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성품, 그리고 소유와 어떠하심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32)
나는 공의롭고, 신실하며, 사람의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는 하나님이다!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인지 내가 곧 드러낼 것이다. 당황하지 말라. 모든 것에는 다 나의 때가 있다. 누가 진심으로 나를 원하는지, 누가 진심으로 나를 원하지 않는지, 내가 하나하나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너희는 잘 먹고, 잘 마시고, 내 앞에서 나를 가까이하는 것에만 신경 쓰면 된다. 나의 일은 내가 직접 할 것이다. 속히 일을 이루려 하지 말라. 나의 사역은 단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그 속에는 나의 절차와 지혜가 있다. 그러므로 나의 지혜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내 손이 하는 일, 즉 선한 자에게 상을 주고 악한 자를 벌하는 것을 보여 주겠다. 나는 절대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자라면 나 역시 진심으로 사랑할 것이며,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 자라면 내 진노가 영원히 그와 함께할 것이다. 이로써 내가 바로 참하나님, 사람의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는 하나님임을 기억하게 할 것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른 모습을 보이지 말라. 나는 너의 모든 행위를 낱낱이 보고 있다. 너는 사람을 속여도 나를 속이지 못한다. 내가 전부 꿰뚫어 보고 있는데도, 나를 속이려 들다니,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모든 것은 내 손안에 있다. 너 자신이 총명하다고, 이해타산에 능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너에게 알려 주겠다. 사람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결국에는 내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한다. 만사와 만물은 다 내 손안에 있거늘, 사람 하나쯤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느냐! 피하지도 숨지도 말고, 속이거나 감추지도 말라. 내 영광의 얼굴과 진노, 심판이 공개되고 드러났건만, 아직도 보지 못한 것이냐? 진심으로 나를 원하지 않는 자들을 나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즉시 심판할 것이다. 나의 긍휼은 한계에 도달해 더는 존재하지 않으니, 더 이상 외식하지도, 함부로 날뛸 생각도 하지 말라.
나의 아들아, 유의해라. 내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라. 내가 책임지고 결정할 테니 겁내지 말라. 나의 그 좌우에 날 선 검을 들고 내 뜻에 따라 사탄과 끝까지 싸워라. 내가 너를 지켜 줄 것이니 걱정할 것 없다. 모든 숨겨진 것들이 공개되고 드러날 것이다. 나는 빛을 발하는 태양이니 인정사정없이 모든 어두운 면을 밝게 비출 것이다. 나의 심판은 이미 완전히 임했으며, 교회는 바로 전장이다. 너희 모두는 최후의 결전을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바칠 준비를 해야 한다. 너희가 나를 위해 아름다운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내가 지켜 주겠다.
조심해라. 현재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을 만큼 간사해서 미덥지 못하다. 오직 나만이 완전히 너희를 위할 수 있다. 내게는 간사함이 없으니 나를 의지하면 된다! 내 아들은 최후의 결전에서 반드시 승리를 거둘 것이다. 사탄이 나타나 마지막 발악을 하겠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내가 바로 너의 능력이고, 너의 전부이다. 이것저것 재지 말라. 그럴 시간이 없다. 내가 말했듯이, 나는 더 이상 너희를 끌고 가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촉박하기에 너희의 귀를 잡고 일깨워 줄 수는 없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오직 전투 준비에만 신경 써라. 그러면 내가 너를 완전히 책임질 것이다. 모든 것은 내 손안에 있다. 이것은 목숨을 건 혈투이니,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지만 똑똑히 기억해라. 나는 영원히 패배를 모르는 승자이다. 반면, 사탄은 반드시 멸망할 것이다. 이것 또한 나의 절차이자 나의 사역, 나의 뜻, 나의 계획이다!
이루어졌다!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겁먹지도, 두려워하지도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리니 너는 영원히 나와 함께 통치하리라! 내가 한 말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그 일이 곧 너희에게 임할 것이니 깨어 있어라! 내가 한 모든 말을 깊이 되새기며, 더는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 된다.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명심해라! 내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44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33)
나는 이미 일을 시작하여 악을 행하는 자와 집권자들, 하나님의 아들을 핍박하는 자들을 징벌하고 있다. 지금부터 마음으로 내게 맞서는 자가 있다면 나는 반드시 내 행정 법령의 손으로 그를 다스릴 것이다. 명심해라! 이것이 바로 내 심판의 시작이다. 누구도 봐주거나 놓아주지 않는다. 나는 인간적 감정이 없이 공의를 실행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이 점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내가 징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악행으로 인해 보응을 받는 것이다. 나는 함부로 사람을 징벌하지 않고, 억울하게 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나 공의를 실행한다. 나의 아들이라면 나는 반드시 사랑할 것이고, 나를 대적하는 악한 자라면 나는 반드시 증오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일 처리 원칙이다. 너희는 모두 나의 행정 법령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말의 두려움도 없고 내 앞에서 너무 조심성이 없으며, 내가 무엇을 온전케 하고 무엇을 만들려 하는지,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 내 나라에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 모를 것이다.
나의 행정 법령은 다음과 같다.
1. 누구든 마음으로 맞서는 자는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이다.
2. 내가 택한 자가 그릇된 생각을 품는다면 즉시 징계가 임할 것이다.
3. 나를 믿지 않는 자들은 한쪽으로 제쳐 두어 마음대로 지껄이고 행동하게 두었다가 마지막에 철저히 징벌하고 응징할 것이다.
4. 나를 믿는 자들은 시시각각 돌보고 보호하며 구원의 방식으로 생명을 공급해 줄 것이다. 이 사람들은 내 사랑이 함께하므로 절대 넘어지거나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설령 연약해진다 할지라도 일시적이며, 나는 그의 연약함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5. 반신반의하는 사람들, 즉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만 그리스도를 추구하지 않으며, 또한 대적하지도 않는 사람들은 가장 가련한 자들이다. 나는 일을 하여 그들로 하여금 확실히 보게 할 것이다. 그 일을 통해 그들을 구원하고 되돌아오게 할 것이다.
6. 가장 먼저 내 이름을 받아들인 장자들은 복이 있다! 나는 반드시 너희에게 가장 좋은 복을 내려 마음껏 누리도록 할 것이다. 이것은 누구도 막지 못한다.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해 완벽하게 예비되어 있다. 이는 나의 행정 법령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56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34)
나의 말을 보고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내가 결코 너를 소홀히 대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믿는 것이 너에게서 이루어지도록 할 것인데, 이는 나의 축복이 너에게 임하는 것이다. 나의 말은 모든 사람의 내면에 감추어져 있는 비밀을 명중한다. 모든 이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나는 바로 너희의 치명적인 약점을 치료해 줄 명의이니 내 앞으로 오기만 하면 된다. 내가 왜 앞으로는 근심과 눈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겠느냐? 바로 이 때문이다. 내게는 모든 것이 이뤄지지만,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패괴되었으며, 전부 공허하고 인류를 속이는 것뿐이다. 너는 반드시 내 앞에서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든 복을 보고 누리게 될 것이다. 내 앞으로 오지 않는 자는 분명 거역하고 나를 대적하는 자일 테니, 나는 그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고 무거운 형벌을 가할 것이다. 이 점을 기억해라! 내 앞에 많이 오는 사람일수록 더 많이 얻을 것이나, 이는 은혜에 불과하며, 그 후에 더 큰 복을 얻게 될 것이다.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나는 이 사람들, 즉 지금의 너희를 예정하고 택하였다. 성품, 자질, 모습, 체격, 출생 가정, 직업, 결혼 등 너의 모든 것, 심지어는 너의 머리카락 색깔, 피부색, 출생 시간까지도 다 내가 직접 안배했다. 네가 매일 무엇을 할지, 어떤 사람을 만날지도 내 손으로 안배한 것이며, 오늘날 너를 내 앞으로 인도한 것은 더더욱 내가 안배한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담담히 앞으로 나아가라. 오늘날 내가 너에게 누리도록 한 것은 당연한 너의 몫으로, 내가 세상을 창조했을 때부터 일찍이 예정해 놓은 것이다. 사람은 모두 이렇게 극단적이다. 마음이 너무 강퍅하거나 뻔뻔하고, 나의 계획과 안배에 따라 행하지 못한다. 앞으로는 그러지 마라. 내게는 모든 것이 다 자유로우니 스스로를 옭아매지 마라. 그러면 생명이 해를 입을 것이다. 기억하였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74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35)
나는 유일한 하나님 자신이고, 유일한 하나님의 본체이다. 나, 곧 이 육신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완벽한 발현이다. 누가 감히 나를 경외하지 않겠고, 누가 눈빛으로 나와 맞서겠으며, 누가 입으로 나를 대적하겠느냐? 그런 자는 반드시 내 저주와 진노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진노가 있으므로 저주함). 또 누가 감히 나에게 불충하고 불효하며, 허튼수작을 부리겠느냐? 그런 자도 반드시 나의 증오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다. 나의 공의와 위엄, 심판은 영원히 세세토록 존속할 것이다. 처음에 나는 자비와 긍휼이었지만, 이는 내 완전한 신성의 성품이 아니다. 공의와 위엄, 심판이야말로 나, 완전한 하나님 자신의 성품이다. 은혜시대에 나는 자비와 긍휼이었다. 그때 내가 자비와 긍휼을 지녔던 것은 완성해야 할 사역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후에는 더 이상 자비니 긍휼이니 할 필요가 없어졌다(앞으로도 없을 것임). 오직 공의와 위엄, 심판뿐이다. 이것이야말로 나의 정상 인성에 완전한 신성이 더해진 완전한 성품이다.
나를 알지 못하는 자들은 무저갱에 떨어져 멸망할 것이고, 나를 확신하는 자들은 내 사랑의 보살핌과 보호 속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내가 음성을 발하면 온 우주는 물론 땅끝도 진동한다. 누가 내 말을 듣고도 전전긍긍하지 않겠느냐? 나를 경외하는 마음이 들지 않겠느냐? 누가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나의 공의와 위엄을 깨닫지 않으랴! 또 누가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나의 전능과 지혜를 보지 않으랴! 누구든 유의하지 않으면 여지없이 죽음을 당할 것이다. 유의하지 않는 자는 바로 나를 대적하는 자이자 나를 알지 못하는 자이고, 천사장이며, 가장 방자한 자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돌이켜 보아라. 누구든 방자하고 독선적이며 거만하게 굴고 스스로를 크게 여긴다면, 그자는 분명 내가 증오하는 대상이자 멸망될 대상이다!
지금 나는 내 나라의 행정 법령을 다음과 같이 공포한다. 모든 것이 내 심판 안에 있고, 모든 것이 또한 내 공의와 위엄 안에 있으며, 나는 누구에게든 공의를 행할 것이다. 말로는 나를 믿는다고 하지만 마음속으로 내게 맞서거나 나를 이미 저버린 자는 내가 단번에 차 버릴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다 나의 때가 있다.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할지라도 나에게 풍자의 뜻이 담긴 말을 하는 자는 즉시 죽을 것이다(그의 영, 혼, 육을 가리킴). 내가 사랑하는 자를 억압하거나 냉대하는 자는 내가 즉시 진노로 심판할 것이다. 즉,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질투하며, 나를 공의롭지 않다고 여기는 자는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넘겨 심판받게 할 것이다. 성실하고 무던한 자(지혜가 부족한 자 포함), 나를 진심으로 대하는 자는 모두 나의 나라에 남길 것이다. 훈련받지 못한 자, 즉 지혜와 식견이 부족한 정직한 자들이 내 나라에서 권세를 잡겠지만 다듬어지고 깨지는 과정은 거쳐야 한다. 훈련받는 과정이 결코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나는 이를 통해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나의 전능과 지혜를 보게 하려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내게 의혹을 품고 있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를 단번에 차 버리겠다. 그런 자는 단 한 명도 원치 않는다(이러한 때조차 아직 나에게 의심을 품고 있다니, 나는 이런 자를 혐오한다). 내가 전 우주에서 하는 일을 통해 정직한 자들로 하여금 나의 기묘한 행사를 보게 할 것이다. 이로써 그들의 지혜와 식견과 분별력을 키워 줄 것이다. 반대로 간사한 자들은 나의 기묘한 행사로 인해 순식간에 파멸될 것이다. 일찍이 나의 이름을 받아들인 장자들(거룩하고 흠이 없는 정직한 자들)은 먼저 내 나라에 들어가 나와 함께 만국 만민을 다스리고, 내 나라에서 왕권을 잡아 만국 만민(모든 장자들만이 내 나라에 있고 다른 사람은 없음을 의미함)을 심판할 것이다. 만국 만민 중에 심판을 받고 회개한 자들은 나의 나라에 들어가 백성이 되겠지만, 뻔뻔스럽게 회개하지 않는 자는 무저갱에 던져질 것이다(영원한 멸망을 가리킴). 이는 내 나라에서 이뤄지는 마지막 심판이며, 내가 세상을 완전히 깨끗게 정리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로부터 더 이상 불의도, 슬픔도, 눈물도, 탄식도 없을 것이며, 세상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온통 그리스도의 발현이고 그리스도의 나라이다. 이 얼마나 큰 영광이냐! 얼마나 큰 영광이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79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36)
이제 너희에게 나의 행정 법령을 반포하겠다(행정 법령은 반포된 날부터 시행되며,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형벌을 내림).
나는 말한 대로 하며, 모든 것은 나의 손에 달려 있다. 이를 의심하는 자는 필히 쳐 죽임을 당할 것이다.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즉시 화근을 제거하고 응어리진 마음을 풀 것이다(이로써 쳐 죽임을 당한 자는 내 나라의 백성일 리가 만무하며, 사탄의 후손임이 확실하다는 사실이 증명됨).
장자인 사람은 오지랖 넓게 행동하지 말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자신의 본분을 이행해야 한다. 나의 경륜을 위해 자신을 바치고, 가는 곳마다 나를 아름답게 증거해야 하고, 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해서는 안 되고, 잠시라도 제멋대로 행동해서는 안 되며, 아들들과 백성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항상 장자로서 모두의 앞에 서고,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야지, 남에게 굽신대서는 안 된다. 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해야지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 장자도 각자의 역할이 있는 것이지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내가 너희에게 맡긴 직책으로, 회피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자신을 바치고 맡은 일을 완수해야 한다.
