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흉악한 성품을 해결하는 방법

말세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흉악’이라는 두 글자를 놓고 봤을 때, 이런 성품을 드러내면 어떤 일들을 할 수 있느냐? 우선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 한다. 지배란 무엇이냐? 바로 교회 안의 모든 일에 그가 다 개입하고, 간섭하고, 안배하려 하는 것이다. 그가 너에게 규율을 정해 주면 네가 그것을 지켜야 하고, 지키지 않으면 화를 낸다. 그가 너를 지배하려 하기 때문에, 동쪽으로 가라고 하면 너는 반드시 동쪽으로 가야 하고, 서쪽으로 가라고 하면 서쪽으로 가야 한다. 그는 이런 욕망을 가지고 있기에 이렇게 하는 것인데, 이런 것을 지배라고 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의 운명을 지배하고, 사람의 삶, 생각, 행위, 기호를 지배하고 통제하려 한다. 이로써 그 사람의 마음, 생각, 기호, 염원이 모두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고, 그 자신의 말과 뜻을 따르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지배라고 한다. 그는 늘 자신의 뜻에 따라 사람이 이것저것을 하게 안배하려 하는데, 원칙에 따라 일을 하지 않고 자신의 속셈과 기호를 따른다. 그는 네가 어떤 느낌을 받든 상관하지 않고 그냥 강제로 명령하며, 너는 반드시 그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 그의 뜻대로 하지 않으면 너를 처리하려 하는데, 너는 무력함과 어찌 할 방법이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음속으로는 이것이 우롱당하고 통제당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분별할 줄도 모르고, 더구나 감히 반항하지도 못한다. 그의 이런 행동은 사탄의 행위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사탄의 행위이다. 사탄은 이런 식으로 사람을 우롱하고 지배한다. 따라서 사람에게서 드러나는 사탄 성품은 바로 늘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통제와 지배라는 목적의 달성 여부를 떠나, 사람이라면 다 이런 성품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어떤 성품이냐? (흉악한 성품입니다.) 이것이 바로 흉악함이다. 왜 흉악하다고 하는 것이냐? 이런 측면의 성품은 무엇을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느냐? 여기에 강제성이 있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강제성이 있다. 즉, 네가 듣든 안 듣든, 어떤 느낌이든, 즐겁든 아니든, 이해를 했든 못했든, 그는 너에게 그의 말을 들으라고, 그가 말하는 대로 하라고 강제로 요구한다. 그때, 상의의 여지란 전혀 없고, 너에게 말할 기회와 자유도 주지 않는다. 이런 의미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흉’이다. 그렇다면 ‘악’은 무엇을 말하느냐? 바로 강제적인 주입과 억압이라는 수단으로 너를 통제해 그의 지배를 받게 하는 효과를 거두면 그가 만족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악’이다. 사탄은 일을 할 때 너의 자유 의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네가 곰곰이 생각하는 법과 분별하는 법을 배우게 내버려두지 않으며, 진리를 깨달아 생명이 점점 성장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사탄은 네가 이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너를 통제하려 한다. 사탄은 네가 진리를 구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지 않으며, 너를 하나님 앞으로 데려가지 않는다. 사탄은 너를 자신의 앞으로 데려가 자신의 말을 듣게 한다. 마치 자신이 진리이고, 자신이 한 말은 모두 옳고, 자신이 만물의 중심인 것처럼 말이다. 그리하여 너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하고, 옳고 그름을 분석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강제로 난폭하게 사람의 행위와 생각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것, 이런 성품이 바로 흉악함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품을 아는 것은 성품 변화의 기초이다> 중에서

흉악한 성품은 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느냐? 그것은 진리를 싫어하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느냐? 사실 진리를 싫어하는 모습이 심각하게 나타나 대적하고 판단하는 성질을 띠게 되면, 이는 흉악한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다. 진리를 싫어하는 성품에는 여러 가지 내적 상태가 포함된다. 진리에 관심이 없는 데서 싫어하는 데 이르면 하나님을 판단하고 정죄할 수 있는 상태로 발전하게 된다. 진리를 싫어하는 정도가 심해지면 하나님을 부정하고 증오할 수 있고, 하나님과 원수가 될 수 있다. 이 몇몇 내적 상태가 흉악한 성품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러니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내면에 더 심각한 내적 상태가 있다. 그 안에는 한 가지 성품, 즉 흉악한 성품이 들어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한 어떤 사람이 있는데, 하나님이 앗아 가는 바람에 이익에 손실이 생겼을 때 겉으로는 원망하거나 저항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받아들이지 않고, 순종하지 않았다. 이것은 가만히 앉아서 죽기만 기다리는 태도인데, 이는 확실히 진리를 싫어하는 내적 상태다. 그리고 그보다 더 심각한 내적 상태는, 앉아서 죽기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저항하고, 하나님이 앗아 가는 것에 저항하는 것이다. 그가 어떻게 저항하겠느냐?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기도 하고, 혹은 헐뜯는 일이나 독립 왕국을 세우려는 일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그것도 맞다. 어떤 교회 리더는 교체된 뒤로는 교회 생활을 할 때 방해와 교란을 일삼았다. 새로 선출된 리더가 하는 말마다 반감을 품고 불복하고 또 뒤에서 리더를 깎아내렸다. 이것은 어떤 성품이냐? 이것이 바로 흉악한 성품이다. 그의 뜻은 이런 것이다. ‘내가 리더가 될 수 없다면 누구도 여기에 발 들일 생각 말고 썩 꺼지라고! 당신을 몰아 내고 내가 원래대로 리더를 할 테야!’ 이것은 단순히 진리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흉악함이다! 지위를 다투고, 자리를 다투고, 개인의 이익과 명예를 다투는 것, 복수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모든 재주를 다 동원하는 것, 즉 자신의 능력을 전부 쏟아부어서 어떻게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 하는 것, 자신의 명예와 체면, 지위를 만회하고 복수하려는 의도를 충족하려 하는 것, 이 모든 것은 다 흉악함이다. 흉악한 성품에 포함되는 행동 중에 어떤 방식은 말을 많이 해서 교란하고 방해하는 것이고, 일부 방식은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르는 것이다. 말이든 행동이든 모두 진리에 부합하지 않고 진리에 위배되며, 모두 흉악한 성품의 표출에 해당한다. 어떤 사람은 분별할 줄 몰라서 눈에 확 띄는 잘못된 말이나 행위가 아니면 분간하지 못한다. 하지만 진리를 깨달은 사람에게는 악인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악이며, 진리에 부합하는 옳은 성분이 있을 리가 없다. 그것은 100% 악이고, 절대적으로 흉악한 성품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흉악한 성품을 드러내기 전, 악인의 속셈은 무엇이냐? 그는 어떤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냐? 왜 그런 짓을 하느냐? 너희는 분별할 수 있느냐?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어떤 사람은 집이 안전 위험이 있다. 큰 붉은 용에게 감시당해 집에 돌아갈 수 없게 되었고, 그래서 그는 매우 고통스러웠다. 형제자매에게 접대를 받았는데, 평온한 접대 가정을 보며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당신네 집은 어째서 의심을 안 받지? 