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어떻게 부정적인 정서에서 벗어났는가
2022년 10월, 저와 셸리(Shelley) 자매는 교회 리더로 선출되었습니다. 막 훈련을 시작한 탓에 익숙하지 않은 사역이 많았던 우리 두 사람은 무슨 일이 있으면 함께 상의했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는 사역에도 다소 성과가 있었습니다. 자질이 좋은 편인 셸리 자매는 리더의 질문에 늘 신속히 답변을 내놓았는데 리더도 대부분 그녀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리더는 우선적으로 셸리 자매의 의견을 묻는 경우가 많았고, 한쪽에 앉아 있는 저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 된 듯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셸리 자매는 자질이 좋고, 리더도 그녀를 높이 평가하고 있어. 난 한참 동안 말 한 마디를 못 하네. 아마 리더는 내가 그저 그런 수준이라는 걸 간파하고 보조적인 사역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할 거야.’ 저는 약간 의기소침해졌지만, 한편으로는 막 훈련을 시작한 데다 자질도 그저 그런 제가 중용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위로하고 넘어갔습니다.
그 후 우리 두 사람은 점점 더 많은 사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리더는 사역을 안배할 때 우리 두 사람을 모두 부르긴 했지만, 난이도가 있는 사역을 시행할 경우에는 셸리 자매를 지목해 그 일을 점검하게 했지, 저를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기껏해야 끝에 “이 사역은 앞으로 자매님들이 점검하세요.”라고 한 마디 덧붙이는 게 다였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개의치 않는 척했지만 속에서는 요동쳤습니다. ‘나는 언제나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구나. 항상 ‘자매님들’ 속에 묻혀 있을 뿐이야. 리더가 보기에 나는 존재감이라고는 없는 사람이야. 어쩔 수 없지. 내가 셸리 자매보다 자질이 부족한 건 사실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나 하자.’ 이후, 저는 점점 더 수동적으로 사역을 점검하게 되었고, 셸리 자매가 맡은 사역에는 별로 관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셸리 자매가 저와 사역에 대해 의논하려 하면 건성으로 대응했습니다. 간혹 모두가 어떤 문제를 놓고 적극적으로 토론할 때면, 저는 마치 제삼자가 된 듯 오후 내내 몇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 나름의 의견이 있을 때도 있었지만 맞는 의견인 줄도 모르는 상황에서 괜히 말했다가 틀리면 창피를 당할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말을 안 하는 편이 나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점점 더 스스로를 자질이 부족하고, 아무 역할도 못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그렇게 많은 사역을 책임지기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양육 사역에 집중하였습니다. 당시 교회에는 양육 팀장이 부족했는데, 저는 로즈(Rose) 자매가 생각났습니다. 로즈 자매는 과거에 새 신자 양육에서 얼마간 성과를 보였던 자매였습니다. 하지만 형제자매들은 현재 그녀가 본분에 책임감이 없어 팀장에 적합하지 않다고 보고했습니다. 저는 셸리 자매와 이 문제에 대해 상의하려고 했지만, 셸리 자매의 바쁜 모습을 보고 얘기를 나눌 생각을 접었습니다. 그녀가 저를 보고 이 정도 일도 처리를 못 하다니 자질이 너무 부족하다고 할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로즈 자매는 자질이 좋고 교제를 통해 일부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어. 지금은 남편에게 속박받아 부담이 없는 것일 테지. 내가 많이 교제하며 점검하면 사역에 지장을 주지 않을 거야.’ 그래서 저는 로즈 자매를 양육 팀장으로 선출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로즈 자매가 남편의 속박으로 본분을 팽개치고 집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저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습니다. ‘이제 끝이야. 로즈 자매를 선출한 건 나니까 이 일은 나에게 분별력이라고는 없다는 게 드러난 거잖아? 혼자 사역을 하자마자 바로 실수를 저지르다니 너무 형편없어. 만약 새 신자 양육에 지장을 주게 된다면 나는 교회 사역을 방해한 게 돼.’ 생각할수록 괴로웠습니다. ‘나는 제대로 하는 게 없어. 자질이 부족한데 분별력도 없어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네. 더는 형제자매들에게 해를 끼치거나 교회 사역에 지장을 주지 말고, 하루빨리 책임을 지고 물러나자.’ 그래서 저는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편지를 리더와 셸리 자매에게 보냈습니다. 얼마 후, 셸리 자매가 저에게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내왔습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어떤 사역을 하든 사람은 잘못을 범할 때가 있고 자질과 식견이 부족한 데가 있다. 이는 지극히 정상이니 올바르게 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요컨대, 어떤 잘못을 범했든 적극적으로 직면하고 문제의 근원을 찾으며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한다. 어려움에 좀 부딪혔다고 소극적으로 변하거나 억압을 느껴 부정적인 정서에 빠져서는 안 된다. 괜히 호들갑 떨 것 없다는 말이다. 네가 해야 할 일은 속히 자신을 돌아보고, 그것이 업무에 능하지 않아 생긴 문제인지, 아니면 일 처리에 속셈과 불순물이 섞여 있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관념과 상상으로 일을 처리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인지 여러 측면을 전부 성찰해야 한다. 