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집으로 돌아오다
『하나님의 차고도 넘치는 사랑이 아무 대가 없이 주어져 사람을 에워싸고 있다. 사람은 순진무구하고 근심 걱정 없이 하나님의 눈앞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 네가 양심과 인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너는 따스함을 느낄 것이고 하나님의 염려를 느낄 것이며,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것이고, 행복을 느낄 것이다.』(<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ㆍ사람을 향한 하나님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가> 중에서) 하나님 말씀 찬양을 부를 때마다 저는 가슴속에 벅차오르는 감동을 억누를 수가 없습니다. 지난날, 제가 하나님을 멀리하고 거역하며, 길 잃은 어린 양처럼 집으로 돌아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저를 멀리하지도 버리지도 않으시며 사랑으로 인도하여 하나님 집으로 돌아오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주 안의 형제자매들, 그리고 아직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못한 친구들에게 하나님 집으로 돌아오게 된 제 체험을 이야기해 드리려 합니다.
어렸을 적, 저희 부모님은 걸핏하면 싸움을 했고, 저는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중학교를 졸업했을 때 어머니가 이웃의 전도로 예수님을 믿게 되어 저도 함께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저는 하나님이 창조주시며, 인류를 죄에서 구속하시고자 친히 육신을 입고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의 속죄 제물이 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실로 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고무된 저는 열심히 주님을 믿어 주님의 사랑에 보답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제 인생에는 방향과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늘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읽고 주님을 찬미하면서 조금씩 행복을 느꼈습니다. 특히 주님이 말세에 구름 타고 오셔서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실 거라는 성경 구절을 읽을 때는 마음이 기대로 부풀어 올랐습니다. 목사님도 예배 때마다 우리에게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라는 성경 구절을 해석해 주었기에, 저는 예수님이 흰 구름을 타고 오셔서 우리를 하늘 집으로 데려가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2005년, 저는 한국인 남자 친구를 만나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데다가 화교 교회를 찾지 못해 영적으로 연약해졌고, 어느새 하나님과도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남자 친구와는 결혼을 했지만, 문화적 간극을 좁히지 못해 얼마 안 가 이혼했습니다. 저는 실패로 끝난 결혼 생활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고,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친척도 친구도 없는 이국 타향에서 외로움까지 느껴야 했지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마음속 고충을 털어놓고, 화교 교회를 찾아 하나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고 구하는 것뿐이었습니다.
1년 후, 마침내 장로 교회의 화교 예배부를 찾은 저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다시 교회에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게 됐다 싶었지요.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그곳 목사님의 예배는 늘 성경 구절을 읽어 주고, 글귀상의 표면적 의미를 설명하는 데 그쳤습니다. 거기에서는 조금의 빛도, 누림도 얻을 수 없었고, 생명 공급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예배는 형식만을 따랐습니다. 예배 시간에 귓속말을 속닥거리는 사람도 있었고,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꾸벅꾸벅 졸거나 이성 친구를 물색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찰싹 달라붙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저는 ‘교회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성전이야. 그런데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으니, 하나님이 이런 우리를 얼마나 혐오하실까! 이렇게 부정한 곳은 주님께 버림받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지만 목사님과 전도사님은 그런 광경을 못 본 양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렇듯 사악한 세상 속 타락의 온상에서 살면서 조금씩 방탕해졌습니다. 한가할 때면 늘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갔지요. 제게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면모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이 주님에게서 멀어질 때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마 12:43~45)라는 주님의 말씀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이 말씀이 저를 단속하고, 또 지켜 준 덕분에 주님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지거나 지나치게 선을 넘는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노를 사서 주님께 혐오받고 버림받아 더러운 귀신의 손에 떨어질 것이 두려웠으니까요.
