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사람은 삶에서 과연 무엇을 추구해야 하나
저는 어릴 때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제 병을 치료하는 데 집안 돈이 많이 들어가서 아버지는 저를 좋아하지 않았고 툭하면 저를 때리고 욕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남들에게도 늘 비웃음과 조롱을 당했습니다.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안고 늘 혼자 숨어서 울었습니다. ‘당신들이 날 무시하지만, 난 이다음에 꼭 사업을 해서 나를 증명해 보일 거야.’ 결혼한 뒤에는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아 이혼을 했습니다. 저는 네 살 난 아들을 엄마한테 맡기고 친구가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일을 도왔습니다. 비즈니스 스쿨 강사였던 친구는 학교에 출근해야 했기 때문에 저에게 가게 일을 맡기며 자기 대신 봐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친구는 태도가 변하더니 언제나 사장 신분으로 저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명령하며 갑질을 했습니다. 저는 마음이 불편했고 그 친구와 벽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 저희는 한 가지 일로 말다툼을 벌였고, 저는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친구가 비아냥거리더군요. “쑹쯔한, 너보고 뭐라고 하는 건 아니지만, 네가 나 없이 성공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존심이 너무 상하고 정말 괴로웠습니다. ‘네가 날 너무 우습게 보는구나. 사람은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 되고 바닷물은 됫박으로 재는 게 아니라고 했어. 너한테 하는 말인데, 내가 지쳐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너 보란 듯이 사업하고야 말겠어. 내가 오늘 당한 이 모욕은 꼭 되갚아 줄게. 그때 가서 진짜 네 손에 장을 지지나 두고 보자.’ 저는 그날로 짐을 챙겨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습니다.
저는 일을 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아파도 휴가도 내지 않았고, 어떤 때는 피곤해서 등허리가 쑤셔도 이를 악물고 버텼습니다. 넉 달 뒤, 저는 미용실을 하나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저 혼자 일하며 매일 한 끼만 먹었습니다. 저녁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면 맹물로 주린 배를 채웠습니다. 장사가 잘될 때는 새벽 두세 시가 되어서 잠자리에 들곤 했습니다. 아침 여섯 시에 피곤해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지만, 눈을 감은 채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켰습니다. 가을, 겨울에는 파마 약에 부식된 두 손이 갈라져서 손가락만 구부려도 피가 나고 아팠습니다. 이불 속에 숨어서 눈물을 흘리다가도, 저를 싫어했던 아버지와 저를 무시하고 비아냥거리던 친구를 떠올리며 속으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고생을 해 봐야 뛰어난 사람이 된다.’, ‘체면을 세우려면 분발해야 한다.’라고 했어. 언젠가는 나도 성공해서 날 무시하던 사람들, 내 자존심에 상처를 준 사람들이 날 다시 보게 만들고야 말겠어!’ 그러면 마음속에는 악착같이 노력할 동력이 생기곤 했습니다. 1996년, 저는 드디어 처음으로 제 소유의 가게를 열었습니다. 그것도 그 친구 가게보다 넓고 인테리어도 더 호화로운 가게였죠. 개업하는 날, 저는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드디어 가게 열고 사장이 됐어. 드디어 어깨에 힘을 주게 됐다고. 앞으로 가게를 더 키워서 더 호화롭고 인기 있는 가게로 만들 거야. 친구에게 망신 한번 톡톡히 당하게 할 거야. 고향 친척 친구들이 내가 외지에서 가게 열고 사장이 됐다는 걸 알면 다들 나보고 제 앞가림 잘한다고 칭찬하겠지.’ 삼 년 동안 죽기 살기로 일한 끝에 돈을 좀 벌었습니다. 저는 더 많은 우러름을 받기 위해 기존보다 몇 배 큰 미용실과 화장품 회사를 열고 각지에 가맹점도 아홉 곳을 두었습니다. 전국 미용 대회에 참가해서 금상도 여러 번 수상했죠. 몇 년의 노력 끝에 드디어 업계의 베테랑이 되었는데, 그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산 정상에서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죠. ‘내 꿈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난 더 이상 남들이 빈정대고 업신여기던 과거의 쑹쯔한이 아니라고!’ 차를 몰고 고향에 가면 사람들이 부러운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았는데, 그럴 때마다 너무나 만족스럽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길이 옳은 길 같았고, 저는 앞으로 더 노력해서 사업을 더 크게 키우겠다고 결심했습니다.
