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자신을 드러내 받은 화
몇 년 전, 저는 비슷한 또래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양육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모두 열의가 넘치고 본분에 책임감도 있어서 주변에서 칭찬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모습이 몹시 부러웠던 저는 언젠가 그들처럼 주변의 우러름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다른 교회로 옮겨가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는데, 옮긴 지 얼마 안 되어 교회의 리더가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 거짓 리더로 판명되어 교체되고, 제가 대신 리더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를 아는 형제자매들은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높여 주신 것이니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며 격려해주었습니다. 저는 책임이 막중한 것을 알았지만 한편으로는 저를 증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본분을 잘 해내면 형제자매들이 저를 대단하게 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이 본분을 잘 이행하리라 다짐했습니다.
그 후, 팀별로 예배를 드릴 때마다 저는 교체된 전 리더가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고 늘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 해부하였고, 형제자매들은 이에 몹시 분노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스스로에게 수시로 주의를 주었습니다. ‘지금 형제자매들은 거짓 리더를 분별할 수 있게 됐고, 새로운 리더가 실제적인 사역을 하길 기대하고 있어. 그러니 열심히 노력해서 꼭 모두에게 인정받는 리더가 될 거야. 난 교회 리더니까 본분에 가장 적극적이고, 누구보다도 고생을 감내하고, 많은 것을 버릴 거야. 그리고 시련이 닥쳐도 누구보다 믿음이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은 소극적으로 변해도 나만큼은 그러면 안 돼. 모든 면에서 형제자매들보다 뛰어나야 하고, 내 얘기가 나오면 다들 칭찬이 끊이지 않아야 해.’ 이런 생각에 이끌려 저는 매일 여러 팀 예배를 뛰어다니며 바쁘게 보냈고, 늦은 시간에야 잠자리에 들곤 했습니다. 그리고 형제자매들과 얘기할 때 제가 교회 사역 때문에 매우 바쁘고 자주 밤을 지샌다는 것을 은근히 티 내곤 했습니다. 그런 얘기를 들은 형제자매들은 제가 본분에 매우 부담을 가지고 있고 많은 고생을 감내하고 있다 여겼습니다. 그래서 늘 몸을 잘 챙기라며 신신당부했고 집에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항상 제게 보내주려고 했습니다. 저는 형제자매들 중에 내적 상태가 안 좋은 사람이 있으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찾아가서 붙들어 주고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예배 시간이 되면 오랫동안 소극적인 상태에 빠져 있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제가 교제를 하고 붙들어 주어 다시 좋아졌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얘기를 들은 형제자매들은 저보고 나이도 어린데 참 인내와 사랑이 많다고 했습니다. 또 교회 복음 사역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저는 복음을 전할 대상이 있기만 하면 복음 집사를 찾아가 그 대상과 교제해 말세 사역을 증거하라고 재촉하거나 제가 직접 나서곤 했습니다. 복음 사역에 좋은 성과가 보이자 저는 예배 시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전 우리 교회의 복음 사역은 성과가 좋지 못했는데, 이제는 매달 알아보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도 우리는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해요.” 그러자 형제자매들은 제가 리더를 맡아 복음 사역에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여겨 저를 더 우러러보고 존경했습니다. 예배 중 개인의 경험을 나누는 시간에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진입에 대한 교제를 주로 했습니다. 제가 드러낸 패괴 성품에 대해 많이 말하면 형제자매들은 저를 일이 닥치면 나약해지는 분량이 작은 사람으로 보고 더는 저를 대단하게 여기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의 소극적이고 연약한 면이나 제가 어떻게 패괴함을 드러냈는지에 대해서는 한두 마디로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갔습니다. 대신 제가 어떻게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했는지, 어떻게 믿음을 가지고 본분을 이행하니 하나님의 인도를 보게 되었는지에 관한 내용은 조금도 빼놓지 않고 크게 다루었습니다. 늘 이런 식으로 교제하니 형제자매들은 제가 무척이나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고, 어떤 일이 닥쳐도 실행의 길을 찾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생기면 다들 저와 교제를 하길 좋아했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노력을 들이니 교회 사역들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고, 형제자매들도 믿음을 회복하였으며, 본분을 이행하겠다는 사람들도 갈수록 늘었습니다. 이런 ‘성과’들이 나오자 제가 교회의 중요한 인재인 것 같아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고, 어디에 가서 말하든 목소리에 더 자신감이 실렸습니다. 저는 제가 본분을 잘 해내고 있는 명실상부한 리더 같았습니다. 사역자들과 협력할 때 저는 항상 일을 주도했고, 그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드러내며 저를 우러러보고 제 말을 따르도록 했습니다. 한번은 집을 빌려야 했는데, 함께 협력하는 형제와 사무 집사가 먼저 어떤 집을 보고는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런 큰일은 나를 통해야지. 