다. 제 모습이 바로 하나님께서 드러내신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그 체험이 참된 간증에 속하는지 분명히 알지 못했으면서도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고 오히려 분위기를 살피면서 잔머리를 굴리며 다른 사람의 생각을 넘겨짚었습니다. 그리고 리더가 왜 손을 들지 않았느냐고 물었을 때, 저는 손을 들지 않은 것이 틀린 쪽일 것이라 추측했습니다. 대부분 사람이 성립되지 않는 간증이라고 말하자 저는 바로 의견을 바꿔 흐름을 따랐습니다. 저는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사람과 다를 것이 없었고, 드러낸 것은 온통 사탄의 간사한 성품이었습니다. 제가 솔직한 말 한마디 하는 것도 그렇게 어려워한 이유를 반성해보니 다 체면 때문이었습니다. 대답을 잘못해 리더에게 능력 없는 사람으로 비쳐 주목받지 못하거나 육성 받지 못할까 봐 걱정했던 것입니다. 또 자주 틀리면 본분도 교체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제 체면과 자리를 지키기 위해 부족한 자질은 감추고, 훌륭한 자질을 갖고 진리를 깨달아 모든 일을 다 꿰뚫어 보이는 사람으로 위장했습니다. 어떤 문제든지 다 정답을 말하고, 리더의 생각에 잘 맞는 사람이 되어 리더에게 잘 보이고, 리더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으며 형제자매들도 제 얘기를 들으면 인정하고 탄복하길 바랐습니다. 이렇게 살펴보니 저는 정말 생각이 복잡하고 간사한 사람이었습니다. 매우 단순한 일에서도 저는 복잡하게 생각하고, 솔직한 마음과 생각을 말하는 것도 어려워했습니다. 오히려 분위기를 살피며, 교활한 방법으로 하나님 집에서 얻은 지위와 앞날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저는 올바른 길이 아닌 사악하고 비뚠 길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 정도의 인식에만 머물렀을 뿐, 더 깊이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6월경, 하나님께서 이렇게 교통하시는 내용을 들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마주한다. 즉, 말하고 일할 때 언제나 눈치를 보고, 이야기할 때는 어조와 분위기를 살피며, 진실한 말, 진심이 담긴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빈말이나 도리만 말할 줄 알고, 자신의 눈에 평범하게 보이는 이 사람을 기만하고 속인다. 그가 말하는 방식은 뱀이 움직이는 방식과 같아서 직접적으로 말하는 법 없이 구불구불 말을 돌린다. 또 그가 말하는 방식과 방향은 덩굴줄기와도 비슷해서 지지대를 타고 위로 올라가는 식이다. 네가 그에게 누군가에 대해 말하며, 그 사람은 자질이 괜찮으니 발탁해도 되겠다고 하면 그는 얼른 그 사람이 어떤 면이 좋고 어떤 행동이 있다고, 어떤 것들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네가 그에게 누군가가 별로라고 하면 그는 또 얼른 그 사람이 어떻게 나쁘고 악한지, 교회에서 어떻게 교란하고 방해하는지 이야기한다. 실상을 물어보면 그는 대답하지 않고 우물거리며 네가 결론을 내리기를 기다렸다가 네 말투를 듣고 네 생각을 떠본다. 그가 하는 말에는 듣기 좋은 말, 아첨하는 말, 비위를 맞추는 말 외에 아무것도 없으며, 그의 입에서 진심이 담긴 말은 한마디도 들을 수 없다.』(<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진리를 멸시하고 공공연하게 원칙을 위배하며 하나님 집의 안배를 무시한다(2)> 중에서) 하나님의 이런 교통을 듣고 마음에 크게 가책을 느꼈습니다. 몇 달 전에 간사함을 부리며 분위기에 따라 말하던 제 모습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그리스도와 직접 접촉하진 않았지만, 하나님이 마련해주신 상황에서 저는 하나님의 감찰을 받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제가 돋보이게 하면서 리더에게 잘 보이려 하고, 항상 의중을 떠보고 눈치를 살피며 흐름을 따라갔습니다. 솔직한 말과 진심에서 나오는 어린 말은 하나도 없이 다 기만하고 감추는 말뿐이었습니다. 제 말과 행동 방식은 하나님께서 역겨워하시고 싫어하시는 뱀과 같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눈치를 살피면서 행동하면 리더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고, 대답만 잘해서 좋은 인상을 남겨주면 하나님 집에서 저의 자리를 보존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정말 너무 어리석었고, 하나님을 기만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감찰하심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저의 자질, 분량, 모든 생각, 어떤 일에 대한 저의 견해와 관점 등을 모두 꿰뚫고 계십니다. 제가 눈앞에 있는 사람을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사람 앞에서 보이는 일시적인 언행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대하는 저의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며 제가 매일 실행하고 살아내는 모습, 매일 본분을 이행하는 자세 등 모든 사소한 부분까지 감찰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정말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인지를 보셨던 것입니다. 일시적인 허상은 하나님을 절대 속일 수 없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제가 거짓말하고 간사한 모습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부인하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감찰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부인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건 불신파의 모습이었습니다. 