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리스도를 알아가다

목차

제4장 반드시 하나님의 말세 역사 방면의 진리를 인식해야 한다

2 하나님이 정복 사역을 하시는 의의.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오늘 정복의 사역을 하는 것은 바로 모든 증거를 탈환하고 모든 영광을 탈환하는 것이며,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여 피조물 가운데서 증거가 있는 데에 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단계에 하려는 사역이다. 도대체 어떻게 인류를 정복하는가? 바로 이 단계 말씀의 사역에 의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으로도 감복하고 말로도 탄복하게 하는 데에 달하는 것이다. 게시(揭示)ㆍ심판ㆍ형벌과 무정한 저주에 의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철저히 굴복하게 하며, 사람의 패역을 드러내고 사람의 대적을 심판하는 것으로써 사람으로 하여금 인류의 불의를 인식하게 하고 인류의 더러움을 인식하게 하는 데에 달한다. 이로써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안받침한다. 주요하게는 이런 말씀에 의해 사람을 정복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으로도 감복하고 말로도 탄복하게 한다. 말씀은 최종에 인류를 정복하는 경로이다. 정복을 받아들이는 자는 다 말씀의 격타(擊打)와 심판을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 말씀하는 과정이 바로 정복하는 과정이다.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협력하는가? 너는 이런 말씀을 먹고 마실 줄 알고 이런 말씀을 깨닫는 데에 달하도록 협력하여라. 어떻게 정복되는가 하는 것은 사람이 스스로 해낼 수가 없다. 다만 이런 말씀을 먹고 마시는 기초에서 자기의 패괴와 더러움을 인식하고 자기의 패역과 불의를 인식하고서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다. 너는 하나님의 뜻을 더듬은 다음 실행해야 하고 또한 이상(異象)도 있어야 한다. 네가 이런 말씀 아래에 완전히 순복할 수 있고 어떠한 선택도 없으면, 이것이 정복되는 데에 달한 것인데 말씀으로 말미암아 정복된 것이다. 인류는 무엇 때문에 간증을 잃게 되었는가? 바로 사람이 모두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람 마음속에 하나님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인류를 정복하는 것은 바로 인류로 하여금 이 ‘믿음’을 회복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은 언제나 세상으로 달아나고, 소망ㆍ전망ㆍ사치한 요구가 너무 많으며, 언제나 육체를 위해 고려하고 육체를 위해 타산하며, 하나님을 믿는 도를 찾고 구할 마음이 전혀 없다. 사람은 또한 하나님이 만든 것이지만 사람의 마음이 다 사탄에게 빼앗겨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고 일심으로 사탄을 위하고 있다. 이리하여 사람은 간증을 잃게 되었는데, 즉 하나님의 영광을 잃게 된 것이다. 인류를 정복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광을 탈환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1)≫에서 발췌

『내가 정복 사역을 하는 목적은, 정복하기 위해서 정복하는 것만이 아니라 의와 불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정복하는 것이고, 사람을 징벌하는 증거를 장악하기 위해서 정복하는 것이며, 악인을 정죄하기 위해서 정복하는 것이고, 더욱이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 정복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하나님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사람은 꼭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다≫에서 발췌

