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사리에 밝고 남을 선하게 대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좋은 사람은 남들 어려움을 헤아리고 시시콜콜 따지지 말아야 하고, 그래야 남들로부터 존중받고 우러름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그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으며 사람들 마음을 잘 헤아리고 남을 선하게 대하는 사람이 되자고 늘 스스로를 일깨웠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이나 이웃들과 함께 지내면서 한 번도 다툰 적 없고, 사람들에게 보이는 이미지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이런 저를 두고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너는 정말 인성도 바르고, 남들 마음도 잘 헤아리는구나. 남들이 잘못해도 왈가왈부하지도 않고 말이야.” 칭찬을 들으면 너무 좋았습니다. ‘사람은 이렇게 친절하고 착하게 살아야지. 남들이 잘못한 게 있어도 이해해 주자.’ 저는 속으로 이게 바로 좋은 사람의 기준이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에도 계속 이런 식으로 행동했습니다.
2021년 11월, 저는 교회 집사로 뽑혀 형제자매 몇명과 같이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중 같은 마을에 사는 케빈(Kevin) 형제는 자질이 뛰어났습니다. 전도할 때 생각을 뚜렷하게 교제하고, 참도를 알아보려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예를 들어가며 설명할 줄도 알았습니다. 하지만 형제는 교만한 면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건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 원칙을 어겨 본분을 이행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을 높이고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전도했는지 자랑하기 바빴습니다. 형제자매들도 다들 형제를 숭배하며 형제의 설교를 듣기 좋아했습니다. 참도를 알아보는 어떤 이는 형제의 설교를 듣더니 그가 자질도 뛰어나고 설교도 잘한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때 저는 형제가 자꾸 자신을 높이며 나타내고, 전도할 때 하나님 말세 사역을 증거하거나 사람들의 종교적 관념을 해결하는 일은 뒷전인 것을 보면서 좀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좀 더 기다려 보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형제에게 내가 문제만 있으면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 아니라 남을 선하게 대할 줄 아는 융통성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 주고 싶었고, 그러려면 형제를 많이 격려하고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리더가 종종 단톡방에 복음 전도 원칙에 관한 내용을 올렸는데, 저는 케빈 형제의 문제를 놓고 간접적으로 약간 교제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교제하면 아마 형제가 자기 문제를 알아차릴 것 같았으니까요. 그런데 한 번 더 형제 문제를 지적하려다가 주저하게 됐습니다. ‘형제는 사람이 좀 교만한데, 내 지적을 못 받아들이지 않을까? 내가 꽉 막히고 남을 선하게 대할 줄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날 안 좋게 보지는 않을까? 형제와 사이가 틀어지면 같이 협력하기도 불편하고 내 이미지도 안 좋아질 텐데.’ 저는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켰습니다. 순간 속으로 죄책감이 들어서 하나님께 진리를 실행할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뒤로 케빈 형제를 비롯한 형제자매 몇 사람과 같이 어떤 마을에 복음을 전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형제는 교제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돈에 연연하지 않고, 또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 헌신했는지 자랑하기 바쁘고 정작 진리 교제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저는 용기를 내어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아까 전도하면서 하나님을 증거할 때 원칙을 지키지 못한 것 같아요. 복음 대상자에게 진리를 교제해서 그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데려오는 데 힘써야 해요.” 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형제가 대꾸했습니다. “그렇게 교제해도 별일 없을 거예요. 자매님은 생각이 너무 많아서 탈이에요.” 더 얘기했다가는 형제 자존심을 건드려서 좋았던 사이가 어색해질 것도 같고, 형제가 저를 안 좋게 보고 제 이미지가 안 좋아질 것도 걱정돼서 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로만 해 두면 형제도 차차 인식하겠거니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저희가 매일같이 부지런히 복음을 전했는데도 효과가 별로 나지 않았습니다. 마을에서 참도를 알아보려는 사람들 중 일부는 형제의 교제를 듣고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거기다 유언비어 때문에 관념이 생겨서 더 이상은 알아보려 하질 않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형제를 우러러보느라 형제의 교제만 들으려 하고, 다른 형제자매가 하는 예배는 썩 반기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괴롭고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그 문제들이 케빈 형제와 관계된 것이었기 때문이었죠. 