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본분을 지키다

한국 양무

예전에 형제자매들이 무대에서 춤추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보고 너무 부러웠습니다. 언젠가 저도 무대에 서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울까 생각했습니다. 뜻밖에도 그 날은 금방 찾아왔습니다.

2018년 5월, 저는 <하나님나라의 축가> 합창 프로그램 훈련에 참가했습니다. 노래나 춤을 배운 적이 없는 저는 막 훈련을 시작했을 때 너무 힘들었습니다. 찬양을 부를 때는 너무 긴장해서 표정도 경직되고, 춤을 출 때는 동작도 여간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기죽지 않았고, <하나님나라의 축가> 합창 앨범이 모든 인류에게 하나님의 오심을 증거한다는 생각만 하면 무척 흥분되었습니다. 속으로 언제나 ‘반드시 최선을 다해 제대로 찬양을 부르겠다’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몇 달이 지나자 저는 훈련 프로젝트에 제법 익숙해졌고, 종종 형제자매들의 표정 연습을 지도해 주기도 하면서 마음이 들떴습니다. 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표정, 동작이 여러 모로 돋보이니 정식 촬영 때는 분명 나를 앞줄에 세우겠지. 고향의 형제자매들이 영상에서 나를 보면 얼마나 감격하고 기뻐할까? 분명 날 부러워하고 높이 평가해 줄 거야.’ 매번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서 본분 이행에도 에너지가 넘쳤습니다. 훈련 후 힘들어서 땀을 뻘뻘 흘리고 온몸이 쑤시더라도 게을리하지 않았고, 표정, 동작을 제대로 연습하지 못해 앞줄에 서지 못하면 얼굴을 알릴 기회가 적어지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열심히 연습해야 했습니다. 촬영이 다가오자 감독은 저희에게 각자 서는 자리를 배치해 주었습니다. 명단을 펼쳐 제 이름을 찾았는데, 7번째 줄에 제가 배치된 걸 보고 눈이 둥그래졌습니다. ‘어떻게 날 이렇게 뒤에 배치했지? 감독이 실수한 게 아닌가? 표정이랑 동작만 봐도 난 잘하는 편인데. 내가 형제자매들의 표정 연습을 지도한 적도 있어. 아무리 봐도 난 앞줄에 서야 하는데 왜 뒷줄에 배치했지? 내가 찍히지 않으면 영상에 내가 나오는 장면도 없을 테고, 그럼 형제자매들도 나를 못 보는 거잖아. 얼마나 아쉬워!’ 이런 생각을 하니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그 후 훈련에서 저는 찬양을 불러도 신나지가 않고, 춤을 춰도 기운이 나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분함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특히 어떤 자매의 표정과 동작은 평범한데도 3번째 줄에 선 걸 보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내 어디가 저들보다 못하지? 뭣 때문에 저들은 앞줄에 서는데 나만 뒷줄에 배치한 거야?’ 저는 질투심에 휩싸였고,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형제자매는 평소 훈련 때 저보다도 훨씬 뛰어났지만 저보다 훨씬 뒷줄에 배치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찬양 연습을 할 때의 표정은 마치 자리는 조금도 상관없다는 듯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저는 좀 답답했습니다. ‘저들은 뒷줄에 서면서도 순종하며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괴롭고 순종하지 못할까? 내가 너무 비이성적인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자 마음에 가책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진리를 구해 스스로를 반성하지 않고 이런 자리 배치에 여전히 납득하지 못했습니다.

