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직한 사람이 되지 못했던 이유
제가 처음 새 신자 양육을 책임졌을 때인데, 동역자 장 자매가 교제할 때 글귀뿐이고 자기 자랑만 하고 사역의 많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어요. 전 이 문제를 리더한테 바로 얘기했죠. 리더가 사실을 알아보고 책임자로 합당하지 않다면서 해임시켰어요. 저도 팀 내 합당하지 않은 사람들을 조정했고, 다들 본분에 어려움을 겪으면 해결해 줬어요. 두 달 후부턴 사역에 자리가 잡히고 다들 본분에 적극적이 됐어요. 어느 날, 리더가 저보고 새 신자 양육에 발전이 있다는 거예요. 동역자 자매들도 제가 실질적 문제를 해결한다고 사역 능력이 좋다고 인정하고,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저한테 묻곤 했죠. 리더한테 능력을 인정받고 동역자들도 절 우러러보니까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역시 전 진리 실제가 있고 실제 사역을 하는 것 같았죠. 그러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갔어요. 전 책임자인 데다 동역자들 팀장이기도 하니까 문제 해결을 잘해야 할 것 같았죠.
그때 전 한 소그룹 사역을 맡고 있었는데, 사역상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자주 모여서 교제하곤 했어요. 그랬더니 사역 성과가 많이 좋아졌죠. 근데 동역자들이 맡은 팀은 그렇다 할 성과가 나지 않았어요. 음, 특히 리 자매가 맡은 소그룹은 조화로운 협력이 안 되고 문제 해결이 안 되고 있었죠. 그러니 그 자매가 초조해하면서 어떻게 교제했는지, 효과를 낸 비결이 뭔지 물었어요. 그래서 이것저것 다 얘기해 줬죠. 그 후에 너무 교만해서 조화로운 협력이 안 되는 형제가 생각이 났어요. 전 그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해서 내놓고 같이 방법을 구해야 했죠. 근데 제가 팀장이라 본이 돼야 하는데, 오히려 제가 해결 못 하는 문제가 있으면 자매들이 어떻게 볼까 싶고, 방금까지 멋있게 얘길 해놓고 아직 해결 못 한 문제가 있다고 하면 절 무시할 거 같았어요. 그래서 마지막까지 그 얘길 꺼내지 못했죠. 그 후에도 여러 번 사역 모임을 가졌는데, 전 제가 문제를 잘 해결하고 성과를 낸 것만 얘기하고 아직 해결 못 한 문제는 언급도 안 했어요. 결국 두 동역자가 절 높이 보게 됐고 해결 능력이 있다고 봤죠. 게다가 저보고 진리 실제가 있다고 했어요. 그때는 가볍게만 느끼고 그냥 저도 해결 못 하는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넘겼어요.
그 후에 효과가 안 좋은 팀이 있었는데, 다들 본분에서 어려움을 겪었어요. 리 자매가 그랬죠. 여러 번 교제해 줬는데도 해결되지 않으니까 자기도 소극적이 됐대요. 그러니 저도 힘 빠지고 마음이 괴로웠어요. 사실 저도 몇 번 갔지만 문제를 해결 못 했거든요. 정말 너무 답답했어요. 최선을 다했는데, 해결이 안 되는 게 이해가 안 됐어요. 저도 속을 털어놓고 싶었는데, 리 자매가 소극적이 돼서 저까지 어려움을 털어놓고 얘기를 하면 소극성을 퍼뜨리는 것 같았어요. 게다가 전 조장이라 어려움이 있어도 버터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리 자매가 또 이런 일이 있을 땐 어떻게 해야 하냐는 거예요. 순간 당황했어요. 저도 길이 없으니까 해 줄 말이 없었죠. 근데 자매들이 생각하는 이미지 때문에 억지로 짜내서 말했죠. 음, 이럴 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고요. 노아도 하나님 의지해서 힘들게 방주를 지었다고 노아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죠. 또 제가 예전에 본분하면서 힘들었을 때 어떻게 형제자매를 이끌고 나갔는지 얘기했어요. 