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조 두각을 드러내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2)

2. 적그리스도의 이익

오늘은 이어서 적그리스도의 모습 중 제9조에 대해 교제하겠다. 그것은 ‘두각을 드러내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는 것이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이 항목 중 일부를 교제했지만 그것은 서두에 불과하다. 먼저 첫 번째로 이익이란 무엇인지에 관해 교제했고, 두 번째로 사람의 이익이란 무엇인지, 사람의 이익의 본질은 무엇인지에 관해 교제했으며, 세 번째로 하나님의 이익이란 무엇인지, 하나님 이익의 본질은 무엇인지에 관해 교제했다. 대략적으로 이렇게 세 가지 측면의 내용을 이야기하였다. 지난번에 교제한 내용들은 기본적으로 개념적 진리로, 각 측면의 이익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사람이 기본적인 내용을 이해하게 했다. 이런 내용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겠다. 제9조에서는 적그리스도의 갖가지 모습을 두드러지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교제하겠다. 주로 자신과 관계된 각종 이익을 대하는 적그리스도의 태도와 모습을 해부함으로써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 성품은 과연 어떤 것인지 파악하게 하겠다. 이러한 각도에서 해부할 것이다. 먼저, 적그리스도의 눈에 비친 그 자신의 이익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있는지 교제해 보자.

적그리스도의 눈에 하나님, 하나님 집, 교회는 그저 하나의 호칭에 불과하다. 어쩌면 그저 하나의 명칭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것이 그에게 어떤 실제적인 존재 가치가 있지는 않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이익, 하나님 집의 이익, 교회의 이익을 멸시의 눈으로 보고, 개의치 않으며,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반면, 적그리스도 자신의 이익은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적그리스도 부류는 늘 교회의 이익과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는 대가로 자신의 이익을 얻는다. 오늘은 적그리스도의 이익에 과연 어떤 것들이 있는지 종류별로 상세히 해부함으로써 이익을 대하는 적그리스도의 관점이 과연 어떤 것인지 사람들이 분명히 알게 하겠다. 먼저, 적그리스도를 어떻게 부르든, 적그리스도라고 부르든, 악인이라고 부르든, 아니면 진리를 실행하지 않는 사람이나 진리를 적대시하는 사람이라고 부르든 그들은 진공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다. 그들 또한 육체에서 살면서 정상적인 인성 생활의 필요를 똑같이 갖고 있다. 그래서 적그리스도 부류가 형제자매들 가운데서 살고, 하나님 집이나 교회에서 사는데, 그들의 이익은 자신의 안위와도 연관된다.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첫 번째 이익인 자신의 안위이다. 적그리스도의 두 번째 이익은 자신의 명예와 지위이다. 이는 그의 권력과 연관된다. 적그리스도의 세 번째 이익은 혜택이다. 이 세 가지로 적그리스도의 이익에 관해 해부하면 틀에 박히고 직설적으로 교제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이해가 잘 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너희에게 이 세 가지에 근거하여 교제하라고 한다면, 할 말이 있느냐? 어느 정도 인식을 교제할 수 있느냐? (두 번째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인식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안위와 혜택 측면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하지 못할 듯합니다.) 좋다. 그럼 내가 교제할 때 너희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부분에 관해 보충하여라. 너희가 분명히 말하지 못하는 부분은 내가 교제하겠다. 어떠하냐? (좋습니다.)

1) 자신의 안위

먼저 적그리스도의 첫 번째 이익인 자신의 안위에 대해 교제하겠다. 이것의 의미는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바로 신변 안전이다. 중국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 위험한 환경 속에서 살게 된다. 하나님을 따르는 모두가 매일 큰 붉은 용에게 체포되고 판결받고 잔혹하게 핍박받을 위험에 직면해 있다. 이는 적그리스도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하나님 집에서 적그리스도로 규정되었지만, 큰 붉은 용은 종교계와 손을 잡고 줄곧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선민들을 극력으로 진압하고 박해하기에, 적그리스도도 자연히 이러한 거시적 환경에 처해 있어 체포될 상황이 오면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역시 수시로 자신의 안전 문제를 마주해야 한다. 이는 자신의 안전 문제를 대하는 적그리스도의 태도와 연관된다. 이 항목에서는 주로 자신의 안위를 대하는 적그리스도의 태도에 관해 교제하겠다. 그럼 그는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안전을 지킵니다.) 적그리스도는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안전을 지킨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절대적으로 안전해야 해. 다른 누가 잡혀가도 나는 잡혀선 안 돼.’ 또 그는 이 일을 대함에 있어 수시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지켜 달라고 구한다. 어찌 됐든 자신이 교회 리더의 사역을 하니 하나님은 마땅히 자신을 지켜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잡혀가지 않기 위해, 모든 박해에서 벗어나 자신이 안전한 환경에 처하기 위해 적그리스도는 수시로 자신의 안전을 위해 간구하고 기도한다. 그들은 오직 자신의 안위가 걸린 일에서만 하나님에게 진실로 의지하고 그 일을 진실로 하나님께 맡긴다. 이 일에서는 믿음이 있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도 진실하다. 그들은 자신의 안전을 지켜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는 데 신경 쓸 뿐, 교회 사역이나 자신의 본분은 신경 쓸 겨를도 없다. 그들의 사역 원칙은 자신의 안전을 1순위에 두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안전한 곳이 있으면 그곳에서 사역한다. 겉으로는 무척 적극적이고 주동적인 것 같고, 엄청난 ‘책임감’과 ‘충성’을 보여 주는 것 같다. 그러나 만약 어떤 사역을 하면서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쉽게 문제가 생기거나 큰 붉은 용에게 들킬 수 있다면, 그들은 핑계를 대며 그 일을 거절하고 기회를 봐서 도망친다. 위험하거나 위험한 조짐이 있기만 해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몸을 빼려 한다. 본분을 내팽개치고 형제자매들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이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만 생각한다. 그들은 어쩌면 마음속으로 이미 준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위험이 보이는 순간 교회 사역이 어떻게 되든, 하나님 집의 이익이 어떤 해를 입든 신경 쓰지 않고, 또한 형제자매들의 안위 역시 개의치 않으며 그들이 하고 있던 모든 일을 바로 내팽개칠 준비 말이다. 그들은 자신이 도망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들은 마음속으로 ‘가장 좋은’ 계획, 스스로를 가장 잘 지킬 수 있는 계획을 이미 세워 놓았다. 바로 위험이 닥치거나 체포되면 자기가 아는 것들을 전부 털어놓고 깨끗하게 모든 책임을 전가해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다. 그들은 마음속에 이런 계획을 갖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박해받는 것을 원치 않으며, 체포되고 고문받고 형을 선고받는 것을 두려워한다. 사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오래전에 사탄과 타협했다. 그들은 사탄 정권의 세력을 몹시도 두려워하며, 혹독한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하는 일이 자신에게 닥치는 것은 더더욱 두려워한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모든 것이 순조롭고, 자신의 안위에 어떤 위협이나 문제도 없어 위험 요소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는 열정과 ‘충성’을 바치고, 심지어 자신의 재산을 바치기까지 한다. 그러나 환경이 좋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했다는 이유로 언제든 체포될 수 있고, 공직에서 파면될 수 있으며,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버림받을 수 있다면 그들은 몹시 조심하는데, 복음을 전하지도 하나님을 증거하지도 않고, 본분을 이행하지도 않는다. 주변에 약간의 변화라도 있으면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고 하나님 말씀 책, 하나님을 믿는 것과 관계된 물건들을 급히 교회에 돌려줌으로써 자신의 평안과 안전을 도모하고자 한다. 이런 사람은 위험하지 않겠느냐? 이런 사람이 체포되면 유다가 되지 않겠느냐? 적그리스도는 이렇게 위험해 언제든 유다가 될 수 있고, 언제든 하나님을 배반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적그리스도는 극도로 이기적이고 비열하다. 이는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에 의해 결정된다.

혹자는 말한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은 큰 붉은 용의 나라, 중국이라는 사회적 배경에만 존재하는지도 모릅니다. 해외에서는 박해받고 체포될 일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자신의 안위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이 주제를 꼭 다룰 필요가 있을까요?” 그럴 필요가 없겠느냐? (있습니다.) 해외에서도 많은 사람이 하나님 집에서 본분을 이행하면서 수시로 이런 모습을 보인다. 국가 정권이나 이방인, 종교계가 하나님 집에 대해 어떻게 공격하고 비방하고 조치를 취하는지 언급하면, 마음속 깊이 강렬한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더욱이 그들은 그럴 때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지, 얼마나 자유로웠을지 생각한다. 하나님을 믿은 것을 후회하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는 내심 중도에 그만두자고 생각하며 믿음을 포기하고 물러나려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부류는 시시각각 자신의 안위를 신경 쓰며, 자신의 안위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목숨과 안위는 그들이 마음 깊이 가장 걱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세상과 온 인류가 교회와 하나님의 사역을 비방하고 멸시하고 정죄할 때, 이 부류는 마음속으로 하나님 편에 서지 않는다. 이런 일이 발생할 때, 하나님에 대한 비방과 정죄의 목소리를 들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며, 그때 하나님이나 하나님 집, 교회와 선을 긋지 못해 안달이 난다. 심지어는 그럴 때 그에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인정하라고 하면, 그것을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로 받아들인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이나 하나님 집, 교회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럴 때, 그는 자기가 하나님 집의 일원이라는 사실에 불안감을 느끼며, 나아가 부끄러워하고 얼굴을 들지 못한다. 이런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겠느냐?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이라는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믿으면 수시로 핍박받고 체포될 위험에 놓이며, 자신의 안위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해외에서는 이렇게까지 환경이 열악하지는 않지만, 사람은 여전히 비슷한 환경에 직면하게 된다. 종교계의 비방과 정죄를 마주하게 되며, 나아가 교회에 대한 각국 정부의 냉대나 몰이해의 말을 마주하게 된다. 이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도 있고, 더 심하게는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하나님의 사역이 진실한지 의심하고, 더욱이 하나님의 옳고 그름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그들은 늘 자신의 안위를 고려하기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나님 집에서 착실하게 본분을 이행하지 못한다. 이들이 정말 목숨을 하나님께 맡겼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해외에 나오면 큰 붉은 용의 마수에서 벗어난다는 것 아니었나? 해외에는 종교 신앙의 자유가 있는 것 아니었나? 모든 게 자유롭고 편한 것 아니었어?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로 해외에서 본분을 이행하게 되었는데, 왜 똑같이 열악한 환경을 마주해야 하는 거지? 왜 해외에서도 이런 공과를 배우고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 거야?’ 의구심을 품는 사람도 있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반발하며, 마음속으로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 ‘정말 참도이고 하나님의 사역이라면 왜 충심으로 본분을 이행하는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렇게 불공평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거지?’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하기에, 자신의 안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이런 몰이해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의심으로 변한다. 이런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해외에서 본분을 이행하면서도 위험을 감수하기를 두려워한다. 위험을 좀 감수해야 하는 본분을 안배하기라도 하면 “저는 이 본분의 적임자가 아닙니다. 제 고향은 중국이에요. 만약 큰 붉은 용에게 걸리기라도 하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핑계를 댄다. 그들은 그런 본분을 거부한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스스로를 지키는 것,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것, 자기 목숨을 지키고 퇴로를 마련해 두는 것이지, 자신을 완전히 내어놓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버리면서 본분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여기에 이르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안위와 관계될 때 그들이 보이는 모습이다. 혹자는 마음속으로 불안해하면서 늘 이에 대해 기도한다. 또 혹자는 수시로 두려워하고 겁을 먹으면서 사탄의 세력이 너무 강한데 자기처럼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겁을 먹고 걱정하는 것이다. 더 심한 사람의 경우, 자기가 체포되어 일이 생기면 교회나 하나님 집도 어쩌지 못할 거라고, 정말 일이 터지면 아무도 도움이 안 될 테니 자기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에 나서서 위험이 따르는 본분을 맡아야 하는 순간이 오면 숨어 버리는데 누가 불러도 꿈쩍하지 않는다. 자기는 그 본분을 감당할 수 없다는 둥 갖가지 핑계와 이유를 대면서 하나님 집에서 맡긴 중요한 본분을 거부하는 것이다. 만약 좋은 여건이 갖춰져 있다면 그런 사람은 대중 앞에서 확성기를 들고 “저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일원입니다. 모두 참도를 알아보시길 바랍니다.”라고 외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안위와 관계되지 않은 일이라면 아무 두려움 없이 이렇게 행동한다. 하지만 조금만 기미가 안 좋아도, 자신의 안위에 관련된 어떤 상황이나 돌발 상황이라도 나타나면 바로 열정이 사그라들고 ‘충성심’과 ‘믿음’도 사라진다. 그저 이리저리 숨어다니며 눈에 안 띄는 일과 주목받지 않는 사역이나 하면서 얼굴을 드러내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사역, 본분은 다른 사람에게 미룬다. 하지만 환경이 좋아지는 순간, 광대가 날뛰는 것처럼 다시 튀어나온다. 튀어나와서 무엇을 하겠느냐? 스스로를 뽐내기 시작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게 하고, 하나님에게 자신의 열정을 보게 하며, 그 순간의 충성심을 하나님에게 알게 하는 한편, 여태까지의 행동 때문에 벌충하고 한시바삐 만회하려고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기미가 안 좋아도,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며, 다시 숨어 버린다.

