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전화위복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지금껏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겪었던 인생의 각 단계들을 떠올려 볼 때, 매 순간이 힘들었든 수월했든 하나님이 모든 걸음을 안배하고 인도해 왔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세심한 계획과 정성스러운 안배로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오늘날까지 오게 되어 창조주의 주재와 구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번 생에서 얻은 얼마나 큰 복인가! … 하나님이 없던 나날, 하나님을 볼 수 없던 나날, 하나님의 주재를 정확히 알지 못했던 나날, 그런 나날들은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었고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어디에서 어떤 일을 했든 사람의 생존 방식과 추구 목표는 끝없는 슬픔과 벗어날 수 없는 고통만을 가져다주었기에, 그런 날들은 돌이켜 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오로지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그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고, 참된 삶을 추구할 때, 사람은 차츰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풀려나고 삶의 공허함을 떨쳐 버릴 수 있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이 말씀을 보면, 정말 느껴지는 게 많습니다. 제가 바로 이 말씀 같은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전 시골의 궁핍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렸을 적부터 주변의 무시를 당하며 자랐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한 끼를 먹으면 다음 끼니를 굶어야 할 때도 있었고, 항상 언니가 입던 옷을 물려받아 몸에 맞지도 않는 헐렁한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친구들은 그런 저를 비웃으며 함께 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렇게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나중에 크면 꼭 돈을 많이 벌어 풍족하게 살며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겠노라 마음먹었습니다. 집에 돈이 없어 저는 중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고 도시에 있는 제약 공장에 취직을 하게 됐습니다. 거기서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자주 밤 10시까지 잔업을 했습니다. 나중에 채소 장사 닷새면 제 한 달 치 급여를 벌 수 있다는 언니의 말에 바로 직장을 그만두고 채소 장사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다 결혼 후에는 요식업을 하면 돈이 잘 벌릴 것 같아서 남편과 식당을 차렸습니다. 돈만 있으면 떵떵거리고 살며 남들의 우러름과 부러움을 받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제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경쟁이 치열한 요식업 시장에서 돈을 벌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직원을 한 명만 쓰면서 저 혼자 주방과 홀을 뛰어다니며 온갖 업무를 보다 보니 걷지도 못할 정도로 지치기 일쑤였습니다. 거기다 간혹 공무원들이 와서 식사를 하고는 계산도 안 하고 가 버리거나, 이런저런 명목으로 벌금이나 세금을 떼 가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어떤 때는 별거 아닌 일로 시비를 걸면서 벌금을 물리고는 하루 장사해서 번 돈을 다 빼앗아 가기도 했습니다. 매일 고생스레 일해도 돈이 얼마 벌리지 않으니 분통이 터졌습니다. 식당을 연 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이래서 언제 부유해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2008년, 친구로부터 일본에 가면 하루 만에 중국 열흘 치 봉급을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저는 마침내 돈 벌 기회가 생겼다며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일본에 가려면 비싼 중개비용을 치러야 했지만 대어를 낚으려면 미끼를 아까워해선 안 된다는 말처럼, 일단 일본에 가서 일할 수만 있다면 그 정도 돈은 금세 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저는 바로 남편과 일본행을 결정했습니다. 일본에 도착한 우리 부부는 하루 열서넛 시간씩 일했습니다. 매일 기진맥진한 상태로 퇴근을 하면 식사도 하기 귀찮고 그저 누워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허리가 많이 아팠는데, 병원에 가면 돈이 많이 드니까 그냥 진통제만 사 먹으며 버텼습니다. 몸이 아픈 것도 서러운데 사장의 꾸지람과 동료들의 배척과 괴롭힘까지 견뎌야 했습니다. 한번은 일이 익숙지 않아 작은 실수를 하자 사장이 심한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너무 분해서 눈물이 났지만, 돈을 생각해 그저 참고 넘어가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지금은 좀 힘들고 고생스러워도 돈을 벌면 허리 펴고 살 수 있을 테니까 꼭 버텨야 해.’ 그렇게 힘을 내며 매일 돈 버는 기계처럼 죽어라 일만 했습니다. 그러다 2015년, 과도한 노동에 제 몸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저를 보고 디스크가 너무 심해 신경을 압박하고 있다며, 그 상태로 계속 일하면 평생 누워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말에 순간 온몸에 힘이 풀렸습니다. 