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책망과 훈계를 통해 얻은 것

한국 유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성품을 스스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반드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고난과 연단, 또는 책망과 훈계, 징계를 겪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을 다하며, 하나님을 무성의하게 대하거나 기만하지 않게 된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연단을 받아야 성품에 다소 변화가 보인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와 심판, 징계와 책망을 겪은 사람만이 감히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고 침착하며 진중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현재 말씀과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을지라도 관념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품이 변화된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한 사람이다> 중에서 중에서) 예전에 하나님 말씀에서 이런 구절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성품을 스스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반드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고난과 연단, 또는 책망과 훈계, 징계를 겪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을 다하며, 하나님을 무성의하게 대하거나 기만하지 않게 된다.” 그땐 잘 이해가 안 됐습니다. ‘사람의 성품이 왜 저절로 변화될 수 없다는 거지? 난 매일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보고, 예배도 잘 드리고 교회에서 어떤 본분을 주든 다 순종하는데, 그냥 죄짓지 않고 본분을 잘 이행하면서 말씀도 많이 보고 오래 믿으면 패괴 성품도 서서히 변하지 않을까? 왜 꼭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를 겪어야 하는 거지?’ 전 줄곧 이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몇 번 큰 훈계 책망을 받고 반성하면서 제가 사탄에 의해 너무 심하게 패괴됐고, 교만한 사탄 성품이 깊이 뿌리박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책망 훈계가 없인 자신을 알 수 없으며 정결케 되거나 변화될 수도 없습니다.

2016년 초에 저는 교회 리더를 맡게 됐습니다. 처음엔 부족한 게 많다고 생각해서 본분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며 많이 의지했습니다. 꿰뚫어 볼 수 없는 문제라도 생기면 사역자들과 교제하면서 물어보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받아들였습니다. 그땐 좀 겸손한 편이었습니다. 반년 정도 훈련하면서 원칙들을 알게 된 후에는 진리를 교제하면서 형제자매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서서히 거만해졌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전에 리더를 해본 경력이 없긴 해도 그만한 자질도 있고, 말씀도 잘 이해하니까 훈련 시간이 길어지면 더 잘할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중요한 사역 하나를 맡았고, 저는 더 으쓱해졌습니다. 제가 사역자 중에서 제일 어린 데다 하나님을 믿은 시간도 짧은데 그런 중요한 사역까지 맡은 걸 보면서 스스로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땐 정말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갔고 저보다 나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생각했으며 제가 누구보다 중요한 본분을 맡은 것 같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전 더 거만해져 갔습니다. 교회 사역을 의논할 때 사역자들이 다른 의견을 내도 제 의견만 고집했습니다. 속으론 ‘아니, 지금 말한 일은 내가 다 처리해 봤으니 원칙은 내가 더 잘 알지 않겠어? 난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은지 알고 있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끔 파트너 자매가 어떤 일을 놓고 좀 더 깊이 생각하면 짜증부터 났습니다. 그런 건 간단해서 쉽게 해결할 수 있으니 굳이 하나하나 교제하고 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일꾼들 모임에서도 그 자매의 의견이 형제자매들에게 수용되지 않는 걸 보고 자매를 더 얕보게 됐습니다. 자매가 교회에서 리더를 한 지는 저보다 오래됐지만, 능력은 저보다 못한 것 같았습니다. 한번은 그 자매가 저보고 본분을 질질 끈다며 사역 진도가 느리다고 했습니다. 전 인정하지 않고 따졌습니다. “자매님, 그런 식으로 말하면 좀 그렇죠. 이 사역은 자매님도 같이 했잖아요? 자매님 책임도 있지 않아요? 자신을 먼저 반성해야지, 왜 저한테 떠넘기고 그러세요?” 그렇게 말하고 전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나중에 리더가 제 태도를 알고는 너무 교만하다면서 나무랐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제가 진리를 거부하고 교만한 걸 말로만 인정하면서 그냥 넘어갔으며 제 본성을 알기 위해 반성하지는 않았습니다. 본분을 할 때도 목에 힘을 빼지 않았고, 제멋대로 했습니다. 그때 주위 몇몇 사역자들이 자질도 떨어지고, 실제 사역도 제대로 못 해서 교체됐는데 제가 교체될 것이라고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 교회에 없으면 안 될 사람이고, 중요한 사역까지 여러 개 맡고 있어서 제가 없으면 당장 저 같은 사람 찾기도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제가 교만함에 이성을 잃었을 때, 엄한 책망이 다가왔습니다.

