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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신적 본질에 대해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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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스도의 신적 본질에 대해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성경 참고: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요 14:6~7)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 14:10~11)

관련된 하나님 말씀:

『이런 일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우리 각 사람이 먼저 알아야 할 진리는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본질이 있고,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한 이상 해야 할 사역을 가져오고, 하나님이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어떠함을 나타낼 것이다. 성육신한 이상 사람에게 진리를 가져다주고, 생명을 베풀고, 길을 가리켜 줄 수 있다. 하나님의 본질을 갖추지 않은 육신이라면 분명히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다. 이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실하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맞는지 알아보려면 그가 나타내는 성품과 말씀으로 확인해야 한다. 바꿔 말해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인지 혹은 참도인지 확인하려면 반드시 그의 본질로 판별해야 한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입은 육신인지 아닌지의 핵심은 그 본질(사역, 말씀, 성품 등 훨씬 다양한 측면)에 있지 겉모습에 있지 않다는 말이다. 겉모습을 살피느라 그 본질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사람이 무지몽매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서문> 중에서

『하나님을 알려면, 반드시 하나님 말씀을 보고 깨달아야 한다. 어떤 자는 “저는 성육신 하나님을 만나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알아 가야 하나요?”라고 말한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하나님 성품의 발현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그리고 사람을 구원하는 방식 등을 볼 수 있다. 말씀은 사람을 통해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포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직접 선포한 것으로, 하나님 자신이 자신의 말씀과 마음의 소리를 선포한 것이다. 왜 마음의 소리라 하겠느냐? 마음 깊은 곳에서 선포되어 나온 말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성품과 뜻, 생각과 함께 인류에 대한 사랑과 구원, 기대 등을 선포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중 어떤 말씀은 엄격하고, 어떤 말씀은 따뜻하고, 어떤 말씀은 자상하며, 어떤 말씀은 사람의 뜻에 맞지 않게 폭로한다. 만약 폭로하는 말씀만 보면 하나님이 매우 엄격하다고 느낄 것이고, 따뜻한 말씀만 보면 큰 권병이 없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말씀의 일부만 보고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여러 입장에서 말씀을 봐야 한다. 때로 하나님이 따뜻하고,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입장에서 말씀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된다. 그러다 엄격한 입장에서 말씀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은 거스를 수 없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사람이 더럽기 짝이 없어 하나님 얼굴을 볼 자격도, 그 앞에 올 자격도 없지만, 지금 이렇게 하나님 앞에 오게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 덕분임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사역 방식과 의의에서 하나님 지혜의 일면을 보게 되는데, 사람이 하나님과 직접 만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런 것들을 볼 수 있다. 진실로 하나님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접할 때 자신의 인식과 맞을 것이다. 만약 그에게 도리상의 인식만 있다면 하나님을 접했을 때 자신의 인식과 맞지 않을 것이다. 이 부분의 진리는 가장 심오한 비밀이어서 측량하기가 쉽지 않다. 성육신의 비밀과 관련된 하나님 말씀을 종합해서 각각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이 부분의 진리에 대해 다 같이 많이 기도하고 묵상하고 교제하면 성령의 깨우침으로 알게 될 수도 있다. 사람은 하나님을 접할 기회가 없으므로 이렇게 조금씩 체험해서 찾고 진입하여 하나님을 진실로 알아 가야 한다.』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어떻게 성육신 하나님을 알 것인가> 중에서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는 과정은 하나님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나는 것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체험할수록 하나님의 영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체험을 통해 영의 사역 원칙을 더듬으면서 실제 하나님 자신을 알게 된다. 사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을 얻는 것은 사람이 실제 하나님의 행사를 인식하게 하는 것이자 실제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 성육신의 실제적 의미를 알게 하고 하나님의 영이 실제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음을 보게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제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 중에서

