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잔꾀 부리다가 얻은 뼈아픈 교훈

이탈리아 마리아나(Mariana)

2020년, 저는 교회에서 미술 디자인을 맡고 있었습니다. 주로 도안을 그리는 일을 했죠.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됐는데, 그 일은 리듬이 다른 일만큼 빠르지 않았어요. 책임자가 다른 사역도 동시에 맡고 있어서 저희 쪽 일은 그다지 세밀하게 체크하지 않았거든요. 저는 나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재촉하는 사람도 없는데 차근차근히 하자. 빈둥대지 않고 매일 완성작을 내놓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도안 그리기는 편한 일이었습니다. 급하게 진도를 맞출 필요도 없고 육체적으로 힘들 것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도안 그리기에 능숙하고, 각 방면의 원칙을 꿰고 있었고, 실무에 익숙했습니다. 그래서 쭉 교회에 남아 본분을 이행하다가 훗날 구원받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어요. 저는 그런 관점을 가지고 하루하루 목표도 계획도 없이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그날 할 수 있는 만큼만, 형편에 따라 되는대로 일했죠. 겉만 봐서는 빈둥거리는 것 같지 않았지만, 내면은 무척 해이해져 있었습니다. 도안을 그리는 데에 집중하지 못하고 채팅 애플리케이션에 알림이 떴다 하면 득달같이 확인해 봤어요. 중요하거나 급한 용건이 아니더라도 바로 답장하고 처리하느라 부지불식간에 적지 않은 시간을 흘려보냈죠. 그리고 가끔 오전에 예배가 있는 날이 있었는데, 사실 그런 날에도 서두르기만 하면 도안을 세 장은 완성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저는 첫 번째 도안을 끝내는 동시에 해이해졌어요. 오전 예배가 이미 하루의 절반을 잡아먹었으니까 두 장만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꾸물거리다가 결국 두 장으로 일을 끝내곤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여가 시간에도 생명 진입이나 본분 이행의 문제점에 관해 생각해 보기는커녕 뉴스나 봤습니다. 그 시기에는 본분 이행에서 그저 힘만 쓰고 일만 했을 뿐, 하나님 말씀을 읽으며 자신을 반성하는 걸 중요시하지 않았습니다. 패괴 성품을 드러내면서도 진리를 구해 해결하지 않았죠. 업무에 특별한 애로사항도 없고 도안도 어느 정도 그려 내고 있으니 이 정도면 본분을 잘 이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일은 점점 많아지고 저희 작업 속도는 너무 느리다 보니 일이 밀렸습니다. 순서가 밀려서 한 달이 지나도록 완성되지 못한 도안도 있었어요. 그걸 발견한 책임자가 저희의 하루 실제 작업량을 상세히 확인했고, 굉장히 비능률적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책임자는 본분을 이행하는 자세가 나태하고 해이하다며 저희를 심하게 책망했습니다. 일이 엄청나게 지체된 걸 보고도 태평하게 있으면서 윗선에 알리지도 않았다며, 이렇게 책임감 없이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면서 시간을 질질 끄는 건 복음 사역을 가로막는 거라고도 했습니다. 저는 책임자의 말을 듣고 놀랐습니다. ‘평소에 하는 일이 많아서 바쁘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따져보니까 별로 한 게 없네? 이러면 꼭 교회에 얹혀 밥이나 축내는 기생충인 것 같잖아? 이러다가는 교체되고 도태되겠어!’ 그 이후 책임자의 독촉 속에서 본분 이행 능률이 조금 높아졌지만, 저는 매일 완성해야 할 수많은 도안을 보면 머리가 아팠습니다. 특히 책임자가 사역 진도를 예전보다 훨씬 자주 체크했거든요. 때로는 일에 관해 세세한 것까지 물으면서 무슨 고충이 있는지 알아내려고 하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저희가 건성으로 한 부분이 발견되면 말투가 엄해졌죠. 저는 속으로 짜증을 냈습니다. ‘자기 일 아니라고 쉽게 말하네. 너무 높은 잣대를 들이대잖아! 도안 그리는 게 쉬운 줄 알아? 난 노력했다고. 