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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초신자가 최소한 깨달아야 할 기타 몇 방면의 진리

관련된 하나님 말씀: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으면서 무엇을 얻었느냐?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알게 되었느냐?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너는 얼마나 변화하였느냐? 너희가 모두 알고 있듯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단순히 영혼의 구원과 육체의 편안함을 위해서가 아니며,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등의 이유 때문도 아니다. 현재,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육체의 편안함이나 잠시적인 향유를 위해서라면, 설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최고조에 달해 더 이상 무언가를 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네가 추구하는 그 ‘사랑’은 불순한 사랑이지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이용해 무료한 삶을 풍부하게 하고 마음속의 공허함을 채우려 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안일을 탐하는 사람이지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한 사랑은 마지못해 하는 사랑이고, 정신적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사랑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너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에 속하느냐? 너는 왜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지금 너는 하나님을 얼마나 진실하게 사랑하느냐? 너희 중 대다수의 사랑은 앞에서 언급한 사랑이다. 그러한 사랑은 기껏해야 현상 유지나 가능할 뿐, 영원불변할 수 없고 내면에 깊이 뿌리내릴 수도 없다. 그러한 사랑은 피고 시든 뒤 열매를 맺을 수 없는 한 송이 꽃과 같다.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을 한 번 사랑한 후에는 누군가 너를 앞길로 인도하지 않는다면 너는 이내 쓰러지고 말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시대에만 하나님을 사랑할 뿐 그 후에 너의 생명 성품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너는 여전히 흑암 권세의 그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탄의 결박과 농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 모두 하나님께 온전히 얻어지지 못하고, 결국 영과 혼과 몸이 모두 사탄에게 속하게 될 것이다. 이는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하나님께 온전히 얻어지지 못한 자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즉, 사탄에게 돌아가고 유황불 못에 던져져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얻어진 자는 사탄을 저버리고 사탄의 권세에서 빠져나온 자이기에 정식으로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나라 백성의 유래이다.』

―<말씀ㆍ사람은 어떤 관점으로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가> 중에서

『오늘 실제 하나님을 믿고자 한다면 반드시 정상 궤도에 진입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겠다면서 그저 복이나 구하고자 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나님을 알고자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깨우침과 개인의 추구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먹고 마실 수 있고, 하나님을 참되게 알고, 내심에서 우러나는, 하나님을 향한 참된 사랑이 생겨나야 한다. 이 말은 하나님에 대한 네 사랑이 가장 참되어 그 사랑을 아무도 파괴하거나 저지할 수 없다면 하나님에 대한 너의 믿음은 정상 궤도에 진입한 것이고, 네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임을 증명하게 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네 마음이 이미 하나님께 사로잡혀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너를 점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의 체험을 통해, 너의 대가를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 너에게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우러날 때면, 너는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 말씀의 빛 속에서 살게 된다. 어둠의 권세를 벗어나야 하나님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너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러한 목표를 향해 추구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너희들 개개인의 책무이다. 너희는 현재 모습에 만족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딴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마땅히 어디서든 하나님을 생각하고, 언제나 하나님을 기리며,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위해 해야 한다. 대화하고 일할 때 하나님 집의 이익을 우선으로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는다.』

―<말씀ㆍ하나님을 믿는다면 진리를 위해 살아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을 줄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함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지금은 모든 이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하나님이 너를 쓰는 것은 너를 연단하여 고통받게 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네게 하나님의 행사와 인생의 진정한 의의를 알게 하기 위한 것이며, 더욱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하는 것은 은혜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해 고난받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린다면 하나님의 형벌도 누려야 한다. 이런 것들을 모두 체험해야 한다. 하나님이 너에게 깨우쳐 준 것을 체험할 수 있고,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고 심판한 것도 체험할 수 있다면, 너는 전체를 체험한 것이다. 