『비록 성육신 하나님이 겉으로는 사람과 다르지 않고, 사람의 지식을 배우고 사람의 언어를 쓰며, 심지어 사람의 방식과 화법을 빌려 그의 뜻을 표현할 때가 있을지라도, 그가 인류를 대하고 일을 바라보는 시각은 패괴된 인류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게다가 그는 패괴된 인류라면 누구도 닿을 수 없는 위치와 차원에서 사물을 바라본다. 하나님은 진리이기 때문에 그가 입고 있는 육신도 마찬가지로 하나님 자신의 본질을 갖추고 있으며, 그의 생각과 인성이 나타내는 것 역시 진리인 것이다. 패괴된 인류에게 있어, 하나님의 육신이 선포하는 것은 다 진리의 공급이자 생명의 공급이고, 이는 특정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 인류를 향한 공급이다. 패괴된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관련된 몇몇 사람만을 마음에 수용할 수 있고,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걱정하는 이도 단지 몇몇뿐이다. 재난이 닥치면 먼저 자기 집의 아이들과 배우자, 부모만을 생각한다. 비교적 ‘넓은 사랑’을 가진 사람도 고작 어느 친척이나 친한 친구를 생각할 뿐이다. 이보다 더 많은 이를 떠올릴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사람의 위치와 차원에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입은 육신은 패괴된 인류와 완전히 다르다. 그 육신이 아무리 평범하고 정상적이며 보잘것없어 보여도, 심지어 사람의 멸시를 당해도, 그의 마음과 인류에 대한 태도는 그 어떤 사람도 갖출 수 없고 모방할 수도 없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위치에서, 창조주의 차원에서 인류를 관찰하고, 하나님의 본질과 마음으로 인류를 대한다. 그는 절대 평범한 사람의 차원에서, 패괴된 사람의 관점으로 인류를 대하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의 안목으로, 사람의 지식과 규칙, 학설 등을 평가 기준으로 인류를 바라본다. 이런 것은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고 패괴된 인류가 이를 수 있는 범주이다. 하나님이 인류를 볼 때는 하나님의 시각과 본질, 소유와 어떠함을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이 범주는 사람이 볼 수 없는 범주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입은 육신과 패괴된 인류의 확연히 다른 점이다. 이 차이는 각자의 본질로 말미암아 결정된 것이고, 본질의 차이는 각자의 신분과 지위, 사물을 대하는 관점과 차원을 결정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에게서는 인류가 특정 사물에 대해 갖는 견해와 비슷한 점을 전혀 찾아볼 수 없고, 하나님이 인류의 관점이나 지식, 과학, 철학, 상상으로 일을 처리하는 모습은 더더욱 찾아볼 수 없다. 반대로 하나님이 행하거나 나타낸 모든 것은 진리와 관련이 있다. 즉, 하나님이 한 모든 일은 진리와 관계가 있다. 그 진리는 터무니없이 상상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진리와 말씀은 하나님의 본질과 생명으로 인해 발현된 것이다. 그런 말씀과 하나님이 행한 일들의 본질이 진리이므로 하나님의 본질은 거룩하다고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모든 행사와 말씀은 사람에게 생기와 빛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사람에게 긍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의 실제를 보게 하고 길을 알려 줘 바른길을 가게 한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거룩함의 본질에 의해 결정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5> 중에서

『지금 내가 폭로하는 말들은 전부 사람의 패괴 성품 아니더냐? 너의 생각과 마음가짐, 그리고 네가 드러내는 모든 것들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과 거룩함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똑같이 더러운 땅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조금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았고, 똑같이 더러운 세상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이성과 식견을 갖추었다. 그는 더러운 것을 혐오하며, 너의 언행과 너 자신이 알아채지 못하는 더러운 것까지 모두 발견하고 짚어 줄 수 있다. 오늘날, 네가 지닌 낡은 것들, 교양도 식견도 이성도 없는 모습과 낡아 빠진 생활 방식들을 하나님은 전부 폭로하며 드러내고 있다. 하나님이 이 땅에서 이렇게 사역하기에 사람은 그의 거룩함과 공의로운 성품을 보게 된 것이다. 그는 너를 심판하고 형벌하여 인식하게 한다. 그는 인간의 본질을 훤히 꿰뚫고 있기에 네게서 마귀의 본성이 드러날 때 그것을 짚어 줄 수 있다. 그도 밥을 먹고 사람이 사는 집에서 사는 등 너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너보다 훨씬 아는 것이 많다. 