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진리를 행함에 있어 정에 휘둘리면 안 된다
2017년 7월, 하루는 리더가 교회에서 불신파 부류 사람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제 남동생의 모습이 어떤지 적어 보내라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그 편지를 보고 저는 다소 놀라고 긴장되었습니다. ‘동생을 제명하려는 건가? 안 그럼 왜 이런 때 동생에 대해 적어 보내라 하는 거지?’ 동생은 평소 시간이 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보거나 예배에 참석하는 대신 늘 친구와 놀러 다니며 세상의 조류를 쫓았지 신앙생활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하나님만 믿지 말고 자기처럼 세상을 추구하라고 권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하나님 말씀을 교제해 주면 듣지 않고 짜증을 부렸습니다. “됐으니까 말하지 마. 늘 그런 말만 하는 게 다 무슨 소용이야. 난 안 들어!” 그러면서 뛰쳐나가 잠자리에 들어 버렸습니다. 형제자매들은 동생의 문제에 대해 여러 차례 교제하며 도와주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예배에 자주 참석하라고 권했습니다. 하지만 동생은 이런 말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예배 시간을 따로 빼놔야 하는 등 제약이 너무 많고, 애초에 하나님도 어머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믿은 거라고 투덜거렸습니다. 동생은 늘 이런 식이었습니다. 이런 면들을 보면 동생은 불신파가 맞았습니다. 교회에서 동생을 제명하려 한다면, 그건 원칙에 맞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와 동생은 사이가 쭉 좋았습니다. 동생은 어려서부터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항상 저를 위해 남겨 놓았고, 누가 돈을 주면 절반은 꼭 제게 주었습니다. 학창 시절, 한번은 제가 선생님께 벌을 받아 방과 후에도 학교에 남게 됐는데, 동생은 그게 가슴이 아팠는지 울음을 터뜨리더군요. 마을의 어떤 형제간이나 자매간도 우리만큼 우애가 돈독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들을 떠올리니 차마 동생의 나쁜 모습들을 적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우애를 깨뜨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동생에 대해 사실대로 적으면 교회에서 동생을 제명할 거고, 그럼 동생은 구원받을 희망이 사라지는 것 아닌가? 동생에게 그러는 건 너무 잔인하고 무정한 짓 아닐까? 내가 동생의 나쁜 행동들에 대해 썼다는 사실을 동생이 알게 되면 다시는 나를 상대 안 하려 들지 않을까? 좋은 점들을 좀 적자. 평소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다고 쓰는 거야. 예배엔 참석하지 않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있다고 말이야. 그러면 동생에게 여지를 남겨 줄 수 있잖아. 나중에 리더가 동생의 안 좋은 모습들을 보면 그때 동생을 찾아가 교제해 주겠지. 그럼 제명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을지 몰라. 하지만 사실대로 적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이고 진실을 숨기는 거야. 형제자매를 오도하고 교회 사역의 정상적인 진행을 교란할 수도 있어. 교회 사역과 동생 사이에서 대체 어떡하면 좋을까?’ 심적으로 괴로운 탓에 본분을 이행할 때도 마음을 평온히 할 수 없었습니다. 동생에 대해 써야 하는 그 일만 생각하면 머릿속이 하얘져서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습니다. 생각할수록 심란해 저는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동생에 대해 공정하게 쓰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에 사로잡혀 이를 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정에 얽매이지 않고 이 일을 대할 수 있도록, 당신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기도 후, 이런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혀 믿지 않는 자녀나 친족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는 사람은 다 사심이 너무 많고 선심을 쓰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녀나 친족이 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하나님의 뜻이 어떠하든 상관 않고 오직 사랑만을 강조한다. 아내나 부모를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오는 사람도 있는데, 성령의 동의나 역사 여부 등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한결같이 하나님을 위해 ‘인재를 영입한다’. 네가 믿지 않는 자들에게 호의를 베푼다 한들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성령이 함께하지 않는 그 불신파들이 마지못해 따를지라도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구원받는 사람은 그렇게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성령의 역사와 시련, 성육신 하나님의 온전케 함을 거치지 않고 만들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름만 걸어 놓고 하나님을 따르기 시작한 순간부터 성령은 함께하지 않았다. 