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집으로 돌아오다
주님을 믿은 지 10년이 넘은 저는 일찍이 2년간 한 교회를 섬겼던 적이 있습니다. 그 후에는 일을 하기 위해 외지로 떠나 싱가포르 등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적지 않은 돈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이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살아가자니, 서로를 속고 속이며 아귀다툼을 벌이는 골치 아픈 인간관계를 마주해야 했습니다. 항상 남을 경계하고, 남들도 저를 경계하는 관계 속에서 제 내면 깊은 곳에는 항상 안정감이 없었고, 제 심신은 지쳐 갔습니다. 당시 제가 늘 가지고 다녔던 노트가 유일한 위로가 되어 주었습니다. 노트에는 제가 따로 적어 놓은 성경 구절이 있었는데, 가끔 그 구절들을 보면서 마음의 공허함을 달랬습니다. 지난 몇 년간 예배를 드리지는 않았지만, 작년부터 교회를 찾아서 주님을 잘 섬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간이 날 때마다 말레이시아의 크고 작은 교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기대에 찬 마음을 품고 찾아갔다가 실망한 채 돌아오곤 했습니다. 내면에 무언가 부족한 것 같기는 했지만 대체 그게 무엇인지 명확히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갈등하던 저는 이번엔 또 완전히 반대되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온라인 게임과 영화에 빠졌고, 가끔 밤을 새워 가며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몇 편이나 연이어 봤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활이 매우 불규칙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주께서 이런 모습을 기뻐하지 않으실 거라는 자각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생각도 점점 무뎌졌습니다…. 그 무렵 핸드폰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불평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핸드폰에 담겨 있던 정보도 다 날려 버렸고, 페이스북에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볼 땐 나쁜 일이었지만, 놀랍게도 이 사건은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인간 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라는 성어처럼 말이죠.
2017년 초, 저는 휴대폰을 새로 구입했습니다. 2월 말쯤 페이스북에 들어갔을 때 우연히 어느 영어 계정의 프로필을 클릭해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계정 게시물은 성경 구절과 성경 구절이 아닌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저는 이상하게 큰 격려가 되는 그 말씀에 매료되었습니다. 그 뒤로 며칠간 그 페이스북 계정을 유심히 살펴봤고 따로 시간을 내 몇몇 키워드를 검색해서 저의 흥미를 끌었던 그 게시물의 말씀을 찾아 다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모두 읽고 보니 이 게시물의 주요 내용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마 7:21)라는 성경 구절에 대한 해석이었습니다. 저는 그 특별한 해석에 깨우침과 빛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다른 글들도 보고 싶었지만 게시자와 서로 친구 추가를 하지 않았던 상태였기에 더는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해당 계정의 프로필을 확인해 보니 이 페이스북의 유저는 한국에서 접속하는 수잔(Susan)이라는 자매님이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친구 신청을 했는데, 아마도 오프라인 상태였던지 바로 수락하지 않았습니다. 이틀 후 저는 중문판 페이스북에서 다른 사람을 친구로 추가하게 되었는데, 역시 한국에서 접속하는 치페이(齐菲)라는 이름의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녀는 주님을 믿으며 겪은 체험을 얘기해 주었고, 저는 참 좋은 내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놀랍게도 치페이 자매님과 수잔 자매님은 친구 사이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친구로 추가했습니다. 두 사람이 올린 게시물을 보고, 가끔 간단한 대화를 나누면서 자매님들은 하나님에 대해 이해가 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동안 두 사람과 성경이나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지냈습니다. 그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제가 고민을 해결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녀들의 말은 모두 이치에 맞고 식견이 풍부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인생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두 사람은 보통 사람들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들과 교류할 땐 안정감이 느껴지고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저는 비록 두 사람을 잘 알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순수하고 꾸밈없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두 사람을 가까운 친구로 여기게 되었고, 그들과 마음을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생활에도 조금씩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일주일 정도 지난 3월 11일 저녁, 페이스북에 접속하니 수잔 자매님도 온라인 상태였습니다. 저는 자매님과 직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다가, 교회를 찾아 섬기고 싶다는 소망을 털어놓고 자매님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자매님은 모든 일은 하나님이 안배하고 주재하시니, 제 소망을 놓고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며 구해 보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때가 있으니 우리는 마땅히 기다리고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자매님은 현재 수많은 교회의 실태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설교자의 설교 내용은 빈약하고, 어떤 교회는 예배드리러 오는 사람도 없다고 했습니다. 