난 아직 그 집을 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확정할 수는 없어.’ 사실, 저도 형제가 저보다 나이도, 경력도 많은 사람이라 집을 보는 일은 저보다 경험이 많을 거란 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대단함을 보여주기 위해 저는 집을 구할 때 고려해야 할 구체적인 사항들이 또 뭐가 있는지 머리를 쥐어짜 가며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러곤 저는 형제에게 그 집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다시 한번 알아보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는 확실히 문제가 있었습니다. 몇몇 사역자들은 이 일을 알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린 자매님보다 나이도 많은데, 그렇게 철저하고 꼼꼼하게 고려하지 못했네요. 정말 부끄러워요.” 이런 말을 들으니 저는 무척 의기양양해졌습니다. 그 뒤로는 다들 무슨 일이 있으면 저에게 의견을 구했고, 시간이 갈수록 파트너와 사역자들은 많은 일에서 수동적으로 변했습니다. 늘 제 의견을 기다렸고 저에 대한 의존성이 점점 더 커졌습니다.
저는 사역자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워졌고 교회의 크고 작은 일은 제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또 다들 내적 상태가 안 좋거나 어려움이 생기면 저와 교제를 나누려 하니 저는 제가 교회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흐뭇했습니다. 가끔 ‘타인의 추앙을 받는 자는 화가 있다’란 말이 떠오를 때면 불안감이 들어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나를 이렇게나 대단하게 보는데, 내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리더니 사역자들이 무슨 일이든 나와 의논하는 것도 당연하지. 그리고 난 형제자매들의 문제를 확실히 해결할 수 있으니 그들이 나에게 의지하는 것도 정상이야. 자기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과 어울리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어?’ 저는 성령이 주시는 가책과 일깨움에 따라 자신의 내적 상태와 걷고 있는 길을 더 깊이 성찰하지 않고, 여전히 저만의 방식으로 잘못된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질이 임해서야 무디었던 제 마음은 조금이나마 지각을 찾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아침에 일어났는데, 왼쪽 눈이 너무 아프고 계속 눈물이 났습니다. 그래서 거울을 보니 왼쪽 얼굴이 완전히 굳어져 눈이 감기지 않고 입술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갑자기 왜 이러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습니다. 오후에 예배가 있어서 참석했더니 한 자매가 저를 보고 놀라면서 이건 안면 마비라며, 빨리 가서 침을 맞고 약을 먹어야지 오래 놔두면 얼굴이 비뚤어진 게 회복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자매의 말을 들으니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난 아직 젊은데 왜 갑자기 이런 병을 얻은 거지? 정말 안면 마비 때문에 얼굴 전체가 비뚤어지면 앞으로 어떻게 예배를 드리러 다녀? 사람들 얼굴을 어떻게 볼 수 있겠어?’ 저는 머릿속이 멍해지면서 마음이 연약해졌습니다. 저의 병에 대해 논의하는 형제자매들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머리가 더 복잡해지고 기운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날은 그렇게 정신없는 상태로 집에 돌아왔고,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 무슨 말을 드려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 있게 이끌어 달라는 말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하나님 말씀 찬양 가사가 떠올랐습니다. 『질병과 고통이 찾아오면 어떻게 체험해야 하느냐?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 구하고 자신의 과오와 아직 해결하지 못한 패괴 성품을 반성해야 한다. 육은 고통을 받아야 하는 법이다. 고통을 계기로 반드시 단련해야 사람은 비로소 방탕하지 않고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다. 사람은 마음이 괴로우면 늘 기도하고 잘못한 것이 없는지, 어떤 일에서 하나님을 거슬렀는지 반성하게 될 것이다. 이는 사람에게 이로운 것이다. 사람에게 큰 고통과 시련이 찾아오는 것은 결코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니다.』(<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ㆍ질병이 찾아오면 하나님 뜻 구해야 하리> 중에서) “큰 고통과 시련이 찾아오는 것은 결코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갑작스럽게 병에 걸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님이 느껴졌습니다.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고, 하나님의 징계가 임한 것이니 제가 어떤 면에서 하나님을 거슬렀는지 잘 구하고 반성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이런 병이 생긴 것도 당신의 징계라고 생각합니다. 이 질병을 통해 제가 스스로를 알고 반성하라고 일깨워 주시는 것이라 믿습니다. 다만 제가 너무 무디어 제 문제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질병 속에서 공과를 배울 수 있도록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세요.” 기도를 마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지만 제가 도대체 어떤 부분에서 하나님을 거슬렀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깨우쳐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기도했더니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선 기도를 들어주셔서 제가 저의 문제를 깨달을 수 있도록 상황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날, 자오 자매한테 침을 맞으러 가자 자매의 가족들이 따듯하게 맞아주었습니다. 