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인가?
1998년, 사촌 동생인 샤오양(小楊)이 제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하면서 성경 한 권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동생은 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며, 성경에 나오는 말씀은 전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성경에는 천국에 들어가 영생을 얻는 길이 나와 있다고 했습니다.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 저는 그 후로 시간이 날 때마다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예수님은 인류의 구속주이심을 깨닫고 그분을 받아들이게 됐죠. 열심히 추구한 결과 얼마 후에는 사역자가 되어 복음을 전하고 설교하며 교회를 목양하게 되었고요. 저는 성경이 곧 하나님을 믿는 근간이자 길잡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몇 년 후, 교회가 조금씩 황폐해지면서 성령 역사를 느끼기가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많은 신자가 소극적으로 변하고 연약해졌으며 믿음이 냉담해졌죠. 또 많은 사람이 세상으로 돌아가 하나님을 믿지 않게 됐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저는 초조하기도 하고 무력감도 들었습니다. 마음도 연약해졌고요. ‘정말 주님이 우리를 떠나신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10:22)라는 주님의 말씀을 떠올리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진심으로 그분을 따르는 사람을 홀대하지 않으실 거라 믿었기에 주님을 위해 계속 헌신했고, 주님께 수시로 기도하면서 저희의 믿음을 굳건히 해 주시라고 구했습니다. 바로 그때, ‘동방번개’라는 교회가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이미 돌아오셨고, 진리를 선포하셔서 말세 심판 사역을 행하셨다고 증거했습니다. 주 안에 있는 많은 형제자매가 ‘동방번개’를 믿게 됐죠. 저는 그 모습을 보며 상심해 마지않았습니다. 특히 ‘동방번개’ 사람들이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도, 사람의 말도 있다고 하는 건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에는 분명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 3:16)라고 기재되어 있었고요.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전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목사와 장로들도 늘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그러니 그들은 성경을 부정하고 주님을 배반하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동방번개’에 큰 반감과 경계심을 가졌습니다. 그 후로 저희는 예배 때 ‘동방번개’를 어떻게 경계하고 거부할지, 양들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교회를 어떻게 지켜야 할지 등을 토론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곤 했습니다. 저는 ‘동방번개’ 사람들이 양을 훔쳐 가는 것을 막기 위해 형제자매들에게 몇 번이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전부 성경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성경을 떠나선 안 됩니다. 성경을 떠나면 그것은 이단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형제자매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구하고 살펴보는 것을 가로막고자 한 거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형제자매들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습니다. 문을 열자 밀가루를 반죽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내의 옆에는 6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앉아서 아내와 교제하고 있었고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임을 알고 있는 저는 얼굴을 굳혔습니다. “성경을 부정하고 저버린 당신들을 주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당장 나가십시오!” 자매는 인내심 있게 권했습니다. “형제님, 일단 화를 가라앉히세요. 무턱대고 결론을 내리시면 안 됩니다. 저희도 성경을 읽어 봤어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 3:16)라는 말마따나 성경에 나오는 모든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다 나중에서야 그런 인식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저는 경멸하는 투로 말했습니다. “어떤 증거가 있죠?” 자매는 “예를 들어, 누가복음의 앞머리에는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눅 1:1~2)라는 말이 나와 있습니다. 이는 누가복음이 누가가 체험하고 살펴본 후에 쓴 내용이라는 뜻 아닐까요? 누가는 당시 자신이 보고 들은 사실들을 기록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그건 사람이 쓴 책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면 사람이 체험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들어가 있을 리도 없고요. 이 두 가지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자매의 말에 저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심호흡을 한 뒤 시야 한쪽으로 그녀를 살피며 생각했습니다. ‘나이가 많은 데다가 이렇다 할 지식이나 교양도 없어 보이는데 이런 인식을 지니고 있다니 믿기지 않네!’ 자매의 말에 순간 말문이 막힌 저는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녀의 말을 계속 듣다가 미혹되어 버릴까 봐 겁도 났죠. 그래서 헛기침을 한 뒤 그녀를 밖으로 내보내며 말했습니다. “됐습니다. 당신이 믿는 것과 제가 믿는 것은 다른 것 같군요. 앞으로는 찾아오지 마십시오!” 자매는 저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보아야 주님이 정말 돌아오신 건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거라며 재차 권했지만, 저는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자매는 눈물을 머금고 간곡하게 말했습니다. “형제님,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자매의 간곡한 말과 진지하고 간절한 눈빛, 그리고 겨울철 찬바람 속 가녀린 모습을 보며 저는 순간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 심정을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었죠. 하지만 또 성경은 전부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을 떠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들은 성경의 범주를 넘어서 설교하며 교회에 와서 양을 훔쳐 가려 한다고, 그러니 저는 그들의 설교를 들으면 안 된다고, 이 입장을 확실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에도 저는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양들을 ‘보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사람들을 언급할 때마다 겁이 났습니다. 그들의 교제는 일리가 있고 근거도 있어 반박하기가 쉽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어쩔 수 없이 보수적인 대책을 취했습니다. ‘듣지도, 보지도, 접촉하지도 않는다’는 원칙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사람들을 대하기로 한 거죠.
