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역경을 통한 검증

짐바브웨 주니어(Junior)

저는 어릴 때부터 사회 환경의 영향을 받아 무슨 일을 하든 다른 사람을 따라 하기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자 저도 따라서 믿었죠. 하지만 하나님 알기를 갈망하면서 몇 가지 질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을 믿는 걸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알 수 있지? 이 어둡고 사악한 세상에서 진리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사람들은 왜 살면서 고난을 마주하는 걸까?’ 이 의문들은 하나하나 수수께끼 같았고, 줄곧 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점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받아들인 덕에 이 의문의 답을 전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체험하여 하나님을 알아 가고 사랑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또 하나님은 말세에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의 방식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의 패괴를 정결케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됐고요. 그래서 저는 시련이 임하기를 바랐습니다. 심지어는 중국에 태어나서 중국의 형제자매들처럼 마귀 사탄에게 핍박받고 박해당해 고난 속에서 힘 있게 증거할 수 있기를, 하나님께 이기는 자로 온전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그런 환경이 바로 임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전염병 때문에 일하던 회사가 파산하면서 저는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여러 회사에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한 번도 면접 기회를 얻지 못했죠.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점점 더 안 좋아졌습니다. 수입이 없어지자 음식을 살 돈도 없었으니까요.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전까지 저는 퇴근 후 온라인 예배에 참석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교회의 영화를 보며, 형제자매들과 함께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그 활동들은 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저는 그렇게 하나님을 믿는 게 무척 좋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제 고난을 마주하게 된 거죠. 저는 유일하신 참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반드시 저를 돌보고 도와주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저는 하나님께 일자리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니, 하나님께서는 제가 바라는 게 뭐든 다 주실 거라고 생각한 거죠.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좀 연약해졌고, 또 곤혹스러웠습니다. ‘매일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하나님은 왜 내가 고통스러울 때 도와주시지 않는 걸까?’ 이런 모습을 드러내게 되자 저는 욥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모든 재산을 잃은 상황에서도 여전히 굳게 서서 증거했습니다. 욥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것이 모두 하나님의 주재이자 안배임을 믿었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죠. 욥은 하나님이 주신 물질적인 축복에 감사했으며, 그것들을 잃었을 때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칭송했습니다. 욥의 믿음과 기도를 곰곰이 생각해 본 저는 제 믿음이 너무도 보잘것없어 욥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욥을 본받고, 욥처럼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먹을 것이 떨어진 데다가 모바일 데이터까지 다 써 버리는 바람에 온라인 예배에 참석할 방도가 없어졌습니다. 저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굶어 죽을지, 예배에 참석할 수 있을지 등은 전부 당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이 모든 어려움을 당신께 맡기고, 당신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자 마음이 한결 놓였습니다. 그리고 기도한 그날,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삼촌이 갑자기 전화를 걸어 자기 회사에서 일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본 것입니다. 건축업 일이라 무척 힘들기는 하지만, 일주일만 일해도 한동안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돈을 벌 수 있었죠. 저는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동안 드러낸 것들을 돌이켜 보며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왜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내 모든 바람을 들어주셔야 한다고 생각한 걸까?’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일에 대해 약간의 인식이 생겼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저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나의 능력을 빌어 자기 몸에 있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나를 믿는다. 또 많은 사람이 그저 평안과 기쁨을 얻기 위해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그저 내게서 더 많은 물질적 부를 얻어 내기 위해 나를 믿는다. 많은 사람이 오직 이생을 무사히 보내고 내세에 무탈하기를 바라면서 나를 믿고, 많은 사람이 지옥의 고통을 피하고 천국의 복을 얻기 위해 나를 믿는다. 또 많은 사람이 내세에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일시적인 편안함을 위해 나를 믿는다. 내가 사람에게 분노해 원래 사람에게 있던 기쁨과 평안을 거두어 가자 사람은 모두 의심하였다. 내가 천국의 복을 거두고 지옥의 고통을 주자 사람은 분노하였다. 