2002년 저는 다른 성(省)에 대형 미용실을 열었습니다. 사업이 커지면서 제 인지도도 계속 올라갔습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활기가 넘치고, 걸음에도 힘이 실린 듯했습니다. ‘혹시 길에서 그 친구와 마주치면 꼭 ‘고맙다’고 인사해 줘야지. 그때의 그 모욕적인 말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나도 없었을 테니까.’ 그런데 나중에 그 친구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참 서글펐죠. ‘사람 목숨이 어쩌면 이렇게 연약할까? 이제 겨우 서른아홉인데 세상을 뜨다니. 내가 그토록 큰 대가를 치르고 드디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전에 내 인격을 모욕하고 내 존엄성을 짓밟았던 걔의 말을 고스란히 돌려주고 싶어서였어. 화려하게 성공한 모습을 보여 주기도 전에 그렇게 갑자기 가 버렸구나. 부와 명예, 돈이 아무리 많아도 결국 죽기 마련이고,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해. 사람이 사는 게 무슨 의미일까?’ 이렇게 생각하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서글픔과 실망감이 밀려들었습니다. 친구의 죽음은 제 마음을 크게 뒤흔들어 놓았고, 한동안 그 문제가 계속 저를 괴롭혔지만, 아무도 제게 답을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금방 일에 다시 매달렸습니다. 당시 업종을 바꿀 생각이었죠. 제가 보기에 미용실을 운영하는 건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기 힘들었고, 의사가 명망도 높고 사람들에게 존중받았습니다. 저는 비싼 학비도 아까워하지 않고 베이징, 상하이, 광둥과 같은 대도시의 명의나 침술 대가를 찾아다니며 중의학 기술을 배웠습니다. 제 꿈을 이루기 위해 저는 아들 공부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아들의 존재도 잊고, 연로하신 어머니도 들여다보지 않고, 회사 일도 내버려둔 채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렸습니다. 길을 갈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침대에 누워서도 딱딱하고 재미없는 중의학 이론 지식을 외우느라 여념이 없었죠. 친구와 만나 놀 시간도, 부모나 자매들과 마음을 나눌 시간도 없었습니다. 가끔 너무 힘들어서 공부를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의학을 배우면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고 더 많은 이들이 우러러봐 줄 거라고 생각하면서 중도에 그만둬서 남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지 말자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학업을 마무리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기 위해 그렇게 계속해서 스스로를 격려했죠. 15년을 힘들게 공부하고 부지런히 연구하며 실천한 끝에 저는 중의학 업계에서도 인지도를 얻어서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침술 양성 교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육을 하기 위해 자주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각지를 돌아다니는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위장에 문제가 생기고 수면에도 큰 지장이 생겼습니다.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을 자주 받았지만, 병원에 가서 검사도 한 번 받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위장염에 치루까지 생겨서 심한 혈변 증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또 교육이 있어서 아픔을 참고 멀리 떨어진 도시까지 비행을 해야 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저는 꽃다발과 박수 소리에 둘러싸였습니다. 뒤에서 부러워하는 칭찬의 말이 들렸죠. “저 사람이 바로 송 선생님이야. 정말 젊고 예쁘다!” “그래. 저분 수업을 들은 적 있는데, 정말 괜찮더라!” 그 순간 제가 쏟은 모든 대가와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습니다. 저는 속으로 계속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버텨야 해. 파이팅 하자! 성공하려면 뒤에서 그만큼 고생이 따라야지.’ 극심한 복통을 억지로 참아 가며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얼굴 가득 미소를 띤 채 사흘 동안 단상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단상에서 내려와 수강생들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하는데, 순간 왠지 모르지만 관객이 떠난 뒤 적막과도 같은 쓸쓸함이 느껴졌습니다. 허약하고 피폐해진 몸을 이끌고 호텔로 돌아와 곧바로 침대에 누웠습니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영문 모를 고독감과 처량함이 밀려들었습니다. 꽃다발과 박수는 성공과 출세의 상징이었지만, 그건 잠깐 왔다가 사라지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제가 질병과 공허에서 벗어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죠. 저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남들이 날 존중하고 우러러보는데, 난 왜 조금도 기쁘지 않지? 