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역 알아 가기[2]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188)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오늘날 하나님의 말세 사역과 하나님이 계획하고 네게 행한 모든 사역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크나큰 높여 주심이자 구원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온 우주 사역의 중점을 이 사람들에게 두었다. 너희에게 모든 심혈을 다 쏟았으며, 온 우주의 영의 사역을 거두어 모두 너희에게 쏟아부었다. 그래서 너희가 행운아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그의 영광을 이스라엘, 즉 그의 선민에게서 너희에게로 옮겨 왔고, 그의 계획에 담긴 근본 취지를 너희를 통해 모두 드러낼 것이다. 따라서 너희 모두는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받는 사람이며,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을 받는 사람이다. 너희가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란 말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너희 모두 이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지만 그 진정한 함의를 깨닫지는 못하고 있다가 오늘에서야 이 말의 실질적인 의미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이 말세에 이루고자 하는 것이며, 큰 붉은 용이 똬리를 틀고 있는 곳에서 그것의 잔혹한 박해를 받는 사람들에게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큰 붉은 용은 하나님을 핍박하는 하나님의 원수이므로 이 땅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모욕을 당하고 핍박을 받는다. 따라서 이 말은 너희에게 이뤄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곳에서 사역을 펼치므로 그의 모든 사역이 강력한 저지를 당하게 되며, 그의 말씀 중 많은 부분이 제때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연단을 받는데, 이 역시 ‘고난’의 한 요소이다. 하나님이 큰 붉은 용의 땅에서 사역을 펼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히려 이 ‘어려움’을 통해 한 단계의 사역을 행함으로써 그의 지혜와 기묘한 행사를 나타낸다. 또한, 그것을 기회로 이 사람들을 온전케 한다. 하나님은 사람이 받는 고난, 사람의 자질, 이 더러운 땅에 있는 사람의 모든 사탄 성품으로 인해 정결케 하고 정복하는 사역을 행하며, 이를 통해 영광을 얻고, 그의 행사를 증거하는 사람을 얻는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 사람들을 위해 모든 대가를 치르는 의의이다. 즉, 하나님은 그를 대적하는 사람들을 통해 정복 사역을 하며,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큰 능력을 드러낼 수 있다. 다시 말해, 더러운 땅의 사람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야 하나님의 큰 능력을 부각시킬 수 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더러운 땅에서 영광을 얻고, 더러운 땅의 사람에게서 영광을 얻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예수가 했던 그 사역처럼, 그를 핍박하는 바리새인 가운데서 영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바리새인들의 핍박과 유다의 배신이 없었다면 예수는 조롱과 비방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일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고, 영광을 얻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각 시대에 사역하는 곳, 그의 육신이 사역을 행하는 곳에서 영광을 얻으며, 그곳에서 그가 얻고자 하는 사람도 얻는다. 이것이 하나님 사역의 계획이자 하나님의 경영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의 상상처럼 그렇게 간단한가?>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189)

몇천 년에 달하는 하나님의 계획에서 육신을 입고 행하는 사역은 두 부분이다. 하나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역을 함으로써 영광을 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말세에 정복하고 온전케 하는 사역을 함으로써 영광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영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역이나 하나님이 너희에게 준 사명을 너무 간단하게 봐서는 안 된다. 너희 모두 하나님의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이어받는 사람이고, 하나님이 특별히 정한 사람이다.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영광 중에서 한 부분은 너희에게서 드러난다. 하나님은 영광 중의 한 부분을 모두 너희에게 베풀어 이어받도록 하였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높여 주심이자 일찍이 정해 놓은 계획이다. 하나님이 큰 붉은 용이 살고 있는 곳에서 행한 이 큰 사역을 다른 곳에서 했다면 일찌감치 큰 효과를 거두고, 모든 사람이 쉽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특히 ‘하느님(원문: 上帝)’을 믿고 받드는 서방의 선교사들은 더 쉽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예수가 그 단계의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영광을 얻는 이 단계의 사역을 다른 곳에서는 완수할 수 없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지지하고 국가도 인정할 것이므로 하나님의 영광은 ‘결실’을 맺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단계의 사역을 이 땅에서 하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지금 너희는 법의 보호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법의 제재를 받고 있다. 더 큰 난관은 사람들이 너희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 있다. 친척, 부모, 친구, 동료, 그 누구도 너희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너희를 ‘원하지 않을’ 때, 너희는 아예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하나님을 떠나지 못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정복하는 의의이며, 하나님의 영광이다. 오늘 너희가 받은 것은 역대의 사도와 선지자들이 받은 것보다 많으며, 심지어는 모세와 베드로보다도 많다. 복은 하루 이틀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이를 얻기 위해서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즉, 너희는 연단받은 사랑과 크나큰 믿음, 그리고 하나님이 요구한 수많은 진리를 갖추어야 한다. 정의를 바라보며, 굽히거나 흔들리지 말고, 죽어도 변치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의지를 갖고, 생명 성품의 변화를 이루며, 패괴를 치유받아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모든 지배에 따르고, 원망하지 않으며, 더 나아가 죽기까지 순종해야 한다. 이는 너희가 마땅히 도달해야 하는 것으로 하나님 사역의 궁극적인 목적이며, 이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다. 그는 너희에게 베풀어 주었으니 너희에게 무언가를 받아 낼 것이고, 또 너희에게 합당한 요구를 제시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은 이치에 맞으며, 여기에서 하나님이 행하는 사역이 왜 그렇게 늘 높은 기준과 엄격한 요구를 갖는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너희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충만해야 한다. 어쨌든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은 다 너희를 위한 것이고, 너희가 그의 유업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너희를 구원하기 위함이고, 더러운 땅에서 극심한 해를 입은 이들을 온전케 하기 위함이다. 너희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우매하고 식견이 없으며 비이성적인 많은 이에게 하나님을 시험하거나 더 이상 대적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하나님은 이미 아무도 겪어 보지 못한 고통을 감내했고, 사람 대신 수없이 많은 굴욕을 당하였다. 그런데 더 내려놓지 못할 것이 뭐가 있겠느냐? 하나님의 뜻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겠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이 있겠느냐? 이렇게 더러운 땅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펼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더없이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사람이 이를 알면서도 잘못을 저지른다면 하나님의 사역은 지연될 것이다. 그것은 결론적으로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고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며, 그의 사역과 영광을 가장 중시한다. 따라서 그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모든 대가를 불사한다. 이것이 바로 이룰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성품이다. 하나님이 두 번째 부분의 영광을 얻어야만 비로소 그의 사역이 끝나게 된다. 하나님이 온 우주 아래에서 두 번째 부분의 영광을 얻는 사역을 마무리하지 못한다면 그의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고, 그의 손길 역시 선민에게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의 영광도 이스라엘에 임하지 않을 것이고, 그의 계획 역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역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하나님이 하는 일은 이미 패괴되고 극도로 무감각해진 사람을 변화시키고, 창조된 후 사탄의 손을 거친 사람을 정결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아담이나 하와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빛이나 각종 동식물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사탄에 의해 패괴된 것을 정결케 한 후 다시 얻어 그의 소유물, 나아가 그의 영광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생각하듯 천지 만물을 창조하는 것처럼 그리 간단하지 않으며, 사탄을 저주하여 무저갱에 던져 버리는 사역도 아니다. 이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사역으로,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그에게 속하지 않는 것을 그에게 속하는 것으로 변화시키는 사역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번에 행하는 사역의 실상이므로 너희 모두 알아야 할 것이다. 너무 간단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사역은 일반적인 사역과 다르고, 그 기묘함과 지혜는 사람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이번 사역은 만물을 창조하는 것도, 파괴하는 것도 아니라 그가 창조한 만물을 변화시키고, 사탄에 의해 더럽혀진 만물을 정결케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큰일을 펼친다고 하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에 담긴 모든 의의이다. 여기까지 보고도 하나님의 사역이 그렇게 간단한 것 같으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의 상상처럼 그렇게 간단한가?>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190)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은 끝이 없는 사역이다. 사람은 부족한 것이 너무 많고 하나님이 요구한 기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눈에 너희는 영원히 갓 태어난 아기이며, 하나님이 기뻐할 만한 요소가 많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너희는 어쨌든 하나님 손안에 있는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만족에 빠진다면 하나님이 싫어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오늘날 너희가 하나님을 만족게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를 두고 상대적으로 하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에 비하면 너희는 영원히 결투장의 패배자다. 사람의 육체는 승리한 적이 없다. 오직 성령 역사가 있어야만 사람에게 쓸 만한 부분이 생긴다. 사실 하나님이 창조한 만물 가운데 사람이 가장 미천하다. 비록 사람이 만물의 주인이기는 하지만 만물 가운데 오직 사람만이 사탄에게 농락당하고, 사람만이 사탄의 온갖 수단에 패괴되어 자주권이 전혀 없다. 많은 사람이 사탄의 더러운 땅에서 살면서 사탄에게 조롱당하고 죽을 만큼 농락당하며, 인간 세상의 숱한 풍파와 고난을 겪는다. 하지만 사탄은 사람을 실컷 우롱한 후에 사람의 운명을 끝낸다. 그리하여 사람의 일생은 복잡하게 얽혀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어지고,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미리 준비해 놓은 것을 한 번도 누리지 못한 채 사탄에게 만신창이가 되도록 유린당한다. 오늘날 사람은 더욱 지치고 활기가 없어 하나님의 사역에 관심을 가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에 관심을 가질 생각이 없다면 사람의 체험은 영원히 불완전할 것이고, 사람의 진입은 영원히 공백일 것이다. 하나님이 땅에서 사역한 이래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인의(仁義)와 지조가 있는 많은 이가 하나님께 쓰임 받고, 하나님을 위해 한동안 사역했지만 하나님의 사역을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위하여 사역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역할을 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준 지위에 서서 사람의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사역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무엇으로 진입을 논하겠느냐?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매몰시켰다. 그렇기에 역대에 사역한 사람들 중 진입한 사람이 아주 적으며,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인식을 전혀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다. 사람이 깨달은 하나님의 지혜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비록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지만 하나님의 위대함은 한 번도 보지 못했기에 사람은 다 자신을 ‘하나님’으로 삼아 다른 사람들에게 경배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만유 가운데서 오랜 세월 은밀하게 거했고, 오랜 시간 동안 안개 속에서 살펴보았으며, 수많은 낮과 밤 동안 셋째 하늘에서 살펴보았다. 또 오랜 세월 사람들 가운데서 다니고, 수많은 겨울 동안 만인 위에 조용히 앉아 기다렸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모습을 나타낸 적 없이 침묵했으며 조용히 떠났다가 소리 없이 돌아왔다. 누가 그의 본래 모습을 알 수 있겠느냐? 그는 사람에게 말씀한 적도 없고 나타난 적도 없는데, 사람이 하나님이 부탁한 사역을 하는 것이 어디 그리 쉽겠느냐?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임을 왜 모르느냐? 오늘날 하나님은 사람에게 말씀했지만 사람은 아직도 그를 알지 못한다. 사람의 생명 진입이 너무나 얕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보기에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자격이 전혀 없다.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너무 소원하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마음 또한 너무 복잡하고, 마음 깊숙한 곳에 하나님의 형상이 전혀 없어서 하나님의 심혈과 사역이 모래 속에 파묻힌 금처럼 한 가닥의 빛도 내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의 자질과 마음가짐, 관점에 극도의 염증을 느낀다. 이해력이 부족하고 더할 나위 없이 둔감하며 부패하고 속되고 노예근성은 너무 강한 데다가 연약하고 의지력도 없는 그들을 소나 말처럼 끌고 가야 한다. 그들은 영적인 진입과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진입에 아무 관심도 없고, 진리를 위해 고난받으려는 의지도 전혀 없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는 것이 말처럼 쉽겠느냐? 그러므로 너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부분에서부터 진입하고, 너희의 사역과 진입에서부터 하나님의 사역을 알아 가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1>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191)

하나님은 중화 대륙, 즉 홍콩이나 대만 동포가 말하는 내륙에 성육신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땅에 왔을 때, 하늘 위아래의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는 하나님이 은밀히 재림한 참뜻이기 때문이다. 그가 육신으로 와서 오랫동안 사역하고 생활했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아는 이가 없다. 어쩌면 이는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이번에 육신으로 왔다는 것을 사람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영이 얼마나 대단한 기세로 역사하든 하나님은 시종일관 내색하지 않으며,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이 단계의 사역은 천계(天界)에서의 사역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모두 눈으로 보았지만, 알지는 못한다. 하나님이 이 단계의 사역을 끝내면 모든 사람은 긴 꿈에서 깨어나 태도가 일변할 것이다[1]. 하나님은 “이번에 육신으로 온 것은 호랑이 굴에 떨어진 것과 같다.”라고 말씀한 바 있다. 즉, 하나님은 이번 사역을 육신으로 행하고, 그것도 큰 붉은 용이 군거하는 곳에 강생하여 행하기 때문에 더욱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땅에 온 것이다. 하나님이 직면한 것은 총칼과 몽둥이요, 시험이요, 살기등등한 사람들이므로, 언제든 죽임 당할 위험이 있다. 하나님은 진노를 지니고 왔다. 그러나 그가 온 이유는 온전케 하는 사역을 하기 위해서이다. 즉, 구속 사역에 이어 두 번째 부분의 사역을 하기 위해 온 것이다. 하나님은 이 단계의 사역을 위해 노심초사하고 천방백계로 시험의 공격을 피하며 자신을 낮추고 감추었지, 한 번도 자신의 신분을 과시한 적이 없다. 예수가 사람을 십자가에서 구원한 것은 구속 사역을 완성하기 위한 것일 뿐, 온전케 하는 사역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그렇게 하나님의 사역이 반만 완성되었다. 구속 사역을 끝낸 것은 전체 계획의 절반에 불과했다. 새 시대가 시작되고 옛 시대가 지나가려 할 때, 아버지 하나님은 두 번째 부분의 사역을 깊이 생각하고, 두 번째 부분의 사역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과거에는 말세에 성육신할 것이라고 명확히 예언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번에 더 은밀하게 육신으로 오기 위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만인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때, 동틀 무렵에 땅에 와 육신에서의 생애를 시작했다. 그러나 사람은 이 순간이 도래했음을 모른다. 어쩌면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수도 있고, 많은 이가 깨어 기다릴 수도 있으며, 수많은 사람이 하늘의 하나님께 조용히 기도드리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많은 사람 중에 하나님이 이미 땅에 왔다는 사실을 아는 자는 단 한 명도 없다. 하나님이 이렇게 사역하는 이유는 더 순조롭게 사역을 펼치고, 보다 나은 사역의 성과를 거두며, 더 이상의 시험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봄잠에서 깨어나는 동틀 녘에 하나님의 사역은 이미 끝났을 것이며, 하나님은 땅을 떠남으로써 땅에서 떠돌며 기거했던 생애를 마칠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반드시 하나님 자신이 친히 행하고 친히 말해야지, 사람이 끼어들 수는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극심한 고통을 감수하고 땅에 와 친히 사역을 행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대신할 수 없기에 하나님은 은혜시대의 수천 배에 달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큰 붉은 용이 군거하는 곳에 내려와 자신의 사역을 하며, 모든 노력을 기울여 빈궁한 백성, 거름 더미 속의 사람을 구원(원문: 救贖)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은 고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사역에 크나큰 장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두 극악무도한데 어찌 하나님의 존재를 용납할 수 있겠느냐? 이 때문에 하나님이 땅에 와서 늘 묵묵히 있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잔혹하게 굴어도 하나님은 전혀 개의치 않으며, 하늘의 아버지가 맡긴 더 큰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사역만 할 뿐이다. 너희 중에 하나님의 사랑스러움을 깨달은 자가 있더냐? 어느 누가 아버지 하나님의 부담을 아들보다 더 잘 헤아릴 수 있겠느냐? 어느 누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하늘에 있는 아버지의 영은 항상 걱정하고, 땅에 있는 아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위해 늘 간구하며 애태우는데, 어느 누가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겠느냐? 어느 누가 아버지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아들의 마음을 알 수 있겠느냐? 하늘과 땅으로 갈라져 있는 것은 선택할 수 없는 일이어서 항상 멀리서 마주하며, 영 안에서 함께한다. 인류야! 언제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것이냐? 언제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것이냐? 아버지와 아들은 본래 서로를 의지하거늘, 이들을 하늘 위아래로 갈라놓아야만 하겠느냐? 아들이 아버지를 사랑하듯 아버지도 아들을 그리워하거늘, 왜 하염없이 기다리고 고대해야만 한단 말이냐? 떨어져 지낸 세월이 길지는 않으나 수많은 낮과 밤을 기다리며 사랑하는 아들이 빨리 돌아오기를 애타게 바라는 아버지의 심정을 누가 알겠느냐? 그는 지켜보며, 조용히 앉아 기다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다 사랑하는 아들의 빠른 귀환을 위한 것이건만, 세상 끝과 바다 끝을 떠돌고 있으니 언제쯤 재회할 수 있겠느냐? 상봉하는 날 영원히 함께할지라도 어찌 수천 번의 밤낮을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서 떨어져 지내겠느냐? 땅에서의 수십 년은 하늘에서의 수천 년과 같거늘 어찌 아버지 하나님이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땅에 온 하나님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세파에 시달린다. 하나님은 본래 죄가 없거늘 어찌 사람과 같은 고난을 겪게 하는 것이냐? 아버지 하나님이 아들을 그토록 간절히 기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거늘 어느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사람에게 넘치도록 주었는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보답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하나님께 드린 것은 적어도 너무나 적으니 어찌 하나님이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4> 중에서

 

[1] 태도가 일변할 것이다[一反常態]: 사람이 하나님을 알게 될 때 생각과 관점이 바뀌는 것을 가리킴.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192)

사람 중에 하나님의 절박한 마음을 이해하는 이는 거의 하나도 없다. 사람은 자질이 형편없기 짝이 없고, 영 안이 몹시 둔하며, 하나님의 행사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야만성이 언제라도 튀어나올 것 같아 늘 마음을 놓지 못한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크나큰 시험을 무릅쓰고 땅에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무리 사람들을 온전케 하기 위해 영광을 가득 안고 그의 뜻을 숨김없이 다 사람에게 알려 주었다. 그는 이들을 온전케 하기로 결정했기에 고난이나 시험에 신경 쓰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사역만 해 나가고 있다. 언젠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면 사람도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라는 확신과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면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누군가는 하나님을 시험하고, 누군가는 하나님을 오해하며, 누군가는 하나님을 원망하겠지만 하나님은 이를 전혀 개의치 않는다. 하나님이 영광 가운데 임할 때, 사람은 모두 하나님이 행한 모든 일이 인류의 행복과 더 나은 생존을 위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시험을 무릅쓰고 왔으며, 또한 진노와 위엄을 지니고 왔다. 하나님이 사람을 떠날 때는 이미 영광을 얻었으므로 영광과 귀환의 기쁨으로 가득한 채 떠날 것이다. 땅에서 사역하는 하나님은 사람이 그를 어떻게 저버리든 상관하지 않고 그의 사역만 행할 따름이다. 세상을 창조하고 천만년의 역사(歷史)가 흐르는 동안 하나님은 땅에 와서 수많은 사역을 했지만 세상에서 수없이 버림받고 비방당했다. 하나님을 반겨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차가운 시선뿐이었다. 이 수천 년의 고초를 겪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행위로 마음에 모진 상처를 입었다. 그는 더 이상 사람의 패역에 신경 쓰지 않고, 다른 계획을 세워 사람을 변화시키고 정결케 하기로 했다. 하나님은 육신으로 와서 조롱, 비방, 핍박, 환난, 십자가의 고통, 사람의 배척 등을 더는 겪을 수 없을 정도로 겪었다. 또 육신으로 온 하나님은 인간 세상의 갖은 고난을 겪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의 영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를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젖히고 눈을 감은 채 사랑하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오직 모든 사람이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며, 그의 육신 앞에서 죽도록 참회하고, 그에게 거역하지 않기를, 또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기를 바랄 뿐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뭔가 더 큰 것을 기대하지 않은 지 오래다. 하나님은 너무도 큰 대가를 지불했건만 사람은 무사태평[1]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신경조차 쓰지 않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4> 중에서

[1] 무사태평[高枕無憂]: 여기에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안중에 두지 않음을 가리킴.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193)

