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본분에 소극적이고 태만했던 진짜 이유
2021년 어느 날, 리더는 저에게 몇 개 그룹의 예배를 책임지도록 안배하였습니다. 한동안 훈련을 거친 후, 저는 원칙들을 어느 정도 이해했고, 사람의 내적 상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분별하게 되었습니다. 그 본분을 이행하면서 많은 진리를 이해하고 빠르게 성장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후 사무 집사가 경찰에 쫓기게 되면서 더 이상 형제자매들과 연락할 수 없게 되자, 리더는 임시로 저에게 사무 사역을 맡겼습니다. 그 기간 형제자매들이 잇따라 체포되면서 책을 옮기거나, 새로운 섬김의 집을 찾아 형제자매들을 정착시키는 등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저는 거의 매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이런 일들을 처리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도 모르게 감정과 불만이 생겨났습니다. 사무 사역은 밖을 쏘다니며 심부름만 하는 일이지, 진리는 얻지 못하는 일인 것 같았습니다. ‘이런 일만 계속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전 거부감이 들었고 사무 사역을 이행하기 싫어졌습니다.
섬김의 집에 물건을 전달하러 갔다가 형제자매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속상했던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심지어 리더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어째서 내게 사무 사역을 안배한 거야? 당신들은 다 같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진리를 교제하니, 수확도 많고 성장도 빠르겠지. 그런데 나는? 이렇게 심부름만 하면서 무슨 진리를 얻을 수 있겠어? 진리를 얻지 못하면 생명이 없고 구원을 받을 수도 없어. 이건 손해 보는 거 아냐?’ 생각할수록 마음이 괴롭고 본분을 이행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어느 자매의 집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서둘러 그 집에 보관되어 있던 책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사무적인 일들은 어쩜 이렇게 많을까?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는데도 진리를 얻지 못하면, 괜히 헛수고만 하는 거 아냐?’ 이런 생각이 들자 거부감이 들었지만, 워낙 상황이 급한지라 일단 서적들을 옮기는 일을 도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의 일이 끝나자마자 책을 보관해 두었던 다른 집에서 또 일이 터졌습니다. 책을 옮기면서 저는 또다시 일일이 책들을 정리하고 포장하는 작업까지 해야 했습니다. 하루 종일 그 일을 하다 보니 마음속은 불만으로 가득 찼습니다. 기진맥진해서 집에 돌아와 보니, 때마침 리더와 양육 집사가 사역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리더가 제게 물었습니다. “자매님, 다른 자매를 새로운 섬김의 집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 아닌가요? 그게 이렇게 하루 종일 걸릴 일이에요?”이 말을 들은 저는 너무 억울했습니다. ‘두 분이 함께 진리와 원칙을 교제하는 동안 저는 계속 밖에서 뛰어다녔다고요. 사무적인 일을 해 봤자 뭘 얻을 수 있을까?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결국 힘쓰는 사람밖에 더 돼? 실내에서 하나님 말씀을 보고, 모두와 예배드리고 교제를 나누면서 사역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몸도 편하고 진리도 얻을 수 있고, 나중에 구원도 받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저는 생각할수록 괴로웠고, 마음이 매우 소극적이 되었습니다. 온몸이 피곤하고 심지어 불평불만까지 생겨났습니다. ‘왜 나한테 사무 사역을 맡긴 거야? 하나님은 나보고 힘만 쓰라고 이러시는 거야? 이대로 가다간 심부름꾼만 되겠지. 내가 뭘 얻을 수 있겠어?’
다음 날 역시 처리해야 할 사무 사역이 너무 많아서 불평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리더는 저의 내적 상태가 옳지 않은 걸 발견하고, 저에게 반성하며 공과를 배우라고 조언했습니다. 그제야 조금 의식이 되었습니다. 사무 사역을 담당하던 그 기간, 저는 겉으론 사역을 이행했지만 속으론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늘 불만스러운 감정을 품은 채 본분을 이리저리 따졌고, 심지어 하나님께서 저를 불공평하게 대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 내적 상태가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더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을 수 없었고, 진리를 구하며 하나님께 회개해야 했습니다.
