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왜 부각물이 되기 싫어하느냐?

정복되는 대상은 부각물이다. 사람은 온전케 된 후에야 말세 사역의 표본 모델이 될 수 있다. 온전케 되기 전에는 부각물이자 도구, 봉사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철저히 정복된 사람은 경영 사역의 결정체이자 표본 모델이 된다. 별것 아닌 걸로 보이는 이 몇 개의 ‘호칭’ 때문에 사람에게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너희처럼 믿음이 작은 사람들은 종종 별것 아닌 호칭 하나 때문에 얼굴을 붉히고, 심지어 불쾌해할 때도 있다. 이것은 사소한 호칭일 뿐이지만, 너희는 생각과 의식상에서 이것을 그저 사소한 호칭이 아닌, 너희의 운명과 관련된 큰일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사리 분별을 못 하는 사람들은 자주 이 사소하기 그지없는 일 때문에 큰 손실을 야기하곤 하는데, 그야말로 작은 것 때문에 큰 것을 잃는 짓이라고 하겠다. 또한 너희는 작은 호칭 하나 때문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생각으로 도망가 버리기도 한다. 이것은 다 너희가 생명을 너무 경시하고 너희 자신에 대한 호칭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지위에 대한 너희의 관념으로 인해 영 생활에서 실생활에 이르기까지 자주 복잡하고 기이한 일들이 많이 터지곤 한다. 너희는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은 분명 실생활에 존재한다. 그저 일일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너희의 삶 속에서도 이런 일이 생긴 적이 있다. 못 믿겠다면 한 자매(형제)가 삶 속에서 겪은 다음의 작은 이야기를 보아라. 이 사람이 너 자신일 수도 있고, 네가 잘 아는 누군가일 수도 있다. 만약 내 말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 이야기는 너 자신의 체험일 것이다. 말 한 마디, 마음과 생각 하나까지 전부 이 이야기 안에 기록되어 있다. 믿지 못하겠다면 읽어 보도록 해라.

이것은 ‘영적인 사람’의 작은 체험이다.

교회의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일들을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조급해진 그는 형제자매들을 훈계하기 시작했다. “다들 양심도 없네요! 어째서 양심에 어긋난 짓을 하는 겁니까? 어째서 진리를 찾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겁니까? … 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저 자신을 증오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몹시 애태우며 조급해하시는 하나님을 보니 제 마음도 덩달아 조급해지네요. 저는 진실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완수하고 싶고, 당신들을 섬기고 싶지만 지금은 힘이 딸리네요.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많은 시간을 들이시고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우리는 아직도 이 모양이니 하나님께 늘 죄스러운 마음이 드네요….”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한다.) 이어 그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제게 힘을 주시고, 저를 더욱 감동시켜 주시며, 당신의 영이 제게 역사해 주십시오. 저는 당신과 협력하기 원합니다. 최종적으로 당신께서 영광을 받으실 수만 있다면, 저는 지금 제 모든 것을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목숨을 바쳐야 한대도 기꺼이 원합니다. 저희가 당신을 크게 찬양할 수만 있다면, 형제자매들이 모두 춤추고 노래하며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하고 당신을 영화롭게 하고 나타낼 수만 있다면, 당신의 사역을 진실로 믿고 당신의 부담을 생각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리하겠습니다….” 그가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자 성령이 정말 그에게 부담을 더해 주었다. 그 뒤로 그는 누구보다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온종일 보고 쓰고 들으며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영적 상태 또한 더없이 좋아져 마음속에 항상 힘이 넘치고 부담을 느꼈다. 가끔 연약해지거나 실패에 부딪힐 때도 있었지만, 얼마 안 가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렇게 한동안 체험하면서 그는 아주 빠르게 성장했고, 하나님의 많은 말씀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찬양도 매우 빨리 배우게 되었다. 요컨대, 영적 상태가 무척 좋아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교회의 일들을 보면 마음이 조급해져 형제자매들을 질책했다. “이것이 충심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것인가요? 어찌하여 조금의 대가도 치르려 하지 않죠? 하기 싫으면 그만두세요. 제가 하죠….”

