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잔꾀를 부리다가 스스로를 망치다
한번은 사역을 결산하는데, 교회 리더가 최근 복음 사역 성과가 그다지 좋지 않다면서 저에게 원인이 무엇인지 정리해 봤느냐고 물었습니다. 질문을 받고 보니 정말 최근 사역 성과가 다소 떨어져 있더라고요. 예배를 마치고 얼른 확인해 보니 지난 달과 비교해 사역 성과가 절반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조바심이 났죠. ‘지금처럼 사역 성과가 계속 안 좋으면 교체되지 않을까? 그럴 순 없어. 얼른 원인을 알아보고 빨리 성과를 올려야겠다.’ 저는 형제자매들을 일일이 만나 본분 과정에서 어떤 문제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파악하고, 예배 시간에 그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교제하고 해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과가 좋은 형제자매들을 만나 경험을 교류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후 며칠 간 사역 성과가 확실히 좋아져서 한시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지난 달보다 사역 성과가 좋아지겠는 걸. 본분은 이렇게만 이행하면서 특별히 악행이나 방해, 교란 행위를 저지르지 않고 계속 교회에 남아 도태되지만 않으면 되지, 뭐.’ 그랬더니 잔뜩 긴장했던 마음도 점차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월말을 눈앞에 둔 시점에 사역 성과가 벌써 지난 달과 비슷해졌습니다. ‘이번 달 성과가 좋으면 다음 달 성과를 더 내야 본분에서 성장한 게 되겠지. 그러려면 대가를 더 많이 치러야 하는데, 굳이 스스로를 이렇게 몰아붙일 필요가 있을까? 어쨌든 이번 달 성과도 나쁘지 않으니까 교체되고 도태되진 않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며 저는 완전히 해이해졌습니다. 본분 이행도 그저 판에 박힌 듯했고, 현재에만 안주하려 하며 사역 체크도 그다지 꼼꼼하지 않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어려움을 토로해도 교제해서 해결해 주지도 않았죠. 간혹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이행할 때 원칙을 어겨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인 문제니까 전체 성과에 영향만 주지 않으면 그만이었어요. 형제자매들이 긴장감을 잃고 본분을 게을리했을 때도 그건 문제가 있는 거고 해결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달 성과가 괜찮으니까 좀 나태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못 본 체했습니다. 이런 상태로 지내는 동안은 영적으로 무척 어두웠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봐도 깨우침과 빛 비춤도 없고, 사역하면서 생긴 문제들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사역 결산 때 꾸벅꾸벅 졸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사역 성과가 계속 떨어지자 그제야 당황해서 형제자매들을 찾아가 상황을 파악하고 오류를 정리했습니다.
한번은 예배 시간에 한 자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본분 성과가 떨어지면 조정되고 교체될까 봐 열심히 하다가 성과가 생기면 육을 탐하기 시작하고 부담이 없어져요. 그런 식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잔머리를 굴리는 간사한 태도죠.” 그 말이 와닿아 제 상태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사역 효과가 떨어지면 조정되고 교체될까 봐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성과를 끌어 올리려 했습니다. 그러다 성과가 조금 올라가거나 안정적인 수준이 되면 안일함을 누리기 시작해서 본분을 기계적으로 하거나 늑장을 부렸죠. 매달 성과만 어느 정도 유지해서 교체만 안 당하면 그만이었어요. 그야말로 잔머리를 굴리는 짓이었죠. 그러고 보니 매번 비슷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저는 늘 이런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것이 제 일관된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제서야 두려워졌습니다.