자오 자매는 제가 소극적으로 변할까 봐 침을 놔주면서도 ‘질병을 대하는 원칙’에 관한 말씀을 찾아서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많이 기도하며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채 치료를 병행하면 빨리 나을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사실, 자오 자매한테서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비뚤어진 얼굴이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무척 무섭고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걱정하는 자매를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나의 진짜 상태를 알면 분량이 작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평소 형제자매들이 시련을 겪거나 어디가 아프면 내가 믿음에 관한 진리를 교제해 주었잖아. 그때는 나 스스로도 내가 참 믿음이 있다 생각했었지. 그런데 지금 와서 무서워하고 걱정하면서 믿음 없는 모습을 보인다면, 다들 내가 평소에 했던 말들이 다 글귀상 도리뿐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래서 저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조금 걱정이 되긴 하지만 이 모든 게 다 하나님 손에 있다는 걸 믿어요. 육이 고생 좀 하는 것은 별것 아니에요. 제일 괴로운 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는 것, 그리고 제 문제를 반성해 알지 못하는 거예요. 이렇게 무딘 저를 보니 너무 괴롭네요.” 제 말에 자매는 곧바로 존경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병이 생기면 당연히 반성을 하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알아가야죠. 실제적인 치료도 병행하면서요. 어쩌면 자매님이 너무 피곤해서 생긴 병일지도 몰라요. 우리도 자매님이 매일 본분 때문에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바쁘신 거 잘 알아요. 지금 이런 상태에서도 매일 같이 나와 본분을 이행하시잖아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안 그래도 그저께 자매님의 파트너한테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교회 사역에 신경 쓰라고 한소리 했어요.” 이 말을 들으니 불안해져 얼른 이렇게 그녀의 말을 고쳐주었습니다. “교회 사역은 저 혼자 신경 쓰는 게 아니니 저를 그렇게 대단하게 보지 마세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매님은 어째서 나 때문에 파트너에게 그런 식으로 얘기하셨을까? 내가 다른 사역자나 파트너보다 더 책임감이 있어 보이는 건가? 이건 평소에 내가 나를 높이고 다른 사람을 깎아내렸다는 말이잖아? 좀 전에도 자매님 앞에서는 연약한 모습을 감추고 믿음이 있는 척했는데, 이건 사람을 미혹하는 짓이잖아?’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오고 있던 장 자매와 마주쳤습니다. 장 자매 역시 몸을 잘 챙기라며 살뜰히 저를 챙겨주면서 제가 쓰러지면 자기들은 어떡하느냐고 했습니다. 장 자매가 그런 식으로 대놓고 저를 높은 자리에 올려놓고 말하니 너무 두려웠습니다. 집에 오는 길, 장 자매가 했던 얘기가 머릿속에 맴돌면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저는 보잘것없는 교회 리더에 불과하고, 제가 없다고 해도 교회 사역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데, 제가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말을 한다는 것은 제가 자매의 마음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성전인데, 제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늘 사람들의 우러름과 칭찬을 받고 싶어 했던 저였지만 정작 자매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 불안감이 엄습해왔습니다. 그리고 또 저에게 미혹 당해 장 자매처럼 저를 생각하는 형제자매들이 또 있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사람들을 제 앞으로 이끈 것이고, 이는 적그리스도가 걷는 길이었습니다. 과거 출교되었던 적그리스도들의 사례가 생각나면서 가슴이 철렁했고, 마치 큰 화가 닥칠 듯한 느낌에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와 얼른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보았습니다. 바로 이 말씀이었습니다. 『사람은 교만한 본성이 있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고, 하나님을 판단하고 배반하는 일을 저지를 수 있으며, 자신을 추켜세우거나 독립 왕국을 세우는 일을 저지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 이만 명이 받아들인 국가에 너를 보내 사역하도록 했다고 하자. 내가 한 달 동안 너를 상관하지 않고 권한을 주어 너 스스로 사역하도록 했다면, 너는 열흘도 되지 않아 다른 사람이 너를 알게 하고, 한 달도 되지 않아 너에게 무릎 꿇고 엎드리게 했을 것이다. 입을 열 때마다 너를 칭찬하며 네가 설교를 잘한다고 하고 계속해서 네가 말하는 것은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이고 네가 그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줄 수 있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이란 단어는 찾아볼 수도 없다. 너는 어떻게 사역한 것이냐? 사람들의 이러한 반응은 네가 사역하면서 전혀 하나님을 증거하지 않고 너 자신을 증거하고 드러냈음을 증명한다. 어찌하여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이냐? 어떤 사람들은 “제가 교제한 것은 진리입니다. 저는 저 자신을 증거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너의 이러한 태도와 자세는 패괴된 인류가 아닌 하나님의 위치에서 사람에게 교제하는 것이다. 