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벼슬이 아니다

2022.02.08

프랑스 마타이

전 마태오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은 지 3년이 됐죠. 2020년 10월, 전 교회 리더가 됐습니다. 중임을 맡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죠. 부담이 많이 되긴 해도 자랑스러웠습니다. 제 자질이 남보다 좋기 때문에 이런 중요한 본분을 맡게 됐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본분에 열심히 임했죠. 예배 때마다 교제하면서 본분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결해 줬거든요. 그럴수록 제가 많은 걸 해결 할 수 있는 사람 같았어요. 여기서 필요하다면 여기서 교제해 주고 저기서 필요하다면 당장 저기로 달려갔어요. 전 형제자매들에게 제가 뛰어난 리더란 걸 증명해 보이고 싶었어요.

그러다 적그리스도 몇몇이 사설과 궤변을 퍼뜨리는 일이 일어났어요. 예배 그룹채팅방에 중국 공산당이 하나님을 모독한 유언비어를 올리고 사실을 왜곡하며 하나님 집 사역을 판단해서 새 신자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게 꾀려 했죠. 전 가능한 한 예배를 많이 열어 같이 분별해 줬어요. 마치 군부대의 군단장이 돼 병사들과 같이 적과 싸우는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보호할 수 있단 걸 증명하고 싶었죠. 다들 절 중임을 맡길 수 있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 여기도록요. 사실 저는 참 연약했습니다. 어떤 사설과 궤변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감을 못 잡았고 저조차 교란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고, 강인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죠. 그래야 진정한 리더라 할 수 있으니까요. 전 형제자매에게 내적 상태를 털어놓은 적이 없어요. 리더란 사람이 연약한 모습을 보이면 강인한 리더의 이미지를 잃게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럼 절 어떻게 보겠어요? 글귀 도리만 말하고 진리 실제는 없는 리더라고 생각할 거 아니겠어요? 교회 리더로서 강해야 했습니다! 대통령, 군단장 같은 존재가 돼야지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어요! 그래서 예배 때면 늘 말씀에 대한 제 이해나 성공했었던 체험을 얘기했어요. 예를 들면 제 도움으로 복음 전하는 데 좋은 효과를 거두게 됐다는 얘길 한 거죠. 그러다 실패한 거나 제 패괴 얘기가 나오면 간단히 말하고 긍정적인 실행 얘기로 넘어갔죠. 예를 들어 예배 때 졸았다는 건 얘기하지 않았어요.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도 금방 길을 찾아 연약함에서 벗어났다고 말했죠. 늘상 어떻게 새 신자를 양육했고, 훈련 기회를 줬는지 말하면서 제 좋은 행실을 자랑했죠. 또 체험에 관해선 하나님께 기꺼이 헌신하는 걸로 말했는데, 추앙심을 사려고 밤을 지새우면서 본분에 임했다는 말을 하곤 했어요. 제 동역자 마리네뜨 자매는 절 높이 봤어요. 제가 자매한테 맞는 말씀을 찾아 자주 도와줬거든요. 그만큼 절 인정해 주니 흡족하고 기분이 좋았죠. 막 양육 본분 훈련을 하는 형제자매도 절 인정해 줬어요. 심지어 한 자매가 저한테 자기가 본분을 잘하는 건 다 저한테 배운 덕분이라고 말하니 제 허영심이 채워졌죠. 전 그 자매에게 하나님의 인도와 깨우침 때문이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고 말하지 않았어요. 제 교제가 끝나면 다들 “아멘” 하고, “형제님 말이 맞습니다” “교제해 주신 형제님께 감사합니다” 이렇게 호응하는 이들도 있었어요. 그들은 저를 추앙하는 듯한 말투를 쓰곤 했죠. 본분상 결정해야 할 사항이 생기면 제 의견을 구했고요. “형제님, 이러면 어떨까요?” 하면서요. 제가 그들의 마음속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는 게 느껴졌어요. 남들이 절 높이 보고 인정해 줄 땐 어딘가 불안감이 들면서도 전 우러름을 받는 그 기분을 즐기며 속으로 좋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체험 간증 영상을 보게 됐습니다. <자신을 드러내 받은 화> 이 영상이 크게 와닿았어요. 주인공도 리더였는데 늘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서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게 됐고 징계를 받아 병이 생겼죠. 그 자매의 행위가 하나님의 혐오를 산 겁니다. 