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리스도를 알아가다

목차

제4장 반드시 하나님의 말세 역사 방면의 진리를 인식해야 한다

5 어떻게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할 수 있는가?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비록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만 무엇을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하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을 수 있겠는가를 깨달은 사람은 아주 적다. 그 원인을 찾아보면, 사람이 비록 ‘하나님’이란 글자를 알고 ‘하나님의 역사’란 말도 알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더욱이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이 다 흐리멍덩하게 믿는 것도 이상할 것 없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일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데, 그것은 모두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일에 대하여 너무 생소하고 너무 낯설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사람이 하나님의 요구와는 거리가 아주 멀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쓰임에 달할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는 데에 달할 수 없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이 있음을 믿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가장 간단한 개념이다. 진일보로 말하면, 하나님이 있음을 믿는 것은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신앙으로서 농후한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진정한 함의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물의 주재라고 믿는 기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면서 패괴 성정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는 데에 달하며 아울러 하나님을 아는 데에 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정을 비로소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은 종종 하나님을 믿는 일을 아주 간단하게, 아주 경박하게 보는데,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의의를 잃었으며, 끝까지 믿어도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이는 그가 걷는 길이 틀렸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글귀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공허한 도리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그들은 아직도 자기에게 하나님을 믿는 실질이 없고 자기가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른 채, 여전히 상제(上帝)에게 그들을 보우하사 평안을 얻게 하고 충족한 은혜를 얻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우리 모두 마음을 진정시키고 잘 생각해보자. 설마 하나님을 믿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일이란 말인가? 설마 하나님을 믿는다는 함의가 은혜를 많이 받는 데에만 제한되어 있단 말인가? 설마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단 말인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앞에 쓴 말씀≫에서 발췌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아는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오늘 도성육신(道成肉身)인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는 시대에서는 더욱이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좋은 기회이다.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데에 달하는 것은 하나님 뜻을 깨닫는 기초에서 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에 대하여 인식이 있는 데에 달해야 한다. 이런 인식은 바로 하나님을 믿는 데에 반드시 있어야 할 이상(異象)이고,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의 토대이다. 사람이 만일 이런 인식을 잃어버린다면,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바로 막연 중에서 믿는 것이고 텅 빈 도리 속에서 믿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설사 뒤따를 심지가 있다 하더라도 일무소득이다. 무릇 이 흐름 속에서 일무소득인 사람은 모두 장래에 도태될 대상이고 모두 공밥을 먹는 사람이다. 네가 어느 단계의 역사를 경력하든지 극히 큰 이상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이 한 단계 한 단계의 새 역사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는 새 사역은 모두 사람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고 사람의 사유로 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목자의 목양이 없고 이상에 대한 목자의 교통이 없다면, 사람은 모두 이런 새 사역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이 이상을 터득할 수 없으면 새 사역을 터득할 수 없다. 새 사역에 순복할 수 없으면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다. 이러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도 없을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기 전에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인식해야만, 즉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만 정확하게 행할 수 있고 하나님 뜻에 맞을 수 있다. 이것은 진리를 찾고 구하는 각 사람이 반드시 구비해야 할 바이고, 역시 하나님을 아는 각 사람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하나님 말씀을 인식하는 과정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과정이자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이상을 인식하는 것도 도성육신인 하나님의 인성을 인식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를 인식하는 것도 포괄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데에 달하고, 하나님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소시를 인식하는 데에 달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시작이다. 맨 처음 하나님을 믿던 데로부터 가장 깊이 하나님을 믿는 이 과정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과정이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과정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면, 너의 ‘믿음’은 실제가 없고 너의 ‘믿음’은 순결함에 달할 수 없다. 이것은 확고하여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력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차츰 인식이 있게 된다면, 사람의 성정은 차츰 변화가 있게 되고 사람의 믿음도 갈수록 ‘참’될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절정’에 달하도록 하나님을 믿을 때면, 완전히 하나님을 얻은 것이다. 하나님이 이와 같이 심혈을 기울여 두 번째로 말씀이 육신 되어 친히 역사하는 까닭은,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알 수 있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볼 수 있게 하는 데에 달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이 단계 역사는 하나님이 사역을 끝마칠 때에 달하는 최종 효과이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요구이다. 이렇게 하는 까닭은 바로 하나님의 최후의 증거를 위해서인데, 역시 인류를 최후에 철저히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게 하기 위하여 하는 사역이다. 하나님을 알아야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어떻게 추구하든, 무엇을 얻기를 추구하든 하나님을 아는 데에 달할 수 있어야 하나님 마음을 만족케 할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에 대하여 진실한 믿음이 있을 수 있으며,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에 대하여 진실한 경외와 진실한 순복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에 대하여 진실한 순복과 경외가 있는 데에 달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소시를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데에 포괄된 것이다. 그러나 어떤 방면을 인식하든지 사람은 대가를 치러야 하고 순복하는 심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한 사람도 끝까지 따를 수 없다. 하나님의 역사는 너무나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고,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소시는 사람이 인식하기 너무나 어려우며, 하나님의 일언일행ㆍ일거일동은 실로 너무나 사람으로 하여금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사람이 만일 하나님을 따르고 싶어하면서도 하나님께 기꺼이 순복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창세로부터 오늘날까지,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기도 어렵게 하는 사역을 얼마나 많이 하였고 사람의 관념으로 하여금 아물기 어렵게 하는 말씀을 얼마나 많이 하였는가. 그러나 그는 사람의 애로가 너무 많은 것으로 인하여 그의 사역을 여태껏 정지하지 않았으며, 줄곧 역사하고 있고 줄곧 말씀하고 있다. 비록 다수의 ‘용사’들이 넘어졌어도, 그는 여전히 그 자신의 사역을 하고 있고 그의 새 사역에 순복하려는 한 무리 또 한 무리 사람들을 부단히 택하고 있다. 그는 넘어진 그 ‘영웅호걸’들을 애석해하지 않고, 그의 새 사역과 새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보애(寶愛)한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 역사하는 것은 또 무엇을 위해서인가? 무엇 때문에 늘 사람을 도태시키고 또 사람을 택하는가? 무엇 때문에 늘 이와 같은 방식인가? 그가 역사하는 목적은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알게 하여 그에게 얻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가 역사하는 원칙은 바로 그의 오늘의 역사에 순복할 수 있는 사람 몸에 역사하는 것이고, 어제의 역사에 순복하나 오늘의 역사를 대적하는 사람 몸에는 역사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이렇게 대대적으로 사람을 도태시키는 원인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위하여 간증할 수 있다≫에서 발췌