내가 바라던 꿈이 코앞에 다가왔고 이제 좀 허리 펴고 살아볼까 하는데 병이 생기다니, 저는 그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아직 젊잖아. 이 악물고 버텨 보자. 지금 열심히 벌지 않았다가 나중에 빈손으로 중국에 돌아가게 되면 그게 더 망신이잖아?’ 그래서 이를 악문 채 병든 몸을 이끌고 계속해서 일을 했습니다. 너무 아파서 견디기 힘들 땐 파스를 붙이고 억지로 버텼습니다. 낮에 하루 종일 일하고 나면 밤에는 허리가 너무 아파 잠을 이루지 못했고 몸을 뒤척이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결국, 며칠 못 버티고 저는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저는 너무 막막하고 쓸쓸했습니다. 내가 어쩌다가 이 젊은 나이에 이렇게 됐나 싶고 평생 이렇게 누워서 살아야 하나 싶었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비애감이 느껴지자 저도 모르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대체 뭘 위해 사는 걸까? 그저 돈을 많이 벌고 출세하기 위해서일까? 돈이 있으면 정말 행복할까? 돈 때문에 건강을 잃은 게 과연 가치가 있는 일일까?’ 지난 30년간 제약 공장에, 채소 장사에, 음식점에, 일본에서 일하기까지, 아득바득 살아온 제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비록 돈은 좀 모았지만 지금까지 너무 많은 서러움을 겪고 고생을 했습니다. 처음엔 일본에 와서 일하면 제가 꿈꾼 대로 금방 부자가 되어 모두 다 부러워하는 삶을 살 줄 알았는데, 디스크 때문에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고 어쩌면 남은 생을 휠체어 위에서 보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돈을 벌어 떵떵거리며 살려다 건강을 잃게 되니 너무 후회스럽기도 하고, 서럽고 괴로웠습니다. 저는 결국 참지 못하고 엉엉 울면서 속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늘이시여! 저 좀 구해 주세요!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고 괴로울까요?’
제가 괴롭고 막막해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말세 구원이 임하였습니다. 우연한 기회를 통해 두 명의 교회 자매를 알게 됐는데, 그들과 하나님 말씀을 읽고 진리에 대한 교제를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전 우주와 세상을 다스리시며, 우리 각 사람의 운명도 모두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계속 인류를 이끌어 오셨고, 필요한 걸 공급하시면서 돌보고 지켜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운명을 주관하시고,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돌보고 지켜 주신다면 우리는 당연히 행복하고 즐거워야 할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몸이 아프고 고달프게 살아야 하는지, 이런 인생의 고통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런 의문점들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친 자매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 말씀을 읽어 주었습니다. 『사람의 일생에서 생로병사의 고통은 어디서 오느냐? 사람은 왜 그런 고통을 겪어야 하느냐? 사람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는 그런 고통이 없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고통은 어디서 비롯되었겠느냐? 사람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육이 타락한 뒤 그러한 고통이 생겼다. 육의 고통, 육의 번뇌와 공허, 그리고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온갖 참혹한 일들은 모두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후에 생겨났다. 사람이 사탄에 의해 패괴된 이후로 사탄은 사람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사람은 점점 타락하고, 병이 점점 깊어지고, 고통도 점점 커져 갔다. 인간 세상의 공허와 비참함을 더욱 실감하면서 인간 세상에서 생존할 수 없어지고, 희망이라곤 찾을 수가 없어졌다. 그러므로 사람의 고통은 사탄이 준 것이다.』(<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하나님이 인간 세상의 고통을 경험하는 의의> 중에서) 말씀을 다 읽은 자매는 이렇게 교제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갓 인류를 만드셨을 때는 생로병사도, 번뇌나 괴로움도 없었어요. 사람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주신 모든 걸 누리면서 근심 걱정 없이 지냈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행복하고 즐겁게 살았어요. 그러다 사람은 사탄에게 미혹당해 패괴되었고, 사탄의 거짓말을 믿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배신했어요. 이로써 하나님의 보호와 돌보심을 잃게 된 거예요. 그 후로 사람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됐고, 어둠에 빠져서 수고로움과 번뇌, 슬픔과 고통의 삶을 살게 되었죠. 수천 년 동안 사탄 마왕은 무신론, 유물론, 진화론 같은 그릇된 주장과 논리나, 유명인과 위인들의 말로 사람을 미혹하고 사람에게 해악을 끼쳤어요. 예를 들면, ‘세상에는 신이 없다.’, ‘운명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출세해서 가문을 빛내자.’, ‘사람은 재물 때문에 죽고, 새는 먹이 때문에 죽는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 등 사탄의 그릇된 주장과 논리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와 주재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반하기 시작했죠. 