하루는 형제자매가 쓴 체험 간증 글을 몇 편 살펴봤는데, 깊이가 없어 보여서 전 다른 사람과 상의하지 않고 그 글들을 삭제해 버렸습니다. 나중에 리더가 알고는 굉장히 화를 내면서 물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글들을 도대체 왜 삭제한 거죠? 사역자들과 교제나 의논은 했나요?” 그래서 저는 안 했다고 말하며 제가 보기에 그 글들이 깊이가 없어 보였다고 했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리더가 크게 책망하면서 “그 글들은 깊이가 좀 얕긴 해도 다 진실한 체험이고, 실제적인 깨달음이에요. 이런 게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좋은 체험 간증이에요. 자매님은 진리를 구하지도 않았고 제멋대로 했으며, 진리를 모르면서 의논도 없이 좋은 글을 함부로 삭제해서 형제자매가 하나님 사역을 체험한 간증을 묻어버렸네요. 이건 어리석은 자나 사탄이 하는 일이에요. 순전히 방해하고 교란한 거라고요!”라고 말했습니다. 전에도 책망과 훈계를 받은 적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심한 건 처음이었습니다. ‘어리석다’, ‘사탄이다’, ‘방해 교란이다’, ‘제멋대로다’ 이런 말들이 제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가슴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억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사역자와 의논하지 않았지만, 나중엔 다 알려 줬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폐부와 심장을 감찰하십니다. 제가 속으로 억울해할 때, 리더가 또 크게 책망했습니다. “자매님은 독단적이에요. 판단이 안 되는 부분은 주위에 묻거나 의논이라도 했어야죠. 그것조차도 안 하고, 정말 교만하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네요!” 다 맞는 말이라 어쩔 수 없이 수긍했습니다. ‘휴, 정말 나한테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 일을 처리하기 전에 의논했을 텐데. 상의조차 안 하고 멋대로 다 처리해버렸으니, 정말 교만하고 독선적이었네.’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리더가 이 일을 조사한 뒤, 제가 진리도 모르고 너무 교만하다면서 중요한 본분에 적합하지 않다고 교체해버렸습니다. 그때 전 모든 의욕을 상실했습니다. 이번 일로 리더가 제 밑바닥까지 다 봤을 거고, 절 진리도 추구하지 않는 데다 너무 교만해서 양성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것 같았습니다. ‘아, 이제 끝났다. 난 하나님 집에서 가망이 없겠구나.’라는 생각에 점점 더 소극적으로 변했고 오해만 쌓여갔습니다. 이제 전 사탄이나 다름없으니 구원을 받을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형제자매들도 절 안 좋게 볼 게 분명하니 진리를 추구해도 의미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때 전 억지로 본분을 이행했을 뿐 진리를 추구할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형제자매가 하나님의 뜻을 교제해 줬지만, 저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그 형제자매도 저보고 그런 소극적인 상태로 본분에 임하는 것도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며 계속 그런 식으로 하면 하나님께 도태될 것이라며 책망 훈계했습니다. 그제야 가슴이 철렁하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고 진리를 찾고 반성했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난 왜 책망 훈계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지?’ 반성하면서 보게 된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책망 훈계를 받으면 소극적으로 변하고, 본분 이행에도 의욕을 잃으며, 충성심도 사라진다. 어찌 된 일이냐? 하나는 자신이 한 일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 없어 책망 훈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교만하고 잘난 체하며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본성으로 인한 것이다. 또 하나는 책망 훈계의 의의를 이해하지 못해 책망 훈계를 받으면 사람의 결말이 정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정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하나님께 좀 충성하면 책망 훈계를 하지 말아야 하고, 훈계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공의가 아니라고 잘못 생각한다. 이러한 오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충성’할 엄두를 못 낸다. 결국은 사람이 너무나 간사해서 고통을 전혀 받지 않고 손쉽게 복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 성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공의로운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도, 하지 않기 때문도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이 하는 일이 공의롭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이 하는 일이 자기 뜻에 맞지 않거나 인지상정에 맞지 않으면 하나님이 공의롭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이 진리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라는 것도 전혀 알지 못한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이 사람의 행위로 사람의 결말을 정하는 의미> 중에서) 이 말씀을 보고 나서 깨달았습니다. 