사람이 내게 병을 고쳐 달라고 할 때 내가 모른 척하고 혐오하자, 사람은 내게서 멀리 떠나 더러운 무당을 찾아갔다. 사람이 내게서 얻어 낸 것을 내가 다 거두어 가자 사람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나를 믿는 것은 나의 은혜가 매우 많기 때문이며, 나를 믿으면 이로운 점이 아주 많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중에서),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노골적인 이익 관계, 그러니까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에 불과하다. 솔직히 말하면, 이는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다. 피고용인의 수고는 오직 고용인이 주는 품삯을 받기 위함이다. 이런 이익 관계에는 애정은 없고 거래만 있으며, 사랑을 주고받는 것은 없고 베풂과 연민만 있다. 또 이해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참는 것과 기만하는 것만 있으며, 친밀한 관계는 없고 영원히 넘을 수 없는 깊은 골만 있다. 상황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누가 이 흐름을 되돌릴 수 있겠느냐? 또 이런 관계가 위험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확신컨대, 모두가 복을 받는 기쁨에 도취되어 있을 때,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이처럼 난감하고 차마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깨달은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부록 3 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복받으려는 속셈과 패괴 성품을 드러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확실히 하나님께 위로를 바랍니다. 그들은 어떤 불행도 맞닥뜨리고 싶어 하지 않으며, 자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제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그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언제나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줘야 한다는 거죠. 제가 주님을 믿는 동안 목사와 장로는 늘 하나님께 많은 축복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식의 추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비정상적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드러내신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노골적인 이익 관계, 그러니까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에 불과하다. 솔직히 말하면, 이는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다. 피고용인의 수고는 오직 고용인이 주는 품삯을 받기 위함이다. 이런 이익 관계에는 애정은 없고 거래만 있다.’라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저는 부지중에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저 또한 하나님에게서 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게 바로 제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의도였죠. 저는 하나님이 땅에 오신 이상, 그분을 받아들인 모든 이에게 반드시 축복을 가져다주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저는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으니 축복이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거라고,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삶에서 맞닥뜨린 고난이 더 심각해지면서 저는 무척 연약해졌고 소극적인 상태에 빠졌습니다. ‘수입이 없어지고 먹을 것이 떨어지고 모바일 데이터가 바닥나 온라인 예배에 참석할 수 없게 됐는데 어떻게 계속 하나님을 믿는단 말이야?’ 저는 속으로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관심이 없으신 것 같았죠. 저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많이 돌아다니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지만, 하나님은 응답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구한 것을 베풀어 주지 않으셨죠. 그래서 저는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의문을 품었습니다. 하나님이 드러내신, 『내가 사람에게 분노해 원래 사람에게 있던 기쁨과 평안을 거두어 가자 사람은 모두 의심하였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믿음’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중에서)라는 말씀처럼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 앞에서 저는 제가 드러낸 것들 때문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관점은 그릇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축복의 제공자로, 저 자신은 축복의 수여자로 생각했으니까요. 하나님께서 제가 원하는 좋은 일자리를 베풀어 주시지 않자 저는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하나님이 제게 전혀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제 관점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무지하며 어리석은지 깨달았죠. 그러고 보면 제가 어릴 때부터 종교 예배에 참석하면서 들은 거라고는 “하나님께서 크게 축복하실 겁니다! 주님을 믿으면 하나님은 당신을 축복하실 것이고, 기도하며 구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겁니다.”라는 말뿐이었습니다. 종교계나 부모, 주변 사람들에게서 들어온 말들에 너무 큰 영향을 받아서,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 축복받을 것이며, 세상에서 고생하는 일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때까지 저는 복받으려는 속셈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사탄 성품이라는 것은 더더욱 인식하지 못했고요. 이제 사람의 패괴를 드러낸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야 얼마간 인식이 생긴 것입니다.

