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외식하는 자의 고통
2020년 8월, 저는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고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아서 교체되었습니다. 그 일로 무척 괴롭기도 하고, 크게 후회도 됐습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회개하고 앞으로는 본분을 잘 이행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뒤로 자매님 몇 분과 함께 영상 제작을 맡게 됐습니다. 어느 날, 교체되고 나서 저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한 내용에 대해 양판(陽帆) 자매님과 대화를 나눴는데, 자매님이 제 이야기를 듣고 무척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날 이후 저를 대하는 양 자매님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예배 시간에 제가 체험한 것을 얘기하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듣고, 제 생각을 밝히면 양 자매님도 대개는 동의해 주었습니다. 또 평소 생활할 때도 제를 관심해 주고 잘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런 자매님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양판 자매님이 나를 높이 평가하는 것 같아. 반성하고 인식하는 얘기도 했고, 진심으로 회개한다고도 했으니 이젠 실제 행동을 보여 줘야 해.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지 않으면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 말만 하고 행동은 안 하는 사람,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어? 그러면 내 좋은 이미지도 사라지겠지?’ 이런 우려와 고민을 하는 순간, 저는 더 이상 순수하게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가끔 영상 제작하느라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등도 뻐근하고 좀 쉬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자매님들이 보면 게으름 피운다고 생각할 것만 같았습니다. ‘게으른 태도를 고치고 본분을 잘 이행하겠다고 했으니까 자매님들한테 실제 행동을 보여 줘야 해.’ 이런 생각 때문에 자매님들이 저를 보고 육을 좇고 본분에는 책임감이 없다고 할까 봐 피곤해도 쉴 수가 없었습니다. 밤에는 졸려도 일찍 잠자리에 들지 못했습니다. 하던 일을 다 마무리하더라도 11시 반이나 12시까지 끌다가 컴퓨터를 끄고 잠자리에 들곤 했습니다. 어떤 때는 밤새 일을 해서 아침에 눈을 뜨기가 힘든데도 일찍 일어나는 자매님들을 보면 더 잘 수가 없었습니다. 다들 저를 안 좋게 볼까 봐 신경 쓰였기 때문입니다. 또 있습니다. 한번은 양판 자매님이 영상 두 편을 제작하려는데, 원래는 도와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작업하기 까다로운 영상이기도 하고, 그렇게 마음 쓰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별로 할 일도 없는데 일이 있는 걸 보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자매님이 분명 저를 말만 앞서고 글귀와 도리만 읊어 대는 사람,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나서서 자매님이 영상 제작하는 것을 도와준 적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사실 그게 다 체면과 지위 때문이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마음이 상당히 불편해서 자매에게 터놓고 제 내적 상태를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겁이 났습니다. 그렇게 터놓고 얘기하면 제가 속셈을 품고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한 것을 자매가 알 것이고, 그러면 분명 저를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았으니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또 외식하는 간사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 같기도 하고, 심지어 교체되고 난 뒤 털어놓았던, 저 자신에 대한 인식마저 부정당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예배 때는 남들도 항상 드러내는 패괴만 교제하고, 긍정적인 체험적 인식만 이야기하면서 내면 깊은 곳의 생각은 꽁꽁 포장했습니다. 그렇게 긍정적인 체험만 교제하다 보니 자매님은 저를 더욱 높이 평가했습니다. 한번은 예배 시간에 양판 자매님이 제가 진리를 실행할 줄 알고 진리를 교제할 때도 명백하고 분명하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두 자매님도 저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패괴를 드러냈을 때 순수하게 털어놓을 줄 알고 본분도 적극적으로 이행하는 사람으로 평가했습니다. 기쁜 마음도 있었지만 사실 부끄럽고 불안한 마음이 더 컸습니다. “순수하게 털어놓고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한다.”와 같은 평가는 애초에 저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하나도 순수하지 않았고 내면 깊은 곳에 있는 패괴를 전혀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에도 다 속셈과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젠 다 끝이구나! 형제자매들이 겉면의 내 가짜 이미지에 미혹되고 말았으니 이를 어쩌지?’ 저는 양심에 참소를 받아서 자매님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다시는 자매님들을 기만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걱정이 앞섰습니다.