사실 하나님이 은혜시대에 셋째 하늘로 돌아갈 때, 온 인류를 구속하는 하나님의 사역은 이미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있었다. 땅에는 예수가 졌던 십자가, 그의 몸에 감싸졌던 세마포, 그가 썼던 가시 면류관, 그가 입었던 자색 옷(유대인이 그를 희롱하며 사용했던 물건들)만 남았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사역은 한바탕 큰 파문을 일으켰다 잠잠해졌고, 그 후 예수의 제자들은 곳곳의 교회에서 양육하고 목양하며 그의 사역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사역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자복하며 회개하게 했고, 또 세례받게 했다. 사도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내막과 실제 상황을 전하여 사람들이 절로 ‘예수’ 앞에 엎드려 죄를 자복하게 했으며, 또 곳곳에서 예수의 말씀을 전했다. 이때부터 은혜시대의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 시대에 예수가 한 일 역시 사람의 삶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다만 시대가 다른 관계로 많은 표현과 실행들이 오늘날과 크게 달랐을 뿐이다. 하지만 그 본질은 모두 같다. 즉, 전부 하나님의 영이 육신으로 사역하는 것으로, 조금의 차이도 없다. 그런 사역과 말씀이 오늘날까지 이어졌기에 지금의 종교계에서는 여전히 조금의 변화도 없이 이를 그대로 ‘공유하는’ 것이다. 예수의 사역이 끝날 무렵 교회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정상 궤도에 올라섰으나, 하나님은 또다시 다른 단계의 사역 계획, 즉 말세에 성육신하는 일을 시작했다. 사람이 보기에는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그의 성육신 사역을 끝냈고, 온 인류를 속량했으며, 음부의 열쇠를 손에 넣은 것 같을 것이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이 철저히 완성되었다고 여긴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이 보기에는 그의 사역 중 작은 부분만 완성됐을 뿐이다. 그는 인류를 속량했을 뿐 정복하지 않았고, 나아가 사람에게 존재하는 사탄의 추한 몰골을 바꾸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성육신한 몸은 죽음의 고통을 겪었으나 이는 내가 성육신한 모든 목적이 아니다. 예수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로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나의 사역 중 일부만 완성했을 뿐 모든 사역을 완전히 끝내지는 않았다.” 이렇게 하나님은 다시 성육신의 사역을 잇는 두 번째 계획을 시작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사탄의 손에서 구원한 사람을 온전케 하고 얻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위험을 무릅쓰고 육신으로 왔다. ‘성육신’이란 영광을 지니지 않고, 사랑하는 아들의 신분으로 나타난 것을 말한다(하나님의 사역이 완성되지 않았으므로 영광을 지니지 않는다고 표현한다).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이기에 위험을 무릅쓴다고 하는 것이다. 육신의 힘은 근소신미[1]한 데다 하나님 아버지의 권병과는 거리가 멀기에, 다만 육신의 직분을 이행하며 아버지 하나님의 사역과 사명을 완성할 뿐이다. 다른 사역은 하지 않고 오직 일부분 사역만 완성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땅에 오는 순간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것이 그 함의이다. 시험을 무릅쓰고 왔다고 하는 이유는 한 가지 사역만을 완성하기 때문이며, 게다가 아버지 하나님이 그를 ‘그리스도’, ‘사랑하는 아들’이라고만 부를 뿐, 모든 영광을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육신을 입고 온 목적은 한 가지 사역을 하는 데 있으며, 하나님 아버지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들’의 직분을 이행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들’이 어깨에 짊어진 사명을 모두 완성할 때 아버지는 모든 영광과 신분을 그에게 준다. 이는 ‘하늘의 규칙’이라고 할 수 있다. 성육신과 하나님 아버지는 서로 다른 경지에 있으니 그저 영 안에서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을 돌보며 지켜보지만 아들은 아득히 멀리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지 못한다. 육신의 능력은 너무도 미약하여 언제든 죽음의 화를 당할 가능성이 있기에 크나큰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을 또다시 범의 아가리에 넣은 것과 마찬가지이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탄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에 그를 넘긴 것이다. 이렇게 위급한 순간에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을 더럽고 음란한 땅의 사람에게 맡겨 그를 ‘어른으로 키우게’ 했다.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사역이 이치에 맞고, 아버지 하나님의 모든 소망을 이루어 인류 가운데서 하는 마지막 사역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도 아버지 하나님의 한 단계 사역을 완성했을 뿐이다. 육신이 서로 동떨어져 있고 또한 완성할 사역이 다른 관계로 예수 역시 두 번째로 육신을 입고 와야 한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이 때문에 성경 해설자나 예언가들은 하나님이 말세에 또 성육신한다는 것, 즉 말세에 다시 육신으로 와서 육신의 두 번째 부분 사역을 행한다는 것을 아무도 명확하게 예언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무도 하나님이 일찍이 육신에 숨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예수가 부활하여 승천한 후에야 이 사명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의 두 번째 성육신에 대한 더 명확한 예언은 없으며, 사람이 헤아리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경의 그 많은 예언서에도 이 일에 대한 명확한 언급은 없었다. 하지만 예수가 와서 사역할 때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즉 성령으로 잉태될 것이라는 명확한 예언이 있었다. 그랬음에도 하나님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왔다고 했는데, 하물며 오늘날은 어떻겠느냐? 그러니 하나님이 이번에 은혜시대의 몇천 배에 이르는 위험을 감수하고 성육신했다고 말씀한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나님은 시님(원문: 秦國) 땅, 즉 세계의 동방에서 이긴 자들을 얻을 것이라고 이미 많은 곳에 예언해 둔 바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두 번째로 성육신하는 곳은 틀림없이 시님 땅인 것이다. 하나님은 바로 큰 붉은 용이 똬리를 틀고 있는 곳에서 큰 붉은 용의 자손들을 얻음으로써, 그것에게 완전한 패배와 수치를 안겨 줄 것이다. 하나님은 극심한 고난을 겪는 이 사람들을 불러일으켜 완전히 깨우고, 그들이 안개 속에서 걸어 나와 큰 붉은 용을 버리게 할 것이다. 또한 꿈에서 깨어나 큰 붉은 용의 본질을 알고,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게 할 것이다. 그리고 흑암 세력의 억압 속에서 힘차게 일어나 세계의 동방에 굳게 서게 할 것이며, 하나님의 승리한 증거가 되게 할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이 영광을 얻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서 마친 사역을 다시 큰 붉은 용이 똬리를 틀고 있는 곳으로 가져온 것이며, 떠난 지 2천 년이 되었을 무렵 또다시 육신으로 와서 은혜시대의 사역을 이은 것이다.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이 다시 육신으로 새 사역을 펼친 것 같겠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은혜시대의 사역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단지 몇천 년이 흘렀고, 사역의 장소와 내용이 달라졌을 뿐이다. 오늘날의 사역에서 하나님의 육신이 입은 형상은 예수와 확연히 다르나 그 본질과 근원은 결국 하나이고, 하나의 기원을 지닌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하지 않은 부분이 상당히 많을지도 모르나, 사역의 실상은 한 치의 차이도 없다. 아무튼 시대가 완전히 다른데 하나님의 사역이 천편일률적이거나 서로 방해가 될 수는 없지 않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6> 중에서

[1] 근소신미(謹小愼微): 육신의 기능이 보잘것없어 사소한 일에 신경 쓰고 지나치게 신중함. 여기에서는 육신의 어려움이 많아서 사역이 몹시 제한되어 있음을 가리킴.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194)

사람은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비단 영적 생명의 공급과 하나님을 아는 체험에 그치지 않으며, 더 큰 결핍은 성품의 변화임을 깨달았다. 사람은 인류의 역사와 고대 문화를 전혀 알지 못하기에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사람은 모두 마음속 깊이 하나님을 사모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사람의 육이 몹시 패괴된 데다 무감각하고 또 우둔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오늘날 하나님이 사람들 가운데 온 목적은 천만년 동안 이어져 온 사람의 사상과 정신, 그리고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한 하나님의 형상을 바꾸기 위함이며, 이 기회에 사람을 온전케 하기 위함이다. 즉, 사람의 ‘인식’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 방법과 태도를 바꿈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인식을 되돌리는 한편, 사람의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고 바꾸고자 함이다. 책망하고 징계하는 것은 방식이고, 정복하고 새롭게 바꾸는 것은 목적이다. 사람이 막연한 하나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미신적인 사상을 타파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뜻이자 현재의 간절한 뜻이다. 모두가 이에 대해 신중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모든 사람이 체험 방식을 바꾸어 하나님의 간절한 뜻이 하루빨리 이루어지도록 하고, 하나님이 땅에서 행하는 마지막 단계의 사역이 성공적으로 완성될 수 있도록 해라. 너희가 마땅히 보여야 할 충성을 다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마지막으로 한 번 위로해라. 형제자매 중 그 누구도 이를 행함에 있어 책임을 회피하거나 건성으로 대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이번에 육신으로 온 것은 초청에 응하여 온 것이고, 사람의 영적 상태에 맞추어 온 것이다. 즉, 사람이 필요로 하는 바를 공급하고자 온 것으로, 사람의 자질과 교양이 어떠하든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현현을 보게 하려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통해 하나님에게 온전케 되고 사상과 관념을 바꿈으로써 하나님의 본래 모습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땅에서 바라는 유일한 염원이다. 사람에게 천성적인 것이 얼마나 많든, 사람의 본질이 얼마나 나쁘든, 과거에 사람이 도대체 어떤 행위를 했든, 하나님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오로지 사람이 마음속 하나님의 형상을 새롭게 바꾸고, 인류의 본질을 인식하여 사상적 면모의 변화를 이루길, 또 하나님을 마음속 깊이 그리워하고, 하나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품을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이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유일한 요구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7>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195)

하나님의 말세에 하는 사역은 모든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크나큰 상처를 받은 사람의 마음을 감화시키고, 죄악에 깊게 물들어 해를 입은 영혼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누차 말했다. 즉, 사람의 영을 일깨움으로써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 소생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가장 큰 뜻이다. 사람의 생명과 체험이 얼마나 높고 깊은지는 차치하자. 사람의 마음이 일깨워질 때, 사람이 꿈에서 깨어나 큰 붉은 용의 해악을 깊이 깨달을 때, 하나님의 본직 사역은 이루어졌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이 끝나는 날이 사람이 본격적으로 올바르게 ‘하나님을 믿는’ 길을 가기 시작할 때이다. 그때 하나님의 직분, 바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의 사역이 전부 끝나고, 사람은 본격적으로 자신이 이행해야 할 본분, 그러니까 사람의 ‘직무’를 이행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사역의 절차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을 인식한 후에 너희가 진입할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이것이 너희가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들이다. 사람의 마음이 변화해야만 더 잘 진입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역은 속량해 온 사람들, 여전히 흑암 세력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을 마귀가 군집한 땅에서 철저히 구원하고 천고의 죄에서 벗어나게 하여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큰 붉은 용을 완전히 뭉개 버려 하나님의 나라를 굳건히 세우고, 하나님의 마음이 한시바삐 안식을 누릴 수 있게 한다. 또한, 너희 마음속에 가득한 원한을 ‘남김없이’ 발산하게 하고, 곰팡이가 슬어 버린 독균(毒菌)을 깨끗이 없애며, 소나 말 같은 삶에서 벗어나 더는 노예로 살지 않게 하고, 더는 큰 붉은 용에게 마구 유린당하거나 함부로 부림 받지 않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는 더 이상 이 패망의 민족에도, 극악무도한 큰 붉은 용에게도 속하지 않으며, 더는 그것의 부림을 받지 않게 할 것이다. 마귀의 ‘소굴’은 반드시 하나님 손에 부서져 멸망될 것이다. 하나님의 편에 선 너희는 이 노예 왕국이 아닌, 하나님께 속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일찍이 이 어둠의 사회를 뼈에 사무치도록, 이가 갈리도록 증오했다. 당장이라도 이 극악무도한 옛 뱀을 두 발로 짓밟아 영원히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고, 다시는 사람을 해치지 못하게 하고 싶은 심정이다. 또한, 하나님은 그것의 과거도, 그것이 다시 사람을 속이는 것도 용납하지 않고, 역대로 쌓인 죄업의 대가를 하나하나 치르게 할 것이다. 하나님은 절대로 이 원흉[1]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며, 철저히 없애 버릴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8> 중에서

[1] 원흉[罪魁禍首]: 본문에서는 ‘늙은 마귀’를 가리키며, 극도의 증오를 나타냄.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196)

하나님은 인류를 위한 사역 때문에 얼마나 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는지 모른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임했고, 사람이 살고 있는 생지옥에 내려와 하늘 끝까지 사람과 함께하면서도 궁상맞은 인간 세상을 원망한 적 없고, 사람의 패역을 질타한 적도 없으며, 도리어 크나큰 치욕을 참으면서 자신이 친히 해야 할 사역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어찌 지옥에 속할 수 있겠느냐? 어찌 지옥의 생활을 할 수 있겠느냐? 하지만 그는 전 인류를 위해서, 인류 전체가 하루빨리 안식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치욕과 억울함을 참고 땅에 내려와 친히 ‘지옥’과 ‘음부’, 호랑이 굴로 들어가서 사람을 구원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을 대적한단 말이냐? 무슨 이유로 또 하나님을 원망한단 말이냐? 무슨 낯짝으로 다시 하나님을 마주한단 말이냐? 하늘의 하나님은 가장 더럽고 음란한 땅에 와서 단 한 번도 억울함을 토로하거나 사람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묵묵히 사람의 박해[1]와 억압을 감내하고 있다. 그는 한 번도 사람의 무리한 요구에 반항하지 않았고, 사람에게 지나친 요구나 무리한 요구를 한 적도 없으며, 아무리 힘들어도 원망 한 마디 없이 가르침, 깨우침, 책망, 말씀의 연단, 일깨움, 권면, 위로, 심판, 폭로 등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사역을 할 뿐이다. 사람의 생명을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비록 사람의 앞날과 운명을 거두어 갔다고는 하나, 하나님이 하는 일 중에서 사람의 운명을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사람의 생존을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이 고난과 칠흑처럼 어두운 흑암 세력의 압제에서 사람을 구해 내려고 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사람을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인자한 어머니와 같은 하나님의 마음을 누가 알겠느냐? 하나님의 그 절박한 심정을 누가 이해하겠느냐? 하나님의 불처럼 뜨거운 마음과 간절한 기대로 얻은 것은 뜻밖에도 얼음처럼 차가운 마음, 냉혹하고 무정한 눈동자,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람의 훈계와 욕설, 그리고 냉소와 조롱, 비방과 폄하, 사람의 비웃음, 유린과 저버림, 사람의 오해와 원망, 소외와 회피, 기만과 공격, 쓰디쓴 결과뿐이었다. 따뜻한 말씀은 ‘차디찬 시선과 손가락질’로 돌아왔으니, 하나님은 ‘머리를 숙이고 몸을 낮추며[2]’ 고통을 참아야만 했다. 수많은 세월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전반측하며 아버지와의 이별보다 천배나 더한 고통을 참아 내고, 사람의 공격과 ‘깨뜨림’, ‘훈계’와 ‘책망’을 참아내야 했다. 하나님이 ‘낮추고 감춘’ 대가로 얻은 것은 사람의 차별[3], 불공평한 시선과 대우였다. 하나님의 묵묵한 인내와 포용으로 얻은 것은 인정사정없이 하나님을 밟아 죽이려 하고, 하나님을 갈라진 땅 틈 사이로 밀어 넣으려고 하는 사람의 탐욕스러운 시선이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는 ‘보기 드물게 똑똑해져’, 사람 눈에 만만해 보이고 사람들이 깔보는 하나님을 만인의 발아래 깔아뭉개고는 마치 ‘왕 노릇을 하려는’ 듯, ‘대권을 독차지하여[4]’ ‘수렴청정’하려는 듯 스스로를 높이 추켜올리고, 하나님에게는 고분고분 순순히 ‘무대 뒤의 감독’ 역할을 맡겨 반항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였다. 또한 하나님을 ‘마지막 황제’처럼 분장시켜 자유라곤 전혀 없는 ‘꼭두각시[5]’ 역할을 맡게 했다. 사람의 작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니, 또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께 이런저런 요구를 한단 말이냐?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께 ‘건의’를 한단 말이냐?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께 사람의 연약함을 배려해 달라고 요구한단 말이냐? 사람에게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자격이 있더냐? 끝없이 이어지는 하나님의 관대함을 누릴 자격이 있더냐? 계속되는 하나님의 죄 사함을 받을 자격이 있더냐? 사람의 양심은 어디에 있느냐? 사람은 일찍이 하나님의 마음을 더없이 아프게 하였고,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하나님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가슴 가득 기쁨을 안고 인간 세상에 와서 사람이 그에게 아주 작은 온정이라도 베풀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오래도록 사람의 위로를 얻지 못했고, 돌아온 것이라고는 설상가상[6] 식의 공격과 괴롭힘뿐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너무 탐욕스럽고, 사람의 욕망은 너무 커서 하나를 얻으면 둘을 갖고 싶어 하고, 무리한 트집을 잡으면서 하나님께 약간의 자유도, 일말의 발언권도 주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하나님은 울분을 참으면서 묵묵히 사람의 조종을 받아야 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9> 중에서

[1] 박해[摧殘]: 여기서는 사람의 패역을 폭로함.

[2] ‘차디찬 시선과 손가락질’, ‘머리를 숙이고 몸을 낮추며’: 원래 문장은 ‘사나운 눈초리로 뭇사람들의 질타에 맞서고[橫眉冷對千夫指], 머리 숙여 기꺼이 어린아이의 소가 되다[俯首甘爲孺子牛]’라는 한 구절로 되어 있지만,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문제를 더 정확히 설명하고 있음. 앞 구절은 사람의 ‘행위’를, 뒷 구절은 하나님이 받는 고난과 하나님이 자신을 낮추고 감추는 것을 가리킴.

[3] 차별[歧視]: 본문에서는 사람의 패역 행위를 가리킴.

[4] 대권을 독차지하여[獨攬大權]: 사람의 패역 행위, 즉 자신을 추켜올리는 한편 다른 사람이 자신을 따르고 자신을 위해 고통받도록 통제하는 행위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세력에 대한 표현. 원뜻은 큰 권력을 혼자 틀어쥐고 있음을 의미함.

[5] 꼭두각시[傀儡]: 본문에서는 이 어휘를 통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조롱함.

[6] 설상가상(雪上加霜): 본문에서는 이 어휘로 사람의 비열한 행위를 더 두드러지게 함.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197)

하나님이 성육신한 일은 각 교파와 교단을 뒤흔들었고, 종교계의 질서를 ‘어지럽혔으며’, 하나님의 나타남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누구인들 앙모하지 않겠느냐? 누구인들 하나님 뵙기를 고대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온 지 여러 해가 되었지만,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했다. 오늘에 이르러 하나님 자신이 나타나 모두에게 자신의 신분을 드러냈으니, 이 어찌 즐겁지 않겠느냐? 지난날 하나님은 사람과 만남의 기쁨과 헤어짐의 슬픔을 나눴고, 이제 또다시 인류와 만나 옛정을 나누고 있다. 하나님은 유대에서 떠나간 이후로 줄곧 종무소식이었다. 사람들은 하나님과 재회할 날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그러다 오늘날 이렇게 다시 한번 만나게 되었으니, 어찌 지난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있겠느냐? 2천 년 전의 오늘, 유대인의 자손인 바요나 시몬은 구주 예수를 만나 음식을 나누고 오랜 세월 그를 따르면서 깊은 우정을 나눴으며, 예수를 마음으로 사랑하고 가슴 깊이 사랑했다. 어둡고 차가운 말구유에 강생한 노란 머리의 갓난아이가 바로 성육신 하나님의 첫 번째 형상이었음을 유대 백성들이 어떻게 알았겠느냐? 사람들은 모두 그를 자신과 같은 부류로 생각했지, 그를 특별하게 여긴 이는 아무도 없었다. 평범하고도 일반적인 ‘예수’를 사람이 어찌 알아볼 수 있었겠느냐? 유대인들은 모두 그를 당시 유대인의 아들로 여겼지, 사랑스러운 하나님으로 본 자는 아무도 없었다. 사람은 언제나 그를 향해 부족함이 없는 풍성한 은혜와 평안과 기쁨을 내려 달라고 요구할 뿐이었고, 오로지 그가 백만장자처럼 모든 걸 가지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한 번도 그를 사랑해야 하는 분으로 대하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 또한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저 그에게 반항하고 터무니없는 요구만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반항하지 않았고, 일관되게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그는 묵묵히 사람에게 따스함과 자비와 긍휼을 베풀었으며, 나아가 새로운 실행을 알려 줌으로써 사람을 율법의 속박에서 풀어 주었다. 사람은 그를 사랑하지 않았고, 그저 그를 부러워하고, 그의 ‘출중한 재능’을 높이 살 뿐이었다. 사랑스러운 구주 예수가 얼마나 큰 굴욕을 참음으로 이 세상에 왔는지, 눈먼 인류가 어찌 알겠느냐! 그의 고충을 헤아려 주는 사람도,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도, 그의 외로움을 이해하는 사람도 없었다. 마리아가 그의 ‘생모’라고는 하나, 인자한 주 예수의 마음의 소리를 그녀가 어찌 이해했겠느냐? ‘인자’가 참아내야 했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누가 알아주었더냐? 당시 사람들은 그에게서 얻어 낸 뒤에는 냉정하게 그를 뇌리에서 지워 버리고, 또한 문전 박대 했다. 그는 그렇게 길거리를 떠돌아다녀야 했다. 하루 또 하루, 한 해 또 한 해, 수많은 나날 동안 떠돌아다니면서 길고도 짧은 고난의 33년 인생을 보낸 것이다. 사람은 그를 필요로 할 때는 집으로 초대하여 원하는 바를 얻어 내고자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고, 그의 ‘공헌’을 받은 후에는 즉각 그를 문밖으로 밀어냈다. 사람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공급받고, 그의 피를 마시고, 그가 베풀어 주는 은혜를 누리면서도 그를 대적했다.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누가 베풀어 주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결국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그는 여전히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그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사람은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고, 그가 해 주는 밥으로 배를 채우며, 그가 개척한 길을 걸으면서도 그를 저버리려 한다. 사람은 자신에게 생명을 베풀어 준 하나님을 원수로 여기고, 자신과 같은 부류의 노예를 ‘하나님 아버지’로 생각하고 있다. 이것이 고의로 대적하는 것이 아니냐? 예수는 어떻게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했느냐? 너희는 알고 있느냐? 그를 먹고 마시고 누리며 그와 가장 가깝게 지냈던 유다가 그를 팔아넘긴 것이 아니더냐? 팔아넘긴 이유는 예수가 보잘것없는 평범한 ‘선생’이었기 때문이 아니었더냐? 예수가 하늘에 속한 비범한 분이라는 걸 정말로 보았더라면 사람이 그를 산 채로 십자가에 못 박아 숨이 끊길 때까지 24시간 동안이나 매달아 놓았겠느냐?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사람이 누구더냐? 사람은 끝을 모르고 탐욕스럽게 하나님을 누릴 줄이나 알지, 한 번도 그를 안 적이 없다. 하나를 얻으면 둘을 원하면서 ‘예수’가 자신의 지시와 부름에 완전히 복종하기만을 원했다. 머리 둘 곳도 없는 ‘인자’에게 일말의 온정을 베푼 이가 있었더냐? 그와 한마음으로 협력해서 하나님 아버지가 맡긴 사명을 완수하려고 했던 자가 있었더냐? 그를 생각해 준 자가 있었더냐? 그의 고충을 헤아려 준 자가 있었더냐? 사랑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그를 이리 끌어당기고 저리 밀치고 했을 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광명과 생명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고, 인간 세상의 고난을 체험한 2천 년 전의 ‘예수’를 다시 한번 십자가에 못 박을 꿍꿍이만 가지고 있다. 설마 ‘예수’가 그렇게 혐오스러운 존재란 말이냐? 그가 행한 모든 것을 사람은 벌써 다 잊었단 말이냐? 수천 년 전부터 쌓인 원한을 끝내 쏟아 내려고 하는구나. 유대인 같은 자들아! ‘예수’가 언제 너희에게 적의가 있었느냐? 어찌하여 그리도 그를 증오한단 말이냐? 그가 한 수많은 일과 수많은 말씀들이 설마 다 너희에게 무익하기라도 하단 말이냐? 그는 너희에게 자신의 생명을 값없이 베풀어 주고 자신의 모든 것을 주었다. 그런데도 너희는 산 채로 그를 삼키려 드느냐? 그는 너희에게 자신의 전부를 아낌없이 바쳤고, 세상의 영화, 인간세상의 따스함, 사랑과 모든 복과 즐거움은 한 번도 누려 보지 못했다. 그에 대한 사람의 태도는 너무나도 야박했다. 그는 땅에 있는 모든 풍성함을 누려 본 적이 없고, 자신의 진실하고 뜨거운 마음을 전부 너희에게 바쳤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인류에게 바쳤다. 그런 그에게 누가 온정을 베풀었더냐? 누가 위안을 주었더냐? 사람은 모든 압력을 그에게 가했고, 모든 불행을 그에게 주었으며, 인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체험을 그에게 강제로 떠넘기고, 모든 불의를 그에게 덮어씌웠으나 그는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가 누군가에게 항의를 한 적이 있더냐? 보답을 요구한 적이 있더냐? 누가 그를 체휼했었느냐? 정상적인 사람 치고 낭만적인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은 자가 있느냐? 오색찬란한 청춘을 가져 보지 못한 자가 있느냐? 가족의 온정을 느껴 보지 못한 자가 있느냐? 친구와 친척들의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자가 있느냐? 다른 이의 존중을 받아 보지 못한 자가 있느냐? 따뜻한 가정이 없는 자가 있느냐? 절친한 벗의 위로를 받아 보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그가 어찌 누려 봤겠느냐? 누가 그에게 조금이라도 온정을 주었더냐? 누가 그에게 일말의 위안이라도 주었더냐? 누가 그에게 조금이라도 인성의 도덕을 베풀었더냐? 누가 그에게 관용을 보였더냐? 누가 그와 고난의 날들을 함께 했더냐? 누가 그와 인생의 힘든 삶을 함께 했더냐? 사람은 한 번도 그에 대한 요구를 느슨하게 한 적이 없으며 그저 아무 거리낌 없이 그에게서 받아 내려 요구했을 뿐이다. 마치 그가 인간 세상에 온 이상, 반드시 사람의 마소 역할을 해야 하고, 단상 아래 선 죄인이 되어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인류는 절대로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이대로 포기하지도, 그를 하나님이라고 하지도, 높이 평가하지도 않을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는 너무나도 엄격해서 어떻게든 하나님을 고통 속에서 죽게 만들어야 요구를 느슨하게 하지,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에 대한 요구치를 낮추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인류가 어떻게 하나님의 증오를 사지 않을 수 있겠느냐? 오늘날의 비극이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사람의 양심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입에 침이 마르게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겠다는 말을 하면서 하나님을 해부하고 잔인하게 괴롭혀 죽음으로 몰아가니,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믿음에 있어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온 비법’이 아니더냐? ‘유대인’은 어디에나 다 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똑같은 일, 즉 하나님을 대적하는 똑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하나님을 높인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육안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알아볼 수 있겠느냐? 육으로 사는 사람이 어떻게 영에서 비롯되어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겠느냐? 누가 알아볼 수 있겠느냐? 인간 세상에 진리가 어디에 있더냐? 진정한 공의는 또 어디에 있더냐? 하나님의 성품을 누가 알 수 있겠느냐? 누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겨룰 수 있겠느냐? 사람이 인간 세상에 온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저버린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존재를 용인할 수 있겠느냐? 어찌 빛이 인간 세상에서 어둠을 쫓아내는 것을 용인하겠느냐? 이 모든 것이 사람의 공명정대한 봉헌 정신이 아니더냐? 사람의 정정당당한 진입이 아니더냐? 하나님의 사역은 전부 사람의 진입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더냐? 너희가 사역과 진입을 결합시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잘 처리하고, 사람으로서 마땅히 이행해야 할 본분을 다하며, 모든 성의를 다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역 역시 영광을 받음으로 끝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10>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198)

