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리스도를 알아가다

목차

제7장 초신자가 최소한 깨달아야 할 기타 몇 방면의 진리

5 하나님을 믿으면 평안과 복받는 것만 구해서는 안 된다. 관련된 하나님 말씀은 다음과 같음:

『오늘 실제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는 반드시 정상 궤도에 진입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복받기만을 구해서는 안 되며,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깨우침에 의하여, 개인의 추구에 의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수 있으면, 하나님에 대하여 진실한 인식이 생기게 되고 하나님에 대하여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사랑이 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에 대한 너의 사랑이 가장 진실한 것이라면, 누구도 하나님에 대한 너의 사랑을 파괴할 수 없고 누구도 하나님에 대한 너의 사랑을 가로막을 수 없다. 이때면 네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정상 궤도에 들어서게 되는데, 네가 하나님께 속한 사람임을 증명한다. 왜냐하면 너의 마음이 이미 하나님께 점유되어 너를 점유할 수 있는 것이 더는 없기 때문이다. 너의 경력으로 인하여, 너의 대가로 인하여, 하나님의 역사로 인하여 너에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자연히 생길 수 있으면, 이때에 너는 사탄의 권세를 이탈하게 되고 하나님 말씀의 빛 속에서 살게 되며 흑암 권세를 이탈하게 된다. 이래야 비로소 하나님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네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는 이 목표를 향해 추구해야 한다. 이것은 너희 각 사람의 직책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너는 하나님을 믿는 이상 진리를 위해 살아야 한다≫에서 발췌

『하나님을 경력하는 것은 은혜를 누리는 것이 아니며, 더 많은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이상, 하나님의 형벌을 누려야 한다. 이런 것을 다 경력해야 한다. 네가 네 몸에서의 하나님의 깨우침을 경력할 수 있고 네 몸에서의 하나님의 대처와 심판도 경력할 수 있다면, 너는 전면적으로 경력한 것이다. 하나님이 네 몸에서 심판의 사역을 한 적이 있고 형벌의 사역도 한 적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를 대처한 적이 있지만 네 몸에서 여전히 너를 깨우쳐주었고 너를 비춰주었으며, 네가 달아나려 할 때에도 하나님의 손이 너를 끌어당겼다. 이 모든 역사는 너로 하여금 사람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지배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네가 만일 하나님을 믿는 것은 고통을 받는 것이고 또는 하나님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하는 것이고 또는 육체가 평안한 것이고 또는 모든 것이 다 순조롭고 안일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이런 것은 모두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어야 할 목적이 아니다. 네가 만약 이렇게 믿는다면, 너의 관점은 올바르지 않으며 너는 전혀 온전케 될 수가 없다. 하나님의 행사,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기묘 난측, 이것은 모두 사람이 인식해야 할 바이다. 너의 인식에 의하여 너의 마음속의 개인적 요구, 개인적 소망, 개인적 관념을 제거하게 된다. 이런 것을 제거해야만 하나님이 요구한 조건을 구비할 수 있다. 이것에 의해야만 네가 생명이 있을 수 있고 하나님을 만족케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이 요구한 성정을 살아내기 위한 것이며, 그의 행사와 그의 영광을 자격이 없는 이 한 무리 사람들에 의하여 드러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네가 하나님을 믿는 데의 정확한 관점이며, 이것은 곧 너의 추구 목표이다. 하나님을 믿는 관점을 바로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얻기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 진리를 살아낼 수 있으며 더욱이 하나님의 실제 행사를 볼 수 있고 전 우주에서의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를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이 육신 중에서 하는 실제적인 사역도 볼 수 있다. 사람의 실제 경력에 의하여 사람 몸에서 하나님이 도대체 어떻게 하는가를 체험하게 되고 사람 몸에서의 그의 뜻이 무엇인가를 체험하게 되는데, 이것은 모두 사탄이 패괴시킨 성정을 벗어버리기 위한 것이다. 네 안의 불결한 것과 불의한 것을 벗어버리고 너의 틀린 존심을 벗어버리면, 하나님에 대하여 진실한 믿음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진실한 믿음이 있어야 비로소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 기초에서라야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다. 네가 만약 그를 믿지 않는다면 그를 사랑하는 데에 달할 수 있겠는가? 네가 하나님을 믿는 이상, 흐리멍덩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복받는 것을 보기만 하면 열의가 일어나고, 연단받는 것을 보기만 하면 열의가 없어지는데,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인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최후에 하나님 앞에서 고분고분 순종하는 데에 달하는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만약 하나님에 대하여 아직도 요구가 있고, 아직도 허다한 종교 관념을 버릴 수 없고 개인의 이익을 버릴 수 없고, 아직도 육체가 복받기를 추구하면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너의 육체를 구원하게 하고 너의 영혼을 구원하게 한다면, 이것은 모두 관점이 올바르지 않은 사람의 표현이다. 종교를 신앙하는 사람은 비록 하나님을 믿지만 성정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지 않으며 개인의 육체적 이익만 추구한다. 너희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의 믿음법은 바로 종교 신앙에 속하는데, 아예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데는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는 마음과 자기를 버리는 심지를 구비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구비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고 성정 변화에도 달할 수 없다. 참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는 사람, 생명을 추구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에서 발췌

