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헌신에 담긴 불순물
2020년 4월, 하루는 오른쪽 등이 갑자기 심하게 아팠습니다. 그땐 그냥 좀 삐끗했나 보다 하고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파스나 붙이면 괜찮겠거니 생각했죠. 그런데 파스를 붙였더니 오히려 통증이 더 심해졌습니다. 마치 바늘이 가슴에서 등까지 꿰뚫는 것처럼 아프고, 심할 때는 갈퀴로 제 살과 뼈를 긁어내는 느낌이었지요. 그 통증은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몇 날 며칠을 아파서 잠도 잘 수 없었어요.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당장 병원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즈음 복음을 전해 주려고 복음 대상자와 이미 약속을 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병원을 가려면 일을 미뤄야 하기 때문에 우선은 바쁜 일만 끝내 놓고 가기로 했습니다. 게다가 병도 하나님 손에 달려 있으니까 제가 본분만 잘 이행하면 아픈 것도 며칠 지나면 좋아질 수도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픈 것을 참아 가며 끝까지 복음을 전하러 갔습니다. 바쁜 일을 끝내고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의사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왜 이제야 왔습니까? 간단한 병이 아닙니다. 바이러스로 인한 대상포진인데, 심하면 죽을 수도 있어요.”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심각한 병인가? 제대로 치료를 안 하면 죽을 수도 있다니! 그동안 열심히 복음 전하며 본분을 이행했는데 어떻게 이런 큰 병에 걸릴 수 있지? 몇 년 동안 버리고 헌신하며 고생도 많이 했어. 공산당에 잡혀 고문을 당해도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고, 출소 후에도 계속 본분을 이행했는데 왜 이런 병에 걸린 거지?’ 생각할수록 괴로웠어요. 코가 시큰해지고 허전함이 밀려왔습니다.
그 당시 교회 사역이 한창 바쁠 때라 치료받으면서 본분을 계속 이행했습니다. 자전거를 탈 때 조금만 흔들려도 심장을 쥐어짜듯이 아팠어요. 어떤 때는 갑자기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져 앉아 있기도 힘들었죠. 본분을 마치고 돌아오면 드러눕기 바빴습니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말도 하기 싫었어요. 병이 임한 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기에 기도하며 구했습니다. 제가 하나님 뜻에 안 맞게 행동한 것이 없는지 반성도 했고요. ‘그래, 내 문제를 인식하고 본분을 잘 이행하면 병이 나을지도 몰라.’ 그런데 두 달이 지나도록 병이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픈 지도 꽤 됐는데, 못 고치면 어떡하지? 몇 년 동안 계속 본분을 이행했잖아. 아픈 몸을 이끌고 계속 복음을 전했는데 왜 낫질 않는 거지?’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괴로웠어요. ‘병이 계속 안 나으면 언젠간 본분도 이행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어. 그럼 선행을 예비하지 못하고 구원도 못 받는 거 아냐? 그러면 몇 년씩 대가를 치른 것도 결국 헛수고잖아? 신경 적게 쓰고 차라리 몸조리나 잘하자.’ 그 뒤로는 본분엔 별로 마음을 들이지 않았어요. 팀 예배에 참석하면 복음 대상이 있는지만 대충 확인하고 없으면 얼른 집에 돌아와 쉬었습니다. 몸이 지치면 병세가 악화될까 봐 무서웠거든요. 그때는 병마에 시달리느라 내적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봐도 빛 비춤이 없고, 예배 때 교제도 무미건조했습니다. 하나님과 너무 멀어진 것 같더라고요. 고통스러워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이런 병에 걸려 너무 괴롭고, 원망하는 마음도 들고, 본분을 이행할 때도 의욕이 없습니다. 당신의 뜻을 알 수 있도록 이끌어 주세요. 순종하고 반성하며 공과를 배우겠습니다.’