복음 사역이 갓 확장되기 시작했을 때, 복음 전파는 무척 어려웠다. 그때는 복음 전파 인원이 많지 않은 데다가 그들이 깨달은 진리도 얕아서 사람들의 종교 관념에 대해 분명하게 분별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을 얻기가 무척 어려운 데다가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위험까지 감수해야 했다. 인성이 좋은 사람을 만나면 기껏해야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끝이었다. 그가 너를 때리거나 욕하는 일은 없었고, 관계를 유지해 두면 앞으로 그를 얻을 가능성도 있었다. 이는 그래도 성과가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악인이나 각 종교 각 교파의 목사, 장로들을 만나면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너에게 집중포화를 퍼부으면서 죄를 인정하라고 강요했다. 만약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너를 흠씬 두들겨 팰지도 모르며, 더 심할 경우 경찰에 신고해 너를 경찰서로 보낼 수도 있었다. 너는 언제라도 감옥에 수감될 위험에 직면할 수 있었다. 어떤 교회 리더는 이러한 일에 속박되지 않고 본분을 이행해야 할 때는 이행했고, 또 어떤 리더는 앞장서서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했다. 반면, 일부 소위 ‘리더’, 외식하는 리더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위험이 닥쳤을 때, 자기는 가지 않고 다른 사람을 보냈다. 내가 들은 바에 따르면, 한 리더는 복음 대상이 어떤 교파의 수장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다른 사람을 보내 복음을 전하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골똘히 궁리했지만, 당장 적당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고, 자신이 가는 게 그나마 적절해 보였지만 위험해질까 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18~19세의 어린 자매를 보냈다. 말해 보아라. 그 어린 자매를 보내야 했겠느냐? (보내지 말아야 했습니다.) 어째서 그러하냐? (복음 대상이 한 교파의 수장으로, 많은 종교 관념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자매는 분량이 작고 깨달은 진리도 얕아서 진리 교제로 복음 대상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상대에게 전도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자기까지 미혹당할 수 있습니다.) 나이도 얼마 안 된 어린 자매가 진리를 얼마나 깨닫고 있겠느냐? 성경 지식을 얼마나 알고 있겠느냐? 그녀가 한 교파의 수장을 얻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느냐? 그 나이에는 분명 복음 전파 경험도 없을 것이다. 이 밖에도, 그녀는 이제 막 성인이 되어 사회 경험이 없다. 그런 그녀가 성인들에게 어떤 관념과 생각, 어려움이 있는지 간파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분명 간파하지 못할 것이다. 그 나이에는 불가능하다. 그녀는 결코 성인의 생각에 이르지 못한다. 말해 보아라. 그저 나이만 볼 때, 어린 자매가 최적의 인선이었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최적의 인선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리더는 그 어린 자매를 보냈다. 그 심보가 올바르겠느냐? (올바르지 않습니다.) 그녀는 심보가 비뚤어졌다. 그 어린 자매를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얼마 후, 어린 자매는 그 교계의 수장을 만나자마자 상대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고 리더에게 보고했는데, 자기가 너무 무서워서 다시 가는 게 겁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리더는 어린 자매를 난처하게 하고 압박하며 말했다. “안 돼요. 이건 당신의 본분이라고요. 반드시 가야 합니다!” 압박을 받은 자매는 눈물까지 흘리며 말했다. “제 본분이니 가야겠죠. 하지만 저는 이 본분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정말 못한다고요.” 그런데도 리더는 고집을 부리며 계속 말했다. “못하더라도 가야 해요. 다른 사람이 없으니 당신이 가야 한다고요!” 이는 어떤 리더냐? 그녀는 위험이 닥쳤을 때 자기 자신을 지키고 물러났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험에 처하게 했으며, 다른 사람이 감당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심지어 놀라서 계속 우는 상황에서도 동의하지 않았다. 이는 어떤 인간이냐? 이런 자가 사람이냐? (아닙니다.)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형제자매의 안위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했으며, 심지어 다른 사람의 안전과 자신의 이익을 맞바꾼다. 이는 도박꾼 부모가 돈을 다 잃자 빚을 갚는 대신 딸을 내놓는 것과 같은데, 난관을 해결하고 재난을 피하기 위해 가장 가까운 사람을 내놓고 자신의 행복과 맞바꾸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는 어떤 인간이냐? 이런 자에게 인성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인성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다. 이것 하나만 보아도 이 부류를 적그리스도로 규정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혹자는 “그가 그렇게 한 건 교회 사역과 복음 전파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좋은 뜻에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키는 것 아닐까요? 어떻게 적그리스도라고 규정하실 수 있는 겁니까?”라고 말하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느냐?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럼 말해 보아라. 이 일은 과연 어떤 성질의 문제냐? (그 리더는 자기 이익과 안위를 위해 다른 사람의 목숨과 안전을 대가로 지불했습니다. 그러니까 속셈을 품고 다른 이를 불구덩이로 떠민 것이지요. 그녀의 인성은 더없이 악독합니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그 리더는 어린 자매가 그 사역을 결코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스스로를 지키려고 그렇게 안배한 것이었다. 동시에, 자신의 본분 이행에 대해 보고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의 이익과 안위를 희생함으로써 개인의 목적을 이루려고 한 것이었다. 그녀는 이런 속셈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누가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지, 누가 그 복음 대상을 얻을 수 있을지, 누가 이 사역에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최적의 인선을 찾지도 않았다. 이런 행동의 본질은 본분을 위한 것도, 충성심과 책임을 다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상부에 보고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이의 이익을 희생하고, 나아가 남을 해하는 것으로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남을 해하는 행동으로 스스로를 지키고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었다. 이런 본질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본질은 이런 것이다. 그러므로 이 리더의 행동은 적그리스도의 행동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근원이 여기에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다. 적당한 사람이 없고, 그 어린 자매도 없어서 그녀에게 직접 그 교파 수장한테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했다면 갔겠느냐? “합당한 사람이 없다면 제가 가겠습니다.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얻기 위해서라면 제 목숨까지도 바치겠습니다. 이건 제 직책이고 본분이니까요.”라고 말했겠느냐? 그녀가 이렇게 행동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느냐? 우리는 억측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 무엇에 근거하여 그녀가 그렇게 행동할 수 없다고 말하느냐? (그녀는 정말로 성과를 내고, 복음 대상을 얻기 위해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대충 형식만 취하며 어린 자매를 보낸 거고요. 그 어린 자매가 없었다 해도 복음 상대를 얻기 위해 자기가 직접 가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 바로 그런 것이다. 주변에 합당한 사람이 없다면 자기가 가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그녀가 정말 본분에 충성을 다하고 자기 안위를 고려하지 않았다면, 어린 자매를 보내는 게 아니라 자기가 갔을 것이다. 그녀가 가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문제를 설명해 주느냐? (그녀가 자신의 안위와 이익을 지키려고 했음을 설명해 줍니다.) 그렇다. 바로 그런 것이다. 만약 그녀가 본분에 충성심이 있었다면 직접 그 중임을 짊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고 대신 가장 부적합한 사람을 보냈다. 가장 부적합한 사람을 가장 위험한 곳에 보냄으로써 자기는 위험을 피하고 스스로를 지키려는 목적을 이루려 했다. 이것이 그녀의 속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행위이다. 이는 사람을 안배하는 측면에 관한 것이다.

