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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다

중국 자오광밍

1980년대 초, 당시 30대였던 저는 한 건축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젊고 건장한 신체와 충성스럽고 책임감 강한 성격, 거기다 탄탄한 건축 기술까지 갖고 있었던 저는 회사에서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 확신했습니다. 그렇게 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되면 남들에게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터였습니다. 이런 목표를 품고 그 회사에서 몇 년간 일했습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었던 건 됨됨이와 기술 면에서 모두 나무랄 데가 없는 저인데도, 회사는 제 노력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직원의 급여는 최고 6호봉까지 있었는데 저는 항상 3호봉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기술도 저보다 못하고 근속 연수도 저보다 짧은 직원들도 급여가 오르는데 저는 예외였습니다. 대체 왜 다른 사람 급여는 올려 주면서 저는 올려 주지 않는지 답답하고 억울했습니다. 나중에 저와 친한 한 직원이 넌지시 알려 주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사장과 어떻게 지내느냐가 가장 중요해. 최소한 설에라도 성의 표시를 해야지.” 이 말을 듣고서야 줄곧 회사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던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속으로 무척 화가 나고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첨하는 사람들이 싫고 회사에서 요령만 피우며 잘 나가는 사람들이 못마땅했지만, 회사 내 입지를 위해서 이런 암묵적 규칙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설 연휴에 사장에게 ‘성의’를 표시하자 저는 바로 팀장으로 발탁되었습니다.

팀장으로 승진한 저는 더욱 열심히 일했습니다. 공사 현장 품질과 작업 진도를 엄격하게 관리 지도하고, 팀원들의 안전에 늘 각별히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저의 이런 자세와 기술 지도는 팀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사장에게 선물을 얼마나 보내느냐가 팀장들의 거취를 결정하는 첫 번째 조건이었습니다. 팀장직을 연임하기 위해 그런 생존 법칙을 억지로 따르면서, 저는 어쩔 수 없는 ‘적자생존’의 잔인함을 깊이 체감했습니다.

그 후 개혁개방 정책의 추진으로 각지에서 대규모 개발 및 건설 공사가 이뤄지게 되었고, 우리 회사도 개인에게 공사 수주를 맡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공사팀마다 수주를 따내려고 앞다투어 관계자들을 접대하고 선물을 보냈습니다. 어떤 기관에서 공사를 한다고 하면 팀장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인맥을 총동원하여 해당 기관에 선물을 한 아름씩 안겨 주었습니다. 각 기관장의 품위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로비 담당자는 온갖 궁리를 해야 했습니다. 사례금을 생선이나 닭 위장 안에 넣어서 보내기도 했고, 선물하는 금품 종류도 현금, 금붙이, 다이아몬드 반지 등으로 다양했습니다. 저도 남들이 하는 대로 머리를 짜내어 고위 관리의 비위를 맞춘 끝에 겨우 공사 하나를 따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 첫 삽을 뜨려고 할 때, 건설국, 질량 감독국, 설계원, 그리고 공사 부지팀의 간부까지 ‘감독 지도 업무’를 나와선 공사 현장에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 허가해 줄 수 없다며 꼬투리를 잡아 댔습니다. 오전 내내 이러는 바람에 공사는 시작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서둘러 고급 식당에서 관계자들을 대접했습니다. 한 끼 식사에만 무려 몇 천 위안이 들었습니다. 접대가 끝날 때쯤엔 각 관계자에게 적게는 이천 위안, 많게는 오천 위안에서 만 위안이 든 돈 봉투까지 건넸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겨우 허가를 받아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착공 후에도 관리감독 부서에서는 공사 품질을 감독한다며 정기적으로 인원을 파견했습니다. 명목상으론 공무 수행을 위한 방문이었지만, 실은 트집을 잡아 뭔가 뜯어 내려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공무원들이 공사장에 ‘왕림’할 때마다 저는 부지런히 접대하며 모셔야 했습니다. 공사 기간 관리 부서의 장(長)들은 구실을 만들어 저와 함께 쇼핑을 가곤 했습니다. 