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더 이상 아들의 직업 때문에 근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중국 왕한(王涵)

제게는 언니가 세 명 있습니다. 언니와 형부들은 모두 정부 부처에서 일하는데, 정치협상회의 주석이거나 기관의 지도자 또는 책임자여서 사람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네 언니들은 어쩌면 하나같이 저렇게 잘났을까?” 하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제 마음은 여간 씁쓸한 게 아니었습니다. 언니들은 모두 그렇게 뛰어난데, 남편과 저는 그저 회사의 일반 관리직에 권력도 세력도 없으니 몹시 창피해서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내 인생은 별 볼 일 없으니 아들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아들은 커서 꼭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해.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정부 기관이나 공기업에는 들어가야 할 텐데. 그 애가 출세해서 번듯한 직업을 가져야 나도 체면이 서지.’ 저는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아들을 위해 계획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교육 퀄리티가 좋은 사립학교가 있었는데, 저는 인맥을 통해 돈을 써서 아들을 그곳에 보냈습니다. 아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유난히 시원치 않았습니다. 공부는커녕 학교를 빼먹기 일쑤였고, 늘 선생님께 반항하더니 나중에는 학교도 그만두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학교를 그만두면 사람이 완전히 못쓰게 되는데, 그럼 무슨 좋은 미래가 있을까?’ 그래서 저는 늘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야 나중에 좋은 대학 가서 번듯한 직업도 얻지! 네 사촌 형들은 다 대학생이잖아. 너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육체 노동이나 하면서 평생 사람들한테 무시당하고 살 거야.” 하지만 아들은 듣기 싫어하며 저를 피하기 일쑤였습니다. 학교 갔다 와서는 밥만 먹으면 숙제해야 한다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제가 공부 얘기를 꺼내려 하면 상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엄마인 내가 너를 이대로 내버려 두면 네가 나중에 잘될 수 있겠어?’ 저는 제 걱정과 염려를 글로 써서 애타는 마음으로 아들과 소통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제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여전히 걸핏하면 학교를 빠뜨렸습니다. 저는 아들이 사회에 나가 나쁜 길로 빠질까 봐 인맥을 이용해 군대에 보냈습니다. 군사 학교에 들어가 장교가 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사람들이 “아드님은 뭐 하세요?”라고 물을 때 “장교예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아들이 열다섯 살 되던 해에 군대를 보냈습니다. 3년 후 복무 기간이 만료되었을 때, 연줄을 이용해 아들을 군사 학교에 진학시키려 했지만 아들은 완강히 거부하며 제대하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입이 닳도록 설득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아들은 결국 제대를 선택했고, 돌아와서는 철도 부서에 배치되어 평범한 근로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아들의 직업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언니네 아이들은 모두 공직에 나아가 번듯한 직장에 돈도 많이 벌면서 어딜 가나 존중받는데, 제 아들을 보면 학력도 변변치 않고 직업도 시원치 않았습니다. ‘어쩜 저렇게 못났을까?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다 자기를 위한 거잖아? 본인은 왜 모를까?’ 그때 저는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날이 많았고, 사람들을 볼 낯이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설마 아들도 나처럼 평범하고 기 못 펴고 평생을 살아야 한단 말인가? 나를 아는 사람들이 알게 되면 뒤에서 뭐라고 수군대고 비웃을까! 안 돼, 이대로는 안 돼. 어떻게든 아들에게 좋은 직장을 알아봐 줘야지, 평생 평범한 근로자로 살게 할 수는 없어!’ 저는 사방으로 연줄을 찾아다녔고, 언니도 여러 곳을 알아봐 주었지만, 결국 아들의 학력 때문에 번번이 무산되었습니다. 아들의 직업 문제로 저는 속이 썩었고, 그 일은 제 마음의 병이 되었습니다. 가족들은 순리대로 하라고 조언했지만 저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인맥을 이용해 아들의 직업을 조정해 달라고 남편을 닦달했습니다. 신경도 많이 쓰고 돈도 많이 썼지만, 아들의 직업은 조정되지 않았습니다. 아들에게 번듯한 직장을 찾아 주지 못했기 때문에 아들은 3년 동안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대기해야 했습니다. 