하지만 사람의 처세 철학이나 간사함, 교활함은 그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것들을 혐오하며 상대하기 싫어한다. 특히 그는 사람의 육적인 왕래를 증오한다. 그는 인간관계에 대한 상식들은 잘 모르지만 사람의 패괴 성품이 일단 드러나면 정확하게 알아챈다. 그는 사람의 이러한 것들에 대해 말씀하고 가르침을 주는 사역을 한다. 또한 이러한 것을 통해 사람을 심판하며, 그의 공의롭고 거룩한 성품을 보여 준다. 이렇게 사람은 하나님 사역의 부각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으로 인해 사람의 각종 패괴 성품과 사탄의 모든 추한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다. 너는 너무도 더럽기 때문에 벌하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부각시키는 역할만 하게 해도 저절로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는 사람이 드러낸 것을 대상으로 말씀하며, 사람에게 있는 것들을 다 폭로한다. 그래야 사람이 하나님의 지극한 거룩함을 알게 된다. 그는 사람에게 있는 더러움 한 점까지도 놓치지 않으며, 나아가 사람 마음속의 더러운 생각이나 그의 뜻에 맞지 않는 언행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그의 말씀 앞에서는 어떤 존재의 더러움도 남김없이 전부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럴 때 너는 비로소 그가 사람과는 확실히 다르며, 사람에게 존재하는 아주 작은 더러움까지 그가 극도로 혐오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가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해 “하나님은 왜 늘 화만 내십니까? 왜 사람의 연약함을 봐주지 않으십니까? 왜 사람을 조금도 용서해 주지 않으십니까? 왜 이리도 매몰차십니까? 인간이 얼마나 패괴되었는지 다 아시면서 왜 이렇게 대하시는 겁니까?”라고 말한다. 그는 죄를 혐오하며 증오하기에 네게 조금이라도 패역이 있으면 그것을 극히 혐오한다. 네가 패역한 성품을 보이는 즉시 그는 극도의 혐오감을 느낀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 그의 성품과 어떠함이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에 너 자신을 비춰 본다면 비록 그가 사람과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것을 누리며 사람과 함께 생활하고 일상을 보낼지라도 사람과는 같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각물의 의의 아니겠느냐? 사람의 이런 것들로 하나님의 큰 능력을 부각하고, 어둠으로 빛의 소중함을 부각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두 번째 정복 사역은 어떻게 성과를 거두는가> 중에서

『그는 사람의 본질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고 있어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의 다양한 행동을 모두 들춰낼 수 있으며, 사람의 패괴 성품과 패역 행위는 더욱 잘 들춰낼 수 있다. 세상 사람들 속에서 생활하지 않지만 일반인의 본성과 세상 사람의 모든 패괴를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어떠함이다. 그는 세상을 겪어 보지 못했지만, 세상살이에 관련된 작은 것까지 잘 알고 있다. 사람의 본성을 다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고, 사람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영의 역사를 알 수 있으며, 현재나 과거의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여기에는 처세 철학이 아닌, 지혜와 사람이 측량할 수 없는 기묘함이 담겨 있다. 이것은 그의 어떠함으로, 사람에게 공개되기도 하고, 숨겨져 있기도 하다. 그가 나타내는 것은 비범한 사람의 어떠함이 아니라 영의 고유한 속성과 어떠함이다. 그는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지 않았지만 천하의 일을 모두 알고 있다. 그는 지식도, 식견도 없는 ‘유인원’들을 접했지만 지식보다 뛰어나고 위인보다 고매한 말씀을 선포한다. 또 그는 인성이 없고 인성의 상규와 인성 생활을 모르는 어리석고 무감각한 사람들 속에서 살지만, 인류에게 정상 인성으로 살 것을 요구할 수 있고, 동시에 인류의 비열하고 천박한 인성을 들춰낸다. 이 모든 것은 그의 어떠함으로, 육에 속하는 그 어떤 사람의 어떠함보다도 높다. 그는 복잡하고 번거로우며 불결한 사회생활을 체험하지 않아도 그가 해야 할 사역을 충분히 할 수 있으며, 패괴된 인류의 본질을 남김없이 들춰낼 수 있다. 불결한 사회생활은 그의 육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의 사역과 말씀은 사람의 패역을 들춰내기만 할 뿐, 사람에게 처세 경험이나 교훈을 공급하지는 않는다. 그는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때, 사회 조사도, 사람의 가정 조사도 할 필요가 없다. 그가 사람을 들춰내고 심판하는 것은 그의 육신이 체험한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사람의 패역을 알고 인류의 패괴를 증오했기에 사람의 불의를 들춰내는 것이다. 그가 하는 사역은 다 사람에게 그의 성품을 공개하고, 그의 어떠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사역은 그 자신만이 할 수 있으며, 육에 속한 사람이 다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한 사역을 놓고 보면 사람은 그가 어떤 부류의 사람이라고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그가 행한 사역을 놓고 보나, 그의 어떠함을 놓고 보나 사람은 그를 피조된 인간으로 분류할 수 없어 비인류로 분류시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또 어떤 유형에 해당하는지 몰라 ‘신’으로 분류했다. 사람의 이런 행동이 이치에 어긋난 것은 아니다. 이는 그가 사람들 가운데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수많은 사역을 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사람의 사역> 중에서

