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책망으로 얻은 것

이탈리아 비올라(viola)

저는 교회에서 영상 사역을 맡고 있습니다. 할 일이 많아서 항상 신경이 날카로워요. 사역 과정에서 생기는 온갖 문제들을 해결하랴, 형제자매들 사역 체크하랴, 한시도 긴장을 늦출 새가 없죠. 그렇게 지내는 와중에 제니퍼(Jennifer) 자매가 저희 영상에 문제가 있다며 자꾸 지적하는 거예요. 저희가 본분을 이행하는 데 마음을 기울이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라면서요. 저는 그런 메시지를 보면서 반발심이 들었습니다. ‘실수를 줄이려고 최선을 다했단 말이야. 이 정도 하는 것만도 훌륭하잖아. 왜 시시콜콜한 문제를 걸고넘어져서 일에 지장을 주는 거야?’ 저는 지적을 그냥 흘려들었습니다. 제니퍼 자매가 쓸데없는 트집으로 사역 진도에 지장을 준다고만 생각했거든요. 그러다가 하루는 제니퍼 자매를 불러서 이야기했어요. 사소한 문제를 너무 따지면 사역 진도가 늦어진다고 원칙을 내세우면서 말했죠. 그런데 말이 끝나자마자 제니퍼 자매가 매섭게 쏘아붙이는 거예요. “지금 한 측면의 원칙만 내세우는데, 나도 한마디 할게요. 원칙을 방패로 삼으면 책임감 없이 대충 본분을 이행해도 괜찮을 거라고 착각하지 마세요. 원칙과 불성실함은 별개라, 함께 논하면 안 되죠.” 저는 아무 대꾸도 안 했지만, 속으로는 너무 화가 났습니다. ‘내가 책임감 없이 본분을 대충 이행한다는 거야? 쓸데없는 걸 따지면서 사역 진도에 영향을 주는 사람은 자기면서 적반하장이네. 사소한 흠이나 문제가 좀 있으면 어때서? 영상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잖아. 지금 이 정도면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라고. 우리가 할 사역이 얼마나 많은지 알지도 못하면서 하여튼 별것도 아닌 문제로 트집만 잡지. 게다가 이렇게 나를 책망하기까지 하고. 정말 교만하기 짝이 없어!’ 그때부터는 제니퍼 자매와 말도 섞기 싫었어요. 제니퍼 자매가 문제를 제기하면 반발심부터 들었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불만을 품었죠.

그 이후로도 제니퍼 자매는 거의 보름에 한 번씩 꼬박꼬박 영상의 문제점을 정리해서 저희한테 알렸어요. 그러다가 한번은 리더한테까지 보고했죠. 그 이야기를 들은 저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어요. ‘우리가 실수한 부분이 있다고 쳐. 하지만 매달 소화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사소한 부분은 한 번씩 놓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그걸 꼭 리더한테까지 알려야겠어? 별것도 아닌 문제까지 하나하나 물고 늘어지다니, 우리한테 요구가 너무 높잖아! 우리 형제자매들이 무슨 기계라도 되는 줄 알아? 실수 한 번을 안 하게?’ 생각할수록 속이 터졌어요. 리더가 교제할 게 있다고 저를 찾았을 때, 저는 곧장 화살을 제니퍼 자매에게로 돌렸어요. 제니퍼 자매는 너무 교만하다고, 문제가 생기면 자기 자신은 인식하지 않고 남 탓만 한다고 했죠. 자신을 전혀 인식하지 않는 저를 보더니 리더가 그러더군요. 제니퍼 자매를 그렇게 대하는 건 옳지 않으니 반성하고 공과를 배우라고요. 하지만 제 귀에는 리더의 지적도 안 들어왔어요. 제니퍼 자매가 지적한 문제점도 해결하지 않고 시간만 끌었죠. 비슷한 문제가 또 생기지 않도록 고심해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어렴풋이 제 내적 상태가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저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저 자신을 알고 공과를 배우도록 부디 이끌어 달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영 생활을 하다가 하나님 말씀을 읽고 저 자신의 내적 상태에 대해 조금 알게 됐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시비 가리기를 좋아하는 것이란, 어떤 일이든 시비와 옳고 그름을 확실히 판단하려 하고, 상황을 분명히 해 두거나 누구의 잘잘못인지 제대로 가리지 않으면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고 매달리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시비를 가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겠느냐? 그것이 진리 실행과 관계가 있겠느냐? (관계없습니다.) 어째서 관계가 없다고 하겠느냐? 시비를 가리는 것은 진리 원칙을 견지하는 것도, 진리 원칙에 관해 토론하고 교제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누구의 잘잘못인지, 누구 말에 일리가 있고 누구 말에는 일리가 없는지, 누구의 이유가 충분하고 누구의 이유는 충분하지 않은지, 누가 말하는 도리가 더 깊은지 등등을 따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시련을 줄 때, 사람은 늘 하나님과 이치를 따지며, 이러저러한 이유와 원인을 댄다. 하나님이 너와 그런 것들을 논하겠느냐? 하나님이 네게 그 당시의 상황이 어땠는지 물어보겠느냐? 