또 어떤 교회는 교인은 많지만, 대부분 돈 버는 일만 화제로 삼으며 서로 사업을 소개해 주는 등 하나님을 믿는 것과 무관한 얘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들이 바로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없고 황폐하다는 증거들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자매님의 말에 저는 전적으로 동감했습니다. 과거 한 교회를 섬기던 시절, 사역자들은 이익을 둘러싸고 서로 아귀다툼을 벌이며 상대를 비방하기 바빴고, 세력을 키우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심지어 음란한 짓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너무 속상하고 화도 났던 저는 당시 목사님과 다른 사역자들에게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지만,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저를 괴롭혀 왔던 문제를 놀랍게도 수잔 자매님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우리는 또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재난과 전쟁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을 말하며, 현재 각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재난과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 상황을 보았을 때 성경에 나오는 주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이 거의 이루어졌고, 주님이 오실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문득 오후에 인터넷에서 만난 한 신자가 1991년에 주께서 이미 돌아오셨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주님이 돌아오셨다는 그 말에 의구심이 들어 저는 참지 못하고 수잔 자매님에게 이 문제에 대해 물었습니다. 수잔 자매님이 저의 의견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불가능하지요. 주님께서 돌아오실 때는 분명히 구름을 타고 강림하실 것이고 모두가 다 주님을 볼 수 있다고 했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구름을 타고 강림하시는 주님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주께서 이미 오셨다고 할 수 있겠어요?”
그러자 수잔 자매님이 대답했습니다. “형제님, 형제님도 성경을 많이 읽어 보셨지요.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사실 주님의 재림에 관해서는 다양한 예언이 있는데, 성경을 보면 주님의 재림에 관한 예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하나는 방금 형제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주님이 공개적으로 구름을 타고 강림하셔서 모든 사람이 주님을 볼 수 있다는 예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주님이 은밀히 강림하시기에 일부 사람들만 알 수 있다는 예언이에요. 예수님께서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계 16:15),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 25:6)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이죠. ‘도적 같이’, ‘밤중에 소리가 나되’라는 말은 소리 소문 없이, 조용하게,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늘의 울림도, 땅의 진동도 없다는 의미이지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음성을 들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주님을 맞이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이게 바로 주님의 은밀한 강림에 관한 예언이에요. 우리가 주께서 공개적으로 구름 타고 강림하실 것이라는 예언만 믿고, 은밀히 강림하실 것이라는 예언은 무시하는 게 과연 옳은 걸까요? 그러면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맞이해 천국으로 들어갈 될 기회를 잃게 되지 않을까요?”
수잔 자매님의 질문에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저는 이 두 성경 구절을 반복해서 읽어 보았습니다. ‘설마 성경에도 모순된 부분이 있다는 말인가? 아니야, 아니야! 어떻게 된 거지? 하지만 주님의 재림에 관한 성경 속 예언에는 정말 두 가지가 있어! 이건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 당황한 저는 수잔 자매님에게 계속 교제해 달라고 청했고, 수잔 자매님은 교제를 이어 갔습니다. “성경 예언에 따르면,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방식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은밀하신 강림이고, 다른 하나는 공개적인 현현이죠. 말세에 하나님은 성육신한 인자로 인간 세상에 오셨어요. 겉모습만 놓고 보면 그리스도는 보통 사람과 같아요.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던 것처럼 정상적인 인성을 가지고 있고, 보통 사람들처럼 입고 먹고 활동하며,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시죠. 우리의 입장에선 그리스도는 은밀하게 오신 것이죠. 누구도 그분이 하나님인지 알아보지 못하고, 그분의 본래 신분을 알지 못하니까요. 그러다 인자가 사역하고 말씀하시기 시작하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자들은 그 말씀과 사역에서 하나님이 나타내신 성품과, 그분의 권세와 능력을 알아보고 주님이 오셨음을 깨닫게 되죠.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라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이루어진 거죠.