그들의 조건과 실제 내적 상태를 고려했을 때, 그들은 만들어질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성령 역시 그들에게 지나치게 공을 들일 마음이 없으므로 어떤 깨우침이나 인도 없이 그저 그들 마음대로 따르도록 내버려두었다가 마지막에 결말을 드러낼 뿐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본 후, 저는 동생에 대해 좋게 써서 그 애를 교회에 남겨 구원받을 기회를 주고 싶다는 건 순전히 저 혼자만의 바람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알려 주고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교회에 이름만 올려놓은 자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이런 사람만이 성령의 함께하심과 역사를 얻을 수 있고, 진리를 깨닫고 얻으며, 결국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생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신파의 본질은 진리를 싫어하는 것이었습니다. 불신파는 결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몇 년을 믿어도 사물을 보는 그의 관점, 인생관, 가치관은 이방인의 그것과 같지 조금도 변하질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를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성령의 깨우침과 인도를 전혀 얻을 수 없습니다. 끝까지 따른다 해도 생명 성품이 변화할 수 없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제 동생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동생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싫어했습니다. 평소 이방인들과 똑같이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을 중시했고, 하나님 말씀도 보지 않고 예배도 드리지 않으며, 나아가 본분도 이행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삶은 재미없다고, 믿어도 믿지 않는 거나 다를 게 없다고 늘 말해 왔습니다. 누가 교제해 줘도 듣지 않았고, 교제 내용이 많아지면 반발하며 거부했습니다. 이런 일관된 모습을 보면, 동생은 불신파였습니다. 하나님께선 동생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으시고, 동생 역시 성령의 역사를 얻어 진리를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동생에 대해 좋게 써서 교회에 남긴다 해도 동생은 구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동생이 불신파란 사실을 확신했습니다. 제가 정에 휘둘려 동생을 감싸 주고 계속 교회에 남겨 두려 한다면, 이는 분명 진리에 어긋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사실대로, 공정하게 동생에 대해 적지 않아 형제자매를 오도하고 이 때문에 정리돼야 할 사람이 정리되지 않는다면, 이건 교회 사역을 방해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행하는 심각한 결과를 깨달은 저는 정을 내려놓고 원칙에 따라 행해야 했습니다. 동생의 상황을 사실대로 교회에 보고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생의 모습에 대해 다 적어 리더에게 주자 마음이 한결 자유로워졌습니다. 결국, 교회에서 원칙에 따라 동생을 제명했지만 저는 담담히 그 결과를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인도 덕분에 정에 휘둘려 동생을 감싸는 대신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동생을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2021년 7월, 교회 리더는 또 제게 어머니에 대한 평가를 적으라고 했습니다. 최근 어머니가 원칙대로 복음을 전하지 않아 형제자매들이 붙잡힐 뻔한 일이 생각났습니다. 형제자매들이 그 문제를 지적했지만 어머니는 받아들이지 않고 시비를 가리겠다며 쉴 새 없이 소란을 피워댔습니다. 그 바람에 다들 더는 어머니의 문제를 지적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됐습니다. 사실, 어머니가 이런 식으로 억지를 부리는 게 한두 번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한번은 예배 중 리더가 어머니가 아닌 다른 자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라고 했더니 어머니는 리더가 자기를 억압한다며, 거짓 리더란 말을 퍼뜨렸습니다. 어머니가 예배 시간에 소란을 피우는 걸 본 한 자매가 주변도 좀 신경 쓰며 목소리를 줄이라고 했더니 자매가 트집을 잡아댄다며 다음부턴 나오지 말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늘 사소한 일을 가지고 사람들과 실랑이를 벌였고, 예배 중에도 억지를 부리며 소란을 피워 교회 생활을 방해하고 교란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어머니가 자신을 알고 얼른 회개하길 바라면서 여러 번 교제하며 도와주었고, 책망하고 훈계하기도 했지만 어머니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자기가 말 한마디 잘못한 거로 사람들이 물고 늘어진다며 사실을 왜곡하면서 조금도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이런 모습들을 보면 원칙에 따라 격리하여 반성하게 해야 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의 정상적인 예배에 영향을 주는 교란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말이죠. 저 역시 어머니의 이런 모습들을 얼른 교회에 보고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체면이 심하고 성격도 다혈질인 편이었습니다. 누가 자기 문제점을 지적하면 바로 반발하며 상대를 무시해 버렸습니다. 제가 어머니의 문제에 대해 보고했다는 걸 어머니가 알게 되면,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염려되었습니다. 저까지 어머니를 그렇게 평가했다는 걸 알면, 창피하게 생각해 소극적이 되거나, 아예 그만 믿으려 들지 않으면 어쩌나 싶었고요. 