부담을 갖고 있는 그에게 성령이 역사할수록 그는 믿음이 더 커지는 것 같았다. 간혹 난관에 부딪히고 소극적으로 변하더라도 혼자 힘으로 이겨 낼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성령의 역사를 체험할 때 상태가 아주 좋을지라도 일부 어려움으로 인해 연약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이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하지만 또 얼마 안 가 그런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연약함을 겪을 때, 기도하면서 그는 자신의 분량이 실로 작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하나님과 협력하기를 원했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고,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종하기를 원했다. 게다가 자신에게 다른 생각이나 선입견을 품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는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적극적으로 그 사람과 교제했다. 이는 전부 성령이 정상적으로 역사할 때 나타나는 사람의 상태이다. 한편,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하나님의 사역은 바뀌기 시작했고, 사람들도 새로운 사역 절차에 진입하게 되었다. 그러자 하나님은 사람에게 또 다른 요구를 했다. 새로운 말씀으로 사람에게 요구를 한 것이다. “… 나는 너희를 미워하기만 했을 뿐 단 한 번도 축복한 적이 없다. 아니, 너희를 축복할 생각도, 온전케 할 마음도 없다. 너희는 너무나 패역하기 때문이다. 너희의 교활함과 간사함 때문에, 너희의 부족한 자질과 낮은 지위 때문에 나는 단 한 번도 너희를 안중에 둔 적이 없으며, 마음에 둔 적도 없다. 나는 너희를 정죄하려는 목적으로 사역한다. 나의 손과 형벌은 줄곧 너희를 떠나지 않았으며, 나는 언제나 너희를 심판하고 저주한다. 너희가 나를 알지 못하기에 너희에 대한 내 분노는 한시도 떠나지 않는다. 나는 너희 가운데서 계속 역사하고 있지만, 너희에 대한 내 태도가 어떤지 너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너희에게는 오직 혐오하기만 할 뿐, 다른 태도도 생각도 없다. 나는 그저 너희를 통해 나의 지혜와 큰 능력을 부각시킬 뿐이다. 너희는 나의 부각물에 불과하다. 나의 공의가 너희의 패역을 통해 더 확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내 사역의 부각물, 그리고 부속물로 삼았다….” 그는 부각물, 그리고 부속물이라는 말을 보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러면 어떻게 따라가지? 이렇게 대가를 치렀는데도 부각물이 된다니, 부각물이라면 힘쓰는 자 아닌가? 전에는 봉사자가 아니라 백성이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 보니 봉사자의 꼬리표를 떼어 버리지 못했구나. 봉사자라면 생명이 없지 않은가? 내가 아무리 많이 고생해도 하나님께서는 인정해 주지 않으시겠구나! 부각물이 된 후에는 그대로 끝나는 것 아닌가?’ 그는 생각하면 할수록 힘이 빠졌다. 교회에 가서 형제자매들의 상태를 보자 마음은 더욱 괴로워졌다. “여러분도 버겁겠지만 저도 버겁네요! 저는 소극적으로 변했어요. 에휴! 뭘 어쩌겠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원치 않으시는 걸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역하시니 소극적이 안 될 수가 없네요. 저도 왜 이런지 기도도 하고 싶지 않네요. 어쨌든 지금은 아무것도 못 하겠어요. 도저히 힘이 생기질 않네요. 몇 번이고 기도했지만 정말 기운도 안 생기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도 않네요. 제 생각은 그래요. 하나님은 우릴 부각물이라고 하셨어요. 부각물이라면 힘만 쓰는 봉사자잖아요? 바로 그런 부각물이라고 하셨어요. 아들도, 백성도, 아들들도 아니고 장자는 더더욱 아니죠. 그 무엇도 아닌 그저 부각물이라고 하셨어요. 이런 꼬리표가 붙었는데 우리에게 좋은 결말이 차례지겠어요? 부각물은 희망이 없잖아요. 생명이 없으니까요. 아들이나 백성이라면 온전케 될 희망이 있겠지만, 부각물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담을 수 있겠어요? 하나님께서 힘만 쓰는 사람 안에 생명을 넣어 주실 리 있겠어요? 하나님은 그의 생명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시잖아요.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사람이야말로 그의 아들이자 백성이죠. 제가 소극적으로 변했고 연약해졌다고 해서 여러분도 이렇게 되지는 마세요. 이렇게 뒷걸음질하고 소극적으로 굴어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요. 저는 부각물이 되고 싶지도 않고, 또 그렇게 되는 게 두렵네요. 어쨌든 저의 의지도 이만큼뿐이네요. 어차피 전 이제 가망이 없어요. 그래도 여러분은 저를 따라 배우지 말고 저를 교훈으로 삼아서 얻는 게 있기를 바래요. 전 그냥 죽어 버릴까 봐요! 죽기 전에 남기고 싶은 말이 있어요. 여러분은 부각물이 되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기 바래요. 어쩌면 부각물이 하나님께 인정받을지도 모르니….” 형제자매들은 그를 보면서 “왜 그렇게 소극적으로 변했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제 없었잖아요? 왜 갑자기 그렇게 ‘식어’ 버렸어요? 왜 비정상이 된 거죠?”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저를 비정상적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사실 속으로는 뻔히 알고 있어요. 제가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하지 못했다는 것도 알아요. 하나님의 부각물이 안 되려고 하는 것밖에 더 있어요? 나쁜 일을 저지른 건 없어요. 어쩌면 하나님께서 부각물을 피조물로, 그것도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피조물로 바꿔 주실 날이 올지도 모르잖아요. 그렇다면 가망이 있지 않겠어요? 여러분은 소극적으로 변하지 말고, 낙담하지 말고 계속 하나님을 따르면서 부각물의 역할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어쨌든 저는 계속 나아가지 못하겠으니 여러분은 저에게 구속받지 마세요.”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당신이 따르지 않겠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계속 따를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박대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소극적인 모습에 물들지 않을 거예요.”라고 했다.