전에 하나님께서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를 멸시하고, 그리스도의 환심을 사려고 아부한다는 교통을 하셨을 때, 저는 그 얘기가 저와 크게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를 접촉한 적도 없으니 그런 사탄 성품은 드러내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한 성품은 꼭 그리스도를 만나야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리더와 있을 때 계속 환심을 사려하고 분위기를 살피며 흐름을 타려고 했는데, 그런 방식과 수법으로 하나님 집에서 자기 지위를 지키려고 한 것도 똑같은 사탄 성품을 드러낸 것이었습니다. 언젠가 제가 그리스도를 만난다면, 이런 성품은 더 뚜렷하게 드러날 것이고,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을 기만하고 대적할 것입니다.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 잘못된 답을 말했지만, 리더는 제가 생각한 것처럼 우리를 책망 훈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틀린 대답을 했다고 해서 자질이 부족하다고 하거나 교체하지도 않았고, 앞으로 양성하지 않을 것이라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리더는 그저 우리의 관점을 물어봤을 뿐이었습니다. 우리의 치우친 면과 부족한 면을 알고 그 부분을 놓고 진리를 교제하며 원칙을 가르쳐 주었고, 우리의 패괴 성품을 지적하며 반성하고 깨닫게 했습니다. 리더가 한 일은 다 우리를 보살펴주고 도와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형제자매 사이에 서로 추측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께는 신실한 본질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신뢰할 수 있고, 하나님이 행한 일은 사람이 흠잡을 수도, 의심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정직하게 대하는 사람을 좋아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훈언 3칙> 중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말씀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은 언제나 진실하게 사람을 대하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한 후 동산에서 먹을 수 있는 열매와 먹을 수 없는 열매를 알려주셨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간단하고 직설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추측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은혜시대에 예수님이 늘 하신 말씀도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였습니다. 이번 단계의 사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진실하고, 마음에서 우러난 말씀이라 정말 다정하고 따뜻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비록 우리의 패괴함을 드러내시는 엄한 말씀도 있지만, 그 말씀은 모두 사실이며, 모두 우리를 정결케 하고 구원하기 위해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태도는 진실하고 투명하며, 가식적인 면이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떤 일이 생기면 먼저 추측하고 연구할 뿐, 정직한 모습이 전혀 없었습니다. 정말 간사하고 비열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타인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하고, 기꺼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매우 좋아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특별히 보살피는데, 내 눈에는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정직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네가 매우 간사한 사람이라면 너는 모든 일과 모든 사람을 경계하고 추측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 대한 너의 믿음 역시 의심의 토대 위에 세워졌을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나는 영원히 인정할 수 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땅의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예전에는 하나님께서 왜 의심이 없고 기꺼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정직하다고 하시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다시 곱씹어보며 조금 깨달았습니다. 정직한 사람은 하나님이나 사람을 의심하지 않는 매우 순수한 사람으로 어떤 일이 생겼을 때 혼자 추측이나 연구, 분석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진리를 구하며, 진리를 깨달으면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하며, 정직한 마음으로 진리를 대합니다. 이런 마음은 정말 귀한 것이고, 그런 모습이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축복하시고 은혜를 주시며, 성령은 이런 사람이 진리를 더 빨리 깨닫고 얻을 수 있도록 역사하시며, 깨우치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이와 반대로 평소에는 솔직한 면이 조금 있고 본분을 조금 이행했더라도 생각이 복잡하고 사람이나 일을 의심하고 경계하며, 심지어 선하시고 사랑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까지 연구하고 의심한다면, 그 사람은 가장 간사하고 음흉한 사람입니다. 그제야 저는 왜 하나님께서 간사한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하셨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실하시니 간사한 자를 혐오하시기에 간사한 사람을 구원하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의 주관적인 추구에 달렸습니다. 