하나님이 너의 원인이나 이유를 물어보겠느냐?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묻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저 시련을 주었을 때 네가 순종하는 태도를 취했는지, 아니면 반항하는 태도를 취했는지 물어볼 뿐이다. 하나님은 네가 과연 진리를 깨달았는지, 순종했는지만 물어본다. 하나님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것을 물어본다. 하나님은 네게 순종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묻지 않으며, 네 이유가 충분한지도 보지 않는다. 하나님은 절대 그러한 것들을 보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저 네가 순종했는지를 볼 뿐이다. 네가 살아온 환경이나 그 당시에 네가 처한 상황이 어땠는지와는 무관하게, 하나님은 네게 순종하는 마음이 있었는지, 네가 순종하는 태도를 보였는지 감찰할 뿐이다. 하나님은 너와 시비를 따지지 않으며, 네 이유가 무엇인지 관심을 갖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오직 네가 진실로 순종했는지에만 관심이 있다. 하나님은 네게 그 한마디만 물어볼 뿐이다. 이것이 진리 원칙이 아니냐? 시비를 가리고 설전을 벌이기를 좋아하는 부류에게 진리 원칙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진리 원칙이 없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그들이 진리 원칙에 대해 집중했겠느냐? 추구했겠느냐? 구해 보았겠느냐? 그들은 집중하지도 추구하지도 구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진리 원칙이 아예 없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의 관념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시비와 옳고 그름, 핑계와 이유, 궤변과 논쟁뿐이며, 그러고 나서는 서로 공격하고 판단하고 정죄한다. 이런 부류는 시비를 논하기 좋아하고, 판단하고 정죄하기 좋아하는 성품을 지니고 있다. 이런 부류는 진리를 전혀 사랑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하나님과 이치를 따지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판단하고 대적하니, 결국 징벌받는 결말을 맞이할 뿐이다.(<말씀ㆍ5권 리더 일꾼의 직책ㆍ리더 일꾼의 직책(15)> 중에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말씀에는 잘잘못을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의 행태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어요. 그런 사람은 문제에 부닥쳤을 때 일단 전후 사정을 살핍니다.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는지, 누가 댄 이유가 더 설득력 있는지 따져본 다음 자기가 유리한 것 같으면 변명을 시작합니다. 어떻게든 남에게서 잘못을 찾으려 하면서 불복하고, 반발하고, 심지어 상대를 공격하죠. 닥친 일에서 진리를 구해 자기 문제점을 반성하고 인식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환경에 전혀 순종하지 않는 거예요. 생각해 보니 제 행동도 그랬습니다. 제니퍼 자매가 저희 사역의 문제점을 지적했을 때 저는 문제를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변명할 구실을 찾아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했어요. 일이 많은데 이 정도 하는 것만도 훌륭하다고, 사소한 문제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죠. 게다가 이런 문제를 자꾸 지적하는 걸 막으려고 원칙을 내세우면서 제니퍼 자매의 의견을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그냥 놔둬도 될 사소한 문제일 뿐인데, 제니퍼 자매가 우리한테 요구가 너무 높다고 여겼거든요. 책임감 없이 본분을 대충 이행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기는커녕 생트집을 잡는다고 제니퍼 자매에게 편견을 가졌어요. 말을 다소 딱딱하게 해서 저를 민망하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제니퍼 자매를 교만한 사람으로 규정했죠. 리더 앞에서 제니퍼 자매를 교만하다고 평가하면서 리더도 색안경을 끼고 제 편에 서 주길 바랐고요. 리더가 저를 도우려고 잘못을 지적했을 때도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어요. 저는 제가 마주한 일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지도 않았고, 제 잘못을 반성하지도 않았어요. 오히려 이치를 논하고, 변명하고, 시비를 따졌죠. 드러낸 것은 전부 혈기뿐이었는데, 순종의 태도는 전혀 없었던 거죠. 이런 저를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불신파와 똑같았죠.