만약 업무에 익숙지 않아 생긴 문제라면 업무 관련 기술을 익혀도 되고, 업무에 익숙한 사람을 찾아가 상담하고 의견을 구해도 된다. 만약 올바르지 못한 속셈이나 관념, 상상이 있는 거라면 하나님 말씀 가운데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한 뒤 그릇된 속셈과 관념을 바로잡고 저버리며 하나님 말씀대로 실행하면 된다. 물론, 네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겠다면 교회 리더나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찾아가 구하고 교제해도 된다. 이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느냐? 너는 앞으로의 날 동안 계속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 살아 있는 한 마땅히 네가 다해야 할 본분을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평생 바꿔서는 안 될 목표이다. 언제가 되었든, 어떤 어려움이 닥치든, 어떤 좌절과 실패를 마주하든 억압을 느껴서는 안 된다. 어려움에 좀 부딪혔다고 억압된 정서에 빠져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본분을 이행할 마음조차 잃어버리고 무너진다면 이는 너무 못난 것 아니겠느냐? 어떤 사람이 늘 억압을 느끼겠느냐? 못난이가 자주 억압을 느낀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6)>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읽고 나니 마음이 무척 따뜻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본분을 이행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거나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기 마련이고, 또한 진리를 깨닫지 못해 원칙을 위배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으며, 본분을 이행하면서 문제가 생겨 사역에 약간의 손해를 입히거나 책망과 훈계를 받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니, 이에 올바르게 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실패 가운데서 공과를 배워 스스로를 반성하고 회개하며 변화하는 것입니다. 만약 패괴 성품으로 일을 해서 사역에 손해를 입혔다면, 진리를 구해 패괴 성품을 해결해야 합니다. 만약 업무에 미숙해 사역에 성과가 없다면, 빨리 관련 내용을 학습하거나 업무를 잘 해내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만약 본분을 이행하면서 편차나 실수가 생긴 것을 가지고 스스로가 드러났다고 여겨 소극적이 된 채 스스로를 규정하고, 심지어 본분을 이행하기 싫어한다면 그것은 우매하고 나약한 모습입니다. 로즈 자매를 쓰는 일에서 문제가 생긴 것을 반성해 보니 명예와 지위에 대한 제 욕심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셸리 자매와 협력하는 동안 제가 돋보일 기회가 없자 저 역시 사역 능력이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저는 독자적으로 사역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양육 팀장을 발탁하는 일에 있어서 저는 분명 원칙을 파악하지 못했고 사람을 꿰뚫어 보지도 못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가는 형제자매들이 저를 이렇게 사소한 일도 처리하지 못하는 못난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봐 그냥 제 생각대로 로즈 자매를 선출했습니다. 저는 사람에 대한 분별력이 없고, 사람을 선출해 쓰는 일에 있어서도 원칙이 없었습니다. 사실, 하나님 집에서는 일찍이 사람을 선출해 쓰는 일에 관해 교제해 준 바 있습니다. 후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찾아 알아보고 그 사람이 본분에 책임감이 있고, 자질도 어느 정도 갖췄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그 사람을 양성할 수 있습니다. 일단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면 서둘러 알아보고 조사해야 하고, 그 사람을 꿰뚫어 보지 못하겠으면 진리를 깨달은 사람에게 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사람을 선출해 쓰는 것이 비교적 정확합니다. 그러나 저는 제 체면과 지위를 지키기 위해 저의 의사에 따라 로즈 자매를 발탁하였습니다. 이는 자의적이고 사역에 무척이나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사역에 이미 차질이 생긴 상황이라, 저는 서둘러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지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져 자포자기할 수 없었습니다. 저의 이런 행동은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나 이기적이었습니다!
한 예배에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본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네가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사람이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 정상 인성으로 해야 할 일, 성인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추구의 근본 취지이자 목표로 삼고 자신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든, 어떤 고통을 겪든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요구이자 뜻임을 확신하는 순간 어떤 고통도 견뎌 낼 수 있고,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다면, 그때 네 심경은 달라질 것이다. 마음이 평안하고 안정되며 누림이 있을 것이다. 