왜 우리 집만 이런 일을 당해야 할까? 참 불공평하군. 안 되겠어. 내가 어떻게든 이 집이 안전하지 않게 하여 당신도 집에 못 돌아가게 만들어야겠어. 나처럼 고생 좀 해 보라고.’ 실제로 그 일을 저질러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든 안 했든, 그의 이런 속셈은 하나의 성품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자기가 순조롭게 지내지 못한다고 다른 사람도 잘 지내지 못하게 하는 이런 성품은 어떤 성질이냐? (악독함입니다.) 성품이 흉악하다. 이자는 너무 못됐다! 쉽게 말해 뼛속까지 못돼 먹었는데, 한 사람의 흉악한 정도를 이 말로 형용한다. 이런 성품은 어떤 성질이냐? 너희가 해부해 보아라. 그가 이런 성품을 드러낼 때 그의 동기, 속셈, 목적이 무엇이냐? 그가 이런 성품을 드러내는 출발점이 무엇이냐? 이루려는 목적이 무엇이냐? 자기 집이 안전 위험이 있어 남의 집에서 아주 잘 지내는데도 어떻게 교란을 저지를 수가 있겠느냐? 그가 교란해서 남의 집도 안전하지 못해 당사자가 집에 돌아가지 못하면 그가 기뻐하는 것이 아니냐? 만약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그는 당연히 일이 생기지 않게 그 집을 잘 보호해야 하고, 다른 사람을 해쳐서도 안 된다. 남을 해치는 것은 곧 자신을 해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는 대체 왜 그런 것이냐? (자기가 순조롭게 지내지 못하니까 남도 잘 지내지 못하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런 걸 바로 흉악함이라고 한다. 그의 마음은 이렇다. ‘큰 붉은 용이 우리 집을 파괴해 난 집이 없어져 버렸어. 그런데 당신은 아직도 집이 있고, 집에 가면 가정의 따스함을 누릴 수 있으니 이건 불공평해. 당신이 집으로 돌아가는 걸 보면 심기가 불편해서 당신을 괴롭히고 싶어. 당신도 나랑 똑같이 집에 돌아가지 못해야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아.’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은 심보가 못되고 심사가 뒤틀린 것 아니냐? 그렇다면 이런 건 어떤 성질이냐? (흉악함입니다.) 악인의 말과 행동은 모두 한 가지 목적을 위한 것이다. 그들은 보통 어떤 일들을 저지르느냐? 성품이 흉악한 사람이 저지르는 가장 흔한 일에는 어떤 것이 있느냐?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고, 파괴합니다.) (앞에서는 떠받들고 뒤에서는 헐뜯습니다.) (타격을 가하고, 보복하고, 악의적으로 공격합니다.) (헛소문을 퍼뜨려 모함합니다.) (비방하고,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이런 행동 방식들의 성질은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파괴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공격하는 행동에 해당한다. 흉악한 성품의 표출에 해당한다.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악인에 속한다. 대개 모종의 흉악한 성품의 모습을 갖춘 사람은 악인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악인의 본질은 무엇이냐? 마귀요 사탄이다. 이렇게 말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여섯 가지 방면의 패괴 성품을 알아야 진실로 자신을 아는 것이다> 중에서

악인이 긍정적인 사물을 사랑하겠느냐? 악인은 사악하고 흉악하고 악독한 것들을 좋아하며, 부정적인 것과 관계있는 모든 것을 좋아한다. 긍정적인 사물을 얘기할 때 이 일이 사람에게 유익이 되고 하나님에게서 왔다고 하면 듣기 싫어하고, 거기에 관심도 없다. 그러면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이다. 진리를 아무리 훌륭하게 교제해도, 말을 아무리 실제적으로 해도 그는 관심을 갖지 않고, 심지어 적대시하고 반항하기까지 한다. 반면 놀고먹는 얘기를 하면 그는 두 눈을 번뜩이고 흥이 돋는다. 이것이 바로 성품이 흉악하고 사악하며, 마음씨가 착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할 수가 없다. 그는 긍정적인 사물을 어떻게 보겠느냐? 멸시하고 우습게 보고 비웃을 것이다. 정직한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면 이렇게 생각한다. ‘정직한 사람은 손해만 보니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어! 정직한 사람이 되려는 너는 바보야. 너처럼 본분을 이행하면서 고생만 하고, 제 살 궁리도 안 하고, 자기 몸도 안 챙기다가 쓰러지면 누가 신경이나 쓴대? 나는 과로하면 안 돼.’ 누군가가 “우리 적당히 합시다. 바보같이 계속 열심히 일하지 말고, 살길을 마련해 놓고 나서 적당히 힘을 쓰면 돼요.”라며 그의 생각에 부합하는 말을 하면, 그는 기뻐한다.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충성을 다해 헌신하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에 대해 말하면, 그는 반감을 가지며 혐오하고 귀를 닫아 버린다. 그런 사람은 흉악한 사람이 아니냐? 이런 부류의 사람은 모두 성품이 흉악하다. 네가 진리를 교제하고 실행 원칙 얘기를 꺼내기만 하면 그는 반감이 생겨 듣기 싫어한다. 그는 이것이 그의 체면에 먹칠하고 그의 존엄을 훼손하며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는 속으로 ‘온종일 진리며 실행 원칙이며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만 말하는군. 정직한 사람이 되면 밥 먹여 주나? 솔직히 말하면 돈을 주나? 속임수를 쓰면 이득을 볼 수 있다고!’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무슨 논리겠느냐? 도둑놈의 논리이다. 이 성품이 흉악하지 않으냐? 이것이 마음씨가 착한 것이겠느냐? (착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진리를 얻지 못한다. 이런 사람이 봉헌하고, 헌신하고, 포기하는 것은 모두 목적이 있어서다. 그는 진작에 계산해 놓았다. 자기가 하나를 바치면 몇 개를 더 얻을 수 있어야 수지가 맞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어떤 성품이냐? 이는 사악하고 흉악한 성품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을 알아야 진리 추구에 유익하다> 중에서

교회에서 어떤 사람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서 책망과 훈계를 받았다. 책망하고 훈계할 때 종종 꾸짖는 말이나 닦달하는 말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분명 불쾌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고 반박할 이유를 찾으려 했을 수도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책망하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떤 건 듣기 너무 거북하단 말입니다. 창피하기도 하고 기분도 상하고요. 여태껏 하나님을 믿어 오면서 나름 애도 많이 썼는데 어쩜 저를 이런 식으로 대할 수 있죠? 왜 다른 사람은 책망하지 않지요? 분해서 못 살겠네요!” 이런 건 일종의 패괴 성품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이런 패괴 성품이 단지 원망, 불복, 저항으로만 나타났을 뿐 아직 절정에 달하지 않고 극으로 치닫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미 징조가 나타나고 임계점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의 그다음 태도는 무엇이냐? 그는 순종하지 못하고, 속으로 괴롭고 불복하게 되어 분개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치를 따지며 변명했다. “리더 일꾼이 책망하는 말이 다 맞다고 할 수도 없죠. 여러분은 받아들이겠지만 저는 싫습니다. 책망을 받아들이는 건 여러분이 어리석고 못나서 그런 거고, 저는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못 믿겠으면 우리 한번 따져 봅시다. 누가 옳은지 보자고요.” 모두가 그에게 교제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우선은 순종해야죠. 당신은 본분을 이행할 때 불순물이 전혀 없을 수 있습니까? 당신이 한 일은 다 옳습니까? 설령 다 옳다고 해도 당신을 책망하는 것은 본인에게도 도움이 된다니까요! 전에 그렇게 원칙을 교제해 줘도 듣지 않고 자기 뜻대로 마구 행동해서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그렇게 큰 손해를 입혔는데 책망과 훈계를 받지 않을 수 있습니까? 