2016년 크리스마스 때, 교회에서는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끼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공연을 맡겼습니다. 그때 처음 보는 자매님 한 명이 무대에 나와 찬양을 불렀습니다. 『성경 속의 한 장면 ‘아담에 대한 하나님의 당부’는 감동적이고 따뜻하다. 그림에 하나님과 사람만 담겨 있지만, 그 관계는 너무나 친밀하고 사람의 부러움을 자아낸다. 1. 하나님의 차고도 넘치는 사랑이 아무 대가 없이 주어져 사람을 에워싸고 있다. 사람은 순진무구하고 근심 걱정 없이 하나님의 눈앞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염려하고,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 살고 있다. 사람의 모든 언행은 하나님과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2.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한 그 순간부터 인류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 그 책임은 무엇일까? 사람을 보호하고 보살피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그의 말씀을 믿고 따르기를 바랐는데, 이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첫 번째 바람이기도 하다. 3. 하나님은 그런 바람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이 단순한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고, 하나님의 마음이 이미 사람을 염려하기 시작했음을 드러내고 있다. 4. 이 단순한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마음에 사랑이 있지 않으냐? 염려가 있지 않으냐? 하나님의 사랑과 염려를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것들이 절실히 와닿을 것이다. 네가 양심과 인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너는 따스함을 느낄 것이고 하나님의 염려를 느낄 것이며,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것이고, 행복을 느낄 것이다. 5. 이런 느낌을 받을 때 너는 하나님을 어떻게 대할까? 하나님을 그리워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을 경애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겠느냐? 네 마음은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겠느냐?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이해하는 것은 더더욱 중요하다!』(<어린양을 따르며 새 노래 부르네ㆍ사람을 향한 하나님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가> 중에서)
한 구절 한 구절 그녀의 찬양을 들으며 제 심장 박동은 빨라졌고, 감동의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 속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고, 하나님께 사랑받으며 공기와 햇빛, 물 등 하나님이 주신 만물을 누리고 있는 것 같았지요. 세상 모든 것에 하나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누리면서도 제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속상하셨을까요? 특히 “네가 양심과 인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너는 따스함을 느낄 것이고 하나님의 염려를 느낄 것이며,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것이고, 행복을 느낄 것이다.”라는 가사를 들었을 때, 저는 하나님이 제 마음과 영을 부르고 계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2007년, 남편과 갈라져 돌아갈 곳이 없어졌을 때, 하나님은 저를 위해 외국인 이주 여성 보호 센터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곳에서 무료로 숙식을 제공받았고, 변호사도 소개받아 경제적인 부담 없이 이혼 수속을 마칠 수 있었지요. 또 귀화 절차 때 보증인이 필요했을 때도 하나님은 장로 교회를 예비해 주시고, 예배부의 부장님을 감동시켜 보증인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한국인은 웬만해선 보증을 잘 서 주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당시의 저는 외국인인 데다가 그 교회에 서너 번 걸음을 한 게 다였습니다. 그런 제가 보증인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저를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밖에도 귀화를 하려면 3,000만 원 상당의 본인 소유 부동산이 있어야 했지만, 당시 저는 3,000만 원은 고사하고 300만 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출입국 사무소 직원이 회사에서 재직 증명서를 받아와 한국에서 먹고 살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면 된다고 말해 주어 곤란한 상황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제가 가장 도움이 필요할 때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은 다 하나님의 주재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토록 넓고도 깊었건만, 저는 너무도 패역하여 오래전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한없이 아프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 찬양이 제 마음과 영혼을 울려 처음 믿음을 되찾고, 더는 타락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습니다.
2017년 2월 19일, 저는 머리와 눈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병원에 갔지만 상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교회의 이 자매님이 한의사 친구를 소개해 주며 일주일만 치료하면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라고 해서 그녀와 함께 치료를 받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병원에서 한의사의 친구인 김 형제님을 만났습니다. 한의원에서 주 안의 형제를 만나다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지요. 저는 이 또한 하나님의 안배라고 생각하고, 김 형제님과 함께 성경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김 형제님은 ‘열 처녀의 비유’를 읽어 준 후 제게 물었습니다. “자매님, 자매님은 주님이 돌아오시기를 바라십니까?” 제가 “물론이지요!”