어느새 시간은 흘러 2004년 초가을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사촌 동생 샤오양이 전화를 걸어 급한 일이 있다며 부르는 바람에 급히 달려갔습니다. 동생은 왕촨양(王傳揚) 형제를 소개해 주며 그는 전도인이니 함께 주님에 대한 인식을 교제하자고 했고,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사촌 동생은 제게 성경 한 권과 두꺼운 양장본 책 두 권을 건넸습니다. 표지에는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이라는 제목이 쓰여 있었죠. ‘동방번개’의 책이었습니다! 저는 벌떡 일어나 말했습니다. “샤오양, 너 ‘동방번개’를 받아들였니?” 그러자 동생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래요, 형. 오늘 오라고 한 것도 형과 좀 교제하고 싶어서였어요. 형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살펴봤으면 해서요.” 그때, 저는 목사와 장로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다 성경 안에 있습니다. ‘동방번개’의 도는 성경의 범주를 벗어났고, 주님의 도에서 벗어났으니 절대 들어선 안 됩니다. ‘동방번개’에 대처하는 최고의 방법은 회피입니다.” 저는 집에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일어서려 했습니다. 하지만 동생은 당황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형, 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 보면 피하는 거예요? 진리가 있다면 미혹될까 봐 두려워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니에요? 이왕 온 거,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번 살펴보는 건 어때요?” 저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마음은 무척 괴로웠습니다. ‘이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저는 묵묵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부디 저를 보호하고 인도해 주십시오’ 그때, 동생이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이라는 책을 들고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한 단락 읽었습니다. 『너희에게 충고하겠다.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하나님을 믿는 길을 가고 함부로 단정 짓지 마라. 또한 제멋대로 건성으로 하나님을 믿지 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적어도 겸손한 마음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갖춰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진리를 듣고 코웃음 치는 사람들은 다 어리석고 무지한 자들이고, 진리를 듣고도 멋대로 단정 짓거나 정죄하는 자들은 다 교만한 자들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모두 다른 이를 저주하거나 정죄할 자격이 없다. 너희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이성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진리의 도를 듣고 생명의 말씀을 본 후, 그 말씀 중에서 단 만분의 일이라도 너의 생각과 일치하고 성경과 일치한다고 여겨진다면, 너는 그 만분의 일에 해당하는 말씀에서 계속 찾고 구하여라. 나는 또 네게 자신을 과신하거나 높이 여기지 말고 겸손한 사람이 될 것을 권한다. 미약하게나마 하나님을 경외하는 너의 마음에 더 큰 빛을 얻게 될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고 자꾸 생각해 보면, 너는 이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과연 진리가 맞는지, 생명이 맞는지 알게 될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네가 예수의 영체를 볼 때는 하나님이 이미 하늘과 땅을 새롭게 바꾼 후이다> 중에서) 저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그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사실 책에 나오는 말씀들을 다 들었습니다. 그 요구들은 전부 예수님의 말씀에 부합했죠. 주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겸허한 마음과 구하려는 태도를 갖춰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구하지도 살펴보지도 않은 채 맹목적으로 ‘동방번개’를 정죄하고 판단했으니 정말 교만하고 독선적이었습니다. 저는 죄책감을 느끼며 생각했습니다. ‘이 말씀들은 정말 평범하지 않네. 주님의 교훈과 비슷하잖아. 설마 정말 주님이 오셔서 음성을 발하고 말씀하신 걸까?’ 저는 또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사람들과 접했을 때의 장면 장면들을 떠올렸습니다. 그들은 행동거지가 단정했고, 사랑과 인내로 복음을 전했죠. 