앞으로 온 우주 세계에서 아들들과 백성들을 목양하는 일을 장자들에게 맡겨 완성하게 할 것이다. 이를 마음과 뜻을 다해 완수하지 못하는 자는 내가 반드시 형벌을 가할 것이다. 이것은 나의 공의이다. 나는 장자도 쉽사리 넘어가거나 용서하지 않는다.
아들들과 백성들 가운데서 어느 누가 한 명의 장자에게라도 조롱하거나 욕설을 한다면, 나는 반드시 무거운 형벌을 내릴 것이다. 장자는 나를 대변하므로 그에게 하는 것이 곧 내게 하는 것이다. 이는 나의 행정 법령에서 가장 엄격한 조항이다. 아들들과 백성들 중에 나의 행정 법령을 거스르는 자가 있다면 나는 나의 장자로 하여금 자신의 뜻에 따라 나의 공의를 시행하도록 할 것이다.
나를 가볍게 대하고, 내가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과 나의 외적인 일만 중시하며, 나의 부담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않는 사람을 나는 조금씩 멀리할 것이다. 이는 귀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나를 위한 봉사를 마친 사람은 소란을 피우지 말고 조용히 물러나야 한다. 아니면 내가 너를 손볼지도 모른다(이 조항은 추가 사항임).
오늘부터 모든 장자가 철장(鐵杖)을 들고 나의 권병을 시행하여 만국 만민을 다스릴 것이다. 그들은 만국 만민 가운데서 다니고, 만국 만민 가운데서 나의 심판, 공의, 위엄을 시행할 것이다. 나의 경륜이 완성되고 나의 모든 장자가 나와 함께 다스리므로 아들들과 백성들은 나에게 경외심을 품고, 영원토록 나를 찬미하고, 나에게 환호하며, 영광을 돌릴 것이다.
이는 내 행정 법령의 일부이며, 앞으로는 사역의 진행 단계에 따라 너희에게 알릴 것이다. 위의 행정 법령을 통해 너희는 내 사역의 발걸음과 진행 단계가 어디에 이르렀는지 보아야 한다. 이것이 확실한 증거다.
나는 일찌감치 사탄에게 심판을 시작했다. 나의 뜻이 막힘없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나의 장자가 나와 함께 영광을 얻었으므로 나는 세상과 사탄에게 속하는 모든 것들에게 나의 공의와 위엄을 보여 주었다.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이고, 사탄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나와 이야기를 나눌 자격이 없기 때문임).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계속해 왔을 뿐이다. 나의 사역이 한 단계 한 단계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고, 나의 뜻이 온 땅에서 막힘없이 통하고 있다. 그래서 사탄이 수치를 당하게 되었고 완전히 멸망하였다. 하지만 이것으로 만족하지 못해 나는 모든 장자로 하여금 사탄에게 나의 행정 법령을 시행하게 했다. 사탄에게 나의 진노가 임했음을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의 영광도 보여 주었다(나의 모든 장자가 사탄에게 치욕을 안겨 줄 수 있는 가장 힘 있는 증거임을 보여 준 것). 나는 사탄을 직접 벌하는 대신 나의 모든 장자를 통해 공의를 시행하고 위엄을 보여 주었다. 사탄이 과거에 나의 아들을 학대하고 핍박하고 유린했으므로 오늘날 사탄이 자기 역할을 다 한 뒤에는 그것을 처리할 권한을 장성한 장자에게 맡긴다. 세계 각국이 겪고 있는 극심한 혼란은 사탄이 힘없이 무너졌음을 나타내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사람 간의 싸움, 국가 간의 전쟁을 통해 사탄의 나라가 무너졌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나는 과거에는 단계별로 조금씩 사탄에게 치욕을 안기고 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자,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지 않았다. 그리고 사탄을 완전히 소멸시킬 때 나의 큰 능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나의 말은 그대로 이루어졌고, 사람의 생각에 맞지 않는 초자연적인 일도 이뤄질 것이다(곧 임할 복을 말함). 나는 실제의 하나님 자신이니 규례에 전혀 얽매이지 않는다. 각기 다른 내 경륜에 따라 말을 하므로 과거에 했던 말이 오늘날 성립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지 말라! 나는 규례를 지키는 하나님이 아니며, 나에게는 모든 것이 자유롭고 초월적이며 완전히 해방된다. 내가 했던 지난날의 말들이 오늘에 이르러서는 어쩌면 뒤처졌을 수도 있고 없어졌을 수도 있다(그러나 나의 행정 법령은 한 번 반포되면 영원히 바뀌지 않음). 이것이 내 경륜의 절차이다. 날마다 새로운 빛과 계시를 줄 것이니 너희는 규례를 고집하지 말라. 이것은 나의 계획이다. 나는 매일 너희에게 빛을 계시해 줄 것이며, 우주 세계에 나의 음성을 발할 것이다. 알겠느냐? 이는 너의 직책이며 내가 너에게 맡긴 사명이니, 한시라도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나는 나의 검증에서 통과한 사람을 끝까지 쓸 것이며,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는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므로 어떤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이것이 나의 전능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88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37)
내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권병이 있고 심판이 있으므로 누구도 그것을 바꿔 놓을 수 없다. 내가 말을 한 이상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것이 나의 성품이다. 나의 말이 곧 권병이므로 이를 고치려는 자는 형벌을 거스르는 것이므로 반드시 내게 죽임 당할 것이다. 심한 자는 목숨을 잃고 음부로, 그리고 무저갱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는 인류에 대한 내 유일한 처리 방식이며, 사람은 바꿀 수 없다. 이것이 나의 행정 법령이다. 명심하라! 누구도 거슬러서는 안 된다. 반드시 나의 뜻대로 행해야 한다! 여태까지 나는 너희에게 몹시 관대했다. 그저 말만 했을 뿐, 죽인다는 것과 관련된 말들은 아직 사실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모든 재앙(행정 법령을 가리킴)이 연달아 임하여 내 뜻에 맞지 않는 모든 자를 징벌할 것이다. 반드시 사실이 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나의 진노를 보지 못하고 계속 제멋대로 굴 것이다. 이는 내 경륜의 절차이자, 다음 단계 사역의 방식이다. 이것을 미리 알려 주는 이유는 너희가 이를 거슬러 영원한 침륜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 오늘 이후로 나는 나의 뜻에 따라 장자들 외의 모든 사람을 하나씩 자기 자리에 앉게 한 후 형벌할 것이며, 누구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어디 한번 더 방탕하게 굴어 보아라! 더 거역해 보거라! 내가 말했듯이, 나는 누구에게나 공의로우며,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이를 통해 범할 수 없는 내 성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나의 본체이며, 사람이 바꿔 놓을 수 없다. 사람들은 모두 내 말을 듣고, 내 영광의 얼굴을 보며, 완전히, 그리고 절대적으로 내게 순종해야 한다. 이것이 나의 행정 법령이다. 우주 땅끝의 모든 사람이 나를 찬미하고 내게 영광을 돌려야 한다. 나는 유일한 하나님 자신이자, 하나님의 본체이기 때문이다. 나의 말과 내가 사용하는 어휘, 나의 언행은 누구도 바꿔 놓을 수 없다. 이는 내 자신이 하는 일이며,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그리스도의 최초의 말씀ㆍ제100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38)
내가 계획한 사역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한시도 멈춘 적이 없다. 이미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에 들어섰고 너희를 나의 나라로 데려와 나의 백성이 되게 한 이상, 나는 너희에게 또 다른 요구를 하겠다. 즉, 나의 이 시기의 헌법을 너희에게 반포하겠다.
나의 백성이라고 불리는 자는 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 즉, 시련 속에서 굳게 서야 한다. 나를 기만하고 내게 숨기면서 내 뒤에서 떳떳하지 못한 짓을 저지르는 자가 있다면, 그런 자는 일률적으로 출교시켜 나의 집과 격리시키고, 나의 처분을 기다리게 할 것이다. 이전에 나에게 충성하지도, 공경하지도 않은 자와 오늘날 또 나서서 공개적으로 나를 판단하는 자 역시 나의 집 밖으로 출교시킬 것이다. 나의 백성이라면 반드시 항상 나의 부담을 생각하고 내 말을 깨닫기 위해 추구해야 한다. 나는 그런 사람만 깨우쳐 줄 것이다. 그들은 틀림없이 나의 깨우침과 인도하에 살게 되고, 형벌 또한 절대 받지 않을 것이다. 나의 부담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앞날만 중시하는 자들, 즉 모든 행위가 내 마음을 만족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밥 빌어먹기’ 위함인 ‘비렁뱅이’ 같은 부류들은 내가 절대 쓰지 않을 것이다. 그자들은 천성적으로 나의 부담을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성도 비정상적이기 때문이다. 그자들의 머리는 ‘영양’실조에 걸렸으므로 집으로 돌아가 ‘보양’해야 한다. 나는 그런 자를 쓰지 않는다. 나의 백성들은 저마다 반드시 나에 대해 알아 가는 것을 자기 본연의 사역으로 여겨 끝까지 해 나가야 하고, 먹고 입고 자듯이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중에는 나에 대한 인식이 밥 먹듯이 ‘익숙’하고, 식은 죽 먹듯이 전혀 힘들지 않은 정도가 되어야 한다. 내가 한 말은 한 마디 한 마디 확신을 가지고 철저히 이해해야지 얼렁뚱땅 넘어가서는 안 된다. 나의 말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자는 나를 직접 대적하는 자이다. 나의 말을 먹지도 않고, 인식하려 노력하지도 않는 자는 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자이니 직접 내 집 문밖으로 깡그리 내칠 것이다. 전에 말했듯이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람의 수가 아니라 알짜이기 때문이다. 백 사람 중에서 단 한 명만이라도 내 말에서 나를 알 수 있다면, 나는 차라리 나머지 사람들을 도태시킬지라도 그 한 명만을 집중적으로 깨우쳐 주고 빛을 비춰 줄 것이다. 여기에서 보다시피, 사람의 수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나를 나타내고 살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밀(낱알이 꽉 차지 않았을지라도)을 원하지 가라지(낱알이 꽉 차고 사람들이 흡족해할지라도)는 원하지 않는다. 추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태만하기만 한 그런 자는 내 이름을 계속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마땅히 자발적으로 떠나야 한다. 나는 그런 자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5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39)
내 집의 백성이 된 이상, 또 내 나라에서 충성을 다하는 사람인 이상, 모든 행위는 반드시 내가 요구한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너에게 떠다니는 구름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새하얀 눈이 되라는 것인데, 본질은 물론 가치도 있어야 한다. 나는 본래 거룩한 곳에서 왔으므로 이름만 있고 본질이 없는 연꽃과는 전혀 다르다. 연꽃은 본래 진흙에서 온 것이지, 거룩한 곳에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 하늘이 땅에 내려오고 새 땅이 궁창에 펼쳐질 때는 바로 내가 인간 세상에서 본격적으로 사역할 때이기도 하다. 사람 중에 나를 아는 자가 있더냐? 내가 강림하는 것을 본 자가 있더냐? 내게는 이름뿐만 아니라 본질도 있음을 깨달은 자가 있더냐? 내가 손으로 구름을 걷어 내고 궁창을 자세히 살펴보니, 우주에는 내 손으로 안배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고, 우주 아래에서는 나의 대업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미약한 힘’을 바치고 있다. 땅에 있는 사람에 대한 나의 요구는 크지 않다. 그것은 내가 본래 실제 하나님이며, 사람을 만들고 주관도 하는 전능자이기 때문이다. 사람 중에 그 누가 전능자의 눈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하늘 끝이나 바다 끝에 있다고 한들 어찌 내 영의 감찰을 피할 수 있겠느냐? 사람은 나의 영을 ‘알기도’ 하지만 거스르기도 한다. 나의 말은 모든 사람의 추악한 몰골뿐 아니라 마음과 생각을 분명히 짚어 냄으로써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을 내 빛에 드러나게 했고, 나의 감찰 속에서 쓰러지게 했다. 사람은 쓰러졌지만 그 마음은 감히 내게서 멀리 떠날 수 없었다. 피조물 중에 그 누가 나의 행사로 인해 나에 대한 ‘사랑’이 생기지 않겠느냐? 그 누가 나의 말로 인해 ‘사모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겠느냐? 그 누가 나의 사랑으로 인해 그리움의 정이 생기지 않겠느냐? 그런데 사람은 사탄에 의해 패괴되어 내가 요구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내가 요구한 ‘최저 기준’에 이르는 것조차 ‘걱정’하는데, 하물며 사탄이 극도로 미쳐 날뛰고 기고만장한 시대인 오늘날은 어떻겠느냐? 혹은 사람이 이미 그것에게 ‘짓밟혀’ 온몸이 더러워진 때는 어떻겠느냐? 사람이 타락하여 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함으로 인해 내가 슬퍼하지 않은 적이 있더냐? 설마 내가 사탄을 불쌍히 여기겠느냐? 설마 내가 사랑한 것이 잘못된 것이겠느냐? 사람이 나를 거역할 때 나는 마음속으로 몰래 눈물을 흘렸고, 사람이 나를 대적할 때 나는 형벌을 주었다. 또한 사람이 내게 구원받아 죽음에서 부활했을 때 나는 정성 들여 양육했고, 사람이 내게 순종할 때 내 마음은 상쾌하기 그지없었는데, 순식간에 천지 만물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기분이었다. 사람이 나를 찬미할 때 내가 어찌 그 기쁨을 누리지 않겠느냐? 사람이 나를 증거하고 나에 의해 얻어질 때, 내가 어찌 영광을 받지 않겠느냐? 사람이 행하는 모든 것은 다 내가 지배하고 공급하지 않더냐? 내가 지시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모두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저마다 ‘나를 등지고’ ‘사람이 좋아하는’ 짓을 할 것이다. 너는 너 자신이 한 일과 행동, 그리고 말을 육신을 입은 내가 전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오랜 세월 나는 갖은 고초를 겪었으며, 인간 세상의 고통도 겪어 보았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어떤 고난도 육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실망하도록 할 수 없었고, 더욱이 그 어떤 즐거움도 육에 있는 사람이 나에 대해 냉대하거나 믿음을 잃게 할 수도, 나를 저버리게 할 수도 없었다. 설마 나를 향한 사람의 사랑이 고난도 즐거움도 없는 것에 제한되어 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9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40)
