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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하나님이 편찬하신 것이 아니고 사람이 편찬한 것이므로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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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경은 하나님이 편찬하신 것이 아니고 사람이 편찬한 것이므로 하나님을 대표할 수 없다

성경 참고: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39~40)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관련된 하나님 말씀:

『성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서 행한 사역을 기록한 역사책에 속한다. 그 안에는 많은 옛 선지자들의 예언과 여호와가 당시에 사역했던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 책을 ‘성스럽다’고 여긴다(하나님은 거룩하고 위대하기 때문임). 물론, 그것은 모두 사람의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이자 하나님을 앙모하는 마음이다. 사람들이 그 책을 그렇게 칭한 이유는 단지 피조물에게 창조주를 경모하는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 책을 ‘천서(天書)’라고까지 했다. 사실, 그 책은 사람의 기록일 뿐이지 여호와가 친히 명명하거나 지도하여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그 책의 저자는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다. ‘성스러운’ 경전이라고 칭한 것은 사람들이 그 책을 높여 부르는 것일 뿐, 여호와와 예수가 함께 논의한 후 공동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뜻일 뿐이다. 그 책은 여호와가 기록한 것도, 더욱이 예수가 기록한 것도 아니라 많은 옛 선지자, 사도, 예언자들의 기록을 후세 사람들이 수집하여 편찬한, 사람들이 보기에 아주 거룩한 고서(古書)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그 속에 측량하기 어려운 수많은 비밀이 있어 후세들이 이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책을 더욱더 ‘천서’라고 여겼다. 거기에다 신약 성경의 4복음서와 계시록까지 더해지니 그 책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는 그 어떤 책보다 각별했다. 그러다 보니 그 누구도 감히 그 ‘천서’를 분석하려 들지 않았다. 그것은 그 책이 너무나 ‘신성’하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경에 관하여 4> 중에서

『예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았던 것은 모두 구약이었다. 즉, 은혜시대가 막 시작되었을 때 그들이 보았던 것은 모두 구약 성경이었다. 신약 성경은 은혜시대가 되어서야 생긴 것으로, 예수가 사역할 때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예수가 부활하여 승천한 후에 후세 사람들이 그의 사역을 기록하고 나서야 4복음서가 생겼다. 그리고 거기에 바울과 베드로의 서신, 계시록까지 추가되었다. 예수가 승천하고 3백여 년이 지난 뒤, 후세 사람들이 다시 그 자료들을 편집하여 하나로 묶으면서 비로소 신약책이 생겨났다. 신약은 당시 사역이 끝난 후에야 생겨난 것이지 미리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한 그렇게 많은 사역, 사도 바울이 한 그렇게 많은 사역, 그리고 후에 바울과 베드로가 쓴 서신까지 함께 모았다. 거기에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아주 큰 환상(원문: 異象)을 기록한 내용을 맨 마지막 책으로 묶었다. 그것은 말세에 행할 사역을 예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모두 후세 사람들이 배열한 것으로, 지금의 말씀과는 다르다. 지금은 사역하는 순서에 따라 기록하고 있고, 사람들이 접하게 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 친히 한 사역과 말씀이다. 또한 사람이 손댈 필요 없이 영에서 비롯된 말씀을 직접 하나하나 순서대로 나열해 놓았으며, 이는 사람이 기록한 순서와는 다르다. 그들이 기록한 내용은 그들의 지식수준과 자질에 근거해 기록한 사람의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마다 기록 방식이나 인식이 다르므로 기록한 내용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네가 성경을 하나님처럼 숭배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우매하고 어리석은 짓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경에 관하여 3> 중에서