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분명 겉모습만 보고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보통 사람처럼 대하고, 말세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거부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대적하고, 정죄하고, 모독하죠. 예수님이 오셔서 사역하셨을 때처럼 말이죠. 겉으로 보기에 예수님은 보통 사람의 모습을 하고 계셨기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대적하고, 정죄했어요. 오직 소수만이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을 통해 그분이 바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현현임을 알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고, 주님의 속량을 받았던 것이죠.” 참 일리가 있는 말이었습니다. 수잔 자매님이 교제해 준 내용은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셨을 당시 상황은 분명 그랬습니다. 그런데 또 계시록에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공개적으로 구름을 타고 강림하신다고 했고, 목회자들도 그렇게 말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다시 당당하게 반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름을 타고 강림하실 것이라고 직접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성육신하신다는 거죠? 성경 말씀을 부정한다는 건가요?” 수잔 자매님은 말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시면 성경 여러 구절에서 주님은 육신을 입고 재림하신다고 예언하신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수잔 자매님이 알려 준 대로 성경 구절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눅 12:40),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눅 17:24~25)
제가 성경 구절을 다 읽자, 수잔 자매님이 말했습니다. “이 예언들에는 모두 ‘인자가 오리라’ 혹은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라고 언급되어 있어요. ‘인자’라고 하면 사람으로부터 나고, 정상적인 인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영체(靈體)의 현현이라면 ‘인자’라 칭할 수 없겠죠. 여호와 하나님은 영(靈)이시기 때문에 ‘인자’라 칭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천사를 본 사람도 있지요. 천사도 영체이기 때문에 ‘인자’라고 할 수 없어요. 사람의 형상이지만, 영체에 속하는 존재는 모두 ‘인자’라고 할 수 없어요.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인자, 그리스도라고 칭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영이 성육신하셨기 때문이고, 육신으로 실제화 되어 보통 사람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하셨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은 인자이시고, 하나님이 입으신 육신이에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오실 때 인자로 오신다고 하신 말씀은 그가 육신으로, 인자의 신분으로 다시 오신다는 것이지 영의 신분으로 다시 오겠다는 뜻이 아니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재림은 바로 성육신의 방식으로 다시 오시는 것을 의미해요. 또 성경에는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라고 했어요. 이건 주님께서 성육신의 방식으로 재림하신다는 점을 더욱 확실히 증명해 주고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만약 주님이 성육신이 아닌 영체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나신다면, 많은 고난을 받을 일도 없고 이 세대에게 버림받는 일도 없을 거예요. 누가 감히 하나님의 영을 버릴 수 있겠어요? 누가 하나님의 영에게 고난을 줄 수 있겠어요? 이렇게 보면 주님께서 성육신으로 재림하실지, 아니면 영체로 재림하실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나요?”
저는 ‘인자’라는 두 글자를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저도 예전에 ‘인자’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지만,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습니다. 수잔 자매님의 설명을 통해 의문이 완전히 풀린 저는 듣는 내내 설렘으로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날은 시간이 너무 늦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만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마쳤습니다. 그날 밤 저는 벅차오르는 감동 때문에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잠이 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오랜 세월 믿어 왔지만 이렇게 좋은 교제는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고, 가슴속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밝았고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다음 날인 3월 12일 제 가슴은 온종일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희망과 알 수 없는 감동으로 두근거렸습니다. 전날 저녁 저는 수잔 자매님과 주로 ‘인자’, ‘성육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인자’와 ‘성육신’을 연관 지을 수 있었고, 예수님께서 바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이론상으로는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육신이 대체 무엇이고, 그리스도는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셨다고 한다면 무엇을 근거로 확신할 수 있는지 등 의문들에 대한 답도 듣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수잔 자매님은 모두 낮에는 일해야 하고 저녁에야 시간을 낼 수 있었기 때문에 하루 종일 시간이 빨리 가기만 바랐습니다.