지금은 중국의 하나님 선민들에게 하는 사역을 통해 이 사람들의 패역한 성품을 모두 드러내고 추악한 모습을 다 들추어낸다. 이것을 배경으로 모든 말씀을 마치고, 그 후 전 우주를 정복하는 다음 단계 사역을 할 것이다. 너희를 심판함으로써 전 우주 사람들의 불의를 심판하는 것이다. 너희는 인류의 패역자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은 부각물이 되고 봉사하는 존재가 될 것이며, 따라오는 사람은 쓰임 받는 대상이 될 것이다.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을 왜 부각물이라고 하겠느냐? 그것은 지금 사역하고 말하는 것이 모두 너희의 상황에 맞춰 진행되기 때문이고, 또 너희는 인류 중 패역자의 대표이자 전형이 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너희를 정복하는 이 말씀들을 외국으로 가져가 외국 사람들을 정복할 텐데, 네가 얻지 못한다면 부각물에 속하지 않겠느냐? 전 인류의 패괴 성품, 사람의 패역한 행위, 사람의 이런 추한 모습과 면모가 다 오늘날 너희를 정복하는 말씀에 기록되어 있다. 이런 말씀을 가지고 각 나라와 각 교파의 사람들을 정복할 것이다. 이는 너희가 본보기이고 선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러 너희를 버리는 것은 아니다. 네가 제대로 추구하지 않아 구제 불능이 된다면 완전히 봉사만 하는 존재, 부각물이 아니겠느냐? 나는 예전에 나의 지혜는 사탄의 간계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왜 그 말을 했겠느냐? 그것이 지금 내가 말하고 사역하는 실상 아니겠느냐? 네가 따라오지 못해 온전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벌을 받게 된다면, 부각물에 속하지 않겠느냐? 오늘에 이르기까지 너는 많은 고난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여 생명의 일에 대해 조금도 모르며, 형벌과 심판을 받기는 했지만 아무 변화도 없고 생명을 얻지도 못했다면, 공사를 점검할 때 불 같은 시련과 더 큰 환난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런 불이 닥치면 너는 송두리째 재가 될 것이다. 너에게 생명이 없고, 정금의 성분이 전혀 없으며, 예전의 패괴 성품이 변함없고, 부각물이 된다 해도 좋은 부각물이 될 수 없다면, 너를 도태시키지 않을 수 있겠느냐? 정복 사역을 할 때 한 푼의 가치도 없고 생명도 없는 사람을 쓸 수 있겠느냐? 그때가 되면 너희는 노아와 소돔 때보다 더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때 가서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없다. 구원 사역이 끝났을 때 네가 회개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겠느냐? 구원 사역이 모두 끝나면 더 이상 구원 사역을 하지 않고 악인을 징벌하는 사역을 하기 시작한다. 너는 대적하고 거역하고, 알면서도 고의로 잘못을 저지르니, 무거운 형벌을 받을 대상 아니겠느냐? 오늘날 너에게 분명히 알려 주는데도 듣지 않는다면 나중에 재난이 닥칠 텐데, 그때 가서 후회하고 믿는다 한들 너무 늦은 것 아니겠느냐? 지금 너는 잘못을 뉘우칠 기회를 주는데도 원치 않는데, 언제까지 이럴 것이냐? 형벌의 날까지 이럴 것이냐? 지금 나는 네 이전의 과오를 기억하지 않고, 한 번 또 한 번 너를 용서해 주며, 너의 부정적인 면을 보지 않고 긍정적인 면만 본다. 지금 말하고 사역하는 이유는 너에게 아무런 악의도 없고 모두 너를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도 너는 진입하지 않고,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며, 은혜를 모른다. 이런 사람에게는 오직 그 징벌과 공의의 보응만 기다리고 있지 않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상 1>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199)

모세가 반석을 쳤을 때 여호와가 베풀어 준 물이 솟아 나온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었고, 다윗이 비파와 수금으로 나, 여호와를 찬양했을뿐더러 마음에 기쁨이 충만했던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욥이 산을 가득 채운 우양과 많은 가산을 잃고 온몸에 악창이 난 것도 그의 믿음 때문이었고, 나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나 여호와의 영광을 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믿음 때문이었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영광의 증거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요한이 인자의 영광의 형상을 보게 된 것은 그의 믿음 때문이었고, 말세의 이상(異象)을 보게 된 것은 더더욱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이방의 백성’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나의 계시를 받고, 내가 이미 육신으로 돌아와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도 그들의 믿음 때문이다. 나의 엄한 말에 매를 맞아도 위안을 얻고 구원받는 사람들 또한 믿음 때문에 그렇게 된 것 아니겠느냐?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것을 얻었다. 꼭 복만 얻은 것은 아니다. 다윗처럼 기쁨과 환희를 얻었을 수도 있고, 모세처럼 여호와가 베풀어 준 물을 얻었을 수도 있다. 욥과 같은 경우도 있다. 그는 믿음으로 인해 여호와가 베풀어 준 복도 얻었고, 재앙도 입었다. 하지만 복을 받든 화를 입든 다 복이 있는 일이다. 믿음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 너는 이 정복 사역을 받아들일 수 없고, 오늘날 너의 눈앞에 나타난 여호와의 행사는 더더욱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볼 수도 없고 더욱이 얻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화와 재난, 모든 심판이 너에게 임하지 않았다면, 네가 오늘날 여호와의 행사를 볼 수 있었겠느냐? 오늘날 너는 믿음으로 인해 정복되었고, 또 정복됨으로 인해 여호와의 모든 행사를 믿게 되었다. 너는 믿음으로 인해 이런 형벌과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또한 너는 이런 형벌과 심판으로 인해 정복되고 온전케 된다. 오늘날의 이런 형벌과 심판이 없었다면 너의 믿음은 모두 부질없을 것이다. 네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아무리 믿는다고 한들 실제가 없는 텅 빈 글귀이기 때문이다. 네가 이런 정복 사역을 받아들이고 완전히 순종하게 되어야만 너의 믿음이 진실하고 확실한 것이며, 너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게 된 것이다. ‘믿음’ 때문에 많은 심판이나 저주를 받았을지라도 너는 진정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가장 참되고 가장 알차고 가장 귀한 것을 얻게 되었다. 너는 심판 가운데서 비로소 피조물의 종착지를 알게 되었고, 창조주의 사랑스러움을 보게 되었다. 또 너는 이러한 정복 사역 가운데서 하나님의 팔을 보게 되었으며, 인생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너는 이러한 정복 가운데서 인생의 바른길을 얻었고, ‘사람’의 참뜻도 깨닫게 되었다. 너는 이러한 정복 가운데서 전능자의 공의 성품과 아름다운 얼굴을 보게 되었으며, 사람의 근원과 전 인류의 ‘불후의 역사’도 알게 되었다. 너는 이러한 정복 가운데서 인류의 조상과 인류가 패괴된 기원을 알게 되었으며, 희락과 위안을 얻었다. 또한 끝없는 채찍질과 징계도 받았고, 창조주가 지음 받은 인류에게 하는 질책의 말씀도 듣게 되었다. 너는 이러한 정복 사역 가운데서 축복은 물론, 사람이 마땅히 받아야 할 화도 입었다…. 이 모든 것이 너의 그 작은 믿음으로 인한 것 아니더냐? 이런 것들을 얻음으로 인해 너의 믿음도 커지지 않았더냐? 네가 얻은 것이 매우 많지 않더냐?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지혜를 보았을 뿐만 아니라 이 한 단계 한 단계의 사역도 직접 체험했다. 어쩌면 너는 자신이 믿지 않았더라면 이런 형벌이나 심판을 받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네가 믿지 않았더라면 이런 형벌과 전능자의 보살핌을 받을 수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창조주를 만날 기회도 영영 놓치고, 또 인류의 기원도 영원히 알지 못하며, 인생의 의미도 영원히 깨닫지 못했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설령 너의 육체가 멸망하고 영혼이 이탈한다고 해도 너는 창조주의 모든 행사를 알지 못할 것이고, 더욱이 창조주가 인류를 만든 후에 땅에서 이처럼 큰 사역을 했다는 것도 알지 못할 것이다. 창조된 인류로서, 너는 그렇게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어둠 속에 떨어져 영원히 징벌받기를 원하느냐? 네가 오늘날의 형벌과 심판을 떠난다면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네가 오늘날의 심판을 떠난다고 해서 이 고난의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이 땅’을 떠나면 고통에 시달리거나 마귀에게 해를 입지 않겠느냐? 견디기 힘든 나날이 닥치지 않겠느냐? 오늘날의 심판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훗날의 고통을 영원히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장차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네가 바라는 무릉도원이겠느냐? 이렇게 현실을 도피하면 훗날 그 영원한 형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런 기회와 축복을 네가 이후에 두 번 다시 찾을 수 있겠느냐? 재앙이 임할 때 찾을 수 있겠느냐? 모든 인류가 안식에 들어갈 때 찾을 수 있겠느냐? 지금의 만족스러운 생활과 화목한 가정이 네 훗날의 영원한 종착지를 대신할 수 있겠느냐? 만약 네게 진실한 믿음이 있고 믿음으로 인해 많은 것을 얻었다면, 그것은 피조물인 네가 마땅히 얻어야 할 몫이고, 또한 네가 본래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정복은 너의 믿음에도 가장 이롭고 너의 생명에도 가장 이롭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상 1>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00)

지금 너는 어떻게 해야 정복되는지, 또 정복된 사람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한다. 너는 네가 정복되었다고 말하지만,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느냐? 너는 앞날에 희망이 있든 없든 끝까지 따르고, 어떤 환경에서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며, 마지막에는 두 가지 증거, 즉 죽기까지 순종했던 욥의 증거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던 베드로의 증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너는* 욥과 같아야 한다. 욥은 물질적인 것을 다 잃고 육체에 질병의 고통이 임했어도 여호와의 이름을 버리지 않았다. 이것이 욥의 증거이다. 베드로는 죽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다. 십자가에 달려 죽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사랑했다. 그는 자기 앞날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아름다운 소망이나 사치스러운 생각들을 추구하지도 않았으며, 오로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모든 안배에 순종하기를 추구했다. 네가 이런 기준에 도달해야 증거했다고 할 수 있고, 정복된 후에 온전케 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사람이 진정으로 자신의 본질과 지위를 안다면 또 무슨 앞날이나 소망을 추구하겠느냐? ‘하나님께서 날 온전케 하시든 하지 않으시든 상관없이 하나님을 따라야 해. 지금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은 다 좋은 것이고, 나를 위한 거야. 우리의 성품을 변화시켜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거지. 더러운 곳에서 태어난 우리가 그 더러움을 벗어 버리고, 부정한 것과 사탄의 권세를 떨쳐 내고,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거야.’ 너는 이러한 인식을 갖춰야 한다. 물론 너에게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이 하나님께는 그저 정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사람이 순종하려는 의지를 갖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지배에 따를 수 있으면 이룬 것이다. 지금 이미 많은 사람이 정복되었지만, 사람의 내면에는 아직도 패역한 것과 순종하지 않는 것이 많고, 사람의 실제 분량 또한 너무 작다. 사람은 소망과 앞날이 있을 때 힘을 내지만 조금의 소망도, 앞날도 보이지 않으면 또다시 소극적이 되며, 심지어는 하나님을 떠나려고까지 하면서 정상 인성으로 살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정복에 대해 계속 얘기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정복하는 동시에 온전케 하는데, 너를 정복하는 한편 너를 기본적으로 온전케 하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정복되는 것과 온전케 되는 것의 차이는 사람의 변화 정도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정복되는 것은 사람이 온전케 되기 위한 첫걸음이다. 정복되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완전히 온전케 된 것은 아니며, 사람이 완전히 얻어졌음을 증명할 수도 없다. 사람이 정복되면 성품이 어느 정도 변화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얻어진 사람의 변화에는 훨씬 못 미친다. 지금 하는 것은 온전케 하기 위한 기초적인 사역, 즉 정복하는 것이다. 정복될 수 없다면 너는 온전케 될 수 없고, 하나님께 완전히 얻어질 수도 없다. 형벌과 심판의 말씀을 조금 얻을 수는 있지만 네 마음이 완전히 변화될 수는 없다. 그런 너는 도태된 사람이니, 식탁에 차려진 산해진미를 쳐다보기만 하고 먹지 못한 것과 같다. 그것은 너무 가련하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너는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정복되는 것이든 온전케 되는 것이든 다 너의 변화 여부와 너의 순종 여부에 달려 있다. 바로 이것으로 네가 얻어질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가 결정된다. 정복되는 것과 온전케 되는 것은 단지 변화된 정도와 순종 정도를 두고 하는 말이며,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순결도를 두고 하는 말임을 너는 알아야 한다. 오늘날 네게 바라는 것은 철저히 온전케 되는 것이지만, 처음에 너는 정복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형벌과 심판에 대해 충분히 알고 하나님을 따를 믿음을 가져야 하며, 변화를 추구하고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온전케 되기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온전케 하는 과정에서 정복하고, 정복하는 과정에서 온전케 한다는 사실을 너희는 알아야 한다. 오늘날, 네가 온전케 되기를 추구해도 좋고, 외적인 인성 변화와 자질 향상을 추구해도 좋다. 하지만 가장 주된 것은 오늘날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이 의미 있고 이로운 일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더러운 땅에서 태어난 네가 더러움에서 벗어나고 더러움을 떨쳐 버리게 해 주며, 사탄의 권세를 이기고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또한 네가 그 일들을 중시하게 함으로써 더러운 땅에서 보호받을 수 있게 해 준다. 궁극적으로 네게 어떤 간증을 하라는 것이겠느냐? 그러니까 더러운 땅에서 태어났지만 거룩해질 수 있고 더 이상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것,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태어났지만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사탄에게 점령되지 않고, 사탄으로 인해 곤경에 처하지 않으며, 전능자의 손안에서 살 수 있는 것, 이것이 간증이요, 사탄과 싸워 이긴 증거이다. 네가 사탄을 저버릴 수 있으며 네가 살아 내는 것에는 더 이상 사탄의 성품이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사람에게 요구한 것, 즉 사람에게 요구한 정상 인성, 정상적인 이성과 정상적인 식견, 하나님을 사랑하겠다는 정상적인 의지,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이 드러난다. 이것이 바로 피조물이 해야 할 간증이다. 너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우리는 더러운 땅에서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 우리에 대한 정복으로 인해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났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순종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복하심으로 얻은 성과이지, 우리 자신이 훌륭해서도,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사랑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고 예정하셨기에 우리가 오늘 그분께 정복되고, 그분을 증거하며 섬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또 그분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보호하셨기에 우리는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구원받았으며, 큰 붉은 용의 나라에서 더러움을 벗어던지고 정결케 되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상 2> 중에서

* 너는: (직역) 한 방면으로는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01)

말세에 하는 사역은 모든 규례를 타파한다. 네가 저주받은 자든 징벌받은 자든, 내 사역에 이롭고 지금의 정복 사역에 도움이 되면, 모압의 후손이든 큰 붉은 용의 자손이든 상관없다. 네가 이 단계 사역에서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하고 사역을 철저하게 행할 수만 있으면, 이는 성과를 낸 것이다. 네가 큰 붉은 용의 자손이든 모압의 후손이든, 어쨌든 육에 속한 사람은 모두 피조물이고 창조주가 만든 존재이다. 너는 피조물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 이것은 너의 본분이다. 물론 오늘날 창조주는 우주 전체를 향해 사역한다. 네가 누구에게서 태어났든 결국 너는 피조물 중 하나이다. 너희, 모압의 후손들 역시 신분이 비천할 뿐 피조물의 일부이다. 오늘날의 사역이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행해지고 우주 전체를 향하는 이상, 창조주는 사람과 일, 사물을 임의로 선택해 사역할 수 있다. 그는 네 과거 출생이 어떻든 상관없이 네가 피조물이기만 하다면, 또 네가 그의 사역에 ― 정복과 증거에 ―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너에게 자신의 사역을 행할 것이다. 이는 사람의 전통적인 관념을 깬 것이다. 즉, 하나님은 영원히 이방인, 특히 저주받은 비천한 사람에게는 사역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념, 조상이 저주받았으니 후손도 영원히 저주받아 영영 구원받을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관념, 하나님은 거룩하므로 이방에 임하거나 사역하는 일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절대 더러운 땅에 서지 않을 것이라는 관념 말이다. 이런 관념들은 하나님의 말세 사역에 의해 모두 깨졌다. 너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이고, 천지 만물의 주재자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하는 이 단계 사역은 매우 깊은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열방에 널리 전할 일이 아니겠느냐? 앞으로는 큰 증거가 중국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너희들만 정복한다면 마귀들이 굴복할 수 있겠느냐? 마귀는 정복되는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큰 능력이 무엇인지 모른다. 전 우주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선민들에게 이 단계 사역의 최종 성과를 보게 해야 한다. 그래야 모든 피조물이 정복된다. 모압의 후손은 가장 뒤떨어지고 패괴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까지 정복된다면, 다시 말해 가장 심하게 패괴된 사람, 과거에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정복되어 모두가 입으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찬양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복된 증거이다. 너희가 비록 베드로는 아니지만 베드로의 모습을 살아 낼 수 있고, 베드로의 증거와 욥의 증거를 할 수 있다. 그것은 가장 큰 증거이다. 마지막에 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고 버림받은 모압의 후손입니다. 우리는 베드로도 아니고 그런 자질을 갖추지도 못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욥도 아니고, 바울만큼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고 헌신할 의지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너무 뒤떨어져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자격이 없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 주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려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그런 자질과 조건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고 싶고, 또 그렇게 할 의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압의 후손이고 저주받은 자들입니다. 이것은 운명으로 정해져 바꿀 수 없지만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과 인식은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겠다는 의지가 있습니다.” 너에게 이런 의지가 있다면 네가 이미 정복된 증거가 있음을 말해 준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상 2>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02)