『하나님 자신에게는 패역의 성분이 없으며, 하나님의 본질은 선하다. 그는 모든 아름다움과 선함을 나타내고 또한 모든 사랑을 나타낸다.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거역하는 일을 할 수 없고, 희생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감수하며 다른 선택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하나님께는 독선적이거나 자만하는 성분이 없고, 교만하거나 교활한 성분도 없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들은 모두 사탄에게서 비롯된다. 사탄은 모든 추함과 악함의 근원이다. 사람에게 사탄과 같은 속성이 생기게 된 것은 사탄에 의해 패괴되고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사탄에 의해 패괴되지 않았으므로 그에게는 사탄의 속성이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속성만 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생활할 때 사역이 아무리 어려워도, 그의 육신이 아무리 연약하더라도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방해하는 일을 하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는 패역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는 육신이 고통받을지언정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위배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이는 예수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것과 같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선택이 있지만 그리스도에게는 자신의 선택이 없다. 비록 그리스도는 하나님 자신의 신분을 가지고 있지만 육신의 위치에 서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 아버지가 준 사명을 완수한다. 이는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중에서

『우리는 어느새 이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이끌려 하나님 사역의 절차 속으로 한 단계씩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는 수많은 시련과 채찍질, 그리고 죽음의 시험을 겪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롭고 위엄 있는 성품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누렸으며, 하나님의 크나큰 능력과 지혜를 깨달았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절실한 마음도 보았다. 이 평범한 사람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을 알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으며, 또한 사람의 본성과 본질도 알았고, 구원받고 온전케 되는 길을 보게 되었다. 그의 말씀은 우리를 ‘죽게’ 하는 동시에 ‘부활’시켰고, 우리를 위로하는 동시에 가책과 죄책감을 배로 느끼게 했으며,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끝없는 고통을 안겨 주기도 했다. 우리는 때로 그의 손안에 있는 어린양마냥 그의 뜻대로 처분되었고, 때로는 그의 눈동자처럼 그의 사랑을 받았으며, 또 때로는 그의 원수가 된 것처럼 그의 눈앞에서 그의 분노에 잿더미로 변했다. 우리는 그가 구원하는 인류이다. 그의 눈에 우리는 구더기와 다름이 없지만, 우리는 또 그가 주야장천으로 찾는 길 잃은 양이었다. 그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를 미워하시며, 우리를 들어 세우시고,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를 깨우치셨다. 또 그는 우리를 징계하거나 책망하시고, 심지어 우리를 저주하기도 하셨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우리를 걱정하고 돌보고 지켜 주셨으며,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모든 심혈을 기울이고 모든 대가를 쏟아부으셨다. 우리는 그 작고 평범한 육신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누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종착지도 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허영심이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서 방해하여 우리는 그 사람을 선뜻 우리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가 우리에게 수많은 만나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가져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속 ‘주님의 지위’는 그러한 것들로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그 사람의 특별한 신분과 지위를 존중했다. 그러나 그가 직접 입을 열어 자신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절대로 그가 장차 올, 그리고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들 가운데서 사역한 하나님이라고 먼저 인정하지 않을 것이었다.