특히 질문에 답할 때는 근거를 제시해서 듣는 사람이 철저히 승복하게 했습니다. ‘성령 역사가 없다면 사람 혼자 그런 수준에 이를 수 있을까? 이건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가 확실히 평범하지 않다는 의미야. 만약 전능하신 하나님이 정말 돌아오신 예수님이시라면, 구하지도 살펴보지도 않다가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기회를 놓치고 주님께 버림받는 것 아닐까? 계속 고집부리지 않는 게 좋겠어. 오늘 주님이 정말 돌아오신 건지 확실히 해 두자. 그러면 분명해지겠지.’ 생각을 거듭하던 저는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네가 읽은 말씀은 확실히 좋구나. 평범하지 않아.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성경은 기독교의 경전이야. 2천 년 동안 종교계에서는 줄곧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며,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전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니 성경은 주님을 대표한다.’라고 여겨 왔어. 지금까지 주님을 믿으면서 나 역시 그렇게 이해했고. 그런데 ‘동방번개’에서는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도, 사람의 말도 있다고 하니, 그건 성경을 부정하는 것 아니겠니? 그건 주님을 부정하고 배반하는 거야. 온 세상이 비난할 짓이지!” 왕촨양 형제는 참을성 있게 말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말이 정말 사실에 부합할까요? 근거가 되는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성령 또한 그렇게 증거하신 적 없고요. 바울의 그 말은 그저 성경에 대한 개인적인 인식에 불과하죠. 절대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습니다.” 저는 순간 놀랐습니다. ‘일리가 있어. 나는 왜 여태까지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 왕촨양이 다시 물었습니다.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 3:16)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성경’이란 성경 전체를 말하는 걸까요, 아니면 일부만을 말하는 걸까요?” 저는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성경 전체를 말하는 것 아닙니까?” 형제가 얘기해 주었습니다. “사실 바울이 디모데후서를 쓴 것은 주후 60년쯤 됐을 때입니다. 그때는 신약 성경이 아직 편찬되지 않았기에 구약 성경만 있었죠. 주후 90년쯤 됐을 때 요한이 밧모 섬에서 이상(異象)을 보고 집필한 것이 후세의 계시록입니다. 그리고 주후 300년쯤 됐을 때 니케아의 한 회의에서 각국 종교계 수장들이 수많은 사도의 서신 가운데 4복음과 다른 일부 서신들을 골라 요한의 계시록과 함께 편찬한 것이 신약 성경이고요. 그 후 그들은 또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함께 묶어 오늘날 우리가 읽는 신구약 전서를 만들었습니다. 신약 성경은 주후 300여 년에 책으로 만들어졌지만, 바울은 디모데후서를 주후 60여 년에 썼습니다. 신약 성경의 등장 시점보다 200년 넘게 이르죠. 여기에서 알 수 있듯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는 바울의 말 중 ‘성경’에는 신약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저는 그의 말을 들으며 부지중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바울이 말한 ‘성경’에 신약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구약만을 가리키는 것이겠군요.” 형제가 얘기했죠. “그렇습니다. 하지만 구약 성경에 기재된 말이라고 해서 전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은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읽어 보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성경이 몇 부분으로 구성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구약에는 창세기, 출애굽기… 그리고 선지자들이 쓴 예언서도 포함되어 있으며, 마지막은 말라기로 구약 성경 전체가 마무리된다. … 그런 예언서들은 성경의 다른 책들과 매우 다르다. 예언서는 예언의 영을 받은 사람, 즉 여호와로부터 이상을 보거나 음성을 들은 사람이 한 말, 또는 기록해 놓은 말이다. 예언서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여호와가 사역을 마친 후에 사람이 기록한 책이다. 그러므로 그런 책들은 여호와가 일으킨 선지자의 예언을 대신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창세기, 출애굽기는 이사야서, 다니엘서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예언은 사역을 하기 전에 한 말이다. 