말씀이 좀 엄하고 듣기 거북한 것도 아주 당연한 겁니다. 뭘 그리 따집니까? 나쁜 짓을 했는데 어떻게 책망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그가 받아들일 수 있느냐? 그럴 수 없다. 그는 계속해서 따지고 반항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드러내는 것은 어떤 성품이냐? 마귀의 성품, 흉악한 성품이다. 그가 뜻하는 바가 무엇이냐? ‘내가 그리 호락호락할 줄 알아? 누구든 내 털끝 하나라도 건드릴 생각하지 마. 잘못 건드렸다는 걸 알게 해 주지. 그럼 나중에 다시는 감히 날 책망하지 못하겠지. 그러면 내가 이기지 않겠어?’ 어떠냐? 성품이 드러나지 않았느냐? 성품이 흉악하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성품이 흉악한 사람이 진리를 싫어하기만 하겠느냐? 하나같이 진리를 증오하는 자이다! 그런 자는 책망과 훈계를 받으면 회피하거나 아니면 무시하는데, 마음속에 원한이 가득하다. 결코 몇 마디 따지는 말로 그칠 만큼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그는 전혀 그런 태도가 아니다. 그는 불복하고 반항하면서 무식한 여편네처럼 너에게 시비를 걸 것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당신 지금 나를 모욕하고 있어. 일부러 날 난감하게 만들면서 말이야. 누가 모를 줄 알고? 내 감히 앞에서 대들지는 못하지만 기회를 봐서 보복할 테다! 당신이 날 책망하고 괴롭히는 거잖아? 사람들을 다 내 편으로 끌어들여서 당신을 고립시킬 거야. 그리고 괴롭힘 당하는 이 기분을 당신도 맛보게 해 주지!’ 이것이 바로 그의 속마음이다. 그의 흉악한 성품이 마침내 드러난 것이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분노를 터뜨리기 위해 열심히 이유를 대며 스스로를 위해 변명하고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 한다. 그러면 그는 기뻐하며 마음의 평정을 찾는다. 이게 악독함이 아니냐? 이런 걸 두고 성품이 흉악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책망과 훈계를 받기 전에는 순한 양 같다가 책망과 훈계를 받거나 본인의 실상이 폭로되면 사나운 늑대로 돌변해서 늑대의 본성을 드러낸다. 이것이 흉악한 성품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어째서 알아차리지 못하느냐? (그와 관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그를 자극하거나 그의 이익을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배가 고프지 않은 늑대가 너를 잡아먹지 않은 것과 같은데, 그렇다고 그것이 늑대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느냐? 잡아먹으려고 할 때 그것이 늑대라고 한다면 그때는 늦지 않겠느냐? 잡아먹으려 하지 않을 때에도 너는 늘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늑대가 너를 잡아먹지 않는다고 해서 잡아먹고 싶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이다. 때가 되면 그의 늑대 본성이 튀어나올 것이다. 책망과 훈계를 받으면 각 부류의 사람이 다 드러난다. 어떤 사람은 생각한다. ‘왜 나만 책망하는 거야? 왜 맨날 나한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내가 만만해 보이나? 나도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고!’ 이것은 어떤 성품이냐? 정말 그 사람만 책망했느냐? 그건 사실과 다르다. 너희 중에 책망과 훈계를 겪지 않은 사람이 있느냐? 다들 겪었다. 리더 일꾼도 사역을 제멋대로 하거나 사역지침을 따르지 않을 때는 대개 책망과 훈계를 받았다. 이것은 교회 사역을 지키고, 사람이 치우친 길을 가는 일을 피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 절대 특정인을 타겟으로 한 것이 아니다. 그의 말은 분명 사실을 왜곡한 것이며 이 또한 흉악한 성품을 나타내는 모습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여섯 가지 방면의 패괴 성품을 알아야 진실로 자신을 아는 것이다> 중에서

‘복수심이 강하다’는 말만 봐도 이 부류가 좋은 작자, 그러니까 호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인성적으로 일관되게 드러내는 모습과 일 처리 원칙을 보면, 그들은 마음씨가 선량하지 않다. “만만한 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는 이 부류를 가리켜 선한 부류가 아니라고 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마음씨가 선량하지 않고, 악과 독, 독기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류는 누가 말이나 행동으로 자신의 이익과 체면, 지위를 건드리거나 비위를 거스르는 순간, 마음속에 적대감을 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적대감을 바탕으로 행동한다. 그 행동의 목표와 방향은 분풀이, 화풀이를 하는 것인데, 이런 행위를 가리켜 보복이라고 한다. 사람들 사이에는 항상 이런 부류가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속 좁은 자든, 전횡을 일삼는 자든, 아니면 비교적 예민한 사람이든, 어떤 말로 이 부류의 인성을 지칭하거나 개괄하든 간에, 결국 이 부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낼 때 다음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즉, 누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상처를 주거나 비위를 거스르면 화를 입히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한다. 마치 “그는 자기 비위를 거스르는 사람을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그를 건드려 상처를 주었다면, 쉽게 빠져나갈 생각은 하지 마.”라는 몇몇 사람의 말처럼 말이다. 사람들 중에 이런 부류가 있지 않느냐? (있습니다.) 분명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 일이 화를 내거나 언쟁을 벌일 만한 가치가 있든 없든, 복수심이 강한 이 부류는 그 일을 자신의 의사일정에 올려 두고 가장 중요한 일로 대한다. 누구든 그의 비위를 거스르면 용납하지 않고, 상대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가 다른 사람을 대하고, 적으로 여기는 모든 이를 대하는 원칙이다. 예를 들어, 교회 생활 중에 자신의 내적 상태를 교제하거나 정상적으로 자신의 체험을 교제하고 나누면서 자신의 내적 상태나 패괴에 대해 말할 때, 무의식중에 다른 사람의 내적 상태나 패괴도 언급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하는 사람은 의도가 없지만 듣는 사람은 그렇지가 않아서, 들은 후에 올바르게 받아들이거나 대하지 못하면 보복 심리가 생기기 쉽다. 만약 그가 그런 말을 들은 후에 물고 늘어지면서 어떻게든 공격하고 보복하려 든다면 교회 사역에 문제를 초래하게 되니, 그 일은 반드시 제때 처리해야 한다. 교회에 악인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교란이 생기는 법이다. 그래서 악인이 교회를 교란하는 사건은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네가 의식적으로 한 것이든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한 것이든, 그를 건드리거나 그에게 상처를 주면, 그는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당신의 패괴를 말하면서 왜 내 얘기를 하는 거지? 당신 스스로를 인식한다면서 왜 나를 폭로하는 거냐고. 당신이 내 패괴를 폭로해서 내 체면과 존엄을 떨어뜨리고, 형제자매들 앞에서 나를 난처하게 하고, 내 위신을 깎고 내 명성에 흠집을 냈으니 나는 복수할 거야. 내가 당신을 끝까지 가만두지 않겠어! 날 만만하게 보지 마. 내 가정 형편이 좋지 않고 사회적 지위가 낮다고 해서 막 대해도 되는 줄 알아? 나를 순한 양으로 생각하지 마. 나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그가 어떻게 복수할지는 잠시 차치하고, 이 부류의 사람이 이런 작은 일, 그러니까 교회 생활에서 흔히 생기는 일을 마주했을 때 올바르게 대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할 뿐 아니라 증오심을 품고 기회를 노려 보복하며, 심지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보복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이 부류의 사람은 인성이 어떠하냐? (악독합니다.) 