그렇게 한동안 체험했지만 그는 부각물이 되는 것 때문에 여전히 소극적인 상태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말했다. “너는 내 사역을 전혀 알지 못하고, 내가 하는 말의 실상과 본질, 그리고 이루려는 성과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다. 또한, 너는 내 사역의 목적과 지혜에 대해서도 모르며, 내 마음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네가 아는 것이라곤 부각물이 된 것으로 인해 뒷걸음질 치는 것뿐이다. 지위에 대한 욕심이 너무나도 크구나! 바보 같은 것아! 지난날 나는 네게 수많은 말을 하며 너를 온전케 하겠다고 했다. 그것을 잊은 것이냐? 부각물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온전케 되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더냐?” 그러자 그는 “잠깐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부각물이라는 말씀을 하기 전에 온전케 되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군요. 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내가 그 말을 할 때, 먼저 사람을 정복한 후에 온전케 하겠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렇습니다!” “내가 하는 말은 진실하지 않더냐? 내가 하는 말은 신실하지 않더냐?” “그렇죠! 당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말씀하시는 방식은 너무나도 다양합니다.” “내가 말하는 방식은 사역의 절차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니더냐? 내가 한 말은 네 필요에 맞춰 사역하고 말한 것 아니더냐?” “당신은 사람의 필요에 맞춰 사역하시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십니다. 이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하는 말은 네게 유익하지 않겠느냐? 형벌 또한 너를 위한 것 아니겠느냐?” “저를 위해서라뇨! 저는 당신의 형벌 때문에 죽기 직전입니다. 더는 살고 싶은 마음도 없는 걸요. 당신은 오늘 이렇게 말씀하시고, 내일은 또 다르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저를 온전케 하시는 것도 저를 위해서라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저를 온전케 하시기는커녕 오히려 저를 부각물로 삼으셨으며, 여전히 저를 형벌하십니다. 그러니 저를 증오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당신의 말씀은 믿을 수가 없네요. 이제야 알겠네요. 당신은 그냥 마음의 분풀이를 하려는 것이지, 저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게 아니라는 것을요. 지금까지 당신은 저를 속이셨습니다. 저를 온전케 하시겠다고 말씀하셨고, 형벌도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라기에 계속 순종하며 형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부각물’이라는 호칭을 얻을 줄은 몰랐네요. 하나님, 다른 것도 아니고 하필 제게 부각물이라는 꼬리표를 붙이셔야겠습니까? 하나님나라에서 문지기라도 괜찮습니다! 저는 줄곧 열심히 뛰어다니고 헌신했지만, 결국에는 두 손이 텅 비고 가진 거라곤 아무것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부각물이 되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제가 무슨 낯으로 다른 사람들을 볼 수 있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 내가 예전에 심판의 사역을 그렇게 많이 했는데 너는 인식한 것이 없느냐? 너는 참으로 자신에 대해 알게 되었느냐? 부각물이라는 호칭 또한 말씀의 심판이 아니겠느냐? 설마 부각물에 관한 말씀 또한 일종의 방식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런 방식으로 너를 심판하기 위해서겠느냐? 그럼 너는 어떻게 따라야 하겠느냐?” “어떻게 따를지는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제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저는 부각물입니까, 아닙니까? 부각물도 온전케 될 수 있습니까? 부각물이라는 이 명칭은 바뀔 수 있는 것입니까? 부각물도 힘 있는 증거를 한 후에는 온전케 된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는 본보기, 하나님의 지기(知己)로 만들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해 주실 수 있습니까? 사실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너는 사실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 네가 지금 부각물이라는 이 지위에 순종하기만 하면 너도 변할 수 있다. 