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가족의 육적 즐거움을 탐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 14:26)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33)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눅 18:29~30)

말세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민족의 기개’는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 악영향과 봉건사상을 남겨, 조금의 자유도 없이 옭아매며, 이로 인해 사람들은 패기도, 의지력도, 진취심도 없이 소극적으로 뒷걸음질 치며, 노예근성에 깊이 젖어 버렸다. 이러한 객관적 요소들은 사람의 사상적 풍모, 개인의 이상(理想)과 도덕, 성품을 씻을 수 없는 더럽고 추한 몰골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모두 공포의 암흑세계에 갇힌 것처럼 누구도 벗어날 생각을 못 하고, 이상적인 세상도 생각지 못한 채, 그저 현실에 안분지족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자녀를 낳아 기르고, 힘껏 땀 흘려 일하며, 안락하고 원만한 가정, 부부간 사랑, 자녀의 효도, 즐거운 노년과 편안한 여생 등을 꿈꾸면서 말이다. 사람은 수십 년, 수천 년, 수만 년 동안 심지어 지금도 이렇게 헛되이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아무도 가장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저 어두운 세상에서 서로 싸우고 죽이고, 명예와 이익을 다투며, 아귀다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 중 하나님의 뜻을 구한 자가 있더냐? 하나님의 사역에 신경을 쓴 자가 있더냐? 흑암 권세에 점령당한 사람의 이 모든 것들은 이미 고질화되었기에, 하나님의 사역은 전개하기가 매우 어려우며, 사람은 하나님이 오늘날 맡긴 부탁에 대해 신경 쓸 생각조차 없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사역과 진입 3> 중에서

진정 나를 위해 완전히 헌신하고 바칠 수 있는 자 누구냐? 모두가 이리저리 망설이고, 이모저모 따져보며, 가정과 바깥 환경, 먹고 입는 것 등을 생각한다. 너는 지금 나를 위해 내 앞에서 일을 한다고 하나, 네 마음은 여전히 집에 있는 처자식과 부모를 생각한다. 설마 그러한 것들이 다 너의 유업이란 말이냐? 어째서 그러한 것들을 내 손에 맡기지 않는 것이냐?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냐? 아니면 내가 네게 마련해 준 것이 적절하지 못할까 걱정하는 것이냐? 어째서 줄곧 육체의 가정을 마음에 두고 가족을 걱정하느냐? 네 마음에 내가 있긴 한 것이냐? 그러고도 내가 네 안에서 주권을 잡고, 너의 온 몸과 마음을 점유하게 하겠다고 말하니, 전부 사람을 기만하는 거짓말이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교회를 위하는 자 몇이나 되느냐? 또 자신을 생각지 않고 오늘의 하나님나라를 위하는 자 누가 있더냐? 스스로 한번 잘 생각해 보아라.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59편> 중에서

나를 따른 지 그렇게 오래되었으면서도 너희는 나에게 ‘충성한’ 적이 없었다. 너희가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들을 싸고돌며, 한순간도 버리는 법 없이 언제 어디서나 마음속에 꽁꽁 담아두고 있기까지 했다. 나를 따르면서 심지어 내 말을 듣고 있을 때조차도 너희는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모든 것들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너희들이 내가 너희에게 요구하는 충성심을 가지고 너희의 ‘애완동물’에 충성하고 너희의 ‘애완동물’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위해 다소 바쳤다고는 하나, 그것이 너희의 전부를 뜻하지도 않고, 너희가 진실로 나에게 충성함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너희는 열렬히 좋아하는 일에 몸담고 있다. 어떤 자는 자녀에게, 어떤 자는 남편이나 아내에게, 어떤 자는 금전이나 업무에, 어떤 자는 직속상관이나 지위에, 어떤 자는 여자에게 충성한다. 너희는 자신이 충성하는 것들 때문에 피곤해하거나 번뇌한 적이 없다. 자신이 충성하는 것들을 더 많이, 더 쉽게 가질 수 있기를 더욱더 갈구하였고 또 이를 포기한 적도 없다. 여태까지 너희는 나와 내가 한 말을 너희가 열중하는 모든 것의 끝자리에 놓아두었는데 그것도 마지못해 마지막 자리에 놓아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자는 그 끝자리마저도 자신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충성하고 싶어질 것들을 위해 남겨 두었다. 그들 마음속에는 나에 대한 것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너희는 어쩌면 내 요구가 너무 지나치고 너희를 억울하게 한다고 여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즐거워할 때 너희는 나에게 단 한 번도 충성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렸었느냐? 그때 너희는 이로 인해 괴로워했느냐? 기쁨 가득한 마음으로 수고의 대가를 받을 때 진리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것에 대해 낙심했었느냐? 너희는 나에게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해 통곡하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느냐? 자녀를 위해서는 온갖 지혜를 짜내며 애쓰면서도 여전히 만족할 줄 모르며 여전히 자녀에게 정성과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고 여기는데, 내게는 어떠하였느냐? 너희는 지금껏 늘 나를 건성으로 대했다. 단지 기억만 할 뿐 마음속 깊이 오래도록 간직하지 않았다. 너희는 지금까지 내가 너희에게 기울인 심혈을 느낀 적도 이해한 적도 없이 단지 조금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느꼈다. 그런 ‘충성’은 내가 오래도록 기대해 온 것이 아니고 오래전부터 증오해 온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는 도대체 누구에게 충성하는 사람이냐?> 중에서

