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질병의 고통을 겪은 체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행사가 해변의 모래알보다 많고, 내 지혜가 높디높아 모든 ‘솔로몬의 자손’을 능가하지만 사람은 나를 그저 하찮은 의사라고 믿고, 또 사람을 가르치는 무명의 스승이라고 믿는다. 많은 사람이 그저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나의 능력을 빌어 자기 몸에 있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나를 믿는다. 또 많은 사람이 그저 평안과 기쁨을 얻기 위해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내게서 더 많은 물질적 부를 얻어 내기 위해 나를 믿는다. 많은 사람이 오직 이생을 무사히 보내고 내세에 무탈하기를 바라면서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지옥의 고통을 피하고 천국의 복을 얻기 위해 나를 믿는다. 또 많은 사람이 내세에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일시적인 편안함을 위해 나를 믿는다. 내가 사람에게 분노해 원래 사람에게 있던 기쁨과 평안을 거두어 가자 사람은 모두 의심하였다. 내가 천국의 복을 거두고 지옥의 고통을 주자 사람은 분노하였다. 사람이 내게 병을 고쳐 달라고 할 때 내가 모른 척하고 혐오하자, 사람은 내게서 멀리 떠나 더러운 무당을 찾아갔다. 사람이 내게서 얻어 낸 것을 내가 다 거두어 가자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나를 믿는 것은 나의 은혜가 매우 많기 때문이며, 나를 믿으면 이로운 점이 아주 많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중에서) 전에 이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다 사실이라고 말로만 인정했지 제대로 인식하진 못했습니다. 전 그동안 하나님 믿으면서 가정도 직장도 포기하고 헌신했으며, 본분을 이행하면서 적지 않은 고난도 받아서 환난과 고통이 와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배반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큰 병에 걸리자 저는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했습니다. 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은 속셈과 거래가 낱낱이 드러나게 되면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말씀에 완전히 탄복하게 되었고, 제 추구 관점도 조금은 바뀌게 되었습니다.
2018년 7월 어느 날, 왼쪽 가슴에 작은 덩어리가 잡혔습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소염제만 먹으면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나자 병세는 더 심해졌습니다. 밤에는 식은땀이 나고 온몸에 기운도 없는 데다가, 딱딱해진 부위가 너무 아팠습니다. 순간 큰 병인가 걱정하면서도 별것 아닐 거라면서 스스로를 안심시켰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고 교회에서 본분으로 항상 바쁘게 보내니까 하나님이 저를 지켜 주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밤, 자다가 너무 아파서 깼는데 가슴에서 고름 같은 게 나오는 게 심상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급히 남편이랑 같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사 결과, 의사에게서 유방암이라는 진단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어떻게 유방암이지? 난 아직 30대인데, 어떻게 이런 병에 걸릴 수 있지?’ 한편으로는 계속 스스로에게 ‘아닐 거야. 이런 일이 나한테 생길 리 없어. 난 하나님도 믿고, 교회에서 오랫동안 헌신하며 본분도 이행했는데, 하나님이 분명 지켜 주실 거야. 의사가 오진한 게 아닐까.’라고 하며 자신을 위로했습니다. 당시 전 그게 사실이 아니길 바랐습니다. 그날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기억도 안 나고, 제가 넋 나간 것처럼 있으니까 남편이 위로해 주면서 “여긴 작아서 의사들 실력도 별로라 오진할 수도 있어. 큰 병원 가서 다시 검사받자.”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그런 얘길 하니까, 조금 실낱같은 희망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큰 병원에서 검사했어도 결과는 유방암이었습니다. 의사는 암 중후기까지 진행되었다며 약물 치료와 수술을 받아야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심장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정말 암이 맞다면 치료 비용이 얼마나 들지, 치료받다 도중에 죽으면 가족들한테 빚만 남기고 갈 텐데, 남편과 아이는 앞으로 어떻게 생활할지 걱정부터 들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무기력하고 절망적이었습니다.