오늘날, 내가 너희를 이 단계까지 이끌어 온 이상, 나는 합당한 안배를 해 놓았고 나 자신의 목적도 갖고 있다. 지금 그것을 너희에게 알려 준다고 한들 너희가 정말 알 수 있겠느냐? 나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을 위해 활로를 찾지 않는 자가 있더냐?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지 않는 자가 있더냐? 하지만 사람의 생각이 아무리 풍부하고 다채롭다 한들 만세 후의 오늘이 이럴 줄 누가 예상했겠느냐? 설마 네 스스로 노력한 결과란 말이냐? 너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얻어 낸 것이란 말이냐? 너의 머리로 그려 낸 아름다운 화면이란 말이냐? 내가 온 인류를 이끌지 않았다면, 어느 누가 나의 안배에서 벗어나 다른 활로를 찾을 수 있었겠느냐? 설마 사람의 ‘상상’과 ‘바람’이 사람을 오늘날까지 이끌어 왔단 말이냐? 많은 사람들의 일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데, 이는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란 말이냐? 많은 사람은 일생이 예상 밖으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데, 이는 그들의 요구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이란 말이냐? 전체 인류를 통틀어, 전능자의 눈 아래에서 보살핌을 받지 않는 자가 있느냐? 전능자의 예정 속에서 생존하지 않는 자가 있느냐? 사람의 생사존망은 자신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냐? 사람의 운명은 자신이 주관할 수 있는 것이더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음을 원했는지 모르지만 죽음은 오히려 그들을 멀리 피해 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삶의 강자가 되길 원하고 죽음을 두려워했는지 모르지만, 부지불식간에 죽는 날이 다가와 그들을 죽음의 심연 속으로 떨어지게 하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고 대성통곡하였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련 속에서 넘어지고 시험 속에서 잡혀갔는지 모른다. 내가 비록 사람이 나를 분명히 볼 수 있도록 직접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가 그들을 격살하고 멸할까 봐 내 얼굴 보기를 무서워했는지 모른다. 과연 사람은 참으로 나를 알고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아무도 분명히 말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냐? 너희는 나를 무서워하고 내가 형벌을 내릴까 두려워하면서도 일어나 공개적으로 나를 대적하고 판단하는데, 설마 이것이 실제 상황이 아니란 말이냐? 사람이 전에 나를 알지 못한 것은 내 얼굴을 본 적도, 내 음성을 들은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내가 있다고 해도 어느 누가 모호하지 않겠느냐? 어느 누가 분명히 알고 있겠느냐? 나는 백성들이 나에 대해 모호하고 분명히 알지 못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이렇게 큰 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나는 살며시 인간 세상에 왔다가 표연(飄然)히 떠나간다. 누가 나를 본 적이 있느냐? 설마 태양이 붉다고 나를 볼 수 있겠느냐? 설마 달이 밝고 맑다고 나를 볼 수 있겠느냐? 설마 별들이 높이 떠 있다고 나를 볼 수 있겠느냐? 내가 올 때에는 사람도, 만물도 모르고, 내가 떠나갈 때에도 사람은 여전히 알아차리지 못하는데 누가 나를 증거할 수 있겠느냐? 설마 땅에 있는 사람의 찬미란 말이냐? 설마 들판에 피어 있는 백합이란 말이냐? 하늘을 나는 작은 새란 말이냐? 산속에서 포효하는 사자란 말이냐? 아무도 나를 완전하게 증거할 수 없다! 아무도 내가 하려는 일을 할 수 없다! 설령 한다 해도 효과는 또 어떠하겠느냐? 나는 날마다 많은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날마다 많은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감찰한다. 아무도 나의 심판에서 벗어난 적이 없고, 아무도 나의 심판의 실제를 벗어난 적이 없다. 내가 궁창 위에 서서 눈을 들어 멀리 바라보니, 부지기수의 사람들이 나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긍휼과 자비 속에서 살고 있다. 너희도 이런 상황에서 살고 있지 않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11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41)
땅에 있을 때, 나는 사람 마음속의 실제 하나님이고, 하늘에 있을 때, 나는 만물의 주재자이다. 나는 높디높은 산을 넘고 깊디깊은 물을 건너기도 했으며, 표연(飄然)히 사람들 가운데를 거닐기도 했다. 그 누가 감히 공개적으로 ‘실제 하나님 자신’에게 대적할 수 있겠느냐? 그 누가 감히 전능자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그 누가 감히 내가 확실히 하늘에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느냐? 또한 그 누가 감히 내가 틀림없이 땅에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느냐? 사람은 그 누구도 내가 거하는 곳을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하늘에 있을 때, 나는 초자연적인 하나님 자신이기만 하겠느냐? 땅에 있을 때, 나는 실제 하나님이기만 하겠느냐? 설마 만물을 주재하거나 인간 세상의 고통을 체험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내가 실제 하나님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수 있단 말이냐? 그렇다면 사람은 구제 불능일 정도로 어리석은 것 아니겠느냐? 나는 하늘에 있으면서 땅에도 거하고, 만물 가운데도 만인 가운데도 거하므로 사람은 날마다 나를 접하고 볼 수 있다. 사람에게 나는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또 존재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내게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는 비밀이 있다. 그래서 사람은 모두 내게 있는 비밀을 더 많이 발견하여 마음속의 ‘괴로운 심정’을 없애고자 나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 같다. 그러나 사람이 투시경을 사용한다고 한들, 어찌 내게 있는 비밀들을 발견할 수 있겠느냐?
백성들이 나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나와 함께 영광을 얻을 때, 큰 붉은 용의 소굴은 즉시 파헤쳐지고 진흙은 모조리 제거될 것이다. 또 오랫동안 고여 있던 더러운 물은 모두 내 불길에 말라 더 이상 남지 않게 되고, 그에 따라 큰 붉은 용은 멸망하여 유황불 못에 던져질 것이다. 너희는 정말 큰 붉은 용에게 붙잡혀 가지 않도록 내가 사랑으로 보살펴 주기를 원하느냐? 너희는 정말 그것의 간계를 증오하느냐? 그 누가 나를 위해 굳세게 증거할 수 있겠느냐? 내 이름과 내 영, 그리고 내 전체 경륜을 위해 그 누가 자신의 힘을 바칠 수 있겠느냐? 오늘날 하나님나라가 인간 세상에 있을 때 내가 친히 인간 세상에 임한 때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누가 나를 위해 두려움 없이 전장에 나갈 수 있겠느냐? 하나님나라의 형성을 위해, 나의 마음을 만족게 하기 위해, 나아가 내 날의 도래를 위해, 만물이 다시 소생하는 때와 번성하는 날을 위해, 사람을 고해에서 구원하기 위해, 내일의 도래를 위해, 그리고 내일의 아름다움과 번영을 위해, 더욱이 훗날의 누림을 위해 모든 사람이 있는 힘을 다해 분투하고 있으며, 자신의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미 승리했다는 상징 아니더냐? 바로 내가 이미 계획을 완성했다는 표징 아니더냐?
말세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세상의 공허함을 느끼고 살아갈 용기를 잃어 간다. 그리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실망 속에서 죽어 가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구하다가 실망하는지 모르며,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탄의 손아귀에 지배당하는지 모른다. 나는 일찍이 수많은 사람을 구원하고 붙들어 주었으며, 사람이 광명을 잃었을 때, 그들을 빛이 있는 곳으로 데려와 빛 속에서 나를 알게 하고 행복 속에서 나를 누리게 했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은 모두 나의 빛이 비치자 나를 사모하는 마음이 생겼다. 나는 본래 사람이 사랑하고 그리워하게 되는 하나님이기에 사람은 나의 그림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사람은 그 누구도 그것이 영의 작용인지, 아니면 육신의 기능인지 깨닫지 못했다. 이 한 가지만 해도 사람이 한평생 구체적으로 체험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사람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를 혐오하지 않았고 오히려 영의 깊은 곳에서 나를 그리워했다. 나의 지혜는 사람의 탄복을 자아내며, 나의 기묘한 행사는 사람의 눈을 호강시켜 준다. 사람은 나의 말을 헤아리지 못하면서도 매우 소중히 여기며, 나의 ‘실제’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도 달갑게 받아들인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실제 분량 아니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이 전 우주를 향해 한 말씀ㆍ제15편>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42)
1. 사람은 마땅히 하나님을 경배하고 높여야지, 함부로 잘난 체하거나 자신을 높여서는 안 된다.
2. 마땅히 하나님의 사역에 유익한 모든 일을 행해야 하며, 하나님 사역의 이익에 해가 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증거, 하나님의 사역을 수호해야 한다.
3. 하나님 집의 재물과 물질, 모든 재산은 사람이 마땅히 바쳐야 하는 제물이다. 그 제물은 제사장과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누릴 수 없다. 사람이 바친 제물은 하나님께 누리도록 드린 것이고, 하나님은 그 제물을 오직 제사장에게만 베풀어 누릴 수 있게 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은 그 제물을 누릴 자격이나 권리가 전혀 없다. 사람이 바친 그 제물(돈과 누릴 수 있는 물질)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드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런 것들을 누려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그런 것들을 누린다면 제물을 훔쳐 먹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 자들은 모두 유다이다. 유다는 주를 팔았을 뿐만 아니라 돈주머니의 돈도 훔쳐 썼기 때문이다.
4. 사람에게는 패괴 성품은 물론, 감정까지 있다. 그러므로 서로 협력하며 섬길 때 남녀가 단둘이 함께하는 것은 일률적으로 금지한다. 이를 위반한 사실이 발견되면 누구도 예외 없이 출교한다.
5. 하나님을 판단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일을 함부로 논해서도 안 된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고, 해야 할 말을 하되, 범위와 한계를 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일을 하지 않도록 자신의 말을 경계하고 자신의 행동거지를 조심해라.
6. 마땅히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고, 너의 의무를 다하며, 너의 직책을 수행하고, 너의 본분을 지켜야 한다. 네가 하나님을 믿는 이상,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자신이 바쳐야 할 몫을 바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실 자격도, 하나님의 집에 남아 있을 자격도 없다.
7. 사역이나 교회의 사무적인 일에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 것은 물론, 모든 것은 성령께 쓰임 받는 사람의 지시에 따라야지, 이를 조금이라도 어겨서는 안 된다. 또한 절대적으로 순종하되, 옳고 그름을 분석하지 마라. 옳든 그르든 너와는 무관하니 절대적으로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8.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하나님께 순종하고 경배해야지, 사람을 높이거나 우러러보아서는 안 된다. 또한, 하나님을 가장 높은 지위에 두고 네가 우러러보는 사람과 너 자신을 순서대로 그 밑에 두어서도 안 된다. 네 마음속에 어떤 사람의 자리도 있어서는 안 되며, 특히 네가 숭상하는 사람을 하나님과 동등하거나 평등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하나님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9. 마땅히 교회의 사역을 위해 생각하고 자신의 육적인 앞날은 내려놓아야 한다. 자신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바로바로 결단을 내리고, 하나님의 사역에 온 몸과 마음을 쏟아부어야 한다. 마땅히 하나님의 사역을 주된 것으로 하고, 자신의 삶은 부차적인 것으로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도가 마땅히 갖춰야 할 품위이다.