간사한 사람은 속내가 복잡하여 사람과 일은 물론 하나님까지 의심하고 연구하고, 분석하고 경계하며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기 바쁩니다. 이런 것들로 가득 찬 사람은 진리를 전혀 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성령께서도 이런 사람에게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간사한 사람은 절대 진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간사한 사람을 온전케 하지 않는다. 네 마음이 정직하지 않고, 네가 정직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영원히 너를 얻을 수 없으며, 너 또한 영원히 진리와 하나님을 얻지 못할 것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다시 저 자신을 돌아봤습니다. 저는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진리를 구하지 않았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굉장히 신경 썼습니다. 심지어 평소 형제자매들과 한가지 문제를 가지고 토론할 때도 그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끔 제가 정확히 꿰뚫어 보지 못한 문제에서 다른 사람이 깨우침을 얻으면 저는 그 사람들의 생각대로 몇 마디 했습니다. 또 제 생각이 있어도 괜히 틀릴까 봐 먼저 말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견해를 들어보고 제 생각이 맞는다고 확인받으면 그제야 제 생각을 말했습니다. 틀린 관점을 말했다가 창피를 당할 수 있으니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을 통해 제가 얼마나 간사하고 마음이 복잡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잘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저는 늘 다른 사람들의 말을 따르거나 분위기를 살피며 큰 흐름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진리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실, 제가 자질이 부족하고 진리를 잘 모르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감추고 포장하며, 간사하게 어물쩍 넘어가려는 모습이 잘못된 부분이었습니다. 이렇게 계속 가면 절대로 진리를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계속 이렇게 살면 너무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고,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이런 문제가 생기면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지, 어떤 원칙을 지켜야 하는지를 찾고 구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솔직하게 대한다는 것은, 먼저 마음속에서 개인적인 바람을 내려놓는 것이다. 하나님이 너를 어떻게 대하든 네가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한다. 그 후에 어떤 결과가 생길지에 대해서는 생각할 필요도, 고려할 필요도 없다. 생각한 것을 바로 말하되 속셈을 갖지 말고,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말하지도 말아야 한다. 사람에게 자신의 뜻이 너무 많으면 말을 할 때 잔머리를 굴리게 된다. ‘나는 그 일이 아니라 이 일에 대해 말할 거야. 나는 골라서 말할 거야.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있거든.’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속셈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 말을 꺼내기도 전에 마음속으로 이미 이런저런 생각을 다 해 보고 수차례 가공해 보고 머릿속에서 여러 번 여과해 봤으니, 입에서 나오는 말에는 사탄의 간계를 품고 있다. 다시 말해, 네가 한 말에 속셈과 개인의 목적이 들어 있다면, 그것은 솔직한 말이 아니고 마음속 말도 아니며, 이는 솔직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진리를 멸시하고 공공연하게 원칙을 위배하며 하나님 집의 안배를 무시한다(2)> 중에서) 『어떤 일이든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털어놓고 솔직히 임하는 것, 이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유지해야 하는 유일한 상태이자 모습이다. 네가 털어놓지 않는다고 해도 사실 하나님은 네 마음을 전부 볼 수 있다. 하나님은 네가 털어놓든 그렇지 않든 모두 알고 있다. 이것을 밝히 알지 못한다면 어리석은 것 아니겠느냐? 그럼 어떻게 해야 총명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모든 것을 감찰하고, 무엇이든 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하나님이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살핀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정한다면 총명한 사람은 마땅히 솔직하고 순수하게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현명한 행동이다. … 방식을 따지고 머리를 거치며 생각을 하면 문제 된다. 마음속으로 늘 ‘어떻게 말해야 하나님이 나를 대단하게 보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실까? 어떻게 말하는 게 적절한 거지? 좀 포장하고 돌려 말하자. 방식도 따지고. 그럼 하나님이 날 대단하게 보실지도 모르잖아.’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그것을 모를 것 같으냐?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하나님은 전부 알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사실대로 말하면 얼마나 간단하고 사는 게 홀가분하겠느냐. 그럼 하나님은 너라는 사람을 정직하고 순수하며 솔직한 마음을 지녔다고 할 것이다. 이는 더없이 값진 일이다. 