처음 항암 치료를 받는데 온몸이 다 쑤시면서 아무것도 하기 싫고 온종일 정신이 혼미했습니다. 며칠 후에야 약 기운이 사라지고, 겨우 기운을 좀 차렸습니다.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으면서 많은 걸 포기하고 헌신했어. 예배 한 번 안 빠지고 어려운 상황에도 본분을 다했고, 형제자매들한테 어려움 있으면 먼저 가서 도와주곤 했지. 비록 잘하지는 못했더라도 열심히는 했는데 왜 하나님은 날 지켜 주시지 않는 거지? 앞으로 아무 본분도 이행하지 못하고 곧 죽게 되다니, 하나님이 날 버리시려는 걸까? 항암 치료를 5번이나 더 받고 수술도 받아야 하는데, 그 고통을 어떻게 견뎌야 하나? 몸이 고생하는 건 둘째 치고 혹시 죽어 버리면, 그동안 하나님을 믿은 게 의미가 없어지잖아?’ 이런 생각을 하니 계속 눈물이 났고 한동안 정말 힘들게 지냈습니다. 말씀을 봐도 안 들어오고 기도도 하기 싫고, 영적으로 어둠에 빠져 하나님과 점점 멀어졌습니다.
하루는 리 자매님이 병문안을 왔는데, 고통스러워하며 침울해하는 저를 보면서 교제해 줬습니다. “이렇게 병이 생긴 것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이에요.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 많이 하면서 구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깨우쳐 주실 거예요.” 자매의 교제를 듣고 저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이 이 병을 주신 건 절 버리시려는 게 아니라, 공과를 배우게 하려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자매님이 돌아간 후, 전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렇게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병이 난 뒤로 당신을 오해하고 원망하며 살았습니다. 오늘, 자매님이 일깨워 주셔서 병에 걸린 데는 당신의 뜻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근데 이 상황에서 어떤 공과를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를 이끌어 주세요.”
그 후로도 저는 매일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어느 날, 이런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시련에 직면하는 순간 사랑과 믿음이 사라지고, 기도가 부족해지며, 찬양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시련 속에서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하나님은 다양한 환경으로 사람의 패괴 성품을 다루며, 또 다양한 일을 통해 사람을 드러낸다. 사람을 책망하는 한편 사람을 드러내고 폭로하며 사람 마음속 깊은 곳의 ‘비밀’을 모조리 파헤치고 밝힌다. 수많은 내적 상태를 폭로함으로써 사람이 자신의 본성을 보게 한다. 하나님은 폭로를 통해, 또한 책망, 연단, 형벌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사람을 온전케 하며, 하나님이 매우 실제적임을 알게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실행을 중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 중에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세에 사람을 온전케 하시는 사역은 여러 가지 상황을 통해서 사람의 패괴 성품을 드러내고, 또 말씀의 심판과 폭로를 통해 사람이 자신의 사탄 성품을 깨닫고 진리를 구하고 실행해서 패괴 성품이 정결함 받고 변화받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병을 저에게 허락하신 건 절 버리거나 일부러 괴롭게 하려는 게 아니라, 절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오해하고 의기소침할 게 아니라 순종하고, 이 투병 과정에 진리를 구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인식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니까 전처럼 답답하거나 괴롭지 않았고, 하나님께 순종의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기도를 마치자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는 오직 편안하게 살기만을 바라고, 너의 집에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바람이 불어도 네 몸에는 불지 않고, 모래가 날려도 네 얼굴은 때리지 않으며…』(<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저는 얼른 말씀 책을 가져와 이 말씀을 찾아봤습니다.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려움과 환난, 고통이 조금도 없기를 바란다. 너는 늘 이런 가치 없는 것들만 추구하고, 정작 생명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며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각을 진리보다 앞자리에 놓는다. 너는 너무도 무가치한 사람이다! 네가 돼지처럼 산다면 개돼지 따위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육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는 모두 짐승 아니겠느냐? 영이 없는 죽은 자는 모두 걸어 다니는 송장 아니겠느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얼마나 많이 말했더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행한 사역이 적더냐? 너희 가운데서 너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공급했느냐? 그런데 너는 어째서 얻지 못했느냐? 또 무슨 불평이 있단 말이냐? 네가 얻지 못한 것은 육을 너무 귀하게 여긴 탓이 아니더냐? 네 생각이 너무 사치스러운 탓이 아니더냐? 네가 너무 어리석은 탓이 아니더냐? 