몸은 하나인데 여기서 뭘 더 어쩌라는 거야!’ 저는 반발심을 품고 있었고, 고생하기도 싫고 대가를 치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진도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던 건 순전히 책임자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이었어요. 느리다고 책망과 훈계를 받을까 봐 그랬죠. 저는 남한테 억지로 끌려가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피곤하게 보냈습니다. 단번에 모든 도안을 다 완성하는 상상을 자주 했죠.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습니다. 급기야는 다른 자매들을 부러워하기도 했어요. 매일매일 끝도 없이 도안을 그려 내야 하는 저에 비해 다른 자매들 본분은 쉬워 보였거든요. 무미건조하고 힘들 뿐만 아니라 완성이 늦어지면 책망까지 받아야 하는 제 본분은 궂은일이라고 생각했죠. 그 시기의 저는 내적 상태에 문제가 있었던 탓에 언제나 졸렸어요. 저녁에 쉴 시간이 충분했는데도 낮까지 비몽사몽이었죠. 억지로 정신을 붙들어 매고 도안을 그려야 했어요. 나중에 알았는데, 저랑 협력하던 다른 자매 둘도 본분을 이행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더라고요. 한 명은 원칙을 잘 몰라서 사소한 문제에 집착하느라 진도를 못 맞추는 일이 잦았고, 다른 한 명은 본분을 언제나 건성으로 이행했어요. 그런데도 저는 가벼운 지적 한 번으로 끝이고 더는 문제 삼지 않았죠. 팀장이나 리더에게 알리지도 않았고요. 결국에는 팀장이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했지만, 그때는 이미 사역이 많이 지체된 뒤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리더가 갑작스럽게 저를 부르더니 이런 말을 했어요. “항상 본분을 대충 이행하고, 잔꾀 부리고, 책임감도 없고, 다른 사람이 재촉해야만 능률이 좀 오르더군요. 자매님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있지 않아요. 그간의 모습을 보고 자매님을 교체하기로 했어요. 하지만 여가 시간에는 계속 도안을 그려도 돼요. 단, 앞으로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자매님을 쓰지 않을 거예요.” 리더의 폭로 앞에서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간의 제 실상이 바로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저로서는 모든 게 너무 갑작스러웠습니다. 현실을 곧바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어요. 물론 제가 교회 사역을 지체시킨 건 사실이었습니다. 이미 실제적인 손해가 발생한 뒤였고요. 저는 몹시 괴로웠고, 통회하고 자책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 성품을 사람이 거스를 수 없다는 것도 느꼈어요.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보실 때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얼마나 훌륭한지, 얼마나 바쁘게 움직이는지를 보지 않으십니다. 진리와 본분을 대하는 그 사람의 태도를 보시죠. 저는 줄곧 불손한 태도로 본분을 건성으로 대충 대했고, 남이 재촉하고 압박할 때까지 늦장을 부렸습니다. 책망과 훈계를 받고도 잘못을 돌이킬 줄 몰랐으니 하나님께서는 진작부터 저를 혐오하셨을 것입니다. 교체된 것은 하나님의 채찍질과 징계였고, 제가 스스로 초래한 결과였습니다. 저는 순종하여 제대로 반성하고 회개하길 원했습니다. 지난날의 과오를 만회하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저도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려고 했는데, 어쩌다가 이 모양으로 이행했는지,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곤혹스러운 마음을 안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인식할 수 있도록 부디 저를 이끌어 달라고요.