그 후,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간에, 실행해야 하는 진리와 알아야 하는 원칙은 모두 동일하다. 너희가 리더 일꾼이 되든, 접대해 요리를 하든, 아니면 바깥 일이나 힘을 들여 일을 하든, 이행하는 본분은 각기 다르더라도 따라야 하는 진리 원칙은 모두 같다. 바로 진리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 원칙을 구해야 제대로 본분을 이행할 수 있다> 중에서), 『구원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꿰뚫어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혹자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받을 거라고 생각하고, 혹자는 영적 도리를 많이 이해하면 구원받을 거라고 생각하며, 또 혹자는 리더 일꾼이 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전부 사람의 관념과 상상이다. 핵심은 구원받는 것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구원받는 것은 주로 죄악과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진실로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죄악에서 벗어나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무엇을 갖춰야겠느냐? 진리를 갖춰야 한다. 사람이 진리를 얻으려면 수많은 하나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하고, 하나님 말씀을 체험하고 실행할 줄 알아야 한다. 진리를 깨닫고 실제에 진입하는 것이야말로 구원에 이른 것이다.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을 얼마나 오래 믿었는지, 얼마나 많은 지식을 쌓았는지, 은사와 재능이 있는지, 얼마나 고생했는지 등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구원받는 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오직 진리를 얻었는지 여부이다. 그렇다면 지금 너는 마음속으로 얼마나 많은 진리를 깨달았느냐? 하나님 말씀 중 네 생명이 된 것은 몇 구절이나 되느냐? 하나님의 모든 요구 중 어떤 것에 진입했느냐? 하나님을 그렇게 오래 믿었는데, 하나님 말씀 실제에 얼마나 진입했느냐? 만약 네가 모르거나 하나님 말씀 실제 중 그 어떤 것에도 진입하지 못했다면 내가 솔직히 알려 주겠다. 네가 구원받을 희망은 없으며, 너는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기초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교회에서 양육 사역을 하든, 사무 사역을 하든 이건 다 우리가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본분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본분을 이행하면서 진리를 추구하고 생명 진입이 있길 바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본분이 서로 달라도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 중 실행해야 하는 진리 원칙은 같습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패괴 성품이 표출되게 마련입니다. 다만 패괴가 표출될 때 진리를 구하고 회개하고 변화하면 생명이 성장할 것이고, 진리를 얻어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이 닥쳤을 때 공과를 배우지 않고, 진리를 실행하고 성품 변화를 추구하는 것과 관련이 없는 행동만 한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건 그저 힘만 쓰는 것으로, 결코 진리를 얻을 수 없거니와, 하나님의 구원은 더더욱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무 사역을 하면 진리를 얻을 수 없고, 아무리 사역을 많이 해도 기껏해야 힘쓰는 자가 될 뿐이라고 잘못 생각했습니다. 리더나 팀장이 되어 진리를 교제하고 형제자매를 붙들어주며, 매일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하나님 말씀을 교제해야, 생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고, 그래야 진리를 얻어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이런 관점은 정말 황당무계하지 않습니까? 사실,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자신에게 닥친 일에서 공과를 배우고, 나중에는 실제적인 수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제가 본 체험 간증 영상 속 몇몇 형제자매들 역시 사무 사역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들은 후 그것을 실행하는 데 집중하였고, 패괴 성품이 표출되면 즉시 진리를 구해 해결하였습니다. 체험을 한 후에는 얼마간 변화하게 되어 자신의 진실한 체험 간증을 얘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리더 일꾼들은 평소 다른 사람에게 자주 하나님 말씀을 읽어주며 남들의 문제는 해결해 주면서 자신은 실행에 관심을 두지 않고 글귀와 도리만 말하다 결국 드러나 도태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실제적인 사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행하는 본분의 종류에 따라 사람을 차별 대우하지 않으십니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무엇을 행하든 그것은 힘만 쓰는 것이고, 진리를 추구하면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수확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사람을 불공평하게 대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저는 그릇되고 터무니없는 관점으로 살며, 본분을 까다롭게 따졌습니다. 사무 사역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채 그런 사역을 이행하길 꺼렸고, 리더에 대해서도 편견을 가지고 그들이 제게 사무 사역을 안배한 것을 원망했습니다. 