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람을 권면하고 위로하는 하나님의 말씀

653) 지금 너희를 심판하고 형벌하고 정죄하지만, 그것은 너희 자신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정죄하고 저주하고 심판하고 형벌하는 것 모두 너 자신을 알게 하고 너의 성품을 변화시키기 위함이며, 더욱이 너의 몸값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모든 일은 공의롭고 그의 성품에 따라 한 것이며, 그의 사역의 필요에 따라 한 것이자 사람을 구원하는 그의 계획에 따라 한 것임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는 공의로운 하나님이다. 네가 만약 자신의 지위가 낮다는 것과 자신이 패괴되었고 패역하다는 것만 알 뿐, 하나님이 지금 너에게 하는 심판과 형벌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려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너는 체험할 수 없고 계속 나아갈 수도 없다. 하나님은 사람을 치거나 멸망시키려고 온 것이 아니라 심판하고 저주하고 형벌하고 구원하러 온 것이다. 6천 년 경륜이 끝나기 전, 즉 각 부류 사람들의 결말을 드러내기 전에, 하나님이 땅에 와서 하는 사역은 모두 구원을 위한 것이며,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철저히 온전케 하여 그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 복종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구원하든, 그것은 모두 사람에게 있는 사탄의 옛 성품을 벗어 버리게 함으로써 즉, 사람이 생명을 추구하게 함으로써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다. 사람은 생명을 추구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일 수 없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는 사역이고, 생명을 추구하는 것은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이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이지만 형벌이나 심판, 저주가 하나님의 사랑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에는 반드시 긍휼과 자비가 있어야 하고, 더욱이 위로의 말씀도 있어야 하며, 하나님이 베풀어 주는 무궁한 축복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축복과 은혜를 내려 감동시킴으로써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도록 만들고 이를 통해 사람을 구원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바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구원은 거래적인 구원일 뿐이다. 하나님이 백배로 주는 전제하에서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와 그의 이름을 빛내고 영화롭게 하는 것은 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땅에 와서 사역을 하는 것은 패괴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이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절대로 친히 사역을 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구원 방식은 하나님이 모든 긍휼과 자비를 다 베풀고 더 나아가 자신의 전부를 사탄에게 넘겨줌으로써 전 인류와 맞바꾸는 것이었다. 지금은 과거와 다르다. 지금은 너희를 구원함에 있어 각기 부류대로 나누는 마지막 때이므로 긍휼과 자비가 아닌 형벌과 심판의 방식으로 더 철저하게 인류를 구원한다. 따라서 너희는 형벌, 심판, 무자비한 매질만 받게 된다. 하지만 너희는 그 무자비한 매질 속에 징벌은 전혀 들어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말씀이 아무리 엄할지라도 너희에게 임하는 것은 그저 무정해 보이는 말들뿐이며, 나의 분노가 아무리 클지라도 너희가 받는 것은 여전히 꾸짖는 말일 뿐, 너희를 해치려는 뜻도, 너희를 사지로 몰아넣으려는 뜻도 전혀 없다. 이 모든 것은 사실이 아니냐? 너희도 알다시피, 지금의 공의로운 심판이나 무자비한 연단과 형벌은 모두 구원을 위한 것이고, 지금 각기 부류대로 나누려고 하든 아니면 각 부류의 사람을 드러내려고 하든, 모든 말씀과 사역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공의로운 심판은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고, 무자비한 연단도 사람을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며, 엄한 말씀이나 채찍질은 모두 정결케 하고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구원 방식은 예전과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공의로운 심판은 너희의 구원이 되었고, 너희를 각기 부류대로 나누는 가장 좋은 도구가 되었으며, 무자비한 형벌은 너희의 크나큰 구원이 되었다. 이런 형벌과 심판 앞에서 너희가 또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너희가 처음부터 줄곧 누려 온 것이 모두 구원이 아니냐? 너희는 성육신 하나님의 육신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전능과 지혜를 알았고, 더욱이 매질과 징계도 여러 번 겪었지만 또 지극히 큰 은혜도 받지 않았느냐? 너희는 어느 누구보다 큰 복을 받지 않았느냐? 너희는 솔로몬이 누린 부귀영화보다 더 풍성한 은혜를 받았다! 생각해 보아라. 만약 내가 너희를 구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정죄하고 징벌하러 왔다면 너희의 날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겠느냐? 죄에 속하는 육적인 너희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겠느냐? 단순히 너희를 징벌하기 위한 것이라면 굳이 성육신하기까지 하면서 이렇게 큰 사업을 벌일 필요가 있었겠느냐? 너희 같은 무명소졸을 징벌하려 한다면 말 한 마디면 충분하지 않겠느냐? 굳이 너희를 정죄한 뒤에 멸망시킬 필요가 있겠느냐? 아직도 내 말을 믿지 못하느냐? 내가 긍휼과 자비의 방식으로 사람을 구원할 수밖에 없단 말이냐? 또는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사람을 구원할 수밖에 없단 말이냐? 공의로운 성품이 사람을 완전히 순종하게 하는 데 더 유리하지 않으냐? 사람을 더욱 온전히 구원할 수 있지 않으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중에서