영상을 보고 제 눈에선 눈물이 흘렀습니다. 으스대며 자신을 드러내고 남들의 추앙을 받는 건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였어요. 전 적그리스도의 길을 가고 있었죠.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는 게 이렇게 심각한 문제인 줄 몰랐어요. 전 하나님을 노엽혔다고 계속 되뇌었습니다. 너무 두렵고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고 제 패괴함에 대해 좀 깨닫게 됐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죠. 『패괴된 인류는 모두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며 뽐내 남들이 자신을 추앙하게 한다. 이는 사탄의 본성에 지배되어 본능적으로 보이는 반응이자, 패괴된 인류의 공통적인 특성이다. 사람은 보통 어떻게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겠느냐? 어떻게 그 목적을 달성하겠느냐? 자신이 많은 고통을 겪고 많은 사역을 했으며 많은 헌신을 했다고 증거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으로, 이는 밑천을 내세우는 것이다. 즉, 자신의 밑천을 내세우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높여 사람들 마음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더 높게, 더 공고하게, 더 안정되게 만드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고 추앙하고 부러워하며, 심지어는 숭배하고 앙망하고 추종하게 한다. 마지막 결과가 바로 이런 것이다. 사람이 이 목적을 위해서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는 것이 이성적인 일이겠느냐? 그렇지 않다. 그것은 이성의 범주를 넘어선 일로, 염치없는 것이다. 즉, 염치도 모르고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했고, 많은 고통을 겪었다고 증거하며 심지어는 자신에게 어떤 은사나 재능, 경험, 특별한 기능, 처세술, 남을 우롱하는 수단이 있는지 자랑하기까지 한다.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는 수단은 자신을 뽐내고 남을 깎아내리는 것이며, 또한 자신을 위장하고 포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들이 자신의 약점과 결점, 문제점을 보지 못하게 하고, 영원히 자신의 빛나는 일면만 보게 한다. 심지어는 소극적이 되어도 남들에게 알리거나 마음을 열고 교제하지 못하며, 일을 잘못하면 애써 포장하고 숨기려 한다. 자신이 본분 이행 과정에서 하나님 집에 끼친 손실은 입에도 올리는 법이 없지만, 아주 작은 기여나 성과만 있어도 즉시 끄집어내 자랑한다. 자신이 얼마나 재능 있고 자질이 좋은지, 자신이 얼마나 남들과 다르고 특별한지 온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해 한스러워하는 것 같다. 이것이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는 방식 아니더냐? 스스로를 높이고 증거하는 이러한 행위가 정상 인성의 이성적인 범주 안에서 이뤄지겠느냐? 그렇지 않다. 그럼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할 때, 일반적으로 어떤 성품을 드러내겠느냐? 바로 교만한 성품이다. 이는 가장 주된 모습 중 하나다. 그다음으로는 간사함이 있다. 즉,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게 하며, 말할 때 조금의 허점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 속셈과 간계를 갖고 말을 하면서 온갖 방법으로 자신이 스스로를 뽐내고 있다는 것을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이런 말의 결과는, 그는 남들보다 높고 아무도 그에게 미치지 못하며 그의 앞에만 가면 작아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수단으로 이뤄진 것 아니겠느냐? 그 수단 안에는 어떤 성품이 있겠느냐? 사악한 성분이 있지 않겠느냐? 그것은 사악한 성품이다.』(<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자신을 높이고 증거한다> 중에서) 정말 제 마음을 정확히 찌르는 듯한 말씀이었습니다. 제 마음 깊숙이 숨겨진 게 뭔지 똑똑히 보였어요. 전 늘 어떤 이미지를 만들려 했어요. 강인하고, 완벽한 사람의 이미지로요. 제 체험과 인식을 교제할 때면 공을 세운 것마냥 계속 자랑했는데, 성공적인 체험만 얘기했지 실패담은 거의 안 했죠. 제가 소극적이고 연약해졌을 때든 문제를 만났을 때든 제 내적 상태가 가장 나빴을 때도 전 늘 그랬어요. “괜찮아요. 