어느 날 영 생활 중에 하나님 말씀을 읽었습니다. 『너희가 열심히 책임 있게 본분을 이행한다면, 5, 6년 안에 체험을 이야기해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고, 각 사역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희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려 하지 않고, 진리를 향해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 너희가 할 줄 모르는 것은 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 줄 것이니, 고민할 필요 없이 말을 잘 듣고 알려 준 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그저 이 정도의 책임만 지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그것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너희의 충성심은 어디에 있느냐? 너희의 충성심이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구나! 너희는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속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으면서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고, 근본적으로는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너희는 어떻게 해야 진리에 부합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실행하지 않는데, 이것은 문제가 심각하다. 이것은 두 눈 빤히 뜨고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것이고, 이런 사람은 절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할 때 최소한 갖춰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실행하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본분을 이행할 때 진리를 실행하지 못한다면 어떤 일에서 진리를 실행할 수 있겠느냐? 어떤 진리도 실행하지 않는다면 그런 자는 바로 불신파다.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나아가 진리를 실행하지도 않으며, 그저 하나님 집에서 허송세월만 보내는데, 너는 대체 무슨 목적이냐? 하나님 집을 양로원, 구제원으로 여기느냐? 그렇다면 잘못 생각했다. 하나님 집은 밥도둑이나 폐인을 먹여 살리는 곳이 아니다. 인성이 안 좋은 사람, 본분 이행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사람, 본분 이행에 부적합한 사람은 모두 제명해야 하고, 끝까지 진리를 거부하는 불신파는 모두 도태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본분을 이행할 때 진리를 깨닫고도 실행하지 못하고, 문제를 발견할 수 있으면서도 해결하지 않으며, 자신의 책임인 줄 알면서도 마음을 다하지 않는다. 네가 질 수 있는 책임도 지지 않는데, 네가 이행하는 본분이 무슨 가치가 있고 효과가 있겠느냐? 이렇게 하나님을 믿은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진리를 깨닫고 있어도 실행하지 못하고, 겪어야 할 고난도 겪지 못하니, 이런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사실상 밥을 얻어먹으려고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거지다. 그들은 하나님 집에 와서 조금만 일하면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어서 직장에 다니지 않고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거저먹는 일이 어디 있겠느냐? 하나님 집은 일없이 노는 사람을 먹여 살리지 않는다. 진리를 조금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들,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서 일관되게 건성으로 대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인정할 수 있겠느냐? 그런 사람들은 모두 불신파에 속하며 하나님이 보기에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양심과 이성이 있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되새기며 하나님께서 면전에서 저를 폭로하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바로 제 태도였습니다. 제가 본분을 이행할 때 어떻게 했는지 한 장면 한 장면 떠올랐습니다. 저는 책임자가 일에 별 관심을 두지 않으면 곧바로 그 틈을 타서 요령을 피웠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빈둥대지 않고 일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 능률이 극히 낮았습니다. 여유 시간에도 본분의 문제점이나 생명 진입에 관해 생각하지는 않고 호기심에 차서 뉴스나 봤습니다. 정작 해야 할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거예요. 사역 진도에 심각한 지장을 주고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책임자의 책망과 훈계로 본분 이행 능률이 조금 높아지긴 했지만, 사실은 교체되지 않기 위해 억지로 힘을 낸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책임자의 감독과 재촉에 큰 반발심과 불만을 품었습니다. 심지어는 제가 맡은 본분을 싫어하기까지 했어요. 고생만 하고 좋은 소리는 못 듣는 고역이라고 생각했죠. 동역자 자매들이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해서 사역이 지체되는 걸 뻔히 보면서도 귀찮아서 상관하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본분을 이행하는 데 전혀 진심이 아니었고, 진리를 조금도 실천하지 않았으며, 하나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육체의 편안함과 안일함만 추구했습니다. 교회에 얹혀 밥만 축내는 기생충이었던 거죠. 그런 제게 무슨 양심과 이성이 있겠어요! 