『하나님을 믿는 것은 바로 너로 하여금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하나의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을 다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다.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존경스러움을 인식하고, 피조물의 몸에 하는 하나님의 사역은 구원이고 온전케 함임을 인식하는 데에 달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데에 최소한 구비해야 할 바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육체의 생활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활로 들어가는 것이며, 천연 속에서 살던 데로부터 하나님의 소시 안에서 사는 데로 돌아오는 것이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나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사는 것이며, 하나님께 순복하고 육체에 순복하지 않는 데에 달할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으로 하여금 너의 온 마음을 얻게 하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너를 온전케 하여 사탄의 패괴 성정을 이탈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큰 능력과 하나님의 영광이 너의 몸에서 나타나게 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고 사탄 앞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간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표적과 기사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하고 개인의 육체를 위한 것도 아니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께 순복하되 베드로처럼 죽기까지 순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주로는 이것에 달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도 역시 하나님을 알기 위한 것이고 역시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에 의하여 네가 하나님에 대하여 더욱 인식이 있게 되는데, 그 후에야 네가 비로소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하여 인식이 있어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이 목적에 달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어야 할 목적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언제나 표적과 기사를 보려 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관점이 그릇된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생명 실제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사람이 모두 실행하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모두 사람 몸에 현실화시킬 수 있다면, 하나님의 목적에 달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마땅히 하나님께 온전케 되기를 추구해야 하고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어야 하며 하나님께 고분고분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 네가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고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고 베드로의 그 분량에 달하여 하나님이 말씀한 바와 같이 베드로의 풍격이 있게 되면, 이때에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절정에 이른 것이다. 이러면 네가 하나님께 얻어졌음을 상징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에서 발췌

『네가 하나님을 믿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셔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야 한다. 이래야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한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낼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해낼 수 없다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하지 않는다. 이것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구비해야 할 것은 최소한도로 외면에 좋은 행위가 있어야 하는 것이며, 가장 주요한 것은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구비하는 것이다. 어떻든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수 없는데, 네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서 얻는 것이다. 이후에 각방(各邦)ㆍ각파ㆍ각종ㆍ각계를 모두 말씀으로써 정복한다.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고 각 사람은 손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고 있는데, 이것에 의하여 온전케 한다. 안팎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인바, 입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고 실행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하고 안에 간직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며, 안팎이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침투된다. 이러면, 사람이 온전케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케 하는 사람, 하나님을 위하여 간증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 말씀을 실제로 한 사람이다.