큰 붉은 용은 중국 대륙에서 줄곧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잔혹하게 진압하고 체포하며 박해해 왔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늘 위험한 환경에 직면해 왔다. 일례로, 중국 정부는 갖가지 명목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수색하고 체포한다. 그 과정에서 적그리스도가 거주하는 지역을 찾아냈을 때 적그리스도는 가장 먼저 무엇을 생각하겠느냐? 그는 교회의 사역을 타당하게 안배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그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날까 하는 생각을 한다. 교회가 진압당하고 신자들이 체포될 때, 적그리스도는 뒷수습을 하는 법이 없다. 교회의 중요한 물자나 인력을 안배하지도 않고 그저 갖가지 이유와 핑계를 대며 자기만 안전한 곳에 가서 정착하면 그만이다. 그 자신의 신변 안전이 보장되면, 교회의 사역, 인원, 물자 등 배치에 기본적으로 직접 개입하지 않고 물어보지도 않으며, 나아가 구체적으로 안배하지도 않는다. 결국 적시에 안전한 곳으로 이동되지 못한 교회 물자와 돈이 큰 붉은 용에게 대거 갈취당하고 강탈당해 교회에 크나큰 손실이 생기고, 더 많은 형제자매가 체포되는 결과가 야기된다. 이는 적그리스도가 사역에 책임을 지지 않아 생긴 일이다. 적그리스도의 마음속 깊은 곳 1순위는 자신의 개인적인 안전이다. 이는 그가 시시각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일깨우는 문제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절대 일이 생겨선 안 돼. 다른 사람 누가 잡혀가도 나는 잡히면 안 된다고. 나는 편히 살다가 하나님의 사역이 끝날 때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얻어야 한단 말이야. 내가 잡혀가면 유다가 될 거야. 그렇게 되면 다 끝장이야. 종착지는 사라지고 징벌을 받게 되겠지.’ 그래서 그는 어떤 지역에 가서 사역을 할 때마다 먼저 어느 집이 가장 안전한지, 어느 집이 세력이 있는지, 어디에 머물면 정부의 수색과 체포를 피하고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지 알아본다. 그다음으로는 어느 집이 매끼 고기를 먹고 여름에는 에어컨을, 겨울에는 히터를 켤 수 있는 좋은 생활 여건을 갖추었는지 알아본다. 이 밖에도, 누가 하나님을 믿는 데 비교적 열정적이며 토대를 갖추고 있는지, 일이 터졌을 때 누가 그를 지켜줄 수 있는지 등을 알아본다. 그는 가장 먼저 이런 것들을 알아본다. 다 알아보고 자신이 머물 만한 곳을 정한 뒤에는 어느 정도 표면적인 사역을 한다. 메시지를 보내고 말로 어떤 소식이나 사역지침을 전달하는 것이다. 네가 보기에 적그리스도가 사역할 줄 아느냐? 자신의 신변 안전을 위해 이렇게 세심하고 적절하게 안배하는 것을 보면, 구체적인 사역을 할 줄 알고 마음속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심보가 곱지 못하고 오직 이익만을 꾀하며 진리를 싫어하기에 설령 자신의 행동이 진리에 어긋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다는 것을 안다고 할지라도 고집을 부리며 막무가내로 행동하려 한다. 그의 모든 행동은 자신의 신변 안전을 위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제대로 자리를 잡은 후, 자신에게 일이 생기거나 위협이 닥치지 않을 거라고 판단되면 그다음으로 얼마간 표면적인 일을 한다. 적그리스도는 몹시 세밀하게 일을 처리하고 안배하지만, 그것도 대상이 누군지에 따라 달라진다. 자신의 이익과 관계된 일은 아주 주도면밀하게 처리하지만, 교회 사역이나 그의 본분 범위 안에 있는 일을 할 때는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무책임한데, 양심과 이성이 전혀 없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모습 때문에 그를 적그리스도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자질을 논하자면, 그는 자신의 안위를 이렇게까지 완벽하고 세심하게, 또 구체적으로 고려하니 자질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머리도 좀 굴러갈 것이다. 하나님 집 사역도 능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는 적그리스도라고 불려서는 안 된다. 그런데 왜 그는 적그리스도라고 불리겠느냐? 이는 그의 본질에 따라 보아야 하는데, 그가 진리를 받아들이고 실행할 수 있는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는 자기가 머무는 환경, 먹고 마시는 것, 그리고 자신의 안전 문제는 더없이 완벽하고 구체적으로 고려하지만, 하나님 집 사역과 관계되면 사람이 180도 달라져서 매우 이기적이고 비열하게 굴며 하나님의 뜻을 전혀 헤아리지 않는다. 이런 자는 절대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집의 사역이나 상부의 사역지침을 대할 때는 그저 거른다. 자기가 원하거나 원치 않는 것, 자신의 안위와 관계가 있거나 관계가 없는 것 등은 꼼꼼하게 따지며 거른다. 그 후 좀 쉽고 위험하지 않은 사역을 하면서 그가 놀고먹는 것만 좋아하며 본업에 힘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부에서 알아채지 못하게 한다. 또 적그리스도는 사역을 안배한 후 구체적으로 사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물어보거나 감독하는 법이 없다. 예를 들어, 하나님 집에서는 재물이나 각종 물자를 어떻게 안배할지, 어디에 둘지, 어떻게 보관할지, 어떤 사람들에게 보관하게 할지 등에 대해 다 구체적인 원칙과 규정이 있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입으로 말하기만 할 뿐, 안배하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환경이 적당한지 신경 쓰지 않고, 현장에 가서 살펴보는 법도 없이 입으로 몇 마디 하기만 할 뿐이다. 구체적으로 하나님 집의 그 물자들이 적절하고 안전하게 안배되었는지 속으로 전혀 알지도 못하고, 물어보지도 알아보지도 않으며, 관심은 더더욱 없다. 그래서 적그리스도가 리더 자리에 있는 동안에는 그의 사역 범위 안에서 하나님 말씀 서적이 악인들에게 압류되기도 하고, 보관을 잘못해서 곰팡이가 슬기도 한다. 심지어 일부 서적이나 물자를 보관하는 장소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사람이 없을 때도 있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일을 구체적으로 안배하지 않으며, 나아가 물어보거나 알아보지도 않는다. 그저 안배하면 끝이고, 몇 마디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형식만 취할 뿐 성과를 내려고는 하지 않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이런 태도에 충성심이 보이느냐? (보이지 않습니다.) 충성심이 보이지 않는다. 교회의 각 물자 안배에 대해 적그리스도는 관여하는 법이 없다. 물어보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겠느냐? 안배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겠느냐?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서 그도 형식적으로 안배는 한다. 그래야 누가 상부에 그를 고발하는 일이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구체적인 사역을 하는 법이 없다. 구체적인 사역이란 무엇을 의미하겠느냐? 그 물건들을 어디에 놓을지, 안전할지,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쥐가 파먹지는 않을지, 물에 잠기는 일은 없을지, 도둑맞지는 않을지, 보관하는 사람이 적합한지 등에 관한 사역을 의미한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것에 관해 물어보거나 알아보거나 걱정하는 법이 없다. 그는 ‘내가 그것들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 나한테는 소중하지 않지. 내가 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전부 다른 사람 거고 하나님 집 소유니까 나랑은 무관해. 그러니 마음을 졸이지도 않을 거야. 걱정하고 싶은 사람한테 걱정하라고 해. 나는 신경 쓰지 않을 테니까.’라고 생각하며 안배를 마치면 그것으로 끝이다. 심지어 어떤 적그리스도는 아예 안배하지도 않는다. 그는 이런 사역은 잘해도 공을 인정받지 못하고, 잘못해도 추궁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누가 겨우 이 정도 일로 상부에 보고하겠어? 하나님이 이 정도 일로 나를 징벌하시겠냐고.’ 적그리스도는 본분을 대할 때 그저 형식만 따르고 대충 넘어가는 관점과 태도를 취할 뿐이다. 이런 것들이 자기 지위와 안위에 위협이 되지 않는 한 관리 여부에는 관심이 없다. 물건이 분실되거나 적어지거나 망가져도 그와는 무관하다. 적그리스도는 마음속으로 하나님 집의 물자는 공공재에 속하니 그것들을 전혀 걱정할 필요도, 신경 쓸 필요도 없으며, 그것을 관리하기 위해 어떤 에너지도 소모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적그리스도는 리더 자리에 있는 동안 직무를 소홀히 하고 개인의 누림만 생각할 뿐 구체적으로 사역하는 법이 없기에 하나님 집의 각종 물자가 큰 붉은 용에게 점유되고 약탈당하거나 악인에게 강점당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혹자는 “그 열악한 상황 속에서 누가 그렇게 많은 것을 챙길 수 있겠습니까?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작은 문제도 생기지 않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라고 하는데, 이것이 작은 문제가 생긴 것이냐? 단언컨대, 사람이 책임과 충성을 다했다면 물자 손실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을 것이며, 분명 손해를 줄이고 사역 성과는 훨씬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복받기만을 바란다. 그 외에, 하나님 집이나 하나님의 이익과 관련된 일에는 신경 쓰는 법이 없다. 무슨 일을 하든 자기 이익을 중심에 두는데, 하나님 집의 사역이 자기 이익과 관련이 없으면 내버려두고, 관여하지도 않는다. 이 얼마나 이기적이냐! 심지어 어떤 적그리스도는 리더로 있는 동안 자기 사역 범위 안에 있는 제물의 상당 부분을 큰 붉은 용에게 약탈당하기도 했는데, 그 액수는 정말 놀랄 만했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양심의 가책 따위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나중에는 이렇게까지 말했다. “저 혼자만의 책임은 아니잖아요. 전적으로 제 탓이라고만 할 수 있나요? 게다가 이런 상황은 피할 수도 없잖아요.” 그는 조금도 뉘우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기까지 하며, 많은 변명으로 스스로를 변호했다. 이는 어떤 인간이냐? 이런 사람은 출교시켜야 하지 않겠느냐? 저주받고 징벌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이렇게 큰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조금도 뉘우치지 않는다! 만약 정상적인 사람, 인성이 있는 사람, 하나님에게 충성심이 있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소홀함 때문에 하나님 집의 재물을 큰 붉은 용에게 빼앗긴다면 어떤 태도를 보이겠느냐? (후회하고 자책하며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럼 이후 어떤 행동을 하겠느냐? 어떻게든 방법을 생각해서 벌충하려 할 것이며, 마음속 깊이 죄스러워하고 후회할 것이다. 또 남들이 무슨 말을 하든 원망 한마디 하지 않고, 궤변을 늘어놓지도 않으며, 자기가 소홀히 했다고, 자신의 과오라고 인정할 것이다. 또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고 하나님 집에서 어떻게 처리하든 전부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는 왜 받아들이지 않겠느냐? 자신을 출교시키면 그는 왜 원통해서 어쩔 줄 몰라 하겠느냐? 이는 적그리스도의 본성이 드러난 것이다. 