네가 한 말은 모두 탁상공론이고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이며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것이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사람이 너를 숭배하고 부러워하고 칭찬하며 결국엔 너를 알고 증거하고 지나치게 추켜세우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는 끝장이고 실패할 것이다! 너희가 가는 길은 이런 길이 아니냐? 만약 너에게 몇 천, 몇 만의 사람을 이끌도록 한다면 너는 흐뭇해하며 교만해지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위치에 서서 손짓 몸짓 하며 말하게 되고, 무엇을 입고 먹고 어떻게 길을 걸어야 할지도 모를 것이다. 아랫사람을 만나주지도 않는 너는 천천히 타락하고 천사장처럼 쫓겨나게 될 것이다. 너희도 이렇게 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너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만약 어느 날 너희가 정말로 나가서 사역하도록 배정되었을 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다면 이 사역을 어떻게 확산시키겠느냐? 이러면 문제 되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감히 누가 너희를 내보내겠느냐? 한 번 나간 너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하나님이 어떻게 말하든 상대도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계속해서 자신을 드러내고 증거하여 마치 네가 사람을 구원하고 네가 하나님의 사역을 하고 있는 것 같고, 사람은 하나님이 나타나 사역하는 것처럼 느끼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너를 숭배하는 것을 너는 마음껏 즐기고 심지어 너를 하나님으로 대하는 것도 묵인할 것이다. 이 지경까지 된다면 너는 끝장이고 폐기될 것이다. 너도 모르게 교만한 본성으로 너는 망치게 될 것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사람이다. 사람이 이 지경이 되면 의식이 없는 것이고 양심과 이성도 기능을 상실했을 것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교만한 본성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원이다> 중에서) 『어떤 자들은 지위를 이용해 끊임없이 자신을 증거하고 높이며 사람이나 지위를 두고 하나님과 쟁탈전을 벌이기도 한다. 이들은 여러 가지 방식과 수단으로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구슬려 사람을 통제할 생각만 한다. 심지어 어떤 자들은 고의로 사람들이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오해하도록 만들어 자신을 하나님으로 대하게 한다. 이런 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저는 패괴된 사람입니다. 저 역시 패괴되어 교만하니 저를 우러러보지 마세요. 제가 일을 잘했다 해도 그것은 다 하나님이 저를 높여 주셨기 때문이고, 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왜 그는 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일까? 사람들 마음속 자신의 지위를 잃을까 무척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높이지도 증거하지도 않는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내리막길을 걷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높이고 증거하며, 또한 곳곳에서 스스로를 내세우고 드러내며 하나님을 아예 마음에 두지 않는다. 너희는 내가 한 이런 말을 체험해 보았느냐? 많은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을 증거한다. 자신이 어떻게 고통을 받고 어떻게 사역을 했다느니, 하나님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고 또 아주 신임하여 무엇을 하게 했다느니, 자신은 지금 어떠어떠하다느니 등등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 사람은 말할 때 일부러 특정 말투와 자세를 취하는데, 결국 다른 이들이 그를 하나님이라고 여기게 될 정도다. 사람이 이 정도가 됐을 때는 성령이 버린 지 오래다. 비록 잠시 그를 상대하지 않고 출교하지 않더라도, 그의 운명은 이미 정해졌으니 징벌받을 일만 남았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요구는 너무나 많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예리한 검처럼 제 마음을 아프게 찔렀습니다. 저는 확실히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것처럼 본분을 이용해 저를 높이고 드러냈습니다. 리더의 본분을 맡은 후, 저는 제가 리더이니 형제자매들보다 뛰어나고 더 큰 분량이 있어야 칭찬과 우러름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평소 체험을 교제할 때 저의 연약한 면이나 패괴된 면에 대한 얘기는 가급적 하지 않으면서 가식적으로 굴었습니다. 저도 그들과 똑같이 패괴된 사람인 것을 알면 더는 저를 대단하게 여기지 않을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병이 났을 때에도, 저는 불만을 품고 소극적으로 변했고, 또 두려워하기도 했지만, 저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긍정적으로 진입을 구하는 이야기만 하면서 가식적으로 굴었습니다. 그 결과 형제자매들은 제가 병마 앞에서도 소극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며, 다른 사람보다 분량이 있고 믿음이 있다고 생각해 저를 더 대단하게 보았습니다. 