너희가 매 순간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니고, 내게서 온 진리도 아니라, 너희의 남편(아내)과 아들딸, 그리고 너희가 먹고 입는 것이며, 어떻게 해야 더 잘 즐길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더 좋은 것을 즐길 수 있는지 등이다. 너희가 자신의 배를 가득 채운다고 해도 여전히 시체에 불과하지 않겠느냐? 너희가 겉으로 아주 화려하게 꾸민다고 해도 생기 없는 산송장이 아니겠느냐? 너희는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머리가 세도록 고생하면서도 내 사역을 위해서는 털끝 하나 바치려고 하지 않는다. 또 너희는 자신의 육체와 아들딸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며 고생하고 머리를 쥐어짜지만 내 마음을 생각하며 조급해하고 근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너희는 내게서 또 무엇을 얻으려고 하느냐?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 중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최소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한 내용이 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막 14:33)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게 어떤 뜻이겠느냐? 바로 가정, 직장, 세속적인 모든 얽매임을 버린다는 것이다. 이는 쉽겠냐, 쉽지 않겠느냐? 너무나 쉽지 않다. 만약 의지가 없으면 절대로 도달할 수 없다. 버리려는 의지가 있으면 당연히 고생할 의지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만약 고생을 견디지 못하면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가정을 버리고 가족을 멀리하지만 밖에서 한동안 본분을 이행하다 보면 집을 그리워한다. 도저히 참지 못하면 몰래 집에 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와 본분을 이행한다. 어떤 사람들은 집을 떠나 본분을 이행하다가 명절을 쇨 때가 되면 가족을 그리워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밤에 남들이 잘 때 몰래 울기도 한다. 다 울고 나서 다시 하나님에게 기도하고는 기분이 많이 나아져 계속 본분을 이행한다. 이런 사람들은 비록 가정을 버릴 수는 있지만 큰 고통을 견디지 못하는데, 만약 육적 가족에 대한 감정도 떨쳐 버리지 못하면 어떻게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겠느냐? 어떤 사람들은 비록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르며 직장과 가정도 모두 버렸지만 그들이 모든 것을 버린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어떤 사람은 은혜와 축복을 얻기 위해서, 또 어떤 사람은 바울처럼 면류관과 상을 얻기 위해서다. 오직 소수 사람만이 진리와 생명을 얻어 구원받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다. 그럼 무엇을 추구해야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겠느냐? 물론 진리를 추구하고 생명을 얻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부합하며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사람이 만약 세상과 금전을 내려놓지 못하면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분명 얻지 못한다. … 만약 네가 제일 중요시하는 것마저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본분을 이행하며 진리를 추구해 생명을 얻을 수 있다면 너는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건 무슨 뜻이겠느냐? 바로 네가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하며 모든 것에서 하나님에게 순종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너의 주인이자 너의 하나님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온 것이다. 앞으로 어떤 재난이 닥치든 너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살아남을 수 있으며 너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된 것이다. 하나님은 네가 그를 따르는 자라는 것을 인정하거나 너를 온전케 하겠다고 너에게 약속을 준다. 그러나 그 첫걸음으로 너는 반드시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나라의 훈련에 몫이 있다. 만약 네가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 밖에 있다면 하나님은 너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만약 너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네가 구원을 받고 싶고 하나님의 약속과 온전케 함을 얻고 싶다고 해도 가능하겠느냐? 불가능하다. 네가 하나님의 칭찬을 얻고 싶다면 우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어야 한다. 네가 모든 것을 버리고 진리를 추구할 수 있다면, 본분을 이행할 때 진리를 구하고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 있다면, 진실한 체험 간증이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일 자격을 갖춘 것이다. 만약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를 수 없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조차 없는 것이고, 너는 하나님의 축복, 그리고 약속과 조금도 관련이 없는 것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비록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고 있지만 그들이 반드시 진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진리를 사랑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진리를 얻을 수 없는데, 하물며 여가 시간에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하나님 사역을 체험하는 것이 제한적이어서 진리를 얻는 것이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본분을 이행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는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로만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본분은 이행하지 않고 세상을 추구하기까지 하는데 이게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겠느냐?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끝까지 따를 수 있겠느냐? 예수의 제자들을 보면 어부나 세관도 있었고 농민도 있었다. 예수가 그들을 불러 “나를 좇으라”라고 말하자 그들은 수중의 일을 내려놓고 주를 따랐다. 그들은 자신의 직업 문제를 고려하지도, 앞으로 세상에서 살길이 있는지의 문제도 고려하지 않고 바로 예수를 따랐던 것이다. 베드로는 몸과 마음을 다해 예수의 부탁을 마지막까지 완수하고 자신의 본분을 지켰다. 그는 일생 동안 하나님 사랑하기를 추구했고 결국 하나님께 온전케 되었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버리지도 못하면서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데 이는 허황된 꿈 아니겠느냐?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형제자매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