제가 그렇게 의기소침했던 건 제 본성이 너무 교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 제가 하는 일의 성질도 모른 채 그냥 작은 실수 하나에 처분이 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책망 훈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랫동안 소극적인 마음으로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했습니다. 말씀을 보면서 스스로 물었습니다. ‘내가 정말 순간의 실수 때문에 이렇게 심한 책망을 받은 걸까? 하나님 집에선 책망을 해도 사람의 본성과 일관된 행동에 따라 원칙적으로 하잖아. 리더가 나를 책망한 것도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그러면 나에게 엄한 책망과 훈계를 한 건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랬던 걸까?’

그 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네 안에 정말 진리가 있으면 자연히 바른길로 가게 되고, 진리가 없으면 쉽게,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 네 내면에 교만함이 있다면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으려고 해도 안 된다. 대적할 수밖에 없다. 너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교만한 본성의 지배를 받은 것이다. 교만함은 네가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게 하며, 너 자신을 추켜세우고 모든 일에서 스스로를 뽐내게 한다. 마지막에는 네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스스로를 증거하고, 자신의 뜻과 생각, 관념에서 나온 것들을 진리로 여겨 받들게 한다. 교만한 본성이 사람을 지배하여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지르게 했는지 보아라! 사람의 악행을 해결하려면 반드시 먼저 사람의 본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성품 변화 없이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진리를 추구해야 성품이 변화될 수 있다> 중에서) 설교집에서도 은사가 있고 자질이 좀 있다고 다른 사람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남의 말은 듣지도 않고, 자기만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교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라는 교통을 봤습니다. 돌이켜보니 전 하나님을 믿으면서 진리를 추구하는 데에 집중하지 않았고, 자질과 교만한 성품으로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스스로 언변도 좋다고 생각했으며, 본분에서 효과가 조금이라도 생겨서 리더가 좋게 봐주면 제가 뛰어난 사람이고 사역도 잘하며 다른 사역자들보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파트너 형제자매는 안중에도 없고 제 것만 고집하면서 교만한 성품을 키워 갔습니다. 교회 사역을 대할 때도 가벼운 태도로 임했고 진리 원칙을 구하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과 같이 의논하지도 않고 그냥 제 생각과 뜻대로 다 처리했습니다. 결국 교회 사역에 방해만 됐습니다. 그동안 전 제가 자질도 좋고 진리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보니까 정작 제가 아는 건 약간의 이론뿐이었습니다. 진리의 실제가 없었고, 실질적인 문제를 진리로 해결할 줄도 몰랐습니다. 그러면서도 굉장히 교만했고 모든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했습니다. 전 교만한 나머지 이성을 잃었고 하나님도 안중에 두지 않았습니다. 리더가 사역을 조사하면서 제 문제가 다 드러나게 됐습니다. 과거 저는 줄곧 그렇게 본분을 해왔습니다. 주위의 형제자매들에게 유익함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계속 패괴 성품만 드러내서 제 눈치나 보게 했습니다. 그건 본분을 이행한 게 아니라 악행을 저지른 것이었습니다. 생각할수록 두려웠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교만한 성품으로 일을 하면 악을 저지르지 않고 하나님께 대적하고 싶지 않아도 뜻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습니다. 가만히 보면, 다른 형제자매들은 겉보기엔 저보다 자질이 부족해도 조심스럽고 신중한 자세로 본분에 임하고 진리를 구하며 남의 의견을 수용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전 교만해서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진리를 추구할 생각조차 없었습니다. 반성할수록 전 제가 진리를 추구하는 길로 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처럼 교만하고 독선적이며 하나님도 안중에 없는 그런 사람한텐 책망과 훈계, 본분 교체가 하나님의 보호이자 구원이었습니다. 아니었으면 제가 얼마나 더 많은 악을 저질렀을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출교당하는 지경까지 갔다면 그때 가서 후회해봤자 소용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서 정말 후회됐습니다. 지난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저는 하나님을 오해하고 경계하면서 소극적이고 건성으로 일했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본분을 잘 이행해서 과오를 만회하고 싶었습니다.

