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다시는 은혜에 얽매이지 않을 거예요
제가 아홉 살 되던 해, 아버지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니는 저희 5남매를 데리고 어렵게 생활하셨죠. 저희를 가엾게 여기신 숙모가 자주 음식과 필요한 물건을 가져와서 도와주셨는데, 그런 걸 받을 때마다 어머니는 저희를 데리고 숙모에게 여러 번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호의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반드시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 양심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남들에게 은혜를 모른다고 손가락질 받아서는 안 된다고 저희를 가르치셨습니다. 비록 생활은 어려웠지만 어머니는 신세 진 걸 갚으려고 집에 있던 몇 안 되는 물건들을 숙모에게 나눠 주곤 했죠. 커서 보니까 사람들은 이런 말을 자주 하더군요. “저기, 아무개는 제일 어려울 때 남들한테 도움을 받았다가 몇 년 후에 잘돼서 보답했대.”, “누구는 전에 다른 사람 도움을 받았는데도 양심도 없고 은혜도 몰라. 배은망덕한 인간 같으니.” 저도 점점 이런 관점을 따르게 되면서 사람이라면 은혜는 반드시 보답해야지 안 그러면 양심이 없는 거고, 남들에게 미움받고 업신여김을 당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뒤로 비록 처신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지만,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전통 사상은 마음에 깊이 심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상 관점을 따르며 사느라 저는 원칙을 어기며 본분을 이행했고, 그 결과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해서 과오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때는 2021년 8월이었습니다. 교회를 정리하라는 사역지침이 내려온 뒤, 교회에서는 사람을 분별하는 방면의 진리를 집중적으로 교제했고, 제 시누이인 팡링(方玲)이 불신파로 규정되었습니다. 이런 결과를 마주한 저는 전혀 놀랍지 않았습니다. 팡링은 오랜 기간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자주 교회 생활을 방해하고 교란했거든요. 매번 예배를 드릴 때면 끊임없이 이러쿵저러쿵 남들 흉을 보고, 하나님 말씀만 읽었다 하면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습니다. 말씀을 다 읽어도 아무것도 교제하지 못했고요. 자기 관념에 맞지 않은 일을 만나면 진리도 구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지도 않은 채 사람과 일을 물고 늘어지며 따지고 궤변을 늘어놓았죠. 예배 시간에 리더가 방해와 교란을 일삼는 몇몇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교제했더니 그 말을 당사자들에게 고스란히 일렀습니다. 그 바람에 그 사람들은 리더가 자신들을 못살게 군다는 편견을 가지게 되었고요. 리더는 팡링이 사람들 사이를 이간하고 교회 생활을 방해하고 교란한 일을 본인에게 교제하고 해부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팡링은 자신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는 사실을 말한 건데 그게 왜 교회 생활을 방해하고 교란한 것이냐며 투덜댔습니다. 한번은 예배 때 제 올케에 대해 분별하는 교제를 했는데, 올케는 불신파에다 인성도 악한 것으로 드러나서 서둘러 교회에서 제명해야 했습니다. 그랬더니 팡링은 예배가 끝나자마자 한 자매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저희가 올케를 제명했다는 소식과 함께 소극적인 말을 덧붙였고, 그 바람에 자매는 내적 상태에 교란을 받았습니다. 저는 얼른 팡링을 찾아가 교제했습니다. 교회에서 사람을 제명하거나 출교할 때는 그 사람에게서 보이는 일관적인 태도를 근거로 한 것이고, 하나님 집은 어느 한 사람이 결정권을 쥐고 있는 게 아닌 진리가 다스리는 곳이라고 했죠. 그리고 올케가 제명당할 정도까지 온 것은 모두 올케가 인성이 악한 데다 자꾸 교회 생활을 방해하고 교란했기 때문이고, 형제자매들이 여러 번 교제하며 도와줬는데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또 팡링이 그렇게 하는 것은 소극성을 퍼뜨리고 죽음을 퍼뜨리는 것이고, 교회는 진리와 공의가 다스리는 곳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라고도 폭로했습니다. 그런데 팡링은 울면서 뜻밖의 소리를 하더군요. “교회 일은 네가 결정하는 거 다 알고 있어. 네가 출교시키라고 한 사람은 다 출교되는 거잖아.” 팡링이 억지를 부리니 정말 난감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팡링이 전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불신파라고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팡링에 대한 제명 자료를 정리하려니 망설여졌습니다. ‘팡링은 나랑 같이 하나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이고, 지금까지 같이 예배드리고 복음을 전했어. 게다가 마음도 따뜻해서 내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최선을 다해서 도와줬어. 특히 2013년 남편이 아팠을 때 내가 안심하고 본분을 이행할 수 있게 항상 남편을 돌봐 주고, 밭일도 봐 주고, 집안일도 자주 도와줬어. 그이가 떠나고 갖가지 집안 문제로 소극적인 상태로 지낼 때는 매일 저녁에 날 찾아와서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고 욥의 체험도 교제해 줬고 말이야. 팡링이 옆에서 도와준 덕분에 내 내적 상태가 많이 좋아졌어. 가장 힘든 시기에 생활 면에서도 내게 도움을 주고, 하나님 말씀을 읽어 주면서 위로하고 격려도 해 줬지. 팡링이 나한테 잘해 준 걸 다 기억하고 있는데 그 은혜에 보답은커녕 팡링의 제명 자료를 정리하게 생겼네. 