하나님은 계속 말씀하시며 여러 방식과 위치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을 훈계하시고, 마음의 소리를 전하셨다. 생명력을 가진 그의 말씀은 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할 도를 주고, 무엇이 진리인지도 깨닫게 하였다. 우리는 그의 말씀에 끌리기 시작했고, 그 말씀의 어조와 말하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으며, 무의식적으로 이 보잘것없는 사람의 마음의 소리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심혈을 쏟아부으셨고, 우리 때문에 침식을 잊으셨으며, 우리 때문에 우시고, 우리를 위해 탄식하셨다. 또한 그는 우리를 위해 병으로 신음하시고, 우리의 종착지와 우리의 구원을 위해 굴욕을 견디셨으며, 또 우리의 무감각과 패역 때문에 마음에서 피와 눈물을 흘리셨다. 이러한 소유와 어떠함은 평범한 사람에게 없는 것이자 패괴된 사람은 절대 갖출 수도, 이를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는 평범한 사람에게 없는 관용과 인내심을 지니고 계시며, 그의 사랑은 그 어떤 피조물도 갖지 못한 것이었다. 그 말고는 어떤 이도 우리의 생각을 알지 못하고, 어떤 이도 우리의 본성과 본질을 손바닥 보듯 훤히 꿰뚫지 못하며, 어떤 이도 인류의 패역과 패괴를 심판하지 못하고, 어떤 이도 하늘의 하나님을 대신하여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거나 사역하지 못했다. 또한, 그 말고는 어떤 이도 하나님의 권병과 지혜와 존엄을 갖추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성품과 소유와 어떠함은 그에게서 남김없이 발현되었다. 그 말고는 어떤 이도 우리에게 길을 제시해 주거나 빛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그 말고는 어떤 이도 창세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이 공개하지 않은 비밀을 밝히지 못했으며, 그 말고는 어떤 이도 우리를 사탄의 속박과 패괴 성품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하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을 대표하며, 하나님의 마음의 소리와 하나님의 당부,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셨다. 그는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기원을 열었고, 새 하늘과 새 땅, 새로운 사역을 가져오셨으며,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고, 미망 속에서 보내던 우리의 삶을 끝내셨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분명히 보게 하셨으며, 우리를 정복했고, 우리의 마음을 얻으셨다. 그때부터 우리의 마음속에는 지각이 생겼고, 우리의 영도 소생한 듯했다. ‘이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사람, 우리들 가운데서 살면서 오랫동안 우리에게 버림받았던 사람이 바로 우리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예수가 아닌가? 이분! 바로 이분이다! 이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다! 이분이 바로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시다! 이분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고, 광명을 보게 하셨으며, 우리의 마음이 더는 방랑하지 않게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돌아와 하나님과 마주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으며,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았다. 그때 우리의 마음은 그에게 완전히 정복되었으며, 더는 그의 신분을 의심하지도, 그의 사역과 말씀에 맞서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의 앞에 오롯이 엎드려 이생에 하나님의 발자취만 따르리라 다짐하였고, 그에게 온전케 되고 그의 은총과 사랑에 보답하기만을 바라게 되었다. 또한 그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고 그의 사역에 협력하며, 온 힘을 다해 그가 주신 사명을 완수하기만을 바라게 되었다.