6개월 후 전 팀장으로 선출됐습니다. 그땐 교만한 본성 때문에 또 넘어지게 될까 봐 무서워서 본분에서 문제가 나오면 더 신중하게 대했습니다. 파트너 형제자매들과 늘 상의하고 교제하고 진리를 구하면서 교회 문제들을 해결해 나갔습니다. 이렇게 본분을 하니까 제 마음도 굉장히 편했고 형제자매들과도 더 화목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몇 달 후, 제 본분 효과가 좀 좋아지니까 은근히 기분이 좋아지면서 역시 난 인재란 생각이 들었고, 어디서 본분을 하든 금방 잘 해내는 것 같았습니다. 서서히 제 교만한 성품이 다시 고개를 든 것입니다. 형제자매들이 문제점을 리더한테 물어보자고 할 때면, 전 일단 짜증부터 났습니다. ‘그건 예전에 다 물어봤던 거 아닌가? 뭘 또 물어본다는 거지? 원칙은 내가 교제해 주면 충분해.’ 저는 그렇게 별다른 생각 없이 제가 이해한 걸 형제자매에게 알려 주면서 받아들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형제자매들은 안심이 안 됐는지 결국 리더에게 물어봤습니다. 리더가 실행 원칙을 교제했는데 제가 생각한 것과 달랐습니다. 전 순간 놀라며 문제가 생기기 전에 물어보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이 생긴 후에도 전 반성하지 않았고, 계속 교만하며 비이성적이었습니다. 형제자매가 본분에서 실수를 좀 하면 저는 고압적으로 책망했습니다. ‘이런 것도 제대로 못 하면 뭘 하겠어? 충분히 마음 쓰지 않아서 저런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형제자매들은 제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절 멀리하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어떤 자매는 제 눈치가 보여서 본분도 이행하기 싫다고 했습니다. 속으로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일만 닥치면 저도 모르게 교만한 성품이 튀어나왔습니다. 한편으론 예전에 실패했던 일들이 떠올라 좀 두렵기도 했지만, 진리를 구해서 해결하려고 하진 않았습니다.

하루는 제 마음대로 한 자매한테 중요한 본분을 맡겼는데, 한 형제가 걱정하면서 저한테 그 자매는 간사해서 중요한 본분에 맞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자매한테 문제가 있긴 하지만, 형제가 말한 만큼 심하진 않아. 세상에 패괴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고, 모든 게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라고 생각하며 그 형제의 충고를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저 그 자매와 교제하며 문제점만 조금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 자매는 말만 번지르르하게 했지 본분을 대충했고, 결국에는 하나님 집 사역에 심각한 손해를 입혔습니다. 리더가 그 일을 알고 저를 크게 책망했습니다. “형제자매가 알려 줬는데도 듣지 않고 조사도 안 한 채 멋대로 간사한 사람을 쓰는 바람에 이렇게 심각한 결과가 생겼어요. 이건 심각한 교란입니다. 자매님이 본분에 무책임해서 벌어진 일이에요. 진리도 없으면서 교만하기까지 하고 교체해야겠어요!” 이런 강한 책망을 들으니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았습니다. 리더는 많은 형제자매가 보는 앞에서 제 본분을 교체한다고 하며, 이건 방해하고 훼방 놓은 것이라며 몇 번이나 강조하면서 꼭 교체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전 이젠 정말 다 끝났고 분명 도태될 것이라는 생각에 진리 추구도 무의미하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전 교체되었고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잠자리에 누워도 그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났고, 한동안은 정말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즐겁게 본분하는 걸 보면 전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됐습니다. 전 의논도 안 하고 권고도 무시하며 간사한 사람을 써서 교회 사역을 심각하게 교란했으니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실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전 믿음의 길에서 막다른 길에 다다른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책망 훈계는 구원이지 도태시키는 게 아니란 하나님 말씀도 제겐 해당이 안 된다고 의심하면서 오해했습니다. 한번은 리더가 사역을 교제했습니다. 전 조용히 구석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리더가 제 이름을 부르더니 좀 발전이 있냐며 책망받고 소극적으로 변하진 않았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리고 진심이 담긴 말투로 저와 교제하며 아직 젊으니까 진리를 추구하고 성품 변화에 힘쓰라고 했습니다. 