팡링이 이걸 알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은혜도 모르고 양심도 없다고 하지 않을까? 몇 년 동안 팡링이 날 위해 한 일은 모두 오빠, 올케, 또 언니들도 눈여겨봤어. 주변 이웃들도 팡링이 친자매보다도 나한테 더 잘해 준다고 했고 말이야. ‘어린 양은 엎드려서 감사하며 젖을 먹고, 새끼 까마귀는 자라서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고 했지. 동물도 은혜는 반드시 갚는데 나한테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에게 너무 빡빡하게 굴면 사람들이 배은망덕하다고 나를 버리고 고립시키지 않을까? 그럼 난 집안에서 버림받는 거잖아?’ 이렇게 생각하니 무척 초조하고, 불안하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교회 이익과 내게 은혜를 베푼 사람 사이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시달리느라 정말 고통스러웠죠. 무척 난처해하고 있을 때, 상부의 설교 교제 내용을 보게 됐습니다. “남아서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인성이 특별히 악한 사람이 아닌 한, 복음 전도 방면에 소질이 있고, 전도하기도 원하는 그런 사람은 남겨 두어야 합니다.”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번뜩 떠올랐습니다. ‘맞아. 팡링은 진리를 사랑하지도 추구하지도 않지만, 전도하기 좋아하고 성과도 좀 있었어. 지금은 복음을 확장하는 중요한 시기라 전도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팡링을 교회에 남겨 두면 굳이 제명하지 않아도 되잖아? 그러면 팡링한테 원한을 살 일도 없고, 오빠네나 언니한테서도 양심 없단 소리도 안 들을 거야. 그러면 배은망덕한 사람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일도 없고 말이야.’ 그래서 팡링의 제명 자료를 정리하는 일은 보류되었습니다.
얼마 후, 자매들로부터 복음 대상자 두 명이 자질도 좋고,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 이해력도 좋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팡링의 형편없는 인성 때문에 그 두 사람이 팡링에게 반감을 품고 설교를 듣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도 팡링이 교회 생활을 교란해서 팡링과 같이 복음을 전하기를 꺼리는 사람도 있다고 얘기하더군요. 그 말을 들은 저는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팡링이 복음 사역을 교란한 일이라면 제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요! 저는 서둘러 하나님께 기도하며 죄를 인정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자들은 상부의 사역지침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방자하다. 그런 자는 ‘상부는 사역지침을 내리고, 우리는 교회에서 사역을 해. 우리는 어떤 말씀, 어떤 일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지는 바로 우리의 일이지. 상부는 그저 말씀하고 안배하실 뿐, 실제로 일하는 사람은 우리이기 때문이야. 사역을 우리에게 맡기기만 하면,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어떻게 해도 다 괜찮고, 어느 누구도 간섭할 자격이 없어.’라고 생각한다. 그의 일 처리 원칙은 바로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듣지만, 그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듣지 않는다.’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바로 진리이자 원칙이라고 생각하기에 그의 뜻에 부합하지 않으면 반항해 너와 공존하지 못한다. 상부의 말이 그의 뜻에 부합하지 않으면 좀 고쳐 버리며, 그의 동의를 얻어야만 하달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하달하지 못하게 한다. 다른 곳에서는 다들 상부의 사역지침을 원문 그대로 하달하는데, 그는 자신이 고친 사역지침을 자기 책임하에 있는 교회에 하달한다. 그런 자는 늘 하나님을 한쪽에 내버려둔 채, 사람들이 모두 그를 믿고 따르며 그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안달한다. 그는 마음속으로 어떤 부분에서 하나님이 그보다 못하니 자신도 하나님이어야 하고, 사람들이 모두 그를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런 성질이다. … 그는 순전히 사탄의 심부름꾼인데, 그가 사역을 하면 마귀가 권력을 잡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경륜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교란하는 자로, 영락없는 적그리스도이다!』(<말씀ㆍ3권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제3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정곡을 찌르며 제가 사역지침을 이행하지 않고 마음대로 일을 처리한 본질을 폭로했습니다. 사역지침에는 이미 드러난 여러 종류의 악인, 불신파, 적그리스도에 대해 리더 일꾼은 즉시 교회에서 제명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리더 일꾼으로서 저는 무조건 순종하고 그대로 따라서 신속하고 엄격하게 적그리스도, 악인, 불신파를 교회에서 제명해야 합니다. 형제자매들을 잘 보호해서 형제자매들이 미혹되거나 교란되는 일 없이 조용한 환경에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고, 진리를 추구하며 본분을 이행할 수 있도록 해야 했죠. 