저는 교회 리더이니 본분 때문에 밤늦게까지 일하고 고생을 더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교회 사역을 위해 새벽까지 일했다는 것을 은근히 내비치며 제가 사역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니 형제자매들은 제가 교회 사역에 가장 책임감 있고, 가장 수고로이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성령이 역사하여 얻은 본분의 성과인데, 저는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하지 않고 오히려 제가 얼마나 고생하고 대가를 치렀는지 드러내면서 형제자매들이 제가 교회의 중요한 인재인 양 여기게 만들었고, 제가 없으면 교회 사역이 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그런 식으로 교제하면서 형제자매들을 미혹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징계로 이런 병에 걸렸는데, 형제자매들은 오히려 제가 교회 사역을 위해 너무 몸을 사리지 않아 생긴 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이런 착각 때문에 제가 교회에서 가장 책임감 넘치는 사람인 줄 알고 저의 파트너보고 책임감이 부족하다 책망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높이고 드러내 사람을 미혹하고 농락하며 모두를 저의 앞으로 이끄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는 공개적으로 하나님과 맞서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를 생각하니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저는 사람들의 우러름과 칭찬을 얻기 위해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각종 수단을 통해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며 형제자매를 미혹했습니다. 그 결과 모두 저를 우러러보고 저에게 의존하였고, 모두의 마음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든 저와 의논하고 제 의견을 구하며 제가 결단 내리기를 기다렸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장소인데, 저는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면서 사람을 제 앞으로 이끈 것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한 것이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척하며 밀어낸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적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는 짓이었습니다. 저는 참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큰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저는 가슴이 철렁하면서 공포감이 밀려왔습니다. 저에게 큰 병이 닥친 것은 하나님의 진노였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이 제게 발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나 무디고 패역한 자신이 너무 미웠고, 한편으로는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의 기도를 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지난 1년 동안 본분을 다한다고 했지만 저는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제 앞으로 이끌었는데, 사람을 놓고 하나님과 쟁탈전을 벌인 것입니다. 저는 적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비열하고 뻔뻔스러웠습니다. 하나님, 정말 잘못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뵐 면목이 없어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 후, 제가 왜 그런 잘못된 길을 걷게 되었는지를 반성하면서 그 근본 원인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울을 매우 숭배한다. 밖에서 강연하고 사역하는 것을 좋아하며 모임을 가지기 좋아한다. 연설하기 좋아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따르고 자신을 숭배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을 둘러싸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 마음속에 자신의 자리가 있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모두 그의 형상에 관심 갖는 것을 좋아한다. 이러한 모습들에서 그의 본성을 파헤쳐 보자. 그의 본성은 무엇이겠느냐? 그가 정말 이러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 사람은 교만하고 하나님을 조금도 경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준다. 또한 그가 추구하는 것은 높은 지위에 서는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을 다스리고 점유하고 싶어 하며 그들 마음속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사탄의 형상이다. 그의 본성 가운데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바로 교만하고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그를 경배하도록 하는 것인데, 이런 모습을 통해서 그의 본성을 명확히 알 수 있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인류가 사탄에 의해 패괴된 후 사람의 본성은 변하기 시작하여 점차 정상인의 이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더는 사람의 위치에 서서 사람이 되려 하지 않고, 사람의 자리를 넘어서서 더 높고 더 큰 존재가 되려고 한다. 더 높은 존재가 되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겠느냐? 바로 하나님을 넘어서고, 하늘을 넘어서고, 모든 것을 넘어서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이 이럴 수 있는 근원은 무엇이겠느냐? 결국 사람의 본성이 너무 교만하기 때문이다. … 교만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교만하고 잘난 체하거나 독선적인 사람은 독립 왕국을 세우고, 자신의 방식대로 행하며, 다른 사람들을 자기 손 안으로, 자기 품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사람이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은 교만한 본질이 곧 천사장의 본질임을 의미한다.