(저는 본분을 이행할 때 아직도 정에 얽매입니다. 늘 가족들이 보고 싶어서 본분 이행에 지장을 받습니다. 지금은 내적 상태가 조금 좋아졌지만, 아직도 가끔은 큰 붉은 용이 가족들을 잡아가서 저를 위협할까 봐 걱정되고, 제가 굳게 서지 못할까 봐 두렵습니다.) 지금 네가 하는 걱정은 기우다. 그런 일이 생각날 때는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어떤 상황이 닥치든 그것이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임을 알아야 하며, 반드시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워 너에게 닥친 일에서 진리를 구하고 굳게 설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사람이 배워야 할 공과다. 너는 늘 생각해 봐야 한다. 그동안 하나님이 너를 양육하고 목양한 일을 너는 어떻게 체험했느냐? 네 실제 분량은 어떻게 되느냐? 어떻게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해야 하느냐? 이 문제들을 잘 생각해 봐야 한다! 큰 붉은 용이 너를 위협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면서 어째서 진리 방면에서 어떻게 진입할지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냐? 어째서 진리를 위해 고민하지 않는 것이냐? (그런 생각이 들면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언젠가 정말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죽어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하지만 제 분량이 작아서 이겨 내지 못할까 봐 두렵습니다.) 너는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제 분량이 작아서 이겨 내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죽을 만큼 두려우니 제발 그렇게 하지 마시고, 제가 분량이 생기면 그때 그렇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어떠냐? (좋지 않습니다.) 너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저는 지금 분량도 작고 신심도 작아서 내심 일이 닥칠까 봐 두렵습니다. 사실 만사 만물이 모두 당신 손안에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아서 저 자신을 당신 손에 맡기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패역입니다! 이제는 당신 안배와 지배에 순종하겠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하시든 제 마음은 당신을 증거하기 원하고, 당신을 욕되게 하지 않도록 굳게 서서 증거하기 원합니다. 그러니 당신의 뜻대로 하시길 바랍니다.” 네가 하려는 말, 네 의지를 하나님 앞에 내놓아야 한다. 그러면 참된 신심이 생길 것이다. 이런 기도마저 할 용기가 없다면 네 믿음이 얼마나 작다는 말이냐! 자주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이렇게 기도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꼭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네가 태도와 의지를 밝히면 하나님은 열납할 것이다. 하나님이 열납할 때 너는 속으로 이런 일에 교란되거나 얽매이지 않게 된다. ‘남편이고, 자녀이고, 가정이고, 재산이고, 다 하나님 손안에 있어.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우주 전체가 다 하나님 손안에 있는데,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 아니겠어? 내가 걱정한들 무슨 소용이야? 나한테는 결정권이 없어. 그럴 능력도 없고, 가족을 지켜 줄 수도 없어. 가족의 운명, 가족의 모든 건 다 하나님 손안에 있는 거야!’ 너는 신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는 한편, 각오를 단단히 하고 마음을 다잡아 하나님 안배에 순종해야 한다. 그러면 네 내적 상태가 달라지고, 뒷일에 대한 염려가 사라져 걱정하지 않게 되고, 무슨 일을 하든 조심스럽고 우려가 앞서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남들은 다 적진으로 돌격하는데 너만 뒤에 숨어서 도망칠 궁리를 한다면, 그건 겁쟁이가 아니냐?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나라에서 본분을 이행하고, 피조물이 창조주 앞에서 본분을 이행할 때는 마땅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의연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약하게 벌벌 떨면서 이것저것 걱정해서는 안 된다. 만약 이 내적 상태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걱정하고, 또한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는다면, 너는 그런 내적 상태에 얽매이고 속박당해서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을 것이다. 너는 마음과 뜻, 힘을 모두 기울여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 싶어 하는데, 그럴 수 있겠느냐? 너는 마음을 모두 기울이지 못한다. 그것은 네 마음이 본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1할만 마음을 기울여도 잘한 셈이다. 마음을 모두 기울이지 못하는데, 어떻게 힘과 뜻을 모두 기울이겠느냐? 네 마음이 본분에 있지 않고, 본분을 이행하려는 바람이 조금밖에 없으니 마음과 뜻을 다하여 제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겠느냐? 너에게 진리를 실행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필연적으로 가정과 정에 얽매여 손발이 묶이고 생각과 마음이 통제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진리와 하나님 요구에 이르지 못한다. 마음은 그렇게 하고 싶지만 힘이 부족한 것이다. 그러니 너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 첫째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하고, 둘째는 피조물이 서야 할 위치를 알아야 하고, 자신이 가져야 할 의지와 태도를 하나님 앞에 내놓아야 한다. 너에게 이런 태도가 없으면 안 된다. 왜 남들은 이런 걱정이 없느냐? 설마 남들은 가족이 없고 이런 어려움이 없는 것이냐? 사실 누구나 육과 가정에 얽매인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를 구해 해결할 수 있다. 한동안 진리를 구해 이런 육적인 감정을 확실히 간파하고 마음속으로부터 내려놓았으니, 이런 것들이 그에게는 더 이상 어려움이 아니다. 그는 더 이상 그것에 통제되거나 얽매이지 않고, 본분 이행이 그 때문에 지장을 받지 않게 되면서 자유로워졌다. 성경에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막 14:33). 모든 걸 버린다는 것이 무엇이냐? ‘모든 것’은 무엇을 가리키느냐? 지위, 명예와 이익, 가족, 친구, 재산 등 이런 것이 다 ‘모든 것’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네 마음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무엇이냐? 누군가는 자녀이고, 누군가는 부모이고, 누군가는 금전이고, 누군가는 지위나 명예, 이익이다. 네가 이런 것을 소중히 여긴다면 그것에 통제되지만, 그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철저히 내려놓는다면, 거기에 통제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네가 그것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니는지,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달렸다.