그땐 자매들도 분별이 없어 절 칭찬해 줬어요. 근데 전혀 기쁘지 않았죠. 사역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말한 건 이치로 남을 속인 거니까요. 근데 한편으론 전 팀장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마지못해 제가 해결하겠다고 했어요. 사실 자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뭔가에 꽉 눌린 것처럼 답답했어요. 근데도 솔직하게 말을 못했죠. 바로 그때 리 자매가 또 최근에 사역에 생긴 문제들이 해결이 안 되는데 우리가 반성해야지 않냐는 거예요. 신 자매도 또 그동안 다들 저를 높이 봤었다고 제가 진리를 알고 문제도 해결하는 것 같아 저만 바라봤는데 그게 잘못된 것 같다고 했어요. 리 자매도 그러더라고요. 맞다고 절 지켜봤는데, 제가 자기 패괴는 잘 말 안 하고 긍정적인 부분만 얘기한댔죠. 이번처럼 사역의 문제점이 해결이 되지 않을 때 다들 소극적이 돼 있는데, 저만 강해 보인다고 아닌 척하는 거 아니녜요? 자매가 그러니까 속이 철렁했어요. 모든 게 저의 가식적인 모습 때문에 그런가 싶었어요. 근데 또 한편으로는 전 팀장인데, 연약한 모습을 솔직하게 말하는 건 소극성을 퍼뜨리는 것 같았죠. 전쟁에서 장수가 쓰러지면 병사의 사기가 꺾이는 것처럼 말예요. 근데 또 동역자도 절 높이 보는 건 사람을 제 앞으로 이끈 거니까 저한테 문제가 있는 것도 분명했어요. 정말 반성해 봐야겠더라고요. 그때 또 몇 명은 소극적이 돼서 본분을 내려놓고 싶을 정도여서 사역에 지장을 주고 있었어요. 문제들이 생기니 저도 소극적이 되고,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중요한 부탁을 질 수 없다는 거잖아요. 그렇게 해선 사역에 지장이 갈 게 뻔했어요. 결국, 저도 버티지 못하고 리더한테 사직서를 냈어요.
그리고 반성해 봤어요. 왜 전 무슨 어려움이 있으면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가식적으로 살고 정직하게 못 사는지요. 그러다 말씀을 보면서 자신에 대해 좀 알게 됐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대체 어떤 자가 바리새인인 줄 아느냐? 너희 주변에 바리새인이 있느냐? 이들은 왜 ‘바리새인’이라 불리는 것이냐? ‘바리새인’이란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느냐? 바로 외식하는 것이다. 모든 일에 가식적이고 위장한다. 어떻게 위장하느냐? 훌륭한 사람인 양, 선하고 긍정적인 사람인 양 위장한다. 사실, 그가 훌륭하고 선하고 긍정적인 것이냐? 절대 그렇지 않다. 가식이라고 하면 모든 모습과 드러내는 것이 거짓되고 위장한 것으로, 진실하지 않은 것이다. 진실한 면은 어디 있느냐? 드러내지 않고 속에 깊이 감춰둔 것이다. 겉모습은 전부 위장한 것이고 모조리 거짓된 것으로, 이는 사람만 속일 수 있을 뿐 하나님을 속이지 못한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하지 않는다면, 진실로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 그러면 그가 하는 말은 아무리 듣기 좋아도 다 진리 실제가 아닌 글귀 도리이다. 어떤 사람은 글귀 도리를 떠들어대는 것만 중요시한다. 누가 수준 높은 설교를 한다면 바로 따라 한다. 그 결과,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도 글귀 도리를 말하는 수준이 점점 높아져 많은 사람이 탄복하고 숭배하게 된다. 그러면 자신을 포장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언행에 각별히 신경 쓰며 무척이나 경건하고 영적인 척한다. 그는 이런 소위 영적인 이론으로 스스로를 포장한다. 어디를 가든 그따위 것들을 말하고 진리 실제가 전혀 없이 모두 사람의 관념에 맞는 사이비한 것들이다. 