부각물이냐 아니냐가 네 운명과 관계되지는 않는다. 관건은 네가 성품이 변화된 사람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저를 온전케 해 주실 수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네가 끝까지 따르고 순종하기만 한다면 나는 틀림없이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제가 또 어떤 고난을 받아야 합니까?” “환난,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겪어야 한다. 특히 부각물과 같은 말씀의 형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부각물과 같은 형벌이 또 있단 말입니까? 하지만 환난을 겪고 나서 당신께 온전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그걸로 됐습니다. 그것이 아주 작은 한 줄기 희망이라도 부각물보다는 나으니까요. 부각물이라는 이름은 정말이지 듣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부각물이 되고 싶지 않아요!” “부각물이 어때서 그러느냐? 나쁠 것 없지 않으냐? 부각물은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더냐? 내가 부각물에게 복을 누리게 하겠다고 말하면 너는 복을 누릴 것이다. 사람의 호칭은 나의 사역에 따라 변하는 것 아니냐? 호칭 하나에 너는 이렇게까지 속앓이를 한단 말이냐? 이런 부각물이 되는 것은 참 가치가 있는 것이다. 너는 따르겠느냐?” “당신은 저를 온전케 해 주실 수 있습니까? 제게 당신의 복을 누리게 해 주실 수 있습니까?” “너는 끝까지 따를 생각이 있느냐? 너 자신을 바칠 생각이 있느냐?” “조금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부각물도 당신의 복을 누릴 수 있고, 당신께 온전케 될 수 있으며, 그 후에 당신의 지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당신의 모든 뜻을 이해하고, 당신이 가지고 계시는 것을 저도 가지며, 당신이 누리시는 것을 저도 누리고, 당신이 아시는 것을 저도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고요. … 환난을 겪고 온전케 된 후에 복을 누릴 수 있다면, 그 복은 어떤 복입니까?” “어떤 복을 누릴지는 일단 생각하지 말라. 내가 알려 주어도 너는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부각물이 되고 나면, 그러니까 정복되고 나면 성공한 부각물, 정복된 표본 모델이 된다. 물론 정복된 후에야 표본 모델이 될 수 있다.” “표본 모델이란 무엇입니까?” “모든 이방인, 즉 정복되지 않은 사람들의 표본 모델이다.”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아주 많다. 너희 4~5천 명에 그치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이 이름을 받아들인 자들은 모두 정복될 것이다.” “그럼 다섯 고을, 열 고을은 넘겠네요!” “조급해하지 말고,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 지금 어떻게 진입해야 할지나 생각하여라!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너를 온전케 해 주겠다.” “저를 어느 정도로 온전케 해 주시고, 제게 어떤 복을 누리게 해 주시겠습니까?” “무얼 그리 조급해하느냐! 내가 온전케 해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 내가 신실한 자임을 잊은 것이냐?” “당신은 분명 신실하십니다. 다만 오늘은 온전케 하신다고 하셨다가 내일 가서는 안 그럴 수도 있다고 하시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너 같은 자는 절대 온전케 될 수 없다’라고 하시는 등 말씀하는 방식이 늘 바뀌잖아요. 당신의 말씀을 들어도 어떻게 될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좀처럼 믿기도 힘듭니다.” “너는 도대체 자신을 바칠 수 있느냐, 없느냐?” “무엇을 바친단 말입니까?” “너의 미래와 소망을 바쳐야 한다.” “그런 것들은 모두 내려놓기 쉽습니다! 중요한 건 부각물이라는 이 이름이 너무나 싫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제게서 부각물이라는 이 꼬리표만 떼어 주신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다 내려놓는 것 정도는 별 문제가 안 됩니다. 그러니 제게 부각물이라는 꼬리표를 떼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것은 지극히 쉬운 일 아니겠느냐? 내가 네게 달아 준 것이니 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안 된다. 이 단계를 체험한 후에야 새로운 이름으로 바뀔 수 있다. 너 같은 사람일수록 더 부각물이 되어야 한다. 네가 부각물이 되기를 두려워할수록 나는 네게 더 부각물이라는 꼬리표를 붙일 것이다. 너 같은 사람은 반드시 엄한 징계와 책망을 받아야 한다. 패역한 사람일수록 힘쓰는 대상이 되는 법이다. 