너희는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어느 시기, 어느 단계에서 사역하든 모두 일부 사람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들이 하나님 사역에 협력하거나 복음 전파에 협력하는 것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일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정해 놓은 모든 사람에게 부탁이 있지 않겠느냐? 누구에게나 사명이 있고, 책임이 있고, 부탁이 있다. 하나님이 너에게 부탁을 맡기면 그것은 곧 네 책임이 된다. 너는 이 책임을 짊어져야 하며, 그것이 곧 네 본분이다. 본분이란 무엇이냐? 하나님이 너에게 준 사명이다. 사명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부탁이 곧 사람의 사명입니다. 사람은 평생 하나님의 부탁을 위해 살아야 하고, 마음속에는 그 부탁만 있어야 합니다. 다른 것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부탁이 바로 사람의 사명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인간 세상에 온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기 위해서이다. 만약 네가 이번 생에서 출세하고 돈 벌고 잘사는 데만 열중하고, 화목한 가정, 명예와 이익, 지위만 추구해서 사회적으로 지위도 생기고, 집안도 잘되고, 가족들도 편안하게 지낸다고 해 보자. 그런데 정작 하나님이 너에게 준 사명은 거들떠보지 않는다면, 네 일생은 살 가치가 있느냐? 죽어서 하나님께 뭐라고 보고할 것이냐? 제대로 보고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가장 큰 패역이고, 가장 큰 죄과다! 지금 너희 중 누가 하나님 집에서 우연히 본분을 이행한 것이냐? 어떤 배경에서 나와 본분을 이행하든 모두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아무나 몇 명 찾는다고 해서 그들이 이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세 전에 정해 놓은 것이다. 정해 놓았다는 것은 어떤 뜻이냐? 자세한 내용은 어떻게 되느냐? 바로 하나님이 자신의 전체 경륜 안에서 일찍부터 계획해 놓았다는 뜻이다. 네가 몇 번 인간 세상에 올지, 말세에 네가 어느 집안, 어느 가정에서 태어날지, 네 가정이 어떤 조건일지, 네가 남자일지 아니면 여자일지, 어떤 특기가 있고 교육 수준이 어떨지, 네 말주변이 어떻고 자질과 외모가 어떨지, 네가 몇 살에 하나님 집에 와서 본분 이행을 시작할지, 언제 어떤 본분을 이행할지, 하나님은 일찍부터 하나하나 정해 놓았다. 네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네가 전생에 여러 번 인간 세상에 왔을 때 하나님은 네가 마지막 단계 사역에서 이행해야 할 본분을 모두 안배해 놓았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네가 지금 여기서 설교를 듣는 것도 하나님이 정한 일이다. 그건 사소한 일이 아니다! 그 밖에도 네 키가 얼마이고, 생긴 건 어떻고, 눈은 어떤 모양이고, 몸집은 어떻고, 건강 상태는 어떻고, 나이는 몇이고어떤 경력이 있고, 어느 방면 본분을 감당할 수 있고, 어느 방면에 자질과 재주가 있는지 등은 하나님이 일찍부터 너에게 정해 놓은 것이지 지금 안배한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일찍부터 네게 정해 놓았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너를 쓰려고, 너에게 이 부탁과 사명을 맡기기 전부터 너란 사람을 예비해 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네가 도망치려 해서야 되겠느냐? 딴마음을 품어서야 되겠느냐? 그래서는 안 된다. 그건 하나님에게 죄송한 일이다!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저버린다면 그것은 가장 큰 패역이고, 극악무도한 일이다. 하나님은 심혈을 기울이며 만세 전부터 네가 오늘날까지 오도록, 너에게 이 사명을 주기로 예정해 놓았다. 그렇다면 이 사명은 네 책임이 아니냐? 네가 일생을 살아가는 가치가 아니냐? 만약 하나님이 너에게 준 사명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네 삶은 가치와 의미를 잃게 될 것이고, 너는 헛되이 산 것과 다름없다. 하나님은 너에게 적합한 조건과 환경, 배경을 안배하고, 너에게 지금의 자질과 재주를 베풀어 주었고, 네가 지금까지 살도록 예비하고, 네가 이 방면의 본분을 이행할 때 갖춰야 할 모든 조건을 예비해 놓았다. 하나님은 모두 안배해 놓았다. 하지만 네가 이 본분을 잘 이행하지 못하고 시험을 견디지 못해서 도망치는 쪽을 택한다면, 늘 좋은 날만 보내려 하고 세상만 추구하려 한다면, 하나님이 너에게 준 은사와 재주를 이용해 사탄을 섬기고 사탄을 위해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어떻겠느냐? 너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가 물거품이 되면, 하나님이 너를 혐오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너를 증오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너를 향해 크게 노한다면, 이 일은 끝난 셈이냐? 네가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겠느냐? 네가 이번 생에 네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죽으면 그것으로 끝인 줄 아느냐? 그건 끝이 아니다. 네 영혼에 재앙이 닥칠 수도 있다. 네가 네 본분을 이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도망친다면, 그건 문제가 심각하다. 네가 어디로 도망칠 수 있겠느냐? 하나님 손에서 도망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어떻게 규정하느냐?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을 하나님은 어떻게 규정하느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도망친 사람을 하나님은 어떻게 규정하느냐? 침륜에 빠지고 멸망하는 것이다. 너는 더 이상 다음 생도 없고, 내세도 없다. 하나님은 다시는 너에게 어떤 일도 부탁하지 않을 것이다. 네게 사명이 없으면 구원받을 기회도 없다. 이것은 큰일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자는 내 눈에서 한 번 도망친 적이 있다. 내 심판대 앞에서, 내 앞에서 도망쳤었다. 그는 사명을 이행하지 않고 부탁을 완수하지 못했다. 이 자의 생명은 여기서 끝났고, 마침표를 찍었다.” 이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다! 너희가 오늘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데, 그 본분이 크든 작든, 힘을 쓰는 것이든 머리를 쓰는 것이든, 외부 일을 하는 것이든 내부 일을 하는 것이든 그 누구의 본분 이행도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어디가 너의 선택이냐? 이는 하나님이 이끈 것이다. 하나님이 부탁을 해서야 너는 이런 감동과 사명감, 책임감을 가지게 되었고, 이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방인 중에는 외모가 뛰어난 자, 유식한 자, 재능 있는 자가 너무 많은데, 하나님이 그들을 눈에 들어 했느냐?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그들을 선택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바로 너희를 눈에 들어 했고, 너희가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담당하고 다양한 본분을 이행하고 다양한 책임을 짊어지도록 했다. 최후에 하나님의 경륜이 끝을 맺고 성취되면, 이 얼마나 영예롭고 영광스러운 일이냐! 그러니 사람이 오늘날 본분을 이행하면서 고생도 좀 하고, 버리고 헌신하기도 하고, 대가도 좀 치르고, 세상에서 지위를 잃고, 명예와 이익을 잃기도 하는데, 그런 게 하나도 없는 것이 마치 하나님이 모두 앗아간 듯하지만,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무엇을 얻었느냐? 