보아라, 정상적으로 사람의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이 준 부탁을 짊어지며 올바른 인생길을 걸어가면 평안과 기쁨이 느껴지며, 마음이 평온하고 누림이 있다. 거기에 더해 진리를 추구하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여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까지 한다면 사람은 어느 정도 변화가 생길 것이다. 이런 사람은 양심과 이성이 있는 사람이고 떳떳한 사람이니 어떤 어려움이 생겨도 극복할 수 있고, 어떤 사역이든 감당할 수 있다. 이런 자가 바로 훈련을 거친 그리스도의 정예병이니 어떤 어려움도 그를 쓰러뜨리지 못한다. 말해 보아라, 이렇게 처신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은 의지가 있으니, 어떤 어려움을 마주해도 자신의 책임을 다할 것이다. 그럼 이런 사람이 어려움을 마주한들 억압을 느끼겠느냐?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억압적인 정서는 어떻게 해결되어 그가 더는 억압적인 정서에 얽매이지 않게 된 것이겠느냐? (그는 진리를 깨달았고, 자신의 패괴 성품을 인식하였기에 억압의 통제에서 벗어 난 것입니다.) 그렇다. 그것이 바로 진리를 깨닫고 본연의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 사람이 진리를 깨달으면 본연의 일을 하고 바른길을 걸을 수 있으며, 이런 억압의 정서가 생겨나지 않는다. 설사 가끔 특수 상황에서 억압의 정서가 생긴다고 해도 일시적인 기분에 불과하다. 사람이 진리를 구하고 실행하는 데 집중하면 부정적 정서가 가끔 나타날지라도 없어지며, 자주 억압의 정서에 빠지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즉, 너는 결코 억압의 정서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지 않을 수는 있어도 거기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리 추구의 중요성이다. 네가 본연의 일 하는 것을 추구하고 성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을 감당하며 올바른 추구 관점과 긍정적이고 옳은 생존 방식을 갖는다면, 부정적 정서가 생기지 않을 것이며 억압의 정서가 너를 옭아매는 일도 없을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5)>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은 후 저는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성인과 본연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올바른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을지, 본분에 또 어떤 문제들이 있을지, 어떻게 해야 사역을 더 잘할 수 있을지 등 매일 본분과 관련된 내용을 생각합니다. 본분에 약간의 편차나 실수가 생겨 실패에 직면했을 때에도 잠깐은 나약하고 의기소침해지지만, 계속해서 부정적인 정서에 빠져 있지 않고 능동적으로 진리를 구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멍청이 같았습니다. 약간의 좌절에도 소극적이 되어 주저앉아 버리는데 성인이 가져야 할 강인함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또한, 제가 그동안 본연의 일을 하지 못했음이 드러났습니다. 교회 사역을 맡게 된 이후, 파트너 자매가 모든 면에서 저보다 뛰어난 것을 본 저는 저의 자질이 부족하고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껴 기회를 봐서 저의 능력을 증명하고 싶어 했습니다. 리더가 저희와 예배를 가질 때면, 저는 항상 눈치를 살폈습니다. 리더의 말투를 보며 저를 높이 평가하는지 아닌지 판단하였습니다. 어떤 사역들에 대해 리더가 저를 지명해 일을 맡기면 저는 리더가 저를 꽤 중시한다는 생각에 기뻤고 본분을 이행하면서 의욕이 넘쳤습니다. 만약 리더가 주로 파트너 자매에게 책임을 맡기면 저는 리더의 중시를 받지 못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명예와 지위에 대한 욕심이 충족되지 않아 괴로워했습니다. 형제자매와 협력할 때, 저는 본분에 집중하는 대신 항상 제 말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찬성하는지만 신경 썼습니다. 제가 의견을 말했는데 아무도 말이 없으면 마음이 괴로웠고, 남들이 반대 의견이라도 내면 저는 더욱 소극적이 되어 스스로 자질이 너무 부족하다고 규정짓고는 토론에 참여할 의욕을 잃었습니다. 특히 로즈 자매의 일에서 저는 제대로 파악도 못 했으면서 제멋대로 일을 처리했고, 실수한 후에도 반성하는 대신 부정적인 정서에 빠져 그 자리에서 책임을 지고 물러나려고 했습니다. 이 모든 건 제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본연의 일을 하지 않고 항상 명예와 지위를 추구했기 때문에 초래된 일이었습니다. 제가 관심을 가지거나 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온통 제 명예와 지위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우러름을 얻지 못하면 소극적이 되고 괴로워했고, 심지어 교회 사역까지 한쪽에 제쳐 두었습니다. 이런 식으로는 절대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없고, 이런 태도로는 하나님의 혐오를 살 뿐이었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지금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느라 바쁘고, 마음속에는 어떻게 해야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인데, 억압을 느낄 겨를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을 좀 맞닥뜨렸다고 해서 억압을 느끼거나 기분이 안 좋아지거나 의기소침해지는 모습은 전부 배불리 먹고 온종일 신경 쓸 데가 없으며 진리를 전혀 구하지 않아서 생긴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ㆍ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가(5)> 중에서) 주변 형제자매들을 보면 다들 본분을 이행하느라 바쁜데, 저는 줄곧 명예와 지위에 빠진 채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소극적이 되고 반발심을 품었습니다. 