제 행동이 떡으로 배만 불리려 하거나 오로지 복만 받으려는 불신파와 다를 게 무엇인가요? 제가 본분을 엉망으로 이행한 건 업무에 대해 잘 몰랐다거나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인간성이 없어도 너무 없었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았고, 육체의 편안함만 탐했던 탓이에요. 저는 애초에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반성하다가 하나님의 또 다른 말씀을 읽었어요. 『지금 하나님의 선민들은 모두 본분을 이행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본분 이행을 통해 사람들 중 일부는 온전케 하고 일부는 도태시킨다. 그러므로 본분 이행으로 온갖 사람들을 드러낸다고 하는 것이다. 갖가지 간사한 자, 불신파, 악인은 모두 본분 이행 중에 드러나 도태된다. 충심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고, 무슨 일을 하든 건성으로 대충 하는 사람은 간사한 사람이자 교활한 사람이며 불신파다. 본분 이행 과정에서 방해하고 교란하는 자는 악인이고 적그리스도다. … 본분 이행은 모든 사람을 드러낸다. 그 사람이 과연 정직한 사람인지, 간사한 사람인지는 본분을 이행해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난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도 본분 이행을 통해 드러난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진심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 집 사역을 지킬 수 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집 사역을 전혀 지키지 않고, 본분 이행에도 책임감이 없다. 눈치 빠른 사람은 보기만 해도 금방 알 수 있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도, 정직한 사람도 아니다. 이들은 모두 드러나 도태될 대상이다. 본분을 잘 이행하려면 책임감과 부담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사역을 잘 해낼 수 있다. 제일 두려운 상황은 사람에게 부담과 책임감이 없어서 능동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이며, 건성으로 대충 하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떠넘겨 문제가 계속 해결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역을 잘 해낼 수 있겠느냐? 그런 본분 이행이 성과를 거둘 수 있겠느냐? 어떤 일을 안배하든 하기 싫어하고, 다른 사람이 일하는 데 도움이 필요한 것을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명령하고 바짝 몰아붙여야만 어쩔 수 없이 조금 한다. 이것은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된 머슴이다! 머슴이 주인을 위해 일하면 하루 일하고 하루 품삯을 받고, 한 시간 일하면 한 시간 품삯을 받는다. 품삯을 받기만 기다리는 것이다. 일을 조금 해 놓고 주인이 못 봤을까 봐 걱정하고, 상을 받지 못할까 봐 걱정하며, 언제나 겉치레로만 일한다. 이는 충성심이 없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인생의 바른길을 가는 것이며, 반드시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이것은 마음과 영의 일이자, 생명의 일이다. 이방인이 부귀영화나 후세에 길이 남을 명성을 추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것은 두 가지 길이다. 이방인은 일을 할 때 어떻게 하면 적게 일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교묘한 수단으로 돈을 벌 수 있는지 생각하고, 온종일 어떻게 재산을 모을 것인지, 어떻게 부자가 될 것인지 궁리한다. 심지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 이것은 사악한 길이자 사탄의 길이며, 이방인이 가는 길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가는 길은 진리를 추구하고 생명을 얻는 길이며, 하나님을 따르고 진리를 얻는 길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이방인은 삯일꾼의 마음가짐으로 일하면서 돈을 법니다. 일은 적게 하되 돈은 많이 받고 싶어 하고, 심지어는 힘을 전혀 쓰지 않고 돈만 받을 궁리도 하죠. 누가 검사할 때는 눈가림을 위해 형식적으로 일하는 척하지만, 보는 사람이 없으면 몸을 사리고 요령을 피웁니다. 결과물이야 어떻게 되든지 간에 걱정하거나 애태우는 법이 없죠. 자기는 돈만 제때 받을 수 있으면 되니까요. 저 역시 마찬가지 아니었을까요? 압박감도 없고, 애로사항도 없고, 고생하면서 대가를 치를 필요도 없었기에 저는 제가 좋은 본분을 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마냥 빈둥거리지 않고 그날그날 약간의 완성품을 내놓기만 하면 도태될 걱정 없이 교회에서 계속 머무를 자격이 생긴다고, 그러다가 나중에 구원받을 수도 있으니 일거양득이라고 생각했죠. 제가 대놓고 게으름을 피운 건 아니었기에 남들은 제게서 별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사실 본분에 온 힘을 쏟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일하면 그걸로 만족했고, 나머지 시간에는 중요하지도 않은 메시지에 답장을 보내거나 쓸데없는 콘텐츠를 뒤지며 새로운 일이나 살폈습니다. 이래저래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내느라 사역 진도가 지체되는데도 저는 마치 남의 일인 양 여유를 부렸어요. 책임자에게 책망받고 폭로당한 뒤에야 체면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교체되지 않기 위해 무성의하게나마 일을 조금 더 했죠. 예전보다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자 반발심과 불만을 품었고, 본분을 간단하고 수월한 것으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겉으로 본분을 이행한 건 그저 책임자에게 결과물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고, 사실 제게는 본분이나 하나님에 대한 진심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작은 대가를 치르고 그걸 이용해 천국의 복을 맞바꾸려는 생각뿐이었어요. 