『하나님을 믿는 것은 바로 너로 하여금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하나의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을 다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다.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존경스러움을 인식하고, 피조물의 몸에 하는 하나님의 사역은 구원이고 온전케 함임을 인식하는 데에 달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데에 최소한 구비해야 할 바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육체의 생활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활로 들어가는 것이며, 천연 속에서 살던 데로부터 하나님의 소시 안에서 사는 데로 돌아오는 것이며,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나와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사는 것이며, 하나님께 순복하고 육체에 순복하지 않는 데에 달할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으로 하여금 너의 온 마음을 얻게 하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너를 온전케 하여 사탄의 패괴 성정을 이탈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주로 하나님의 큰 능력과 하나님의 영광이 너의 몸에서 나타나게 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고 사탄 앞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간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표적과 기사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하고 개인의 육체를 위한 것도 아니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알기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고, 하나님께 순복하되 베드로처럼 죽기까지 순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주로는 이것에 달하기 위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말씀이 모든 것을 성취한다≫에서 발췌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따르면서 단지 자신이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고 어떻게 해야 재난을 피할 수 있겠는가에만 관심을 두고,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경영을 언급하기만 하면 잠자코 있고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무미건조한 문제를 이해한다 해도 자신의 생명을 자라나게 할 수 없고 무슨 유익한 점을 얻을 수 없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그들은 설사 하나님 경영에 유관한 정보를 들었을지라도 흐리멍덩하게 대할 뿐, 보배로 삼아 받아들이지 않고 더욱 생명의 일부분으로 삼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목적은 아주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하나의 목표━복받는 것이다. 이것 외에 그들의 목표와 전혀 상관없는 일은 그들이 아랑곳하기 싫어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서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가장 정당한 목적이고 역시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가치의 소재라고 여긴다. 만약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면 그 어떠한 것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이것은 현재 하나님을 믿는 더욱더 많은 사람들의 현 상태이다. 그들의 목적 존심은 듣기에는 아주 정당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 동시에 또 화비(花費)하고 봉헌하고 본분을 하고 있으며, 청춘시절을 바치고 또 가정과 직업을 버리고 심지어 오랫동안 타지에서 동분서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최종의 목적을 위하여 자기의 애호를 바꾸고 자기의 인생관을 바꾸고 심지어 자기의 추구 방향을 바꾸었지만 하나님을 믿는 목적을 바꿀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이상(理想)을 경영하기 위하여 뛰어다닌다. 길이 얼마나 멀든, 도중에 얼마나 많은 위험과 어려움이 있든, 그들은 흔들리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떤 힘이 그들로 하여금 이처럼 끊임없이 지불하게 할 수 있는가? 그들의 양심인가? 그들의 위대하고 고상한 인격인가? 사악한 세력과 끝까지 맞서는 그들의 결심인가? 하나님을 위해 간증하고도 보수(報酬)를 따지지 않는 그들의 믿음인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바치는 그들의 충심인가? 아니면 개인의 사치한 요구가 전혀 없는 그들의 봉헌 정신인가? 하나님의 경영 사역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이처럼 많은 심혈과 대가를 바칠 수 있다니, 그야말로 크나큰 표적이다! 우리가 잠시 이러한 사람이 도대체 얼마를 지불하였는가를 논하지 않지만 그들의 행위는 우리가 분석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이처럼 많은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데, 여기에 사람과 밀접하게 관련된 이익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겠는가? 말을 여기까지 하다 보니, 우리는 사람이 여태껏 발견하지 못한 문제를 발견하였다. 즉 사람의 하나님과의 관계는 단지 적나라한 이익 관계이고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이다. 까놓고 말하자면, 피고용인과 고용주의 관계뿐이다. 피고용인이 바쁘게 일하는 것은 다만 고용주가 주는 상금을 얻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이익 관계는 혈육의 정이 없고 다만 거래뿐이며, 사랑을 주고 받는 것이 없고 다만 베푸는 것과 불쌍히 여기는 것뿐이며, 이해가 없고 다만 부득불 참아야 하는 울분과 기만뿐이며, 친밀한 사이가 없고 다만 영원히 넘을 수 없는 큰 간격뿐이다. 일이 이미 이와 같은 지경에 이르렀는데, 누가 이런 추세를 되돌릴 수 있는가? 진정 이런 관계의 위급함을 이해하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되는가? 내가 믿건대, 사람이 모두 복을 받는 즐거운 분위기 속에 빠져들 때는 아무도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뜻밖에도 이처럼 딱하고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음을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인류가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가장 비참한 점은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 중에서 자기의 경영을 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경영을 본체만체하는 데 있으며, 가장 큰 실패의 점은 사람이 하나님께 순복하고 경배하기를 추구하는 동시에 자기 이상(理想) 속의 귀숙의 꿈을 엮고 있고, 어떻게 해야 가장 큰 복과 가장 좋은 귀숙을 얻을 수 있겠는가를 궁리하는 데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중에서라야 구원받을 수 있다≫에서 발췌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다만 나로 하여금 그에게 병 고쳐주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다만 나로 하여금 나의 능력에 의거하여 그의 몸의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단지 나의 평안과 희락을 얻기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단지 나에게서 더 많은 물질 재부를 얻어내기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단지 이생을 무사히 지내고 내세에도 별고 없기를 구하기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지옥의 고통을 피하고 천당의 복을 얻기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는 것은 단지 잠시적 안일을 위한 것이지 내세에 무엇을 얻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분노를 사람에게 베풀 때, 사람의 원래 있던 희락과 평안을 빼앗아갈 때, 사람은 모두 의혹하였다. 내가 지옥의 고통을 사람에게 베풀고 천당의 복을 탈환할 때, 사람은 분한 나머지 성을 내었다. 사람이 나보고 병을 고쳐 달라고 할 때에도 내가 오히려 사람을 거들떠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하여 혐오감을 느끼니, 사람은 나를 멀리 떠나 무당이나 술객의 도를 찾았다. 사람이 내게서 얻어낸 것을 내가 다 빼앗아갈 때, 사람은 모두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나를 믿는 것은 나의 은혜가 너무 많기 때문이고 사람이 나를 믿는 것은 나를 믿으면 좋은 점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믿음’에 대하여 너는 어떻게 인식하는가?≫에서 발췌