오히려 공허하고, 고통스럽고, 막막하고, 외로워. 사람은 대체 뭘 위해 살아갈까? 어떻게 사는 게 의미 있는 삶일까?’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가 안타까워했습니다. “얘야, 하루 종일 그렇게 정신없이 살면서 몸을 그렇게 혹사시켜야겠니? 하나님을 믿거라.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셨어.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얻어야 편안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어. 하나님을 안 믿으면 네가 세상에서 추구하는 게 다 헛되단다.” 사실 저도 하나님 믿는 일이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마음이 온통 일에만 쏠려 있어서 나중에 나이 들어 일을 그만두면 믿을 생각이었습니다. 나이도 젊은데 일을 안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었죠. 그래서 저는 어머니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업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오랜 시간 과부하 상태에 있었던 탓에 제 몸은 내분비계가 교란되고 면역력이 떨어졌습니다. 그 때문에 이상한 피부병에 걸려서 피부가 말도 못하게 가려웠습니다. 피부 속이 가려워서 손으로 긁는 건 전혀 소용이 없고,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었죠. 저는 한 손으로는 얼굴 피부를 잡고 한 손에는 피부 테스트용 바늘을 들고 얼굴을 계속 찔렀습니다. 얼마나 찔러댔는지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였습니다. 그때는 가려움 때문에 너무 괴로워서 사는 게 죽느니만 못하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거울에 비친 퉁퉁 부어오른 얼굴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고, 바깥출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남들 난치병은 숱하게 치료하면서 정작 내 병은 못 고치다니, 정말 서글프구나!’ 전에는 그렇게 근사하던 모습이 지금은 이 꼴이 되다니, 정말 건물에서 뛰어내려 죽고 싶은 심정이었죠. 저는 급기야 울면서 절규했습니다. “세상에! 내가 전생에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길래 지금 이렇게 죗값을 치르나!” 그 후 저는 중의원을 찾았습니다. 의사는 전에도 이런 병을 본 적이 있는데, 20년이 지나도 못 고쳤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크게 절망했습니다. ‘설마 남은 반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이름을 날리고 싶어서 평생을 정신없이 뛰었는데 결국 이 꼴이 되다니, 내가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차라리 수면제라도 먹고 다 끝내자.’ 막 삶을 놓아 버리려고 하던 때였습니다. 2018년 4월에 어머니가 또 한 번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전해 주시더군요.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에서 찍은 <샤오전(小眞)의 이야기>라는 뮤지컬을 보고 무척 감동받았습니다. 그 안에 담긴 하나님 말씀입니다. 『전능자는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면서도 전혀 지각이 없는 사람을 혐오한다. 그가 오랫동안 기다려야 사람에게서 오는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찾으려 한다. 너의 마음과 영을 찾아 네게 물과 음식을 공급함으로써 너를 깨우고, 네가 더 이상 목마름과 굶주림을 겪지 않게 하려 한다. 더없이 피곤할 때도, 이 세상이 처량하다고 조금 느껴질 때도 방황하거나 울지 마라. 전능하신 하나님, 지키며 바라보는 그이가 네가 언제 돌아오든 너를 안아 줄 것이다. 그는 너의 곁을 지키며 네가 돌아서기를 기다리고, 문득 기억을 되찾을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네가 하나님에게서 나왔지만 언제부터인가 방향을 잃고 길에서 쓰러졌다는 것, 언제부터인가 네게 ‘아버지’가 생겼다는 것, 또 전능자가 그곳에서 네가 돌아오기를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것을 깨닫는 그날을 말이다. 그는 답이 없는 응답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인간의 마음과 영을 위해 그가 곁을 지켜 주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이 지킴은 무기한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이미 끝이 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너는 오늘날 너의 마음과 영이 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전능자의 탄식> 중에서) 말씀 마디마디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샤오전의 이야기는 바로 제 인생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습니다. “얘야, 돌아오너라!” 하나님이 두 팔 벌려 저를 부르는 것 같았죠.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받은 저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채 흐느꼈습니다. 