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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서 벗어나다

24

허난성 쩐시

10년 전, 저는 교회 리더를 맡았었습니다. 그때 전 교만한 본성으로 인해 제 생각대로 사역하며 멋대로 행동했습니다. 그 때문에 본분을 이행하던 중 사역 배정을 엄중히 위반하며 교회 사역을 방해했고, 하나님 성품을 거스르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교체당하고 집으로 돌아가 영 생활을 하며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반성 후, 자신의 제 교만한 본성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신실하신 본질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지 못해 저는 늘 예전에 저지른 잘못이 있으니 하나님은 저 같은 자는 구원하지도, 온전케 하지도 않으실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제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교회에서 저에게 복음 사역을 맡아 하라고 안배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의아했습니다. ‘이렇게 패괴되고, 하나님 성품을 거스른 적도 있는데 왜 나한테 이 중요한 사역을 맡기는 걸까? 혹시 하나님이 이 본분을 통해 나를 드러내셔서 아예 내치시려는 걸까?’ 하지만 이내 마음을 돌려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교회에서 안배한 일이고, 예전 잘못을 만회하라고 하나님이 주신 기회야. 그러니 귀하게 생각하자. 봉사자가 되는 것이라도 괜찮아.’ 그 후, 저는 이런 소극적이고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고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겉으로는 고생도 마다하지 않으며 열심히 일하고, 대가를 치렀지만,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더 높은 목표를 추구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영 생활 중,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어떻게 정복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에만 만족하지 말고 앞으로의 길을 어떻게 가야 할지도 생각해야 한다. 온전케 될 의지와 용기가 있어야 하고, 항상 자신은 안 된다고만 생각해서도 안 된다. 진리가 어찌 사람을 차별할 수 있겠느냐? 진리가 어찌 고의로 사람과 맞설 수 있겠느냐? 네가 진리를 추구하는데 진리가 어찌 너를 눌러 버리겠느냐? 네가 정의를 위하여 굳게 서 있는데 정의가 어찌 너를 쓰러뜨리겠느냐? 네게 진정으로 생명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생명이 너를 피할 수 있겠느냐? 너에게 진리가 없는 것은 진리가 너를 외면한 것이 아니라 네가 진리를 멀리했기 때문이다. 네가 정의를 위해 굳게 서지 못하는 것은 정의에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네가 정의가 사실을 왜곡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네가 오랫동안 추구하고도 생명을 얻지 못한 것은 생명이 네게 양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네가 생명에 대해 양심이 없고 생명을 쫓아냈기 때문이다. … 네가 추구하지 않으면 너를 가치 없는 천한 놈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네게는 살아갈 용기가 없고 흑암 세력에 반항할 의지도 없다. 너는 너무 나약하다! 그래서 사탄 세력의 포위 공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평안한 일생을 살다가 영문도 모르고 죽음을 맞이하려 한다. 정복되기를 추구하는 것은 네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자 마땅히 다해야 할 의무이다. 만약 정복되는 것에만 만족한다면 그것은 네가 빛의 존재를 쫓아내는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이 말씀을 다 보고 난 후, 저는 큰 감동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바로, 온전케 됨을 추구하여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전에 어떤 잘못을 저질렀어도 하나님께 진심으로 회개하고 진리를 추구하고 실행하기만 하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속으로 결심했습니다. 걱정과 의심을 내려놓고, 더 이상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 온전케 되도록 열심히 추구하기로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사탄에 의해 깊이 패괴되어 본분을 이행하는 중에도 자주 패괴 성품을 드러내 보였습니다. 거기다 하나님의 신실한 본질에 대해 잘 알지 못해, 말씀을 또다시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일찍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렀었고, 본분을 이행할 때 자신도 모르게 패괴 성품을 드러내고 있으니, 열심히 추구해도 온전케 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저 봉사하는 자가 되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그 말씀은 다른 사람에게 한 것이지, 저 같은 자에게는 그저 위로와 격려일 따름이라고 여겼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 저는 또다시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신실하다. 그는 말씀하면 반드시 행하고, 행한 것은 반드시 이룬다.』(<그리스도의 좌담기록ㆍ성육신의 두 번째 측면의 의의>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한 줄기 빛처럼 제 마음을 한순간에 환히 밝혀 주었습니다. ‘그래, 하나님의 본질은 신실함이야. 하나님은 말씀하시면 반드시 책임지시고, 책임지는 이상 반드시 이루시고, 이루어진 것은 반드시 영원까지 지속돼. 