솔직한 마음과 정직한 태도를 지니고 있으면 언젠가 도를 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 해도 하나님은 과오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많은 꿍꿍이를 품고 마음속으로 늘 뭔가 생각하며 가공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게 아니라 그에게만 순종하게 한다(2)> 중에서) 하나님을 대하거나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자 가장 기본적인 것은 성의 있는 자세로 대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는 감추지도 포장하지도 말아야 하며, 연구하거나 가공하지 않으며 마음을 하나님께 완전히 열어 놓아야 합니다. 말할 때도 자기만의 속셈이나 목적을 가지거나 어떤 방식도 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 자기 생각과 관점을 말해야 합니다. 잘 모르는 일은 모른다고 인정하고, 순수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감찰하시며 사람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저의 자질 수준과 진리 이해도, 체험의 깊이, 통찰력 등을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공개된 상태이기 때문에 스스로 부족한 점을 가리고 다 알고 있는 사람인 척 포장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어리석은 짓입니다. 저는 늘 잔머리를 굴리며 다른 사람의 생각을 넘겨짚었고, 제 생각을 말할 때조차 빙빙 돌려 말하느라 머리도 아프고 마음도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그것은 하나님께 미움받는 행동이었습니다. 이제야 저는 순수하고 솔직한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시고, 본인도 홀가분하게 살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실 때, 그 사람의 자질이나 발표한 관점의 옳고 그름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과 진리를 대하는 태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내는 성품을 보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답이 틀리더라도 솔직하게 말하는 정직한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은 사람의 어리석고 자질이 부족한 면을 보지 않으시고, 그것으로 정죄하지도 않으십니다. 하지만 간사하게 굴고 분위기를 살피면, 정답을 말해도 그 과정에서 드러낸 간사한 성품은 모두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고 역겨워하십니다. 저는 꼭 정직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나님이 마련해주신 상황에서 하나님께 마음을 털어놓고, 사람들과 어울릴 때도 솔직하게 대하며, 있는 그대로 깨달은 만큼 말하며, 조금씩 가식적이고 간사한 성품을 해결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한번은 리더에게 교회 찬양에 관한 문제를 물어보았는데, 우리는 가사 중 두 줄 내용이 실제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리더는 찬양 가사를 본 후, 그 가사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그냥 그 노래는 가치가 없고, 말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저는 곧바로 “네, 그러네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대답을 하고 나니 제가 또 간사하게 굴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리더가 말하는 문제점을 전혀 알아차리지도 못했고,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덩달아 맞는다고 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고 그냥 묻어가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입만 열면 거짓말하는 자신이 역겨웠습니다. 저는 이번만큼은 그냥 어물쩍 넘어가지 않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도 생각났습니다. 『정직하다는 것은 일을 하거나 말을 함에 있어 무언가를 보태지 않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훈언 3칙> 중에서) 이 또한 제가 진입해야 할 원칙이었습니다. 저는 방금 했던 거짓말을 솔직하게 말하며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리더에게 처음에는 두 구절에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 그 노래가 가치 없다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리더는 차분하게 그 가사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짚어주며 핵심 내용이 명확하지 않고 너무 산만해 노래로 쓸 수 없다고 했습니다. 리더의 교제를 통해 저는 그 노래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됐고, 마음도 한결 편했습니다. 어떠한 언행을 하거나 관점을 얘기할 때, 포장할 필요 없이 단순하게 있는 그대로 말하는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평소 형제자매들과 문제를 상의할 때도, 저는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솔직하게 제 관점을 말하고, 잘 모르는 것은 물어보며 잘못된 것은 고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실행하니 마음은 훨씬 더 편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정직한 사람의 기준에 훨씬 못 미치지만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었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또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며, 그 목표를 향해 노력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