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에 대한 바리새인의 판단 및 바리새인에 대한 예수의 꾸짖음

2024.02.09

예수에 대한 바리새인의 판단

막 3:21~22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예수가 바리새인을 꾸짖다

마 12:31~32(중국어성경 직역)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함 받을 수 있으나 성령을 모독하는 것만은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 사람이 말로써 인자를 거스르는 것은 사함 받을 수 있으나 말로써 성령을 거스르는 것만은 이 세상에서도 다음 세상에서도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

마 23:13~15(중국어성경 직역) “위선적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라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천국 문을 닫고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위선적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라 너희는 과부의 재산을 빼앗고 가식적으로 길게 기도하는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더 큰 벌을 받으리라) 위선적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라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으려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얻게 되면 너희보다 배나 악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드는도다”

위의 두 부분의 말씀에는 서로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예수에 대한 바리새인의 판단’이라는 첫 번째 내용을 보자.

성경을 보면, 바리새인은 예수와 그가 행한 일에 대해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막 3:21~22)라고 평가했다. 예수에 대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판단은 다른 사람을 따라 말하거나 터무니없이 상상해 낸 것이 아니라, 예수의 행사를 직접 보고 듣고 내린 결론이다. 비록 그들이 정의를 견지한다는 간판을 내걸어 그 결론에 근거와 이유가 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보여졌을지라도, 예수를 판단하는 그들의 위세는 그들 스스로도 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고만장했다. 예수를 증오하는 그들의 광기 어린 기세는 그들의 야심과 그들이 지닌 사악한 사탄의 몰골,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들의 악독한 본성을 드러냈다. 그들이 예수를 판단한 그런 말들은 바로 그들의 야심과 질투, 그리고 진리와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추하고 악독한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예수가 행한 일의 근원, 예수의 말씀과 행사의 본질을 살펴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한시라도 지체할세라, 미친 듯이 의도적이고 악의적으로 예수의 모든 행사를 공격하고 비방했다. 심지어 예수의 그 영, 즉 성령이자 하나님의 영을 함부로 비방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입에서 나온 ‘그가 미쳤다’, ‘바알세불’, ‘귀신의 왕’이라는 말이 가리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하나님의 영을 바알세불과 귀신의 왕이라 하고,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의 사역을 미쳤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을 바알세불과 귀신의 왕이라고 모독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정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정죄하고 모독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는 본질은 사탄, 악마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모독하는 본질과 완전히 같다. 그들은 패괴된 인류를 대변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사탄의 화신을 대변했다. 그들은 인류 가운데 있는 사탄의 출구이자 사탄의 공범자이며 심부름꾼이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독하고 비방하는 본질은 하나님과 지위를 다투고 하나님과 맞서며 끊임없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그들의 본질,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그들의 태도, 그들 입으로 말한 것과 마음속으로 생각한 모든 것들은 다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영을 모독하고 노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 합리적인 결론을 내려 그들의 행위를 성령 모독죄로 정했다. 그 죄는 다음 성경 구절과 같이 금세뿐 아니라 내세에서도 사함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성령을 모독하는 것만은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 “말로써 성령을 거스르는 것만은 이 세상에서도 다음 세상에서도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한 “이 세상에서도 다음 세상에서도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라는 구절에 내포된 실제 의미에 대해 말해 보자. 즉,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도 다음 세상에서도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라는 말씀을 어떻게 실현하는지 그 비밀을 밝혀 보자.