그런 자들은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제가 이렇게 추구하는데도 어째서 부각물이라는 꼬리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겁니까? 저희는 이 오랜 세월 당신을 따르며 많은 고난을 받았고, 당신을 위해 수많은 일을 하며 온갖 풍파를 겪었습니다. 저희는 모두 나이가 꽉 찼지만 결혼을 하거나 가정을 이루지도 않았습니다. 결혼하고 가정을 이룬 사람들도 전부 나왔습니다. 저는 고등학생일 때 당신이 오셨다는 말을 듣고 대학에 갈 기회마저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저희에게 부각물이 되라니, 저희가 얼마나 손해입니까! 이렇게 고생한 결과가 당신의 부각물이 되는 것이라니, 제 동창과 또래 친구들이 저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그들이 저에게 지금 어떤 지위와 신분을 갖고 있냐고 물으면, 저는 어떻게 대답해야겠습니까? 당초 저는 당신을 믿었기에 어떤 대가든 모두 치렀습니다. 다른 이들이 어리석다고 비웃어도 저는 당신을 따르면 언젠가 빛 볼 날이 있을 거라고, 그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보여 줄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께서 저를 부각물이라고 하십니다. 가장 낮은 지위라도 좋습니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인정해 줘도 됩니다! 당신의 제자가 못 되어도, 당신의 마음을 아는 자가 될 수 없어도 좋습니다. 그저 당신을 따르기만 하는 사람이라도 괜찮습니다! 저희는 오랜 세월 당신을 따르면서 가정까지 버렸습니다. 오늘날까지 따라온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부각물이라는 호칭을 얻다니요. 저는 당신을 위해 무엇이든 버렸고, 어떤 부귀영화도 포기했습니다. 지난날, 누군가 제게 결혼 상대를 소개해 준 적이 있었습니다. 외모도 스타일도 참 훌륭한 고위층 인사의 자제였습니다. 그때 저는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지만, 나중에 하나님께서 나타나 사역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신께서는 저희를 하나님나라로 이끌고 온전케 해 줄 것이니,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하셨지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제게 각오가 없더군요! 그래서 저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그 사람을 밀어냈습니다. 그 사람이 저희 집에 선물도 수차례 보냈지만, 거들떠보지도 않았지요. 그때 제 마음이 괴롭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게 좋은 사람을 놓쳤는데 괴롭지 않을 리 있겠습니까? 저는 그 일로 며칠이나 밤잠 못 이루며 힘들어했지만, 결국에는 내려놓았습니다. 기도할 때면 성령은 언제나 감동시켜 주셨습니다. ‘너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느냐? 나를 위해 헌신하겠느냐?’라는 당신의 말씀을 떠올리기만 하면 눈물이 흘렀습니다. 수없이 감동을 받았고, 설움에 잠겨 눈물을 흘린 것도 몇 번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1년 뒤, 그 남자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저는 당신을 위해 그 일을 내려놓았습니다. 제대로 먹고 입지 못한 건 둘째 치고, 이 어긋난 결혼만 봐도 저는 모든 것을 버린 셈입니다. 이걸 봐서라도 부각물로 삼는 것은 아니지요! 저는 당신께 헌신하는 마음으로 제 결혼을, 제 인륜지대사를 포기했습니다! 사람이 좋은 반려자를 찾아 좋은 가정을 이루는 것은 인생의 전부나 다름없습니다. 저는 최고의 것들을 모두 버리고, 이제 두 손이 텅 빈 외톨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저더러 어디로 가라고 하시는 겁니까? 저는 당신을 따른 이후 늘 고난을 받았지 좋은 날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육적인 누림도 모두 포기했습니다. 저희가 바친 모든 대가를 다 합쳐도 당신의 복을 누리기엔 부족하단 말씀입니까? 오늘 저희에게 부각물이 되라고 하시는 건 너무한 처사입니다. 저희들을 보십시오. 세상에 의지할 곳 하나 없습니다. 아들딸을 버린 사람도 있고, 일자리를 버린 사람도 있으며, 아내를 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육적인 누림을 모두 버린 저희에게 또 어떤 기대가 있겠습니까? 저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저희의 이 모든 대가가 한 푼의 값어치도 없는 것입니까? 당신은 하나도 보지 못하신 것입니까? 저희들의 신분이 미천하고 자질이 떨어진다는 건 저희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저희에게 요구하신 것을 저희가 언제 따르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까? 그런데도 당신은 오늘 저희를 냉정하게 내치며 부각물의 ‘대우’를 하시는데, 그러시고도 속이 편하십니까? 