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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

목차

제2단계 정복 사역은 어떻게 효과에 도달하는 것인가

효력자 그 단계 사역은 제1단계의 정복 사역이고 현재는 제2단계의 정복 사역이다. 무엇 때문에 정복 사역 중에서 또 온전케 되는 것을 말하겠는가? 그것은 이후를 위해 기초를 다지는 것이다. 현재는 최후 한 단계 정복 사역이고 이 후에는 바로 대환난을 겪는 때이다. 그때면 사람을 정식으로 온전케 하기 시작한다. 현재는 주로 정복하는 것이지만 역시 온전케 하는 시작 단계인데, 사람의 인식과 순복을 온전케 한다. 물론, 이런 인식과 순복은 여전히 정복 사역을 위해 기초를 다지는 것이다. 온전케 되려면 너는 이후의 환난 속에서 굳게 설 수 있어야 하고 다음 단계 사역의 확장을 위해 자신의 전력을 다해야 한다. 이러면 온전케 되는 것에 속한다. 그때는 또한 사람이 철저히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때이다. 현재는 정복되는 것을 말하고 온전케 되는 것도 말한다. 하지만 현재 하는 것은 이후에 온전케 되는 데의 기초이다. 온전케 되려면 사람은 반드시 환난을 겪어야 하는데, 정복된 이 기초에서 환난을 겪는다. 사람이 만약 현재의 이 기초가 없고 철저히 정복되지 않았다면 다음 단계에 굳게 서기 어렵다. 정복만 된다면 아직 최종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고 단지 사탄 앞에서 하나님을 위해 한 단계 증거만 하였을 뿐이다. 온전케 되는 것이야말로 최종 목적이다. 만약 네가 온전케 되지 못했다면 너 같은 사람은 폐기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에 환난이 닥칠 때라야 사람의 실제 분량을 알 수 있는데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너의 순결 정도를 알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사람은 모두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든지 우리는 다 순복하고 또한 안받침물이 되어 하나님의 큰 능력과 하나님의 성품을 두드러지게 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시든지 혹은 저주하시든지 혹은 심판하시든지 우리는 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현재 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단지 얼마간의 인식이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너의 인식을 실제 가운데로 가져갈 수 있는지 없는지는 너의 인식이 도대체 실제적인지의 여부에 달렸다. 현재 사람에게 이런 깨달음과 이런 인식이 있는 것은 정복 사역으로 도달한 효과이다. 온전케 될 수 있는지 없는지의 관건은 그래도 환난이 닥칠 때라야 알 수 있다. 그때면 네가 하나님에 대해 마음속에서 진실로 사랑하는가를 알게 된다. 만약 너에게 정말로 순결한 사랑이 있다면 너는 “우리는 바로 안받침물이고 하나님 손의 피조물입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때 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는 바로 효력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이 패괴 성정에 의해 하나님께서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하셔서 비로소 우리에게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게 하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하신 그런 말씀이 아니라면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고 하나님의 지혜를 느낄 수 없으며 이렇게 큰 구원의 은혜와 이렇게 큰 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너에게 정말로 이 깨달음이 있으면 다 된 것이다. 현재 네가 많은 말을 해도 다 깊이 고려하지 않고 말하고 또한 늘 구호만 외친다. “우리는 안받침물이고 효력자입니다. 우리는 정복되어 하나님을 위해 드높은 증거를 하길 원합니다…” 네가 외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외친다고 해서 네가 분량이 있는 사람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너는 진실한 인식이 있어야 하고 너의 인식은 검증을 거쳐야 한다.