연단을 좀 받고 있지만 하나님 의지해 일어설 거예요.” 사실 속으론 고통받고 있었지만요. 전 늘 본분을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말하면서 책임감 강한 이미지를 꾸며 냈습니다. 실제론 그렇지 않았어도요. 본분을 위해 대가를 치렀던 건 사실 거의 개인의 명리와 지위 때문이었어요. 남의 존경을 받을 때면 이게 좋은 일이 아니란 게 느껴지긴 했어요. 하지만 그 상황을 막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어요. 절 숭배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죠. 계속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었고, 사람들 맘속 자릴 차지하고 싶었으니까요. 이건 천사장처럼 교만한 거죠. 전 형제자매를 하나님께 이끌지 않고 다 제 앞으로 이끌어 왔던 거예요. 제가 형제자매 맘속 하나님 자릴 차지하려 한다는 걸 깨닫고 너무 두려웠어요. 하나님께서 혐오하시는 게 느껴졌죠.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죠. ‘하나님, 전 남들이 절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큰 인물로 봐주기를 바라면서 계속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당신의 영광을 훔쳤습니다. 하나님, 당신께 회개하겠습니다.’ 정말 후회스러웠어요. 전 제가 자신을 드러내고 높이려 했단 사실을 밝히는 반성문을 써서 제가 소속된 예배팀에 보냈어요. 그리고 절 우러러보거나 높이 보지 말라고 말했죠. 절 특히 숭배하는 사람들에겐 따로 메시지를 보내 저에 대해 솔직히 털어놨고요. 며칠 후 마리네뜨 자매가 제게 그러더군요. 절 높이 본 게 맞고, 자기 마음속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고요. 그 메시지를 보는데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그게 제 악행의 증거 같았어요. 그 순간 제 추악함이 보이더군요. 절 드러내고 높여서 남들의 추앙을 받으려 한 건 이성이 없는 짓 아닌가요? 이게 무슨 본분 이행인가요? 하나님은 리더 본분을 맡기셨는데, 제가 이런 식으로 갚다뇨? 이런 부끄러움은 정말 생전 처음이었어요. 근데 전 그 후에도 진리를 구해 제 패괴를 해결하지 않아 얼마 후 고질병이 터지고 말았죠.

하루는 지교회 리더도 같이 모여 예배할 때였어요. 들으니 형제자매 교제가 너무 단순해 답답하더라고요. 그렇게 깊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리더의 교제도 평범해 보이길래 좋은 교제가 뭔지 보여 주고 싶었죠. 제가 깨달은 걸 다 교제해 주면 형제자매들이 거기서 많은 걸 얻게 될 거고 길을 얻을 거라고 봤죠. 그래서 전 속으로 얘기할 내용을 준비하며 어떡해야 더 많은 빛비춤을 교제하고 내용이 무게감 있고 독특할지를 생각했어요. 어떤 단어로 교제를 할지 계속 고민했고요. 전 제 인식과 이해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나단 걸 보이고 싶었어요. 그래서 많은 예들과 비유를 들어 제 교제가 상세하고 깊이 있다는 걸 보이려 했죠. 그렇게 교제가 끝나고 사람들이 ‘아멘’ 하니까 만족스러웠어요. 전 급히 대화창을 보면서 다들 제 교제를 인정하고 칭찬하는지 확인했어요. 예배가 끝날 때쯤, 저언 형제가 교제를 시작하는데, 하나님 말씀에 따라 우리가 실행할 길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제가 한 말을 그냥 인용하는 거에요. “마태오 형제님의 교제처럼 그렇게 실행해야 합니다.” 그 형제는 제 교제를 참고해 인식을 말했어요. 제가 또 스스로를 높이고 드러내 절 따르게 했단 걸 깨달았죠. 그 순간 너무 불안했습니다. 며칠 전 예배에서 교제했던 말씀이 떠올랐어요. 이 말씀이었죠. 『형제자매는 서로 마음을 이해하고, 서로 돕고 공급할 수 있어야 하며, 개개인이 자신의 진실한 체험을 말해야 한다. 네가 자신의 진실한 체험은 말하지 않고 사람들이 알고 있는 글귀, 믿음에 관한 형식적인 말이나 상투적인 말만 하면서 자신의 속마음은 전혀 말하지 않는다면, 너는 정직한 사람이 아니며, 정직한 사람이 될 수도 없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실행> 중에서) 『하나님을 증거할 때에는 주로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지, 어떤 시련으로 사람을 연단하고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지, 너희가 체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패괴를 드러내고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었는지, 결국 어떻게 정복되었는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진실한 인식을 얼마나 갖게 되었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이 말해야 한다. 