그는 사람의 관념과 입맛에 맞는 이런 것들을 전하여 수많은 사람을 미혹한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그의 경건함과 겸손함은 실은 가짜다. 그의 포용과 인내, 사람을 향한 사랑은 꾸며 낸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그의 말도 거짓된 것이다. 사람은 그를 성결하다고 생각하는데, 그의 성결함 역시 가짜다. 진정으로 성결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전부 거짓된 것으로, 전부 꾸며 내고 포장한 것이다. 겉으로 볼 때 그는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듯하지만 사실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려고 연기한 것이다. 사람 뒤에서는 전부 건성으로 일을 하는데, 충성심이라고는 전혀 없다. 또한 겉으로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가정과 직장을 버렸지만 뒤에서는 무엇을 하겠느냐? 교회에서 개인의 사업과 경영을 하고, 하나님을 위해 사역한다는 기치하에 교회 밥만 먹고 제물을 훔쳐 먹는다…. 그런 자들이 바로 외식하는 현대판 바리새인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하나님은 바리새인의 실체를 분명하게 말씀하셨어요. 그들은 거짓된 모습으로 남을 속여요. 겉보기에 좋은 행동으로 남을 미혹해 자기를 높이 보게 하죠. 제 지난 모습을 돌아보니까 바리새인과 같았어요. 새 신자 양육 사역을 책임진 뒤로 팀내 사역이 잘 풀리게 되고 효과도 좋아지고 사람들한테 인정받으니까 남들보다 진리를 알고 실제가 있는 줄 알고 저도 모르게 높은 위치에 가 있었죠. 일단 전 책임자니까 어려움이 있을 때 누구보다 강하고 소극적이지 말고 본이 돼야 한다고 여겼어요. 그래서 늘 가식적으로 자신을 포장했죠. 자매들이 어려움이 있어서 해결책을 물을 때 몰라도 아는 척하고 글귀뿐인 얘기만 하면서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인 척했어요. 또 어려움을 해결 못 해서 마음이 무거웠지만 형제자매들이 제 연약함을 알까 봐 강한 척했어요. 그러니 다들 절 높이 보고 분량이 크고 해결 못 하는 게 없다고 착각했죠. 전 형제자매들한테 좋은 이미지를 보여 주려고 제 패괴함과 부족함은 말하지 않고, 어떤 어려움이 와도 억지로 버텼어요. 어떻게든 포장하면서 옳은 이치로 사람을 미혹하고 기만했죠. 제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중요한 건 교회 사역에 지장을 준 거예요. 이건 모두를 해친 거잖아요. 전 외식하는 바리새인의 길을 가고 있었던 거예요. 그제야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깨달았어요.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착실하게 살 수 있고 기쁨과 평안이 함께할 수 있으니, 이는 인생의 바른길이다. 언제나 대단한 사람,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이는 스스로 불 속에 들어가 구워지는 것이요, 분쇄기에 들어가 갈리는 것과 같다. 그것은 고생을 자초하는 행동이다.』(<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복받을 희망이나 지위가 없으면 물러나려 한다> 중에서) 말씀이 정말 현실적이었죠. 늘 타인의 우러름을 받으려고 한다면 사탄한테 우롱당하고 고통밖에 없어요. 명예와 지위를 내려놓고 정직하고 평범한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고 착실하게 살아야 진정으로 자유를 얻고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죠.