네가 이 한동안의 경력(역주: 체험)을 회상해 보고 다시 이런 말을 보고 자기 자신이 한 것을 대조해 보면 조금도 틀림없이 안받침물이고 조금도 거짓이 없다! 현재 너는 어느 정도로 인식했는가? 너의 생각, 너의 마음, 너의 행위, 너의 언행, 네가 살아내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을 두드러지게 하고 있지 않는가? 현재 말씀에서 드러낸 것은 다 사람의 패괴 성정이 아닌가? 너의 생각과 속마음에 의해, 네가 유로(역주: 흘러나옴)한 것에 의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과 거룩을 나타낸다. 마찬가지로 더러운 곳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조금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았다. 너와 마찬가지로 더러운 세상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이지(理智)가 있고 견식이 있다. 그는 더러움 심지어 너의 그 언행과 행동까지 혐오한다. 너 자신이 발견할 수 없는 더러운 것들도 그는 발견할 수 있고 너에게 지적해 줄 수 있다. 이전의 너의 그 낡아빠진 것들과 교양이 없고 견식이 없고 이지가 없는 낙후한 생활 방식을 오늘 폭로하는 것에 의해 다 드러냈다. 하나님이 땅 위에 와서 이렇게 역사해서야 사람이 그의 거룩과 그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게 되었다. 그가 너를 심판ㆍ형벌하여 인식하게 하고, 어떤 때는 너의 귀신 본성이 드러나면 그가 지적해 준다. 사람의 실질에 대해 그는 손금 보듯 환하다. 마찬가지로 너와 똑같이 생활하고 너와 똑같은 밥을 먹고 똑같은 집에서 살지만 그는 너보다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의 처세 철학, 사람의 교활과 간사, 그것은 그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다. 그는 이런 일을 혐오하고 이런 일을 상대하기 싫어하며 특히 사람의 육체적 왕래를 증오한다. 사람 간에 교제하는 일부 상식은 그가 비록 그다지 통하지 않지만 사람이 일부 패괴 성정을 드러낼 때 그는 완전하게 알고 있다. 그가 역사하는 것은 바로 사람의 이런 것에 의해 말씀하고 사람을 교훈하며 이런 것에 의해 사람을 심판하고 그의 공의롭고 거룩한 성품을 나타낸다. 이리하여 사람은 그의 역사의 안받침물이 된 것이다. 말씀으로 된 하나님의 육신이라야 각종 사람의 패괴 성정을 드러내고 사탄의 모든 추한 몰골을 드러내게 된다. 너를 징벌하지 않고 다만 너에게 하나님의 거룩을 두드러지게 할 뿐인데 너 자신이 버티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네가 너무나 더럽기 때문이다. 그가 사람이 드러내는 그런 것들에 의해 말씀하여 사람의 그런 것들을 다 폭로해 내서야 사람은 하나님이 이처럼 거룩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더러움이 있어도 그는 가만두지 않고 심지어 사람의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더러운 생각이 있어도 그는 가만두지 않으며 언행이 그의 뜻에 맞지 않으면 그는 가만두지 않는다. 그의 말씀 속에 존류할 수 있는 일인일물(一人一物)의 더러움도 없고 다 폭로된다. 이때에야 너는 그가 확실히 사람과 같지 않고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더러움이 있으면 그가 몹시 혐오한다는 것을 보게 된다. 심지어 어떤 때는 사람이 이해가 잘 안 되어 말한다. “당신은 왜 늘 화내십니까? 하나님 당신은 왜 사람의 연약을 보살펴 주시지 않습니까? 당신은 왜 사람을 조금도 용서해 주시지 않습니까? 당신은 왜 사람의 뜻에 어긋납니까? 사람이 어떤 정도로 패괴되었는지 당신은 다 아시면서 왜 아직도 이렇게 사람을 대하십니까? 그는 죄를 혐오하고 죄에 대해 증오한다. 너에게 만약 조금이라도 패역이 있다면 그는 매우 혐오한다. 네가 패역의 성정을 드러내는 것을 그가 보면 혐오하는데 대단히 혐오한다. 이런 것에 의해 그의 성품과 소시가 비로소 발표된다. 그 다음 너 자신을 대조해 보면 너는 그가 비록 사람과 똑같은 밥을 먹고 똑같은 옷을 입고 사람이 누리는 것과 똑같고 사람과 함께 생활하고 함께 기거하지만 사람과 같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이 안받침물의 의의가 아닌가? 사람의 이런 것에 의해 하나님의 큰 능력을 두드러지게 하고 흑암에 의해 광명이 존재하는 귀중함을 두드러지게 한다.