저는 절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자신이 맡은 복음 사역이 성과가 별로 좋지 않아 모두 어려움 속에 빠져 있다며, 다 같이 힘을 합쳐 어려움을 함께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던 셸리 자매를 떠올리자 자책감과 괴로움이 느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상황을 마련해 우리가 함께 협력해 교회 사역을 담당하도록 안배하셨는데, 저는 어떻게 본분을 잘 이행할지는 생각하지 않고, 저의 사소한 생각에 빠져 소극적이 되고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외쳤으니 정말 인성이라고는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너무나 이기적입니다. 현재 교회 사역에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있는데도 저는 본연의 일을 하지 않고 매일 자매와 비교하며 제가 부족하다 싶으면 소극적이 되었습니다. 저의 마음은 더러운 웅덩이처럼 긍정적인 추구는 하나도 없었는데 그로 인해 저 자신도 괴로웠고, 교회 사역에도 지장을 주었습니다. 이제 제 문제를 인식했습니다. 비록 저는 자질이 그다지 좋지 않지만, 제 능력이 되는 한 협조하고 자매와 조화롭게 협력하며, 적어도 저의 태도 문제로 인해 사역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저의 마음을 감찰해 주십시오. 저는 회개하고 싶습니다!’ 그 이후, 본분을 이행하는 저의 태도는 한결 적극적으로 변했습니다. 저는 적극적으로 셸리 자매와 사역에 존재하는 문제에 대해 해결하고자 상의하였습니다. 예전에는 두려워하거나 난이도가 있는 사역들도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참여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본분을 이행하다 어려움을 겪는 것을 발견했을 때 큰 도움을 못 주면 진리를 깨달은 사람과 협력해 해결했습니다. 때로 리더는 어떤 사역을 점검하라고 셸리 자매를 지목하곤 했습니다. 비록 제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셸리 자매가 저를 찾아 소통하려고 하면 저도 참여해 의견을 주었고, 제가 한 일을 리더가 보게 될지 말지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대신 매사에 하나님을 향하고 모든 일을 착실하게 처리하는 것을 훈련했습니다. 진리를 실행해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식적으로 저의 속셈을 내려놓고 매일 마음을 본분에 두자 마음이 무척 편안했고, 부정적인 정서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얼마 후, 저는 한 차례 책망과 훈계를 받고 다시 부정적인 정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리더는 저에게 자료를 한 부 정리하라고 시켰는데, 경험이 부족했던 저는 형제자매와 함께 그 자료를 정리했습니다. 리더는 완성된 초고를 보고 잘 정리되었으며 세부 내용만 좀 보완하면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저는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것에 무척 기뻤고 이번 일을 괜찮게 처리한 것 같았습니다. 세부 내용들을 보완하는 것은 내용만 조금 추가하면 될 일이라 여겨 형제자매들과 원칙에 대해 교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보완된 자료를 본 리더는 우리가 새로 추가한 내용이 사소한데 장황하고, 구상이 명확하지 않으며, 수정하기 전보다 내용이 더 나빠졌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세심하게 생각해 보았는지, 구체적인 문제를 명확히 파악했는지 묻고는, 그 자료 정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습니다. 리더의 말을 들은 저는 순간 멍해졌습니다. ‘나도 잘 해내고 싶었어. 그런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는 자질이 턱없이 부족하고 깨달은 진리가 너무 얕아 사무 사역은 그럭저럭 할 수 있지만 진리에 대한 인식과 관련된 사역은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나는 일부러 뒤로 물러나려는 게 아니야.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능력이 부족한 거야.’ 그 이후, 저는 사역에 협력할 때 항상 겁을 먹고 위축되곤 했습니다. 사역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막 지적을 하려고 하면,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부정했습니다. ‘이렇게 자질이 부족한 네가 어떻게 문제를 알아내겠어? 네가 이 사역을 해낼 수 있겠어? 너는 자질이 부족하고 일을 바라보는 능력도 없어. 그렇지 않으면 사역을 이렇게 엉망으로 할 리 없지. 아무래도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 게 좋겠어.’ 그렇게 저는 또다시 부정적인 정서에 빠져 본분 이행에도 아주 수동적이 되었습니다. 매일 자신의 앞날과 퇴로를 계산하느라 마음을 평온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한 예배에서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고서야 저의 내적 상태는 조금 호전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매일 직면하는 일 중에서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상관없이 네 의지를 흔들 수 있고, 네 마음을 차지할 수 있고, 네가 본분을 이행하거나 앞으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그런 일들은 모두 진지하게 대하고 자세히 성찰해야 하며, 진리를 구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체험하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어떤 사람들은 어려움을 마주하면 소극적이 되고, 원망하며 본분을 팽개치고, 좌절을 겪을 때마다 일어서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모두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우매하고 완고한 사람으로, 평생 믿어도 진리를 얻을 수 없다. 