그 순간 집에 돌아왔을 때의 따뜻함을 느꼈고, 방황하던 마음이 정착할 곳을 찾은 듯 정말 든든했습니다! 몇 년 동안 느끼던 외로움, 고통, 서글픔, 심지어 남에게 말 못 할 비밀까지 드디어 하나님께 털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외쳤습니다. ‘내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았는지 하나님만이 아시고, 창조주만이 인간에 대해 이런 진실한 사랑을 지니고 계셔!’ 저는 울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사업에 매달리느라 지쳐 쓰러졌을 때 당신은 어머니를 통해 계속 저에게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로지 사업 생각만 하며 당신 앞에 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연극에서 샤오전이 ‘하나님’을 외칠 때마다 제 마음은 바늘로 찌르듯 아팠습니다. 계속 당신 구원의 손길을 뿌리치고, 계속 당신 마음을 아프게 했던 저 자신이 밉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저에 대한 구원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고통의 바다에서 빠져나오도록 구원하시기 위해 제 곁에서 제가 당신께 돌아설 그 순간을 계속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을 믿겠습니다. 당신을 바짝 따르며 당신을 경배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울면서 하나님께 몇 년째 마음속에 묻어 뒀던 얘기를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그랬더니 마음이 편하고 기운이 났습니다. 하나님 앞에 올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강퍅한 마음 때문에 계속 하나님의 구원을 뿌리친 일이 더욱 후회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절실한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패괴된 인간의 참모습을 폭로하시는 부분은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모두 진리였고, 하나님이 폭로하시는 건 모두 사람의 실제 상황이었습니다. 형제자매들과 같이 예배드리고, 찬양을 부르며 하나님을 찬미할 때는 무척 뿌듯하고 기뻤습니다. 형제자매들끼리 서로를 진솔하게 대하고, 패괴를 드러내면 마음을 터놓고 교제하며 서로 도와주고, 속고 속이거나 기만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마치 다른 세상에 사는 기분이었습니다. 과거의 고통은 완전히 잊었고, 병도 점차 호전되었죠. 저는 속으로 하나님의 구원에 무척 감사드렸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후부터 매일 하나님 말씀을 읽고, 찬양을 부르며 하나님을 찬미하니까 사는 게 이렇게 기쁘고 즐겁구나. 그런데 나는 왜 세상에서 사업, 부와 명예, 지위, 금전이 생겨도 전혀 기쁘지 않고 오히려 고통스럽게 살았을까?’ 한번은 다음과 같은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탄은 명예와 이익을 가지고 사람의 생각을 지배한다. 사람이 명예와 이익에만 사로잡혀 이를 위해 분투하고, 고생하고, 치욕을 참고, 명예와 이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이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게 만든다. 이렇게 사탄은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족쇄를 채워 놓았다. 족쇄가 채워진 사람은 족쇄에서 벗어날 능력이나 용기가 없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족쇄를 차고 힘겹게 한 걸음씩 나아간다. 인류는 명예와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신하며, 갈수록 사악해지고 있다. 이렇게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사람이 사탄의 명예와 이익에 넘어가 파멸한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만약 네가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면, 이 일을 밝히 알지 못하고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투지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고 정당한 거야. 사람이 살면서 약간의 투지조차 없으면 되겠어? 투지가 없으면 삶에 활력이 없어지지. 그럼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무슨 일이든 꾹꾹 참고 견디기만 한다면 얼마나 유약하고 무능하겠냐고!’ 사람은 모두 살아가면서 승부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그 ‘욕구’는 어떻게 충족할 수 있겠느냐? 여기에서 ‘싸우다’라는 글자가 두드러진다. 어떤 일이 임하든 싸워서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실패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는 말은 ‘싸우다’에 기원을 둔다. … 그들은 하루를 살면 하루를 싸운다. 어떤 일을 하든 싸워서 이기려고 하고, 승리를 통해 자신을 뽐내려고 한다. 무슨 일을 하든 승부욕을 드러내는데, 그런다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겠느냐? 