그러다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우선 하나님을 믿는 사람 중 어떤 목적과 야심, 저의도 없는 초심을 지닌 자가 있는지 보아라. 설사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본 사람이 몇몇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그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최종 목적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데 있다. 사람은 생명 체험 과정에서 늘 ‘나는 하나님을 위해 가정도 직장도 내려놓았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주셨지? 그동안 내가 받은 복이 있는지 한번 계산하고 따져 봐야겠다.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헌신하고 뛰어다니며 수많은 고난을 받았다. 하나님은 그동안 내가 한 것에 대해 어떤 약속을 해 주실까? 내 선행을 기억해 주실까? 내 결말은 어떤 것일까? 복은 받을 수 있을까?’ 등등의 생각을 하곤 한다. 사람은 늘 마음속으로 이렇게 계산하고, 저의와 야심을 품고, 하나님께 장삿속을 들이밀며 뭔가 얻어 내려고 한다. 다시 말해, 사람의 마음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며, 하나님을 상대로 계산하고, 자신의 결말을 두고 하나님과 ‘이치를 따지며 논쟁한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달라며 하나님께 구두 증거를 구걸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추구하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 장삿속을 들이밀며, 끊임없이 뭔가를 얻어 내려고만 한다. 심지어 갈수록 심해지고 탐욕스러워진다. 사람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는 동시에, 또 끊임없이 하나님과 논쟁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시련이 임하거나 특정 환경에 처했을 때 항상 나약해지고 일을 태만히 하며,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늘어놓는다. 하나님을 믿는 순간부터 사람은 하나님을 화수분이나 만물 상자로 삼고, 자신을 하나님의 가장 큰 채권자로 간주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복과 약속을 얻어 내는 것이 생득적 권리이자 책무라고 생각하고, 반면 사람을 보호하고 보살피며 사람에게 뭔가를 제공하는 것은 하나님이 다해야 할 책임이라 여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이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표현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이해이자, ‘하나님을 믿는다’는 개념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깊은 이해이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무척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갓 하나님을 믿었을 때부터 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고, 줄곧 화수분이나 만물상자로 생각했어요. 열심히 헌신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제가 편안히 살도록 지켜 주셔서 병이나 환난이 닥치지 않을 거라 믿었습니다. 앞으로 온갖 재난도 피할 수 있고 마지막에는 구원받아 좋은 종착지도 얻을 거라 여겼죠. 그동안 저는 직장과 가정을 버리고 본분을 이행하며 고생도 하고 대가도 치렀어요. 공산당에게 잡혀 고문을 당해도 전혀 물러서지 않았고요. 근데 병이 생긴 데다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고 따지며 그간 제가 겪은 고생을 계산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다면 지난 몇 년간 괜히 대가를 치른 거라고 생각해 본분을 소극적이고 태만하게 이행하기 시작했죠. 이제 보니 저는 진리를 얻고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하나님을 믿은 게 아니라 수고와 헌신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얻으려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만하고 이용한 거죠.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그토록 많은 말씀을 선포하셔서 우리를 양육하고 공급하셨어요. 근데 전 하나님 사랑에 보답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하나님과 거래를 하려 했죠. 하나님이 제 욕망을 채워 주시지 않았을 때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며 소홀히 대하기 시작했어요. 하나님께 진심이 조금도 없었죠. 전 정말 양심도 이성도 없었어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와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계속 당신을 이용하고 기만했으니 너무 비이성적이었습니다! 당신께 회개하오니 절 이끌고 인도해 주십시오.’