정복 사역으로 얻으려는 성과는 주로 사람의 육이 거역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의 사상에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기고, 마음속에서부터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며, 하나님을 위하는 의지를 다지게 하는 것이다. 사람의 성격이나 육에 어떤 변화가 생겼다고 해서 정복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람의 사상, 의식, 이성, 즉 너의 모든 정신적 면모에 변화가 생겼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정복된 것이다. 순종하려는 의지가 생기고, 사상도 새로워지고,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에 대해 아무런 관념도 불순한 의도도 없어지고, 정상적인 사유를 가질 수 있다면, 다시 말해 오직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은 완전히 정복된 자이다. 많은 종교인이 평생 적지 않은 고난을 받았다. 그들은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키거나 십자가를 졌으며, 심지어는 죽기 전까지 고난을 받고 인내했다! 어떤 이는 죽는 날 아침까지도 금식했고, 평생 좋은 음식을 먹지 않고 좋은 옷도 입지 않았으며, 고난받는 일에만 몰두했다. 그들은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키거나 육을 버릴 수 있었다. 고난을 마다하지 않은 그들의 정신은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그들의 사상, 관념, 정신적 면모, 나아가 그들의 옛 성품은 전혀 다듬어지지 않았고, 그들은 자신에 대해 진정으로 알지 못했다. 그들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전통적 관념 속의 막연한 하나님의 형상이었다.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으려는 그들의 의지는 그들의 열정과 인성의 좋은 성격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하나님의 뜻도 알지 못했다. 무작정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고 고난만 받았을 뿐 전혀 분별할 줄 몰랐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있는지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알 수 있는지는 더더욱 알지 못했다. 그들이 섬긴 하나님은 하나님의 고유한 형상을 가진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이 생각해 내거나 타인에게서 들었거나 혹은 글에서 찾아낸 전설 속의 하나님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풍부한 상상과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고난받았고, 하나님이 하려는 사역을 담당하고자 했다. 그들의 섬김은 정확도가 너무 떨어져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있는 자가 거의 없었다. 얼마나 고난을 달게 받았든 그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섬김의 관점과 그들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연단, 온전케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또 진리로 그들을 이끌어 주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구주 예수를 믿기는 했지만 구주에 대해서는 전설과 풍문만 들었을 뿐 구주를 본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섬김은 소경이 제 아버지를 모시듯 두 눈을 감고 아무렇게나 섬긴 것에 불과했다. 그런 섬김이 최종적으로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겠느냐? 또 누가 칭찬할 수 있겠느냐? 그들의 섬김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모두 인위적인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타고난 천성과 기호대로 섬겼는데 무슨 상을 받을 수 있겠느냐? 예수를 본 베드로조차도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섬길 수 있는지 모르고 지내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즉 늙어서야 깨달았다. 그러니 어떤 책망도 훈계도 받지 않고 인도자도 없는 소경들은 더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느냐? 오늘날, 너희 많은 사람의 섬김도 소경의 섬김과 같지 않으냐? 심판을 받지 않고 책망 훈계를 받지 않으며 아무 변화도 없는 사람들은 모두 완전히 정복되지 않은 자들 아니겠느냐? 이런 사람이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너의 사상, 인생에 대한 인식,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 새로운 변화가 없고 진정한 수확이 조금도 없다면, 너의 섬김은 영원히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다! 너에게 이상(異象)이 없고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없다면 너는 정복된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네가 따르는 것도 고난받으며 금식하는 사람들처럼 아무 가치가 없다! 그들이 행한 것은 아무런 증거도 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섬김은 헛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평생 고난도 받고 감옥살이도 했으며, 언제나 참으며, 사랑하고 십자가 지는 것을 중시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비방당하고 버림받으며 숱한 고난을 받았다. 그들이 마지막까지 순종하기는 했지만 정복되지 않았고 정복된 증거도 없었다. 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내면에는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에게 존재하는 낡은 사상, 낡은 관념, 종교적인 행실, 인위적인 인식, 사람의 생각은 모두 다듬어지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내면에 새로운 깨달음이 조금도 없었고,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는 진실하고 정확한 것이 하나도 없었으며, 하나님의 뜻도 잘못 이해했다. 이것을 두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할 수 있겠느냐? 예전에 네가 하나님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식이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든 오직 자기 관념과 생각대로 하나님을 알고 있다면, 즉 하나님에 대해 새롭고 참된 인식이 없고, 하나님의 고유한 형상과 고유한 성품에 대해 알지 못하며,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봉건 미신 사상에 좌우되고 여전히 사람의 상상과 관념에 머물러 있다면, 너는 정복되지 못한 것이다. 지금 내가 너에게 한 많은 말은 모두 네가 인식해야 할 것들이다. 이런 인식으로 너를 이끌어 정확하고 더 새로운 인식을 심어 주려는 것이며, 또한 네가 새로운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네 내면의 낡은 관념과 진부한 인식 방법을 다듬으려는 것이다. 네가 제대로 먹고 마신다면 너의 인식 방법은 많이 바뀔 것이다. 또 네가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기만 하면 너의 관점은 바로잡힐 것이다. 네가 한 번 또 한 번의 형벌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너의 낡은 사상이 점차 바뀔 것이고, 너의 낡은 사상이 철저히 바뀌면 그에 따라 너의 실행도 달라질 것이다. 그러면 너의 섬김도 점점 바로잡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게 될 것이다. 네가 너의 삶을 바꾸고 인생에 대한 인식을 바꾸며 하나님에 대한 많은 관념을 바꿀 수 있다면, 너의 천성적인 것들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사람을 정복함으로써 얻은 성과, 즉 사람의 변화다.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자기 몸을 쳐 복종시키거나 인내하며 고난받아야 하는 것만 알고, 그것이 옳은지 틀린지도 모르며, 더욱이 누구를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면, 그렇게 실행해서 어떻게 변화가 생길 수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상 3>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03)

온전케 되는 것이란 무엇이겠느냐? 정복되는 것이란 무엇이겠느냐? 사람이 정복되고 싶다면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겠느냐? 온전케 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겠느냐? 정복하는 것과 온전케 하는 것은 모두 사람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원래 모습을 되찾아 사탄의 패괴 성품과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정복하는 것은 사람을 만드는 기초적인 사역, 즉 사람을 만드는 첫 단계 사역이고, 온전케 하는 것은 사람을 만드는 두 번째 단계 사역이자 마무리하는 사역이다. 모든 사람은 정복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존재도 알지 못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만들어질 수 없다. 네가 만들어질 조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는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를 알 수 있겠느냐? 또 어떻게 그를 추구할 수 있겠느냐? 너는 그를 증거할 수 없을뿐더러 그를 만족게 할 믿음은 더더욱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만들어지려면 제일 먼저 정복 사역을 거쳐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하지만 정복하는 것이든, 온전케 하는 것이든 모두 사람을 만들고 변화시키는 것으로,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 중의 하나다.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 두 단계 사역을 해야 하며, 둘 중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 ‘정복된다’는 말이 듣기에 좋지는 않지만, 사실 정복하는 과정 역시 사람을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네가 정복된다고 해도 네 패괴 성품이 완전히 벗겨지는 것은 아니지만, 정복 사역을 통해 자신의 비천한 인성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수많은 패역도 알게 된다. 비록 정복 사역의 짧은 시간 동안 너의 그것이 벗겨지거나 변화될 수는 없을지라도 네가 깨닫게 된다면, 그것은 온전케 되는 기반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복하는 것과 온전케 하는 것은 모두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또 사람이 가진 사탄의 패괴 성품을 벗겨 냄으로써 사람이 자신을 전부 하나님께 맡길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정복되는 것은 사람의 성품이 변화되는 첫 단계이자 사람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첫 단계이며, 온전케 되는 것보다 낮은 단계의 사역일 뿐이다. 정복된 사람은 온전케 된 사람보다 생명 성품의 변화 정도가 훨씬 낮다. 정복되는 것과 온전케 되는 것의 개념이 다른 이유는 사역 단계가 다르고, 사람에 대한 요구 기준도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을 정복하는 요구 기준은 낮고, 사람을 온전케 하는 요구 기준은 높다. 온전케 된 사람은 의인이고 거룩한 사람이다. 그들은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의 결정체이자 완성품으로, 비록 완전한 사람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반면 정복된 사람은 어떠하냐? 그들은 그저 입으로만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을 인정하며,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났음을 인정할 뿐이다. 또한 하나님이 이 땅에 와서 심판과 형벌의 사역을 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 채찍질과 연단이 모두 사람에게 이롭다는 사실을 인정할 뿐이다. 그들은 이제 막 사람의 모습을 갖추었고 인생을 조금 꿰뚫어 보게 되었지만 아직도 모호하다. 다시 말해, 이제 막 인성을 조금 갖추게 된 것이다. 이는 정복됨으로써 나타난 효과다. 사람이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서면 옛 성품이 변화될 수 있고, 생명이 부단히 자라 진리에 점점 더 깊이 들어가며, 세상에 염증을 느끼고,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을 혐오하게 된다. 특히 자신에게 혐오감을 느끼고, 더 나아가 분명한 인식이 생기면서 진리에 따라 살기를 원하고, 진리 추구를 목표로 삼는다. 또한 자기 생각대로 살지 않으려 하고, 사람의 독선과 오만함, 방자함에 염증을 느끼며, 분수에 맞게 말하고, 일이 닥치면 분별력과 지혜를 갖고, 하나님께 충성심과 순종을 보이게 된다. 형벌과 심판을 겪을지라도 소극적이 되거나 연약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떠날 수 없다고 느끼며, 형벌과 심판을 통해 보호받을 수 있다. 평안함, 즐거움, 기복 신앙을 추구하지 않고, 한순간의 육적인 즐거움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모두 온전케 된 사람이 갖고 있는 모습이다. 사람이 정복되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정복된 사람에게는 이런 것들이 모두 제한적으로 나타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겠느냐? 성육신이란 무엇이겠느냐? 그는 어떤 사역들을 행했겠느냐? 그가 사역을 하는 목적과 의의는 무엇이겠느냐? 그의 그 많은 사역을 체험하고, 그가 육신으로 행하는 행사를 체험하면서 네가 얻은 것은 무엇이냐? 이런 것들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정복된 사람이다. 입으로만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할 뿐,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않고, 육적인 즐거움을 떨쳐 내야 할 때 떨쳐 내지 않으며, 예전처럼 육적인 안일을 탐하고, 형제자매 사이에 선입견이 있어도 내려놓지 못하고, 여러 가지 쉬운 실행에서도 대가를 치르지 못한다면, 이는 네가 정복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러면 네가 많은 것을 깨달았다 해도 모두 헛된 것이다. 정복된 사람은 기본적인 변화와 진입이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겪으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과 진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생긴다. 비록 더 깊고 세밀한 많은 진리의 실제에 완전히 진입할 수는 없겠지만, 현실 속에서 너의 육적인 즐거움이나 개인의 지위 등과 같은 얕은 진리는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다 정복되는 과정에서 사람에게 나타나는 성과다. 정복된 사람에게도 성품 변화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사람의 옷차림이나 치장, 생활 등에 변화가 생길 수 있고, 하나님을 믿는 관점이 바뀌며, 추구하는 목표도 명확해지고 의지도 높아진다. 정복되는 사역에서도 사람의 생명 성품은 그에 상응하는 변화가 생길 수 있다. 그 변화의 정도가 얕고 기초적이며 온전케 된 후의 성품 변화와 추구하는 목표에 비해 훨씬 낮을 뿐,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은 아니다. 정복 사역에서 성품에 변화가 전혀 없고 조금의 진리도 얻지 못한다면, 그런 인간은 아무런 쓸모도 없는 폐물이다! 정복되지 않은 사람은 온전케 될 수 없다! 사람이 정복되기만을 추구한다면 설령 정복 사역에서 성품에 상응하는 변화가 나타날지라도 완전히 온전케 될 수는 없고, 처음에 얻은 진리도 잃게 될 것이다. 정복된 사람과 온전케 된 사람의 성품 변화를 비교해 보면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정복되는 것은 기초적인 변화이자 토대이다. 이런 기본적인 변화조차 없으면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아무런 인식도 없다는 증거다. 이런 인식은 심판을 통해 얻을 수 있으며, 또한 이 심판은 정복 사역의 주된 사역 항목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온전케 되는 모든 사람은 정복되는 과정을 거친 자들이며, 그 과정이 없으면 온전케 될 수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상 4>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04)

너는 하나님이 성육신한 것과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난 것을 인정한다고 말하면서도 몰래 일을 저지르며, 그가 바라는 대로 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것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겠느냐? 그의 말씀은 인정하지만 네가 해낼 수 있는 것조차 실행하지 않고 그의 도를 지키지 않는다면, 이것이 그를 인정하는 것이겠느냐? 너는 그를 인정하기는 하나, 그를 경계하는 마음만 있을 뿐 경외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다. 그가 행한 사역을 보고, 인정하고, 그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미온적이고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런 사람은 정복되지 않은 사람이다. 정복된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해야 한다. 높은 진리에 진입하지도, 미치지도 못할지언정 마음으로는 닿길 원해야 한다. 깨달음이 유한하기 때문에 실행하는 것에도 범위와 한계가 있지만 최소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다해야 한다. 네가 이것들을 해낼 수 있는 것은 모두 정복 사역으로 인해 나타난 성과다. 가령 네가 “그분은 사람이 할 수 없는 말씀을 이렇게 많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누가 하나님이겠습니까?”라고 말한다고 치자. 너에게 이런 인식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을 인정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데는 실제 행동이 있어야 한다. 교회를 이끄는 자가 공의를 행하지 못하고 재물을 탐내 교회 돈으로 늘 자기 주머니를 채운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겠느냐? 하나님은 전능하며 사람이 경외할 만한 분이다. 네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두렵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런 비열한 짓까지 저지르는 것이 진정으로 그를 인정하는 것이냐? 네가 믿는 분이 하나님이냐? 너는 막연한 하나님을 믿기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감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나 양심에 찔리는 일을 하지 못한다. 특히, 하나님 뜻에 맞지 않는다고 인식한 일은 더더욱 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너의 부모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막는다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하나님을 믿지 않는 남편이 너에게 잘해 준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겠느냐? 형제자매가 너를 혐오한다면 너는 또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겠느냐? 네가 그를 인정한다면 이런 일이 생길 때 적절하게 행동하고 실제적으로 살아 낼 것이다. 실제 행동은 없고 입으로만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너는 말만 앞세우는 사람이다! 너는 그를 믿고 인정한다고 말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그를 인정하는 것이냐? 어떤 방식으로 그를 믿는 것이냐? 너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느냐? 경외심이 있느냐?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느냐? 슬프고 의지할 데가 없을 때는 하나님이 사랑스럽다고 느끼지만 그 후에는 없었던 일처럼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도,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최종적으로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이르러야 하겠느냐? 내가 언급한 내적 상태들, 예를 들어 자신이 대단하다고 자부하고, 무엇이든 빨리 깨닫는다고 여기며, 다른 사람을 구속하고 업신여기고, 외모로 판단하고, 착한 사람을 괴롭히고, 교회 돈을 탐내는 등등 이런 사탄의 패괴 성품이 너에게서 일부 벗겨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네가 정복된 후에 보여야 할 모습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정복 사역의 실상 4>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05)

너희는 나의 사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하고, 내게 이로운 사역을 해야 한다. 나는 너희가 깨닫지 못한 것을 모두 알려 주고, 너희에게 없는 모든 것을 내게서 얻게 할 것이다. 너희에게 부족한 부분이 셀 수 없이 많다고 해도 나는 계속 너희에게 내가 해야 할 사역을 하고, 내 마지막 긍휼을 베풀어 줌으로써 너희가 내게서 이로움을 얻고, 너희에게 없는, 세상 사람이 본 적 없는 영광을 얻게 할 것이다. 내가 여러 해 동안 사역해도 나를 아는 자가 없기에 나는 다른 사람에게 알려 주지 않았던 비밀을 너희에게 알려 주고자 한다.

사람들 가운데서 나는 본래 사람이 볼 수 없고 접촉할 수 없는 영이다. 내가 이 땅에서 하는 세 단계 사역(창세ㆍ속량ㆍ궤멸)을 위해 나는 각각 다른 시기에 사람들 가운데 나타나(공개적으로 나타난 적은 없음) 나의 사역을 했다. 내가 처음으로 인간 세상에 온 것은 구속시대였다. 물론 그때는 유대 족속 가운데 왔었다. 그렇기에 이 땅에 온 ‘하나님’을 처음 본 사람은 유대 백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그 단계의 사역을 친히 한 까닭은 내가 입은 육신을 속죄 제물로 삼아 구속 사역을 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를 가장 먼저 본 사람은 은혜시대의 유대인이었다. 이것이 내가 육신으로 행한 첫 번째 사역이다.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에 나는 사람을 정복하고 온전케 하는 사역을 한다. 그래서 똑같이 육신에서 목양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 이는 내가 육신으로 하는 두 번째 사역이다. 마지막 두 단계 사역에서 사람들이 접한 것은 더 이상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영이 아니라 영이 육신으로 실제화된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보기에는 내가 또 한 번 사람이 된 것이고, 나에게 하나님이라는 티가 전혀 없는 것이다. 더구나 사람이 본 하나님은 남성일 뿐만 아니라 여성이기도 하니, 이것이 바로 사람이 가장 놀라워하고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오랫동안 이어진 낡은 믿음 방식은 예사롭지 않은 나의 거듭된 사역으로 깨어졌고, 사람은 놀라 어리둥절해졌다! ‘하나님’이란 성령, 그 영, 일곱 배로 강화된 영, 만유를 포함하는 영일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이다. 그것도 보통 사람이고 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또 남성일 뿐만 아니라 여성이기도 한데, 같은 점은 둘 다 사람에게서 났다는 것이고, 다른 점은 성령으로 잉태됐다는 것과 사람에게서 났으나 직접 영에서 왔다는 것이다. 같은 점은 성육신 하나님이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사역을 맡았다는 것이고, 다른 점은 한쪽은 구속 사역이고 한쪽은 정복 사역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를 대표하는 것은 같지만 한쪽은 자비와 긍휼이 가득한 구속주이고, 한쪽은 진노와 심판이 가득한 공의의 하나님이다. 한쪽은 구속 사역을 펼친 사령관이고, 한쪽은 정복 사역을 이루는 공의의 하나님이다. 한쪽은 시작이고, 한쪽은 끝이다. 한쪽은 죄 없는 육신이고, 한쪽은 구속을 완성하고 이어지는 사역을 하는, 본래 죄에 속하지 않는 육신이다. 동일한 하나의 영이지만 각각 다른 육신에 거하고 다른 곳에서 태어났으며, 수천 년의 시간 차에도 하는 사역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보완적이며, 같은 선상에서 논할 수 있다. 또한 둘 다 사람이지만 남자 아기이고, 또 여자 아기이다. 오랫동안 사람이 본 것은 영이었고, 사람이었고, 남자였으며, 또한 사람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많은 일이었다. 그리하여 사람은 나에 대해 늘 짐작하지 못했다. 내가 확실히 존재하는 것 같지만 또 존재하지 않는 꿈 같기도 하여 늘 나에 대해 반신반의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오늘날까지도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 모른다. 네가 정말 간단한 말 한마디로 나를 요약할 수 있겠느냐? 네가 정말 “예수는 하나님이고, 하나님은 예수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느냐? 네가 정말 “하나님은 영이고, 영은 하나님이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느냐? 네가 “하나님은 육신을 입은 사람이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느냐? 네가 정말 “예수의 형상은 하나님의 위대한 형상이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느냐? 네가 너의 글재주로 하나님의 성품과 형상을 분명히 말할 수 있겠느냐? 네가 정말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남성을 만들었을 뿐, 자신의 형상대로 여성을 만든 것은 아니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느냐? 네 말대로라면 여자는 다 내가 택한 대상이 아니며, 인류에 속하는 부류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지금 너는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지 정말 알고 있느냐? 하나님은 사람이냐? 하나님은 영이냐? 하나님은 정말 남자이냐? 오직 예수만이 내가 하려는 사역을 완수할 수 있느냐? 네가 이 중의 하나를 택해 나의 본질을 요약한다면 너는 너무나 무지한, 충성스러운 신자에 속할 것이다. 만일 내가 성육신 사역을 한 번만 한다면 너희가 나를 규정하지 않겠느냐? 네가 정말 나를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있겠느냐? 네가 살아 있는 동안에 접했던 것만으로 정말 나에 대해 확실히 요약할 수 있겠느냐? 내가 육신으로 행한 두 차례의 사역이 모두 같은 사역이라면 너희는 또 나를 어떻게 보겠느냐? 나를 영원히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네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에 대해 너는 어떻게 알고 있느냐>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06)

과거 두 시대의 사역 중 하나는 이스라엘에서, 다른 하나는 유대에서 행해졌다. 즉, 두 단계의 사역 모두 이스라엘을 벗어나지 않았으며 모두 최초의 선민에게 행한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만의 하나님이다. 또한, 예수가 유대에서 사역하였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역을 완성하였기에 유대인의 눈에 예수는 유대인의 구속주이며, 오직 유대인의 왕이지 다른 이들의 왕이 아니었다. 또 그는 영국인이나 미국인이 아닌 이스라엘 사람을 속량하는 주인이며, 이스라엘에서 그가 속량한 백성은 유대인이었다. 사실, 하나님은 만물의 주재자이자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이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이나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닌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이다. 다만 예전의 두 단계 사역이 이스라엘에서 행해졌기에 사람들에게 관념이 생긴 것이다. 사람들은 여호와가 이스라엘에서 사역하였고 예수는 성육신하여 유대에서 친히 사역을 전개하였으니 어쨌든 이스라엘이라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가 애굽 사람이나 인도 사람에게는 사역하지 않고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사역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런저런 관념을 갖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하나의 범위 속에 규정해 놓았다. 그러고는 하나님은 반드시 선민에게만 사역해야 하며, 반드시 이스라엘에서만 사역해야 한다고, 이스라엘 사람 외에는 하나님에게 사역 대상도, 사역 범위도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들은 성육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이라는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더 엄히 ‘통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모두 사람의 관념이 아니냐? 하나님은 천지 만물과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였다. 그런 그가 이스라엘에서만 사역할 리 있겠느냐? 그렇다면 모든 피조물을 창조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그는 온 세상을 창조하였다. 6천 년 경륜은 온 우주 아래의 사람들에게 행하는 것이지, 이스라엘에서만 행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인이든 미국인이든 영국인이든 러시아인이든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께 창조된, 아담의 후손이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도 피조물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고, 어느 누구도 아담의 후손이라는 호칭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람은 모두 피조물이자 아담의 후손이며, 패괴된 아담과 하와의 후예이다. 이스라엘 사람을 비롯한 모든 사람은 다 피조물인데, 다만 저주받은 피조물도 있고 축복받은 피조물도 있을 따름이다.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취할 점이 많았다. 처음에 그들에게 사역한 것도 그들이 가장 적게 패괴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에 비해 중국인은 많이 부족하며 뒤처졌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역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하였고, 두 번째 단계의 사역은 유대에서만 행한 것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수많은 관념과 규례들이 생겼다. 사실 사람의 관념에 따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만의 하나님으로서 사역을 이방으로 확장할 수 없다. 그는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만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언서에는 여호와의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되고 이방으로 전해질 것이라고 되어 있다. 왜 그렇게 말했겠느냐?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만의 하나님이라면 사역을 확장하지 않고 이스라엘에서만 사역할 것이며, 그런 예언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예언을 한 이상, 하나님은 반드시 이방 족속과 각 나라, 각 지역으로 사역을 확장할 것이다. 그는 말한 이상 반드시 행하며, 이는 그의 계획이다. 그는 본디 천지 만물을 창조한 주인이자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사역하든 유대 전역에서 사역하든, 그가 한 사역은 전 우주의 사역이고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한 사역이다. 오늘날, 그는 큰 붉은 용의 나라에서 사역하고 있다. 즉, 이방 족속에서 그의 사역을 하지만, 이것 역시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사역이다. 이스라엘은 그가 땅에서 펼치는 사역의 거점이다. 마찬가지로 중국 역시 그가 이방에서 펼치는 사역의 거점이 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여호와의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 실현된 때가 아니냐? 이방에서 행하는 사역의 시작은 큰 붉은 용의 국가에서 전개되는 이 사역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사람의 관념에 특히 맞지 않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이 땅에서 사역한다는 것과 저주받은 사람들에게 사역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가장 비천하고 무가치하며, 처음에 여호와께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버림받는 것은 상관없지만, 하나님께 버림받는다면 모든 지위와 가치를 잃고 밑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 피조물로서 사탄에게 침해당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버림받는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겠지만, 창조주께 버림받는다면 이는 그의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압의 후손은 저주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 낙후한 국가에서 태어났다. 그러니 의심할 여지 없이 이들은 어둠의 권세 아래에서 지위가 가장 낮은 부류이다. 이들이 과거의 지위가 가장 낮았기 때문에 이들에게 하는 사역은 사람의 관념을 가장 잘 깨뜨리는 사역이며, 6천 년 경륜에 가장 이로운 사역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사역하면 사람의 관념을 가장 잘 깨뜨릴 수 있다. 이로써 시대를 열고, 사람의 모든 관념을 깨뜨리고, 은혜시대의 사역을 끝내는 것이다. 최초의 사역은 유대에서 행해졌고, 이스라엘의 범주에서 진행되었지만, 이방에서는 시대를 여는 사역이 전개된 적이 없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의 사역은 이방 사람들, 나아가 저주받은 사람들에게 행해진다. 바로 이 점이 사탄을 가장 수치스럽게 만드는 증거이다. 이로써 하나님은 전 우주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이 ‘되었고’, 만물의 주인이 되었으며, 생기 있는 모든 것들의 경배 대상이 되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07)