10.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족(너의 자녀, 남편이나 아내 또는 형제나 부모 등)을 억지로 데려오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집은 사람이 부족하지 않으니 쓸모없는 자로 머릿수를 채울 필요가 없다. 기꺼이 원해서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교회로 데려오지 마라. 이 조항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니, 너희는 이 일에서 서로 제약하고 감독하며 일깨워 주어야 한다. 그 누구도 이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족이 마지못해 교회에 들어왔을지라도 책을 내어 주어서는 안 되며, 새 이름을 지어 주어서도 안 된다. 그런 자는 하나님 집의 사람이 아니니 그런 부류의 사람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은 어떻게든 철저히 막아야 한다. 마귀가 교회에 침입하여 문제를 일으킨다면, 너를 출교시키거나 제한을 가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일은 모든 사람에게 이행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함부로 행동하거나 개인적인 앙갚음을 해서는 안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나라시대의 선민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10가지 행정 법령>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43)
사람으로서 다해야 할 많은 본분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것은 사람이 마땅히 지키고 반드시 행해야 할 것이다. 성령이 해야 할 것은 성령이 하면 된다. 사람은 간섭할 수 없다. 사람이 행해야 할 것은 성령과는 무관하게 사람이 지켜야 한다. 이것은 완전히 사람이 해야 할 것이므로, 구약에서 율법을 지키듯 마땅히 계명으로 삼아 지켜야 한다. 지금이 율법시대는 아닐지라도, 율법시대의 말씀과 유사한 수많은 말씀은 그대로 지켜야 한다. 성령의 감동에만 기대어 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실제 하나님이 행하는 사역을 판단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이 증거한 사람을 대적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 앞에서 분수를 지켜야지 방자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 말할 때는 분수를 지키고, 일을 하거나 말할 때 반드시 하나님이 증거한 사람의 안배에 따라야 한다. 마땅히 하나님의 증거를 경외해야 하며, 하나님의 사역과 말씀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어투와 그 말씀의 목적을 흉내 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이 증거한 사람에게 노골적으로 대적해서도 안 된다.’ 등이 있다. 이런 것들은 각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것들이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에서나 특별히 율법과 유사한 수많은 규례를 정하여 사람들에게 지키게 하였다. 그리고 이런 규례를 통해 사람의 성품을 통제해 그들의 진실한 마음을 찾아낸다. 예를 들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구약시대의 말씀은 오늘날에는 통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당시 사람들의 겉으로 드러나는 성품을 어느 정도 통제함으로써 사람에게 하나님을 믿는 진실한 마음을 드러내게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당시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상징이기도 하였다. 지금이 하나님나라시대(역주: 왕국시대)라 할지라도, 사람들이 지켜야 할 규례는 여전히 많으며, 지난날의 규례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지켜야 할 더 적합한 실행법이 많이 있다. 이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성령 역사와 관계되지 않고 사람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은혜시대에 율법시대의 수많은 규례들이 폐지된 까닭은 그런 율법들이 당시의 사역에 크게 효과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 규례가 폐지된 후, 당시의 상황에 맞는 수많은 실행법이 정해졌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규례들이 되었다. 이 규례들은 오늘날의 하나님이 오자마자 폐하였으므로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는 또한 오늘날의 사역에 알맞은 수많은 계명을 정했는데, 그것은 규례가 아니라 효과를 얻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에 적용되는 것이지만 훗날에는 규례가 될 수도 있다. 종합하자면, 오늘날의 사역에 효과가 있는 것이라면 너는 마땅히 지켜야 한다. 훗날에 어떻게 되든, 오늘날 하는 것은 오늘날을 위한 것이다. 앞으로 지켜야 할 더욱 좋은 실행 방식들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지나치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오늘날 지켜야 할 것을 마땅히 지켜야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게 된다. 오늘날,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즉, 네 눈앞에 계시는 하나님을 기만하거나 진실을 숨겨서는 안 된다. 하나님 앞에서 음탕하고 망령된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온갖 감언이설로 눈앞의 하나님의 신임을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아야 하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해야 하며, 반항과 대적은 물론, 반박도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함부로 해석하지 말며, 악인의 간계에 넘어가지 않도록 너의 입과 혀를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이 정해 준 범위를 벗어나 하나님의 위치에 서서 교만하게 말해 하나님께 혐오받지 않도록 너의 발걸음을 경계해야 한다. 남이 너를 비웃지 않고 마귀가 너를 조롱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제멋대로 전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오늘날 행하는 모든 사역에 순종해야 한다. 모른다 할지라도 판단해서는 안 되며, 단지 구하면서 교제해야 한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고유한 지위를 넘어서서는 안 되며, 오직 사람의 위치에서 오늘날의 하나님을 섬겨야지, 가르치려 들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릇된 것이다. 하나님이 증거한 사람의 자리에는 그 누구도 서서는 안 되며, 말하거나 행하거나 생각할 때는 모두 사람의 위치에 서야 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직책이니 그 누구도 바꿀 수 없고, 행정 법령을 거스르는 일이니 그 누구도 잊어서는 안 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새 시대의 계명>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44)
나는 너희가 많은 일을 해내기를 바란다. 하지만 너희의 행위와 삶이 나의 요구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너희에게 나의 뜻을 설명하는 수밖에 없다. 너희는 분별력이나 감상 능력이 너무 부족한 탓에 나의 성품과 본질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당장 너희에게 나의 성품과 본질을 알려 주려고 한다. 이전에 네가 얼마나 알았든, 또 이런 문제에 대해 알려고 했든 아니든 너희에게 상세히 알려 줄 생각이다. 언급된 이 문제가 너희에게 그리 낯설지는 않겠지만, 너희는 이 속에 담긴 뜻을 잘 알지 못하고 그 뜻에 그리 익숙하지도 않다. 많은 이들이 어렴풋이 조금 알 뿐, 깊이 이해하지는 못한다. 너희가 진리를 더 잘 실행하려면, 즉 내 말을 더 잘 실행하려면, 가장 우선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런 문제다. 그게 아니라면 너희의 믿음은 여전히 아주 막연하고 위선적이며, 또한 종교적인 색채로 가득할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할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의 본질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두려워할 수 없고, 무심하게 넘기거나 얼버무리고, 더욱이 구제 불능일 정도로 모독하게 된다.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이 물론 아주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본질을 아는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파고들어 진지하게 연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걸 보면, 너희는 내가 반포한 행정 법령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지 못하면 쉽게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게 되는데,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노하게 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네가 최종적으로 얻는 결과는 행정 법령을 범하는 것이다. 너는 지금, 하나님의 본질을 인식하면 동시에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성품을 알면 동시에 행정 법령 자체를 알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물론 행정 법령에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성품이 행정 법령 속에 모두 구현되어 있는 것은 아니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성품을 더 깊이 알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45)
하나님의 성품이 누구에게나 아주 추상적인 문제이고, 또 누구에게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인 까닭은 하나님의 성품이 사람의 성격과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도 자신의 희로애락이 있지만 그것 역시 사람의 희로애락과는 다르다. 하나님께는 하나님 자신의 어떠함과 소유가 있고, 하나님이 선포하고 드러내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본질과 신분을 대변한다. 그런 어떠함과 소유, 본질, 신분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의 성품에는 인류에 대한 사랑, 위로, 증오도 있고, 더욱이 인류에 대한 철저한 이해도 있다. 하지만 사람의 성격에는 명랑함, 활발함 혹은 무감각함이 있다. 하나님의 성품은 만물 생령을 다스리는 주재자가 갖고 있는 성품이자 창조주가 갖고 있는 성품이다. 그의 성품은 존귀함과 권세를 대변하고, 고상함과 위대함을 대변하며, 더욱이 지고지상함을 대변한다. 그의 성품은 권병의 상징이자 모든 정의와 아름다움, 선함의 상징이며, 더욱이 모든 적대 세력과 흑암이 압도하거나 침해할 수 없음을 상징하고, 또 그 어떤 피조물도 거스를 수 없음(또한 거스름을 용납하지 않음)을 상징한다. 그의 성품은 최고 권력을 상징하며, 어떤 한 사람이나 어떤 사람들도 그의 사역과 성품을 방해할 수 없고 또 그럴 능력도 없다. 사람의 성격은 동물보다 조금 우월함을 상징할 뿐 사람 자체는 권병도 없고, 자주적이지도 못하며, 자아를 초월하는 능력도 없다. 그저 나약하게 모든 사람, 일, 사물의 지배를 받는 본질만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정의의 존재와 탄생, 광명의 존재와 탄생에 기뻐하고, 흑암과 사악이 멸해지는 것 때문에 기뻐하며, 그 자신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광명과 아름다운 삶 때문에 기뻐한다. 그의 ‘희(喜)’는 정의로운 것으로, 모든 긍정적인 사물의 존재를 상징하고, 더욱이 상서로움의 상징이다. 하나님은 정의롭지 않은 사물의 존재와 교란이 그의 인류를 침해하는 것 때문에 노하고, 사악과 흑암의 존재, 그리고 진리를 몰아내는 일의 존재 때문에 노하며, 더욱이 아름답고 선한 사물에 대항하는 사물의 존재 때문에 노한다. 그의 ‘노(怒)’는 모든 부정적인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상징하고, 더욱이 그가 본래부터 거룩함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그가 기대했던 인류가 흑암 속에 떨어지고 그가 사람에게 행하는 사역이 그의 뜻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슬퍼하고, 그가 사랑하는 인류 전체가 광명 속에서 살지 못하는 사실에 슬퍼한다. 또 그는 무고한 인류 때문에 슬퍼하고, 정직하지만 어리석은 사람 때문에 슬퍼하며, 선량하지만 주관이 없는 사람 때문에 슬퍼한다. 그의 ‘애(哀)’는 그의 선량함과 긍휼의 상징이자 아름다움과 인자함의 상징이다. 그는 원수를 물리치고 사람의 진실한 마음을 얻는 것 때문에 즐거워하는 것은 물론, 모든 적대 세력을 몰아내고 멸하는 것 때문에 즐거워한다. 또 그는 인류가 아름답고 평안한 삶을 얻는 것으로 인해 즐거워한다. 그의 ‘낙(樂)’은 사람의 희열과 달리 아름다운 열매를 얻는 즐거움이며, 이는 희열보다 더 높은 차원의 것이다. 그의 ‘낙’은 인류가 앞으로 고난받지 않음을 상징하고, 또 인류가 광명의 세계로 들어감을 상징한다. 반면 인류의 희로애락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있는 것이지 정의나 광명, 아름다운 사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늘이 내리는 은혜를 위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인류의 희로애락은 이기적이다. 그것은 어두운 세계 속에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을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결코 하나님과 나란히 논할 수 없다. 하나님은 영원히 지고지상하고 존귀하며, 사람은 영원히 미천하고 한 푼의 가치도 없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류를 위해 대가를 치르고 헌신하지만, 사람은 모두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요구하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류의 생존을 위해 힘써 일하지만, 사람은 결코 정의와 광명을 위해 무언가를 바치지 않는다. 설령 사람이 잠시 노력한다 해도 작은 일에도 견디지 못한다. 사람의 노력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영원히 이기적이고, 하나님은 영원히 사심이 없다. 하나님은 모든 정의와 아름다움, 선함의 시작이고, 사람은 모든 추함과 사악함의 계승자요, 발현자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정의롭고 아름다운 본질을 영원히 바꿀 리 없지만,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정의를 배반하고 하나님을 떠날 수 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46)
나의 모든 말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들어 있으니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틀림없이 큰 수확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헤아리기가 몹시 어렵지만, 하나님의 성품은 대략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너희가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지 않는 일을 많이 하여 내게 보여 주길 바란다. 그러면 나도 마음을 놓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언제든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일을 할 때는 그의 말씀에 따르며, 매사에 그의 뜻을 찾고 구하고, 하나님께 불경한 일을 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하나님을 뒷전에 두고 미래에 대한 네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한다면 너는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를 것이다. 또 일생 동안 하나님을 모독하거나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너에게 맡긴 일을 착실하게 하며 나아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한다면, 너는 행정 법령을 거스르지 않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네가 “나는 왜 그분이 하나님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내 생각에 이런 말씀은 성령의 깨우침에 불과해”, “내가 보기에 하나님이 하신 것이 반드시 옳다고는 할 수 없어”, “하나님의 인성은 나보다 뛰어나지 않아”, “하나님 말씀은 정말 믿을 수가 없어” 등의 판단하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면, 나는 네가 죄를 많이 인정하고 회개할 것을 권한다. 그러지 않으면 너는 영영 사함 받을 기회가 없을 것이다. 이는 네가 노여움을 산 대상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너는 네가 어떤 사람을 판단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네가 그의 육신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그를 존중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네가 한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른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영이 하는 모든 일은 그가 육신으로 행하는 사역을 수호하고, 육신으로 행하는 사역을 더 잘하기 위한 것임을 명심하라. 이 점을 간과한다면, 너는 하나님을 믿어도 영원히 성공할 수 없는 사람일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노여움을 샀으므로 하나님은 그에 상응하는 벌로 너를 훈계할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을 아는 것은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너는 부지불식간에 하나님의 본질을 점점 더 알게 되고, 그와 동시에 더 높고 아름다운 경지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너 자신의 추악한 영혼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게 되고, 더욱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는 너의 행위는 점점 적어지고, 너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점점 가까워지며 나아가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도 점차 생기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인류가 아름다운 경지로 들어감을 상징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너희들은 아직 이르지 못했다. 너희가 모두 자신의 운명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는데 어느 누구에게 하나님의 본질을 인식하려는 마음이 있겠느냐? 이대로 계속 나아간다면, 너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행정 법령을 범하는 일을 저지르게 될 것이다. 이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너무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금 너희가 하는 행동은 하나님의 성품을 거스르기 위한 기초를 닦고 있는 것이 아니냐? 내가 너희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알라고 하는 것은 나의 사역과 무관하지 않다. 너희가 늘 행정 법령을 범한다면, 너희 중에 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그러면 나의 사역이 모두 헛수고가 되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자신의 행위를 점검하고, 걸음을 신중히 내디디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너희에 대한 나의 더 높은 요구이니 너희 모두가 신중하게 고려하고, 진지하게 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느 날 너희의 행위가 나를 노기충천하게 한다면, 너희를 대신해 벌을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니, 그 결과에 대해서는 오로지 너희 스스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47)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므로 끝까지 따르기만 하면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누구보다도 공의로우신데, 끝까지 따른 사람을 어떻게 뿌리치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공의로운 성품으로 모든 사람을 심판한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나의 요구에는 다 적합한 기준이 있어서 내가 무엇을 요구하든 사람은 다 그것을 충족시켜야 한다. 나는 네가 얼마나 대단한 경력이나 관록을 갖고 있는지 보지 않고, 오직 네가 나의 도를 행하는 사람인지, 또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인지만 본다. 너에게 진리가 없고 오히려 내 이름을 모욕하며 나의 도에 따라 행하지 않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따르기만 한다면, 그때는 내가 너의 악을 이유로 너를 치고 징벌할 것이다. 그때 네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하나님이 공의롭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오늘 내가 한 말을 다 지킨다면 나는 그런 사람을 칭찬할 것이다. 너는 네가 지금까지 하나님을 따르면서 고난을 받고 비바람 속에서 하나님과 동고동락하며 환난을 함께했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내지는 못했다. 