너는 이 복을 얻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지 않았다고 원망할 수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을 믿은 뒤 평안만 얻고자 한다. 자식에게 병이 없고, 남편에게 좋은 직업이 있고, 아들이 좋은 배우자를 찾고, 딸이 좋은 남자와 결혼하고, 너의 우마가 밭갈이를 잘하고, 한 해의 농사가 잘되길 바란다. 네가 추구하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너는 오직 편안하게 살기만을 바라고, 너의 집에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바람이 불어도 네 몸에는 불지 않고, 모래가 날려도 네 얼굴은 때리지 않으며, 홍수가 나도 네 집의 곡식은 잠기지 않고, 모든 재난이 너와 무관하길 바란다. ‘하나님의 품속’에서 살고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생활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너처럼 육적인 것만 추구하는 못난 놈에게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영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짐승 아니겠느냐? 아무 대가도 없이 참도를 네게 베풀어 주었는데 너는 추구하지 않는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맞느냐? 진정한 인생을 베풀어 주었는데 추구하지 않는다. 그럼 너는 개돼지 따위가 아니겠느냐? 돼지는 인생을 추구하지 않고 깨끗함을 바라지도 않으며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날마다 배불리 먹고 쿨쿨 잠만 잔다. 참도를 베풀어 주었건만 너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런 돼지 같은 삶을 계속하고 싶으냐? 그런 사람이라면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비루하고 저속하며, 더럽고 음란하게 살면서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으니 너의 일생은 가장 비천한 일생 아니겠느냐? 무슨 낯으로 하나님을 뵙겠느냐? 계속 그렇게 체험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 네게 참도를 베풀어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네가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하나님은 복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제 관점을 정확하게 짚어 내셨습니다. 그동안 저의 믿음 생활을 돌아보면 가족이 평안하고 건강하며 탈 없이 다 순조로울 때는 힘든 줄도 모르고 본분을 적극적으로 이행했습니다. 그러나 암에 걸린 걸 알고 나서는 하나님이 절 지켜 주지 않으셨다고 오해하고 원망했습니다. 또 그간의 헌신을 대가로 하나님과 따졌고, 제가 오랫동안 헌신한 걸 후회하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반하는 상태에 빠져 살았습니다. 병을 통해 드러나서야 제가 헌신하며 본분을 이행했던 목적이 다 진리를 추구하거나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기 위한 게 아니라, 그저 평안하고 복받기 위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거래하고 있었고, 헌신한 대가로 하나님의 축복을 얻고, 금세에는 백배를, 내세에는 영생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암에 걸려서 복은커녕 곧 죽을 것 같으니까 하나님을 공의롭지 않다고 원망했습니다. 정말 인성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믿음 생활을 하면서 전 하나님께 정말 많은 은혜와 축복을 받았고, 하나님의 많은 진리의 양육과 공급도 누렸습니다. 그렇게 많은 걸 주셨는데, 저는 그 사랑에 보답하기는커녕, 병이 생기니 하나님께 조금도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오해하고 원망했습니다. 정말 양심도 이성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병을 저에게 허락하신 것은 복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었던 제 속셈과 잘못된 추구 관점을 드러내고 정결케 하셔서 진리를 추구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하게 하려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애쓰시는 마음을 알게 되니까 정말 후회되고 죄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속으로 ‘내 병이 낫든 안 낫든, 이제 더는 하나님께 비이성적인 요구를 하지 않고, 생사를 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한결 평온해졌습니다. 더 이상 전처럼 걱정되거나 괴롭지 않았고 차분하게 말씀도 보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찾고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순종하게 되니까 다시 항암 치료 받는 게 전처럼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았습니다. 속이 조금 울렁거리긴 했지만 모든 게 정상이었습니다. 다른 환자들도 놀라워하면서 부러워했습니다. 전 그게 다 하나님의 긍휼과 보호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습니다. 치료를 몇 번 하니까, 달걀만 했던 종양이 작아졌고, 그렇게 아프지 않고 진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의사도 회복이 빠르다면서 만약 이대로만 간다면 6주간의 약물 치료만 끝내면 수술은 안 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 얘길 들으니까 어찌나 기쁘던지 계속 하나님께 감사드렸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더 확고해졌습니다. 또한, 진심으로 반성하면서 자신을 알아 가기만 하면 수술하지 않아도 좋아질 것 같았습니다.