결국, 점점 더 교만하고 잘난 체하며 이기적이고 간사하고 악독하게 변해 버렸어요. 돈과 명리, 지위를 위해서 서로 다투고, 싸우고, 서로 죽여 대죠. 부부 사이에도, 친구 사이에도 거짓말과 배신이 난무하고 부모 자식간, 형제간에도 서로 싸우고 죽이기까지 하잖아요. 이렇게 정상적인 인성을 완전히 잃고 마귀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죠. 사탄의 그릇된 궤변에 속아 넘어간 많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 운명을 다스리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자기 운명과 싸우며 평생을 아득바득 힘겹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운명을 바꾸기는커녕 상처투성이가 될 뿐이죠. 인류는 사탄의 미혹과 패괴 때문에 매일 걱정과 노고에 시달리고 심신의 괴로움을 겪고 있어요. 그래서 각종 질병과 고통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고요. 이런 고통과 번뇌 때문에 우리는 사는 게 너무 힘들고 괴롭게 느껴지는 거예요. 이건 다 사탄이 인류를 패괴시킨 이후 생겨난 일이고, 사탄이 끼친 해악이에요. 또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하고 부인하고 배반한 탓에 얻은 쓰디쓴 결과이기도 해요.”
자매의 교제를 듣고 사람의 병은 다 사탄이 가져다주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탄에 의해 패괴된 후,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와 돌보심을 잃고 각종 고통과 질병을 얻게 된 것이었습니다. 자매는 교제를 이어갔습니다. “하나님은 인류가 계속 사탄에게 우롱당하고 해를 입는 걸 보고만 있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두 번이나 육신을 입고 오셔서 인류를 속량하고 구원하셨죠. 첫 번째로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사람을 위한 속죄 제물이 되셔서 인류를 죄에서 속량하셨어요.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사함받게 됐죠. 하지만 우리 안에는 죄짓는 본성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아직 죄의 굴레에서 완전히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말세에 또다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진리를 선포하며 심판하고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시는 거죠. 그 사역으로 우리를 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구원하시고, 죄악에서 벗어난 정결한 사람으로 만드시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나라로 이끄시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많이 보면 진리를 깨닫고 분별력이 생겨서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각종 수단과 방식, 사탄의 사악한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어요. 그러면 사탄을 내치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고 사탄이 끼친 해악과 사탄의 우롱에서 빠져나올 수 있어요.” 하나님께서 친히 오셔서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저는 계속 이렇게 사탄에게 해를 입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사탄이 끼친 해악이라는 건지 잘 몰라 자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출세해 부유하게 살겠다고 애쓰다가 이렇게 고통스러운 결과를 얻었는데, 이것도 사탄이 끼친 해악인가요?”
이런 제 문제에 맞춰 장 자매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었습니다. 『사탄은 공격적인 방법 대신 부드럽고 사람의 사고방식에 맞고 온건한 방법을 써서 사람이 부지불식간에 사탄의 생존 방법과 생존 법칙을 받아들이도록 하고,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세우게 한다. 또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인생의 꿈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인생의 꿈이란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결국에는 ‘명예’와 ‘이익’으로 귀결된다. 어떤 위인이나 유명인이든, 모든 사람이 평생 동안 좇는 것은 ‘명예’와 ‘이익’ 두 가지뿐이다. 사람은 명예와 이익만 있으면 부귀영화를 누리고 인생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명예와 이익만 있으면 유흥과 육적인 향락을 거리낌 없이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명예와 이익을 거머쥐기 위해 기꺼이,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 심지어 자신의 모든 것, 미래와 운명마저 사탄에게 확실하게 넘겨 버린다. 그러고는 이에 대해 전혀 의구심을 갖지 않고, 자신에게 속한 것을 되찾을 줄도 모른다. 사람이 사탄을 이렇게 의지하고 사탄에게 충성하게 된 이상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겠느냐? 틀림없이 불가능할 것이다. 사탄에게 완전히 지배당하고, 그 늪에 빠져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 사람이 명예와 이익에 사로잡히면 광명도, 정의도, 아름다움과 선함도 더 이상 추구하지 않게 된다. 사람에게 명예와 이익의 유혹이 너무나 강할 뿐만 아니라, 이것들은 사람이 평생 동안, 심지어 영원히 좇아도 끝이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으냐?』(<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사탄은 명예와 이익을 가지고 사람의 생각을 지배한다. 사람이 명예와 이익에만 사로잡혀 이를 위해 분투하고, 고생하고, 치욕을 참고, 명예와 이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이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게 만든다. 이렇게 사탄은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족쇄를 채워 놓았다. 족쇄가 채워진 사람은 족쇄에서 벗어날 능력이나 용기가 없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족쇄를 차고 힘겹게 한 걸음씩 나아간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6> 중에서)