하나님이 너에게 심판 사역도 하고 형벌 사역도 했으며 하나님이 말씀으로 너를 책망한 적도 있지만, 너를 깨우쳐 주었고 빛을 비추어 주었으며, 네가 도망가려고 할 때도 하나님의 손이 너를 잡아 주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사역을 통해 너에게 사람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지배 아래 있음을 알게 한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고난받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며, 육체가 평안한 것 또는 모든 것이 순조롭고 편안한 것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가져야 하는 목적이 아니다. 네가 이렇게 믿고 있다면 너의 관점은 바르지 않으며, 너는 절대로 온전케 될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행사,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기묘함과 난측함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런 인식을 통해 네 마음속에 있는 개인적인 요구와 소망, 관념을 없애야 한다. 이런 것을 없애야만 하나님이 요구한 조건을 갖출 수 있고, 이것을 통해서만 생명을 갖게 될 수 있으며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함이고, 하나님이 요구한 성품에 따라 살기 위함이다. 그래서 자격 없는 이 한 무리의 사람들을 통해 그의 행사와 영광이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정확한 관점이자 네가 추구하는 목표여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관점을 바로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얻고자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진리대로 살 수 있어야 하고, 또한 하나님의 실제 행사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이 우주 전체에서 행하는 기묘한 행사와 하나님이 육신으로 하는 실제 사역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의 실제적인 체험을 통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떻게 역사하는지, 사람에 대한 그의 뜻이 무엇인지 느끼게 하는데, 이 모든 것은 사탄의 패괴 성품을 벗어 버리게 하기 위한 것이다. 네 안의 불결한 것과 불의한 것을 벗어 버리고 너의 옳지 못한 속셈을 버리며 하나님을 향한 참된 믿음이 생겨나야 한다. 이런 참된 믿음이 있어야만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만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네가 그를 믿지 않는데 그를 사랑할 수 있겠느냐? 이왕에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흐리멍덩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믿어서 복을 받을 수 있겠다 싶으면 바로 열의가 생겨나고, 연단받는 것을 보면 바로 열의가 사라지는 이들이 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냐? 하나님을 믿으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아직도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 있고, 수많은 종교 관념을 버리지 못하며, 개인적인 이익을 버릴 수 없고, 아직도 육적인 복이 내리기를 바라며, 하나님께 너의 육과 영혼을 구원해 달라고 한다면, 이 모든 것은 관점이 바르지 않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이다. 종교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육적인 이익만 추구할 뿐, 성품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너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종교 신앙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는데, 이는 전혀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겠다는 마음과 자기를 버리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갖추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고, 성품이 변화될 수도 없다. 진정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말씀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이제 이해가 되느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이적과 기사를 보는 것이냐? 천국에 가는 것이냐? 하나님을 믿는 것은 절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마땅히 종교적 믿음법을 없애야 한다. 병을 고치고 귀신 쫓는 것을 추구하며, 이적과 기사를 중요시하고, 하나님의 더 많은 은혜와 평안과 기쁨을 누리려 하며, 육적인 안락함과 앞날을 추구하는 이런 것이 종교적 믿음법이다. 이런 믿음법은 막연한 신앙이다. 오늘날,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무엇이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너의 생명 실제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를 알고 진실로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다.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존경스러움을 알고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행하는 사역이 구원이요, 온전케 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데에 최소한으로 갖춰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주로 육적인 삶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으로 바뀌고, 천성적인 것으로 살던 삶에서 바뀌어 하나님의 어떠함 안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또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돌봄과 보호 아래에서 살면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육체를 따르지 않으며, 하나님이 너의 온 마음을 얻고 너를 온전케 함으로써 사탄의 패괴 성품을 벗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큰 능력과 영광이 너에게 나타나게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사탄 앞에서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이적과 기사를 보려고 하거나 육적인 것을 위하지 말아야 한다. 마땅히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베드로처럼 죽기까지 순종하기를 추구해야 한다. 