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정직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2021년 8월, 저는 어떤 교회에 새 신자를 양육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전 어떤 새 신자가 성품이 다소 교만하고 고집을 잘 피워 본분을 이행할 때도 형제자매들과 조화롭게 협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이 문제를 지적해 줘도 그 새 신자는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오히려 꼬치꼬치 따져 물었고 뒤에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였습니다. 그 바람에 형제자매들은 그녀의 눈치를 보게 되었고 이는 교회 사역에 교란과 방해를 가져왔습니다. 원칙에 따라 판단하면 그녀를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전 다소 난처했습니다. 제가 가서 그녀와 교제를 해야 했는데 전 리더 일꾼을 해 본 적도, 이런 상황을 주제로 교제를 해 본 적도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책임자에게 물어보긴 싫었습니다. 제가 이런 문제 하나 처리 못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책임자가 제 보잘것없는 능력을 간파하고 절 형편없게 생각해 앞으로 절 신임하거나 양성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던 거죠. 또, 그 새 신자는 프랑스인인데 제 부족한 프랑스어 회화 실력 탓에 말을 제대로 전달 못 해 새 신자가 소극적이고 연약해져 믿음을 포기하고 물러나기라도 하면 제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리저리 고심한 끝에 전 이 일을 새 신자 교회 리더 클로드(Claude) 형제에게 넘겨 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건 클로드 형제가 혼자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양성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그럴듯한 이유를 찾아내 그에게 처리를 맡겼습니다. 하지만 형제가 교제할 때 뜻을 명확히 전달하지 못한 탓에 새 신자의 오해를 샀고 그 새 신자는 소극적이 돼 결국 믿음을 포기하고 물러났습니다. 그 일로 인해 클로드 형제는 자기는 너무 멍청하고 교제도 잘 못한다며 잔뜩 의기소침해졌습니다. 전 이 일의 책임이 제게 있단 걸 알았지만 그 사실을 형제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제 문제를 해부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에게 교제해 주면서 함께 오류를 정리했습니다. 그렇게 내막을 감춘 채 클로드 형제가 저를 보며 문제를 잘 처리한다고 착각까지 하게 만들었습니다.
며칠 후 예배 시간에 리더는 제 내적 상태에 대해 지적하며, 어떤 양육자는 본분에 무책임해 문제가 생겨도 자기가 해결하지 않고 새 신자 리더에게 미뤘고,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새 신자도 믿음을 포기하고 물러났다고 말했습니다. 리더가 이렇게 대놓고 제 문제를 지적하자 저는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여러 교회 책임자와 양육 인원들도 다 있는 데서 그런 얘길 하다니, 다들 절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것만 같았습니다. 교제를 마친 리더가 다 같이 이야기를 나눠 보자고 하자 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더가 이렇게 대놓고 얘기를 했고 나는 그 일의 당사자야. 내가 자발적으로 교제하지 않으면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조금도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 그럼 리더에게 안 좋은 인상을 남기게 될 거야.’ 이미지를 만회하기 위해 저는 첫 번째로 나서서 다소 울먹이는 목소리로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그런 일이 생겨 저도 참 자책감이 듭니다. 제가 참 무책임한 사람인 걸 알았어요.” 그렇게 스스로 ‘인식하고’ 난 후 또 이렇게 변명했습니다. “전에 저도 그 새 신자의 내적 상태를 파악하러 가 하나님의 말씀을 교제해 주곤 했어요. 그녀를 돕고 붙들어 주려고 많은 대가를 치렀죠. 하지만 언어가 잘 안 통해서 그녀를 교체하는 일은 클로드 형제에게 맡긴 건데 이런 결과가 생길 줄은 몰랐네요. 새 신자가 믿음을 포기하고 물러나다니요.” 얘기를 끝내자 한 자매가 제게 메시지를 보내 직설적으로 말했습니다. “말투가 너무 유약하고 가식적이라 듣기 불편해요. 꼭 ‘내 잘못을 알겠으니 다들 더는 나한테 뭐라 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그 메시지를 읽고,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뒤에서 몰래 농간을 부리던 현장을 들킨 것처럼 부끄러웠습니다. 그 후로도 자매가 해 준 말이 잊히지 않았습니다. 자매가 그렇게 가차 없이 제 문제를 지적한 데에는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을 테니 스스로를 잘 반성하고 인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성 중, 전 책망과 훈계가 임할 때마다 늘 자발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고, 괴롭고 억울하다는 말투로 제 실제적인 어려움을 늘어놓으며 남들의 동정과 이해를 얻으려 했음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 식으로 남들의 용서를 얻어 더 이상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고, 또 그러면서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좋은 인상을 사람들에게 남겨주려고 했던 거죠. 그제야 제 말에는 많은 간계가 들어 있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 후, 전 이 문제와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먹고 마셨습니다.