본질적으로는 하나님과 거래를 하고 있었던 거죠. 저도 제가 이렇게 교활하고 간사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누리고 하나님 말씀의 공급을 받으면서도 본분을 이행할 때는 매사 편안함만 탐했습니다. 어떻게든 고생은 안 하려고 했고, 교회 사역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으며, 하나님 마음이 얼마나 다급할지도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조금도 없었어요. 그러고도 제가 본분을 이행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교회 사역을 그르치고 있었습니다. 밥이나 축내는 기회주의자였던 거예요. 반성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이기적이고 비열했던 것은 사탄 철학을 신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관리도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다.”, “술을 마주하고 노래하니, 인생이 길어 봐야 얼마나 될까?” 등과 같은 말들이 이미 제 본성이 되어 있었던 거죠. 저는 그러한 말에 따라 살아가면서 일할 때도 제 육적인 이익만을 챙겼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신을 아껴야 하고, 너무 고생하고 고되게 일할 것까지는 없다고, 애태우고 수고해 봤자 나만 손해인데 한가롭고 편안하게 지내면 얼마나 좋으냐고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그런 마음가짐으로 본분을 대충 하고 질질 끈 결과 교회 사역을 그르쳤고, 인격마저 끝장내고 말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사탄의 허튼소리에 따라 살면서 점점 이기적으로 변하고, 간사해지고, 타락했습니다. 인격과 존엄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어요. 저는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방에서 회사에 다닌다 쳐도 저처럼 노력은 하지 않고 요행만 바라는 자세로 일한다면 남들을 잠시는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간파당하고 말 것입니다. 하물며 저는 지금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잔머리 굴리고 남을 속이는 저를 진작부터 속속들이 감찰하고 계셨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게 아니라 그럭저럭 하루하루를 보내려는 것임을 꿰뚫어 보셨죠. 일할 시간에 항상 졸려서 비몽사몽이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느낌을 못 받은 이유를 뒤늦게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잔꾀를 부리는 모습에 하나님께서 혐오와 증오를 느끼시고 저를 향해 얼굴을 가리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으니 저는 지독하게 무감각해졌고, 아무리 실무를 잘 알고 경험이 풍부해도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후에 하나님 말씀 두 단락을 더 읽고 본분을 건성으로 하는 제 행위의 성질에 대해 조금 더 뚜렷하게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부탁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고, 이는 심각한 일이다! 하나님이 네게 맡긴 부탁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으며,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맡긴 부탁은 당연히 완수해야만 한다. 이는 사람이 이행해야 할 가장 큰 책임으로, 목숨만큼 중요한 일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의 부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가장 심각한 배반인 것이다. 그런 사람은 유다보다 더 비참한 자로, 반드시 저주받게 되어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부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최소한 하나님이 사람에게 부탁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높여 줌이자 특별한 은혜로, 가장 영광스러운 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너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심지어 목숨을 버릴지라도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해야 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의 본성을 어떻게 알아야 하는가> 중에서), 『한번은 누군가에게 일을 하나 맡긴 적이 있다. 일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는 아주 열심히 노트에 받아 적었다. 열심히 받아 적는 모습을 보니 사역에 부담이 있고, 진지하게 책임지는 태도를 갖춘 듯했다. 일을 맡긴 뒤 그의 소식을 기다리기 시작했지만, 보름이 훌쩍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다. 나중에 내가 먼저 그를 찾아 맡긴 일은 어떻게 됐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런, 깜빡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세요.” 너희는 이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드느냐? 그 사람은 고작 그런 태도로 일을 처리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신뢰할 만한 사람이 못 되는구나. 너는 당장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라. 다시는 너를 보고 싶지 않다!’ 나는 이런 심정이었다. 그러니 너희에게 한 가지 사실을 알려 주겠다. 너희는 절대 하나님의 말씀을 사기꾼의 거짓말과 연결 짓지 마라. 