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제 내면에 있는 속셈과 생각을 다들 알게 되고, 자매님은 분명 저를 간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면 저의 좋은 이미지도 다 사라지고, 다른 사람에게서 다시는 높이 평가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사람들 앞에 솔직하게 털어놓을 용기가 싹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고 난 뒤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너희는 대체 어떤 자가 바리새인인 줄 아느냐? 너희 주변에 바리새인이 있느냐? 그들은 왜 ‘바리새인’이라 불리는 것이냐? ‘바리새인’이란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느냐? 바로 외식한다는 것이다. 모든 일에 가식적이고 위장한다. 어떻게 위장하느냐? 훌륭한 사람인 양, 선하고 긍정적인 사람인 양 위장한다. 사실, 그가 훌륭하고 선하고 긍정적인 것이냐? 절대 그렇지 않다. 가식이라고 하면 모든 모습과 드러내는 것이 거짓되고 위장한 것으로, 진실하지 않은 것이다. 진실한 면은 어디 있느냐? 드러내지 않고 속에 깊이 감춰둔 것이다. 겉모습은 전부 위장한 것이고 모조리 거짓된 것이다. 이는 사람만 속일 수 있을 뿐 하나님을 속이지는 못한다.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체험하지 않는다면, 진실로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 그러면 그가 하는 말은 아무리 듣기 좋아도 다 진리 실제가 아닌 글귀와 도리이다. 어떤 사람은 글귀와 도리를 떠들어 대는 것만 중요시한다. 누가 수준 높은 설교를 한다면 바로 따라 한다. 그 결과,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도 글귀와 도리를 말하는 수준이 점점 높아져 많은 사람이 탄복하고 숭상하게 된다. 그러면 자신을 포장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언행에 각별히 신경 쓰며 무척이나 경건하고 영적인 척한다. 그는 이런 소위 영적인 이론으로 스스로를 포장한다. 어디를 가든 그따위 것들을 말하는데, 진리 실제가 전혀 없이 모두 사람의 관념에 맞는 사이비한 것들이다. 그는 사람의 관념과 입맛에 맞는 그런 것들을 전하여 수많은 사람을 미혹한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그의 경건함과 겸손함은 실은 가짜다. 그의 포용과 인내, 사람을 향한 사랑은 꾸며 낸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그의 말도 거짓된 것이다. 사람은 그를 성결하다고 생각하는데, 그의 성결함 역시 가짜다. 진정으로 성결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전부 거짓된 것으로, 전부 꾸며 내고 포장한 것이다. 겉으로 볼 때 그는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듯하지만 사실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려고 연기한 것이다. 사람 뒤에서는 전부 건성으로 일을 하는데, 충성심이라고는 전혀 없다. 또한 겉으로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가정과 직장을 버렸지만 뒤에서는 무엇을 하겠느냐? 교회에서 개인의 사업과 경영을 하고, 하나님을 위해 사역한다는 기치하에 교회 밥만 먹고 제물을 훔쳐 먹는다…. 이런 자들이 바로 외식하는 현대판 바리새인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때 당시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경건하고 겸손했고, 사랑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수시로 사거리에 서서 기도하고 교회에서 성경 지식을 해석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의 한 행동을 보면 하나님 말씀을 전혀 행하지 않고 그저 겉으로 보이는 좋은 행위로 자신을 포장하고 꾸몄습니다.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써서 사람들을 속이고 거짓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사람들에게 숭배받고 존경받았습니다. 제 모습과 대조해 보니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같았습니다. 자매님에게 제가 진실한 회개가 있고, 말만 앞서고 행동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려고, 저의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언제나 스스로를 포장하고 꾸몄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면서 힘들어도 쉬지 못하고, 밤에 잠이 와도 자리에 눕지 못하고, 잠이 부족해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도 억지로 몸을 일으켰습니다. 분명히 양 자매님을 도와줄 마음이 없었음에도 자매님한테서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서 제 마음을 외면하고 도왔습니다. 사실 본분에 진정한 책임감을 느낀 것도 아니면서 겉으로는 적극적으로 팔을 걷어붙이는 척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의 제 속셈이 옳지 않고, 그것이 형제자매들을 속이는 일이기 때문에 마땅히 솔직히 털어놓아야 한다는 것을 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마음에 그런 비열한 속셈은 모두 마음에 묻어 두고 끝까지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아서 자매님들이 저를 우러러보게 만들었습니다. 이게 사람들을 속이고 미혹한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요? 저는 정말 너무도 간사했습니다. 제가 가는 길은 외식하는 바리새인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항상 자신을 꾸미고 포장하니 사는 것도 피곤하고 양심에도 가책을 많이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혐오하고 증오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예배 시간에 용기를 내어 자매님에게 그동안의 제 속셈과 외식하는 행위를 털어놓았습니다. 그랬더니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해지고 내적 상태도 좀 나아졌습니다. 