본분을 이행함으로써 진리 생명을 얻었다. 네가 본분을 잘 이행해서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한다면, 평생 네 사명과 하나님이 맡긴 부탁을 위해 살며 아름답게 증거했다면, 네 인생은 가치 있는 삶이고, 네가 바로 진정한 사람이다! 네가 진정한 사람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하나님의 경영에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도록 하나님이 너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네 삶에서 가장 커다란 가치이자 의미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네가 수많은 도와 진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이 길이 맞다고, 인생의 바른길이라고 정확히 판단했으면, 이때 너는 무엇이 필요하겠느냐? 하나님에게 너의 생명에 유익과 도움을 주는, 너의 생명을 자라게 할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을 마련해 달라고 구해야 한다. 이 환경은 아마 그렇게 안락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람의 육체는 고생을 해야 하고, 사람은 많은 것을 버리고 내려놓아야 한다. 이런 것을 너희는 이제 모두 체험했다. 예를 들어, 박해를 받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자식과 남편(아내)을 만나지도, 그들과 연락하지도 못하며 친척 및 친구들과 만나지 못하고 그들의 소식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깊은 밤 모두가 잠든 때면 너는 집안일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어떠시려나? 이제 연로하셔도 내가 효도 못 하는데. 어머니도 몸이 안 좋으신데 지금은 어떠시려나 모르겠네.’ 늘 이런 일들을 염려하고 있지 않느냐? 만약 마음속에서 늘 이런 일들의 통제를 받는다면 본분 이행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겠느냐? 육적이고 세속적인 일들에 덜 개입하고 덜 관여하면, 이는 사람의 생명 성장에 이롭다. 네가 염려하고 신경 쓰는 것은 아무런 소용도 없다. 이런 일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니 그들이 어떤 운명이건 너는 바꿀 수 없다. 너는 하나님을 믿을 때 가장 중요한 일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의 본분을 이행하고 진실한 믿음을 얻고 하나님 말씀 실제에 진입해 자신의 생명이 자라나게 하며 진리를 얻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다. 겉으로 보면 사람이 자발적으로 세상과 가정을 버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어떻게 된 것이겠느냐? (하나님이 주재하고 지배하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지배한 것이다. 하나님이 네가 그들을 보지 못하게 한 것이다. 좀 더 적절한 표현을 쓰자면 하나님이 너에게서 거두어 간 것이다. 이 말이 가장 실제적이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사람은 늘 하나님이 주재하고 안배한다고 말하는데, 그럼 하나님은 이 일을 어떻게 주재한 것이겠느냐? 하나님은 너를 집에서 데리고 나와 그들이 짐이 되어 너를 얽매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그럼 하나님은 너를 어디로 데리고 가려는 것이겠느냐? 하나님은 너를 육체의 얽매임이 없고 가족을 볼 수 없는 환경으로 데리고 가려는 것이다. 네가 그들을 걱정해서 그들을 위해 힘을 쓰려 해도 쓸 수 없게 됐고, 효심을 보이려 해도 보일 수 없게 됐으며, 그들도 너를 얽맬 수 없게 됐다. 하나님이 그들을 지배하여 너의 이 모든 얽매임을 거두어 갔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계속 그들에게 효도하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며 목숨을 내걸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바깥의 얽매임을 모두 지배했는데 이는 좋은 일이겠느냐, 아니면 나쁜 일이겠느냐? (좋은 일입니다.) 이는 좋은 일이니 후회할 필요 없다. 기왕 좋은 일이라면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날 너무 사랑하시는구나!”라고 말해야 한다. 스스로는 이 감정의 속박을 이길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은 모두 감정의 통제를 받고 온 가족이 한데 모여 단란하게 지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매일 부모와 자식이 모두 모여 평안하고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며 영원히 헤어지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좋지 않은 것이 있다. 네 한평생의 에너지와 심혈, 너의 청춘과 아름다운 세월, 네 한평생의 가장 좋은 것을 모두 그들에게 바치고 육체, 가정, 가족, 직업, 명리, 그리고 각종 복잡한 관계에 네 평생을 모두 쏟아부으면 너는 스스로를 철저히 망치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은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겠느냐? 하나님은 이렇게 말했다. “수렁 속에서 망치지 마라. 네 두 발이 빠지면 너 스스로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빼내지 못한다. 너는 그 분량이 안 되고 그럴 용기도 없으며 그럴 수 있는 믿음은 더더욱 없으니 내가 너를 데리고 나오겠다.” 하나님은 이렇게 할 때 너와 상의하지도 않는다. 왜 하나님은 사람의 의견을 구하지 않겠느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시는 거야. 사람은 개미와 빈대처럼 하나님의 눈에는 별것도 아니지.” 말은 그렇게 하지만 하나님이 사람을 그렇게 대하느냐?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수많은 진리를 선포해 인류에게 베풀어 줌으로 인류의 패괴를 정결케 하고 하나님에게서 새로운 생명을 얻게 한다.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크다. 이는 모두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너에게 뜻이 있고, 너를 데리고 나온 목적은 네가 인생의 바른길을 걷고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하려는 것이다. 너 스스로는 이 길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주관적인 바람은 평안하게 일생을 보내려는 것이다. 큰 부자가 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영원히 함께 살길 원한다. 이런 가정의 즐거움을 누리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고 앞으로의 종착지,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도 고려하지 않는다. 사람이 모르는 것에 대해 하나님도 문제 삼지 않고 사람에게 너무 많이 얘기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너는 알지 못하고 분량이 너무 작아 너와 의논해도 의논이 안 되기 때문이다. 왜 의논이 안 되겠느냐? 왜냐하면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이 큰일은 한두 마디 말로 분명히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차피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으니 하나님이 직접 책임지고 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너도 깨달을 것이다.