묵상 시간에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지금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 본분이 주어져 네가 힘을 들여야 할 때, 이는 네가 자신을 바치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며 네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때이다. 어떤 것도 숨기거나 잔꾀를 쓰거나 여지를 남겨서는 안 된다. 여지를 남기거나 요령을 피운다면 절대 그 일을 잘 해낼 수 없다. ‘아무도 내가 요령 피운 걸 못 봤어. 정말 다행이야!’, 이것은 대체 어떤 생각이겠느냐? 너는 사람을 속이고는 하나님까지 속였다고 생각하느냐? 사실 하나님은 알겠느냐, 모르겠느냐? 알고 있다. 사실, 너와 오랜 시간 함께 지내다 보면 누구든 네 패괴와 추악한 면을 발견하게 된다. 단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을 뿐이지, 속으로 몰래 너를 평가하기 마련이다. 많은 이가 드러나 도태된 이유는 그를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의 본질을 간파한 사람들이 그를 폭로하고 쫓아낸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고 말고에 관계없이 최선을 다해 본분을 잘 이행해야 하고, 양심에 따라 실제적인 일을 해야 한다. 네게 비록 결점이 있더라도 본분 이행에 효과가 있다면 도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는 꽤 괜찮은 사람이니까 절대 도태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 여전히 본인에 대한 반성도 인식도 하지 않고, 본연의 일도 하지 않으면서 계속 건성으로 대충 임한다면, 이를 보다 못한 하나님 선민들이 너를 폭로할 것이다. 그러면 너는 도태될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너를 꿰뚫어 보았고 네가 네 존엄성과 인격을 모조리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무도 너를 신뢰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너를 신뢰할 수 있겠느냐? 사람의 폐부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절대로 그런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진입은 본분 이행에서부터 시작된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 사람이 본분을 대할 때 지녀야 할 태도는 열심히 대가를 치르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공들이고 대가를 치르면 사역에서 얼마든지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데도 미적대면서 자그마한 본분 성과에 만족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잔머리를 굴리는 것이고, 수작을 부리는 것입니다.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니 저는 본분에 조금이라도 성과가 생겨서 최소한 조정이나 교체만 되지 않으면 그것으로 만족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의 문제나 고충을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하지도 않고, 사역 결산도 형식적으로만 진행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본분 과정에서 원칙을 어기거나 게으름을 피워도 전체 성과에 지장만 없으면 그만이라며 못 본 체 넘어갔습니다. 공들이고 대가를 치르면 사역에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데도 피곤하고 신경 쓰이는 게 싫어서 수작을 부렸습니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하나님께 꿍꿍이를 품고 꾀를 부리는 것이고,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었죠. 저는 정말 간사했습니다! 남에게 일을 부탁할 때는 누구나 성실하고 믿을 만한 사람을 찾습니다. 그런 사람은 신용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안심하고 일을 맡길 수 있지요. 하지만 꿍꿍이가 있고 잔꾀 부리는 사람에게 일을 부탁하면 일이 잘 되지 않을뿐더러 자칫하면 일을 망치기 쉽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양심과 이성이 없고, 최소한의 됨됨이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신뢰할 가치도 없고, 부탁할 가치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본분을 받고도 최선을 다하지 않고 하나님께 잔머리를 굴리며 얼렁뚱땅 넘어가려 했습니다. 겉보기엔 본분에 성과도 있고, 남들이 볼 때도 별문제 없어 보였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감찰하고 계셨습니다. 오랜 시간 이런 식으로 무성의하게 잔머리를 굴리다가는 언젠가는 하나님께 드러나 도태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 13:12) 이 말은 무슨 뜻이냐? 바로 네가 자신의 본분, 마땅히 해야 하는 일조차 하지 않고 헌신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네게 있던 것마저 빼앗아 간다는 것이다. 빼앗아 간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사람은 어떤 느낌을 받게 되느냐? 너의 자질, 은사로 해낼 수 있던 일도 해낼 수 없게 되고, 감을 잡을 수 없게 되며, 이방인처럼 된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에게 모든 걸 빼앗긴 것이다. 네가 본분 이행에 신경 쓰지 않고 대가를 치르지 않으며 진심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네게 있던 것을 빼앗아 가고, 본분을 이행할 권리를 박탈해 네게 그 권리를 주지 않을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저는 본분 이행할 때 잔꾀를 부리며 대충 하고,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명백한 문제도 발견하지 못하고 본분을 이행하면서 졸기만 하다가 사역 효과가 분명하게 떨어지는 결과를 맞이했죠. 이것은 하나님 성품이 제게 나타낸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며 제가 더욱 깊이 자신을 인식하도록 이끌어 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한번은 예배 시간에 이 말씀을 보고 깊이 와닿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며, 간사한 사람, 교활한 사람을 혐오한다. 네가 교활한 사람이 되어 농간을 부리는데 하나님이 너를 혐오하지 않을 리 있겠느냐? 하나님 집에서 너를 가만둘 리 있겠느냐? 언젠가는 너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고, 교활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이를 분명히 알아야 하고 더는 어리석은 짓을 해서는 안 된다. 한순간 어리석게 군 것은 그래도 용서할 수 있다. 만약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는 고집불통이다. 