라고 대답하자 그는 또 “그럼 주님이 어떻게 돌아오실 것 같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망설임 없이 “구름을 타고 돌아오신다고 성경에 나와 있잖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사실 주님은 이미 돌아오셨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되물었습니다. “마가복음 13장 32절을 보면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라고 나와 있잖아요? 아무도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는데 이미 돌아오셨다니, 형제님은 그걸 어떻게 아셨나요?” 김 형제님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주님의 재림과 관련된 성경의 예언을 몇 구절 찾아 보여 주었습니다.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눅 12:40)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눅 17:24~26)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김 형제님은 성경 구절들을 읽은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깨어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시점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예언에는 주님이 인자의 모습으로 돌아오신다고 나와 있습니다. ‘인자’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다는 것, 다시 말해 성육신하신다는 의미지요. 우리는 주님이 오시는 정확한 시간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으로 그분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니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아듣고 그분을 따르게 되지요….” 하지만 그때, 예수님이 성육신으로 돌아오셨다고 증거하는 사람은 모두 가짜라고 했던 목사님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러자 더 이상 김 형제님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목사님한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목사님, 주님이 성육신으로 돌아오셨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 사람은 어느 교회 소속일까요?’ 목사님은 그들이 ‘동방번개’ 사람들이라며, 더 이상 그들과 접촉하지도, 그들이 주는 책을 보지도 말고 얼른 빠져나오라고 했습니다. 또 이단을 경계하라는 내용도 보내 주었습니다. 목사님의 말이 당연히 맞을 거라고 생각한 저는 더 이상 그들의 교제를 듣거나 그들에게 신경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20일 오후, 뜻밖에도 김 형제님이 여동생과 함께 제가 다니는 한의원을 찾아와 주님의 재림 사역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날 오전에 중국에 계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데다가 그들이 하는 말에 의구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뭐라고 말하든 귓등으로 듣고 흘렸습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는데도 김 형제님은 제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저는 짜증이 나서 그를 쫓아내며 말했습니다. “이제 그만 하세요. 더는 듣고 싶지 않으니까. 계속 여기 계시겠다면 제가 가겠어요!” 김 형제님은 들으려 하지 않는 저를 보며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저는 그가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다음날 정 형제님이라는 사람과 함께 찾아와 계속 복음을 전하려 했습니다. ‘왜 이렇게 끈질긴 거야?’라고 생각한 저는 상대방의 체면을 생각해 적당히 응대해 줄 뿐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냉랭한 제 태도에도 불구하고 정 형제님은 인내심 있게 말했습니다. “주님은 이미 성육신으로 인간 세상에 오셔서 형벌과 심판 사역을 하셨습니다….” 귀찮아하지 않고 인내와 사랑으로 이야기하는 그를 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우리 교회 사람들은 다 연약해. 믿음도, 사랑도 없지. 그런데 ‘동방번개’를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큰 믿음과 사랑을 갖고 있는 걸까? 지치지도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이런 힘은 어디에서 온 거지? 성령 역사 없이 사람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야!’
당시 양 형제님도 저와 함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제가 시큰둥한 태도로 일관한 데 비해 그는 열심히 알아보고 살폈지요. 양 형제님은 예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복음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거부했다며, 그러다 이번에 다시 복음을 듣게 되자 하나님이 주신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제대로 알아보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목사님의 말만 듣고 겸허히 구하지 않는 저를 보며 마태복음 5장 3~6절을 찾아 보여 주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저는 주님의 말씀을 보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습니다. ‘나는 왜 주님 앞에서 마음을 평온히 하고 구하지 못하는 걸까? 주님이 정말 돌아오셨는데 이렇게 듣지도 알아보지도 않다가 버림받는 것 아닐까? 겸손한 자세로 더는 내 상상에 따라 맹목적으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돼.’ 그런데 제가 마음을 잡고 제대로 알아보기로 결심했을 때, 교회의 전도사님이 전화를 걸어 아직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사람들과 같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전도사님은 그들과 가까이하지 말라고 다시 한번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 말에 제대로 알아보려고 했던 마음이 다시 사라졌습니다. ‘목사님과 전도사님은 나보다 성경에 대해 잘 알고 있어. 그런데 그분들은 주님의 재림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 나는 성경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분별력도 부족하니까 목사님과 전도사님의 말을 듣는 게 좋겠어.’라고 생각한 저는 전화를 끊고 정 형제님에게 말했습니다. “양 형제님은 알아보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두 분이 말씀 나누세요. 저는 안 듣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또 한 번 고집을 부리며 하나님의 구원을 거부했습니다.
