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성경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과연 하나님의 사역이 먼저인가, 아니면 성경이 먼저인가?
말세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이 율법시대의 사역을 한 후에 구약 성경이 생겨났고, 그때부터 사람은 성경을 보기 시작했다. 예수가 와서 은혜시대의 사역을 한 후에는 예수의 사도들이 신약 성경을 썼다. 그렇게 신구약 성경이 생겨난 것이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모두 성경을 보고 있다. 성경은 한 권의 역사책이다. 물론 그 안에는 선지자의 예언도 어느 정도 들어 있다. 선지자의 예언은 결코 역사(歷史)가 아니다. 성경은 여러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경에는 예언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여호와가 행했던 사역만 있는 것도 아니며, 바울이 쓴 서신만 있는 것도 아니다. 너는 성경이 몇 부분으로 구성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구약에는 창세기, 출애굽기… 그리고 선지자들이 쓴 예언서도 포함되어 있으며, 마지막은 말라기로 구약 성경 전체가 마무리된다. 구약은 여호와가 인도했던 율법시대의 사역을 기록한 것으로, 창세기부터 말라기에 이르기까지 구약 율법시대의 모든 사역에 대한 종합적인 기록이다. 다시 말해, 율법시대에 여호와의 인도를 받았던 사람들이 겪은 일들을 모두 구약에 기록했다는 것이다. 구약 율법시대에 여호와는 많은 선지자를 일으켜 그를 위해 예언하게 함으로써 각 나라와 족속의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가 행하려는 사역을 예언했다. 여호와가 일으킨 그 사람들은 모두 여호와가 베풀어 준 예언의 영을 받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여호와로부터 이상(異象)을 볼 수 있었고,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여호와에게서 계시를 받아 예언을 기록했다. 그들이 행했던 이 사역들도 다 여호와의 음성을 선포하고 여호와의 예언 사역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여호와는 그 당시 사역할 때 성육신하지 않고 영으로만 사람을 인도했기 때문에 사람은 그의 모습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호와는 수많은 선지자를 일으켜 자신의 사역을 했으며, 그들이 묵시를 받아 이스라엘의 모든 나라와 족속의 사람에게 알려 주도록 했다. 그들의 사역은 예언을 하는 것이었고, 게다가 그들 가운데 어떤 이는 여호와가 알려 준 말씀을 모두 기록하여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여호와가 그들을 일으킨 것은 예언을 하기 위함이었다. 즉, 사람들이 여호와의 기묘함과 지혜를 볼 수 있도록, 이후에 행할 사역이나 당시에 아직 행하지 않은 사역을 예언한 것이다. 그런 예언서들은 성경의 다른 책들과 매우 다르다. 예언서는 예언의 영을 받은 사람, 즉 여호와로부터 이상을 보거나 음성을 들은 사람이 한 말, 또는 기록해 놓은 말이다. 예언서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여호와가 사역을 마친 후에 사람이 기록한 책이다. 그러므로 그런 책들은 여호와가 일으킨 선지자의 예언을 대신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창세기, 출애굽기는 이사야서, 다니엘서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예언은 사역을 하기 전에 한 말이다. 예언서 이외의 다른 책들은 사역을 마친 후에 기록한 것으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때의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계시를 받아 예언을 하고 많은 말을 했다. 그들은 은혜시대의 일이나 말세에 세상을 멸하는 일을 예언했는데, 이는 바로 여호와가 앞으로 행할 사역을 예언한 것이다. 그 이외의 책은 모두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행한 사역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볼 때는 주로 여호와가 지난날 이스라엘에서 어떻게 역사했는지를 보게 된다. 