며칠 후, 감독은 몇몇 사람들의 자리를 다시 조정해 주려고 하였는데, 저는 남몰래 기뻐하며 ‘이번에는 나를 좀 더 앞줄에 배치해 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를 보고 나니 울고 싶어졌습니다. 저는 맨 마지막 줄에 배치되었고, 게다가 맨 가장자리였습니다. 카메라에 담기기도 힘든 자리인 데다가, 더욱 믿을 수 없는 것은 연습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어떤 자매는 저보다 앞줄에 선 것이었습니다. 마음속에 심한 폭풍우가 몰아치며 마음을 다잡기 어려웠습니다. ‘프로그램 촬영에 참여하려고 얼마나 고생하며 표정, 동작을 연습했는데, 왜 나한테 구석 자리를 줘서 얼굴을 알릴 기회조차 없게 하지? 그저 남 좋은 일만 시키는데, 내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진작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열심히 연습하지 않는 건데.’ 그 당시 저는 너무 괴로웠고,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훈련 기간 중에, 갑자기 다리를 삐게 되었습니다. 속으로 ‘다리를 다쳤으니 때마침 쉴 수 있겠군. 매일 그렇게 힘들게 연습할 필요 없어. 어차피 뒷줄에 서면 잘하는지 못하는지도 잘 안 보이는데 뭐 하러 그렇게 열심히 해?’ 그 뒤 며칠간 저는 항상 늦게 도착해서 중간에 나가고, 훈련 때는 가끔씩 옆에서 쉬기도 했습니다. 몇몇 자매들이 저의 이런 상태를 보고 일깨워 주었습니다. “이제 곧 촬영인데, 며칠간 연습 안 해서 모두와 동작이 달라지면 어떡해요? 우리가 전체 프로그램에 발목을 잡을 순 없잖아요.” 자매의 말에 저는 조금 찔리고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맞아, 20일만 지나면 촬영이야. 열심히 연습하지 않으면 분명 전체 진도를 망치게 될 거야. 이건 방해하고 교란하는 거잖아.’ 저는 제가 이렇게까지 타락했다는 사실에 좀 겁이 났고, 반성하면서 깨달았습니다. ‘내가 뒷자리로 배치돼서 얼굴이 안 나오는 걸 알자마자 매일 이치 따지고 대항했어. 본분 이행에도 기운이 안 나서 매일 건성으로 때우면서 보냈지. 이건 하나님께 대항하고 맞서는 거야. 지금 다리 상태가 점점 심해지는 걸 보니 어쩌면 하나님이 날 징계하시는 게 아닐까? 내가 이렇게 계속 대항하다가는 눈도장은 고사하고 나중에는 무대에 서지 못할 수도 있어. 본분마저 잃게 되겠지.’ 그날 밤 저는 고통 속에서 자책하며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그동안 제가 뒷자리에 배치된 것 때문에 너무 괴로워서 계속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불만으로 가득 차서 본분도 건성으로 대충 하고 잔꾀를 부렸습니다. 제가 너무 패역해서 하나님께 실망만 시켜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런 내적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저를 이끌어 주세요.”

그러다가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위와 체면, 명예와 관련되는 일이기만 하면 모두가 욕망이 꿈틀거려, 늘 두각을 드러내고 이름을 날리며 앞에 나서고 싶어 한다. 또 아무도 양보하길 원치 않아 늘 서로 빼앗으려 든다. 하나님 집에서는 그래선 안 되기에 빼앗으려니 계면쩍고, 가만히 있으려니 또 달갑지 않아 한다. 누군가 두각을 드러내면 질투하고 미워하고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면서 ‘어째서 나는 두각을 드러낼 수 없는 거야? 왜 늘 그 사람만 앞에 나서는 일을 하는 거냐고? 왜 내 차례는 오지 않는 거지?’라며 불평한다. 자제하려고 해도 자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한동안은 괜찮아지지만, 나중에 이런 일이 다시 임하면 또 이겨 내지 못한다. 이는 분량이 작은 모습 아니겠느냐? 사람이 이런 상태에 빠진 것은 굴레에 갇힌 것 아니겠느냐? 이는 사탄의 패괴 본성에 결박된 사람의 모습이다. 사람이 이러한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면 자유와 해방을 얻은 것이 아니겠느냐? 너희는 곰곰이 생각해 보아라. 사람이 이러한 내적 상태에 빠지지 않으려면,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나고 이러한 것들로 인한 곤혹과 얽매임에서 빠져나오려면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하겠느냐? 사람은 무엇을 얻어야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겠느냐? 먼저 이런 것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 명예와 이익, 지위 같은 것들은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고 속박하며 잔혹하게 해치고 타락시키는 도구이자 방식이다. 이론적으로 먼저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 밖에도 사람은 이런 것들을 포기하고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 그렇지 않으면 다툴수록 더 어두워지며 질투심과 증오심은 더 커지고, 더 얻고 싶어질 것이다. 얻고자 할수록 얻지 못할 것이고, 얻지 못할수록 더욱 증오할 것이며, 증오할수록 네 내면은 더욱 어두워질 것이다. 내면이 어두워질수록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할수록 쓰임 받기 힘들어진다. 