654) 형벌과 심판은 사람에게 연단이고 무정한 폭로이며, 그것은 사람의 죄와 육을 징벌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사역은 사람의 육을 정죄하여 멸하려는 것이 아니다. 말씀으로 엄하게 폭로하는 것도 모두 너를 바른길로 이끌기 위함이다. 너희가 이렇게 많은 사역을 직접 체험했지만 하나님이 너희를 비뚤어진 길로 인도한 적은 없지 않더냐! 전부 네가 정상 인성으로 살게 하기 위한 것이며, 너의 정상 인성으로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각 단계 사역은 너에게 필요한 것을 바탕으로, 너의 연약함과 너의 실제 분량에 맞추어 행하지, 너에게 감당하기 힘든 짐을 억지로 지우지는 않는다. 네가 지금은 꿰뚫어 보지 못하여 내가 너를 괴롭히는 것 같고, 내가 너를 미워해 날마다 형벌하고 심판하고 꾸짖는 것 같겠지만, 네가 받는 형벌과 심판은 사실 너에 대한 사랑이고 크나큰 보호다. 이 단계 사역의 더 깊은 의의를 알지 못한다면 너는 이 사역을 체험해 나가지 못할 것이다. 너는 이런 구원으로 위안을 얻어야지, 잘못된 생각에 빠져 깨닫지 못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겪었으면 너도 이 정복 사역의 의의를 분명하게 알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이런저런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상 4> 중에서

655) 너희는 모두 죄악이 넘치는 음란한 땅에 살고 있는, 음란하고 죄악된 사람이다. 오늘날 너희는 하나님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형벌과 심판을 받았고, 이렇게 가장 깊은 구원을 받았다. 즉,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가 행하는 것은 모두 참된 사랑이며 악의는 없다. 그는 너희의 죄악 때문에 너희를 심판하여 반성하게 하고, 이 크나큰 구원을 받게 한다. 이 모든 사역은 사람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시종일관 전력을 다해 사람을 구원한다. 그는 친히 만든 사람이 완전히 멸망하길 결코 원치 않는다. 그가 지금 또 너희 가운데 와서 사역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더더욱 구원 아니겠느냐? 그가 너희를 미워한다면 이렇게 큰 사역을 하여 직접 너희를 인도하겠느냐? 굳이 이런 고난을 겪을 필요가 있겠느냐? 그는 너희를 미워하지 않으며 조금의 악의도 없다. 너희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진실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만 사람의 패역 때문에 반드시 심판으로 사람을 구원해야 할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너희는 생활할 줄 모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며, 이 음란하고 죄악된 땅에서 살고 있으므로 음란하고 더러운 귀신에 속한다. 그는 너희가 더 타락하는 것이 안타깝고, 또 너희가 이렇게 더러운 땅에서 살면서 사탄에게 마구 짓밟히고 음부에 떨어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기에 오로지 이 무리 사람들을 얻고 철저히 구원하려고 한다. 이것이 너희에게 정복 사역을 하는 주된 목적이다. 바로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너에게 행하는 것이 모두 사랑이고 구원임을 보지 못한 채, 그것은 그저 일종의 방식일 뿐이며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고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너의 세계로 돌아가 고통과 고난을 겪어라! 이 흐름 속에서 이 심판과 크나큰 구원을 누리고, 인간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이 모든 복과 사랑을 누리고 싶다면, 이 흐름 속에서 고분고분 정복 사역을 받아들이고 온전케 되어라. 너는 지금 심판으로 인해 약간의 고난과 연단을 받고 있지만, 그 고난은 가치와 의의가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상 4> 중에서

656)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연단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고통받는 복 또한 하나님이 성육신하지 않았다면 사람이 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 말씀의 시련을 받을 수 있는 모든 이는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다. 사람의 본래 자질, 사람의 모든 행위,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놓고 보면 사람은 이런 연단을 받을 자격이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높여 줌으로 이 복을 누리게 된 것이다. 지난날, 사람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자격이 없다고 했었다. 오늘날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높여 줌과 긍휼로 인해 하나님 말씀의 연단을 받게 된 것이다. 이는 말세에 태어난 모든 사람의 복이다. 너희는 체험하였느냐? 사람이 어떤 면에서 고통을 받고 좌절을 겪는지는 사람이 바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이다.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나님 말씀의 시련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고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일이다. 잘 알겠느냐? 그래서 네가 받은 고통으로 말미암아 오늘의 복을 얻은 것이고,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에 대한 참된 사랑은 자발적인 것이다> 중에서