3월 어느 날, 마지막 항암 치료를 받으러 갔는데 긴장되기도 하고 기대도 됐습니다. 치료가 끝나고, 의사가 그래도 수술을 받아야 한다며 수술 후에도 2주간 약물 치료와 방사선 치료도 받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 소리에 심장이 철렁하면서 머리가 띵해졌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반성할 만큼 했고, 인식할 만큼 다 했는데 왜 병이 좋아지지 않지? 수술을 받으면 상처가 커서 흉터도 남을 수 있고 약물 치료를 받고 방사선까지 받으면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할수록 씁쓸해지면서 온몸의 힘이 빠지고, 괴로움에 하염없이 눈물만 나왔습니다. 수술 받은 날 밤, 마취가 풀리니까, 수술 자리가 너무 아파서 눈물만 나고 숨도 크게 쉬지 못할 정도라 무기력하고 괴로워 이 큰 고통을 언제까지 받아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괴로워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연단은 모든 사람에게 상당히 고통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자신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여 주고,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자신의 요구를 공개하는 한편, 연단 속에서 사람에게 더 많은 깨우침을 주고, 더 많이 실질적으로 책망하며 훈계한다. 이렇게 사실과 진리를 대조함으로써 사람이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게 하고 진리와 하나님의 뜻을 더 잘 깨닫게 하며, 이를 통해 사람이 하나님을 더 참되고 순수하게 사랑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연단의 사역을 하는 목적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모든 사역에는 그 목적과 의미가 있다. 그는 무의미한 사역을 하지 않고, 사람에게 불리한 사역도 하지 않는다. 연단은 사람을 그의 앞에서 없애 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며, 사람을 멸하여 지옥에 보내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연단 속에서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고, 사람의 속셈과 낡은 관점을 변화시키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변화시키고, 또 사람의 모든 삶을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사람에게 연단은 실제적인 검증이자 실제적인 훈련이다. 오직 연단 속에서만이 사람의 사랑이 본래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연단을 겪어야 참된 사랑이 생기게 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구구절절 제 마음에 와닿아 커다란 감동을 받았습니다. 질병의 고통을 겪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제가 진정으로 제 자신을 알고, 진리를 구해서 패괴 성품이 정결케 되고 변화되길 바라신 것이었습니다. 전에도 복을 위해 하나님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전 그런 속셈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엔 하나님께 사치스러운 요구가 숨어 있었습니다. 제가 반성도 했고 자신에 대해서도 알았으니까 하나님이 이 병을 없애 주시길 바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반성과 인식에는 제 속셈과 불순물이 묻어 있었고, 하나님에게서 얻어 내고 하나님과 거래했으니 진정한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모든 생각을 감찰하시고, 질병의 고통을 통해 다 드러내셔서 제가 더 깊이 반성하고 진정으로 회개하길 바라셨습니다. 이건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이제 당신의 뜻을 이해했습니다. 제 모든 선택과 요구를 내려놓고, 당신이 배치해 주신 상황에서 진리를 구하겠습니다. 절 이끌어 주세요.”