주로 이것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도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만족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 하나님에 대해 더 알게 되는데, 그런 뒤에야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해 알아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가져야 할 목적이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늘 이적과 기사를 보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관점이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생명의 실제로 만드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실행하고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목적에 이른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나아가 매사에 순종하기를 추구해야 한다. 네가 불평 없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베드로의 분량에 이르러 하나님이 말씀한 것과 같은 베드로의 풍격을 갖게 되면, 이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이는 네가 하나님께 얻어졌음을 의미한다.』

―<말씀ㆍ말씀이 모든 것을 이룬다> 중에서

『너는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어려움과 환난, 고통이 조금도 없기를 바란다. 너는 늘 이런 가치 없는 것들만 추구하고, 정작 생명은 한 푼의 가치도 없다고 여기며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각을 진리보다 앞자리에 놓는다. 너는 전혀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네가 돼지처럼 산다면 개돼지 따위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 진리를 추구하지 않고 육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는 모두 짐승이 아니냐? 영이 없는 죽은 자는 모두 걸어 다니는 송장이 아니냐? 내가 너희들 가운데에서 얼마나 많이 말했느냐? 너희들 가운데에서 행한 사역이 적단 말이냐? 너희들 가운데에서 너희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공급했느냐? 그런데 너는 어째서 얻지 못했느냐? 또 무슨 불평이 있단 말이냐? 네가 얻지 못한 것은 육을 너무 귀하게 여긴 탓이 아니냐? 네 생각이 너무 사치스러운 탓이 아니냐? 네가 너무 어리석은 탓이 아니냐? 네가 이 복을 얻지 못했으면서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지 않았다고 원망할 수 있겠느냐? 너는 하나님을 믿은 뒤 평안만 얻고자 한다. 자식에게 병이 없고, 남편에게 좋은 직업이 있고, 아들이 좋은 배우자를 찾고, 딸이 좋은 남자와 결혼하고, 너의 우마가 밭갈이를 잘하고, 한 해의 농사가 잘 되길 바란다. 너는 편안하게 살기만을 바라고, 너의 집에 나쁜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바람이 불어도 네 몸에는 불지 않고, 모래가 날려도 네 얼굴은 때리지 않으며, 홍수가 나도 네 집의 곡식은 잠기지 않고, 모든 재난이 너와 무관하길 바란다. ‘하나님의 품속’에서 살고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생활하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너처럼 육적인 것만 추구하는 못난 놈에게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영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너는 짐승이 아니겠느냐? 아무 대가도 없이 참도를 네게 베풀어 주었는데 너는 추구하지 않는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맞느냐? 진정한 인생을 네게 베풀어 주었는데 추구하지 않는다면 너는 개돼지 따위가 아니냐? 돼지는 인생을 추구하지 않고 깨끗함을 추구하지 않으며 인생이 무엇인지를 모른 채 날마다 배불리 먹고 쿨쿨 잠만 잔다. 참도를 베풀어 주었어도 너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이런 돼지 같은 삶을 계속하고 싶으냐? 그런 사람이라면 살아 있은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삶이 비루하고 저속하며, 더럽고 음란하게 살면서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으니 너의 일생은 가장 비천한 일생이 아니냐? 무슨 낯으로 하나님을 뵙겠느냐? 계속 그렇게 살아 봤자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 참도를 너에게 베풀어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네가 얻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너 자신이 얼마나 추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말씀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지금 너는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나님이 네게 행한 일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 이는 모두 네가 배워야 할 공과이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람에게 행하고 보여 준 것은 전부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사랑하고 그를 진실로 알게 하기 위함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고난을 받으며 오늘날까지 걸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한편으로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 보면 하나님의 구원, 나아가 사람에게 행한 하나님의 심판, 형벌 사역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시련과 고난이 없었다면, 솔직히 말해 너희는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하는 사역이 클수록 사람은 더욱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그럴수록 하나님의 사역이 더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사람의 마음은 더 참되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공과는 무엇을 통해 배울 수 있느냐? 