『너는 하나님을 믿은 후에 평안 얻을 수 있기만을 추구하는데, 자식이 병이 없다든가, 남편이 좋은 직업이 있다든가, 아들이 좋은 배우자를 찾는다든가, 딸이 좋은 가문에 시집간다든가, 너의 마소가 밭갈이를 잘한다든가, 일년 내내 날씨가 농작하기 좋다든가, 이런 것들만 추구한다. 너는 단지 생활이 안일한 것만을 추구한다, 네 집에 사고가 나지 말게 해달라든가, 바람이 불어도 네 몸에 불지 말고 모래가 네 얼굴을 때리지 말게 해달라든가, 홍수에 너의 집 곡식이 잠기지 말게 해달라든가, 무릇 재난이라면 너에게 미치지 말게 해달라든가, ‘하나님의 품’ 속에서 살아간다든가, 보금자리에서 생활한다든가. 너 이러한 몹쓸 놈은 오로지 육체만을 추구하는데, 네가 말해봐라, 너는 그래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영이 있는가 없는가? 너는 짐승에 속하지 않는가? 참 도를 값없이 너에게 베풀어주었어도 추구하지 않는데, 너는 그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아닌가? 진정한 인생을 너에게 베풀어주었어도 추구하지 않는다면, 너는 개돼지 따위가 아닌가? 돼지는 인생을 추구하지 않고 깨끗함을 추구하지 않으며 무엇을 인생이라 하는지를 모르고 날마다 실컷 배불리 먹고는 잠만 잔다. 참 도를 너에게 베풀어주었어도 네가 얻지 못하고 빈털터리가 되었는데, 돼지와 같은 이런 생활을 너는 그래 계속하려 하는가? 이러한 사람이 살아서 무슨 의의가 있는가? 생활이 비열하고 저속하며, 더럽고 음란한 가운데서 살면서 자그마한 추구의 목표도 없는데, 너의 일생이 제일 저속한 일생이 아닌가? 또 무슨 낯으로 하나님을 만나겠는가? 이렇게 경력해나가면, 여전히 아무런 소득도 없는 것이 아닌가? 참 도를 너에게 베풀어주었지만 최종에 네가 얻을 수 있겠는가는 네 개인의 추구에 달렸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베드로의 경력━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에서 발췌