아들은 점점 더 무기력해져서 매일 게임을 하거나 밖에서 먹고 마시며 노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 시절 저는 매일 어떻게 하면 아들에게 번듯한 직장을 구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고통스럽고 고된 나날을 보냈습니다. 제가 근심 속에서 길을 찾지 못 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의 복음이 제게 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후, 저는 형제자매들과 자주 예배하고 본분을 이행하며 마음이 무척 기쁘고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한가해지면 또다시 아들의 직업 때문에 마음을 졸였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부모의 품을 떠나 독립한 사람이 어떤 사회 환경에서 어떤 일이나 사업을 하게 될지는 모두 운명으로 정해져 있으며, 이는 부모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어떤 사람은 대학에 진학해서 좋은 전공을 선택하고, 졸업 후 만족스러운 일자리를 찾을 것이다. 인생 여정에서 첫발을 순조롭게 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기술을 가졌어도 자신의 사업은 고사하고 자기에게 맞는 일이나 자신이 속할 곳 하나 찾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인생의 첫 발걸음을 내딛자마자 하는 일마다 실패하고 순탄치 않아 앞날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경우다. 성공과는 연이 없는 운명인 것처럼, 힘들게 공부했지만 대학교와는 인연이 닿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인생의 첫 희망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이 경우, 앞으로의 운명은 순탄할지 험난할지 알 수 없는 변수로 가득 차 있음을 처음으로 실감하고, 인생에 대해 두려움과 기대를 동시에 품게 된다. 교육 수준이 높지 않아도 책을 써서 이름을 날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자무식인데도 창업을 해 돈을 벌고 밥벌이를 하는 사람도 있다…그런데 어떤 직업을 선택하고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지,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의 기로에서 과연 사람은 스스로 방향을 정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람의 바람과 결정에 따른 선택이 가능한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적게 일하고 많이 벌고 싶어 한다. 바람과 햇빛을 피할 수 있는 편안한 장소에서 지내며 번듯하게 차려입고 떵떵거리며 살기를 원하고, 남보다 성공해서 가문을 빛내고 싶어 한다. 사람의 소망은 이렇게 ‘완벽’하지만, 그가 인생의 여정에서 첫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운명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차츰 깨닫게 된다. 또한, 자신의 미래를 위해 대담한 계획을 세우고 마음껏 꿈을 키울 수는 있어도 실제 자신에겐 꿈을 실현할 능력과 힘이 없을뿐더러 미래를 결정할 능력도 없음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된다. 사람이 직면한 현실은 언제나 꿈과는 괴리가 있고 늘 생각만큼 만족스럽지 않다. 사람은 그런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 심지어 자신의 직업과 미래를 위해 온갖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고, 운명을 바꾸기 위해 노력과 희생을 아끼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해서 자신의 꿈과 희망을 이룰 수 있다고 해도 궁극적으로 운명은 영원히 바꿀 수 없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자신의 숙명을 거스를 수는 없다. 능력, 지능, 의지와 상관없이, 운명 앞에서 사람은 나이, 우열, 귀천을 구분할 수 없는 동등한 존재이다. 사람이 평생 어떤 직업을 가질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지, 얼마나 많은 부를 가질지는 부모에 의해 좌우되거나 재능, 노력, 욕심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이는 창조주가 정한 운명에 달려 있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이 말씀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 참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처럼 늘 제 생각과 계획대로 아들이 번듯하고 그럴듯한 직업을 갖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계획하고 계산해서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다 하나님께서 주재하시고 안배하시는 것이지, 자신의 노력에 기대어 발버둥친다고 해서 소망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비싼 돈을 들여 사립학교에 보냈습니다. 