『현재의 정복 사역은 사람의 결국을 드러내기 위한 사역이다. 무엇 때문에 현재의 형벌과 심판이 바로 말일의 희고 큰 보좌 앞의 심판이라고 하는가? 이것을 네가 아직도 꿰뚫어볼 수 없는가? 어째서 마지막 한 단계 사역이 정복의 사역인가, 바로 각 부류 사람의 결국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닌가?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형벌ㆍ심판의 정복 사역 중에서 원형이 드러나게 한 다음 각기 종류대로 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인류를 정복한다고 하기보다는 각 부류 사람의 결국을 드러낸다고 하는 것이 낫다. 바로 사람의 죄를 심판한 다음 각 부류의 사람을 드러내어 이로써 사람을 악인가 의인가를 정하는 것이다. 정복 사역 후에는 상선벌악의 사역이다. 완전히 순복한 사람, 즉 철저히 정복된 사람을 전 우주를 확장하는 다음 단계의 사역 중에 놓아두며, 정복되지 않은 사람을 흑암 중에 놓아두어 재화가 닥치게 한다. 이리하여, 사람이 각기 종류대로 되는데, 악인은 악에 속하여 다시는 해의 비춤이 없으며, 의인은 선에 속하여 광명을 얻고 영원한 빛 속에서 살게 된다. 만물의 결국이 다 가까웠고 사람의 결국도 다 눈앞에 나타났다. 만물이 다 각기 종류대로 될 것인데, 사람이 어찌 각기 종류대로 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각 부류 사람의 결국을 드러내는 것은 만물의 결국이 가깝게 될 때에 드러내는 것이고, 역시 전 우주의 정복 사역(현재의 사역으로부터 시작된 모든 정복의 사역을 포괄함)을 하는 중에서 드러내는 것이다. 모든 인류의 결국은 심판대 앞에서, 형벌 중에서, 말세의 정복 사역 중에서 드러내는 것이다. ……마지막 때의 정복은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역시 사람의 결국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심판으로써 사람의 타락을 드러내어 사람으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분발하게 하며 생명을 추구할 수 있게 하고 인생의 정도(正道)를 추구할 수 있게 한다. 이는 마비되고 멍청한 그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고 심판으로써 사람 안의 패역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만일 여전히 회개할 수 없고 여전히 인생의 정도를 추구할 수 없고 이러한 패괴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이러한 사람은 사탄에게 삼킬 구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것이 바로 정복하는 의의인데,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역시 결국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좋은 결국이든 나쁜 결국이든 다 정복 사역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는 것이다.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되거나 저주를 받게 되는 것은 다 정복하는 사역 중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말세는 바로 정복하는 것으로써 만물을 다 각기 종류대로 되게 하는 것이다. 정복하는 것은 말세의 사역이며, 즉 각 사람의 죄를 심판하는 것은 말세의 사역이다. 만일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어찌 각기 종류대로 될 수 있겠는가? 너희들 가운데서 각기 종류대로 되게 하는 사역은 전 우주에서 각기 종류대로 되게 하는 사역의 발단이다. 이 이후에는 각방(各方)과 각 족속의 사람들도 이 정복의 사역을 받아들일 것이다. 즉 무릇 피조된 사람은 모두 각기 종류대로 될 것이고 모두 심판대 앞에 귀복(歸服)하여 심판을 받아들일 것이다. 이 형벌과 심판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인일물(一人一物)은 없고, 각기 종류대로 되지 않을 일인일물도 없으며, 사람은 모두 유별에 따라 구분된다. 왜냐하면 만물의 결국이 가까이 왔고 온 천지도 끝날 때가 왔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찌 사람의 생존이 끝나는 날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1)≫에서 발췌