그 후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는 시련은 대부분 사람에게 더해 주는 부담이다. 하나님이 얼마나 큰 부담을 더해 주든 너는 마땅히 그것을 짊어져야 한다. 하나님은 네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네게 주는 부담은 네 분량이나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초과하지 않으므로 너는 분명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부담과 시련을 주든 이것 하나는 기억해라. 네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든 그러지 못했든,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얻었든 얻지 못했든, 그 시련이 너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든 경고든, 네가 알지 못해도 상관은 없다. 네가 본분 이행을 지체하지 않고 충성을 다해 자신의 본분을 지키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만족할 것이고, 너는 굳게 설 것이다. … 네가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추구하면서 “하나님이 내게 질병의 고통이나 내 뜻과 다른 어떤 일이 닥치게 허락하셔도, 하나님이 어떻게 하셔도 나는 순종해야 한다. 피조물로서의 위치에 제대로 서야 한다. 먼저 순종과 관련된 진리를 실행하여 실천에 옮기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실제를 살아 내야 한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부탁과 내가 이행해야 할 본분을 팽개쳐서는 안 된다. 마지막 숨이 붙어 있는 한 내 본분을 지켜야 한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증거가 아니겠느냐? 네게 이런 다짐과 내적 상태가 있는데도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때 너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은 내게 숨결을 주셨어. 또 지난 세월 동안 내게 공급하고 보호해 주셔서 많은 고통을 겪지 않게 하셨고, 수많은 은혜와 진리를 베푸셨지. 나는 역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진리와 비밀을 깨달았고, 하나님에게서 너무도 많은 것을 얻었어. 그러니 하나님께 보답해야 해! 예전에 나는 분량이 작고 개념이 없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들만 했지. 앞으로는 하나님께 보답할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내가 아직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힘을 다 바쳐야 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쳐야 해. 그래서 하나님께 그동안 내게 헛되이 공급하신 것이 아님을, 성과가 있음을 보여 드려야 해. 그리고 내게서 위안을 얻으시게 해야지. 더는 하나님을 마음 아프게 하거나 실망시켜 드려선 안 돼.’』(<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늘 하나님 말씀을 읽고 진리를 묵상해야 실행할 길이 생긴다> 중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 뜻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고통과 연단이든 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입니다. 이번에 병에 걸린 것도 하나님께서 제게 지워 주신 짐이기에 받아들여 순종하고, 굳게 서서 증거해야죠. 베드로가 떠올랐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을 흡족게 하고 그분께 순종하려 애쓰면서 병의 연단, 가난한 생활을 모두 받아들이고 그 어떤 원망도 하지 않았어요. 무엇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바꿀 수 없었죠. 저도 베드로를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피조물의 자리에 서서 이 상황에서도 착실히 공과를 배우자고 다짐했습니다. 그 후로는 주사를 맞고 약을 복용해 가며 본분을 이행해도 아픈 것에 그렇게 얽매이지 않게 됐어요. 몇 달 후, 병이 점차 나아지면서 통증도 없어졌어요. 저는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9월의 어느 날, 복음을 전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남편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전날 병원에서 정기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이튿날 다시 와서 MRI를 찍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순간 바짝 긴장했어요. ‘무슨 심각한 병은 아니겠지?’ 그날 밤 계속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별일 아니겠지. 남편도 하나님을 믿고, 나도 계속 밖에서 본분을 이행했으니까 하나님이 지켜 주시겠지.’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했어요. 다음 날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갔더니 뜻밖에도 췌장암이었습니다. 결과를 듣는 순간 머리가 하얘지더라고요. 췌장암은 고치기도 어렵고, 즉시 치료하지 않으면 진행이 빨라서 심하면 몇 달 만에 사망한다고 했습니다. 멀쩡하던 사람이 얼마 안 있으면 죽을 지도 모른다고 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내가 낫자마자 남편이 암에 걸리다니, 어쩜 이럴 수 있지?’ 그땐 남편만 생각하면 눈에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어요. 