그 후,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그저 물질적인 축복을 위해 하나님을 믿은 걸까? 충분한 돈과 풍족한 물질을 지니면 하나님께 인정받은 사람인 거야? 만약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 27절에서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라고 하시고, 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19~21)라고 하신 거지?’ 이제 저는 늘 하나님께 물질적인 축복을 얻어 내려고 하는 것이 사람의 사치스러운 욕망이자 패괴 성품이며, 하나님이 혐오하시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전부 사탄이 사람을 미혹하여 하나님의 신분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고, 나아가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이 창조주께 순종하지 못하고 늘 하나님께 요구만 하게 한 거죠.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미하지만, 삶에서 어려움에 직면하거나 하나님이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실 때, 우리는 하나님을 피하고 원망합니다. 저는 아브라함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에게서 온 모든 것에 순종하고자 했습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자신의 선택이 없었죠. 하나님이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요구대로 아들을 바치고자 했습니다. 마음은 무척 고통스러웠지만, 그는 하나님께 “어째서 그런 일을 시키시는 겁니까? 어째서 제게 이렇게 대하시는 거죠?”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어떤 요구를 하시든 다 옳으며,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자신은 피조물에 불과하니 하나님의 모든 분부와 요구를 무조건 받아들이고 거기에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안 거죠.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께 인정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완전히 다릅니다. 사람은 언제나 물질적인 축복에 생각이 사로잡혀 하나님의 뜻을 등한시합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라고 알려 주신 바 있습니다. 사람은 물질적인 축복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기를 추구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야 하죠.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요. 하나님은 창조주로, 사람의 생각과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가장 잘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사람은 사탄에게 패괴되어 탐욕과 물질적인 축복의 생각으로 점철되었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복을 얻고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믿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드러내신 말씀처럼 말입니다. 『패괴된 인류는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 산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라는 말은 사람의 본성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다 자신을 위해서이고,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헌신하는 것도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해서이며,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 또한 자신이 상을 받기 위해서이다. 결론적으로 전부 자신이 복을 받거나 상을 받고, 천국에 가기 위한 것이다. 세상에서 일을 하는 것은 다 자신이 이익을 얻기 위해서고,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해서이다. 복을 받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많은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다. 이는 모두 사람에게 사탄 본성이 있음을 가장 잘 입증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제 실제 상태를 드러냈습니다. 저는 제 무지와 이기심을 깨닫게 되었고, 또한 제 관념에 맞지 않는 환경이 임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순종해야지 은혜와 축복을 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저는 또 같은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전에 삼촌 회사에서 일주일만 일하고 그만둔 후로는 집에서 본분 이행에만 집중했는데, 그래서 가진 돈이 곧 바닥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음 끼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어떻게 일자리를 찾아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학업을 마치지 못한 저는 일자리에 지원할 자격도 없었으니까요. 당시 저에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모바일 데이터를 구매할 돈도 없었죠. 정말로 온라인 예배에 참석하고 본분을 이행하고 싶었는데도 말입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자 또 연약해지면서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그때, 어머니가 전염병 때문에 집에 먹을 게 떨어졌으니 좀 도와달라는 말을 했습니다. 어머니도 저처럼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저는 무척 연약해졌고 마음도 아팠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죠. 제가 남들보다 훨씬 큰 고통을 겪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죠.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달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매일 본분을 이행하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니니, 하나님께서 저를 돌봐 주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왜 상황이 점점 더 안 좋아지는 것일까요? 그러는 동안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찬양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중 하나님의 말씀 몇 단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됐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때 추구하는 것은 다 나중에 복을 얻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으로, 모든 사람이 이러한 속셈과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 있는 패괴된 것들은 반드시 시련과 연단으로 해결받아야 한다. 사람의 내면에 정결케 되지 않은 부분이 있고 패괴 표출이 있다면 반드시 그 부분에서 연단을 받아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안배이다. 