며칠 후에,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 중 어떤 목적과 야심, 저의도 없는 초심을 지닌 자가 있는지 보아라. 설사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본 사람이 몇몇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그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최종 목적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데 있다. … 사람은 늘 마음속으로 이렇게 계산하고, 저의와 야심을 품고, 하나님께 장삿속을 들이밀며 뭔가 얻어 내려고 한다. 다시 말해, 사람의 마음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며, 하나님을 상대로 계산하고, 자신의 결말을 두고 하나님과 ‘이치를 따지며 논쟁한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달라며 하나님께 구두 증거를 구걸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추구하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 장삿속을 들이밀며, 끊임없이 뭔가를 얻어 내려고만 한다. 심지어 갈수록 심해지고 탐욕스러워진다. 사람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동시에, 또 끊임없이 하나님과 논쟁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시련이 임하거나 특정 환경에 처했을 때 항상 나약해지고 일을 태만히 하며,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늘어놓는다. 하나님을 믿는 순간부터 사람은 하나님을 화수분이나 만물 상자로 삼고, 자신을 하나님의 가장 큰 채권자로 간주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복과 약속을 얻어 내는 것이 생득적 권리이자 책무라고 생각하고, 반면 사람을 보호하고 보살피며 사람에게 뭔가를 제공하는 것은 하나님이 다해야 할 책임이라 여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이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표현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이해이자, ‘하나님을 믿는다’는 개념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깊은 이해이다. 사람의 본성과 본질에서부터 사람의 주관적인 추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관련된 것은 하나도 없다. 또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과 연결 짓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단 한 번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려고 생각하거나 그래야 한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람의 이러한 상태를 볼 때, 사람의 본질은 뻔한 것이다. 그 본질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마음씨가 악독하고 음험하고 간사하며, 공평과 공의와 긍정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고, 나아가 비열하고 탐욕스럽다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께 마음을 닫고,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바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태껏 사람의 진심을 보지 못했으며, 사람의 경배를 받지도 못했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말씀을 보면서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제 실제 내적 상태를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하나님을 오래 믿어 왔지만 계속 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거래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데다 교회에서 본분도 이행하고 헌신도 했으니까 하나님께서 저를 아무 탈 없이 보살펴 주고 지켜 주시는 것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암에 걸렸을 때 불평불만을 토로했던 것이고, 그동안 받았던 고난과 헌신을 대가로 하나님께 따졌던 것입니다. 병이 좀 나아졌을 땐 속으로 더 욕심부리며 제가 더 이상 고통을 받지 않게 하나님께서 완전히 낫게 해 주시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제 사치스러운 욕심이 채워지지 않자 마귀 같은 본성이 다시 나왔고, 하나님께 따지면서 원망했습니다. 저의 행동은 하나님 말씀에 고스란히 나와 있었습니다. 『인간성이 없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그들은 편안한 환경에 있거나 취할 이익이 있을 때는 하나님께 고분고분 순종하지만, 일단 자신의 욕망이 좌절되거나 결국 깨지게 되면 즉시 일어나 반항한다. 심지어는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던 ‘착한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험상궂은 망나니로 돌변하여 아무런 이유 없이 지난날의 은인을 철천지원수로 대하기도 한다.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 악마들을 경계 밖으로 몰아내지 않는다면 마음속의 우환이 되지 않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 보니 마음이 찔렸습니다. 전 여태까지 하나님을 저의 하나님으로 경배하거나 순종하지 않았고, 오히려 의사나 피난처로만 여기며 하나님을 이용해 이생의 평안과 훗날의 복을 받는 목적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저의 믿음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적나라한 거래밖에 없었고, 하나님을 이용해 은혜와 복을 얻어 내려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속이고 대적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전 정말 이기적이고 간사하며 하나님이 증오하고 혐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 또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욥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았으며, 뭔가를 얻어 내려고 하지도 않았다. 욥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했던 이유는 만물을 주재하는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 때문이지, 그 자신의 복이나 화 때문이 아니었다. 