드디어 저녁이 되었고, 우리는 온라인상에서 만났습니다. 수잔 자매님에게 가장 먼저 한 질문은 ‘성육신이 무엇인지’였습니다. 자매님은 저에게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보내 주면서 읽어 보라고 했고, 저는 그녀 말대로 그 말씀을 읽어 보았습니다. 『성육신이란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난 것을 일컫는다. 즉, 하나님이 창조된 사람들 가운데서 육신의 형상으로 사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육신이라고 하면, 무엇보다 먼저 육신, 그것도 정상 인성을 갖춘 육신이 필요하다. 이것은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것이다. 사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함의는 육신으로 사역하고 육신으로 생활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본질이 육신이 되고 사람이 된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이 거하고 있는 ‘육신’의 본질> 중에서) 『성육신 하나님을 가리켜 그리스도라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며, 이 육신은 육에 속한 그 어떤 사람과도 다르다. 다르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가 육에 속하지 않은, 영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갖고 있으며, 그의 신성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그의 정상 인성은 육신으로 하는 모든 정상적인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신성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하기 위한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중에서)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본질이 있고,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하나님은 성육신한 이상 해야 할 사역을 가져오고,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어떠함을 나타낼 것이며, 성육신한 이상 사람에게 진리를 가져다주고, 생명을 베풀고, 길을 가리켜 줄 수 있다. 하나님의 본질을 갖추지 않은 육신이라면 분명히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다. 이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실하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맞는지 알아보려면 그가 나타내는 성품과 말씀으로 확인해야 한다. 바꿔 말해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맞는지, 혹은 참도가 맞는지 확인하려면 반드시 그의 본질로 판별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인지 아닌지의 핵심은 그 본질(사역, 말씀, 성품 등 훨씬 다양한 측면)에 있지, 겉모습에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서문> 중에서) 이 말씀들은 성육신이란 비밀에 대해 아주 명확하게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성육신 하나님을 가리켜 그리스도라 한다.’라고 했는데, 이렇게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정의가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는 주님을 10년 넘게 믿어 왔지만,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사실만 알고 있었을 뿐, 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하는지에 관한 진리와 그 비밀에 대해서는 이제껏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 자매님이 보내 준 하나님 말씀을 통해 비로소 성육신 하나님을 가리켜 그리스도라 한다는 것과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 성육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곰곰이 묵상해 보았습니다. 묵상할수록 더욱 많은 깨달음이 생겼습니다….
이 말씀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수잔 자매님이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말씀은 진리로, 하나님 자신만이 선포하실 수 있다고도 말해 주었습니다. 자매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언급했을 때 조금 놀라긴 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면 전에 자매님이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교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인터넷에서 이 교회에 대한 소문을 조금 접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천으로서 마땅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진실을 확실히 알기 전까지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경솔하게 결론을 내리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괜히 입으로 죄를 지었다간 하나님의 노여움을 살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또 지난 며칠간 저도 많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수잔 자매님과는 직접 만난 적도 없고 몇 번 대화를 나눈 게 전부지만, 자매님이 교제해 준 진리는 제 의문점을 풀어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누고,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을 읽으면서 수잔 자매님과 치페이 자매님은 모두 꽤 성실하고, 온화하며, 착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두 사람의 교제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서도 그의 열매로 나무를 알고, 좋은 나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두 자매님과 교제하면서 제 마음속 의혹과 경계심은 이미 서서히 사라지고 있던 차였습니다. 저는 수잔 자매님에게 계속해서 교제해 달라고 부탁했고, 수잔 자매님은 교제를 이어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시면 하나님의 선포가 있어요. 즉,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세요. 하나님께서 말세에 성육신하신 것은 진리를 선포하셔서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해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에요. 돌아오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이를 구하고 받아들인 자들은 바로 ‘슬기로운 처녀’로, 주님과 함께 잔치에 참석할 수 있어요. 이것도 역시 예수님의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 25:6)라는 예언대로예요. 주님의 음성을 듣자마자 나와 그분을 맞이한 슬기로운 처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보좌 앞으로 들림 받아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고,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게 돼요. 하나님 심판의 말씀으로 패괴 성품이 변화되고 정결케 되어, 재난 전에 이긴 자로 만들어지는 거죠. 지금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은밀히 사역하시며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는 단계예요. 한 무리의 이긴 자가 얻어지게 되면 성육신 하나님께서 은밀히 강림해 행하시는 사역은 끝이 나게 돼요. 그에 따라 대재난이 내려지면서, 하나님께서는 상선벌악(賞善罰惡)의 사역을 하시죠. 그다음에 만민 앞에 공개적으로 나타나세요. 그때가 되면 계시록 1장 7절의 주께서 공개적으로 강림하신다는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라는 예언도 이루어지는 거예요. 생각해 보면, 주님께서 구름을 타고 공개적으로 나타나신 것을 보게 되면 사람들은 뛸 듯이 기뻐해야 하는데, 성경에는 왜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애곡한다고 했을까요? 그건 바로 하나님께서 공개적으로 나타나실 때면 성육신 하나님이 은밀히 강림해 행하는 구원 사역은 이미 끝이 나고, 상선벌악의 사역을 하시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그때는 하나님의 은밀한 사역을 거부했던 사람들이 모두 구원받을 기회를 완전히 잃게 된 거죠. 그를 찌르던 사람들, 즉 말세 그리스도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고 정죄했던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대적하고 정죄했던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의 재림이라는 사실을 보게 될 텐데, 생각해 보세요, 그들이 어떻게 가슴을 치고 애곡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래서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라는 상황이 되는 거예요.”
