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만의 말씀 방식과 특징은 창조주의 유일무이한 신분과 권병의 상징이다

2018.08.06

창 17:4~6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찌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창 18:18~19(중국어성경 직역) “아브라함은 반드시 강대한 나라가 되고 땅의 만국은 필히 그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니라 내가 아브라함을 택한 것은 그로 그의 자식과 권속들에게 나 여호와의 도를 지킬 것을 명함으로 의와 선을 행하게 하기 위함이라 이로써 내가 아브라함에게 했던 약속을 지킬 것이라”

창 22:16~18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욥 42:12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하나님의 축복은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고 얻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원칙이 있고, 그의 방식대로 사람에게 복을 내리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떤 약속을 하고 얼마만큼의 은혜를 베풀어 주는지는 사람의 생각과 행위에 따라 분배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축복은 무엇을 설명할까? 사람에게 그 안에서 무엇을 보게 할까? 여기서 우리는 잠시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는지, 하나님이 축복해 주는 원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접어 두자. 하나님의 권병을 알아 가는 것을 목표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살펴보자. 즉, 하나님의 권병을 알아 가는 면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보자.

이상 네 단락의 성경 내용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준 축복에 관한 기록이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과 욥과 같은 하나님이 복을 내리는 대상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있고, 또한 하나님이 사람에게 복을 내리는 이유와 그 복의 내용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어조, 말씀하는 방식과 하나님이 서 있는 위치와 높이를 통해, 사람은 복을 내리는 자와 받는 자의 신분과 지위, 그리고 본질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는 어조와 방식, 그리고 하나님의 위치는 창조주의 신분을 가진 하나님만의 것이다. 그는 권병과 위력은 물론 창조주의 존귀함과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을 만큼의 위엄을 지니고 있다.

먼저 창세기 17장 4~6절 말씀을 보자.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찌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이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린 축복이다. 하나님이 그를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고, 그의 후손을 번성케 하리라 하였다. 또한 나라들이 그를 좇아 일어나고 열왕이 그를 좇아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였다. 너는 이 몇 마디 말씀에서 하나님의 권병을 보지 못했느냐? 너는 하나님의 권병을 어떻게 보았느냐? 너는 하나님 권병의 어떠한 본질을 보았느냐? 이 구절들을 자세히 읽다 보면, 하나님의 권병과 신분이 하나님의 어휘 사용에서 확연히 나타난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 될찌라 … 내가 너로 … 하리니” 이 중에서 ‘너는 … 될찌라’, ‘내가 … 하리니’ 등의 표현에서 하나님 신분과 권병이 나타나는 확고한 어휘 사용을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창조주의 신실함이요, 또 한편으로는 그것은 모두 창조주의 신분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전용 어휘이자 관용어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축복하기를, 후손이 번성하고 나라들이 그를 좇아 일어나고 열왕이 그를 좇아 일어난다고 했다면, 이는 확실히 하나의 바람일 뿐이지 약속이나 축복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감히 “나는 반드시 너로 하여금 어떠하게 할 것이다. 나는 너를 어떠어떠하게 하겠다.”라는 말을 할 수 없다. 사람은 자신에게 이러한 결정권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설사 이렇게 말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빈말일 뿐이고 헛소리일 뿐이며, 사람의 욕망과 야심이 그렇게 만든 것일 뿐이다. 사람의 욕망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감히 이렇게 큰소리칠 수 있겠느냐? 사람은 누구나 좋은 소망을 갖기 마련이어서, 후손들이 모두 출세하고 남보다 뛰어나기를 바란다. ‘만일 황제가 되는 후손이 있을 수 있다면, 그건 크나큰 행운이야! 성장(省長)만 될 수 있어도 괜찮아. 어쨌든 높은 사람이면 돼!’ 이 모든 것들은 사람의 바람이다. 하지만 사람은 그저 후손을 위해 축원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다른 어떤 누군가의 약속을 이루어 줄 수는 없다. 인간에게 거기까지 가능하게 하는 권력이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너무도 잘 안다. 자신의 일도 다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어찌 다른 사람의 운명을 주관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하나님이 이러한 말씀을 할 수 있는 까닭은, 하나님께는 그런 권병이 있어서 사람과 약속한 것, 사람에게 축복한 모든 것들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하나님이 만든 것이며, 하나님께 있어 사람의 후손을 번성케 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그가 누군가의 후손을 번성하게 하는 것은 단 한 마디로도 가능한 일이다. 그러기에 그는 한 번도 이 때문에 수고한 적이 없다. 또한 이 때문에 머리를 쓰거나 고민해 본 적도 없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자 하나님의 권병이다.