태초에 천지 만물 역시 모두 하나님 말씀으로 인해 생겨나고 이뤄졌어.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렇게 이루어져. 하지만 난 하나님의 말씀을 그저 위로와 격려라 여기고, 실제로는 말씀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했구나. 하나님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했어. 이건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부인한 것 아닌가?’ 그때, 저는 예전에 봤었던 하나님의 말씀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네게 진정으로 생명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생명이 너를 피할 수 있겠느냐? 너에게 진리가 없는 것은 진리가 너를 외면한 것이 아니라 네가 진리를 멀리했기 때문이다. 네가 정의를 위해 굳게 서지 못하는 것은 정의에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네가 정의가 사실을 왜곡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네가 오랫동안 추구하고도 생명을 얻지 못한 것은 생명이 네게 양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네가 생명에 대해 양심이 없고 생명을 쫓아냈기 때문이다….” 그때서야, 저는 하나님의 이 말씀이 매우 간곡하고 뜻깊음을 느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사람에 대한 무궁한 사랑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속에서 하나님의 고귀함과 위대함과 함께 저 자신의 비천함과 편협함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을 최대한 구원하는 것으로, 이는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로 결정되는 일입니다. 그러니 누구도 바꿀 수 없습니다. 사람이 오로지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성품의 변화와 진리를 추구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을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면 반드시 행하시고, 행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말씀에 대해 제 태도는 어땠습니까?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흑암에 떨어졌을 때, 저는 자신의 패괴 본질에 대해 반성하거나 알아가지 않고, 진리를 구해 자신의 패괴 성품을 해결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경계심을 품고 오해한 채 하나님은 분명 저를 구원하시지 않을 것이라 여기고는, 추구할 동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교회에서 저에게 복음 사역을 맡아서 하라고 안배했을 때, 저는 어떻게 진리의 원칙을 구할지, 어떻게 본분을 이행해야 더 좋은 결실을 맺을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이용하고 있고, 이런 일을 통해 저를 철저히 드러내 내치시려 한다고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서 소극적이고 태만해졌고,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불손하게 대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사람처럼 사악한 존재로 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람처럼 속이 좁고 시시콜콜 따지는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그러는 것처럼 하나님도 사람을 이용하시고, 힘을 다 쓰고 나면 사람을 내치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진리로 대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무조건적으로 믿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저의 관념과 상상 속에 살며, 하나님께 의심과 경계심이 가득해 늘 소극적이고 수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연약하여 흑암 세력에 굴종했습니다. 진리를 얻기 위해 고난받고 대가를 치르지 못했습니다. 저는 하나님 본질에 대한 앎을 추구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만약 제가 예전에 하나님의 성품과 본질을 아는 것을 중요시해 이를 추구했다면, 적어도 답보 상태에 머무르며 수년 동안 생명 성장을 지체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제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러 해 동안의 오해와 의심, 근심이 하나님 말씀의 인도 아래 깨끗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무거운 짐을 벗은 듯 마음이 환하고 후련해졌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당신께서 저를 돌봐 주시고, 깨우쳐 주시고, 인도해 주셔서 여러 해 동안 저를 옭아매었던 멍에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저는 당신을 알지 못해 오해하며 살았습니다. 심지어 당신의 말씀을 의심하기까지 했습니다. 당신의 말씀을 진리이자 길이자 생명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또 당신을 하나님으로 대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저에게 관용을 베푸시고 인내하시며, 깨우침과 빛 비추심을 주셔서 당신의 신실한 본질과 공의로운 성품에 대해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사랑은 참으로 진실하십니다! 앞으로 저는 진리를 얻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당신의 본질을 알고, 하루빨리 성품이 변화되어 당신께 온전케 되는 것을 추구해, 당신의 사랑에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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