이들이 선한 부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 똑같은 일을 두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평범한 일로 여겨 처리하고 대한다. 물론 진리를 받아들이는 좋은 사람은 긍정적이고 주동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고, 평범한 사람은 긍정적인 방법으로 해결하지는 않아도 증오심을 품지 않으며 더욱이 보복하려 들지도 않는다. 그러나 선하지 않은 부류는 이렇게 평범하고 흔하디흔한 일에도 마음에 풍파가 일고 평정을 잃는다. 그는 긍정적이거나 평범한 것이 아니라 흉악하고 사악한 것을 마음에 품고, 보복하려 한다. 보복하려는 이유는 무엇이냐? 그는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악담을 하며 그를 헐뜯었다고, 그의 치부와 추태, 패괴를 들춰냈다고 생각한다. 그는 다른 사람이 한 말에 의도가 있다고 여겨 그 사람을 원수로 여긴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보복으로 이 일을 잠재우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 복수의 목적을 달성할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이는 성품이 흉악한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교회 생활에서 형제자매들이 자신의 내적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공감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인다. 오직 진리를 싫어하고 성품이 사악한 자들만이 그것을 듣고 적대감, 심지어 보복 심리를 갖게 된다. 이는 사람의 본성 본질이 철저히 드러난 것이다. 보복 심리를 품은 그는 곧이어 일련의 보복 행위와 행동을 한다. 보복 행위가 시작되면 사람 간의 관계가 어떻게 되겠느냐? 더 이상 올바른 관계가 될 수 없다. 그럼 진정한 피해자는 누구겠느냐? (그가 보복하려는 사람입니다.) 그렇다, 진정한 피해자는 체험 간증을 교제한 사람이다. 복수심이 강한 이 부류의 사람이 다음에 하려는 일은 바로 자신을 폭로하고 적대시했다고 생각하는 상대를 말로든 행동으로든 다양한 자리에서 판단하고 공격하며 심지어 모함하고 비방하는 것이다. 복수심이 강한 사람은 마음속에 잠시 미움을 품는 데 그치지 않고 온갖 기회를 찾아서, 심지어는 기회를 만들어서 자신이 보복하려는 사람, 적대시하는 사람,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복수하려 한다. 예를 들어, 리더를 선출할 때, 그가 적대시하는 사람이 하나님 집에서 사람을 쓰는 원칙에 부합하여 리더로 선출될 자격이 있다 해도, 그는 그 사람을 적대시하기에 상대를 판단하고 정죄하고 공격하며, 뒤에서 작은 술수를 부리거나 상대에게 불리한 일을 해서 보복한다. 어쨌든 그의 보복 수법은 무척 다양하다. 예컨대 상대의 약점을 잡아 험담하는 것, 과장하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억측으로 상대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것, 그 사람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를 이간질하는 것, 심지어 리더에게 그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 충성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저항한다고 모함하는 것 등이 있는데, 사실 이 모든 것이 다 없는 일을 만들어 내고 고의로 날조한 것이다. 보아라, 그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의심과 오해 때문에 해서는 안 될 행위와 행동을 이렇게나 많이 저지른다. 이 모든 행동 방식은 다 복수심이 강한 그의 본성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사실 다른 사람은 체험 간증을 말하면서 결코 그를 겨냥하지 않았고, 그에 대해 어떤 악의도 없었다. 다만 그에게 진리를 싫어하고 복수심이 강한 사악한 성품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폭로하는 것도, 스스로에 대한 인식을 말하는 것도, 패괴 성품이나 사탄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 화가 나서, 자신을 겨냥하고 폭로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리하여 보복 심리가 생겨나고 형성되는 것이다. 이 부류가 다른 사람에게 보복하는 모습은 한 가지 상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이 부류의 사람은 본성이 흉악해서 누구도 건드리거나 자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전갈이나 지네처럼 천성적으로 모든 사람, 모든 사물에 대해 공격성을 띤다. 그래서 상대가 의식적으로 말한 것이든,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말한 것이든 그를 건드리거나 그에게 상처를 주어 그가 체면과 위신이 떨어졌다고 느끼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체면과 위신을 만회하려 한다. 그리하여 일련의 보복 행위를 저지르게 된다.

―<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25)> 중에서

사악하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항상 생각들이 갈팡질팡한다. 오늘 복을 받을 가망이 있어 보이면 온 힘을 다해 모두에게 선행을 보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지만, 시간이 흘러도 하나님이 축복해 주지 않으면 속으로 후회하고 원망하다가 결국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재하시고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는데 내 생각엔 꼭 맞는 말은 아닌 것 같아.’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는 눈앞의 이익밖에 모르는데, 이익이 없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흉악함이 아니겠느냐? 그는 누구와도 거래하려 하는데, 심지어 감히 하나님과도 거래하려 한다. ‘나는 이득을 봐야겠어. 그것도 지금 당장! 기필코 이득을 보고야 말겠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강경하냐? 그의 성품이 흉악하다고 한다면 지나치겠느냐?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가 흉악하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느냐? 시련과 재난이 조금 닥치면 그는 받아들이지 않고 본분을 이행하지도 않으면서 손해 봤다고만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많이 헌신했는데 하나님은 날 축복해 주지 않으셨어. 대체 하나님이 계시긴 한 걸까? 이 도가 옳은 걸까?’라며 의구심을 갖는다. 그가 이득을 보려고 하는 것은 그가 기꺼이 원하거나 진심에서 우러나 헌신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데, 이렇게 그는 드러나는 것이다. 욥이 시련을 겪을 때 그의 아내가 뭐라고 했느냐?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9)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불신파이다. 화가 닥치자 하나님을 부인하고 저버리려 했다. 하나님이 복을 내릴 때는 “여호와 하나님, 당신은 위대한 구주이십니다! 당신께서 제게 이렇게 많은 재산을 주시고 저를 축복하셨으니 저는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당신은 저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했지만, 그녀의 재산을 앗아갔을 때에는 “당신은 저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라고 했다. 그러고는 “당신도 하나님을 믿지 마세요. 하나님은 없어요!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강도가 재산을 빼앗아 가게 내버려두실 수 있나요? 어째서 하나님이 지켜 주시지 않은 거죠?”라고 욥에게 말했다. 이것은 어떤 성품이냐? 이는 흉악한 성품이다. 일단 이익에 손실이 생기거나 자기 목적과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그 즉시 노발대발하며 반역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저버리는 유다가 될 것이다. 이런 사람이 많으냐? 이렇게 비교적 확실한 악인과 불신파는 지금도 교회에 일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개중에는 단지 내적 상태만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런 성품만 있을 뿐 꼭 이런 부류의 사람은 아닐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네가 이런 성품을 가지고 있다면 변화가 필요하지 않겠느냐? (필요합니다.) 이런 성품을 가지고 있다면, 본성 역시 흉악할 것이다. 네게 이런 흉악한 성품이 있으면 너는 언제든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고, 적대할 수 있다. 이런 패괴 성품이 하루라도 변화하지 않으면 너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할 수 없고, 구원받을 수도 없게 된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을 알아야 진리 추구에 유익하다> 중에서