예언서 이외의 다른 책들은 사역을 마친 후에 기록한 것으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경에 관하여 1> 중에서), 『성경의 기록이 모두 하나님이 친히 발한 음성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전 두 단계 사역에 대한 사실 기록일 뿐이다. 거기에는 선지자들의 예언에 대한 기록도 있고, 역대에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이 쓴 체험과 인식도 있다. 사람의 체험에는 사람의 견해와 인식이 섞여 있기 마련이며,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수많은 책들 중 어떤 것은 사람의 관념이나 편견, 치우친 이해 방식에 속한다. 물론 대부분은 성령의 깨우침과 빛 비춤에서 비롯된, 올바른 이해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리를 완전히 정확하게 말했다고는 할 수 없다. 어떤 일들에 대한 그들의 견해는 개인적으로 체험하여 얻은 인식이나 성령의 깨우침에 불과하다. 선지자의 예언은 하나님이 친히 지시한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시에 이사야가 했던 예언이나 다니엘, 에스라, 예레미야, 에스겔이 했던 예언은 성령이 직접 지시한 것이다. 예언자에 속하는 그들은 예언의 영을 받은 사람들로, 모두 구약의 선지자들이다. 율법시대에 여호와의 묵시를 받은 그들은 많은 예언을 했는데, 그것은 여호와가 직접 지시한 것이었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경에 관하여 3> 중에서) 그는 이어서 교제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성경 속 선지자들이 쓴 예언에는 모두 성령이 친히 지시하신 것을 선지자들이 전달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이자 의심할 여지없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경 내용 중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에는 전부 명확한 표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사야서의 서두에는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 본 이상이라’(사 1:1)라고 나와 있고, 예레미야서 첫머리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렘 1:2)라고 나와 있죠.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어떤 말씀들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선지자들의 예언 외에 나머지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면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대부분 회고록의 성질을 띠고 있죠. 이러한 것들은 다 사람의 체험이자 말이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이 들어가 있을 수밖에 없지요. 예를 들면, 사무엘하 24장 1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역대상 21장 1절에서는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죠. 이 두 경문은 다윗이 백성의 수를 세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부분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을 감동시키사 인구를 조사하라 하셨다고 나오고, 또 한 부분에는 사탄이 일어나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였다고 나옵니다. 만약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면 이렇게 큰 차이가 있을까요? 구약 성경이 전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면, 같은 일에 대한 하나님의 감동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을까요?” 형제의 말을 듣자 머릿속이 환해지면서 마음속에 세웠던 단단한 방어막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구약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 아니라면 신약 성경의 기록도 전부 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볼 수는 없겠군요. 그건 사도들이 기록했으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형제는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이해하시는 것이 맞습니다. 사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내용 중에는 예수님의 말씀과 계시록의 예언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나머지는 사도들의 말, 바리새인의 말, 백성들의 말, 병사들의 말, 그리고 마귀들의 말이죠. 성경에 나오는 모든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면 그건 너무 터무니없는 것 아닐까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 아닐까요?”