657) 오늘날, 네가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 채찍질, 연단은 물론, 하나님이 준 사명까지 받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만세 전에 예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형벌을 받을 때도 너무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너희에게 하는 사역과 베풀어 준 복, 그리고 너희에게 더해 준 모든 것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 종교인들은 너희와 비교가 안 된다. 비록 너희가 알고 있는 성경 지식이나 종교적 도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하나님이 너희에게 행한 사역으로 인해 너희는 역대 그 누구보다도 많은 것을 얻었다. 그래서 너희가 가장 큰 복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을 위해 더더욱 자신을 바쳐야 하며, 더더욱 하나님께 충성을 다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높여 줌으로 인해 더 힘을 내야 하고, 분량을 예비하여 하나님이 준 사명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이 정해 준 자리에 굳게 서서 백성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하나님나라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얻어져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증거가 되어야 한다. 너는 이러한 각오가 되어 있느냐? 네게 이런 각오가 있다면 최종적으로 반드시 하나님께 얻어져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증거가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사명은 바로 하나님께 얻어져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증거가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최신 사역을 알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라가야 한다> 중에서

658) 나의 음성을 들은 형제자매들은 모두 엄하게 심판하는 나의 음성에 몹시 고통스러워한다. 하지만 너희는 그 엄한 음성 속에 나의 뜻이 숨겨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너희를 징계하는 것은 너희를 구원하기 위함이다. 너희는 알아야 한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면, 나는 반드시 징계하고 다루어 하루빨리 온전케 할 것이다. 내 마음은 절박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너희는 내 마음을 알지 못하고 내 말대로 행하지 않는다. 오늘날의 말씀이 너희에게 임하여 너희는 하나님이 자비의 하나님임을 진실로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진지한 사랑을 맛보게 되었다. 그러나 외식하는 소수의 사람들도 있다. 그런 자들은 다른 사람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 따라서 눈물을 흘린다. 또 어떤 사람은 겉으로는 하나님께 죄책감을 느끼고 통회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아는 것도 확신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허울뿐이다. 나는 이런 사람을 가장 증오한다! 그들 역시 조만간 나의 성에서 제거될 것이다. 나는 간절히 나를 원하는 자들을 원한다. 진심으로 나를 추구하는 사람만이 나를 기쁘게 할 수 있다. 나는 반드시 손으로 그들을 떠받쳐 그들이 그 어떤 재앙도 겪지 않게 할 것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원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나의 뜻대로 행하기를 원한다. 그러니 너희는 어서 빨리 실제에 진입해야 하고 나의 말을 받아들여 생명이 되게 해야 한다. 이것이 나의 가장 큰 짐이다. 교회들과 성도들이 모두 실제에 진입하여 나와 얼굴을 마주하며 직접 교제할 수 있고, 모두 진리와 의를 행해야만 나의 사랑하는 아들들이고 내가 기뻐하는 자들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모든 큰 복을 그들에게 베풀어 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23편> 중에서