그 후에 저는 또 다른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진리를 구하고 실행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진리와 관련이 있는 일은 사람의 인품과 관련이 있으며, 일하는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 사람이 원칙 없이 일을 하는 이유는 대부분 원칙을 알지 못해서이다. 하지만 또 많은 경우에 사람이 원칙을 알지 못하는 동시에 원칙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조금 알고 있다고 해도 더 나은 방향으로 하려 하지 않으며, 마음속에 그러한 기준도, 요구도 없다. 그래서 일을 제대로 하기가 무척 어렵고, 진리에 부합하여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가 매우 힘든 것이다. 사람이 본분 이행에 합격할 수 있는지 여부의 핵심은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 사람이 진리를 추구하는 자인지,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는지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긍정적인 사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진리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런 사람은 설령 본분을 이행한다고 할지라도 힘만 쓰는 것이다. 네가 진리를 깨달았든 그렇지 않든, 원칙을 파악할 수 있든 없든, 양심에 기대 본분을 이행한다면 최소한 보통의 성과는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통과할 수 있다. 거기에서 나아가 진리를 구해 진리의 원칙대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요구에 완전히 도달하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할 수 있다. 하나님의 요구는 무엇이더냐? (마음과 힘을 다해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입니다.) 마음과 힘을 다한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겠느냐? 온 신경을 본분 이행에 쏟는 것을 가리켜 마음을 다한다고 한다. 또한, 모든 힘을 본분 이행에 쏟는 것을 가리켜 힘을 다한다고 한다. 마음과 힘을 다하는 것이 쉽겠느냐? 양심과 이성이 없는 사람이라면 쉽지 않을 것이다. 사람에게 마음이 없다면, 생각도 없고 고민할 줄도 모른다면, 또 문제가 생겼을 때 진리를 구하지 않고 아무런 방법도 없다면 이렇게 해서 마음을 다할 수 있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사람은 하나님 경륜의 가장 큰 수혜자이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되새기다 보니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더군요. 하나님은 우리가 조금의 실수도 없이 본분을 완벽하게 해내길 요구하지 않으세요.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본분을 이행하면서 온 힘을 다하는지, 그 과정에서 과연 최선을 다하려는 태도가 있는지 등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는 거죠. 저는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본분을 대하던 제 태도를 반성했습니다. 항상 사역이 너무 많고, 이래저래 돌보고 고려할 것도 너무 많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니 사역하면서 사소한 문제 정도는 당연히 나올 수 있다고 여겼죠. 피할 수 있는 문제라는 걸 뻔히 알면서 애쓰기가 싫어서 그냥 넘어갈 때도 있었어요. 그 탓에 문제 해결이 계속 미뤄졌고요. 사실 하나님께서는 저한테 완전무결한 본분 이행을 바라지 않으셨어요. 다만, 책임감 없이 본분을 대충 이행하는 제 태도를 혐오하셨죠. 자매는 저를 일깨워 주려고 잘못을 지적한 거였어요. 저를 잘못된 길에서 빨리 돌려세워서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게 하려고요. 저는 그걸 깨닫고 내적 상태가 조금 개선됐습니다. 그 후 형제자매들과 교제하고 종합하면서 돌이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나중에는 누가 문제를 지적해도 크게 반발심이 들거나 대충 넘어갈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모두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자는 쪽으로 바뀌었죠.