리더의 따뜻한 말이 제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됐습니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전 너무나 교만한 데다 본분을 무책임하게 건성으로 해서 하나님의 집 사역에 큰 손해를 입혔으니, 리더가 절 책망하고 교체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리더가 격려해 주시니까 하나님의 긍휼이 느껴지면서 감사했습니다. 그날 밤 눈물로 기도하면서 정말 잘 반성하고 진리를 구하면서 교만한 성품을 고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교만은 사람이 지닌 패괴 성품의 근원이다. 사람은 교만할수록 하나님을 더 쉽게 대적한다. 이 문제가 어느 정도로 심각하겠느냐? 사람에게 교만한 성품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안중에 없는 것은 물론이고 가장 심각할 경우 하나님조차 안중에 두지 않게 된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고, 늘 자신에게 진리가 있다고, 자신은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교만한 성품의 본질이자 근원으로,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교만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은 작은 일이다. 관건은, 사람의 교만한 성품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지 못하며, 언제나 하나님과 권력을 다투고 다른 이를 통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으며, 하나님을 사랑한다느니 하나님께 순종한다느니 하는 것은 더 언급할 가치도 없다. 교만하고 잘난 체하는 사람, 특히 이성을 잃을 정도로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추켜올리고 자신을 증거한다. 그런 자는 하나님을 가장 크게 대적하는 사람이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려면 먼저 교만한 성품을 해결해야 한다. 너의 교만한 성품이 철저히 해결될수록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더 커지며,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있어야만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고, 진리를 얻어 하나님을 알 수 있다.(하나님의 교통 중에서) 말씀의 드러내심을 통해 저는 제가 교만한 본성으로 일을 하는 게 단순히 패괴 성품을 드러내는 문제가 아니라, 중요한 건 마음에 하나님도 없는 안하무인으로 변해버려서 저도 모르게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게 된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본분을 이행할 때를 생각해 보면 저는 제가 똑똑하고 자질도 훌륭하다고 생각했으며 은사와 자질만 믿고 본분을 이행했습니다. 저 자신만 믿었으며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진리를 구하지 않았고, 마음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었습니다. 본분에 성과가 없었을 때는 그나마 얌전했지만, 원칙을 좀 파악하게 되고 본분 효과가 좀 보이니까, 그걸 자본으로 여기면서 제가 무엇이든 해낼 수 있고 사람 보는 눈도 있으며 모든 일을 꿰뚫어 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 교만하고 독선적으로 변해서 모든 일에 독단적이고 제멋대로 했습니다. 심지어 형제자매가 리더에게 물어보는 것도 막으면서 제 생각이 진리인 것처럼 행동하여 형제자매들이 강제로 순종하게 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서 보니 저는 교만한 성품으로 일하면서 형제자매들에게 상처와 압박감만 안겨 주고 교회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할 뿐만 아니라, 사탄의 앞잡이 역할을 했습니다. 리더가 제게 방해하고 교란했다고 한 말이 맞았습니다. 본분에서 교체된 것도 하나님의 공의로움이었습니다. 그제야 전 교만한 본성이 얼마나 무섭고 치명적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냥 뒀다가는 언제든지 악행으로 하나님께 맞서게 되고, 하나님 집 사역을 교란하고 방해하며 하나님 성품을 거슬러 도태되고 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교체된 후 본분의 다른 문제들도 하나둘씩 드러났습니다. 형제자매의 질책을 받고 뒷수습을 하면서 후회와 죄책감이 들었고 저 자신이 정말 미웠습니다. ‘난 왜 그렇게 교만했을까? 항상 내가 뛰어나 보이고, 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하나님을 흡족게 해 드린 건 얼마나 될까? 본분은 문제투성이에 엉망이고 방해와 교란만 했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좀 더 기도하고 구하거나 다른 사람과 교제하면서 신중을 기했더라면 그렇게까지 하나님을 대적하진 않았을 텐데….’