구약 성경에는 주로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인도한 사역,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애굽을 탈출하게 함으로써 바로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고 광야로 들어가게 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중에 가나안에 입성한 후 그곳에서 살았던 내용도 기록되어 있으며, 그 외에 여호와가 이스라엘 각지에서 사역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구약에 기록된 것은 여호와가 아담과 하와를 창조한 땅, 이스라엘에서 했던 사역이다. 하나님은 노아 이후부터 땅의 사람을 정식으로 인도했는데, 기록되어 있는 것은 전부 이스라엘에서 행한 사역뿐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이외의 지역에서 행한 사역은 왜 기록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이스라엘 지역이 인류의 발원지였기 때문이다. 최초에는 이스라엘 외에 다른 나라가 없었던 데다가 여호와도 다른 곳에서 역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구약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모두 하나님이 당시 이스라엘에서 행했던 사역이다. 그리고 이사야, 다니엘, 예레미야, 에스겔 등 선지자들이 했던 말은 땅에서 행할 다른 사역, 즉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행할 사역을 예언한 것이었다. 그것은 완전히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성령의 역사이다. 그 선지서들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당시 사람이 여호와의 역사를 체험한 것에 대한 기록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경에 관하여 1> 중에서
당시 예수는 수많은 사역을 했지만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고, 예수 또한 해석해 주지 않았다. 예수가 떠난 뒤, 제자들은 곳곳에서 전도하고 사역하기 시작했으며, 당시 그 단계의 사역을 위해 서신과 복음서를 쓰기 시작했다. 신약 복음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20~30년이 지난 뒤에 기록된 것이다. 예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았던 것은 모두 구약 성경이었다. 즉, 은혜시대가 막 시작되었을 때 그들이 보았던 것은 다 구약 성경이었다. 신약 성경은 은혜시대에 비로소 생긴 것이다. 예수가 사역할 때는 신약 성경이 존재하지 않았다. 예수가 부활하여 승천한 후, 후세 사람들이 그의 사역을 기록하여 그제야 4복음서가 생겨났고, 거기에 바울의 서신과 베드로의 서신, 계시록 책까지 추가되었다. 그리고 예수가 승천하고 3백여 년이 지난 뒤, 후세 사람들이 다시 그 원고들을 골라 하나로 편집하면서 비로소 신약 성경이 생겨났다. 신약 성경은 당시 사역이 끝난 후에야 생겨난 것이지 미리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그 많은 사역을 행했고, 바울과 다른 사도들이 곳곳의 교회에 그 많은 서신을 써 보냈다. 후세 사람들이 사도들의 그 서신을 함께 모으고,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가장 큰 이상(異象)에 대한 기록을 맨 마지막 책으로 묶었다. 그것은 말세에 행할 사역을 예언한 것이다. 그 순서는 모두 사람이 배열한 것으로, 지금의 말씀과는 다르다. 지금은 사역하는 순서에 따라 기록하고 있고, 사람들이 접하게 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 친히 한 사역과 말씀이다. 또한 사람이 개입할 필요 없이 직접 영에서 비롯된 말씀을 하나하나 순서대로 나열해 놓았는데, 이는 사람이 기록한 순서와는 다르다. 그들이 기록한 내용은 그들의 지식수준과 자질에 근거한, 사람의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마다 기록 방식이나 인식이 다르므로 기록한 내용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네가 성경을 하나님으로 여겨 숭배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우매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왜 오늘날의 하나님 사역을 찾지 않느냐?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역일 뿐, 성경이 아니다. 사람은 수천 년간 성경을 읽어 왔지만,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네가 성경을 숭배한다면 영원히 성령 역사를 얻지 못할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경에 관하여 3> 중에서