고통 속에서 제 마음을 지켜 달라고, 하나님 뜻을 깨닫게 이끌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봤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때 추구하는 것은 다 나중에 복을 얻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으로, 모든 사람이 이러한 속셈과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 있는 패괴된 것들은 반드시 시련과 연단으로 해결받아야 한다. 사람의 내면에 정결케 되지 않은 부분이 있고 패괴 표출이 있다면 반드시 그 부분에서 연단을 받아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안배이다. 하나님은 환경을 마련해 네가 그 환경 속에서 연단을 받으면서 자신의 패괴를 알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지막에는 죽음을 맞이한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의도와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을 놓고 말하면 몇 년간의 연단과 어느 정도의 고난을 겪지 않는다면 사람은 생각과 마음속에서 패괴된 육체의 통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사탄 본성에 통제되는 부분이 있고, 자신의 욕망과 요구가 있다면 그 부분에서 고난을 겪어야 한다. 오직 고난 속에서만이 공과를 배울 수 있다. 즉, 진리를 얻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수많은 진리는 다 고난과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깨닫게 된다. 편안하고 순탄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말씀을 보고 저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얼마 전 제게 병이 임했을 때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폭로 덕분에 복을 바라는 제 잘못된 관점을 인식하고, 병이 낫든 안 낫든 순종하자고 다짐했어요. 그래서 전 제가 복을 바라는 속셈을 내려놓은 줄 알았어요. 근데 남편이 암에 걸리니 저도 모르게 또 하나님을 원망하고 오해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 하나님은 당연히 우릴 보호해 주셔야 한다고 생각했죠. 복을 바라는 속셈이 마음에 깊이 뿌리내려 있더라고요.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드러내지 않으셨다면, 제 내면 깊은 곳에 도사린 복을 바라는 속셈과 사치스러운 욕망을 여간해서는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고, 정결케 되고 변화되기는 더욱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걸 인식하고 나니, 남편이 병에 걸린 일에서 배워야 할 공과가 있고, 더는 하나님을 원망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반성했습니다. ‘남편이 병에 걸리니까 왜 나도 모르게 하나님을 원망하고 오해했을까?’ 저는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적그리스도의 눈에는, 그의 사상 관점으로는, 하나님을 따르면 반드시 이익이 뒤따라야 한다. 그들은 이익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명예와 이익, 지위를 누리지 못한다면, 어떤 사역을 하든,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남들로부터 우러름을 받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첫 번째로 취해야 할 이익은 바로 하나님 말씀에서 언급된 약속과 축복을 반드시 얻는 것이다. 그 밖에도 교회 안에서도 명예와 이익, 지위를 누려야 한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믿으면 남보다 한층 높아야 하고, 남들이 우러러봐 줘야 하고, 남들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적어도 이런 걸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누리지 못할 경우, 그는 자신이 믿는 그 하나님이 과연 참하나님인지 의문을 품을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그런 논리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누려야 한다’는 말을 진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한번 분석해 보자. 이 말이 진리이냐? (아닙니다.) 이제는 이 말이 진리가 아니라 궤변이자 사탄의 논리이며 진리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나님이 “나를 믿는 사람은 반드시 축복을 받고 절대 화를 입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느냐? 하나님 말씀 중에 어디 이런 말씀이 있느냐? 하나님은 이런 말을 한 적도 없고, 그렇게 한 적도 없다. 복을 받고 화를 입는 일에 관해서는 구할 진리가 있다. 어떤 말씀이 사람이 지켜야 할 명언이겠느냐? 욥은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 2:10)라고 말한 적 있는데, 이 말은 진리이냐 아니냐? 이 말은 사람의 말이므로 진리의 높이까지는 오르지 못하지만, 여기에 진리에 부합하는 부분이 있다. 진리에 부합하는 부분은 어떤 것이냐? 사람이 복을 받든, 화를 입든 모두 하나님 손에 달렸고, 모두 하나님의 주재라는 점, 이것은 진리다. 적그리스도가 그 점을 믿겠느냐? 믿지 않는다. 