이것이 바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계속 제대로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면 서서히 도태되고 만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진심을 바치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나자, 깨닫는 바가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은 저의 내적 상태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합창 프로그램에 참여한 일을 돌이켜 보면, 저는 훈련 프로그램에 점차 익숙해지고 종종 형제자매들의 표정 연습을 지도하기까지 해서 그들보다 제가 훨씬 잘한다고 생각했고 촬영 때 앞줄에 설 줄 알았습니다. 영상에 나와 얼굴을 알리려고 의욕적으로 본분을 이행했고, 힘들고 피곤한 것도 모르고 열심히 표정과 동작을 연습했습니다. 하지만 자리가 점점 더 뒷줄로 밀려나면서 얼굴을 알리고자 하는 욕망이 물거품이 되자 저는 감독의 자리 배치에 마음속으로 반항했습니다. 앞줄에 서는 형제자매들을 질투하며 인정하지 않고, 오해하며 불공평하다고 원망까지 했습니다. 하나님께 따지고 맞서며 본분 이행도 소극적으로 태만했고, 괜히 그렇게 열심히 연습했다며 후회까지 했습니다…. 저의 이런 속셈과 태도를 반성하자 자신이 본분을 이행한 목적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기회를 통해 얼굴을 알려 남들의 부러움과 우러름을 사려고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제가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위해 고생한 것이 아닙니까? 정말 이기적이고 비열했습니다! 합창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높여 주셨기 때문인데, 양심과 이성이 없는 저는 어떻게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 하나님을 흡족하게 할지 고민하지 않고, 매일 얼굴을 알리려고만 하고, 안 되니까 괴로워하고 원망하며 내적 상태가 점점 어두워졌습니다. 결국 본분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증오, 혐오만 샀으니 이것은 사탄의 굴레에 빠진 것이 아닙니까! 무대 뒤의 형제자매들을 생각하니, 그들은 무대에 올라 얼굴을 내밀지도 못하는데도 불평은커녕 착실하게 자신의 본분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들 형제자매와 비교하니 저는 정말 부끄러워졌습니다. 저에게 정말 분별력이 없었다고 느끼면서 하나님께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고, 다시는 이렇게 거역하고 싶지 않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는 버리는 법과 내려놓는 법, 다른 이를 추천해 그가 두각을 나타내게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두각을 드러낼 수 있는 일, 면이 서는 일만 생기면 늘 다투거나 빼앗으려 하지 마라. 물러서는 법을 배우되 본분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묵묵히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라. 체면과 지위를 버리고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수록 마음이 평안해지고 여유가 생길 것이며, 내적 상태도 점점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다투고 빼앗을수록 네 내적 상태는 점점 어두워진다. 못 믿겠다면 시험해 보아라! 이런 내적 상태를 돌려놓고 싶다면, 또 이런 것들에 통제되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먼저 내려놓고 버려야 한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진심을 바치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저에게 실천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얼굴을 알리고 싶은 생각이 다시 올라오면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신을 버리고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아야 하며, 마음속으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요구대로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고 동작과 찬양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제가 <하나님나라의 축가> 합창에 참여하게 된 것을 생각해 보면, 제가 어느 자리에 놓이든 모두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앞에 섰는지 또는 뒤에 섰는지로 본분 이행에 충성을 다하는지를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사람의 진심이며, 사람이 진리를 실행해 하나님께 순종하는지를 보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한 저는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져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더 이상 거역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어디에 서든, 설령 맨 뒷줄에 서서 아무도 못 보더라도 제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 하나님을 흡족게 하겠습니다!”