하나님 말씀을 다 읽은 후, 자매는 사탄이 명예와 이익으로 사람을 패괴시킨다는 사실과 실태에 대해 교제해 주었고, 그제서야 저는 사탄이 너무나 가증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사탄 마왕은 학교의 교육이나 사회의 영향력을 이용해 사탄의 각종 생존 법칙을 우리에게 주입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고생을 해봐야 뛰어난 사람이 된다.”, “남 앞에 귀한 사람이 되려면 뒤에서 고생을 많이 해야 한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 등이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이런 생존 법칙에 미혹돼 돈이 없으면 못 산다고 여깁니다. 다들 돈이 있어야 남들의 우러름을 받으며 존엄하게 살 수 있고 돈이 없으면 남들 밑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평생 돈과 명예를 얻으려고 아득바득 살고 심지어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도, 결과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점점 더 패괴되며 사악해지고 갈수록 더 삶이 고통스러워집니다. 이 모든 게 사탄이 우리에게 채워 놓은 족쇄였고, 사람을 패괴시키기 위한 사탄의 계략이었습니다. 돌아보면 그동안 저는 뛰어난 사람이 되고 돈을 많이 벌어 남들에게 우러름을 받고자 돈 버는 기계처럼 살았습니다. 욕심은 계속 커지기만 했고 만족할 줄 모르다 결국 몸이 다 망가지고 나서야 할 수 없이 그만두었던 것입니다. 돌아보니 전 정말 돈과 명예의 노예였습니다. 돈과 명예를 추구하는 삶은 힘들고 괴롭기 그지없었습니다. 지금까지 명예와 이익을 위해서 온갖 고생을 다 하다 결국엔 병까지 얻게 되었는데, 이 모든 고통은 사탄의 패괴와 해악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드러내 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돈과 명예를 추구하는 게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수단이란 걸 몰랐을 거고, 명예는 사탄이 사람에게 채워 놓은 족쇄라는 것도 깨닫지 못했을 겁니다.
그 후에도 친 자매는 자주 저에게 교제를 해 주었습니다. 점차, 저는 사탄이 사람을 패괴시키는 각종 수단과 방식을 조금씩 분별하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진리를 추구하면서,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며, 그렇게 살아야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고, 가장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제 주변에는 돈을 벌기 위해 남편과 함께 일본에 와서 돈을 꽤 번 동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동료의 남편이 건강이 안 좋아져 중국으로 돌아갔는데 암 말기인 것이 밝혀져 온 가족이 두려움과 슬픔 가운데 빠져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동료의 불행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 그리고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져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목숨은 돈으로 살 수 없잖습니까?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돈과 명리가 자신을 구해 주는 생명 줄이자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인 양 평생을 이것들을 좇는 데 쓴다. 이것들만 있으면 죽음도 피하고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죽을 때가 되어서야 사람들은 깨닫게 된다. 돈과 명리란 게 얼마나 요원한 것인지, 죽음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연약하고 쉽게 부서지는지,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얼마나 외롭고 무력한지를 말이다. 그리고 사람의 목숨은 돈이나 명리와 바꿀 수 없고, 아무리 재산이 많고 높은 자리에 있다 해도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서 똑같이 가난하고 하찮은 존재라는 것 또한 깨닫게 된다. 돈으로 목숨을 살 수 없고, 돈이나 명리로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이들 중 그 어느 것도 사람의 수명을 1분 1초라도 연장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니 하나님을 믿지 않고 진리를 모르면 사탄의 간계를 간파할 수 없음을 더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 돈과 명예는 사람을 패괴시키기 위한 사탄의 수법이란 것도 모른 채 그 소용돌이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사탄에게 놀아나 해를 입다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건 너무 슬픈 결말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수많은 말씀을 읽고 나서 인생의 이런 일들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이런 말씀을 보지 못했다면 사탄의 패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둠과 고통 속에 빠져 발버둥 치기만 할 뿐 살길을 찾지 못했을 겁니다.