『성경이 크냐, 하나님이 크냐? 왜 하나님이 꼭 성경에 근거해 사역해야 하느냐? 설마 하나님 자신에게 성경을 벗어날 어떤 권리도 없단 말이냐? 하나님은 성경을 떠나 따로 사역할 수 없다는 것이냐? 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겠느냐? 예수가 구약의 계명과 안식일에 따라 실행했다고 한다면, 왜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으나 발을 씻겨 주고 수건을 쓰며 또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셨겠느냐? 그런 것은 모두 구약에 없는 계명이 아니냐? 예수가 구약대로 하고자 했다면, 왜 그런 규례들을 깨뜨렸겠느냐? 너는 하나님이 먼저였는지 성경이 먼저였는지 알아야 한다! 그는 안식일의 주인은 되고 성경의 주인은 될 수 없다는 것이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경에 관하여 1>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알고 해석할 수 있다면 참도를 찾은 것으로 여긴다. 사실, 그것이 정말 그렇게 간단한 것이냐? 사람은 성경의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성경은 단지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역사(歷史) 기록이고, 하나님의 앞 두 단계 사역의 증거일 뿐이다. 너는 성경에서 하나님 사역의 근본 취지를 알 수 없다. 성경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율법시대와 은혜시대에 하나님이 행한 두 단계의 사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구약 성경에는 이스라엘의 역사(歷史), 즉 창세부터 율법시대가 끝날 때까지 여호와가 어떻게 사역했는지가 기록되어 있다. 신약 4복음서에는 예수가 땅에서 행했던 사역이 기록되어 있고, 바울이 행한 사역도 신약에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모두 역사 기록에 속하지 않느냐? 지난날의 일을 오늘날에 가져오면 모두 역사(歷史)에 속한다. 그것이 아무리 진실할지라도 역사일 뿐이다. 역사는 현실에 초점을 맞출 수 없다. 하나님은 역사를 뒤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가 성경만 알고 하나님이 현재 행하려는 사역은 모르거나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성령의 역사를 찾지 않는다면, 너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는 것이다. 네가 성경을 보는 이유가 이스라엘의 역사(歷史), 즉 하나님이 온 천지를 창조한 역사를 연구하기 위함이라면, 너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네가 죽은 글귀나 역사(歷史)를 알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생명을 추구하며 하나님을 알려고 노력하는 이상, 반드시 하나님의 현시점의 뜻을 구해야 하고, 성령 역사의 동향도 찾아야 한다. 네가 고고학자라면 성경을 봐도 무방하겠지만, 고고학자가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현시점의 뜻을 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성경에 관하여 4> 중에서

『하나님 자신이 곧 생명이고 진리다.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는 공존한다. 진리를 얻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생명도 얻지 못한다. 진리로 인도해 주고 붙들어 주고 공급해 주는 일이 없다면 네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글귀와 이치, 그리고 죽음뿐이다. 하나님의 생명은 언제나 존재하고, 하나님의 진리는 생명과 함께 공존한다. 진리의 근원을 찾지 못한다면 너는 생명의 자양분을 공급받지 못할 것이다. 생명을 공급받지 못한다면 너에게는 분명 진리가 없을 것이며, 너의 몸뚱이는 상상과 관념으로 가득 찬 육체, 즉 구린내가 진동하는 육체에 불과할 것이다. 명심해라. 책의 글귀는 생명으로 삼을 수 없고, 역사적 기록은 진리로 삼아 섬길 수 없으며, 과거의 규례는 하나님이 현실에서 한 말씀의 실제 기록을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이 땅에 임하여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한 말씀만이 진리이자 생명이며,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현실적인 사역 방식이다. 하나님이 지난 시대에 했던 말씀의 기록을 오늘날에도 고수한다면 너는 고고학자나 다름이 없다. 그렇다면 너에게는 역사ㆍ문화재 전문가라는 호칭이 가장 어울릴 것이다. 너는 늘 하나님이 과거에 사역할 때 남겨 둔 흔적만 믿고, 하나님이 지난날 인간 세상에서 사역할 때 남겨 둔 그림자만 믿으며, 하나님이 오래전 하나님을 따르던 당시 사람들에게 전해 준 도만 믿을 뿐, 하나님이 현재 사역하는 방향이나 현재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 현재 선포한 진리의 도는 믿지 않는다. 그러니 너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매우 비현실적인 공상가다.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글귀만 고수하고 있다면 너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썩어 문드러진 나무와 다름없다. 너는 너무나 고집스럽게 낡은 것을 지키고 너무나 완고하며 너무나 꽉 막혀 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줄 수 있다> 중에서