생각할수록 마음이 더욱 괴로웠습니다. 머릿속엔 어느새 어머니가 저를 돌봐 주고 아껴 주던 장면들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 한밤중 고열이 심하게 난 적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린 저를 업은 채 종종걸음으로 옆 마을 의사를 찾아갔지만, 당시 워낙 열이 심했던지라 의사는 저를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그 야심한 시간에 다시 저를 업고 읍내에 있는 병원으로 뛰어갔습니다. 평소에도 어머니는 제 생활을 여러 면을 챙겨 주며 저를 살뜰히 보살펴 주고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낳아 주고 키워 주셨고, 제가 하나님 앞에 올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또 제가 본분 이행하는 것을 지지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저를 아끼는 어머니인데, 제가 어머니를 폭로하는 건 너무 양심 없는 짓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어머니에게 큰 상처를 줄 것 같았습니다. 또한, 교회 생활을 교란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폭로한 게 저라는 걸 누군가 알게 되면, 자기 친어머니에게 그렇게 냉정하고 모질게 굴었다며 비난을 받을 것 같았습니다. 부모도 모르는 불효자 소리를 들을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어머니가 제게 잘해 주셨던 일들이 자꾸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제 친어머니라는 게 너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리더의 계속되는 독촉에도 여전히 질질 끌면서 어머니에 대한 평가서를 쓰기 싫었습니다. 우리 가족들이 모두 하나님을 믿으며 함께 찬양을 부르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마음을 나누었던 행복했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이런 장면들이 걸핏하면 머릿속에 떠오르곤 했습니다. 지금 동생은 이미 제명되었고, 어머니도 격리하여 반성해야 할 상황이니 너무 괴롭고, 어떻게 이 상황을 직면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도 기분이 나지 않았습니다. 형제자매들에게 어려움이 있어도 저는 책임감을 가지고 진리를 구하며 해결해 주지 않았습니다. 정신이 딴 데 가 있어 예배도 대충 형식적으로만 드릴 뿐 아무것도 교제하지 못했습니다. 매일 그렇게 흐리멍덩한 상태로 사는 게 너무 괴로웠습니다. 제 내적 상태가 옳지 않다는 걸 안 저는 하나님 앞으로 나와 기도했습니다. 소극적인 내적 상태에서 벗어나고, 정에 휘둘리지 않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보았습니다. 『정과 관련된 문제에는 무엇이 있느냐? 먼저 자기 가족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그들이 한 일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있다. ‘그들이 한 일’, 물론 여기에는 가족들이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한 일, 뒤에서 남을 판단한 일, 그 외 불신파의 행동 등이 포함된다. 너는 이런 일을 공정하게 대할 수 있느냐? 평가서를 써야 한다면, 너는 정을 배제하고 그들을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느냐? 이는 자기 가족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관한 부분이다. 그 밖에, 너는 너와 비교적 잘 맞는 사람 혹은 너를 도와주었던 사람에게 정을 갖고 있느냐? 그의 행위, 사람됨을 객관적으로 공정하고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느냐? 만약 네가, 그가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행위를 발견했다면, 즉시 이를 보고하거나 폭로할 수 있느냐?』(<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2)> 중에서), 『예를 들어, 하나님을 믿는 네 친척이나 부모가 악을 행하고 교란했거나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아 현재 제명되었다고 치자. 그런데 너는 그들에 대한 분별력이 없고 그들이 왜 제명되었는지 몰라서 마음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하나님 집에 사랑이 없고 사람을 불공평하게 대한다며 자꾸 원망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에게 기도하며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그들이 도대체 어떤 부류인지 판단해야 마땅하다. 만약 네가 정말로 진리를 깨달았다면 그들의 자리를 정확하게 정할 수 있을 것이고, 하나님이 행하는 것은 전부 옳으며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는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할 수 있을 것이며, 친척이나 부모 대신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는 너희의 혈연관계를 찢어 놓으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들이 어떤 부류에 속하는지 그 성질을 규정하여 네가 그들을 분별할 수 있게 하고, 그들이 무엇 때문에 도태되었는지 알게 하려는 것이다. 만약 네가 마음으로 정말 똑똑히 알게 되었다면, 네 관점이 올바르고 진리에 맞는다면 너는 하나님과 같은 편에 설 수 있고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하나님 말씀에 완전히 합하게 된다. 만약 네가 진리를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사람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계속 육적인 관계에 입각해 그 각도에서 사람을 바라본다면 너는 영원히 육적인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그들을 네 가족처럼 대하고, 심지어는 형제자매보다 더 가까이할 수도 있다. 