저희가 치른 대가로 겨우 부각물밖에 얻지 못한단 말입니까?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제게 하나님을 믿어서 어떤 것을 얻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들 앞에 부각물의 이름을 내놓을 순 없지 않습니까? 제가 어찌 제 입으로 저 자신이 부각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부모님에게도, 예전의 그 남자에게도 떳떳이 내놓을 게 없습니다. 그 많은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것이 부각물이라니요. 아! 참으로 가슴이 시립니다!” (무릎을 치며 울기 시작한다.) “설령 내가 지금 네게 부각물이 아니라 백성의 호칭을 준다고 한들, 네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지위를 줄 테니 가서 사역하라고 한들, 네가 할 수 있겠느냐? 이 한 단계 한 단계의 사역을 체험해 오면서 너는 도대체 무엇을 얻었느냐? 그러고도 너의 과거를 들먹이다니 정말 부끄러움도 모르는구나! 너는 대가만 치르고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하는데, 설마 내가 얻으려는 사람에 대한 조건을 말해 주지 않았단 말이냐? 내 사역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너는 알고 있느냐? 과거사를 들먹이다니!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란 말이냐! 고난을 겪은 것은 너 스스로가 원한 일이 아니었더냐? 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더냐? 너는 내 요구에 부합했느냐? 네 머릿속에는 오직 복받을 생각밖에 없다니, 정말이지 염치도 없구나! 내가 언제 네게 강압적으로 요구한 적이 있느냐? 나를 따르길 원한다면 조건을 내밀지 말고 매사에 나에게 순종해야 한다. 나는 이 길은 고난의 길이며, 좋은 일은 적고 나쁜 일이 많을 것이라고 네게 미리 말해 줬다. 그것을 잊은 것이냐? 나는 이런 말을 적지 않게 했다. 고난을 감내하려거든 따르고, 그렇지 않다면 그만두어라. 나는 강요하지 않으니 선택은 네 자유다! 그러나 나는 계속 이렇게 사역해 나갈 것이다. 나는 너 한 사람의 패역 때문에 내 모든 사역을 그르칠 수 없다. 네가 순종하기 싫어해도 순종하길 원하는 사람은 있다. 모두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보구나! 아무것도 겁내질 않으니! 내게 조건을 따지다니, 죽고 싶은 것이냐? 너는 너 자신을 위해 생각하고 너 자신을 위해 명리를 다투지만, 내 사역은 너희를 위한 것이 아니더냐? 너는 눈이 먼 것이냐? 내가 성육신하지 않았다면 보지도 못했을 것이니, 그런 말을 한다 해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성육신하여 너희 가운데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도 보지 못하는 것이냐? 모르는 게 무엇이냐? 너는 손해를 봤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너희 같은 천한 것들을 구원하기 위해 성육신하여 그 많은 사역을 하고도 원망이나 듣는 나는 손해를 본 것이 아니냐? 내가 행한 것은 모두 너희를 위한 것이 아니냐? 현재 사람의 분량을 보면 그런 호칭으로 부르는 것이 맞다. 오늘날 내가 너를 부각물이라고 부르면 너는 부각물인 것이고, 백성이라고 부르면 너는 백성인 것이다. 내가 너를 뭐라고 부르면 너는 바로 그런 존재다. 이것은 모두 내 말 한 마디에 달린 것이 아니냐? 그런데 그 한 마디가 너를 이토록 분노케 한단 말이냐? 내가 네게 크게 실례했구나! 지금 순종하지 못해서 결국 저주를 받고 돌아가야 좋겠느냐? 생명의 도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직 지위와 호칭에만 연연하는구나. 네 생명은 어떠하냐? 네가 많은 대가를 치렀다는 것은 나 역시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 자신의 분량과 네가 실행한 것들을 보아라. 오늘날까지도 조건을 따지고 앉았으니 이것이 바로 네 의지와 맞바꾼 분량이냐? 네게 인격이 있기는 하냐? 양심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냐? 내가 잘못 행한 것이냐? 너에 대한 내 요구가 잘못된 것이냐? 어떻게 된 것이냐? 며칠만 부각물이 되라 하는데도 꺼려 하면서 네게 무슨 의지가 있다는 것이냐? 모두 나약하고 줏대 없는 폐물들이다! 너 같은 사람은 지금 징벌해도 마땅하다!” 내가 이렇게 말하자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희는 지금 이런 사역을 체험하면서 하나님의 사역 절차와 사람을 변화시키는 방식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변화될 수 있다. 너희의 추구에는 개인의 관념, 기대와 미래에 대한 것이 너무나 많다. 현재 이렇게 사역하는 이유는 바로 지위에 대한 너희의 마음과 사치스러운 욕망을 다스리기 위함이다. 그러한 기대와 지위, 관념은 모두 전형적인 사탄 성품을 대변한다. 사람의 마음에 그런 것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탄의 독소가 사람의 사상을 좀먹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시종일관 사탄의 그 유혹을 벗어던지지 못하여 죄 속에서 살면서도 죄로 여기지 않는다. 