이어서 그는 또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늘 성경이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곧 성경이라고 여긴다. 또한 하나님은 성경에 있는 그만큼만 말씀했고, 성경에 있는 그만큼의 말들은 모두 하나님이 한 말씀이라고 여긴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신구약 66권은 사람이 쓴 것이지만 다 하나님이 묵시한 것이고 성령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라고 여긴다. 이는 사람의 치우친 이해 방식으로, 사실과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는다. 사실, 구약에서 예언서를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역사(歷史) 기록에 속한다. 신약 서신에는 사람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도 있고, 성령의 깨우침에서 비롯된 것도 있다. 예를 들면, 바울이 쓴 서신은 사람이 한 일이었다. 그것은 모두 성령이 한 말씀이 아니라 성령이 깨우쳐 준 것으로, 바울이 여러 교회에 보낸 서신들이며, 여러 교회의 형제자매들에 대한 권면과 격려이다. 바울은 성령을 대표하여 말할 수 없는 데다가 선지자도 아니었고, 요한이 본 이상(異象)은 더더욱 보지 못했다. 그 편지들은 당시 에베소, 고린도, 갈라디아 등등 교회에 써 보낸 것이었다. … 사람이 바울의 서신이나 말과 유사한 것들을 성령의 음성으로 간주하고 또한 하나님으로 여겨 경배한다면, 너무나 분별력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심하게 말하면, 이는 완전히 모독에 속하지 않겠느냐?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표하여 말할 수 있겠느냐? 어떻게 사람의 말과 사람의 서신 기록을 ‘성서’와 ‘천서(天書)’로 삼아 엎드릴 수 있겠느냐?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표하여 말할 수 있단 말이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경에 관하여 3> 중에서) 저는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가 되어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여태까지 저는 바울이 그런 말을 한 배경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며, 성경의 말은 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성경을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런 이해는 확실히 치우친 것이었군요! 저는 성경에 나오는 사람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집부리며 하나님을 믿는 근거로 삼았습니다. 이는 주님의 도에서 벗어난 것 아닐까요?”
왕촨양 형제가 계속 교제해 주었습니다. “성경은 그저 하나님이 행하신 사역에 대한 증거이자 역사서, 하나님께서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에 하신 사역에 대한 기록일 뿐입니다. 성경을 어떻게 하나님과 같은 선상에 놓고 논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질책하며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39~40)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성경은 그저 하나님을 증거한 것일 뿐, 거기에 영생은 결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사람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죠!” 그때 사촌 동생은 이렇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하나님이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에 행하신 사역을 알 수 있죠. 또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지으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요. 이 밖에도 하나님이 어떻게 율법을 반포해 인류를 이끄셨는지, 사람은 어떻게 땅에서 살아가고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지, 무엇이 죄인지,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을 축복하고 저주하시는지 알 수 있죠. 어떻게 주님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할 것인지, 어떻게 겸손하고 인내하며 남을 용서할 것인지도 알 수 있죠. 사람은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을 따르면서 사람에 대한 예수님의 끝없는 긍휼과 사랑을 보고, 예수님을 믿고 주님 앞에 나아가야만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진리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죠. 하지만 하나님이 말세에 어떤 진리를 선포하시는지, 어떻게 사람의 패괴를 심판하고 정결케 하시는지, 사람의 죄짓는 근원을 어떻게 해결하시는지는 전혀 몰라요. 그 진리들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았으니까요. 전능하신 하나님은 말세에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토대로 하나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 사역을 행하셨어요. 인류를 정결케 하시는 모든 진리를 선포하시고, 패괴된 인류의 사탄 성품과 사탄 본성을 폭로하셨죠. 그럼으로써 사람의 패괴를 정결케 하시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으로 만드시는 거예요. 이와 동시에 사람이 하나님의 거룩함과 거스를 수 없는 공의 성품을 깨닫게 하시죠. 이 말씀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생의 도예요.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 16:12~13)라는 예수님의 예언이 이루어진 거죠.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이 책은 계시록에 예언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자 어린양이 펼친 책이에요. 각 종교 각 교파에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형제자매들은 모두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아차렸죠.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아와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르게 되었고요.”