하나님은 환경을 마련해 네가 그 환경 속에서 연단을 받으면서 자신의 패괴를 알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지막에는 죽음을 맞이한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의도와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게 한다. 그러므로 사람을 놓고 말하면 몇 년간의 연단과 어느 정도의 고난을 겪지 않는다면 사람은 생각과 마음속에서 패괴된 육체의 통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 사탄 본성에 통제되는 부분이 있고, 자신의 욕망과 요구가 있다면 그 부분에서 고난을 겪어야 한다. 오직 고난 속에서만이 공과를 배울 수 있다. 즉, 진리를 얻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수많은 진리는 다 고난과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깨닫게 된다. 편안하고 순탄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인식하고,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에게 과분한 요구를 하고 ‘우리가 가정도 버리고 본분을 이행하고 있으니 하나님도 우리를 축복해 주셔야 해. 우리가 하나님의 요구에 따르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상을 내려 주셔야 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마음에 품은 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다. … 사람은 너무 비이성적이다. 자기 자신이 진리를 실행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이 해야 하는 일도 하지 않는다. 사람은 마땅히 진리 추구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데도 그는 진리를 싫어하고 육적인 향락을 탐하며 항상 복을 얻고 은혜를 누리고 싶어 한다. 또 항상 하나님이 사람에게 너무 높은 요구를 한다고 원망하며, 시종일관 하나님의 후대와 더 많은 은혜를 받아 육적으로 누릴 수 있기만을 바란다. 이런 사람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겠느냐? …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이성도, 믿음도 전혀 없는 것이다. 사람의 과분한 요구가 채워지지 않자 하나님에게 불만을 품은 것이다. 이것은 전부 사람의 마음에서 흘러나온 것들로, 사람의 본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 사람의 내면에 이런 것들이 있는데 벗어 버리지 않으면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을 원망하고 오해할 수 있고, 심지어 쉽게 하나님을 모독하고 언제 어디서든 참도를 떠날 수 있다. 이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예전에 저는 매일 제 본분에 집중하고, 심지어 가족들도 거의 챙기지 못하면서까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니 하나님은 마땅히 저를 칭찬하고 제게 복을 내려 주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에게서 많은 상을 받고자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일자리 하나를 원했을 뿐입니다. 게다가 일자리를 구하면 더 열심히 본분을 이행할 수 있을 테니까, 이 요구가 무척 합리적이고 결코 과하지 않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하나님 말씀의 폭로를 통해 반성했습니다. 그 사치스러운 욕망과 요구를 지닌 것 자체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하나님께 저를 위해 이것저것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늘 하나님께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은 진리를 실행하기가 무척 어려우며, 게다가 요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저는 제게 왜 그런 어려움들이 임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봤을 때 저는 무척 많은 고생을 한 것 같고, 또 매우 불쌍해 보이지만, 사실 고통에 단련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비록 견디기 힘들다고 느껴졌을지라도 이는 하나님이 저를 버린 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제 그릇된 관점과 불순물을 알게 하는 한편, 그런 것을 사람이 따랐으면 하는 올바른 방향으로 바로잡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는 부지중에 자문했습니다. ‘나는 정말 좋은 일자리를 구해서 돈을 벌려는 게 아니었을까? 모바일 데이터를 얻고 내 기본적인 필요를 채우려고 한 것 아닐까? 어떤 어려움도 없이 본분을 순조롭게 잘 이행하고 싶었던 것 아니야? 그래. 난 그런 것들을 원했어. 내가 그런 것들을 원하는데 하나님은 왜 나한테 그것들을 안배해 주지 않으신 거지? 내가 너무 운이 나쁘고 불행했던 걸까?’ 그것과는 반대로 저는 무척 운이 좋았습니다. 그건 하나님의 사랑이 임한 거였죠. 그런 환경이 임한 데는 하나님의 허락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였습니다. 진리를 구하고 공과를 배우게 하며, 하나님에 대한 제 믿음의 불순물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었죠. 만약 제가 좋고 편한 환경 속에서만 하나님을 믿으면서 제 뜻과는 다른 열악한 환경을 겪어 보지 못했더라면, 하나님에 대한 제 믿음과 사랑에 속셈과 욕망, 불순물이 섞여 있었을 것이며,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께 진심을 보이며 충성하고 순종하기를 바라십니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가 아버지에게 풍족한 물질적 삶을 얻으면 아버지를 사랑하고, 얻지 못하면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아버지는 제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전부 주지 않았으니 저는 아버지를 존중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제 아버지가 아닙니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어떤 아이일까요? 양심도 이성도 없는 불효자일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당시 제게 임한 상황 역시 비슷했습니다. 그런 환경을 체험해야만 하나님에 대한 제 믿음의 불순물이 정결케 될 수 있는 거였죠.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오늘날,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너의 생명 실제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를 알고 진실로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다.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존경스러움을 알고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행하는 사역이 구원이요, 온전케 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데에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주로 육적인 삶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으로 바뀌고, 패괴된 삶에서 하나님 말씀의 생명 안에서 사는 삶으로 바뀌는 것이다. 