제가 아픈 기간, 교회의 자매들은 자주 저를 찾아와 안마를 해 주거나 부황을 떠 주었고, 집안일도 도와주며 가족처럼 돌봐 주었습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국땅에서 가족처럼 돌봐 주는 자매들을 보며 저는 깊은 감동을 받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도 더욱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하심으로 어느새 병세도 호전되었습니다.
그 후,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지금껏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겪었던 인생의 각 단계들을 떠올려 볼 때, 매 순간이 힘들었든 수월했든 하나님이 모든 걸음을 안배하고 인도해 왔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세심한 계획과 정성스러운 안배로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오늘날까지 오게 되어 창조주의 주재와 구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번 생에서 얻은 얼마나 큰 복인가! 누군가 운명을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면, 이는 그가 하나님이 그를 위해 예비한 모든 것에 반항하며 순종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누군가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사실에 긍정적으로 반응하여 자기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주재를 진정으로 느끼게 된다면, 그는 하나님이 안배한 모든 것에 더욱 진심으로 순종하고 싶어질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 더 이상 거역하지 않고 더욱 단호한 의지와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이 그의 운명을 지배하도록 할 것이다. 운명이 어떤 건지 모르고 하나님의 주재를 알지 못한 채 자신의 방식대로 안개 속을 헤쳐 가며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그 과정이 너무나 고단하고 쓰라리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의 운명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총명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주재에 대해 깨닫고 받아들이는 길을 택한다. ‘자신의 두 손으로 좋은 삶을 일구기 위해 애썼던’ 고통스러운 날들, 운명에 맞서 싸우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소위 삶의 목표란 것을 추구하던 나날에 안녕을 고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없던 나날, 하나님을 볼 수 없던 나날, 하나님의 주재를 정확히 알지 못했던 나날, 그런 나날들은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었고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어디에서 어떤 일을 했든 사람의 생존 방식과 추구 목표는 끝없는 슬픔과 벗어날 수 없는 고통만을 가져다주었기에, 그런 날들은 돌이켜 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오로지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그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고, 참된 삶을 추구할 때, 사람은 차츰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풀려나고 삶의 공허함을 떨쳐 버릴 수 있다.』(<말씀ㆍ2권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에 관하여ㆍ유일무이한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 실제적이고, 모든 말씀이 마음에 깊이 와닿았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창조주시고 우리는 피조물로, 우리의 일생은 전부 하나님 손에 달렸고, 하나님께서 지배하고 안배하신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평생 얻게 되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재하고 정하시는 거지 사람의 노력으로 정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만큼 얻는 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려 주지 않으시면 우리가 아무리 고생해도 헛수고입니다. “심는 건 사람이 하지만 수확하는 건 하늘에 달렸다.”, “계획은 사람이 해도 그걸 이루는 건 하늘에 달렸다.”라는 말처럼 창조주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하면서 사는 게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었습니다. 또 돈과 지위는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으며, 아무리 돈과 지위를 추구해도 남는 건 공허함과 고통뿐이고 결국은 사탄에게 삼켜진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 저도 “고생을 해봐야 뛰어난 사람이 된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 등 사탄 철학에 따라 살며 계속 돈과 출세만을 좇았습니다. 그러면 행복해질 수 있고 남들의 우러름과 부러움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제가 얻은 건 기쁨과 평안이 아니라 고통과 슬픔뿐이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자 더는 운명과 싸우고 싶지 않았고,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건 더 이상 제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사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남은 생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겨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따르는 삶을 살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자기 본분을 다하는 사람이 되도록 추구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후로는 신앙생활과 예배에 더 많은 시간을 쓰기 위해 원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좀 더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업무 시간 외에는 계속 하나님 말씀을 읽었고, 그러다 보니 마음도 점점 더 밝아졌습니다. 사람이 죄짓는 근본 원인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단계별로 사람을 구원하시는지, 사람은 뭘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의미 있는 삶인지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 자주 형제자매들과 모여 말씀 찬양을 배우고, 각자의 체험과 인식도 얘기하면서 지내니 사는 게 너무 즐거웠습니다. 수입은 예전보다 줄었지만 마음은 지금껏 느껴 본 적 없는 평안을 얻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전화위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