그렇지만 속셈을 바로잡고 본분을 이행하는 일이 제게는 정말 실천하기 어렵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제가 이 문제를 해결해서 순수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이끌어 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하루는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하나님은 간사한 사람을 온전케 하지 않는다. 네 마음이 정직하지 않고, 네가 정직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너를 얻을 수 없으며, 너 또한 진리를 얻지 못하고 하나님도 얻지 못할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생명 성장의 여섯 가지 기준> 중에서) 이 말씀 때문에 마음이 찔리고 괴로웠습니다. 저는 이토록 간사했고 머릿속은 온통 꿍꿍이만 가득했습니다. 진리를 실행하여 본분을 잘 이행할 생각은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받고, 사람들 마음에 좋은 이미지를 심어 놓을까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심지어 언제 잠자리에 드는지도 속으로 한참을 고민하고 계산했습니다. 하나님은 순수하고 정직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정직한 사람만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고, 하나님께 구원받을 자격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을 할 때의 속셈과 출발점이 간사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자신을 거짓으로 잘 꾸며서 다른 사람에게 높은 평가와 칭찬을 받는다 해도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그 외식하는 바리새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증오와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기분이 울적했습니다. 지금껏 이렇게 오래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정직한 사람이 되는 진리 실제도 아직 진입하지 못하고, 간사한 성품도 전혀 벗어 버리지 못했으니까요. 저는 하나님 요구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어떤 일이든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털어놓고 솔직히 임하는 것, 이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유지해야 하는 유일한 양상이자 내적 상태이다. 네가 털어놓지 않는다고 해도 사실 하나님은 네 마음을 전부 볼 수 있다. 하나님은 네가 털어놓든 그렇지 않든 모두 알고 있다. 이것을 밝히 알지 못한다면 너무 어리석은 것 아니겠느냐? 그럼 어떻게 해야 총명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 바로 하나님께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감찰하고, 무엇이든 다 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스스로 잘난 체하면서 하나님이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살핀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정한다면 총명한 사람은 마땅히 솔직하고 순수해야 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현명한 행동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8조 그는 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이 아닌 오직 그에게 순종하도록 한다(2)> 중에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십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속셈을 가지고 행동하는지를 하나님께서는 하나하나 다 분명하게 보고 계십니다. 제가 아무리 자신을 꽁꽁 포장하고 누구에게도 자신의 패괴를 털어놓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저는 하나님 믿으면서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진실로 회개하는 사람인 양 자신을 거짓으로 꾸미고 포장해서 남들에게 높은 평가와 칭찬을 받으려고 스스로를 못살게 굴었으니 정말 너무도 어리석고 가엾은 존재였습니다! 사실 졸리고 피곤할 때 조금 쉬는 것은 잔꾀를 부리거나 육을 좇는 일이 아니라 정상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인체의 휴식 리듬도 어겨 가며 무슨 일을 하든 속으로 사람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을 궁리만 하면서 정말 피곤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슬기로운 사람이라면 마음을 열고 진실하게 대하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여 순수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그래야 자유롭고 홀가분하게 살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점을 깨닫고 다시는 자신을 거짓으로 꾸미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후로는 본분 이행하다 지치면 좀 쉬고, 저녁에 일 끝나고 졸리면 자고, 예배 시간에도 마음을 열고 제 실제 내적 상태를 교제했습니다. 본분 이행할 때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책임을 다했고, 고생해야 할 때는 이건 내 본분이고 누구에게 보여 주려고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끔 자신을 거짓으로 꾸미려는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하나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은 일을 할 때 하나님의 감찰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감찰을 받으면, 네 마음은 올바른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패괴 성품을 벗어 버려야 자유와 해방을 얻을 수 있다> 중에서) 그러면 마음이 순수해지고 하나님 감찰을 받아들일 마음이 생겼습니다.