하루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가 생각났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 왔나이다”(욥 1:7) 하나님은 사탄의 이런 대화 방식을 다음과 같이 폭로하고 해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은 말할 때 하나의 특징이 있다. 사탄이 한 말은 상대가 갈피를 못 잡고 영문을 모르게 만든다. 어떨 때는 속셈을 갖고 일부러 말하는 것이고, 어떨 때는 사탄이 자신의 본성에 지배받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드러내게 되는데, 입을 열면 그런 식으로 말이 나온다. 오랜 시간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아예 생각할 필요도 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을 때마다 그것은 이런 허튼소리로 대답하여 어디서 왔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게 만든다. 너희 중에도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느냐? 어떤 식으로 말하는 것이냐? (불분명하고 모호하게 말하며 정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이런 대화법을 어떤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겠느냐? ‘성동격서(聲東擊西)’와 ‘진위를 구분 못 하게 한다’로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이가 자신이 어제 무엇을 했는지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을 때, 네가 그에게 “어제 어디 갔었어요? 어제 당신을 봤는데요.”라고 물으면, 그는 어디에 갔는지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어제요, 하루 종일 정말 피곤했어요!”라고 할 것이다. 그가 너의 말에 대답을 했느냐? 대답은 했다. 하지만 원하는 답을 주지는 않았다. 이것이 바로 화법의 ‘교묘함’이다. 너는 늘 그의 뜻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없으며, 그가 하는 말의 근원과 속셈을 알 수 없다. 또한 그가 무엇을 피하려는 건지 알 수 없다. 그의 마음속에는 다른 꿍꿍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음험하다고 한다. 너희 중에도 자주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느냐? (네.) 그렇다면 목적이 무엇이냐? 어떤 때는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어떤 때는 자신의 체면과 지위, 이미지를 지키고 사생활의 비밀을 보호하기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냐? 어찌 됐든 모두 이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는 본성이 아니더냐? 이런 본성을 가진 자는 사탄과 한 가족이 아니더라도 사탄의 친척은 된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겠느냐? 결론적으로, 이는 반감이 드는 혐오스러운 부분이 드러난 것이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4> 중에서) 예전에 하나님이 사탄은 “‘성동격서(聲東擊西)’와 ‘진위를 구분 못 하게 한다’”라고 하신 말씀을 봤을 때는, 그런 술수를 부릴 수 있는 건 용의주도하고 꿍꿍이속이 있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 다시 그 말씀을 읽어 보니 저 역시 그런 모습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리더가 형제자매들 앞에서 저를 까발렸을 때, 전 제 무책임함을 인정하며 그 말을 받아들인 것 같았지만, 사실 속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난 이 본분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어떻게 보면 문제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인데, 어째서 예배에서 이렇게 인정사정없이 까발리나 싶어 억울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들 전 신뢰할 수 없고 책임감이 없다고 생각할 게 뻔했습니다.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며 제 이미지를 만회하기 위해, 전 자발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유약한 목소리를 내며 일부러 울먹거리기도 했습니다. ‘나도 잘못한 걸 알고 있고 자책감을 느끼며 힘들어하고 있으니 더는 질책하지 말아 달라. 나는 잘못을 알면 고치고,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모두에게 보내려 했던 것입니다. 겉으론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전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이 더는 제 문제를 말하거나 책임을 추궁하지 못하게 그들의 입을 막으려는 것이었죠. 이것이 제 진짜 의도였습니다. 여기까지 반성하고 나서야 제가 사탄과 똑같이 음험하고 간교해, 속셈과 간계를 품은 말로 남을 기만하고 미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본분에 무책임한 탓에 문제가 생겨 리더에게 지적을 받았는데, 전 후회는커녕, 형제자매들 앞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척 꾸며내 다들 제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전 정말 교활하고 간사했습니다! 솔직하게 털어놓고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본래 진리를 실행하는 모습이지만, 제 고백과 시인에는 변명으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간계가 들어 있었습니다. 전 참으로 음험했습니다!