만약 하나님이 고난과 연단, 고통스러운 시련을 주지 않고 은혜와 자비와 긍휼만 베푼다면 네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 시련을 주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자신이 얼마나 미미하고 비열하고 천박한 존재이며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사람에게 알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시련 속에서 하나님이 예비한 상황들을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분인지를 더 잘 체험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 과정은 몹시 고통스러워 이겨 내지 못할 때도 있고, 극도의 비통함에 잠기기도 하겠지만, 사람에게 하는 사역에서 하나님이 실로 사랑스럽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은 이것을 토대로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기만 하고, 자비와 긍휼을 베풀기만 한다면 사람은 진정으로 자신을 알 수 없고, 인간의 본질은 더더욱 알 수 없을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거듭된 심판과 연단이 있어야만 그 속에서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되고,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오늘날 모두가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사랑은 연단과 심판을 토대로 세워진다고 하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은혜로 가정의 평안이나 물질적 축복만 누리게 된다면, 하나님을 얻었다고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다고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와서 은혜의 사역을 하며 사람에게 물질적 축복을 준 것은 맞다. 그러나 은혜와 자비와 긍휼만으로는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없다. 사람은 체험 과정에서 어느 정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도 보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긍휼로는 사람을 온전케 하지 못하고, 사람의 내면에 자리 잡은 패괴된 것들을 들춰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사람의 패괴 성품을 벗겨 버릴 수 없고, 사람의 사랑도, 믿음도 온전케 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 사역은 한 단계 사역일 뿐,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말씀ㆍ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 수 있다> 중에서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지만 오로지 자신이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재앙을 피할 수 있는지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역과 경영을 언급하면 그들은 묵묵부답이며,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지루한 문제를 이해한다고 해서 자신의 생명이 더 성장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경영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도 아무렇게나 대할 뿐 보배로 여기지 않을뿐더러 생명의 일부로는 더더욱 여기지 않는다. 그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목적은 아주 간단하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복을 받는 것이다. 그 외에 자신의 목표와 무관한 일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복을 받는 것이 가장 정당한 목적이며, 자신들이 하나님을 믿는 가치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면 그 어떤 것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현재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의 상태가 이렇다. 그들의 목적과 생각은 얼핏 들으면 정당한 것 같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헌신하고 봉헌하고 자기 본분을 이행하고 있으며, 청춘을 바치고,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심지어 오랫동안 먼 곳에 나가 동분서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자신의 취미도 바꾸고 인생관도 바꾸고, 심지어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도 바꾸지만,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바꾸지 못한다. 그들은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으며, 그 길이 얼마나 멀든, 얼마나 많은 위험과 어려움이 있든,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떤 힘이 그들을 그토록 끊임없이 헌신하게 하는 걸까? 그들의 양심일까? 그들의 위대하고 고상한 인격일까? 사악한 세력과 끝까지 맞서겠다는 결심일까?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나님을 증거하려는 그들의 믿음일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려는 충성심일까? 아니면 단 한 번도 사적으로 무언가를 바란 적이 없는 그들의 희생 정신일까? 하나님의 경영 사역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토록 피나게 노력하고 수많은 대가를 치르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기적이다!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헌신했는지는 차치하고, 그들의 행위만 놓고 보아도 자세히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그토록 많은 대가를 치르는 것이 사람과 밀접한 이익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을까? 여기에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노골적인 이익 관계일 뿐이다. 즉,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다. 솔직히 말하면,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다. 피고용인의 수고는 고용인이 주는 품삯을 받기 위함이다. 이런 이익 관계에는 혈육의 정은 없이 거래만 있고,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베풀고 가엾게 여기는 것밖에 없다. 또 이해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참는 것과 기만하는 것만 있으며, 친밀한 관계는 없고 영원히 넘을 수 없는 깊은 골만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데 누가 이 흐름을 되돌릴 수 있을까? 또 이런 관계가 위험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확신컨대, 사람들이 복을 받고 즐거움에 도취된 나머지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이처럼 난감하고 차마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인류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가장 슬픈 일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에서 자기 사업을 하면서 하나님의 경영을 등한시한다는 사실이고, 가장 실패한 일은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이 꿈꾸는 종착지를 구상하고 있고, 어떻게 해야 가장 큰 복을 받고 가장 좋은 종착지로 돌아갈 수 있는지 계산한다는 것이다. 