하나님은 일부 하나님 선민을 중국의 열악한 환경에서 데리고 나왔는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이 있다. 사람은 이제 모두 보았으니 이 일에 대해 항상 감사해야 하고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해야 한다. 너는 그런 가정 환경에서 나와 육적인 모든 이런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났고, 모든 세속의 얽매임, 육체의 얽매임에서 벗어났다. 하나님은 너를 복잡한 속박 속에서 데리고 나와 하나님 앞에 데려왔고 하나님 집으로 데려왔다. 하나님은 말했다. “여기는 조용하고 이 땅은 매우 좋으니 네가 자라기에 적합하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인도가 있다. 여기서는 진리가 권세를 잡는다. 여기에는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마음도 있고 구원 사역의 중심도 여기 있으니 너는 마음껏 여기서 성장하거라.” 하나님은 너를 이런 환경 속으로 데리고 왔다. 이 환경 속에는 가족의 위로도 없고, 네가 아플 때 곁에서 보살펴 줄 자식도 없으며, 다정한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도 없다. 네가 혼자 있을 때 육체의 고통과 어려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마주할지 생각해 보면 너는 그때 외로움을 느낀다. 왜 너는 외로움을 느끼겠느냐? 사람의 분량이 너무 작기 때문이다. 이는 한 방면의 객관적인 원인이다. 주관적인 원인은 무엇이겠느냐? (사람이 육적인 가족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맞다. 사람이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다. 육체 속에 사는 사람은 이러한 육적인 각종 관계와 혈육 간의 정을 탐닉하며, 사람이 자기 가족을 떠나면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너는 네가 어떻게 인간 세상에 왔는지는 왜 생각하지 않느냐? 너는 혼자 온 것이다. 너는 그들과 원래 별 관계가 없었다.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하나 데려온 것이니, 사실 너는 올 때도 외로웠던 것이다. 너는 왜 그때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으면서 이제 하나님이 너를 데리고 나오니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냐? 너는 너에게 다정한 이야기를 해 주는 동반자가 줄었다고 생각한다. 그 동반자는 너의 자식일 수도 있고 너의 부모일 수도 있으며 너의 반려자, 즉 남편이나 아내일 수도 있다. 그래서 너는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럼 너는 외로울 때 왜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느냐? 하나님은 사람의 동반자가 아니냐? (동반자입니다.) 네가 가장 고통스럽고 괴로울 때 누가 네 마음을 진실로 위로해 줄 수 있겠느냐? 누가 너의 어려움을 진실로 해결해 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사람의 어려움을 진실로 해결해 줄 수 있다. 네가 병에 걸렸을 때 자식이 곁에서 차를 대접하고 물을 따르며 시중을 들면 너는 매우 기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식은 귀찮아하고 시중을 들려 하는 사람이 없어지면 그때는 정말 외로워질 것이다! 너는 이제 동반자가 없어졌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동반자가 없어진 것이냐? 사실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줄곧 너와 함께해 왔다! 하나님은 사람을 떠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이 언제든 의지할 수 있는 존재이자 피난처이며 유일하게 사람의 마음을 아는 자이다. 그러니 너에게 어떤 어려움과 고통이 닥치든, 어떤 억울한 일과 소극적이고 연약해지게 하는 일이 닥치든 너는 서둘러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에게 위로를 주고 너의 어려움과 각종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너의 외로움은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고 진리를 얻는 기본 조건이 될 것이다. 너는 이렇게 체험하다 보면 서서히 느끼게 될 것이다. ‘부모를 떠나도 나는 여전히 잘 사는구나. 남편을 떠나도 나는 여전히 충실하게 살아가는구나. 자식을 떠나도 나는 여전히 평안하고 즐겁게 사는구나. 나는 더 이상 공허하지 않고 사람에게 기대지 않아. 나는 하나님을 의지할 줄 알게 되었어. 하나님은 언제든 내게 공급과 도움을 줘. 비록 나는 그분을 만질 수도 볼 수도 없지만 하나님이 언제 어디서든 내 곁에 계신다는 것을 알아. 내가 그분께 기도하고 부르짖기만 하면 그분은 내게 감동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보도록 하실 거야.’ 그때 하나님은 정말로 너의 하나님이 된 것이며, 너의 모든 문제는 해결된 것이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얻고 싶어 하며 게다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지만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앞날도 버리지 못하고, 육적인 편안함도 포기하지 못하며, 가족이 함께 모이는 것도 자식과 부모도 버리지 못하고, 자기 속셈과 목적, 욕망도 포기하지 못한다. 무슨 일이 닥치든 항상 ‘자기’를 가장 먼저 내세워 자기 일, 자기 사욕을 앞에 두고 진리는 맨 뒤에 놓는다. 육적인 이익을 채우고 사탄의 패괴 성품을 충족시키는 일을 가장 우선시하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하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일은 부차적인 일로 여겨 맨 뒤로 놓는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겠느냐? 이렇게 하면 언제 진리 실제에 진입할 수 있겠느냐? 언제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게 할 수 있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본분을 다하고 게으름을 피우지도 않지만 패괴 성품이 조금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것이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는 것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너희가 이것들을 모두 알고 있지만 진리를 실행할 때가 되면 힘이 든다. 너는 규례를 지키고 형식만 거치는 일에서가 아니라 진리를 실행하는 일에서 고통받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 진리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고통받아도 가치가 있으며,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 마음을 만족게 하기 위해 겪는 고통은 하나님이 기쁘게 받아들이고 칭찬한다.