그 후, 전 사람의 사악한 성품을 폭로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한 구절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간사함은 통상적으로 겉에서부터 드러난다. 어떤 사람이 빙빙 돌리거나 매우 번지르르하게 말해 아무도 그의 마음을 간파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간사함이다. 그런데 사악함의 주된 특징은 무엇이겠느냐? 더없이 듣기 좋게 말해 겉으로는 모두 옳은 것 같고 어떤 흠도 잡아낼 수 없으며, 모든 면에서 다 괜찮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일을 할 때도 그가 어떤 수단을 취하는지 보이지 않는다. 겉으로는 허점과 빈틈이 전혀 없이 목적을 달성한다. 그는 매우 은밀하게 일을 한다. 적그리스도는 바로 이렇게 사람을 미혹해 이 부류의 일과 사람을 분별하기가 가장 어렵다. 어떤 사람들은 늘 옳은 말을 하는데, 듣기 좋은 말, 사람의 인정에 맞는 이치와 주장, 또는 행동으로 남의 이목을 가리고, 겉과 속이 다른 행동으로 차마 밝힐 수 없는 목적을 이룬다. 이것이 바로 사악함이다. 사람들은 보통 그런 모습을 간사함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사악함에 대해 아는 것이 적어 분석도 적은 편이다. 사실 사악함은 간사함보다 더 분별하기 어렵다. 사악함이 더 은밀하고, 수단이나 행동 방식도 좀 더 빼어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내면에 간사한 성품이 있다면, 보통 이삼일만 접하면 다른 이들이 그가 간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는 그가 일을 하거나 말을 할 때 표출하는 것이 간사한 성품임을 알아챌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사악하다면 며칠 만에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시간 내 큰일이나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저 그의 말만 듣고서는 분별하기가 몹시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죄다 옳은 말과 일만 하며, 도리도 청산유수처럼 말한다. 그래서 며칠 접하고 나면 너는 그 사람이 훌륭하다고, 버리고 헌신할 줄 알며 영적인 이해력도 있다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며, 이성과 양심을 갖고 일을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일을 몇 번 처리하고 나면 그의 말과 일 처리에 불순물이 몹시 많으며, 꿍꿍이와 속내도 너무 많음을 알게 될 것이고, 그가 정직한 사람이 아니라 간사한 사람이고, 사악한 인간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는 늘 옳은 말, 진리에 부합하고 인정이 넘치는 듣기 좋은 말로 사람들과 왕래하여 자신의 입지를 굳히는 한편, 남들도 미혹하여 사람들 가운데서 명성과 지위를 얻고자 한다. 이런 사람은 미혹하는 능력이 대단해 일단 권력과 지위가 생기면 많은 이들을 미혹하고 해칠 것이다. 사악한 성품을 지닌 사람은 너무나 위험하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5조 사람을 미혹하고 회유하고 위협하고 통제한다> 중에서) 이 말씀은 사악한 성품을 가진 사람의 주요 특징을 폭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과 행동이 은밀해 남들은 그 속내를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 또 그들은 흔히 적절하고 진리에도 부합해 보이는 방법과 옳은 말을 사용해 자신의 비밀스러운 목적을 이룹니다. 제가 한 짓들을 떠올려 보니 저 역시 이런 수법들을 썼었습니다. 저는 새 신자의 문제를 처리할 줄 몰랐지만 책임자가 제 진짜 분량을 간파하지 못하도록 그 일을 새 신자 리더에게 떠맡기면서 그의 독립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기 위한 거라는 그럴듯한 이유까지 찾아냈습니다. 결국 새 신자 리더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게 되자 전 그에게 조언을 해 주며 오류를 정리하는 걸 돕기도 했습니다. 실제 내막은 감춘 채 새 신자 리더가 절 보고 이런 문제를 잘 처리한다고 착각하도록 만들고 저에 대한 좋은 이미지까지 심어 주었습니다. 리더가 제 문제를 까발리자, 전 사람들 마음속 제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잘못을 인정하며 사람들의 입을 막았습니다. 또 울먹이는 목소리로 동정과 이해를 사려 하며, 다들 절 보고 진리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고 회개하는 태도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면 다들 더는 제게 책임을 묻지 않을 테니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제 언행과 연결해 하나하나 반성해 보니, 저는 무척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전 적절하고 진리에도 부합해 보이는 말로 제 비열한 속셈을 감추며 다른 사람을 기만하고 미혹했습니다. 이제 보니 제가 이런 꿍꿍이속이 많은 음험하고 간사한 사람이었습니다. 