어떤 이들은 아직도 하나님이 어떤 새 사역을 펼쳤는지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이방에서 새롭게 시작하였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으며, 새로운 사역을 펼쳤다. 모압의 후손에게 행한 이러한 사역이야말로 가장 새로운 사역이 아니겠느냐? 만세와 만대 동안 어느 누구도 이러한 사역을 겪어 보지 못했다. 이에 대해 들어 본 사람도 없거니와 체험해 본 사람은 더더욱 없다. 하나님의 지혜와 신묘막측함, 위대함과 거룩함이 말세의 이 사역을 통해 명확히 나타났다. 이는 사람의 관념을 깨뜨리는 더 새로운 사역이 아니겠느냐? 혹자는 ‘하나님은 모압을 저주하셨고 모압의 후손을 버리겠다고 말씀하셨으면서 왜 이제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걸까?’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이스라엘에서 쫓겨난 이 이방인들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의 개라고 불렀다. 모든 사람들의 눈에 이들은 이방의 개일 뿐만 아니라 멸망의 자식이다. 즉, 이들은 하나님의 선민이 아니라는 말이다. 최초에 이들은 이스라엘 범위에서 태어났지만 이스라엘 백성에 속하지 않으며, 이방으로 쫓겨났으니 가장 비천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에게 시대를 여는 사역을 한 것이다. 이들이 패괴된 인류의 대표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무런 선택도, 목적도 없이 사역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들에게 행하는 사역 역시 피조물에게 행하는 사역이다. 노아가 피조물이었듯, 노아의 후손 역시 피조물이며, 하늘 아래 육에 속한 자는 모두 피조물이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것이지 저주받은 피조물인지 아닌지의 여부에 따라 사역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경영 사역은 저주를 받지 않은 선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피조물에게 사역을 행하기로 한 이상, 반드시 이룬다. 그는 자신의 사역에 도움이 되는 사람에게 사역하기 때문에 모든 규례에서 벗어나 사역한다. 그 대상이 저주받은 자든, 형벌받은 자든, 축복받은 자든 상관하지 않는다! 유대인도 훌륭하고 이스라엘 선민 역시 괜찮다. 자질이 뛰어나고 인성 또한 좋다. 처음에 여호와는 그들에게서 사역을 전개해 최초의 사역을 행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그들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아 사역한다면 의미가 없다. 그들 역시 피조물이고 긍정적인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이 단계 사역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을 정복할 수도 없고 모든 피조물을 설득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역의 대상을 큰 붉은 용 국가의 사람들로 바꾼 의의가 바로 이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큰 의의는 시대를 열고 모든 규례와 사람의 온갖 관념을 깨뜨리며, 은혜시대의 사역을 끝내는 데에 있다. 오늘날의 사역을 예전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행한다면, 6천 년 경륜이 끝날 때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만의 하나님이며, 이스라엘 사람만이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을 받을 자격이 있는,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나님은 말세에 성육신하여 이방의 큰 붉은 용 국가에서 그가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이라는 사역을 완성하였고, 모든 경영 사역을 완전케 하였으며, 모든 경영의 중심 사역을 큰 붉은 용 국가에서 끝냈다. 3단계 사역의 핵심은 사람을 구원하는 것, 즉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를 경배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매 단계의 사역은 상당히 큰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은 의미 없거나 가치 없는 사역은 절대 하지 않는다. 이번 사역은 시대를 열고 예전 두 시대를 끝내는 한편, 사람의 모든 관념과 하나님을 믿는 낡은 방법, 그리고 고루한 인식법을 깨뜨렸다. 하나님은 예전의 두 시대에는 사람의 각기 다른 관념에 따라 사역하였지만, 이번에는 사람의 관념을 철저히 깨뜨리고 이를 통해 사람을 철저히 정복할 것이다. 모압의 후손을 정복함으로써, 그리고 모압의 후손에게 사역함으로써 전 우주의 사람을 정복할 것이다. 이것이 이번 사역의 가장 큰 의의이자, 가장 가치 있는 부분이다. 이제 너는 자신의 신분과 가치가 보잘것없음을 알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크나큰 축복과 약속을 받았다고 여길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크나큰 사역을 이룰 수 있는 것, 하나님의 참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고유한 성품을 알 수 있는 것,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행복한 일이라고 여길 것이다. 예전 두 단계의 사역은 모두 이스라엘에서 행해졌다. 만약 말세의 사역마저 이스라엘 사람에게 행한다면, 모든 피조물은 이스라엘 사람만이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여길 것이며, 전체 경륜 또한 결실을 거둘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서 두 단계 사역을 했지만, 그 기간에 이방에서 새로운 사역이나 시대를 여는 사역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대를 여는 사역을 먼저 이방, 그것도 모압의 후손에게 행했으며, 이로써 전체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사람에게 관념으로 자리 잡은 모든 인식은 하나님께 깨어져 어느 하나 남지 않을 것이며, 사람의 관념과 낡은 인식법은 정복 사역으로 모조리 깨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규례나 낡은 것이 전혀 없으며, 그의 사역은 아무런 매임도 없이 자유롭다는 것을 사람에게 보여 줄 것이다. 그는 어떻게 해도 옳다. 그가 피조물에게 행하는 사역이라면 너는 완전히 순종해야 한다. 또한, 그가 하는 사역은 모두 의의가 있다. 그는 사람의 선택이나 관념에 따라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뜻과 지혜에 따라 사역한다. 그의 사역에 이로우면 그대로 행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어림없다! 그는 사역의 의의와 목적에 따라 사역할 대상과 지역을 선택하지, 과거의 규례나 낡은 공식에 따라 사역하지 않는다. 그는 사역의 의의에 따라 사역을 계획하여 궁극적으로 참된 결실을 거두고 소기의 목적을 이룬다. 지금 네가 이런 점들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 사역은 네게서 결실을 보지 못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08)

사람이 진정으로 인생의 바른길을 꿰뚫어 볼 수 있고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근본 취지를 분명히 알게 된다면, 마음속으로 자신의 앞날과 운명을 보배처럼 여기지는 않을 것이고, 더 이상 개돼지보다 못한 자신의 아비, 어미를 보살피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운명과 앞날은 바로 당시 베드로의 ‘아비 어미’가 아니냐? 사람은 그들과 골육처럼 가깝다. 육의 종착지, 육의 장래라는 것이 도대체 살아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인지, 아니면 죽은 후에 영혼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인지, 육의 내일이 환난과 같은 커다란 풀무 불 속에 있을지, 아니면 불사름 속에 있을지 등등 사람의 육체가 화를 당할지 고통을 받을지에 관한 이런 문제들(여기서 고통받는다는 것은 복을 얻는다는 뜻이고, 고통은 장래의 시련이 사람의 종착지에 이롭다는 의미다. 화는 굳게 설 수 없거나 미혹되거나 재난 속에서 ‘불행히 어려움을 만나’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고 영혼이 적합한 종착지가 없음을 의미한다.)이 바로 지금 이 흐름 속에 있는, 사고할 수 있고 이성적인 모든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가 아니겠느냐? 비록 사람이 건전한 이성을 가지기는 했지만 항상 사람의 이성에 걸맞은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모두 아무 생각 없이 멍하고 맹목적으로 따를 줄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진입해야 하는 것에 대해 손바닥 보듯 훤히 알아야 하고, 환난 속(풀무 불의 연단 속을 의미함)에서 진입해야 하는 것과 불의 시련 속에서 사람이 갖추어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욱 분명하게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 계속해서 개돼지와 같고 개미나 빈대보다도 못한 아비 어미(육을 가리킴)를 섬기지 말라. 어째서 굳이 그것 때문에 고민하고 온갖 궁리를 다하고 애써 머리를 짜내느냐? 육은 본래 너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너를 통제하기도 하고 사탄을 장악하기도 하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것이다(원래는 사탄에게 속하지만 사탄 역시 하나님의 손안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말하면 더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완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의미한다.). 너는 육체의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육체가 너에게 속한 것이냐? 육체가 너에게 지배당하고 있느냐? 굳이 육을 위해 모든 마음을 쏟아부을 필요가 있느냐? 굳이 진작에 정죄받고, 저주받고, 더러운 귀신에게 더럽혀지고 냄새가 나도록 썩어 버린 너의 육을 위해 애타게 하나님께 간청할 필요가 있느냐? 굳이 사탄의 패거리를 항상 가슴에 두고 있을 필요가 있느냐? 너는 육으로 인해 너의 진정한 앞날과 아름다운 소망, 인생의 진정한 종착지를 망치게 될까 봐 걱정되지 않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을 경영하는 근본 취지>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09)

오늘날 가야 하는 길이 힘든 길이지만 그 길은 또 얻기 힘든 것이고 천고를 통틀어 흔하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의 육체가 사람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누가 생각해 보았겠느냐? 오늘날의 사역이 봄비처럼 귀하고 또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처럼 중하지만, 사람이 오늘날 그가 행하는 사역의 근본 취지를 알지 못하고 인류의 본질도 깨닫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것을 귀하고 중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육은 본래 인류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육의 종착지가 어디인지 사람은 아무도 꿰뚫어 보지 못한다. 하지만 너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창조주는 창조된 사람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사람을 창조할 때의 원래 모습으로 회복시킬 것이고, 사람에게 불어넣었던 생기를 완전히 거두어들이고 사람의 뼈와 살까지도 거두어들여 그것을 창조한 ‘주’께 돌려줄 것이다. 또한 인류를 철저히 변화시키고 새롭게 바꾸는 한편 본래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신의 유업을 모두 거두어들여 다시는 인류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원래 인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이 모든 것을 거두어들이는 것은 부당하게 빼앗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을 원래 모습으로 회복시킴으로 인류를 새롭게 바꾸려는 것이다. 이것이 합리적인, 사람의 종착지다. 하지만 아마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육을 형벌한 후 다시 거두어들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파멸된 육체의 시신이 아니라 인류가 처음에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께 속한 원래 성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인류를 멸절시키거나 사람의 육을 완전히 없애 버리지는 않는다. 사람의 육은 사람의 사유 재산이 아니라 인류를 경영하는 하나님의 부속물이기 때문이다. 그가 어찌 사람의 육을 멸절시키는 것으로 ‘기쁨’을 삼겠느냐? 지금 너는 진정으로 동전 한 닢의 가치도 안 되는 네 육의 모든 것을 내려놓았느냐? 네가 말세 사역에 대해 ‘30%’(이 30%란 오늘날 성령의 역사를 꿰뚫어 볼 수 있고, 말세에 하나님이 한 말씀 사역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을 말함)만 꿰뚫어 보아도 너는 지금처럼 오랫동안 패괴된 너의 그 육을 ‘섬기고’ ‘효성스럽게 공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류가 오늘날까지 발전해 온 것은 이미 전례 없는 상황이고, 더 이상 역사의 수레바퀴처럼 계속 돌아가지 않을 것임을 너는 알아야 한다. 너의 육은 곰팡이가 피어 파리가 득실거리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발전시킨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릴 수 있겠느냐? 어떻게 벙어리 같은 말세의 시계가 다시 소리 나게 하고 계속 시침을 따라 돌아가게 할 수 있겠느냐? 또 어떻게 자욱한 안개 같은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겠느냐? 네 육이 다시 강산을 뒤흔들 수 있겠느냐? 너의 육이 가진 얼마 안 되는 ‘기능’으로 과연 네가 원래부터 동경하던 인류 세계로 회복시킬 수 있겠느냐? 너는 정말 너의 후손이 모두 ‘사람’이 되도록 교육할 수 있겠느냐? 이제 너는 알았느냐? 너의 육은 무엇에 속하느냐?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고 변화시키는 원뜻은 너에게 아름다운 삶의 터전을 만들어 주려는 것도, 사람의 육에 안식을 가져다주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의 영광을 위한 것이요, 그의 증거를 위한 것이다. 또 사람이 미래에 더 좋은 것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고, 인류가 일찍 안식을 누리게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너의 육을 위한 것은 아니다. 사람은 하나님 경영의 밑천이지만 사람의 육은 그저 부속물(‘사람’은 모두 영과 형체가 있지만 육은 그저 썩어 없어지는 것이다. 즉, 육은 본래 경륜 중의 도구에 불과하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온전케 하고 사람을 만들고 사람을 얻기 위해 사람의 육에 칼을 휘두르고 매질을 하고 끝없는 고난과 불사름, 무자비한 심판, 형벌, 저주, 끝없는 시련을 가하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의 내막과 실정이라는 것을 너는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사람의 육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적대하는 창끝은 모두 무자비하게 사람의 ‘육’을 향하고 있다(사람은 본래 무고하기 때문임). 이 모든 것은 그의 영광과 증거를 위한 것이고, 그의 경영을 위한 것이다. 그의 사역은 사람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전체 계획을 위한 것이고, 사람을 창조한 그의 원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체험한 것 중 90%는 아마 고난과 불의 시련일 것이고, 사람의 육이 바라는 달콤하고 아름다운 나날은 아주 적거나 심지어 없을 것이며, 하나님과 사람의 육이 함께 아름다운 밤을 보내는 행복한 순간은 더더욱 누릴 수 없다. 육은 본래 더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육이 보게 되고, 누리게 되는 것은 모두 사람의 뜻과 맞지 않는, 마치 정상적인 이성이 없는 듯한 하나님의 형벌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뜻과 맞지 않고’, 사람이 거스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며, 원수를 증오하는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모든 성품을 사람들에게 보여 줄 것이고, 6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사탄과 싸우는 사역, 즉 전 인류를 구원(원문: 救贖)하고 사탄을 멸해 버리는 사역을 끝마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을 경영하는 근본 취지>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10)

말세가 도래하면서 각국이 불안정하고 정치가 혼란하며, 기근, 전염병, 수해, 가뭄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인간 세상에 재난이 있고 하늘도 재앙을 내린다. 이것이 말세의 징조다. 하지만 사람의 눈에 세상은 화려하기만 하다. 세상이 화려해질수록 사람이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기술과 사악한 술수를 부리는 자들이 수많은 사람을 미혹한다. 만약 네가 진취적이지 않고 꿈도 없고 참도에 뿌리내리지 못한다면 너는 이런 죄악의 파도에 휩쓸려 가고 말 것이다. 중국이라는 이 나라는 가장 낙후되고 큰 붉은 용이 똬리를 튼 곳으로, 우상을 숭배하고 사악한 술수를 행하는 자들이 가장 많고 사당이 가장 많다. 또한 더러운 귀신이 무리를 지어 사는 곳이기도 하다. 너는 그것에게서 태어났고, 그것에게 교육과 영향을 받았으며, 그것에 의해 패괴되었고 그것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하지만 각성한 후에 그것을 저버리고 하나님께 완전히 얻어진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래서 이 단계의 사역이 매우 의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큰 규모의 사역을 하고 이렇게 많은 말을 하여 결국 너희를 완전히 얻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경영하는 사역이고 사탄과의 싸움에서 얻는 ‘전리품’이다. 너희들이 좋아질수록 교회 생활도 점점 더 좋아지고 큰 붉은 용도 점점 무너지게 된다. 이것은 모두 영계의 일이고 영계의 싸움이다. 하나님 편에서 승리하면 사탄은 수치를 당하고 무너진다. 그래서 이 사역이 대단한 의의를 갖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큰 규모의 사역을 하여 이 사람들을 완전히 구원한다.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거룩한 땅에서 살고 하나님의 빛 속에서 살며 빛의 인솔과 인도가 있으면 너의 삶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너희가 먹고 입는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과 다르다.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고 의의 있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을 누리고 있느냐? 그들은 단지 ‘조상의 유산’과 ‘민족적 기개’만 누릴 뿐 그 어떤 인간미도 없다! 너희들의 차림새와 언행은 모두 그들과 다르다. 궁극적으로 너희는 불결한 것들에서 완전히 벗어나 다시는 사탄의 시험에 빠지지 않고 매일 하나님의 공급을 받을 것이다. 너희는 늘 신중해야 한다. 더러운 땅에서 살아도 더러움에 때묻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으며, 크나큰 보호를 받았다. 이 황토의 땅에서 너희만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으니 너희는 누구보다 복받은 사람이 아니냐? 너는 피조물이기에 마땅히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고 의미 있는 인생을 추구해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더러운 육체 속에서 살고 있다면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 된 것이 아니냐? 네가 사람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너는 자신이 지금 받고 있는 이 작은 고난을 마땅히 기쁘고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욥이나 베드로처럼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사람은 세상에서 마귀의 옷을 입고, 마귀가 주는 밥을 먹으며, 마귀의 밑에서 일을 하고 충성하면서 마귀에게 짓밟혀 온몸이 더러워졌다. 네가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참도도 얻지 못한다면, 그렇게 평생을 살아도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너희는 바른길을 추구하고, 진취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큰 붉은 용 나라에서 떨쳐 일어난 너희는 하나님께 의롭다 칭함을 받은 사람이다. 이보다 더 의미 있는 인생이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행 2>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11)

오늘날 내가 너희에게 행하는 사역은 너희를 정상 인성의 삶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새 시대를 여는 사역이자 사람을 새 시대의 삶으로 이끄는 사역이다. 지금까지 한 걸음 한 걸음 진행해 온 사역은 내가 직접 너희 가운데서 펼치고 전개했으며, 내가 직접 하나하나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을 다 알려 주었고, 너희에게 없는 것을 전부 베풀어 주었다. 이 모든 사역이 너희에게는 생명의 공급이며, 또한 너희를 정상 인성이 있는 삶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전적으로 말세의 사람들에게 생명을 공급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이 모든 사역은 옛 시대를 끝내고 새 시대를 열기 위한 것이다. 또한 사탄을 두고 말하자면, 내가 말씀이 육신 된 것은 사탄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다. 현재 내가 너희 가운데서 하고 있는 사역은 현시점의 공급이자 즉각적인 구원이다. 하지만 이 짧고 제한된 몇 년 동안 모든 진리와 생명의 도, 나아가 이후의 사역까지 전부 알려 준다면, 너희는 앞으로 충분히 정상적으로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모든 말은 다 너희에게 하는 유일한 부탁이다. 내게 다른 부탁은 없다. 내가 지금 너희에게 하는 이 모든 말이 바로 너희에게 하는 부탁이다. 현재 너희는 내가 하는 말의 대부분을 체험하지 못했기에 이러한 말들에 내포된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언젠가 너희는 오늘의 말대로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말들이 오늘은 너희에게 이상으로 자리 잡히고, 내일은 너희들의 의지처가 될 것이다. 또한 오늘은 너희에게 생명의 공급이 되고, 앞으로는 너희에게 부탁이 될 것인데, 가장 좋은 부탁이 될 것이다. 내가 땅에서 사역하는 시간은 어디까지나 너희가 나의 말을 체험하는 시간만큼 길지 않기에 나는 그저 사역을 완성할 뿐이다. 그러나 너희는 생명을 추구하는 자들이므로 기나긴 생명의 여정이 필요하다. 많은 일을 겪은 후에야 생명의 도를 완전히 얻고, 오늘 내가 한 말들에 내포된 진정한 의미를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너희의 손에는 내가 한 말과 내가 맡긴 사명이 있다. 나는 맡겨야 할 사명을 모두 맡겼으니, 그 결과가 어떻든 말씀 사역은 끝까지 한 셈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다. 네가 생각한 것처럼 반드시 너를 어느 수준까지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너의 관념대로 일하지 않는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행 7>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12)

하나님은 말세에 성육신하여 자신이 해야 할 사역, 말씀하는 직분을 하고 있다. 그가 친히 사람들 가운데 와서 사역하는 목적은 그의 뜻에 맞는 사람을 온전케 하는 데 있다. 세상을 창조해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오직 말세에만 이런 사역을 하고, 말세에 성육신하여 이처럼 대규모의 사역을 한다. 그는 이 세상 사람이 감내하지 못하는 고통을 감내하며, 위대한 하나님에서 자신을 낮추어 평범한 사람이 되었음에도 자신의 사역을 전혀 지체하지 않았고, 자신의 계획을 전혀 망치지 않았다. 그는 원래 계획해 놓았던 사역을 하고 있다. 이번에 성육신한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사람을 정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이다. 그는 그가 온전케 한 사람과 이들이 그를 증거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자 한다. 온전케 될 사람은 한 명이나 두 명은 아니지만 그래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이들은 세계 각국의 다양한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많은 사역을 하는 것은 이들을 얻고, 이들이 그를 위해 하는 증거를 얻고, 이들에게서 영광을 받기 위함이다. 그는 의미나 가치가 없는 사역은 하지 않는다. 그가 이렇게 많은 사역을 하는 목적은 자신이 온전케 하고자 하는 사람을 온전케 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악인들을 도태시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악인들 때문에 이렇게 큰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다. 반대로 그는 그에 의해 온전케 될 극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는다. 그가 한 사역과 말씀, 그가 열어 준 비밀, 그의 심판과 형벌은 모두 이 극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는 악인들 때문에 성육신하는 것이 아니며, 그들 때문에 크게 화를 내지도 않는다. 그는 온전케 될 사람들을 위해 진리를 말씀하고, 진입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온전케 될 사람들 때문에 성육신하였고, 그의 약속과 축복을 베풀었다. 그가 말한 진리, 진입, 인간적인 삶은 악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는 악인에게 말하고 싶어 하지 않고, 온전케 될 사람들에게 기꺼이 모든 진리를 베풀고자 한다. 그러나 사역에 필요하므로 그는 악인들도 잠시나마 그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게 한다. 진리를 행하지 않는 자, 하나님을 흡족게 하지 않는 자,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자는 모두 악인이다. 이들은 모두 온전케 될 수 없는 자들이고, 하나님께 미움받고 버림받을 자들이다. 반대로 진리를 행하여 하나님을 흡족게 하는 자,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자신을 오롯이 바쳐 헌신하는 자는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될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온전케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고, 하나님이 하는 사역도 이들을 위한 것이다. 그가 말씀하는 진리는 기꺼이 실행하고자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는 진리를 행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말씀하지 않는다. 식견을 넓히고 분별력을 키우라는 말은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이들을 향해 한 말이며, 온전케 된다는 말 역시 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성령의 역사는 진리를 기꺼이 실행하고자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며, 지혜가 있고 인성이 있다는 것은 기꺼이 진리를 실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진리를 행하지 않는 자들은 본성이 너무 악해 많은 진리의 말씀을 들었을지라도 진리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들이 깨닫게 되는 것은 그저 이치와 글귀이고, 텅 빈 이론에 불과하여 그들의 생명 진입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고, 하나님을 보았음에도 하나님을 얻지 못하며, 하나님께 정죄받는 자들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행을 중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13)