이렇듯 우매하고 완고한 사람이 어떻게 끝까지 따를 수 있겠느냐? 똑같은 일이 열 번 닥쳤는데 그때마다 진리를 구하지 않고, 어떤 공과도 배우지 못했다면, 너는 못난이이고 가장 쓸모없는 사람이다. 똑똑한 사람, 진정 자질을 갖추고 영적인 이해력이 있는 사람은 진리를 구하는 사람으로, 그런 사람은 열 번 일에 직면하면 그중 여덟 번은 얼마간의 깨우침과 교훈을 얻고, 진리를 조금 깨달을 수 있고, 약간의 발전이 있을 것이다. 영적인 이해력이 없는 어리석은 사람은 열 번 일에 직면해도 단 한 번도 자신의 생명에 이로운 것을 얻지 못하고 변화하지 못하며 자신의 추태를 인식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완전히 끝장이다. 일이 닥칠 때마다 넘어지고, 넘어질 때마다 누군가가 붙잡아 주고 달래 줘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어서지 못한다. 일이 닥칠 때마다 넘어지고 타락할 위험이 있으니 이러면 끝장 아니겠느냐? 이런 쓸모없는 사람에게 구원의 여지가 있겠느냐?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함에 있어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을 구원하는데, 사람의 의지와 뜻, 진리와 정의를 갈망하는 마음이 있는, 이 부분을 구원한다. 사람에게 뜻이 있다는 것은 마음속에 정의와 아름다운 것, 진리를 갈망하는 부분, 양심적인 부분이 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이 부분을 구원하고, 이 부분을 통해 사람의 패괴 성품을 변화시킴으로써 진리를 깨닫고 얻게 하며, 사람의 패괴를 정결케 하고 생명 성품이 변화되게 한다. 네게 이런 것들이 없다면 너는 구제 불능이다. … 어떤 이들은 자기 자질이 너무 부족하고 이해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이렇게 규정해 버린다. 자신이 아무리 추구해도 하나님의 요구에 이를 수 없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냥 이 정도라고 생각하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다가 결국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고도 아무런 진리도 얻지 못한다. 너 스스로도 노력하여 추구하지 않으면서 자기 자질이 너무 부족하다고 말하며 자포자기하고, 늘 소극적인 내적 상태 속에서 살다가 결국 깨달아야 하는 진리도 깨닫지 못하고 실행할 수 있는 진리도 실행하지 못한다. 이것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망치는 것이 아니겠느냐? 자기 자질이 수준 미달이라는 말만 내세우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고 전가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네가 고생하고 대가를 치러 성령 역사를 얻을 수 있다면, 어떻든 간에 어느 정도 진리를 깨달아 조금이나마 실제에 진입할 수 있다. 네가 하나님을 앙망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으며,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대가도 치르지 않은 채 자포자기하고 백기를 들고 투항한다면, 일말의 양심과 이성도 없는 폐물이다. 자질이 높고 낮음을 떠나서 네게 양심과 이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네 본분을 잘 이행하고 네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탈주병이 되는 것은 대역무도한 일로, 사람이 하나님을 배반하면 만회할 도리가 없다. 진리를 추구하려면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너무 소극적이고 나약한 사람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으며, 하나님을 끝까지 믿을 수도 없고, 진리를 얻어 성품 변화에 도달할 가망성은 더더욱 없다. 진리를 추구할 뿐만 아니라 의지를 가진 사람만이 진리를 얻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난 후 저 자신과 대입해 보았습니다. 좌절과 실패가 닥치면 저는 항상 너무나 나약하고 무기력할 정도로 소극적이 되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첫 번째로 떠오르는 생각은 항상 ‘그럼 다른 사람에게 시키자.’, ‘나는 자질이 너무 부족해.’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역을 다른 사람이 해결하도록 떠넘겼습니다. 마치 매우 이성적이고 자기 분수를 잘 아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스스로를 규정짓고 자포자기한 것이었습니다.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좌절과 실패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은 우리가 그 가운데서 진리를 구해 문제를 해결하며 성장하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의지와 정의를 지향하는 부분을 통해 사람을 온전케 하십니다. 진리를 사랑하고 자질을 갖춘 사람은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실패 가운데서 경험을 정리해 자신의 부족함을 성찰하는 데 능합니다. 구함을 통해 진리를 어느 정도 깨닫고 자신에 대해서 인식하며 생명에도 성장이 있습니다. 이번에 책망과 훈계를 받았을 때 저는 실패의 원인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잘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자질이 너무 부족해 도저히 다다를 수 없다고, 그런 탓에 본분을 이행하면서 이렇게 문제가 많은 거라고 생각하며 이치를 따지고 들었습니다. 그 말인즉슨 저는 능력 범위 내에서는 잘 해내고 있고 성의를 다하고 있으니, 반성할 게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저에게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까요? 리더로부터 자료에 세부 내용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은 후, 저는 심사숙고하며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 상상대로 쓸모없는 내용을 잔뜩 추가한 탓에 수정된 자료는 알맹이는 없이 쓸데없이 길어졌습니다. 저는 일을 함에 있어 원칙을 구하지 않았고, 어떻게 해야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궁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기계적으로 규례에 맞추었습니다. 이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대충 형식만 거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빠르게 이 상황을 정리하고 바로잡아야 했습니다. 본래 자질도 별로 좋지 않은데 적극적으로 향상하려는 의지조차 없고, 일이 생길 때마다 소극적이 되고 뒤로 물러선다면 저는 성장하기 매우 어려울 터였습니다.