오직 아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장래에 좋은 직장과 미래를 갖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끝까지 말을 듣지 않고 늘 학교를 빼먹기 일쑤였고, 제가 애타는 마음으로 가르치면 듣기는커녕 늘 저를 피했습니다. 나중에는 군대에 보내 장차 군사 학교에 가서 장교가 되기를 바랐지만, 아들은 여전히 제 말을 듣지 않고 기어코 제대를 하더니 결국 평범한 철도 근로자가 되었습니다. 아들의 직업이 제 기대와 너무나 차이가 컸기에 저는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방으로 연줄을 대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들에게 이상적인 직업을 찾아주려 했습니다. 하지만 몇 년간 애를 쓰고 돈과 정력을 쏟았지만, 결국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사람이 평생 어떤 직업을 갖게 될지는 사람의 노력이나 야심과 욕망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사람이 평생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운명을 살게 될지는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 놓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들이 어떤 직업에 종사하고 어떤 미래를 맞이할지는 제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하심에 달려 있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계획하고 남들에게 부탁해서 인맥을 찾아 봤자 소용없고, 헛수고입니다. 저 자신도 고달프고 아들까지 망쳐 놓을 뿐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은 후,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아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기도하고 나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그 후, 아들 회사 동료 두 사람이 상황을 알아보러 집에 찾아왔습니다. 아들이 몇 년간 출근하지 않아서 계속 결근하면 자동 퇴사 처리된다고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자 속으로 또 갈등이 되었습니다. ‘그럼 아들은 평생 평범한 근로자로 살아야만 하는 걸까?’ 저는 여전히 내키지 않아서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지금 출근하면, 앞으로는 계속 근로자로 살아야 해. 어떻게 할래?” 뜻밖에도 아들은 출근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창조주가 정한 모든 사람의 사명은 그 어떤 객관적인 조건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각자 특정 성장 환경에서 성숙해지고, 인생 여정을 한 걸음씩 밟아 가며, 창조주가 정해 놓은 운명을 조금씩 실현하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끝없는 인해 속으로 들어가 인생의 자리에 서서 창조주의 예정과 주재에 따라 피조물로서의 책임을 수행하기 시작한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아들이 어떤 운명을 살게 될지, 평생 무슨 일을 할지는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 놓으신 것이었습니다. 이제 아들도 다 컸으니 저는 손을 떼어야 했습니다. 아들이 출근하겠다고 하니 내버려 두기로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은 회사에 출근했습니다.

몇 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저는 아들의 직업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지만,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 언니들이 자기 아들들이 얼마나 잘나가는지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때면 여전히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늘 언니들에게 기가 죽고 대화에 끼어들 수 없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의 말씀을 통해 당신께서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신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왜 언니들이 자기 아들이 잘나간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마음이 괴롭고, 늘 자격지심이 드는 걸까요? 하나님, 제 문제를 인식할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어느 날 묵상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실, 얼마나 원대한 이상을 품고 있든, 얼마나 현실적이고 정당한 바람을 가지고 있든, 사람이 실현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 두 단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두 단어는 모든 사람의 삶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이것이야말로 사탄이 사람에게 주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대체 무엇일까? 