나중에 교만한 본성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 말씀을 봤습니다. 『사람은 성품을 스스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반드시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고난과 연단, 또는 책망과 훈계, 징계를 겪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 순종하고 충성을 다하며, 하나님을 무성의하게 대하거나 기만하지 않게 된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연단을 받아야 성품에 다소 변화가 보인다. 하나님 말씀의 폭로와 심판, 징계와 책망을 겪은 사람만이 감히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고 침착하며 진중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점은 하나님의 현재 말씀과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관념에 맞지 않을지라도 관념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말씀ㆍ1권 하나님의 현현과 사역ㆍ성품이 변화된 사람은 모두 하나님 말씀의 실제에 진입한 사람이다> 중에서 중에서) 이 말씀을 다시 보면서 교만한 본성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 형벌과 책망 훈계를 받아들이는 것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린 사탄한테 깊이 패괴됐기 때문에 혼자 하나님 말씀을 보고 반성해서는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패괴된 성품이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차례에 걸쳐 드러내시고 저를 책망하고 훈계하지 않으셨다면 전 계속 제가 옳은 줄 알고, 잘난 척하면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을 것이며 제 교만함과 사탄 성품이 그렇게 심각한지도 몰랐을 겁니다. 지금 제가 한 행동들을 되돌아보면 너무 후회되고 부끄럽습니다. 사실 생각도 하기 싫고 고개도 들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픈 교훈이 있었기 때문에 저의 교만한 본성에 대해 좀 알게 됐고, 제가 어떤 부분에서 쉽게 넘어지고 실패하는지 알게 됐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좀 갖게 됐습니다. 그리고 제가 진리의 실제가 없고, 본분을 할 때 진리를 구하는 마음도 없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교만했으며 교란하고 방해했습니다. 자질은 평범해도 착실히 본분을 이행하는 형제자매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고, 내세울 것도 없었습니다. 이걸 깨닫고 나선 본분을 이행할 때 제멋대로 하지 않고 겸손한 태도로 임하게 됐습니다. 또 의식적으로 저 자신을 내려놓고 부인하는 연습을 하면서 진리 원칙을 많이 구하고, 형제자매들의 생각에 귀 기울였으며 다 같이 의논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갔습니다. 가끔 교만한 본성이 나오거나 본분의 원칙을 어길 때면 의식적으로 저를 내려놓으면서 주위의 책망과 지적, 도움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렇게 하니 좋은 점이 많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진리를 깨달은 게 적고 통찰력이 부족했는데 형제자매들과 협력하면서 생각을 합치니까 일이 쉽게 해결되었습니다. 이렇게 본분을 하니 어느새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되면서 큰 문제나 실수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형제자매들이 지켜보니까 제 교만한 본성도 좀 제약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실행하니 제 마음도 훨씬 편안했고 교만한 성품으로 일을 하는 경우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어느 날 파트너 자매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지낸 지 2년이 다 되어 가네요. 예전에는 너무 교만하고 사람들에게 눈치를 줬는데, 지금은 전에 비해서 변화된 게 보여요.” 그 말을 듣고 좀 뭉클해졌습니다. 저처럼 교만한 사람에게는 이 정도의 변화도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두 번의 뼈아픈 책망과 훈계가 제게는 큰 도움이 되고 유익했습니다. 책망과 훈계가 없었다면 전 여전히 안중에 하나님도 없는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남아 있고, 벼랑 끝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책망과 훈계가 저한텐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이란 걸 마음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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