정직한 사람은 책임을 질 줄 안다. 그는 자신의 이해득실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집의 사역과 이익을 지킨다. 또 마음이 정직하고 선량하며, 한 그릇의 맑은 물처럼 한눈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이런 사람은 일 처리도 투명하다. 간사한 사람은 온갖 농간을 부리며 늘 꾸미고 숨기고 가리면서 자신을 아주 빈틈없이 포장해 아무도 꿰뚫어 보지 못하게 한다. 네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남들은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네 내면의 가장 깊은 곳까지도 감찰할 수 있다. 하나님 눈에 네가 정직한 사람이 아니라 교활한 인간이고, 좀처럼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께 간사한 수작을 부리며 마음을 보여 주지 않으면 하나님은 너를 좋아하지 않고 혐오하고 포기할 것이다. 바깥세상에서 형통하는 사람, 말 잘하는 사람,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느냐? 너희는 알고 있느냐? 그들의 본질은 무엇이냐? 하나같이 꿍꿍이가 가득한 사람, 몹시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이고, 영락없는 마귀 사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구원하겠느냐? 하나님이 가장 혐오하는 자는 바로 마귀이고,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절대로 이 부류 사람을 구원하지 않는다. 너희는 절대 그런 사람이 되지 마라. … 하나님은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에게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 혐오하고 버리며, 한쪽으로 제쳐두고 신경도 쓰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짐승과 같은 부류로 생각한다. 하나님의 눈에, 이런 자들은 사람의 탈을 썼지만 본질은 마귀 사탄 부류의 자들이고,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절대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지금 어떤 내적 상태일까? 그들은 마음이 어둡고 진실한 믿음이 없다. 어떤 일을 만나도 깨우침과 빛 비춤이 없고, 재난과 환난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 기도해도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는다. 그들 마음속에는 진정한 의지처가 없다. 그들은 복을 받기 위해 좋은 모습을 보이려 하지만, 자신도 어쩔 수 없다. 양심과 이성이 없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도 그럴 수 없고,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으려 해도 통제가 되지 않고 저지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쫓겨나고 도태된 후에는 자신을 인식할 수 있겠느냐? 비록 본인들은 그것이 당연한 결과임을 알면서도 입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설령 겉으로는 어느 정도 본분을 이행하겠지만 농간을 부리고, 본분에 눈에 띄는 효과도 없다. 그런 자들이 과연 진실로 회개할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수 없다. 양심과 이성이 없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런 교활한 자, 악인을 구원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다 한들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 하나님 믿는 의미도 이미 상실했고, 결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시종일관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오래 믿어도 소용이 없다. 그런 사람은 마지막까지 믿는다 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8)> 중에서) ‘교활하다’, ‘간사하다’, ‘꿍꿍이가 가득하다’, ‘하나님은 절대 구원하지 않을 것이다’, ‘결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이런 말들을 보니 마음이 너무 찔렸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저를 드러내시고 정죄하는 것 같았거든요. 지금까지 저는 사람이 너무 곧이곧대로 살면 안 되고, 계산에 밝고 잔머리도 굴릴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잇속만 차리면 손해 볼 일이 없다.”라는 사탄 철학을 받들며 무슨 일을 하든 우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부터 따져 보고, 작은 대가로 최대한 이익을 얻는 것이 최고이고, 그게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믿은 후로도 이런 생존 법칙을 신봉해서 본분도 그렇게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았고, 있는 힘을 다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건 너무 바보 같아 보였죠. 만약 어느 날 복을 못 받기라도 하면 손해니까요. 그런 손해 보는 장사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적은 대가로 큰 복을 얻는 게 최고이고, 그게 바로 똑똑한 거라 여겼죠! 그 때문에 저는 본분을 이행할 때 늘 쉬엄쉬엄 하면서 관망하는 편이었고, 무척 계산적이었습니다. 성과가 좋을 때는 며칠씩 여유를 부리고, 사역에 문제가 보여도 성과에 지장이 없고 제가 교체되거나 도태되지 않겠다 싶으면 서둘러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대충 일하면서 때우는 식이었죠. 효과가 너무 떨어져서 결과를 책임져야 할 것 같으면 그때는 서둘러 노력을 기울이며 원인을 조사하고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러다 성과가 조금 나면 한시름 내려 놓고 다시 안일함을 누리면서 일손을 내려놓았습니다. 저는 정말 너무 교활하고 간사했습니다! 정말 본분을 이행하는 모습이나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은 찾아볼 수가 없었죠. 저는 제가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감찰하고 계셨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 끝까지 잔꾀를 부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절대 구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정직한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고, 본분을 이행할 때는 오로지 본분밖에 모릅니다. 책임과 소임을 다하고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합니다. 스스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지 않고 복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축복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복음 사역 담당자로 있으면서 잔꾀를 부리고, 건성으로 하고, 앞으로 나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형제자매들의 내적 상태와 고충이 제때 해결되지 않아 사역 성과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형제자매들을 해쳤을 뿐만 아니라 교회 복음 사역에 걸림돌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런 걸 생각하니 후회와 자책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본분을 이행할 때는 온 힘을 다하고 다시는 잔꾀 부리면서 건성으로 하지 않겠다고 하나님 앞에 다짐했습니다.