바로 ‘명예’와 ‘이익’이다. 사탄은 과격한 방식이 아닌 매우 부드럽고 사람의 관념에 맞는 방식을 써서 사람이 부지불식간에 사탄의 생존 방식과 생존 법칙을 받아들이도록 하고,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세우게 한다. 또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인생의 꿈을 가지게 한다. 그 인생의 꿈은 겉으로 내세우는 말이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되어도 결국에는 ‘명예’와 ‘이익’으로 귀결된다. 어떤 위인이나 유명인이든, 모든 사람이 평생 동안 좇는 것은 ‘명예’와 ‘이익’ 두 가지뿐이다. 사람은 명예와 이익만 있으면, 부귀영화를 누리고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자본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명예와 이익만 있으면, 유흥과 육적인 향락을 거리낌 없이 즐길 수 있는 자본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명예와 이익을 거머쥐기 위해 기꺼이,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 심지어 자신의 모든 것, 미래와 운명마저 사탄에게 확실하게 넘겨 버린다. 그러고는 이에 대해 전혀 의구심을 갖지 않고, 자신에게 속한 것을 되찾을 줄도 모른다. 사람이 사탄을 이렇게 의지하고 사탄에게 충성하게 된 이상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겠느냐? 틀림없이 불가능할 것이다. 사탄에게 완전히 지배당하고, 그 늪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언니들이 잘나가는 아들들을 칭찬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괴로웠던 것은 제가 명예와 이익을 너무나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사람은 높은 곳으로 가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출세하면 남들 위에 군림한다.”와 같이 사탄이 주입한 그릇된 사상 관점에 따라 살았습니다. 명예와 이익만 있으면 모든 것을 가진 것이고,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고, 체면도 서고, 사람들 앞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사는 것만이 존엄성이 있는 삶이라고 여겼습니다. 언니와 형부들이 모두 지위와 체면이 있는 사람으로서 어딜 가나 대우를 받는 것을 보고 저는 몹시 부러웠고, 저도 그들처럼 남들에게 존경받으며 명예와 이익을 모두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제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자 저는 희망을 아들에게 걸었고, 아들이 장래에 번듯한 직장을 가져서 저도 허리를 펴고 당당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아들을 인재로 키우고자 모든 것을 기꺼이 쏟아부었습니다. 하지만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끝까지 제 말을 듣지 않고 결국 근로자가 되었습니다. 제 바람이 물거품이 된 것을 보고 저는 몹시 고통스러웠고, 늘 사람들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매일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저는 아들마저 그렇게 평범하게 사는 것이 내키지 않아서 돈을 쓰고 연줄을 이용해 아들의 직장을 옮겨 주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돈은 돈대로 쓰고 직장은 옮기지 못했으며, 아들은 매일 집에서 하는 일 없이 지내며 폐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명예와 이익 때문에 괴로워하며 제 체면과 이익만 생각하고 아들의 감정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루지 못한 바람을 아들에게 강요하여 아들의 시간을 허비했을 뿐만 아니라, 저 자신도 고통스럽게 살았습니다. 이러한 사탄의 사상 관점은 사람에게 피해를 줄 뿐입니다. 그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족쇄처럼 저를 꽁꽁 묶어 제가 기꺼이 그것을 위해 시간과 정력을 바치며 우롱당하도록 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어리석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닫자, 오랜 세월 묵혀 두었던 마음의 응어리가 한순간에 풀리는 듯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가 아니었다면, 저는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수렁에 깊이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 덕분에 저는 제 과거의 그릇된 추구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고, 사람을 패괴시키는 사탄의 수법에 대해 어느 정도 분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사탄의 사상 관점에 따라 살고 싶지 않았고, 아들의 직업에 더는 간섭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했습니다.