―<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너는 네 몸과 마음, 그리고 너의 모든 참된 사랑을 하나님께 바치고 내놓으며,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또한, 육적인 것이나 가정,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집의 이익을 위해야 하며, 모든 것에 있어 하나님 말씀을 원칙과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올바른 마음가짐과 관점을 가질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그에게 절대적인 사람과 한결같은 마음으로 충성하는 사람을 기뻐하고, 그에게 딴마음을 품거나 거역하는 사람을 혐오한다. 또한, 하나님은 그를 믿으면서 늘 그를 누리려고만 하고 그를 위해 온전히 헌신하지 않는 사람을 혐오하며, 입으로만 그를 사랑한다 말하고 마음으로는 거역하는 사람을 혐오하고, 감언이설로 기만 행위를 하는 사람을 혐오한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헌신과 순종이 없는 사람은 대역무도한 사람이고, 천성적으로 몹시 교만한 사람이다. 특히 실제적이고 정상적인 하나님께 진실로 순종하지 못하는 자는 두말할 나위 없이 교만한 사람이자, 천사장의 충실한 후계자이다. 진실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은 자신의 온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 앞에 내놓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사역에 진심으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삶의 토대로 삼으며, 하나님의 말씀에서 실행할 부분을 진심으로 찾을 수 있다. 이런 사람이 실제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의 ‘실제’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다> 중에서

사람은 현 상태에 만족하지 말고 의미 있는 인생을 추구해야 한다. 베드로의 모습으로 살려면 베드로의 인식과 체험을 갖춰야 한다. 더 높고 더 깊은 것을 추구해야 하고, 하나님에 대한 더 깊고 순결한 사랑을 추구해야 하며,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생을 추구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이고, 이런 사람이야말로 베드로 같은 사람이다. 너는 일시적인 편안함에 만족하며 소극적이 되어 후퇴해 더 깊고, 더 세밀하고, 더 실제적인 진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자신이 적극적인 면에 자발적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또 너는 실제적인 사랑을 갖추어야 하고, 어떻게 해서든 아무 근심 걱정 없이 타락해 살아가는 짐승 같은 삶에서 벗어나야 하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스스로 자신을 우롱하지 말고, 자기 삶을 장난감 삼아 가지고 놀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에게는 얻지 못할 진리도, 서지 못할 정의도 없다. 너는 일생을 어떻게 보내야 하겠느냐? 너는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해야 하겠느냐? 이는 모두 네 일생에서 가장 큰 일이다. 너에게 이런 의지와 끈기가 있어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 기개 없는 나약한 자가 되지 마라. 너는 의미 있는 인생과 의미 있는 진리를 체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신을 그렇게 건성으로 대해선 안 된다. 일생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지나가 버리는데, 너에게 하나님을 사랑할 이런 기회가 또 오겠느냐? 사람이 죽은 후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 너는 베드로와 같은 의지와 양심이 있어야 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을 우롱하지 마라.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너는 네 일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자신을 어떻게 하나님께 바칠지,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야 더 의미 있게 믿을 수 있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상, 어떻게 해야 더 순결하고, 더 아름답고, 더 선하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 너는 진리를 위해 고통받아야 하고, 진리를 위해 헌신해야 하며, 진리를 위해 굴욕을 참아야 하고, 더 많고 많은 진리를 얻기 위해 더 많고 많은 고난을 참아야 한다. 이것이 네가 해야 할 일이다. 너는 가정의 화목을 누리기 위해 진리를 버리지 말고, 일시적인 향락을 위해 일생의 존엄과 인격을 잃지 마라. 마땅히 아름답고 선한 모든 것을 추구하고 더 의미 있는 인생길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게 속되게 살며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다면 인생을 헛되게 보내는 것이 아니냐? 네가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진리 하나를 위해 너는 모든 육적 향락을 포기해야 하며, 약간의 향락을 위해 모든 진리를 버려서는 안 된다. 이런 사람은 인격도 없고 존엄성도 없고 살아갈 의의도 없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너는 지금 내가 한 말을 믿지 않고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지만, 어느 날 이 사역이 전개되는 것을 전부 보게 되면 그때는 후회하고 아연실색할 것이다. 있는 복도 누릴 줄 모르고, 있는 진리도 추구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망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 아니겠느냐? 비록 아직은 다음 단계의 사역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지금 너에게 요구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라고 하는 것이 그 사역과 무관한 일은 아니다. 이렇게 많은 사역과 진리가 모두 네가 알 가치가 없는 것이냐? 형벌과 심판은 너의 영을 깨어나게 할 수 없느냐? 형벌과 심판이 너로 하여금 너 자신을 증오하게 할 수 없단 말이냐? 너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면서 평안하고 즐겁고 육의 편안함을 조금 얻는 것에만 만족하느냐? 그런 사람은 가장 비천한 사람 아니더냐? 구원을 보고도 구원을 얻으려 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보다 미련한 사람이고, 육적인 것을 탐하는 사람이며, 사탄을 즐기는 사람이다.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려움과 환난, 고통이 조금도 없기를 바란다. 너는 늘 이런 가치 없는 것들만 추구하고, 정작 생명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며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각을 진리보다 앞자리에 놓는다. 너는 너무도 무가치한 사람이다! 네가 돼지처럼 산다면 개돼지 따위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육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는 모두 짐승 아니겠느냐? 영이 없는 죽은 자는 모두 걸어 다니는 송장 아니겠느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얼마나 많이 말했더냐? 