『패괴된 사람은 모두 사탄의 올무와 자신의 육, 그리고 사욕에 얽매인 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그들 중에 내 마음에 합할 수 있는 자는 하나도 없다. 내 마음에 합했다고 자칭하는 자들은 모두 막연한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나의 이름을 거룩하다 칭하지만, 그들이 행하는 도는 나와 상반된다. 그들의 말에는 교만함과 자만심이 가득 배어 있다. 그들은 본래 나를 적대시하는 자들이고 내 마음에 합하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성경에서 나의 종적을 찾으며, 내키는 대로 ‘적합한’ 구절을 찾아 하염없이 읊조리는가 하면, ‘경전’으로 삼아 외우기까지 한다. 그들은 내 마음에 합하는 방법을 모르고, 무엇이 나와 적대되는 것인지도 모른 채 그저 ‘성경’만 읽을 뿐이다. 그들은 본 적도 볼 수도 없는 막연한 하나님을 성경에 국한시키고, 여유가 생길 때면 꺼내어 보곤 한다. 그들은 성경의 범위 안에서 내 존재를 믿고, ‘나’와 ‘성경’을 동일시하며, ‘성경’이 없으면 ‘나’도 없고 ‘내’가 없으면 ‘성경’도 없다고 여긴다. 그들은 내 존재와 내 행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성경 구절 하나하나에 대한 관심은 매우 각별하다. 심지어 적지 않은 이들은 성경의 예언이 없다면 내가 하고 싶은 그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성경의 구절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데, 글귀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성경 구절로 내가 말한 모든 내용을 가늠하고, 심지어 나를 정죄하기까지 한다. 그들이 찾는 것은 성경 글귀에 부합되는 길이지, 내 마음에 합하는 길이나 진리와 하나 되는 길이 아니다. 성경과 맞지 않는 것은 다 나의 사역이 아니라 여기니, 이런 자들은 바리새인의 충실한 자손들이 아니냐? 유대의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으로 예수를 정죄하였다. 그들은 당시의 예수의 마음에 어떻게 합할 것인지는 신경조차 쓰지 않으면서 율법 구절 하나하나는 진지하게 대했다. 그러다가 결국 예수가 구약 율법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과 메시야가 아니라는 죄명을 씌워 죄 없는 그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였다. 그들의 본질은 대체 무엇이냐? 진리와 하나 되는 길을 찾지 않은 것이 아니냐? 그들은 그저 성경의 글귀에만 관심을 기울였을 뿐, 내 뜻과 내 사역의 절차와 방식에는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진리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글귀를 고집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모두 성경을 지키는 종들이었다. 그들은 성경의 이익과 존엄성, 그리고 성경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자비로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 이유는 단지 성경을 옹호하고, 또 성경의 글귀가 사람의 마음에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자신의 앞날을 망칠지라도, 속죄 제물을 얻을 수 없을지라도, 성경의 규정을 따르지 않는 예수를 죽이려 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을 성경 글귀의 앞잡이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느냐?

그렇다면 오늘날의 사람들은 어떠하냐? 그들은 천국에 가거나 은혜를 받기 위해 이 땅에 와서 진리를 선포하는 그리스도를 인간 세상 밖으로 내몰려 하였다. 또한 성경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진리의 도래를 완전히 막으려 하였다. 심지어 성경이 영원히 존재하도록, 두 번째 육신으로 돌아온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또다시 못 박으려고 하였다. 사람들의 마음이 이토록 악랄하고, 그 본성이 나를 이토록 적대시하는데 어찌 나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느냐? 사람은 내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도 나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나의 빛을 밝게 비추어 주어도 여전히 나의 존재에 대해 무지하다. 나의 진노가 닥칠 때면 나의 존재를 더욱 부인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글귀와 어우러지고 성경과 합하기를 추구하지만, 어느 누구도 내 앞에 와서 진리와 합하는 길을 찾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천상에 있는 나를 앙망하고, 천상의 내 존재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지만, 육신으로 살아가는 나는 개의치 않는다.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가는 내 모습이 너무도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내 눈에는 오직 성경의 글귀와, 막연한 하나님과 합하기만을 구하는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비천해 보인다. 그들은 죽은 글귀를 숭배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재물을 베풀어 주는 하나님, 사람의 지배를 받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을 숭배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이 나에게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사람들의 비천함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나를 적대시하는 자들, 나에게 끝없이 요구하는 자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 나를 거역하는 자들이 어떻게 내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마땅히 그리스도와 합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중에서

『여기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짚고 넘어가겠다. 바로 하나님의 어떠함과 소유는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생명의 원천이자 만물의 근원이며, 어떤 피조물도 그를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이에게 일깨워 주겠다. 하나님을 또 한 번 책 속에 규정하거나 글귀에 규정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이 과거에 한 말씀에 규정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 사역의 유일한 특징은 바로 ‘새롭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옛길을 다시 가거나 했던 사역을 중복하는 것을 싫어한다. 사람이 그를 어떤 범주에 규정해 놓고 경배하는 것은 더더욱 원치 않는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후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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