너는 날마다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거나 헌신하면 된다고 생각할 뿐, 의미 있는 인생을 살려고 하지는 않는다. 또 너는 “어쨌든 저는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이시라는 걸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위해 고통받고 열심히 뛰어다니며 헌신했는데, 공로는 없어도 고생은 했잖아요. 그러니 하나님은 꼭 저를 기억하실 겁니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공의에는 불순물이 섞여 있지 않고, 사람의 뜻이 전혀 없으며, 육적인 것도, 사람처럼 거래하는 것도 섞여 있지 않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자와 하나님의 도를 지키지 않는 자는 모두 징벌을 받아야 한다. 하나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누구도 봐주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저는 지금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으니 나중에 제게 축복을 조금 베풀어 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묻겠다. “너는 내가 한 말을 지켰느냐?” 네가 말한 공의는 거래를 전제로 한 것이다. 너는 내가 공의로우니 그 누구도 차별할 리가 없으며, 끝까지 따르는 사람은 반드시 구원을 얻고 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끝까지 따르는 자는 반드시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나의 말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담겨 있다. 끝까지 따르는 사람은 나에게 완전히 얻어지는 사람이고, 또 나에게 정복된 후 진리를 구해 온전케 되는 사람이다. 너는 몇 가지를 해냈느냐? 끝까지 따랐다면 그 외의 것은 어떠냐? 너는 내 말을 준행했느냐? 너는 내가 내놓은 다섯 가지 요구 가운데 하나만 충족했을 뿐, 그 외의 네 가지는 충족시킬 생각도 하지 않는다. 너는 가장 단순하고 쉬운 길을 찾아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추구한다. 나의 공의로운 성품은 너 같은 사람에게는 그저 형벌이자 심판이고 공의로운 응징이다. 악을 행하는 모든 이에게는 공의로운 징벌이다. 나의 도를 행하지 않는 사람은 설령 끝까지 나를 따른다고 해도 반드시 징벌받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다. 이 공의로운 성품을 나타내 사람을 징벌할 때가 되면 사람은 매우 당혹해할 것이다. 하나님을 따를 때 그의 도를 행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면서 ‘그동안 고난만 조금 받았지, 하나님의 도를 행하지는 않았으니 할 말이 없어. 그냥 형벌을 받자!’라고 할 것이다. 또 마음속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 것이다. ‘아무튼 나는 끝까지 따랐으니 형벌을 받더라도 너무 무거운 형벌은 받지 않겠지. 형벌을 받고 나면 하나님께서 나를 다시 받아 주실 거야. 나는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이라는 걸 알아. 그러니 나를 계속 이렇게 대하지는 않으실 거야. 어쨌든 난 멸망당할 사람들과는 다르거든. 멸망당할 사람은 무거운 형벌을 받겠지만 나는 좀 가벼운 형벌을 받을 거야.’ 공의 성품은 네가 말한 것과 다르다. 죄를 순순히 인정한다고 해서 가볍게 처벌하지는 않는다. 공의란 바로 거룩함이자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성품이다. 더러운 자와 변화되지 않은 자는 모두 하나님이 싫어하는 대상이다. 공의로운 성품은 법률이 아니라 행정 법령, 하나님나라의 행정 법령이다. 이런 행정 법령은 진리와 변화가 없는 모든 자에게 있어 공의로운 징벌이며, 돌이킬 수 있는 여지는 없다. 이는 사람이 각기 부류대로 나뉠 때, 상선벌악(賞善罰惡)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인류의 종착지가 드러나는 때이자 구원 사역이 끝나는 때이므로 그 후로는 더 이상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지 않고 악을 행한 모든 사람을 응징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베드로의 체험 ― 형벌과 심판에 대한 인식>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48)
나는 맹렬한 불이니 거스르는 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사람은 모두 내가 만든 존재이므로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일을 하든 반항하지 말고 순종해야 한다. 사람에게는 내 일에 간섭할 권리가 없으며, 내 사역과 내 말의 옳고 그름을 분석할 자격은 더더욱 없다. 나는 창조주이다. 피조물은 마땅히 나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내 모든 요구에 부응해야 할 것이며, 이치를 따져서도, 나아가 나를 대적해서도 안 된다. 나는 나의 권병으로 내 백성들을 다스리니, 내가 만든 피조물들은 모두 내 권병에 순종해야 한다. 오늘날, 너희가 비록 내 앞에서 겁 없이 방자하게 굴고, 너희를 훈계하는 나의 말을 거역하면서도 두려운 줄 모르고 있지만, 나는 오직 인내로 너희의 패역에 대응할 뿐이다. 나는 보잘것없는 구더기들이 거름 더미를 뒤집는다고 해서 크게 화를 냄으로 내 사역에 영향을 주는 일은 하지 않는다. 나는 아버지의 뜻을 위해 내가 심히 증오하고 혐오하는 모든 것들의 존재를 참고 있다. 이는 내 말이 끝날 때까지, 내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러니 너는 안심해라! 나는 이름 없는 구더기와 똑같이 굴지 않을 것이고, 너와 ‘능력’의 고하를 겨루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너를 증오하지만 참을 수 있다. 그러나 네가 나를 거역하면, 너는 내 아버지가 내게 허락한, 너에게 형벌을 가하는 날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피조물인 구더기가 정녕 창조주를 당해 낼 수 있겠느냐? 가을날, 낙엽이 뿌리로 돌아갈 때, 너는 네 ‘아비’의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내 아버지의 곁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에게는 내 아버지의 사랑이 함께하고, 너에게는 네 ‘아비’의 유린이 따를 것이다. 나에게는 내 아버지의 영광이 있고, 너에게는 네 ‘아비’의 치욕이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오랜 기간 참아 왔던 형벌로 너와 함께하고, 너는 만년 동안 패괴되어 썩어 버린 그 육체로 나의 형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나는 너에게서 인내를 동반한 말씀 사역을 끝마치지만, 너는 내 말에서 화를 당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매우 기뻐하며 이스라엘에서 역사하겠지만, 너는 슬피 울고 이를 갈면서 진흙 속에서 살고 죽을 것이다. 나는 원래의 형상으로 돌아가 더 이상 너와 함께 더러움 속에 거하지 않을 것이고, 너도 원래의 추태를 되찾아 거름 더미 속을 헤집고 다닐 것이다. 나의 사역과 나의 말이 끝나는 날은 나에게 경사로운 날이 되겠지만, 너의 대적과 패역이 끝나는 날은 너에게 통곡하는 날이 될 것이다. 나는 너를 동정하지 않을 것이고, 너는 다시는 나를 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너와 ‘대화’하지 않을 것이고, 너는 다시는 나와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너의 패역을 증오하겠지만, 너는 내 사랑스러움을 그리워할 것이다. 나는 너를 치겠지만, 너는 나를 그리워할 것이다. 나는 기쁘게 너를 떠나겠지만, 너는 내게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나는 영원히 너를 보지 않겠지만, 너는 영원히 나를 갈망할 것이다. 내가 너를 증오하는 이유는 지금 네가 나를 대적하기 때문이고, 네가 나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지금 내가 너에게 형벌을 가하기 때문이다. 나는 너와 함께 거하기를 원치 않지만, 너는 간절히 기대하며 영원히 슬피 울 것이다. 네가 내게 행한 모든 짓을 통회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너의 패역과 대적을 통회하여 바닥에 얼굴을 대고 온전히 내 앞에 엎드려 더는 나를 거역하지 않겠다고 맹세할 것이다. 그러나 네가 마음으로 나를 사랑할지라도 영원히 내 음성을 듣지 못할 것이다. 나는 네가 스스로 창피를 당하게 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낙엽이 뿌리로 돌아갈 때 네가 행한 모든 악행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49)
나는 나를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버리는 자에게 긍휼을 베푼다. 악인들이 받는 징벌 또한 내 공의로운 성품의 증거이자, 나아가 내 진노의 증거가 된다. 재난이 닥칠 때, 나를 대적한 모든 자는 기근에 빠지고 전염병에 걸려 슬피 울 것이며, 오랜 세월 나를 따랐지만 온갖 악을 저지른 자들 역시 죄과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들 또한 마찬가지로 천만년 이래 보기 드문 재난 속에 떨어져 불안한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를 따르면서 나에게 일편단심 충성한 사람들은 오히려 기쁘게 손뼉 치며 나의 큰 능력을 찬양할 것이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쾌한 마음으로 내가 인간 세상에 한 번도 베푼 적 없는 즐거움 속에서 살 것이다. 나는 사람의 선행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의 악행을 극도로 증오하기 때문이다. 나는 인류를 오늘날까지 이끌어 오면서 나와 한마음 한뜻인 사람들을 얻기를 기대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와 한마음 한뜻이 아니었던 자들을 잊지 않고 항상 마음속으로 미워했다. 그 악행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그걸 보며 통쾌해할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오늘, 마침내 나의 날이 왔으니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
마지막 사역은 사람을 징벌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사람의 종착지를 안배하기 위한 것이고, 나아가 모든 사람이 나의 행사를 인정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행한 모든 것이 옳고, 내가 행한 모든 것이 내 성품의 발현임을 보게 할 것이다. 인류를 창조한 것은 사람이 한 것이 아니고 대자연이 한 것은 더욱 아니라 만물 가운데 있는 모든 생령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내’가 한 것이다. 나의 존재를 잃어버리면 인류는 멸망할 수밖에 없고 재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 누구도 다시는 아름다운 해와 달과 푸르른 세상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인류는 음산하고 차디찬 암흑의 밤과 저항할 수 없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만을 직면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인류의 유일한 구원(원문: 救贖)이자 희망이며, 나아가 전 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의지처다. 사람들이 모두 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라도 나를 잃으면 인류는 즉시 정체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며, 오직 멸망의 재앙을 당하고 온갖 유령에게 짓밟힐 것이다. 나는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사역을 행했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사람들이 조금의 선행으로 나에게 보답하는 것뿐이다. 나에게 보답할 수 있는 사람이 아주 적을지라도 나는 인간 세상에서의 여정을 끝내고 다음 단계에 전개할 사역을 행할 것이다. 내가 사람들 가운데서 오랫동안 바쁘게 일한 결과가 이미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가 아주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사람의 선행이다. 요컨대, 나는 너희가 자신의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하길 바란다. 그래야만 나를 만족게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 모두 엄습할 재난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재난은 내가 일으키며 또 당연히 내가 지배한다. 너희가 내 앞에서 선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재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환난 가운데서 너희의 모든 행위가 온전히 적합하다고 볼 수는 없다. 너희의 믿음과 사랑은 다 공허하고, 두려움이나 강인함만 드러낼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에 대해 좋다거나 나쁘다는 평가만 내린다.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너희 개개인의 모든 행위와 태도이다. 그것으로 너희의 결말을 정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밝혀 둘 것이 있다. 환난 가운데서 나에 대한 충성심이 조금도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긍휼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나의 긍휼은 여기까지이고, 또 나는 나를 배반했던 자를 좋아하지 않으며 친구의 이익을 팔아먹은 자와 왕래하는 것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성품이다. 그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다.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누구든 내 마음을 심히 상하게 하는 사람은 두 번 다시 나의 관용을 얻지 못하고, 누구든 나에게 충성하는 사람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너는 종착지를 위해 충분한 선행을 예비해야 한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50)
하나님은 땅에 왔지만 본디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그는 세상을 누리기 위해 성육신한 것이 아니다. 그는 사역하여 자신의 성품을 나타낼 수 있는 곳, 또 가장 의의 있는 사역을 할 수 있는 곳에 강생한다. 거룩한 곳이든 더러운 곳이든, 어떤 곳에서 사역하든 그는 거룩하다. 세상 만물은 모두 그가 만든 것이다. 그저 만물이 사탄에 의해 패괴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만물은 여전히 그에게 속하고 모두 그의 손안에 있다. 그가 더러운 곳에 와서 사역하는 것은 그의 거룩함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는 자신의 사역을 위해 이렇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더러운 곳에 있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극도의 굴욕을 참으며 이렇게 사역하는 것이다. 이는 증거를 위한 것이자, 전 인류를 위한 것이다. 이런 사역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지고지상한 존재임을 더 확실히 증명해 준다. 그의 위대함과 정직함은 모두가 업신여기는 비천한 사람들을 구원하는 데서 드러난다. 그가 더러운 곳에 강생했다고 해서 비천한 존재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모든 피조물에게 그의 위대함과 인류를 향한 참된 사랑을 보여 줄 뿐이다. 그가 이렇게 할수록 인류에 대한 그의 흠 없이 깨끗한 사랑을 더 잘 보여 줄 수 있다. 더러운 곳에 강생했더라도, 더러움이 가득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더라도 하나님은 거룩하고 공의로운 분이다. 은혜시대에 예수가 죄인들과 함께 생활한 것과 같은 이치다. 그가 행한 그 모든 사역은 전 인류의 생존을 위한 것 아니었더냐? 인류가 크나큰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 아니었더냐? 2천 년 전에 그가 죄인들과 함께 오랫동안 생활한 것은 구속을 위해서였다. 오늘날 그가 또다시 더럽고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도 구원을 위해서이다. 그의 모든 사역은 다 너희, 이 인류를 위한 것 아니냐?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가 어찌 말구유에서 탄생했으며, 오랫동안 죄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함께 고난을 받았겠느냐?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가 어찌 두 번째로 육신을 입고 마귀들이 무리 지어 사는 곳에 강생하여 사탄에 의해 심하게 패괴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신실하지 않더냐? 그가 한 사역 중에 인류를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너희의 운명을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하나님은 거룩하다. 이 사실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 더러운 곳에 왔다고 해도 그는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보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는 일말의 사심도 없고, 그가 너무나 큰 고통과 굴욕을 참아 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너희를 위해, 너희 운명을 위해 그가 얼마나 큰 굴욕을 참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냐? 그는 높고 대단한 사람들과 돈 많고 세력 있는 자들을 구원하지 않고, 비천하고 남들에게 멸시당하는 사람들만 구원한다. 이 모든 것이 그의 거룩함 아니겠느냐? 그의 공의로움 아니겠느냐? 전 인류의 생존을 위해 그는 기꺼이 더러운 곳에서 태어나 모든 굴욕을 참고 있다. 하나님은 참으로 진실하기에 거짓된 일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어느 단계의 사역이든 모두 이렇게 실제적으로 이뤄지지 않더냐? 비록 모든 사람이 그가 죄인과 함께 식사한다고 비방하고, 그가 더러운 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가장 비천한 자들과 함께 생활한다고 조롱해도, 그는 계속해서 이처럼 사심 없이 자신을 바치고 이렇게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있다. 그가 참아 낸 고통이 너희보다 크지 않겠느냐? 그가 행한 사역이 너희가 치른 대가보다 많지 않겠느냐?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모압의 후손을 구원하는 의의>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51)
하나님은 자신을 한없이 낮추어 더럽고 패괴된 사람들에게 사역하며 이들을 온전케 한다. 또한 성육신하여 사람들과 함께 생활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목양하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준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이 극도로 패괴된 사람들에게 크나큰 구원 사역과 정복 사역을 행한다는 것이다. 그는 큰 붉은 용의 심장부에 와서 가장 패괴된 사람들을 구원하고 새롭게 변화시킨다. 하나님의 극심한 고통은 성육신하여 받는 고통에 그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 크나큰 수모를 받은 것, 바로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감추어 평범한 인간이 된 것이다. 그는 육신을 입고 육신의 형상을 취함으로써 사람에게 그가 정상 인성의 생활을 하고, 정상 인성에 필요한 것을 갖추고 있음을 알게 한다. 이는 하나님이 이미 자신을 한없이 낮추었음을 충분히 증명한다. 하나님의 영은 육신에 실체화되었다. 그의 영은 더없이 높고 위대하지만 그는 평범한 사람, 보잘것없는 사람의 형상을 취하여 그의 영이 하는 사역을 한다. 너희 각자의 자질, 식견, 이성, 인간성, 삶을 놓고 보면 너희는 하나님의 이런 사역을 받아들이거나, 하나님으로 하여금 너희를 위해 이토록 큰 고통을 받게 할 자격이 없다. 하나님은 더할 나위 없이 높고 크다. 하나님은 더할 수 없이 높고, 사람은 비천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역한다. 성육신하여 사람에게 공급하고 말씀할 뿐만 아니라 사람과 함께 생활하기까지 한다. 자신을 한없이 낮춘 하나님은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실행을 중시하는 사람만이 온전케 될 수 있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52)