자신이 하나님 집 사역에 그렇게 큰 손실을 안겨 주고, 자신이 직무를 소홀히 한 탓에 숱한 사람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으며, 많은 제물을 큰 붉은 용에게 약탈당했는데도 그는 전혀 자책하지 않고 죄스럽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게다가 스스로를 위해 궤변을 늘어놓고, 하나님 집의 처분에 불복하여 여기저기 헛소리까지 퍼뜨리고 다닌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이게 대체 어떤 인간이냐? 이런 행동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뼛속을 들여다보면, 그의 본성 본질은 진리와 하나님을 적대시한다. 그는 인성이 없으며, 살아 있는 마귀이자 사탄이며, 인두겁을 쓴 짐승이다. 인성이 있는 사람은 조금만 일을 그르치고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마음속으로 자책한다. 하지만 살아 있는 마귀, 적그리스도는 그렇지 않다. 이렇게 큰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자책은커녕 궤변을 늘어놓으니, 그에게 진리란 무엇이겠느냐? 그가 마음속으로 진리의 존재를 인정하겠느냐? 하나님 말씀이 바로 진리이고, 하나님이 바로 진리라는 이 사실을 그가 인정하겠느냐?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분명 인정하지 않는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그 자신이 진리이고 하나님이다. 그 밖에 다른 하나님은 없다. 이는 마귀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런 자가 바로 마귀, 전형적인 마귀이다. 적그리스도는 교회의 물자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안배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에게 귀중품이 있을 때, 그가 잘 보관하는지 보아라. 밤에 잠꼬대를 하면서도 한 글자도 발설하지 않고, 누가 때려도 말하지 않는다. 그는 아주 철저하게 보관한다. 반면, 하나님 집의 물자에 대해서는 다르다. 사실 이런 태도다. ‘알 게 뭐야!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 것도 아닌데. 내가 잘 보관한다 해도 누가 갖게 될지 모르잖아! 소중하게 보관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는 이 일을 자기 본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인성이 없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는 인성이 없는 모습이다. 이런 것을 가리켜 뭐라고 하겠느냐? 신뢰할 수 없다고 한다. 하나님이 이 사역을 너에게 맡겼고, 네가 이행해야 할 본분을 주었으니, 이는 네 본분 내의 일이다. 너는 마땅히 이 일들을 잘 처리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요구와 원칙,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대로 하나하나 제대로 처리하는 한편 적절히 안배해야 한다. 그러면 네 책임을 다한 것이다. 그런데 적그리스도에게 이런 마음, 이런 생각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전혀 없다. 이것이 바로 인성이 없는 것이다. 인성이 없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겠느냐? 양심과 이성이 없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신용이 없어 믿을 수 없고, 어떤 일도 맡길 수 없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교회의 인사 문제에 있어, 누가 어디에서 어떤 사역을 하는지, 그 사역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본분 이행에 성과가 있는지, 방해하고 교란하는 상황이 나타나지는 않는지, 형제자매들의 반응은 어떤지 등에 구체적으로 관여하지 않고 안배하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하나님 집에서 각 방면의 인재를 제공해 달라고 요구하면, 적그리스도는 그 사람들의 소개서를 쓱 한번 훑어볼 뿐, 그들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거나 살펴보지 않는다. 예컨대, 하나님을 믿는 데 토대가 있는지, 인성은 어떤지,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그들이 갖춘 특기와 업무 기술이 하나님 집의 요구 기준에 부합하는지, 중요한 본분을 맡도록 양성하기에 적절한지 등을 말이다. 적그리스도는 이러한 일에서 형식만 취하고 흉내만 내며, 소개서만 한번 쓱 훑어보면 끝이다. 제공할 사람들과 실제로 접촉하는 일은 결코 없고, 자세하게 깊이 알아보는 일은 더더욱 없다. 그 결과, 그가 선발한 사람은 대부분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거나 본연의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도태되고 만다. 적그리스도는 이 일을 어떻게 보겠느냐? ‘어쨌든 나를 발탁해서 본분을 이행하라고 한 것도 아니니 나랑 상관없어. 그러니 누가 가든 다를 게 없잖아? 내가 결정하고 통과시켜 사람을 제공했으니 나는 사역을 한 거야. 게다가 그렇게 발탁된 사람은 나한테 신세를 진 거고. 그들이 양성할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내가 알 바 아니지.’ 적그리스도가 부적합한 사람들을 제공한 탓에 하나님 집 사역에 지장을 주었다면, 그들에게 책임이 없겠느냐? (있습니다.) 그들의 책임은 너무도 크다. 그런 마귀 같은 것들은 전혀 점검하지 않는다. “어떤 곳은 상황이 좋지 않아서 본인과 접할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점검한단 말입니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상황이 아무리 좋지 않아도 그런 일을 처리하는 데는 방식과 길이 있다. 사람이 책임을 지는지, 마음을 다하는지에 달렸다. 그렇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네가 충성심과 책임을 다했다면 그 일의 결과가 그리 좋지 않더라도 네게 책임이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은 감찰하고 알 것이다. 반면, 네가 충성심과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면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없고 뒤탈이 없더라도 하나님은 감찰한다. 이 두 가지의 성질은 같지 않으며, 하나님은 구분하여 대한다. 적그리스도는 사람을 제공하는 일에서도 수작을 부리고, 이기적이고 비열한 속셈을 품으며, 충성심이 없다. 그는 어떤 일을 하든 원칙을 따르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계산이 있다. 이 밖에, 세부 사역을 제대로 하려면 나서야 하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고생하고 수고해야 하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자신의 안위와 관련된 문제에서 적그리스도는 또 계산기를 두드리고 본성을 드러낸다. 어떤 본성을 드러내느냐? 그는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면 안전하지 않으니 함부로 사람들을 만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만나야 할 사람도 만나지 않고, 누구도 접하지 않는다. 그저 안전한 보금자리를 찾아 거기에서 지내는데, 숨어서 간단한 사역만 할 뿐이다. 다른 사역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교란하는 사람은 없는지, 사역지침과 각종 하나님 말씀 서적, 설교 녹음은 전달됐는지 등에 대해 적그리스도는 한 번도 구체적으로 안배하지 않고, 관여하지도 않는다. 반드시 위험을 감수하거나 나서거나 사고가 나야 충성심이 있는 거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여기에서 문제는 무엇이냐? 누가 말해 보아라. (그는 처음 그 사역을 할 때, 과연 어떻게 해야 사역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자기가 제공한 사람들이 적합한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음과 책임을 다하지 않았지요. 이러한 것들을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전혀 충성을 다하지 않았다. 하나님에게 충성심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일을 처리하는 성질은 다르다. 똑같이 위험한 일이 임했을 때, 충성심이 있는 사람은 위험을 무릅쓰고 움직이며, 지혜를 발휘하고 방법을 써서 사역지침을 시행한다. 반면, 적그리스도는 위험하든 위험하지 않든 세부 사역을 하지 않으며, 그에게서 사역지침은 시행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차이점이다. 적그리스도는 말로는 교회 상황과 각 사역 등에 대해 물어보겠지만, 그마저도 형식만 취하고 사역하는 시늉만 할 뿐, 전혀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 겉으로 보면 세부 사역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속으로는 아무것도 모른다. 적어 두지도 않고, 묵상하지도 않고, 기도하고 구하지도 않는다. 어떤 사역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됐는지, 잘 안 된 부분은 누가 담당했는지, 어느 교회의 리더가 부적합한지, 어느 지역의 사역이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지 등을 생각하는 데 에너지를 쏟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형식만 취할 뿐인데, 문제가 발견되어도 해결하지 않는다. 몇몇 소위 ‘리더’라고 하는 자들은 그저 사람들을 불러 모아 예배드리며 상황을 알아보고, 사역을 분석하고 연구하기만 할 뿐이다. 세부 사역과 관계되어 고난을 겪고 대가를 치러야 하면, 또 자신의 안위에 관계된 일이라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손을 뗀다. 일은 거기까지만 하고 자신을 보전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문제를 발견하고도 구체적으로 안배하지 않는다. 만약 그가 하나님을 믿는 사실이 잘 알려져서 잡혀갈 위험에 직면한다면, 다른 사람이 가서 사역하도록 안배하겠느냐?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을 안배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문제이다. 그러니 이 부류가 드러내는 본질은 무엇이겠느냐? 충성심이 없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언제나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이 시행되었는지, 하나님 집 사역의 진전 상황이 어떠한지 관여하는 법이 없고 마음에 담아 두지도 않는다. 그들은 충성을 다하지 않았고, 충성을 다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이러한 일은 대충 형식만 취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사역을 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작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면 억지로 어느 정도 하지만, 위험이 크고 체포될 가능성이 있으면 하지 않는다. 아무리 중요한 사역이라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본질이다. 적그리스도의 내면에서는 자기 이익만 보장되면 누구든 팔아넘길 수 있다. 그의 이익은 하나님 집의 이익을 기반으로 세워져 있는데, 그들에게 그들의 이익은 지고무상하다. 적그리스도 부류가 본분을 받아들이면 충성심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충성심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럼 그들이 형제자매의 목숨이나 신변 안전을 위해 고려하겠느냐? (고려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안위와 관계가 있을 때, 적그리스도는 오직 자신만 보전할 뿐, 형제자매는 불구덩이로 밀어 넣어 그의 희생양으로 삼는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이다.