내가 너희 가운데서 행한 사역이 적더냐? 너희 가운데서 너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공급했느냐? 그런데 너는 어째서 얻지 못했느냐? 또 무슨 불평이 있단 말이냐? 네가 얻지 못한 것은 육을 너무 귀하게 여긴 탓이 아니더냐? 네 생각이 너무 사치스러운 탓이 아니더냐? 네가 너무 어리석은 탓이 아니더냐? 너는 이 복을 얻지 못한다면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지 않았다고 원망할 수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을 믿은 뒤 평안만 얻고자 한다. 자식에게 병이 없고, 남편에게 좋은 직업이 있고, 아들이 좋은 배우자를 찾고, 딸이 좋은 남자와 결혼하고, 너의 우마가 밭갈이를 잘하고, 한 해의 농사가 잘되길 바란다. 네가 추구하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너는 오직 편안하게 살기만을 바라고, 너의 집에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바람이 불어도 네 몸에는 불지 않고, 모래가 날려도 네 얼굴은 때리지 않으며, 홍수가 나도 네 집의 곡식은 잠기지 않고, 모든 재난이 너와 무관하길 바란다. ‘하나님의 품속’에서 살고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생활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너처럼 육적인 것만 추구하는 못난 놈에게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영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짐승 아니겠느냐? 아무 대가도 없이 참도를 네게 베풀어 주었는데 너는 추구하지 않는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맞느냐? 진정한 인생을 베풀어 주었는데 추구하지 않는다. 그럼 너는 개돼지 따위가 아니겠느냐? 돼지는 인생을 추구하지 않고 깨끗함을 바라지도 않으며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 채 날마다 배불리 먹고 쿨쿨 잠만 잔다. 참도를 베풀어 주었건만 너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런 돼지 같은 삶을 계속하고 싶으냐? 그런 사람이라면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비루하고 저속하며, 더럽고 음란하게 살면서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으니 너의 일생은 가장 비천한 일생 아니겠느냐? 무슨 낯으로 하나님을 뵙겠느냐? 계속 그렇게 체험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 아니겠느냐? 네게 참도를 베풀어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네가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너 자신의 추구에 달려 있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지금이 바로 내 영이 크게 역사하는 때이자, 내가 이방에서 일을 시작하는 때이며, 더욱이 모든 피조물을 분류하는 때이다. 나는 모든 피조물을 부류대로 나누어 나의 사역이 더 빨라지게 하고 더 좋은 성과를 거두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전히 내가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은 나의 모든 사역을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바치고, 네게 하는 나의 모든 사역을 더 분명히 알고 정확하게 보며, 나의 사역이 더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너의 모든 힘을 다 쏟으라는 것이다. 이것은 네가 깨달아야 할 것이다. 나의 사역을 그르치지 않고 또한 너의 아름다운 앞날을 그르치지 않도록, 더 이상 서로 다투거나 빼앗지 말고, 더 이상 자신이 빠져나갈 길을 찾지 말며, 더 이상 육적인 안락을 구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 너 자신을 망치기만 할 뿐 보호할 수 없을 텐데, 어리석은 짓이 아니겠느냐? 네가 지금 누리려고 하는 것들은 너의 앞날을 망치는 것들이고, 네가 오늘 참고 견디는 고통은 너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너는 이런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없는 시험에 빠지고, 해가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속으로 잘못 들어가게 되며, 짙은 안개가 사라질 때는 큰 날의 심판 속에 있을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복음을 확장하는 사역도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다> 중에서

오늘날, 나의 뜻대로 행하고, 나의 부담을 생각하며, 진심으로 나를 위해 전 존재를 바치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를 사랑하고 시시각각 깨우쳐 주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할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나를 위해 헌신하는 자는 내가 반드시 크게 축복해 줄 것이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축복’이란 무슨 의미겠느냐? 너는 알고 있느냐? 이는 현재 성령 역사에 비추어 말하면 내가 너에게 더해 준 부담을 의미한다. 교회에 부담을 갖고 진심으로 나를 위해 자신을 내놓는 자라면 그의 부담과 그의 진심은 모두 나의 축복이다. 또한, 내가 그의 마음에 더해 준 계시 역시 나의 축복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82편> 중에서

나는 지금 백성 가운데서 다니고 있고 백성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다. 오늘날 나를 진실로 사랑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나에게 순종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반드시 내 나라에 남을 것이다. 나를 아는 자는 복이 있나니 반드시 나의 나라에서 권세를 잡을 것이다. 나를 추구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반드시 사탄의 굴레에서 벗어나 나의 복을 누릴 것이다. 자신을 저버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 반드시 나에게 점유되어 내 나라의 풍성함을 이어받을 것이다. 나는 나를 위해 열심히 뛰어다닌 자를 기억하고, 나를 위해 헌신하는 자를 열납할 것이며, 내게 바치는 자에게는 누릴 것을 줄 것이다. 또 나의 말을 누리는 자는 내가 축복할 것이니 반드시 내 나라의 기둥이 될 것이며, 나의 집에서 누구와도 비할 수 없는 풍성함을 얻게 될 것이다. 너희를 위한 축복을 너희는 받은 적이 있느냐? 너희를 위한 약속을 너희는 추구한 적이 있느냐? 너희는 반드시 내 빛의 인도를 받아 어둠 세력의 압제를 깨뜨릴 것이고, 반드시 어둠 속에서도 빛의 인도를 잃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만물의 주인이 될 것이다. 또한, 사탄 앞에서 반드시 이기는 자가 될 것이고, 반드시 큰 붉은 용의 나라가 무너질 때 만인 가운데 우뚝 서서 내 승리의 증거가 될 것이다. 너희는 시님(원문: 秦國) 땅에서 반드시 흔들림 없이 굳셀 것이다. 받은 고난으로 인해 내가 주는 복을 받을 것이며, 반드시 온 우주 아래에서 나의 영광이 빛나게 할 것이다.

―<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19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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