정복 사역을 하는 주목적은 사람을 정결케 하여 진리가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깨달은 진리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에게 정복 사역을 하는 것은 가장 의의 있다. 너희는 어둠의 권세 아래에 떨어졌고 게다가 심각한 해를 입었다. 그러므로 이 사역을 하는 목적은 너희가 사람의 본성을 깨달아 진리를 살아 내게 하는 것이다. 온전케 되는 것은 모든 피조물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만약 이번 단계에서 온전케 하는 사역만 한다면 영국이든, 미국이든, 이스라엘이든 어느 국가의 사람에게 하든 상관이 없지만, 정복 사역을 하려면 다른 선택이 필요하다. 정복 사역의 첫 단계는 단기적인 것이고, 이를 통해 사탄을 수치스럽게 만들고 전 우주를 정복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정복 사역의 시작이다. 하나님을 믿는 피조물이라면 누구나 온전케 될 수 있다. 온전케 되는 것은 사람이 오랜 시간 변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복되는 것은 다르다. 정복 대상의 표본, 모형은 반드시 가장 뒤처지고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사는 사람이어야 하고, 가장 미천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가장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하며, 또 하나님을 가장 심하게 거역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와 같은 사람만이 정복된 간증을 할 수 있다. 정복 사역은 주로 사탄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지만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은 사람을 얻기 위한 것이다. 정복된 간증을 하도록 하기 위해 정복 사역을 이곳에서, 너희에게 하게 되었다. 이는 정복된 간증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정복된 사람을 통해 사탄을 부끄럽게 만드는 목적을 달성한다. 정복은 주로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 형벌, 심판, 저주, 폭로인데 공의로운 성품으로 사람을 정복한다. 이로써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진심으로 탄복하게 하는 것이다. 말씀의 실제와 말씀의 권병으로 사람을 정복하여 진심으로 탄복하게 만드는데, 이것이 바로 정복되는 것이다. 온전케 된 사람은 정복된 후에 순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판 사역에 대한 인식이 있고 성품이 변화되었다. 또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을 가며, 진리를 충분히 갖추고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할 줄 알며, 하나님을 위해 고난을 받을 수 있고 자신만의 굳센 의지가 있다. 온전케 된 사람은 하나님 말씀 체험을 통해 진리에 대한 실제적인 인식이 생긴 사람이고, 정복된 사람은 진리를 알지만 진리의 참뜻은 깨닫지 못한 사람이다. 정복된 후 사람이 순종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순종은 심판을 통해 얻은 성과이다. 그러나 많은 진리의 참뜻에 대해서는 전혀 깨닫지 못한 상태이다. 입으로는 시인하지만 진리에 진입하지 못하고, 진리를 알기만 할 뿐 체험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온전케 되는 사람에게 행하는 사역에는 형벌도 있고 심판도 있으며 생명 공급도 따른다. 진리 진입을 중시하는 사람은 온전케 될 사람이다. 온전케 된 사람과 정복된 사람의 차이점은 바로 진리에 진입했는지에 있다. 진리를 깨닫고, 진리에 진입하고, 진리를 살아 낸 사람은 온전케 된 사람이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진리에 진입하지 못하는 사람, 다시 말해 진리를 살아 내지 못하는 사람은 온전케 될 수 없는 사람이다. 만약 이런 사람이 지금 완전히 순종할 수 있다면 그는 정복된 사람인 것이다. 만약 정복된 사람이 진리를 찾지 않고, 따르고는 있지만 진리를 살아 내지 못하고, 진리를 듣고 보기만 하고 진리를 살아 내는 것을 중시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은 온전케 될 수 없다. 온전케 된 사람은 온전케 되는 경로 중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진리를 실행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게 하여 온전케 된 것이다. 정복 사역이 끝나기 전에 끝까지 따라온 자는 정복된 자라 할 수는 있지만 온전케 된 자라고 할 수는 없다. 온전케 된 사람이란 정복 사역이 끝난 후에 진리를 추구하여 하나님께 얻어진 사람이며, 정복 사역이 끝난 후 환난에서 굳건히 서고 진리를 살아 낸 사람이다. 정복되는 것과 온전케 되는 것은 사역의 절차 및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진리에 진입한 정도에 따라 구분한다. 온전케 되는 길에 들어서지 못한 자, 즉 진리가 없는 자는 결국 도태될 것이다. 진리가 있는 자, 진리를 살아 낸 자만이 하나님께 완전히 얻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베드로처럼 사는 사람은 모두 온전케 된 사람이고, 나머지는 모두 정복된 사람이다. 정복된 자에게는 저주, 형벌, 진노의 사역을 하고, 공의와 저주가 임하게 하며,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내면의 패괴 성품을 들추어내어 스스로 알고 진심으로 탄복하게 만든다. 사람이 완전히 순종하게 될 때 정복 사역은 끝이 난다. 설령 대부분 사람이 진리를 알고자 하지 않더라도 정복 사역은 끝이 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온전케 된 사람만이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14)

하나님은 어떻게 사람을 온전케 하는지, 하나님의 성품은 무엇인지, 하나님의 성품에는 어떤 것이 포함되어 있는지, 이런 것을 모두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하나님의 이름을 널리 전파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높이 받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앎을 기반으로 생명 성품의 변화를 이룰 수 있다. 사람은 훈계와 연단을 겪을수록 힘이 더 커지고, 하나님의 사역 절차가 많을수록 더 온전케 된다. 오늘날의 체험을 통해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단계 사역이 사람의 고정 관념에 상반되며, 모두 사람의 사유로는 이를 수 없고 사람의 예상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함에 있어, 모든 면이 사람의 고정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네가 연약할 때 음성을 발하고 말씀을 한다. 이렇게 해야 네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다. 하나님은 네 고정 관념을 깨 네가 하나님의 훈계를 받아들이게 한다. 이렇게 해야 네가 패괴를 벗어 버릴 수 있다. 오늘날 하나님은 성육신하여 신성으로 사역하기도 하고 정상 인성으로 사역하기도 한다. 너는 하나님이 한 모든 사역을 부정하지 말아야 하고, 하나님이 정상 인성으로 어떻게 말씀하고 어떻게 행하든 순종할 수 있어야 하며, 그가 아무리 정상적이라 해도 순종하고 알 수 있어야 한다. 네게 실제 체험이 있어야 그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고, 어떤 관념도 없이 끝까지 따를 수 있다. 하나님은 지혜롭게 사역하며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또 사람의 치명적인 약점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그의 말씀은 너의 치명적인 약점을 찌를 수 있지만, 그는 또 자신의 위엄 있고 지혜로운 말씀으로 네가 그를 증거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묘한 행사이다. 하나님이 하는 사역은 사람의 사고로는 이를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으로 육에 속한 사람에게 어떤 패괴가 있는지, 어떤 본질적인 것이 있는지를 드러내어 사람을 몹시 부끄럽게 한다.

하나님이 심판과 형벌의 사역을 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를 알게 하기 위한 것이고, 그의 증거를 위한 것이다. 그가 사람의 패괴 성품을 심판하지 않으면 사람은 그의 거스를 수 없는 공의 성품을 알 수 없고, 하나님에 대한 낡은 인식에서 새로운 인식으로 바꿀 수도 없다. 그의 증거와 그의 경영을 위해, 그는 자신의 전부를 사람들에게 공개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그의 공개적인 현현으로 그를 알게 하고, 성품 변화를 이루며, 그를 힘 있게 증거하게 한다. 사람의 성품은 하나님의 다양한 사역을 통해 변화된다. 성품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증거할 수 없고, 하나님의 뜻에 부합할 수도 없다. 사람의 성품 변화는 사람이 이미 사탄의 속박과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하나님 사역의 모델과 표본이 되었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증인이 되었으며, 하나님 뜻에 부합하는 자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성육신 하나님이 이 땅에 와서 사역하며 사람들에게 한 요구는 바로 그를 알고, 그에게 순종하고, 그를 증거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의 실제적이고 정상적인 사역을 알라는 것이요, 사람의 고정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그의 모든 말씀과 사역에 순종하라는 것이요, 사람을 구원하는 그의 모든 사역과 사람을 정복하는 모든 행사를 증거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그런 증거야말로 정확하고 실제적이며, 사탄을 수치스럽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의 심판과 형벌, 책망과 훈계를 겪고 그를 알게 된 자를 통해 그를 증거하게 한다. 그는 사탄에 의해 패괴된 자를 통해 그를 증거하게 하고, 성품 변화로 그의 축복을 받은 자를 통해 그를 증거하게 한다. 그는 사람의 입에 발린 찬양을 바라지 않고, 그에게 구원받지 못한 사탄의 부류가 그를 찬양하고 증거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과 성품이 변화된 사람만이 하나님을 증거할 자격이 있다. 하나님은 사람이 고의로 그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15)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이 소돔을 멸하던 장면을 돌이켜 보아라. 그리고 롯의 아내가 왜 소금 기둥이 되었는지 생각해 보아라. 니느웨 성의 백성이 어떻게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아 죄를 자백하고 회개했는지 생각해 보아라. 2천 년 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의 결말을 돌이켜 보아라.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에서 쫓겨나 세계 각국으로 도망갔다. 많은 사람이 살육당하고 온 민족이 유례없는 망국의 고통을 겪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극악무도한 죄를 범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슬렀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고, 모든 결과를 감당해야 했다. 그들이 하나님을 정죄하고 저버렸기에 그들의 운명은 하나님의 징벌을 받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통치자가 국가와 민족에게 안긴 쓰라린 결과이자 재앙이었다.

오늘날 하나님은 또다시 인간 세상에 내려와 그의 사역을 하고 있다. 그의 첫 사역 장소는 독재자들이 집결되어 있는, 무신론의 견고한 보루, 중국이다. 하나님은 그의 지혜와 능력으로 한 무리의 사람을 얻었으나 그동안 중국 집권당의 집요한 추적으로 모진 고난을 겪어 머리 둘 곳도, 몸을 기탁할 곳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자신의 사역, 즉 음성을 발하고 복음을 확장하는 사역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전능은 아무도 헤아릴 수 없다. 중국처럼 하나님을 원수로 보는 국가에서도 하나님은 그의 사역을 멈춘 적이 없으며,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사역과 말씀을 받아들이게 하였다. 하나님은 최대한 인류의 모든 구성원을 구원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일은 어떤 국가도, 세력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믿는다. 하나님의 사역을 저지하고, 그의 말씀에 대적하며, 그의 계획을 방해하고 망치려는 자는 결국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을 대적하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은 그자를 지옥에 처넣을 것이요, 하나님의 사역을 대적하는 국가가 있다면 하나님은 그 국가를 멸망시킬 것이다. 또 하나님의 사역을 반대하는 민족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 민족을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할 것이다. 나는 모든 민족과 국가, 모든 업계의 사람에게 전부 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사역을 보고, 인류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라고 충고하겠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인류 가운데서 가장 거룩하고 존귀하며 지고하신 유일한 경배 대상이 되도록, 아브라함의 후예가 여호와의 약속 안에서 살고, 하나님이 최초로 창조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산 것과 같이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게 되도록 말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거침없는 거센 파도와 같아서 아무도 그를 만류할 수 없고, 그의 발걸음을 멈출 수 없다. 오직 귀 기울여 그의 말씀을 듣고, 그를 찾으며 갈망하는 자만이 그의 발걸음을 따르고 그의 약속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자는 멸망의 재앙과 응분의 징벌을 받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은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16)

하나님은 창세 이후 그의 경영 사역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경영 사역의 핵심이 바로 ‘사람’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것은 다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하나님의 경영 사역은 1분 1초나 눈 깜빡할 사이, 또는 1~2년이 아니라 수천 년에 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해와 달, 각종 생물, 인류의 양식과 생활 환경 같은, 사람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더 많은 것들을 창조해야 했다. 이것이 하나님 경영의 시작이었다.

이어서 하나님은 인류를 사탄에게 내주었고, 그리하여 사람은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살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점차 하나님의 첫 번째 시대 사역, 즉 율법시대의 이야기가 생겨나게 되었다…. 율법시대가 이어진 수천 년 동안 율법시대의 인도에 익숙해지고 무심해진 인류는 차츰 하나님의 보살핌에서 멀어졌다. 그로 인해 율법을 지키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상을 숭배하고 악행을 저질렀다. 그들에게는 여호와의 보호가 사라졌고, 그들은 성전에서 제단을 지키며 생활할 뿐이었다. 사실 하나님의 사역은 그들을 떠난 지 오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율법을 고수하며 입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심지어는 자신들만이 여호와의 백성이자 선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겼을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은 조용히 그들을 버리고 떠났다….

하나님은 사역할 때 항상 한 곳에서 조용히 떠나 또 다른 곳에서 소리 없이 새로 개척한 사역을 하는데, 둔감한 사람이 보기에는 천일야화와도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사람은 항상 낡은 것을 둘도 없는 보물로 여기고, 낯설고 새로운 것을 보면 원수나 눈엣가시처럼 여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어떤 새로운 사역을 하든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만물 가운데서 가장 늦게 그 사실을 아는 존재는 사람뿐이다.

여호와의 율법시대 사역에 이어 하나님은 또 예외 없이 두 번째의 새 사역, 육신을 입는 사역을 시작했다. 즉, 성육신하여 사람으로 10년, 20년이란 오랜 시간을 보내며 신자들 가운데서 사역하고 말씀한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자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를 하나님의 성육신이라고 인정했다. … 하나님의 두 번째 사역이 완성되었을 때, 즉 십자가에 못 박힌 뒤에 하나님은 이미 사람을 죄에서(사탄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오는 사역을 이루었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인류는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았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사람의 죄가 더 이상 사람이 구원받아 하나님 앞으로 가는 것을 가로막지 못하고, 사탄이 사람을 참소하는 빌미가 되지 못했다. 하나님 자신이 실제적인 사역을 하고, 죄 있는 육신의 형상이 되어 미리 겪었기 때문이다. 하나님 자신이 바로 속죄 제물이었다. 그렇게 해서 인류는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되었고, 하나님의 육신, 즉 죄 있는 육신의 형상으로 말미암아 속량되어 구원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사탄에게 잡혀갔던 사람은 하나님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 하나님께 구원받게 되었다. 당연히 이 사역은 율법시대보다 진일보하고 한층 더 깊어진 하나님의 경영이었다.

하나님의 경영이란 이런 것이다. 무엇이 하나님이고, 무엇이 창조주인지, 하나님을 어떻게 경배해야 하는지, 어째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이런 인류를 사탄에게 내주어 사탄이 제멋대로 패괴시키게 한 뒤, 다시 사탄의 손아귀에서 단계적으로 빼앗아 옴으로써 인류가 완전히 하나님을 경배하고 사탄을 저버릴 수 있게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경영이다. 이는 어쩌면 신화처럼 들리기도 하고 또 어쩌면 이해하기도 힘들어 보인다. 사람이 이것을 신화 같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수천 년 동안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나아가 이 우주 궁창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생겨났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람의 육안으로는 이 물질세계 뒤에 숨어 있는 더 기묘하고 무서운 세계를 전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해하기 힘들다고 느끼는 이유는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는 의의와 하나님의 경영 사역의 의의를 전혀 모르고,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인류를 원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인류가 사탄에 의해 패괴되지 않은 아담과 하와 같은 인류겠느냐?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경영은 바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순종하는 인류를 얻기 위한 것이다. 그런 인류는 사탄에 의해 패괴되었으나 더 이상 사탄을 아비로 삼지 않고, 사탄의 추악한 몰골을 간파하여 저버린다. 또한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고, 추함과 거룩함의 차이를 알며, 하나님의 위대함과 사탄의 사악함 역시 깨닫는다. 그런 인류는 더 이상 사탄을 위해 힘쓰지 않고, 사탄에게 절하지도 사탄을 섬기지도 않는다.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얻어진 인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인류 경영 사역의 의의이다. 이 경영 사역에서 인류는 사탄이 패괴시킨 대상인 동시에 하나님이 구원할 대상이며, 또 하나님과 사탄이 서로 가지려고 다투는 산물이다. 하나님이 사역을 하면서 사람을 사탄의 손아귀에서 차츰차츰 빼앗아 오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과 점점 가까워진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에 들어서게 되었는데, 이는 더 현실적이지만 사람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사역이다. 사람이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하나님의 채찍이 사람과 더 가까워지고, 하나님의 면모 또한 사람에게 더 뚜렷하게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인류는 속량받은 뒤 정식으로 하나님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편하게 누리며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인류는 오히려 하나님의 ‘호된 공격’을 받았다. 이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사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이와 같은 세례를 ‘누려야’ 했다. 이런 대우를 받자 사람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하나님이 오래전에 잃어버렸다가 비싼 대가로 사 온 양인데, 하나님은 어째서 나를 이렇게 대하시는 걸까? 설마 하나님이 그분 방식으로 나를 조롱하고 드러내시려는 걸까?’ 그렇게 수년을 겪으며 보냈고, 인류는 연단과 형벌의 고난을 통해 풍상고초를 다 겪어 본 사람으로 거듭났다. 비록 과거의 ‘광채’와 ‘낭만’은 잃었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됨의 이치를 깨닫고, 하나님이 오랫동안 사람을 구원한 그 고심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차츰 자신의 야만성을 증오하는 한편, 길들이기 어렵고 하나님을 수없이 오해하며 하나님께 지나치게 바랐던 스스로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지나간 일은 사람이 참회하는 기억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은 사람이 새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사람은 날마다 상처가 조금씩 아물고 몸이 건강해지면서 우뚝 일어나 전능자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줄곧 내 곁에 있었다. 그의 미소와 아름다운 얼굴은 여전히 그렇게 감동적이었다. 그의 마음은 늘 그렇게 자신이 만든 인류를 염려하고 있었으며, 그의 두 손은 늘 처음처럼 따뜻하고 힘이 있었다. 사람은 마치 에덴동산에 있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의 사람은 더 이상 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더 이상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한다. 또한 하나님의 웃는 얼굴을 보며 가장 귀한 제물을 바친다. 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하나님의 모든 경영 사역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스며들어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고심을 이해할 수 있든 없든, 그는 쉬지 않고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사역을 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경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사역이 가져다준 도움과 이익은 모두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네가 지금은 하나님에게서 온 사랑과 생명의 공급을 전혀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진리를 추구하겠다는 결심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하나님의 웃는 얼굴이 네 앞에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의 경영 사역의 근본 취지는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권세 아래에 있는 사람을 빼앗아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17)

사람은 내가 땅에서 사역하는 근본 취지, 즉 내가 사역하여 궁극적으로 얻으려는 것이 무엇이며, 내가 어느 정도까지 해야 사역의 종점에 다다르게 되는지 알아야 한다. 사람이 오늘날까지 나를 따라오고도 내가 하는 사역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헛되이 따라온 것이 아니겠느냐? 나를 따르는 사람은 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나는 땅에서 수천 년 동안 사역해 왔고, 오늘날도 여전히 이렇게 나의 사역을 하고 있다. 내 사역의 항목은 매우 많을지라도 사역의 근본 취지는 변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내가 사람에게 숱한 심판과 형벌을 할지라도, 그것은 내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고, 또 사람을 온전케 한 후 나의 복음을 더 효과적으로 전파하고 모든 이방에서 내 사역을 더 효과적으로 확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미 많은 사람들이 크게 실망했을 때에도 나는 변함없이 내 사역을 계속하고 있고, 내가 해야 할 사역을 함으로써 사람을 심판하고 형벌하고 있다. 사람이 내 말을 귀찮아할지라도, 내 사역에 관심이 없을지라도 나는 변함없이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사역을 하고 있다. 내 사역의 근본 취지는 변하지 않고, 나의 원래 계획도 무산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심판은 사람이 더 잘 순종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고, 나의 형벌은 사람이 더 잘 변화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내가 하는 사역은 나의 경영을 위한 것이지만 사람에게 무익한 사역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이스라엘 외의 족속들을 이스라엘처럼 순종하게 만들고 진정한 사람으로 만들어 이스라엘 밖에서도 나의 기반을 마련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나의 경영이고, 이방에서의 나의 사역이다. 오늘까지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나의 경영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사람은 자기의 앞날과 종착지에만 관심을 가질 뿐 이런 것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말해도 사람은 여전히 내가 하는 사역에 무관심한 채 오로지 자신의 미래 종착지에만 관심을 둔다. 이렇게 나아간다면 어떻게 나의 사역을 확장할 수 있겠느냐? 어떻게 나의 복음을 온 천하에 전할 수 있겠느냐? 너희는 나의 사역이 확장될 때 내가 너희를 분산시키고, 여호와가 이스라엘 각 지파를 친 것처럼 너희를 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나의 복음을 온 땅에 널리 전파하고, 나의 사역을 이방으로 확장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나의 이름을 높이 받들며, 각 나라 각 족속도 모두 나의 거룩한 이름을 칭송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가장 마지막인 이 시대에 나의 이름이 이방에서 높임을 받게 하고, 나의 행사를 이방 사람들에게 보여 주며, 또한 나의 행사로 인해 내가 전능자로 불리게 하고, 나의 입에서 나온 말이 하루속히 이루어지게 할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내가 이스라엘 사람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이방 모든 족속의 하나님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할 것이다. 설령 내가 저주한 족속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내가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임을 보게 할 것이다. 이것은 나의 가장 큰 사역이고, 말세에서의 나의 사역과 계획의 근본 취지이며, 내가 말세에 성취하려는 유일한 사역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복음을 확장하는 사역도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18)