일부 적그리스도는 자신의 안위 말고 또 무엇을 고려하느냐? 그들은 말한다.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으니 얼굴을 드러내거나 복음을 전하는 일을 줄입시다. 그러면 쉽게 잡히지 않을 테고 교회 사역도 파괴되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체포되지 않으면 유다가 될 일도 없고,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핑계를 대며 형제자매를 미혹하는 적그리스도가 있지 않으냐? 어떤 적그리스도들은 죽음이 두려워 구차하게 삶을 이어 가면서도 명예와 지위는 좋아해서 리더가 되고자 한다. ‘리더 사역은 감당하기 어려워. 큰 붉은 용에게 들키면 이름이 알려지고 수배령이 떨어지겠지. 체포되는 순간 목숨이 위협받을 테고.’ 그는 비록 그걸 알면서도 지위의 복을 누리기 위해 이런 위험을 무릅쓴다. 그가 리더가 되면 육적인 즐거움만 누릴 뿐, 실제적인 사역은 하지 않는다. 각 교회에 편지를 보내 좀 교류하는 것 외에 다른 사역은 하지 않고, 한 곳에 숨어 누구도 만나지 않으며 스스로를 꼭꼭 숨긴다. 이에 형제자매들은 리더가 누구인지도 모른다. 그는 이 정도로 두려워한다. 그럼 그가 이 리더를 맡은 일이 유명무실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는 리더로서 어떤 실제적인 사역도 하지 않고 숨는 것만 생각한다. 누가 그에게 “리더가 되니 어떤가요?”라고 물으면 그는 “리더는 정말 바쁘답니다. 안전 때문에 항상 이사를 다녀야 하고요. 이런 환경에 교란받아 사역할 기분도 아니에요.”라고 대답한다. 그는 늘 수많은 눈동자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아 어디 숨어야 안전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는 매일 변장하고 여기저기 숨고 도처로 이사를 다니는 것 외에는 어떤 실제적인 사역도 하지 않는다. 이런 리더가 있지 않으냐?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원칙을 신봉하느냐?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교활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파 놓는다고 하죠. 천적이 쳐들어올 때를 대비해서 굴을 세 개 준비해 몸을 숨기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이 위험에 직면해 도망치려고 할 때 숨을 곳이 없으면 되겠습니까? 우리는 토끼한테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동물은 모두 이러한 생존 능력을 갖추고 있죠. 사람도 마땅히 배워야 한다고요.” 그는 리더가 된 이후 이 이치를 깨닫고, 자신이 진리를 깨달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잔뜩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어떤 리더가 안전하지 않은 곳에 머물다가 신고를 당했다거나, 수시로 나가서 본분을 이행하면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다 보니 큰 붉은 용의 염탐꾼에게 감시당하다가 붙잡혀서 판결을 받았다거나 하는 말을 들으면 그는 겁을 먹는다. ‘아이고, 다음번에는 내가 잡혀가는 것 아닐까? 교훈을 얻어야 해. 너무 활발하게 활동하지 말자고. 교회 사역을 웬만하면 하지 말고, 얼굴도 가급적 드러내지 말자. 사역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되도록 집 밖에 나가지 말고, 누구와도 접촉하지 말자. 내가 리더라는 것을 아무도 모르게 해야지. 요즘 세상에 누가 다른 사람을 챙기겠어? 살아남을 수만 있어도 족하지!’ 그는 리더가 된 후 가방을 들고 피신하는 것 외에 아무 사역도 하지 않는다. 체포되고 옥살이를 할까 봐 온종일 가슴을 졸이면서 말이다. 누군가 알려 준다. “체포되면 죽은 목숨이랍니다! 당신이 리더가 아니라 일반 신자라면 체포되어도 벌금만 좀 내고 빠져나올 수 있겠죠. 하지만 리더라면 장담 못 해요. 너무 위험해요! 어떤 리더 일꾼은 체포된 후에 죽음을 각오하고 침묵을 지키다가 경찰한테 맞아 죽었답니다!” 맞아 죽은 사람이 있다는 말에 그는 더더욱 겁을 먹고, 사역을 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는 매일 머릿속으로 어떻게 해야 체포되지 않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감시당하지 않고 형제자매들과 접촉하지 않을 수 있을지만 궁리한다. 그는 머리를 쥐어짜서 이런 것들만 생각하느라 자기 본분은 까맣게 잊어버린다. 이런 사람이 충성심이 있겠느냐? 이런 사람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저 간이 작을 뿐이라고, 이 한 가지 모습으로 그를 적그리스도라고 확정할 수는 없다고 하지만, 그의 이런 모습은 어떤 성질을 띠느냐? 이런 모습의 본질은 불신파이다. 그는 하나님이 사람을 안전하게 지켜 준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나아가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자 스스로를 바치는 것이 진리를 위해 몸 바치는 일이고 하나님이 인정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그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오직 사탄과 사악한 정당만을 두려워한다. 하나님의 존재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사실도 믿지 않고,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도를 준행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부탁을 완수하기 위해서 전부를 바치면 하나님께 인정받는다는 사실은 더더욱 믿지 않는다. 그는 이런 것은 알지 못한다. 그는 오직 무엇만을 믿느냐? 큰 붉은 용의 손안에 떨어지면 좋은 결말이 없다는 것, 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는 것, 심지어는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다는 것만을 믿는다. 그는 마음속으로 자신의 안전만을 고려할 뿐, 교회 사역은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자는 불신파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성경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느냐?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39)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이 말을 믿겠느냐? (믿지 않습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본분을 이행하라고만 하면 그는 남들 눈에 띄지 않도록 숨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몸을 숨기고만 싶을 것이다. 그는 이 정도로 두려워한다. 그는 하나님은 사람이 기댈 곳이며,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믿지 않고, 정말 일이 생기고 체포되어도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한 일이니 사람은 마땅히 순종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에게는 이런 마음, 이런 인식, 이런 준비가 없다. 이런 자가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태도의 본질은 불신파가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바로 그런 것이다. 이런 부류는 무척 겁이 많고, 놀라서 간이 콩알만 하고, 자기한테 일이 생길까 봐, 육적으로 고생할까 봐 두려워한다. 고두리에 놀란 새가 되어 사역을 하지 못한다. 앞에서 말한 부류는 아예 어떤 사역도 하지 않고, 사역을 할 수 있어도 하지 않는다.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도 처리하지 않고, 스스로를 보전하는데, 몹시 이기적이고 비열하다. 이 두 부류는 똑같이 불신파이다. 첫 번째 부류는 교활하고 간사하며, 고생하고 힘든 것을 두려워하고, 육적인 것을 생각하고,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다. 두 번째 부류는 겁이 너무 많아 실제적인 사역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며, 큰 붉은 용에게 체포되어 박해받을까 봐 두려워한다. 이 두 부류는 차이가 있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적그리스도가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측면에 대해 너희가 아는 사례가 있느냐? (하나님, 제가 한 가지 사례를 알고 있습니다. 한 교회에서 적그리스도가 권력을 잡고 함부로 날뛰는 바람에 리더, 집사와 형제자매 몇 명이 전부 큰 붉은 용에게 잡혀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적그리스도는 체포될까 봐 두려워서 뒷일을 안배해 두지 않은 채 한 외진 지역에 가서 숨었지요. 심지어 접대 가정에서 지낼 엄두를 못 내고 기어이 제물을 가지고 셋집을 구해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후속 사역을 제대로 안배하지 않고, 잠재적 위험 요인을 제때 차단하지 못한 탓에, 결국 형제자매 몇 명이 또 잡혔습니다. 교회 사역도 어쩔 수 없이 중단되었고요. 저는 적그리스도가 몹시 이기적이고 비열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자기 이익만을 지킬 뿐, 하나님의 이익은 전혀 지키지 않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심하게 이기적이고 비열하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이 없고, 충성심은 더더욱 없다. 일이 닥쳤을 때 자신만 보호하고, 자신만 지킨다. 그는 자신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교회의 사역이 얼마나 큰 손실을 보든 상관없다고, 자기가 살아 있고 붙잡히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특별히 이기적이다. 그들은 형제자매, 교회 사역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안위만 생각한다. 이런 자가 바로 적그리스도다. 그럼 하나님에게 충성심이 있고 진실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이런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처리하겠느냐? 적그리스도의 행동과 어떤 다른 점이 있겠느냐? (하나님에게 충성심이 있는 사람은 이런 일이 임했을 때 온갖 방법을 생각해 하나님 집의 이익을 지킵니다. 하나님의 제물이 손실되지 않게 보호하고, 리더 일꾼과 형제자매들을 잘 안배해 손실을 최소화합니다. 반면, 적그리스도는 먼저 자기 자신을 보호합니다. 교회 사역과 하나님 선민의 안위는 신경 쓰지 않고, 체포에 직면할 때 교회 사역에 손실을 안겨 줍니다.) 적그리스도는 교회 사역과 하나님의 제물을 포기한 채 신경 쓰지 않으며, 사람을 안배해 뒤처리를 하지도 않는다. 이는 큰 붉은 용이 마음대로 하나님의 제물을 빼앗아 가고 하나님의 선민을 잡아가도록 내버려두는 것과 같다. 이는 변칙적으로 하나님의 제물과 하나님의 선민을 팔아넘기는 것 아니겠느냐? 하나님에게 충성심이 있는 사람은 환경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도 위험을 무릅쓰고 제대로 뒤처리를 해서 하나님 집의 손실을 최소화한 후에 몸을 빼는데, 그는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큰 붉은 용의 사악한 국가에서 하나님을 믿고 본분을 이행하는 데에 위험이 전혀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느냐? 어떤 측면의 본분을 이행하든 다 어느 정도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본분 이행은 하나님의 부탁이니 하나님을 따름에 있어 반드시 위험을 무릅쓰고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얼마간 안전 조치를 취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개인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두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 집의 사역과 복음 확장을 일 순위에 놓아야 한다. 하나님이 네게 맡긴 부탁을 완수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이것이 일 순위이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자신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둔다. 그는 다른 것은 자신과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 사고가 나든 개의치 않고, 자신만 사고가 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면 그는 편안해한다. 그에게는 조금의 충성심도 없는데, 이는 바로 적그리스도의 본성 본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중국이라는 환경에서 본분을 이행하면서 위험을 조금도 감수하지 않으려 하고, 일이 생기지 않게 보장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 아무리 신중한 사람도 보장할 수 없다. 하지만 반드시 신중해야 하는데, 사전에 제대로 준비를 하면 좀 나을 것이다. 일이 생겼을 때도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 만약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면, 일이 생겼을 때 손실이 무척 클 것이다. 이 두 가지 사이의 차이를 명확히 알 수 있지 않으냐?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든, 어떤 본분을 이행하든 신중한 것이 좋으며, 대비를 해 놓을 필요가 있다. 충성심이 있는 사람은 본분을 이행할 때 주도면밀하고 전반적으로 생각할 줄 안다. 그는 속으로 이 일들을 가능한 한 잘 안배해서 일이 생겼을 때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이런 성과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충성심이 없는 사람은 이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일을 자기 책임이자 본분으로 여기지 않고, 일이 생겨도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충성심이 없는 모습이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에게 전혀 충성심이 없다. 그에게 사역을 안배하면 흔쾌히 받아들이며 좋은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위험이 닥치면 누구보다 빨리 달아난다. 그는 가장 먼저 달아나고 가장 먼저 도망친다. 여기에서, 그가 몹시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책임감도 충성심도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이 닥치면 도망치고 숨을 줄만 알고, 스스로를 보전하려고만 하며, 자기 책임과 본분은 생각하는 법이 없다. 적그리스도는 자신의 신변 안전을 위해 어디에서나 이기적이고 비열한 본성을 드러낸다. 그는 하나님 집의 사역과 자신의 본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집의 이익은 더더욱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안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방금 교제한 항목은 적그리스도의 갖가지 모습 중 제9조의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는 것과 관계가 있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스스로를 지키고 자신에게 위험이 닥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또 육적인 고통을 겪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 집 사역과 자기 본분을 대충 건성으로 처리하는 태도를 보이며, 자리만 차지하고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는 것 아니겠느냐? 하나님 집의 이익과 하나님의 사역, 자기 책임을 내팽개치고 그 대가로 자신의 안위를 얻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이 항목에서 해부한 모습들은 적그리스도의 이기적이고 비열한 본질을 충분히 드러낸다. 여기에서 주로 교제한 것은 무엇이냐? 적그리스도는 일이 생기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를 보전하고자 자기 본분을 다하지 않고, 하나님에게도 전혀 충성심을 보이지 않는다. 적그리스도의 이런 모습에 진리 실제가 있겠느냐? 이는 양심과 이성을 상실한 것 아니겠느냐? 이것이 바로 인성이 없는 것이다!