그는 이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왜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느냐? (그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는 복만 받으려 합니다.) (너무 이기적이어서 육적인 이익만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복을 받으려 하고 화를 입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 복을 받고 좋은 것을 얻고 은혜를 받고, 더 많은 물질적 누림을 얻고, 큰 이득을 얻는 것을 보면 그는 그것이 하나님이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런 물질적인 축복을 얻지 못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말은 곧 이런 뜻이다. “당신이 정말 하나님이라면 사람을 축복하고 재앙을 없애야지 사람이 고통받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당신을 믿는 일이 값지고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을 따르고도 화를 입고 고통받는다면 사람이 당신을 믿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는 만사 만물이 모두 하나님 손안에 있고 하나님이 모든 걸 주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인정하지 않는 원인이 무엇이냐? 적그리스도는 화를 입는 것을 겁내고, 이익을 얻고, 덕을 보고, 축복을 누리기만을 바란다. 그는 하나님의 주재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면서 하나님 손에서 이익을 얻기만을 바란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이기적이고 비열한 관점을 갖고 있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0조(6)> 중에서), 『패괴된 인류는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 산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말은 사람의 본성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다 자신을 위해서이고,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헌신하는 것도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해서이며,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 또한 자신이 상을 받기 위해서이다. 결론적으로 전부 자신이 복을 받거나 상을 받고, 천국에 가기 위한 것이다. 세상에서 일을 하는 것은 다 자신이 이익을 얻기 위해서고,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해서이다. 복을 받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많은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다. 이는 모두 사람에게 사탄 본성이 있음을 가장 잘 입증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서 복과 화를 대하는 적그리스도의 관점을 폭로하셨어요.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믿을 때 복을 바라고 믿습니다. 이왕 하나님을 믿을 바에는 당연히 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복을 못 받으면 하나님 믿는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가 하면, 언제든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날 수도 있죠. 제가 하나님을 믿는 관점도 이와 마찬가지였죠. 하나님을 믿으면서 버리고 헌신하면 그분께서 우리 가족이 편안하고 화를 입지 않게 축복해 주실 거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병에 걸렸을 때도, 남편이 암에 걸렸을 때도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했죠.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저와 남편 병을 고쳐 달라며 비이성적으로 요구했어요. 하나님이 제 욕망을 채워 주지 않으시면 더는 하나님께 헌신하고 본분을 이행하지 않으려 했고요. 하나님을 믿는 제 관점은 너무나 잘못됐죠! 사실 하나님은 당신을 믿는 사람에겐 재앙이 닥치지 않는다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재하고 다스리십니다. 사람의 생로병사도 하나님 손에 달렸어요. 하나님 믿는 사람도 예외 없이 하나님께 복을 받기도 하고, 마찬가지로 화를 입기도 하죠. 본분은 피조물이라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것으로,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탄에게 너무 깊이 패괴돼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이익이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와 같은 사탄 독소에 따라 살면서 늘 제 이익을 따지고, 하나님을 이용할 대상으로 생각했어요. 고생하고, 버리고, 헌신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축복을 받아 내려 했습니다. 하나님이 제 이익을 침해하는 일을 하시면, 바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오해하며 나아가 하나님께 따지고 대항하기까지 했어요. 이런 제가 어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일까요? 너무나 이기적이고 비열하죠! 저는 또 바울이 떠올랐습니다. 주님을 위해 사역할 때 바울 역시 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조금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알아 가려 하지 않았어요. 그저 겉으로 보이는 희생과 헌신, 수고와 사역을 이용해 하나님께 상과 면류관을 받고자 했죠.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딤후 4:7~8) 이 말은 하나님이 면류관과 상을 내리시지 않으면 공의롭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겪은 고난과 치른 대가를 밑천으로 내세워 하나님을 협박하고 하나님께 대항하다 결국 징벌받았어요. 