수천 년 동안 경영해 온 나의 사역은 말세가 되어야만 사람들 앞에 완전히 드러나 보여질 수 있다. 오늘날에 이르러 나는 비로소 내 경영의 모든 비밀을 사람에게 완전히 공개했다. 그리하여 사람은 내 사역의 근본 취지를 알게 되었고, 나아가 나의 모든 비밀도 알게 되었다. 나는 사람의 관심사인 사람의 종착지까지도 전부 알려 주었고, 5천 9백 년 넘게 감추어 두었던 나의 비밀을 사람에게 모두 공개했다. 누가 여호와인가? 누가 메시야인가? 누가 예수인가? 너희는 내 사역의 전환점이 이 몇 개의 이름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너희는 어떻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전하고 칭송해야 하는지, 또 지난날 나의 이름 중 어느 한 이름을 부르짖었던 모든 족속에게 어떻게 나의 이름을 전해야 하는지 알고는 있느냐? 나의 사역은 이미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나는 모든 족속을 대상으로 나의 모든 사역을 확장할 것이다. 나는 나의 모든 사역을 너희에게 행하였기에 너희를 칠 것이다. 마치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다윗 집 목자를 쳤듯이 모두 각 족속으로 흩어지게 할 것이다. 나는 말세에 열국을 산산조각 내고 열국의 백성을 새 나라와 무리로 다시 분류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다시 돌아올 때는 이미 열국이 나의 불사름으로 경계가 나뉘어 있을 것이다. 그때에 나는 뜨거운 해로 사람에게 다시 나타나고, 사람이 본 적 없는 거룩한 자의 형상으로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나타나 만방에서 다닐 것이다. 마치 나 여호와가 유대 각 족속 가운데에서 다녔던 것처럼 말이다. 그때부터 나는 땅에서 사는 사람의 생활을 인도할 것이다. 사람은 반드시 그들 위에 있는 나의 영광을 볼 것이고, 사람의 생활을 인도하는 하늘의 구름 기둥도 볼 것이다. 나는 거룩한 땅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나의 공의로운 날을 보게 될 것이고, 내 영광이 나타나는 것도 보게 될 것이다. 그때는 내가 온 땅에서 왕이 될 때이고, 또한 많은 아들들을 인도하여 영광에 들어갈 때이다. 사람은 온 땅 위에 엎드릴 것이고, 나의 장막은 반드시 인간 세상에 굳게 세워질 것이며, 내가 오늘날 하는 사역의 반석 위에 지어질 것이다. 사람 또한 성전 안에서 나를 섬길 것이다. 더럽고 가증한 것들로 가득한 그 제단은 반드시 나에 의해 부서져 새롭게 세워질 것이며, 처음 난 어린양과 송아지는 반드시 그 거룩한 제단 위에 가득 쌓일 것이다. 나는 반드시 오늘날의 성전을 허물어 버리고 새롭게 지을 것이다. 가증한 사람들로 가득한 오늘날의 이 성전은 반드시 무너질 것이고, 내가 지은 성전에는 반드시 나에게 충성하는 종들로 가득할 것이며, 그들은 내 성전의 영광을 위해 다시 일어나 나를 섬길 것이다. 너희는 내가 크게 영광받는 날을 반드시 보게 될 것이고, 내가 성전을 허물고 다시 짓는 날도 반드시 보게 될 것이며, 나의 장막이 인간 세상에 임하는 날도 반드시 보게 될 것이다. 나는 성전을 허무는 방식대로 나의 장막을 인간 세상에 임하게 할 것이다. 마치 사람이 나의 강림을 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열국을 산산이 부순 다음 또 새로이 모을 것이다. 그런 후 나의 성전을 짓고 나의 제단을 세워 모든 사람이 나에게 제사를 지내게 하고, 나의 성전에서 나를 섬기게 하며, 이방에서의 내 사역을 위해 충성을 다하게 할 것이다. 그들은 지금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제사장의 옷을 입고 화관을 쓸 것이며, 나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 가운데 있고, 나의 위엄이 그들 위 하늘에서 그들과 함께할 것이다. 이방에서 하는 나의 사역도 그와 같을 것이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사역한 방식대로 이방에서도 그렇게 사역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스라엘의 사역을 확장할 뿐만 아니라 이방으로 확장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복음을 확장하는 사역도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이다> 중에서

Daily Words of God Excerpt 219

Excerpted from “The Work of Spreading the Gospel Is Also the Work of Saving Man” in The Word Appears in the Flesh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20)

너희는 하나님이 이 사람들에게서 이루는 사역이 무엇인지 보았느냐? 지난날 하나님이 말씀했듯, 천년하나님나라(역주: 천년왕국)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앞으로 나아갈 것이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을 인도하여 아름다운 가나안 땅에서 살게 할 것이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모세에게 직접 말씀으로 지시하였으며, 하늘에서 양식과 물, 만나를 내려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친히 먹고 마실 것을 내려 사람에게 베풀고, 친히 저주를 내려 사람을 형벌한다. 그러므로 각 단계의 사역을 전부 하나님이 친히 행한다고 하는 것이다. 지금 사람은 사실이 임하기를, 또 이적과 기사를 보게 되기를 바라는데, 이런 자는 버림받을 수 있다. 하나님이 하는 일이 점점 더 실제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왔지만 그것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고, 하나님이 하늘에서 양식과 자양품을 내렸지만 그것을 아는 자 또한 아무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제로 존재하는 분이다. 사람이 상상하는 천년하나님나라의 활기찬 광경 역시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함께 땅에서 왕권을 잡는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땅에서 왕권을 잡는다는 말은 육신을 가리킨다. 육신이 아니라면 땅에 있을 리 없다. 그러므로 셋째 하늘에 가기를 바라는 그런 사람의 소망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언젠가 온 우주가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온 우주의 사역은 하나님이 발한 음성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다.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은 전화나 레이저로 하나님이 발한 음성을 받아들이고, 비행기나 배를 타고 와서 하나님의 음성을 받아들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앙모하고 갈망하고 하나님께 다가가며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여 하나님께 경배할 것이다. 이는 모두 하나님의 행사이다. 한 가지 명심해라! 앞으로 하나님이 다른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일은 절대로 없다.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는 일은 온 우주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현하러 오고, 땅의 하나님께 경배하러 오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른 곳에서의 사역을 모두 중단했으니, 사람은 참도를 찾을 수밖에 없다. 예전에 먹을 것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양식을 가지고 있던 요셉에게 가서 그를 경배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사람들도 굶주림의 재앙에서 벗어나기 위해 참도를 찾을 수밖에 없다. 현재 종교계 전반에는 심각한 기근이 들었다. 오직 오늘날의 하나님만이 생수의 원천이고 사람에게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을 베풀어 주기에 모두가 그에게 의탁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하나님의 행사가 드러나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을 것이니 온 우주 위아래의 사람들이 모두 와서 볼품없는 이 ‘사람’에게 경배할 것이다. 그때가 바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는 날 아니겠느냐? 언젠가는 환갑에 가까운 목사도 전보를 보내 생수의 원천을 찾고 구할 것이다. 연로한 육신을 끌고 와서 한때 자신들이 업신여기던 이 사람에게 경배할 것이고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을 것이다. 이것이 이적과 기사 아니겠느냐? 하나님이 영광을 받는 날, 온 나라가 기쁨으로 들끓을 것이며, 너희에게 와서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얻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다. 그런 나라도, 그런 사람도 모두 하나님의 축복과 보살핌을 받을 것이다. 앞으로는 다음과 같은 추세가 나타날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얻은 사람은 땅에서 나아갈 길이 있게 된다. 반면, 장사를 하든, 과학 연구를 하든, 교육이나 공업에 종사하든 하나님의 말씀을 얻지 못한 사람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해 참도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진리가 있으면 온 세상을 두루 다닐 수 있고, 진리가 없으면 한 치 앞도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이 바로 이러하다. 하나님은 ‘길’(‘길’이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가리킴)로써 온 우주 위아래를 통제하고, 인류를 다스리며 정복한다.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역 방식에 더 큰 전환점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사람을 통제하므로 네가 원하든 원치 않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해야 한다. 이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이니, 모두가 인정해야 한다. 또한, 이는 대세의 흐름이자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천년하나님나라가 이미 도래하였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21)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집집마다 전파될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사역이 전 우주로 확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역을 전 우주로 확장하려면 하나님의 말씀부터 확장해야 한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는 날, 즉 하나님의 말씀이 권병과 위력을 드러내는 날이 되면, 하나님이 만세 전부터 오늘날까지 한 모든 말씀이 하나하나 이뤄지고 응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땅에서 영광을 받게 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땅에서 권세를 잡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한 말씀으로 인해 모든 악인이 형벌을 받고 모든 의인이 축복을 받을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세워지고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그 어떤 이적이나 기사도 나타내지 않고 오직 말씀으로 모든 것을 이룬다. 말씀으로 말미암아 사실이 나타나는 것이다. 땅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길이 칭송할 것이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나고 또 땅에서 사람이 생생하게 보게 한다. 이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 된 것’이다. 하나님이 땅에 온 가장 큰 이유는 ‘말씀이 육신 되는’ 이 사실을 이루기 위함이다. 즉, 하나님은 육신에서 말씀하고(구약 모세 시대에 하나님이 하늘에서 직접 음성을 발한 것과는 다름) 그것을 천년하나님나라시대(역주: 천년왕국시대)에서 하나하나 이루어 사람이 볼 수 있는 사실로 나타냄으로써 말씀과 사실이 조금의 차이도 없다는 것을 직접 보게 한다. 이는 하나님이 성육신 된 크나큰 의의이다. 즉, 육신뿐만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도 영의 사역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 되고,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난다’는 말의 진정한 함의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의 뜻을 말할 수 있고, 오직 육신에 거하는 하나님만이 영을 대신하여 음성을 발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육신한 하나님을 통해 나타난다. 그 외의 모든 사람은 그의 말씀의 인도 아래에서 살아가며 그 누구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은 그의 음성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그를 통하지 않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음성을 얻으려는 생각은 깨끗이 단념하는 것이 좋다. 이는 성육신한 하나님이 나타낸 권병으로서 모든 사람이 믿고 복종하게 한다. 아무리 권위 있는 전문가나 교계의 목사라고 할지라도 이런 말씀을 할 수 없다. 모두가 말씀 앞으로 돌아와 복종할 것이며, 누구도 다른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온 우주를 정복하려 한다. 성육신 하나님의 육신이 아니라 친히 발한 음성으로 온 우주 위아래의 사람을 정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 된 것이고,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난 것이다.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이 대단한 사역을 하지 않은 것 같지만, 하나님이 음성을 발하면 모두 탄복을 금치 못하고, 놀라서 입이 딱 벌어질 것이다. 사실이 없다며 요란하게 떠들어 대던 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모두 입을 다물 것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 일을 이룰 것이다. 말씀이 땅에 왔다는 이 일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이 일찍이 정해 놓은 계획이기 때문이다. 사실, 굳이 내가 짚어 줄 필요도 없다. 천년하나님나라가 땅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땅에 왔다는 뜻이며,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 가운데 와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사람의 일거수일투족, 모든 마음, 생각과 함께한다는 의미이다. 이것 역시 하나님이 이루려는 일이자 천년하나님나라의 아름다운 광경이다. 이는 하나님이 정해 놓은 계획이다. 즉 말씀이 땅에서 천 년 동안 나타나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나타내고, 땅에서의 모든 사역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인류는 일단락을 짓게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천년하나님나라가 이미 도래하였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22)

모든 재난이 연달아 임하고 있다. 각국 각 지역에 재난이 일어나고 있으며, 전염병, 기근, 수해, 가뭄, 지진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이미 한두 곳의 문제도, 하루 이틀에 끝날 문제도 아니다. 재난 지역이 점점 넓어지고 그 심각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 기간에는 각종 충해(蟲害)까지 연이어 발생하고,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현상도 도처에서 나타날 것이다. 이는 모두 만국 만민에 대한 나의 심판이다. 나의 아들들아! 너희는 절대 그러한 고난을 겪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가 하루빨리 자라 내 어깨 위의 짐을 짊어지기를 바란다. 어찌하여 내 마음을 모르느냐? 앞으로 사역은 점점 더 많고 무거울 텐데, 너희는 나 혼자 그 일들을 감당하게 둘 정도로 모질단 말이냐? 더 확실하게 말하겠다. 생명이 자란 자는 피난처에 들어가 고난을 겪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생명이 자라지 못한 자는 반드시 고난을 겪을 것이다. 내 말이 아주 확실하지 않으냐!

내 이름이 각 지역과 각처로 퍼져 나가 모든 사람이 내 거룩한 이름을 알고, 나를 알게 될 것이다. 미국, 일본, 캐나다, 싱가포르, 러시아, 마카오, 홍콩, 각 나라와 각 분야의 사람들이 곧 한꺼번에 중국으로 몰려들어 참도를 찾을 것이다. 나의 이름은 이미 그들에게 증거되었다. 그러니 너희가 되도록 빨리 자라 그들을 목양하고 이끌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앞으로 사역량이 더 많아질 거라고 한 이유이다. 재난이 임하면서 나의 이름도 널리 퍼질 것이다.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너희가 마땅히 얻어야 할 몫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두렵지 않단 말이냐? 내 이름은 각 종교, 각 분야, 각 나라, 각 교파에 널리 퍼질 것이다. 내 사역은 질서 있게 순서대로 고리에 고리가 맞물리듯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는 모두 내 지혜로운 계획이다. 오로지 너희가 걸음마다 내 발걸음을 바짝 좇으며 전진하기를 바란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65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23)

지진은 이 세상 재난의 시작이다. 먼저 세상, 그러니까 이 땅에 먼저 변동이 생긴 뒤, 전염병과 기근이 이어질 것이다. 이는 나의 계획이자 절차이다. 나는 내 경륜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움직여 나를 위해 힘쓰게 할 것이다. 그로 인해 온 우주와 세상은 내가 멸하지 않아도 스스로 멸망할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성육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땅이 크게 흔들렸다. 마지막에도 그러할 것이다. 내가 육신에서 영계로 진입하는 그 순간,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장자들은 결코 재난의 고통을 받지 않을 것이나, 그 외의 사람들은 재난 속에서 연단받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장자가 되기를 원한다. 사람의 예감에 이는 복을 누리기 위함이 아니라 재난의 고통을 피하기 위함인데, 이것은 큰 붉은 용의 음모이다. 하지만 나는 절대로 그것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그것이 중한 징벌을 받게 할 것이다. 그 후에 다시 일어나 계속해서 나를 위해 힘쓰게 할 것이며(아들들과 백성들을 만드는 것을 가리킴), 영원히 자신의 간계에 빠져 영원토록 나의 심판과 불사름을 받게 할 것이다. 이는 봉사자들로 하여금 나를 찬미하게(그들을 통해 나의 큰 능력을 보여 주는 것을 뜻함) 하는 참뜻이다. 나는 큰 붉은 용이 내 나라에 섞여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이며, 나를 찬미할 자격을 부여하지도 않을 것이다(그것에게는 영원히 그럴 자격이 없기 때문임)! 오직 그것이 영원히 나를 위해 힘쓰게 할 뿐이다! 또한, 그것이 내 앞에 엎드리게 할 뿐이다(멸망되는 것은 침륜되는 것보다 견디기 쉽다. 멸망은 일시적인 중형이지만, 침륜되는 자는 영원히 중형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엎드리게’ 한다고 한 것이다. 또한, 이 사람들이 나의 집에 섞여 들어와 나의 은혜를 적잖이 누렸고,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중형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집 밖에 있는 자들은 아는 것이 없기에 정죄받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관념으로 멸망이 침륜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와 반대다. 침륜되는 자는 영원히 중형을 받을 것이고, 멸망되는 자는 영원히 무(無)로 돌아갈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108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24)

하나님나라의 예포가 울릴 때는 ‘일곱 우레가 크게 울릴 때’이다. 그 소리는 하늘과 땅, 그리고 궁창을 뒤흔들고, 모든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하나님나라의 축가가 큰 붉은 용의 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울려 퍼지면, 내가 큰 붉은 용의 나라를 무너뜨리고 나의 나라를 세웠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더 중요한 점은 나의 나라가 땅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보내심을 받은 천사가 세계 각국을 두루 누비며 아들들과 백성들을 목양할 것이다. 이것 역시 다음 단계 사역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큰 붉은 용이 똬리를 튼 곳에 친히 임하여 그것과 ‘겨룬다’. 모든 사람이 육신을 통해 나를 알고 나의 행사를 볼 때, 큰 붉은 용의 소굴 역시 그에 따라 잿더미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내 나라의 백성들이 큰 붉은 용을 뼈에 사무치게 증오하는 이상 일거수일투족으로 내 마음을 만족게 함으로써 큰 붉은 용을 수치스럽게 해야 한다. 너희는 진정 큰 붉은 용이 증오스럽다고 여기느냐? 큰 붉은 용이 ‘하나님나라 왕’의 원수라고 여기느냐? 너희는 진정 나를 아름답게 증거할 자신이 있느냐? 큰 붉은 용을 물리칠 자신이 있느냐? 이것은 너희에 대한 나의 요구이다. 너희는 이 정도 수준에만 이르면 된다. 할 수 있겠느냐? 이 수준에 이를 자신이 있느냐?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어디까지나 내가 친히 하는 것 아니더냐? 내가 왜 친히 전장에 왔다고 했겠느냐? 내가 원하는 것은 너희의 믿음이지 행위가 아니다. 사람은 모두 내 말을 똑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측면에서 ‘삐딱하게 바라보기만 하는데’, 그렇게 해서 목적을 달성했느냐? 그렇게 해서 나를 알게 되었느냐? 솔직히 말해, 땅에서 내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내 말의 함의를 순수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나는 땅에서 전례 없는 일을 시작해 내 목적을 이루고, ‘내 참된 형상’이 사람 마음속에 자리 잡게 하여 ‘관념’이 사람 마음을 지배하던 시대를 끝낸다.

오늘날, 나는 큰 붉은 용의 나라에 강림했을 뿐만 아니라 전 우주를 마주했으며, 이에 온 궁창이 흔들리고 있다. 나의 심판을 받지 않는 곳이 어디 있겠느냐? 내가 내린 재난 속에서 살지 않는 곳이 어디 있겠느냐? 나는 발길이 닿는 곳마다 온갖 ‘재난의 씨앗’을 뿌려 놓았다. 이는 내가 사역하는 방식으로, 의심할 바 없이 사람에 대한 구원이자 사람에게 베푸는 일종의 사랑이다. 나는 더 많은 사람이 나를 알게 하고 보게 함으로써 오랜 세월 보지 못했지만 오늘날에는 실제적인 하나님을 경외하게 할 것이다. 내가 왜 세상을 창조했겠느냐? 왜 패괴된 인류를 전부 멸하지 않았겠느냐? 왜 인류는 모두 재난 속에 있겠느냐? 왜 내가 친히 육신을 입었겠느냐? 내가 나의 일을 행하고 있을 때, 사람은 쓴맛뿐만 아니라 단맛도 보았다. 세상 사람 중 나의 은혜 속에 살고 있지 않는 자가 있느냐? 내가 사람에게 물질적인 축복을 주지 않는다면, 그 누가 세상에서 풍족함을 얻을 수 있겠느냐? 너희에게 백성의 지위를 주어야만 축복이겠느냐? 백성이 아니라 봉사자라 해도 너희는 내 축복 속에서 살고 있지 않느냐? 내 말의 근원을 짚어 낼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사람은 내가 준 칭호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봉사자’란 칭호로 인해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백성’이란 칭호로 인해 나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내 눈이 모든 것을 감찰하고 있으니 누구도 나를 속여선 안 될 것이다! 너희 중에 그 누가 기꺼이 받아들이고 완전히 순종하느냐? 하나님나라의 예포가 울리지 않았다면, 너희가 정말 끝까지 ‘순종’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생각하고, 어느 정도까지 갈 수 있는지를 나는 일찍이 예정해 놓았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10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25)

지금 하나님나라 건축이 정식으로 시작되었지만, 하나님나라의 예포는 아직 정식으로 울리지 않았다. 지금은 예언일 뿐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모두 온전케 되고, 땅의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때는 바로 ‘일곱 우레가 크게 울릴’ 때이다. 지금은 그 단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고 그날을 향해 ‘진격’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으로서, 머지 않은 장래에 실현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입으로 말씀한 것은 모두 하나님이 이미 이룬 것이다. 여기에서 세상의 나라는 공중누각처럼 곧 무너지게 될 것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마지막 날이 눈앞에 이르렀고, 큰 붉은 용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거꾸러진다. 하나님 계획의 완벽한 성공을 위해 천사 역시 인간 세상에 내려와 자신의 능력을 다해 하나님을 만족게 하고 있고, 성육신한 하나님 또한 친히 전쟁터에서 원수와 싸우고 있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있는 곳이 바로 원수가 멸망하는 곳이다. 중국이 가장 먼저 무너지고 하나님 손에 멸망되는데, 하나님은 그것에게 조금의 인정사정도 봐주지 않는다. 하나님의 백성이 성숙해질수록 큰 붉은 용이 더 빨리 무너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람이 확연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백성이 성숙해지는 것은 원수가 멸망할 징조이다. 이것은 ‘대결’에 대한 약간의 해석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러 번 백성에게 하나님을 아름답게 증거하여 ‘관념’, 즉 큰 붉은 용의 추태가 사람의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자리를 없애 버려야 한다고 일깨워 주었다. 하나님은 여러 번의 일깨움으로 사람의 믿음을 불러일으킬 뿐이고 또 그런 방식으로 사역의 성과를 거둔다. 하나님이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어디까지나 내가 친히 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두 그러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또 언제나 낙심하고 실망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믿음을 회복시켜 줄 뿐만 아니라 여러 번 몰래 사람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계속해서 하나님은 또 전 우주를 향해 말씀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그의 새 사역을 전개했을 뿐만 아니라 전 우주에서 그의 오늘날의 새 사역을 시작했다. 이 단계 사역에서, 하나님은 온 땅에서 그의 모든 행사를 나타내어 궁극적으로 그를 배반했던 전 인류가 다시 그의 보좌 앞으로 돌아와 복종하게 하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에는 여전히 긍휼과 자비가 들어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각종 일들로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그 기회를 빌려 하나님을 찾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앞으로 돌아오게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것은 내가 사역하는 방식이고, 의심할 바 없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며, 여전히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씀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의 비밀에 대한 해석ㆍ제10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26)

나는 땅에서 내 권병을 행하고 내 모든 사역을 전개했다. 내 사역에 대한 모든 반응은 다 땅에서 나타났다. 사람은 땅에서 하늘에 있는 내 움직임을 안 적이 없고, 내 영의 운행 궤적을 자세히 알지도 못했다. 대다수는 영 밖의 사소한 것들만 파악할 뿐, 영 안의 실제 상태는 살피지 못했다. 사람에 대한 요구는 하늘에 있는 막연한 내가 제시한 것도, 땅에 있는 가늠할 수 없는 내가 제시한 것도 아니다. 나는 땅에 있는 사람의 분량에 따라 적정 수준에서 요구한다. 누군가를 곤란하게 한 적도 없고, 누군가에게 ‘고혈을 짜내’ 나를 즐겁게 하라고 한 적도 없다. 설마 내 요구가 겨우 그 정도 수준이겠느냐? 땅의 만물 중 무엇이 내 말에 복종하지 않겠느냐? 내 말과 내 불길로 깨끗이 불타 없어지지 않을 존재가 있겠느냐? 내 앞에서 감히 ‘활개 치고 다니는’ 존재가 있겠느냐? 내 앞에서 허리 굽히지 않는 존재가 있겠느냐? 그렇다고 내가 그저 만물을 침묵하게 하는 하나님이겠느냐? 나는 만물 가운데서 내 뜻에 맞는 것을 택하고, 만인 가운데서 내 마음을 헤아리는 자를 택하며, 모든 별 가운데서 최고를 택하여 내 나라에 빛을 더한다. 나는 땅을 거닐며 곳곳에 내 향기를 뿌리고, 내 그림자를 남긴다. 곳곳에는 내 음성이 울려 퍼진다. 사람은 다 어제의 아름다운 광경을 그리워한다. 사람은 과거를 추억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두 나를 만나길 갈망한다. 하지만 막상 내가 땅에 오니 내가 온 것에 질색하며 찾아온 빛을 몰아낸다. 내가 하늘에 있는 적이라도 되는 양 ‘경계’의 눈빛을 보내며 시시각각 조심하고, 내가 그들을 ‘어쩌기라도 할까’ 몹시 두려워한다. 사람은 나를 낯선 친구로 여기기 때문에 내게 그들을 마음대로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는 그들의 숙적이다. 사람은 환난 속에서 나의 따뜻함을 느낀 후에도 나의 자비를 깨닫지 못하고, 내 앞에서 계속 나를 경계하고 대적하려는 마음을 품는다. 하지만 나는 사람의 이러한 상태를 기회 삼아 손을 대지 않고 오히려 그 품에 따뜻함을 주고, 그 입에 감미로움을 주고, 그 배에 필요한 음식을 채워 준다. 그러나 내 진노가 산과 강을 뒤흔들 때는 사람이 ‘겁낸다’ 하여 다른 지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 나는 크게 노할 것이며, 그 어떤 존재에게도 회개의 기회를 주지 않을 것이다. 사람에 대한 모든 희망을 버리고, 그들에게 합당한 보응을 내릴 것이다. 그 순간 천둥 번개는 성내는 파도나 무너지는 산 같을 것이며, 사람은 패역으로 인해 모두 번개에 맞아 죽고, 사물은 우렛소리로 인해 모두 소멸할 것이다. 그리하여 전 우주가 순식간에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 만물은 원래의 생기를 되찾을 수 없고, 만인은 우렛소리에서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빗발치는 번개 속에서 사람은 한 무리씩 급류에 쓰러져 산에서 밀려오는 물에 휩쓸려 갈 것이다. 어느새 사람의 ‘종착지’에는 또 ‘사람’의 세계가 이루어진다. 바다 위에는 사람의 시체가 떠다니고 있으며, 모든 사람은 내 진노 때문에 내게서 매우 멀어진다. 그것은 사람이 내 영의 본질을 거스르고, 패역함으로 나를 거슬렀기 때문이다. 물이 없는 땅에서 또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즐겁게 웃고 노래하면서 내가 준 약속을 누리고 있다.