창세기 18장 18절 “아브라함은 반드시 강대한 나라가 되고 땅의 만국은 필히 그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니라(중국어성경 직역)”라는 말씀을 보고 난 후, 너희는 하나님의 권병을 느낄 수 있지 않으냐? 창조주의 비범함을 느낄 수 있지 않으냐? 창조주의 지고지상함을 느낄 수 있지 않으냐? 하나님 말씀은 아주 확실하다. 하나님의 이런 말씀은 하나님께 필승을 자신하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한 것이 아니고, 그런 확신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이 지닌 권병을 입증하는 것이자 그의 말씀이 이뤄지도록 하는 일종의 명령이다. 여기에 너희가 주목해야 할 어휘가 두 가지 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은 반드시 강대한 나라가 되고 땅의 만국은 필히 그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니라(중국어성경 직역)”라고 한 말씀에 모호한 부분이 있느냐? 걱정의 요소가 있느냐? 두려움의 요소가 있느냐? 이런 것들은 인류에게서 자주 드러나는, 사람만이 갖고 있는 요소이다. 하나님 말씀 속의 ‘반드시’와 ‘필히’라는 이 두 어휘 때문이라도, 사람의 그런 요소는 창조주와는 조금이라도 연관된 적이 없다. 그 누구도 타인을 축복할 때 이런 어휘를 감히 사용하지 못한다. 또한 그 누구도 감히 단정적으로 타인에게 강대한 나라를 주겠다는 복을 내리지 못하며, 천하 만민이 필히 그로 인하여 복을 받을 거란 약속을 하지 못한다. 하나님 말씀이 확실할수록 그 말씀은 무엇을 증명할까?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이런 권병이 이 일을 이룰 수 있음을 증명하고, 하나님은 이 일을 반드시 이루고야 말리란 걸 증명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린 이 모든 축복은 하나님의 마음속에선 매우 확실해 조금도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그의 말씀에 따라 이 모든 일을 이루고자 하였으며, 그 어떤 세력도 이 일의 이룩을 바꾸거나 저지하거나 파괴하거나 교란시킬 수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하나님 말씀의 이룩과 성취를 멈추게 하거나 영향을 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창조주가 하는 말씀의 위력이며, 부인할 수 없는 창조주의 권병인 것이다! 네가 이 말씀을 다 읽었을 때, 마음속에 의혹이 일겠느냐?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과 위엄, 권병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위력과 권병, 그리고 일이 성취되리란 필연성은 그 어떤 피조물과 비피조물도 이를 수 없고 초월할 수 없는 것이다. 창조주만이 이러한 어조와 말투로 인류와 대화할 수 있다. 사실을 통해 그의 약속이 빈말이나 허풍이 아니며, 모든 사람과 일, 사물이 초월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권병의 발현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말에는 어떤 차이가 있느냐? 하나님의 이 말씀들을 보고 너는 하나님 말씀의 위력과 권병을 느꼈을 것이다. 만일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다면, 너는 어떤 느낌을 받을 것 같으냐? 너무 교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느냐? 그가 허풍을 떤다고 느끼지 않겠느냐? 자신을 과시한다고 느끼지 않겠느냐? 그 사람은 그런 능력이 없고 그런 권병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결코 이런 일들을 이룰 수 없다. 그가 이렇게 확신에 차 약속했다면, 그건 단지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함부로 지껄인 것에 불과하다. 만일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그건 교만하고 자기 분수를 모르는 것이며, 전형적인 천사장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 틀림없다. 이 말씀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왔다면, 네가 그 안에서 교만함을 느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농담처럼 느껴지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은 권병이며 사실이다. 그의 말씀이 입에서 나오기 전, 그가 어떤 일을 이루고자 마음먹었다면 그 일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말씀은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이며,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이다. 그 약속은 이미 결정된 사실이자 이미 이루어진 일이다. 이런 일들은 하나님의 생각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점차 실현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했다고 하나님께 교만한 성품이 있음을 뜻하진 않는다. 하나님은 그 일을 이룰 수 있고, 그 일을 완벽하게 이룰 수 있는 능력과 권병을 가지고 있고, 그 일들을 이루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능력 범위 안의 일이기 때문이다. 같은 말이라도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면, 하나님의 진정한 성품이 나타나고 발현된 것이고, 하나님의 본질과 권병이 완벽하게 구현된 것이며, 창조주 신분에 가장 적합하고 합당한 증거인 것이다. 말씀을 하는 이러한 방식, 어조, 어휘는 바로 창조주 신분의 상징이며, 하나님 자신의 신분에 완전히 부합되는 표현이다. 