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교만하고 잘난 체하면, 사람은 천사장이 되고, 하나님을 한쪽에 제쳐 놓게 된다. 네게 이런 교만한 성품이 있다면 네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는 없을 것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교만한 본성은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원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문제의 실상을 분명히 알게 되었고, 제가 본분에서 늘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는 근본 원인은 교만한 본성 때문이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잘못된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본분에서 늘 자기를 높이고 드러내기 바빴으니 바울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바울도 사역하는 과정에서 늘 자신을 높이고 증거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서신을 보면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내용은 찾아볼 수가 없고, 오직 자신이 얼마나 수고하며 사역했는지 증거하는 내용뿐입니다. 심지어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라는 말도 했습니다. 나아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딤후 4:7~8)라고 말하면서 형제자매들이 그와 같은 사람은 마땅히 면류관을 얻고 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저의 본성은 바울과 같았습니다. 사람들의 우러름과 존경심을 얻고, 사람들 사이에서 중심이 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칭찬과 칭송을 받으려 했고, 사람들 마음에 저의 자리가 있기를 무척이나 바랐습니다. 저의 본성을 보니 하나님께서 “교만하고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그를 경배하도록 한다.”라고 폭로하신 말씀과 같았습니다. 이성을 잃을 정도로 교만했고, 피조물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높였고, 본분을 이행하는 가운데 제 위신을 세워 사람들의 우러름과 존경심을 샀습니다. 저에게 미혹 당한 형제자매들은 모든 일에서 저를 의존했고, 사역에 관해서도 저의 결정을 기다렸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제 앞으로 이끌었고, 저의 왕국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저의 모든 소행은 충분히 하나님의 노를 불러일으킬 만했고, 하나님께서 역겨워하고 혐오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이런 병에 걸린 것을 보니 하나님은 참으로 공의로운 분이셨고, 저는 악행을 저지르며 하나님께 대적했으니 응분의 벌을 받아 마땅했습니다. 이처럼 채찍질과 징계로 저의 악행을 멈추어 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습니다.
저의 문제점을 알게 된 후,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내일부터 의식적으로 육을 저버리며 진리를 실행하고, 저의 패괴 성품을 드러내면서 형제자매들이 저의 추한 모습을 보고 저를 분별하여 더는 미혹 당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묵상 시간에 저는 정직한 사람이 되어 자신을 드러내고 아는 것에 관한 말씀과 어떻게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하는지에 관한 말씀을 먹고 마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증거할 때에는 주로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지, 어떤 시련으로 사람을 연단하고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지, 너희가 체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패괴를 드러내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는지, 결국 어떻게 정복되었는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진실한 인식을 얼마나 갖게 되었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이 말해야 한다. 너희는 이 부분에 대해 말할 때 공허한 이론을 말하지 말고 사실적으로 알아듣기 쉽게 말하며, 마음속 말을 솔직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체험하면 된다. 심오하고 공허한 이론으로 자신을 뽐내려 하지 말라. 그러면 너무 교만하고 비이성적으로 보인다. 현실적인 체험에 바탕을 둔 실제적인 말, 마음에 있는 말을 많이 해야 사람에게 가장 크게 도움이 되고 사람들 보기에도 가장 적절하다. 지난날, 너희는 하나님을 가장 심하게 대적한 사람들이었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었지만, 지금은 정복되었다. 이 점을 영원히 잊어선 안 된다. 이 방면의 일을 많이 묵상하고 생각해서 이해한다면 어떻게 증거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뻔뻔스럽고 비이성적인 일을 저지르기 쉽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 중에서) 『체험을 공유하고 교제한다는 것은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 내적 상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체험과 인식,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 있는 패괴 성품을 모두 꺼내어 말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분별하게 하고, 긍정적인 것은 받아들이고 부정적인 것은 알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공유하는 것이고 진정으로 교제하는 것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실행>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진정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하려면, 자신이 어떤 패역함이나 패괴함을 드러냈는지를 이야기하고 자신의 진짜 상태와 생각을 털어놓아야 합니다. 