그 후에 제니퍼 자매의 지적에 왜 그렇게 반발심이 들었는지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그때 하나님 말씀을 읽고 저 자신을 조금은 알 수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책망과 훈계를 대하는 적그리스도의 전형적인 태도는 바로 죽어도 받아들이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악을 저지르고, 하나님 집 사역과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에 아무리 큰 손해를 끼쳐도 마음속으로 조금도 후회하거나 죄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면을 볼 때, 적그리스도에게 인성이 있겠느냐? 절대 없다. 그가 하나님의 선민에게 입힌 여러 해악과 교회 사역에 가져다준 피해를 하나님의 선민은 모두 밝히 보았으며, 적그리스도가 악행이 많다는 사실을 보았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 또한 끝까지 그것이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우기면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것이 적그리스도가 진리를 싫어하는 모습 아니겠느냐? 적그리스도는 이렇게 진리를 싫어하고 수많은 나쁜 짓을 저질렀음에도 죽어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고집스럽게 군다. 여기에서 적그리스도가 하나님 집의 사역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진리도 아예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을 믿으러 온 것이 아니다. 그는 사탄의 종으로, 하나님 집의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러 온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마음속에는 오직 명예와 지위뿐이다. 그는 자신이 잘못을 인정한다면 그 책임을 져야 할 테고, 그러면 그의 명예와 지위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죽어도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대항한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폭로하고 해부해도 그는 기를 쓰고 부인한다. 그가 고의로 부정하든, 무의식적으로 부정하든 여하튼 이런 모습에서 한 측면으로는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이 드러난 것이다. 다른 한 측면으로는 적그리스도가 자신의 명예와 지위, 이익을 몹시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보여 준다. 반면, 교회의 사역과 이익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이겠느냐? 무책임하고 경시하는 태도이다. 그에게는 양심과 이성이 전혀 없다. 적그리스도가 책임을 미루는 데서 이런 문제들을 보여 주지 않느냐? 책임을 미루는 것은 한 측면으로는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그의 본성 본질을 보여 주고, 또 다른 한 측면으로는 양심과 이성이 없고 인성이 없음을 보여 준다. 형제자매의 생명 진입이 그의 교란과 악행으로 인해 얼마나 큰 손해를 입었든 그는 마음속으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괴로워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어떤 존재겠느냐? 그가 조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한다면, 그래도 약간의 양심과 이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이 정도의 인성조차 갖추고 있지 않다. 그러니 이런 부류의 사람은 어떤 존재겠느냐? 적그리스도 부류 사람의 본질은 바로 마귀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9조(3)> 중에서) 진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는 말씀이었죠. 적그리스도에게는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누가 그를 책망하고 폭로하면 바득바득 변명을 늘어놓죠. 사역에 크게 손해를 입혀도 통회하지 않으며, 잘못을 인정조차 하지 않고 몹시 강퍅하게 굽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저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저는 확실히 본분 이행에 불성실했었습니다. 빈틈도 많고 문제도 많았어요. 그런데도 자책하거나 통회하지 않았죠. 형제자매들이 책망과 훈계를 하거나 잘못을 지적하고 일깨워 주면 순순히 받아들이기는커녕 회피할 구실만 찾아 자신을 합리화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죠. 잘못을 인정하면 제가 한심해 보일 것 같고 평판이나 지위, 이미지에 안 좋을 것 같았어요. 남들이 얕볼 거라고 생각했죠. 정말이지 이성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던 것입니다. 진리를 싫어하는 성품을 드러낸 거죠. 형제자매들이 저한테 의견을 낸 건 제가 본분을 이행하는 데 있어서 어떤 점이 부족한지 알려 주기 위해서였어요. 한시라도 빨리 오류와 잘못을 바로잡고 본분을 더 잘 이행할 수 있게 해 주려고요. 하지만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지 않았고, 저 자신을 반성하지도 않았어요. 본분을 대충 이행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책임자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리 없었죠. 그 때문에 다른 형제자매들도 본분을 건성으로 대충 이행했고, 항상 실수가 나왔어요. 저는 뒤늦게야 진리를 싫어하는 사탄 성품을 해결하지 않으면 진리를 받아들이기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도 힘들다는 걸 깨달았죠. 회개하지 않고 패괴 성품을 해결하지 않으면 본분을 이행하는 데 점점 더 많은 문제와 오류가 생길 것이고, 종국에는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대적해 하나님께 혐오받고 도태될 것입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까 심적으로 많이 괴로워져서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뉘우쳤어요. 앞으로는 본분을 이행하면서 진리를 실천하고 패괴 성품에 따라 살지 않겠다고요.