그러면 가족을 바라보는 네 관점이 하나님 말씀과 모순되고, 더 나아가 충돌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네가 하나님과 같은 편에 설 수 없을뿐더러 하나님에 대한 관념과 오해까지 생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면 우선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하나님 말씀에 부합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 사람과 일을 바라보고, 하나님 말씀이 진리임을 받아들이고, 사람의 전통 관념을 포기하고, 어떤 사람이나 일을 대하든 네 견해와 관점이 항상 하나님과 같아야 하며, 진리에 부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면 네 관점과 네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하나님과 맞서지 않게 된다. 또한, 하나님에게 순종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은 다시는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얻으려는 사람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바울의 본성 본질을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육체의 정이라는 관점에서 사람과 사물을 보면 안 되고, 응당 하나님 말씀에 담긴 진리에 근거해 분별하고, 상대가 어떤 본성 본질을 지녔는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정확히 봐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을 정확히 볼 수 있고 정에 쉽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는 늘 육체의 정이라는 관점에서 판단해 왔습니다. 제 어머니라며, 어머니가 저를 돌봐 주고 아껴 주었던 것만 떠올리며 어머니에 대한 평가를 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볼 때 그의 본성 본질이란 측면에서 분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정으로 사람의 본성 본질을 분별할 수 있어야 정에 휘둘리지 않고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사람을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 어머니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평소 굉장히 친절하고 다른 사람의 삶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이는 어머니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점만 설명해 줄 수 있을 뿐입니다. 어머니가 저를 살뜰히 보살펴 줬던 사실은 모친으로서 책임을 다한 것이란 점만 설명해 줄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본성은 무척 교만하여 조금도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누가 자신의 문제를 지적하거나 자신을 책망하고 훈계하면, 바로 상대에게 편견과 반발심을 품고 언짢은 티를 냈습니다. 심각할 경우엔 남과 맞서 실랑이를 벌이며 상대가 눈치를 보게 만들었습니다. 어머니의 이런 일관된 모습들을 보면, 계속 다른 형제자매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게 했다간 교회 생활을 교란하고 방해해 형제자매들의 생명 진입을 지체시킬 게 분명했습니다. 원칙대로라면 즉시 어머니를 격리하여 반성하게 함으로써 보내 형제자매들이 정상적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야 했습니다. 또한, 이런 처분을 내림으로써 어머니께 일종의 경고를 해야 했습니다. 만약 어머니가 이 기회에 자신을 잘 반성하고 인식하면 어머니의 생명에도 유익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순종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아가 더는 믿으려 하지 않는다면, 이는 어머니가 드러나고 도태된 거였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 역시 어머니의 본성 본질을 더 명확히 볼 수 있었습니다. 가라지인지 밀인지 한눈에 들어올 테니 만류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이 일을 통해 분별력을 키우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사람의 본성 본질을 분별하는 법을 배워, 육체의 정에 휘둘려 일하지 않고 원칙에 따라 사람을 대할 수 있길 바라셨던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사탄은 누구이고 마귀는 누구이며 하나님의 원수는 또 누구더냐? 바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대적하는 그 무리들 아니더냐?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 아니냐? 입으로는 믿는다고 말하나 진리가 없는 자들 아니더냐? 복만 받으려 하며 오히려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하는 자들 아니더냐? 네가 오늘날에도 이 마귀들과 손잡고 그들을 양심과 사랑으로 대한다면, 그것은 사탄에게 선의를 베푸는 것 아니겠느냐? 마귀와 한통속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오늘날에 이르렀는데도 선악을 구분하지 못하고 한결같이 사랑과 긍휼만 강조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찾으려는 생각은 전혀 없이 하나님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여기지 못한다면, 이런 부류가 맞이하는 결말은 더욱 비참할 것이다.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모두 하나님의 원수이다. 