또한, 사람은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복을 주셔야 하고 우리의 모든 것을 알맞게 마련해 주셔야 해.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야 하는 거야. 어떤 사람보다도 지위가 높고 앞날이 밝아야 해.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축복을 주셔야 해.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잖아.’라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의 생존의 토대가 된 사상은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좀먹어 사람을 간사하고 나약하며 비열하게 만들어 버렸다. 사람은 끈기도, 의지도 없을 뿐만 아니라 탐욕스럽고 거만하게 변했다. 자신을 초월하려는 의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이 흑암 권세의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용기는 더더욱 없다. 사람의 사상과 삶은 썩어 문드러졌고, 이로 인해 하나님을 믿는 관점 또한 추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관점에 대해 말하자면 그야말로 듣기조차 민망할 정도다. 사람은 모두 나약하고 무능하며 비열하고 연약하다. 흑암 권세에 대해 어떤 증오심도 느끼지 못하고, 광명과 진리를 사랑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온 힘을 다해 그것을 쫓아낸다. 현재 너희의 사상과 관점도 그렇지 않으냐? 하나님을 믿는 이상 복을 받아야 하고, 안정적인 지위를 보장받아야 하며, 믿지 않는 사람보다 높은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관점이 너희 내면에 자리 잡은 건 1~2년의 일이 아니라, 이미 꽤 오래되었다. 너희는 장삿속이 아주 발달했다.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지위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한 채 계속 바득바득 ‘추궁’하고 있다. 게다가 매일같이 관찰하며, 언젠가 지위도, 명예도 모두 잃게 되지 않을까 심히 두려워하고 있다. 사람은 안락을 탐하는 마음을 한 번도 내려놓은 적이 없다. 내가 지금처럼 이렇게 심판하면 너희가 궁극적으로 얼마나 깨닫게 되겠느냐? 너희는 자신의 지위가 높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높여 주심을 누렸다고 말할 것이며, 지위가 없는 것은 너희의 출생이 미천하기 때문이고, 지위가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높여 주심과 베풀어 주심 때문이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너희가 직접 하나님께 훈련받고, 하나님께 형벌과 심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더더욱 하나님이 높여 주신 덕분이다. 또한 직접 하나님께 정결함과 불사름을 받을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크나큰 사랑 덕분이다. 역대 이래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정결케 함과 불사름을 받지 못했고,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케 되지 못했다. 지금 하나님이 너희와 얼굴을 마주하고 말씀하며, 너희를 정결케 하고 너희 속에 있는 패역을 드러내고 있으니, 참으로 하나님이 너희를 높여 준 것이다.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다윗의 자손이든 모압의 후손이든 사람은 모두 피조물이니 자랑할 것이 없다. 피조물이라면 마땅히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 나는 너희에게 다른 요구가 없다. 너희는 다음과 같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제게 지위가 있든 없든 저는 이제 자신을 알게 됐습니다. 제 지위가 높다면 그것은 당신의 높여 주심이고, 제 지위가 낮다면 그것 또한 당신의 결정입니다. 모든 것이 당신의 손에 달렸으니 저는 어떤 선택도, 원망도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저를 이 나라, 이 민족 가운데서 살게 하셨으니 저는 당신의 권세에 오롯이 순종할 따름입니다. 이 모든 것은 당신의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떤 지위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피조물일 뿐이니까요. 당신께서 저를 무저갱에, 유황불 못에 넣으신다고 해도 저는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당신께서 저를 쓰셔도 저는 피조물이고, 당신이 저를 온전케 하셔도 저는 피조물입니다. 