이어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아들의 직업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한 사람을 평범한 노동자로 정해 놓으면 이번 생에 그는 얼마 되지도 않는 기본적인 임금이나 벌어 생활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의 부모는 기어코 그를 유명 인사, 부자, 고위 관료로 만들기 위해 그가 미성년자일 때부터 그의 미래를 계획하고 안배해 두며, 그를 위해 소위 다양한 대가를 치르며 그의 인생과 미래를 통제하려고 한다. 이는 어리석은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 자식이 거지가 되길 바라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자식이 거지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자식이 출세하여 사회 상류층에서 지위가 높은 관리가 되도록 할 필요도 없다. 사회 상류층 사람이 된다고 좋을 게 뭐가 있겠느냐? 출세한다고 좋을 건 또 뭐냐? 그건 다 수렁일 뿐 별달리 좋은 일도 아니다. 명인, 위인, 비범한 사람, 지위와 신분이 높은 사람이 되는 게 좋은 일이겠느냐? 평범한 사람이 가장 편안하게 산다. 생활이 조금 고되고 힘들더라도, 먹고 입는 게 조금 부족하더라도 나쁠 게 뭐가 있겠느냐? 최소한 한 가지는 보장된다. 너는 상류층 사람과 접촉할 수 없고 사회 흐름 속에서 살아가지도 않으니 최소한 죄를 덜 짓고 악을 덜 행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덜 저지를 수 있다. 평범한 사람은 시험도 적고 상대해 주는 사람도 없으니 생활은 좀 고되고 힘들지라도 최소한 마음은 평안하며 힘들지 않고 두려움도 적다. 생각해 보아라, 노동자나 농민은 하루 세 끼만 보장되면 그만이지만 관직에 오르면 달라진다. 늘 다퉈야 하고 언제 자신이 관직에서 물러나야 할지도 알 수 없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자신이 미움을 산 사람이 찾아와 따지면 괴롭힘을 당하기도 한다. 명인, 위인, 부자는 다 무척 피곤하게 산다. 부자는 나중에 지금처럼 돈이 많지 않으면 그런 생활을 견디지 못할까 봐 늘 두려워한다. 명인은 자신의 인기가 사라질까 봐 늘 걱정하며 항상 인기를 유지하고 싶어 하고 이 시대와 흐름에서 도태될까 봐 걱정한다. 다들 얼마나 피곤하게 사느냐! 부모는 항상 이런 것들을 간파하지 못하고 자식을 바람이 세고 파도가 높은 위험한 곳으로 내몰고, 범의 아가리와 수렁으로 밀어 넣으려고 한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8)>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아들의 직업 문제에 있어 제가 하나님의 주재와 정하심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근로자로 사는 것도 나쁠 것이 없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정상적인 생활도 유지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요? 하지만 저는 늘 아들이 관직에 올라 장교가 되거나 정부 부처에 들어가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권세와 지위를 숭상했고, 그것이 바로 아들을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부 기관은 겉보기에는 근사해 보입니다. 그곳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양복을 차려 입고 꽤나 멋있어 보이지만, 실제로 그곳은 가장 어두운 곳입니다. 마치 언니네 아들들처럼, 직장에서 기관장 자리에 있으면서 권력과 세력을 손에 쥐지만, 그들은 결코 행복하게 살지 못합니다. 그들은 어떻게 연줄을 이용해 자신의 지위를 지킬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언젠가 직위를 잃고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그야말로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듯 살아갑니다. 정부 기관에서 일하면 각종 세력 다툼에 휘말리기 쉽고,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을 위해 목숨 바쳐 힘쓰다가 사탄의 하수인이 되고, 양심, 도덕적 마지노선, 인간의 존엄성 같은 것은 모두 사라진 채 온갖 나쁜 짓과 악행을 저지르다 결국 사탄의 희생양이 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것들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아들을 정부 기관으로 밀어 넣으려 했으니, 정말이지 너무나 어리석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정해 주신 직업은 사람의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기에 충분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만족하는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20)> 중에서)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을 믿은 지 여러 해가 되었음에도 하나님 말씀의 실제를 살아내지 못했고, 일을 바라보는 관점도 별로 변하지 않았으며, 추구하는 관점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권세를 숭상하고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며, 심지어 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아들을 깊은 수렁과 늪으로 밀어 넣으려 했습니다. 만약 제가 아들을 관직에 올렸다면, 그는 분쟁에 휘말려 사람들과 암투를 벌이고, 온종일 이 사람 저 사람을 경계하며 온갖 계략과 수단을 썼을 것이고, 또 어떤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 체면과 지위를 만족시키기 위해 아들을 그런 곳으로 밀어 넣으려 하다니, 이게 바로 자식을 망치는 게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비록 제 아들은 지금 평범한 근로자가 되어 육체적으로는 좀 힘들고 고되지만, 사촌 형들처럼 고달프게 살지는 않습니다. 