네가 원수에게도 양심과 사랑을 베푼다면 정의감이 없는 것 아니겠느냐? 내가 증오하고 반대하는 자와 네가 오히려 마음이 통해 그들을 사랑이나 사적인 감정으로 대한다면 패역 아니겠느냐? 고의로 대적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런 자에게 진리가 있겠느냐? 원수를 양심으로 대하고 또 마귀를 사랑으로 대하며 사탄에게도 긍휼을 베풀려고 한다면, 고의로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자 아니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제 내적 상태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하나님을 오래 믿었음에도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형제자매들이 지적하며 도와주고, 책망하고 훈계해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늘 시비를 가리려 들며 교회 생활을 교란하고 방해하며 사탄의 심부름꾼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머니를 폭로하는 대신 줄곧 감싸려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를 폭로하지 않고 평가를 쓰지 않은 건 양심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는 사탄을 향해 사랑을 논하고 양심을 논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교회 사역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고, 형제자매의 생명 진입이 손해를 보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탄의 편에 서서 사탄을 위해 말했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폭로하신 ‘고의로 대적하는 것’ 아닙니까? 제 사랑에는 원칙이 없었고 옳고 그름이 없었습니다. 어리석은 사랑이었죠. 전적으로 어머니를 두둔하며 어머니가 계속 교회 생활을 교란하도록 눈감아 주었습니다. 저 역시 어머니의 악행에 동참했던 겁니다. 이는 남과 저 자신 모두를 해치는 일 아니겠습니까? 저는 정말 정에 눈이 멀고 손발이 묶여 있었습니다. 리더가 여러 번 재촉했는데도 저는 펜을 들어 어머니를 폭로하는 글을 쓰지 못했고, 이 일은 계속 지연돼 교회 사역을 지체시켰습니다. 저는 자책감이 느껴졌고, 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난 왜 이런 상황이 생길 때마다 늘 나도 모르게 정에 휘둘리는 걸까? 이건 대체 어떤 문제인 걸까?’ 저는 하나님 앞으로 와서 기도하며 제가 자신의 문제를 알 수 있도록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 달라고 구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자신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에서 어떤 원칙으로 사람을 대하라고 요구하느냐?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이다. 하나님은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이 또한 사람이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거나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혐오하는 사람으로, 우리도 마땅히 혐오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다. … 가령 하나님을 부인하고 대적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 사람이 너의 부모나 가족이라면, 그가 겉으로는 악인 같아 보이지 않고 네게도 잘해 준다면, 너는 그를 미워할 수 없으며, 심지어 가까이 왕래하며 변함없는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들을 증오한다는 말을 들을 때면 너는 마음이 괴롭다. 하나님 편에 서지 못하고 모질게 그들을 버리지 못하며 정에 얽매여 여전히 그들과의 인연에 연연하는데, 이는 무엇 때문이겠느냐? 네 정이 너무 깊어 그것이 네가 진리를 실행하는 걸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를 잘 대해 주므로 네가 증오할 수 없는 것이다. 네게 해를 끼쳤을 때 그제야 증오하기 시작한다면, 너의 그 증오가 진리 원칙에 맞겠느냐? 이 밖에도, 너의 내면은 전통 관념에 얽매여 있다. 너는 너의 부모나 가족인 그들을 증오하면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여론의 질타를 받을 것이고, 인간이 아닌, 양심 없는 불효자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며, 벌을 받고 벼락을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령 그들을 미워하려고 해도 양심에 찔리는 것이다. 그런 양심적 반응이 어디서 비롯된 것이냐? 어려서부터 가정의 유전과 부모의 교육, 전통문화의 영향이 너에게 일종의 사상을 심어 놓았고, 이 사상이 네 마음에 깊이 뿌리내린 탓에 너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옛 조상의 유전이 영원히 좋은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네 마음속에 먼저 들어가 주인이 된 그것은 네가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크게 교란하고 방해한다. 또한, 네가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지 못하게 한다. 사실, 너는 속으로는 너의 생명이 부모가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알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대적하기까지 하는 네 부모를 하나님이 증오하므로 네가 마땅히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만, 너는 증오하려 해도 그럴 수 없다. 마음이 거기서 돌아서지 못하고 마음을 모질게 먹지도 못하고 진리를 실행하지도 못한다. 