너희는 이 부분에 대해 말할 때 공허한 이론을 말하지 말고 사실적으로 알아듣기 쉽게 말하며, 마음속 말을 솔직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체험하면 된다. 심오하고 공허한 이론으로 자신을 뽐내려 하지 말라. 그러면 너무 교만하고 비이성적으로 보인다. 현실적인 체험에 바탕을 둔 실제적인 말, 마음에 있는 말을 많이 해야 한다. 이는 사람에게 가장 크게 도움이 되고 사람들 보기에도 가장 적절하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 중에서) 『네가 만약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늘 사람을 회유하려 하고, 자신의 야심과 욕망을 충족시키려 하며, 지위에 대한 욕심을 충족시키려 한다면, 이는 적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길에 진리에 부합하는 부분이 있느냐? (없습니다.)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은 어떤 것이냐? 그는 무엇을 위해 일하느냐? (지위를 위해서입니다.) 지위를 위해 일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모습들이 있느냐?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늘 글귀나 도리를 이야기하고, 진리의 실제에 대해선 전혀 교제하지 않습니다. 늘 자신을 위해 이야기하지, 조금도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하나님을 증거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있는 사람은 모두 지위를 위해 일합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글귀나 도리를 이야기하느냐? 왜 하나님을 높이거나 증거하지 않느냐? 바로 그의 마음에 오로지 지위와 명예만 있고 하나님이 전혀 없는 까닭이다. 그런 사람들은 지위와 권세를 매우 숭상하고, 명예와 이익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명예와 이익, 지위가 그의 생명이 된 것이다. 그는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은 더더욱 있을 수 없다. 오직 남들이 자신을 숭배하게 자신만을 높이고, 자신만을 증거하고, 자신만을 드러낸다. 따라서 그들은 늘 자기 자랑에 여념이 없다. 자기가 어떤 일을 했는지, 혹은 자기가 어떻게 수고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만족게 했는지, 책망을 받고 어떻게 참아 냈는지 등을 늘어 놓으며 사람들의 동정과 숭배를 얻고자 한다. 이런 자들은 적그리스도 부류에 해당하며, 이들이 가는 길은 바로 바울의 길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최종 결말은 무엇이냐? (적그리스도가 되어 도태되는 것입니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패괴 성품을 해결하려면 구체적인 실행의 길이 있어야 한다> 중에서) 말씀을 보며 알았어요. 자신의 진실된 체험을 얘기하려면 꾸밈없이 말해야지, 공허한 도리로 자기를 드러내지 말아야 합니다. 참된 리더는 체험을 통해 인식한 말씀을 교제하며 형제자매가 진리를 알도록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야죠. 반면 적그리스도는 공허한 글귀 도리로 자신을 뽐내 형제자매의 칭찬과 추앙을 얻고 사람을 자기 앞으로 이끕니다. 저를 돌아봤어요. 저도 공허한 이론만 말하고 실행의 길을 알려주지 않았고, 실제적인 문제도 해결해 주지 않았어요. 제 목적은 형제자매를 말씀의 실제로 이끌려는 게 아니라 그들의 높은 평가와 추앙을 얻는 거였죠. 자신을 드러낸 결과는 뻔했어요. 다들 절 숭배하고 우러러봤죠. 말씀을 증거하지 않고 다들 제 교제를 참고했어요. ‘다 형제님의 교제 덕분이에요’ ‘마태오 형제님 교제처럼’ 예배 때 이런 말을 자주 들었어요. 바울이 자신을 높이고 드러낼 뿐 예수님 말씀을 증거하지 않아 2천 년간 신도들이 그를 숭배하고 증거했던 게 생각났어요. 제가 한 짓은 바울과 다를 게 없었죠.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 길을 갔던 거에요. 전 두렵고 자신이 미웠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고질병이 또 도졌습니다! 말씀을 보고 방향을 알았지만 전 여전히 사탄을 따르고 제 허영심을 채우려고 또다시 사탄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하나님, 절 도와주세요. 구해주세요!’