그 후에 하나님 말씀을 또 읽으면서 진리를 싫어하는 성품을 해결하는 실행의 길을 찾았어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 때 누군가 건의를 하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진리에 부합하는지 말해 준다면 먼저 받아들여 모두에게 교제하게 한 후 그 길이 옳은지, 진리 원칙에 부합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진리에 부합한다는 확신이 든다면 그렇게 실행하고,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든다면 그렇게 실행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간단한 일이다. 진리를 구할 때는 여러 측면으로 구해야 한다. 누가 말하든 일단 들어 보고 진지하게 대해야지, 보고도 못 본 척하거나 상대를 냉대해서는 안 된다. 이는 네 본분 범위 안에 포함되는 일이니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올바른 태도이자 올바른 내적 상태이다. 네 내적 상태가 올바르다면 진리를 싫어하고 증오하는 성품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실행은 사람의 패괴 성품을 대신하는 것이며, 이는 진리를 실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진리를 실행한다면 어떤 성과를 얻을 수 있겠느냐? (성령이 인도하실 것입니다.) 성령이 인도하는 것은 한 측면의 성과이다. 때로 어떤 일은 아주 간단해 네 머리로 해결이 가능하다. 타인이 낸 의견을 네가 이해한 후에 고치고 원칙대로 하면 된다. 이는 사람이 보기에 작은 일이지만 하나님이 보기에는 큰일이다. 왜 이렇게 말하겠느냐? 네가 그렇게 실행하면 하나님은 너라는 사람이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고,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볼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네 마음을 보게 되는 동시에 네 성품도 보게 되는데, 이것이 큰일이다. 다시 말해, 네가 하나님 앞에서 본분을 이행하거나 일을 할 때 살아 내고 드러내는 것이 모두 사람이 갖추어야 할 진리 실제라는 것이다. 네가 각각의 일을 할 때의 태도와 마음, 내적 상태 등은 하나님 앞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나님은 이런 것을 감찰한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늘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이다> 중에서) 하나님 말씀이 제게 실행의 길을 알려 줬어요. 형제자매가 의견을 내거나 무언가를 지적하고 책망하면 일단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 모를 때는 무조건 싫어하고 반항할 게 아니라 일단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 다음 진리를 깨달은 형제자매를 찾아가 구하고 교제하고, 원칙이 확실해지면 그때 실행에 옮기면 됩니다. 그렇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에 맞습니다. 사역상의 문제와 오류를 발견하고 저한테 알려 주고, 도움을 줄 생각으로 저를 지적하고 책망하고 훈계한 자매는 교회 사역을 책임감 있게 수행한 거였어요. 저를 겨냥해서 말한 것도 아니고 시비를 거는 것도 아니었죠. 저는 응당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 순종하고, 제 문제점을 반성하고, 제때에 돌이키고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사역을 점점 잘 할 수 있고, 패괴 성품대로 행하여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일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제니퍼 자매가 또 메시지를 보내서 영상의 몇몇 문제점을 지적했어요. 그 메시지를 본 저는 반발심을 느꼈죠. ‘형제자매들한테 고치라고 이미 이야기한 문제인데, 왜 또 걸고넘어지는 거야?’ 처음에는 시시비비를 따지며 변명하려다가 곧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자매가 지적했다는 건 사역에 아직 빈틈과 오류가 있다는 뜻이잖아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제니퍼 자매한테 물어봤어요.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나서야 형제자매들한테 문제가 있다는 걸 알리기만 했지, 후속 상황을 제대로 체크하지는 않은 탓에 문제가 완벽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죠. 그때 깨달았어요. 사역을 대하는 제 태도에 적극성과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걸요. 저는 남이 문제를 지적해야만 수동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섰어요. 그걸 깨닫고 누가 시키기 전에 형제자매들에게 영상에 다른 문제가 더 있는지 물었어요. 문제가 발견되면 즉시 교제하고 고쳤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문제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어요. 그렇게 본분을 이행하니까 마음이 편했어요. 형제자매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진리를 구해 자기 문제를 해결해야만 본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다는 걸 가슴 깊이 느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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