제가 미리 형제에게 문제점을 짚어 주었더라면, 그래서 형제가 그걸 알아차리고 돌이켰더라면 복음 사역에 피해가 가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막상 형제에게 문제점을 짚어 주려고 하니까 사이가 나빠질 것이 걱정돼서 속으로 한바탕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러다 생각했습니다. ‘리더한테 말해서 리더가 교제하면 나는 형제하고 같이 본분을 이행하는 데 지장도 없고, 잘 지낼 수도 있을 거야.’ 저는 리더에게 케빈 형제의 상황을 보고했습니다. 그랬더니 리더는 그에 관계된 하나님 말씀을 찾아 저희가 함께 진입할 수 있게 해 주었고, 형제도 조금 달라진 듯했습니다. 그 일은 그렇게 일단락되었습니다.
한번은 자매 한 사람과 그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자매는 제가 항상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연연한다면서 그게 무골호인의 모습 중 하나라고 지적했습니다. 처음에는 잘 인식하지 못해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어디가 무골호인이라는 거야? 무골호인은 간사한 사람이잖아. 난 한 번도 간사한 짓을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무골호인일 수가 있지?’ 그때는 자매의 지적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매가 하는 말에 제가 배워야 할 공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저 자신을 인식하도록 이끌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처신해야 한다. 이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사람됨의 원칙을 알지 못하면서 무슨 진리 실행을 운운하겠느냐? 진리 실행은 빈말을 하고 구호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삶 속에서 어떤 일을 만나든, 그것이 사람됨의 원칙이나 일을 바라보는 관점, 본분 이행과 관련되는 문제라면 선택을 하게 된다. 이때, 진리를 구해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서 근거와 원칙을 찾은 다음 실행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큰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이렇게 진리를 추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베드로의 길, 진리를 추구하는 길을 걷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과 함께 지낼 때는 어떤 원칙을 지켜야겠느냐? 원래 네 관점은 화합은 귀하고, 인내는 고귀하다는 것이 훌륭한 처세법이라는 것이다. 남들과 두루두루 어울리면서 타인의 체면을 해치지 않고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으면 나중에 함께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너는 이런 관점에 얽매여 누가 나쁜 일을 하거나 원칙을 위배하는 것을 보아도 침묵을 지키고, 남에게 미움을 사느니 차라리 교회의 사역이 손해를 입는 편을 택하며, 누구와 지내든 두루두루 어울리고, 말할 때도 인지상정과 체면을 고려해 항상 듣기 좋은 말로 상대를 기분 좋게 했다. 설령 어떤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을 보아도 참는 쪽을 택하고, 뒤에서 말할 뿐 그를 만났을 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처신이 어떠하냐? 이는 무골호인이 아니냐? 너무 교활하지 않으냐? 이는 사람됨의 원칙에 어긋난 것이다. 이런 식의 처신이 비천하지 않으냐? 이런 자는 좋은 사람이 아니며, 이런 처신은 귀하지 않다.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고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든, 사람답게 처신하는 측면에서 원칙이 없다면 너는 사람됨에 있어 실패한 것이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하나님께 인정받지도, 기억되지도, 열납되지도 않을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최소한 양심과 이성이 있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반성해 보았습니다. 제 생각에 저는 무골호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저는 한동안 케빈 형제가 전도하면서 자기 자랑하는 모습을 자주 봤습니다. 그랬으면 그 문제를 지적해서 형제가 자신을 인식하고 원칙에 따라 본분을 이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했다가 사이가 나빠질까 봐 늘 형제에게 여지를 남기고 감히 직언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형제를 격려해서 좋은 이미지를 주고 우러름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사실 형제자매들끼리 같이 본분을 이행하다가 문제를 발견하면 서로 지적하고 보완해서 교회 사역을 함께 지켜야 합니다. 그걸 잘 알면서도 저는 진리를 실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형제는 복음을 전할 때마다 자기 자랑에만 여념이 없고, 진리 교제를 소홀히 했습니다. 