여기에는 어떤 거짓도 불순함도 없으며, 온전히 창조주의 본질과 권병이 완벽히 나타나 있다. 하지만 피조물에게는 이러한 권병도 없고 이러한 본질은 물론 하나님이 부여한 능력도 없다. 만일 사람이 이런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건 의심할 여지 없이 패괴 성품의 분출이자, 꿈틀거리는 교만과 야심이며, 하나님을 배반하도록 미혹하고 유인하는 전형적인 마귀와 사탄의 악독한 본심이 드러난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언어적 노출을 어떻게 보겠느냐? 하나님은 네가 하나님과 자리를 다투고 하나님을 사칭하며, 하나님을 대신하고 싶어 한다고 말할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는 어조를 흉내 내는 너의 속내는 사람들 마음속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고, 원래 하나님께 속해야 하는 인류를 빼앗으려는 것이다. 이것은 영락없는 사탄이고, 천사장의 후예가 하는 행위이며, 하늘이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너희 중에는 하나님을 모방하여 어떤 방식으로 말을 했던 자가 없느냐? 사람을 오도하고 미혹시킬 마음을 품고, 사람들에게 자신은 하나님의 권병과 위력을 가지고 말하고 일하며, 자신의 본질과 신분은 남다르며, 심지어 어조가 하나님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는 느낌을 주려고 했던 자가 없느냐? 너희는 이런 일들을 한 적이 없느냐? 하나님의 말투를 모방해서 말하고, 소위 하나님의 성품을 대표한다는 손짓을 하며, 하나님의 위력과 권병을 가진 척 가장한 적이 없느냐? 이런 건 너희들 대다수가 걸핏하면 저지르거나, 아니면 하려고 마음먹은 행위들이 아니냐? 이제 너희는 창조주의 권병을 진정으로 보고 느끼고 알게 되었는데, 과거 너희가 행하고 드러냈던 행동들을 돌이켜 보면 역겹지 않으냐? 너희의 비열하고 파렴치했던 모습을 알게 되지 않았느냐? 이런 부류의 성품과 본질을 해부해 보면, 그들은 저주받아 마땅한 지옥의 자식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으냐? 이런 일을 저지르는 자들은 모두 굴욕을 자초하는 자라고 말할 수 있지 않으냐? 너희는 이 성질의 심각성을 알고 있느냐? 어느 정도로 심각한 것이냐?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모방하고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사람들의 숭배를 받고자 하는 속내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 마음속 하나님의 자리를 없애고, 사람들 가운데서 사역하는 하나님을 쫓아내고, 자신이 사람을 통제하고 차지하여 소유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는 것이다. 사람의 잠재의식 속에는 모두 이러한 욕망과 야심이 있다. 사람은 모두 이렇게 사탄의 패괴 본질 속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반하면서 하나님이 되고 싶어 하는 사탄의 본성 속에서 살고 있다. 하나님의 권병과 관련된 주제를 교제했는데, 너희에겐 아직도 하나님을 사칭하고 하나님을 모방하고 싶은 욕망과 야심이 있느냐? 아직도 하나님 노릇을 하고 싶은 욕망이 있느냐? 아직도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느냐? 하나님의 권병은 사람이 능히 모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신분과 지위는 사람이 사칭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너는 하나님이 말씀하는 어조를 흉내 낼 순 있지만, 하나님의 본질을 모방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위치에 서서 하나님을 사칭할 수는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하고자 하는 일이나, 만물을 주재하고 주관하는 일은 영원히 행할 수 없다. 하나님이 보기에 너는 영원토록 아주 하찮은 피조물일 뿐이다. 네 능력과 재주가 아무리 뛰어나고, 네가 아무리 많은 은사를 가졌어도, 너의 모든 것은 창조주의 권세 아래 있다. 네가 몇 마디 모진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너에게 창조주의 본질이 있다고 할 수 없으며, 네가 창조주의 권병을 가졌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권병과 능력은 하나님 자신의 본질이지,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니며, 외부로부터 더해진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본질이다. 그러므로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는 영원히 변할 수 없다. 창조된 인류의 일원으로서,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본위를 지켜야 하며, 성실한 사람이 되어 분수에 맞게 창조주가 맡긴 사명을 지켜야 한다. 도가 넘치는 일을 해선 안 되고, 자신의 ‘능력 범위’ 밖의 일을 해서도 안 되며, 하나님이 증오하는 일을 해서도 안 된다. 위인이나 초인, 고귀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되려고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것들은 사람에게 있어선 안 되는 ‘소망’이다. 위인이나 초인이 되고자 하는 건 허무맹랑한 일이고,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건 더더욱 파렴치한 일이자 혐오감을 불러오는 일이며 버림받아 마땅한 일이다. 반대로 진정한 피조물이 되는 것이야말로 귀한 것이고, 피조물이 가장 지켜야 할 바이며, 모든 사람이 추구해야 할 유일한 목표이다.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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