말씀의 시대에 진입하면 천년국도 시대이다. 현재에 바로 이 사역을 이루고 있다. 이후에는 너희들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교통하는 것을 훈련하여라.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는 것에 의해야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유로(流露)할 수 있다. 얼마간의 경력한 말을 해내는 것에 의해야만 다른 사람이 너에게 탄복하게 된다. 너에게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누가 너에게 탄복하겠는가! 무릇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낼 수 있는 사람이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낼 수 없다면, 성령이 네 몸에서 역사하지 않았음을 설명하고 네가 온전케 되지 않았음을 설명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의 중요성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국도시대는 바로 말씀 시대이다≫에서 발췌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과정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 중에서 나타난 것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할수록 하나님의 영에 대하여 더욱 인식이 있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는 것에 의하여 사람은 영의 역사 원칙을 더듬고 실제의 하나님 자신을 알게 된다. 실제상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을 얻는 것은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실제 하나님의 행사를 인식하게 하는 것이며, 바로 실제 하나님의 역사에 의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말씀이 육신 된 실제 의의를 보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이 실제적으로 사람 앞에 나타난 것을 보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께 얻어지고 하나님께 온전케 된다는 것은 바로 실제 하나님의 발표가 사람을 정복한다는 것이며, 실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며, 그의 생명을 사람 안에 만들어넣어 사람에게 그의 소시가(인성 소시든지 아니면 신성 소시든지) 가득하게 하고 그의 말씀의 실질이 가득하게 하는 것이며, 그의 말씀을 사람 몸에서 살아내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얻는 데에 있어서 주요한 것은 실제 하나님의 말씀과 발하는 음성에 의해 사람의 부족한 것을 대처하고 사람의 패역 성정을 심판하고 드러내어,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이 필요한 것을 얻게 하는 것이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왔다는 것을 보게 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가장 주요한 것은 실제의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이 각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원해내고 더러운 땅에서 이탈하게 하고 사람의 패괴 성정을 제거하는 것이다. 실제 하나님께 얻어지는 가장 깊은 의의는 바로 실제의 하나님을 푯대와 모형으로 하여 하나의 정상적 인성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이며, 조금도 차이가 없고 거리가 없이 실제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에 따라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어떻게 말씀하면 네가 어떻게 실행하고 그가 요구한 것에 네가 모두 달할 수 있다면, 너는 바로 하나님께 얻어진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실제의 하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에서 발췌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깨닫고 많이 실행할수록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길에 더 빨리 들어설 수 있다. 기도하는 것에 의하여 네가 기도에서 온전케 될 수 있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에 의하여 하나님 말씀의 실질을 더듬고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살아내면 온전케 될 수 있다. 네가 평소에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것에 의하여 자신의 결핍함을 인식하고 더욱이 자신의 치명적인 점과 연약한 점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면, 차츰차츰 온전케 함을 얻는다. 온전케 되는 경로는 즉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하나님 말씀의 실질을 더듬으며,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데에 진입하며, 자신의 결핍함을 인식하며, 하나님의 역사에 순복하며, 너의 사랑에 의하여 하나님의 부담을 생각하고 육체를 배반하며, 또 네가 형제자매들과 늘 교통하는 것에 의하여 너의 경력이 더 풍부해지도록 하는 것이다. 단체 생활이든 아니면 개인 생활이든, 대집회든 소집회든, 다 너로 하여금 경력이 있게 할 수 있으며, 훈련을 받아 너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안정시켜 하나님께로 향하게 할 수 있다. 이런 것은 모두 온전케 되는 과정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력하는 것이란 바로 네가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네 몸에서 살아내게 하는 것이며, 너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하여 더욱 믿음이 있게 하고 더욱 사랑이 있게 하는 것이며, 이 경로에 의하여 점차적으로 사탄의 패괴 성정을 벗어버리고 너의 부정당한 존심을 벗어버리고 정상 사람의 모양을 살아내는 것이다. 네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분이 갈수록 많아지면, 즉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부분이 갈수록 많아지면, 사탄이 패괴시킨 성분이 갈수록 적어진다. 너의 실제적인 경력에 의하여 차츰차츰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선다. 그러므로 말하니,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는 데에 달하려면 하나님 말씀을 경력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 마음을 생각하여 온전케 되는 데에 달한다≫에서 발췌