하나님은 인류를 위한 사역 때문에 얼마나 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는지 모른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임했고, 사람이 살고 있는 생지옥에 내려와 하늘 끝까지 사람과 함께하면서도 궁상맞은 인간 세상을 원망한 적 없고, 사람의 패역을 질타한 적도 없으며, 도리어 크나큰 치욕을 참으면서 자신이 친히 해야 할 사역을 하고 있다. 하나님이 어찌 지옥에 속할 수 있겠느냐? 어찌 지옥의 생활을 할 수 있겠느냐? 하지만 그는 전 인류를 위해서, 인류 전체가 하루빨리 안식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치욕과 억울함을 참고 땅에 내려와 친히 ‘지옥’과 ‘음부’, 호랑이 굴로 들어가서 사람을 구원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을 대적한단 말이냐? 무슨 이유로 또 하나님을 원망한단 말이냐? 무슨 낯짝으로 다시 하나님을 마주한단 말이냐? 하늘의 하나님은 가장 더럽고 음란한 땅에 와서 단 한 번도 억울함을 토로하거나 사람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묵묵히 사람의 박해[1]와 억압을 감내하고 있다. 그는 한 번도 사람의 무리한 요구에 반항하지 않았고, 사람에게 지나친 요구나 무리한 요구를 한 적도 없으며, 아무리 힘들어도 원망 한 마디 없이 가르침, 깨우침, 책망, 말씀의 연단, 일깨움, 권면, 위로, 심판, 폭로 등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사역을 할 뿐이다. 사람의 생명을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비록 사람의 앞날과 운명을 거두어 갔다고는 하나, 하나님이 하는 일 중에서 사람의 운명을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사람의 생존을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이 고난과 칠흑처럼 어두운 흑암 세력의 압제에서 사람을 구해 내려고 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사람을 위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더냐? 인자한 어머니와 같은 하나님의 마음을 누가 알겠느냐? 하나님의 그 절박한 심정을 누가 이해하겠느냐? 하나님의 불처럼 뜨거운 마음과 간절한 기대로 얻은 것은 뜻밖에도 얼음처럼 차가운 마음, 냉혹하고 무정한 눈동자,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람의 훈계와 욕설, 그리고 냉소와 조롱, 비방과 폄하, 사람의 비웃음, 유린과 저버림, 사람의 오해와 원망, 소외와 회피, 기만과 공격, 쓰디쓴 결과뿐이었다. 따뜻한 말씀은 ‘차디찬 시선과 손가락질’로 돌아왔으니, 하나님은 ‘머리를 숙이고 몸을 낮추며’[2] 고통을 참아야만 했다. 수많은 세월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전반측하며 아버지와의 이별보다 천배나 더한 고통을 참아 내고, 사람의 공격과 ‘깨뜨림’, ‘훈계’와 ‘책망’을 참아 내야 했다. 하나님이 ‘낮추고 감춘’ 대가로 얻은 것은 사람의 차별[3], 불공평한 시선과 대우였다. 하나님의 묵묵한 인내와 포용으로 얻은 것은 인정사정없이 하나님을 밟아 죽이려 하고, 하나님을 갈라진 땅 틈 사이로 밀어 넣으려고 하는 사람의 탐욕스러운 시선이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람의 태도는 ‘보기 드물게 똑똑해져’, 사람 눈에 만만해 보이고 사람들이 깔보는 하나님을 만인의 발아래 깔아뭉개고는 마치 ‘왕 노릇을 하려는’ 듯, ‘대권을 독차지하여[4]’ ‘수렴청정’하려는 듯 스스로를 높이 추켜올리고, 하나님에게는 고분고분 순순히 ‘무대 뒤의 감독’ 역할을 맡겨 반항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였다. 또한 하나님을 ‘마지막 황제’처럼 분장시켜 자유라곤 전혀 없는 ‘꼭두각시[5]’ 역할을 맡게 했다. 사람의 작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니, 또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께 이런저런 요구를 한단 말이냐?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께 ‘건의’를 한단 말이냐?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께 사람의 연약함을 배려해 달라고 요구한단 말이냐? 사람에게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자격이 있더냐? 끝없이 이어지는 하나님의 관대함을 누릴 자격이 있더냐? 계속되는 하나님의 죄 사함을 받을 자격이 있더냐? 사람의 양심은 어디에 있느냐? 사람은 일찍이 하나님의 마음을 더없이 아프게 하였고,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하나님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가슴 가득 기쁨을 안고 인간 세상에 와서 사람이 그에게 아주 작은 온정이라도 베풀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오래도록 사람의 위로를 얻지 못했고, 돌아온 것이라고는 설상가상[6] 식의 공격과 괴롭힘뿐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너무 탐욕스럽고, 사람의 욕망은 너무 커서 하나를 얻으면 둘을 갖고 싶어 하고, 무리한 트집을 잡으면서 하나님께 약간의 자유도, 일말의 발언권도 주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하나님은 울분을 참으면서 묵묵히 사람의 조종을 받아야 했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역과 진입 9> 중에서
[1] 박해[摧殘]: 여기서는 사람의 패역을 폭로함.
[2] ‘차디찬 시선과 손가락질’, ‘머리를 숙이고 몸을 낮추며’: 원래 문장은 ‘사나운 눈초리로 뭇사람들의 질타에 맞서고[橫眉冷對千夫指], 머리 숙여 기꺼이 어린아이의 소가 되다[俯首甘爲孺子牛]’라는 한 구절로 되어 있지만,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문제를 더 정확히 설명하고 있음. 앞 구절은 사람의 ‘행위’를, 뒷 구절은 하나님이 받는 고난과 하나님이 자신을 낮추고 감추는 것을 가리킴.
[3] 차별[歧視]: 본문에서는 사람의 패역 행위를 가리킴.
[4] 대권을 독차지하여[獨攬大權]: 사람의 패역 행위, 즉 자신을 추켜올리는 한편 다른 사람이 자신을 따르고 자신을 위해 고통받도록 통제하는 행위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하나님을 적대시하는 세력에 대한 표현. 원뜻은 큰 권력을 혼자 틀어쥐고 있음을 의미함.
[5] 꼭두각시[傀儡]: 본문에서는 이 어휘를 통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조롱함.
[6] 설상가상(雪上加霜): 본문에서는 이 어휘로 사람의 비열한 행위를 더 두드러지게 함.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53)
하나님이 행하는 모든 것은 공허하지 않고 실제적이며, 전부 그가 직접 체험한 것들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체험한 고통을 대가로 인류의 종착지를 바꾸어 오니, 이것이 실제적인 사역이 아니겠느냐? 자식을 위해 치르는 부모의 참된 대가는 부모의 진심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렇게 행하는 것도 당연히 인류에 대한 가장 큰 진실함이요, 신실함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신실하다. 그는 말씀한 이상 반드시 행하며, 행한 이상 반드시 이룬다. 사람에게 행한 그의 모든 것은 다 진실되다. 단순히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대가를 치르겠다고 하면 실제적으로 대가를 치르고, 사람의 고통을 감당하고 사람 대신 고통을 받겠다고 하면 실제적으로 사람들 가운데 와서 살면서 그러한 고통을 받으며 직접 그 고통들을 체험한다. 그리고 전 우주 위아래의 만물로 하여금 하나님이 행한 모든 것이 옳고 공의롭다는 것을, 그것은 전부 현실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한다. 이는 강력한 증거이다. 한편, 인류에게는 훗날 아름다운 종착지가 있다. 살아남은 사람은 모두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의 행사가 확실히 사람에 대한 사랑임을 찬미할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낮춰 평범한 한 사람으로 인간 세상에 왔다. 그는 사역과 말씀을 마친 후에 바로 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없이 실제적으로 사람들 가운데 와서 인간 세상의 고통을 체험한다. 그는 그 고통들을 전부 체험한 후에야 떠날 것이다. 하나님은 이토록 현실적이고 실제적으로 사역한다. 이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찬미할 것이며,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함과 선량한 면을 보게 될 것이다. 성육신에 관한 의의를 보면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선함의 본질을 알 수 있다. 그는 어떤 일을 하든 참되게 하고 모든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진실되게 하며, 모든 것이 신실하다. 그는 말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려는 일을 모두 실제적으로 행하며, 대가를 치르는 것 역시 실제적으로 치른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요, 신실한 하나님이다.
―<말세 그리스도의 좌담 기록ㆍ성육신의 두 번째 측면의 의의>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54)
생명의 도는 아무나 갖출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생명은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비롯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의 본질과 생명의 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만이 생명의 근원이자 끝없이 솟아나는 생명수의 원천이라고 하는 것이다. 창세 이후 하나님은 생명의 기운을 품고 있는 사역,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사역을 수없이 행하였으며, 사람에게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 숱한 대가를 치렀다. 이는 하나님 자신이 바로 영생이자 사람을 부활시키는 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매 순간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시시각각 사람들 가운데서 살고 있다. 그는 사람이 살아가는 원동력과 생존하는 근본이 되었으며, 또 사람이 생존해 나가는 데 풍부한 자원이 되어 주었다. 그는 사람을 소생시켜 모두가 굳건하게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가도록 했다. 사람은 그의 힘과 영원히 사그라지지 않는 그의 생명력에 의지해 한 세대 한 세대 이어 올 수 있었다. 하나님의 생명의 힘은 시종일관 변함없이 사람들을 지탱해 주고 있다. 그는 보통 사람이 치른 적 없는 대가를 치렀다. 하나님의 생명력은 모든 힘을 이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힘을 초월할 수 있다. 그의 생명은 영원하고 그의 힘은 비범하다. 그 어떤 피조물도, 그 어떤 적대 세력도 그의 생명력을 압도하지 못한다. 그의 생명력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며, 눈부신 빛으로 반짝인다. 천지가 크게 변해도 하나님의 생명은 영원히 변하지 않으며, 만물이 사라져도 하나님의 생명은 계속 존재한다. 하나님은 만물이 생존하는 원천이자 만물이 의지해 살아가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았고, 하늘은 하나님으로 인해 존재하게 되었으며, 땅 역시 하나님의 생명의 힘을 원천으로 숨 쉬고 있다. 생기를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재를 벗어날 수 없고, 활력을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권병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어떤 인물이든 하나님의 권세 아래로 돌아와 복종해야 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손을 벗어날 수 없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줄 수 있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55)
네가 진정으로 영생의 도를 얻고자 하고 또 그것을 갈급하게 찾고 있다면 우선 나의 질문에 대답해 보아라.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아마도 너는 “하나님은 당연히 하늘에 계시지요. 설마 당신 집에 계시겠습니까?”라고 대답할 수도 있고, 혹은 하나님은 당연히 만물 가운데 있다거나 사람들 개개인의 마음속에 있다거나 영계에 있다고 대답할 수도 있다. 나는 그 대답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먼저 이 문제에 대해 분명히 설명해야 할 것 같다. ‘하나님이 사람 마음속에 있다’는 대답은 완전히 옳은 것도, 그렇다고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진정으로 믿는 사람과 거짓으로 믿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이 칭찬하는 사람과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며,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과 증오하는 사람,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는 사람과 도태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이 일부 사람의 마음속에만 거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의심할 바 없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하나님이 칭찬하고 기뻐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는 사람들이다. 그런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대상이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대상인 만큼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영생의 도를 보고 들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거짓으로 믿는 사람, 하나님이 칭찬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이 증오하는 사람, 하나님에 의해 도태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하나님께 버림받고 생명의 도를 얻지 못한 자들이며, 하나님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자들이다. 반대로 마음속에 하나님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고, 하나님에게서 영생의 도를 받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따르는 대상이다. 지금 너는 하나님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느냐?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속, 사람의 곁, 영계, 그리고 만물 위에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는 땅 위에도 있다. 그러므로 말세가 도래함에 따라 하나님 사역의 발걸음도 새로운 경지로 들어섰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만물 가운데서 모든 것을 주재하는 동시에 사람의 마음속에서 든든한 방패가 되어 주며, 나아가 사람들 가운데서 살고 있다. 그래야만 인류에게 생명의 도를 전해 줄 수 있고 사람을 생명의 도로 인도할 수 있다. 하나님이 땅에 임하여 인간 세상에서 사는 것은 사람이 생명의 도를 얻게 하기 위함이고, 사람이 살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은 인간 세상에서 행하는 자신의 경영에 보조를 맞추게 하기 위해 만물 가운데서 모든 것을 지휘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살고 있다는 이 진리는 시인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늘과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는 이치만 인정한다면, 너는 영원히 생명도, 진리의 도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곧 생명이고 진리다.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는 공존한다. 진리를 얻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생명도 얻지 못한다. 진리로 인도해 주고 붙들어 주고 공급해 주는 일이 없다면 네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글귀와 이치, 그리고 죽음뿐이다. 하나님의 생명은 언제나 존재하고, 하나님의 진리는 생명과 함께 공존한다. 진리의 근원을 찾지 못한다면 너는 생명의 자양분을 공급받지 못할 것이다. 생명을 공급받지 못한다면 너에게는 분명 진리가 없을 것이며, 너의 몸뚱이는 상상과 관념으로 가득 찬 육체, 즉 구린내가 진동하는 육체에 불과할 것이다. 명심해라. 책의 글귀는 생명으로 삼을 수 없고, 역사적 기록은 진리로 삼아 섬길 수 없으며, 과거의 규례는 하나님이 현실에서 한 말씀의 실제 기록을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이 땅에 임하여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한 말씀만이 진리이자 생명이며,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현실적인 사역 방식이다. 하나님이 지난 시대에 했던 말씀의 기록을 오늘날에도 고수한다면 너는 고고학자나 다름이 없다. 그렇다면 너에게는 역사ㆍ문화재 전문가라는 호칭이 가장 어울릴 것이다. 너는 늘 하나님이 과거에 사역할 때 남겨 둔 흔적만 믿고, 하나님이 지난날 인간 세상에서 사역할 때 남겨 둔 그림자만 믿으며, 하나님이 오래전 하나님을 따르던 당시 사람들에게 전해 준 도만 믿을 뿐, 하나님이 현재 사역하는 방향이나 현재 하나님의 영광의 얼굴, 현재 선포한 진리의 도는 믿지 않는다. 그러니 너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매우 비현실적인 공상가다.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글귀만 고수하고 있다면 너는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썩어 문드러진 나무와 다름없다. 너는 너무나 고집스럽게 낡은 것을 지키고 너무나 완고하며 너무나 꽉 막혀 있기 때문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줄 수 있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56)
하나님 자신은 진리를 갖추고 있고, 그는 진리의 원천이다. 모든 긍정적인 사물과 진리는 다 하나님에게서 왔고, 그는 만사 만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 그는 과거에 발생한 일이든, 현재 발생하고 있는 일이든, 아니면 앞으로 벌어질 인류가 모르는 일이든 모두 판단할 수 있다. 그는 모든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정할 수 있는 유일한 재판관이고, 이는 모든 사물의 옳고 그름은 오직 그만이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사물의 준칙을 알고 있다. 이래야 곧 진리의 화신이며, 그러니까 그 자신이 진리의 본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이 진리를 깨달아 온전케 되면 진리의 화신과 관계가 있지 않겠느냐? 사람이 온전케 되면 하나님이 지금 행하는 이 모든 것과 하나님이 요구한 것들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되고 정확한 실행 방법을 얻게 된다. 또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 알게 된다. 하지만 사람이 닿을 수 없는 일들도 있는데, 이런 것들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알려 주어야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아직 사람에게 알려 주지 않은 일, 미지의 일을 사람은 알지도, 예측할 수도 없다. 이 밖에,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진리와 진리의 실제를 얻었고, 수많은 진리의 본질을 깨달았으며, 시시비비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치자. 하지만 사람에게는 모든 사물을 통제하고 주관할 능력이 없다. 이것이 바로 차이점이다. 피조물은 영원히 진리의 원천으로부터 진리를 얻을 뿐이다. 사람에게서 진리를 얻을 수 있겠느냐? 사람이 진리이겠느냐? 진리를 공급해 줄 수 있겠느냐? 불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차이점이다. 너는 오직 진리를 받아들이기만 할 수 있을 뿐, 공급해 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너를 진리의 화신이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 진리의 화신의 본질은 과연 무엇이겠느냐? 진리를 공급하는 원천이요, 모든 사물을 주관하고 주재하는 원천이요, 또한 만사 만물을 판단하는 기준이자 준칙이다. 이것이 바로 진리의 화신이다.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사람들이 진리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게 아니라 그에게만 순종하게 한다(3)>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57)
하나님의 진리 선포는 자신의 성품과 본질을 선포하는 것이지, 인류가 종합해 낸, 사람이 생각하는 각종 긍정적인 사물이나 긍정적인 말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며, 인류가 마땅히 의지해 살아가야 하는 법칙이자 근본이다. 반면 인류에게서 비롯된, 그 소위 신조라고 하는 것들은 하나님이 정죄하는 것이지 결코 하나님이 인정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 말씀의 근원이나 근거는 더더욱 아니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통해 그의 성품을 나타내고 그의 본질을 나타낸다. 하나님에게는 하나님의 본질이 있고, 또 하나님은 모든 긍정적인 사물의 실제이기에 하나님이 선포하는 모든 말씀은 진리이다. 이 패괴된 인류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위치에 놓고 어떻게 정의하든, 어떻게 보고 어떻게 인식하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이 사실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 하나님이 아무리 많은 말씀을 했다 해도, 그 말씀이 이 패괴되고 죄악된 인류에게 어떻게 정죄받고 버림받는다 해도 한 가지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추종하는 소위 문화, 전통이라는 것들이 그로 인해 긍정적인 사물이나 진리로 변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인류의 전통문화와 생존의 방식은 시간의 변화와 흐름으로 인해 진리로 바뀌지는 않는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 역시 인류의 정죄와 망각으로 인해 사람의 말로 바뀌지는 않는다. 이 본질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 진리는 언제까지나 진리이다. 여기에 존재하는 한 가지 사실은 무엇이냐? 바로 인류가 종합해 낸 속담들의 출처가 사탄이며, 인류의 상상, 관념, 심지어는 육이라는 것이다. 이는 긍정적인 사물과 조금도 관계가 없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본질의 발현이자 하나님 신분의 발현이다. 하나님이 왜 이 말씀들을 선포했겠느냐? 왜 이 말씀들을 진리라고 하겠느냐? 그것은 만물의 법칙, 규율, 근원, 본질, 진상, 비밀이 다 하나님이 주재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손안에 있기 때문이다. 만물의 규율, 진상, 사실, 비밀은 오직 하나님만 알고 있다. 하나님은 그것들의 기원과 근원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만물에 대해 내린 정의만이 가장 정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인류에게 제시한 요구만이 인류의 기준이며, 인류가 기대 살아가야 하는 유일한 법칙인 것이다.