『네가 만약 하나님의 은혜만 누리고 가정의 평안을 누리거나 물질적 축복을 받는 것만 누린다면, 이것은 네가 하나님을 얻었다고 할 수 없고 절정에 이르도록 하나님을 믿었다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이 육신에 와서 한 단계 은혜의 사역도 하였는데, 사람에게 확실히 얼마간의 물질적 축복을 베풀어주었다. 그러나 은혜만 있고 자애와 긍휼만 있어서는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없다. 사람은 경력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얼마간의 사랑도 체험하였고 하나님의 자애와 긍휼도 보았다. 그러나 한동안 경력하고서 그의 은혜와 자애와 긍휼이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없고 사람 안의 패괴된 것들을 폭로해낼 수 없고 패괴 성정도 벗어버릴 수 없고 사람의 사랑을 온전케 할 수 없고 사람의 믿음도 온전케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의 은혜 사역은 한 단계의 사역이니,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어야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알게 된다≫에서 발췌

『사람은 현재까지 하나님을 믿으면서 도대체 무엇을 얻었는가? 하나님 몸에서 너는 어떤 것을 인식하였는가?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인하여 너는 어느 정도로 변화되었는가? 현재 너희들이 모두 알다시피,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단지 영혼이 구원을 얻고 육체가 평안을 얻기 위한 것만이 아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의하여 자기의 생활을 충실케 하는 등등 이런 것을 위한 것도 아니다. 현재를 놓고 보면, 만일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육체의 평안을 얻기 위한 것이고 잠시적 누림을 위한 것이라면, 설사 네가 최후에 최고봉에 이르도록 하나님을 사랑하고 더는 무엇을 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네가 추구하는 이 ‘사랑’은 여전히 뒤섞임이 있는 사랑이지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의하여 자기의 무료한 생활을 충실케 하고 마음속의 공허함을 메우는데, 이러한 사람은 안일을 탐향(貪享)하는 사람이지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진실로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러한 사랑은 마지못해 하는 것이고 정신적 누림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랑이 필요 없다. 그러면, 너의 사랑은 어느 부류에 속하는가? 너는 무엇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사랑한 것인가? 현재 너에게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성분이 얼마 있는가? 너희들 가운데 다수 사람들의 사랑은 모두 위에서 언급한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은 기껏해야 현 상태만 유지할 수 있을 뿐, 영구불변에 달할 수 없고 사람 안에 뿌리 박을 수 없다. 이러한 사랑은 단지 꽃에 속하므로, 꽃이 피었다가 시들어 떨어진 후에는 열매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네가 이렇게 하나님을 한번 사랑한 후에 만일 아무도 너의 앞길을 더는 인솔하지 않는다면 너는 넘어질 것이다. 기껏해야 하나님을 사랑하는 시대에서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후에 너의 생명 성정에 변화가 없다면, 너는 여전히 흑암 권세의 뒤덮임 아래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여전히 사탄의 지배와 사탄의 우롱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무릇 이러한 사람은 모두 하나님께 완전히 얻어질 수 없으며, 최후에 영ㆍ혼ㆍ체가 여전히 사탄에게 속하게 된다. 이것은 조금도 의심할 바 없는 것이다. 무릇 하나님께 완전히 얻어질 수 없는 사람은 모두 그 원 위치에 복귀되는데, 바로 사탄에게 돌아가고 유황불 못에 내려가 하나님의 다음 단계 징벌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께 얻어진 사람은 사탄을 배반하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정식으로 국도 자민(子民) 가운데 들게 되는데, 이것이 국도 자민의 내원이다. 너는 이러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얻어지기를 원하는가? 너는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벗어나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를 원하는가? 현재 너는 사탄에게 속하는가, 아니면 국도 자민에 속하는가? 이런 일은 모두 알 것이니, 자세히 말할 필요가 없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사람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서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가≫에서 발췌