그들은 대체 무엇을 두고 다투며 싸우겠느냐? 명리와 지위를 위해서, 또 이익을 위해서 싸운다. 싸우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영웅 행세를 하고 호걸이라고 불리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렇게 다투다 보면 결국 마지막에는 모두 죽어야 하고, 징벌을 받아야 한다.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사탄 마귀가 있는 곳에 싸움이 있으며, 마지막에 멸망에 이르러야 싸움도 끝이 난다. 이것이 바로 사탄 마귀의 결말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부록 1 무엇이 진리인가> 중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제 마음속 의혹이 해소되고 마음이 밝아졌습니다. 명예와 이익, 지위는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고, 미혹하고, 통제하기 위한 일종의 방식과 수단이자 사탄이 사람에게 채운 족쇄이고, 족쇄가 채워진 사람은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8년 동안 목숨 걸고 노력하며 그토록 고통스럽고 서글프게 살아온 근원은, “체면을 세우려면 분발해야 한다.”, “부처는 향불을 받아야 하고, 사람은 기개가 있어야 한다.”, “고생을 해 봐야 뛰어난 사람이 된다.”, “사람은 높은 곳으로 가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짐승은 가죽을 남긴다.”와 같은 사탄 독소를 긍정적인 사물로 생각하며 추구하고, 제 인생에서 쟁취해야 할 목표로 생각한 데 있었습니다. 저는 계속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길에서 폭주했고,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게 살았습니다. 그때 친구에게 조롱당하고 무시당한 후, 어떻게든 성공해 보이겠다고 다짐하고 부와 명예, 지위의 굴레로 뛰어들었습니다. 부와 명예를 위해 밤낮으로 뛰어다니고, 부와 명예를 위해 고생하기 시작했죠. 약품 때문에 손이 갈라져 피가 나도 돈이 아까워 사람을 쓰지 않았습니다. 돈을 아끼기 위해 하루 한 끼만 먹으면서 배가 고프면 물로 허기를 달랬고, 지쳐 쓰러질 지경이 되어도 쉬지 않았습니다. “고생을 해 봐야 뛰어난 사람이 된다.”라는 말은 제가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그 후 마침내 제가 사는 지역에서 명망을 얻어 잠시나마 제 욕망이 채워졌지만 저는 여전히 부와 명예, 지위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제 야심과 욕망은 계속 커져만 갔습니다.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인지도를 넓히기 위해, 더 많은 우러름과 숭배를 받기 위해 15년 세월을 의학 공부에 쏟아붓느라 어머니와 아들을 보러 집에 갈 시간도 없었습니다. 제 머릿속은 온통 사업, 그리고 부와 명예로 가득했습니다. 성공을 이루고 꽃다발과 박수를 받기 위해 모든 걸 팽개칠 수 있었고, 심지어 하나님 구원의 손길마저 자꾸만 뿌리쳤습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인정받기 위해 몸이 힘들어도 아닌 척하며 피곤하고 아파도 강의를 계속했습니다. 결국 피로가 누적되어 희귀병을 얻었고,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부와 명예의 족쇄를 차고 힘겹게 걷는 제 모습은 마치 흑암 속에서 연자매를 돌리는 나귀처럼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었죠. 저는 그런 사탄 독소에 의지해 사느라 마음속에는 오로지 부와 명예밖에 없었고, 그저 남들에게 우러름 받을 생각뿐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이기적이고 비열하게 변했습니다. 가족에 대한 정도 없고, 사랑도 없는 냉혈 동물과도 같았습니다.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지 못했죠. 부와 명예 뒤에 숨은 고통은 저만 알고 있었는데, 그건 정말 인생의 바른길이 아니었습니다. 친구의 그 말 한마디 때문에 평범한 사람이 되기를 거부하고 남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 남들이 높이 받드는 사람이 되려고 했죠. 20여 년 동안 불 속에 들어가 구워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셨죠. 『언제나 대단한 사람,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이는 스스로 불 속에 들어가 구워지는 것이요, 분쇄기에 들어가 갈리는 것과 같다. 그것은 고생을 자초하는 행동이다.』(<말씀ㆍ4권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제12조 복받을 희망이나 지위가 없으면 물러나려 한다> 중에서) 만약 하나님 말씀의 폭로가 아니었다면 저는 “부처는 향불을 받아야 하고, 사람은 기개가 있어야 한다.”, “고생을 해 봐야 뛰어난 사람이 된다.”