근본 원인은 무엇이겠느냐? 사탄은 그런 전통문화와 도덕관념으로 너의 사상, 생각, 마음과 영을 결박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 너는 이미 사탄의 그런 것들에 점유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려고 하면 너의 내면에 있는 그런 것들이 작용해 방해함으로써 진리와 하나님의 요구에 맞서게 한다. 너는 전통문화의 사슬에서 벗어나려 해도 역부족이다. 너는 발버둥 치다 얼마 못 가 타협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는 전통적 도덕관념이 올바르고 진리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거나 버릴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여겨 받아들이지 않고, 구원받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쨌든 아직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그 사람들에게 기대 생활해야 출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 여론의 질타를 견디지 못해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전통적 도덕관념과 사탄의 권세에 항복할지언정, 하나님께 죄를 지을지언정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사람은 가련하지 않으냐?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지 않으냐?』(<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자신의 잘못된 관점을 알아야 진정으로 돌이킬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라고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 12:48~50)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사람은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만이 형제자매로, 제가 사랑하고, 사랑으로 도와줘야 할 사람입니다. 하지만 진리를 싫어하고, 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은 불신파로, 형제자매가 아닙니다. 부모라도, 가족이라도 진리 원칙에 따라 분별하고 폭로해야 합니다. 이건 부모를 공경하지 말고 앞으론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성적이고 공정하게, 그들의 본성 본질에 따라 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팔은 안으로 굽는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등과 같은 사탄 독소의 영향을 받아 사람을 대할 때 원칙이 없었습니다. 늘 육체의 정이라는 관점에서 가족을 감싸주려 했습니다. 제 동생의 모습에 대해 쓸 때도 그랬습니다. 동생은 이미 불신파임이 드러나 교회에서 제명돼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정 때문에 동생의 실체를 다 적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을 감추고 형제자매를 기만하려 했습니다. 리더가 제 어머니에 대한 평가를 쓰라고 했을 때, 어머니가 이미 교회 생활을 교란하고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평가를 써서 리더가 어머니를 폭로하고 제재하는 데 협조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제 친어머니란 점이 걸렸습니다. 또 제게 무척 잘해 주신 걸 생각하면, 어머니의 좋지 않은 모습을 모두 적는 일로 양심에 걸려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저보고 냉정하고 모질다고 비난할 게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걱정하고 갈등하면서 평가를 적는 일을 차일피일 미뤘습니다. 이미 제 내면 깊이 뿌리내린 사탄의 독소들 때문에 저는 늘 육체의 정으로 살며 사람을 원칙 없이 대하고 교회 사역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사탄의 편에 서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였습니다. 사실, 제 동생과 어머니는 모두 불신파이니, 그들의 모습을 폭로하는 것은 정의로운 일이자 교회 사역을 지키는 일로, 하나님의 요구에 부합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라는 말씀대로였죠. 이것은 진리를 행하는 증거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진리를 행하고 사탄을 폭로하는 일을 부정적으로 보았습니다. 정도 없고 양심도 없는 대역무도한 짓으로 보았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었지요! 시비를 분별 못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짓 아닙니까? 심지어 저는 정에 속박돼 저 자신도 따라서 소극적이 되었고 본분을 이행할 마음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제때 저를 깨우치고 인도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저는 정 때문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을 겁니다. 정으로 살며 자칫 스스로를 끝장내고 말았을 거라니, 참으로 위험했습니다.