반성해 보니까 제가 잘못된 관점을 가졌더라고요. 전 자신의 연약함을 말하는 건 소극성을 퍼뜨리는 것 같아 털어놓지 못했어요. 사실, 전 마음을 털어놓는 것과 소극성을 퍼뜨리는 게 뭔지 몰랐고 개념이 모호했어요. 그 후에 이 부분에 관한 말씀을 찾아봤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소극적인 것을 퍼뜨리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분간해야 할지, 소극적인 것을 어떻게 분별해야 할지, 사람의 어떤 말과 모습이 소극적인 것을 퍼뜨리고 있는 것인지 알아보자. 우선, 사람이 퍼뜨리는 소극적인 것은 긍정적인 것이 아니다. 이는 전부 진리에 반하는 부정적인 것들이며, 패괴 성품에서 나온 것들이다. 사람은 패괴 성품을 지니고 있기에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 어느 정도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그 어려움으로 인해 소극적인 생각과 소극적인 것이 드러난다. 이는 진리를 실행하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사람의 진리 실행에 영향과 지장을 주는 사상, 관점에 속하며, 100% 소극적인 측면의 것들이다. 이 소극적인 사상들이 듣기에 아무리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고 이치에 맞아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얻은 이해가 아니며, 하나님 말씀에 대한 체험과 인식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으로, 진리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소극적인 측면의 것이자 부정적인 사물이다. 소극적인 것을 퍼뜨리는 사람의 속셈은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자신을 위해 수많은 객관적 핑계를 찾아 사람들의 동정과 이해를 얻어 내는 데 있다. 이는 또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들의 자발성에 크게 혹은 작게 영향과 타격을 주며, 심지어는 많은 사람이 진리를 실행하지 못하게 가로막기도 한다. 이런 결과, 이런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오기에 우리는 더더욱 이 소극적인 것들을 부정적인 사물이라고,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이자 전부 진리를 적대시하는 것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소극적인 것의 본질을 간파하지 못한 채 수시로 소극적이 되는 것이 정상이라고, 사람의 진리 추구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틀린 생각이다. 사실 영향이 매우 크다. 지나치게 소극적이 되면 배반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 무서운 결과는 소극적인 것 때문에 초래된다. 그럼 소극적인 것을 퍼뜨리는 일을 어떻게 분별하고 인식해야겠느냐? 간단하게 말해서, 소극적인 것을 퍼뜨리는 것은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고, 사람의 진리 실행을 가로막는 것이다. 이는 온화한 수법, 언뜻 매우 정상적인 것 같은 방법으로 사람을 미혹해서 쓰러뜨리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을 해하는 것 아니겠느냐? 두말할 나위 없이 사람을 매우 심하게 해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소극적인 것을 퍼뜨리는 것은 부정적인 사물에 속하며, 하나님께 정죄받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소극적인 것을 퍼뜨리는 행위에 대한 가장 간단한 해석이다. … 소극적인 것 안에는 사람의 불복과 불만, 원망, 원한과 같은 성질의 것들이 들어 있지 않겠느냐? 거기에는 반항, 대항, 심지어 맞서기 등 더 심각한 것들도 들어 있다. 이런 성분을 지닌 말을 할 때, 소극적인 것을 퍼뜨린다고 규정할 수 있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실행> 중에서) 『체험을 공유하고 교제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너의 체험과 인식을 교제하는 것으로,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 내적 상태, 그리고 네가 드러낸 패괴 성품을 모두 말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분별하게 하고, 그러고 나서 진리를 교제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렇게 체험을 교제해야 다른 이들이 이로움을 얻을 수 있고 수확도 클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교회 생활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실행> 중에서) 이 말씀을 보고 깨달았어요. 소극성을 퍼뜨리는 건 패괴 성품과 속셈을 품고 하는 일이에요. 교회 사역에 대한 불만과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퍼뜨려 모두가 관념을 갖고 하나님을 따르지 않게 하려는 속셈이죠. 어떤 사람은 책망을 받으면 먼저 불만을 표출하면서 듣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오해하게 만들어요. 그게 소극성을 퍼뜨리는 거죠. 근데 마음을 여는 건 정직한 거예요. 자기가 진리를 실행한 경험에 대해서만 얘기할 게 아니라 자신의 패괴와 어려움, 부족함도 얘기하고 본분하면서 가졌던 불순하고 잘못된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분별하게 하는 거죠. 마음을 털어놓는 건 진리를 구해서 자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거고, 패괴 성품을 해결하기 위한 거예요. 그건 긍정적인 거죠. 저도 이 진리를 알고 나니까 본분을 할 때 의식적으로 제 패괴와 부족함을 털어놓고 같이 진리를 구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니 내적 상태도 좋아졌고, 본분에 성과도 좀 있었죠. 그 후에 제가 회개하고 뉘우치니까 리더가 새 신자 양육을 계속 맡을 수 있냐고 물었어요. 그 말에 울컥했죠. 그 기회가 다시 주어질 거라고 생각 못 했거든요. 전 이 은혜를 소중히 여기고 책임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죠. 그 뒤로 정직해질 자신이 생겼고, 솔직해지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시간이 좀 지나서 신 자매가 저보고 변화된 모습이 보인다고 진리를 행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너무 기분이 좋았고, 저도 좀 변화된 것 같더라고요. 근데 그것도 잠시고 얼마 못 가 고질병이 도졌어요.