라는 말이 황당한 이론이고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수단임을 간파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없던 나날, 하나님을 볼 수 없던 나날, 하나님의 주재를 정확히 알지 못했던 나날, 그런 나날들은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었고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어디에서 어떤 일을 했든 사람의 생존 방식과 추구 목표는 끝없는 슬픔과 벗어날 수 없는 고통만을 가져다주었기에, 그런 날들은 돌이켜 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오로지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그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고, 참된 삶을 추구할 때, 사람은 차츰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풀려나고 삶의 공허함을 떨쳐 버릴 수 있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제가 20여 년 동안 그렇게 고통스럽게 산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탄 철학에 기대어 사느라 올바른 인생 목표와 방향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되었던 거고요. 사탄에게 농락당해 말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웠으며 아무런 의미 없이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 말씀을 제 생존의 바탕으로 삼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로 들어서는 것이 바로 인생의 바른길입니다. 욥은 동방의 갑부로, 막대한 자산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재하고 운명으로 정해 놓았다는 것을 알았기에 부와 명예, 지위를 추구하지도 누리지도 않고 정상적으로 일하며 자유롭고 즐겁게 생활했습니다. 하룻밤 새 막대한 재산을 빼앗기고 자녀들도 목숨을 잃었지만 욥은 그래도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 1:21)라고 하나님 이름을 칭송하며 하나님을 위해 아름다운 간증을 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길을 걸으며 인격과 존엄성을 갖춘 삶을 살아서 결국 하나님께 인정받았습니다. 저는 욥을 본받아 과거의 잘못된 인생길을 버리고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며 진리를 추구하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야 마음의 공허와 고통에서 벗어나고 사탄의 괴롭힘과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가야 할 길입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을 잘 듣고 당신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겠노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업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데 마음을 쏟기로 결심했을 때 장애물과 마주쳤습니다. 하루는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회사가 파산하게 됐으니 제가 와서 정리하고 다시 회사를 살려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무척 갈등했습니다. ‘28년 흘린 피땀이 이렇게 물거품이 되는 건가? 하루아침에 다시 빈털터리가 되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날 두고 뭐라고 할까? 앞으로 또 사람들을 어떻게 보지? 앞으로 수입원도 없어질 텐데, 정말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어.’ 회사로 돌아가 상황을 만회하려고 마음먹었을 즈음, 두 팔이 붉어지더니 전에 얼굴이 가려웠던 것처럼 못 견디게 가렵기 시작했습니다. 무척 괴롭고 초조했습니다.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회사로 돌아갔다가 다시 병이 재발하면 어쩌나 걱정이 됐죠. 제가 마주한 어려움을 하나님께 말씀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저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과거에 돈과 명예, 이익을 추구하며 잘못된 길을 갔다는 사실을 알고 지금은 매일 하나님 말씀을 읽고 본분을 이행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회사가 파산 위기에 직면하니까 무척이나 갈등이 되고 제가 20년 넘게 힘들여 경영해 온 회사가 이렇게 무너지는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하나님,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으니 당신께서 저를 이끌어 주시고 인도해 주십시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선배로부터 저희 스승이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뇌경색이 발병했고, 병원에서 치료를 했지만 끝내 사망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이 제게 하는 충고이자 경고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과 높은 명망도 사람 목숨은 구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 주신 것이죠. 전화를 끊고 나서 저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제 기도에 귀를 기울이셨군요. 스승님의 죽음이 제게 경종을 울렸습니다. 오늘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살 수 있는 것조차 저에 대한 당신의 구원이었습니다. 