하나님께 정복되는 과정은 격투 시합과 같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의 급소를 찔러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두렵게 하였다. 그는 우리의 관념과 상상, 우리의 패괴 성품을 드러내셨다. 일언일행, 일거수일투족부터 모든 생각까지, 우리의 본성과 본질은 그의 말씀을 통해 드러났다. 이에 우리는 겁에 질려 전전긍긍하고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는 우리의 모든 행위와 마음가짐, 목적, 심지어 우리 자신조차 발견하지 못했던 패괴 성품까지 하나하나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 우리는 만신창이가 된 기분이 들었고, 철저히 인정했다. 그는 그를 대적한 우리를 심판하시고, 그를 모독하고 정죄한 우리에게 형벌을 내리셔서, 그의 눈에 우리는 옳은 것이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사탄임을 느끼게 해 주셨다. 우리의 희망은 깨졌다. 우리는 더 이상 그에게 감히 그 어떤 지나친 요구도 생각할 수 없었으며, 심지어 우리의 꿈은 하룻밤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이것은 우리 중 누구도 상상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사실이었다. 우리의 마음은 순식간에 균형을 잃어 어떻게 전진해야 할지, 우리의 ‘믿음’을 어떻게 계속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우리의 신앙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았고, 우리는 한 번도 예수와 ‘만나거나 알고 지내지’ 못한 것 같았다.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이 모든 것들로 인해 미망에 빠지고 방황했다. 우리는 낙담하고 실망했으며, 마음 깊은 곳에서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모멸감이 치밀어 올랐다. 우리는 그것을 쏟아 내려고 시도했고, 또 다른 출구를 찾아보려 했으며, 더더욱 우리의 구주 예수를 계속 기다려 보고, 그에게 속마음을 하소연하고자 했다. 때로 우리의 겉모습은 자연스럽고 의연해 보였으나 마음은 전례 없는 실의에 빠져 있었다. 때로 우리의 겉모습은 이상할 정도로 차분해 보였지만, 마음속에서는 폭풍우가 치듯 몹시 괴로웠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우리의 모든 꿈과 희망을 앗아 갔다. 그리하여 우리는 더 이상은 헛된 기대를 품지 못하게 되었고, 그가 바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구주라는 것도 믿고 싶지 않았다. 그의 심판과 형벌로 그와 우리 사이에는 깊은 골이 생겼으며, 나아가 그것을 넘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한 그의 심판과 형벌로 우리는 난생처음 이러한 좌절과 굴욕을 맛보았다. 그의 심판과 형벌로 진정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성품과 하나님의 존귀함을 느끼게 되었고, 그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비천하고 더러운 존재인지를 느끼게 되었다. 그의 심판과 형벌로 인해 우리는 처음으로 자신의 교만함과 자만심을 깨닫게 되었으며,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과 동일 선상에 설 수도, 함께 논할 수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심판과 형벌로 인해 우리는 더 이상 이 패괴 성품으로 살지 않고, 한시바삐 이러한 본성과 본질에서 벗어나 더는 그의 역겨움과 증오를 불러오지 않기를 갈망하게 되었다. 그의 심판과 형벌로 인해 우리는 그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고 더는 그의 지배와 안배에 거역하지 않게 되었다. 그의 심판과 형벌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삶의 희망을 주었고, 우리는 기꺼이 그를 우리의 구주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정복 사역에서 나오게 되었다. 지옥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나오게 되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얻으셨다! 그는 사탄을 이기고 모든 원수를 물리치셨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에서 하나님의 나타남을 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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