자매님의 교제를 들으니 얼마 전 느꼈던 만족과 감동이 다시 한번 밀려왔습니다. 예전 교파의 교회에 다닐 때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성경 구절들이었습니다. 단순히 글귀 상의 뜻만 이해했기에 주님이 다시 오실 때는 구름을 타고 공개적으로 강림하실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먼저 은밀히 강림하셔서 사람을 심판하고 구원하는 사역으로 한 무리의 이긴 자를 만드신 후에야 비로소 만국 만민 앞에 공개적으로 나타나신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이 오실 때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만 고집하고,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은밀한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구름을 타고 공개적으로 강림하시는 그때가 바로 우리가 지옥에 떨어지는 날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엔 이미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끝난 상태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를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지난 시간 수잔 자매님의 교제를 통해 정말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수잔 자매님은 저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을 저의 구주로 삼기를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자매님이 처음 물었을 때 저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재차 묻자, 제 마음속에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 솟구쳤고, 두 눈엔 눈물이 가득 고였습니다. 저는 진지하게 대답했습니다. “네! 원합니다!” 이 말을 했을 때 저는 마치 너무나 오랜 시간 떠돌아다니다 마침내 따뜻한 집으로 돌아온 탕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너무나 기쁘고, 너무나 편안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후, 저는 수잔 자매님의 게시 글을 제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공유해 주었는데, 5~6명의 친구로부터 정신 좀 차리라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공격하고 비방하는 내용이 담긴 인터넷 링크를 몇 개 보내 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탄의 방해임을 알았기 때문에 제 마음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한 목사님과 온라인상에서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나요? 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나요?” 이 말을 들은 저는 화가 나서 그에게 반문했습니다.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분께서 선포하신 말씀은 모두 진리이고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게 됐어요. 왜 제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안 되는 거죠? 왜요?” 목사님은 제가 이렇게 되물을지 예상을 못 했던지 한동안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이렇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 대해 알아보셨나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본 적은 있으신가요? 목사님으로서 왜 하나님의 사역을 구하고 알아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판단하고 정죄하시죠?” 그는 우물쭈물거리며 대답을 못 하다가 서둘러 대화방을 나갔습니다. 난처해하는 목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마치 사탄의 시험에서 승리를 거둔 것 같은 쾌감이 느껴졌습니다. 사실 저는 그저 수잔 자매님과 평소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살짝 응용해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에 대해 제가 깨달은 바를 조금 말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명색이 목사라는 분이 제가 던진 질문에 말문이 막혀 버린 것이었습니다. 이 작은 체험은 저에게 매우 큰 믿음을 심어 주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5개월이란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며, 저는 무엇이 성육신인지, 어떤 사람이 비로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 등 여러 측면에 대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목회자들이 퍼뜨리는 수많은 헛소문에 교란도 당했었고, 가끔 사탄의 간계를 간파하지 못해 소극적이고 연약해진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한시도 저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자매님들은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고, 인내심 있게 진리를 교제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진리를 증오하고 하나님께 대적하는 목회자들의 사탄 본성 및 본질, 그리고 신자들이 참도를 찾고 구하지 못하도록 온 힘을 다해 막는 그들의 비열한 목적을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그들에게 미혹되거나 흔들리지 않게 되었고, 사탄의 흑암 세력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들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자 축복이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제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예정하고 안배해 놓으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굳건하게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와 처음 배우게 된 찬양이 바로 <인생의 바른길 가리> 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모두 진리, 볼수록 마음이 환해지네. 말씀으로 인생 비밀 밝혀 주어 날 깨닫게 하셨네.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에게서 내 모든 것 얻었네. 그리스도 따라 진리 생명 추구하여 인생의 바른길 들어섰네. …』(≪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 중에서) 현재 저는 교회에서 형제자매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