전에는 사람의 사악한 성품을 폭로하는 말씀을 보면 전 그런 부류 사람이 아니란 생각에 말씀을 저와 대조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실제 상황에서 드러나게 되자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스스로를 반성하고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제 사악한 성품에 대해 다소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반성해 보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전 많은 일에서 사악한 성품을 드러냈었습니다. 얼마 전, 책임자가 저보고 사역 하나를 마리나(Marina) 자매에게 인수인계해 주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전 그 안배에 퍽 낙심했었습니다. 저 혼자 그 사역을 책임진 지 2년이 넘었는지라 저 대신 그 본분을 이행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에게 일을 넘기라니요. 제게 계속 그 사역을 맡겨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책임자가 저보고 야심이 너무 크고 이성이 없다고 생각할까 봐 더는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겉으론 순종했지만, 사역을 인수인계할 때 책임자와 마리나가 모두 자리에 있는 기회를 틈타 일부러 해당 사역의 중요한 세부 사항을 얘기하며 제가 이 본분을 이행하며 쌓은 경험과 파악한 원칙은 몇 주 만에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보이려 했습니다. 그러면 책임자도 그 사역을 계속 제게 맡길 거라 생각했습니다. 과연, 인수인계를 끝내고 난 후, 책임자는 제게 한동안 마리나를 데리고 훈련을 시켜 줄 수 있느냐고 물어왔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전 무척 기뻤습니다. 그 사역을 계속 책임질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제 말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까요. 그 후, 마리나는 본분을 이행하다 문제나 어려움을 만나면 저를 찾아와 판단을 요청했고 각 항목을 점검하는 일 역시 제게 부탁해 왔습니다. 그렇게 전 감쪽같이 권력을 다시 제 손안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제 모습을 자세히 떠올려 보았습니다. 남이 제 지위를 대체하는 게 달갑진 않았지만 책임자한테서 교만하고 이성적이지 못하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티는 내지 않았습니다. 대신 인수인계 시간을 빌려 제 밑천을 과시하고 자랑하여 부지불식간에 책임자의 인정을 받고 아주 순조롭게 권력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교묘하게’ 제 속셈과 목적은 감추었습니다. 제 그런 모습들을 반성할수록 점점 더 두려워졌습니다. 제가 이런 사람이었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예배 시간에, 하나님께서 적그리스도의 사악한 성품을 폭로하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고 전 스스로에 대해 또 다른 인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사악함에는 확실한 특징이 있다. 분별할 수 있는 비결을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그것은 바로 그의 말이든, 행동이든 네가 그의 속내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너와 대화할 때 이리저리 눈을 굴리지만 너는 그가 무슨 계략을 꾸미는지 알 수 없다. 그가 충성스럽고 무척 진지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네가 줄곧 그를 간파하지 못하면 네 마음속에 한 가지 생각이 들 것이다. 이 사람은 음침하고 헤아릴 수 없으니 참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 말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7조 사악함과 음험함, 그리고 간사함(2)> 중에서), 『‘기이하다’에서 ‘기(원문: 詭)’는 음험하고 교활함을 의미한다. ‘이(원문: 異)’는 이상하다는 뜻이다. ‘기이하다’라는 것은 음험하고 간교하며 행위가 몹시 이상하다는 것이다. 이상하다는 것은 깊이 숨긴 채 드러내지 않아 일반적으로 사람은 종잡을 수 없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꿰뚫어 보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즉, 사람들은 이 부류 사람이 일하는 방식과 동기 그리고 출발점을 도무지 종잡을 수 없고, 때로는 그 행위마저 수상쩍기 이를 데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기이함의 실제 특징과 상태를 형용할 수 있는 말이 하나 있는데, 바로 ‘투명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남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적그리스도의 일 처리에는 다음과 같은 성질이 있다. 바로 어떤 일을 하려는 그의 속셈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네가 알아차리거나 느꼈을 때 매우 두려운데 시간이 짧거나 어떤 이유 때문에 그의 동기나 속셈을 꿰뚫어 볼 수 없으면, 너는 부지중에 그의 일 처리가 매우 기이하다고 느낄 것이다. 어째서 그런 느낌을 받겠느냐? 그의 언행은 누구도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 측면이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그는 항상 빙빙 돌려서 말하거나 빗대어 말한다. 결국에는 어떤 말이 진실이고 어떤 말이 거짓인지, 그 말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한다. 