그런데 저는 팡링이 불신파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과거에 저를 도와준 그녀를 제명시키면 배은망덕한 사람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까 봐 사역지침을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팡링이 복음 전도를 할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그녀를 감싸고 두둔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돌아봤습니다. ‘나는 왜 감정에 이끌려 그녀가 처벌을 모면하도록 감싸고 두둔했을까? 그건 바로 은혜는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는 전통 사상이 내면에서 나를 지배하고 속박했기 때문이야. 남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기려고, 남들로부터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인간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교회 이익은 안중에도 없이 팡링을 남겨 두면 교회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도 생각하지 않은 채 대놓고 사역지침을 위배했어. 자료를 정리해서 제명 신청을 하지 않은 것도 모자라서 팡링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안배했지. 그랬더니 팡링의 형편없는 인성 때문에 복음 대상자 두 명이 더 이상 참도를 알아보려 하지 않았어. 이게 다 내가 팡링을 감싸서 벌어진 일이야. 그런 행동의 성질은 사역지침을 위배하고 독자적으로 행동한 거고, 교회의 정리 사역을 방해하는 거야. 나는 직권을 이용해서 교회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불신파를 감싸고 두둔했고, 악인에게 악행을 저지를 조건을 제공해서 사탄의 심부름꾼 노릇을 했어. 내가 바로 영락없는 거짓 리더였구나!’ 제가 얼마나 큰 악행을 저질렀는지 깨닫자 두렵기도 하고, 후회도 됐습니다. 저는 얼른 사람들에게 팡링의 평가를 부탁했습니다. 평가서를 받아 보니 팡링은 복음 전도 성과에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사람들 사이를 이간하고, 말을 옮겨서 싸움을 붙이고, 소극성을 퍼뜨리는가 하면, 잇속을 잘 챙겨서 본인에게 부족한 게 없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물건을 보면 자기 손에 넣으려고 했더군요. 평가서들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제가 팡링을 감싸는 악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깊이 자책했습니다. 정에 이끌려 행동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서둘러 팡링의 제명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형제자매들의 동의와 서명이 필요했는데, 역시나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오빠 부부나 언니가 자료를 보고 어떻게 생각할까? 올케가 제명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팡링을 제명하려 하면 다들 양심도 없다고 날 욕하고 외면하지 않을까?’
저는 내적 상태에 맞춰 하나님께 기도로 구하고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일을 할 때면 항상 자신의 마음가짐이 올바른지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요구대로 행할 수 있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정상인 것이다. 이것이 최소한의 기준이다. 네가 자신의 마음가짐을 살펴 올바르지 못한 속셈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할 수 있다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옳은 사람이 된 것이다. 이는 너와 하나님의 관계가 이미 정상적이며, 네 모든 행동이 너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위한 것임을 의미한다. 무슨 일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며 감정이나 개인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일 처리 원칙이다. … 다시 말해, 마음에 하나님이 있고,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개인의 앞날을 생각(육적인 것을 생각함을 가리킴)하지 않는다면, 또 생명 진입에 부담을 갖고 온 힘을 다해 진리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한다면, 네가 추구하는 목표는 올바른 것이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정상인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잡는 것은 영적 노정에 진입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 손에 있고 하나님이 예정한 것이라 개인이 바꿀 수 없지만, 네가 온전케 될 수 있을지, 하나님께 얻어질 수 있을지는 모두 너와 하나님의 관계가 정상적인지에 달려 있다. 어쩌면 너에게 연약하고 패역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너의 관점이 옳고 마음가짐이 바르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고 정상적이라면 너는 하나님께 온전케 될 자격을 갖춘 것이다. 그러나 너와 하나님의 관계가 올바르지 않고 그 관계가 육이나 가정을 위한 것이라면, 네가 얼마나 노력하든 전부 헛수고이다. 너와 하나님의 관계가 정상적이면 모든 것이 잘 풀리게 되어 있다. 하나님은 다른 것은 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믿는 너의 관점이 올바른지만 본다.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대체 누구를 믿는지, 누구를 위해 믿는지, 왜 믿는지 등을 꿰뚫어 보고 관점을 바로잡아 실행할 수 있다면, 너의 생명은 성장할 것이고 반드시 정상 궤도에 진입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과의 관계가 비정상적이고 하나님을 믿는 관점이 치우쳐 있다면, 모든 것이 허사이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믿어 봤자 어떤 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너와 하나님의 관계는 어떠한가>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깨달았습니다. 