2) 자신의 명예와 지위

이어서 두 번째 항목인 적그리스도 자신의 명예와 지위에 관해 교제하겠다. 이 또한 적그리스도의 이익과 관계가 있다. 지금 이야기하는 이 세 가지 항목, 적그리스도 자신의 안위, 명예와 지위, 혜택은 모두 적그리스도의 이익과 관계된다. 그럼 하나님 집 사역과도 관계가 있겠느냐, 없겠느냐? (있습니다.) 어떤 관계가 있겠느냐? (적그리스도는 스스로를 보호하고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지키기 위해 교회 사역을 망치고 교란합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집의 이익과 교회 사역에 해를 끼치는 것을 대가로 자신의 이익을 지킨다. 적그리스도의 이기적이고 비열한 본성으로 볼 때, 이 부류가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것 외에 또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겠느냐? (그들은 명예와 지위를 무척 소중히 여깁니다.) 그렇다. 적그리스도는 명예와 지위를 무척 좋아한다. 명예와 지위는 그들의 목숨줄로, 그것이 없으면 살아갈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무엇을 하든 힘이 없다. 적그리스도에게 있어서 명예와 지위 두 가지는 그의 실질적인 이익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그의 치명적 약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적그리스도의 모든 행동은 지위와 명예를 중심으로 하며, 이 두 가지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그들은 어떤 사역도 하지 않을 거라고 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에게 지위가 있든 없든, 그가 분투하는 목표와 노력하는 방향은 이 두 가지, 바로 명예와 지위를 위한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중국이라는 독재 통치하에서 하나님을 믿으며 자신의 신변 안전을 보장받고자 하나님 집 이익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그는 한편으로는 온 힘을 다해 지위를 추구하면서 권력을 단단히 손에 쥐고 교회를 통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종일관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위해 말하고 사역하며 바쁘게 뛰어다닌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모든 언행의 중심에 있는 핵심이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선민들의 생명 진입이나 하나님나라의 복음 확장을 위해 조금이라도 실제적인 사역을 하는 법이 없다. 그가 대가를 치를 때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보아라. 어떤 사건을 두고 극력 논쟁할 때, 그가 왜 논쟁을 벌이는지 보아라. 그가 어떤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할 때, 그에게 어떤 속셈과 목적이 있는지 보아라. 그가 어떤 일 때문에 분노를 터뜨릴 때, 어떤 성품을 드러내는지 보아라. 사람은 사람의 내면을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내면을 볼 수 있다. 사람의 내면을 보았을 때, 하나님은 사람 언행의 본질을 무엇으로 판단하겠느냐? 진리로 판단한다.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지키는 것은 사람의 눈에 무척 정당한 일로 보인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그것을 적그리스도의 표출이자 모습, 본질로 규정하겠느냐? 이는 적그리스도가 일을 하는 출발점과 동기에 근거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일하는 출발점과 동기를 감찰한 결과, 그들의 모든 행동이 본분 이행을 위한 것이나 나아가 진리를 실행하고 하나님에게 순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적그리스도는 명예와 지위를 추구한다. 그렇기에 그의 말과 사역도 분명 명예와 지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무엇보다 높이 생각한다. 그의 주변에 자질이 좋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명망을 얻는다면, 팀장으로 발탁되어 형제자매들 모두로부터 높이 평가받고 동조받는다면, 적그리스도는 어떻게 반응하겠느냐? 마음속으로 언짢아하고 질투까지 할 것이다. 그런데 적그리스도가 질투심을 품었다면 네 생각에 그가 그렇게 얌전히 있을 수 있겠느냐? 일을 벌이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가 정말 그 사람을 질투한다면 어떤 일을 벌이겠느냐? 그는 마음속으로 이런 계산을 할 것이다. ‘그 사람은 자질이 좋고 업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어. 나보다 뛰어나지. 이건 하나님 집 사역에 이로운 일이지만, 나한테는 그렇지 않아! 그가 내 지위를 빼앗아 가지는 않을까? 언젠가 정말 나를 대체한다면 곤란하지 않겠어? 선제공격을 해야 해. 너무 커 버리면 손쓰기 힘들 거야. 미리미리 손을 써 두자. 한발 늦어서 그가 나를 폭로하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몰라. 그럼 어떻게 손을 쓸까? 구실을 만들고 기회를 찾아야 해.’ 너희가 말해 보아라. 사람이 누군가를 괴롭히겠다고 생각한다면, 구실을 만들고 기회를 찾아내는 건 무척 쉬운 일 아니겠느냐? 마귀의 간계 중 하나가 무엇이더냐? (“죄를 씌우려고 한다면 구실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입니다.) 그렇다. “죄를 씌우려고 한다면 구실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사탄의 세상에는 이런 논리, 이런 일이 있다. 하나님 편에서는 결코 그런 것들이 없다. 적그리스도는 사탄에게 속한 자로, 그런 일을 벌이는 데 능하다. 적그리스도는 이렇게 생각한다. ‘죄를 씌우려고 한다면 구실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 나는 너에게 죄명을 갖다 붙이고 기회를 봐서 너를 손봐 줄 거야. 네 기세를 꺾어 놓고, 형제자매들이 너를 우러러보지 않고 다음번에는 너를 팀장으로 뽑지 않게 말이야. 그러면 나한테 위협이 되지 않겠지? 후환을, 경쟁자를 제거하면 마음이 편해지지 않겠어?’ 그의 마음이 이렇게 요동칠 때, 겉모습은 평온하겠느냐? 적그리스도의 본성을 봤을 때, 그가 이런 생각을 가슴에 묻어 둔 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수 있겠느냐? 절대 그럴 리 없다. 그는 어떻게든 방법을 생각해 내서 행동에 옮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흉악한 면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목적을 이루려고 한다. 그래서 머리를 쥐어짜며 모든 것을 제쳐 놓고 고민한다. 하나님 집의 이익도, 교회 사역도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할지 여부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명예와 지위, 권세를 지키는 것만 고려할 뿐이다. 그는 그 경쟁자가 자신의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기회를 잡아 상대를 무너뜨리려고 한다. 그리고 상대가 그의 동의 없이, 줄곧 건성으로 본분을 이행해 온 사람을 교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그는 기회가 왔다고, 마침내 경쟁자의 약점을 잡았다고 생각하며 형제자매들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오늘은 마침 모두가 모여 계시니 이 일을 해부해 보도록 하죠. 자신의 파트너나 사역자와 의논하지 않고 사사로이 인원을 교체하는 건 독재를 하는 게 아닐까요? 사람이 왜 이런 잘못을 저지를까요? 성품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요? 이건 책망해야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이런 자는 형제자매들이 저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지며 부풀려 상대를 깎아내리고 자신을 높인다. 사실 그 일은 그렇게까지 심각하지 않다. 한 팀원의 본분을 교체하고 조정하는 것은 원칙에 부합하기만 하면 사후에 보고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이 일을 물고 늘어지며 부풀렸고, 목적을 갖고 상대를 공격하는 한편 스스로를 높였다. 이는 사람을 괴롭히고 혼내 주는 행동 아니겠느냐? 그는 정면으로 자기 경쟁자를 한바탕 책망했는데, 상대에게 커다란 꼬리표만 달아 놓았다. 형제자매들은 그의 말을 듣고 이렇게 생각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뭔가 이상하네. 저 사람 말도 실제에 부합하지가 않잖아! 본분이 조정된 그 사람이 책임감 없이 본분을 이행한다는 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야. 그를 교체한 건 교회 사역을 지키는 일이지. 이런 식의 본분 이행은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임하는 거고, 충성심 있는 태도라고. 그런데 왜 그 사람한테 독재를 했다는 꼬리표를 붙이는 거야? 이건 정말 ‘죄를 씌우려고 한다면 구실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거잖아!’ 진리를 조금이라도 깨닫고 분별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딱 봐도 적그리스도가 위세를 부리며 상대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게 어디 사역에 책임을 지는 것이겠느냐? 그게 어디 사람을 책망하고 훈계하는 것이겠느냐? 적그리스도가 이렇게 사건을 부풀리는 것은 순전히 사적인 원한을 갚기 위해 공격하고 보복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의 뜻과 사탄에게서 비롯된 것이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사역과 본분에 대한 책임감 있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는 그런 속셈이 아니었다. 적그리스도가 너무 분명히 자기 속셈을 드러내서 그것을 알아차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적그리스도는 그것을 느끼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적그리스도의 교활한 면이 여기에 있다. 그는 지위를 지키고 교활하게 궤변을 늘어놓으며 사람의 마음을 회유하는 데 누구보다 능하고, 사람의 마음을 ‘통찰’하는 것은 더더욱 능하다. 그는 마음속으로 ‘당신들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나는 간파할 수 있어. 당신들이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지만 당신들은 나를 간파하지 못해. 그러나 나는 당신들을 간파할 수 있어. 내가 한 몇 마디에 불복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다 간파할 수 있다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이 말을 하겠느냐? 하지 않는다. 그는 듣기 좋은 말과 표현으로 모두가 승복하게 하고, 그의 훈계에 일리가 있다고 말하게 한다. 그가 어떤 말을 쓰겠느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당신을 책망하는 것은 사심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 사이에 사사로운 원한 같은 건 없죠. 당신이 함부로 한 사람의 본분을 중단시켜 하나님 집의 이익에 피해를 주었기 때문에 이러는 겁니다. 제가 이 일에 관여를 안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제가 당신이 하는 대로 둔다면 그것은 제가 책임감이 없는 것입니다. 제가 이러는 것은 당신이나 다른 누군가를 겨냥하려는 게 아닙니다. 만약 제 행동이 잘못되었다면 형제자매들이 지적하고 비난해도 상관없습니다. 저는 다음 선거 때 기권하겠습니다.” 혹자는 이 말을 듣고 속으로 어리둥절해진다. ‘아무래도 내가 그를 오해한 모양이야. 선거 때 기권하겠다니, 이건 지위를 다투는 게 아니잖아. 교회 사역에 책임을 지는 태도에서 비롯된 거니까 잘못된 게 없어.’ 적그리스도는 또 몇몇 사람을 미혹했다. 적그리스도가 교활하지 않으냐? (교활합니다.) 너무도 교활하다! 적그리스도는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위해 그야말로 머리를 쥐어짜고 온갖 생각을 해내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병 주고 약 준다.”라는 말이 있다. 적그리스도가 이 수법을 쓰지 않겠느냐? 그는 너를 공격한 후에 다시 듣기 좋은 말로 달래고 권유하여 네가 그에게는 포용과 인내, 사랑이 있다고 생각하게 하며, 마지막에는 그에게 동조하면서 “보십시오. 저 사람은 명확한 목표를 갖고 자연스럽고 합당하게 사역을 합니다. 얼마나 대단한 능력입니까! 딱 봐도 리더십이 있는 거죠. 우리는 모두 부끄러울 뿐입니다.”라고 말하게 한다. 이렇게 되면 적그리스도의 목적이 달성된 것 아니겠느냐?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수완이다.