『네가 만일 하나님께 온전케 되어 최후에 복을 얻는 것만 추구한다면, 네가 하나님을 믿는 이러한 관점은 순수하지 않다. 너는 실제 생활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행사를 볼 것인가를 추구해야 하며, 하나님의 뜻이 너에게 나타날 때 어떻게 그를 만족케 할 것인가를 추구해야 하며, 하나님의 기묘와 하나님의 지혜를 어떻게 간증하고 네 몸에서의 하나님의 징계와 대처를 어떻게 발표할 것인가를 추구해야 한다. 이런 것은 모두 현재에 네가 상고해야 할 바이다.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만일 하나님께 온전케 된 후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받기만 위해서라면, 이것은 아직도 모자라며 아직도 하나님의 요구에 달할 수 없다. 너는 하나님의 행사를 실제적으로 간증할 수 있고 그의 요구를 실제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으며 사람 몸에서 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실제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고통을 받든, 눈물을 흘리든, 괴롭든 실제적으로 체험해야 한다. 이런 것은 모두 네가 하나님의 증인이 될 수 있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네가 현재 고통받는 것과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지배 하에서인가? 하나님을 간증하기 위해서인가? 육체가 복을 받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이후의 전망을 위해서인가? 너의 존심, 동기, 개인의 추구 목표를 바로잡아야 하며, 자기의 뜻에 따라 해서는 안 된다. 만약 한 사람은 복을 받기 위해서, 왕 노릇 하기 위해서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고, 다른 한 사람은 오히려 온전케 되어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의 행사를 실제적으로 간증하기를 추구한다면, 이 두 가지 추구법에서 너는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만약 네가 첫 번째를 선택한다면, 너는 하나님의 표준과 아직도 너무 멀리 떨어졌다. 나는 나의 행사를 전 우주에 공개하고 내가 전 우주에서 왕 노릇 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너희들에 대한 부탁은 너희더러 하나님의 행사를 간증하라는 것이지, 너희더러 왕이 되어 전 우주에 나타나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행사를 우주 궁창에 가득 나타나게 하여 각 사람으로 하여금 보게 하고 각 사람으로 하여금 시인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놓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을 간증하는 것이다. 현재 너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되는가? 너는 하나님을 얼마나 간증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네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다음 너는 그의 마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겠는가? 네가 만약 온전케 되기를 원하고 또한 자기의 살아냄으로써 하나님의 행사를 간증하기를 원한다면, 너에게 이 동력이 있다면, 모든 애로는 더는 말할 필요도 없다. 현재는 사람에게 믿음이 있어야 한다. 너에게 만약 이 동력이 있다면, 그 무슨 소극적인 것, 피동적인 것, 육체적 나태, 육체적 관념, 처세 철학, 패역 성정, 감정 등등을 모두 쉽게 버릴 수 있다.』

≪말씀이 육신에서 나타남ㆍ온전케 될 사람은 모두 연단을 겪어야 한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