예수 시대에, 예수는 당시 성령이 그에게 하는 사역에 따라 유대인들을 인도했고,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도했다. 예수가 행한 것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역에 따라 말씀한 것이었다. 성경에서 어떻게 말했든 예수는 상관하지 않았고, 또한 자신을 따르는 사람을 인도할 때 성경에서 길을 찾지도 않았다. 예수는 사역을 막 시작했을 때 회개의 도를 전했다. 그러나 ‘회개’라는 이 두 글자는 구약의 그 많은 예언에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예수는 성경을 근거로 사역하지 않았을뿐더러 더 새로운 길을 펼쳤고, 더 새로운 사역을 했다. 그는 성경을 참고하여 전도한 적이 없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예수의 이적은 율법시대에 아무도 행하지 못했고, 그의 사역과 가르침, 그의 말씀의 권병과 능력 역시 율법시대에 아무도 닿을 수 없었다. 예수는 오로지 자신의 새로운 사역만 했다. 수많은 사람이 성경으로 예수를 정죄하고, 구약 성경으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했지만, 그의 사역은 오히려 구약 성경을 넘어섰다. 그런 것이 아니었다면 사람이 어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었겠느냐? 그것은 다 예수의 가르침과 병 고치고 귀신 쫓는 능력이 구약에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 아니겠느냐? 예수가 행한 사역은 일부러 성경과 ‘싸움’을 하거나 구약 성경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펼쳐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직분을 이행하러 왔을 뿐이며, 그를 갈망하고 찾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역을 가져다주었을 뿐이다. 예수는 구약을 해석하거나 구약의 사역을 수호하러 온 것이 아니었고, 그의 사역은 율법시대가 계속 발전해 나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의 사역은 성경의 근거 유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사역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는 구약의 예언들을 해석하지 않았고, 구약 율법시대의 말씀에 따라 사역하지도 않았다. 그는 구약에서 어떻게 말했든, 그것이 자신의 사역과 부합하든 않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또한 다른 사람이 자신의 사역을 어떻게 인식하든, 어떻게 정죄하든 자신이 행해야 할 사역만 계속하였다. 많은 사람이 구약 선지자의 예언으로 그를 정죄했을지라도 말이다. 사람이 보기에 예수가 하는 사역은 아무런 근거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성경의 기록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수없이 많았다. 그것은 모두 사람의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점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을 규례에 맞출 필요가 있겠느냐? 하나님의 사역도 선지자의 예언에 근거해야 한단 말이냐? 성경이 크겠느냐, 하나님이 크겠느냐? 왜 하나님이 꼭 성경에 근거해 사역해야 한단 말이냐? 설마 하나님 자신에게는 성경을 벗어날 어떤 권리도 없단 말이냐? 하나님은 성경을 떠나 따로 사역할 수 없다는 것이냐? 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겠느냐? 예수가 안식일을 지키고 구약의 그 계명들에 따라 실행했다고 한다면, 왜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반면 발을 씻겨 주고 수건을 쓰고 또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셨겠느냐? 그런 것은 모두 구약에 없는 계명 아니더냐? 예수가 구약대로 하고자 했다면, 왜 그런 규례들을 깨뜨렸겠느냐? 너는 하나님이 먼저였는지, 성경이 먼저였는지 알아야 한다! 안식일의 주인인 그가 성경의 주인은 될 수 없다는 것이냐?