―<적그리스도를 폭로하다ㆍ남들보다 뛰어나고 자신의 이익과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본분을 이행할 뿐, 하나님 집의 이익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하나님 집의 이익을 팔아넘기며, 하나님 집의 이익을 대가로 개인의 명예를 얻는다(1)>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58)
너는 갓난아기로 이 세상에 오는 순간부터 너의 직책을 이행하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계획과 예정으로 말미암아 네가 맡은 역할을 이행하고, 너의 인생 여정을 시작하는 것이다. 너의 배경이나 앞으로의 여정이 어떻든 하늘의 지배와 안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자신의 운명을 주관할 수 있는 사람 또한 아무도 없다. 이 같은 일은 오직 한 분, 즉 만물을 주재하는 이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류가 생겨난 후로 계속 이 일을 해 왔으며, 이 우주를 경영하고 만물의 변화 법칙과 운행 궤도를 다스려 왔다. 사람은 만물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용히 하나님의 감미로움과 비와 이슬의 자양분을 공급받는다. 또한, 만물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지배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하나님의 주관 속에 있으며, 사람의 모든 삶 역시 하나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진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믿든 믿지 않든 상관없이, 모든 존재는 생명이 있든 없든 전부 하나님의 생각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하고 새로워지며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물을 주재하는 방식이다.
밤이 살며시 찾아올 때,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사람의 마음은 밤이 어디에서 왔고, 또 어떻게 왔는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두운 밤이 살그머니 달아날 때 사람은 낮을 맞이한다. 사람의 마음은 낮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밤을 몰아냈는지 알지 못할뿐더러 느끼지도 못한다. 이렇게 계속 순환하는 낮과 밤의 변화와 교체는 한 번, 또 한 번 인류를 서로 다른 시기, 서로 다른 시대 배경으로 이끌었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의 각 시기 사역과 각 시대 계획도 이루었다. 사람은 하나님을 따라 이처럼 다양한 시기를 지나왔으나 하나님이 만물 생령의 운명을 주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며, 하나님이 만물을 어떻게 지배하고 다스리는지도 알지 못한다. 이는 현재와 과거의 사람들이 모두 알지 못하는 사실이다. 그 원인은 하나님의 행사가 너무 은밀해서도, 하나님의 계획이 아직 실현되지 않아서도 아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이 하나님에게서 너무 멀어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을 따르면서’ 사탄을 섬기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여전히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발걸음과 하나님의 나타남을 자발적으로 찾는 사람은 없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살아가려는 사람도 없다. 도리어 자신을 갉아먹는 사탄과 악한 자에게 몸을 맡겨 이 세상과 사악한 인류의 생존 법칙에 적응하고자 한다. 이 때문에 사람의 마음과 영이 사탄에게 바치는 공물, 사탄의 먹이로 변해 버렸고, 더 나아가 사탄이 오랫동안 머무르는 곳, 사탄의 당연한 놀이터로 전락한 것이다. 그렇게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의 도리뿐만 아니라 생존의 가치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사람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과의 약속은 점점 퇴색되었다.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을 찾거나 상대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의미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율법과 법도에 맞서기 시작했다. 사람의 마음과 영은 무감각해졌다…. 하나님은 처음에 만든 사람을 잃게 되었고, 사람 역시 본래의 뿌리를 잃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인류의 슬픔이다. 사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인류에게 사람이 주인공이자 피해자인 비극을 연출해 왔다. 그러나 아무도 이 비극의 감독이 도대체 누구인지 대답하지 못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은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59)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였고, 그가 부여한 생명을 가진, 사람이란 생명체를 세상에 데려왔다. 그리하여 사람은 부모와 가족이 생기면서 외로움에서 벗어났다. 사람은 이 물질적인 세상을 본 후부터 하나님이 정한 운명에 따라 살아가게 되었다.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이 생명체 하나하나를 밑받침해 주어 ‘어른으로 성장시킨’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살아가고 ‘성장’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부모의 길러 준 은혜라고, 사람의 생명의 본능을 밑거름으로 하여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가 자신의 ‘생명’을 부여했는지,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르며, 생명의 본능이 어떻게 기적을 일구는지는 더더욱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저 음식이 생명 연장의 근본이고, 의지력이 사람의 생명을 존재하게 하는 근원이며, 머릿속의 신념이 사람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밑천이라고 알 뿐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공급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이 부여한 생명을 이렇게 헛되이 허비하고 있다…. 밤낮으로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으면서도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은 아무런 가망도 보이지 않는 사람을 위해 자신이 계획한 사역을 할 뿐이다. 그의 바람은 언젠가 사람이 꿈에서 깨어나 불현듯 생명의 가치와 의미를 깨닫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사람에게 모든 것을 베풀면서 치른 대가와 사람이 마음을 되돌리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을 깨닫는 것이다. 사람 생명의 근원이 무엇이고 어떻게 지속되는지, 이 모든 비밀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아는 하나님만이 자신에게서 모든 것을 받고도 배은망덕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준 상처와 충격을 묵묵히 감내하고 있다. 사람은 생명이 가져다준 모든 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누리고, 하나님 역시 ‘당연하게’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망각되고, 갈취당한다. 하나님의 계획이 정말 그렇게도 중요할까? 하나님의 손에서 비롯된, 사람이란 생명체가 정말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일까? 하나님의 계획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의해 창조된 생명체는 하나님의 계획을 위해 존재하므로 하나님은 인류를 증오한다고 해서 자신의 계획을 망칠 수는 없다.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위해, 입으로 불어넣은 숨결을 위해 모든 고통을 참고 있다. 이는 사람의 육이 아닌 생명을 위함이고, 사람의 육이 아닌 그가 불어넣은 생명을 되찾기 위함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은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60)
이 세상에 온 사람은 모두 생과 사의 과정을 경험하게 되고, 또한 많은 사람이 생사윤회의 과정을 겪게 된다. 살아 있는 사람은 머지않아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죽은 사람은 또다시 돌아오게 된다. 이 모두는 하나님이 각각의 생명체를 위해 안배한 생명의 여정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여정과 윤회를 통해 사람에게 한 가지 사실을 알게 하려 한다. 즉, 하나님이 사람에게 부여한 생명은 끊임없이 지속되며, 육, 시간,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부여한 생명의 비밀이자 생명이 본래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많은 이가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든,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이든, 누구도 예외 없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모든 것을 누리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어 땅의 모든 것을 거두어들이고, 그의 생명을 되찾고자 한다면 이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으로 생명이 있는 것과 생명이 없는 모든 것에게 공급하고, 자신의 큰 능력과 권병으로 이 모든 것을 질서 정연하게 이루어 가고 있다. 이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고 이해하기 힘든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이러한 사실이야말로 하나님의 생명력을 드러내고 증명하는 것이다. 지금 나는 너에게 한 가지 비밀을 알려 주려 한다. 그것은 바로 그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생명이 가진 위대함과 능력을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에도 그렇고, 과거에도 그러했으며,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내가 알려 주고자 하는 두 번째 비밀은 모든 피조물의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생명의 형태와 구조에 어떤 차이가 있든, 어떤 생명체든, 하나님이 정한 생명의 궤적을 이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사람이 다음의 사실을 깨닫길 바랄 뿐이다. 하나님의 보살핌, 보호, 공급이 없다면 사람은 아무리 노력하고 싸워도 얻어야 할 모든 것들을 얻지 못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 생명을 공급받지 못한다면 사람이 살아가는 가치와 생명의 의미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이 부여한 생명의 가치를 헛되이 낭비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어찌 그냥 내버려 둘 수 있겠느냐? 이에 다시 한 번 강조하니, 하나님이 네 생명의 근원임을 잊지 마라. 하나님이 베푼 이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처음에 주었던 것까지 거두어 가는 것은 물론, 자신이 심혈을 기울인 만큼 사람에게 곱절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은 사람 생명의 근원이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61)
세상의 모든 것은 전능자의 생각 속에서, 눈 아래에서 아주 빨리 변하고 있다. 인류가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것이 갑작스레 등장하는가 하면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것이 부지불식간에 사라지기도 한다. 아무도 전능자의 행적을 헤아릴 수 없고, 전능자의 생명력이 얼마나 비범하고 위대한지 느끼지 못한다. 그는 사람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을 느낄 수 있기에 비범하고, 인류에게 버려지고도 그들을 구원하는 분이기에 위대하다. 그는 생과 사의 의미는 물론, 창조된 인류에게 어떠한 생존 법칙이 필요한지도 알고 있다. 그는 인류가 생존하는 근거이며, 인류를 다시 부활시키는 구속자이다. 그는 자신의 사역과 계획을 위해 기쁨을 슬픔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바꾼다.
전능자의 생명 공급에서 벗어난 인류는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면서 또 죽음을 두려워한다. 인류는 의지하고 도움받을 데가 없음에도 여전히 눈을 감고 싶어 하지 않고, 영혼의 지각이 없는 육을 간신히 지탱하며 이 세상에서 되는대로 살아간다. 너는 이렇게 아무런 소망도 없이 살아가고, 그 역시 그렇게 아무런 목표 없이 살아간다. ‘오직 전설 속의 거룩한 자만이, 고통 속에서 신음하며 그의 강림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원할 것이다’는 이 신념은 무감각한 사람에게서는 쉽사리 실현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은 계속 그렇게 바라고 있다. 전능자는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면서도 전혀 지각이 없는 사람을 혐오한다. 그가 오랫동안 기다려야 사람에게서 오는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찾으려 한다. 너의 마음과 영을 찾아 네게 물과 음식을 공급함으로써 너를 깨우고, 네가 더 이상 목마름과 굶주림을 겪지 않게 하려 한다. 더없이 피곤할 때도, 이 세상이 처량하다고 조금 느껴질 때도 방황하거나 울지 마라. 전능하신 하나님, 지키며 바라보는 그이가 네가 언제 돌아오든 너를 안아 줄 것이다. 그는 너의 곁을 지키며 네가 돌아서기를 기다리고, 문득 기억을 되찾을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네가 하나님에게서 나왔지만 언제부터인가 방향을 잃고 길에서 쓰러졌다는 것, 언제부터인가 네게 ‘아버지’가 생겼다는 것, 또 전능자가 그곳에서 네가 돌아오기를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것을 깨닫는 그날을 말이다. 그는 답이 없는 응답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인간의 마음과 영을 위해 그가 곁을 지켜 주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이 지킴은 무기한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이미 끝이 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너는 오늘날 너의 마음과 영이 대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전능자의 탄식>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62)
인류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이 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우리의 온몸과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왔고 하나님의 주재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하나님이 준 사명과 인류의 정의로운 사업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이 준 사명을 위해 순교한 사람은 물론이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공급해 준 하나님을 마주할 면목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계를 창조했고 이 인류를 지었으며, 나아가 고대 그리스 문화와 인류 문명까지 만들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 인류를 위로하고 있고, 또 밤낮으로 보살피고 있다. 인류의 발전과 진보는 하나님의 주재와 떼어 놓을 수 없고, 인류의 역사와 미래는 하나님의 배치를 벗어날 수 없다. 네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든 국가와 민족의 흥망성쇠가 다 하나님의 배치 아래에 있음을 믿을 것이다. 모든 국가와 민족의 운명이 어떻게 흘러갈지, 이 인류가 어디로 가게 될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있다. 인류가 좋은 운명을 원한다면, 또 한 국가가 좋은 국운을 원한다면,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와 죄를 자백하며 회개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인류의 운명과 종착지는 피할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이다.