『만일 하나님이 사역을 하면서 앞당겨 사람에게 하나의 결국을 주고 하나의 아름다운 귀숙을 주는 것으로써 사람을 매료시켜 그를 따르게 하고 사람과 거래를 한다면, 이것은 정복하는 것이라 하지 않으며, 사람의 생명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하나의 결국으로써 사람을 통제하여 사람의 마음을 바꾸어가지는 것은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귀숙으로써 사람을 통제하는 것이다. 사람이 제일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이후의 결국이고 최종의 귀숙이며 도대체 좋은 소망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만일 사람을 정복하는 사역에서 사람에게 하나의 아름다운 소망을 주고 사람을 정복하기 전에 먼저 사람에게 하나의 적합한 귀숙을 주어 추구하게 한다면, 사람을 정복하는 효과에 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복 사역의 효과에 영향을 주게 된다. 다시 말하면, 정복 사역은 사람의 운명과 전망을 빼앗아가고 사람의 패역 성정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효과에 달하는 것이지, 사람과 거래하는 것, 즉 사람에게 축복과 은혜를 베풀어주어 달하는 것이 아니며, 바로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고 사람의 전망을 취소하여 사람의 충심을 보는 것으로 말미암아 달하는 것이다. 이야말로 정복 사역의 실질이다. 만일 시초부터 사람에게 하나의 아름다운 소망을 준 다음 형벌ㆍ심판의 사역을 한다면, 사람이 형벌ㆍ심판을 받아들이는 것은 전망이 있는 기초에서 받아들이는 것인데, 최종에 가서도 모든 피조물이 조물주께 무조건 순복하고 경배하는 데에 달할 수 없으며, 다만 줄곧 우매하게 순복하거나 줄곧 요구하기에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정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정복 사역은 사람을 얻을 수 없고 더욱이 하나님을 위하여 간증을 할 수도 없다. 이러한 피조물은 자기의 본분을 할 수 없고 조건만 따질 뿐이다. 이러면 정복이라고 하지 않고, 긍휼히 여기고 복을 베풀어주는 것이다. 사람의 최대 애로는 바로 운명과 전망을 언제나 마음속에 두기에 우상으로 된 것이다. 사람은 모두 운명과 전망을 위하여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지,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정복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사람의 사심, 사람의 탐심,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가장 잘 가로막는 사람의 그런 것들을 대처해버려야 한다. 이러면 사람을 정복하는 효과에 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일 처음 사람을 정복할 때는 반드시 먼저 사람의 야심과 사람의 가장 치명적인 것들을 취소해야 한다. 이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발견하고 인생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에 대한 견해를 변화시키고 사람의 생존의 의의를 변화시킨다. 이러면,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순결해질 것이다. 바로 사람의 마음이 정복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단지 정복하기 위하여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얻기 위하여 정복하는 것이고 그의 영광을 위하여 정복하는 것이며 시초의 사람의 원래 모양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정복하는 것이다. 만일 정복하기 위해서만 정복한다면, 정복 사역의 의의를 잃게 된다. 다시 말해서, 만일 사람을 정복한 후에 사람에 대하여 방치하고 사람의 생사를 도외시할 뿐이라면, 인류를 경영하는 것이 아니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오직 사람을 정복한 후에 다시 얻고 최종에 인류를 모두 아름다운 귀숙으로 이끌어들어가야만이 모든 구원 사역의 중심이며, 비로소 사람을 구원하는 목적에 달하게 된다. 즉 사람을 인류의 아름다운 귀숙으로 이끌어들어가고 안식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피조물에게 있어야 할 전망이고 역시 조물주가 해야 할 사역이다. ……

……하나님이 정복의 사역을 하는 데는 전망과 운명ㆍ귀숙으로써 너를 통제하지 않는다. 사실 그러한 사역을 할 필요가 없다. 정복 사역의 목적은 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게 하기 위한 것이고 모두 조물주를 경배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 후에야, 사람이 비로소 아름다운 귀숙에 들어갈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사람의 정상 생활을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귀숙으로 이끌어들어간다≫에서 발췌