그가 거짓말할 때는 진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대체 어떤 말이 진실이고 어떤 말이 거짓인지 알 수가 없어 늘 우롱당하고 농락당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런 느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겠느냐? 이 부류 사람들의 일 처리에는 투명성이 없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너는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바쁜지 명확히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를 의심하게 되고, 결국엔 그의 성품이 간사하고 음험하며 또 사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6조> 중에서) 이 말씀은 극도로 사악한 적그리스도의 성품을 폭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는 늘 비밀스러운 음모가 숨겨져 있어 남들은 그 내막을 알기 힘듭니다. 적그리스도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주 거짓 이미지와 기이한 수단으로 남을 기만하고 미혹하며 이리저리 속여 대므로 사람들은 그의 말 중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구분하기 힘듭니다. 생각해 보면 제 모습 역시 적그리스도와 똑같이 기이했고 말과 행동에는 늘 제 개인적인 속셈과 목적이 있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하다 어려움을 만나면 이리저리 재면서 어떻게 어려움을 피하면서도 내 진짜 분량을 책임자에게 들키지 않을지 생각했습니다. 리더가 본분 이행 중 생긴 문제를 까발리면, 전 어떤 모습을 보여야 남들에게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란 인상을 주면서 책임도 피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또 권력을 잡고 제 위치를 지키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야심을 들키지 않으면서 책임자의 허락을 받아 계속 사역에 참여하며 최종 결정권을 가질 수 있을지 계산하였습니다. 제 말과 행동 뒤에 비밀스러운 속셈과 목적이 이렇게나 많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명예와 지위를 지키기 위해, 제 머릿속은 온통 술수를 부리며 절 감추고 남을 속일 궁리뿐이었습니다. 특히 리더나 책임자 앞에서는 말 한마디 할 때도 어떤 식으로 말해야 목적을 이루면서도 내 진짜 속내는 감출 수 있을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곤 했습니다. 그건 적그리스도의 성품이었습니다! 여기까지 반성하자 두려움이 느껴졌습니다.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생각한 대로 말하는 정직한 사람이 되라 요구하시며, 자신이 드러낸 패괴나 이해가 안 가거나 잘 못하는 부분 등도 모두 솔직히 털어놓으라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온종일 남들의 우러름을 사고 이미지를 지키려면 어떻게 스스로를 포장해야 하나 따위의 고민만 했습니다. 계산적이고 음험하고 기이한 제 소행은 온통 사탄의 간사함과 사악한 성품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깨닫자, 여러 장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는 자주 “빠른 말은 채찍질이 필요 없고, 잘 울리는 북은 큰 북채가 필요 없다.”라는 말로 절 교육하셨습니다. 그래서 전 줄곧 ‘빠른 말’과 ‘잘 울리는 북’이 되려고 노력하며,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가 되어 잘못을 저지르면 다른 사람이 지적하기도 전에 얼른 잘못을 시인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인이 되도록, 부모님에게 심하게 야단을 맞거나 혼나 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전 자기를 잘 알고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은 확실히 고생을 덜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예를 들어, 시험을 망치면 질책과 꾸중을 피하기 위해 부모님이 입을 열기도 전에 제가 먼저 울음을 터뜨리며 부모님 앞에서 불쌍한 척을 했습니다. 제가 울음을 터뜨릴 때마다 부모님은 마음 아파했고, 제가 과도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더는 절 질책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위로해 주셨습니다. 이런 식으로 전 부모님의 질책을 피하고 자존심도 다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책임을 져야 할 때면, 전 간사를 부려 불쌍한 척하며 나름의 이유를 설명하는 식으로 제가 본분에 무책임하고 무신경했던 걸 감추고 사람들의 책망과 훈계를 피했습니다. 저는 사탄의 처세 철학에 따라 살며, 점점 더 교활하고 간사해졌습니다. 특히 정세를 보아 가며 눈치껏 행동하길 잘했고 꿍꿍이속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사탄의 모습을 살아 냈습니다. 가장 두려웠던 건, 제가 거의 습관처럼 술수를 부리고 남을 기만했다는 점이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의 지적과 폭로가 없었다면 전 아무 자각도 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정직한 사람은 하나님이 구원하려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원하는 사람이다. 네가 거짓말로 기만할 수 있다면 너는 간사하고 교활하며 음험한 사람이지 정직한 사람이 아니다. 