고급 브랜드만 찾아가 옷과 장신구를 고르곤 계산은 저에게 시켰는데, 자기 주머니 사정이 안 좋으니 제가 돈을 내야 한다며 대놓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공사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저는 울분을 속으로 삼키며 이를 악물고 이에 ‘동참’해야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높으신 분들을 모시고 유흥가를 밥 먹듯 드나들며 오랜 기간 폭음과 불규칙한 생활을 일삼다 보니 위장병과 고혈압까지 생겨 심신이 모두 망가져 버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공사를 마치고 정산을 해 보니 막상 손에 쥐는 돈은 몇 푼 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기가 막혀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너무도 고된 삶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의 기술과 능력으로 돈을 버는 게 왜 이렇게 어렵지? 이 나라의 체제 안에 있는 정부 관리들은 하나같이 왜 이리 부패한 걸까?’ 이 문제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왔지만 결국 돈벌이에 대한 희망을 또다시 관리들에게 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과 관계를 잘 다져 두면 앞으로 발전하는 데 발판이 되어 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방법이 저를 철저하게 죄악의 늪에 빠뜨리고 궁지에 몰아넣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1992년, 저는 우여곡절 끝에 시(市)에서 추진하는 공사를 하나 따냈습니다. 돈을 제법 만질 수 있는 공사였습니다. 한창 야심 차게 공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회사 사장이 저를 불러 시 간부 네 명에게 개인 별장 한 채씩 지어 주라고 했습니다. 사장은 앞으로 제 사업을 번창시킬 수 있는 기회라며, 시 간부들을 위해 수고를 좀 해 주면 앞으로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희망에 부푼 저는 은행 대출을 받고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돈을 빌리는 등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자금을 마련하여 별장을 지었습니다. 공사 마무리를 앞둔 어느 날, 상급 기율검사 기관에서 감사를 나왔습니다. 저는 시 간부들이 다치지 않도록 또 돈을 써서 일을 적당히 무마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제 노력으로도 간부들은 법망의 감시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간부 네 명은 뇌물 수수죄로 검찰 기관으로부터 처벌을 받았고, 많은 공을 들였던 제 아름다운 계획도 함께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별장은 채 완성도 되기 전에 몰수당하고 수십만 위안의 빚만 떠안게 된 저는 어디 가서 하소연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는 저로서는 또 공사를 수주하는 것 말고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부채를 갚기 위해 저는 건설업에 종사한 이래 해 본 적도 없고 가장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부실 공사였습니다. 국가 표준 강재를 기준 미달 제품으로 바꿔치기하고, 철근 사용량을 여섯 개에서 네 개로 줄였더니 강재 비용을 1/3가량 줄일 수 있었습니다. 시멘트 사용량도 줄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전체 공사 비용을 절감하였습니다. 솔직히 이런 식으로 공사를 마칠 때마다 심각한 품질 문제가 불거질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습니다. 특히 전국에서 부실 공사로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에 피해를 입힌 소식이 들려오면 더욱 좌불안석이었습니다. 걸핏하면 악몽에 시달렸고 천둥이라도 치면 천벌을 받아 벼락이라도 맞을까 봐 하루 종일 불안에 떨며 지냈습니다. 그 후로 병까지 잇따라서 고혈압으로 인한 어지러움과 두통,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 그야말로 생지옥에서 살아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세상의 시류 속에서 제 자신을 잃어버리고 죄악의 늪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공사가 반쯤 진행되었을 무렵 발주 기관에서 대금 지급을 자꾸만 미루는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은행 대출만으론 인건비를 충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하는 수 없이 고리대금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해당 발주 기관은 오래전부터 적자 상태여서 이 공사를 진행할 능력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공사도 물거품이 되어 버리자 어떻게 일을 수습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저는 깊은 절망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그 무렵 한 회사의 공사 하청 팀장이 거액의 빚을 갚지 못해 목을 매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저 역시 이미 지옥 문턱까지 와 있다는 생각에 절망했습니다. 