적그리스도의 본성 안에 있는 주된 한 가지 성품은 흉악함이다. 흉악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냐? 진리를 대하는 태도가 매우 악랄하다는 뜻이다. 그는 순종하거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책망 훈계하는 사람을 정죄한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흉악한 성품이다. 적그리스도는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만만한 사람이라고, 늘 책망과 훈계를 하는 사람은 언제나 남을 농락하고 괴롭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가 그를 책망 훈계하면 상대에게 반항하고, 상대를 괴롭히려 한다. 또 누가 그의 결점이나 패괴를 지적하고, 진리와 하나님 뜻을 교제해 그가 스스로를 인식하게 하면 그는 상대가 자신을 못살게 굴고 못마땅해한다고 생각해서 마음속 깊이 상대를 미워하고, 복수로 상대를 힘들게 만들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교제하려는, 책망과 훈계를 대하는 적그리스도의 또 다른 태도이다. 자신을 책망하고 폭로하는 사람을 미워하는 태도는 적그리스도에게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럼 어떤 부류가 이런 흉악한 성품을 지녔겠느냐? 악인이 그러하다. 사실 적그리스도는 악인이다. 그래서 오직 악인과 적그리스도만이 이런 흉악한 성품을 지녔다고 하는 것이다. 흉악한 사람은 선의에서 비롯된 그 어떤 사람의 격려, 질책, 가르침이나 도움도 감사하며 겸손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수치심에 분노를 터뜨리면서 극단적으로 상대를 적대시하고 증오한다. 심지어는 복수심도 생긴다. 누군가가 적그리스도를 책망하고 폭로하며 “당신은 그동안 제멋대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고, 스스로를 뽐내기만 했으며, 지위를 위해 사역했죠. 본분도 엉망으로 이행했고요. 그러고서 하나님께 고개를 들 수 있습니까? 당신은 왜 본분을 이행하면서 진리를 구하지 않는 겁니까? 왜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는 겁니까? 형제자매들이 진리를 교제해 주면 왜 받아들이지 않고 무시하는 겁니까? 왜 계속 당신 뜻대로 하는 거죠?”라고 말한다면, 그는 이 몇 개의 ‘왜’와 자신의 패괴 표출을 폭로하는 몇 마디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다. ‘왜냐고? 왜가 어디 있어? 그렇게 하고 싶으니까 그랬지! 무슨 근거로 나를 책망하는 거야? 당신이 뭔데? 내가 멋대로 행동하면 당신이 날 어쩔 건데! 이 나이가 되도록 감히 나한테 이렇게 말한 사람은 없었어. 내가 다른 사람한테 이렇게 말할 수는 있어도 다른 사람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고. 누가 감히 나를 훈계해? 나를 훈계할 만한 사람은 아직 이 세상에 없어! 그런데 당신 따위가 나를 훈계하겠다고?’ 그는 증오심을 품고, 상대에게 복수할 기회를 찾으려 한다. 그는 마음속으로 주판을 굴린다. ‘나를 책망한 그 사람은 교회에서 세력이 있나? 내가 그 사람한테 복수하면 그를 편들어 주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 내가 그를 혼내고 괴롭히면 교회에서 나한테 처분을 내리지 않을까? 방법이 있어. 그 사람한테 직접 복수하지 말고 쥐도 새도 모르게 일을 벌이는 거야. 그 가족한테 손을 써서 그를 극도로 고통스럽게 해 주자. 그래야 내 분이 좀 풀릴 것 같아. 복수해야지,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어. 나는 모욕을 당하고 다른 사람들한테 함부로 괴롭힘 당하려고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야. 복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나님을 믿는 거라고! 사람은 체면으로 산다는 말도 있잖아. 체면을 세우려면 분발해야 해. 감히 나를 폭로하다니, 이건 나를 괴롭히는 거야! 나를 인물로 취급을 안 하니 본때를 보여 주지. 끝까지 그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겠어. 어디 한번 해보자. 누가 더 독한지 겨뤄 보자고!’ 보아라, 단순한 폭로의 말 몇 마디가 적그리스도를 격노케 해서 이렇게 큰 증오를 불러일으키고, 이토록 대대적으로 복수를 하게 했다. 적그리스도의 흉악한 성품이 완전히 드러난 것이다. 물론, 그가 누군가를 증오하여 복수하게 된 것은 그들 사이에 원래부터 원한이나 응어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상대가 그의 잘못을 폭로했기에 원한을 품은 것이다. 이는 누구든, 예전에 그와 어떤 사이였든 그를 폭로하는 순간 그의 원한을 사고 그의 복수를 마주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게 누구든,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리더 일꾼이든 평범한 하나님의 선민이든 그를 폭로하고 책망하고 훈계하면 그는 그 사람을 원수로 대한다. 심지어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한다. “누가 나를 책망하면 나는 그 사람을 못살게 굴 것이다. 누가 나를 책망하고 훈계하거나 내 과거를 폭로하여 내가 하나님 집에서 출교당하거나 복받지 못한다면 나는 그 사람과 끝장을 볼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이렇게 살아왔다. 아무도 감히 나를 건들지 못했다. 지금까지 감히 나를 건든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적그리스도는 책망과 훈계가 닥쳤을 때 이렇게 지독한 말을 한다. 그들이 하는 이 독한 말은 상대를 겁주려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해 보는 소리도 아니다. 그들은 정말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흉악한 성품이다.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8)> 중에서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집의 소유물과 교회의 재산을 자기 손에 넣어 사유재산으로 삼고 자기가 통제하려고 하며, 다른 사람이 간섭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가 교회 사역을 할 때 고려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이익과 지위, 체면뿐이다. 그는 누구든 자신의 이익을 해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며, 자질이 있고 체험 간증을 말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자신의 명예나 지위에 위협을 가하는 것은 더더욱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체험 간증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 진리를 교제해 하나님의 선민에게 공급할 수 있는 사람을 경쟁 상대로 보면서 억누르고 배척하며 이들을 철저히 고립시키고 매장하고 망가뜨리려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 사람들이 줄곧 소극적이 되지 않은 채 본분을 이행하고 간증을 말하고 남들을 붙들어 준다면, 적그리스도는 최후의 수단을 쓴다. 즉, 빌미를 잡아 정죄하거나 죄를 뒤집어씌워 모함하거나 거짓을 날조해 억누르고 괴롭히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교회에서 제명되면 그제야 완전히 마음을 놓는다. 이는 적그리스도의 가장 음험하고 악독한 면이다. 그가 가장 우려하고 두려워하는 대상은 바로 진리를 추구하고 진실한 체험 간증이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선민들이 가장 동조하고 옹호하는 이는 글귀와 도리를 공허하게 논하는 사람이 아니라 체험 간증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는 진실한 체험 간증이 없고, 진리를 실행하지도 못한다. 