이는 하나님의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행동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말에 반드시 책임을 진다고 하며, 뱉은 말은 꼭 지킨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들은 대로 곧장 실행할 수 있느냐? 자기 일처럼 진지하게 실행에 옮길 수 있느냐? 하나님이 하는 말씀은 하나하나 아주 중요하며, 농담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말씀은 사람이 실행하고 집행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할 때 사람과 상의하겠느냐? 절대로 아니다. 너에게 선택지를 주는 것이겠느냐? 절대로 아니다. 만약 네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부탁이 하나의 명령임을, 사람이 반드시 그대로 해야 하고 실행해야 하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면, 의무감을 갖고 실행하며 집행해야 한다. 만약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이요, 그저 한번 해 본 말로 생각하고, 어떻게 하든 상관없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이렇게 대한다면 너는 너무나도 비이성적이고 사람으로 불릴 자격이 없다. 하나님은 영원히 너에게 어떤 말씀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요구 앞에서, 하나님의 분부와 부탁 앞에서 사람이 항상 자신의 선택이 있고 무성의한 태도를 보인다면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혐오할 것이다. 내가 직접 네게 분부하고 부탁한 일인데도 늘 너를 독촉하고 체크하게 하고, 걱정하고 질문하게 하며, 사사건건 점검하게 한다면, 너는 내쳐져야 할 사람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부록 3 노아와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였는가(2)>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요구하시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피조물로서 반드시 실행하고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일을 하려면 반드시 남의 독촉과 일깨움이 필요하고, 심지어는 남의 강요가 있어야만 마지못해 조금 일한다면, 이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속이고, 기만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혐오받고 증오받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들을 자격도 없고 교회에 남아있을 자격도 없습니다. 도태되어야 마땅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되새기면서 특히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덜컥 겁이 났습니다. “신뢰할 만한 사람이 못 되는구나. 너는 당장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라. 다시는 너를 보고 싶지 않다!” 과거에 본분을 이행하면서 범한 과오를 통회했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돌이켜 보니 본분을 대하는 제 태도는 하나님께서 폭로하셨듯이 너무나도 오만불손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나라 복음을 널리 전해야 할 중요한 시기입니다. 다른 형제자매들은 앞다투어 본분을 이행하는데, 저는 육적인 편안함만 즐기면서 본분은 대충 이행하고 늦장을 부렸습니다. 그저 힘쓰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능률은 추구하지 않아 본분 이행 성과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저는 본업을 제쳐 놓고 엉뚱한 짓을 하고, 빈둥거리고, 편안함만 탐하는 게으름뱅이였습니다! 교회에서 중요한 사역을 맡겨 줬으면 응당 온 힘을 쏟아 책임을 다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본분을 교회에 얹혀 밥을 축내는 데 이용할 밑천이자 조건으로 취급했습니다. 수고를 감내하지도, 대가를 치르지도 않았습니다. 사역에 최선을 다할 생각은 안 하고 책임자에게 보여 줄 결과물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무성의하게 일했습니다. 진도가 얼마나 지체되든, 하나님 마음이 얼마나 다급하든 저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제가 힘들지만 않으면 그만이었습니다. 본분을 소홀히 대했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내키는 대로 무성의하게 일하고, 시간을 끌 수 있을 때까지 끌었습니다. 제 마음속에 과연 하나님 자리가 있었을까요? 제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을까요? 그렇게 본분을 소홀히 대하는 것은 개만도 못한 태도 아닌가요? 적어도 개는 주인에게 충성합니다. 주인이 곁에 없을 때도 자기 역할에 충실하게 주인의 집을 지키죠. 제가 한 행동들을 돌아볼 때 확실히 제게는 본분을 계속 이행할 자격이 없었습니다. 저는 철저히 회개해서 지난날의 죄스러움을 만회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영 생활을 하다가 하나님 말씀을 읽고 앞으로 어떻게 본분을 이행하면 좋을지 길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분부를 받은 후 노아는 속으로 어떻게 생각했느냐? 이런 생각을 한 것이다. ‘오늘부터는 그 어떤 일보다도 방주 만드는 일이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야. 나는 창조주의 마음의 소리를 들었고, 창조주의 절박한 마음을 느꼈어. 그러니 시간을 끌지 말고, 되도록 빨리 그분이 얘기하시고 그분이 원하시는 방주를 만들어야 해.’ 노아의 태도는 무엇이었느냐? 감히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어떻게 이행했느냐? 미루지 않고 최선을 다해, 가급적 빨리 하나님이 얘기하고 분부한 모든 세부 사항대로 처리하고 이행했다. 조금도 건성으로 대하지 않았다. 어쨌든 노아는 창조주의 분부에 순종하는 태도를 보였다. 무심히 대하지 않고, 속으로 저항하지도 않고, 본체만체하지도 않았다. 