그 후, 왜 저는 좌절과 실패가 닥치면 항상 도망가고 싶어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많은 생각 끝에 그것은 명예와 지위에 대한 제 욕심이 너무 크고 하나님을 믿으며 걷는 길이 잘못됐기 때문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적그리스도를 해부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명예와 지위에 대한 적그리스도의 집착은 일반인을 뛰어넘는다. 이는 그의 성품 본질 안에 있는 것으로, 한때의 흥미도 아니고 한순간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의 생명 속에, 뼛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그의 본질이라고 한다. 즉, 적그리스도는 무엇을 하든 다른 게 아닌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가장 먼저 고려한다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에게 있어 지위와 명예는 그의 생명이자 평생 추구하는 목표이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 가장 먼저 이런 것을 고려한다. ‘내 지위는 어떻게 될까? 내 명예는 또 어떻게 될까? 내가 이 일을 하면 좋은 명성을 얻을 수 있을까? 사람들 마음속의 내 지위가 올라갈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인데, 이것으로 그에게 적그리스도의 성품과 본질이 있음이 충분히 증명된다. 그래서 그는 문제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에게 지위와 명예는 부가적인 요구 사항이 아니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신외지물(身外之物)은 더더욱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적그리스도의 본성에 속한 것이자 뼛속, 핏속에 들어 있는 것으로,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지위와 명예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다. 적그리스도의 태도는 이런 식이 아니다. 그럼 어떤 것이겠느냐? 명예와 지위는 그의 매일의 삶과 상태, 매일의 추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적그리스도에게 있어 지위와 명예는 그의 생명이다. 그가 어떻게 살아가든,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든,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추구하는 것과 목표가 무엇이든, 인생의 방향이 무엇이든 모두 좋은 명예와 높은 지위를 갖는 것을 중심에 놓는데, 이 목적은 바뀌지 않는다. 이는 그가 영원히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진면목이자 그의 본질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3)>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명예와 지위를 사랑하는 적그리스도의 마음은 일반인보다 강하며, 명예와 지위는 그가 평생 추구하는 것으로, 그것은 그가 하는 모든 일의 출발점이자 목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 그를 우러러보고 추켜세우면 그는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 의욕이 넘치고 무슨 일을 하든 기꺼운 마음으로 하지만, 일단 남들이 자신을 우러러보지 않으면 소극적이 되어 태업을 일삼고, 심지어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느낍니다. 저의 추구 관점은 적그리스도와 같았습니다. 제 관점이 남들에게 받아들여지면 저는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사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파트너 자매가 중시를 받고 저는 소외되자 바로 실망하고 낙담하여 본분을 이행할 의욕을 잃었습니다. 그러다 다시 실패를 겪고 제가 드러나자 스스로 자질이 부족해 사역을 할 수 없다고 규정짓고 도피하려 했습니다. 저는 줄곧 제가 책임지고 물러나려 하는 것은 제가 분명 그 사역을 할 수 없기 때문이고, 자신의 분수를 잘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사실 그것은 제가 명예와 지위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본분을 이행하면서는 두각을 나타내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계속 그 사역을 하게 되면 더 많이 실패하고 드러날 것이고, 남들도 저를 철저히 꿰뚫어 보게 될 터였습니다. 그래서 저의 체면과 지위를 지키기 위해 더 단순한 본분으로 바꾸고 싶어 했습니다. 그동안 어떤 본분을 선택하든, 어디에서 공부하거나 일할지를 선택하든 저의 첫 번째 판단 기준은 그것들이 저를 빛나게 해 줄 수 있는지 여부였습니다. 제가 대학 입시를 지원할 당시, 한 대학은 전공이 비교적 괜찮았고, 다른 한 대학은 전공이 상대적으로 안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 대학의 선생님들이 여러 차례 자기네 학교에 지원하라고 권유했고, 저는 그 대학에 가면 중시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결국 전공이 상대적으로 안 좋았던 대학을 선택하였습니다. 