제가 병에 시달려서 죽고 싶어 할 때 당신께서 당신 음성을 듣게 하시고 저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오늘 어렵게 만난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다시는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당시 읽었던 하나님 말씀은 무척이나 감동적이었고, 덕분에 사람이 살면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평생을 들여 익힌 다양한 생존의 기술들은 충분한 물질적 안락함을 가져다줄 수는 있지만, 진정한 마음의 평안과 위안을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자꾸만 방향과 통제력을 잃게 하고, 삶의 의미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끊임없이 놓치게 만들며, 죽음을 똑바로 대면하지 못하도록 근심을 가져다준다. 사람의 인생은 이렇게 망가진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사람들은 돈과 명리가 자신을 구해 주는 생명 줄이자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인 양 평생을 이것들을 좇는 데 쓴다. 이것들만 있으면 죽음도 피하고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죽을 때가 되어서야 사람들은 깨닫게 된다. 돈과 명리란 게 얼마나 요원한 것인지, 죽음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연약하고 쉽게 부서지는지,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얼마나 외롭고 무력한지를 말이다. 그리고 사람의 목숨은 돈이나 명리와 바꿀 수 없고, 아무리 재산이 많고 높은 자리에 있다 해도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서 똑같이 가난하고 하찮은 존재라는 것 또한 깨닫게 된다. 돈으로 목숨을 살 수 없고 명리로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돈과 명리 중 그 어느 것도 사람의 수명을 1분 1초라도 연장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런 느낌이 들수록 살고자 하는 욕망은 더욱 강렬해지고,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한층 증폭된다. 그제서야 사람은 자신의 목숨과 생명은 자신의 것도, 스스로 지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생과 사는 자기에게 결정권이 없을 뿐 아니라 그 누구도 주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 말씀 덕분에 마음이 밝아지고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스승님은 평생을 부와 명예를 추구했고, 어딜 가든 사람들이 떠받들었습니다.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셈이었지요. 하지만 아무리 수준 높은 의술을 가지고 있어도 정작 질병이 찾아와 생명이 위독할 때 자기 목숨은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 일을 통해 저는 아무리 명망이 높아도 사람의 수명은 일분일초도 늘릴 수 없고,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사람의 건강과는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성공해서 이름을 날렸지만, 질병의 고통으로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아무리 높은 명망도 제 마음속 공허와 육적인 고통을 없애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진정으로 느꼈습니다. 부와 명예는 유성처럼 한 번 반짝이면 끝입니다. 모두 허무맹랑한 것이고, 사람에게 찰나의 즐거움과 만족만을 안겨 줄 뿐입니다. 부와 명예를 얻더라도 사실 하루에 삼시 세끼로 배를 채우고, 겨우 한 자 너비에서 누워 쉬는 것은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외로울 때도 혼자 마주하고, 고통스러울 때도 혼자 감당하고, 고달플 때도 혼자 버티고, 아플 때도 역시 혼자 참아야 합니다. 남들과 다를 게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 말씀을 읽지 않으면 하나님의 주재를 알 수 없고, 무엇이 긍정적 사물이고 무엇이 부정적 사물인지 확실히 분별할 수 없습니다. 그저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고 세상의 사악한 조류를 따르며, 명예와 이익의 족쇄를 차고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면서 사탄에게 우롱당하고, 유린당하고, 해를 입을 뿐입니다. 친구와 스승의 죽음은 제게 하나의 경고였습니다. 만약 제가 계속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길을 걷는다면 결국 그들과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 점을 인식하자 진정으로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명예와 이익의 족쇄를 벗어 버리고 열심히 하나님을 믿으며 진리 추구의 길을 가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기도드렸습니다.