세세한 내용을 하나하나 기억하는 동시에 창조주의 뜻을 깨닫는 데 마음을 기울였다. 하나님의 절박한 뜻을 깨닫는 순간 그는 더욱 서둘러서 하나님이 부탁한 그 일을 가급적 빨리 완성하기로 결정했다. 가급적 빨리란 어떤 것이냐? 예전 같으면 한 달이 걸리는 일을 시간을 최대한 단축해서 아마도 3~5일 더 일찍 완성하는 것이었고, 전혀 질질 끌지 않으며 뒤로 미루는 일도 없이 모든 진도를 최대한 밀고 나가는 것이었다. 물론 작업을 할 때는 최선을 다해 손실과 착오를 줄이고 최대한 가급적 다시 작업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한편, 모든 작업과 제작 공정을 제때 완성하고, 제때 잘 마무리하고, 품질을 보증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꾸물대지 않기’의 실제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이 ‘꾸물대지 않기’는 어떤 것을 전제로 도달한 것이냐? (하나님의 분부를 들은 것입니다.) 이런 전제와 배경 아래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노아가 ‘꾸물대지 않기’에 도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냐? 어떤 이들은 노아에게 참된 순종이 있어서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가 내면에 어떤 것을 갖추었기에 그런 참된 순종에 도달할 수 있었느냐? (하나님 마음을 헤아렸습니다.) 그렇다. 마음이 있다는 건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마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고, 마음이 없는 사람은 빈껍데기에 불과한 바보다. 그는 하나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른다. 그의 마음가짐은 이런 것이다. ‘하나님이 얼마나 조바심을 내든 내 알 바 아니야. 나는 내 스타일대로 할 거야. 어쨌든 놀거나 게으름 피우는 것도 아니잖아.’ 그는 이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뿐, 조금도 적극적이거나 능동적이지 않다. 그는 하나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 아니며, 하나님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에게 참된 믿음이 있겠느냐? 분명 없을 것이다. 노아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렸고, 참된 믿음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할 수 있었다. 그러니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이고 힘을 좀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서 최선을 다하고 충성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사람의 내면에 양심과 이성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할 태도이며, 노아는 이를 갖추었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부록 3 노아와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였는가(2)> 중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노아가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과 하나님 뜻을 헤아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부탁을 받아들인 노아는 방주 만들기를 마음속 최우선 순위에 올렸습니다. 그는 육적인 고단함과 갖가지 어려움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공업이 발달하지 않아 모든 걸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대에 거대한 방주를 만들자면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의 비웃음까지 마주해야 했죠. 노아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120년에 걸쳐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해 하나님 마음에 위안을 안겨 드렸습니다. 노아야말로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고 하나님께 신뢰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저는 재촉하고 감시하는 사람이 없다 싶으면 그 틈에 잔꾀를 부렸고, 육체의 편안함만 탐했습니다. 일을 질질 끌었고, 시간이 아무리 지체돼도 애태우지 않았습니다. 정말이지 저는 너무나도 인간성이 없었고, 하나님께 구원받을 자격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깨달았어요. 본분을 이행할 때는 방주를 만든 노아와 같은 실제 행동이 필요합니다. 분초를 다투며 일을 최대한 진행시켜야 하고 일의 능률을 높여야 합니다. 재촉하거나 체크하는 사람이 없어도 진지하게 책임을 다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양심이 있고 인간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후로 저는 시간을 계획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도안을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다른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평소에 제 내적 상태를 반성하는 일도 중요시했습니다. 매일 같이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지만, 마음은 편안했습니다. 본분 이행에도 예전보다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물론, 가끔 작업이 거의 다 끝난 걸 보면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질 때도 있었고, 시간 안배를 제대로 못 해서 도안 완성이 늦어질 때면 자신과 타협하고 싶어지기도 했습니다. ‘어차피 지금은 팀에 속해 있는 것도 아니고 진도를 빨리 빼라고 재촉하는 사람도 없잖아. 게다가 나한테는 다른 본분도 있어. 도안 완성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괜찮을 거야.’