그 후 저는 또 반성해 보았습니다. 제가 어머니에 대해 쓰고 싶어 하지 않았던 데에는 또 다른 잘못된 관점이 있었습니다. 저를 키워 주신 은혜가 있다고 생각해, 어머니를 폭로하는 일에 계속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 것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의 이런 말씀을 보고 제 관점을 바로잡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였고, 그가 부여한 생명을 가진, 사람이란 생명체를 세상에 데려왔다. 그리하여 사람은 부모와 가족이 생기면서 외로움에서 벗어났다. 사람은 이 물질적인 세상을 본 후부터 하나님이 정한 운명에 따라 살아가게 되었다.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이 생명체 하나하나를 밑받침해 주어 ‘어른으로 성장시킨’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살아가고 ‘성장’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부모의 길러 준 은혜라고, 사람의 생명의 본능을 밑거름으로 하여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가 자신의 ‘생명’을 부여했는지,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르며, 생명의 본능이 어떻게 기적을 일구는지는 더더욱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저 음식이 생명 연장의 근본이고, 의지력이 사람의 생명을 존재하게 하는 근원이며, 머릿속의 신념이 사람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밑천이라고 알 뿐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공급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이 부여한 생명을 이렇게 헛되이 허비하고 있다…. 밤낮으로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으면서도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은 아무런 가망도 보이지 않는 사람을 위해 자신이 계획한 사역을 할 뿐이다. 그의 바람은 언젠가 사람이 꿈에서 깨어나 불현듯 생명의 가치와 의미를 깨닫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사람에게 모든 것을 베풀면서 치른 대가와 사람이 마음을 되돌리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을 깨닫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은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겉으로 볼 땐 저를 낳아 주고 키워 주신 건 어머니였고, 제 생활을 돌봐 주는 것도 어머니였습니다. 하지만 사실 사람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누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게 생명을 주시고 또 제게 가족과 가정을 안배해 주셨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 앞으로 올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 덕분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일이 닥치면 진리를 행해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리며 하나님 사랑에 보답해야 했습니다. 저는 육체의 가족 편에 서서 사탄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며 교회 사역을 방해해선 안 됐습니다. 이를 깨달은 저는 완전히 깨우쳤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으로 나와 회개해야 하지, 더는 정에 휘둘려 어머니를 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 저는 어머니가 교회 생활을 교란하고 방해한 일을 사실대로 폭로했습니다.
한 달 후, 저는 교회 리더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 어머니에 대해 분별하지 못하는 형제자매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형제자매들에게 어머니가 교회 생활을 교란하고 방해한 일에 대해 교제해 줘서 분별력을 키우고 진리 원칙에 따라 사람을 대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교제하러 가려고 하자 마음속에선 갈등이 일었습니다. ‘내 교제와 해부로 형제자매들이 모두 어머니에 대해 분별이 생기면, 어머니를 저버리진 않을까? 그럼 어머니가 힘들지 않을까?’ 그러자 입을 뗄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저는 제가 또 정에 빠져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예전에 봤던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려 봤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걸 사랑하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걸 미워해야 했습니다. 어머니가 교회 생활을 교란하고 방해한 건 하나님이 증오하시는 악행이었습니다. 정에 휘둘려 어머니를 감싸려 들지 말고, 책임감을 가지고 진리 원칙에 따라 어머니를 폭로하고 해부해 형제자매들이 분별력을 키우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니가 교회 생활을 교란하고 방해했던 일에 대해 교제하며 해부했고, 형제자매들도 어머니에 대해 분별력을 갖고 이 일에서 공과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다수의 형제자매가 어머니를 격리하여 반성하게 하는 데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행하고 나자, 제 마음은 편안하고 평온해졌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인도 덕분에 저는 진리를 깨닫고 원칙을 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자신의 가족을 대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정에 휘둘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짓을 저질렀을 겁니다. 이런 체험을 하면서 저는 교회에서 사람을 대하고 일을 처리할 때 반드시 진리 원칙에 근거하고 진리 원칙에 따라 행해야만 하나님 뜻에 부합하고 마음도 자유롭고 편안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