여기까지 생각하니 겁이 났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 추구를 중시하지 않고 복과 은혜만 받으려고 한다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끝까지 믿어도 진리를 얻지 못하고 패괴 성품도 변화되지 않아 결국 도태되기 마련이죠. 또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만약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고난받는 것,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는 것, 또는 육체가 평안하고 모든 것이 순조로우며 편안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모두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가져야 할 목적이 아니다. 네가 이렇게 믿고 있다면 너의 관점은 바르지 않은 것이며, 너는 절대로 온전케 될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행사,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기묘함과 난측함에 대해 알아야 한다. 또한 이런 인식을 통해 네 마음속에 있는 개인적인 요구와 소망, 관념을 없애야 한다. 이런 것을 없애야만 하나님이 요구한 조건을 갖출 수 있고, 이것을 통해서만 생명을 가질 수 있으며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함이고, 하나님이 요구한 성품으로 살기 위함이다. 그래서 자격 없는 이 한 무리의 사람들을 통해 그의 행사와 영광이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옳은 관점이자 네가 추구하는 목표여야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말씀에서 올바른 추구 목표를 찾을 수 있었어요. 복이나 어떤 이익을 바라며 하나님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알고 만족게 해 드리기를 추구해야 하죠. 욥처럼 하나님께 아무것도 바라거나 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욥은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여겨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든 거둬 가시든, 복을 받든 화를 입든 무조건 순종하며 하나님의 공의를 찬미했어요. 사탄에게 시험을 당했을 때 전 재산을 강도에게 빼앗기고, 자식들도 모두 죽고, 자신은 몸에 악창까지 났어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 이름을 칭송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든, 그는 피조물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경배했어요. 욥의 믿음이야말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거죠. 이 점을 인식하자 실행 길이 생겼어요. 남편의 병이 어떻게 되든 하나님께 순종하고 제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로 다짐했습니다.
그 후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모든 피조물의 탄생, 출현, 수명, 결말 그리고 일생의 사명과 인류 전체에서 맡은 역할 등을 하나님은 전부 계획해 놓았으며, 이는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창조주의 권병이다. 모든 피조물의 탄생, 일생의 사명, 그리고 수명이 언제 끝날 것인지 등등 이 모든 규칙은 하나님이 이미 다 정해 놓았다. 하나님이 모든 별의 운행 궤도를 정해 놓은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어떤 궤도로 얼마 동안 어떤 규칙에 따라 어떻게 운행할 것인지 하나님은 이미 다 정해 놓았으며, 수천 년, 수만 년, 수십만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한 것이자 하나님의 권병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운명과 수명, 결말은 창조주 손에 달렸죠. 사람의 생로병사는 모두 하나님께서 주재하고 정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이 언제 죽는지를 정하셨다면, 그 사람은 벗어날 수 없어요. 그리고 그 예정한 때가 아니면 암에 걸렸다 해도 죽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권병이죠. 이걸 깨닫고 마음이 많이 홀가분했습니다. 남편의 병은 하나님께 달려 있으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 안배에 순종하며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뿐이었죠.
그 후 남편은 병원에서 한동안 항암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뜻밖에도 혈액에 있던 암세포가 모두 사라지고 여러 지표도 정상으로 나왔어요. 암 덩어리도 반이 없어졌고요. 의사는 남편과 같은 병세가 이렇게나 잘 통제된 경우는 드물다고 했어요. 아들도 그러는데, 동료 아버지도 같은 암에 걸렸다가 항암 치료를 못 견디고 몇 달 안 돼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이렇게 빨리 완쾌된 것을 보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렸어요. 가장 기쁜 일은 남편이 이름만 크리스천이고, 늘 돈만 좇았는데 병을 앓으면서 하나님의 전능과 주재를 깨닫고, 친척과 지인들한테도 복음을 전해 하나님을 증거하게 된 것입니다.
비록 이 과정에서 저희는 적지 않은 고통을 받았지만 복을 바라는 제 속셈과 그릇된 추구 관점을 조금은 인식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으면서 추구해야 할 올바른 목표가 생겼죠. 모든 게 다 이번 체험을 통해 배운 공과입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 사역은 너무나 실제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