나중에 연습에서 저는 마지막 두번 째 줄에 섰습니다. 이렇게 연습하다가 결국 카메라도 못 받고, 남들의 우러름도 못 받을까 낙담될 때면 얼른 하나님께 저의 마음을 평온히 해 달라고 기도드렸고, 어떻게 찬양을 불러야 하나님의 요구대로 모든 가사의 정서를 표현해 낼 수 있을지, 어떻게 춤춰야 모든 동작이 표준적이고 역동적일지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이 부분에 마음을 쓰자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것 같았고 더 이상 자리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기묘하게도, 촬영이 가까워질 무렵, 저의 자리는 자꾸만 앞줄로 밀려나오게 되었고, 또 세부 장면의 촬영들도 추가되었습니다. 저에게 이런 훈련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 며칠 동안 세부 장면을 촬영할 때, 저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찬양을 부를 때마다 어떻게 감정에 몰입해야 매 장면마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효과를 보여서 본분에 아쉬움을 남기지 않을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촬영 때, 저는 맨 앞줄에 배치되었고, 카메라와 너무 가까워서 믿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자신이 너무 영광스럽게 느껴졌고, 마음속으로 계속 하나님께 감사하며 꼭 이 장면을 잘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맨 앞줄로 가서 신나 있을 때, 그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저를 비추고, 카메라는 저를 향했습니다. 어떤 자매는 달려와서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고, 화장을 고쳐 주고, 머리 손질까지 해 줬습니다. 이때 저는 갑자기 만인이 주목하는 스타가 된 것 같아 흥분과 감격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맨 앞줄에 서다니 꿈에도 상상 못 했어. 이 장면을 다 찍고 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날 볼까? 그럼 아주 유명해지겠지….’ 생각할수록 설렜는데, 그런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저의 내적 상태가 뭔가 이상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제가 또 얼굴을 알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얼른 하나님께 자신을 버리게 해 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그러나 기도 후에도 저는 스스로를 억제하지 못하고, 마음도 평온해지지 않아, 두세 번 촬영해도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감독은 저희에게 집중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저는 감독이 제 표정이 안 좋아 보여 다시 뒷줄로 보낼까 봐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얼굴을 알릴 기회가 또 없어지지 않습니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저는 항상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지 말고, 어떻게 감정을 조절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지 고민해야 했습니다. 이렇게 제 마음속에서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한편으로는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야지 생각했다가 한편으로는 얼굴을 알릴 기회를 잃을까 봐 걱정했습니다. 결국 저는 생각하면 할수록 긴장했고, 연속 5번을 촬영해도 집중이 안 돼서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갔습니다. 촬영 후, 다른 자매들은 흥분하며 느낀 바를 교제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자매는 감동해 눈물까지 흘렸는데, 저는 아무래도 신나지 않고, 낙담만 돼서 서둘러 촬영 현장을 도망치듯 나왔습니다.

가는 길에 마지막 장면을 잘못 찍었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끼고 자책했습니다. 다른 형제자매들은 하나님께 정직한 마음, 순수한 미소를 바쳤지만, 제 머릿속은 온통 자신이 어떻게 얼굴을 알릴 수 있을지만 생각했으니, 제 표정과 동작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효과를 전혀 내지 못했고, 제가 이행한 본분은 하나님이 칭찬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한바탕 울고 싶어져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그 장면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저는 정말 다시는 얼굴을 알리고 싶지 않고, 맨 뒤에 놓이기를 바랍니다. 아무도 볼 수 없고, 카메라도 안 찍히는 구석에 놓아 주세요. 제가 순수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열심히 찬양을 불러드렸다면 그 순간 제 마음은 평안하고 든든하며 이렇게 가책을 받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게 너무 늦었습니다. 남겨진 죄책감을 만회할 수 없어졌습니다.” 저는 생각할수록 괴롭고 본분 이행에 큰 아쉬움을 남긴 것 같았습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왜 그렇게 우쭐대며 얼굴을 알리고 싶어 했는지, 육을 버리고 진리를 실행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는지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네가 좋아하는 것, 중요시하는 것, 숭배하는 것, 부러워하는 것, 매일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들은 너 자신의 본성을 대표하며, 네 본성 안에 불의를 좋아하는 성분이 있고, 심각한 경우 그 본성이 극도로 사악하여 구제 불능임을 보여 준다. 이렇게 자신의 본성을 해부해야 한다. 즉, 삶 속에서 네가 좋아하는 것, 버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봐야 한다는 것이다. 네가 일시적으로 누구에게 잘해 준다고 해서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네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야말로 네 본성 안에 있는 것이다. 네 뼈를 부러뜨릴지라도 너는 그것을 좋아하여 절대 버리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변화하기 어려운 점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품 변화에 대해 가져야 할 인식> 중에서) 『사람의 본성적인 취향을 파헤쳐야 할 뿐만 아니라 본성에 속하는 다른 부분들도 파헤쳐야 한다. 