저는 또 다른 하나님 말씀을 보았는데, 그 말씀은 제 선택을 더욱 굳건하게 해 주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땅에서 하늘에 있는 것과 같은 복을 누리기를 원하느냐? 나에 대한 인식과 내 말을 누리고 나를 아는 것을 너희 일생에서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로 삼고 싶으냐? 진정으로 자신의 앞날을 위하지 않고 오로지 나에게 순종할 수 있느냐? 너희는 진정으로 스스로를 양처럼 여겨 내가 마음대로 죽이고 끌고 다니도록 맡길 수 있느냐? 너희 가운데 누가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느냐? 나에게 열납되고 내 약속을 받은 자라고 다 복을 받은 자이겠느냐? 나의 이 말에서 너희는 뭔가를 깨달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시련을 준다면 너희는 진정으로 나의 지배를 따르고, 시련 속에서 나의 뜻을 찾고 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내가 원하는 것은 네가 입으로 얼마나 많은 감동적인 말이나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가 아니다. 반대로 나는 네가 나를 위해 아름답게 증거하고 모든 면에서 실제에 깊이 진입할 수 있길 바란다. 내가 직접 말하지 않는다면, 네가 너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버리고 너를 내게 맡겨 쓰도록 할 수 있겠느냐? 이것이 내가 요구하는 실제가 아니란 말이냐? 누가 내 말의 의미를 알 수 있겠느냐? 나는 너희가 내 말을 오해하거나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나의 행정 법령을 거스르는 일이 없도록 더는 걱정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진입하여 내 말의 본질을 깨닫기를 바란다. 나는 너희가 내 앞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지배에 맡기겠다’고 세운 뜻과 같이, 더는 자신의 앞날을 위해 생각하지 말고 내 말에서 너희에 대한 나의 뜻을 알기를 바란다. 나의 집에서 굳게 선 모든 사람은 마땅히 자신의 능력을 다하여 내가 땅에서 하는 마지막 사역을 위해 자신의 가장 훌륭한 것을 바쳐야 한다. 너는 진정으로 이렇게 실천하기를 원하느냐?』(<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4편>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하나님께 감동받은 나머지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제 곁에 계신 것을 느꼈죠. 마치 마주 앉아 저에게 물어보시는 것 같았습니다. “네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맡기고 하나님 지배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되겠느냐?” 저는 베드로를 떠올렸습니다. 베드로는 평생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족게 하고자 노력했죠. 결국에는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고,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한 나머지 그분을 위해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힘으로써 굳세고 아름답게 증거하고, 의미 있는 일생을 살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과거에 저는 친구의 아무 의미 없는 말 한 마디에 젊음과 건강을 희생해 가며 남들에게 우러름을 받으려고 필사적으로 명예와 이익, 지위를 추구했는데, 스스로 고통스럽게 생활했죠. 하나님께서 그 많은 사람 가운데서 저를 택하시고, 또 저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원해 주신 덕분에 저는 복이 있게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 음성을 듣고, 직접 하나님의 양육과 목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커다란 구원이죠! 말세에 전능하신 하나님은 많은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그건 바로 사람을 정결케 하고 구원해서 사탄 성품을 벗어 버리게 하고, 사탄 권세의 속박과 올가미에서 철저하게 벗어나 다시는 사탄에게 패괴되어 고통받지 않게 하고, 마지막에 하나님의 나라로 사람을 이끌어 들어가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시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고심을 저버릴 수가 없었기에 열심히 하나님을 믿으며 진리를 추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남은 평생을 명예와 부도 없고 아무것도 없이 살더라도 당신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 피조물의 본분을 다하겠습니다.’
나중에 저는 회사를 아들에게 맡기고, 드디어 과거 생활에 완전히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건강도 정상으로 회복되었고요. 얼마 후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기 시작했고 또한 하나님이 마련하신 사람과 일, 사물을 체험하는 가운데 진리를 구하고 공과를 배우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러면서 전에는 느껴 보지 못했던 편안함과 평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