그 후 채권자들이 줄지어 찾아왔습니다. 아예 침대에 드러눕기도 하고 소란을 피우고 위협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체면이고 뭐고 그들을 달래고 비위를 맞추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가장 가까운 친척과 친구들마저 돈을 돌려받지 못할까 봐 안면을 싹 바꾸고 저를 외면했습니다. 돈이 있으면 잘해 주고 없으면 외면하는 야박한 세상인심을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 몇 년을 돌이켜 보니 돈은커녕 심신이 다 망가지고 수십만 위안의 빚만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하늘을 보며 탄식했습니다. “하늘이시여, 사는 것이 너무 고달픕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전능하신 하나님의 나라 복음이 저에게 임했습니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내가 너희를 이 단계까지 이끌어 온 이상, 나의 합당한 안배와 나 자신의 목적이 있다. 지금 그것을 너희에게 알려 준다고 한들 너희가 정말 알 수 있겠느냐? 나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을 위해 활로를 찾지 않는 자가 누가 있더냐? 자신의 앞날을 고려하지 않는 자가 누가 있더냐? 하지만 사람의 생각이 풍부하고 다채롭다 할지라도 만세 후의 오늘날이 이럴 줄을 어찌 예상했겠느냐? 설마 이것이 너 스스로 노력한 결과란 말이냐? 너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얻어 낸 것이란 말이냐? 너의 머리로 그려 낸 아름다운 그림이란 말이냐? 내가 온 인류를 이끌지 않았다면, 어느 누가 나의 안배에서 벗어나 다른 활로를 찾을 수 있었겠느냐? 설마 사람의 ‘생각’과 ‘바람’이 사람을 오늘날까지 이끌어 왔단 말이냐? 많은 사람들의 일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데, 이는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란 말이냐? 또 많은 사람들의 일생이 예상 밖으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데, 이는 그들의 요구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이란 말이냐? 인류를 통틀어, 전능자의 눈 아래에서 보살핌을 받지 않는 자가 있느냐? 전능자의 예정 속에서 생존하지 않는 자가 있느냐? 사람의 생사존망은 자신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냐? 사람의 운명은 자신이 주관할 수 있는 것이더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11편> 중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에 저는 진심으로 탄복하였고, 사람의 운명은 확실히 스스로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몇 년을 되돌아보면, 줄곧 미래를 위해 계획하고 준비했지만 뜻대로 된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 떵떵거리며 살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벌긴커녕 적지 않은 돈을 날렸습니다. 한때 꽤 잘 나갔던 제가 지금과 같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고는 더더욱 생각지 못했습니다. 제 미래를 위해 줄곧 치열하게 살았는데도 왜 계속 실패만 거듭했었던 걸까요? 알고 보니 사람의 운명은 자신의 손이 아닌, 하나님의 주재와 정하심에 달려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복과 불행 모두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이라는 느낌이 든 순간 저도 모르게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예전에 저는 당신을 모르고, 맹목적으로 제 자신과 실력에만 의지했다가 곤경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오늘에야 사람의 운명과 생사존망은 모두 당신이 주관하고 계시단 걸 깨달았습니다. 이런 상황이 없었더라면 저는 당신 앞으로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저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원하시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인생의 길을 어떻게 가야 할지에 대해서 저는 당신의 안배에 순종하겠습니다.”