한번은 묵상 시간에 하나님 말씀을 보고 본분을 이행하는 의미를 조금은 깨달을 수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그것은 가장 정당한 일이다. 이는 인류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정의로운 일이다. 피조물이라면 마땅히 자신의 본분을 이행해야 창조주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 피조물은 창조주의 권세하에 살면서 하나님의 모든 공급과 하나님에게서 온 모든 것을 받아들이므로 마땅히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고, 하나님이 예정해 놓은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봤을 때, 사람이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살면서 행하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정의롭고 아름다우며 고상한 일이다. 인류 가운데 어떤 일도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보다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은 없으며, 지음 받은 사람이 더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없다. 땅에서 유일하게 진심으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이 사람들이야말로 창조주께 순종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세상의 조류를 좇지 않고, 하나님의 인솔과 인도에 순종하며, 오로지 창조주의 말씀을 듣고, 창조주가 선포한 진리를 받아들이고, 창조주의 말씀대로 살아갈 뿐이다. 이는 가장 진실되고 힘 있는 증거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가장 훌륭한 증거다. 한 피조물이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 창조주를 만족게 할 수 있는 것은 인류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며, 인류 가운데서 아름다운 이야기로 전해져야 할 일이다.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어떤 일을 부탁하든, 피조물은 마땅히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인류에게 행복한 일이자 영광스러운 일이다.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 이는 무엇보다 아름답고 기념할 만한 일로, 긍정적인 사물이다. … 이렇게 아름다운 일이, 이렇게 위대한 일이 적그리스도 부류에 의해 왜곡되어 거래로 변했고, 그들이 하나님 손에서 면류관을 받아 내고 상을 받아 내는 거래로 변했다. 이런 거래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정의로운 일을 가장 추하고 가장 사악한 것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적그리스도가 한 짓이 아니냐? 이런 점을 보면 적그리스도는 사악하지 않으냐? 적그리스도는 너무 사악하다! 이것이 바로 그의 사악함 중 한 측면의 모습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7)> 중에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말씀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하나님은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묵묵히 모든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시고, 본분을 이행할 기회도 주셔서 우리가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추구해 패괴 성품을 해결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해서 당신께 구원받도록 하셨습니다.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자 의무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리를 얻어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정의로운 사업입니다. 그런데 적그리스도는 이 아름답고 정의로운 일을 장사나 거래로 왜곡시킵니다. 그리고 복을 받으려는 관점으로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기에 진심이 있을 수 없고, 고생하고 대가를 치르는 일도 없습니다. 그들은 전형적인 불신파, 투기꾼입니다. 본분을 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 하나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늘 미적대면서 작은 대가로 큰 이익을 얻으려 했습니다. 저도 본분을 거래로 왜곡시킨 거잖아요. 저는 과거에 본분에 성과가 있어서 교회에 남아 있을 수만 있다면 교체되거나 도태되지 않고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서야 그게 모두 제 관념과 상상일 뿐, 하나님 말씀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본분에 성과를 내고 악행을 저지르지 않으면 교체되거나 도태되지 않고, 그러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지, 본분 과정에서 진리 실제에 진입해서 패괴 성품을 해결하는지를 근거로 그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정하십니다. 이것 말고 다른 지름길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사람의 진심입니다. 사람이 만약 본분 이행에 일관되게 교활하게 잔꾀를 부리고 건성으로 임한다면 아무리 본분에 성과가 있어도 하나님께 혐오받고, 마지막에는 하나님께 드러나 도태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 3:16) 본분을 이행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만 일하는,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태도 역시 미지근한 물과 같죠. 하나님께서 토하여 버리실 것입니다.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보니 덜컥 겁이 났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회개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온 힘을 다해 사역 하나 하나를 최선을 다해 이행하겠습니다. 만약 제가 또 건성으로 대한다면 저를 징계해 주세요.’