전 분명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패괴를 표출하였는데도 반성하고 해결할 생각은 안 하고, 소극적이 되어 적반하장으로 나오며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하나님이 저를 힘만 쓰게 만들려 이러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오해한 것 아닙니까? 이런 실제적인 환경에서 공과는 배우지 않고 억지를 부려댔으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어떤 진리도 얻지 못하고 명실상부한 힘만 쓰는 자가 될 터였습니다. 저는 제게 맡겨진 사무 사역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고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제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형제자매들의 문제를 해결하겠습니까? 그러면서 늘 양육 사역을 맡고 싶어 했다니, 참 비이성적이지 않습니까? 전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이 최종적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는 어떤 본분을 이행했는지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깨닫고 얻었는지, 최종적으로 자기 장래와 운명을 고려치 않고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배치에 따르며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 될 수 있는지에 근거한다. 하나님은 공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이며, 이 기준으로 모든 사람을 판단한다. 이 기준은 영원히 변치 않으니 너는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이 기준을 마음에 굳게 새기고 어떤 경우에도 다른 방법을 찾거나 다른 비현실적인 것을 추구하려 해서는 안 된다. 구원받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기준은 영원히 변치 않으며, 누구에게나 동일하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사무 사역을 맡든, 리더 역할을 맡든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를 추구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환경 가운데에서 진리를 구할 수 있고, 자신을 인식할 수 있고, 회개하고 변화하는 사람이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내용들을 인식하고 나자, 마음이 한결 후련해졌습니다.
그 후 저는 왜 사무 사역이 주어졌을 때 마음이 괴롭고 그 일을 하기 싫었던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인류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가장 슬픈 일은 하나님의 사역에서 자기 경영을 하면서 하나님의 경영을 등한시한다는 사실이고, 가장 크게 실패한 일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꿈꾸는 종착지를 구상하고, 어떻게 해야 가장 큰 복과 가장 좋은 종착지를 얻을 수 있을지 계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설령 모든 사람이 비참하고 가증스럽고 가련한 자신의 모습을 알았다 해도, 자신의 꿈과 소망을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고 더 이상 스스로를 위해 계산하지 않을 사람이 또 누가 있겠느냐? 하나님께 필요한 것은 그의 경영을 완성하는 데 긴밀하게 협력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 몸과 마음을 쏟아붓는 사람이다. 날마다 하나님께 두 손을 내밀며 구걸하는 사람은 필요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얼마간 헌신하고 빚을 받아 내려는 사람은 더더욱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은 얼마간 바친 뒤 그것을 밑천으로 삼아 기대 살아가려는 사람을 증오하고,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는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늘에 올라가 복받는 일에만 관심 있는 냉혈 인간을 증오한다. 하나님이 구원 사역을 하는 기회를 틈타 제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은 더더욱 증오한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이 경영 사역을 통해 이루려는 것이 무엇인지,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에 아무런 관심도 없으며,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사역하는 틈을 타 복을 받을 수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고,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은 채 자기 앞날과 운명에만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 반감을 품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는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조금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경영 사역 밖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를 기억하지도, 칭찬하지도 않으며, 더욱이 좋아하지도 않는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부록 3 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제 내적 상태를 폭로하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사무적인 일이 닥치자 바로 거부감을 느꼈던 이유는 본분을 이행하는 제 속셈이 잘못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오직 복을 받기 위해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항상 마음속으로 이익과 득실을 따지며, 제가 복을 받는 데에 이로운 것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헌신하고 대가를 치렀지만, 저에게 사무 사역이 안배되어 힘만 쓰는 자가 될 것 같자 큰 손해를 본 느낌에 얼굴을 구기고 불평을 늘어놓았고, 일을 해도 