그 결과 참도를 알아보려는 사람들의 종교적 관념이 해소되지 않아 거기에 교란받은 어떤 사람들은 예배에 발길을 끊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사역에 지장이 생긴 것을 보고 죄책감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직언을 하면 형제가 저를 안 좋게 보고 관계가 틀어질까 봐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간사하게도 교회 리더를 찾아가 대신 형제와 교제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미움을 사지 않아도 되니까요. 본분을 이행할 때 어떻게든 인간관계를 유지해서 남한테 잘 보이려 했던 것입니다. 교회 이익은 안중에도 없고, 정의감도 없고, 원칙도 전혀 지키지 않았습니다.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죠. 그런데 그게 바로 무골호인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를 폭로하신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적그리스도는 겉으로 보면 하는 말이 매우 온화하고 우아하며 품위가 있다. 그는 누가 원칙을 어겨도, 누가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해도, 폭로하거나 질책하는 법 없다. 게다가 어떤 일이든 관대한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하게끔 못 본 척한다. 사람이 어떤 패괴를 드러내고 어떤 악행을 저질러도 그는 관대하게 넘어가며 포용할 뿐, 화를 내거나 노여워하지 않는다. 또 그는 사람이 잘못을 저질러 하나님 집의 이익에 해를 끼쳤다고 해서 화를 내거나 상대를 질책하지도 않는다. 악행을 저질러 교회 사역을 교란한 자가 있어도 마치 그 일이 자신과는 무관한 양 거들떠보지 않고, 그 일로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법도 없다. 적그리스도가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얼마나 많은 이가 자신을 우러러보는지, 자신이 고난을 겪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것을 보고 마음속 깊이 찬사를 보내는지 등이다. 적그리스도는 절대로 헛되이 고난을 겪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고난을 겪고 어떤 대가를 치르든, 어떤 좋은 일을 하든, 남들을 얼마나 관심 있게 보살피고 사랑으로 대하든, 그는 남들 앞에서 행동해서 더 많은 사람이 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행동하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사람의 마음을 사기 위함이다. 이렇게 해서 더 많은 사람이 그의 행동이나 사람됨, 인성과 인품에 찬사를 보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게 하려는 것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10)>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서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마주앉아 제 사탄 성품을 폭로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왜 계속 사람들 마음을 잘 헤아리고 선하게 대하는 사람이 되려고만 했는지 돌아봤습니다. 그건 바로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고, 칭찬을 듣고, 주변 사람들이 좋아해 주기 때문이었습니다. 형제자매들과 함께 본분을 이행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말로는 케빈 형제의 체면을 상하게 하면 앞으로 협력하기 힘들어질까 봐 형제의 문제를 폭로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제 행동은 오로지 명예와 지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겉면의 선한 행동으로 스스로를 포장하고 미화해서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를 사랑이 있는 사람, 인내하고 포용할 줄 아는 사람, 좋은 사람,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반면 교회 사역과 형제자매의 생명이 피해를 입는가 하는 문제는 전혀 안중에 없었습니다. 그제서야 제가 얼마나 교활하고 간사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겉으로 보면 누구에게도 미움을 사지 않아 좋은 사람 같았지만, 사실 그 행동 뒤에 비열한 목적을 숨긴 채 사람들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속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으로 교회 이익을 희생해 가며 이미지와 지위를 지키려는 저 자신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계속 이 길을 가다가는 정말 위험해지겠구나.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고 결국에는 하나님께 버림받고 말 거야!’ 갑자기 스스로가 증오스러워졌습니다. 괴로운 심정을 안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늘 스스로를 포장하고 미화하면서 남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려고만 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이 길을 가고 싶지 않습니다. 제 패괴 성품을 저버릴 수 있게 이끌어 주십시오.’