물론, 일부러 너희를 안받침물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역에 결과가 있어야 사람의 패역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안받침이라는 것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너희는 바로 안받침물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자연적 유로를 인식할 기회가 있게 된 것이다. 너희들 스스로의 패역으로 인해 너희가 심판을 받고 형벌도 받았지만 너희는 또 패역으로 인해 안받침물이 된 것이다. 너희의 패역으로 인해 하나님이 너희에게 베풀어 준 지극히 큰 은혜를 얻었는데, 바로 너희의 패역이 하나님의 전능과 지혜를 두드러지게 한 것이다. 너희는 또 패역으로 인해 이렇게 큰 구원의 은혜를 입게 되었고 이렇게 큰 축복을 얻게 되었다. 너희는 비록 누차 나의 심판을 받았지만 이전 사람이 얻지 못한 지극히 큰 구원을 얻었다. 이 사역은 너희에게 있어서 너무나 의의 있다. 이 ‘안받침물’은 너희에게 있어서 실로 너무나 가치 있다. 너희는 안받침물이 된 것으로 인해 구원을 받게 되었고 구원의 은혜를 얻게 되었다. 이런 안받침물은 너무 가치 있고 의의 있는 것이 아닌가? 너희는 하나님과 똑같이 하나의 경지에서 살고 똑같이 더러운 땅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말미암아 안받침물이 되었고 지극히 큰 구원을 받게 되었다. 만일 도성육신(역주: 성육신)이 아니라면 누가 너희를 긍휼히 여길 수 있고 또 누가 너희 같은 이 비천한 사람들을 보살필 수 있겠는가? 누가 너희를 염려할 수 있겠는가? 만일 도성육신이 너희들 가운데서 역사하지 않는다면 너희가 어느 때에야 이전 사람이 얻은 적이 없는 이 구원의 은혜를 얻을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말씀이 육신 되어 너희를 염려하고 너희의 죄를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면 너희는 이미 음부에 타락되지 않았겠는가? 만일 도성육신이 너희들 가운데서 낮추지 않는다면 너희가 또 어떻게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의 안받침물이 될 자격이 있겠는가? 너희가 안받침물이 된 것은 내가 말씀이 육신 되어 너희들 가운데 와서 너희에게 이 지극히 큰 구원의 은혜를 얻게 하려 함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닌가? 너희가 이 구원의 은혜를 얻은 것은 다 도성육신 때문이 아닌가? 하나님 도성육신이 너희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 아니면 너희가 또 개돼지보다 못한 인간 지옥에서 생활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너희가 얻은 형벌 심판은 다 나의 도성육신의 사역을 두드러지게 한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닌가? 너희가 안받침의 사역을 하는 것은 너희에게 있어서 매우 적합하다. 왜냐하면 너희는 안받침하는 것으로 인해 심판 중의 구원을 얻기 때문이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의 합격된 안받침물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너희 일생의 복이라고 느껴지지 않는가? 너희가 겨우 하나의 안받침의 사역만 하였는데 오히려 너희가 여태껏 없었던, 여태껏 생각해 보지도 못한 구원의 은혜를 얻게 되었다. 현재 안받침물이 되는 것은 너희의 복이고 장래에 영구한 복을 누리는 것은 너희가 마땅히 얻어야 할 상이다. 너희가 얻은 구원의 은혜는 결코 오늘의 일시적인 깨달음이나 인식이 아니라 더 큰 축복이고 영원한 생명의 연장이다. 비록 ‘안받침물’에 의해 너희를 정복하지만 너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구원의 은혜와 이 복은 다 너희를 얻기 위해서이고 정복이자 역시 더 잘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안받침물은 사실이지만 너희는 너희의 패역으로 인해 안받침물이 됨으로써 다른 사람이 얻은 적이 없는 복을 얻게 된 것이다. 오늘 너희로 하여금 보게 하고 듣게 하며 내일 너희로 하여금 얻게 하고 더욱이 너희로 하여금 더 큰 축복을 이어받게 하는데, 이런 안받침물은 가장 가치 있는 것이 아닌가? 현재의 정복 사역은 바로 너희의 패역 성정의 안받침에 의해 효과에 도달하는 것이다. 즉 제2차 형벌 심판의 최고조는 바로 너희의 더러움과 패역으로 두드러지게 함으로써 너희로 하여금 모두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게 하는 데에 이르기 위한 것이다. 너희가 제2차 심판ㆍ형벌 속에서 재차 순복할 때 모든 공의로운 성품을 너희에게 공개적으로 나타낸다. 즉 너희가 정복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이 끝날 때는 역시 너희가 안받침물의 본분을 다할 때이다. 