당신께서 저를 온전케 하지 않으셔도 저는 변함없이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저는 그저 일개 피조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창조주께서 만드신 보잘것없는 피조물이자, 당신께서 지으신 인류 중의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당신이 저를 만드셨고, 오늘날 또 저를 당신의 손안에서 지배하시니 저는 당신의 도구, 당신의 부각물이 되길 원합니다. 이 모든 것은 당신께서 정하신 것이므로 누구도 바꿔 놓을 수 없습니다. 만사 만물이 다 당신의 손안에 있습니다.” 이러면 너는 지위 따위를 중시하지 않고 해방을 받게 된다. 그래야 너는 담대하게 추구해 나가고, 너의 마음이 그 어떤 일에도 구애받지 않게 된다. 사람은 거기에서 풀려나면 어떤 염려도 하지 않게 된다. 현재 너희 대다수가 염려하는 것은 어떤 것이냐? 늘 지위에 묶여 있고, 자신의 앞길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 늘 말씀 책을 뒤적이면서 인류의 종착지에 관련된 말씀을 보고 싶어 하고, 자신의 앞길과 종착지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또한 ‘내 앞길은 있는 걸까? 하나님께서 앞길을 없애 버리신 게 아닐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부각물이라는 말씀만 하셨어. 그렇다면 앞길은 대체 무엇일까?’라고 늘 속으로 궁리한다. 너희는 앞길과 운명을 내려놓기를 너무 힘들어한다. 현재 너희는 하나님을 따르고 있고, 이 단계 사역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여전히 지위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지는 못했다. 지위가 높아지면 열심히 추구하고, 지위가 낮아지면 추구하지 않으니, 지위의 복에 대한 생각이 마음에 가득하다고 하겠다. 어째서 많은 사람이 늘 소극적이 되어 일어서지 못하는 것이겠느냐? 앞날이 ‘암담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너희는 거기에서 황급히 자신의 지위와 신분이 어떠한지를 확인한다. 지위와 신분, 이 두 가지를 너희는 가장 앞자리에 놓고, 이상(異象)은 그다음이며, 자신의 진입은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가 비로소 현재 하나님의 뜻이다. 너희는 먼저 부각물이라는 호칭이 바뀌지 않았는지를 확인하고, 뒤적거리다가 부각물의 꼬리표가 떨어졌으면 기뻐하면서 끊임없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큰 능력을 찬양하지만, 여전히 부각물이라는 것을 확인하면 괴로워하며 그 순간 힘이 다 빠져 버린다. 네가 이렇게 추구할수록 얻는 것이 없다. 지위에 대한 욕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 큰 책망을 받고, 더 큰 연단을 겪게 된다. 그런 사람은 너무나도 무가치하다! 많은 책망과 심판을 받아야만 철저하게 내려놓을 수 있다. 너희가 이런 식으로 추구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생명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변화할 수 없고, 진리를 간절히 사모하지 않는 사람은 진리를 얻을 수 없다. 너는 자신의 변화와 진입을 추구하기보다는, 언제나 사치스러운 욕망이나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가까이하지도 못하게 만드는 것들을 중시하고 있다. 그런 것들이 너를 변화시킬 수 있겠느냐? 너를 하나님나라로 인도할 수 있겠느냐? 네가 추구하는 목표가 진리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이 기회에 세상으로 돌아가 한바탕 크게 하고 싶은 일을 벌이는 것이 낫겠다. 이렇게 헛되이 시간만 보내 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 굳이 너 스스로를 괴롭힐 필요가 있겠느냐? 아름다운 세상에서 무엇인들 누릴 수 없겠느냐? 재물과 미인, 지위, 허영, 가정, 자녀 등등 이 모든 세상의 산물이 전부 네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것들이 아니더냐? 무엇 하러 여기에서 편히 쉴 곳을 찾아 헤매느냐? 인자도 머리 둘 곳이 없거늘, 네게 어찌 안락한 곳이 있겠느냐? 아무렴 그가 네게 안락하고 좋은 쉼터를 마련해 주겠느냐? 그것이 가능하겠느냐? 오늘날 네가 내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심판과 진리의 가르침뿐이다. 너는 내게서 안락을 얻을 수 없고, 오매불망 바라는 안락한 거처도 얻을 수 없다. 나는 네게 세상의 부귀영화를 주지 않는다. 네가 진심으로 추구한다면 나는 네게 모든 생명의 도를 줄 것이고,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누리게 해 줄 것이다. 그러나 네가 진심으로 추구하지 않는다면 나는 네게서 모든 것을 거두어 갈 것이다. 나는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안락을 탐하는 개돼지 같은 자들에게 줄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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