욥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든 화를 입든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은 변함이 없으므로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의 이름은 찬송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주재로 말미암은 것이고, 사람이 화를 입는 것 역시 하나님의 주재로 인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큰 능력과 권병으로 사람의 모든 것을 주재하고 안배한다. 사람에게 수시로 임하는 화복은 모두 하나님의 큰 능력과 권병의 발현이며, 어떤 관점에서 보든 하나님의 이름은 찬송받아야 마땅하다. 이것이 욥이 일생을 통해 체험하고 깨달은 것이었다. 욥의 이러한 모든 생각과 행실은 하나님의 귀에 들어갔고, 하나님 앞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의 생각과 행실을 중히 여겼으며, 그의 그러한 인식과 마음을 귀하게 여겼다. 그 마음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언제 어디서나 그에게 임하는 모든 것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욥은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요구하는 바가 없었다. 그저 스스로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안배를 기다리고, 받아들이고, 직면하고, 순종할 것을 요구할 뿐이었다. 이것이 바로 욥이 생각하는 자신의 책임이었고, 또한 하나님이 원하는 바였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느낀 게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은혜와 축복을 주실 수도 있고, 심판 형벌, 시련 연단도 주실 수 있는데, 사랑한다고 시련을 주면 안 되는 법이 있겠습니까? 욥을 보면 하나님이 크게 복을 주실 때,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했어도 물질적 부를 탐내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 거두어 가셨을 때,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칭송하면서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 2:10)라고 고백했습니다. 욥은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시든 거두어 가시든 하나님은 공의롭다고 믿었습니다. 욥의 믿음에는 개인의 욕심이 섞이지 않았고, 복들 받든 화를 입든 걱정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든 불평하지 않았고, 피조물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었습니다. 욥의 인성과 이성을 보니 전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이 생명과 모든 것을 주셨는데, 저는 감사하는 마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병에 걸려 아프니까 원망만 하고, 정말 양심과 이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전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하나님에 대해 모르고 제가 서야 할 자리도 모르며, 창조주께 순종하는 법도 몰랐습니다. 그저 제 관념과 상상, 거래하는 관점으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질병의 고통을 당하니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했습니다. 그러고도 하나님께 축복과 은혜를 원하고, 천국에 들어가기를 바랐으니 정말 낯 두꺼웠습니다. 이렇게 패역하고 패괴된 저를 보니까 지금 죽는다 해도 하나님의 공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욥의 체험에서 실천의 길을 알게 됐습니다. 이 병이 얼마나 오래가든, 회복되든 안 되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피조물인 제가 마땅히 갖춰야 할 이성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훨씬 편해졌습니다.
어느새 방사선 치료 날이 다가왔습니다. 다른 환자들 말로는 방사선 치료가 몸에 무리가 많이 간다며 화상까지 입는 경우도 있고 받고 나면 어지럽고 울렁거려서 입맛도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그 얘길 들었을 때, 전 그러지 않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옳지 않은 내적 상태라는 것을 깨닫고서 기도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 찬양이 떠올랐습니다. 『너는 지음 받은 사람인 이상 너를 지은 창조주께 순종해야 한다. 너는 원래부터 너 자신을 주관할 수 없고, 너의 운명을 지배할 본능도 없기 때문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 이상 성결해지고 변화되기를 추구해야 한다.』(<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ㆍ하나님 믿는 자가 추구해야 할 것> 중에서) 저에게 이런 상황이 온 건 하나님이 저를 검증하시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더는 이성 없이 하나님께 요구하거나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할 게 아니라,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매일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하니까 몸 어딘가 불편하긴 했지만 다른 환자들 말처럼 심하진 않았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지켜 주신 것임을 압니다. 방사선 치료가 끝나고 몸 회복도 빨랐고, 정신적으로도 좋아서 형제자매들도 저를 보더니 전혀 암 환자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저는 다시 본분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체험을 기회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 자랐고, 본분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2년이 흘렀는데 그 열 달 동안의 투병 생활을 생각하면, 마치 어제 일어났던 일처럼 생생합니다. 몸은 좀 고생했지만 복을 바랐던 속셈과 잘못된 추구 관점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됐고, 하나님을 믿으면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복을 받든 화를 입든 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피조물이 갖춰야 할 이성입니다. 이런 수확들은 편안한 상황에서는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제게 주신 생명의 재산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