속에는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사탄의 생존 법칙에 따라 살았습니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잇속만 차리고 손해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익이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와 같은 법칙들이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이익’이란 단어가 앞섰고, 하나님을 믿으며 헌신하는 것조차 실은 하나님과 거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시종일관 고민한 건 어떻게 하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을지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열악한 상황에서도 제가 먼저 고려한 것은 형제자매와 교회 물품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가능한 빨리 집을 옮기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일을 하는 것이 가치가 있는지, 저의 종착지에 유리한 일인지를 우선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저는 사탄에게 패괴되어 이기적이고 비열하고, 양심과 이성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오직 이익만 챙기려 할 뿐 마음이 냉정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 역시 교회의 일원으로, 교회에 어떤 사역이 필요하다면 저는 군말 없이 협력하며 교회의 이익을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무슨 일을 하든 목적성이 강해서 열심히 일해도 복을 받지 못하면 큰 손해라고 생각했습니다. 머릿속에는 온통 어떻게 하면 복을 받고 이익을 얻을까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실제 사건을 통해 드러나자, 그제야 저는 이렇게 오랜 세월 하나님을 믿으며 헌신한 배후에는 복을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타인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도 보답을 받는데, 그리스도는 너희 가운데서 이렇게까지 사역하면서도 사람들의 사랑과 순종, 보상도 받지 못한다. 이는 마음이 미어지고 눈물이 날 일이 아니겠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그리스도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는 사람은 분명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 앞에서 저는 더욱 후회가 되고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 많은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그 많은 하나님의 양육과 공급을 누렸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며 성실히 본분을 이행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받으려고만 하고, 끝없이 욕심을 부렸습니다. 저에게 좋은 종착지를 주셔야 한다고 하나님께 손을 내밀며 축복을 요구했습니다. 이것을 얻지 못하면 억지를 부리고,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저의 양심과 이성이 무감각해져 하나님을 슬프게 해드렸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죄송한 마음과 자책감이 밀려오고, 너무나 양심이 없고 인성이 없는 스스로가 미웠습니다.
그 후,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집에서는 고된 일이든 피곤한 일이든, 또 사람이 좋아하는 일이든 싫어하는 일이든, 네게 안배된 것이 바로 네 본분이다. 네가 그것을 하나님이 네게 맡긴 부탁이자 하나님이 네게 부여한 책임으로 받아들인다면, 너는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역과 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네가 행하는 것과 이행하는 본분은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역과 관련이 있는데, 네가 하나님이 네게 맡긴 부탁을 성심성의를 다해 받아들인다면, 하나님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하나님은 너를 하나님 집의 일원으로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복이겠느냐, 화이겠느냐? (복입니다.) 이것은 커다란 복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합격한 본분 이행이란 어떤 것인가>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저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길 원하는 한, 하나님은 기회를 주십니다. 교회에서 어떤 사역을 이행하든지 간에, 설령 그것이 보잘것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모두 의미가 있는 일이므로 마땅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음속으로 자신의 본분과 책임이라고 여기고,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선 진리를 추구하는 데 집중하여,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본분을 잘 이행하면 구원받을 기회가 주어집니다. 본분을 거래로 여기거나 복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자본으로 여기면, 추구하는 관점과 걷는 길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바쁘게 본분을 이행해도 진리 진입이 있을 수 없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며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하나님이 높여 주신 것으로 엄청난 복입니다. 