또 사탄의 권력 아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돌봄과 보호 아래에서 살면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육체를 따르지 않으며, 하나님이 너의 온 마음을 얻고 너를 온전케 함으로써 사탄의 패괴 성품을 벗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큰 능력과 영광이 너에게 나타나게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사탄 앞에서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이적과 기사를 보려고 하거나 육적인 것을 위하지 말아야 한다. 마땅히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베드로처럼 죽기까지 순종하기를 추구해야 한다. 주로 이것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도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 하나님에 대해 더 알게 되는데, 그런 뒤에야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해 알아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가져야 할 목적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말씀이 모든 것을 이룬다> 중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은 지 얼마 안 됐을 때도 이 말씀을 읽어 보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 말씀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한번 또 한번 힘든 환경을 겪고 나서야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얼마간 깨닫게 됐죠.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제 상상과 달랐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저를 돌보고 보호해 주셔야 한다고, 제 모든 필요를 채워 주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믿는 관점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해야 하며, 매사에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든 가져가시든 하나님께 순종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해야 하죠.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 가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기만을 추구한다면, 그 믿음은 하나님께 인정받을 것입니다. 만약 베드로처럼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하며 죽을 때까지 순종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이 온전케 하시는 사람일 거고요. 저는 그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믿을 때 가져야 할 올바른 관점에 대해 깨닫도록 깨우쳐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안정과 평안을 느꼈죠. 저는 하나님께 순종의 기도를 드리면서, 오직 제게 고난을 이겨 낼 힘을 더해 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다음 날, 삼촌이 돈을 주었고, 저는 그 돈으로 음식과 모바일 데이터를 살 수 있었습니다. 저는 활로를 열어 주신 하나님께 마음속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그 후, 저는 임시직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무척 힘들었지만, 그 돈이면 기본적인 생계유지가 가능했죠. 저는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를 받아들이고 거기에 순종하는 것은 실생활 속에서 배워야 할 기본적인 공과이자, 우리가 체험 과정에서 하나님의 전능과 주재, 놀라운 행사를 알아 가도록 도와준다는 사실을, 또 그것은 우리가 삶 속의 수많은 문제를 직면할 때 가져야 할 태도임을 진실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한 단락을 떠올렸습니다. 『네가 실생활에서 문제에 맞닥뜨릴 때 하나님의 권병과 주재를 어떻게 느끼고 깨달아야 할까? 이러한 문제에 봉착하여 어떻게 깨달아야 하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어떻게 체험해야 하는지 모를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네게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려는 마음과 염원과 실제가 있음을 보일 수 있을까? 우선 너는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다음 구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그런 후에는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기다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때, 즉 하나님이 너에게 안배한 사람과 일과 사물,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점차적으로 너에게 나타나는 것을 기다린다는 말이다.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안배한 사람과 일 가운데 하나님의 애쓰는 마음을 살피고 깨닫는 것이다. 그 속에 있는 진리를 깨닫고, 사람이 행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도를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서 얻고자 하는 성과와 맺고자 하는 결실을 아는 것이다. ‘순종한다’는 것은 당연히 하나님이 안배한 사람과 일, 그리고 그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그 가운데 창조주가 어떻게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고, 어떻게 그의 생명을 사람에게 공급하며, 어떻게 진리를 사람 안에 만들어 넣는지를 체험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안배와 주재 아래에서 모든 일은 자연의 섭리대로 흘러간다. 하나님이 주재하고 안배한 모든 것을 따르겠다는 결심을 했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구할 줄 알아야 하며, 순종할 줄 알아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권병에 순종하려고 하는 모든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이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다. 너희가 많은 노력을 들여 이런 태도와 소양을 갖춰야만 진정한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예전에도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있었지만, 여러 어려움을 겪은 후에 다시 읽자 느낌이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기다리고 순종하는 것은 사람이 문제에 직면했을 때 보여야 할 첫 번째 태도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다림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스스로를 반성하는 등의 행동을 포함합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자신의 진실한 내적 상태를 알고, 자신이 무엇에 진입해야 할지 깨닫게 되는 거죠. 이렇게 구하고 체험하면 하나님의 전능과 주재, 실제 행사를 볼 수 있습니다.