659) 지금 어떻게 정복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에만 만족하지 말고 앞으로의 길을 어떻게 가야 할지도 생각해야 한다. 온전케 될 의지와 용기가 있어야 하고, 항상 자신은 안 된다고만 생각해서도 안 된다. 진리가 어찌 사람을 차별할 수 있겠느냐? 진리가 어찌 고의로 사람과 맞설 수 있겠느냐? 네가 진리를 추구한다면 진리가 어찌 너를 눌러 버릴 수 있겠느냐? 네가 정의를 위하여 굳게 선다면 정의가 어찌 너를 쓰러뜨릴 수 있겠느냐? 네게 진정으로 생명을 추구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생명이 너를 피할 수 있겠느냐? 너에게 진리가 없는 것은 진리가 너를 외면한 것이 아니라 네가 진리를 멀리했기 때문이다. 네가 정의를 위해 굳게 서지 못하는 것은 정의에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네가 정의는 사실을 왜곡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네가 오랫동안 추구하고도 생명을 얻지 못한 것은 생명이 네게 양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네가 생명에 대해 양심이 없고 생명을 쫓아냈기 때문이다. 네가 빛 속에서 살면서도 빛을 얻지 못한 것은 빛이 너를 밝게 비추지 못해서가 아니라, 네가 빛의 존재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아 빛이 조용히 떠났기 때문이다. 네가 추구하지 않는다면 너를 가치 없는 천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네게는 살아갈 용기가 없고 흑암 세력에 반항할 의지도 없다. 너는 너무 나약하다! 그래서 사탄 세력의 포위 공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렇게 평탄하게 살다가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하려 할 뿐이다. 정복되기를 추구하는 것은 네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자 마땅히 다해야 할 의무이다. 네가 만약 정복되는 것에만 만족한다면 그건 빛의 존재를 쫓아내는 것이다. 너는 진리를 위해 고통받아야 하고, 진리를 위해 헌신해야 하며, 진리를 위해 굴욕을 참아야 하고, 더 많고 많은 진리를 얻기 위해 더 많고 많은 고난을 참아야 한다. 이것이 네가 해야 할 일이다. 너는 가정의 화목을 누리기 위해 진리를 버리지 말고, 일시적인 향락을 위해 일생의 존엄과 인격을 잃지 말아라. 마땅히 아름답고 선한 모든 것을 추구하고 더 의미 있는 인생길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게 속되게 살며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도 없다면 인생을 헛되게 보내는 것이 아니냐? 네가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진리 하나를 위해 너는 모든 육적 향락을 포기해야 하며, 약간의 향락을 위해 모든 진리를 버려서는 안 된다. 이런 사람은 인격도 없고 존엄성도 없고 살아갈 의의도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660)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최종 목적이고 사람이 추구해야 할 목표이다. 너는 살아 내는 면에서 노력을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에 옮길 수 있어야 한다. 네가 그저 도리만 안다면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야말로 공허한 일일 뿐이다. 네가 여기서 더 나아가 실행하고 살아 내야만 완전한 것이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많은 인식을 말할 수 있지만 죽을 때는 오히려 눈물을 글썽거리며 자신이 한평생 헛되이 살았다고, 부질없이 살았다고 한탄한다. 그저 도리만 알았을 뿐, 진리를 실행함으로 하나님을 증거할 줄 몰랐고, 외적으로 동분서주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내다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진실로 증거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너무 늦은 것이 아니냐? 왜 오늘의 기회에 자신이 좋아하는 진리를 추구하지 않느냐? 왜 꼭 내일까지 기다려야 하느냐? 생전에 진리를 위해 고통받으려 하지 않고 진리를 얻으려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설마 죽을 때 평생의 여한이라도 남기기 위해서란 말이냐? 그렇다면 왜 하나님을 믿는 것이냐? 사실 사람은 조금만 노력하면 수많은 일에서 진리를 실행할 수 있고, 하나님을 흡족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줄곧 엉뚱한 데 마음이 쏠려 하나님을 위해 일하지는 않고, 언제나 육체를 위해 분주히 뛰어다녀 결국에는 아무런 수확도 얻지 못한다. 그리하여 고뇌와 어려움에서 계속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사탄의 괴롭힘이 아니겠느냐? 육체의 패괴가 아니겠느냐? 너는 그저 입만 놀리면서 불성실하게 하나님을 대하지 말고 뭔가 실제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자기 스스로를 농락하지 마라.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냐? 자신의 육체를 위해 살아가고, 명예와 이익을 다툰들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믿는다면 진리를 위해 살아야 한다> 중에서

661) 네가 추구하는 목표가 진리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이 기회에 세상으로 돌아가 한바탕 크게 하고 싶은 일을 벌이는 것이 낫겠다. 이렇게 헛되이 시간만 보내 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 굳이 너 스스로를 괴롭힐 필요가 있겠느냐? 아름다운 세상에서 무엇인들 누릴 수 없겠느냐? 재물과 미인, 지위, 허영, 가정, 자녀 등등 이 모든 세상의 산물이 전부 네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것들이 아니더냐? 무엇 하러 여기에서 편히 쉴 곳을 찾아 헤매느냐? 인자도 머리 둘 곳이 없거늘, 네게 어찌 안락한 곳이 있겠느냐? 아무렴 그가 네게 안락하고 좋은 쉼터를 마련해 주겠느냐? 그것이 가능하겠느냐? 오늘날 네가 내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심판과 진리의 가르침뿐이다. 너는 내게서 안락을 얻을 수 없고, 오매불망 바라는 안락한 거처도 얻을 수 없다. 나는 네게 세상의 부귀영화를 주지 않는다. 네가 진심으로 추구한다면 나는 네게 모든 생명의 도를 줄 것이고,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누리게 해 줄 것이다. 그러나 네가 진심으로 추구하지 않는다면 나는 네게서 모든 것을 거두어 갈 것이다. 나는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안락을 탐하는 개돼지 같은 자들에게 줄 생각이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왜 부각물이 되기 싫어하느냐?> 중에서