노아가 방주를 짓던 시대를 돌아보자. 인류는 심히 패괴하여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어졌고, 하나님의 보살핌을 잃었으며, 하나님의 약속을 잃고, 하나님의 빛이 없는 흑암 속에서 살고 있었다. 나아가 음란이 일상이 되며 차마 볼 수 없는 지경까지 타락했다. 그런 인류는 더 이상 하나님의 약속을 얻을 수 없었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자격도 없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을 저버렸고, 하나님이 베풀어 준 모든 것을 뿌리쳤으며, 하나님의 가르침을 잊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점점 마음이 멀어지면서 이성과 인간성을 잃을 정도로 타락했다. 그들은 날이 갈수록 악해져 죽음을 향해 나아갔고,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을 불러오게 되었다. 오직 노아만이 하나님을 경배하며 악을 멀리하였기에 하나님의 음성과 지시를 들을 수 있었다. 노아는 하나님의 부탁대로 방주를 만들어 각종 생물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모든 것이 준비되자 하나님은 마침내 세상을 멸하는 사역을 시작했다. 세상을 멸할 당시, 그 재앙을 피해 살아남은 사람은 노아의 일가 8명뿐이었다. 노아는 여호와를 경배하며 악을 멀리했기 때문이다.
이제 오늘날 이 시대를 보자. 노아처럼 하나님을 경배하며 악을 멀리하는 의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런 인류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었고, 이 마지막 시대의 인류를 너그러이 용서하였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이 준 사명을 잊지 않고 그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는 사람, 하나님 앞에서 아이처럼 순종하며 대적하지 않는 사람을 찾고 있다. 네가 어떤 세력의 방해도 받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다면, 너는 하나님의 마음에 들 것이고, 하나님이 베푸는 복을 받을 것이다. 네가 지위와 명성이 대단할지라도, 지식과 재물이 많고, 지지자들이 많을지라도 거기에 구애받지 않고 하나님 앞에 와서 하나님의 소명과 사명을 받아 하나님이 맡겨 주는 일을 한다면, 네가 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고 인류 가운데서 가장 정의로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네가 지위나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소명을 거부한다면, 네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저주하고 심지어 증오하는 일이 될 것이다. 네가 대통령이든 과학자든, 목사이든 장로이든, 네 관직의 높고 낮음과 관계없이 네 능력과 지식에 의지해 개인적인 일을 한다면, 너는 영원한 실패자가 될 것이고, 영원히 하나님의 축복을 얻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네가 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네가 정의로운 일을 한다거나 인류의 행복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네가 인류의 지식과 힘을 이용해 하나님의 보호를 힘써 밀어내고, 하나님의 축복을 부정하는 일을 한다고 말할 것이다. 또한 그는 네가 인류를 어둠과 죽음으로 이끌어 가고 있으며, 하나님이 없는 곳, 하나님의 축복을 잃은 흑암 속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은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63)
인류에게 사회 과학이 생긴 이래, 과학과 지식은 인류의 마음을 차지했으며, 나아가 인류를 지배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로 인해 인류는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과 유리한 여건을 잃게 되었고, 인류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자리는 점점 사라졌다. 하나님의 자리가 없는 인류의 내적 세계는 어둡고 절망적이며 공허하다. 뒤이어 사회 과학자, 역사학자, 정치가들이 일어나 사회 과학론, 인류 진화론 등을 발표하여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했다는 진리에 어긋나는 관점을 인류의 머리와 마음에 채워 넣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만유 창조를 믿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었고, 반대로 진화론을 믿는 사람은 점점 늘어났다. 또한 갈수록 많은 사람이 하나님 사역의 기록과 구약시대 하나님의 말씀을 신화나 전설로 대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존엄과 위대함은 희미해졌고,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이 만유를 주재한다는 믿음도 아득해졌다. 사람은 더 이상 인류의 존망이나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인류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공허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하나님이 오늘날 어디에서 사역하는지, 인류의 종착지를 어떻게 주재하고 계획하는지를 적극적으로 찾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어느덧 인류의 문명은 이렇게 기대와 멀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많은 사람이 이런 세상에서 사는 것보다 오히려 죽은 사람이 더 행복하겠다고 생각할 정도다. 지난날 문명이 발전했던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조차 이런 원망을 품고 있다. 하나님의 인도가 없기에 통치자나 사회학자가 아무리 머리를 짜내 인류의 문명을 유지하려 해도 소용이 없다. 그 누구도 사람의 생명이 될 수 없으므로 인류 마음속의 공허함을 메우지 못하고, 어떤 사회적 담론도 공허의 질곡에서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 과학, 지식, 자유, 민주, 즐김, 안락으로 사람이 얻는 것은 그저 일시적인 위안에 불과하다. 인류는 이런 것들이 있어도 불가피하게 계속 죄를 짓고, 사회의 불공평을 원망한다. 또한 이런 것들이 있어도 인류의 탐구하려는 갈망과 욕망이 멈추지는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했기에, 인류의 무의미한 희생과 탐구는 사람에게 점점 더 많은 고뇌를 안겨 줄 뿐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불안에 떨며 인류의 미래와 앞길을 어떻게 직면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과학과 지식을 두려워하고, 공허함을 더욱 두려워하기에 이르렀다. 네가 이 세상의 자유 국가에 있든, 인권이 없는 국가에 있든 너는 인류의 운명에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다. 네가 통치자이든, 통치를 받는 자이든 너는 인류의 운명, 비밀, 종착지를 탐구하고자 하는 욕망을 떨쳐 버릴 수 없고, 영문 모를 공허함을 떨쳐 버릴 수도 없다. 사회학자는 인류의 이러한 공통적 현상을 가리켜 사회 현상이라 말하지만, 나서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위인은 한 명도 없다. 결국 사람은 사람인 것이다. 하나님의 자리와 하나님의 생명은 어떤 사람도 대신하지 못한다.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사회,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공정한 사회뿐만이 아니다. 인류에게는 하나님의 구원과 생명 공급이 필요하다. 인류는 하나님의 생명 공급과 구원을 얻어야만 필요와 탐구욕, 그리고 심적 공허함을 해결할 수 있다. 하나님의 구원이나 보살핌을 얻지 못하는 국가와 민족은 몰락과 흑암으로 나아갈 것이고, 종국에는 하나님에 의해 멸망될 것이다.
너의 국가는 지금 번영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네가 네 국민에게 하나님을 멀리하게 한다면, 그 국가는 점점 더 하나님의 축복을 얻지 못하고, 국가의 문명은 점점 더 짓밟힐 것이다. 머지않아 그 국가의 국민은 일어나 하나님께 대항하고 하늘을 욕할 것이다.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한 국가의 운명이 끝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강대한 국가를 일으켜 하나님께 저주받은 국가를 상대하게 하고, 지구상에서 그런 국가가 사라지게 할 것이다. 국가와 민족의 번영과 존망은 그 국가의 통치자가 하나님을 경배하는지, 국민들을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경배하는 길로 이끄는지에 달려 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에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에 하나님은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국가를 특별히 우대하고 그런 국가를 결집해 세계에서 비교적 정의로운 진영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무신론 국가, 참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국가는 자연히 정의 진영의 대립 세력이 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인류 가운데서 사역할 곳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정의의 권세를 행사하는 국가를 얻어 하나님께 대적하는 국가를 제재하고 단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더 많은 사람들의 경배를 받지 못했다. 이는 인류가 하나님과 너무 멀어졌고 하나님을 잊은 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는 그저 정의를 행사하거나 비정의를 배격하는 국가만 남아 있다. 이 정도로는 하나님의 뜻에 전혀 미칠 수 없었다. 하나님께 국민을 통치하도록 맡기는 통치자도 없고, 국민을 모아 하나님을 예배하는 정당도 없기에 하나님은 모든 국가와 민족, 집권당의 마음속에, 나아가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잃었다. 세상에 일부 정의 세력이 있다고는 해도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는 통치는 미약하며, 하나님의 축복이 없는 정치 무대는 혼란스럽고 취약하다. 하나님의 축복을 잃는 것은 태양을 잃는 것과 같다. 통치자가 국민을 위해 아무리 성실히 일하며 공헌한다 한들, 인류가 정의로운 대회를 수없이 개최한다 한들 세상을 바꿀 수 없고, 인류의 운명도 바꿀 수 없다. 사람은 의식주가 해결되고 모두가 화목하게 공존하는 국가가 좋은 국가이자 좋은 지도자가 있는 국가라고 여기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가 없는 국가는 그의 눈에 멸해야 할 국가일 뿐이다. 사람의 생각은 늘 하나님의 생각과 동떨어져 있다. 그러므로 한 국가의 정상이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다면, 그 국가의 운명은 매우 비참할 것이고, 그 국가는 종착지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의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나 모든 국가와 민족의 운명, 그리고 이 세상과 이 우주를 주관하고 있다. 인류의 운명과 하나님의 계획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어떤 사람도, 어떤 국가와 민족도 하나님의 주재를 벗어나지 못한다. 인류의 운명을 알고 싶다면 반드시 하나님 앞으로 와야 한다. 하나님은 그를 따르고 경배하는 인류를 번영시킬 것이고, 그를 대적하고 저버리는 인류를 쇠퇴시키고 멸망시킬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은 전 인류의 운명을 주재한다> 중에서
매일의 하나님 말씀(발췌문 264)
아득한 우주에 수많은 생령이 번식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생명의 법칙을 따라 순환하며, 불변의 법칙을 지키고 있다.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의 이야기를 갖고 떠나고, 산 사람은 또 죽은 사람의 역사적 비극을 재연하며 살아간다. 인류는 이런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왜 사는가? 우리는 왜 죽는가? 누가 이 세상을 주관하고 있는가? 누가 이 인류를 창조했는가? 이것이 정녕 대자연의 조화일까? 인류가 진정으로 자기 운명을 지배할 수 있을까?’ 인류는 수천 년간 끊임없이 이런 질문들을 던졌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문제에 집착할수록 과학에 대한 갈망은 점점 더 커졌다. 과학은 사람의 육에 일시적인 만족과 짧은 누림을 주었지만, 영혼 깊은 곳의 고독과 적막, 감출 수 없는 공포, 무력감에서 벗어나게 해 주지는 못했다. 인류는 그저 눈으로 볼 수 있고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과학 지식으로 심령을 마비시키고 있었을 뿐, 비밀 탐구를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는 못했다. 인류는 우주 만물의 주재자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고, 인류의 시초와 미래는 더더욱 알지 못한 채 그저 속절없이 법칙에 따라 살아가기만 할 뿐이다. 그 누구도 그것을 벗어날 수 없고 또 그 누구도 그것을 바꿀 수 없다. 만물 가운데서, 또 하늘 위에서 태고부터 영원까지 계신 그분이 이 모든 것을 주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인류가 목도한 적이 없는 분이요, 인류가 안 적이 없는 분이며, 인류가 한 번도 존재를 믿지 않았던 분이다. 하지만 그는 인류의 선조에게 생기를 불어넣고 인류에게 생명을 부여한 분이요, 인류가 살 수 있도록 자양분을 공급해 주는 분이고, 오늘날까지 인류를 인도한 분이며, 나아가 인류가 유일하게 의지하여 살아갈 수 있는 분이다. 그는 만물을 주재하며, 우주 만물의 생령을 주재한다. 그는 사계절을 주관하며, 풍상설우(風霜雪雨)의 변화를 조절한다. 그는 인류에게 햇빛을 선사하고, 밤의 장막도 베풀어 주었다. 그는 하늘과 땅을 펴고, 인류를 위해 산과 강과 호수, 그리고 그 속의 생물까지 준비했다. 그의 행사는 모든 곳에 존재하고, 그의 능력 역시 모든 곳에 존재한다. 그의 지혜는 모든 곳에 존재하고, 그의 권병 역시 모든 곳에 존재한다. 이 모든 규율과 법칙은 그의 행사를 구현하고, 그의 지혜와 권병을 나타낸다. 누가 그의 주재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누가 그의 안배에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 만물은 다 그의 눈앞에서 살아가고, 더욱이 그의 주재하에서 살아간다. 그의 행사와 능력 앞에서 사람은 그가 분명히 존재하며, 만물을 주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외에는 어떤 존재도 이 우주를 주관할 수 없고, 더욱이 인류에게 이토록 무한히 많은 것을 공급해 줄 수 없다. 네가 하나님의 행사를 알든 모르든, 또 하나님의 존재를 믿든 믿지 않든, 너의 운명을 하나님이 정해 놓았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만물을 주재하는 분이 영원히 하나님이라는 사실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권병은 인류가 알 수 있는지, 깨달을 수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알고, 오직 하나님만이 인류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 네가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든 없든, 이 모든 것은 머지않은 장래에 사람이 직접 목도하게 될 것이다. 이 역시 하나님이 곧 이룩할 사실이다. 인류는 하나님이 보는 가운데서 살고 또 하나님이 보는 가운데서 죽는다. 인류는 하나님의 경영을 위해 살고 또 하나님의 경영을 위해 두 눈을 감는다. 이렇게 끊임없이 순환하며 왔다가 가고 갔다가 또 온다.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주재와 안배이다. 하나님의 경영은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하나님은 인류에게 그의 존재를 알게 하고, 그의 주재를 믿게 하며, 그의 행사를 보게 하고, 또 그의 나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고, 수천 년 동안 경영해 온 사역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