어느 날 예배를 마치고 궁금한 게 있냐고 물었는데, 한 자매가 본분에서 생긴 문제의 해결책을 모르겠다면서 도움을 구했죠. 그땐 저도 방법을 몰라서 다들 어떻게 보냐고 물었어요. 그때 한 형제가 해결책을 내놨는데, 저나 형제자매나 다들 좋다고 했어요. 자매는 기뻐하면서 그 해결책이 너무 좋다고 생각지 못했다고 했죠. 그때, 그건 저도 생각 못 한 거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또 제가 책임자니까 그렇게 말하면 왠지 없어 보일 것 같고, 책임자가 일반 형제자매보다 못하다고 볼까 걱정됐어요. 그래서 전 또 태연하게 형제가 내놓은 해결책에 제 제안을 좀 덧붙였어요. 그랬더니 그 자매가 길이 생겼다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마음에 가책이 됐어요. 이건 모두를 속이는 거잖아요? 왜 또 가식적으로 구는 건지. 나중에 이 일을 반성해 보면서 이 부분에 관한 말씀을 먹고 마셨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늘 자신을 포장하고, 늘 자신을 꾸미고 위장하여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게 만들어 다른 사람이 그의 결점과 부족한 점을 보지 못하게 한다. 늘 자신의 가장 훌륭한 면을 사람들에게 보이려 한다. 이는 어떤 성품이냐? 이는 교만함, 위선, 외식으로, 사탄의 성품이고 사악한 것이다. 마치 사탄 정권에 속한 자들과 같다. 이자들은 배후에서 아무리 때려잡고, 싸우고, 죽여도 이를 보도하거나 폭로하지 못하게 하고, 국민들이 그들의 악마 몰골을 볼까 봐 갖은 수를 써서 덮어 감추려 한다. 대중 앞에서는 어떻게든 자신을 꾸며서 자기들이 얼마나 국민들을 사랑하고, 얼마나 바르고, 얼마나 자랑스럽고, 얼마나 위대한지를 말하는데, 이는 바로 사탄의 본성이다. 사탄 본성의 두드러진 점은 바로 속이고 기만하는 것이다. 속이고 기만하는 목적은 무엇이냐? 바로 눈가림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본모습과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게 해서 장기 통치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다. … 사탄은 갖은 방법으로 사람을 속이고 기만하고 우롱하며, 사람에게 허상을 보여 준다. 심지어는 협박이나 위협을 통해 사람이 그것을 숭배하고 두려워하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지막에 이루려는 목적은 사람이 사탄에게 순종하고 경배하게 하는 것이다. 사탄은 바로 이것을 누리며, 사탄이 하나님과 사람을 놓고 다투는 목적 또한 여기에 있다. 그럼 너희가 사람들 속에서 지위와 명망을 놓고 다툰다면, 무엇을 위해 다투는 것이겠느냐? 정말 명성을 위해서겠느냐? 그렇지 않다. 사실은 그 명성이 가져다주는 이점을 놓고 다투는 것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처신 원칙> 중에서) 『사람이 항상 마음을 열지 않고 감추거나 숨기며, 착실한 척하고 남들에게 우러름을 받으려 든다면, 또 남들이 꿰뚫어 볼 수 없고 다 그를 탄복하게 한다면, 이런 사람은 매우 어리석지 않으냐? 이런 사람은 누구보다 어리석다! 사람의 진면모는 언젠가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살아간다면 걷는 길이 어떤 길이겠느냐? 바로 바리새인의 길이다. 외식하는 사람은 위험하지 않겠느냐? 이런 자는 하나님이 가장 혐오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말해 보아라. 이런 자가 위험하지 않겠느냐? 바리새인에 속하는 자가 걷는 길은 다 멸망의 길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께 진심을 바치면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중에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깨달았어요. 가식적인 건 사람들이 자기를 높이 보게 하려는 거고 타인을 통제하고 자기 입지를 굳히려는 속셈이에요. 이건 교만하고 사악한 성품에 따른 거고, 하나님께 맞서는 길을 가는 거죠. 