662) 소극적으로 따르는 사람이 되지 말고 신기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지 마라.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게 굴면 너 자신을 해치고 네 생명도 그르치게 될 것이다. 너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것을 추구하고, 자신의 연약한 면을 극복해 진리를 얻고 진리를 살아 내야 한다. 너의 연약함은 두려운 것이 아니고, 너의 결점도 가장 큰 문제는 아니다. 너의 이런 미지근한 마음과 진리를 구하지 않는 마음이 가장 큰 문제이자 가장 큰 결점이다. 또 너희 모두의 가장 큰 어려움은 현 상태에 만족하면서 소극적으로 기다리는 나약한 마음이다. 이것이야말로 너희의 가장 큰 걸림돌이고, 진리 추구를 막는 가장 큰 적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663) 오늘날 너는 믿음으로 인해 정복되었고, 또 정복됨으로 인해 여호와의 모든 행사를 믿게 되었다. 너는 믿음으로 인해 이런 형벌과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또한 너는 이런 형벌과 심판으로 인해 정복되고 온전케 된다. 오늘날의 이런 형벌과 심판이 없었다면 너의 믿음은 모두 부질없을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아무리 믿는다고 한들 실제가 없는 텅 빈 글귀이기 때문이다. 네가 이런 정복 사역을 받아들이고 완전히 순종하게 되어야만 너의 믿음이 진실하고 확실한 것이며, 너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게 된 것이다. ‘믿음’때문에 많은 심판이나 저주를 받았을지라도 너는 진정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가장 참되고 가장 알차고 가장 귀한 것을 얻게 되었다. 너는 심판 가운데서 비로소 피조물의 종착지를 알게 되었고, 창조주의 사랑스러움을 보게 되었다. 또 너는 이러한 정복 사역 가운데서 하나님의 팔을 보게 되었으며, 인생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너는 이러한 정복 가운데서 인생의 바른길을 얻었고, ‘사람’의 참뜻도 깨닫게 되었다. 너는 이러한 정복 가운데서 전능자의 공의 성품과 아름다운 얼굴을 보게 되었으며, 사람의 근원과 전 인류의 ‘불후의 역사’도 알게 되었다. 너는 이러한 정복 가운데서 인류의 조상과 인류가 패괴된 기원을 알게 되었으며, 희락과 위안을 얻었다. 또한 끝없는 채찍질과 징계도 받았고, 창조주가 지음 받은 인류에게 하는 질책의 말씀도 듣게 되었다. 너는 이러한 정복 사역 가운데서 축복은 물론, 사람이 마땅히 받아야 할 화도 입었다…. 이 모든 것이 너의 그 작은 믿음으로 인한 것 아니더냐? 이런 것들을 얻음으로 인해 너의 믿음도 커지지 않았더냐? 네가 얻은 것이 매우 많지 않더냐?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지혜를 보았을 뿐만 아니라 이 한 단계 한 단계의 사역도 직접 체험했다. 어쩌면 너는 자신이 믿지 않았더라면 이런 형벌이나 심판을 받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네가 믿지 않았더라면 이런 형벌과 전능자의 보살핌을 받을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창조주를 만날 기회도 영영 놓치고, 또 인류의 기원도 영원히 알지 못하며, 인생의 의미도 영원히 깨닫지 못했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설령 너의 육체가 멸망하고 영혼이 이탈한다고 해도 너는 창조주의 모든 행사를 알지 못할 것이고, 더욱이 창조주가 인류를 만든 후에 땅에서 이처럼 큰 사역을 했다는 것도 알지 못할 것이다. 창조된 인류로서, 너는 그렇게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어둠 속에 떨어져 영원히 징벌받기를 원하느냐? 네가 오늘날의 형벌과 심판을 떠난다면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네가 오늘날의 심판을 떠난다고 해서 이 고난의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이 땅’을 떠나면 고통에 시달리거나 마귀에게 해를 입지 않겠느냐? 견디기 힘든 나날이 닥치지 않겠느냐? 오늘날의 심판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훗날의 고통을 영원히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장차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네가 바라는 무릉도원이겠느냐? 이렇게 현실을 도피하면 훗날 그 영원한 형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런 기회와 축복을 네가 이후에 두 번 다시 찾을 수 있겠느냐? 재앙이 임할 때 찾을 수 있겠느냐? 모든 인류가 안식에 들어갈 때 찾을 수 있겠느냐? 지금의 만족스러운 생활과 화목한 가정이 네 훗날의 영원한 종착지를 대신할 수 있겠느냐? 만약 네게 진실한 믿음이 있고 믿음으로 인해 많은 것을 얻었다면, 그것은 피조물인 네가 마땅히 얻어야 할 몫이고, 또한 네가 본래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정복은 너의 믿음에도 가장 이롭고 너의 생명에도 가장 이롭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상 1> 중에서