그 후로 저는 교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서 제가 본 것은 바깥세상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순수하게 마음을 열고 성실하게 서로를 대했습니다. 가식적인 인간관계도 없고, 서로 옥신각신 다투는 일도 없었습니다. 다 같이 모여 말씀을 읽고 찬송가를 부르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예배 때는 모두들 마음을 활짝 열고 정직한 사람의 모습을 살아 내고, 자신의 체험, 부족한 점, 힘든 점을 나누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을 공유했습니다. 교회 생활에는 늘 신선함과 생기가 넘쳤습니다. 이곳에서는 형제자매들 사이에 거리감이나 경계심 없이 서로 이해하고 흉금을 터놓았습니다. 전에는 맛볼 수 없었던 해방감과 자유로움, 홀가분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끄심으로 제가 그동안 힘들게 살았던 원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에는 크나큰 비밀이 존재한다. 그러나 네가 빛이 비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왔기에 여태껏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너는 마음과 영을 악한 자에게 빼앗겼다. 너의 두 눈은 어둠에 가려져 하늘의 태양과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지 못하며, 너의 두 귀는 거짓된 말에 막혀 여호와의 천둥 같은 음성과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많은 물소리를 듣지 못한다. 너는 가지고 있어야 할 모든 것과 전능자가 너에게 베푼 모든 것을 잃고 끝없는 고통의 바다에 빠져 스스로를 구원할 힘도 없고, 살아서 돌아갈 희망도 없다. 그저 발버둥 치며 정신없이 돌아다닐 뿐…. 그 순간부터 너는 악한 자에게 시달릴 운명에 처하게 되었고, 전능자의 축복과 공급에서 멀어져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게 되었다. 천만번 불러도 너의 마음과 영을 깨울 수가 없다. 너는 악한 자의 손에서 깊이 잠들었고, 그의 꼬임으로 끝없는 나락에 떨어져 방향과 이정표를 잃어버렸다. 그때부터 너는 원래의 순진무구함을 잃고, 전능자의 보살핌을 피하기 시작했다. 악한 자가 너의 마음속에서 네 모든 것을 조종하며 너의 생명이 되어 너는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거나, 피하거나, 의심하지 않게 되었고, 그를 마음속의 하나님으로 삼아 섬기고 숭배하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생사를 같이하기로 약속했다. 너는 자신이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지, 왜 태어났는지, 왜 죽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전능자의 탄식> 중에서) 『사탄은 국가 정부, 유명인사와 위인들의 교육과 가르침을 통해 사람을 패괴시킨다. 그들의 그 허튼소리가 사람의 생명 본성이 되는 것이다. ‘하늘은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는 자를 멸한다’는 말은 사탄의 명언으로, 이미 모든 이의 내면에 침투해 생명이 되었다. 이 밖에 처세 철학의 말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탄은 각국의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이용해 교육함으로써 사람을 끔찍한 재난의 망망대해로 빠뜨린다. 그로 인해 사람은 결국 사탄을 섬기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께 멸망당하고 만다.』(<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수십년 동안 제가 이 세상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힘들고 고단하게 살아온 것은 “운명은 자기 손 안에 있다”, “돈이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 “아첨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된다”와 같은 사탄에게서 나온 생존 법칙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사탄의 철학에 따라 살면서 하나님의 존재도 모르고, 사람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달려 있다는 사실도 까맣게 몰랐습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며 인생의 방향도, 사람됨의 원칙도 없이 살며, 사탄이 권세를 잡고 있는 이 어두운 세상 곳곳에는 사탄의 시험과 함정, 속임수가 가득하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이 사악하고 어두운 세상에서 그저 돈을 벌기 위해 남들의 비위를 맞추며 아첨하는 법이나 배우고 부실 공사나 해 댔습니다. 그렇게 양심은 조금씩 없어지고 인격과 존엄도 잃어버린 채 죄악의 구렁텅이로 점점 깊이 빠져들어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돈은 벌지도 못하고 빚만 잔뜩 떠안은 채 파멸의 길로 들어설 뻔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액의 빚 때문에 자살을 택한 그 팀장도 이런 식으로 사탄의 순장품이 되어 버렸던 게 아닐까? 지금도 이런 비극이 매일같이 얼마나 일어나고 있을지 모르겠구나.’ 그제서야 저는 세상에서 권세를 잡고 추세를 이끄는 사탄과, 그런 사탄 독소의 폐해 때문에 사람이 이런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제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감격으로 벅차올랐습니다. 천만다행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구원으로 저는 어두운 세상에서 빠져나와 하나님 집에 돌아오게 되었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빚 상환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마주하자 또다시 마음이 연단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다시 공사를 맡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겐 그럴 여력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고혈압까지 재발하자 정말 어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예배에서 한 형제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해 주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의 함의는 하나님을 만물의 주재자로 믿는 것을 기초로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을 체험하여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림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 할 수 있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서문> 중에서) 형제님은 이렇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이 있어야 해요. 모든 걸 주재하시는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을 마음 깊이 믿고, 자신의 모든 걸 하나님께 맡겨야 해요. 그리고 하나님께 의지하고 앙망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며 그분의 인도를 구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자기 자신에게 의지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 안 되죠. 빚을 졌으면 갚는 게 당연한 도리예요. 우리는 용감하게 이 문제를 직면하되, 모든 걸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심을 믿어야 해요. 이겨 낼 수 없는 고비는 없어요. 이 일에 대해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합시다!”