신약시대에 예수가 한 사역은 새 사역을 개척한 것이었다. 예수는 구약시대의 사역대로 하지 않았고 구약시대에 여호와가 했던 말씀에 맞추지도 않았으며, 자신의 사역을 했다. 그는 더 새로운 사역, 율법보다 더 높은 사역을 했다. 그래서 예수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라고 했던 것이다. 그가 이룬 것에 따라 수많은 규례가 깨졌다. 안식일에 예수는 제자들을 데리고 밀밭을 지나다가 밀 이삭을 잘라 먹으며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 게다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라는 말까지 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법에 따르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는 돌로 쳐 죽였다. 하지만 예수는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고 안식일도 지키지 않았다. 예수가 한 그 사역들은 여호와가 구약시대에 하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가 한 사역은 구약 율법을 뛰어넘었으며, 구약 율법보다 더 높아졌다. 그는 구약 율법대로 행하지 않았다. 은혜시대에 이미 구약의 율법대로 행하지 않고 그런 규례들을 깨뜨렸건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을 고수하며 예수를 정죄하였다. 이는 예수의 사역을 부인하는 것 아니겠느냐? 지금 교계도 성경을 고수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은 거룩한 책이므로 반드시 봐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은 그 어느 때에도 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구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세우신 언약이므로 폐할 수 없지요. 그러니 안식일은 언제라도 꼭 지켜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런 사람은 너무 그릇된 자 아니겠느냐? 예수가 당시에 안식일을 지키지 않은 것은 어찌 된 일이겠느냐? 예수가 죄를 짓기라도 했단 말이냐? 누가 그 일을 꿰뚫어 볼 수 있겠느냐? 사람의 깨닫는 능력으로는 성경을 아무리 본다 해도 하나님의 역사를 알 수 없을 것이고, 하나님을 순수하게 알기는커녕 갈수록 관념이 많아져 하나님을 대적하기 시작할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이 성육신하지 않았다면, 사람은 모두 자신의 관념에 의해 끝장났을 것이고, 하나님의 형벌 속에서 죽었을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경에 관하여 1> 중에서
네가 율법시대의 사역이나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도를 어떻게 준행하였는지를 알고 싶다면 구약 성경을 봐야 하고, 은혜시대의 사역을 알고 싶다면 신약 성경을 봐야 한다. 그렇다면 네가 말세의 사역에 대해 알려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오늘날의 하나님 인도를 받아들이고, 오늘날의 사역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새로운 사역이라 성경에 미리 ‘기록’해 놓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하나님은 성육신하여 따로 중국에서 다시 선민들을 택했고, 이들에게 사역하며 땅에서의 사역을 계속하고 있고, 은혜시대의 사역을 이어 가고 있다. 오늘날의 사역은 이전 사람이 가 본 적 없는 길이고, 그 누구도 보지 못한 도이며, 아직 행한 적이 없는 사역이다. 다시 말해, 이는 하나님이 땅에서 행하는 최신 사역이다. 그렇기에 행한 적이 없는 사역은 역사(歷史)가 아니라고 한다. 현재는 현재고, 아직 지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땅에서, 이스라엘 밖에서 다시 더 크고 더 새로운 사역을 행하여 이미 이스라엘의 범위와 선지자의 예언을 뛰어넘었음을 모르고 있다. 이는 예언에 없는 새롭고 놀라운 사역이고, 이스라엘 밖에서 행하는 더 새로운 사역이며, 사람이 꿰뚫어 볼 수도 없고 생각지도 못한 사역이다. 이런 사역이 어떻게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을 수 있겠느냐? 오늘날의 사역을 그 누가 하나도 빠짐없이 미리 기록해 놓을 수 있겠느냐? 그 누가 관례를 깨는 더 크고 더 지혜로운 이 사역을 오래되어 곰팡내 나는 책에 기록해 놓을 수 있겠느냐? 현시점의 사역은 역사(歷史)가 아니다. 그러므로 네가 오늘날의 새 길을 가려면 성경에서 나와야 하고, 성경에 기록된 예언서나 역사서의 범위를 벗어나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새로운 길을 잘 갈 수 있고, 새로운 경지와 새로운 사역에 진입할 수 있다. … 새로운 말씀이 너에게 공급해 줄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이 새로운 사역임을 증명한다. 옛날의 기록이 너의 배를 불리지 못하고 지금 너에게 필요한 것을 충족해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현시점의 사역이 아니라 역사(歷史)라는 것을 증명한다. 최고의 도는 바로 가장 새로운 사역이다. 새로운 사역이 있으면, 이전의 도가 아무리 높다 할지라도 모두 사람에게 추억의 역사(歷史)로 남고, 아무리 참고할 가치가 있을지라도 옛 도에 그친다. 옛 도는 ‘성서’에 기록되었을지라도 역사(歷史)이고, 새로운 도는 ‘성서’에 한 쪽도 기록되지 않았을지라도 현실이다. 이 도는 너를 구원할 수도, 변화시킬 수도 있다. 이는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경에 관하여 1>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