664) 모세가 반석을 쳤을 때 여호와가 베풀어 준 물이 솟아 나온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었고, 다윗이 비파와 수금으로 나, 여호와를 찬양했을뿐더러 마음에 기쁨이 충만했던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욥이 산을 가득 채운 우양과 많은 가산을 잃고 온몸에 악창이 난 것도 그의 믿음 때문이었고, 나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나 여호와의 영광을 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믿음 때문이었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영광의 증거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요한이 인자의 영광의 형상을 보게 된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었고, 말세의 이상(異象)을 보게 된 것은 더더욱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이방의 백성’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나의 계시를 받고, 내가 이미 육신으로 돌아와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도 그들의 믿음 때문이다. 나의 엄한 말에 매를 맞아도 위안을 얻고 구원받는 사람들 또한 믿음 때문에 그렇게 된 것 아니겠느냐? 나를 믿어 고난받는 사람들도 세상에서 버림받은 적이 있지 않더냐? 내 말 속에서 살지 않고 시련의 고통에서 도망친 자들은 모두 세상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지 않더냐? 그들은 여기저기 떨어지는 늦가을의 낙엽처럼 발붙일 곳도 없고, 내 위로의 말은 더더욱 듣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내 형벌과 연단이 없지만, 그들이 바로 천국 밖에서 떠돌고 길거리에서 유랑하는 거지들 아니겠느냐? 세상이 정말로 네 안식처겠느냐? 네가 나의 형벌을 피한다고 세상에서 진정 위안이 되는 기쁨을 얻을 수 있겠느냐? 잠시의 누림으로 정녕 네 마음속의 감출 수 없는 공허함을 가릴 수 있겠느냐? 네가 가족은 속일 수 있어도 절대 나를 속일 수는 없다. 네 믿음이 너무 작기에 아직껏 삶의 낙을 찾지 못한 것이다. 너에게 권하노니, 육을 위해 평생을 무의미하고 바쁘게 보내면서 참기 어려운 온갖 고초를 겪느니 차라리 나를 위해 진심으로 반평생을 바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구태여 자신을 그렇게 아끼면서 내 형벌을 피할 필요가 있겠느냐? 내 일시적인 형벌을 피하기 위해 영원한 괴로움과 형벌을 받을 필요가 있겠느냐? 나는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사람이 정말 내 모든 안배에 순종하기를 원한다면, 나 또한 냉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욥이 나 여호와를 믿은 것처럼 사람들이 다 나를 그렇게 믿기를 바란다. 너희의 믿음이 도마보다 크다면 너희의 믿음 또한 내게 칭찬받을 것이다. 너희의 충성심에 나 또한 기뻐할 것이며, 너희의 날에도 반드시 내 영광이 함께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진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중에서

665) 하나님은 형벌로 사람을 정복하는 것도, 늘 사람에게 목줄을 채워 끌고 가는 것도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사람이 착실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에 순종하는 것을 원하시며, 그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사람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언제나 하나님을 거역한다. 나는 우리가 가장 간단한 길을 찾아 하나님을 만족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종하는 것이다. 진정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너는 온전케 될 것이다. 그것은 홀가분하고 기쁜 일이 아니겠느냐? 자신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가고,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하든 신경 쓰지 말라.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미래와 운명이 네 손에 쥐어져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는 늘 여기에서 벗어나 세상의 길을 가려고 했으나 왜 그럴 수 없었느냐? 너는 어째서 여러 해 동안 갈림길에서 배회하다가 결국 이 길을 택한 것이냐? 오랜 세월 떠돌아다니다가 오늘날 왜 네 뜻과 달리 이 문으로 들어온 것이냐? 그것이 네 마음대로 되는 일이냐? 이 흐름 속에 있는 사람들이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여기에서 빠져나가려고 했을 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지를 보아라. 그리고 성령이 너를 어떻게 감동시키고 체험하게 하시는지를 보아라. 솔직히 말해서, 화를 당하더라도 이 흐름 속에서 당하게 하실 것이다. 똑같이 고난을 겪어도 오늘날은 이 흐름 속에서 겪게 할 것이며,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잘 알겠느냐? 그런데 너는 또 어디로 가려느냐?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행정이다. 너는 하나님이 이 무리의 사람들을 택하신 것이 아무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느냐? 하나님은 오늘날 사역하는 과정에서 쉽게 노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만약 누군가가 그분의 계획을 어지럽히려 한다면 그분은 맑았던 하늘에 구름이 끼듯 그 즉시 안색을 바꾸실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네게 마음을 다잡고 하나님의 지배에 따르며 하나님께 온전케 되라고 충고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영리한 사람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길 … 7> 중에서