어떤 비열한 마음을 품었는지, 어떤 짓을 했는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나중에 어떻게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경험해 자신에 대해 알게 됐는지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또한 형제자매들이 분별할 수 있게 자신의 패괴된 실체를 폭로해 해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징계와 채찍질을 내리시고 상황을 마련하셔서 사람을 이끌었는지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있는 말, 솔직한 말을 해야지 자랑을 하며 자신을 드러내면 안 됩니다. 실행의 길을 깨달은 후, 저는 예배 모임에서 그동안 적그리스도의 길을 걸었던 제 모습과 사람을 미혹한 끔찍한 결과에 대해 폭로하고 해부했습니다. 교제를 할수록 적그리스도의 길을 걸었던 제 모습에 대해 더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교제를 마치자, 형제자매들은 분별력이 없어서 저의 번지르르한 말과 좋게 보이는 행동에 미혹당했다고 했습니다. 한 자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전에는 자매님에게서 정말 진리를 잘 실행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무리 연약해져도 하나님 말씀만 보면 바로 적극적으로 바뀌는 줄 알았고요. 자매님이 이렇게 교제해 주니, 이제서야 자매님도 패괴되었고, 소극적이고, 연약한 면이 많은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어요. 패괴된 인류는 정말 다 똑같네요. 절대 누구를 우러러보거나 함부로 숭상하면 안 되겠어요.” 그리고 또 다른 자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게요. 전에 자매님한테서 받은 느낌은 정말 강한 사람이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자매님 앞에서는 제 속내를 다 털어놓지 못했죠. 자매님에 비해 제가 너무 패괴된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오늘 자매님이 이렇게 털어놓으니 자매님도 우리랑 다를 게 없다는 걸 알았어요.” 이런 말들을 들으니 정말 부끄럽고 후회가 됐습니다. “맞아요. 앞으로 저를 우러러보지 마세요. 다 제가 적그리스도의 길을 걸으면서 여러분을 미혹한 거예요.” 어떤 사역자들은 제가 저 자신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 말씀과 결부시킨 내용을 교제해 주었습니다. 순식간에 우리의 사이는 무척 가까워졌습니다. 그날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제 마음은 너무나 편안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은 병도 잊은 채 곤히 잠에 들었습니다. 놀랍게도 저의 병은 하룻밤 사이에 깨끗이 나아 다음 날 저의 얼굴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하루는 예배 때,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평소 마음가짐과 목적이 올바르지 못한 자, 나서기를 좋아하는 자, 외적인 일을 하기 좋아하는 자, 잘 방해하는 자, 종교적 도리를 고집하는 자, 사탄의 종 등 이런 자가 일어나면 교회의 문젯거리가 되고, 형제자매들의 먹고 마심도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니 이런 자들이 나타나 활동하면 그 즉시 차단해야 한다. 몇 번이나 일러 주는데도 바로잡지 않는다면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심하게 고집하는 자가 계속 스스로를 변호하고 죄악을 덮으려 하면 교회는 그러한 자를 가차 없이 바로 제명해야 한다. 작은 것 때문에 큰 것을 잃지 말고 전체를 고려해야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17편> 중에서) 하나님 말씀이 폭로하고 있는 것은 제가 지난 1년 동안 가장 두드러지게 보인 모습이었습니다. 리더의 본분을 맡은 후로 저는 무엇을 하든 항상 앞에 나서려 했고, 제가 다른 사람보다 잘났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래서 파트너들과 사역 문제를 의논할 때면 다들 각자의 견해와 생각이 있을 텐데도 전 항상 스스로의 의견이 더 좋다고 생각해 목소리를 높이곤 했습니다. 적극적인 모습으로 보였겠지만 실제로 저는 모두가 저를 대단하게 생각하길 바라는 마음에 늘 자신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교만한 본성 때문에 저지른 짓들을 생각하니 민망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파트너나 사역자들은 매사 저의 의견을 존중하고 제 의견을 물어보면서 진리 실제를 살아 내었고, 독단적이거나 교만하게 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형제자매들의 그런 모습을 보며 그들이 저보다 못났고 능력이 없다 여겼고, 늘 높은 곳에 서서 제가 더 뛰어난 사람임을 보이려 했습니다. 지금 와서 다시 돌아보니 정말 가소롭기 그지없었습니다. 마치 동화 속 벌거벗은 임금처럼 창피한 줄 모르고 거들먹거리며 자신을 드러내는 데 급급했습니다. 저의 행동을 돌아보니 얼굴이 화끈거리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제가 스스로를 몰라 그랬던 것이었습니다. 또 한편으로 제가 걷는 길을 알고 나니 두려워졌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마음가짐과 목적이 불순하고, 나서기 좋아하는 자들이 나서면 “즉시 차단해야 한다.”라고 하신 말씀과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고 계속 변명하는 자는 “교회는 가차 없이 바로 제명해야 한다.”라고 하신 말씀은 정말 하나님의 공의와 위엄을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랬습니다. 그동안 줄곧 앞에 나서며 저를 드러낸 결과, 제게 미혹당한 형제자매들은 저를 우러러보며 존경하였고, 그 바람에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없었습니다. 