기껏해야 좋은 일을 좀 해서 남의 기분을 맞춰 주는 것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가 좋은 일을 얼마나 많이 하든, 듣기 좋은 말을 얼마나 많이 하든, 좋은 체험 간증 하나가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이점과 도움에는 미치지 못한다. 체험 간증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의 하나님 선민에 대한 공급과 양육 성과는 무엇보다 크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누군가 체험 간증을 말하는 걸 보면 눈초리가 사나워지고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며 증오가 샘솟는다. 그는 간증을 말하는 사람이 더는 말하지 못하게 당장이라도 입을 막아 버리고 싶어 한다. 상대가 계속 말한다면 적그리스도의 명성은 완전히 바닥에 떨어질 것이며, 적그리스도의 추악한 몰골이 철저히 드러나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빌미를 잡아 간증을 말하는 사람을 방해하고 억누르려 한다. 적그리스도는 그들 자신이 글귀와 도리를 논해 사람을 미혹하는 것만 허용할 뿐, 하나님의 선민이 체험 간증을 이야기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적그리스도가 어떤 사람을 가장 증오하고 어떤 사람을 가장 두려워하는지를 알 수 있다. 누군가 사역을 잘해 두각을 드러낼 수 있으면, 또 누군가 진실한 체험 간증을 말해 하나님의 선민에게 도움과 이로움을 가져다주고 그들을 붙들어 주며 모두의 동조를 받을 수 있으면, 적그리스도는 질투와 증오에 휩싸여 배척하고 억누르려 하며 이들이 사역을 맡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는 상황을 피하려는 것이다.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이 적그리스도 옆에 있으면 적그리스도의 빈궁함과 가련함, 추함, 사악함을 부각시키고 드러낸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파트너나 사역자를 선택할 때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 체험 간증을 말할 수 있는 사람, 정직한 사람,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을 절대 선택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적그리스도가 가장 질투하고 가장 미워하는 사람들로, 바로 적그리스도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이다. 진리를 실행하는 이들이 좋은 일을 얼마나 많이 하든, 하나님 집의 사역에 도움이 되는 일을 얼마나 많이 하든 적그리스도는 죽을힘을 다해 그것을 은폐한다. 심지어는 사실을 왜곡해서 말하며 좋은 일에 대한 공로는 자신에게 돌리고 나쁜 일에 대한 과실은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 자신을 높이고 남을 깎아내리기까지 한다. 적그리스도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체험 간증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몹시 시기하며, 그들이 자신의 지위를 위협할까 봐 온 힘을 다해 공격하고 배척한다. 또한, 형제자매들이 체험 간증을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접하거나 옹호하고 동조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이는 진리를 싫어하고 하나님을 증오하는 적그리스도의 사탄 본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 또한 이는 적그리스도가 교회에서 사악한 역류이며 교회 사역을 교란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가로막는 원흉임을 증명한다.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1)> 중에서

적그리스도는 교체되고 도태되는 순간, 체면을 집어던지고 원망을 퍼부으며, 그의 귀신 몰골을 드러낸다. 어떤 귀신 몰골이겠느냐? 지금까지 그의 본분 이행은 결코 진리를 추구하여 구원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복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 이제 진실을 말하면서 실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는 “천국에 들어갈 목적이 아니었다면, 훗날 복을 받고 큰 영광을 얻으려는 게 아니었다면, 내가 분토보다 못한 당신들과 함께 지냈겠어? 당신들이 나와 함께 지낼 주제나 되나? 당신들이 나를 양성하거나 발탁하기는커녕 도태시키려 들다니, 나를 도태시키면 언젠가는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는 걸 알게 해 주겠어. 나를 도태시키면 어떤 결과를 보게 될지 보여 주겠다고!”라고 말한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말을 퍼뜨리고, 이런 마귀적인 말을 내뱉는다. 체면을 집어던지는 순간, 그의 악독한 본성과 흉악한 성품이 드러난다. 그는 관념을 유포하는 한편,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되고 분량이 작아 분별력이 없으며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수시로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고 연약해지는 사람들, 늘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며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회유한다. “당신이 나를 도태시키면, 희생양 몇 명을 끌고 가야겠어!”라는 자기 말처럼 말이다. 이는 사탄의 본성이 드러난 것 아니겠느냐? 정상인이 이렇게 행동하겠느냐? 보통 패괴 성품을 지닌 사람은 교체될 때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면서 희망이 사라졌다고 느끼지만, 양심이 있기에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도 우리가 잘못했지.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잖아. 앞으로는 좋은 쪽으로 행동하자. 하나님이 어떻게 대하실지, 어떻게 규정하실지는 하나님 일이니, 사람이 하나님께 요구할 권리는 없어.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시든 사람의 태도에 근거하는 것 아니겠어? 길을 잘못 들었다면 마땅히 징계받고 처벌받아야지. 이건 뭐라 할 게 아니야. 지금 괴로운 건 내 자질이 떨어져서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지 못하고, 진리 원칙을 이해하지 못한 채 패괴 성품에 따라 제멋대로 굴었다는 거야. 그러니 도태되어도 마땅하지. 그저 앞으로 만회할 기회가 있기를 바랄 뿐이야!’ 어느 정도 양심이 있는 사람은 이런 길을 걷는다. 그는 이런 식으로 문제를 고려하고 결국에는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선택한다. 물론 그 안에는 진리 실행의 성분이 많지 않지만, 양심을 갖췄기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고 하나님에게 대항하는 일을 하지는 않는다. 반면 적그리스도는 다르다. 그는 흉악한 본성이 있어서 천성적으로 하나님을 적대시한다. 자신의 앞날과 운명이 위협받거나 박탈당할 때,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을 때, 그는 관념을 유포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판단하며, 그와 같은 불신파를 회유하여 하나님 집 사역을 교란하기를 선택한다. 심지어는 그가 저지른 모든 잘못이나 과오, 그리고 하나님 집 사역과 재물에 초래한 손실에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하나님 집에서 처분을 내리고 도태시킬 때, 그는 적그리스도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을 한다. 어떤 말이겠느냐? (“여기에서는 나를 받아 주지 않아도 어딘가 나를 받아 줄 곳이 분명 있을 거야.”라는 말입니다.) 이는 또 하나의 마귀적인 말 아니겠느냐? 그것은 정상 인성을 지니고 염치를 알며 양심이 있는 사람은 할 수 없는 말이다. 우리는 그것을 가리켜 마귀적인 말이라고 한다. 이는 적그리스도에게 책망과 훈계가 닥쳤을 때, 적그리스도가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지키기 힘들고 지위와 명성이 위협받는다고 느끼고, 특히 자신의 앞날과 운명이 박탈당할 것 같다고 느낄 때 표출하는 갖가지 흉악한 성품의 모습이며, 동시에 적그리스도 불신파의 본질이 드러난 것이다.