나중에 또 하나님 말씀을 보고 실행 길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사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다하고 정직한 태도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한다면 그 태도는 훨씬 더 올바른 것 아니겠느냐? 어떻게 해야 그런 태도를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겠느냐? ‘마음과 정직함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이 말이 네 실제가 되도록 해야 한다. 네가 대충 넘어가고 싶을 때, 꾀를 부리거나 게으름 피우고 싶을 때, 마음이 분산되거나 놀고 싶을 때, ‘이렇게 하면 신뢰를 줄 수 있을까? 이렇게 하는 게 마음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일까? 이렇게 하는 게 충성심이 없는 것 아닐까? 하나님의 부탁을 저버리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반성해야 한다. 자신이 늘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본분에 충성심도 없어서 하나님 마음을 상하게 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너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당시에 속으로는 이 일이 좀 문제라고 느끼긴 했지만 진지하게 문제로 대하지 않고 얼렁뚱땅 넘겼어. 그리고 이제 와서야 그게 확실히 건성으로 대충 하고,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임을 알겠어. 난 정말 양심도 이성도 없어!”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했다. 그러면 돌이켜야 한다! 과거에는 그릇된 태도로 본분을 이행했다. 본분을 그저 추가적인 일로 생각하며 대충 이행하고, 마음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 다시 이렇게 건성으로 본분을 대한다면 하나님께 징계와 채찍질을 내려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본분을 이행할 때 이런 의지를 지니고 있어야 진실로 회개할 수 있다. 양심이 편안해지고, 본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야 돌이킨 것이다. 회개하는 과정에서도 자주 자신이 과연 마음과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본분을 이행했는지를 돌아봐야 하며, 또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가늠해 보고, 맞춰 보아야 한다. 그러면 자신이 본분 이행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부단히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실제로 마음과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바로 마음과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니냐?』(<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늘 하나님 말씀을 읽고 진리를 묵상해야 실행할 길이 생긴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서 실행 길을 찾았습니다. 바로 마음과 정성으로 본분을 대하고, 기꺼이 대가를 치르고, 공을 들이고 책임을 다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본분을 잘해서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또한 건성으로 하며 게으름을 피우고 싶을 때는 하나님께 육을 저버리도록 채찍질과 징계를 내려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이 육체를 좇지 않도록 지킬 수 있습니다.
앞으로 저는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기로 하고, 어떻게 하면 본분을 잘해서 효과를 끌어올릴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팀 형제자매들은 모두 저마다의 특기와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어떻게 일을 배정해야 다들 장점을 발휘할 수 있을지, 그리고 단점이나 부족한 부분은 어떻게 실제적으로 지도하고 도와줄지 고민했습니다. 전에는 난 책임자니까 사역 관리만 잘하면 되고, 형제자매들이 본분에 성과를 내면 내 성과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틈만 나면 여유를 부렸지요.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에게 목표를 부여하고 최선을 다해 본분을 더 하려고 합니다. 비록 매일 스케줄이 꽉 차서 전보다 많이 바빠지고, 가끔 정말 피곤하기도 하지만 마음은 한결 평안했습니다. 그랬더니 두 번째 달에 본분 성과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사람의 진심이라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제 관점을 돌려세우고 열심히 본분을 이행했더니 하나님의 이끄심을 볼 수 있었고, 본분에도 성과가 생겼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