예를 들어, 사람이 일을 바라보는 관점, 살아가는 방식과 목표, 살아가는 가치관과 인생관, 진리와 관계된 모든 일들에 대한 관점과 생각 등은 모두 사람의 영혼 깊은 곳에 놓인 것들로, 성품 변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품 변화에 대해 가져야 할 인식>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저는 사람의 생각, 취향, 추구하는 바는 모두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며, 인간의 본성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 어디에 집중했고, 무엇을 추구했는지 꼼꼼히 반성해 보았습니다. 무대 위의 자리가 계속해서 앞으로 조정되고 저를 찍는 장면이 점점 많아졌을 때 제 머릿속은 온통 드디어 앞에 서서 얼굴을 알리고 남들의 우러름과 부러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맨 첫 줄에 섰을 때는 자신이 스타라도 된 것 같아 성취감을 느꼈고, 자신을 드러내고 뽐내고 싶은 생각을 참지 못하고, 카메라에 최고의 표정을 남겨서 저를 아는 형제자매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영원한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겨지길 바랐습니다. 제가 명예와 지위를 너무 사랑했고, 이런 생각이 제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또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탄의 패괴 성품은 사람의 내면에 깊이 뿌리박혀 사람의 생명이 되었다. 그러니 사람이 추구하는 것과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사탄의 패괴 성품에 지배받아 사람은 무엇을 자신의 이상(理想), 소망, 포부, 삶의 목표와 방향으로 삼겠느냐? 긍정적인 사물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냐? 우선, 사람은 늘 유명인이나 스타가 되고 싶어 하고, 크게 이름을 날리고, 얼굴을 알려 가문을 빛내고 싶어 한다. 이런 것들은 긍정적인 사물이겠느냐? 긍정적인 사물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 것들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는 법칙에도 어긋난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원하느냐? 위인, 유명인, 위대한 사람,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사람을 원하겠느냐?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원하느냐? 착실하게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되어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 사람의 본래 위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구하고 하나님께 의지해야만 패괴 성품을 해결할 수 있다> 중에서) 『네가 언제나 위대해지는 것, 고상해지는 것, 존엄성을 갖는 것, 높은 위치에 서는 것을 추구하면, 하나님이 보고 무슨 느낌이 들겠느냐? 하나님은 혐오하고,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네가 위대해지고 고상해지기를 추구할수록, 남보다 뛰어나고 두각을 드러내며 출중해지고 훌륭해지기를 추구할수록 하나님은 너를 역겨워한다. 하나님이 역겨워하는 사람이 되지 마라!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사람의 위치에서 착실하게 일을 해야 한다. 헛된 꿈을 꾸지 말고, 이름을 날리거나 두각을 드러내기를 추구하지 말며, 위인이나 초인이 되는 것, 사람들 속에서 남보다 돋보여 다른 사람의 숭배를 받는 것은 더더욱 추구하지 말라. 이것은 사탄의 길이다. 하나님은 그런 피조물을 원하지 않는다. 최종에 하나님의 사역이 끝났는데도 이런 것들을 추구하는 자들이 있다면, 오직 한 가지 결말, 즉 도태되는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조화로운 협력이 필요하다> 중에서) 하나님이 폭로하신 말씀은 저에게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제가 왜 그렇게 얼굴을 알리고 싶어 하고, 허영심이 그렇게 강했는지를 반성했고, 그 이유는 다 사탄의 교육과 패괴로 인한 결과였습니다. 사탄은 “두각을 나타내다.”, “가문을 빛내라.”, “사람은 높은 곳으로 가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와 같은 독소들을 저에게 주입시켜 잘못된 인생관을 세우게 하고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며 남 위에 서는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보고, 인생의 추구 목표로 삼게 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얼굴을 알려 사람들의 부러움, 우러름을 받으려 했고, 이렇게 사는 것이 남보다 뛰어나고 체면이 서는 것 같아서 명예와 지위를 너무 좋아했습니다. 예전에 학교를 다니거나 사람과 사귈 때를 생각해 보면 항상 사람들 사이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고자 했고, 무슨 일을 해도 앞에 서고 싶고, 머리에 감투를 쓰고 싶어 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괄목상대해 주면 좋아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제가 사람들 사이에 묻혀서 보잘것없는 역할을 맡게 되면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았고 항상 사람들 사이에서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고, 차지하지 못하면 고통스럽고 괴로웠습니다. 이번 합창 프로그램에 참여한 저는 늘 이런 사탄의 독소에 휘둘려 살면서 카메라에 잡혀 남들이 높이 평가해 주기만 바랐습니다. 이런 사상들은 눈에 안 보이는 족쇄처럼 저를 옭아매고, 저의 모든 생각을 지배하여 촬영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을 제 매력을 뽐낼 무대로 여기고, 본분 이행을 제 야심과 욕망을 충족시키는 발판으로 여기며, 속으로는 온통 어떻게 하면 얼굴을 알릴지만 생각하고, 어떻게 해야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 하나님을 흡족게 할지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어찌 하나님을 경외하고 헤아리는 마음이 있겠습니까? 이런 사탄의 독소와 사탄 성품이 해결되지 않으면 기회가 있어도 하나님을 제대로 증거하지 못하고, 본분을 잘 이행해 하나님을 흡족게 하지도 못할뿐더러 결국에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한 죄로 하나님께 미움받고 내쳐질 것입니다.