또한 다른 파트너와 사역자들을 허수아비처럼 만들어 본분에 대한 그들의 부담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교회에서 날뛰면 교회에 재앙을 불러올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주제를 알지 못하고 오히려 스스로를 ‘복덩이’라 여겼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저에게 임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저 자신과 제가 걷고 있는 잘못된 길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고,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면서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깨달으면서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남들이 우러러볼 정도의 능력이 있다면 자기를 좀 드러내는 것도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심지어 영예라 여긴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늘 자기를 드러내는 이런 비열하고 뻔뻔스러운 수법으로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으려 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짓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모르고, 성품 변화를 추구하지 않은 채 계속 교만한 성품대로 늘 자신을 드러내려 한다면, 그는 인격이란 게 없는 사람입니다. 진정 인성이 있는 사람은 교만함과 독선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진 사람이며, 됨됨이가 착실하고 성실하게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말과 행동에서 늘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어야 비로소 이성 있고 존엄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저도 모르게 저를 드러낼 때면 너무 역겹고 혐오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어떤 사람들과 있든 허풍을 떨지 말고 항상 진솔하게 말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일깨우곤 했습니다. 특히 진리에 대해 교제할 때는 더더욱 자신을 드러내지 말고 실제적으로 말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잡았습니다. 그리고 매번 저의 경험을 말하기 전에는 제가 마음을 바로잡고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감찰을 받겠다고 의식적으로 기도했습니다. 교제를 마친 후에는 스스로 제가 했던 말속에 자기를 드러내는 요소가 없었는지 돌아보았습니다. 제 말속에 그런 요소가 있었음을 반성할 때면 다음 예배 모임에서 제가 먼저 지난번 저의 행동을 드러내 해부하곤 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저를 맹목적으로 존경하지 않고, 제 말을 분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제 체험을 교제한 후 나중에 살펴봐도 솔직히 말했을 뿐 저를 드러낸 부분이 없을 때도 있었지만, 일부 새 신자들은 여전히 저를 우러러보는 눈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더 이상 그것을 즐기지 않고 얼른 형제자매들에게 저도 처음에는 매우 연약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저는 어떻게 소극적으로 변했었는지, 제가 헤쳐 나가지 못할 것 같다고 느낄 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고, 실행할 길도 찾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교제하니 형제자매들은 저의 진짜 분량에 대해서 알게 됐고, 또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계속 이끌어 주실 뿐 사람에게는 칭찬할 부분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더는 저를 대단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하나님께서 본분을 이행할 기회를 주셨을 때 저는 하나님을 등진 채 사적인 경영을 했고, 적그리스도의 길을 걸으며 하나님과 맞섰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면목이 없었습니다. 병마의 고통이란 징계와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이 없었다면 저는 반성을 하지도, 자신을 인식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예전에 <형벌과 심판이 사랑임을 알라>라는 찬송을 자주 부르곤 했지만 심판에 대한 실제적인 체험과 인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채찍질과 징계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과 구원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지고 그동안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되었습니다. 그리고 꼭 정직한 사람이 되겠다는 목표를 추구하자고 의지를 다졌습니다. 예배 모임에서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해야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사역자들과 협력할 때는 진리 원칙에 맞는 의견을 존중하고 인정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습니다. 더는 전처럼 다른 사람의 생각을 부정하며 제가 더 대단한 것처럼 굴지 않았습니다. 협력해 본분을 이행할 때도 서로 누가 잘났는지 비교하거나 누군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현상이 사라졌습니다. 큰일이 닥치면 다 같이 원칙을 구하면서 진리 원칙에 따라 실행했습니다. 심판과 형벌을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심판과 형벌로 인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다소 알게 되었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조금이나마 가지게 되었으며, 하나님을 섬기는 과정 중 피조물의 자리에 서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삶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를 구원해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