『정복 사역이 달하려는 효과는 주로 사람의 육체가 패역하지 않게 하는 것이며, 바로 사람이 사상적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이 있을 수 있고, 마음속으로 완전히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고, 사람의 심지가 하나님을 위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성격이나 육체가 어떻게 변화될 수 있어야 정복된 셈이 아니라 사람의 사상, 사람의 의식, 사람의 이지(理智), 즉 사람의 모든 정신 면모가 다 변화되는 데에 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께 정복된 것이다. 순복하는 심지가 있게 되고, 너의 사상도 갱신되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그 무슨 관념이 없게 되고 존심(存心)이 없게 되고, 대뇌가 정상적으로 사유할 수 있게 되고, 바로 일심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화비(花費)할 수 있게 되면, 이러한 사람은 완전히 정복된 사람이다. 종교의 많은 사람들은 한평생 적지 않은 고통을 받았는데, 자기의 몸을 굴복시키거나 십자가를 졌고 심지어 죽기 전까지도 고통받고 인내하였다! 어떤 자는 죽는 그날 아침에도 금식하였고, 일생 동안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았고 좋은 옷을 입지 않았으며 고통받는 것에만 중요시하였다. 그들은 자기의 몸을 굴복시킬 수 있었고 육체를 배반할 수 있었다. 그들의 고생하는 정신은 칭찬할 만하지만 그들의 사상, 그들의 관념, 그들의 정신 면모, 더 나아가 그들의 옛 성정까지 전혀 대처를 겪지 않아 자신에 대해서는 진실한 인식이 없었다. 그들 마음속의 하나님의 형상은 전통적인 막연한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는 심지는 그들의 열심과 그들의 인성의 좋은 성격에서 얻어진 것이다. 그들은 비록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고 하나님의 뜻도 몰랐으며, 다만 줄곧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였고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았을 뿐, 분별하는 것에 전혀 중요시하지 않았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있겠는가에도 중요시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어떻게 하나님을 아는 데에 달할 수 있겠는가도 몰랐다. 그들이 섬긴 하나님은 결코 하나님의 고유한 형상을 지닌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생각해낸, 남에게서 듣거나 문자적으로 찾아낸 하나님의 전설이다. 그들은 자기의 그 풍부한 상상과 자기의 그 경건한 심리로써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았고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을 담당하였다. 그들이 섬긴 정확도는 너무 낮아서 진실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들이 어떻게 달갑게 고통을 받았든지, 그들의 그 원래의 섬기는 관점과 그들 마음속의 하나님의 형상은 언제나 변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 형벌과 연단과 온전케 함을 겪지 않았고 또한 아무도 그들을 진리로써 인솔하지 않았으며, 설사 그들이 믿는 분이 구주 예수라 할지라도 그들은 모두 지금까지 구주를 본 적이 없고 다만 전설과 풍문이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그들의 섬김은 모두 눈감고 되는대로 섬긴 것에 불과하다. 마치 소경이 자기 아버지를 섬기는 것과 같다. 이러한 섬김이 최종에 가서 또 무슨 성과가 있을 수 있겠는가? 누가 또 칭찬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섬김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변경도 없었다. 모두가 인위적인 교훈을 받아들였고 자기의 천연적인 것과 자기의 애호로 섬겼는데, 무슨 상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비록 마지막까지 순복하기는 하였지만 정복되지 못하여 정복된 간증이 없는 것이다. 고통은 적지 않게 받았지만 안에는 하나님에 대하여 아무런 인식도 없다. 그들 몸의 그런 옛 사상, 옛 관념, 종교적인 행실, 인위적인 인식, 사람의 사유가 모두 대처를 겪지 않았으므로 안에는 새로운 인식이 조금도 없었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조금이라도 진실하고 정확한 데가 없었으며 모두 하나님의 뜻을 잘못 이해하였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겠는가? 네가 이전에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알고 있었는데, 만일 현재에도 여전히 그러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지 여전히 너 자신의 관념과 사유대로 하나님을 알고 즉 네가 하나님에 대하여 새로운 진실한 인식이 없고 하나님의 고유한 형상과 고유한 성정을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봉건 미신 사상이 주도로 되고 여전히 사람의 상상 관념이라면, 너는 정복되는 데에 달하지 못하였다. 현재 내가 너에게 한 많은 말은 모두 너로 하여금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인식으로써 너를 인솔하여 너에게 정확하고 더 새로운 인식이 있게 하는 것이며, 역시 네 안의 그런 옛 관념과 옛 인식법을 대처하여 너로 하여금 새로운 인식이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네가 만일 진실로 먹고 마신다면, 너의 인식법은 많이 변화될 것이다. 네가 순복하는 마음을 품고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수 있기만 하면, 너의 관점은 돌려세울 수 있는 것이다. 네가 이 한차례 또 한차례의 형벌을 받아들일 수 있기만 하면, 너의 옛 사상도 차츰차츰 변화되는 데에 달할 수 있다. 너의 옛 사상이 철저히 갱신될 수 있으면, 너의 실행도 따라서 변화된다. 이러면, 너의 섬김도 갈수록 정확해지고 갈수록 하나님의 뜻에 맞는 데에 달할 수 있다. 네가 너의 생활을 변화시키고 인생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에 대한 많은 관념을 바꾸는 데에 달할 수 있으면, 너의 천연적인 것은 점차 적어질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사람을 정복한 후에 달한 효과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변화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3)≫에서 발췌