―<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8)> 중에서

마음에 하나님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시련을 주든 하나님에 대한 충정이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일단 하나님의 사역이 자기 육에 불리해지면 즉시 하나님에 대한 관점을 바꾸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떠나간다. 이런 자들은 모두 궁극적으로 굳게 설 수 없는 자들이고, 복만 받으려 할 뿐 하나님께 헌신하기 위해 자신을 바칠 마음이 전혀 없는 자들이다. 이런 부류의 소인배들은 사역이 끝날 때 모두 ‘쫓겨날’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에게 조금도 인정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인간성이 없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그들은 편안한 환경에 있거나 취할 이익이 있을 때는 하나님께 고분고분 순종하지만, 일단 자신의 욕망이 좌절되거나 결국 깨지게 되면 즉시 일어나 반항한다. 심지어는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던 ‘착한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험상궂은 망나니로 돌변하여 아무런 이유 없이 지난날의 은인을 철천지원수로 대하기도 한다.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 악마들을 경계 밖으로 몰아내지 않는다면 마음속의 우환이 되지 않겠느냐?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은 정복 사역이 끝난다고 해서 대업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정복 사역이 일단락되었더라도 사람을 정결케 하는 사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람을 완전히 정결케 하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을 모두 온전케 하며,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위선자들을 모두 제거해야 비로소 사역이 종결된다. 마지막 단계의 사역에서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없는 자는 완전히 도태되는 자이다. 도태되는 자는 모두 마귀와 같은 사람이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이다. 그들이 지금 따르고 있다 할지라도 이후에도 남아 있을 사람임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실행> 중에서

일상생활 속에서, 너희는 어떤 일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느냐? 또 어떤 일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느냐? 다른 사람이 너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너의 이익에 저촉될 때, 너는 그를 미워하느냐? 누군가를 미워할 때 그를 못살게 굴거나 그에게 복수하기도 하느냐? (그렇습니다.) 아주 무섭구나!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없고 악을 행할 수 있다면, 흉악한 성품이 너무 심하구나! 사랑과 미움은 정상 인성 안에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지만, 그 두 가지를 분명히 구분해야 하고,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며 긍정적인 것들을 사랑하고, 형제자매를 사랑해야 한다. 반면에 미워해야 할 것은 사탄과 마귀, 부정적인 것들이며, 적그리스도와 악인이다. 만약 형제자매에게 미움을 품어 억압하고 보복하려 한다면, 이는 매우 무서운 일이며, 악인의 성품이다. 미워하는 마음이나 사악한 생각만 있을 뿐,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악인이라 할 수 없다. 그는 일이 닥쳤을 때 진리를 구할 수 있고, 처신할 때 원칙을 중시하며, 사람들과 어울릴 때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잘 맞으면 어울리고, 그렇지 않으면 어울리지 않지만, 자신의 본분 이행이나 생명 진입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또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존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며, 하나님께 죄지으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 죄짓는 것을 두려워한다. 비록 내면에 그릇된 마음과 생각이 있다 해도, 저버리거나 포기할 수 있고, 신중히 행동할 수 있으며, 선을 넘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절대 하나님께 죄짓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원칙이 있는 사람이자,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다. 비록 타인과 성격적으로 맞지 않아 그 사람을 싫어할지라도 함께 일할 때는 공정하게 원칙적으로 처리하고, 본분을 갖고 화풀이 하지 않으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내세워 분풀이하지 않고, 원칙대로 일할 수 있다. 이는 어떤 모습이냐?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 괜찮은 경우, 그에게 어떤 결점이나 약점이 있고, 너에게 미움을 산 적이 있거나 선입견을 갖고 있을지라도 너는 그를 올바르게 대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와줄 수 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사랑과 인성이 있는 사람, 마음씨가 선하고 진리를 실행할 줄 아는 사람, 정직한 사람,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다. 너의 분량이 아직 작더라도 의지를 갖고, 진리에 공을 들이려 하고, 원칙적으로 일을 처리하려 하며, 처신하거나 사람을 대하는 것에 모두 원칙이 있다면, 이 또한 어느 정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가장 기본이다. 만약 이 정도에도 미치지 못하고 자신을 단속하지 못한다면 매우 위험하고 끔찍하다. 그런 너에게 지위를 준다면 다른 이를 괴롭히고 다스리려 할 것이며, 언제든 적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을 믿는 정상 궤도에 들어서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조건> 중에서

성품이 흉악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모습이 무엇이냐? 바로 솔직한 사람, 만만한 사람만 보면 괴롭히거나 조롱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흔히 보이는 현상이다. 선량한 사람은 솔직한 사람이나 나약한 사람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생겨 도와주지는 못해도 괴롭히지는 않는다. 너는 형제자매가 솔직한 사람이라는 걸 알 때 어떻게 대하느냐? 괴롭히고 놀려 대느냐? (업신여깁니다.) 업신여김은 일종의 태도, 시선, 생각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하거나 무슨 말을 내뱉는다면 그것은 성품과 관계된다. 너희가 소심하고 나약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얘기해 보아라. (부려 먹고 괴롭힙니다.) (본분 이행을 제대로 못했을 때 무시하고 배척합니다.) 너희가 말한 경우는 모두 흉악한 성품을 나타내는 모습에 해당하고, 성품에 관계된 일이다. 그런 일은 그것 말고도 많으니 자세히 얘기할 필요가 없다. 너희는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 누가 자기 눈 밖에 났다 하면 그 사람을 죽도록 괴롭히려 하고, 그것도 모자라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 사람을 저주하고 지구상에서 아예 사라지게 해 달라는 사람 말이다. 비록 사람은 그런 권병이 없지만 속으로는 그런 권병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거나 하나님에게 그렇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도 한다. 너희도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느냐? (복음을 전하다가 만난 악인이 저희를 욕하고, 때리고, 신고까지 했을 때는 그가 미워서 언젠가는 하나님께 징벌받는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그나마 객관적이다. 얻어맞고 육이 고통받으니까 마음이 괴롭기도 하고, 인격과 존엄성이 짓밟혀 땅에 떨어졌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겨 내기 힘들다. (어떤 사람이 인터넷에서 교회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숱한 정죄의 말을 올렸습니다. 그걸 보니 무척 화가 나고 미웠습니다.) 그건 흉악함이냐, 혈기냐, 아니면 정상적인 인성이냐? (정상 인성입니다. 원수, 마귀를 미워하지 않는다면 정상 인성이 아닙니다.) 맞는 말이다. 이것은 정상 인성의 표출이고, 모습이고, 반응인 것이다. 부정적인 사물을 증오하고 긍정적 사물을 사랑할 줄 모른다거나 양심의 기준이 없다면 그런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이 어떤 짓을 저지르면 흉악한 성품으로 발전하겠느냐? 이 원한과 증오가 일종의 행위로 발전하면, 이성을 상실하고 최소한의 인성마저 포기하고 행동한다면, 심지어 살인하고 법을 어기는 짓을 저지를 수 있다면 이런 걸 흉악함이라 하고, 이것은 혈기에 따른 행동이다. 사람이 진리를 깨달으면 악인에 대해 분별이 생기고 사악함을 증오하게 되는데, 이것이 정상적인 인성이다. 하지만 혈기에 따라 일을 대한다면 그것은 원칙 없이 행동하는 것이다. 이는 악행을 저지르는 것과는 다르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그것은 차이가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너무나 못되고, 사납고, 악하고, 도덕성이 결여되었다면, 속으로 그에게 크게 반감을 느끼고 그 반감이 어느 정도에 이르러 하나님에게 그를 저주해 달라고 한다면 그래도 괜찮다. 하지만 두세 번 기도해도 하나님이 행사하지 않는다고 네가 직접 손을 쓰면 되겠느냐? (안 됩니다.) 네가 기도로써 하나님에게 네 관점과 태도를 밝히고, 진리 원칙을 구한다면 일을 올바르게 대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에게 너 대신 분풀이해 달라고 요구하거나 강요해서는 안 되며, 혈기에 따라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건 더더욱 안 된다. 이성적으로 그 일을 대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참아야 한다.