사람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면 우선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고, 하나님 말씀에 맞게 처신하고 행동하고 모든 걸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패괴 성품에 따라, 그리고 자신의 명예와 지위, 육적인 이익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지키려 한다면 하나님은 이를 인정하지 않죠. 저는 팡링을 제명하면 그녀가 양심 없다며 저를 원망하고, 또 가족들로부터 배은망덕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버림받고 고립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들에게 계속 좋은 이미지로 남으려고 하다 보니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남들 앞에서 아무리 잘해도, 남들이 아무리 나를 떠받들어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기 때문이죠. 저는 인심을 쓰기 위해 교회의 이익을 희생했는데, 이는 하나님 성품을 거스르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에 하나님 말씀에 따라 행동해야 하고,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감찰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시는 인간관계를 지키기 위해 사역지침을 위배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가 어떻든, 설령 저를 버리고 상대해 주지 않더라도 저는 팡링을 폭로해서 진리를 실행해야 합니다. 팡링은 불신파에다 교회 생활을 자주 교란했습니다. 제명당하는 것은 본인 탓이니 다른 사람을 원망해선 안 되죠. 오빠 부부와 언니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므로 그들에게 진리를 교제해 주고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 후 팡링의 태도를 오빠 부부와 언니에게 읽어 주었더니 다들 저를 원망하기는커녕 그런 사람을 남겨 두었다가는 하나님 이름을 욕되게 할 뿐이라며 마땅히 출교해야 한다고들 하더군요. 게다가 오빠 부부도 팡링이 보였던 불신파의 모습들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이런 결과를 보면서 속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고, 또한 진리를 실행함으로써 얻게 되는 기쁨과 평안을 느꼈습니다.
얼마 후 팡링의 제명 통지서가 내려왔습니다. 팡링에게 통지서를 읽어 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또 약간 망설여졌습니다. ‘이 자료들은 내가 정리한 건데 팡링이 들으면 나를 얼마나 원망할까! 그러면 앞으로 우리 둘은 어떻게 지내야 하나? 제명당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운데 내가 가서 통지서를 읽어 주는 건 상처에 소금 뿌리는 격이잖아? 그러지 말고, 통지서를 읽는 대신 가볍게 본인의 행위만 몇 가지 얘기해서 자기가 제명당했다는 사실만 알게 해도 되겠지. 그러면 나중에 둘이 마주치더라도 그렇게 민망하지는 않을 거야.’ 팡링을 만나러 갔더니 제명당한 일 때문에 얼굴이 반쪽이 되고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습니다.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던 저는 눈 딱 감고 통지서를 읽어 주었습니다. 팡링이 행여나 통지서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봐 팡링을 폭로하는 내용과 성질을 규정한 내용은 건너뛰고 읽었죠. 그 일이 있은 후 팡링을 볼 때마다 면목이 서지 않는 것 같아서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왜 그런지 저도 알 수가 없었죠. ‘본인이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행동했으니까 제명된 일은 자업자득이 분명해. 그런데 왜 나한테 이런 내적 상태가 생기는 걸까?’ 그 후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았습니다.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논조는 중국 전통문화 중에서 사람의 덕행을 평가하는 매우 전형적인 기준이다. 사람의 인성이 어떤지, 덕행이 어떤지를 판단하는 기준 중 하나는 바로 그가 남에게 은혜를 입고 도움을 받은 후 보답하는지, 은혜를 반드시 보답하는 사람인지를 보는 것이다. 중국의 전통문화나 인류의 전통문화에서, 사람은 은혜에 반드시 보답하는 것을 덕행 판단의 중요한 기준으로 여긴다. 은혜에 보답할 줄 모르는 자가 있다면, 그는 배은망덕한 사람인 것이다. 그는 양심이 없는 사람, 사귈 가치가 없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며, 사람들에게 멸시와 혐오, 버림의 대상이 될 것이다. 반면, 어떤 사람이 은혜에 보답할 줄 안다면, 즉 남에게 은혜를 입거나 도움을 받은 후에 그것을 잊지 않고 힘닿는 데까지 자기 방식으로 상대에게 보답한다면, 양심과 인성을 갖춘 사람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이 다른 이에게 이득을 얻고 도움을 받은 후 은혜에 보답하지 않거나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감사의 뜻을 표한 후 더는 어떤 행동도 보이지 않는다면, 은혜를 베푼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마음이 불편하지 않겠느냐? ‘이 사람은 도와줄 가치가 없구나. 좋은 작자는 아닌 것 같아. 내가 그렇게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저런 반응이라니, 정말이지 양심도 인성도 없는 사람이야. 