결코 일부러 너희에게 딱지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효력자로 되는 것에 의해 제1차 정복 사역을 하고 하나님의 공의롭고 거스를 수 없는 성품을 나타내는 것이다. 너희의 안받침에 의해, 바로 너희의 패역을 안받침물로 하는 것에 의해 제2차 정복 사역의 효과에 도달하고 제1차에서 완전하게 나타내지 못한 공의로운 성품의 전부를 다 너희에게 공개하여 이 모든 공의로운 성품을 보게 하고 모든 소시 즉 역사의 지혜와 기묘, 거룩과 오점이 없음을 보게 한다. 이런 역사 효과는 다 서로 다른 시기의 정복에 의해 이르는 것이자 역시 각기 다른 정도의 심판에 의해 이르는 것이다. 심판이 최고조에 이를수록 더욱 사람의 패역 성정을 폭로해 낼 수 있고 정복의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 모든 공의로운 성품은 다 이런 정복 사역에서 나타내는 것이다. 정복 사역은 두 단계로 나누는데 서로 다른 시기가 있을 뿐만 아니라 정도도 서로 다르다. 물론 도달하는 효과도 각기 다른데, 바로 사람이 순복하는 정도가 점점 깊어지는 것이다. 이 후에야 사람을 전부 온전케 하는 정상 궤도로 이끌어 들어갈 수 있다. 바로 모든 정복 사역이 끝난 후에야 더는 사람을 심판하지 않고 사람을 생명 경력의 정상 궤도에 진입하게 한다. 왜냐하면 심판은 바로 정복을 대표하는 것이고 정복의 형식은 바로 심판과 형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가장 낙후하고 가장 더러운 곳에서 말씀이 육신 되어야 거룩하고 공의로운 그의 모든 성품을 나타낼 수 있다. 그의 공의로운 성품은 무엇에 의해 나타내는 것인가? 바로 사람의 죄를 심판하고 사탄을 심판하고 죄를 혐오하고 그를 거역하고 대적하는 원수를 증오하는 것에 의하는 것이다. 오늘 내가 한 말은 바로 사람의 죄를 심판하고 사람의 불의를 심판하고 사람의 패역, 사람의 교활함과 간사함 그리고 언행을 저주하기 위해서이다. 그의 뜻에 부합되지 않는 것은 다 심판을 거치며 사람의 패역은 정죄받는다. 심판의 원칙을 중심에 놓고 말하며, 사람의 불의를 심판하고 사람의 패역을 저주하고 사람의 모든 추한 몰골을 파헤치는 것에 의해 그의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낸다. 거룩함은 바로 그의 공의로운 성품의 대표이다. 그의 거룩함은 사실 역시 그의 공의로운 성품이다. 오늘 말하는 이런 배경은 모두 너희의 패괴 성정에 의해 말하고 심판하는 것이며 정복의 사역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실제적인 사역이고, 이래야만 완전히 하나님의 거룩함을 두드러지게 할 수 있다. 만약 너에게 패괴 성정이 조금도 없다면 하나님이 너를 심판하지 않고 너로 하여금 그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게 하지도 않는다. 너에게 패괴 성정이 있으면 하나님이 너를 놓아주지 않고 이를 통해 그의 거룩함을 나타낸다. 만약 사람의 더러움이 너무 많고 패역이 너무 많은데 그가 보고도 말씀하지 않고 너를 심판하지도 않고 너의 불의로 인해 너를 형벌하지도 않는다면 그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왜냐하면 그가 전혀 죄를 증오하지 않고 사람과 같이 더럽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너를 심판하는 것은 너의 더러움 때문에 심판하고 오늘 너를 형벌하는 것은 너의 타락과 너의 패역으로 인한 것이지 너희들 가운데서 ‘크게 위풍을 나타내거나’ 고의로 너희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며 더러운 곳에서 태어난 너희 이 사람들이 점염된 더러움이 너무 많아서이다. 너희는 그야말로 인격을 잃고 인성을 잃었는데, 기타 가장 더러운 곳에서 난 돼지 따위와 같다. 바로 너희의 이런 것으로 인하여 너희를 심판하고 너희에게 진노를 내린다. 바로 이런 심판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이 공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임을 보게 한다. 바로 그의 거룩함과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그가 너희를 심판하고 너희에게 진노를 내린다. 바로 그가 사람의 패역을 보고서 그의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낼 수 있고 사람의 더러움을 보고서 그의 거룩함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그가 바로 거룩하고 흠이 없지만 또 더러운 곳에 태어난 하나님 자신임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만일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나쁜 일을 하는 사람으로 거룩한 성분과 공의로운 성품이 없다면 그는 사람의 불의를 심판할 자격이 없고 또한 사람을 심판할 자격도 없다. 사람이 만일 사람을 심판한다면 스스로 자기의 뺨을 때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마찬가지로 더러운 사람인데 그의 동류를 심판할 자격이 어디 있겠는가? 더러운 전 인류를 심판할 수 있는 분은 오직 거룩한 하나님 자신밖에 없다. 