대학 시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떤 전공과목 선생님이 저를 상대적으로 인정한다 싶으면, 저는 그 전공에 더 힘을 쏟았고, 어느 과목 선생님이 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싶으면 저는 어떻게 해서든 그 과목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어떤 일을 판단할 때 명예와 지위를 얻을 수 있는지 여부를 근거로 삼았고, 제가 인정받고 체면이 서는 곳으로만 다니려고 했습니다. 반대로, 홀대를 받거나 체면이 깎이는 곳이라면 거부하고 회피했습니다. 그제야 명예와 지위에 대한 제 욕심이 너무 컸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욕심은 이미 저의 뼛속에 새겨져 있어 저는 항상 그것들을 지키려 들었습니다. 지금 상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리더 역할을 맡게 되면 드러나게 되는 일도 많고, 책망과 훈계도 많이 받게 되겠지만, 진리 원칙을 깨닫고 저의 생명 진입에 도움이 되리라는 사실을 분명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체면과 지위를 지키기 위해 본분을 포기하고 싶어 했습니다. 명예와 지위를 사랑하는 제 마음이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드러낸 것은 진리를 싫어하는 성품이었습니다! 계속 이렇게 추구하다가 결국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업무적으로도 제대로 훈련받지 못하고, 생명 진입에도 성장이 없어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폐인이 되어 하나님께 혐오받고 도태되는 대상이 될 것입니다. 그제야 저는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는 것은 죽음의 길임을 깨달았고, 진리를 구해 명예와 지위를 내려놓고 이런 내적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고 실행의 길을 찾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장 중요하게는 무엇을 중시해야 하느냐? 사람의 자질이 어떻든, 영적인 이해력이 있든 없든, 또 사람에게 어떤 책망과 훈계가 닥치든 이러한 것들은 모두 중요하지 않다. 현재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느냐? 바로 ‘너희가 어떻게 진리 실제에 진입하느냐’이다. 진리 실제에 진입하기 위해 사람이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반드시 진심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심이 있다면 어떤 모습이어야겠느냐? 바로 일이 닥쳤을 때 잔꾀를 부리거나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거나 다른 사람과 암투를 벌이지 말아야 하며, 또 하나님에게 간사함을 부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기만할 수 있고 하나님에 대한 진심이 없다면, 너는 완전히 끝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지 않으면, 네가 진리를 깨달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네가 영적인 이해력이 있고, 자질이 좋으며, 말을 잘하고, 이해력도 좋으며,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이 한 말씀을 다 깨달을 수 있어도, 일이 닥쳤을 때 하나님에게 간사함을 부린다면, 이는 사탄의 성품으로, 대단히 위험하다. 네 자질이 아무리 훌륭해도 소용이 없으며, 하나님도 너를 원하지 않고 이렇게 말씀할 것이다. “너라는 사람은 말을 매우 잘하고, 자질도 꽤 좋으며, 똑똑하고, 영적인 이해력도 있지만 딱 한 가지 나쁜 점이 있는데, 바로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지 않으면 큰일이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이 못되면, 그 사람은 폐기된다. 마치 겉으로는 잘 유지된 것처럼 보이지만, 엔진이 망가진 자동차는 완전히 폐기 처분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너의 외적인 자질이 얼마나 훌륭하든, 아무리 영리하고 말을 잘하고 능력이 있고 문제를 잘 처리하든 다 소용이 없다. 이는 핵심적인 것이 아니다. 핵심은 무엇을 살펴야 하겠느냐? 어떤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는지를 살필 때는 그가 어떻게 말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하나님은 네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약속하는지를 보지 않는다. 하나님은 네가 행한 것에 진리 실제가 있는지를 보려고 하지, 네가 하는 말이 얼마나 대단하고 심오하고 위대한지를 보지는 않는다. 네가 작은 일을 해도 하나님은 네 일거수일투족에서 진심을 보고 이렇게 말씀할 것이다. “이 사람은 진심으로 나를 믿는구나. 이 사람은 허풍을 떠는 법이 없는, 성실한 사람이다. 하나님 집에 그리 크게 기여하지 못했고 자질도 부족하지만, 언제나 성실히 일하고 진심을 보인다.” 이 진심에는 무엇이 들어 있겠느냐?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순종, 그리고 진실한 믿음과 사랑이 들어 있다. 하나님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이 모두 들어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꼭 대단해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는 어쩌면 섬김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일 수도 있으며, 평범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엄청난 공적을 세운 것도 아니며, 남들이 우러르고 감탄하고 부러워할 만한 부분도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는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이 요구한 것을 모두 갖추고 살아 내며, 또 하나님께 바칠 수 있다. 