『사람이 산 사람으로 되고 하나님을 간증하는 사람으로 되고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여야 하고 달갑게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아래에 순복해야 하며, 달갑게 하나님의 수리와 대처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래야 하나님이 요구한 모든 진리를 실행해낼 수 있으며, 이래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고 진실로 산 사람으로 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살아난 사람인가?≫에서 발췌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은 사람의 순복에 의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에 의하여, 생활 속에서의 고난과 연단에 의하여 달하는 것이다. 오직 이렇게 하나님을 믿어야만 사람의 성정이 변화될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하여 진실한 인식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사는 것을 만족해하지 않고 주동적으로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구하며 하나님께 얻어지기를 추구하는 이것을 의식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라 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순복해야 한다≫에서 발췌

『너는 생명을 추구해야 한다. 오늘 온전케 하려는 사람은 베드로와 같은 사람이고, 개인의 성정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간증을 하기를 원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바로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온전케 되는 사람이다. 가령 네가 상 받기만을 위하고 자기의 생명 성정이 변화되기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다 헛수고로 될 것이다. 이것은 영원불변의 진리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성공 여부는 사람이 걷는 길에 달렸다≫에서 발췌

『성정 변화란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가? 너는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력하는 중에서 하나님 말씀의 심판 형벌을 받아들이고, 각종 고난 연단을 겪고, 사람 안의 사탄 독소가 정결함을 받는다…… 하나님 집에서 말하는 성정 변화란 한 사람이 진리를 좋아하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인하여, 결국 하나님을 거역 대적하는 자기의 본성을 인식하고, 사람이 너무 깊이 패괴되었음을 인식하고, 사람의 터무니없음과 궤사함을 인식하고, 사람의 빈궁함과 가련함을 인식하는 것을 가리킨다. 최종에 사람의 본성 실질을 인식하여 완전히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하여 살고 매사마다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데에 달한다. 이는 바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고 성정이 변화된 사람이다.』

≪좌담 기요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서 발췌

『성정 변화란 주로 너의 본성의 변화를 가리킨다. 본성의 것들은 겉면의 행실에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본성의 것들은 직접 사람의 생존의 가치며, 생존의 의의며, 인생의 가치관에 관련되고, 영혼 깊은 곳의 것들과 관련되며, 사람의 실질과 관련된다. 만약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사람의 이런 방면에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 오직 하나님 역사를 경력한 사람만이 완전히 진리에 진입하며, 사람의 가치관ㆍ생존관ㆍ인생관도 다 변화가 일어나며, 일을 판단하는 관점이 하나님과 일치하며,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충성할 수 있다. 이것을 성정 변화라고 한다.』

≪좌담 기요ㆍ성정 변화에 대하여 있어야 할 인식≫에서 발췌

『어느 날까지 경력하면 한 사람의 인생관과 생존의 의의와 생존의 토대가 완전히 다 변한다. 바로 한 사람이 환골탈태(換骨脫胎)하여 딴 사람으로 되는데, 이는 대단하다! 이는 큰 변화이고 천지개벽의 변화이다. 네가 세상의 명리ㆍ지위ㆍ돈ㆍ누림ㆍ부귀영화에 대하여 있으나 없으나 다 괜찮다고 여기며 이런 일을 아주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으면, 이야말로 사람 모양이 있는 사람이다. 최종에 온전케 하는 자는 바로 이런 한 무리 사람들이다. 진리를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정의의 일을 위해 사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의 모양이다.』

≪좌담 기요ㆍ사람의 본성은 공통성도 있고 차이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에서 발췌

『사람이 만약 하나님을 알고 진리가 있다면, 그야말로 광명 속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세계관ㆍ인생관이 바뀌는 것이야말로 근본적인 변화이다. 사람에게 인생의 목표가 있고 진리에 근거하여 처신하며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복하고 하나님 말씀에 의거하여 살면, 심령 깊은 곳은 편안하고 환하게 느껴지며, 마음속에 조금의 흑암도 없고 완전히 해방 자유로이 하나님 앞에서 살게 된다. 이래야 진정한 인생을 얻게 되고 진리가 있는 사람이다. 그 밖에 네가 소유한 진리는 하나님 말씀으로부터 오고 하나님 그리로부터 온 것이다. 온 우주 만물의 주재자━지극히 높은 하나님이 너를 칭찬하고 너를 진정한 사람이라 한다. 네가 참으로 인생을 살아내면, 하나님이 너를 칭찬하는데, 이것은 가장 의의 있는 것이 아닌가? 이는 바로 진리가 있는 사람이다.』

≪좌담 기요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