원래는 힘든 임시직 일을 딱 한 달만 할 생각이었습니다. 생계유지만 될 정도의 돈을 벌고, 나머지 시간은 전부 본분 이행에 쓸 계획이었죠. 그런데 휴대폰에 문제가 생겼고, 한 달만 더 일하면 새 휴대폰과 노트북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교회 리더로서 해야 할 교회 사역이 무척 많았습니다.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본분을 완수하는 것이었죠. 그건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었고요. 그래서 저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제 처지를 알게 된 윗선 리더가 제게 본분을 열심히 이행하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교회에서 노트북과 데이터 구매를 도와주기로 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저는 무척 감동받았고, 형용하기 힘든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총임을 깨달았죠. 또한, 하나님은 저를 힘들게 하신 적이 없다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그저 제 진심과 순종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예전에 제가 상상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모호하고 비현실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을 겪고 그 속에서 공과를 배운 후에야 하나님이 한번 또 한번 환경을 마련하여 저를 검증하셨다는 것을, 저를 인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조금씩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을 믿는 그릇된 관점을 바꿔 주고 올바른 추구의 길에 들어서게 해 주셨음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는 분명 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었죠. 또 저는 고난의 환경을 직면했을 때 지녀야 할 올바른 태도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제게는 또 시련이 임했습니다. 한 달 동안 일하고 월급을 받자마자 강도를 만나 월급 절반을 빼앗긴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보호 덕에 그들은 칼을 지녔음에도 저를 해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곧 하나님께서 제게 이런 환경이 임하도록 허락하셨으며, 그 일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더없이 부유하던 욥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모든 재산을 약탈당하고 자식들이 죽을 때도 무조건적으로 순종했고 원망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칭송했습니다. 저는 부유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 돈이 필요하고, 그것을 어떻게 쓸지에 관한 계획도 많았지만, 저는 욥의 믿음과 순종을 본받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죠. ‘하나님, 당신은 지극히 심오하시어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제게 왜 이런 일이 임했는지 전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저는 그 안에 당신의 뜻이 들어 있음을 믿습니다. 저는 당신의 안배에 순종하고자 합니다. 제 마음을 감동시켜 주시고, 소극적인 정서에 빠지지 않도록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기도를 마치자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마음이 무척 평온해졌습니다. 저는 어떤 번뇌도, 근심도 없이 평소처럼 마음 편히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하나님의 주재와 관련된 진리를 깨닫기 전의 제 태도와 비교해 보면 확실히 큰 차이가 있었죠. 하나님의 그런 배치와 안배가 저를 정결케 하고 구원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해에 깊이를 더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물질적인 축복을 주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 물질적인 것들은 우리의 육적인 필요를 채워 줄 뿐이니까요.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시련과 연단을 겪어 진리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을 왜 믿어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족게 할 것인지 알게 합니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하나님의 모든 배치와 안배에 순종하게 하죠.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사랑은 하나님의 연단과 심판을 토대로 이뤄진다. 네가 하나님의 은혜로 가정이 평안하거나 물질적 축복만 받았다면, 하나님을 얻었다고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다고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와서 은혜의 사역을 하며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물질적 축복을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은혜와 자비, 긍휼만으로는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없다. 사람은 체험 과정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어느 정도 느끼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도 보았다. 그러나 한동안 체험한 후에는 그의 은혜와 자비, 긍휼로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없고, 사람의 내면에 있는 패괴된 것들을 들춰내지 못하며, 사람의 패괴 성품을 벗겨 버릴 수 없고, 사람의 사랑과 믿음도 온전케 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 사역은 한 단계 사역일 뿐,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은 무엇을 통해 사람을 온전케 하느냐? 그의 공의 성품을 통해 온전케 한다. 하나님의 성품은 기본적으로 공의, 진노, 위엄과 심판, 저주이며, 하나님은 사람을 온전케 할 때 주로 심판의 방식을 택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 수 있다> 중에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은 확실히 사람의 모든 불의를 정결케 하는 사역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데 섞여 있는 불순물과 우리의 패괴 성품은 오직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폭로, 시련과 연단을 통해서만 정결케 될 수 있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리기만 해서는 이런 성과를 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다면, 이런 고난의 환경이 임하지 않았다면, 저는 이러한 인식을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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