얼마 후, 저는 양판 자매님에게 업무적인 기술을 가르쳐 줬습니다. 처음에는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몇 번을 해도 자꾸 실수하는 자매님을 보면서 혈기가 올라왔습니다. 자매님이 조금은 못마땅하고 우습게 보였지만 저더러 사랑도 없는 사람이라고 할까 봐 혈기를 꾹꾹 눌러 가며 가르쳤습니다. 스스로가 혈기를 드러냈다는 걸 알았는데도 예배 시간에 저는 속마음을 거의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얘기했다가 자매님이 저를 사랑도 인내심도 없다고 생각하기라도 한다면 좋았던 제 이미지가 망가질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있습니다. 평소에 자매님이 패괴를 드러내거나 소극적이고 나약한 상태로 지내는 것을 볼 때마다 속으로 못마땅하고, 상대하기도 싫었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관심하고 이해하는 척했습니다. 이런 패괴 표출을 저는 한 번도 털어놓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매님이 저에게 사랑도 없고 남들하고 잘 지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할까 봐서였습니다.
11월 어느 날, 리더의 안배로 다른 곳에 가서 본분을 이행하게 됐습니다. 자매님이 다들 서운해했습니다. 리즈(李志) 자매님은 제가 진리를 교제해 준 덕분에 크게 도움이 됐다면서 제가 사람을 공평하고 공정하게 대하고 남을 무시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또 진리를 깨닫고 추구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 환영받는다고 했습니다. 리즈 자매님이 저를 그렇게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을 보고 좀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칭찬하고 숭배하는 것은 사람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양판 자매님은 비록 대놓고 저를 칭찬하지는 않았지만 리즈 자매님의 평가에 동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다들 나한테 미혹된 거 아냐?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건가?’ 그렇지만 달리 생각하면 비록 제가 패괴 성품은 있지만, 스스로 열심히 반성하기도 했고, 평소에 문제가 생겨도 진리를 구해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마 제가 자매님들보다는 분명 더 나을 것이고 그래서 자매님들도 이렇게 저를 평가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무거운 마음도 사라지고 그 일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됐습니다.
그 후에 저는 <한 바리새인의 참회>라는 간증 영상을 봤습니다. 주인공 자매님은 예배 때 항상 긍정적인 체험만 교제해서 형제자매들로부터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교체된 후 다시 책임자를 선출할 때 형제자매들은 또 그 자매님을 선출했고, 그것도 만장일치로 통과됐습니다. 형제자매들은 그 자매님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자매님을 우러러보고 숭배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매님을 하나님으로 생각하고 대할 기세였습니다. 여기까지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그건 성질이 너무 심각했습니다! 그동안 자매님들이 저를 아주 높이 평가하고 매우 칭찬했던 일이 떠오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바로 그 자매님처럼 항상 긍정적인 진입만을 이야기했던 것은 아닌가? 반성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후에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사람들 앞에서 특히나 위장을 잘한다. 바리새인과 마찬가지로 겉보기에 무척 너그럽고, 인내심 있고, 겸손하고, 온화해서 누구에게든 그렇게 관대하고 너그럽게 보일 수가 없다. 문제를 처리할 때 그는 늘 높은 지위에 서서 사람들에게 지극히 관용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언제나 도량이 있고, 넓은 아량을 베풀고, 시시콜콜 따지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 사람들 눈에 그는 무척이나 위대하고 인자하게 비춰진다. 사실 적그리스도가 이런 본질을 갖추었느냐? 그는 선의로 남을 대하고 사람들을 포용하고 언제나 남을 도울 수 있는데, 이런 행위의 이면에 숨은 목적은 무엇이냐? 사람 마음을 농락하고 매수할 목적이 아니라면 그가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적그리스도의 감춰진 민낯이 정말 그렇겠느냐? 정말 그가 사람들 앞에서 보여 주는 겸손하고, 인내심 있고, 너그럽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을 돕는 그런 모습이겠느냐? 그에게 이런 본질, 이런 성품이 있느냐? 그에게 이런 인품이 있느냐? 전혀 없다.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은 꾸며 낸 것이다. 사람을 미혹하고 사람 마음을 매수해서 더 많은 이들이 속으로 자신에게 호감을 품고,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자신을 떠올리며 자신의 도움을 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목적에 이르기 위해서 적그리스도는 온갖 궁리를 하며 사람들 앞에서 과시하며 옳은 말, 옳은 행동을 한다. 말을 꺼내기 전에 속으로 몇 번을 걸러 내고 가공하는지 모른다. 어휘나 표현, 어조와 목소리, 심지어 시선과 말투를 위해 온갖 궁리를 하고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한다. 말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자기보다 지위가 높은지, 자기를 높이 평가하는지, 자기와 개인적으로 원한이 있는지, 자기와 성격이 맞는지, 상대가 어떤 본분을 이행하는지, 교회에서나 형제자매들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지위는 어떤지 등을 자세히 관찰하고 열심히 생각한다. 그러고 나면 다양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생겨난다. 