사귈 가치가 없구나.’라고 생각하지 않겠느냐? 그가 앞으로 그런 부류의 사람을 또 만나면 도와주겠느냐? 적어도 도와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7)> 중에서),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생각과 관점, 도덕 준칙에 영향을 받았다. 설령 은혜를 베풀어 준 사람이 악인이나 나쁜 사람일지라도, 자신에게 악행이나 나쁜 짓을 시킬지라도 양심과 이성에 등 돌리면서까지 맹목적으로 순종하며 보은의 목적을 이루었으며, 이로 인해 비참한 결과가 수도 없이 벌어졌다. 많은 사람이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도덕 준칙에 영향을 받고 속박되며 통제되고 결박되어 무턱대고 그릇된 보은의 관점을 견지하고, 나아가 악인의 조력자가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너희는 나의 이 교제를 통해 이러한 일들에 관해 분명히 알고, 이런 행동을 어리석은 충성으로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행동은 선을 넘는 처신으로, 어떤 분별도 없이 맹목적으로 보은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다. 여론의 질책이나 사람들의 정죄가 두려워 억지로 자신의 일생을 바쳐 보은하고, 심지어는 목숨을 바쳐 은혜를 갚는 것은 그릇되고 터무니없으며 어리석은 행동이다. 전통문화 중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말은 사람의 생각을 속박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삶에 불필요한 번뇌와 짐을 안겨 주며, 사람의 가정에 고통과 부담의 무게를 더한다. 숱한 사람이 은혜를 갚기 위해 크나큰 대가를 치렀다. 그들은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논조를 사회적인 책임, 자신의 본분으로 여기며, 심지어는 평생 은혜를 갚는다. 그러면서 그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 이런 행동이 어리석고 황당하지 않으냐? 이는 사람의 어리석음과 무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어떻게 말하든,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덕행의 논조가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기는 해도 진리 원칙에는 부합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과는 완전히 어긋난다. 이는 그릇된 관점이자 행동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7)> 중에서) 하나님께서 폭로하신 말씀은 전혀 틀린 게 없었습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한 사람 인성의 좋고 나쁨을 평가하는 전형적인 기준은 바로 그 사람이 은혜에 반드시 보답하는 사람이냐 아니냐였습니다. 누군가 나를 도와준 적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내게 은혜를 베풀었으니 나는 그 사람에게 보답해야 하고, 그렇게 해야 좋은 사람입니다. 안 그러면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비양심적이고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받습니다. 사회 환경과 학교 교육의 주입과 영향으로 사람들은 은연중에 은혜는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는 사상에 얽매여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으면 무조건 보답해야 하고, 내가 은혜를 갚는 대상이 어떤 사람인지, 그가 가는 길이 바른길인지 아닌지,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이 진리에 부합한지는 분별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은혜를 갚느라 평생을 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은혜를 갚기 위해 남을 위해 나쁜 짓까지 저지르면서 남에게 이용당하는 도구가 되어 평생 고통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저희에게 은혜는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고,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평생 그것을 기억해서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셨고, 주변 사람들도 이를 기준으로 한 사람 인성의 좋고 나쁨을 평가했습니다. 저 역시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 “당신이 나를 존중해 준다면 나는 그 열 배로 당신을 존중하겠다.”, “물 한 방울의 은혜라도 넘치는 샘물로 보답하라.” 등 대를 이어 전해진 이런 사상 관점에 따라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으면 그것을 가슴에 새기고, 보답할 기회를 찾았고, 남에게 은혜를 입었는데 갚지 못하면 죄책감이 들고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 사람에게 면목이 없기도 하고, 남들에게 배은망덕한 인간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걱정했습니다. 팡링 일이 바로 그랬습니다. 팡링은 불신파이므로 마땅히 제명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별했지만, 전에 팡링에게 도움을 받은 일 때문에 원칙대로 팡링을 제명했다가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팡링을 감싸고 두둔함으로써 신세를 갚았습니다. 오빠 부부와 언니에게 팡링의 제명 자료를 보여 줘야 했을 때는 배은망덕하다는 말을 들을까 봐 그들을 마주하기가 두려웠습니다. 팡링에게 통지서를 읽어 줄 때는 팡링의 초췌한 모습을 보자 자책감이 들어서 심각한 부분은 건너뛰고 팡링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서만 살짝 읽고 넘어갔고, 팡링이 제명된 후에는 그녀를 마주할 수가 없었죠. 