『너희 이 사람들 몸에 한 정복 사역의 의의는 아주 깊다. 한 방면은 한 패의 사람들을 온전케 하려는 것인데, 바로 한 패의 이긴 자들을 온전케 함으로써 첫 패로 만들어진 사람 즉 처음 익은 열매로 하는 것이다. 다른 한 방면은 피조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누릴 수 있고 하나님의 가장 큰 구원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모든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누리게 하는 것은 긍휼 자애만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형벌 심판이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하나님 사역 중에서 한 전부는 다 사랑이지 사람을 미워하는 요소는 조금도 없다. 네가 본 형벌 심판도 역시 사랑인데, 더욱 진실한 사랑이다. 이 사랑이 바로 사람을 인솔하여 인생의 정도에 들어서게 하는 것이다. 또 한 방면은 사탄 앞에서 간증을 하는 데에 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방면은 이후의 복음 사역을 확장하기 위하여 기초를 다지는 것이다. 그가 한 사역은 다 사람을 인생의 정도로 인솔하여 사람에게 정상적인 인류의 생활이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이 생활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이러한 인솔이 없으면 너는 다만 공허하게 살아갈 뿐이고 아무런 가치도 없이, 아무런 의의도 없이 살아갈 뿐이며, 너는 아예 정상적인 사람이 될 수도 없다. 이것은 사람을 정복하는 가장 깊은 의의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내막 (4)≫에서 발췌

『온전케 되는 것은 모든 피조물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가령 이 단계에 온전케 하는 사역만 한다면, 영국에서 해도 되고 미국에서 해도 되고 이스라엘에서 해도 되며 어느 한 국가의 사람 몸에 해도 된다. 하지만 정복의 사역을 하는 데는 선택이 있는 것이다. 정복 사역의 시작 사역은 단기간 내의 사역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것으로써 사탄을 욕되게 할 것이고 전 우주를 정복할 것이다. 이것이 첫 시작의 정복 사역이다. 가히 말해서, 무릇 하나님을 믿는 모든 피조물은 다 온전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온전케 되는 것은 장기간의 변화에 의해야만 달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복되는 것은 같지 않다. 정복되는 표본 모형은 반드시 가장 낙후하고 가장 흑암한 중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어야 하며, 역시 하나님을 제일 시인하지 않는 가장 비천한 사람이어야 하고 하나님을 제일 거역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러한 사람만이 정복된 간증을 할 수 있다. 정복의 사역을 하는 것은 주로 사탄을 패배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은 오히려 사람을 얻기 위한 것이다. 정복된 후에 간증이 있는 데에 달하기 위하여 정복 사역을 이곳에 내렸고 너희들 몸에 내렸다. 이것은 정복된 이후의 간증을 하는 데에 달하기 위한 것이다. 정복된 사람에 의하여 사탄을 욕되게 하는 목적에 달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온전케 된 사람만이 의의 있는 인생을 살아낼 수 있다≫에서 발췌