네가 정직한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도 너를 구원하지 않을 것이니 너는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실행> 중에서), 『만약 네 말에 변명과 쓸데없는 설명이 많다면 나는 너를 진리 실행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 네게 밝히기 힘든 사적인 일이 많다면, 자신의 비밀, 즉 자신의 어려운 점을 사람들에게 털어놓고 광명의 길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면 나는 너를 구원받기 어려운 사람이며, 흑암에서 벗어나기 힘든 사람이라고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훈언 3칙> 중에서) 이 말씀 가운데, 하나님은 간사한 사람을 혐오하고 증오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간사한 사람은 마음속에 어두운 면이 너무나 많습니다. 말과 행동으로 늘 남을 기만하고 미혹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실행하지 않습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을 아무리 오래 믿어도 패괴 성품이 변화하지 못하고 구원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여기까지 인식하자, 제가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하나님께 회개하겠다고, 제가 진정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기도하며 구했습니다.
하루는, 이런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간사한 마음을 없애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기도를 통해 수시로 자신을 정결케 하고 하나님의 영에 감동받으면 너의 성품이 점차 변화될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기도의 실천에 관하여> 중에서), 『어떤 문제를 만나든 반드시 진리를 구해 해결해야 하고, 절대 남에게 거짓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해서는 안 된다. 그게 자신의 결점이든, 단점이든, 자신에게 있는 문제점이든, 혹은 패괴 성품이든 모두 솔직히 교제하고, 포장하지 마라. 자신의 마음을 여는 법을 배우는 것, 이것은 생명 진입의 첫걸음이자 가장 공략하기 힘든 첫 번째 관문이다. 이 관문을 공략한다면 진리에 진입하기 쉬워진다. 그 한 걸음을 내디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네가 마음을 열고 너의 모든 것, 즉 좋은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그것을 모두 드러내 남들에게, 또 하나님에게 모조리 보여 준다는 뜻이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숨기거나 가리거나 위장하지 않고, 간사하게 행동하거나 기만하지 않고,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솔직하고 진실하게 대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너는 빛 속에서 살게 되고, 하나님이 감찰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네가 원칙 있고 투명하게 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너는 자신의 명예와 체면, 지위를 지키기 위해 어떤 수단을 쓰거나 자신이 잘못한 일을 위해 감추거나 꾸밀 필요가 없다. 이러한 부질없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것을 내려놓는다면 너는 아주 홀가분하게, 속박도 고통도 없이 온전히 빛 속에서 살 수 있다. 솔직하게 교제하는 법을 배우는 것, 이것은 생명 진입의 첫걸음이다. 그다음 너는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서 어떤 것들이 잘못되었는지, 하나님이 어떤 것들을 싫어하는지 등을 분석할 줄 알아야 하고, 그때그때 돌려놓으며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바로잡는 목적은 무엇이겠느냐? 진리를 받아들이고, 사탄에게 속하는 네 내면의 것들을 없애고 진리로 대신하기 위함이다. 지난날, 네가 거짓말과 기만 같은 간사한 성품으로 일하며 거짓말하지 않고서는 일을 성사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진리를 깨닫고 사탄의 그런 수법을 혐오하여 더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정직함과 순수함, 순종하는 마음가짐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매사에 마음을 열고 솔직히 털어놓아 감싸거나 꾸미거나 은폐하지 않고 숨김없이 형제자매들과 교제하여 그들에게 네가 속으로 생각하는 바를 보여 주고 네 정직한 태도를 보여 주면, 진리는 서서히 네 내면에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되는데, 조금씩 성과가 드러날 것이다. 네 마음이 점점 정직해지고 하나님을 향하고, 본분을 이행하면서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킬 줄 알고,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지 않았을 때 양심이 불편해진다면, 그것은 진리가 너에게 작용했고 이미 네 생명이 되었다는 증거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은 제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요구는 사실 참 간단했습니다. 단순하고 정직하게 말하거나 행동할 것, 마음속에 간사함과 위장, 기만이 없을 것, 하나님께는 정직한 마음으로 대하고 사람은 솔직하게 대할 것, 잘못이나 거짓말, 기만을 저지르면 인정하고 반성할 것, 진실된 태도로 진리를 받아들일 것 등입니다. 