형제님의 도움으로 저에겐 실천의 길이 생겼습니다. 저는 꾸준히 예배에 나가고 본분을 이행하면서, 근처 공사장에서 일하면서 빚을 갚아 나갔습니다. 더 이상 자신의 능력에 의지해 아등바등하지 않았습니다. 채무자가 빚을 독촉하러 오면, 저는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을 실천해 수중에 있는 돈을 먼저 채무자에게 주었습니다. 수확한 작물을 팔아 빚을 갚기도 했습니다. 남은 빚을 꼭 갚겠다고 약속했더니, 채무자들도 더 이상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은행에서 독촉해 오면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만약 거액의 채무로 감옥에 가게 되어도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자, 제게 길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행사를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정부에서 1993년 이전에 실시한 은행 대출을 일률적으로 면제해 주는 정책을 시행한 것입니다. 대출 내역이 컴퓨터에 입력돼 있지 않아서 추적이 되지 않는 부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받은 대출은 다행히 모두 1993년 이전에 받은 것이었습니다. 수십만 위안의 융자가 한꺼번에 면제된 것입니다. 저는 감격에 겨워 하나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아마 제 손으로 그 돈을 다 벌려고 했으면 지쳐 죽을 때까지 일해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 일로 저는 사람의 운명은 실로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사람의 운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너는 너 자신을 주관할 수 없다. 사람이 항상 자신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바쁘게 지낼지라도 자신을 주관할 수 없다. 네가 너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있고 너 자신의 운명을 주관할 수 있다면, 너를 피조물이라고 하겠느냐? 요컨대, 하나님이 어떻게 사역하든 모두 인류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만든 천지 만물도 모두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달, 해, 별을 창조한 것은 모두 사람을 위한 것이고, 동물과 식물을 창조한 것도 사람을 위한 것이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만든 것도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런 모든 것은 전부 사람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형벌하고 심판하든 그것은 모두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설사 사람이 바라는 것을 빼앗는다 해도 그것 역시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며, 사람을 정결케 하는 것은 사람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사람의 종착지는 모두 창조주의 손안에 있는데,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자신을 주관할 수 있겠느냐?』(<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 중에서)

체험을 통해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역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고, 믿음도 더욱 강해졌습니다.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예배를 드리고 본분도 이행하면서, 근처 마을의 공사팀에서 일하며 빚을 갚아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인성이 좋은 복음 대상자를 만나면 복음을 전하기도 하고, 저와 친한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데려오기도 했습니다. 바쁜 날들이었지만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더 이상 사탄의 철학과 원칙에 따라 살지 않고, 세상의 사악한 시류에 휩쓸려 돈을 많이 벌어 떵떵거리며 사는 삶을 추구하지도 않게 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살면서 진리에 따르는 사람, 정직한 사람, 인성을 갖춘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렇게 살다 보니 언제나 떳떳하고 마음에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음도 편안하고 밝아졌습니다. 서서히 양심과 이성이 회복되고 온갖 질병들도 점차 사라졌습니다. 지금 저는 75세의 노인이지만, 몸도 건강하고 정신도 맑습니다. 빚도 깨끗이 다 갚았습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들 제가 복받은 사람이라며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모든 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구원과 은총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저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저를 살리시고 인생의 방향을 찾아 주셨습니다. 저는 이 체험 가운데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이끄심이 없다면 사람은 사탄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삼켜질 뿐이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고, 그분이 선포하신 말씀만이 사람을 죄악의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게 하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인류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분께 순종하고 경배해야만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좋은 미래와 종착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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