어느 날 저녁, 예배 문서를 준비하는데 말씀을 보게 됐어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의 가장 큰 금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어떤 리더들은 늘 기발한 것을 생각해 내서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려고 하고, 새로운 수법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출중한지 보여 주려고 한다. 하지만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하는 것을 중요시하지 않고 늘 실력을 뽐내려고 하는데, 이러한 모습은 교만한 본성을 드러낸 것 아니겠느냐? …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때 발걸음을 크게 내디디려 하고, 큰일을 하고자 하고, 큰소리치려 하며, 큰 사역을 하려 한다. 또한 큰 모임을 가지려 하고, 큰 리더가 되려 한다. 네가 늘 큰 야심을 품고 있으면 하나님의 행정 법령을 거스르게 마련이며, 그런 사람은 빨리 죽게 된다.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성실하지도, 경건하지도, 신중하지도 않으면 언젠가는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게 될 것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가 없으면 하나님을 거스르기 쉽다> 중에서) 이 말씀을 보고 주저앉았어요. 말씀의 폭로를 보니 저의 야심과 큰일을 하고 싶어 했던 욕망이 보이더군요. 전 늘 예배를 열고 연설을 하려고 했죠. 드러내길 좋아해 그럴 수 있는 기회는 놓치지 않았어요. 다들 절 이렇게 숭배하길 바랬죠. “형제님과 하는 예배는 좋아!” “형제님보다 더 좋은 리더는 없어!” 이런 욕망의 지배하에 전 바쁘게 이 예배에서 저 예배로 다니며 사역하고 문제를 해결했어요. 리더가 된 느낌을 즐겼습니다. 하지만 『네가 늘 큰 야심을 품고 있으면 하나님의 행정 법령을 거스르게 마련이며, 그런 사람은 빨리 죽게 된다.』 이 말씀을 보고 전 속으로 두려움을 많이 느꼈어요. 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줄 알았는데, 사실 절 혐오하고 계셨죠. 스스로가 너무 역겨웠습니다. 전 늘 뭘 하든 다 크게 하려고 했는데, 그건 하나님을 증거하거나 진리를 행하기 위한 게 아니었어요. 모두의 생명에 책임감도 없었고요. 형제자매의 마음속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였어요. 하나님의 행정 법령을 거스른 거죠. 행정 법령에 보면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을 경배하고 높여야지, 함부로 잘난 체하거나 자신을 높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하나님께 순종하고 경배해야지, 사람을 높이거나 우러러보아서는 안 된다. 또한, 하나님을 가장 높은 지위에 두고 네가 우러러보는 사람과 너 자신을 순서대로 그 밑에 두어서도 안 된다. 네 마음속에 어떤 사람의 자리도 있어서는 안 되며, 특히 네가 숭상하는 사람을 하나님과 동등하거나 평등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나라시대의 선민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10가지 행정 법령> 중에서) 전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 행정 법령을 거슬렀을 뿐 아니라 더 심각하게도 형제자매들이 사람을 숭배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로 가게 했어요. 그 결과는 너무 심각해요. 하나님이 노하실 수밖에 없죠. 전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렀으니 용서하지 않으실 것 같아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죠. ‘하나님, 마음이 너무 괴롭습니다. 제 행위가 당신의 진노를 샀습니다. 회개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뜻을 알게 도와주세요.’