사람이 어찌 사람의 죄를 심판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또 어찌 사람의 죄를 볼 수 있겠는가, 어찌 사람의 죄를 정할 자격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만일 사람의 죄를 심판할 자격이 없다면 어떻게 공의로운 하나님 자신일 수 있겠는가? 사람이 패괴된 성정을 드러내면 그가 말씀으로 심판해야 비로소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거룩한 분임을 보게 한다. 사람의 죄를 심판ㆍ형벌하고 사람의 죄를 폭로하기에 이 심판에서 벗어날 일인일물은 없으며, 더러운 자는 다 그에게 심판받는다. 이리하여 그의 성품을 비로소 공의로운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너희를 명실상부한 안받침물이라고 하겠는가?

이스라엘에서 한 사역은 오늘과 크게 다르다. 여호와가 그들을 생활하도록 인도한 것이지만 결코 이처럼 많은 형벌ㆍ심판은 없었다. 왜냐하면 사람이 그 당시에 세상의 일을 깨달은 것이 너무 적었고 그 무슨 패괴 성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이스라엘 사람은 여호와께 고분고분 순종했는데, 그들에게 제단을 쌓으라고 하니 그들은 서둘러 제단을 쌓기 시작하였고 그들에게 제사장 옷을 입으라고 해도 그들은 순복하였다. 당시에 여호와는 마치 그들의 목자 같이 땅에서 한 무리 양들을 목양하였고 양은 다 목자의 인도에 따라 풀밭에서 꼴을 먹었다. 여호와는 그들을 생활하도록 인도하였고 그들의 의식주행을 인도하였다. 그때는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낼 때가 아니었다. 그때의 인류는 처음 난 인류였고 그때는 거역하는 자와 대적하는 자가 아주 적었고 사람에게 그리 많은 더러움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품을 두드러지게 할 수도 없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더러운 곳의 사람들 몸에서 나타내는 것이다. 오늘 더러운 곳의 이 사람들이 유로(流露)해 낸 더러움에 의해 그런 후에 하나님이 또 심판하는데, 이리하여 그의 소시를 다 심판 중에서 유로해 낸다. 그가 무엇 때문에 심판하려 하는가? 그것은 그가 죄를 혐오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가 심판의 말씀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가 만약 인류의 패역을 혐오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노를 발하겠는가? 만약 그의 안에 조금의 혐오도 없고 조금의 반감도 없고 사람에게 패역이 있어도 그가 거들떠보지 않는다면 그가 사람과 똑같이 더럽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가 사람을 심판ㆍ형벌할 수 있는 까닭은 바로 그가 더러움을 혐오하기 때문이다. 그가 혐오하는 것은 다 그에게 없는 것이다. 만약 그의 안에도 대적과 거역이 있다면 그도 대적하고 거역하는 사람을 혐오하지 않을 것이다. 말세의 사역을 만일 여전히 이스라엘에서 한다면 조금의 의의도 없다. 무엇 때문에 말세의 사역을 중국, 이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낙후한 곳에서 하는가? 바로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를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한마디로, 어두운 곳일수록 더욱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낼 수 있다. 사실 이 모든 것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이다. 지금에야 너희가 하늘 위의 하나님이 땅 위에 내려 너희들 가운데 서서 너희의 더러움과 패역을 두드러지게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에 대해 인식이 있게 되었다. 이것은 극히 큰 높여줌이 아닌가? 사실 너희는 바로 중국에서 선택된 한 무리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선택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린 것 때문에 또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렇게 많은 은혜를 누릴 자격이 없기 때문에 이것은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서 극히 큰 높여줌임을 증명한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나타나 모든 거룩한 성품을 다 너희에게 나타내고 다 너희에게 베풀어 주어 너희로 하여금 온갖 것이 다 있는 복을 누리게 하였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체험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구속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을 체험하게 하였다. 