자매의 문제에 대해 전 분명 해결책이 없었으면서 형제자매들이 그걸 알면 무시할까 봐 아는 척하고 형제의 인식에 내용을 보태 제가 깨달은 것처럼 했는데, 그건 저도 통찰력 있고 진리를 안다는 착각을 주려는 거였어요. 전 이런 수단으로 모두의 우러름을 받았는데, 다 절 의지하길 바랐던 거예요. 그건 바리새인의 길을 가는 거죠. 바리새인은 외식으로 사람을 미혹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잖아요. 하나님의 공의 성품은 거스를 수 없어요. 회개하지 않으면 분명 하나님께 저주와 벌을 받게 돼요. 심각성을 알고 나니 조금 두렵더라고요. 그래서 얼른 기도하면서 회개했죠.
나중에 말씀을 보면서 리더 일꾼 발탁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게 됐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교회에서 발탁되고 양성되는 것은 좋은 일로, 훈련받을 좋은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높여 주심이자 선대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본분을 이행해야 하느냐? 우선 마땅히 지켜야 할 원칙이 바로 진리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진리를 깨닫지 못할 때는 진리를 구해야 한다. 스스로 구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찾아 교제하고 구하면 된다.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좀 더 빠르고, 때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혼자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고 하나님 말씀을 많이 묵상하는 데만 집중하여 진리를 깨닫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이는 너무 느려서 당장의 절박함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진리에 있어 빠르게 성장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협력하는 법, 많이 묻고 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생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고, 제때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는데, 이 두 가지 다 지체하지 않을 수 있다. 너는 이제 막 발탁되었고 수습 기간일 뿐, 정말 진리를 깨닫고 진리의 실제를 갖춘 것은 아니다. 너에게는 아직 그런 분량이 없으므로, 발탁되었다고 해서 진리의 실제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건 그런 것이 아니다. 네가 사역에 부담을 갖고 있고, 리더로서의 자질을 갖췄기에 너를 발탁하여 양성하는 것뿐이다. 이 정도의 이성은 있어야 한다. 발탁되어 쓰임 받은 후, 리더 일꾼의 자리에 서서 너는 자신이 진리 실제가 있으며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형제자매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든 이해하는 척, 영적인 척한다면 이는 어리석은 행동이며,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같은 꼴이다. 네가 사실대로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모르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거나 상부에 구하고 교제하면 된다. 이는 체면 깎이는 일이 아니다. 네가 물어보지 않아도 상부에서는 네 실제 분량을 알고 있고, 또 네게 어떤 진리 실제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구하고 교제하는 것은 네가 해야 할 일이고, 정상 인성에서 갖춰야 할 이성이며, 리더 일꾼이 지켜야 할 원칙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체면이 깎이는 일이 아니다. 