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제 내적 상태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해결을 위해 서둘러 진리를 구했어요. 그러면서 하나님 말씀을 읽었습니다.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사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다하고 정직한 태도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한다면 그 태도는 훨씬 더 올바른 것 아니겠느냐? 어떻게 해야 그런 태도를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겠느냐? ‘마음과 정직함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이 말이 네 실제가 되도록 해야 한다. 네가 대충 넘어가고 싶을 때, 꾀를 부리거나 게으름 피우고 싶을 때, 마음이 분산되거나 놀고 싶을 때, ‘이렇게 하면 신뢰를 줄 수 있을까? 이렇게 하는 게 마음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일까? 이렇게 하는 게 충성심이 없는 것 아닐까? 하나님의 부탁을 저버리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반성해야 한다. 자신이 늘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하고, 본분에 충성심도 없어서 하나님 마음을 상하게 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너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당시에 속으로는 이 일이 좀 문제라고 느끼긴 했지만 진지하게 문제로 대하지 않고 얼렁뚱땅 넘겼어. 그리고 이제 와서야 그게 확실히 건성으로 대충 하고,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임을 알겠어. 난 정말 양심도 이성도 없어!”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했다. 그러면 돌이켜야 한다! 과거에는 그릇된 태도로 본분을 이행했다. 본분을 그저 추가적인 일로 생각하며 대충 이행하고, 마음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 다시 이렇게 건성으로 본분을 대한다면 하나님께 징계와 채찍질을 내려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본분을 이행할 때 이런 의지를 지니고 있어야 진실로 회개할 수 있다. 양심이 편안해지고, 본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야 돌이킨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늘 하나님 말씀을 읽고 진리를 묵상해야 실행할 길이 생긴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나니 실행 길이 더 확실하게 보였습니다. 본분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맡기신 부탁입니다. 누가 독촉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감찰을 받으며 마음과 힘을 다해 이행해야 합니다. 저처럼 남이 재촉할 때까지 버티다가 마지못해 일하는 건 충성심 없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은 물론이고 사람 눈에도 꼴불견이죠. 계속 그렇게 살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남이 재촉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본분을 잘 이행할 줄 알아야 했습니다. 양쪽 일이 모두 바쁘고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경우라면, 미리 시간 계획을 잘 세우고 마음과 힘을 다해 일함으로써 본분을 건성으로 이행하는 상황을 피하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훈련하고 실천하면서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본분 이행의 성과가 나타났습니다. 비록 예전보다 많은 대가를 치르고 에너지를 소모했지만, 힘들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안정되고 평화로워졌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닥쳐도 진리를 구함으로써 수확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업무 방면으로든, 생명 진입 방면으로든 저는 조금 성장했습니다.

2021년 6월의 어느 날, 리더가 저를 부르더니 원래 일하던 팀으로 돌아가 본분을 이행하도록 안배했습니다. 저는 너무 감격해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교체되면서 제가 너무나 나태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런 저를 증오하게 됐습니다. 또한, 본분 이행의 기회를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웠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어느 정도 생겼습니다. 가끔 게으름을 피우고 싶어질 때는 제 마음을 감찰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제가 본분을 대충 이행하거나 잔꾀를 부리면 즉각 저를 드러내고, 벌하고, 징계해 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실행했더니 잔꾀를 부리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고 본분 이행의 성과도 좋아졌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는 제 마음도 뿌듯했고요. 나중에 리더도 저한테 본분을 이행하는 태도가 예전보다 착실해졌다고 하더라고요. 저한테는 굉장히 감동적인 말이었고 큰 격려가 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아직 부족하고,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채찍질과 징계에 감사드립니다. 그 덕분에 본분을 이행하는 제 태도가 바뀔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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