설령 모든 사람이 스스로 비참하고 가증스럽고 가련하다는 것을 안다 해도, 자신의 꿈과 소망을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발걸음을 멈추고 자기 이익을 계산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 하나님께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경영을 완성하는 데 긴밀하게 협력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 몸과 마음을 쏟아붓는 사람이다. 날마다 하나님께 두 손을 내밀며 구걸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 조금 바치고 빚을 받아 내려는 사람은 더더욱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은 조금 봉헌한 뒤 그것을 밑천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 내려는 사람을 증오하고,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는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늘에 올라가 복받는 일에만 관심 있는 냉혈 인간을 증오한다. 하나님이 구원 사역을 하는 기회를 틈타 제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은 더더욱 증오한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이 경영 사역을 통해 이루려는 것이 무엇인지,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에 아무런 관심도 없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사역하는 틈을 타 복을 받을 수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않고 자기 앞날과 운명에만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영 사역에 반감을 품고 있으며,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구원하는지 또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무관심한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경영 사역 밖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를 기억해 주지 않고 칭찬하지 않으며, 더욱이 좋아하지도 않는다.』

―<말씀ㆍ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너는 지금 무엇을 추구해야 하겠느냐? 너를 통해 하나님의 행사를 나타낼 수 있는지, 네가 하나님의 대언자가 될 수 있고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는지, 하나님이 쓰기에 합당한지, 이것이 네가 추구해야 하는 것들이다. 하나님이 너에게 얼마나 많은 사역을 했느냐? 너는 그 사역에 대해 얼마나 알고 또 얼마나 깨달았느냐? 얼마나 체험하고 얼마나 직접 경험했느냐? 하나님이 너에게 시련을 주든, 너를 책망하든 징계하든, 어쨌든 하나님은 너에게 자신의 행사와 사역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온전케 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너는 너의 실제 체험으로 하나님의 행사를 나타낼 수 있느냐?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낼 수 있느냐? 너는 너의 실제 체험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공급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느냐? 하나님의 행사를 증거하려면 너의 체험과 인식을 통해, 네가 받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행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너는 하나님의 행사를 증거하는 사람이냐? 너에게 그렇게 하려는 의지가 있느냐? 네가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할 수 있고, 더욱이 하나님의 행사를 증거할 수 있고, 하나님이 요구한 백성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면, 너는 하나님의 증인이다! 너는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증거하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기를 갈망하며, 너의 입으로 증거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행사를 알게 하고, 하나님의 행사를 보게 해야 한다. 네가 정말로 이렇게 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은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네가 하나님께 온전케 되려는 목적이 결국 복을 받기 위함이라면, 이런 관점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순수하지 못하다. 너는 실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행사를 어떻게 볼 것인지, 하나님의 뜻이 너에게 나타날 때 어떻게 그를 만족게 할 것인지, 하나님의 기묘함과 지혜를 어떻게 증거하고 너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책망을 어떻게 증거할 것인지를 추구해야 한다. 이런 것이 모두 지금 네가 곰곰이 생각해야 하는 것들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네 마음이 단지 하나님께 온전케 된 후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받고자 하는 것에서 비롯됐다면, 그것으로는 아직 부족하고 아직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너는 하나님의 행사를 실제적으로 증거하고, 그의 요구를 실제적으로 충족시키며,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사역을 실제로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고난을 받든, 눈물을 흘리든, 근심으로 슬퍼하든 모두 실제로 체험해야 한다. 이는 네가 하나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이다. 너는 지금 대체 무엇의 지배를 받아 고난받고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고 있느냐?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냐? 육체의 복을 받기 위한 것이냐, 아니면 장래를 위한 것이냐? 너는 마음가짐, 동기,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를 바로잡아야지 너 자신의 뜻에 따라서는 안 된다.』

―<말씀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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