666) 앞으로 너희가 복을 받을지 화를 입을지는 모두 오늘날 너희의 행위에 달려 있다.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될 수 있는 기회는 지금 이 시대밖에 없다. 지금 하나님이 너희를 온전케 하려는 것은 분명하며, 이는 말하는 방식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앞으로 그 어떤 시련이나 재앙이 닥치든 또는 어떤 일이 발생하든 어쨌든 하나님은 너희를 온전케 하려 한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무엇으로 알 수 있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역대에 지금과 같이 절정에 이르거나 최고의 경지에 들어간 적이 없으며, 성령이 전례 없이 모든 사람에게 역사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이는 역대에 거의 아무도 체험하지 못했던 것이다. 예수 시대에도 지금과 같은 계시는 없었다. 너희에게 하는 말과 너희가 깨닫고 체험하는 것 모두가 절정에 이르렀다. 너희들이 시련이나 형벌 속에서도 떠나지 않을 수 있는 것 또한 하나님 역사가 전례 없는 성황을 이루었음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다. 이는 하나님이 친히 하는 것이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수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많은 사역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반드시 너희를 온전케 할 것이다. 너희가 이런 사실을 알고 새롭게 깨달았다면 예수의 두 번째 강림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오늘의 이 시대에서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고자 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될 수 있도록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각자의 역할을 다함에 관하여> 중에서

667)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온전케 되어 마지막에 하나님께 얻어지고, 하나님에 의해 완전히 정결케 되어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너희보고 뒤떨어졌다고 한 것도, 자질이 부족하다고 한 것도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너희를 버린다거나 너희에게 희망을 잃었다는 뜻은 아니며, 너희를 구원하기 싫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오늘날 내가 온 것은 바로 너희를 구원하는 사역, 즉 구원을 이어 가는 사역을 하기 위함이다. 누구에게나 온전케 될 기회는 있다. 원하고 추구하기만 하면 모두 성과를 얻을 것이고, 어느 누구도 버림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네 자질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훌륭하면 훌륭한 대로 그에 맞춰 너에게 요구한다. 네가 무지하고 글을 모르면 그런 조건에 맞춰 요구할 것이며, 네가 글을 알면 그 기준에 맞춰 요구할 것이다. 또 네가 나이가 많으면 나이에 맞게 요구하고, 네가 접대할 수 있다면 그 상황에 맞춰 요구할 것이다. 네가 접대는 할 수 없고, 복음을 전하거나 교회를 돌보거나 다른 업무적인 사역을 하는 등 한 부분의 역할만 수행할 수 있다고 하면, 또 그 역할에 맞춰 너를 온전케 할 것이다. 너는 오직 충성하고, 끝까지 순종하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 이는 네가 이르러야 할 세 가지로, 최고의 실천이다. 사람에게 최종적으로 이르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 몇 가지이다. 여기에 이른 사람은 온전케 될 수 있다. 하지만 너는 우선 진심으로 추구하고 능동적으로 향상하려고 노력해야지, 이 일을 소극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나는 누구나 온전케 될 기회가 있고 온전케 될 수 있다고 했으니 이 말에 책임을 질 것이다. 하지만 네가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지 않아 이 세 가지 기준에 이르지 못한다면 결국 도태될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따라오기를, 모든 사람에게 성령 역사와 성령의 깨우침이 있기를, 또 모든 사람이 끝까지 순종하기를 바란다. 이것은 너희 모두가 이행해야 할 본분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본분을 이행할 때, 너희는 모두 온전케 될 것이며 힘 있는 간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간증할 수 있는 사람은 사탄과 싸워 이기고 약속을 받을 사람들이며, 장차 살아남아 아름다운 종착지에서 살게 될 사람들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의 삶을 정상으로 회복시켜 사람을 아름다운 종착지로 이끌어 간다> 중에서