적그리스도가 다양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어떤지를 떠나 어쨌든 그가 도달하려는 목적은 사람들이 자신을 높이 평가하고, 자신을 같은 눈높이에서 보는 게 아니라 우러러보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말할 때 더 많은 이가 그를 부러워하며 우러러보고, 그가 일할 때 더 많은 이가 그를 옹호하고 추종하고, 그가 잘못했을 때 더 많은 이가 그의 책임을 벗겨 주며 그를 위해 변호하고, 그가 드러나 버림받을 때 더 많은 사람이 그의 편을 들고 그를 위해 억울함을 토로하고 그를 위해 일어나 하나님에게 따지고 대항하게 하는 것이다. 그가 무너질 때 이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성원, 보호를 얻을 수 있다는 건, 적그리스도가 온갖 궁리를 해서 교회에서 경영하는 지위와 권력을 이미 사람들 마음속에 깊이 심어 놓았다는 뜻이다. 그의 ‘고심’은 헛되지 않았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10)> 중에서) 하나님께서 적그리스도를 폭로하신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존경과 숭배를 받기 위해 특히나 겸손하고 인내심 많고, 사랑이 있는 척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환심을 삽니다. 제 모습이 적그리스도와 똑같았습니다. 양판 자매님에게 업무를 가르칠 때 속으로는 자매님이 못마땅했는데도 남한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겉으로 인내심이 많은 척했습니다. 평소에 자매님들이 패괴를 드러내면 속으로 못마땅해서 상대하기도 싫어하면서 겉으로는 관심하고 이해하는 척했습니다. 또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은 적도 없습니다. 말했다가 제 좋은 이미지가 전부 사라질까 봐 자매님들을 기만하고 속였고, 그 결과 자매님들은 저를 높이 평가하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너무나 간사했습니다!
왜 저는 항상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거짓으로 꾸며 대는지, 이것은 어떤 성품인지 고민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간사함은 통상적으로 겉에서부터 드러난다. 어떤 사람이 빙빙 돌리거나 매우 번지르르하게 말해 아무도 그의 마음을 간파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간사함이다. 그런데 사악함의 주된 특징은 무엇이겠느냐? 더없이 듣기 좋게 말해 겉으로는 모두 옳은 것 같고 어떤 흠도 잡아낼 수 없으며, 모든 면에서 다 괜찮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일을 할 때도 그가 어떤 수단을 취하는지 보이지 않는다. 겉으로는 허점과 빈틈이 전혀 없이 목적을 달성한다. 그는 매우 은밀하게 일을 한다.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렇게 사람을 미혹해 이 부류의 일과 사람을 분별하기가 가장 어렵다. 어떤 사람들은 늘 옳은 말을 하는데, 듣기 좋은 말, 사람의 인정에 맞는 이치와 주장, 또는 행동으로 남의 이목을 가리고, 겉과 속이 다른 행동으로 차마 밝힐 수 없는 목적을 이룬다. 이것이 바로 사악함이다. 사람들은 보통 그런 모습을 간사함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사악함에 대해 아는 것이 적어 분석도 적은 편이다. 사실 사악함은 간사함보다 더 분별하기 어렵다. 사악함이 더 은밀하고, 수단이나 행동 방식도 좀 더 빼어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내면에 간사한 성품이 있다면, 보통 이삼일만 접하면 다른 이들이 그가 간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는 그가 일을 하거나 말을 할 때 표출하는 것이 간사한 성품임을 알아챌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사악하다면 며칠 만에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시간 내 큰일이나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저 그의 말만 듣고서는 분별하기가 몹시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죄다 옳은 말과 일만 하며, 도리도 청산유수처럼 말한다. 그래서 며칠 접하고 나면 너는 그 사람이 훌륭하다고, 버리고 헌신할 줄 알며 영적인 이해력도 있다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며, 이성과 양심을 갖고 일을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일을 몇 번 처리하고 나면 그의 말과 일 처리에 불순물이 몹시 많으며, 꿍꿍이와 속내도 너무 많음을 알게 될 것이고, 그가 정직한 사람이 아니라 간사한 사람이고, 사악한 인간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는 늘 옳은 말, 진리에 부합하고 인정이 넘치는 듣기 좋은 말로 사람들과 왕래하여 자신의 입지를 굳히는 한편, 남들도 미혹하여 사람들 가운데서 명성과 지위를 얻고자 한다. 이런 사람은 미혹하는 능력이 대단해 일단 권력과 지위가 생기면 많은 이들을 미혹하고 해칠 것이다. 사악한 성품을 지닌 사람은 너무나 위험하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5조 사람을 미혹하고 회유하고 위협하고 통제한다> 중에서)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자신을 거짓으로 꾸미는 것은 사악한 성품의 지배를 받은 데서 비롯되고, 사악함은 교만보다 더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악한 성품이 있는 자는 남들에게는 말 못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남들 보기에 좋은 행동, 겉으로 진리에 맞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으로 사람을 미혹하고 농락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미혹됩니다. 제가 바로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다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사랑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고,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서 옹호받고 높이 평가받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제가 바로 그런 사람인 척했던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저는 고통을 겪고 대가를 치르고,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듯 보였고, 겉보기에 진리에 맞게 행동했습니다. 