분명 그녀가 스스로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바른길을 가지 않아서 도태되었는데도 제가 오히려 그녀에게 미안한 생각을 가졌습니다. 전에 그녀가 저를 도와줬던 일은 마치 족쇄처럼 저를 옭아맸고, 저는 거기에 짓눌려 헉헉댔습니다. 은혜는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는 전통 사상의 속박 아래서 옳고 그름도 분별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진리를 실행하는 일은 더더욱 어려웠습니다. 좋은 명성을 얻기 위해, 남들로부터 배은망덕한 인간이라고 참소받지 않기 위해 저는 선악도 분별하지 못한 채 무턱대고 신세를 갚았습니다. 일 처리에 조금의 원칙도, 최소한 넘지 말아야 할 선도 없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짓을 저질렀습니다. 저는 이제 남들이 아무리 제 행동을 옹호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며 칭찬한다고 해도, 저는 교회 이익을 팔아먹음으로써 제 신앙 인생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이건 너무나 심각한 결과입니다! 실제 체험을 통해 전통문화는 바로 사탄이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시키는 도구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릇된 사상에 속박되고 얽매여서 진리임을 알고도 실행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더 이상 사탄 철학을 따르며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또 다른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전통문화의 관점은 반드시 분별해야 한다.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말의 골자는 ‘은혜’에 있다. 여기에서 ‘은혜’를 어떻게 봐야겠느냐? 이는 어떤 측면의 은혜겠느냐? 어떤 성질의 은혜겠느냐?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 이런 문제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절대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는 말에 속박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사람의 관념에서 ‘은혜’란 무엇이냐? 작은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네가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누군가가 너를 도와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네가 피죽도 못 먹고 힘들어하고 있을 때 네게 밥 한 그릇을 주는 것, 갈증으로 죽을 것 같을 때 물 한 병을 주는 것,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한 번 부축해 주는 것, 이런 것들이 전부 은혜에 속한다. 한편, 큰 은혜는 네가 심각한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누군가가 너를 구해 주는 것이다. 이는 목숨을 구해 준 은혜에 속한다. 네 목숨이 위험에 처했을 때, 누군가가 너를 도와 죽음에서 구해 준다면, 이는 목숨을 구해 준 것과 같다. 이런 것들이 모두 사람이 생각하는 ‘은혜’이다. 이런 은혜는 물질적이고 사소한 은혜의 범주를 넘어선, 크나큰 은혜에 속한다. 이는 금전이나 물질로 가늠할 수 없는 것으로, 감사의 말 몇 마디로는 상대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수 없다. 그럼 이런 식의 판단이 정말 정확하겠느냐? (정확하지 않습니다.) 왜 정확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냐? (사람은 전통문화에 근거해 이 일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의 대답은 도리이고 이론이다. 옳은 것 같지만, 사실의 본질과는 부합하지 않는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7)> 중에서), 『이제 사람들 가운데서 소위 ‘은혜’와 관련된 일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예를 들어, 한 거지가 굶주림으로 눈 덮인 땅에 쓰러져 있다고 해 보자. 마음씨 좋은 사람이 그를 구해 자기 집으로 데려간 후 먹을 것, 입을 것을 주고 그를 거둬 그 집에서 살면서 그 집 가족을 위해 일하게 했다. 그 거지가 스스로 원했든, 아니면 보은을 위해서였든,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람이 그를 구해 준 일을 은혜라고 할 수 있느냐?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작은 동물들조차 서로 돕고 구해 주는데, 사람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쉬운 일이다. 이는 인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이룰 수 있는 일이다. 또한 이는 인성을 갖춘 사람이 마땅히 다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자 의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람이 그것을 은혜라고 여긴다면, 작은 일을 너무 확대 해석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것이 적절하겠느냐? 예를 들어, 흉년이 들어 많은 사람이 굶주리고 있을 때, 한 부자가 어떤 가난한 집에 쌀 한 포대를 주어 그 집 사람들이 난관을 벗어나게 해 줬다고 해 보자. 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할 최소한의 도의적인 도움 아니겠느냐? 그는 그저 식량을 좀 주었을 뿐,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음식을 나눠 주고 자기가 대신 굶주림을 겪게 된 것은 아니다. 