적그리스도 부류는 매우 간교하고 교활하다. 말에 빈틈이 없고 누구보다 위장에 능하다. 그는 일단 꼬리가 드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분별되는 순간 극력으로 궤변을 늘어놓으며, 방법을 생각해 상황을 해결하고 어물쩍 넘어가려 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체면과 명성을 되찾고자 한다. 적그리스도는 매일 오직 명예와 지위를 위해서 살아가며, 지위의 복을 누리기 위해서 살아간다. 그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전부 이런 일들뿐이다. 가끔 고생을 하고 대가를 치른다 할지라도 그것 역시 전부 명예와 지위를 얻는 데 목적이 있다. 지위를 추구하고 권력을 잡고 복을 누리는 것, 이는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믿은 후로 늘 고심하며 경영하는 큰일이다. 그는 목적을 이루기 전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다 언젠가 악을 행한 것이 폭로되면 그는 큰 화가 닥친 양 두렵고 불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한다. 밥도 넘기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하며 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정신도 멍해진다. 남이 어찌 된 일이냐고 물으면 거짓말을 지어내 “어제 너무 바빠서 밤을 새웠더니 매우 피곤하네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그런 것이 아니고, 다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마음속으로 줄곧 이렇게 고민하기 때문이다. ‘내가 저지른 잘못이 드러났어. 이제 내 명예와 지위를 어떻게 회복하지? 어떤 방식으로 만회해야 할까? 모두에게 어떤 말투로 이 일을 해명하지? 어떻게 말해야 사람들이 나를 간파하지 못할까?’ 아무리 오랫동안 생각해도 방법이 떠오르지 않자 우울해진 것이다. 때로 두 눈은 한 곳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데, 뭘 보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는 그 일 때문에 머리를 쥐어짜고 온갖 궁리를 하며, 식음을 전폐한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교회 사역에 관심이 있는 양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복음 사역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현재 복음 전파 성과는 어떻죠? 형제자매들은 생명 진입이 있나요? 방해하고 교란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그가 이렇게 교회 사역에 대해 알아보는 것은 의도적으로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함이다. 정말로 문제점을 발견하면 그는 해결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의 이런 질문은 그가 교회 사역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형식에 불과하다. 만약 누군가 교회의 문제를 보고하며 해결해 달라고 하면 그는 고개를 저을 뿐, 아무 대책도 내놓지 못한다. 꾸미고 싶어도 꾸미지 못하는 데다 폭로되고 드러나게 될 수도 있다. 이는 적그리스도 인생 최대의 난제이다. 이때, 적그리스도는 뜨거운 가마 속의 개미 같고, 때로 고개를 젓는데 마치 “이러면 안 돼.”라고 하는 것 같다. 그 후에는 손으로 자기 머리를 툭툭 두드리는데, 그 의미인즉슨 ‘내가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 어떻게 이런 일에서 넘어질 수 있는 거야?’라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한탄만 한다. 적그리스도는 오직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위해 분투하고 바쁘게 뛰어다니고 고통을 겪고 대가를 치르며, 자신의 야심과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하나님의 선민에게 폭로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이다. 진리를 추구하지 않으면 언젠가 넘어진다는 말이 적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위장에 능하고 말재간이 뛰어나며 사람을 잘 미혹하기는 하지만, 만약 하나님의 선민들이 진리를 깨닫고 사람의 본질을 분별할 수 있다면, 적그리스도가 아무리 꼭꼭 숨기고 많은 악을 행한다고 해도 100% 분별해 낼 수 있다. “불의를 많이 행하면 반드시 자기 무덤을 파게 되어 있다.”, “불장난하는 자는 제 불에 타 죽기 마련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사물이 발전하는 객관적인 법칙이다. 이 법칙은 하나님이 만사와 만물의 발전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으로, 아무도 벗어날 수 없다. 적그리스도가 권력을 잡고 있는 범위 안에서는 교회 사역이 계속 진행되기는 해도 성과가 한참 떨어지고, 일부 중요한 사역이 악인에게 통제되며,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도 실행되지 못한다. 하나님의 선민들이 각자 본분을 이행하고 있지만 실제적인 성과가 없고, 각 사역은 진작에 마비 상태에 빠져 버렸다. 이 문제들의 근원은 어디에 있겠느냐? 바로 적그리스도가 교회를 통제했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가 권력을 잡고 있는 곳이라면 그 범위가 얼마나 되든 상관없이, 설령 팀 단위일지라도 하나님 집의 사역과 일부 하나님 선민의 생명 진입에 영향이 간다. 적그리스도가 한 교회에서 권력을 잡으면, 교회 사역과 하나님의 뜻은 모두 가로막힌다. 하나님 집의 사역지침이 왜 일부 교회에서 시행되지 못하겠느냐? 적그리스도가 그 교회에서 권력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무릇 적그리스도에 속하는 자들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지 못하며 본분을 이행할 때는 형식만 취하고 대충 흉내만 낸다. 리더 일꾼이 된다 해도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고 오직 명예와 이익, 지위를 위해서만 말하고 행동할 뿐, 교회 사역을 전혀 지키지 않는다. 그럼 적그리스도는 매일 무엇을 하느라 바쁘겠느냐? 매일 자신을 연기하고 스스로를 뽐내느라 정신이 없다. 그는 자신의 명리나 지위에 관련된 일, 남을 미혹하고 우롱하는 일로 바쁘다. 그러다가 충분히 역량을 갖추면 더 많은 교회를 통제하려고 든다. 그에게는 왕권을 잡고 교회를 독립 왕국으로 만들 생각, 대단한 리더가 되어 혼자 권력을 잡고 더 많은 교회를 통제할 생각뿐이다. 그것 외에 다른 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교회 사역도, 하나님 선민들의 생명 진입도 생각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자기가 언제 홀로 권력을 장악하고 하나님의 선민들을 통제하며, 하나님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적그리스도의 야심과 욕망이 얼마나 엄청나냐! 적그리스도가 겉으로 보기에 무척 고생하는 것 같아도 사실 그는 자신의 사업,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느라 바쁘고, 자신의 명리나 지위에 관련된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자신의 본연의 사역과 그가 마땅히 이행해야 할 본분을 그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올바른 일은 전혀 하지 않는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인간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마귀 사탄이다.

예전에 한 리더가 재임하는 동안 내가 다섯 가지 일을 맡긴 적이 있었다. 하지만 두 달 후, 그 다섯 가지 일은 하나도 이행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 볼 때 그는 놀지 않고 무척 바쁘고 힘들었으며, 온종일 얼굴 한 번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 그는 무엇 때문에 바빴겠느냐? 내가 맡긴 일들을 왜 처리하지 않았겠느냐?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어떤 일은 그가 하기 싫어서 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이 자기 본분 내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한 가지 문제였다. 또 어떤 일은 그에게 다른 의견이 있어서 한쪽에 팽개치고 일부러 처리하지 않았다. 또 어떤 일은 난이도가 좀 있어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고 귀찮은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도 그는 하지 않았다. 이 몇 가지 상황 때문에 그는 두 달의 시간 동안 한 가지 일도 시행하지 못했다. “그 일들이 두 달 내에 끝낼 수 없는 것 아니었을까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두 달 내에 전부 끝낼 수 있는 일들이었고, 게다가 하루 이틀이면 끝낼 수 있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리더는 이행하지 않았다. 그 후, 다른 사람이 이 일을 맡아 하자 일주일 만에 다섯 가지 일을 전부 끝냈다. 말해 보아라. 그 리더는 교체되어야 마땅하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이 또 보인다면, 상부에서 맡긴 일을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무척 바빠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자는 바로 거짓 리더이다. 이런 사람은 한시바삐 교체하고 도태시켜야 한다. 이 원칙이 어떠하냐? (좋습니다.) 겉으로 보면 열정적이고 온종일 바삐 보내지만 사실 그는 실제적인 사역을 하지 않는다. 그저 여러 잡다한 일로 쓸데없이 바삐 보낼 뿐이다. 그는 무엇을 하겠느냐? 몇 가지 일만 한다. 그중 한 가지는 그가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일, 안전하고 아무런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 일이다. 여기에서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의미겠느냐? 그 일을 할 때 문제가 생길 확률이 낮고, 상부와 접촉할 필요도 없어서 실수가 생기거나 책망을 듣는 일은 피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 한 가지는 그가 비교적 잘하는 일, 쉽사리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일이다. 이런 일을 하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고, 책망과 훈계를 받거나 제명되고 출교당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또 이런 일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고 책임을 질 필요도 없으니 대응이 가능하다. 사실, 여기에는 숨겨진 사실이 있다. 만약 이런 일을 하면서 남들 앞에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가 하겠느냐? 만약 그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면 그가 하겠느냐? 그는 분명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어떤 일을 하기 좋아하느냐? 비교적 쉽고 간단한 일, 조금 고생하면 해낼 수 있는 일을 하기 좋아한다. 이 밖에, 그는 자기가 흥미를 느끼고 자기 관념에 부합하는 설교를 많이 듣고 기억하려 한다. 이해한 다음 다른 사람에게 얘기해 주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일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과시하여 사람들에게 우러름을 받으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런 일을 해서 더 많은 사람을 접할 수 있고, 더 많은 사람에게 그가 사역 때문에 바쁘며, 그는 리더라는 사실, 그에게 그 지위와 신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할 수 있다면 그는 그 일을 할 것이다. 그는 이런 일을 선택한다. 만약 그가 하려는 사역이 비교적 복잡해서 감당하기 힘들고 다른 사람이 그보다 뛰어나다면, 제대로 못 할 경우 추태를 보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기 쉽다면, 그는 이런 일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는 고생하는 것도 힘든 것도 싫어하고, 일을 제대로 못 해서 체면이 깎이는 것도 싫어한다. 또 그는 무척 게을러서 힘들고 고생스러운 일을 만나면 멀리 도망간다. 그저 체면이 좀 사는 일, 여유 있는 일을 하면서 대충 형식만 취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회유하며, 상부에 속내를 간파당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는 다 적그리스도의 뼛속에 있는 것들이다. 그들은 본분을 선택적으로 이행하는데, 자신의 선택과 계산이 있고, 심지어는 자신의 계략까지 있다. 그들은 절대 순순히 하나님 집의 안배에 순종하지 않으며, 자신의 선택이 있다. 상부의 일부 안배에 대해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그는 절대 시행하지 않는다. 그 일은 그에게서 완전히 막혀 버리고, 교회의 형제자매들은 그 일에 대해 알 수가 없다. 만약 상부의 안배를 시행하다가 누군가와 충돌이 일어나고 원망을 살 수 있다면, 그가 시행하겠느냐? 이때도 그는 시행하지 않는다. 그는 마음속으로 ‘상부에서 이런 일을 시켰지만 나는 하지 않을 거야. 설사 하더라도 상부를 내세워서 위에서 시킨 거라고 해야지. 그 사람들한테 원망을 사지는 않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적그리스도 부류가 교활하지 않으냐? 그는 어떤 일을 하든 마음속으로 8~10번씩, 심지어는 더 많이 계산한다. 그들이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전부 사람들 가운데서 발붙이고 서는 방법, 뛰어난 명성과 명망을 얻는 방법, 상부에 잘 보이는 방법, 형제자매들의 옹호와 추대를 받는 방법 등인데, 그들은 그 방법대로 행동한다. 그들이 어떤 길을 걷고 있겠느냐? 하나님 집의 이익, 교회의 이익, 하나님 집의 사역은 그들이 마음속으로 중요하게 고려하는 일이 아니고, 관심을 갖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이 일들은 나와 무관해.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잖아. 사람은 스스로를 위해서,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위해서 살아야 해. 그게 최고의 목표라고. 자신을 위해 살아가고 자신을 지키는 법을 모른다면, 그건 바보야. 나한테 진리 원칙대로 실행하라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 집의 안배에 순종하라고 한다면 그게 나한테 이로운지, 어떤 이점이 있는지를 봐야 해. 하나님 집의 안배에 순종하지 않을 때 제명되거나 복받을 기회를 잃게 될 수도 있다면 순종할 거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지키기 위해 늘 뜻을 굽혀 보전을 꾀한다. 적그리스도는 지위를 위해 어떤 고통이든 감내하며, 뛰어난 명성을 위해 어떤 대가든 지불한다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대장부는 굽힐 줄도 펼 줄도 안다.”라는 것이다. 이는 사탄의 논리 아니겠느냐? 이는 사탄의 처세 철학이자 생존 법칙으로, 역겹기 그지없다!