하나님은 이것으로 만족하며, 다른 것을 원하지 않는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예전에 저는 사람의 자질과 은사 여부를 매우 중시했습니다. 자질이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 집에서 중용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자질이 부족하고 일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저의 모습이 드러날 때마다 저는 소극적이 되어 자신을 규정해 버렸고, 원래 할 수 있던 일에서조차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자신의 자질이 좋은지 나쁜지, 좋은 말솜씨와 뛰어난 두뇌가 있는지 없는지를 중요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이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하시고, 사람이 하나님과 교회 사역에 진심인지 아닌지를 보십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어떤 자질을 주셨는지, 말솜씨가 있는지 없는지는 제가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아닙니다. 만약 제가 말주변이 좋고, 사역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실제로 일을 할 때 농간을 부리고 책임감 없이 군다면, 자질이 아무리 좋더라도 하나님께 혐오받는 대상이 됩니다. 비록 자질이 있으면 사람이 본분을 잘 이행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진리를 대하고 본분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사람이 적극적이고 진취적인지,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실패하고 드러날 때 진리를 구할 수 있는지, 실패 가운데서 경험을 정리해 생명을 추구해 성장할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보시는 것들입니다. 과거에 은사와 자질이 있어 교회 리더를 맡았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중 많은 이들이 본분을 잘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지나면 편안함을 탐하며 실질적인 사역을 하지 않거나, 명예와 이익을 두고 다투며 교회 사역을 방해하는 바람에 결국 도태되었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 별 볼 일 없고 은사도 없고 자질도 평범한 수준이지만, 착실히 본분을 이행하고, 일이 생기면 원칙을 구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은 본분을 이행하며 성장하였고, 교체되거나 도태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셔서 한 사람의 자질의 높고 낮음으로 사람을 규정하지 않으시고,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지, 진리를 실행하는지, 모든 사역을 착실하고 진지하고 책임감 있게 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보십니다. 이것들을 깨달은 저는 마음속으로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마음을 본분에 두고, 착실하게 사역을 할 거야. 사역을 맡겨 주면 진지하고 책임감 있게 할 거야. 힘닿는 만큼 열심히 하며 착실하게 본연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 후 저는 매번 실패와 드러남 가운데서 공과를 배우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바뀐 마음가짐으로 매번 드러나게 되는 상황을 체험했습니다. 예전에는 실패를 하거나 책망을 받으면 늘 ‘이런, 리더가 나를 꿰뚫어 봤겠구나.’, ‘다들 분명 내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겠지.’라는 식으로 생각했고, 이런 생각에 빠지면 유난히 의기소침해졌습니다. 하지만 이후로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왜 내가 드러나게 되었을까? 이번에 드러나면서 나의 어떤 문제들을 발견하고, 어떤 부족함을 보완할 수 있을까?’ 마음가짐을 바꾸자 마음속으로 올바른 일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이 더 많아졌습니다. 그 후 한동안 저는 연이어 책망과 훈계를 받게 되었습니다. 어떤 때는 제 일 처리 효율이 너무 떨어져서, 어떤 때는 제가 일을 할 때 원칙을 잘 파악하지 않아서, 또 어떤 때는 일을 비교적 단편적으로 보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였습니다. 저는 제 문제에 대해 반성하고 인식했습니다. 업무와 관련해서는 사역 효율을 높일 방법을 찾았고, 이해와 관련된 문제는 제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며 어느 방면의 이해가 치우쳤는지 살핀 후 진리를 깨닫고 체험이 있는 형제자매에게 구했습니다. 이렇게 고민할 때면 책망과 훈계를 대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지금도 가끔은 의기소침한 기분이 들 때가 있지만, 그 정서에 하염없이 빠져 있지는 않습니다. 매일 본분을 이행하는 마음도 그렇게 무겁지 않고, 주어지는 환경을 정상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를 되돌아보면, 저는 부정적인 정서에 빠져 너무나 힘들고 괴롭게 살았습니다. 만약 하나님 말씀의 인도가 없었다면 저는 부정적인 정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타락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고, 심지어 현재의 본분도 잃었을 것입니다. 제가 가장 나약할 때 주변 사람들을 통해 저를 일깨워 주시고, 말씀을 통해 저를 인도해 주셔서 제가 그런 정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저는 그저 차분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저의 본분을 잘 이행하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