그 후,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많은 일을 하고 큰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뭔가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착실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은 네가 아주 위대해지는 것도, 존귀해지는 것도, 어떤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도 필요하지 않다. 또 하나님은 너에게서 그 어떤 놀라움을 보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다 필요 없다. 하나님은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속에 새기며 착실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너의 생명이 되고 그 말씀을 살아 내기를 원할 뿐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만족한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조화로운 협력이 필요하다> 중에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고, 이 목표를 향해 추구하면 하나님께서 만족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줄곧 명예와 지위만 추구해서 하나님을 실망시켜드렸습니다. 제가 이렇게 패괴되었는데도, 하나님은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또 번번이 자리 조정을 통해 저의 잘못된 추구 관점을 드러내시고 자신의 사탄 패괴 성품을 인식하게 하여 반성하고 변화될 수 있게 하셨으니, 하나님의 사랑에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더 이상 두각을 나타내 남의 우러름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을 추구하는 것은 저에게 고통만 가져다줄 뿐입니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 죄스럽습니다. 앞으로는 당신의 말씀에 따라 실행하고 저를 어떤 자리에 안배하시든지, 얼굴이 드러나든 아니든 정직한 마음과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 당신을 흡족게 하고 싶습니다.” 나중에 추가 촬영을 하는 동안, 앞줄 또는 뒷줄로 가게 되거나 훈련 때 제가 촬영을 해야 해서 무대에 오를 필요가 없을 때면 마음이 약간 요동치기도 했지만,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을 읽어 마음을 추스르면서 내면의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이따금 주위 자매들이 자리 배치에 영향을 받아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저도 그때마다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저의 체험을 교제하며 도와주었더니 본분 이행에도 보람을 느꼈습니다. 나중에 감독이 저를 앞줄에 세웠을 때, 저는 더 이상 어떻게 하면 멋있게 나올까만 생각하지 않고, 매 장면마다 책임이고 간증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찬양을 부르며 본분을 제대로 이행했습니다. 맨 뒷줄에 서서 “승리의 깃발 들고 하나님을 경축하라! 개선가를 불러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전파하라!”라는 대목을 부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사탄에 의해 이렇게 심하게 패괴된 제가 명예와 지위만 추구하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 하나님을 흡족게 하지 못하고 슬프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꼭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미하고,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하나님께 바쳐서 사탄에게 치욕과 실패를 안겨 주겠다!’라는 마음으로 무대에서 찬양을 부르며 하나님을 찬미했을 때 그 순간 저는 전에 없던 편안함과 즐거움, 정의감을 느꼈고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얼마 후 대형 합창 앨범인 <하나님나라의 축가>가 인터넷에 올라와 형제자매들과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영상을 보았습니다. 많은 하나님의 선민이 감람산 앞에서 꿋꿋하고 자랑스럽게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 환호하며 찬양하고 있다.”를 부를 때 커다란 감동을 받았고 감격의 눈물이 절로 흘러나왔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과정들을 돌이켜 보니, 처음에는 자리 배치의 영향으로 본분에 집중하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제가 앞줄에 서든 뒷줄에 서든 명예와 지위의 속박을 받지 않고 하나의 피조물의 지위에서 자유롭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증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저에게 역사하신 성과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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