사촌 동생이 말을 마치자 왕촨양 형제가 또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말세의 그리스도가 가져온 것은 생명이고, 영원하고 영원한 진리의 도이다. 이 진리가 바로 사람이 생명을 얻는 길이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칭찬받는 유일한 길이다. 말세의 그리스도가 공급하는 생명의 도를 찾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예수의 칭찬을 받을 수 없고 영원히 천국의 대문에 들어설 자격도 없다. 이는 네가 역사(歷史)의 꼭두각시이자 역사의 죄수이기 때문이다. 규례와 글귀, 역사의 멍에에 지배당하는 사람은 영원히 생명을 얻을 수 없고 영구한 생명의 도를 얻지 못한다. 그들이 얻은 것은 보좌에서 흘러나온 생명수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고여 있던 더러운 물이기 때문이다. 생명수를 공급받지 못하는 사람은 영원히 시체이고 사탄의 노리개이며 지옥의 자식이다. 이런데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느냐? 네가 역사(歷史)를 답습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며 현상 유지에 그칠 뿐, 현 상태를 변화시켜 역사를 도태시키려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겠느냐? 하나님 사역의 발걸음은 솟구치는 파도처럼, 요동치는 천둥소리처럼 규모가 크고 기세가 드높거늘, 네가 죽을 때까지 앉아서 요행만을 바라며 기다린다면 어찌 너를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르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지키고 있는 하나님을 어찌 항상 새로운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누렇게 바랜 지 오래인 네 책의 글귀가 어찌 너를 다른 시대로 인도할 수 있겠느냐? 그것이 하나님 사역의 발걸음을 어찌 찾아 줄 수 있겠으며, 또 어찌 너를 하늘나라로 데려다줄 수 있겠느냐? 네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진리가 아니라 그저 잠시 위안을 주는 글귀에 불과하다. 네가 읽는 성경 구절은 인생을 알려 주는 현묘한 이치도 아니고 너를 온전케 하는 길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그저 네 혀를 충실하게 해 주는 구절일 뿐이다. 이런 차이가 있는데도 너는 반성하지 않는단 말이냐? 그 속의 비밀을 깨닫지 못한단 말이냐? 너 스스로의 힘으로 하늘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오지 않으면 너 스스로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함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느냐?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느냐? 그렇다면 너에게 권하노니, 이제 꿈에서 깨어나라. 너는 현재 사역을 행하는 이가 누구인지, 사람을 구원하는 말세 사역을 하는 이가 누구인지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진리도 생명도 얻지 못할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줄 수 있다> 중에서) 이 말씀을 듣고 저는 마음의 울림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끊임없이 앞을 향해 발전해 나가며, 하나님의 말씀 또한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이 성경에 국한될 리 없죠. 만약 제가 종교 관념을 끌어안고 놓지 않는다면, 마지막에 손해 보는 것은 저 자신입니다. 주님을 믿어 온 지난날들을 돌아보니, 저는 그렇게 많은 성경 지식을 갖추었지만 진리를 전혀 깨닫지 못했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아무 인식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갈수록 방자하고 교만해졌죠. 주님이 돌아오셨는데 구하고 살펴보기는커녕 성경의 글귀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을 대적하고 판단했습니다. 저는 지난날, 예수님을 대적한 바리새인들과 판에 박은 듯 똑같았습니다. 그야말로 눈이 멀어 하나님을 알지 못한 거죠! 또 저는 혼자서만 관념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형제자매들이 구하고 살펴보는 것까지 가로막았습니다. 이는 방해하고 교란한 것 아닐까요? 형제자매들이 주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새로운 사역을 따르지 못한다면 천국에 들어갈 기회를 잃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저는 사람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었던 거죠! 제가 이렇게 큰 악행을 저질렀는데도 하나님은 저를 긍휼히 여기시어 그분의 음성을 듣게 해 주셨습니다. 이는 실로 하나님의 구원이었죠! 그 후 저희는 또 성경과 관련하여 교제했고, 은혜시대의 교회가 왜 황폐해졌는지, 하나님은 어떻게 세 단계 사역을 행하여 인류를 구원하시는지 등의 화제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많은 말씀을 읽었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확신이 들더군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돌아오신 예수님이시자 말세의 그리스도였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정말 성경에 있는 게 아니었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주실 수 있습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곧이어 제 아내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받아들였고요. 저희는 함께 복음을 전하면서 교회에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형제자매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