이를 은혜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다할 수 있는 사회적 책임이나 의무, 사람의 본능으로 이루고 해내야 하는 것, 남에게 이로움과 도움이 되는 간단한 일은 결코 무슨 은혜가 아니다. 그것은 그저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적당한 때, 적당한 장소에서 마침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었다면 이는 정상적인 현상이자, 인류의 일원으로서 마땅히 다해야 할 책임이다. 이는 그저 하나의 책임이자 의무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을 때 이러한 본능을 주었다. 이 본능은 무엇이냐? 사람의 양심과 이성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7)>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고 난 뒤,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라는 말 가운데서 계속 저를 얽매고 속박했던 이 ‘은혜’라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곤란에 처한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그 사람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 자신의 능력이 닿는 범위에서 서로 도와주는 것, 이것은 사람이 마땅히 짊어져야 할 사회적 책임으로, 그런 걸 은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어려울 때, 팡링이 저를 도와 아픈 남편을 돌봐 주고 저희 집 농사일을 봐 준 것은 인지상정이고 사람 사이의 상호 도움인 것입니다. 하물며 팡링은 제 큰시누이니까 동생 집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누나로서 힘닿는 대로 도와주는 것은 매우 정상이지 저에게 은혜를 베푼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제가 소극적인 상태로 지낼 때 팡링은 제게 교제를 해 주며 저를 도와주고 붙들어 주었습니다. 이것도 형제자매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그걸 가지고 은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팡링 집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저도 똑같이 최선을 다해 도와줬을 거고, 팡링이 소극적이고 연약해졌을 때도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을 읽고 교제해 주면서 붙들어 주었을 것입니다. 정상 인성을 갖춘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팡링이 저에게 해 준 이 모든 것을 은혜로 생각하고 자나 깨나 보답하려는 생각만 했습니다. 마치 팡링의 도움이 없었으면 제가 지금에 이를 수 없었을 것처럼요. 제가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건 사실 하나님 말씀의 도움과 인도 덕분이었죠.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저는 진리를 깨닫지 못해서 앞으로 남은 길을 어떻게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제가 가장 소극적이고 연약해졌을 때, 하나님은 여러 사람과 일, 사물을 마련해서 저를 도와주셨고, 하나님 말씀의 깨우침과 인도 덕분에 저는 곤란한 처지에서 벗어나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껏 제가 먹을 것, 입을 것 부족함 없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으로 살면서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시며 본분을 이행할 수 있었던 건 모두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정말 양심이 있다면 제가 가장 먼저 보답해야 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저는 반드시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잘못된 사상 관점을 따라 사느라 언제나 사람에 대한 정, 사람에 대한 사랑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누가 사소한 도움이라도 베풀면 절대 잊지 않으면서도 정작 저에게 모든 걸 공급해 주신 하나님께는 거역하고 대적했습니다. 원칙을 어기고 교회에 손해를 입히면서까지 다른 사람의 은혜에 보답했죠. 이런 제가 진짜 배은망덕하고 인성도 없는 것이죠. 이 점을 깨닫고 나니 진리를 깨닫지 못한 저 자신이 너무 가련했습니다.
저는 그 뒤로 또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한때 너를 도와주고 네게 은혜를 베풀어 주었으며, 네 인생이나 중요한 일에서 영향을 주었지만, 그의 인성이나 그가 걷는 길은 네가 추구하고 걸어가는 길과 맞지 않는다고 해 보자. 너와 그는 공통 관심사가 없으며, 너는 마음속으로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의미에서 그는 너와 취미도, 추구하는 바도 다르며, 인생의 길과 세계관, 인생관이 다르다고, 너희 둘은 완전히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그가 지난날 네게 준 도움을 너는 어떻게 대하고 처리해야겠느냐? 이는 현실적인 상황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럼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겠느냐? 이런 상황 또한 처리하기 쉽다. 힘닿는 데까지 그에게 물질적인 보답을 한 후, 두 사람의 길이 다르니 함께하지 않고 같이 걷지도 않는 것이다. 친구조차 될 수 없다면 그 후로는 교류할 방법이 없다. 교류할 방법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멀리해야 한다. 그 사람이 과거에 네게 은혜를 베풀어 주었다고 해도, 그는 사회에서 남을 속이고 남의 물건을 빼앗으며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너는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니, 네게는 그를 멀리할 이유가 충분하다. 