그렇게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말씀을 보게 됐어요. 『지금 너희를 심판하고 형벌하고 정죄하지만, 그것은 너희 자신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정죄하고 저주하고 심판하고 형벌하는 것 모두 너 자신을 알게 하고 너의 성품을 변화시키기 위함이며, 더욱이 너의 몸값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모든 일은 공의롭고 그의 성품에 따라 한 것이며, 그의 사역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자 사람을 구원하는 그의 계획에 따라 한 것임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공의로운 하나님이다. 네가 만약 자신의 지위가 낮다는 것과 자신이 패괴되었고 패역하다는 것만 알 뿐, 하나님이 지금 너에게 하는 심판과 형벌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려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너는 체험할 수 없고 계속 나아갈 수도 없다. 하나님은 사람을 치거나 멸망시키려고 온 것이 아니라 심판하고 저주하고 형벌하고 구원하러 온 것이다. 6천 년 경륜이 끝나기 전, 즉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을 드러내기 전에, 하나님이 땅에 와서 하는 사역은 모두 구원을 위한 것이며,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철저히 온전케 하여 그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 복종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중에서) 말씀을 보고 나니 마음이 안정됐습니다. 전 제 죄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지 못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변화하길 바라시며 징계하고 질책하신 거지, 미워서가 아니었어요. 하나님의 공의 성품, 하나님의 긍휼과 관용이 보였습니다. 이번엔 꼭 진리를 구해 제 패괴 성품을 해결할 겁니다.

그 후에 또 이런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정직한 사람이 되려면 우선 마음을 터놓고 모두가 네 마음과 생각, 진실한 면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거짓으로 꾸미지도, 포장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너를 신뢰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이는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실행이자 전제 조건이다. 늘 성결한 척, 고상한 척, 위대한 척, 인격이 고매한 척 꾸며 다른 이들이 너의 패괴와 결함을 보지 못하게 하며, 너를 올곧고 위대하고 헌신적이고 공정하고 이타적이라고 여기게 거짓된 모습만 보여 준다면, 그것은 간사함이다. 너 자신을 거짓으로 꾸미지도, 포장하지도 말고 마음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아라. 네가 다른 이에게 마음을 보여 줄 수 있고, 속으로 생각한 것, 계획한 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다 보여 준다면, 그것이 바로 정직한 것 아니겠느냐? 네가 다른 이에게 네 속내를 드러낼 때는 하나님도 지켜본다. 하나님은 “너는 다른 이에게 마음을 보여 줄 수 있구나. 그렇다면 너는 내 앞에서도 분명 정직할 것이다.”라고 말씀할 것이다. 혼자 있을 때, 하나님께만 네 본모습을 보이고, 사람들 앞에서는 늘 위대한 척, 고상한 척, 공평무사한 척 거짓된 모습을 보여 준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보겠고, 뭐라고 말씀하겠느냐? 하나님은 “너는 영락없이 간사한 사람이자 위선자이며, 소인배구나. 너는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씀할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너를 정죄할 것이다. 정직한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 앞에서든, 사람 앞에서든 자신의 행동이나 속마음을 털어놓아야 한다. 이것이 쉽겠느냐?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마음의 전쟁을 겪고 부단히 훈련해야만 조금씩 마음을 열고 털어놓을 수 있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실행> 중에서) 이 말씀을 보고 하나님의 요구가 뭔지 깨달았죠. 제가 정직해지기를 바라셨어요. 