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지혜롭게 사탄 마귀를 대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그러면 너는 인내할 수 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하게 하여라. 그것이 이성적인 것이고, 그것이 피조물이 해야 할 일이다. 혈기대로 행동하지 않도록 해라. 혈기대로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이 열납하지 않고, 하나님께 정죄될 것이다. 그때 드러나는 성품은 인성의 연약함이나 일시적인 분노의 정서가 아니라 흉악한 성품이다. 일단 흉악한 성품으로 규정되면 곤란하다. 그러면 구원받기가 쉽지 않다. 사람에게 흉악한 성품이 있으면 너무나 쉽게 양심과 이성을 위배하고 법을 어길 뿐만 아니라 너무나 쉽게 하나님의 행정 법령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어떻게 피해야 하겠느냐? 최소한 세 가지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첫째는 양심과 이성에 위배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법을 거스르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고, 셋째는 하나님의 행정 법령을 거스르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극단적인 일이나 교회 사역을 교란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이 몇 가지 원칙만 잘 지키면 최소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고 도태되지 않는다. 만약 온갖 악행을 저질러서 책망과 훈계를 받게 되었다고 아주 흉악하게 반항한다면 더욱 위험하다. 하나님 성품을 직접적으로 거슬러 제명되고 출교되기 십상이다. 하나님 성품을 거스르면 법을 어기는 것보다 더 무거운 징벌을 받게 된다. 그건 죽느니만 못한 고통이다. 법을 어기면 기껏해야 징역형으로 몇 년 고생하다 나오면 그만이지만 하나님 성품을 거스른다면 영원히 징벌받게 될 것이다. 그러니 흉악한 성품을 지닌 자가 이성도 전혀 없다면 그건 너무나 위험하다. 너무 쉽게 악행을 저지르고, 반드시 징벌받고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이성이 조금이라도 있어서 진리를 구하고 진리에 순종할 수 있고 많은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피할 수 있다면 틀림없이 구원받을 희망이 있다. 사람이 이성과 지혜를 갖추는 것이 관건이다. 이성이 있는 사람은 진리를 쉽게 받아들이고, 책망과 훈계를 바르게 대하는 일이 수월하다. 이성이 없는 사람이 책망과 훈계를 받게 된다면 위험해진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리더로부터 책망과 훈계를 받고 무척 화가 났다. 그래서 헛소문을 지어내서 리더를 공격하고 싶었지만 시비를 일으킬까 봐 감히 행동에 옮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런 성품이 마음속에 이미 존재한다면 그런 일을 저지르지 말란 법도 없다. 마음속에 그런 성품이 있고, 그런 생각이 있다면 비록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해도 위험이 존재한다. 일단 합당한 상황이 생기고 기회가 주어지면 일을 저지를지도 모를 일이다. 흉악한 성품이 존재하는데 해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악행을 저지르기 마련이다. 또 어떤 상황에서 사람이 흉악한 성품을 드러내는지 대답해 보아라.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해서 성과가 나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리더가 원칙에 근거해서 저를 교체했는데, 속으로 불복했습니다. 그러다가 리더가 패괴 성품을 드러내는 것을 보자 투서를 넣어 고발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그냥 생긴 것이냐? 결코 아니다. 그건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본성 안에 있는 것은 언젠가는 드러난다. 어떤 일이 닥쳤을 때나 어떤 상황에서 드러나고, 일을 저지르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간혹 아무런 일도 저지르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건 상황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진리를 구해서 해결할 수 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자기 취향대로 행동하게 되며, 상황만 허락한다면 얼마든지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패괴 성품을 해결하지 않으면 화를 자초하기가 너무나 쉬우며 그러면 사람은 그 죗값을 치러야만 한다. 어떤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일관되게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했는데, 책망과 훈계도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회개하지 않아서 결국 격리되어 반성하게 되었다. 늘 교회 생활을 교란하며 사람들에게 해가 되는 자가 되어 교회에서 제명된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온갖 악행을 저질러 교회에서 출교되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든 패괴 성품을 자주 드러내면서도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는다면 악행을 저지르기가 쉽다. 인간의 패괴 성품은 교만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악함, 흉악함도 있다. 교만함은 공통적인 것인데, 흉악함도 공통적인 것이다.

흉악한 성품을 드러내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사람의 패괴 성품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성품이 무척 흉악하고, 악독하고, 교만하고, 막무가내다. 그것이 바로 악인의 본성이고, 그런 자는 가장 위험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일단 권력을 잡게 되면 그건 마귀, 사탄이 권력을 잡은 것이나 다름없다. 하나님 집에서 악인은 다 온갖 악행을 저질러서 드러나고 도태된다. 악인에게 진리를 교제하고 책망과 훈계를 한다면 공격이나 판단을 받기 십상이다. 심지어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 이것은 그의 성품이 너무 악독해서 벌어지는 결과다. 이런 일은 사실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사이가 무척 좋아서 늘 서로를 생각해 주고 잘 이해해 주는 두 사람이 있다. 그러다 이해관계 때문에 갈등이 생겼는데, 결국 사이가 뒤틀어지고 만다. 어떤 사람들은 서로 원수가 돼서 서로 보복을 하기도 하는데, 둘 다 무척 흉악하다. 본분을 이행하는 일에서 너희는 흉악한 성품의 범위에 속하는 모습이나 표출이 어떤 건지 발견했느냐? 분명 몇 가지가 있을 텐데, 반드시 파헤쳐 봐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분별하고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된다. 파헤칠 줄도 분별할 줄도 모르면 너희는 결코 악인을 분별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통제당해서 생명에 손상을 입고 나서야 적그리스도가 어떤 것이고 흉악한 성품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 너희는 깨달은 진리가 너무 피상적이다. 대다수 진리에 대한 인식이 그저 말이나 문자적 의미에 그치거나 글귀와 도리를 이해하는 수준이고, 실제 상황과는 전혀 대조해 보지 못한다. 아무리 설교를 듣고 이해한 것 같고, 마음이 밝아진 것 같아도 실제 일에 부딪히면 여전히 분별하지 못한다. 이론적으로는 적그리스도의 모습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지만 현실에서 적그리스도를 보면 분별할 줄 모른다. 이는 체험이 너무 적어서 그렇다. 체험이 쌓이고 적그리스도에게 심하게 피해를 당하고 나면 철저하게 분별이 생길 것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예배에 나와 설교를 들으며 진리를 향해 노력하고자 한다. 하지만 설교를 들어도 단지 문자적인 의미만 이해하거나 이론적인 이해에만 그치고, 진리의 실제적인 일면은 체험하지 못한다. 그래서 진리 실제에 대한 진입이 무척 얕다. 그러다 보니 악인, 적그리스도에 대한 분별이 무척이나 서툴다. 적그리스도는 악인의 본질을 지닌다. 그런데 적그리스도, 악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흉악한 성품이 없겠느냐? 사실, 사람은 누구나 다루기 어려운 존재다. 아무 일 없을 때는 만면에 웃음을 띠지만 자신의 이익을 해치는 일이 생기면 태도가 돌변하는데, 이것이 바로 흉악한 성품이다. 흉악한 성품을 언제든 드러낼 수 있으며 자기도 모르게 드러낸다. 대체 어찌 된 일일까? 사람 안에 악령이 살고 있는 것이냐? 악마가 환생한 것이냐? 이 두 가지 상황이라면 그런 자는 악인의 본질이고, 구제할 수가 없다. 악인의 본질이 아니라 단지 이 방면의 패괴 성품이 있는 것이라면 그건 불치병이 아니다. 만약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래도 구원받을 희망이 있다. 그렇다면 흉악한 패괴 성품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 우선은 일이 닥치면 늘 기도해야 하고, 자신이 어떤 속셈과 욕망을 품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반드시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여서 자신의 행위를 단속해야 한다. 더욱이 악한 말과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만약 사람에게 옳지 못한 속셈이 생기거나 악한 마음이 들어서 나쁜 짓을 하고 싶어지면, 그럴 때는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을 찾아 인식하고 해결해야 하고, 하나님께 자신을 지켜 달라고 기도해야 하고, 또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악행을 저지르게 되면 자신을 저주하겠다고 하나님께 맹세해야 한다. 이렇게 하나님과 교제하면 자신을 지키고 악행을 멈출 수 있다. 만약 일이 닥쳤는데 악한 마음이 생겨도 전혀 개의치 않고 그대로 따른다거나 그렇게 행동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사람은 악인에 속하는 자이며,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복을 받아 천국에 가고 싶어 하는데 그게 가능하겠느냐? 그건 허황된 생각인 것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여섯 가지 방면의 패괴 성품을 알아야 진실로 자신을 아는 것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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