제가 까다롭게 굴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마땅히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피조물인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복 속에 있으면서도 복을 몰랐고, 진리를 추구할 수 있는 본본 이행의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대신 본분을 힘써 일하는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과 거래하는 협상 카드로 여기며,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했습니다. 저는 정말 눈이 멀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저는 더 이상 사무 사역에 거부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이고 순종하여 본분을 잘 이행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또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모두 본분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진리 추구를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며, 조금씩 진리를 깨닫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 다음 진리를 실행하여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사탄의 패괴 성품의 결박과 통제에서 벗어나 진리 실제가 있는 사람, 정상 인성을 지닌 사람이 된다. 정상 인성을 지닌 사람만이 본분을 이행하고 일을 할 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하나님도 만족할 수 있다. 사람은 본분 이행이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비로소 합당한 자격을 갖춘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지금 본분을 이행하며 바치고 헌신하는 것이 너희가 배운 여러 가지 기능과 문화 지식이긴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통해 본분을 이행하는 동안 진리를 깨닫게 되고, 본분을 이행하는 게 무엇인지, 하나님 앞에 오는 게 어떤 것인지,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또한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고 자신을 저버려 교만하고 독선적이지 않으며 진리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다. 이래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얻으려면 주변의 사람과 일, 사물로부터 공과를 배워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사람의 성품이 변화하고 진리를 얻는 길일 뿐 복과 이익을 얻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진리를 추구하고 성품의 변화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것이 바로 올바른 길입니다. 이전에 제가 사무 사역을 하면서 별다른 수확을 거두지 못했던 이유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생명 진입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지, 제가 어떤 본분을 이행했느냐 와는 아무 관계가 없었습니다. 저는 사무적인 일들을 힘을 들이는 일로 여겼고, 패괴 성품을 표출했으면서도 진리를 구해 해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본분을 이행함에 있어 소극적이고 태만해졌으니, 일을 해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고, 결국 성품에도 아무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구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까지 깨닫고 나자, 실행의 길이 생겨났습니다. 사무 사역을 하든, 형제자매들을 양육하고 붙들어 주는 일을 하든 저는 더 이상 그것을 하나의 일로 여기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진리 원칙을 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패괴 성품이 표출되면 스스로를 반성하는 것을 중시하며, 진리를 구해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실행하자, 저도 모르는 사이 저에 대한 인식이 얼마간 생겨났고, 진리에 대한 인식도 조금 더 실제적이 되었습니다.
한동안, 어느 자매가 무슨 일을 안배 하든 항상 저를 불러 함께하려 한 적이 있습니다. 그녀가 처리할 수 있는 간단한 일도 저를 불러 함께하려 했습니다. 그때 저는 마음가짐을 바르게 했습니다. 더 이상 사무 사역이 많다며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 자매와 함께하는 과정 중, 저는 그녀가 본분에 책임감이 없고, 육적인 편안함을 탐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점을 지적해 주고 싶었지만, 그 자매가 저를 보고 같이 지내기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교제와 지적 대신 그녀의 육적인 부분을 배려해 주며 속으로는 제가 일을 좀 더 하자고 생각하였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스스로를 반성하고서야, 제가 무골호인처럼 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겉으로는 사리에 밝고 이해심이 많은 척 굴었지만, 사실은 자매에게 저에 대한 좋은 인상을 남기려는 저만의 속셈이 있었습니다. 이러는 것은 그 자매의 생명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고, 자매가 항상 저에게 의지하게 만듭니다. 이것을 알게 된 저는 자매와 마음을 활짝 열고 이야기를 나누며 저의 패괴에 대해 털어놓고, 또 자매에게 있는 문제점도 지적해 주었습니다. 그 후, 자매의 내적 상태가 다소 바뀌어 그녀는 더 이상 저에게 의존하려 들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일들을 체험하면서 어떤 방면의 본분을 이행하더라도 모두 진리를 깨닫고 진리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고, 하나님은 진정 사람을 불공평하게 대하지 않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동시에, 매일 어떤 사역을 이행하든, 어떤 환경이 닥치든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