어떤 사람들은 “그건 너무 비양심적인 행동 아닐까요?”라고 하는데, 이는 양심이 없는 게 아니다. 만약 그가 생활상의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를 도와주어도 되지만, 속박되거나 그를 따라 악을 행하고 양심에 어긋난 일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그가 너를 도와준 적이 있다고 해서, 또는 네게 큰 은혜를 베풀었다고 해서 평생 그의 우마가 될 필요도 없다. 네게는 그런 의무가 없고, 그에게도 그럴 자격이 없다. 너는 네가 좋아하는 사람, 올바른 사람, 너와 맞는 사람과 함께하고 교류하며 나아가 친구로 사귈 권리가 있다. 그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 이는 너의 권리이다. 물론, 너는 네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교제하거나 친구가 되는 것을 거절할 수도 있다. 그들을 위해 어떤 책임이나 의무를 다할 필요는 없다. 이 또한 네 권리이다. 네가 그런 사람들을 저버리기로 한 이상, 그와 교류하거나 그에게 어떤 책임, 의무를 다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 또한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처신할 때는 반드시 선을 지켜야 하며, 서로 다른 사람들을 서로 다른 태도로 대해야 한다. 악인과 어울리면서 물이 들어서는 안 되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들과 한 패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어떤 은혜나 정, 또는 사회적인 여론 등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입장과 원칙이 생긴다. 이는 네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말씀ㆍ6권 진리 추구에 관하여(상)ㆍ진리 추구란 무엇인가(7)> 중에서) 하나님 말씀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관한 원칙을 분명하게 제시하셨습니다. 과거에 자신에게 커다란 도움을 베푼 사람을 대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인품과 그가 걸어온 길을 근거로 해야 합니다. 만약 그가 옳은 사람이고, 그가 걸어가는 길이 옳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와 정상적으로 교류하고, 필요할 때 힘닿는 대로 도와주고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반면, 만약 우리를 도와줬던 사람이 바른길을 걷지 않고, 또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와 교류할 때 신중해야 하고, 그의 말과 행동의 성질을 분별해서 버려야 할 때는 버리고, 멀리해야 할 때는 멀리해야 합니다. 힘닿는 범위에서 물질적인 도움만 주면 됩니다. 만약 그가 하나님 믿는 사람인데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본분을 건성으로 대하고, 또 함부로 행동하고, 나아가 하나님 집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한다면 우리는 진리 원칙에 근거해서 책망하고 훈계해야 합니다. 만약 그래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진리 원칙을 견지해서 경고할 것은 경고하고, 제명할 필요가 있다면 원칙에 따라 제명해야 합니다. 절대 사탄 법칙에 기대 그 사람과 어울려 원칙을 어기는 짓을 하면 안 됩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사람을 대할 때 원칙도 없었고, 어리석고 무지한 짓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전통 사상에 얽매여 저도 모르게 사탄의 심부름꾼이 되어 교회 생활을 교란시켰죠.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데도 진리에 따라 살지 않으면 언제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 성품을 거스를 수 있습니다. 비록 팡링은 지금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저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베풀지만 저는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심으로써 올바르게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팡링이 저에게 잘해 준다거나 팡링의 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죠. 하나님께서 사람과 일, 사물을 동원해 저를 도와준 것이니 저는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본분을 잘 이행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사람이라면 은혜에 반드시 보답해야 하고,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줄곧 믿으며 그런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체험을 통해서 저는 사탄이 은혜에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는 이 전통 사상을 이용해 사람을 속박하고 사람의 사상을 옭아매기 때문에 사람은 시비를 혼동하고 일 처리에 원칙이 없어져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의 도구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사탄에 속한 것이 사람이 보기에 아무리 좋을지라도 그것은 진리가 아니며, 하나님 말씀만이 진리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사람이 시비를 분명히 가리고 정상 인성을 살아 낼 수 있게 도와주죠. 진리에 따라 살고, 하나님 말씀과 진리 원칙에 따라 사람과 일, 사물을 대해야 하나님 뜻에 맞게 행할 수 있고, 인격과 존엄성을 갖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