그런 다음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이 다른 이를 판단하는 기준은 행위에 근거하기에 선행을 하면 의인, 악행을 하면 악인이라고 본다. 하지만 하나님이 사람을 가늠하는 기준은 사람의 본질이 하나님께 순종하는지의 여부에 근거한다. 행위의 좋고 나쁨과 말의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의인이고, 그러지 않는 자는 원수이자 악인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중에서), 『어쩌면 네가 하나님을 여러 해 믿으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악담을 하거나 나쁜 짓을 한 적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네가 그리스도를 접했을 때 정직한 말과 일을 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다면, 나는 너를 세상에서 가장 음험하고 악랄한 사람이라고 한다. 네가 친지와 친구, 아내(남편)와 자녀, 부모에게 매우 자상하고 충실하며, 여태껏 다른 이를 상대로 부당한 이득을 챙긴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가 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와 화목하게 지낼 수 없다면, 너의 모든 것으로 이웃을 구제하거나 부모와 가족을 세심하게 돌본다 하더라도 나는 네가 여전히 악인일 뿐만 아니라 그것도 간계가 많은 악인이라고 할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분명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판단할 때는 그 행동의 좋고 나쁨을 기준으로 합니다. 좋은 행동을 하면 좋은 사람이고, 나쁜 행동을 하면 나쁜 사람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사람의 좋고 나쁨을 가늠할 때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도를 행하는지가 기준이 되고, 사람의 본질,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태도가 기준이 됩니다. 겉에 드러난 선한 행위가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폭로하신 말씀을 보고 몹시 괴로웠습니다. 어려서부터 저는 집에서든 밖에서든 사람들과 티격태격하거나 다툰 적이 없었습니다. 혹 누가 싸움을 걸더라도 온화한 방식으로 해결하곤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모두 저를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했고, 저도 제 그런 행동이 이미 좋은 사람 기준에 도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저는 비록 겉으로 악을 행하지는 않았지만, 성실하게 말하고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케빈 형제가 원칙 없이 본분을 이행하면서 항상 자신을 나타낸 일이 사역 효과에 지장을 준 것을 보고도 좋은 사람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형제를 폭로하고 도와주지 않았고, 교회 이익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런 제가 사람들 눈에는 좋은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여전히 하나님을 적대시하고, 진리를 적대시하는 사람이고, 제 행동 역시 악행일 뿐입니다. 겉에 드러난 행동을 가지고 사람이 선한가 악한가를 가늠하는 제 기준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좋은 행동을 많이 하지만 악착같이 하나님 사역과 말씀을 대적하고 정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은 악인입니다. 저와 협력하는 자매를 떠올려 봤습니다. 제가 볼 때 자매는 온화하고 사근사근하게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진리를 받아들일 줄 알고, 진리 원칙에 따라 본분을 이행하기 위해 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형제자매가 진리에 맞지 않게 행동할 때 할 말은 하고 문제를 지적할 줄 아는, 꽤 정의감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잘못된 관점에 따라 겉으로만 부드럽고 친절한 사람이 되려고 할 게 아니라, 하나님 말씀과 진리를 근거로 행동하고, 진정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 후 하나님 말씀을 보고 실행 길을 찾았습니다. 『사람이 가장 추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삼고 진리를 준칙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래야 빛 속에서 살아갈 수 있고, 사람다운 모습을 살아 낼 수 있다. 빛 속에서 살려면 진리에 따라 행동해야 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 정직한 말을 하고 정직한 일을 해야 한다. 처신함에 있어 진리 원칙을 갖는 것이 바로 근본이다. 사람이 진리 원칙을 잃어버리고 좋은 행위만 강조하면 거짓되고 위장하는 성분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처신함에 있어 원칙을 잃는다면 행위가 아무리 훌륭해도 외식하는 것이 된다. 한순간 남을 미혹할 수 있어도 영원히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행동하고 처신해야 비로소 진정한 토대가 생긴다. 만약 처신함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에 기반을 두지 않고 좋은 행위를 꾸미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그렇게 해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겠느냐? 절대 불가능하다. 좋은 도리와 행위는 사람의 패괴 성품을 바꿔 놓을 수 없고, 사람의 본질 또한 바꿔 놓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만이 사람의 패괴 성품과 사상, 관점을 바꿔 놓고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있다. … 이 외에, 특수한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의 단점을 들추고 책망 훈계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가 진리를 깨닫고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을 가져야 성과가 날 수 있다. 