일주일간의 치료가 끝나고 저는 다시 회사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으로 슬픔과 고통,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매일 퇴근하고 집에 가면 어머니의 사진을 보며 말을 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저는 주님을 믿는 사람이니, 어려운 일이 있거나 연약해질 때면 주님께 털어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주님 앞으로 나아가 기도하며 위로해 달라고 구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도해도 마음에 감동이 없었고, 때로는 기도하다가 잠이 들기도 했습니다. 당시, 저는 매일 두려움과 불안감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등 뒤에서 기척이라도 느껴지면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에 떨곤 했지요. 두려움과 무력감 속에서 저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지금 제 마음은 너무도 어둡고 불안하며 두렵습니다. 제가 뭔가 잘못한 것일까요? 주님! 며칠 전에 당신이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돌아오셨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주님! 정말 돌아오셨다면, 당신이 바로 그들이 말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면 시간을 안배하고 적절한 환경을 예비하셔서 양 형제님이 제게 전화를 하거나 메시지를 보내게 해 주십시오. 그들이 다시 한번 저를 찾아 준다면, 그들에게 무슨 말을 듣든 순종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당신의 새로운 사역과 말씀을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당신의 사역이 아니라면, 그들이 전하는 도가 사람을 미혹하는 거짓된 것이라면, 그들의 발걸음을 막아 다시는 저를 찾아오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놀랍게도 이렇게 기도하고 나자 하나님이 제 기도대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양 형제님이 정말 전화를 걸어 준 것입니다. 저는 지난 며칠 동안의 상황을 그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제가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거역했기에 마음이 어두워진 것이라며 계속 알아보라고 했고, 저는 더 이상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양 형제님이 복음 영화 한 편을 보내 주었는데, 그 영화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지 사람의 말을 들어선 안 됩니다.”라는 대사를 보며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 내가 믿는 분은 하나님이야.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해! 그동안 나는 김 형제님과 정 형제님이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전해 줄 때마다 목사님한테 물어보고, 목사님과 전도사님의 말만 들었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행하신 새 사역을 제대로 알아보거나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았어. 주님을 믿으면서 주님께 기도로 구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목사님과 전도사님의 말만 들었으니, 너무도 어리석은 것 아니겠어? 성경에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라고 나와 있잖아. 하지만 나는 주님을 믿으면서 주님께 순종하지 않고 사람에게 순종했어. 그러니 사람을 믿고 따른 것 아니겠어? 주님을 대적하고 배반한 것 아니겠냐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정말 돌아오신 예수님이라면, 이렇게 거역하고 대적하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거부한 건 너무도 눈멀고 어리석은 행동 아닐까? 주님을 문전 박대한 것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하자 후회로 코끝이 찡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주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당신이 말세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성육신하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감히 믿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당신 앞에 나아가 찾고 구하고자 합니다. 그러니 당신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저를 깨우쳐 주십시오. 당신이 정말 돌아오셨다면, 그리고 당신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저는 당신께 회개하고 당신의 사역과 구원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제가 당신 앞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기도를 마치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위안이 찾아왔습니다. 그건 오랫동안 느껴 보지 못한 감정이었습니다. 저는 주님이 제 기도에 귀 기울이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저에 대한 주님의 위안이자, 제게 주신 증거였습니다. 저는 당장이라도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가서 알아보고 싶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자매들에게 잘못한 일을 떠올리자 차마 그곳에 찾아갈 면목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양 형제님이 다시 전화를 걸어 시간이 있으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 대해 알아보는 게 어떠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고민을 털어놓자 그는 “괜찮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모두 한 가족이잖아요.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을 거예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양 형제님의 말에 저는 하나님께서 제 부족함을 헤아리고 계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바로 양 형제님과 함께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형제자매들은 길을 잃고 헤매던 제가 돌아온 것을 보고 무척 기뻐하며, 예수님이 이미 돌아오셔서 진리를 선포하고, 말세에 하나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 사역을 행하셨다고 증거해 주었습니다. 또 하나님이 말세에 성육신으로 사역하시는 의의와 인류 구원에 대한 성육신의 중요성 등에 대해서도 교제해 주었습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이적을 보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분명 멸망될 부류이며, 육신으로 돌아온 예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은 분명 지옥의 자손, 천사장의 후손, 영원히 멸망될 부류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내 말을 마음에 두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예수를 따르는, 이른바 성도라고 하는 모든 이에게 말해 주겠다. 