예수가 바리새인들을 질책하다

우리가 나눈 모든 내용은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 있고, 사람과 일, 사물을 대하는 하나님의 태도와 관련 있다. 위의 두 성경 구절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 두 구절에서 너희는 무엇을 보았느냐? 혹자는 하나님의 노를 보았다고 말한다. 혹자는 거스를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을 보았고,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을 하면 사함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았다고 말한다. 사람은 이 두 구절에서 하나님의 분노와 거스를 수 없는 성품을 보고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태도에 대해서는 여전히 진정으로 알지 못했다. 이 두 구절에는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을 노하게 하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진정한 태도와 처리 방식이 담겨 있다. 이 태도와 처리 방식이 바로 “말로써 성령을 거스르는 것만은 이 세상에서도 다음 세상에서도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라는 말씀에 담겨 있는 진정한 의미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했을 때, 즉 하나님을 노하게 했을 때 하나님은 결론을 하나 내놓았고, 그 결론이 바로 하나님이 준 결과이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함 받을 수 있으나 성령을 모독하는 것만은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마 12:31, 중국어성경 직역), “위선적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에게 화가 있으리라”(마 23:13, 중국어성경 직역). 그러나 예수가 이런 말씀을 한 후, 서기관과 바리새인, 그리고 예수를 미쳤다고 말한 자들의 결말이 어떻게 되었는지 성경에 기록이 있느냐? 그들이 무슨 벌을 받았는지에 대한 기록이 있느냐? 단언하건대 없다. 여기서 ‘없다’라고 한 것은 기록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사실상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결말이 없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없다’라는 말은 어떤 일들을 처리하는 하나님의 태도와 원칙을 설명해 준다. 하나님은 그를 모독한 자, 그를 대적한 자, 심지어 그를 비방한 자, 그리고 고의로 그를 공격하고 훼방하고 경멸한 자들을 대함에 있어, 못 본 척, 못 들은 척한 것이 아니라 매우 분명한 태도를 취했다. 하나님은 그들을 증오했고, 마음속으로 그들을 정죄했으며, 나아가 공개적으로 그들의 결말을 선포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를 모독하는 자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취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한 것이다. 또한, 그가 장차 그런 자들의 결말을 어떻게 결정지을지에 대해서도 알게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런 말씀을 마친 후, 실제로 그들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사람이 볼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또한, 사람은 그런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이나 결정의 원칙을 이해하기도 매우 어렵다. 즉, 사람은 하나님이 그들을 처리하는 구체적인 방식과 태도를 거의 볼 수 없다. 이는 하나님이 일을 행하는 원칙과 관련된다. 하나님은 어떤 자들의 악행에 대해서는 어떤 일이 실제로 닥치게 하는 방식으로 처리한다. 다시 말해, 죄를 선포하거나 결말을 정하지 않고 실제로 닥치는 일을 통해 직접 벌하거나 악행에 대한 보응을 주는 것이다. 실제로 닥치는 일을 통해 주는 그러한 벌은 사람의 육체를 대상으로 하며,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다. 어떤 자들의 악행에 대해서는 말씀으로 저주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분노가 그들에게 임하게 한다. 그들이 받는 벌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결말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벌이나 죽임을 당하는 결말보다 훨씬 더 엄중하다.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을 구원하지 않고, 그들에게 더는 긍휼과 관용을 베풀지 않으며, 그 어떤 기회도 주지 않겠다고 뜻을 결정한 상황에서 그들에게 방임하는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방임’의 의미는 무엇이냐? 이 단어 자체의 의미는 우선 한쪽으로 제쳐 놓고 상대하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있어 ‘방임’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그 사람의 목숨을 비롯한 모든 것을 사탄이 처리하도록 넘겨주어 하나님이 더 이상 책임지거나 관리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자가 미치거나, 실성하거나, 멍청해지거나, 살거나, 죽거나 혹은 지옥으로 떨어져 벌을 받아도 하나님과는 상관없다는 의미다. 이는 그 피조물이 창조주와 완전히 무관한 존재가 됨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직접 그러한 자들에게 어떤 일을 해야겠다고 뜻을 정하는 경우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을 봉사자로 쓸 수도 있고, 부각물로 쓸 수도 있으며, 또는 그런 사람에게 특별한 처리 방식이나 대응 방식을 취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바울처럼 말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그런 부류에 대해 정한 처리 원칙이자 태도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비방하고 모독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러 노하게 하고, 하나님이 용납할 수 있는 한계를 건드릴 경우 그 결과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가장 심각한 결과는 하나님이 사람의 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을 한꺼번에 영원히 사탄에게 넘겨주어 영원토록 사함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그 사람이 사탄의 먹잇감이자 노리개가 되어 더 이상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의미한다. 너희는 욥이 사탄에게 시험당할 때의 참상이 어떠했는지 상상할 수 있느냐?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의 생명을 해치지 못하게 한 상황에서도 욥은 매우 큰 고통을 겪었다. 하물며 완전히 사탄에게 넘겨져 장악된 자, 하나님의 보살핌과 긍휼, 창조주의 주재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창조주를 경배할 권리와 하나님의 주재 아래에 있는 피조물이 될 권리를 빼앗겨 창조주와의 관계가 완전히 끊긴 자가 받게 될 사탄의 박해는 더더욱 상상하기 어렵지 않겠느냐? 욥에 대한 사탄의 박해는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한 사람의 목숨마저 사탄에게 넘겨준다면,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소나 나귀로 환생하고, 어떤 사람은 더러운 귀신이나 악령에 사로잡히거나 빙의되는 등의 경우처럼 말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의해 사탄에게 넘겨진 후, 일부 사람들이 맞게 될 결말과 말로이다. 외적으로 볼 때, 당시 예수를 비방하고 훼방하고 정죄하고 모독했던 자들은 어떤 결과도 감당하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 하나님은 그 어떤 일에 대해서도 모두 처리하는 태도가 있다. 하나님이 각 부류 사람의 결말에 대해 모두 명확한 말씀으로 알려 주는 것은 아니다. 직접적으로 말씀하기보다는 직접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 말씀이 없다고 해서 결말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어쩌면 그런 경우의 결말이 더 심각할지도 모른다. 겉으로 볼 때 하나님이 어떤 이들에게는 말씀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태도를 밝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사실 하나님은 마음속으로 그를 더 이상 상대하고 싶어 하지도, 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 사람의 모든 행동, 본성 본질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그를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고, 그를 직접 사탄에게 넘겨주며, 그의 영, 혼, 육을 모두 사탄에게 넘겨주어 사탄이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고 싶을 뿐이다. 그런 자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와 혐오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누군가 하나님을 노하게 하고, 심지어 하나님이 더는 그를 보고 싶어 하지 않게 만들고, 그를 완전히 포기하게 만들어, 하나님이 그를 직접 처리하고 싶어 하지 않을 정도가 되고, 사탄이 통제하고 삼키고 마음대로 처분하도록 사탄에게 넘겨줄 정도가 된다면, 그 사람은 완전히 끝난 것이다. 그는 사람으로서의 자격을 영원히 잃고, 피조물로서의 자격도 다한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한 벌이 아니겠느냐?

이상의 내용은 “이 세상에서도 다음 세상에서도 절대 사함 받을 수 없느니라”라는 말씀에 대한 완벽한 해석이자, 이 성경 말씀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기도 하다. 이제 이해가 되었느냐!

―<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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