하지만 제 속셈은 진리를 실행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좋은 평가가 목적이었고, 이로써 사람들 마음을 농락하려 했던 것입니다. 정말 너무 사악하고 비열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폭로가 아니었다면 저는 아직도 자신을 포장하고 거짓으로 꾸미는 것을 그저 조금 간사한 정도로만 여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악한 성품의 지배를 받은 것이고, 그렇게 사람을 미혹하고, 사람 마음을 농락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을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사람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근데 저는 사탄에게 깊이 패괴됐음에도 늘 형제자매들 가운데서 높은 지위를 얻으려고 하고 높이 평가와 숭배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제가 천사장과 다를 게 뭐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은 사람이 거스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저는 언젠가는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께 증오받고 저주받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두려워졌습니다.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그 결과가 정말 심각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육을 저버리고 순수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의식적으로 자신을 저버리고 형제자매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제가 본분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아 제작한 영상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여러 번 재작업을 하느라 사역 진도가 늦어졌습니다. 자매님은 제가 본분을 무책임하게 해서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수긍하지 않고, 반감을 품고 따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배 시간에 리더가 제 내적 상태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내 생각을 말했다가는 형제자매들이 나보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따지기만 한다고 하지 않을까? 그럼 내 좋은 이미지가 다 없어지는 거잖아? 그냥 아무 말 하지 말자.’ 그때 제가 또 스스로를 거짓으로 꾸미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매번 어떤 일을 한 다음, 네 생각에 그 일이 옳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진리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니 꺼내어 해부해야 한다.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대조하고, 확인하고, 분별해야 옳고 그름이 정확해진다. 네가 잘못이라고 여기는 일은 더더욱 꺼내어 해부해야 한다. 이것은 형제자매들과 함께 많이 교제하고 구하며 서로 도와야 한다. 교제할수록 마음이 밝아지고, 진리 원칙을 깨달을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이다. 만약 아무도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고 꽁꽁 감추면서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 하고, 남들에게 멸시당하지 않고 우러름을 받으려 한다면 진정한 성장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네가 언제나 스스로를 감추고 전혀 솔직하게 교제하지 않는다면 너는 성령의 깨우침을 얻을 수 없고,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 그러면 결과가 어떻겠느냐? 너는 영원히 흑암 속에서 살면서 구원받지 못한다. 진리를 얻고 싶고 성품 변화를 이루고 싶다면, 진리를 얻고 실행하기 위해 대가를 치러야 하고, 솔직하게 마음을 열고 사람들과 교제해야 한다. 이것은 자신의 생명 진입과 성품 변화에 모두 유익이 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실행>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제게 실행 길을 주었습니다. 마땅히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여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든 진리를 실행해서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제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이 점을 깨닫고 용기를 내어 형제자매들에게 제 내적 상태를 털어놓고, 제 패괴를 폭로했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정말 홀가분했습니다. 형제자매들과 교제하면서 저 역시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드러난 일들을 통해 제 성품이 정말 간사하고 사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높이 평가받고 숭배받기 위해 늘 자신을 거짓으로 꾸미고 포장했지요.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폭로가 아니었다면 저는 저 자신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이 방면에서 달라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일을 할 때는 마음가짐과 출발점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또 바른 마음가짐으로 본분을 이행하며 순수하게 마음을 열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인정받고,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