사람들한테 제 패괴와 진짜 속생각을 털어놓으면서 저의 약점과 어려움을 모두에게 알리는 거에요. 제가 늘 자신만 높이고 제 약점과 실패는 털어놓지 않고 사람들에게 제 거짓 형상만 알리며 교제하는 건 정직하지 못한 짓이죠! 형제자매뿐 아니라 하나님도 속이는 거죠. 전 꼭 정직한 사람이 되겠다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제 잘못된 관점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어요. 전 리더는 약점이 없는 영웅 같이 돼야 한다 생각했고 그리고 세상의 지도자처럼 당연히 다른 사람보다 더 월등하고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죠. 근데 하나님은 그런 걸 원하시지 않고 단순하고 정직한 사람을 원하셨어요. 자신의 패괴와 부족함을 솔직히 털어놓고, 진리를 좋아하고 실행할 수 있고, 또, 형제자매의 생명 진입에 신경 쓰고, 진리를 구해 원칙에 따라 일하고, 개인의 욕망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요. 예수님 말씀이 생각났어요.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 23:8~12) 전 리더가 된 후 다들 절 높이 보고 떠받들길 바라며 저를 꾸몄습니다. 하나님의 요구와는 너무나 먼 모습이었죠. 그때 알았어요, 리더의 역할은 종이라는 걸. 그것도 큰 책임을 짊어진 종이요. 어느 때든 자신의 직책을 명심하고 형제자매를 양육하고 붙들기 위해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죠. 리더는 만인지상인 그런 벼슬아치가 아니죠. 하나님은 창조주시죠. 사람은 지위 고하와 상관없이 모두 피조물로, 창조주를 경배해야 해요. 그 순간 전 제 역할과 제 책임을 깨달았어요. 전 마땅히 피조물의 자리에서 성실히 제 본분을 이행해야 하는 거죠. 그때부터 조금 변화가 생겼습니다. 정직해지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죠. 저를 높이고 드러냈단 걸 깨달으면 솔직히 털어놨고 의식적으로 제 패괴와 부족함을 밝혔어요. 가끔은 괴롭게 느껴졌지만 그럴수록 제가 얼마나 정직하지 않았는지, 얼마나 형제자매를 기만했는지 알 수 있었죠. 솔직히 털어놓을수록 제 모습과 제 진짜 분량이 보였어요. 전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예전엔 형제자매와 교제할 때면 도리를 가지고 격려하고 도와주는 윗사람 역할을 했어요. 그런데 이젠 제 실제 상태를 형제자매 앞에 밝히고 솔직하게 행합니다. 저도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겪고 그들이 드러내는 패괴를 저도 드러냅니다. 전 리더지만 다 똑같은 사람입니다. 단지 하는 본분이 다를 뿐이죠. 이렇게 실행하니 제가 남보다 뛰어나다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형제자매 체험에서 배울 점이 있었고 그들의 깨우침과 빛비춤을 받아들였죠. 전엔 남의 교제는 귀담아듣지 않았어요. 전 거만하게 남에게 빛비춤을 주는 사람이라고 여겼거든요.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니 형제자매들과도 더 가까워졌습니다. 상대를 더 잘 이해하고 실제 상태를 잘 볼 수 있었죠. 하나님은 제가 남을 돕고 동시에 저 역시 도움을 받도록 하셨단 걸 깨달았습니다. 형제자매들과 교제하면서 정말 많은 걸 배웠습니다. 더는 거만하거나 남다르다 여기지 않고 모두와 동등하게 지내니 정상 이성을 조금 회복했죠. 교제할 때면 리더란 제 신분을 까먹을 때도 있었어요. 이렇게 변화할 수 있다니, 하나님께 감사했죠!

그래도 저도 모르게 자신을 드러낼 때가 있긴 합니다. 사탄에게 너무 깊이 패괴된 거죠. 이건 일시적이 아니라 제 골수와 피 속에 박힌 모습입니다. 진리를 공급받지 못했다면,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없었다면 전 형제자매를 제 권력 아래에 두고 하나님과 겨루었을 겁니다. 이게 사실입니다. 성품이 변화하지 않으면 너무 위험합니다. 진리만이 패괴 성품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 주죠. 아니면 전 적그리스도가 돼 정죄받았을 겁니다. 제 잘못된 관점과 리더 본분에 대해서 순수한 인식을 갖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사탄 성품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구원해 주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어떻게 해야 죄의 매임에서 벗어나 정결케 될 수 있을까요? 그 길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게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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