그런 시비와 다툼에 휘말릴 필요도 없고, 자신의 지위를 잃을까 온종일 걱정할 필요도 없이 마음 편히 자유롭게 살면서 제 한 몸 건사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것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구했습니다. ‘부모로서 자녀가 출세하기만을 바라서는 안 된다면, 어떻게 자녀를 대하는 것이 옳은 길일까?’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의 본질을 해부해 보면, 부모의 기대는 이기적이고 인성에 위배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부모의 책임과도 관련이 없다. 부모가 자식에게 강압적으로 여러 가지 기대와 요구를 하는 것은 자식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지 결코 책임을 다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부모가 다해야 할 책임은 무엇이겠느냐? 최소한 자식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고 정직한 말을 하며 정직한 일을 하라고, 나쁜 짓을 저지르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인도해야 한다. 이것이 최소한의 책임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8)> 중에서), 『부모는 자식에게 책임을 다하여 자식을 잘 부양하고 그가 어른이 될 때까지 정성 들여 기르기만 하면 되지, 그를 인재로 기를 필요는 없다. 이 점은 쉽게 행할 수 있느냐? (쉽게 행할 수 있습니다.) 이는 수월한 일이다. 너는 그의 미래와 인생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질 필요 없다. 그에게 어떤 계획을 마련해 줄 필요도, 그가 어떤 사람이 되도록 미리 정해 놓을 필요도 없다. 미래에 어떻게 생활할지, 어떤 생활권에서 살아갈지, 앞으로 이 세상에서 삶의 질은 어떨지, 사람들 가운데서 어떤 지위를 가질지, 너는 이런 것들을 미리 정해 놓을 필요도, 통제할 필요도 없다. 그저 단순하게 부모의 책임을 다하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나 간단하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18)>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은 자녀를 키워 성장시키고, 그가 바른길을 가도록 교육하고 인도하는 것이며, 자녀가 성년이 된 후에는 부모가 손을 놓아주어 자녀 스스로 살아가게 하고, 자녀가 도움이 필요할 때 자신의 실제 상황에 맞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제 아들은 성인이 되었고, 자기 생각과 선택이 있습니다. 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아들을 간섭하고 지배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조언하고 타일러서 긍정적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며, 본인이 어떻게 선택할지는 본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앞으로 본인이 계속 근로자로 살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일들을 겪으며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등등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안배해 놓으신 것이지 제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순종하며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뿐입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아들의 직업 때문에 걱정하며 힘들어하지 않고, 아들의 직업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마음에 얽매이지도 않습니다. 마음을 평온히 하고 본분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마음 편하고 홀가분한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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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다른 사람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를 배우다

프랑스 쓰위안2년 전 교회에서 리더 본분을 할 때였습니다. 당시 교회의 천 형제는 자질이 뛰어났으나 성품이 너무 교만하고 자기를 드러내기를 좋아했습니다. 제 눈에는 그런 천 형제가 그다지 좋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그 형제가 저한테 와서 양육...

31. 본분을 지키다

한국 양무예전에 형제자매들이 무대에서 춤추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보고 너무 부러웠습니다. 언젠가 저도 무대에 서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영광스러울까 생각했습니다. 뜻밖에도 그 날은 금방 찾아왔습니다.2018년 5월, 저는...

21. 루머의 함정에서 벗어나다

중국 샤오윈저는 여군 장교였습니다. 1999년의 어느 날, 한 한국인 목사님이 저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저는 열심히 추구하여 얼마 후에는 목사님의 주 배양 대상이 되었고, 목사님의 유력한 조수가 되었습니다. 2000년 여름, 목사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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