또 이런 요구대로 실행해야 사탄 성품은 점차적으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 책망과 훈계가 임했을 때 당장은 창피하더라도 받아들이고 순종한 후 진리를 구해 자신을 반성하고 인식하며 실패의 근본 원인을 찾아냈던 어떤 형제자매들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얼마 후 보면 그들은 점점 성장해 본분도 더 잘 이행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인도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저는 체면과 지위를 지키기 위해 늘 술수를 부리며 책임을 미뤘고, 책망과 훈계를 피하려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그게 똑똑한 행동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제가 얻은 것은 무엇입니까? 오랜 기간 하나님을 믿었으면서도 생명 성품은 변화되지 못해 여전히 교활하고 간사하며 사악했습니다. 본분 이행 원칙을 파악하지 못해 문제를 만나면 여전히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매번 술수를 부리며 책임을 피하고 책망과 훈계를 피했던 것이 사실 하나님의 구원을 거부하며 진리를 얻을 기회를 망치는 행동임을 그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술수를 부리며 책임을 피하려 할 때마다 저는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핑계를 대야 대충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을지 여러 차례 고민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다음번에 제 명예와 체면과 관련된 일이 생기면 또 남을 속일 수단을 연구했습니다. 매일 이렇게 간사하고 남을 기만하는 내적 상태로 살다 보니 사는 게 무척 피곤하게 느껴졌습니다. 거기다 하나님의 반감과 혐오도 사고 말았고 결국 진리를 얻고 구원받을 기회까지 제 손으로 망쳐 버렸습니다. 이게 어디 똑똑한 겁니까? 전 가장 바보 같고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다급해진 전 얼른 간사하고 사악한 성품을 해결해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클로드 형제는 제가 어떤 비열한 속셈을 가지고 그에게 새 신자 교제를 맡긴 건지 모른다는 사실이 생각났습니다. 이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는다면 형제는 절 분별하지 못해 여전히 절 우러러볼 것이고, 자신은 사역을 잘 못 한다는 생각에 소극적인 상태로 지내게 될 터였습니다. 그래서 전 클로드 형제를 찾아가 당시 그에게 새 신자 교제를 맡겼던 제 속셈과 제가 반성하고 인식한 내용을 솔직히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새 신자가 믿음을 포기하고 물러난 주요 책임은 제게 있다고 하며, 제가 너무 이기적이고 비열해 그저 제 체면과 이익을 지킬 생각에 간사한 술수로 그가 책임을 지도록 기만했다고 시인했습니다. 제 말을 들은 형제 역시 자신이 그 일에 있어 반성하고 인식한 내용과 수확을 솔직하게 말해 주었습니다. 형제와 교제를 하고 나자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습니다. 진리를 실행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마음이 평온할 수 있음을 몸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책임자가 사역 가운데 존재하는 오류와 문제를 정리하기 위한 예배를 소집하였는데, 그달 제 사역 성과는 현저히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이번 예배를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전 하나님이 제 일거수일투족을 감찰하며 제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고 계시단 걸 알고 있었습니다. 체면과 지위를 지키려고 예전처럼 간사한 짓을 벌이며 제 부족함과 문제를 감추려 하는지, 아니면 제 본분상의 문제를 직시하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정직한 사람답게 구는지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전 체면이 상하는 일이 있더라도 진리를 실행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타일렀습니다. 그래서 전 자발적으로 지난 기간 사역을 하면서 무성의하게 굴고 잔꾀를 부렸던 모습을 털어놓았고, 앞으로 문제와 오류를 정리하고 본분을 대하는 태도를 바로잡아 성과를 올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교제를 끝내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했고 본분을 이행할 의지와 동력도 생겨났습니다. 제 교제를 들은 형제자매들도 저를 무시하지 않았고 대신 본분을 어떻게 이행할지 실행의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전 형제자매들의 교제에서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었고 어떻게 오류를 바로잡을지 방법이 더 확실해졌습니다. 그 후 저는 그 방법대로 실행하며 본분을 이행하였고, 그러자 사역 성과가 점점 좋아지는 게 보였습니다. 전 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본분을 이행하며 어떤 잘못을 저지르든, 혹은 어떤 방면의 패괴를 드러내든 솔직하게 직면하고 마음을 털어놓고 진리를 구하면, 남들에게 무시당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 기회를 빌려 스스로를 더 잘 반성해 본분을 잘 이행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진리를 실행하며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인격과 존엄을 가질 수 있고 삶이 홀가분하고 자유해질 수 있음을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