『처음에는 이스라엘 선민 가운데서 하였고 가장 거룩한 곳에서 천지개벽을 하였으며, 최후 한 단계는 가장 더러운 국가에서 하여 세상을 심판하고 시대를 끝마친다. 제1단계는 가장 광명한 곳에서 역사하였으며, 최후 한 단계는 가장 흑암한 곳에서 역사하여 흑암을 몰아내고 광명을 가져와 이 사람들을 다 정복한다. 가장 더럽고 가장 흑암한 곳의 사람을 정복하여, 모든 사람들이 입으로 하나님이 있음을 시인하고 참 하나님임을 시인하고 마음으로도 감복하고 말로도 탄복하게 하는 이 사실로써 전 우주를 정복하는 사역을 하는바, 이 단계 사역은 대표적 의의가 있다. 이 시대의 사역을 다 하면 6천년의 경영 사역이 철저히 끝나게 된다. 가장 흑암한 곳의 사람을 이미 정복하였다면, 그 외의 곳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오직 중국의 정복 사역만이 대표적 의의를 갖고 있다. 중국은 모든 흑암 세력을 대표하는바, 중국 사람은 육체에 속하고 사탄에게 속하고 혈기에 속한 모든 사람을 대표한다. 중국 사람은 큰 붉은 용에게 가장 심하게 패괴되어, 하나님을 대적함이 가장 엄중하며 인성이 가장 비열하고 가장 더럽다. 그러므로 전체 패괴된 인류의 전형적인 대표이다. 결코 다른 국가가 다 좋다는 것은 아니며, 사람의 관념은 다 같다. 비록 그가 소질은 좋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역시 대적할 것이다. ……단지 중국 사람을 가져다 전범(典範)으로 하고 정복한 후에 모형과 표본으로 만들어 참고물로 할 따름이다. 무엇 때문에 줄곧 너희들을 나의 경영 계획의 부속물이라고 하는가? 바로 사람의 패괴ㆍ더러움ㆍ불의ㆍ대적ㆍ패역 이런 것들이 중국 사람의 몸에서 가장 전면적으로 표현되고, 갖은 모양이 다 드러난다. 한 방면으로는 소질이 낮으며, 다른 한 방면으로는 생활이 낙후하고 사상이 낙후하며 생활 습관, 사회 환경, 출생 가정이 다 차이가 나고 가장 낙후한 것이다. 이 사람들의 지위마저도 낮아 이곳에서 역사하면 대표성이 있다. 시점(試点) 사역을 전면적으로 하면 이후에 또 사역을 전개하기에 더 편리하게 된다. 이 단계 사역을 다 이루면 이후의 사역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 단계 사역이 이루어지고 큰일이 철저히 이루어지면, 온 우주의 정복 사역도 철저히 끝나게 된다. 사실, 너희들 가운데서의 사역이 성공되면 전 우주의 사역이 성공된 것과 같다. 무엇 때문에 너희더러 모형ㆍ표본이 되라고 하는가 하는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사람들 몸에 패역이라면 패역이 있고 대적이라면 대적이 있고 더러움이라면 더러움이 있고 불의라면 불의가 있는바, 인류의 모든 패역을 다 대표하였다. 이 사람들은 실로 간단치 않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을 정복의 전범으로 한다. 물론 정복한 후에는 표본ㆍ모형인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역사 이상 (2)≫에서 발췌

『마지막 단계에 사람을 정복하는 것은 사탄과 싸우는 최후 한 단계 사역이고 역시 사람을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철저히 구원해내는 사역이다. 사람을 정복하는 데에 내포된 뜻은 바로 사탄에게 패괴된 사탄의 화신을 정복한 후 조물주께로 향하게 하는 것으로 사탄을 배반하도록 하고, 완전히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면, 사람은 철저히 구원받는다. 그러므로 정복 사역, 즉 사탄과 싸우는 마무리 단계 사역은 사탄을 패배시키는 최후 한 단계 경영이다. 만일 이 한 단계 사역이 없다면, 최종에 사람을 완전히 구원해낼 수도 없고 사탄을 철저히 패배시킬 수도 없으며, 인류는 영원히 아름다운 귀숙에 들어갈 수 없고 영원히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사탄과의 싸움이 끝나지 않으면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도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경영 사역의 핵심은 바로 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인류는 하나님의 수중에 있었지만 사탄의 유혹과 패괴로 인하여 사람은 모두 사탄에게 묶여 악한 자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그러므로 사탄은 경영 사역 중에서 패배당할 대상으로 되었다. 그것이 사람을 점유하였고 사람은 또한 전체 경영의 본전이기에 사람을 구원하려면 반드시 사탄의 손아귀에서 사람을 탈환해야 하고 즉 사탄에게 노획된 사람을 또다시 탈환해야 한다. 이리하여 사람의 옛 성정을 변화시켜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의 원래 이지(理智)를 회복하게 하는 것에 의하여 사탄을 패배시킨다. 이러면, 노획된 사람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탈환할 수 있다. 사람이 만일 사탄의 권세와 결박에서 이탈한다면, 사탄은 수치를 당할 것이다. 최종에, 사람을 탈환하면 사탄도 패배당한다. 사람이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이탈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모든 싸움의 전리품이 되고 사탄은 오히려 싸움이 끝난 후에 징벌받을 대상이 된다. 이러면 인류를 구원하는 전부의 사역을 끝마치게 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사람의 정상 생활을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귀숙으로 이끌어들어간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