적그리스도는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이런 자들은 간사하고 교활하고 사악할 뿐만 아니라 특히 흉악하다. 자기 지위가 흔들리거나, 사람들 마음속 그의 지위를 이미 잃었고, 남들의 옹호나 추대를 받지 못하고, 더 이상 자신을 앙망하거나 우러러보는 사람도 없고, 명성이 땅에 떨어진 것을 알게 되면 그들은 어떻게 하겠느냐? 즉시 태도가 돌변할 것이다. 일단 지위를 잃어버리면, 어떤 본분도 이행하지 않으려 하고, 무슨 일이든 건성으로 대충 하고, 무엇을 해도 기분이 나지 않는다. 이건 그래도 최악의 모습은 아니다. 최악의 모습은 무엇일까? 이자들은 일단 지위를 잃고 누구 하나 자기를 우러러보지 않고 더 이상 사람들을 미혹할 수 없게 되면, 마음속에 증오와 질투, 복수심이 생긴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없거니와 눈곱만큼의 순종도 없다. 또한 그들은 속으로 하나님 집을 증오하고 교회를 증오하고, 리더 일꾼을 증오한다. 교회 사역에 문제가 생기거나 마비 상태에 빠지기를 바라면서 교회와 형제자매를 비웃으려 한다. 그 외에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를 미워하고, 충성을 다해 본분을 이행하고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고 비웃는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성품이다. 아주 흉악하지 않으냐? 딱 봐도 악인이 자명하다. 적그리스도의 본질은 바로 악인이다. 그는 온라인 예배를 할 때조차 인터넷 신호가 좋은 것을 보면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뇌며 저주한다. ‘끊겨라! 끊겨! 아무도 설교를 듣지 못하면 좋을 텐데!’ 이는 어떤 인간이냐? (마귀입니다.) 이는 마귀이다! 이런 자는 절대 하나님 집 사람이 아니다. 이런 마귀, 악인은 어느 교회에 가든 이렇게 교란하며,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 폭로하고 제약하더라도 스스로를 돌아보거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한순간의 소홀함으로 인해 실수를 저질렀으니 앞으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죽어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누가 그를 분별하고 폭로하든 승복하지 못하고 상대에게 보복하고자 한다. 자기가 불편하면 그는 형제자매들도 잘 지내기를 원치 않으며, 심지어는 마음속으로 몰래 형제자매들과 하나님 집 사역에 일이 생기라고 저주한다. 그러다가 하나님 집 어딘가에 일이 생기면 마음속으로 몰래 기뻐하고 좋아한다. ‘흥! 드디어 일이 생겼군. 나를 교체했기 때문이야. 모든 것이 잘못되면 좋지!’ 누가 연약해지고 소극적으로 변한 모습을 보면 그는 기뻐하고 마음속으로 흡족해하며, 조롱하고 비꼬는 말로 상대를 깎아내리기까지 하는데, 심지어는 소극성과 사망의 말을 유포하기도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본분을 이행하고, 이런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말해 보세요. 하나님 집에서 우리의 미래를 책임져 줄까요? 이런 생각을 해 본 적 있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대가를 치르는 게 가치 있는 일일까요? 저는 지금 몸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만약 과로로 몸이 망가지면 누가 우리를 부양해 줄까요?”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람들을 소극적인 상태에 빠뜨리기 위한 것인데, 그렇게 되면 기뻐한다. 이는 음흉하고 음험하며 악독한 것 아니겠느냐? 이런 사람은 보응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말해 보아라. 이런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겠느냐? 그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 같지 않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한다는 사실을 전혀 믿지 않는다. 이런 자는 불신파 아니겠느냐? 만약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느냐? 그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말이 옳겠느냐? (옳지 않습니다.) 어째서 옳지 않으냐? (그의 마음에는 아예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적대시합니다.) 사실,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기에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감찰한다는 것을 믿지 않으며, 하나님이 그의 모든 언행과 생각, 마음을 감찰한다는 것도 믿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을 믿지 않기에 두려움이 없고, 제멋대로 그런 마귀적인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방인들은 “하늘도 눈이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지켜본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사람에게 진실한 믿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불신파의 이런 마귀적인 말을 함부로 지껄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고 말하면 그 결과가 심각하지 않겠느냐? 그 성질이 심각하지 않겠느냐? 너무도 심각하다! 이렇게 하나님을 부정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참작의 여지 없는 마귀이고, 하나님 집에 섞여 들어온 악인이라는 뜻이다. 오직 마귀, 적그리스도만이 감히 공개적으로 하나님께 대들 수 있다. 하나님 집의 이익은 하나님의 이익을 의미하며, 하나님 집에서 행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인도와 허락, 인솔하에 있고, 하나님의 경영 사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하나님 집의 사역을 저주하고, 마음속으로 하나님 집의 사역을 비방하면서 하나님 집을 조롱거리로 만들려고 하고, 언젠가 하나님의 선민들이 모두 체포되어 교회 사역이 철저히 마비되기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두 믿음을 포기하고 물러나기를 바라는 자, 그렇게 되면 기뻐하는 자, 이는 어떤 사람이겠느냐? (마귀입니다.) 이는 마귀이자 악마의 환생이다! 평범한 사람은 누구나 패괴 성품을 갖고 있고, 때때로 패역을 드러낸다. 소극적인 상태에 빠지고 연약해질 때는 약간의 나쁜 생각을 품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그는 그렇게까지 못되지 않고, 그렇게까지 사악하고 악독한 생각을 갖지는 않는다. 오직 적그리스도와 마귀만이 이런 본질을 갖고 있다. 적그리스도가 이런 생각을 할 때, 마음속으로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는지 의심하겠느냐? (의심하지 않습니다.) 어째서 의심하지 않겠느냐? (그는 자기 생각과 말을 진리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그의 본성은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그의 본성이다. 사탄이 언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여겼느냐? 언제 하나님을 진리라고 생각했느냐? 그런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적그리스도, 마귀도 이러하다. 그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고, 진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고 주재하는 분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는 자기 말이 맞다고 여기며, 서슴없이 함부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이것이 바로 본성이다. 반면, 패괴된 인간은 이렇게 행동할 때 마음속에서 전쟁이 일어난다. 그에게는 양심이 있고, 사람으로서의 지각이 있다. 사람의 양심과 지각, 그리고 사람이 깨달은 진리가 내면에서 작용하여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전쟁이 벌어질 때면, 옳고 그름, 시(是)와 비(非), 정의와 사악함이 맞붙어 그 결과가 나오는데,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 편에 서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사탄의 사악한 세력 편에 선다. 적그리스도의 모든 행동은 사탄에게 협력하는 것이다. 그는 소극성과 헛소문을 퍼뜨리고, 하나님 집을 웃음거리로 삼으며, 하나님 집의 사역을 저주하고 비방하고, 또 형제자매를 저주하면서도 마음이 편안하다. 그는 내면에 양심의 참소를 받지도 않고 전혀 후회하지도 않는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100% 옳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적그리스도의 사탄 본성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추악한 몰골이 철저히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를 가리켜 영락없는 마귀이자 사탄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도 과하지 않다. 적그리스도는 태생이 마귀로, 절대 하나님이 구원하는 대상이 아니고, 절대 보통의 패괴된 인간이 아니다. 적그리스도는 마귀의 환생으로, 날 때부터 악마이다. 바로 이런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명예와 지위이다. 적그리스도는 명예와 지위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머리를 쥐어짜며 온갖 궁리를 다 하고 모든 대가를 불사하면서 자신의 명예와 지위를 경영한다. 이 두 가지는 그에게 있어 목숨줄이자 전부이다. 그는 이 두 가지를 얻으면 전부를 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세상에는 오직 지위와 명예, 자신의 이익뿐, 다른 것은 없다. 그러니 적그리스도 부류와 진리, 인성, 정의, 긍정적인 사물에 대해 교제하는 것이 소용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그렇다. 소용없다. 이는 음녀에게 양갓집 규수나 현모양처가 되라는 것과 같다. 그녀는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고 거슬려 할 것이며, 또 싫어할 것이다. 어느 정도로 싫어하겠느냐? 마음속으로 너를 욕하는 한편, 기회를 잡아 너를 조롱하고 비꼬고 공격하고 배척할 것이다. 현재 교회에는 진리를 교제하는 것, 또는 하나님의 지배와 안배에 순종하는 것이나 하나님 집의 안배에 순종하는 것 등의 진리를 교제하는 것을 듣기만 하면 극도로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있지 않으냐? (있습니다.)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런 모습을 드러내는지 관찰해 보아라.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에 순종해야 한다고 교제하기만 하면 큰 반감을 보이면서 ‘온종일 하나님의 안배에 순종하는 것에 대한 말만 늘어놓고 있네. 뭐든 다 하나님의 안배고, 사람은 하나도 선택할 수가 없네!’라고 생각한다. 진리를 교제하기만 하면, 조화롭게 협력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진리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면서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고 교제하기만 하면, 그는 큰 반감을 품고 듣지 않으려고 한다. 설사 억지로 들을지라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다. 만약 정말 가만히 앉아 있다면 분명히 잠들었을 것이다. 원칙에 따른 일 처리와 진리에 대해 교제하기만 하면 꾸벅꾸벅 졸지만, 한동안 진리를 교제하지 않고 책망과 훈계도 없으면 힘이 나서 제멋대로 굴고 혼자서 결정한다. 또 한 손에는 명예를, 다른 한 손에는 지위를 쥐고 누구보다 기뻐 날뛰고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른다. 이런 자는 모두 적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으로, 언제든 큰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

무릇 적그리스도 본성을 지닌 사람은 적그리스도로 정의 내려야 하며, 그들이 제멋대로 결정하려 할 때는 제약하고 제지해야 한다.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다. 제지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겠느냐? 내가 한마디로 그를 제지할 수 있는 묘책을 알려 주겠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면 대놓고 말해라. “당신이 제멋대로 굴거나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당신이 결정권을 갖지도 않으면 죽기라도 합니까?” 이 말이 어떠하냐? (좋습니다.) 너희가 말해 보아라. 만약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게 한다면 적그리스도는 정말 죽을 수 있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는 말은 어떻게 나온 것이냐? (적그리스도는 뼛속까지 그런 사람입니다.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으면 괴로워하고 못 살 겁니다.) 그렇다. 그는 뼛속까지 그런 사람이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괴로워한다. 그럼 그가 정상인이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정상인이 아니다. 정상인이라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게 한다면 포기하면 되지. 어려울 게 뭐가 있어? 나도 더 수월할 텐데!’ 정상인은 이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적그리스도는 어떠하냐?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면 괴로워한다. 마음속에 마귀가 살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한테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게 하면 죽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마귀가 마음속에서 그를 괴롭히고 교란하여 견딜 수 없게, 살 수 없게 하여 마치 죽을 것만 같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의미이다. 적그리스도와 악인, 그리고 마귀들이 하나님 집의 사역을 교란할 때, 위와 같은 한마디를 하는 것은 어떤 진리를 얘기해 주는 것보다 효과가 있다. 이 말은 적그리스도, 악인, 마귀 등 하나님 집의 사역을 교란하는 부류에게 유용하다. 이들에게 진리를 말해 주면 효과가 있겠느냐? (없습니다.) “조화롭게 협력해야 하며, 진리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고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 이런 말은 몇 년이나 해 왔다.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겠느냐? 없을 것이다. 그럼 왜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겠느냐? 이는 한 가지 사실만을 설명해 준다. 바로 그는 의도한 것이 아니고, 그는 정상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머리와 심장은 스스로를 지배하지 못한다. 그의 내면에서는 또 다른 무엇이 그를 지배하고 있으며, 이렇게 강렬하고 강제적으로 일을 처리하도록 그를 지배한다. 그 일은 바로 하나님 집의 사역을 방해하고 교란하고 망쳐서 하나님 집의 이익에 해를 주는 것이다. 그럼 어떤 존재가 이런 일을 하겠느냐? 이런 일을 하는 존재는 오직 마귀와 사탄뿐이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 정상적인 사람, 진정한 피조물은 속셈을 품고 이런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 오직 마귀 사탄만이 속셈을 품고 고의로 이런 일을 저지른다. 이 말을 기억했느냐? (기억했습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교제하겠다. 다음에 다시 보도록 하자!

2020년 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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