네가 리더로 있으면서 수시로 다른 사람이나 상부에 물어보고 원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체면 깎이는 일이라고 생각해 위장한다면, 이해한 척, 아는 척, 사역 능력이 있는 척, 교회의 어떤 사역이든 다 할 수 있는 척, 남들의 일깨움이나 교제 따위는 필요 없고, 누가 공급해 주고 붙들어 주는 것도 필요 없는 척 군다면 위험해진다. 이는 너무도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비이성적인 것이다. 자신의 주제조차 모르니, 이런 자는 바보 아니겠느냐? 이런 자는 사실상 하나님 집에서 발탁하고 양성하는 조건에 부합하지 못하며, 교체되고 내쳐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거짓 리더를 분별하다≫ 중에서) 이 말씀을 보고 알았어요. 하나님은 제가 만능이 되길 원하시는 게 아니라 올바른 마음으로 본분에 임하기를 바라시고 마음과 뜻을 다하길 원하셨어요. 어떤 부족함이 있든지 형제자매와 많이 교제하고 협력하면 돼요. 그게 이성적인 모습이죠. 근데 전 교만해서 책임자면 형제자매보다 뛰어나야 하고 어떤 문제든 다 해결해야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러니 몰라도 아는 척하면서 가식적으로 살았는데 저만 힘든 게 아니라 사역에도 지장을 줬어요. 그렇게 터무니없는 관점을 가지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어요. 제가 책임자로 발탁된 건 하나님께서 양성받을 기회를 주신 거지 제가 남보다 진리를 잘 알아서가 아니고 제 신분과 지위가 더 높아서도 아니에요. 저도 형제자매랑 똑같아요. 진리를 모르는 게 많고 잘 모르고, 해결 못 하는 문제도 많죠. 간혹 좋은 견해를 내놓을 수 있는 건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지, 제 실제가 아니에요. 근데 전 제 분수도 모르고 그저 명예와 지위만 지키려고 계속 가식적으로 포장하기 바빴어요. 진리를 깨달아 실제로 진입하긴커녕 더 사악하고 간사하고 교만하게 변했죠. 정말 너무 어리석었어요. 이걸 깨닫고 다짐했어요. 더는 가식적으로 살지 않겠다고요. 이젠 정직하게 살면서 제 책임과 본분을 다하겠다고요.
이틀 후에 사역 회의를 하는데, 신 자매가 최근에 성장이 빠른 새 신자가 있대요. 그때 전 얼른 제가 양육했다고 말했죠. 순간 제가 또 자기 자랑한다고 느꼈어요. 그럼 털어놔야 하잖아요. 근데 체면이 걸리는 거예요. 신 자매가 저보고 남이 몰라줄까 봐 툭하면 자랑하냐고 이성이 없다고 할까 봐요. 그때 그것도 가식적이란 생각이 들어서 얼른 기도했어요. 자신을 버릴 수 있게 이끌어 달라고요. 그리고 용기 내서 말했죠. 제가 그렇게 말한 건 저를 드러내려고 했던 거라고요. 신 자매는 자기도 눈치 챘다면서 그래도 속을 털어놓는 건 정직해지려는 거라고 했죠. 자매의 말을 듣고 부끄러웠어요. 그래도 거짓으로 속이지 않고 그렇게 솔직해지니까 마음은 편하고 좋았어요.
경험하면서 분명히 알게 됐어요. 전엔 늘 자기를 포장하면서 패괴를 드러내지 않으면 남들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자기 이미지를 지키려고 했는데, 그건 자기를 속이는 거고 어리석은 거였어요. 하나님은 다 아세요. 제가 아무리 감춰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시니까 드러날 수밖에 없죠. 형제자매들도 하나님 말씀을 통해 진리를 깨닫게 되니까 각 부류에 대해 더 분별하게 되고 사탄 성품에 대해서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잖아요. 그러니 잘 감춰도 진리를 아는 사람은 단번에 분별할 수 있어요. 그리고 확실한 건 진리를 추구하고, 마음을 털어놓는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추구하고 착실하게 사는 게 진짜 총명한 사람이고, 하나님도 사람도 좋아하죠. 그게 또 하나님이 주신 광명의 길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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