668) 구원 사역을 하는 기간에 하나님은 구원 가능한 사람은 하나도 빠짐없이 최대한 구원한다. 그의 사역 목적이 바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기간에 성품의 변화를 받지 못한 자,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는 기간에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지 못한 자는 모두 징벌받을 대상이 된다. 이 단계의 말씀 사역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비밀과 도를 모두 사람들에게 열어 주어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요구를 알게 하고, 하나님 말씀을 실행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줌으로 성품 변화에 이르게 한다. 하나님은 그저 말씀으로 사역할 뿐 사람이 조금 거역한다고 해서 사람을 징벌하지는 않는다. 지금은 구원 사역을 하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거역한다고 해서 사람을 징벌한다면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고 모조리 징벌받아 음부에 떨어질 것이다. 말씀으로 사람을 심판하는 목적은 사람을 징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 하나님께 순종하게 만드는 것이다. 말씀 사역을 하는 기간에 많은 사람은 거역과 대적, 성육신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 때문에 사람들을 일일이 징벌하지는 않는다. 오로지 구원받을 수 없을 정도로 심히 패괴된 사람들만 버리는데, 그 육체를 사탄에게 넘겨줄 것이며 어떤 경우는 육체를 없애 버릴 것이다. 그 외의 사람들은 계속 따르면서 책망과 훈계를 겪게 될 것인데, 따르는 기간 동안 책망과 훈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점점 타락한다면, 그런 사람은 이미 구원받을 기회를 잃은 것이다. 말씀으로 정복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구원받을 기회가 여러 번 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구원함에 있어 최대한 너그럽게 대한다. 다시 말해, 사람에게 최대한 관용을 베푼다. 사람이 잘못을 깨닫고 올바른 길로 돌아온다면, 즉 회개하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구원받을 기회를 줄 것이다. 사람이 처음에 하나님을 거역할 때 하나님은 사람을 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구원하려고 한다. 하지만 정말로 구원의 여지가 없다면 사람은 하나님께 버림받을 것이다. 하나님이 단 한 사람도 쉽게 징벌하지 않는 것은 구원 가능한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는 말씀으로 심판하고 말씀으로 깨우치고 인도할 뿐, 형벌의 막대기로 치지는 않는다. 말씀으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마지막 단계 사역의 목적과 의의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지위의 복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중에서

669)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존재는 인류뿐이었다. 즉, 모든 생물 가운데서, 피조물 가운데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존재는 인류밖에 없다. 사람은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고 볼 수 있는 눈이 있으며, 언어가 있고 생각과 자유 의지가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고 하나님이 맡겨 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바람을 모두 사람에게 두었다. 그는 사람을 그와 동심합의하고 그와 동행할 수 있는 동반자가 되게 하려고 하였다. 하나님은 자신의 경영을 시작한 후 사람이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하여 그 마음을 정결케 하고 채워 주어 하나님이 흡족해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으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이러한 결과를 줄곧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2> 중에서

670) 전능자의 생명 공급에서 벗어난 인류는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면서 또 죽음을 두려워한다. 인류는 의지하고 도움받을 데가 없음에도 여전히 눈을 감고 싶어 하지 않고, 영혼의 지각이 없는 육을 간신히 지탱하며 이 세상에서 되는대로 살아간다. 너는 이렇게 아무런 소망도 없이 살아가고, 그 역시 그렇게 아무런 목표 없이 살아간다. ‘오직 전설 속의 거룩한 자만이, 고통 속에서 신음하며 그의 강림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원할 것이다’는 이 신념은 무감각한 사람에게서는 쉽사리 실현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은 계속 그렇게 바라고 있다. 전능자는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면서도 전혀 지각이 없는 사람을 혐오한다. 그가 오랫동안 기다려야 사람에게서 오는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찾으려 한다. 너의 마음과 영을 찾아 네게 물과 음식을 공급함으로써 너를 깨우고, 네가 더 이상 목마름과 굶주림을 겪지 않게 하려 한다. 더없이 피곤할 때도, 이 세상이 처량하다고 조금 느껴질 때도 방황하거나 울지 마라. 전능하신 하나님, 지키며 바라보는 그이가 네가 언제 돌아오든 너를 안아 줄 것이다. 그는 너의 곁을 지키며 네가 돌아서기를 기다리고, 문득 기억을 되찾을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네가 하나님에게서 나왔지만 언제부터인가 방향을 잃고 길에서 쓰러졌다는 것, 언제부터인가 네게 ‘아버지’가 생겼다는 것, 또 전능자가 그곳에서 네가 돌아오기를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것을 깨닫는 그날을 말이다. 그는 답이 없는 응답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인간의 마음과 영을 위해 그가 곁을 지켜 주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이 지킴은 무기한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이미 끝이 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너는 오늘날 너의 마음과 영이 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전능자의 탄식> 중에서

671) 하나님의 모든 경영 사역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스며들어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고심을 이해할 수 있든 없든, 그는 쉬지 않고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사역을 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경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사역이 가져다준 도움과 이익은 모두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네가 지금은 하나님에게서 온 사랑과 생명의 공급을 전혀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겠다는 결심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하나님의 웃는 얼굴이 네 앞에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의 경영 사역의 근본 취지는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권세 아래에 있는 사람을 빼앗아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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