흰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강림하는 예수를 너희 육안으로 직접 보게 될 때는 공의로운 해가 공개적으로 나타난 때이다. 그때 네 마음은 몹시 흥분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는 알고 있느냐? 예수가 하늘에서 강림하는 것을 보게 될 때는 네가 지옥으로 떨어져 징벌을 받아야 할 때이고, 하나님의 경륜이 끝났다고 선고될 때이며, 하나님이 상선벌악(賞善罰惡)할 때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이 이적을 보기 전 진리만 선포되었을 때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이적을 좇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여 정결케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와 창조주의 품속에 안기게 될 것이다. 하지만 ‘흰 구름을 탄 예수가 아니라면 거짓 그리스도이다’라는 신념을 고집하는 자들은 영원한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그들이 이적을 행하는 예수만을 믿고, 준엄한 심판을 선포하고 생명의 참도를 전하는 예수는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예수가 공개적으로 흰 구름을 타고 돌아올 때 그들을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그들은 너무나 완고하고 너무나 교만하며 자신을 과신하는데, 그런 인간 말종들이 어찌 예수에게 상을 받을 수 있겠느냐? 예수의 재림은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크나큰 구원이고,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에게는 정죄받는 기호가 될 것이다. 너희는 자신의 길을 택해야 한다. 성령을 모독하거나 진리를 저버리는 일을 하지 말고, 무지하고 교만한 사람이 되지 말며,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고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또 최근 형제자매들이 교제하고 증거해 준 진리를 곰곰이 되새기며, 저는 말세에 주님이 돌아오시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 가지는 은밀히 강림하시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공개적으로 강림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전능하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행하시는, 하나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 사역은 바로 은밀히 강림하여 행하시는 사역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육신으로 세상에 오셨기에 겉모습은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 같아 아무도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분의 진정한 신분을 아는 사람도 없었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은밀한 것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알아보고 받아들이며 따를 수 있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10:27)라는 예수님 말씀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알지 못한 사람들은 성육신한 하나님을 평범한 사람으로 여겨 부정하고 대적하며 하나님 따르기를 거부할 것입니다. 지난날, 유대교의 바리새인들처럼 예수님을 보고도 눈이 멀어 주님의 신분을 알지 못하고 정죄한 것과 다를 바 없지요. 지금은 하나님이 은밀히 사역하시는 단계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말씀을 선포하시어 사람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고 온전케 하시며, 재난 전에 한 무리의 이기는 자들을 만드십니다. 이기는 자들이 만들어지면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은밀히 강림하셔서 행하시는 사역은 끝나고 대재난이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상선벌악하시며 만국 만민에게 공개적으로 현현하시지요. 그렇게 되면 주님이 공개적으로 강림하신다는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 24:30),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계 1:7)라는 성경 말씀처럼 말입니다. 이는 주님이 구름을 타고 강림하실 때 모든 족속이 애곡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깨닫고 나자 마음이 밝아졌습니다. 저는 주님이 은밀히 강림하셔서 행하시는 사역이 우리에게 더없이 큰 구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님이 은밀히 사역하시는 동안 그분의 말씀 심판을 받아들여야만 정결케 되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주님이 공개적으로 구름을 타고 임하실 때 주님을 대적한 사람이 되어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후회해 봤자 아무 소용 없겠지요. 전능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이 이적을 보기 전 진리만 선포되었을 때 이미 끝났다.”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비밀을 열고 각 부분의 진리를 분명히 밝혀 준 덕분에, 저는 시야를 넓히고 진심으로 신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시간 맞춰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형제자매들과 함께 하나님이 말세에 선포하신 말씀을 나누었으며,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제작한 찬양, 뮤직비디오, 하나님 말씀 낭송 동영상, 복음 영화 등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새로운 수확을 얻어 무척이나 행복했습니다. 특히 복음 영화에서 형제자매들은 각각의 문제를 매우 자세하고 분명하게 교제해 주었기에 오랫동안 주님을 믿으면서 풀리지 않았던 의문점과 궁금증들을 하나하나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 확실히 성령 역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돌아오신 예수님이셨습니다! 더 감격스러웠던 것은 교회에 나간 지 3일째 되던 날, 2016년 크리스마스 무대에서 찬양을 부르던 그 자매님을 만난 일이었습니다. 그녀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것이었지요. 정말이지 하나님께 감사드릴 일이었습니다.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고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신 덕분에 광야에서 아름다운 가나안 땅,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와 얼굴을 마주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생명 말씀의 공급을 누리게 되었으니까요!
제가 하나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인솔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형제자매들이 참을성 있게 하나님 말씀을 교제해 주지 않았더라면, 패역한 본성을 지닌 제가 어떻게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수 있었겠습니까? 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실로 너무나 커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저는 찬양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미하고, 흔들림 없이 그분을 따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