너희 가장 더러운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은혜를 누리게 되었는데, 이것은 복있는 것에 속하지 않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높여줌에 속하지 않는가? 너희 이 사람들은 지위가 가장 낮아 본래는 이렇게 큰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하나님이 너를 억지로 높여주었는데, 너는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는가? 네가 너의 본분을 다할 수 없다면 최종에 가서 모두 너를 스스로 수치당하게 하고 스스로 자기를 형벌하게 한다. 현재는 너를 때리지도 않고 너를 징벌하지도 않기에 육체가 평안하고 무사하지만 최종에 가서는 이런 말씀에 의해 너를 스스로 수치당하게 한다. 나는 현재까지 아직 한 사람도 공개적으로 형벌한 적이 없다. 말씀은 확실히 엄하게 하였지만 사람에 대해 어떠한가? 위로하기도 하고 권면하기도 하고 일깨워 주기도 하는데,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다른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를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너희가 설마 나의 마음을 정말로 이해하지 못한단 말인가? 내가 한 이 말을 너희는 모두 깨달아야 하고 이 말에서 격려를 받아야 한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비로소 깨닫게 되었는데, 이 복이 바로 안받침물로 바꿔 온 것이 아닌가? 안받침물이 되는 것은 가장 복있는 일이 아닌가? 최종에 너희가 가서 “우리는 표준적인 안받침물입니다.”라는 이런 복음을 전하면 그들이 “표준적인 안받침물이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을 것인데, 너는 말하여라. “바로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고 하나님의 큰 능력을 두드러지게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공의로운 성품은 우리의 패역에 의해 두드러지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지막 사역의 효력품이고 부속물이며 도구에 속하기도 합니다”. 그들이 듣고는 신기해 할 것이다. 이어서 네가 또 말하여라. “우리는 또 전 우주의 사역을 이루는, 전 인류를 정복하는 데의 표본 모형입니다. 우리가 거룩하든지 아니면 더럽든지,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는 당신들보다 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고 우리를 정복하는 기회에 하나님의 큰 능력을 두드러지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더러움으로 인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두드러지게 하였는데, 당신들은 할 수 있습니까? 당신들은 그런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의 이것은 완전히 하나님의 높여주심입니다! 우리가 비록 교만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자랑스레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도 이렇게 큰 약속을 받을 수 없고 아무도 이처럼 큰 복을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더러운 사람이 뜻밖에도 하나님의 경영 중의 안받침 사역을 할 수 있었는데, 우리는 정말 감격해 마지않습니다.” 그들이 “그럼 무엇이 표본 모형입니까?”라고 물으면 너는 말하여라. “우리는 인류 중에서 가장 패역한 자들이고 역시 가장 더러운 자들입니다. 바로 사탄에게 가장 깊이 패괴된 자들이고 역시 가장 낙후하고 가장 비천한 육체에 속한 사람들이고 사탄에게 이용당하는 전형적인 대표입니다. 오늘 하나님께 선택됨으로써 인류 가운데서 맨 먼저 정복된 자로 되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에 의하여 더 많은 사람들을 정복하므로 우리가 인류 가운데서 정복되는 표본 모형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너의 가장 좋은 간증이고 너의 가장 좋은 경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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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효력(效力):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힘이나 기능만 다하는 것을 뜻함.

②안받침: 한 사물을 통해 다른 한 사물을 두드러지게 하다.

③패괴(敗壞): 타락, 부패, 망가짐을 포함해 더 깊은 뜻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