모든 사람이 침묵할 때 내가 그들 앞에 한 줄기 빛을 비추면, 사람은 문득 눈이 밝아지고 마음이 환해지는 것을 느끼며 침묵을 깨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곧바로 마음속 영을 깨운다. 이때 사람은 모두 부활해 자신의 괴로움을 던져 버리고 내 앞으로 온다. 내가 해 준 말로 또 한 번 생존의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두 땅에서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특별히 나를 위해 살고자 한 자가 있더냐? 자신에게서 ‘훌륭한 것’을 찾아 내가 즐기도록 바친 자가 있더냐? 매력적인 나의 향을 느낀 자가 있더냐? 사람은 모두 거친 존재다. 겉으로는 눈부시게 빛나 보여도 본질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내가 조금이라도 있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너무도 부족하여 나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러나 나는 절대 사람의 약점을 공격하지 않고, 사람의 부족함을 두고 비웃지 않는다. 내 손길은 수천 년간 땅에 있었고, 내 눈길은 줄곧 만인을 굽어살폈지만, 내 손이 사람의 목숨을 장난감처럼 함부로 가지고 논 적은 없다. 나는 사람이 쏟는 심혈을 헤아리고, 사람이 치르는 대가도 이해하고 있기에 사람이 방심한 틈을 타서 형벌을 내리거나 나쁜 것을 주고 싶지는 않다. 그저 계속 사람에게 공급하고 베풀 뿐이다. 그러니 사람이 누리는 모든 것은 나의 은혜요, 내 손에서 나온 풍요로움인 것이다. 내가 땅에 있기에 사람은 굶주림의 고통을 겪지 않고, 내가 주는 누릴 거리를 얻을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내 축복 속에서 살고 있거늘, 모두가 내 형벌 속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냐? 산은 깊은 곳에 자신만의 풍요로움을 가지고 있고, 물은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 내 말 속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즐기고 경험할 양식이 그보다 더 많지 않겠느냐? 내가 땅에 있으면 사람도 그로 인한 축복을 누린다. 하지만 내가 땅을 떠날 때, 즉 내 사역이 완성될 때, 사람은 두 번 다시 자신의 ‘연약’을 이유로 내게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17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27)

너희는 정말로 큰 붉은 용을 증오하느냐? 진심으로 증오하느냐? 왜 내가 이렇듯 여러 차례 묻겠느냐? 왜 내가 이런 질문을 거듭 반복하겠느냐? 너희 마음속에 있는 큰 붉은 용의 형상은 대체 어떠하냐? 정말로 없앴느냐? 정말 ‘아비’처럼 대하지 않게 되었느냐? 모든 사람은 내 질문에 담긴 뜻을 알아야 한다. 그 뜻은 대중의 분노를 유발시키려는 것도, 반기를 들게 하려는 것도, 사람에게 ‘스스로 살길을 찾게’ 하려는 것도 아니라, 모든 사람을 큰 붉은 용의 결박에서 해방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조급해하지 말라. 내 말이 모든 것을 이룰 것이다. 아무도 개입할 수 없고, 아무도 내가 하려는 사역을 할 수 없다. 나는 온 땅의 기운을 깨끗하게 하고, 땅의 마귀들을 흔적도 없이 소탕할 것이다. 나는 일을 시작했고, 큰 붉은 용이 사는 곳에서 형벌의 시작 단계 사역을 할 것이다. 여기에서 내 형벌은 이미 온 우주에 내렸고, 큰 붉은 용과 온갖 더러운 귀신은 결코 내 형벌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내가 온 땅을 감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땅의 사역을 완성할 때, 즉 심판 시대가 끝날 때, 나는 본격적으로 큰 붉은 용을 형벌할 것이다. 나의 백성은 틀림없이 내가 그것에게 내리는 공의로운 형벌을 볼 것이고, 나의 공의에 칭송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나의 공의로 말미암아 영원히 나의 거룩한 이름을 찬양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본격적으로 너희의 본분을 이행하고, 온 땅에서 나를 영원토록 찬미할 것이다!

심판 시대가 절정기에 들어설 때, 나는 내 사역을 서둘러 끝내지 않고, 더 나은 효과를 위해 형벌 시대의 ‘증거’들을 결합해 모든 백성에게 보여 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증거’는 내가 큰 붉은 용에게 형벌을 가하는 수단이다. 나는 백성에게 이것을 직접 보게 하여 나의 성품을 더 잘 알게 할 것이다. 백성이 나를 누릴 때가 큰 붉은 용이 ‘형벌받을’ 때이다. 큰 붉은 용의 민중이 일어나 그것을 저버리게 하는 것이 나의 계획으로, 이는 내가 백성을 온전케 하는 방식이자 모든 백성의 생명이 자랄 좋은 기회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28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28)

밝은 달이 떠오를 때 조용한 밤은 순식간에 깨진다. 달이 꽉 차오르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좋은 기분에 취한 모든 사람은 달빛 아래 조용히 앉아 달빛에 비친 아름다운 광경을 감상한다. 과거를 회상하는 것 같기도 하고, 미래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한 사람의 심정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사람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지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 맑은 향기가 퍼진다. 한 줄기 ‘미풍’이 불어오자 사람은 그윽한 향기를 느끼며 그것에 취해 깨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때가 바로 내가 인간 세상에 임한 때라, 사람은 더더욱 그윽한 향기를 느끼게 되고, 나아가 모두가 향기 속에서 살게 된다. 나는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며, 사람은 나와 화목하게 산다. 사람은 더 이상 나를 다른 눈으로 보지 않고, 나는 더 이상 사람의 부족함을 훈계하지 않는다. 사람의 얼굴에서는 수심이 사라지고, 전 인류를 위협하는 죽음도 사라진다. 오늘날 나는 사람과 함께 형벌 시대로 발을 내디디고,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아간다. 나는 나의 사역을 하고 있다. 즉, 인간 세상에, 인류의 패역한 곳에 나의 채찍을 내리친다. 사람의 눈에 나의 채찍은 초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나의 채찍은 내 원수들을 놓아주지 않고, 나를 대적하는 자에게서 원래 기능을 발휘한다. 내 손에 있는 모든 것은 내 본래 뜻에 따라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내 뜻을 거스른 것과 변질된 것은 하나도 없다. 이에 물은 포효하고, 산은 무너지고, 강은 붕괴되고, 사람은 이랬다저랬다 변덕을 떨고, 태양은 어두워지고, 달은 칠흑으로 변한다. 사람은 더 이상 평안할 날이 없고, 땅은 더 이상 평온할 때가 없으며, 하늘은 더 이상 차분하지도, 침묵하지도, 인내하지도 않는다. 만물은 다시 ‘바뀌어’ ‘원래 모습’을 회복한다. 땅의 가정은 모두 ‘파탄’되고, 땅의 나라는 ‘분열’되며, 더 이상 ‘부부가 함께 모이는’ 날도, ‘모자가 재회하는’ 때도, ‘부녀가 만나는’ 시간도 없을 것이다. 땅의 모든 옛 모습은 나에 의해 깨질 것이다. 나는 사람에게 감정을 ‘표출’할 기회를 남겨 두지 않는다. 내게는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감정에 대한 나의 증오는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사람은 사람과의 ‘정’ 때문에 나를 한쪽에 밀쳐 두었고, 그로 인해 나는 사람의 눈에 ‘제삼자’가 되었다. 또한, 사람은 사람과의 ‘정’ 때문에 나를 잊었고, 사람의 정 때문에 기회를 틈타 다시 ‘양심’을 주워 들었으며, 사람의 정 때문에 언제나 나의 형벌을 싫어했다. 사람은 정 때문에 늘 내가 공정하지도 의롭지도 않다고 말하고, 내가 일을 처리할 때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설마 땅에 내 ‘친족’이라도 있단 말이냐? 누가 나처럼 내 모든 경륜을 위해 침식을 잊고 밤낮으로 애썼더냐? 사람이 어찌 하나님과 비교할 수 있겠느냐? 어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느냐? 창조주인 하나님이 어찌 피조물인 사람과 동류가 되겠느냐? 내가 어찌 계속 사람과 함께 땅에서 생활하며 움직일 수 있겠느냐? 누가 내 마음을 걱정하고 헤아릴 수 있겠느냐? 설마 사람의 간청으로 되겠느냐? 나는 사람과 모이고 사람과 동행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리고 확실히 지금까지 사람은 나의 보살핌과 보호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나의 보살핌에서 벗어나는 날이 언제 오겠느냐? 사람은 나의 마음을 걱정하고 헤아려 본 적이 없다지만, 누가 빛이 없는 땅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겠느냐? 나의 축복이 있었기에 사람은 오늘날까지 살아온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28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29)

각국 정세는 상당히 혼란스럽다. 하나님의 채찍이 땅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땅의 상황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볼 수 있는데, ‘물은 포효하고, 산은 무너지고, 강은 붕괴된다’는 것은 땅에서 채찍질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이로써 “땅의 가정은 모두 ‘파탄’되고, 땅의 나라는 ‘분열’되며, 더 이상 ‘부부가 함께 모이는’ 날도, ‘모자가 재회하는’ 때도, ‘부녀가 만나는’ 시간도 없을 것이다. 땅의 모든 옛 모습은 나에 의해 깨질 것이다.” 이는 땅에 있는 모든 가정의 상황이다. 물론 전부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대체적으로 그런 상황이라는 말이다. 또 한편으로는 이 흐름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앞으로 처하게 될 상황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는 말씀의 형벌을 받고, 이방인이 재난을 겪은 후,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가족 관계에 묶이지 않고 하나님나라에서 충성을 다하는 시님(원문: 秦國) 사람이 될 것임을 예시한다. 그러기에 더 이상 ‘부부가 함께 모이는’ 날도, ‘모자가 재회하는’ 때도, ‘부녀가 만나는’ 시간도 없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은 ‘가족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산산조각 나는’ 상황을 맞게 된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는 마지막 사역이다. 하나님은 전 우주로 이 사역을 확대하고자 하기 때문에, 이참에 ‘감정’이라는 두 글자의 의미를 사람에게 ‘밝혀’ 하나님의 뜻이 모든 사람의 가정을 깨뜨리는 것임을 보여 준다. 이는 하나님이 형벌로 전 인류의 모든 ‘가정 분쟁’을 해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땅에서 마지막 부분의 사역을 마무리할 수 없다. 마지막 부분의 말씀은 인류의 최대 약점을 분명하게 지적했다. 사람은 모두 ‘정’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어떤 사람도 피하지 않고 전 인류의 마음속에 숨겨진 비밀을 드러냈다. 왜 감정을 떨쳐 버리지 못하느냐? 그것이 양심의 기준보다 높단 말이냐? 양심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느냐? 감정이 난관을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느냐? 하나님의 눈에 감정은 하나님의 원수다. 설마 하나님이 이를 명확히 말씀하지 않았단 말이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의 비밀에 대한 해석ㆍ제28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30)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는 하나님 성품의 일부가 담겨 있다. 하나님의 성품은 말씀으로 다 나타낼 수 없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풍성한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사람이 볼 수 있는 것과 알 수 있는 것에는 결국 한계가 있다. 사람의 능력도 결국 한계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명확하게 말씀한다 해도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바로 “번개 속에서 모든 동물이 본모습을 드러냈다. 나의 빛을 받아 사람도 원래의 거룩함을 회복했다. 패괴된 옛 세상아! 드디어 더러운 물에서 무너지고, 물에 잠겨 진흙이 되었구나!”라는 말씀처럼 말이다. 모든 말씀에는 하나님의 어떠함이 담겨 있다. 사람은 이 말을 알고는 있어도 이 말씀의 함의를 이해한 적은 없다. 하나님의 눈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의 원수에 속한다. 즉, 악령에 속한 자는 모두 동물에 속한다. 이로부터 교회의 실제 상태를 살펴보면, 인위적인 훈계, 채찍질, 직접적인 출교나 인위적인 어떤 방법을 거치지 않아도, 또 누가 명확히 알려 주지 않아도, 모든 사람은 하나님 말씀의 빛 비춤을 통해 자신을 점검하며, 뱃속에 얼마나 많은 병이 있는지 ‘현미경’의 투시로 똑똑히 본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각종 영들은 부류대로 나뉘고 원래 모습을 드러내는데, 천사에 속한 영도 점점 더 많은 빛 비춤과 깨우침을 얻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원래의 거룩함을 회복했다.”라고 말씀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최종적으로 얻을 성과에 근거해서 한 말씀이다. 물론 지금은 아직 완전할 수 없다. 이것은 맛보기일 뿐이지만, 이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으며, 나아가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쓰러지고, 모든 사람이 점차 거룩해지는 과정에서 패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말한 “물에 잠겨 진흙이 되었구나!”라는 것은 하나님이 불로 세상을 멸한다는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한 ‘번개’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킨다. 하나님이 크게 진노할 때면 온 세상은 이로 인해 갖은 재난을 겪는다. 이는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것과 같다. 하늘 위에 서서 보면 땅에서 온갖 재앙이 전 인류에게 나날이 가까워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높은 곳에 서서 살펴보면 마치 지진이 일어나기 전처럼 땅에서 각종 현상이 보인다. 곳곳에서 불물이 마구 움직이고, 곳곳에서 용암이 흐르며, 산이 이동하고, 곳곳에 섬뜩한 빛이 번쩍이며, 전 세계는 불 속에 잠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진노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며, 하나님이 심판할 때이므로 육에 속하는 자는 모두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나라 간의 전쟁, 사람 간의 싸움으로 세상을 멸할 필요가 없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형벌의 요람 속에서 ‘자각적으로 즐기게’ 하면 된다. 누구도 벗어날 수 없으며, 하나하나 통과해야 한다. 이때가 지나가면 온 우주 아래는 다시 신성한 빛으로 빛나고, 전 인류는 다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온 우주 위에서 안식하며 매일 전 인류를 축복한다. 하늘 위는 처량하기 그지없는 모습이 아니라 창세 이래 없었던 생기를 회복한다. ‘6일’째, 그러니까 하나님이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때 하나님과 사람은 모두 안식에 들어간다. 온 우주 아래는 더 이상 혼탁하지도, 더럽지도 않고, 새롭게 바뀐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땅은 더 이상 적막하지 않고, 하늘은 더 이상 처량하지 않다.”라고 말씀한 것이다. 하늘나라에는 불의가 있었던 적도 없고, 사람의 정이 있었던 적도 없으며, 사람의 모든 패괴 성품이 있었던 적도 없다. 사탄의 방해가 없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으며, 하늘 위의 생활은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고, 하늘 위에 있는 사람은 모두 지혜와 하나님의 존엄을 가지고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의 비밀에 대한 해석ㆍ제18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31)

오늘의 모든 말씀은 앞으로의 일을 예언한 것으로, 다음 단계 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준비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교회 사람들에게 할 사역을 거의 다 했으니, 이제 ‘진노’의 방식으로 모든 사람 앞에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이 “나는 땅에 있는 사람이 내 모든 행사를 인정하게 만들 것이다. 또한, 내 행사가 ‘심판대’ 앞에서 증명되게 하여 온 땅에 있는 사람이 내 행사를 공인하고 굴복하게 만들 것이다.”라고 말씀한 것처럼 말이다. 이 말씀 속에서 뭔가 보지 못했느냐? 하나님의 다음 사역의 주요 사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우선 ‘정권’을 잡은 집 지키는 개들을 모두 승복시켜 더 이상 지위 쟁탈이나 암투를 벌이지 않고 스스로 역사(歷史)의 무대를 떠나게 할 것이다. 이 사역은 반드시 하나님이 땅에서 일으킨 각종 재앙과 기근을 통해 이뤄지나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때의 큰 붉은 용의 나라는 여전히 불결한 곳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고 형벌로만 존재를 나타낼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으로, 누구도 벗어나지 못한다. 이 기간에 큰 붉은 용의 나라에 거주하는 자는 모두 재앙을 맞이할 것이다. 물론 땅에 있는 ‘하나님나라’(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이때 바로 사실이 임하니 모든 사람이 겪어야 하지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이는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이다. 바로 이 사역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이 바로 원대한 계획을 펼칠 때이다.”라고 말씀한 것이다. 앞으로는 땅에 교회가 없기 때문에, 또 재난이 임하기 때문에 사람은 눈앞의 일에 허덕이느라 재난 속에서 하나님을 누리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지금 좋은 시절에 마음껏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 사실이 지나가면 하나님은 큰 붉은 용을 철저히 물리칠 것이고, 백성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역도 끝날 것이다. 그 후 하나님은 다음 단계의 일을 시작하여 큰 붉은 용의 나라를 철저히 멸망시키고, 마지막에는 전 우주의 사람을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은 다음 전 인류를 멸할 것이다. 이것이 앞으로의 사역 절차다. 그러니 너희는 지금의 평화로운 환경에서 하나님을 열심히 사랑해야 한다. 앞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할 기회가 없다. 육으로 있을 때만 하나님을 사랑할 기회가 있지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되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할 사람이 아예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피조물의 직무가 아니겠느냐? 그렇다면 너희가 살아 있는 동안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겠느냐? 생각해 보았느냐? 죽음에 이르러서야 사랑할 것이냐? 그건 빈말이 아니냐? 지금은 왜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하지 않느냐? ‘분주히’ 보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겠느냐? 하나님의 현 단계 사역이 곧 끝난다고 말한 이유는 하나님이 사탄 앞에서 이미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사람이 뭔가를 할 필요가 없으며,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이 관건이다. 하나님의 요구가 크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이 몹시 애타기 때문에 지금의 사역이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다음 단계 사역의 주요 사항을 보여 주었다. 여기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마음이 조급하지 않다면 미리 이런 말씀을 하겠느냐?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렇게 역사하는 것이니 너희가 자기 목숨을 아끼고 보호하는 것처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길 바란다. 이것이 바로 가장 의미 있는 인생이 아니겠느냐? 또 어디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 하느냐? 그건 너무 눈먼 것이 아니냐? 너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으냐? 하나님은 사랑하기에 합당한 분이냐? 사람은 아낄 가치가 있느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염려치 말고 담대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하나님이 너를 어떻게 대하는지 지켜보아라! 하나님이 너를 죽이기라도 하겠느냐? 어쨌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임무는 하나님을 위해 이것저것 기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네 인생이 더 가치 있고 즐거워질 수 있도록 더 중요한 일을 앞자리에 두어라. 그런 다음 너에 대한 하나님의 ‘처결’을 기다려라. 너의 계획표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조항이 들어 있는지 모르겠으나 모든 사람의 계획이 하나님이 이뤄 주는 것이 되고, 모두 실현되길 바란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의 비밀에 대한 해석ㆍ제42편> 중에서

이전: 하나님의 사역 알아 가기[1]

다음: 제6절 하나님의 성품, 소유와 어떠하심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나타나심을 맞이하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함께 탐구하며 이야기 나눠 보아요.
Messenger로 연락하기
카카오톡으로 대화하기

관련 콘텐츠

베드로가 ‘예수’를 알아 간 과정

베드로는 예수와 접촉하면서 예수에게 사랑스러운 점과 본받을 점, 공급받을 점이 많이 있다는 것을 보았으며, 예수에게서 하나님의 어떠함과 사랑스러운 점을 많이 발견했다. 그러나 처음에 베드로는 예수를 전혀 알지 못했다. 베드로는 20세부터 6년 동안...

안개를 걷어 내 천국으로 가는 길을 찾다

중국 천아이 저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주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노년의 나이에 접어들게 되었지요. 평생 주님을 믿었지만, 어떻게 해야 죄를 벗고 천국에 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제게 막막함과 고통을...

하나님나라시대는 말씀 시대이다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시대를 열고, 말씀으로 사역의 방식을 바꾸며, 말씀으로 전체 시대의 사역을 행한다. 이것이 말씀 시대에 하나님이 사역하는 원칙이다. 하나님은 성육신하여 각기 다른 위치에서 말씀함으로써 사람에게...

설정

  • 텍스트 설정
  • 테마

색상

테마

폰트

폰트 사이즈 조정

줄 간격 조정

줄 간격

페이지 너비

목차

검색

  • 페이지 내 검색
  • 도서 내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