이렇게 실행하면 사람에게 큰 유익이 된다. 이것이 진정한 도움 아니겠느냐? 그 사람에게 유익이 되지 않겠느냐? 예를 들어, 네가 몹시 제멋대로이고 교만한데 스스로 늘 의식하지 못한다고 해 보자. 이런 상황에서 너를 잘 아는 사람이 직설적으로 네 문제점을 지적해 준다면 너는 ‘내가 제멋대로라고? 교만하다고? 다른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감히 못 하던데, 이 사람은 나를 알고 있네.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진짜인 것 같아. 열심히 반성해야겠다.’라고 생각하며 그에게 “다른 사람들은 다 듣기 좋은 말만 해 주고 칭찬만 합니다. 툭 터놓고 솔직한 말을 해 주는 사람이 없죠. 저한테 존재하는 단점이나 문제점을 짚어 주는 사람도 없고요. 오직 당신만이 제게 툭 터놓고 이런 말을 해 주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그런 말은 제게 가장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이 마음을 나누는 것 아니겠느냐? 상대는 자신의 마음에 있는 말, 너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또 지난날 자신이 그런 일을 겪을 때 가졌던 관념과 상상, 소극성과 연약함, 그리고 진리를 구해 그 상태에서 벗어난 체험 등을 하나하나 교제해 주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을 나누는 것이며 마음의 소통이다. 요컨대, 말을 할 때의 원칙은 무엇이겠느냐? 마음속에 있는 것, 진실한 체험과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상대에게 가장 이로운 말이고, 공급과 도움이 되는 말이며, 가장 올바르고 긍정적인 말이다. 거짓된 말, 상대에게 도움과 이로움이 되지 않는 말은 절대 하지 마라. 그랬다간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 있고 상대를 쓰러뜨려 소극적인 상태에 빠뜨릴 수 있으며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올바르고 긍정적인 말을 하면서 최대한 상대를 도와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에게 도움과 공급을 주고, 하나님께 진실한 믿음이 생기게 하며, 그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네 체험과 문제 해결 방식, 방법을 통해 도움을 얻고 큰 수확을 거두게 해야 한다. 또 그가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고 진리 실제에 진입하는 길을 깨달아 생명 진입과 생명 성장을 이루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원칙 있게 말해 상대에게 도움을 줄 때 얻을 수 있는 성과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3)>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서 사람됨의 원칙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과 진리에 따라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점을 보면 우리는 그가 유익을 얻도록 지적하고 도와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 사역을 지키고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하죠. 실행 길을 깨달은 저는 얼른 진리를 실행해 형제에게 마음을 터놓고 문제점을 짚어 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형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자세를 가다듬고, 자신의 패괴 성품과 본분 이행에서의 오류를 인식할 수 있으니까요. 그것이 형제를 돕는 것입니다. 나중에 저는 형제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문제를 지적해 주려고 하는데, 순간 역시나 우려가 앞섰습니다. 형제가 저를 어떻게 볼지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제가 진리를 실행하지 못해서 사역에 피해를 입혔던 것을 생각하니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내 생각과 행동을 감찰하고 계시니까 정직한 사람이 되자고, 내 이미지를 위해 진리를 저버릴 수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그랬더니 제 패괴 성품을 저버릴 용기가 생겼습니다. 저는 형제가 안고 있는 문제를 사실대로 지적했습니다. 의외로 형제는 제 얘기를 듣고 쉽게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원칙을 잘 몰랐어요. 앞으로 문제가 보이면 많이 지적해 주세요. 서로 도우면서 같이 본분을 잘 이행해요.” 형제가 그렇게 말해 주니까 정말 기쁘기도 하고, 하나님께도 정말 감사했습니다. 동시에 부끄럽고, 전에 진리를 실행하지 못했던 게 정말 유감스러웠습니다. 진작 형제에게 지적해 주었더라면 우리의 본분 효과도 벌써 개선되고, 형제도 좀 더 일찍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인식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진리를 실행하면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자신에게도, 또 본분에도 모두 유익이 된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이제 저는 형제자매의 문제를 발견하면 먼저 나서서 지적해 줍니다. 그것이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고, 형제자매들을 돕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 요구대로 살고, 진리 원칙에 따라 행동해야 진리를 실행하는 사람, 좋은 사람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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